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The Throne, 2014)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압도적 연기력



아마 많은 이들이 사도세자 이야기가 또 한 번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이미 너무 잘 아는 이야기인데 더 할 이야기가 있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사도세자 이야기는 조선왕조의 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준익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최대한 다른 시각으로, 즉 역사적 의미나 더 정확한 역사 구현이 아닌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연으로 사도세자 이야기를 풀어냈다. 왕이 되지 못한 사도세자와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영조 그리고 아버지가 조선의 왕이었던 아들 세자의 이야기에 깊게 파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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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야기가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이전에 관객이 알고 있는 정보를 감안하지 않는다 해도 '사도'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한다. 이준익의 전작 '왕의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영화 '사도'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비극과 깊은 슬픔이다. 영화는 이 비극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플래시백 형태로 보여준다. 즉, 영화의 첫 장면에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 지를 보여줌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시작부터 비극적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도록 만든다. 이것은 영화가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에 대한 성격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의 기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또한 그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걸 (굳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느끼게 함으로서, 인물들의 슬픔이 더 깊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가 영조와 세자, 특히 세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처로움 그 자체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운명에 처한 것도 애처로운데, 그가 바랐던 것이 어쩌면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로 세자를 비극적 운명을 자처했다기 보다는 선택권 없이 놓여 버린 가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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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흥미로운 또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영화의 애처로운 시각에 관한 것인데, 세자와 그를 지지하는 인물들은 물론, 그를 시기하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조차 날이 서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통 극 중 인물을 관객이 애처롭게 여기도록 만드는 방식으로는 주인공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더 가혹하게 주인공을 밀어 붙임으로서 그 효과가 더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경우는 대표적인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영조의 묘사 방법은 물론이고, 반대의 편에 서 있는 여러 가신들과 인물들에게서도 그러한 가혹함 혹은 날 섬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 '사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자에 대한 안쓰러워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든 인물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함으로서, 관객들이 세자에게 더 큰 감정적 몰입과 동정의 마음을 갖도록 했고, 그것은 정확히 통했다.


'사도'가 슬픔을 전하는 방식은 주인공을 사면초가로 밀어 넣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사면초가에 운명적으로 놓여버린 인물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주변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을 극대화 한 인물이자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영조의 묘사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영조라는 캐릭터를 철저하게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려 한 것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었던, 혹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송강호라는 배우를 통해 120%로 표현해 낸다. 예전에 '색, 계'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배우의 영화 외적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겨우가 있는데, '사도' 역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상이 영조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잘 모르는 배우이거나 악당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했더라면 아마 영조의 깊은 진심이 미처 다 전달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호소력 짙은 배우가 이를 연기함으로서, 관객은 최소한 좀 더 영조의 진심을 듣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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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역시 영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우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기력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인데, 유아인이 최근 작 '베테랑'에서 악역을 연기했음에도 워낙 잘 한 덕에 그 초점이 연기력으로 집중되었던 것은, '사도'를 만나게 되는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유아인이 연기한 세자는 그러한 기대를 넘어서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사도 세자를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거의 연달아서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조태오가 아직도 생생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짧은 시간에 완벽히 사도 세자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만큼 유아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만약 올해 지금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연기력 만으로 꼽자면 이 영화 '사도'를 주저 없이 꼽을 만큼, 유아인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설득력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영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결국 이 비극적 운명에 놓여야만 했던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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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 속 이야기가 너무 슬픔과 비극을 강조할 땐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빠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분명 비극을 감정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이 설사 강요라 해도 넘어가고 싶을 만큼의 힘을 가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왕의 남자' 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 한 명의 인물을 깊이 그리워 하게 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아인은 지금이 전성기다. 그가 만든 사도 세자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사도'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1. 전 워낙 사전 정보를 얻지 않은 터라 문근영이 나오는 줄도 몰랐어요;;; 후반부의 분장은 좀 충격;;;

2. 소지섭이 깜짝 등장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몰랐더라도 영화를 보게 되면 그가 분명 나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닮은 아역이 나옵니다 ㅎ

3. 좀 가벼운 얘기로 영화 속 영조와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 딱 어울리는 주제라는 생각이 ㅋ

예법과 공부를 엄하게 가리켜 훌륭한 왕으로 자라길 바랐던 아버지와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간절했던 아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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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The Thieves, 2012)

최동훈 세계의 집대성 그 장점과 단점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웰 메이드 (well­ made)'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보게 되었는데, 어쨋든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라면 국내에서 '웰 메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최동훈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의 재구성 (2004)' '타짜 (2006)' '전우치 (2009)' 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마다 호불호는 나뉠 수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은, 배우, 연출, 액션, 시나리오, 대중성 등 다방면에서 준수함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 '도둑들' 역시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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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은 전반적으로 최동훈의 세계관을 집대성 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극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해 유기적으로 얽히는 설정은 물론, 범죄의 세계에 대한 디테일 (주로 대사에서 오는)을 챙기는 한 편, 액션에도 볼거리를 선사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동시에 드라마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도둑들'은 이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확연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조금만 더 간결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배경을 묘사할 때 단순 묘사나 한 두 가지의 디테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그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 공을 들였던 감독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이 쓰는 찰진 대사들을 통해 실제 그 세계를 러닝 타임 동안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타짜'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박꾼들을 넘어서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도둑들' 역시 최동훈 감독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가끔 이런 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도둑들'은 현실성과 영화적인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부산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을 와이어에 매달려 벌이는 총격전이 한편으론 판타지스럽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기도 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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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을 구현하는데에 있어 '도둑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캐릭터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집단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경우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명에 가깝게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각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살리기는 불가능하다기보다 안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캐릭터의 경우 딱 그 캐릭터의 비중에 맞게 설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앤드류-오달수, 예니콜-전지현 등), 몇몇 캐릭터에게는 범위 이상의 이야기가 할애된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 김수현이 연기한 '잠파노'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예니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조금은 모호함이 없지 않았던 것 같고, 임달화 형님이 연기한 '첸'과 김해숙이 연기한 '씹던껌'의 이야기의 경우는 무언가 전체적인 이 영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리지 않다기보다 모호하게 위치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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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둑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임달화 형님의 출연 때문 ㅠ)


참고로 첸과 씹던껌의 이야기를 통해 최동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도둑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이렇게 중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그 둘이 남긴 대사들이 주는 범죄 영화의 감성적인 정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한 켠에 머무르지 않고 차라리 중심에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현재의 '도둑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서들도 여럿 있을 테니 총체적인 정리가 필요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서의 중심에 임달화 형님이 있다보니 이렇게 사이드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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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의 야심이 집대성 되다보니 발생된 단점이라면, 일단 안그래도 집단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집중되지 못할 확률이 높은데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비교적 더 많은 이야기를 주려고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잃은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도둑들'의 메인 스토리라면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태양의 눈물을 두고 벌이는 이른바 '꾼'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가 연관된 과거사가 포함된 것까지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첸과 씹던껌의 독립적인 이야기는 물론, 무언가 더 할 것처럼 하다가 애매하게 남겨져 버린 잠파노 그리고 추후 비중있게 등장하는 웨이 홍의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열매가 조금은 무거웠던 탓에 전반적으로 복잡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관계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에 장점 중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처럼 시리즈로 계획되었다면 조금은 부담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비중을 설정하는 데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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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을 들 수 있을 텐데,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퀀스만 봐도 액션 콘티를 얼마나 신경써서 작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사실 그 동안 마카오박에 대해 영화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갑자기 이던 헌트처럼 와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날라다니는(?)가 하면 홍콩 조직원들과도 1:1로 결투까지 벌이는 마카오박의 모습에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어쨋든 그 갑작스러움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만나볼 수 있는 시퀀스였다. 두기봉 영화와 성룡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부산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이 장면의 또 다른 승자는 바로 그 건물이다), 와이어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한 이 액션 시퀀스는 '도둑들'이 단순히 머리쓰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 볼거리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한 번 본편을 감상한 경우 바로 이 장면을 선택해 다시 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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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그의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그 각각의 매력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과하게 담긴 탓에 넘쳐 아쉬움으로 남게 된 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했던 홍콩 범죄 영화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마 어렵겠지만 '오션스 일레븐' 처럼 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음 편에는 정말 조지 클루니가 일원으로 출연한다던지 아니면 양자경 누님 정도가 출연해주신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1.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자 분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김수현이 대세이긴 한 것 같아요 ㅎ 그의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시더라는 ^^;


2.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비튼 전지현의 '예니콜' 캐릭터는 확실히 인상적이더군요. 염정아나 김혜수가 내뱉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같은 대사들이었어요 ㅎ 이름부터가 '예니콜'이라는 것에서 피식하기도 했고요 ㅋ


3.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많다보니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박(김윤석)의 비중이나 깊이는 조금 덜해진 느낌이더군요. 이건 김윤석 씨가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나중에 부산 가면 그 건물과 그 골목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장소 활용이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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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Thirst, 2009)
욕망으로 물들인 박찬욱의 새로운 장르영화


박쥐. 박쥐. 박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찬욱 감독의 2009년 신작 <박쥐>를 개봉일날 역시 말이 많았던 예매이벤트를 통해 관람했다. 그 덕에 멋진 사인 시나리오 북도 얻을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른 감독들과는 조금 자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텐데, 다른 감독들에 비해 박찬욱 감독의 신작은 보기에 앞서 '과연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일까?' '어떤 영화일까?'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더 분비된달까. 마치 서태지의 신보를 기다리는 심정과도 비슷하다. 좋을까? 나쁠까?이기 보다는 '뭘까?'하는 궁금증이 더 크다는 말이다. <박쥐>는 잘 알려졌다시피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을 원안으로(inspired by)한 작품인데(한 인터뷰에서 보니 박찬욱 감독은 이 원작에 'inspired by'하여 만들었는데 이게 '원작'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 다른 우리 말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해 그냥 '원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에밀 졸라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가 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미뤄보자면 친구의 아내를 탐하는 것이나 살인극, 심리극이라는 것은 맞지만 정작 뱀파이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얼핏보면 카톨릭 사제가 뱀파이어가 되어서 욕망을 갈구한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는 신선하다기보다는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톨릭 사제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만 봐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알 수 있고, 각각의 욕망과 서로의 욕망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텍스트가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박찬욱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에는 의외로 '메시지'에 관한 부분이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박찬욱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장르적으로 접근하여 환상적인 미쟝센들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며, 쉽게 말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쾌감을 선사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실망했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매우 재미있게 보았으며(참고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지금까지 작품들 가운데 씨네마테크에 남기고 싶은 영화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택했다), <박쥐>역시 이런 기대감에서 접근하게 되었다. 결과는 역시 박찬욱이었으며, 그는 장르영화의 틀 안에 갖혀있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복잡한) 장르영화적 요소와 영화적 장치들을 <박쥐>라는 하나의 그릇에 온전히 담아내는 시도를 했으며, 그 시도는 괜찮았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상현(송강호)은 신부다. 그는 병자들을 돌보는 곳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데, 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에 인간적으로(또는 신앙적으로) 무력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외국에서 바이러스 백신을 위한 실험에 자원하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목숨이 위험해져 수혈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수혈 받은 피로 인해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상현은 뱀파이어로서 느끼는 욕망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욕망을 신부로서 자제하려 애쓰게 된다.

일단 이 영화 <박쥐>는 공감대 측면 면에서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만큼 박찬욱 감독은 각 인물들의 히스토리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빠르게 묘사하고 있다. 상현이 외국으로 가서 실험에 자원하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부로서 인간으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해도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바로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은 무척이나 갑작스럽다. 만약 상현이 그래야만 했을 더 공감가는 줄거리를 풀어놓았다면 이 과정에 좀 더 공감이 갔을런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더 정형화 되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공감대 측면을 과감히 축소하더라도 자신이 말하려는 메시지의 핵심 자체에만 집중하려 한 듯 하다. 본래 이렇게 주인공이 급작스런 변화나 변이를 겪게 되는 영화는 거의 중반부가 되서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작은 에피소드들을 늘어놓게 마련이고. 이렇게 해야만 변하고 난 뒤 그의 행동들에 어느 정도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쥐>는 이런 것을 정상적인 단계를 다 밟기보다는 바로 핵심 공략으로 들어가고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직접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감독이 담으려고 했던 다양한 장르적 특성들과 갈등 요소들을 모두 담아낼 여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상현을 비롯해 태주나 강우의 경우도 그렇다. 강우(신하균) 역시 왜 그런 병을 얻게 되었는지 태어날 때 부터 병을 앓았던 것인지 그런 성격을 갖게 된 것이 꼭 병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태주(김옥빈)도 마찬가지다. 그 지옥같은 집안에서 일탈을 꿈꾸는 모습은 그려지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족쇄가 채워진 것도 아니고 도망가려면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태주는 몽유병을 가장해 밤마다 거리를 맨발로 뛰는 것으로 억압에서의 자유를 느끼는 것으로만 설명된다(물론 이 둘이 이상한 부부관계에 대한 플래쉬백은 잠시 등장하기도 하고 강우에 대한 이야기도 얼핏 지나가지만, 분명 포인트는 여기에 없다). 상현이 실험에 자원한 것이 그러하였듯이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온 역사로 인해 영화 속 사건에 반응한다기 보다는 그 각각의 '반응'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새겨보기에도 편리해지고.




이 영화가 완전히 박찬욱 영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나뭇가지 그림자가 비치는 벽을 배경으로 상현이 문을 열고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긴 했지만, 역시 그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은 라여사(김해숙)와 강우, 태주가 살고 있는 행복한복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공간은 딱 보는 순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공간의 색감은 물론이고 인물들이 입고있는 옷의 이미지는 이를 더한다. 특히 라여사의 어둡과 화려한 드레스와 강조된 인위적 화장은 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고, 퀭한 얼굴의 태주와 해맑게 웃는 강우의 얼굴도 이를 더한다. 한복집이라는 설정은 여러가지를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데, 일을 하는 공간인 1층에서는 라여사와 태주 모두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는 것은 물론 공간 역시 이에 걸맞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일과는 무관한 생활의 공간인 2층의 이미지는 한복집과는 정반대다. 마치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미장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보라색 식탁보와 개성강한 인물들, 의상들, 마작을 하는 는 모습은 남인수의 노래 '고향 그림자'가 더해지면서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감독인 박찬욱과 함께 <올드보이> 등을 함께 해온 류성희 미술감독의 공도 크다하겠다.

김기영 감독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트 디자인이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물론이고 각 인물들을 그리는 방식도 김기영 감독의 분위기를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열열한 팬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 동안 그의 작품들 가운데 <박쥐>가 가장 김기영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장된듯까지한 인물들의 대사와 분위기, 그리고 자신이 말하려는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거침없이 연출하는 방식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박쥐>는 아무래도 '멜로'이기 때문에 좀 더 낭만적인 느낌이 가미된 점을 들 수 있겠다.

여튼 '행복한복'이라는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강하다. 1층에서 한복을 팔기 위해 마치 마네킹 처럼 한복을 입고 손님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태주의 모습에서는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몸'을 파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으며, 태주의 얼굴이 가게 문의 할머니(?)얼굴과 정확히 겹쳐지는 장면이라던가 2층의 긴 복도 그리고 지하실 등은 이후 상현과 태주가 이 공간을 라여사로부터 지배하게 되었을 때에도 용이하게 사용된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역시 욕망이다. 극중 상현과 태주의 욕망은 대부분의 욕망이 그러하듯 모든 것을 파국으로 만들고 만다.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생존과 신앙 사이에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건 신앙이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랄까.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하지만 사제라는 것을 재쳐두더라도 상현이 그 동안 지켜왔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현은 이 '생존'이라는 좋은 구실 때문에 욕망을 이루게 되고 이 안에는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제로서 억눌려 왔던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뱀파이어로서 다른 사람의 피를 먹는 것으로 욕망을 채웠다면 인간으로서는 강우의 아내인 태주와 관계를 맺으면서 욕망을 이루게 된다. 여기에도 물론 앞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면과 사제로서의 면 모두 관련이 있다 하겠다. 상현이 사제로 설정되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른 인간들에 비해 자신이 욕망을 채울 수 밖에는 없는 이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설득시키려 계속 노력하는 과정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단순히 '어쩔 수 없잖아' 정도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죽는 자를 살리고자 실험에 자원했던 '사제'인 상현에게는 이것만으로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신부에게도 끊임없이 '내가 수혈 받을 피를 고를 수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요?' '좋은 일 하려고 그랬던 거 잖아요'하면서 설득하려 하는데, 이는 노신부를 설득시켜 자신의 처지를 인정받고 싶다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를 납득시킬 구실을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끊임없이 이런 자기 설득에 애를 쏟는다. 남의 피를 마시지만 살인이 아니라 자살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들어준다는 이유를 만들고,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면서 깨어 있었다하더라도 분명히 줬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심지어 이블린의 피를 마시면서도 태주에게 '너는 아까 많이 마셨잖아'라고 일부러 얘기한다). 이런 이유 만들기는 그 순간 뿐 아니라 나중에 욕망에 더욱 잠식되었을 때에도 하나의 구실로 사용된다. 처음부터 욕망에 노예처럼 자유롭게 행동했던 태주와는 달리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최소한의 방법을 사용해 왔다고 생각해온 상현에게 '그래, 그 동안 나는 할 수 있을 만큼 했잖아'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구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주의 욕망은 어떨까. 태주는 라여사의 집에서 강우와 원치않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녀가 표현하는 욕구해소 행동이래봤자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속옷 차림에 맨발로 전력질주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태주는 잘 생각해보면 뱀파이어가 되기 전부터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하는 뱀파이어처럼 고아나 다름없는 태주는 역시 생존을 위해 이 지옥같은 공간에 있을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것이 구실이었다면 태주에게는 라여사와 강우가 구실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주는 사제인 상현을 유혹하다시피해 관계를 맺기도 했고, 결국 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현을 이용해 강우를 낚시터에서 강에 빠트려 죽이고 만다. 사실 태주는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실제로 뱀파이어가 된 것과 같은 현실을 살게 된다. 자신 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상현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하며 오히려 상현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지경까지 그를 밀어붙인다. 건물 옥상에서 상현에게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냐며 유혹하는 장면은 상현이 사제이기 때문에 마치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태주는 스스로 뱀파이어가 된 다음부터는 더 과감해진다. 태주에게는 상현과 같은 자기 설득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피를 마신다. 상현은 이런 태주를 타이르려고 하지만 이미 뱀파이어가 된 태주를 컨트롤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다. 상현은 그 동안 똑바로 보지 못했던 자신의 욕망을 태주에게서 서서히 보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태주를 통해 자신이 욕망마저 버릴 수 있는 구실을 찾게 된다.

영화 속에서 태주를 그리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혹자들은 김옥빈의 연기에 대해 어설프다며 말이 많지만 이는 분명히 의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대사톤과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모습, 떠오르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상현에게 때를 쓰며 반항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부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태주의 욕망을 이렇게 아이의 그것처럼 그린 것은 또 어떤 의도일까. 욕망이라는 것은 결국 순수하다는 것일까. 순수함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야 말로 금기시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영화 속에서 상현과 태주 만큼 중요한 인물은 김해숙씨가 연기한 라여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반 그로테스크함 가득한 화장과 얼굴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라여사는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된 이후부터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왜 라여사를 죽이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분위기를 보면 그래도 키워주신 어머니라 아니면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상현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고 보기보다는, '남겨두었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마치 듣지 말아야 할 인물이 옆에 있는 가운데 이런 은밀한 진실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부분도 있는 듯하며, 반대로 누가 들어주고 보아주었으면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상현과 태주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 순간, 그 장소에도 눈을 감지 못하는 라여사를 굳이 대려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상현과 태주는 결국 외로운 존재들이다. 자신들이 그녀의 아들을 죽게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마지막에 누군가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마지막에는 이런 감정 외에 상현이 사제로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산화를 택한 것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상당히 복잡한 장르적 요소들이 결합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욕망과 뱀파이어의 큰 줄거리에 살인극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신하균이 연기한 강우를 두 사람이 죽이게 된 이후부터 이 살인극으로 인한 이야기와 묘사들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 특히 두 사람 모두가 물 속에 빠트려 죽인 강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강우의 환상을 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뱀파이어와 욕망에 이야기와는 쉽게 용해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는 침대 위에 강우가 중간에 돌을 앉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두 사람이 섹스를 할 때 강우가 두 사람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 등의 묘사는 살인을 저지른 자들이 겪는 공포감(두 발 뻗고 못자는)을 나타낸 장면으로 큰 줄기인 욕망의 이야기에 완벽하게 융합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이 설정은 에밀 졸라의 원작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설정인 것 같은데, 결국 이 설정이 라여사라는 캐릭터에 일종의 '존재의 이유'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로 느껴졌다. 송영창과 오달수가 각각 연기한 승대와 영두의 이야기는 한복점이라는 공간내에서 욕망이라는 큰 줄거리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지만 죽은 강우의 모습이 두 인물을 계속 괴롭히는 장면은 너무 복잡해진 느낌도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가위를 입안에 여러번 넣었다 뻈다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삽입하고 있는데, 다음 번엔 찌를지도 모르겠다고 관객이 느끼는 불안감을 통해 상현과 태주가 강우가 살아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감정을 느끼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화 속 상현의 대사처럼 뱀파이어는 불사의 존재가 아니듯이, 이렇게 공포에 떠는 나약한 존재임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도구나 장면장면이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다. 그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숨겨놓은 의미를 찾길 바라는 점도 있는 듯 하고,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미장센으로서 장면 만으로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상현과 태주가 제대로 된 첫 번째 섹스를 병실에서 갖은 뒤 부활절 달걀을 먹는 장면도 그렇다. 태주가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디어 지옥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와 상현과 섹스를 나눈 뒤에 부활절 달걀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부활'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나중에, 그 동안 생일을 한번도 치르지 못했다던 태주가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자 '해피 버스데이, 태주씨' 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앞선 단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전작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금자가 상상하는 장면에서 극중 최민식의 얼굴에 몸은 개가 되어 등장하는 묘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박쥐>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영화의 대부분이 이런 식의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옥상들을 뛰어넘는 장면들에서는 왠지 모를 낭만이 느껴지고, 온통 하얀 한복가게 2층의 이미지는 빨간 피의 이미지를 준비한 너무 노골적인 연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상현과 태주가 나는 베드씬에서의 대사들은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 부끄럼 타는 사람 아니에요' '원래 좋은 거에요? 이런 대사 말이다.

어째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되고 있는 송강호의 노출 장면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 전에 감독이 기자 시사후에 이 노출 부분만 화제로 기사를 쓰지 말라고 특별히 요청까지 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성기노출 기사만 써낸 기자들은 참으로 자격이 없다. <박쥐>라는 영화가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영화의 본질은 따로 있는데 마치 이 영화를 노출로 대변되는 영화로 일순간에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그 전엔 김옥빈의 노출 연기만 운운했으니 말 다했다).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죽음을 맞기 위해 차를 운전하던 상현은 갑자기 수도원으로 항햔다. 수도원 앞에는 자신을 성자로 믿고 있는 이들이 벌써 한참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상현은 이 중에 한 여성의 텐트에 들어가 있다가 여성의 비명소리에 모인 신자들에 의해 발각이 된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자신들이 성자로 믿고 있는 상현이 사실은 몹쓸 놈이라는 것을 알고 돌을 던지며 상현을 쫓아낸다. 관객들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상현은 황우슬혜가 연기한 이 여성을 성폭행 한 것이 아니다. 죽기 전에 자신을 성자로 믿는 자들에 환상을 깨주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장면을 연출 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통해 의연히 나오면서 알수 없는 표정을 짓는데 이 표정만으로는 살짝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 노출 장면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상현의 성기는 성행위를 하다가 발간된 직후임에도 발기가 된 상태가 아니다. 이는 바로 상현이 전혀 흥분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며, 다시 말해 상현이 만든 의도적인 상황임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보였다 안보였다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쉽다(객석에서도 이상한 탄성이 흘러나오던데, 이건 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역시 김옥빈이다. 그녀가 이전에 연기한 작품들을 별로 보진 못했지만, 태주라는 역할은 그녀가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상당히 김옥빈과 어울리는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욕망에 눈떴을 때 그 살아있는 눈빛. 장난기와 희망에 잔뜩 부푼 눈빛과 입꼬리지만 왠지 사악함마저 느껴지는 이 얼굴은 태주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어울린다. 대사 톤은 확실히 약간 어색한데 이는 분명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태주라는 존재는 분명히 영화 속에서 불완전한 존재다. 어린아이같이때를 쓰거나 장난기 어린 모습도 그렇고, 아마 말투도 이런 측면에서 연출된 것이 아닐까 한다.

송강호의 연기는 부족함은 없었으나 최고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태주의 경우 김옥빈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우나 상현의 경우는 송강호 외에도 더 나은 선택이 있을 듯 하다. 약간 뱀파이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허무하고 현실적인) 대사들을 할 때는 그 만의 장기가 살아나는 부분이었지만 좀 더 뱀파이어스럽거나 심각한 연기를 할 때는 약간 임팩트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뭐랄까 90점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있겠으나 왠지 120점 정도로 연기할 다른 배우가 있을 듯한 느낌.

김해숙의 연기는 확실히 장르화된 연기로서 객석에서 '움찔'하는 반응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서움 그 자체였다. 몸은 완전히 굳은 채로 눈만으로 연기하는 후반부의 연기가 압권이었는데, 확실히 베테랑 답게 눈의 움직임만으로도 공포와 독기를 넘나드는 멋진 연기를 선사하고 있다. 송영창, 오달수의 경우는 캐릭터의 비중이 작은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으며, 신하균의 경우는 연기도 연기지만 확실히 그 해맑은 미소하나만으로도 캐스팅에 이유가 될 것 같다. 그 해맑음이 이 영화에서는 얼마나 섬뜩하게 표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박쥐>는 확실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단순히 취향이 문제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박찬욱 감독의 팬으로서 하나 안타까운 점은 그의 영화 팬층이 너무 갑작스레 광범위하게 퍼져버린 탓에 그의 본래 취향에 성향이 강한 영화들이 나왔을 때 그 어떤 감독보다 실망하는 관객들이 많이 나오곤 한다는 점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경우처럼 <박쥐>도 많은 사람들이 별로 혹은 최악이라며 악평을 쏟아낼지도 모르겠다(벌써 나오는듯도 하다). 영화야 어차피 개인의 것이고 취향의 차이니 좋고 나쁨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맘은 없지만, 그저 너무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버린 현실이 안타깝달까. 적어도 <복수는 나의 것>을 본 이들이 많다면 이 정도의 악평이 쏟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올드보이>나 <공동경비구역 JSA>에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은 터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하다. 이 점은 아마도 박찬욱 감독이 계속 짊어지고 나가야할 하나의 짐이라고 해야겠다.

또 하나, 확실히 메시지 자체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러티브가 주가 된 영화도 아니었고. 복합적인 장르적 재미와 영화 팬들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발견해야만 더 즐길 수 있는 불친절한 영화라고도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좋았다. 이 영화 <박쥐>.


1. 관람할 당시 옆 관에서 <스타트랙 : 더 비기닝> 상영이 되고 있었는데, 옆 관의 강한 우퍼소리 때문에 <박쥐>상영관까지 울리게 되어 관람시에 좀 불편하더군요;;

2. 주인공이 뱀파이어 영화인데 영화 중반이 지나도록 피를 먹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소리내어 반응하더군요. 초반에는 그럴 수 있어도 뱀파이어 영화라는 점이 인식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하는 바램도.

3. 의외로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제법 있더군요.

4. 스쿠버다이버들이 수색을 마치고 물위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분명 의도된 느낌이었습니다.(그 낚시터가 수몰지구위에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구요).

5. 유니버설 픽쳐스의 로고를 한국영화에서 보니 그것도 흥미롭더군요.

6. 확실히 딱 한 번 감상으론 부족한 영화인것 같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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