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제목이 8분이 아니라 소스코드인 이유



'더 문 (The Moon, 2009)'을 연출했던 던칸 존스의 신작 '소스 코드'를 보았다. 확실히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이크 질렌할이나 베라 파미가가 아니라 던칸 존스였다. '더 문'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재능과 SF적인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그의 방식은, '소스 코드 (Source Code)'라는 제목과 함께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에는 '인셉션 (Inception)'이 항상 함께 했었는데, 그 의도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셉션'을 거론해도 될 만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꿈 속의 꿈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 꿈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확장시켰지만 결국 그 안에는 주인공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우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이자 드라마였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소스 코드' 역시 평행우주론이라는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SF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접근법으로 풀어낸 같은 방법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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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카고행 기차안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주인공 콜터 (제이크 질렌할)는 열차 안에 있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심지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 그리고 곧 열차는 폭발하고 또 한 번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한 여성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열차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다시 열차로 돌아가야 하며, 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채 다시 열차 속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스 코드'의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에 관해 그렸던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설정들이 자주 등장하며, 꼭 이 설정만이 아니더라도 큐브에 갇혀 만져지지 않는 다른 이의 메시지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같은 시작점의 8분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놓인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극중 제이크 질렌할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은 빌 머레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한 재료들과 설정들을 가지고 요리했지만, 던칸 존스의 이 완성된 요리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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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에는 더 강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줄기가 여럿 존재한다. 영문도 모른 채 소스 코드 속에서 '션'으로서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콜터의 이야기, 아프칸에서 헬기 조종을 했던 군인으로서 콜터의 이야기, 소스 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8분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티나 (미셸 모나한)를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스 코드'는 이들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가는 방법 대신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정쩡하고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이야기에 (설령 그것이 오버스럽더라도) 몰두해서 극한까지 몰아가는 편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방법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요소를 전부 껴안으려고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던칸 존스의 '소스 코드'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아쉬움 보다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상황에 바로 놓여져버린 주인공 콜터의 개인사는 아버지와의 짧은 인연 (정말 짧은) 정도만 묘사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짧은 아버지와의 연관관계 만으로도 후반부 콜터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에 아주 큰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와 아버지 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콜터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화 한통으로 이런 여백을 모두 담아냈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의 숨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SF영화였다면 아마도 가장 큰 이슈가 되었을 소스 코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소재 정도로만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장황한 설명이나 상황 묘사 없이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역시 이 영화에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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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군의 주도로 진행되는 소스 코드 프로젝트의 배경에 깔린 음모라던지, 이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성공시키기 위해 암암리에 진행되는 일들, 더 나아가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면 D.J.카루소 감독의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시스템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의 개입은 소극적으로 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상상을 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딱 그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 여지와 소스 코드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것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굿 윈'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캐릭터의 묘한 비중이 '소스 코드'를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굿 윈은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닥터 러틀리지'와 주인공 콜터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서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연결고리의 훌륭함이 (캐릭터나 베라 파미가의 연기 모두) 이 영화가 더 매력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갖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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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제목은 '소스 코드'보다는 오히려 '8분'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독인 던칸 존스가 왜 '소스 코드'라고 제목을 가져갔을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전작 '더 문'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작품이 진정한 SF영화로 인정 받는 이유는 SF적 설정이나 세계관을 부각시켜 드러내지 않고 완벽하게 녹여낸 채, 그 토대에서 자유롭게 다른 얘기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소스 코드'는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을 그 중심에 대놓고 부각시키지는 않았지만, 그 기반 위에 완전히 녹아든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 같은 SF영화를 만들어 냈기에 '더 문'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평행우주가 도대체 뭐야?' '그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과연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SF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는 작은 의문들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도 세계관을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SF영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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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의 제목이 '8분'이었다면 아마도 그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났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이라고 느꼈었다). 여기서 만약 영화가 끝났다면 감동과 여운은 더 했겠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한 부분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끝났더라도 평행우주에 관한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던칸 존스는 자신이 결국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위해 감동적인 엔딩을 과감히 포기했고, 또 다른 감동의 엔딩을 선사했다. 말초적으로는 앞선 장면이 훨씬 더 감동적이긴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엔딩도 평행우주론을 또 한 번 새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엔딩을 다 갖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1. 미리 알고 가긴 했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평행우주론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신 홍주희씨 덕분에 아쉬움이 들더군요. 의역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주석을 번역자가 인장처럼 남기는 것은 과한 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전례가 있었죠). 설령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평행우주론'에 대해 몰랐다고해도 모르는 채로 보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 아닐텐데, 마치 '자 이런거였어'라고 가르치는 듯한 주석은 앞으로도 없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2. 저는 왜 닥터 러틀리지 역할을 맡은 제프리 라이트를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스 큐브로 생각했던 걸까요. 심지어 제프리 라이트가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아이스 큐브라고 생각하며 봤던 작품이 많네요 -_-;;

3. 결국 가장 불쌍한건 '숀'. 숀은 누가 챙겨주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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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2009)
외로운 존재의 독백


던칸 존스 감독의 <더 문 (Moon)>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간 SF 장르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진화해 온 이야기를 여전히 배경으로 택하고 있으며,  제목도 그저 '달'일 뿐이고 주인공이라고는 샘 록웰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며 기술적인 측면의 역시 그 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던 관람 전에는 그저 샘 록웰이 우주에서 펼치는 무언지 모를 이야기 정도라는 예상이 고작이었는데, 이야기는 오히려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솔라리스> 등을 닮았으며, 그 가운데에 있는 영화의 주된 갈등 요소는 철학하는 SF영화라면 꼭 한 번씩은 겪어야 하는 '존재의 이유'인 듯 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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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달 표면에서 자원을 채굴하고 있는 샘 벨 (샘 록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은 회사와 3년 계약을 하여 이 곳 달에서 홀로 남아 자원 채굴 업무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제 그 계약 기간은 2주 밖에 남질 않았다. 아무도 없는 우주선에서 샘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 목소리 연기)와 지구에 있는 아내와 딸 '이브'의 사진들 뿐이다.

일단 <더 문>이 초반 느껴지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사람이라고는 혼자 밖에는 없는 달 표면 위 공간에서, 우주의 고요함 만큼이나 적막한 분위기 속에 하루하루를 같은 일로 시간을 보내며 그저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샘의 모습에서는, 일의 고됨이나 피로함보다 오히려 외로움이 깊게 느껴진다. 이런 샘의 3년이란 시간을 반영하듯, 우주선 곳곳 기기들에는 저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으며 외로움을 덜해줄 대상들을 만들어내려던 노력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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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샘은 어느 날 작업 중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회복실에서 깨어나보니 자신과 똑 같은 또 다른 '샘 벨'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고로 인해 상처투성이고 약해진 자신에 비해 강해보이고 세련된 모습이지만 분명 그는 자신과 같은 샘 벨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영화 줄거리상이나 관객에게나 모두 당연히 샘 벨은 인간이라는 서두의 분위기를 단 번에 뒤집는 '클론'이라는 사실을 발견함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생각보다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며, 새롭게 등장한 샘 역시 발견 당시에는 많이 놀랐었지만 이내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여기서 다시 외로움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 두 명의 샘 벨에게는 자신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보다도, 3년 간이나 혼자였던 시간에서 벗어나 드디어 누군가 이야기하고 만져보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는 (그것이 설령 자신일지라도) 것에 더 반가운 눈치다. 존재의 반가움에 더해 매일 비슷한 얘기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었던 거티와의 대화에 새로운 주제가 생긴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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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이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SF영화들과 가장 차별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스로 인간인 줄 알고 있었던 클론, 그들이 겪는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자아에 대한 존재의 이유와 혼란에서 오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한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샘이 자신이 클론임을 알고서도 크게 놀라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크게 반문하지 않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과연 수십년을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한 순간 내가 그저 클론임을 알게 되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내 삶이 조작되어 지고 이식되어 진 것이라고 해서 그 기억들을 단숨에 부정할 수 있을까. 주입된 기억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내 아내와 딸 아이 역시 모르는 사람, 그저 만들어진 관계라고 인정해 버릴 수 있을까.

던칸 존스는 존재에 대한 어려운 철학적 고뇌 대신에 그저 존재 본연이 갖는 감정에 충실했다. 샘은 자신이 클론 임을 알게 된 이후, 통신을 막고 있던 인위적인 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 가장 먼저 자신이 집으로 전화를 건다. 주입되어진 가짜 인생이 만들어낸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아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샘에게는 자신의 기억이 진짜 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가짜라고 한들 기억에는 너무 생생한 '진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걸고는 부쩍 커버린 딸 이브의 모습에 놀라 급하게 전화를 끊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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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 영화가 자신이 인간인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이 나중에 클론임을 알게 되 혼란을 겪고 고뇌하는 것이 주가 되는 이야기였다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자신들의 창조주라도 찾아가서 따지던, 그들을 모두 망쳐놓고 새로운 인류가 되던 했어야 했다. 하지만 <더 문>의 두 샘이 가장 원하는 것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리워하던 아내는 죽고 없지만, 부쩍 커버린 딸 아이를 두 눈으로 직접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외로움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관객의 눈을 사악하다. 영화 속에서 클론이라고 일러주면 바로 다른 눈으로 보게 마련이다. 바로 로봇 취급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리 안쓰럽게 보아도 클론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틀려진다. 영화 속 샘 벨에게서는 홀로 등장하던 똑같은 둘이 함께 등장하던 별로 클론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샘을 바라보는 눈빛은 '클론이라 참 안됐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냥 '샘이 참 안됐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쩌면 힘빠지고 별 것 아닌 허무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은 오히려 잘 가려고 하지 않았던 '쉬우면서도 옳은 길'을 택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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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바와 같이 이 작품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우주선 내 세트를 제외하면 달 표면 위에서 벌어지는 체굴 장면 같은 경우 미니어처 작업이 확연히 티가 날 정도의 규묘였다. 마치 미셸 공드리나 스파이크 존즈의 공작 작품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아날로그함이 촌스럽다기보다는 기발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는데, SF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반드시 블록버스터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갖은 이들에게는 작은 충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문>은 올해 안봤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했을 참 좋은 SF영화였다.


1. 알려진대로 감독인 던칸 존스는 데이빗 보위의 아들입니다. 데이빗 보위의 아들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2. 영화 속 우주선의 이름은 '사랑(SARANG)'인데, 이것 때문에라도 국내에서는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올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짧지만 우리말 대사도 하나 나오죠 ㅎ)
3. 영화를 제작한 회사와 (Lunar Industries) 영화 속 회사의 이름이 같습니다. 이거 은근 재미있던데요 ㅎ
4. 국내 상영시에는 수입사에서 자막작업시 좌우 화면을 잘라 화면비가 조금 외곡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게 지장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온전한 영화는 못본 셈이지요.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나오면 다시 꼭 봐야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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