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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버티는 삶에 대하여


케네스 로네건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는 평범한 한 가족을 둘러싼 조금 특별한 이야기다. 여기서 조금 특별하다는 표현에는 '특별하다'에 맹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에 있다. 캐시 애플렉이 연기한 리 챈들러를 중심으로 한 이 가족에게는 다른 평범한 이들에게는 흔히 벌어지지 않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영화는 이 사건 자체에 집중하거나 이를 클라이맥스로 포장해 극적인 요소를 불러일으킬 맘이 없다. 오히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이들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혹은 정반대로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이 가족에게는 어떤 갈등이 있어 왔는지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고자 한다. 


가족이라는 존재 혹은 매개체는 영화를 통해 평범하지만 아주 극적인 존재로 또 아주 극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로 그려지곤 하는데,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이 둘 중 딱 잘라 어떤 하나다라고 규정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가족과 삶을 흐르는 대로 묘사하려 한다. 흐르는 삶 속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로 또 상처와 위로가 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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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리 챈들러를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엄청나게 참아내고 있구나, 버티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아마 다른 영화였다면 그와 비슷한 사건, 상처를 겪은 인물들이 흔히 표현했을 감정의 폭발이나 행동들이 리 챈들러에게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려는 것과도 다르다. 리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고에 대해 스스로를 어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완전히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와중에 또 다른 부제를 맞게 된다. 그러면서 한 동안 떠나 있던 고향과 가족, 사회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영화 속 떠났다가 돌아오는 주인공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리는 주변과 연락을 완전히 끊은 것도 아니었고 형의 죽음 소식에 바로 돌아온 것처럼 완전히 벽을 쌓은 것도 아닌 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겨진 쪽에 가깝다), 형의 장례를 준비하게 되면서 미처 다 낫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자극받는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리 챈들러의 이야기는 한 편으론 답답하리 만큼 평범하게 흘러간다. 마치 주변에 산재하고 있는 극적인 요소들을 일부러 지나치려고 하는 것처럼 영화는 그의 주변에 감정적 위험 요소들을 늘어놓지만 리는 결코 그것들의 자극에 맞대응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아주 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만약 리와 같은 일들을 겪고 현재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경우 실제로는 그다지 특별한 행동이나 대단한 결심 등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그냥 흘러가기를, 또는 더 이상의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길 바라며 최대한 버텨내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청난 속죄의 행동을 하기에도 죄스럽고 또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훌훌 털어 내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현실에 빗대어 보자면 너무 극적인 방식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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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서는 거대한 폭풍에 흔들리고 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버텨내며 덤덤하게 흘려보내려는 그의 이야기는, 흔히 평범함 속에서 진리를 발견해 내는 일본 영화들과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일본 영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케이시 애플렉의 섬세한 내면 연기다. 그저 모든 주변의 것들을 받아 내며 견뎌내고 있는 리 챈들러의 모습은 케이시 애플렉의 디테일한 감정 연기로 현실감과 감정의 동요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감정의 흐름을 위로하듯 퍼지는 스트링 중심의 영화 음악도 큰 몫을 한다. 


다만 이 영화의 유일한 옥에 티가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연기를 펼친 케이시 애플렉이다. 영화를 보기 전 알게 된 그의 성추행 사건은,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알게 된 이상 관람에 있어 캐릭터 몰입에 분명한 방해 요소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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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Arrival, 2016)

언제나 몇 번이라도


종종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들이 있다. '아, 이 영화는 아마 감독이 어떤 트라우마 혹은 어떤 실수나 상처를 회복하고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예를 들면 가볍게는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는 감독이 자신의 자녀의 마음을 다 돌보지 못하고 이사를 가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풀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나, 판타지 영화나 타입 슬립 영화들을 보며 배우자나 자녀 혹은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이의 죽음이나 부제로 인한 슬픔 혹은 돌아와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드니 빌뇌브의 신작 '컨택트 (Arrival, 2016)'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감독인 드니 빌뇌브나 원작 소설을 쓴 테드 창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는가는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에서는 어떠한 부제가 말미 앎은 상처를 되돌리고자 하는 간절함을 넘어서는 더 강력한 삶의 의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랑이라는 인간이 가진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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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지구 상에 나타난 외계의 존재. 그들이 지구에 나타난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스 (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인 이안 (제레미 레너)은 미국 정부와 군인들로 이뤄진 팀과 함께 그들과 직접 조우하게 된다. 세션이라고 불리는 여러 차례의 조우 순간을 통해 루이스와 이안은 그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점점 더 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미지의 존재, 특히 외계에서 온 것으로 예상되는 어떠한 존재 (사실 전혀 다른 얘기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가 꼭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만 한정 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3천 년 이후 지금의 인류가 진화한 형태일 수도 있는. 즉, 그렇게 되면 이들의 방문 목적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와의 조우를 통해 모두가 가장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은 도대체 '왜?' 도착 (Arrival) 했는가에 대한 답이지만, 정작 영화는 이 질문과 답보다는 루이스의 플래시백에 더 관심을 둔다. 딸이 태어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으나 어린 나이에 결국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딸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플래시백으로 삽입하는데, 나중에 결국 이것은 플래시백이 아닌 플래시 포워드 즉 과거의 기억이 아닌 미래의 기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 '컨택트'는 유사한 설정의 SF영화들과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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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의 죽음으로 괴로워했던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들이 시제를 인식하는 방식 역시 이해하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딸의 죽음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다른 타입 슬립 영화들의 주인공들이 어떠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뒤틀린 일을 바로 잡으려는 것처럼, 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역시 갖게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미래를 바꿀 수도 있을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다. 


영화가 미래를 묘사하는 방식은 선지자적이고 예언적인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 동일하게 기억의 측면으로 그려낸 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건 미묘하게 감정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는데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이 지배하는 인식에서는 현재를 바꿔서라도 미래의 어떤 비극적인 일을 바로 잡으려 애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컨택트'와 마찬가지로 시제를 인식할 경우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히 되돌리거나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버리기엔 너무 많은 감정들을 이미 느껴버린 뒤라는 것이다. 즉, 루이스는 너무나 아끼는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자신이나 딸 모두 느끼지 않도록 아이를 애초에 낳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만나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해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현재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미래의 딸의 존재는 지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앞서 선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건 애초에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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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루이스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다시금 (사실은 처음) 그 선택을 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바로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시점 즉, 내게 아이가 없던 시절에 보았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루이스의 심정이 분명 이해되고 감정적으로도 충분히 공감한다고 느꼈겠지만, 과연 내 아이가 있는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루이스에게 이것이 선택의 문제조차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몇 개월 전 부모가 된 내 입장에서는 조금도 어렵지 않게 바로 알 수 있었다. 가끔 TV를 보다 보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날 것인가 아닌가를 묻는 순간들을 보게 된다. 사실 이 질문 자체가 별로 의미 없는 것이지만 만약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내 아이의 부모로 태어나겠냐고 묻는 다면 그건 진심으로 0.1%의 의심도 없이 바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이건 이제 막 부모가 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루이스처럼 미래의 기억 속에 아이의 아픔이 느껴지더라도 그건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 가장 첫 번째 미래일 것이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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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스 플랜 (Maggie's Plan, 2015)

삶을 유쾌하게 다루는 고급 기술


뉴욕의 겨울을 배경으로 에단 호크와 그레타 거윅 그리고 줄리안 무어가 우디 앨런 영화처럼 얽히는 에피소드를 그려낼 것만 같았던 레베카 밀러의 '매기스 플랜 (Maggie's Plan, 2015)'은 예상보다 더 사랑스럽고 유쾌하며,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그런 영화였다. 


아이를 원하지만 결혼은 원치 않아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은 결혼할 수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린 경우라고 말해야겠지만)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로 낳기로 결심한 매기 (그레타 거윅)는 우연히 자신의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존 (에단 호크)을 만나 그가 쓰고 있는 소설의 매력에 빠져, 이 소설을 이유로 존과 가까워지게 된다. 존 역시 아내이자 업계에서 유명한 교수인 조젯 (줄리안 무어)과의 결혼 생활에서 힘겨워하던 중 우연히 만나 가까워지게 된 매기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마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존이 조젯과 이혼하고 결국 매기와 결혼하게 되는 것이 결말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사실상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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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설명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진지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아주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도 아닌데, 이 복잡한 연애와 사랑의 감정들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 혹은 소품 같은 에피소드 류의 로맨틱 드라마들에게서 느껴지는 달콤 씁쓸한 느낌이나 '그래서 영화지' 싶은 영화적인 느낌보다는, 현실적으로 깊이 공감되는 설득력과 더불어 유쾌함이 기분 나쁘지 않게 (깔끔하게) 전달되는 매력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가끔 너무 현실적인 감정의 교류나 이야기 전개를 마법처럼 담아내는 영화들을 볼 땐 오히려 그래서 너무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매기스 플랜'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혼을 경험해 본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극 중 존과 매기, 조젯이 나누는 감정들이 얼마나 솔직하고 현실적이기까지 한지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기 그 자체인 그레타 거윅을 비롯해, 줄리안 무어와 에단 호크, 여기에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트래비스 핌멜과 빌 하더의 연기는 이 이야기를 (진부하지만) 살아 숨 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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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 끝나고 감동을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매기스 플랜'이 삶을 다루는 기술에 완전히 매료된 것만은 인정할 수 밖에는 없을 듯하다. 아, 진짜 다시 생각해봐도 이 영화엔 묘하게 삶의 정말 많은 조각과 감정들이 아주 현실적인 형태로 담겨 있다. 사랑에 관한 감정의 솔직한 표현과 행동이 극단적인 실패나 비난 혹은 삶의 성공이나 완성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또 허무 맹랑한 긍정이나 뒷 맛이 씁쓸한 풍자로 연결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공감되고 유쾌하면서 마냥 가볍지 만은 않은 삶의 면면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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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상의 끝 (It's Only the End of the World, Juste la fin du monde, 2016)

가족이라는 깊은 상처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 (It's Only the End of the World, Juste la fin du monde, 2016)'은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운명적인 상처에 대해 말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너무도 돌란다운 이야기에 당연히 그가 창작한 이야기일 거라고 여겼었는데, 동명 희곡의 원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오히려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단지 세상의 끝'은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한 자비에 돌란의 관심이 재차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것이 전작들과 비교해 한 발 더 성장한 것이든 정체된 것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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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향을 떠난 지 12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가족을 만나게 되는 이 짧은 이야기는, 러닝 타임 상으로도 99분의 짧은 분량이지만 호흡 면에서는 오히려 더디고 답답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공기 가득한 답답함과 긴장감 그리고 인물의 감정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클로즈업과 외적으로 과잉에 가깝게 느껴지는 음악은, 마치 영화를 보는 내내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듯한 피로감을 준다. 죽음을 앞두고 이번에야 말로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에게 조차 여지를 주지 않을 만큼, 이 가족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각각 견디고 있었던 감정의 골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해 보인다. 여백이 없이 꽉꽉 들어 차 있다는 말이 이 가족에게도, 이 영화에게도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단면적으로 보면 자비에 돌란이 묘사한 이들의 몇 시간은 마치 탈출구가 없는 무호흡의 상태처럼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지만, 한 편으론 옅은 위로가 느껴지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경멸하고 상처가 더 깊어지기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순응하게 되는 측면이 아주 미묘하게 남는다. 가족이라는 특수한 공동체 혹은 운명 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끝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그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자체에 머무르는 선택이 '단지 세상의 끝'의 가장 만족할 만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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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과 혹평,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음악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각각 수록된 삽입곡의 선택은 너무 직접적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영화적으로는 괜찮은 시도였다고 느껴진 반면, 대화 장면에서 배경에 흐르는 스코어들은 단순히 스타일이나 기법적인 측면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이질적이고 또 과한 느낌이 강했다. 몇 장면은 음악이 너무 감정을 부추기는 (대사 만으로도 이미 가득 차 있는데) 면이 있었고 또 몇 장면들은 다른 영화 음악을 잘못 삽입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실험적인 요소보다는 실패한 측면이 더 강해 보였다. 


나는 이 영화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수상 때문에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수상 사실이 없었다면 자비에 돌란이 유명 배우들과 함께 마치 연극처럼 만들어 낸 짧고 강렬한 소품 같은 영화로 더 평가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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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The King, 2016)

거짓된 우상의 가짜 충고에 대해


한재림 감독의 신작 '더 킹 (The King, 2016)'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되짚으며 그 가운데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고 또 서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흔히 말하는 상위 1%의 권력. 이미 우리가 다른 여타의 한국 영화들을 통해 봐왔던 검사가 중심에 선 이야기가 '더 킹'에서도 다시 한번 반복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의 시놉시스와 예고편을 보았을 땐, 그 어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현재의 국정농단 시국 탓에 '대한민국에서 과연 누가 왕이냐?' '왕이 한 번 되어보자!'라는 식의 이 영화가 과연 현실의 판타스틱함을 넘어설 수 있을까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시국 상황이 '더 킹'이 늘어놓으려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를 너무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진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번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한층 성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차분한 자세로 영화 곳곳을 느껴볼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때 같았으면 '저건 좀 심한데'라던지 '저건 너무 극적이다'라고 했을지도 모를 장면들이 '그럴 수도 있겠네'정도로 받아들여진 건 극적인 재미 요소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일지 모르나, 영화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는 더 깊이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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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 자체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대한민국의 최근 역사를 직접적인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 역사의 이면을 진지하게 들춰 내려는 시도보다는, 좀 더 가볍고 친절한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듯 소개하고 있다. 조인성이 연기한 박태수라는 캐릭터의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아주 상세하고 설명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좀 더 대중적인 측면은 있지만 확실히 관객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정작 영화의 마지막은 아주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는 방식인 것에 반해 실제로는 다른 영화들보다도 더 가능성은 덜한, 일방적 서사에 가까운 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15세 관람가'라는 등급에 대해 조금 갸우뚱하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폭력이나 노출 수위를 떠나 영화가 선택한 친절한 소개 방식은 확실히 15세 관람가에 더 적합한 편이긴 하다. 


대한민국 사회를 배경으로 검사와 조폭이 등장하며 개천에 용 나는 서사가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이 영화는 모두 갖고 있는데, 만약 이 영화에게 그럼에도 검사와 조폭이 나오는 아주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당연히 실망하겠지만, 이미 그런 기대감이 없었다는 점에서는 제법 괜찮은 점들이 있었다. 즉, 커다란 줄기의 서사에는 유사한 구성의 영화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전개 과정에 있어서 이 영화가 선택한 유쾌한 요소나 자조적인 풍자는 확실히 대중적인 측면에서 (15세 관람가라는 이유와 더불어) 장점이 될 만한 것으로 느껴졌다. 


앞서 서두에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가 오히려 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에 득이 된 점들도 있다고 말했었는데, 이를 테면 박태수나 권력 최상위에 있는 한강식(정우성)으로 대표되는 검사와 권력자들이 유흥을 즐기는 장면들에서의 낯설 정도의 유치함과 가벼움이 그렇다. 보통 같았으면 이러한 유치한 그들의 행동이 영화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단점으로 지적되었을 텐데, 최근의 사건을 겪으며 알게 된 실제 권력자들의 민낯과 수준 낮음의 경험이 영화 속 권력자들의 유치함을 '그럴 수도 있겠네'라며 바라보게 만들었달까. 겨우 저런 놈들 한테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의 대한 씁쓸한 자조가 드는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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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부분은 오히려 영화보다 현실에서 더 자주 겪게 되는, 그러니까 실제 하는 어떤 문제에 대한 부분이었다. '더 킹'은 주인공 박태수의 삶을 통해 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기 시작했는지를 아주 직접적이고 친절하게 설명해 나가는데, 이는 영화의 말미에 박태수의 삶을 '만약... 그랬다면..'하는 식의 되짚는 방식으로 또 한 번 그가 뒤틀리기 시작한 순간을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은 다소 친절하고 여지가 많지 않은 서사라 아쉬운 점도 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는 더 선명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메시지 말이다.


사실 직장 생활을 비롯해 사회에 나와 이런저런 인간관계들을 겪고 조직이나 사회 속에서 성장해 나가고 또 성공하려면 반드시 부딪히게 되는 순간들은, 이 영화 속 박태수가 맞닥 들였던 그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검사라는 직업 혹은 위치가 더 표면적인 욕망의 끝에 쉽게 다다를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더 큰 사회에 나와 어떤 지점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소신과 현실이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만나게 되는 존재가 바로 이른바 선배 혹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들은 사회에서 지탄받는 이들도 아니고 더 나아가 영화 속 한강식 같은 이처럼 교활하고 악한 이도 아니다. 오히려 현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센스 있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이들로 평가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바로 그 현실과 소신이 맞닥들인 그 순간에 '현실은 달라, 적당히 봐가면서 하는 게 잘하는 거야'라며 충고를 건넨다. 그리고 그 충고는 실제로 현실에서 제법 도움이 되는 충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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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된 우상의 가짜 충고에 가깝다. 이미 많은 타협을 통해 스스로가 세뇌되고 무뎌져 버린 이들이 다음 사람에게 전하는 더 빨리 타협하고 순응하는 노하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영화 속 한강식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박태수에게 전하는 충고가 바로 이것과 같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바를 진짜 이뤄낼 수 있는 방법을 (어쩌면 유일한 방법)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런 결정과 선택들이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또 앗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얘기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 킹'의 박태수는 이러한 거짓 우상의 가짜 충고를 통째로 흡수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 지경까지 몰아넣는다. 만약 이 영화가 더 현실적이고 공포스럽고 또는 장르적인 냄새를 풍겼더라면 아마 박태수를 그대로 놔두는 채 영화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더 큰 메시지로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대중적인 방식을 택한 이 영화는 박태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기로 한다. 그것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사실 이 영화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박태수가 한 번의 기회를 더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아주 직접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반대로 많은 부분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데, 어쩌면 박태수에게 가능했던 그 한 번 더의 기회야 말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영화 속 박태수가 처음 가짜 충고를 듣던 그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1. 류준열의 연기가 인상적인 가운데 김소진 배우가 연기한 안희연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사투리를 다른 의도로 활용하지 않고 자연스러움과 아우라를 동시에 보여준 캐릭터. 가장 눈에 띄는 역할과 배우였음.


2. 이 영화가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아닌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이미지로 관객을 최대한 현혹시키고 또 반대로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게는 한 없이 가벼움을 줘서 그 이중성을 관객들이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방식.


3. 그리고 전반적으로 한 세대 어린 배우들로 세대교체된 듯한 느낌도 좋았어요. 류준열을 비롯해 박정민, 정은채, 고아성까지.


4. 솔직히 약관의 나이로 검사가 되어 권력의 끝까지 승승장구하는 한강식이라는 인물을 보며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현실의 그분도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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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 (Assassin's Creed, 2016)

게임 원작의 한계와 기대


XBOX360과 PS4 유저로서 최근 몇 년간 시리즈로만 따지자면 가장 꾸준히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하나가 바로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였다. 엑스박스360 시절부터 친절한 한글화와 지속적인 새로운 시리즈의 발매 덕에 한 편도 안 빼놓고 즐긴 적지 않은 게임 타이틀이 되었는데, 꼭 그래서 만이 아니지만 '어쌔신 크리드'는 가장 영화화와 기대 또는 예상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애니머스라는 설정과 이를 통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그리고 이를 둘러싼 거대한 (진짜 거대한) 배경의 음모와 미스터리는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나중에 영화화가 꼭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와 예상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딱 절반은 불안함이었다. '어쌔신 크리드'의 영화화를 기대하게 만든 점과 걱정하게 만들었던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유다. 앞서 언급한 설정과 이야기 전개가 그것인데, 게임 '어쌔신 크리드'가 보여준 세계관과 이야기는 영화화 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소재임이 분명했지만, 그와 동시에 복잡하고 광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특히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를 즐겨온 유저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어쌔신 크리드'의 스토리는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즉, 단순히 애니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선조의 기억을 공유하며 당시로 돌아가 활약을 펼치게 된다는 것 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점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차라리 한정된 러닝 타임의 영화가 아니라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TV시리즈로 제작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기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보게 된 저스틴 커젤 감독의 '어쌔신 크리드'는 역시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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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쉬운 점부터 말해보자면 역시나 우려했던 것처럼 이 광대한 세계관과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에서 제대로 설명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 같다. 특히 게임을 접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 세계관이 이해는 할 수 있어도 미처 흥미를 느끼기 전에 영화가 먼저 달려가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가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 기획 없이 1편으로 완성해야 하는 영화였다면 지금 같은 결과물이 조금 더 이해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애초부터 3부작을 기획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결과물의 정도는 분명 아쉬운 점이다. 


즉,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면 1편에서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이 세계관과 배경의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에 더 시간을 할애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설령 너무 흔한 히어로물의 플롯이라 할지라도 '어쌔신 크리드'와 같은 작품이라면 시리즈의 첫 편에서는 화끈한 볼거리는 좀 덜했더라도 소개와 기대감을 갖도록 만드는 역할에 충실하는 편이 더 나을 뻔했다. 아쉽지만 영화 '어쌔신 크리드'는 그 비중의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한 듯했다. 어쩌면 작품 스스로도 혹시 한 편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신경 쓰기라도 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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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팬들이라면 더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기대치가 낮아서인지는 몰라도, 앞선 아쉬움 들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였다. 특히 애니머스를 시각화 한 방식이나 파쿠르를 기반으로 한 액션 장면들은 한창 게임을 재미있게 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해 반가웠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오니 오랜만에 가장 최근작이었던 게임이라도 다시 해보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쳤다). 여기저기 건물을 기어오르고 뛰고 구르고 하는 액션 들은 최대한 원작 게임을 느낌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으며, 특유의 암살 장면들은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후반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의 이미지가 더 분명해지는 지점에서는 원작 팬으로서 살짝 흥분(?)되기도 했었는데, 반대로 말하자면 역시 살짝 겉도는 느낌도 있었던 것이 사실. 


'어쌔신 크리드'가 정녕 3부작으로 기획된 영화라고 한다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 해야 할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한 이번 영화가 분명 아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이 이 아쉬움을 속편에서 만회할 여지가 남아있기에, 좀 더 두고 볼 만한 작품으로 남겨두고 싶다. 아, 그런데 과연 속편이 가능할까?


1. '맥베스'를 함께 했던 감독과 배우 콤비가 이 작품으로 다시 뭉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쁘지 않은 라인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시너지를 발휘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패스벤더와 꼬띠아르 역시 다른 작품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들의 잔상이 남아있기도 했고.


2. 개인적으로는 '어쌔신 크리드'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에지오와 데스몬드의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지?)아니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3. 어쨌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랜만에 게임이 다시 해보고 싶더군요. 신작은 언제 나오려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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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 (Rogue One: A Star Wars Story, 2016)

새로운 희망은 어떻게 탄생했나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이후 새롭게 선보인 스타워즈의 새 영화는 다름 아닌 에피소드 3의 프리퀄 격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피소드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로그원'이라는 별도의 제목을 갖은 이 영화는 기존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들과 유사하면서도 차별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차별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에는 제다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등장 여부를 두고 혹여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바꿔 말해보자면, 제다이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따져보자면 오리지널 3부작 이야기에 중심이 되는 배경인 데스스타가 다시 한번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큰 흥미이자 중심이기도 한 제다이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로그원'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다 (스포일러라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단점은 영화의 마지막, 아주 잠깐의 순간을 통해 해소돼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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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원 : 스타워즈 스토리'를 홍보할 때 '기존 스타워즈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최초의 스타워즈'라는 식의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스타워즈의 팬 입장이 아니라면 쉽게 즐기기는 부족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서, 만약 스타워즈의 팬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단점으로 고스란히 느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반 이전까지 '로그원'의 전개는 맥락만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는 식이고 캐릭터 역시 등장 이상의 공감 포인트를 전달하는 것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스타워즈 특유의 화면 전환 방식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각각의 이야기는 이 세계관이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감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눈요기가 끝나면 다른 눈요기가 등장하는 것 이상의 흥미는 아마도 주지 못할 듯싶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도 역대급의 우주전과 지상전이 그야말로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지만, 중반 이전까지는 확실히 팬의 입장에서 보아도 단조롭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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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오랜 팬으로서 '로그원'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은 단순히 팬이라 대부분의 단점을 이해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로서 은연중에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재미와 감동들이 이 영화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오프닝 타이틀과 음악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엄청난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아마도 에피소드 시리즈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강조하기 위함인 듯), 에피소드 3과 4 사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익숙한 반란군과 제국군의 전함들과 전투기들, 그리고 익숙한 스톰 트루퍼들의 모습과 스치듯이 묘사되는 낯익은 캐릭터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아마 이 영화 스스로도 이 장면이 이 정도의 감동과 슬픔을 주게 될 줄은 몰랐을 맨 마지막 장면과 그 이전 다스베이더가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스베이더의 그 짧은 장면은, 과장을 더해서 이 장면 하나 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볼 만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포스와 감동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캐릭터가 갖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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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장점 가운데 '로그원'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프리퀄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즉,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이 영화를, 특히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에피소드 4를 다시 보고 싶어 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에피소드 4의 첫 시퀀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연결 고리였다고 생각된다. 프리퀄 성격을 갖는 작품들의 경우 간혹 과하게 연결 고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후편의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설명하려 드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보다는 '로그원'처럼 아주 최소한의 연결 고리만을 자연스럽게 완성해 내는 편이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을 보면서 어쩌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점. 그 새로운 희망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탄생했는가에 대한 점을 비로소 떠올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시에 전혀 예상치 못한 캐리 피셔 (레아)의 죽음으로 인해 바로 이 지점, '로그원'과 '새로운 희망'의 연결 지점이 더 큰 감동과 의미를 갖게 된 것도 이 영화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 점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당당하고 멋진 여성상을 보여주었던 레아 그리고 캐리 피셔의 명복을 빌며.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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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캐리 피셔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그날 늦은 밤 보게 된 '로그원'은 정말 의미가 남다르더군요. 마지막 장면 ㅠㅠ

2.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를 좀 더 활용했으면 어땠을까도 싶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건 포레스트 휘태커가 연기한 캐릭터. 이 캐릭터는 막말로 등장 안 했어도 전혀 상관없는 정도로 활용되는 것에 그치는데... 참 아쉽;;

3. 견자단이 연기한 치루트 캐릭터는 호불호가 좀 강하게 나뉠 것 같아요. 특히 팬들 사이에서. 음... 전 좀 아쉽.

4. 진 역할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의 얼굴에서 여러 번 루크 (마크 헤밀)의 얼굴이 겹쳐지더군요. 그 표정 있어요 ㅎㅎ

5. 돌비 애트모스 포맷으로 보았는데 화려한 우주전에서 확실히 애트모스 사운드의 활용도를 최적으로 즐길 수 있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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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지금, 가장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겠다. 하나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거나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는 꿈으로서의 영화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메시지로서의 영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더 옳거나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가 갖는 의미는 그 나름대로 중요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화에서 다루는 현실은 누군가에겐 진짜 현실이자 또 누군가에겐 공감되지 않는 판타지 같은, 또 누군가에겐 이마저도 꿈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평범한 누군가 (혹은 이웃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라는 식의 영화들 가운데서는, 사실 영화 속 주인공은 평범한 누군가이지만 이를 접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영화 속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는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고 소개되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이는 평범해 보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서두에 언급한 영화의 기능(종류) 중 어떤 것이냐고 물었을 때, 현실에서 흔히들 거리를 두고자 하는, 내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발견할 수 있는 삶이지만 부러 돌보려 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삶을 끄집어내 절망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는 영화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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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인물이 겪는 짧은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극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한 채 그와 그가 만난 케이트 가족의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고 때론 위트 있게 그려낸다. 일단 말이 나온 김에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위트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단순히 구성상의 리듬이나 호흡 만을 위해 선택된 도구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블레이크가 옆집에 젊은 친구와 나누는 위트 있는 대화들이나 그가 갖고 있는 캐릭터에서 드러나는 작은 유쾌함 들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희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다워'로 대표되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켄 로치가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캐릭터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자존심, 존엄성을 피력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블레이크가 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말도 안 되고 또 막막할 정도로 어렵고, 답답한 과정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외적인 악조건들에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당당함과 떳떳함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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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며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지점은 평범한 시민인 블레이크와 케이티 가족이 겪는 어려움들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와 이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희망의 메시지보다는, 나는 과연 이 시스템 가운데 어디쯤에 속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현실이 내가 속한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냉정히 말해서 내가 속한 지점은 블레이크와는 달리 그가 힘겨워하고 이겨내지 못한 디지털 시스템의 절차와 복잡함을 금세 터득하고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하거나 불편을 겪었더라도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넘겨 버린 지점이 아닐까 싶었다. 더 냉정히 말하자면 거리에 노숙자들을 보며 사회의 시스템을 비판하기보다는 '누구 힘들지 않은 이가 있나? 더 노력을 했어야지'라며 그 노숙자를 비판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고, 복잡한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고충을 두고 역시 시스템 개선에 관한 생각 이전에 '왜 더 노력해 익숙해지지 못하지?'라는 비판 아닌 비판의 생각이 더 앞선 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내가 속한 현실의 지점에서 보았을 때 켄 로치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평범하지가 않았다. 시놉시스만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완만한 굴곡과 관객이 공감 혹은 감동할 지점이 예상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그러했지만 그 과정을 풀어내는 켄 로치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켄 로치는 바로 나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었는지 혹은 이 시스템이 누군가에겐 최선을 다해도 넘어설 수 없는 잘못된 것임을 몸소 깨닫게 해준다. 즉, 내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발견할 수 있는 이들이 처한 상황을 단순한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감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다는 것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놉시스를 가진 영화는 많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그들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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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는 그럼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역시 시스템에 수용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던 케이티 가족에게 블레이크가 도움이 된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티 내지 않고 블레이크에게 작은 도움을 준 이들을 영화는 돋보이게 그려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희망으로 그려낸다. 만약 그들의 도움을 극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면 이는 현실에서 절대 벌어질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우연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켄 로치는 이런 도움이 누구나 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인 동시에 우리 주변 곳곳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 불완전하고 승자에게만 편리한 시스템의 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바꿔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써 제시한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래서 지금 내게 더 깊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다. 2016년, 이기적인 것이 생존의 유일한 무기이자 자랑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각박 해져만 가는 사회 속에서, 반드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를 담은 꼭 필요한, 간절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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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

그렇게 인생 영화가 된다


스틸컷이나 예고편만으로도 '이건 딱 너를 위한 영화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노래와 춤, 로맨스와 삶 그리고 이를 담아낸 뮤지컬이라는 장르. '위플래쉬 (Whiplash, 2014)'를 연출했던 데미언 차젤의 신작 '라 라 랜드 (La La Land. 2016)'는 이미 보기 전부터 인생의 영화가 될 것만 같았던 영화였다. 뮤지컬 영화를 특히 사랑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어떤 영화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지곤 하는데, 왠지 '라라랜드'는 그 이상일 것만 같았다. 스틸컷과 예고편 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과연 2시간이 넘는 한 편의 영화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할까 싶던 그 커다란 기대는 결국 더 큰 감동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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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는 2.55:1의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로 촬영된 영화다. 시작 전 등장하는 시네마스코프 로고는 단지 비율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자 선언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1940~50년대 할리우드가 사랑한 방식으로 또 그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처럼 영화를 보여줄 거야'라고. '라라랜드'를 본 많은 관객들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이야기하는데, '라라랜드'는 어떤 개별 영화들의 장면에 대한 오마주를 담았다기보다는 4,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전반적인 존경과 동경을 담아냈다는 말이 더 맞을 듯하다. 일례로 대규모의 댄서들이 등장하는 첫 시퀀스만 봐도 그렇다. 아마도 많은 뮤지컬 영화의 팬들은 이 첫 시퀀스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정수이자 이 영화가 담아내고자 하는 영화적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충분히 여러 컷과 편집, 후반 작업등으로 작업할 수 있는 시퀀스였음에도 데미언 차젤 감독은 마치 당시의 대규모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연습과 여러 차례 리허설을 통해 이 대규모 시퀀스를 원테이크로 완성해 냈다. 이걸 단순히 기술적 성취 혹은 기술적 자랑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감독에게 이 시퀀스는 자랑하고픈 장면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들고자 한 영화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했을 필수의 장면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고 자란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표현으로서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 이 첫 시퀀스. 그렇게 이 시퀀스는 마치 좋아하는 다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의 오프닝들처럼 여러 번을 되찾아 보게 될 그런 명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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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가 도달한 뮤지컬 영화로서의 기술적 성취는 일단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근래에도 뮤지컬 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는 있지만 고전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최근의 뮤지컬 영화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함 들은 분명 존재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만족스러운 뮤지컬 영화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어도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다시 보고픈 생각이 더 간절해 지곤 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그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를 통해 제대로 접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즉, 세대와 시대가 다르다 보니 이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비디오 시절부터 DVD와 블루레이 등을 통해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런 기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같은 만족감은 미처 다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매번 다른 매체로 영화를 접할 때마다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황홀했을까? 그건 어떤 경험이었을까?'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더 들곤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라랜드'는 바로 그런 궁금증과 아쉬움을 완벽하게 해결해준 이 시대의 클래식 뮤지컬 영화다. 바꿔 말하면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다음 세대의 관객들은 분명 '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화면의 비율이라는 건 결국 거리감과 공간감 그리고 그 비율에서 오는 비율 만의 긴장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된 이 영화에는, 바로 그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서 느꼈던 리듬감과 긴장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멀리 L.A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세바스찬 (라이언 고슬링)과 미아 (엠마 스톤)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촬영 기술은 그야말로 안무의 동선을 카메라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바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점을 완벽히 수행해 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이것보다 밋밋하게 촬영했더라도 매력적인 장면이었을 수 밖에는 없지만, 완벽한 촬영이 더해지면서 순간적으로 관객들을 뮤지컬 영화의 세계로 빨아들여 버리는 엄청난 흡입력을 갖게 되었다. 얼마나 흥분되던지. 눈물이 다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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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정수를 새 시대에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작품이다. 하지만 '라라랜드'가 진짜 클래식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클래식 뮤지컬만의 매력을 오마주하고 담아낸 영화들은 근래에도 없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오마주와 클래식 함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들에게는 사랑받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그렇게 클래식함을 제대로 담아내면 낼 수록 더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노래를 하는 거야? ㅎㅎ)


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를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마도 감독 본인이 가장 고민했을 바로 그 문제. 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많은 관객들이 하는 가장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판타지스럽다 라는 것이다.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여기에 단순한 스토리와 그 판타지함을 등에 업고 조금은 허무한 긍정으로 마무리되는 작법 때문에 더 큰 거리감을 느껴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 영화의 팬으로서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판타지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반박)하고 싶지만 재쳐두고;;).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라라랜드'는 고전 뮤지컬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가져왔음에도 이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앞서 이야기한 현실과의 고민이다. 여기서 현실이란 영화 속에선 주인공들의 삶의 현실이기도 하고, 영화 밖에서는 뮤지컬/음악 영화가 처한 시대의 현실과 맞물린다. 아마 이 영화가 고전 뮤지컬의 작법을 스토리에도 끝까지 반영했더라면 지금의 결과물과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혹은 같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삶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 만나 함께하는 것이 잠시 꿈이 되지만, 결국 본래 꾸었던 꿈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진짜 재즈를 연주하는 클럽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는 세바스찬은 현실에선 그저 레스토랑에서 캐럴을 연주하는, 대중들이 듣기 좋은 BGM을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아를 만나게 되면서 미아와 함께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편으론 자신의 꿈이었던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고집을 꺾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밴드의 연주자로서 합류하게 된다. 간혹 이 과정을 뮤지션으로서 성공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세바스찬이 자신의 고집을 꺾으면서까지 밴드에 합류하게 된 이유다. 바로 미아와의 사랑을 계속해 나가기 위한 또 다른 꿈을 위해서였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이 꿈은 오히려 이 꿈으로 인해 깨져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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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의 꿈도 비슷하다. 미아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를 꿈꾸며 여러 오디션에 참여하지만 매번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해 힘겨워하던 중 세바스찬을 만나 역시 그와의 삶을 꿈꾸게 된다. 세바스찬의 응원에 힙 입어 자신이 직접 쓴 대본으로 일인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고 그 과정 속에서 밴드 활동으로 멀어진 세바스찬과도 더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무대는 결국 캐스팅 매니저에 마음에 들어 기회를 얻게 되고 미아는 자신이 동경하던 바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삶을 갖게 된다. 


아마도 다른 뮤지컬 영화 혹은 최근의 관객들이 많이 거리감을 느끼는 판타지적인 뮤지컬 영화였다면 '라라랜드'의 이야기와는 결말이나 그 전개 과정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세바스찬의 밴드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성공으로 규정하거나 세바스찬과 미아의 결론 모두가 성공이며 그 결말에 두 사람이 원하던 행복을 함께 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지었을지 모른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 스스로도 바로 그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 그 순간, 다시 영화적 판타지로 돌아가 그간의 삶의 과정들을 펼쳐내는 시퀀스는 아마 다른 영화였다면 최종적으로 선택했을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렇지 못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서 그 시퀀스는 몹시 매력적이고 황홀한 향연이 펼쳐지지만 오히려 더 쓸쓸하고 슬퍼지는 감정을 담고 있다. 이 슬픔과 쓸쓸함에 정점을 찍는 건 그다음 세바스찬과 미아의 반응이다. 마치 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듯이 그저 또 이렇게 흘러 온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겠다고 감정을 삼키는 장면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한 때 사랑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 뿐만이 아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꿈과 현실에 고민하고 부딪히며 겪어야 했던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이 짧은 눈빛들에 담겨 있기에, 아마 스스로도 왜인지 까닭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눈물이 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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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에서의 현실과의 고민은 극 중 세바스찬과 존 레전드가 연기한 키이스와의 대화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키이스는 자신의 밴드 음악을 듣고 계속해야 될지 고민하는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재즈는 의미가 없다' '재즈는 혁신적인 음악인데 그렇게 전통만 고집해서 무슨 현식적인 음악이 되겠느냐' '재즈는 미래에 있다'


이 질문은 아마도 감독인 데미언 차젤이 '라라랜드'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이 고민한 바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속 대사와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의 신봉자인 그는 그저 듣기 편한 BGM으로 전락한 현실에서의 재즈 음악에 대해 세바스찬과 같은 환멸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또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현재의 할리우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고전 뮤지컬 영화의 팬이라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특히 그것이 현재의 관객들에게 오래된 것, 별로 인 것 (혹은 어려운 것)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일 때, '왜 이 대단한 가치를 몰라주는 거지?'하며 더 정통으로, 정통으로만 파고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현재와 소통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만약 '라라랜드'가 클래식 뮤지컬의 장점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영화였다면 소수의 뮤지컬 팬들은 몹시 좋아했을지 몰라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위플래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고집스럽고 전통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재 세대가 그 전통의 것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지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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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뻔한 것 같지만 세바스찬과 미아가 겪게 되는 삶의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한 현실감을 전한다. 특히 미아가 오디션 장에서 부르는 'The fools who dream' 시퀀스가 주는 감정은 그냥 미아 만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도 오디션 장에서 연기하듯 말하고 있지만, 이 대사는, 이 노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로 관객에게 녹아든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그러니까 미아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되어 느낀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 이야기를 빌려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클럽에서 두 주인공이 다시 눈빛을 교환하고 각자의 삶으로 걸음을 돌리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성숙함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이는 동경하고픈 성숙함이 아니라 내게도 있어서 공감되지만 별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그런 성숙함이어서 이 역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그 순간 어떤 고민을 했을까. 다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을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 말한 종류의 성숙한 존재가 되어 버린 뒤였다. 그 과거가 아름답고 그립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걸 (못한다는 걸) 서로 인정하고 돌아서기에 이 마지막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느껴졌다. 물론 영화는 그 뒤에 한 장면을 더 남겨 두긴 했지만, 이것이야 말로 영화와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 판타지였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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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차젤의 '라라랜드'는 영화 속 장면 장면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그립고 또 아려오는 그런 영화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현재로 완벽하게 소환해 내는 것에 성공한. 그것도 현실의 고민과 판타지를 모두 간직한 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결과물로서 그려낸, 계속 또 보고만 싶어 지는 걸작이었다.


아.... 그렇게 '라라랜드'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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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데몬 (The Neon Demon, 2016)

아름다움을 스스로 집어삼키다


'드라이브 (Drive, 2011)'와 '온리 갓 포기브스 (Only God Forgives, 2013)'를 연출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신작 '네온 데몬 (The Neon Demon, 2016)'을 뒤늦게 보았다.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 초대되어 상영되었을 때 야유와 기립 박수를 동시에 받았다는 뉴스가 화제였는데, 전반적으로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은 논란의 작품이기도 했다. 


모델/패션 계를 배경으로 한 소녀의 데뷔와 이를 둘러싼 업계의 질투와 시기를 다룬 '네온 데몬'은 평범한 이야기 구조를 니콜라스 윈딩 레픈 특유의 감각적 이미지와 이를 한층 넘어선 초월적인 스타일로 그려낸 영화다. 일단 이 작품이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 자체의 허술함과 이를 과하게 포장하는 허세 가득한 이미지 때문일 텐데, 만약 이 영화가 다루고자 했던 메시지나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다른 종류였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네온 데몬'은 아름다움으로 포장하고자 한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추구와 탐미를 담아낸 작품이기에 허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논쟁적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오히려 껍데기뿐이 아닌 의미 있는 강렬함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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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구조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특유의 과장되고 극단적인 이미지들과 맞물리면서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 낸다. 더 예뻐지길 바라고, 더 아름답고 어린 모델을 선호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를 시기하는 업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많은 혹평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특이할 것도 없거니와 완성도와 짜임새는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가 극도로 아름답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만나는 순간, 이것은 바로 영화가 추구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비판과 맹목적인 애정 모두로 읽는 것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더 나아가 중후반부 이후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카니발니즘의 등장은 스스로를 집어삼켜 버리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 속 제니 (엘르 페닝)의 존재처럼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칭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를 집어삼켜 버리는 탐미적인 이들의 시선을 영화 자체가 대변하는,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극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래서 그것이 자주 많은 이들에게 허세로 전달되곤 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 스스로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 아니 고민 그 자체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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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 영화는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그저 주체 못 하는 감각을 극단적으로 버무린 허세 가득한 결과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매력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름다움 그 자체를 탐한다는 것에 집중한, 아마도 감독 자신이 가장 몰두하고 고민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과감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드라이브'는 여전히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앞으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을 떠올리면 '네온 데몬'을 더 먼저 꼽게 될 것 같다.


1. 지나 말론은 글쎄 모르겠어요. 필모를 보니 그녀가 출연한 다른 작품들도 많이 봤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아역 이후 처음 보게 된 것처럼 '아, 저 배우 콘택트에 그 소녀잖아!'했거든요. 그 기억 속 얼굴로 이런 충격적인 연기를 벌이니 더 큰 충격이;;;


2. 키아누 리브스도 출연하는데, 솔직히 이 캐릭터는 없어도 무방한 캐릭터라 특별히 할 말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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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죽음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의 시점에 대해 미리 알게 되는 시한부 삶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통해 그 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구성으로, 주로 회환의 정서를 담아낸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이상일의 '분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등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역시 시한부 죽음과 회환의 정서가 담긴 작품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세상에서 한 가지가 사라질 때마다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판타지적 설정이다. 그렇게 영화는 주인공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사라지게 만든다. 전화를, 영화를, 시계를 그리고 고양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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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복잡한 플롯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 이 영화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과의 직간접적 연관성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면.


영화 속 주인공은 영화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으로 연결되지만,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내게 그 이상의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대해 쓰기를 좋아하고 또 부업으로도 삼고 있지만,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 이 영화라는 것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이 영화처럼 만약 영화가 사라진다면 하고 말이다. 영화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꿈꾸는 것을 그만두는 것과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연결되는데, 내게 영화란 바로 그런 꿈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기에 영화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꿈꾸는 것 자체가 턱 하고 먹먹하게 막혀버리는 듯한 심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극장, 비디오 가게 등과 관련된 즉, 영화와 관련된 삶의 모든 추억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부분 영화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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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영화를 보기로 처음 마음먹었던 건 역시 제목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미야자키 아오이가 출연한다는 사실 보다도 먼저 알게 된 이유였다. 수년 전에 옥탑방에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었고, 이후 녀석을 입양 보내고 몇 년 뒤부터 지금까지 유기묘였던 한 녀석과 당시 여자 친구가 키우던 또 한 녀석과 함께 하고 있는 집사 인터라, 만약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이라는 궁금증은 결코 영화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이미 이별을 경험했거나 혹은 언제가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는 걸 천천히 준비하려 할 것이다. 흔히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가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존재다. 뭐랄까, 고양이와 나, 나와 고양이가 서로가 서로에게 100% 의지하는 관계랄까. 나는 고양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순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에게 많은 의지와 위로를 받고 있다. 이건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순간인데, 문득 집에 있다가 녀석들을 보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또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런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밖 현실의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언젠가는 닥치게 될 그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되어 견디기 힘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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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을 구성해 온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인연, 친구, 추억, 고양이 그리고 가족. 앞서 집사의 한 사람으로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하는 영화 속 가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이야기 역시 얼마 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더 인상 깊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라는 질문과 연결이 되는데,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나, 나는 내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였나, 나는 내 가족에게 어떤 아들, 아빠, 남편이었나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리고 참 새삼스럽고 낯간지럽지만, 지금이라도 후회스러운 일들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가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살아야겠다'라는 말은 한 편으론 참 거창하고 또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는 간지러운 표현인데, 이 영화가 담아낸 이 메시지는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면 '살아야겠다'는 맘을 먹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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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좋아하는 배우들과 제목의 고양이가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기 전 예상했던 건, 일본 영화 특유의 알맹이 없는 그럴듯한 분위기의 감성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왜,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는데, 영화 스스로가 너무 앞서가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아도 공감은 덜한 그런 영화. 


누군가에겐 이 영화 역시 그저 그런 비슷한 일본 영화 한 편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화 속 죽음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내 삶과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설령 잠시였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영화였다. 

역시 미야자키 아오이는 언제나 옳다.


1. 우리가 왜 헤어졌었지?라는 대사는 참 현실적이어서 와 닿더라는. 실제로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었지?' 싶은 일들이 많더라는.

2.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는 나중에라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

3. 영화 속 미야자키 아오이의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치면 안 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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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루크 케이지 (Netflix : Luke Cage, 2016)

할렘의 진짜 흑인 영웅



마블의 새로운 영웅 루크 케이지는 기존 영웅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 한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이건 단순히 백인 영웅이 아니라는 피부색 만의 차이가 아니라, 할렘으로 대표되는 흑인 사회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루크 케이지'는 다른 마블 작품들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면서도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중심으로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까지 확장되면서,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좀 더 긴 호흡과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 (또는 다른 색깔)의 히어로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루크 케이지'는 앞서 언급한 '흑인'이라는 정체성 외에도 다른 마블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직선적이고 또 느린 전개를 갖고 있는, 어쩌면 조금은 심심한 작품이기도 하다. 


엄청난 괴력과 모든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 피부를 가진 '루크 케이지'는 그 능력에 비해 화려한 액션 장면이나 볼거리는 선보이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루크 케이지에 빗대어 할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모와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데어데블'과 비교해서도 그리 치밀한 이야기 전개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그럼에도 '루크 케이지'가 흥미로웠던 건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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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흑인 음악을 비롯한 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는 팬으로서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겟 다운'이 이를 제대로 선보일 것 같아 큰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오히려 '루크 케이지'가 더 스스로 흑인 문화, 사회의 대변인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극 중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클럽 할렘'스 파라다이스에서는 라파엘 사딕과 페이스 에반스가 직접 등장에 공연을 펼치고, 노토리어스 BIG의 거대한 초상화도 눈길을 끈다. 또한 후반부 에피소드에는 메소드멘이 직접 출연하기도 하는데, 그는 극 중에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루크 케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랩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팝의 이발소 내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깨알 같은 NBA 관련 잡담들을 전해 들을 수 있으며, 그 밖에도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흑인 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잡담(?)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평소 흑인 문화에 관심이 덜하거나 관련 지식이 없는 이들이라면 그야말로 무슨 얘기인지 모를 잡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면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안그래도 히어로물 치고는 볼거리가 많지 않은 시리즈의 특성상 그다지 큰 흥미를 갖기 어려운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흑인 문화의 저변이 짙게 깔린 분위기 속에서 역시 흑인 사회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의 문제를 동시대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루크 케이지'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진짜 영웅담, 그러니까 판타지가 아닌 진짜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당장의 현실에 필요한 영웅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데어데블 시즌 1,2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루크 케이지'와 접점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보았네요. 마찬가지로 '제시카 존스'도 그렇고요.


2. 후드를 뒤집어 쓴 흑인 영웅이라는 점은 현실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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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 2015)

마음이 삼켜버린 폭탄의 잔해들



예전에도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포스터 이미지다. 간단한 시놉시스도 미리 알고 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만큼 최대한 영화의 정보를 모른 채로 영화 보기를 즐기는데, 그렇기 때문에 포스터 이미지는 더더욱 영화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 영화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 2015)'는 최근 몇 년 사이 포스터 만으로 가장 기대를 갖게 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몰랐고, 제시 아이젠버그가 나오는 정도만 알고 있었으며, 이자벨 위페르나 가브리엔 번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줄도 모른 채로 극장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면 '라우더 댄 밤즈'의 저 포스터 이미지는 영화의 내용과는 조금 관련성이 떨어지는, 즉 이미지 적으로는 황홀하게 아름답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연관성이 아무래도 떨어지는 이미지이긴 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 영화는 나쁘지 않았으니 포스터는 성공이라고 봐야 할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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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종군 기자로 활약하던 이사벨 (이자벨 위페르)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남겨진 남편과 두 아들이 겪게 되는 상실의 아픔 혹은 상실로서 드러나는 것들에 대한 아주 조용조용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두고 '상실'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는데, 나는 '상실' 보다는 오히려 '부재'가 더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이 가족은 이사벨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에 아파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터져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사벨의 죽음(상실)이 그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 이 가족의 갈등은 벌써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가족의 폭탄보다도 더 큰 갈등과 상처는 이사벨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이나 심리에 100% 공감하기는 어렵다. 각자 처한 상황이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충분한 공감대가 느껴질 만큼의 것들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텐데, 한 편으론 이 잔잔하기만 한가운데 폭발할 듯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폭발하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평범하고 현실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의 갈등은 다른 영화들과는 다르게 쉽게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데, 하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폭탄보다도 더 큰 무언가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소리치고 있음을 '라우더 댄 밤즈'는 그려내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끝까지 폭탄이 터지는 장면, 그러니까 갈등이 터져 나오는 일종의 클라이맥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마음속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버린 폭탄의 잔해들을 하나 씩 늘어놓으며 감정을 추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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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 중에서 이자벨 위페르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한참 동안 응시하는 클로즈업 장면이 있는데, 이른 아침 시간 극장에서 혼자 관람했던 터라 정말로 다른 여럿(?)이 아닌 나만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심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진짜 1:1로 마주 보는 기분.


2. 레이첼 브로스나한은 분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터라 단번에 알아보겠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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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

페이즈 3의 본격적인 시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CU)의 세 번째 페이즈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새로운 캐릭터 영화와 새로운 확장 세계관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닥터 스트레인지 (Doctor Strange, 2016)'가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 역할을 싱크로율이 상당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MCU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기존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도 연기파 배우들이 많지만, 대표작 '셜록'을 비롯해 독특한 아우라를 보여주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합류는 기존의 성격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의 분위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많이들 이야기했던 것처럼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치 '아이언맨' 1편과 유사한 느낌이다. 새로운 시작.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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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와 구성은 몹시 전형적이다. 안하무인으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실력파 의사인 스트레인지가 어느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 두 손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찾아간 네팔의 어떤 곳에서 에이션트 원이라는 존재를 만나 새로운 세계의 능력을 배워, 거대한 음모와 맞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신체의 장애 (혹은 상실)를 해결하기 위한 여정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를 떠올리고, 사건을 계기로 숨겨진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과정은 '배트맨 비긴즈'를 비롯한 많은 히어로물을 연상케 한다. 


또한 이들이 펼치는 마법 가운데 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순간은 마치 '인셉션'의 유명한 꿈속 설계 장면의 총정리 버전 같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후 벌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에 관한 설정 등도 아주 익숙한 전개를 따른다. 솔직히 액션 장면들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인셉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영상이 볼거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것 만으로 '닥터 스트레인지'를 재미있게 즐기기에는 조금 부족할 듯하다. 결국 이 전형적인 새로운 영웅의 탄생 담에 키 포인트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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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약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 자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처럼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줄거리와 구성이기 때문에 화려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익숙한 것들로 둘러 쌓여 있음에도 이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면 이 이야기는 하나하나를 새삼스레 공감하며 즐길 수 있게 된다.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의 만남이 기존 MCU에는 없었던 매력과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다른 히어로들과의 능력치 밸런스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마법을 선보이는 능력과 의사라는 본래 직업에서 오는 특별한 성격 그리고 능력을 얻게 된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이전의 상처 (손의 문제)에 관한 메시지 그리고 멋진 수염과 기럭지 그리고 망토에서 오는 중후함과 아우라는, 몇몇 등장 씬에서 아이언맨 버금가는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다. 같은 이유로 이전에는 MCU의 캐릭터 가운데 토르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앞으로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더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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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 캐릭터의 매력 만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다. 전형적인 히어로물 1편의 성격을 가진 영화라 다소 식상할 수 있는 부분을 캐릭터와 배우를 믿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영화라 하겠다. 아, 물론 이런 자신감은 이미 세계관을 탄탄하게 다져 놓은 것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1편을 만들 때부터 사실상 속편 이후를 계획할 수 있다는 장기적 관점도 이러한 자신감의 이유일 것이다.


어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이언맨, 토르, 캡틴 등의 히어로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고 싶다. 그가 MCU의 다른 캐릭터들과 어떠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가가 페이즈 3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 매즈 미켈슨이 연기한 캐릭터는 확실히 배우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많아요. 좀 허술하게 묘사된 부분이 많았죠.

2. 그 밖에도 개연성 측면에서는 그냥 넘어가는 점들이 종종 있어요. 

3. 이 영화를 현실 세계 중심으로 보자면 (극 중) 레이첼 맥아담스의 이상한 하루 정도로 부를 수 있겠네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크게 놀라지 않고 빠르게 적응하는 그녀ㅋ

4. 그러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토르와 스트레인지 모두 빨간 망토(?)를 ㅎㅎ 

5. 총 2가지 쿠키 영상이 등장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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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

꿈처럼 유령처럼 살아있는 존재들


장률의 신작 '춘몽 (A Quiet Dream, 春夢, 2016)'은 제목 그대로 꿈이라는 구조를 현실에 녹여낸, 소소한 에피소드 같지만 사실은 쓸쓸한 영화였다. 익준과 종빈, 정범 이 세 남자는 예리라는 인물과 그녀가 있는 고향주막을 중심으로 엮여, 아니 모여 있다. 이 세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는 쉽게 홍상수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얼핏 그런 듯도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마치 세 감독의 전작에서 자신들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들과 그 중심에 있는 한예리가 연기한 예리라는 캐릭터는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이유들로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포용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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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수색이라는 공간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수색은 내게도 어렸을 때부터 머물지는 않았으나 종종 지나치는 동네로 익숙하지는 않아도 어색하지는 않은 공간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차 있는 상암이 디지털시티라는 이름의 화려함으로 거듭나면서 오히려 수색이라는 공간의 그늘짐은 더 짙어진 경향이 있다. 장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수색을 떠올렸을 때 컬러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고 흑백으로만 기억이 되는 공간이라 흑백을 선택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도 적은 기억이지만 수색이라는 동네를 떠올리면 흑백과 전신주, 송전탑 등의 차가운 느낌만이 남아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근래에는 어떤 동네보다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 상암동의 바로 옆, 지하로 연결되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수색동의 이미지는 주인공 네 사람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지만, 마치 수색동이 그런 것처럼 화려함과 사회의 중심에서 아주 먼 곳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유령'과 '살아있다'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는데, '춘몽'은 단지 사회의 중심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유령처럼 느껴지는 존재들이 바로 곁에서 살아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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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를 비롯해 이들의 삶은 항상 죽음 혹은 위험과 맞닿아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묘사하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긴장감을 오히려 현실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꿈이 아닐까 싶다. '춘몽'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마치 꿈과 같은 장면들이 현실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이들 삶의 위태로움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한 편 위로하는 듯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장률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두만강'인데, 그 이유는 경계인이라는 장률 감독 자신의 정체성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한국 출신 감독은 소화하기 어려운, 그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묘사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춘몽' 역시 많이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야기가 짙게 깔려 있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관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쓸쓸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한 유령 같은 또 다른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춘몽 (春夢)'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은 왠지 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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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이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에요. 이 세 명이서 만드는 짧은 대화 시퀀스들의 재미는 앞서 이야기했던 홍상수 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빅재미가 ㅋㅋ


2. 아, 세 감독의 메소드 연기 못지않은 이준동 대표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ㅎ 왠지 현장에서는 많이 즐거웠을 듯한 ㅎㅎ


3. 이주영 배우도 인상적이었어요. 어서 '꿈의 제인'도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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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아만다 녹스 (Netflix : Amanda knox)

살인사건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어두운 자화상


몇 해 전 해외토픽으로 연일 이슈가 되었던 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 페루지아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 유학생 살인사건이 그것이었는데, 이 살인사건에 범인을 두고 아만다 녹스라는 여성이 도마 위에 올라 몇 차례의 재판을 통해 유죄와 무죄를 오고 가는 판결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그녀의 이름인 '아만다 녹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이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처음 사건이 일어나던 시기부터 모든 재판이 끝나는 시점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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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장르의 다큐멘터리로는 역시 넷플릭스의 간판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살인자 만들기 (Making a Murderer) '를 들 수 있는데, '살인자 만들기'가 오랜 시간에 걸쳐 사건을 완벽하게 해부하고 그 가운데 잘못된 지점들을 발견해 내 살인자로 지목된 스티븐 에이버리의 무고함의 측면을 세세하게 말하고자 한 것과 달리, '아만다 녹스'는 살인사건의 과정과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핵심은 그보다 이 살인사건을 둘러싼 다른 것들의 경솔함 혹은 무책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아만다 녹스와 그의 남자 친구가 직접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등 희대의 악녀 (혹은 변태 살인자)로 몰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그들의 입장에 서서 억울함과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만다 녹스가 영화 속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살인자라고 생각한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각각 나는 어떤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억울한 희생양도 희대의 악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이 이 사건을 이토록 자극적 쟁점으로 부각하였는지, 이 사건을 둘러싼 다른 것들(사람들)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드리운다. 팩트 체크도 없이 오히려 팩트를 일일이 체크하게 되면 타이밍을 잃게돼 다른 언론사에 특종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기자(언론)의 모습은, 이 작품이 이 사건을 통해 전하고자 한 씁쓸한 현재의 결론과 같다 (이 기자가 초반에는 제법 유능한 기자로 묘사된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누군가가 목숨을 잃고 또 누군가가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그보다 더한 굴욕적 주홍글씨까지) 누명을 쓰게 될 수도 있는 사안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 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극적인 측면만 부각해 이슈를 만들고, 그 이슈에 함몰되어 대중들 역시 쉽게 판단하고 휩쓸려 버리고 마는. 그리고는 또 쉽게 잊어버리면 끝나는 일련의 과정들은, 아만다 녹스가 진짜 살인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보다도 더 밝혀내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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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Sully, 2016)

모두가 살아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Sully, 2016)'는 잘 알려졌다시피 2009년 허드슨 강에서 일어났던 항공기가 추락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라 당시 뉴스를 통해 접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데 이 사건이 놀라웠던 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항공기 추락 사고였음에도 승무원과 탑승객을 포함한 155명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인 '설리'는 당시 항공기의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고독한 영웅의 서사를 꾸준히 그려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목한 건 항공기의 추락이라는 재난 영화적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설리'는 일단 일반적인 재난 영화들과 방향성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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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은 사고 이후에 있다. 사고 이후 설렌버거 기장 (톰 행크스)과 부기장 제프 스카일스 (아론 에크하트)는 조사위원회에게 조사를 받으며 압박을 받게 되는데, 주된 요인은 허드슨강에 착륙해야만 했는가 즉, 이륙한 공항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가까운 공항으로 착륙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나 라는 의문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영화는 상당히 건조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취한다. 기적을 이뤄낸 영웅이라는 미디어의 찬사를 건조하게 늘어놓는 동시에 과한 관심과 집중을 불편해하는 설렌버거와 가족들의 모습을 겹쳐 놓고, 또한 조사를 받는 가운데 혹시 자신이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민하는 설렌버거의 모습과 더불어 이를 추궁하는 조사위원회 인물들을 그릴 때도 쉽게 나쁜 의도를 가진 악한 자로 단순화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객관적이고 건조한 시선을 보여주게 되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이 추락사고라는 직접적인 사건에서 멀어져 설렌버거라는 한 사람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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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결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관객 각각이 어떤 경험들을 했는 가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 역시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의 기억, 아니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 밖에는 없었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설리'는 여러 면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허드슨 강에서 벌어진 항공시 추락사고와 세월호 참사는 정반대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이 지점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관제소는 데이터에 따라 다른 공항들로 회황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기장은 직관적으로 이를 거부하고 허드슨 강에 착륙하는 모험을 택했고 결론은 전원 구조였다. 즉,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특히 더 시스템의 선택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세월호 사건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시스템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정상적인 시스템을 인간들이 스스로 무시하고 은폐하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생명들을 앗아간 경우였다 (혹여 이것을 똑같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인간의 직관대로 행동했지만 결과가 다른 경우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더 이상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9.11을 겪은 뉴욕의 재난, 구조 시스템은 셀렌버거의 선택과 더불어 완벽하게 기능하여 20여분 만에 전원을 구조해 낸 반면, 세월호의 경우 인명의 구조에 앞서 다른 사사로운 것들을 눈치 보고 챙기느라 오히려 시스템 밖에서 도움을 주고자 한 이들의 손길마저 차단하며 믿기지 않게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볼 수 밖에는 없었던, 사실상 그들은 아무도 구조하지 않은 끔찍한 참사였다. (그럴 린 없지만) 마치 한국 관객 보라는 듯이 빨리 몸을 피하라는 승무원에 말에도 끝까지 남은 탑승객은 없나 위험을 무릅쓰고 확인한 뒤 맨 마지막으로 항공기에서 탈출하는 셀렌버거의 모습에서, 떠올리려고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제일 먼저 탈출했던 세월호 선장의 모습이 기분 나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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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설리'는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리고 이스트우드는 이 기적 같은 사건과 셀렌버거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였을 텐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처럼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


155명 전원을 구조했다는 대사가 나올 때. 승무원들이 구조 과정 속에서 침착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승객들을 피신시킬 때. 추락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구조 관련 인력들이 재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추락한 항공기를 둘러싼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외에 많은 장면들을 보면서 왜 세월호 때는 그러지 못했나. 작은 한 두 가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했더라도 수많은 생명들이 그 바다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계속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아요'라는 말. 그리고 '모두가 살아남았다'라는 헤드라인들.

세월호도 그래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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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어 히어로 (I Am a Hero, アイアムアヒーロー, 2015)

좀비물과 영웅물의 조금 다른 전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토 신스케 감독의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좀비 영화의 장점과 현 일본의 사회문제, 젊은이들이 느끼는 현재의 일본의 문제를 녹여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순한 좀비 액션 영화로 포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전개 과정 중 영화가 선택하는 방향이나 마지막을 비롯해 영화 내내 존재하는 단절과 무력함은 이 영화를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로 만든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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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분의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이지만 관객이 느끼기에는 많은 부분이 축약되거나 소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아마도 원작 만화를 접한 이들이라면 더 그러한 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나타나고 확산되는 과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좀비와의 맞닥들임과 거리를 온통 뒤덮은 좀비들로 간략하게 묘사한다. 


이후 주인공 히데오 (오오이즈미 요)는 좀비를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여고생 히로미 (아리무라 카스미)와 동행하게 되는데, 다른 일반 좀비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 히로미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히로미는 상당히 빠른 타이밍에 자신이 좀비에게 물렸다는 것을 고백하고 또 그로 인해 좀비로 변하게 되는데, 아마도 다른 좀비 영화 같았으면 (이를 테면 최근의 '부산행'이라던가)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가까운 인물이 좀비로 변하게 되는 것은 최대한 뒤로 미루었을 텐데, 이 영화는 거의 초반에 주요 캐릭터인 히로미를 등장시키자마자 좀비로 변하게 만드는 점이 이채로웠다. 그래서 이 히로미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려나 싶었을 때 히로미가 다른 좀비를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아주 빠른 타이밍에), '아, 히로미가 일종의 좀비와 대적하는 대에 꼭 필요한 인물로 활용되는구나'라고 예상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알다시피 히로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오히려 짐이 되고 만다 (정말 마지막에 히데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땐 무언가 능력이 발휘되겠지 싶었는데 정말로 끝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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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히로미의 약간은 낭비 혹은 방치되는 듯한 캐릭터 활용에 대한 의문은 이후 주인공 히데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그렇고 초반 히데오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극적인 순간에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아이 엠 어 히어로' 역시 그런 영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히데오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항상 '한자로는 영웅이라고 쓴다'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정작 영화의 맨 마지막 살아남은 이들이 히데오를 가리켜 영웅이라고 부를 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더 이상 '영웅'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이쯤 되면 영웅적인 면모가 들어 나야할 장면에서도 (캐비닛에 숨어 있다가 무전을 받고 일행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장면), 몇 번이나 상상 속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반복한 뒤 드디어 실제 벌어진 상황에서는 실패가 아닌 좀비들을 무찌르는 결과를 보여주기는커녕 그냥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결과를 보여준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일반적인 직선의 방향으로만 풀어냈다면 평소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용기도 부족했던 히데오가, 결국 좀비들로 인해 모두가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 용기를 발휘해 모든 좀비를 해치우는, 그래서 진짜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엠 어 히어로'가 흥미로운 건 표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전개와 결말이 그대로 벌어졌는데도, 영화의 정서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모든 끔찍한 상황이 마무리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히데오 스스로 더 이상 자신의 이름에 영웅이라는 소개를 하지 않는 장면은, 겸손으로 또 긍정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는 결국 영웅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씁쓸한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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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좀비물 만의 장점이라면 끔찍한 움직임과 모습 탓에 가끔 움찔하며 눈을 피하게 되는 공포와 동시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는 유머가 공존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 엠 어 히어로'는 그 끔찍함과 잔인한 장면들에 긴장하는 동시에 묘하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던 괜찮은 좀비 영화이기도 했다. 내용적으로도 아주 뻔한 선택으로 흐르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그 이면에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 엔딩 크래딧을 보니 한국 스텝들이 많이 나오길래 찾아봤더니 쇼핑센터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군요 (파주 아웃렛에서).


2. 아리무라 카스미는 최근 필모그래피가 꾸준하고 또 괜찮네요. 드라마 mozu, 영화 '나만이 없는 거리'와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까지'. 요새 지켜보고 있는 일본 여배우 중 하나.


3. 국내에 블루레이로도 정식 발매 예정이라고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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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아름다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보기 전,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황옥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황옥의 삶은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에게 조차 그가 끝까지 의열단 단원이었는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당시 행했던 행동과 결과들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존재인 동시에 몹시 영화적인 인물로서 아마도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황옥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그 존재의 모호함을 어떻게 시대와 함께 그려낼 것인지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작품이 바로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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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 (영화 속에서 황옥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열단과 뜻을 함께 했다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황옥의 삶을 보면 의열단으로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던가 반대로 일본 경찰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번갈아 가며 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한 인물인데, 영화 속 이정출로 분한 황옥의 모습은 초반에는 살짝 모호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확고한 시선으로 조선을 위해 행동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영화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다큐멘터리도 아니니까), 황옥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밀정'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영어 제목처럼 시대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위태로움에 대한 묘사와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을 나오며 '과연 이정출은 어느 편에 섰던 것일까?'라고 되묻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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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러한 선택과 별개로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이미지, 미장센은 역시 기대한 대로 매혹적이었다. 당시 상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을 땐, 아마도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대는 바와 영화적 시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기차 씬도 전체적인 긴장감의 묘사가 흥미로웠고 후반부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한 씬은 반어적인 음악이 적중한 매력적인, 또 보고 싶은 멋진 씬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나중에 읽어보니 처음에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 영화들처럼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자 싶었으나 후반부가 되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에 대해 감화되어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래서인가. '밀정'은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두 군데 정도인데, 장면으로 두 곳 정도이지만 아쉬웠던 이유는 사실 같다. 하나는 중반쯤 독립군들이 밀정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 참혹하게 사살될 때 스윙 재즈 곡인 'When you’re smiling'이 반어적인 느낌을 주며 배경에 흐르는 장면이다. 이런 반어적 음악의 사용은 참혹함을 강조시키기거나 혹은 정반대로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선과 악이 모호한 주인공 혹은 인물이 또 다른 악을 처단하거나 할 때 비극적인 느낌이 아닌 음악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물의 선악의 모호함과 함께 그 행위 자체의 선악의 불분명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밀정'에서 독립군들이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리듬감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를 땐, 반어적 활용에서 오는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1차적인 불편함이 더 컸다. 이러한 반어적 음악의 활용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액션 (폭력, 살인 등)을 행하는 인물이나 당하는 인물의 선악이 불분명하거나 특히 가하는 쪽이 분명한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독립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명확한 슬픔과 아픔의 역사이기에 아직은 반어적으로 표현하기엔 보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더 앞섰다. 더군다나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확실한 전후 처리, 그러니까 친일 세력에 대한 벌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불편한 영화적 기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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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기차 씬에서 이정출과 김우진 (공유)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한 상황으로 밀정, 그러니까 배신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경성에 잠입하려는 의열단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경찰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으로서,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씬이다. 이 가운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몇 차례 조우하게 되는데, 그 대화 시퀀스를 보면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밀정을 색출해 내고 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기 위한 말만을 전하는 반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이 대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유머를 구사한다. 


예를 들면 김우진이 어떻게 하라고 이정출에게 말하자 이정출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기를 '저 새끼는 나한테 자꾸 명령을 하고 그래'라며 투덜대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생활감, 현실감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연기는 오달수 배우나 송강호 배우 등이 많은 영화를 통해 자주 보여주었던 스킬인데, 그런 대사들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주 반가울 일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웃음 포인트 (실제로 여기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웃을 만한 장면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기보다는, 긴장감을 떨어 뜨리는 동시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마저 떨어 뜨리는 역효과가 있었다. 너무 내용이 무겁다고 판단된 탓에 긴장을 덜어주고 재미를 주려 했다면 이러한 대화 시퀀스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에 삽입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 중요한 그 기차 씬 중간에 벌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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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조금 모호한 지점에 놓여 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애초 그리고 싶었던 것처럼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을 냉전 시대의 스파이 영화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더 감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은 어중간한 영화로 남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를 다룰 땐, 특히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같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결이 분명한 역사를 다룰 땐 행여 더 투박할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정'은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땐 이미지 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역사적 측면으로 보았을 땐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1. 써놓고 보니 마치 프로불편러가 작성한 글 같은데 영화의 전부가 그런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몇 가지 지적한 부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부분을 특별히 콕 집어 얘기한 경우죠. 


2.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밀정'과 '암살'을 비교했을 때 영화적으로만 보면 '밀정'이 훨씬 매력적이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신중함에 있어서는 '암살'이 더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암살은 맞고 밀정은 틀렸다가 아니라, 암살이 밀정보다 역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


3. 전 개인적으로 일제 시대 그리고 독립운동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와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억울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많은 친일파 세력들을 더 자주 불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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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버스터즈 (Ghostbusters, 2016)

여성 버전으로 다시 한 번!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시고니 위버가 출연했던 1984년 작 '고스트 버스터즈'가 멜리사 맥카시와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4인방의 여성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원작 '고스트 버스터즈'는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사랑 받는 코믹 액션 영화인데, 전작 '스파이'를 함께 했던 폴 페이그 감독과 멜리사 맥카시가 주축이 되어 4명의 남성 팀원들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한, 이른바 여성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를 선보였다. 


일단 간단하게 말해서 원작에 비해 여성 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는 성별을 교체한 것 외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즉, 1984년 원작의 리메이크 영화라 할 수 있는데 4명의 주인공들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하고, 원작에서 여성인 시고니 위버가 맡았던 역할과 유사한 롤의 캐릭터를 남성인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하는 것 외에, 2016년 버전의 현재성을 가미하거나 발전된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조금 어려운 영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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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갖고 극장을 찾는 다면 (특히 원작의 재미에 버금가는 흥미진진한 요소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실망하기 쉽지만, 원작을 못 본 관객들이나 큰 기대 없이 코미디를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에겐 그리 나쁜 선택이라고 보긴 힘들 듯 하다. 이 영화는 거의 9할이 개그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렇게 개그가 양념이 아니라 본 식사로 제공되는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일단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호불호가 될 것이다. 쉴새 없이, 거기에다 미처 관객들이 (특히 미국 관객이 아닌 관객들이라면 더)다 알아 채지 못하고 넘어갈 정도의 개그들까지 아주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솔직히 조금 지치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몇 몇 장면에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소리 내서 웃었을 정도로 유쾌한 유머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주인공을 단순히 남성에서 여성으로 교체한 것에 그치는 것은 맞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 버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자와 재미 요소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사실 영화 스스로는 페미니즘 적인 요소를 겉으로 전혀 과장하여 주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 영화를 겉에서 바라보는 일부 관객들이 오히려 단지 성역할이 바뀌었다는 이유 만으로 몰지각하게 비판하는 것이 다분하다. 폴 페이그의 2016년 여성 버전의 '고스트 버스터즈'는 여성들로 주인공을 바꾸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설득하기 보다는 그냥 여성들이 주연을 맡았을 때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반드시 여성이여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더 나아가 레슬리 존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를 비판하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재미가 없다는 건 다른 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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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여성들로 주연 캐릭터들이 바뀌면서 새로운 재미와 풍자의 요소가 된 건 크리스 햄스워스가 연기한 케빈 캐릭터다. 우습게도 여성 캐릭터였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요소들이 크리스 햄스워스의 해맑은 연기 (본인 스스로 너무 즐기는 듯한)를 통해 새로운 풍자의 요소로 부각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페미니즘적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 햄스워스의 캐릭터는 시종일관 재미있는 가운데서도 무언가 그간의 남성 중심 영화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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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전체적인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 수많은 개그들을 유기적으로 엮을 만한 스토리와 전개 과정이 아무래도 단순한 편이고,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임팩트가 떨어지는 (분명 여긴데 겨우 이정도?? 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것은 좀 더 시원하고 통쾌할 수 있었던 액션을 심심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아, 그리고 이 영화는 대놓고 3D로 보라고 만든 영화인데 국내에서는 (아마도)흥행성 탓에 3D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3D아이맥스, 4DX 등으로 관람했다면 더 유쾌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이 영화는 그렇게 봐야하는 영환데 말이다.



1. 원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모습이 반가웠어요. 제법 비중있었던 빌 머레이 외에 잠깐 등장한 댄 애크로이드와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시고니 위버까지. 댄 애크로이드는 이 작품의 제작에도 참여했더군요.


2.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나고 짧은 쿠키 장면이 나와요. 속편을 암시하는 듯 한데, 과연 나올 수 있을지!


3. 어렸을 때 원작보고 호빵 귀신 젤 무서워했었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 ㅎㅎ 


4. 케이트 맥키넌은 팬덤 좀 생길듯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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