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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 (The Age of Shadows, 2016)

아름다워.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을 보기 전,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격이라 할 수 있는 황옥의 이야기에 대해 먼저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자세하게 살펴본 것은 아니었지만 황옥의 삶은 지금까지도 역사가들에게 조차 그가 끝까지 의열단 단원이었는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당시 행했던 행동과 결과들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를 설명하는 존재인 동시에 몹시 영화적인 인물로서 아마도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황옥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고 했을 땐 그 존재의 모호함을 어떻게 시대와 함께 그려낼 것인지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작품이 바로 김지운의 '밀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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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이라는 인물 (영화 속에서 황옥과 같은 인물)이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의열단과 뜻을 함께 했다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실제 황옥의 삶을 보면 의열단으로서는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했다던가 반대로 일본 경찰이라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을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까지 번갈아 가며 행했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어느 편에 섰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한 인물인데, 영화 속 이정출로 분한 황옥의 모습은 초반에는 살짝 모호한 느낌을 주기는 했으나 중반 이후부터,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주 확고한 시선으로 조선을 위해 행동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영화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뿐더러 다큐멘터리도 아니니까), 황옥이라는 인물을 영화화하고자 했을 때 그리고 '밀정'이라는 제목 역시 그러하듯,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의 상황 속에서 영어 제목처럼 시대의 그림자처럼 존재했던 이정출이라는 인물의 위태로움에 대한 묘사와 영화가 끝났을 때 극장을 나오며 '과연 이정출은 어느 편에 섰던 것일까?'라고 되묻게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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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러한 선택과 별개로 192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이미지, 미장센은 역시 기대한 대로 매혹적이었다. 당시 상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미장센이 스크린 가득 펼쳐졌을 땐, 아마도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선택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소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서 기대대는 바와 영화적 시대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모습이었다. 기차 씬도 전체적인 긴장감의 묘사가 흥미로웠고 후반부의 볼레로를 배경으로 한 씬은 반어적인 음악이 적중한 매력적인, 또 보고 싶은 멋진 씬이었다.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를 나중에 읽어보니 처음에는 존 르카레의 스파이 영화들처럼 차갑고 건조한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자 싶었으나 후반부가 되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인물들에 대해 감화되어 감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래서인가. '밀정'은 매력적인 요소가 충분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땐 조금 아쉬운 점이 남는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아쉬웠던 지점은 두 군데 정도인데, 장면으로 두 곳 정도이지만 아쉬웠던 이유는 사실 같다. 하나는 중반쯤 독립군들이 밀정으로 인해 함정에 빠져 참혹하게 사살될 때 스윙 재즈 곡인 'When you’re smiling'이 반어적인 느낌을 주며 배경에 흐르는 장면이다. 이런 반어적 음악의 사용은 참혹함을 강조시키기거나 혹은 정반대로 풍자할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선과 악이 모호한 주인공 혹은 인물이 또 다른 악을 처단하거나 할 때 비극적인 느낌이 아닌 음악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물의 선악의 모호함과 함께 그 행위 자체의 선악의 불분명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밀정'에서 독립군들이 총격을 당해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리듬감 있는 재즈 음악이 흐를 땐, 반어적 활용에서 오는 재미나 메시지보다는 1차적인 불편함이 더 컸다. 이러한 반어적 음악의 활용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액션 (폭력, 살인 등)을 행하는 인물이나 당하는 인물의 선악이 불분명하거나 특히 가하는 쪽이 분명한 정의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에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독립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명확한 슬픔과 아픔의 역사이기에 아직은 반어적으로 표현하기엔 보는 입장에서 불편함이 더 앞섰다. 더군다나 독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확실한 전후 처리, 그러니까 친일 세력에 대한 벌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불편한 영화적 기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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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로 기차 씬에서 이정출과 김우진 (공유)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이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매우 중요한 상황으로 밀정, 그러니까 배신자가 누구인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경성에 잠입하려는 의열단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 경찰이 서로 교차하기를 반복하는 장면으로서,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는 씬이다. 이 가운데 이정출은 김우진과 몇 차례 조우하게 되는데, 그 대화 시퀀스를 보면 공유가 연기한 김우진은 밀정을 색출해 내고 또 무사히 경성에 도착하기 위한 말만을 전하는 반면,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이 대화 속에서 배우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유머를 구사한다. 


예를 들면 김우진이 어떻게 하라고 이정출에게 말하자 이정출이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하기를 '저 새끼는 나한테 자꾸 명령을 하고 그래'라며 투덜대는 장면 같은 거다. 이런 생활감, 현실감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연기는 오달수 배우나 송강호 배우 등이 많은 영화를 통해 자주 보여주었던 스킬인데, 그런 대사들이 적절한 곳에 사용되었을 때는 아주 반가울 일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서의 웃음 포인트 (실제로 여기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웃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웃을 만한 장면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는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기보다는, 긴장감을 떨어 뜨리는 동시에 이정출이라는 캐릭터의 무게감마저 떨어 뜨리는 역효과가 있었다. 너무 내용이 무겁다고 판단된 탓에 긴장을 덜어주고 재미를 주려 했다면 이러한 대화 시퀀스는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에 삽입되는 편이 좋았을 텐데, 그 중요한 그 기차 씬 중간에 벌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는 분명 아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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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 조금 모호한 지점에 놓여 버린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애초 그리고 싶었던 것처럼 황옥이라는 인물의 삶을 냉전 시대의 스파이 영화처럼 차가운 분위기로 그려내거나 아니면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더 감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어도 좋았을 텐데, 그 두 가지를 적절히 섞으려 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은 어중간한 영화로 남는 결과가 되지 않았나 싶다. 


역사를 다룰 땐, 특히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같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과 정의로운 자들의 결이 분명한 역사를 다룰 땐 행여 더 투박할지언정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밀정'은 영화적으로만 놓고 보았을 땐 이미지 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역사적 측면으로 보았을 땐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1. 써놓고 보니 마치 프로불편러가 작성한 글 같은데 영화의 전부가 그런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몇 가지 지적한 부분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부분을 특별히 콕 집어 얘기한 경우죠. 


2. 비슷한 주제를 다룬 '밀정'과 '암살'을 비교했을 때 영화적으로만 보면 '밀정'이 훨씬 매력적이지만, 역사를 대하는 태도나 신중함에 있어서는 '암살'이 더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암살은 맞고 밀정은 틀렸다가 아니라, 암살이 밀정보다 역사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더 나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얘기.


3. 전 개인적으로 일제 시대 그리고 독립운동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로 풀어내기에 매력적인 소재인 동시에 학교에서 하지 못하는 역할을 영화가 할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와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져서 많은 억울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권력을 쥐고 있는 많은 친일파 세력들을 더 자주 불편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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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오픈케이스] 악마를 보았다 스틸북 : PET 아웃케이스 넘버링 한정판

(Blu-ray open case _ I Saw the Devil _ Plain Archive)



어쩌다보니 블루레이 오픈케이스 포스팅은 플레인 타이틀만 하게 되는데, 그 만큼 플레인에서 나오는 타이틀들이 꾸준히 일부러 소개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의 퀄리티와 구성으로 출시된다는 반증이 되겠다. 최근에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몇몇 블루레이 제작사에서 플레인의 한정판 구성을 템플릿처럼 가져다가 발매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 한 편으론 유저 입장에서 더 나은 퀄리티의 타이틀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기도 하겠으나, 나 역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수도 없이 후발 주자들에 견제 및 서비스 복제(?)를 당해 본 터라 남일 같게 만은 느껴지지 않아 묘한 감정이기도 하다. 여튼 이번에 나온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총 3가지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나는 그 가운데서 PET 아웃케이스 넘버링 한정판을 구매했다.







이번 한정판이 마음에 드는 첫 번째 이유는 영화의 살벌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붉은 빛의 PET 아웃케이스 때문이다. 거칠게 써내려간 영화의 영어 제목과 잘 매치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본 스틸북 케이스의 이미지와도 은근한 조화를 이뤄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고어함이 아웃케이스에서도 잘 묻어나는 느낌이다.






투명 PET 케이스 내에는 40PAGE 분량의 소책자와 스틸북 케이스가 수록되었다.






스틸북에 선택된 양면의 이미지 역시 본 영화의 이미지를 좀 더 스타일리쉬하게 변형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좀 더 유니크한 맛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





역시 스틸북은 이 옆면을 보는 맛!






이번 한정판에는 총 4종의 미니사이즈 영화 카드와 2종의 양면 아트 카드가 수록되었는데, 해외 개봉시 포스터 이미지를 담은 아트 카드가 눈길을 끈다.  나중에 역시 플레인에서 출시된 '마스터' 블루레이를 소개할 때 또 언급하겠지만, 이 미니사이즈 영화 카드는 아마도 플레인 한정판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언가 컬렉팅 한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 소소한 재미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플레인 타이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책자. 이번 책자 역시 알찬 내용의 글들이 수록되었다.








최근 플레인에서 출시된 타이틀들은 해외 블루레이 유저들 사이에서도 많은 관심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이번에도 지난 번 '멜랑콜리아'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내부 책자의 소개글을 영문으로도 소개하고 있다. 또 놀라운 점은 오히려 해외 유명 기고가의 글을 번역하여 수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 점점 글로벌해지는 소책자 내용이 아닐 수 없겠다.





현재는 아쉽지만 '악마를 보았다' 플레인 한정판 3종은 모두 품절이 된 상태이다. 다른 타이틀도 그렇듯 플레인에서 발매하는 타이틀들을 손에 넣으려면 미리미리 프리오더 전쟁에서 승리하여야만 할 것이다.



플레인 아카이브 홈페이지 (쇼핑몰) - http://plainarchive.co.kr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라스트 스탠드 (The Last Stand, 2013)

김지운의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



최근 국내 유명 감독들의 헐리웃 데뷔 소식들이 활발한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가운데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다. 사실 다른 두 감독에 비해 김지운 감독을 덜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한 액션 영화라기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사뭇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놀드만 알고 간 영화였는데, 영화를 보다보니 이거 배우들의 면면이 한 마디로 대단하더라. 라이온스게이트 제작에, 포레스트 휘태커, 로드리고 산토로, 제이미 알렉산더, 피터 스토메이어,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오픈 유어 아이즈), 루이즈 구즈만까지, 이 정도면 일단 준비 측면에 있어서는 부족할 것 없는 상차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작품 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제법 규모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괜찮은 헐리웃 데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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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라스트 스탠드'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헐리웃에 진출한 한국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점이었는데, 배경도 인물들도 헐리웃을 통해 표현되었지만 딱 보는 순간 김지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첫 시퀀스 역시 그러했고, 특히 인물들을 스크린에 배치할 때 센터에 두고 펼쳐지도록 두는 카메라 앵글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던 구도라 익숙함이 느껴졌다 (참고로 대부분의 스텝들이 외국 스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촬영 감독만은 김지운 감독과 '달콤한 인생' '인류멸망보고서'를 함께한 김지용 감독이 맡고 있다).


'라스트 스탠드'에서 한국 영화의 느낌이 난다는 것은 대부분은 반갑고 기분 좋은 (기존 헐리웃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색깔이 느껴져서) 일이었지만, 간혹 그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었다. 조니 녹스빌이 연기한 '루이스 딩컴' 캐릭터의 활용이 그러한데,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로서 전체적으로 극의 분위기를 심각하지 않도록 하는 양념 같은 캐릭터로 어색함과 적절함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장면은 장면 전체를 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한국 오락영화에서 흔히 소비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본래 의도했던대로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한 액션영화인 이 영화를 너무 무겁지 않도록 하는 재미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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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의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너무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한가롭다 못해 지루한 시골 마을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FBI와 거대 범죄조직의 탈주범이 연관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아 두 가지가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게 되면서 숨겨왔던 주인공의 본색이 드러나게 되는. 사실 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라고 보았을 때 초반에는 이 각각의 이야기에 조금은 과한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이런 각각의 비중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해서 인데, 바로 슈퍼카 ZR1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그러했다. ZR1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부분이 제법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잘못하면 이 능력 자체가 주인공이 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었는데, 사실 그렇게 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그 균형을 비교적 잘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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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동차 추격과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 거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김지운 감독이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것을 헐리웃이라는 배경을 통해 이제야 시도해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만큼 이 자동차 액션은 매력적이었다. 후반부 옥수수 밭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액션 장면은 단순히 속도와 추격의 재미 뿐만 아니라, 마치 무협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긴장감과 구도 (자동차를 의인화에 가깝게 활용하는)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시퀀스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해외 팬들에게도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시퀀스 만큼은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퀀스 외에도 ZR1을 이용한 액션 장면들이 몇몇 있었는데, 이 역시도 무협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만한 합과 구도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이러한 액션을 만들어 낸 것이 여러 모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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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가 좋았던 점은 별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때문이기도 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라는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작품인 듯 했다. 마치 '익스펜더블'의 아놀드 솔로 버전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상했던 순간에 '짜잔'하고 아놀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시시하다라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 강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 의외성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기대하던 바가 어떻게 표현되는 냐가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을 비껴가지 않고 그대로 돌파한 점이 좋았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면과 설정들도 좀 있지만 '라스트 스탠드'에서 그런 현실성을 잡기 보다는 이런 시원함을 선택한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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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손꼽히는 감독이지만 헐리웃에는 이제 데뷔작을 내놓다시피 한 신인으로서,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는 괜찮은 배우들과 함께한 제법 괜찮은 작품이었다. 다시 말해, 김지운 감독이 앞으로 헐리웃에서 차기작을 선보이고 그 작품이 좋은 평가를 얻을 경우 전작인 '라스트 스탠드'를 일컬어 '그래, 헐리웃 데뷔작인 '라스트 스탠드'도 나쁘지 않았었지'하는 연장선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다시 말하지만 배우들이 생각보다 좋아서 놀랬어요. 개인적으로는 포레스트 휘태커 보다도 피터 스톨메이어의 출연이 더 반갑더군요. 그의 활용이 생각보다는 한정적이어서 아쉽긴 했지만요.


2. 북미에서 기대보다는 못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헐리웃 첫 작품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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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 (Doomsday Book, 2001)

대한민국 사회 풍자 3부작



김지운 감독과 임필성 감독이 함께 옴니버스 형식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영화 팬으로서 당연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제목 역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로봇이 등장하는 포스터와 더불어 이 두 감독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도 되었다. 개인적으로 제목과 포스터 등에서 미뤄 짐작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인류멸망'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맞게 굉장히 어두운 스릴러나 드라마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유머의 비중이 상당히 큰 풍자 성격이 짙은 작품이었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천상의 피조물'을 제외한 임필성 감독의 나머지 두 편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풍자 성격이 아주 강한 작품이라 조금 의외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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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제목에서 부터 이미 풍자의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데, 좀비물의 아이디어를 가져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강도 높은 풍자와 조롱을, 공포 섞인 분위기로 그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는 개인적으로 풍자와 공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택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게임 '데드 라이징'처럼 좀 더 좀비물의 특성을 극대화했다면 오히려 좀 더 효과적인 풍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의 강도나 풍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다보니 오히려, 이 풍자물과 좀비물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메시지로만 보자면 세 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실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전개라), 그 섬뜩함을 좀비물이라는 영화적 특성과 더불어 더 가혹하게 그렸다면 (유머를 조금 덜하고), 영화를 보는 이들이 '그래, 우리도 저 좀비들과 다를게 뭔가' 하는 섬뜩한 풍자와 공포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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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은 로봇의 자각이라는 SF의 흔한 설정을 좀 더 구체화하고 확대하여, 로봇이 '열반(Nirvana)'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미래 사회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이런 소재는 이미 여러번 있어 왔기 때문에 신선함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짧은 러닝 타임 동안 비교적 효과적으로 그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된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답게 메탈릭한 로봇의 디자인과 나무로 이뤄진 절 내의 디자인이 절묘한 미장센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미래 사회를 표현한 심플한 디자인들도 과하지 않아 효과적이었다. 사실 '천상의 피조물'의 이야기는 장편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단편으로 만든 것이 장편에서 범할 수 있는 위험들을 잘 빗겨간 선택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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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작품인 '해피 버스데이'는 상당히 모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인류멸망보고서'가 전체적으로 조금 모호해 진데에는 '해피 버스데이'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노골적인 풍자와 과감한 메시지 전달 방법은 조금 당황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볼 수록 참 과감했다는 생각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비슷한 아이디어들을 여러번 생각해보았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영화화로 옮긴 감독의 과감한 모험은 대단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여기에도 풍자를 생각한 나머지, 좀 과하다 싶게 적용된 웃음 코드와 포인트가 전반적으로 애매해지는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즉,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들 처럼 대놓고 낄낄 거리며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스트릭트 9'처럼 실감나지도 않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정말 다시 생각해도 과감한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과감하다는 것은 유치한 것을 거대하게 포장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굉장히 노골적인 풍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인데, 이 메시지를 더 많은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좀 더 웃음의 강도를 조절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 아무래도 제작비 문제로 처음 기획했던 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더 완벽한 구조를 갖추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2. 임필성 감독의 신작을 어서 극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3. 봉준호 감독이 감독 출신으로서는 까메오 연기에 수준이 매번 가장 높은 것 같아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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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악마를 본 자의 대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의 금요일. 우연치 않게 이 날에 딱 들어맞는 영화 한 편을 보았으니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박찬욱, 봉준호 등과 함께 국내 감독 중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널 뛰듯 만족스러움의 정도가 각각 달랐고 느끼는 완성도의 차이도 그러했다.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이라면 무언가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항상 기대는 갖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면 또 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제한 상영판정과 삭제 뒤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된 그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그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의미없지 않은' 이야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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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과 이병헌, 최민식이라는 두배우 그리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같은 상대와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아닌, 관객에게 누가 악마인지를 묻는 다던가, 혹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구조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보면 이 영화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분명 '광기의 대결'이자 '복수의 두 얼굴'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본 시점은 오히려 악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방적인 구조로 받아들여졌다. 즉, 악마는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이고 그를 본 사람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인 것이다. 영화는 일단 '악마'로 불리는 장경철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부분 이런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처럼, 장경철 역시 악마적인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뒤 그가 어떤 개인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다 (물론 이 영화는 장경철의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개인사를 묘사함에 있어 이런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수현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가 국정원의 요원임에도 이 특수한 사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한 여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배경 설정은 있으면 이야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캡슐로된 GP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 여럿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격투실력) 반대로 말하면 요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예로 들자면 캡슐 GPS는 암시장을 통해 구하고, 본래 격투에 능하다고 설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장경철을 압도하는 것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애초부터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마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만,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제목처럼 '보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악마가 되어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미장센은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굴곡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악마를 보았다'에 와서야 미장센이 그저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에 미적인 매력만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낸 좋은 결과물로 느껴졌으며, 장면을 그리는 방법 역시 작정하고 만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수현의 '이제 시작인데' 라는 대사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존의 느껴졌던 아쉬움이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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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처음부터 지독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냥 총을 구해 한 방에 죽음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단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대가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장경철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난 뒤 풀어주고, 또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나타나 몸을 부숴트리고 또 놔주기를 반복한다. 장경철의 친구인 태주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김지운 감독이 정말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게 까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설정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간섭으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확대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흐름에 따라가게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흐름은 없다. 

수현은 치밀하고 무엇보다 복수의 뜨거움보다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 만큼의 고통만 주고 풀어주는 것에 계속 성공한다. 마지막에 한번 실수 하지만 (사실 이 실수도 그의 부하 요원이 경철이 잠든 줄 알고 했던 말을 경철이 들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다), 그 이후에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한 뒤 '니 말대로 너를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준비한 복수의 마지막을 치뤄내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악마' 그 자체가 되는 것보다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한 차가운 감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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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를 성공한 수현의 오열은 이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오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첫 째로 약혼자를 처참한 죽음으로 잃게 된 슬픔과 자신의 복수 때문에 역시 처첨한 고통을 당한 장인어른과 처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도 악마처럼 변해버린 모습 (장경철에게만 복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과 이제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자신이 예상한대로, 원했던 방법으로 모두 복수를 행했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여기서 오는 진정한 공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택한 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갖는 마지막에는 몇 가지 선택의 옵션이 있는데, 하나는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마지막에 악마를 죽음으로 응징하지 않고 법의 잣대로 판결하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이 경찰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치 '세븐'의 경우처럼 법이 아닌 죽음으로 응징하였으나 이것조차 악마의 의도였다는 것 때문에 더 황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과 한 편이 되어  '법대로 처리하지 말고 저 악마를 그냥 죽여버려'라는 내 안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악마성의 결과물로서 황폐함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는 후자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언급한 '세븐'과는 다르게 영화 속 장경철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수현이 계획한 것 그대로였다. 즉, '세븐'의 브래드 피트는 제 손으로 악마를 제거하고서도 결국 악마의 손에 놀아난 것에 대한 후회와 이겨내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행했음에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이룬다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자신과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가 서린 오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는 없었던 주인공이 그 끝을 만났을 때 예상했음에도 겪게 되는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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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상영판정 논란과 더불어 고어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극장에서 본 '악마를 보았다'의 고어 수준은 분명 일반 관객에게 있어 (고어 영화를 즐기는 팬들이 아닌)서는 '고어'라 부를 만한 수위의 것이었다. 매번 변하는 등급위원회의 평가 잣대 때문에 이번 제한 상영판정 논란은 '도대체 얼마나 고어하길래?'하는 다른 감상 포인트를 일부에게 제공하고야 말았는데, 물론 '호스텔' 등을 비롯한 고어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나,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수준으로는 분명 고어한 수준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 정도가 뭐가 고어냐?'라는 논란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고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에 담긴 고어한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영화에서는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을 굳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안보이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소리나 효과로만 처리할 수도 있고, 컷 전환을 통해 결과만 알려주어도 될 것을, 이 영화는 굳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이라던가 찢어지는 입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터져나오고 뭉게지는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학적이고 공포스러운 표현과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과연 이 복수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대신에 마지막의 오열과 더불어, '이 복수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은 뉴스에서 이 보다도 더한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내 가족, 내 약혼자의 이야기였다면 누구든지 마음만은 영화 속 수현과 같았을 것이고, 그 중 몇은 수현처럼 복수를 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한 남자, 즉 악마를 본 남자의 대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하면서 공포스러운 점은, 영화 속 수현처럼 이 대답을 충실히 들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수현처럼 끝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할 수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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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 관객들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하더군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극중 수현에게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구요. 이런 몰입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2. 장경철의 학원버스 안 그 천사날개 조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조명이 처음에는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는게 흥미로웠죠.

3. 가제였던 '아열대의 밤'이나 '사냥꾼의 밤'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 제목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글의 부제목으로라도 이 제목을 자연스레 썼었을 것 같아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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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꿈꾸던 만주 웨스턴

김지운 감독의 2008년 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은 작품성이나 흥행여부를 떠나서 일단 지난해 최고의 기대작이자 화제작이었다. 지난 해는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감독들의 신작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던 한 해였는데,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 이전에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선을 보이게 된 것이 바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었다. 물론 '놈놈놈'이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난해 최대 기대작에 꼽혔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를 들자면 하나는 캐스팅이요 다른 하나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의 캐스팅은 이 세 명의 남자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팬들로서 흥분되는 것이 사실이었고, 한국영화에서는 (적어도 근래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웨스턴 장르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듯이 감독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웨스턴 영화를 '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이만희 감독의 1971년 작 '쇠사슬을 끊어라'였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웨스턴 영화를 보고서 김지운 감독은 캐릭터가 중심이 된 웨스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영화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이른바 '때깔' 좋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사실 개봉 당시 기대가 너무나 컸던 탓인지 짜임새나 완성도 면에서 기대치는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당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회고전이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뒤라 더더욱 레오네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석양의 무법자)'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놈놈놈'이라는 제목 뿐만 아니라 레오네의 다른 작품인 '석양의 건맨'을 오마주하는 듯한 장면들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오마주인지 패러디인지 설정만 가져다가 쓰는 것인지 모호한 장면들이 많아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기대보다는 아쉬운 점이 많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블루레이에 담긴 서플먼트를 통해 김지운 감독의 의도에 대해 듣고 나니,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캐릭터'와 '오락영화'라는 점이었다. 확실히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그리 꼼꼼한 편은 아니다. 감독 스스로가 '말이 안되고'라고 하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딴 얘기를 했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 조금 놀랍기까지 했는데,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냥 작품을 내놓은 것은, 감독의 의도는 내러티브를 통한 치밀 함이나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 그리고 장면들을 구현하는 데에 더 노력한 오락영화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확실히 '놈놈놈'이 주는 영화적 쾌감은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정우성 같이 멋지게 생긴 배우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코트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장총을 한 손으로 돌려가며 쏘는 장면은, 어쩌면 '놈놈놈'의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이런 장면을 배경으로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경쾌한 리듬마저 흐르니 그야말로 '희열'이다!). 아마도 송강호 만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몸 개그와 언어 유희가 더해진) 태구라는 캐릭터는 반대로 송강호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을 '이상한 놈'이었으며, '나쁜 놈' 창이는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연기 변신이 더해지면서 좀 더 그럴싸한 캐릭터가 되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깊이가 아쉬웠던 캐릭터 역시 창이였다. 굳이 리 반 클리프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거의 같은 장르의 영화를 두 번 만들지 않았던 김지운 감독에게 '놈놈놈'은 분명 웨스턴이라는 꿈꾸던 장르의 실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감독과 스텝들의 도전과 꿈이 영화에 100% 반영, 아니 관객에게 100%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도전의 과정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었던 블루레이 혹은 DVD 감상이 더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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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 틱한 색감과 3D로 구현된 인트로 영상은 높은 해상도로 단번에 눈을 사로 잡는다. 메뉴 네비게이션은 우측 하단에 나침반 이미지와 함께 구현되고 있는데 하나 아쉬운 점은, 넓은 여유 공간에 비해 폰트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멀리서는 일일이 메뉴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좀 더 시원한 폰트와 크기로 구현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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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블루레이가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것은 개봉 전 HD급 예고편에서부터 시작된 화질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스크린 샷을 보시다시피 상당히 우수한 화질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클로즈업 장면에서 배우들의 피부를 통해 확인되는 표현력은 블루레이의 우수한 화질을 그야말로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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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시리즈의 모피어스 역할을 맡은 로렌스 피쉬번의 피부가 한 때 DVD와 블루레이의 화질을 가늠할 만한 척도로 사용되었던 점을 떠올려보자면,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쓴 피부와 수염, 다양한 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잔주름 등으로 꽉 채워진 극중 태구의 얼굴은 ‘놈놈놈’ 블루레이의 화질을 체크해 볼 만한 좋은 도구가 된다. (유독 송강호가 등장하는 장면 캡쳐가 좀 더 화질이 좋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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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특유의 질감을 살리기 위함이었는지 칼 같은 샤프니스 보다는 약간의 노이즈 섞인 질감이 중간중간 엿보이기도 한다. 그리 많지 않은 밤 장면 같은 경우는 배경이 CG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블루레이의 차세대 화질로 감상하면 미묘한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장면 마다 약간의 화질 편차가 존재하는 편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매우 우수한 화질이며 만족스러운 화질이라 할 수 있겠다.


Blu-ray | Sound Quality


사실 화질만큼이나 기대되었던 것은 바로 차세대 사운드였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는 말 달리는 소리, 총소리, 기관총 소리, 부서지는 소리 등 굉장히 다양한 사운드가 등장하고 또 한꺼번에 몰아치기도 하는 등 사운드 측면에서 귀가 매우 즐거운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DTS-HD MA 7.1 채널을 수록한 사운드 역시 화질만큼이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수한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일단 총소리의 경우 굉장히 다양한 총기들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그 격발 음들의 만족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의 다양한 소음들이나, 빗속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에서의 사운드, 그리고 대사 전달 역시 깔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놈놈놈’ 블루레이 사운드의 하이라이트라면 아무래도 후반부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가 배경에 흐르면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을 꼽을 수 있을 텐데, 이 장면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굉장히 다양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는 복잡한 시퀀스이다. 일단 수많은 무리들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으며, 일본군은 기관총을 발사하고, 도원은 말을 타고 재장전을 해가며 총을 쏘고 있으며, 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고 있고, 이후에는 폭발들도 일어난다. 사실 이 부분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하이라이트라고 보았을 때 조금은 아쉬운 사운드였는데, 일단 너무 많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나오다 보니 개별적인 사운드는 아무래도 조금씩 죽는 느낌이었으며 특히 배경음악의 비중이 큰 관계로 나머지 (더 임팩트 있을 수 있었던) 사운드들은 조금은 소외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우퍼를 비롯한 스피커들의 강렬한 활약을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조금은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개인 취향 차를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는 블루레이의 걸 맞는 차세대 사운드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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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s

앞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놈놈놈’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들은 관객이 잘 알지 못했던 스텝들의 기술적인 도전과 감독의 의도, 그리고 배우들이 솔직하게 전하는 촬영 뒷이야기들을 많은 영상들을 통해 수록하고 있다. 그 많은 양의 내용에 비해 아쉬운 점이라면 DVD에 수록되었던 부가영상들과 동일한 영상이 담긴 탓인지 모두 4:3 화면비의 SD화질로 수록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가 개봉한 뒤에 별도로 부가영상을 위해 만난 자리 같은 경우는 HD화질로 수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놈놈놈’ 블루레이에는 DVD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종류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트랙은 김지운 감독, 이모개 촬영감독, 오승철 조명감독, 조화성 미술감독이 참여하고 있고, 두 번째 트랙에는 감독과 주연배우 세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음성해설의 경우 DVD에 담긴 국내 개봉버전과 블루레이에 수록된 인터네셔널 버전의 러닝타임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수록되었을 지가 궁금했었는데, DVD에 수록된 음성해설 트랙을 가지고 씽크를 맞춰 편집한 경우로 결론적으로는 DVD와 동일한 - 즉, 추가되거나 새롭게 녹음된 것은 아닌 - 음성해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질주’는 일반적인 메이킹 필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인터뷰들을 통해 감독이 ‘놈놈놈’을 통해 이뤄내고자 했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가능성을 보고 만주 웨스턴에 도전하게 된 것이나, ‘매드맥스’ ‘벤허’등 CG로 만들어진 영상들 보다는 이른바 ‘생짜’ 영상에 매력을 느껴 그와 같은 영상을 만드는데 주력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스텝들의 인터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촬영감독을 맡은 이모개 감독의 이야기였다. ‘놈놈놈’을 보면 장면에서도 느껴지지만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촬영 방식들은 물론 기존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방식들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런 장면은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찍어야 될지 몰랐다’라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말은, 번지르르한 말보다 오히려 더 진솔하게 느껴졌다. 와이어에 매달려 배우의 뒤를 똑같이 날면서 촬영하는 방식이나, 카메라를 원통형 구조물에 부착해 굴려서 촬영하는 방식, 달리는 말들을 촬영하기 위해 크레인을 사용한 방식 등을 보니, 이모개 촬영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노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연출해서 촬영했다기 보다는 실제상황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는 그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놈놈놈 그리고 독한 놈’은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따로 감독과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함께 자리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담고 있는데, 정말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여서 그런지 이런 공식 영상에는 걸맞지 않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늦게 합류하게 된 이병헌이 최종적으로 창이 역을 맡기까지 고심했었던 이유도 들을 수 있었고, 사실상 ‘놈놈놈’으로서 갖는 마지막 공식 스케줄이라는 점에서 각자 돌이켜보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날로그’에서는 촬영과 조명, 액션, 사운드 메이킹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정두홍 무술감독이 액션 장면에 대해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국 로케 촬영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중현 무술감독을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그의 인터뷰는 더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참고로 영화의 엔딩 크래딧을 통해 지중현 무술감독을 추모하고 있기도 하다.






‘공간’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세트 디자인에 관한 영상이 담겨있는데, 의상의 경우 유니폼이라고 할 만큼 중복되는 의상이 거의 없는 관계로, 보통 다섯 작품에 소비되는 정도의 새로운 의상을 이 한 작품을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미술 역시 웨스턴이라는 한국영화에서는 흔히 다루기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접근하여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는 스텝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었다.




‘삭제 장면’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많은 조연 캐릭터들의 대부분의 분량이 바로 이 삭제 장면에 들어있기 때문인데, 김지운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몇몇 장면들은 너무 인상적이라 분위기를 해치는 관계로 할 수 없이 삭제했다고 한다. 박사장 역할을 맡은 오달수의 중요한 장면 역시 삭제장면을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도원의 꿈 이라는 제목으로 도원이라는 캐릭터의 에필로그성 영상도 수록되었으며 무엇보다 이청하가 연기한 캐릭터의 많은 분량도 확인할 수 있다.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뺄 수 밖에 없었다며 이청하씨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김지운 감독의 코멘트도 담겨있다. 또한 짧지만 너무 강렬해 뺄 수 밖에 없었다는 김인권의 출연 분량도 삭제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알~놀았다’에서는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각기 다른 엔딩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추가로 국내 개봉버전의 엔딩 장면이 본편과 동일한 풀HD 화질로 수록되었다.




[총평] 극 영화로서는 최초로 국내에서 직접 오소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분명 의미가 있는 타이틀이지만, 처음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전해왔을 때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 이라는 세 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던 것처럼 그 작품을 차세대급 화질과 사운드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또 한번 설렐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글 I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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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 2008)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기대를 갖게 된 것은,
일단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의 캐스팅 소식이었다. 물론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이렇게 되었다면 더
기대했겠지만,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이라면 무언가 볼거리(?)는 확실히 책임져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웨스턴 장르라니 더더욱 그러했었고. 예고편에서 보여준 그 리듬감과(물론 이 리듬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킬 빌>의 OST로도 사용되었었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였다),
때깔 좋은 액션은 이러한 기대를 최고조로 이끄는데 한몫을 톡톡히 했었다. 하지만 기자 시사회와 전야제에서
흘러나오는 so so나 기대이하라는 감상기들을 보고는 '그래, 배우들 본인들도 오락영화임을 강조하잖아,
오락영화 이상에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으로 개봉일 날 조조로 관람하게 되었다.


(아래 부터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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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 (The Good)

그 동안 한국영화에서 제대로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던(웨스턴 장르에 한해) 볼거리, 이른바 '때깔' 면에서는
만족할 만 했다. 정우성이 맡은 박도원 캐릭터는 좋은 놈으로 등장하는데, 말을 타며 장총을 휙휙 돌려가며
장전 뒤 사용하는 장면이나, 도르레 원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줄을 타고 건물 위를 휙휙 날아다니며
마적단을 소탕하는 모습들은 물론 다른 배우들이해도 참 멋있었을 장면이었겠지만, 멋있는 남자 배우의
대명사인 '정우성'이 맡아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송강호가 맡은 (영화의 사실상 주인공인) 윤태구 캐릭터의 연기는 가장 큰 볼거리이다.
사실상 이 영화가 액션 영화보다는 코미디 영화에 가까웠던 것은 모두 윤태구 캐릭터가 보여준 대사와
몸개그 때문이었으며, 이런 것들은 송강호라는 배우를 거치면서 좀 더 생동감있는 캐릭터로 보여지고 있다.
특히나 액션도 좋지만 코믹에 대한 선호도가 상당히 높은 국내 관객들을 생각해 봤을 때, 흥행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 같은 코믹한 요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나도 재미있는 장면이 많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관객이 10번 웃었다면 난 3번 정도 웃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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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점 (The Bad)

송강호가 맡은 윤태구 캐릭터를 제외하면 캐릭터 적인 면에서 다른 두 캐릭터는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정우성이 맡은 박도원의 경우, 좋은 놈이라 한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저 폼나는 모양새와 장면 외에는 별 다른 깊이라던가 생생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면은 이병헌이 맡은
박창이 역할도 마찬가지인데, 이병헌이 악랄한 악역을 맡아 어느 정도 선전한 것은 인정하지만,
마적단의 두목스럽지는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그냥 좀 더 깊이를 더해 혼자 활동하는 악랄한 놈 정도로
그려졌다면 오히려 지금의 분위기가 더 살지 않았을까 싶은데, 만주를 호령하는 마적단의 두목으로서는
쉽게 말해 '두목 포스'가 조금 부족해 보였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 영화에서 나쁜 놈을 맡았던 리반 클립과는
비교조차 힘들 듯 하다.

이 영화는 한국형 웨스턴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좀 더 한국화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극 중 배경이 만주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만주만의 독특한 느낌이 묻어난다기 보다는 특정 색을 찾아보기
어려운 애매하고 잡다한 색이 혼합해 있는 장소로 느껴졌다. 캐릭터들도 윤태구를 제외한다면 다른 캐릭터들은
한국형 웨스턴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웨스턴의 일반적인 캐릭터들로서, 좀 더 토착화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 영화에는 상당히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송영창, 윤제문, 류승수, 손병호, 오달수, 이청하, 엄지원 등
주조연급 배우들이 예고도 없이 계속 등장한다(오히려 그래서 개인적으론 좀 관람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누가 나오면, '어 누구다' '쟤, 누구 아니야'하면서 나올때 마다 웅성거려서 --;). 근데 일단 안습인
것은 특별출연이라는 엄지원 보다도 분량이 적은 이청하를 들 수 있겠으며(그래도 나름 <동갑내기 과외하기 2>
에서 주연도 맡았던 배우인데), 이 조연급 캐릭터들이 전부 맛이 없고 그냥 스쳐가는 정도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오달수의 경우 거의 까메오에 가까운 터라 상관없겠지만, 윤제문, 손병호 같은 배우들은
상당히 포스가 있고 연기력이 있는 배우들임에도 이 영화에서는 이러다할 자신만의 색이나 깊이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건 단순히 분량의 문제라기 보다는 시나리오나 배우의 능력 탓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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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 (The Weird)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역시 레오네의 영화인 <석양의 건맨 (For a Few Dollars More)>역시 연상되는
영화인데, 이 부분이 참 이상하다.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은 레오네 영화에 대해 오마주를 하려는 것인지,
그냥 차용정도로 하려는 것인지 그 수준이 참 애매하게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태구가 모자를 떨어트리자
도원이 총으로 모자를 맞춰 계속 멀리 보내는 장면은 <석양의 건맨>에서 이스트우드가 리 반 클립에게 했던
바로 그 장면이고, 이상한 놈을 묶고 끌고 다니거나(물론 그 상하관계는 바뀌었지만),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잠깐 연합을 하게 되는 설정이나, 마지막에 가서 보물을 찾아낸 이상한 놈에게 좋은 놈이 나타나 삽을 주며
파라고 시키는 것이나, 마지막에 세 명이서 그 유명한 구도로 서서 결투를 벌이는 것 등 레오네의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과 설정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것들이 앞서 얘기한것 처럼 애매한 정도로 삽입되고 재현되었다는 점에 있다. 송강호의 '누구냐 너'
처럼 아예 제대로 비틀어 버리거나, <슈렉>처럼 아예 패러디로 가거나(웨스턴을 표방했으니 이럴리는
없겠지만), <킬 빌>처럼 제대로 된 오마주를 보여주었거나(이 것이 가장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했어야 했는데, 애매한 입장을 취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틀전
2008 시네 바캉스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에서 <석양의 무법자>와 <석양의 건맨>을 본 뒤였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물론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많은 아쉬운 평을 받은 것은 엄청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정말 많은 영화팬들이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았을 만큼 엄청난, 그야말로 엄청난
기대가 있었던 영화였고, 정말 멋진 예고편을 보여주었기 때문에(이 영화는 예고편 만든 회사에 보너스 줘야한다)
더 큰 기대를 갖게 되었고, 200% 보여주어야만 만족할 기대에 80~90% 밖에는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아쉬운 평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하다.

딱 더도 덜도 아닌 오락영화로서는 큰 손색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된다(물론 러닝 타임이 좀 길어 오락영화로서
지루한 면도 있다). 김지운 감독과 웨스턴 장르라면 무언가 좀 더를 기대하게 되 아쉬운 것도 있지만,
큰 기대와 부담없이 본다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레오네 영화와의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이 영화의 아쉬움은 커질 수 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놈놈놈>을 먼저 보고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를 보는 방법도 추천한다).



1. 칸 영화제용 사인 포스터를 준다길래 조조로 부모님과 3장 예매해서 갔는데, CGV직원들은 내용도
  잘 모르고 있고, 포스터 이벤트를 한다는데 포스터를 접어두고 고무밴드도 준비해두지 않은점은 분명히
  아쉬웠다.

2. 아...세르지오 레오네. 얼마나 대단한 작품을 예전에 만든 것인가. 이번에 극장에서 다시 보니
    리 반 클립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3. 15세 치고는 상당히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그래서 인지 내 옆자리 여자분은 모든 액션 장면에
    감탄사와 신음으로 반응하여 아주 괴로웠다).

4. 독립군과 일본군 시퀀스는 <석양의 무법자>의 남북전쟁을 보고 삽입한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 깊이가 하늘과 땅 차이랄까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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