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매거진에 대한 몹쓸 꿈


글을 좀 쓴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긴 글을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일종의 매거진 말이다. 웹진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만져볼 수 있는 매거진 형태일 수도 있고, 더 포괄하는 개념으로는 책자 정도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쨋든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나 장르의 글들을 한 곳에 모아 소개하는 정기적인 잡지를 직접 만들어 보고 픈 꿈. 나도 어쩌다 보니 이래저래 돈을 받고 글을 쓴지 10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렇다 보니 인생의 고비를 겪을 때 마다, 아니 그냥 문득 문득 내가 한 번 편집장이 되어 하나의 콘텐츠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곤 했다.


하지만 이 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난 이 꿈이 아주 몹쓸 꿈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20대 시절에 저질러 버렸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직접적인 관련 업계는 아니지만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제법 존재했다보니, 나와 같은 생각으로 스스로 잡지를 만들 거나, 웹진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를 엿볼 수 있었는데, 결과는 대부분 그리 좋지 않았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곳들도 처음 꿈꿨던 것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거나,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곤 했다.


한 번의 시대가 가고, 다시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대가 왔지만 그래도 이 매거진에 대한 꿈은 그리 희망적이진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의 대한 소비 수요가 많아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영화, 음악, 서브 컬쳐 등에 관한 이야기나 이를 모바일에 최적화 된 카드 형 콘텐츠가 아닌 '글'을 읽는 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비교적 긴 글 위주로 구성된 매체는 여전히 시장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아무래도 최근의 트랜드는 어떡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더 축약하고 시각적 이미지 혹은 동영상으로 단 시간에 표현해 내는 가가 중요 포인트이기 때문에, 이 트랜드를 역 주행하는 긴 호흡의 매체는 시장에서 선택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이 몹쓸 꿈을 변호하자면, 어차피 트랜드와 큰 시장을 노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수가 대중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겠지만, 마니아 혹은 오타쿠라고 불리기도 하는 더 깊이 있는 장르의 이해와 호기심이 있는 이들이 만족하고 흥미로워 할 만한 작은 규모의, 하지만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한 글과 매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니, 작지만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매체나 잡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 제법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들 지속 가능한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 꿈을 계속 꿀 수 있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연상호 감독님의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DP시리즈를 통해 합본으로 블루레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돼지의 왕'과 '사이비'는 정말 독보적인 작품들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제 글을 수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 글은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발매된 (사이비는 KD미디어) '돼지의 왕' 블루레이 내 소책자에 실렸습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영광이네요!






플레인 아카이브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단순히 참여해서가 아니라 다른 라이센스 타이틀에는 없는 소책자라던지 (최근엔 점점 다른 제작사들도 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죠. 좋은 현상입니다), 소장 가치를 최우선 한 손으로 만져 지는 타이틀의 느낌이 좋아서 항상 관심 있게 보고, 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에는 감독님과 배우들 분 중 한 분의 싸인 엽서가 동봉되었는데, 저도(?) 연상호 감독님 싸인 엽서네요. 최근 분위기는 감독님 옆서를 뽑으면 꽝이라는 것이 대세입니다 ㅎㅎ 





그리고 수록된 소 책자에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제 글. '그 때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 지배자와 피 지배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계급사회의 현실. 이라는 제목의 글을 담았습니다. 이것도 매번 소책자 소개를 할 때 마다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글이 수록되다 보니 수록된 그 페이지의 이미지도 되게 궁금하거든요. 아, 그런데 이번에도 참 마음에 듭니다. 저 이미지! 그냥 관련 이미지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성격에 따라 최대한 그 글과 맞는 이미지를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다른 영화 글을 쓸 때도 이미지를 삽입할 때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인데, 플레인 아카이브는 제 선택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네요.






요렇게 글 말미에 제 서명과 함께. 매번 인쇄되어 지는 매체에 글을 담는 건 대단한 영광이자 부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인 것 같고요.






씨네21 '전영객잔'에 실렸었던 장병원 평론가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비교하진 마세요 ㅎㅎ)

아,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자세하게 소개하겠지만,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 프로젝트에서는 소책자 글 뿐만 아니라 부가 영상에 수록된 감독님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모습은 안나와요 ^^;





아, 그리고 추가로, 제가 한 때 정말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했던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에도 제 짧은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발매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정작 제가 타이틀을 너무 늦게 받아봐서 이제야 간단하게 소개하네요.







이번 글의 제목은 제법 오래 고민한 제목이었는데, '귀여운 골판지 왕자'와 '귀여운 셀로판지 왕자'를 두고 혼자 오래 고민했었다는 ㅋ 그래도 골판지로 한 게 더 적절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소책자의 톤이 마치 골판지 톤으로 이뤄져 있네요.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 소장하신 분들도 한 번씩 읽어봐주세요~


참고로 아직 저도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최근 1~2달 사이에 제 글이 수록된 타이틀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하나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블루레이이고, 두 번째는 홍상수 감독 초기작 블루레이 박스세트에도 제 글이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말고 애니메이션 '리오 2' OST에 해설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다 일정이 몰려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 써 놓고 보니 흐뭇하네요 ^^;


앞으로도 계속 영화와 음반 관련된 글들로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1 폭력적인 글 쓰지 않기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 받는 표현들 가운데는 상당히 폭력적인 내용들이 많다. 글의 의도 자체가 누군 가에게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 버려서 쓰는 이조차 이 표현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 경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쟁이나 재난과 관련된 폭력적인 단어들을 우리는 은연중에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언론은 물론 개인이 글을 쓸 때에도 더 더 자극적인 표현을 우선시하다 보니 이런 풍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버렸다고 할 수 있을 텐데, 한 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전쟁과 폭력에 물든 표현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경미한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슨 무슨 사단, 무슨 무슨 군단 같은 군사 용어로 시작하여, 핵폭탄, 융단 폭격, 포화를 퍼붓다, 확인 사살 등 직접적인 전쟁과 관련된 용어들은 물론, 쓰나미 같은 재난 용어 역시 일상 속에서 자주 목격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전 국민이 거대한 군사 작전 중에 있는 것 마냥,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폭력적인 표현들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표현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자주 사용했었고, 특히 무언가 헤드라인을 뽑아 낸다 거나, 더 자극적인 표현을 필요로 할 때는 자연스럽게 이런 폭력적인 표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별 의미 없이 그냥 재미나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이렇게 글을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이유로는 실제 전쟁이나 폭력에 피해를 받았던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작은 표현과 단어 하나 때문에도 그 끔찍했던 순간을 고통스럽게 떠올리게 된다는 이유였다. 특히 '쓰나미'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아주 쉽게 무언가 대규모를 표현해야 할 때 쓰나미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쓰나미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규모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앗아간 고통과 피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은가. 과연 쓰나미를 겪은 이들이 '아, 진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네'라는 표현에 '하하하'라고 웃을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예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인 예다. 모든 표현을 쓸 때 마다 이 단어가 누군 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고민해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글 쓰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 폭력에 가까운 행위가 될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알 만한 전쟁, 재난, 폭력과 관련된 표현을, 굳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글에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언급한 것처럼 그런 의도를 가졌을 때는 예외의 경우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굳이 더 자극적으로 쓰려고 혹은 그냥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쓸 때 이 부분을 최대한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좀 더 염두에 두면 좋겠다. 대단한 글 쓰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글을 쓰는 한 사람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글과 말이 얼마나 많은 폭력성을 담고 있는 지를 돌아보는 것도 한 번쯤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나부터 더 노력해야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영화평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영화보고 쓰기를 즐겨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이 주객이 전도되고 초심을 잃게 되면 의미가 퇴색되는 것처럼, 영화 글 쓰기 역시 영화 보기를 넘어서는 수준이라면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몇 해전에도 한 번 깊게 했던 적이 있었고, 어쩌다보니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들곤 하는 화두이기도 한데, 완고했던 예전과는 달리 조금은 유해졌다고나 할까. 다시 한번 글로써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일단 여전히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순수한 영화 보기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 때문에 얻는 것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라면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즐거움에는 히노애락이 모두 포함되며, 괴로움은 재미없는 영화나 불편한 영화가 포함된다) 굳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가며 매번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보고 싶다'가 아닌 '무언가 쓰고 싶다'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관람 태도에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부담이 없다면, 영화를 오롯이 그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된다. 분석하려는 마음도 써야 할 때보다는 압박이 덜할 것이고, 그저 2시간 남짓을 맡기면 된다는 것에 그야말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이전에 보고 나서 써야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면, 아무리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려해도 분명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를 보는 중간 이미 머릿 속은 글을 반 쯤 써내려가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극장을 나오면서 나머지 반을, 실제로 글로 옮길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보기와 글 쓰기에 있어서 상당히 완곡한 입장이었다. 이렇듯 영화 글 쓰기가 영화 보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하게 글 쓰기를 포기할 지언정, 순수한 영화보기가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생각이 원론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독립적인 의미를 새삼 찾게 되었달까. 영화 글 쓰기가 단순히 영화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글을 쓰면 쓸 수록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영화 글 쓰기에는 여러가지 스타일들이 있지만, 나의 영화 글 쓰기는 결국 영화를 빌려 나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하기 보다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말하려는 것이 내 생각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지 혹은 공감과 반대 되는 의견을 담고 있는지를 글로써 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 글 쓰기는 영화 보기 만큼이나 의미있는 작업으로 계속 성장해 왔다. 예전에 써둔 글들을 보면 그 영화가 어떤 영화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보다,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요새 새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글 쓰기는 궁극적으로 '글'자체가 의미있기도 하지만 '쓰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와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머릿 속에 있는 생각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도구이자, 영화 만큼이나 재미있는 또 다른 유희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본 영화들은 머릿 속에 가득하고, 이것들을 글로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득하고, 점점 이런 것들이 압박으로 느껴질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 부담을 느끼는 거지?'라며 반문해 보기도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은 분명 한 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점점 옭아매는 안좋은 습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보기 만큼이나 영화 글 쓰기의 재미를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것을 더 이상 짐이 아닌 즐거움으로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09.02. pm. 01:42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읽다보면 드는 당연한 생각은, 영화는 어차피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는 없는, 정말 당연한 일인데 가끔 영화평들을 읽고 있으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맞다, 틀리다'로 접근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평론가의 글들에서 이런 점을 많이 살펴볼 수 있는데 (일반 관객들의 평은 어차피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고, 스스로 확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 평들을 보면 '이건 영화도 아니다' 수준으로 혹평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신의 소신대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후자의 경우 여지를 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어떤 영화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라는 사람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다. 그런데 B라는 사람은 돈이 아깝다, 시간을 버렸다 싶을 정도로 재미 없게 본 경우다. B는 이런 감정을 실어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퍽퍽한 글을 남겼다. A가 이 글을 보았다. A는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밖에는 없다. 몇몇은 자신의 영화를 과연 '제대로' 본 것인가에 대해 의문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과연 '제대로' 본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제대로' 보는 것이 존재는 할까?
영화에서 얻는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감독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나름의 재미가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또 다른 영화로 소화하는 방식도 재미있는 보기의 방식이다.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는 것은 없다. 예전 류승완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영화는 프린트(필름)는 하나지만, 다 다른 영화를 본다는 것이 흥미로운 것 같다'라는 말. 비단 영화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그것이 혼자의 힘으로 만들었을지언정 일방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텐데, 감독의 의도를 모두 알아채고 감독이 주려는 재미를 100% 즐긴다면 그것 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 만의 이야기를 전개해도 즐겼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본 이들에 대해서 '넌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영화는 정답이 없는 예술, 받아들이는 자의 것이다 라는 것과 이런 영화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옳고 그름을 강요하지 말자 라는 것이었다. 무언가 자신의 의견과 대비되는 의견을 접했을 때, '그럴 수도 있군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라는 정도로 그쳐도 좋을 것을, '영화를 도대체 제대로 본겁니까?' '이건 논할 가치도 없네요' 등의 숨막히는 말들로 받아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식으로 여지를 두고 글을 쓰면서 매번 작은 딜레마에 놓이곤 하는데, 이렇게 여지를 둔 글은 여지를 두지 않은 글보다 설득력이나 힘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이렇다'와 '이럴 수도 있다'의 차이인데, 가끔은 그냥 '이렇다'라고 죄다 바꿔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경우도 있다. 확실히 여지를 둔 글에게서는 글쓴이의 확신이 부족하게 느낄 수도 있으니, 이 정도를 잘 조절하는 것이 어쩌면 글 쓰기의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일 듯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첨언하고 싶은건, 나는 영화를 보는데에 있어 무척이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영화로 만난 사람들과 비교를 해보아도 나는 대부분의 영화에 있어 무척이나 몰입을 잘하는 편이다. 영화는 일단 몰입하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간혹 드라마를 평할 때 보면 오랫동안 정을 쌓았던 작품을 마지막 회 하나, 장면 하나 때문에 망쳤다며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오랜 기간 그 작품에 애정을 갖고 함께 했다면 '아쉽다' 정도이지 '보상해라'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 않았을까. 여튼 몰입 잘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는 참 행복한 영화 관객이다.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실망하는 작품에게서도 주인공의 심리에 잘 빠져드니 말이다. 간혹 그래서 남들이 다 유치하다고 하는 작품에도 공감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어떠랴. 영화는 어차피 개인이 즐기는 예술인데.


2010.03.31 pm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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