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영화 사상 가장 인상적인 엔딩 장면 중 하나인 마지막 장면의 누들스의 그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앞으로도 눈 감는 날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슬픔과 씁쓸한 감정을 가슴 깊이 각인시켰다.



누들스를 주축으로 짝눈, 팻시 등은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며 좀도둑질을 하는데 어느날 술에 취한 주정뱅이를 털려다가 프랑스에서 막 이민 온 맥스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누들스는 이렇게 만난 맥스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한편 짝사랑하는 데보라는 누들스가 한낮 깡패에 불과하다며 거절한다. 맥스가 가담된 이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 좋은 누들스의 기발한 방법으로 갱단의 밀수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큰 돈을 모은다. 이들은 그 돈을 넣은 가방을 역의 간이 보관함에 넣고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을 떼어 공금으로 모으기로 한다.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뻐하며 거리를 걷던 이들에게 곧 총을 든 버그가 뒤 쫓아와 누들스는 첫 살인을 하게 되어 감옥에 들어간다.



뚱보의 술집을 방문했던 누들스는 공원의 고급 묘지에 묻혀있는 어릴 적 친구들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는 묘지에서 자신에게 남겨놓은 현금 가방이 든 열쇠를 발견하고 그 역에 가는데 거기서 그는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선불'이라고 쓰인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막 출감한 누들스는 마중 나온 맥스를 따라 뚱보의 술집으로 간다. 누들스가 감옥에 있는 사이에 맥스의 수단으로 이들은 프랭키라는 거물과 손을 잡고 밀주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끝나면서 이들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누들스는 비록 맥스와 함께 불법 일을 하기는 하지만 맥스의 지나친 검은 야망에 둘 사이는 점점 금이 간다. 맥스는 평생 꾸어온 꿈이라면서 연방 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하지만 누들스는 반대하는데..



사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이라는 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일명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인 [황야의 무법자]로 거장의 대열에 올랐던 레오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야의 무법자]보다 더 뛰어난 영화는 아마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을 떨쳐내고,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원스)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레오네가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의 [원스]를 내놓기 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과 역경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으로서도 다른 영화들보다 엄청나게 긴 러닝타임 덕분(?)이었다. 처음 편집을 마치고 난 작품의 길이는 무려 8시간이 넘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오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 같은 러닝타임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어 내용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재편집을 한 결과 229분, 즉 3시간 49분 가량으로 단축(?)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2시간 남짓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보았을 때 결코 짧은 러닝타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사에서는 러닝타임을 과감히 삭제한 2시간 19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여 개봉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2시간 19분 동안에는 감독이 하려는 말을 모두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흥행을 목적으로 편집을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흥행에도 참패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삭제된 러닝타임을 복원하여 공개된 영화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도 전혀 달랐다. 드디어 세르지오 레오네의 진가를 깨달게 된 평론가들은 1980년대 최고의 영화를 뽑는데 주저 없이 [원스]를 선택했고, 관객들 역시 레오네가 만든 한 편의 대서사시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으로 추앙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는 장르영화에 명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서부영화로 장르자체를 개척한 작품이 되었고, 이 작품 [원스]는 마피아를 다룬 갱스터 영화로 장르적 성향이 짙은 영화였다. 이러한 그의 역량은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많은 젊은 감독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존재가 되었다. ‘한계를 모르는 분이죠’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이다.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관한 얘기들은 타이틀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서플먼트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위대한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얼마나 위대하고 따뜻하고 완벽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그 다큐멘터리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한 마디를 옮겨 적어본다.

My way of seeing things is sometimes naive but with the sincerity of the kids from the Viale Gloriose steps - Sergio Leone (1929-1989)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진지하다.




사실 호화 캐스팅이라는 광고가 걸린 작품들은 뚜껑을 열어보면, 이름만 있을 뿐 그 속은 비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스]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은, 절대 관객을 실망시키는 이름들이 아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와 함께 현재 활동하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기력과 앞으로 각종 공로상을 휩쓸게 될(이미 수상하기 시작했다)배우가 바로 로버트 드니로이다. 그는 이미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대부], [카지노],[좋은 친구들], [디어 헌터]등 많은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하였다. 이 작품 [원스]에서도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누들스 역할을 맡은 드니로는 감정 선이 굵은 면서도 섬세한 누들스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연기해 내고 있다. 특히 이미 언급하였듯 영화의 마지막, 그가 연기하는 누들스의 미소는,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 낸다. 위에 나열한 영화들과 같이 로버트 드니로는 수많은 명작들에 출연하여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감히 [원스]에서의 연기가 그중 최고가 아닐 까 싶다.



제임스 우즈는 [원스]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강열한 연기에도 전혀 눌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우즈의 이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악역을 연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원스]에서 그를 악역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표독스러우면서도 주도면밀하고 누들스와 우정과 시기, 배신을 겪는 맥스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참고로 모든 나오는 배우마다 훌륭하다, 최고의 연기, 완벽한 연기 등 칭찬 일색의 수식어를 쓰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자신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절정에 있었던 시기가 바로 레오네 감독과 함께한 [원스]의 기억이라고 얘기하듯, 그를 아는 관객들도 그의 최고 절정의 연기를 [원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은 이 두 배우들 외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다. 먼저 국내 팬들에게는 [나홀로 집에]의 코믹한 이미지로 더 알려진 조 페시. 그는 사실 유명한 마피아 영화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마피아, 갱스터 영화의 주로 출연한 성격파 배우이다. [원스]에서는 많은 러닝타임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그가 출연하는 것만으로 영화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역 배우들 가운데 우리에 눈을 유난히 끄는 배우가 한 명 있는데, 그녀는 바로 제니퍼 코넬리이다. 우리에게는 [뷰티풀 마인드]로 잘 알려져 있고, [레퀴엠]과 최근작 [헐크]에도 출연했던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에서 정말 깜찍하면서도 어린 나이 답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다. 어린 누들스가 몰래 훔쳐보는 그녀의 발레 연습장면은 아마도 누들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성인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맥거번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제니퍼 코넬리에게 더 감동을 받게 될 것 같다.



처음 [원스]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비단 짤려나간 영상들 뿐만은 아니었다. 삭제된 버전에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역시 제대로 수록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원스]에서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고 있는데,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작품의 일부를 완성시켰을 만큼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소라 하겠다. 타이틀의 커버를 장식한, 뒤로는 다리가 보이는 양쪽 건물 사이로 어린 주인공들이 벅시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에서 흐르던 너무나도 유명한 ‘뚜뚜두뚜~’하는 테마를 비롯하여 영화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아름답고도 너무나도 슬픈 모리꼬네의 음악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아니, 돕고 있다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누들스를 연기한 드니로의 눈빛 연기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지면서 연기 자체에도 날개를 단 격이 아니었나 싶다.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계속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만 같이 감독과 작곡가가 콤비를 이루어 영화를 완성하게 되는 케이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엔니오 모리꼬네는 브라이언 드 팔마, 페드로 알모도바르, 로만 폴란스키 등 거장들과의 꾸준한 작업으로, 매번 감독적인 영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 궁금증은 영화가 개봉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물음이다. 타이틀의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이에 관한 제임스 우즈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역시도 아직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 같은 궁금증을 물어온다는 것이다. 제임스 우즈도 감독인 레오네에게 물어보았지만, 레오네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맥스가 쓰레기차에 타고 안타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이해된다. 그리고 개봉당시 한 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지막 장면의 웃음의 의미에 관해 물었으나 그 대답은 듣질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가 아편으로 인한 누들스의 꿈이라는 답변을 들을 까봐 그랬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는 긴 러닝타임 때문임을 제외하더라도 시간과 사건의 편집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점은 어린 시절로 감옥에 다녀온 뒤로, 노인이 되어 나타난 요즈음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시점의 변화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정의 선이 그대로 이어지게 편집한 기술은 영화만의 매체의 장점을 백분 살리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배경이 되는 아편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꿈인가 아닌가의 중요성보다는, 부질없음과 슬픔에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일단 반갑다는 말을 해야겠다. 229분의 무삭제 버전으로 출시된 것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무삭제라는 말을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데, 누들스가 출소하여 장의사 차안에 누운 여자 시체(물론 아니었지만)를 보는 장면에서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옥에 티라고 불러야 할 장면이 될 것 같다. 개봉한지 2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출시된 타이틀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높은 퀄리티로 출시되었다. 일단 화질은 애너모픽 1.78:1의 화면을 재공하고 있는데, 최근 영화들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화질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색감에 충실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음향은 예상외로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체험할 만한 시퀀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전체적인 대사의 볼륨이 좀 작은 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같은 점 역시 충분히 감안되어질 만한 정도이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여전히 감동적으로 들려온다.



2장의 디스크로 한정판의 양장본으로 출시된 타이틀은 일단 외관상으로는 양장본인 만큼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제외하면 일반판과 똑같은 타이틀이 들어있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제작사가 워너임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양장본 케이스에 만족해야할 듯싶다(이 같은 평가는 양장본 케이스가 맘에 안 든다고 하기 보다는, 한정판만의 특전이나 부클릿 등이 수록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서이다). 일단 본편이 워낙에 긴 러닝타임을 자랑함으로 두장으로 나뉘어져 있다(참고로 중간에는 휴식 시간을 알리는 자막도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가장 기대가 되는 서플먼트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코멘터리가 눈길을 끈다. 리차드 쉬클이라는 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반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을 떠난 레오네 감독은 아닐지언정, 로버트 드니로나 제임스 우즈 같이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음성해설에 참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멘터리 외에 다큐멘터리 하나가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의 제작과정을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를 추모하고 기리는 뜻에 포함시켜 들려주고 있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제임스 우즈와 어린 누들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 주요 스텝들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최고의 걸작인 만큼 출시된 DVD타이틀도 이 정도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타이틀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2003.07.08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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