아쉬타카
2007. 11. 20. 13:27
2007. 11. 20. 13:27
밀양 (Secret Sunshine, 2007)
(스포일러 있음)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매우 호평을 받았던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등도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밀양>은 매우 기다렸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창동, 송강호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이긴 했었다(전도연의 연기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었다)
난 보기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일부러 정보를 많이 사전에 얻지 않는 편인데,
<밀양>은 촬영현장을 스케치한 모 프로그램에서 납치라는 소재를,
그리고 모 잡지에 난 기사가운데 스쳐지나간 종교라는 소재만 미리 알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밀양'이 지명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오프닝에 송강호와 전도연이 부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고
사뭇 놀라게 되었다 (난 왜 부부일꺼라 미리 생각했던가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밀양>은 두 번 다시 보고싶지는 않은 영화이다.
영화가 재미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불편함과 억눌림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갑자기 얼마전 보았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떠올랐다.
<밀양>은 어떤 면에서는 <마츠코..>와 닮아 있기도 하다.
마츠코의 일생과 극중 이신애의 일생은(이신애의 경우 일생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둘 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이지만,
<마츠코>의 경우 희망과 뮤지컬 리듬으로 영화를 이어갔다면
<밀양>의 경우엔 참담하고 안타까운 사건들을 진지하고, 한편으론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납치와 살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신애는
누구보다도 우스운 소리라고 여겼던 종교(기독교)에 의지하고 빠져들게 되지만,
살인자를 용서하러 간 자리에서 그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다시 한번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어쩌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신'이라는 존재에게 보란듯이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일종의 '멜로'영화라고 했는데,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 해매는 신애와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곳에
항상 보이는 곳에 있는 종찬의 특별한 멜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자칫 '구원'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것으로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밀양>이 담고 있는 구원에 대한 메시지는 (종교적인 소재가 직접적으로 담겼음에도)
범인간적인, '인간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하는 넓은 의미에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영화가 매우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종교 때문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종교라는 것은 그 어느 소재보다도 건드리기가 껄끄러운 문제이며
어떻게 그려도 한 편에선 욕먹기 쉬운 것이 종교인데,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그리면서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기독교인들도 기분 나쁘지 않게, 중도를 지키는 매우 어려운 '중간'을 그리는데 성공한듯 하다.
실제로 연기자가 아니라 목사님이 출연하기도 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 스스로에게도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찬양조로 그리지도 않았으며,
'기독교'라는 집단 자체는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그저 보수적인 한 단체 정도의 의미만이
느껴질 정도였다.
종교적인 것이라면 신애와 종교 사이에 일일텐데,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던데, 신이 있다면 왜 이런일들이 생기느냐 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논란이 되는 문제가 신애에게 닥치게 된다.
이 문제는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도 명확히 답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극 중 신애는 이 같이 어디서도 구원받을 수 없는 처참한 한 여자의 삶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도연의 연기는 참 대단했다.사실 전도연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특히 연기력에 대해서
이렇다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물론 신애라는 인물 자체가 여배우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도연의 연기가
단순히 인물자체의 매력때문이었다고만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기엄마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잃고 난 고통을
제대로 쉽게 연기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에서 임한 만큼 정말 처절하리 만큼
공감할 수 있는 신애를 볼 수 있었다.
다들 전도연, 전도연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송강호의 연기였다.
포커스는 분명 신애에게 맞춰 있는 영화이지만, 만약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 없었다면
<밀양>은 더 무겁기만 하고, 단순히 처절하기만 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찬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 속에서
잠시나마 쉴 여유를 갖을 수 있었으며, 무거워만 갈 수 있었던 영화에
리듬감을 가미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마치 무슨 감초역할로 비춰질 수도 있을텐데,
종찬의 역할은 감초가 아니라 신애의 그림자와도 같이 없어서는 안될 캐릭터이며,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구원'이라는 물음에 있어서,
결국 인간이 구원받을 곳은 인간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완성시키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보는 내내 송강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표면적으로 돋보이는 전도연의 열연 못지 않게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밀양>.
납치, 살해, 종교 등 너무나도 선정적인 소재들이 한 꺼번에 쓰였음에도
그 본래의 존재 이유처럼 '소재'로만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그 만큼 더 큰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었다.
글 / ashit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