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 명작. 대작. 역작 등...이러한 수식어들은 가히 아무 것에나 붙일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다. 하지만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이러한 찬사의 수식어들조차 별 볼일 없게 만들어 버린다.



1940년대 푸에르토리코를 보호령으로 한 미국에 자유로 들어오는 푸에르토리코의 빈민들이 뉴욕에 제2의 할렘을 만든다. 백인지구와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지구가 인접한 뉴욕의 웨스트사이드에서 젊은이들의 텃세 싸움이 되 풀이되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계의 제트단과 푸에르토리코계의 샤크단으로, 서로 앙숙관계이다. 제트단의 리더 리프는 샤크단에 도전하기 위해 댄스 파티 장으로 가고, 토니에게 함께 가자고 제의한다. 패싸움에는 관심 없는 토니는 리프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파티 장을 찾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마리아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러나 그녀는 샤크단의 리더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그날 밤 토니와 마리아는 마리아의 집 발코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토니는 두 그룹의 화해에 힘쓰는 한편, 마리아와의 관계를 인정받으려 하지만, 리프와 베르나르도의 대립은 더욱 격화된다. 다음날, 고속도로 아래에서 샤크단과 제트단의 대결이 벌어진다. 마리아의 부탁으로 그들의 싸움을 말리러 간 토니. 그러나 베르나르도와의 결투에서 친구 리프가 죽자 토니는 베르나르도를 죽이고 만다. 오빠를 죽인 사람이 토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마리아.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한편 샤크단에서는 토니를 죽이려하는데…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는 수많은 결정적 장면들과 인상적 장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서두를 여는 장면은 바로 영화의 맨 처음 선보이는 프롤로그 장면이다. 프롤로그 장면은 이례적으로 감독이자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에게 전권이 주어졌다. 제롬 로빈스는 큰 부담감을 느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훌류한 프롤로그 장면을 완성해냈다. 뉴욕의 풍경을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각으로 그려낸 시작부분에서는 부유한 빌딩 숲에서부터 공장들이 밀집한 장소로의 카메라의 이동만으로 영화의 주된 주제가 되는 이민자와 토착자 간의 갈등의 요소와 원인을 잘 나타내고 있다.

웨스트사이드의 어느 외곽 공터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프롤로그 장면은, 제롬 로빈스의 역량이 돋보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트 단과 샤크 단의 세력다툼과 숫적 우세함과 불리함으로 인해 계속 바뀌는 주도권, 이를 감싸고 있는 극적인 음악과, 대사 없이도 프롤로그를 완벽하게 장식한 뛰어난 안무는, 이 장면만으로도 의미있는 장면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고전, 아니 비단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고전이다. 일단 영화를 자랑하는 김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나열해 보자면, 196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남우조연, 여우조연, 미술, 촬영, 음향 등 무려 10개의 오스카를 수상하였고, 그해의 골든 글러브 작품, 남녀 조연상, 뉴욕영화 비평가협회 작품상, 미국 감독협회 감독 상, 그래미 어워드 사운드 트랙 앨범 상까지 정말 화려하다. 하지만 영화의 중요성은 상으로 대변될 수만은 없듯이, 이런 수상경력은 그저 얘기 거리일 뿐 중요한 것은 영화이다.

세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슬럼가로 옮겨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제작 스텝들의 면면도 실로 만만치가 않다. 국내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욱 잘 알려진 뮤지컬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으로 더 유명한 로버트 와이즈와 [왕과 나]의 안무를 맡았던 제롬 로빈스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또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음악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맡아 ‘Maria', 'Tonight', ’America'등의 유명한 곡들을 들려주었다.



또한 나탈리 우드, 리차드 베이머, 루스 탬블린, 조지 차키리스 등의 젊고 유능한 배우들이 출연하여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노래와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발레를 전공한 제롬 로빈스의 안무는 영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때로는 전투적이고 공격적으로, 또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동작들을 그려내며, 연기 이상의 안무를 보여주었다.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서플먼트를 감상하다보면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접하게 되는데, 바로 감독과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의 완벽한 능력에 관한 것이다. 그냥 보기엔 연기자들이 대본에 맞추어 연기하는 일반적인 장면들인줄로만 알았던 장면들이 사실은, '원, 투, 쓰리...'하는 정확한 박자에 맞추어, 말 그대로 '연기'하듯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완벽함은 혹 부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합으로 인해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제롬 로빈스에 방식에 대해 배우들이 혹독하고 정말 고생스러웠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이러한 안무의 아름다움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치 대사를 읊는 것과도, 또한 노래하는 것과도 같은 안무는 정말 놀라움마저 들게 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 역시, 제롬 로빈스의 뛰어난 안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훌륭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한 레너드 번스타인은 대사보다 노래로 극을 전달하는 뮤지컬의 장르에 걸맞게 전체적인 분위기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스코어와, 곡 자체만으로도 유명해진 여러 멜로디들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속에 쏟아 놓았다. 중요한 몇 몇 곡들을 위주로 살펴보자.



영화의 프롤로그의 이어지는 곡으로서, 웨스트사이드 지역의 토박이(?)집단인 '제트 단'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는 곡이다. 노래와 대사가 계속 반복되면서, 제트 단의 우두머리 격인 리프(루스 탭블린 분)의 선창과 단원(?)들의 합창으로 이루어지는 곡은 짧지만, 영화의 초반 극의 분위기와 배경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중립지역인 댄스 파티장에서의 긴장되고도 화려한 댄스의 향연이 끝난 후, 서로 한 눈에 반해버린 토니와 마리아. 얼핏 '마리아'라는 이름을 전해들은 토니의 감정을 잘 표현한 곡이다. 그저 마리아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해져버린 마음을 그대로 담은, 토니의 감미로운 세레나데.



JET Song을 통해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제트 단의 성격을 얘기했다면, America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족인 '샤크 단'의 성격과 애환을 유쾌하고 흥겹게 다루고 있는 곡이라 하겠다.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실상과 아메리칸 드림 사이에서의 갈등과 현실을, 그들만의 리듬과 역동적인 춤으로 풀어내고 있다. 옥상에서의 남여가 어울린 큰 스케일의 댄스 씬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손 꼽힌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Tonight'은 가장 유명한 만큼 가장 중요한 의미와 장면에 흐르는 곡이다. 창가에 기댄 마리아와 이내 계단을 올라 그녀 곁에서 노래하는 토니의 모습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름다운 시로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고, 토니와 마리아는 감미로운 멜로디로 서로에 사랑을 확인했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극적으로 조여오는 스트링과 역시 극적으로 대비되는 가사와 장면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서로 결투를 준비하고 있는 제트 단과 샤크 단, 사랑하는 베르나도를 설레이며 기다리는 리타, 그리고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토니와 마리아. 모두 같은 '오늘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아래 각기에 다른 상황들을 한 곡안에서 절묘하게 대비시키면서, 또한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곡이다.

이외에도 마리아의 깜찍함이 돋보이는 'I Feel Pretty'와 엇갈려만 가는 운명에 슬퍼하는 토니와 마리아의 'Somewhere', 역동적이고 고난도의 안무와 음습한 분위기가 어울린 'Cool' 등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코드 1은 이전에 발매가 되었으나 이 역시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드디어 발매되는 코드 3의 타이틀은 정말 반갑게 느껴진다. 스페셜 에디션의 2장의 디스크로 발매된 타이틀은 첫 번째 장에는 본 편을 수록하고 있고,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를 수록하고 있다. 본 편은, 물론 최근 출시되는 영화들과 그 화질과 음질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이를 감안한다면 비교적 훌륭한 화질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의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타이틀의 발매가 반가운 것은 두 번째 디스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에는 그 동안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자료들이 가득 담겨있다.

제작과정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West Side Memories'에는 스텝들의 이야기와 세월이 흘러 주름과 백발이 성성한 배우들의 인터뷰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스토리 보드와 영화 장면을 비교한 몽타주, 다양한 갤러리들과 여러 가지 버전의 예고편을 수록하고 있다. 갤러리도 이전 영화들보다는 좀 더 다양한 분류의 갤러리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스크린의 뒷 편에서의 배우들과 스텝들의 모습을 다룬 갤러리는 특히 돋보인다. 예고편 역시 단순한 극장용, TV Spot의 종류에서 벗어나 예전의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한껏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2003.04.14
글 / 아쉬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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