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 로마



'미드나잇 인 파리'에 이은 우디 앨런의 또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를 보았다. 사실 2010년에 발표한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부터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세 작품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여러 명의 인물들이 한 곳을 배경으로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하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형식의 영화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역시 '미드나잇 인 파리'인 것 같다. '로마 위드 러브'는 각기 다른 인물 (혹은 커플)들의 이야기를 로마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들려주는데, 조금은 완전히 동화 되지 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Medusa Film. All rights reserved


사실 '로마 위드 러브'를 보러 갈 땐 편한 마음으로 우디 앨런이 들려주는 농담과 삶에 대한 경험 들을 듣고자 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마냥 편안하게 즐기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일단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우디 앨런이 오랜 만에 자신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의 수준급 메소드 연기를 보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그가 직접 출연한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어 더 흥미로웠다. 극 중 우디 앨런은 보수적이고 고집 센 할아버지로 등장하는데, 그가 이 캐릭터를 통해 내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가 이 작품의 감독이다 보니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었다. 마치 홍상수 영화 속 감독 캐릭터를 그냥 영화 속 캐릭터라고 보기 힘든 것과 같은 경우였는데, 워낙 이런 면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우디 앨런이다보니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에게 콕콕 꽂히는 느낌이었다. 홍상수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디 앨런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평가나 이야기들에 대해 억울함보다는 초연 한 자세로 '난 상관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꺼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그의 팬들은 아마도 그와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  Medusa Film. All rights reserved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그랬고 좀 더 앞선 작품을 들자면 '스쿠프 (Scoop, 2006)'에서도 그랬었는데, 우디 앨런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배경과 이야기 속에서 자신 만의 판타지를 표현하곤 했었다. 장르 적인 판타지를 말하는 것인데, 사후 세계가 등장 한다 거나 유령과도 같은 인물이 섞여 있거나 하는 등이 그것이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알렉 볼드윈이 맡은 역할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가 유령인지 아닌지 가 하나도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 우디 앨런 영화 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렇게 나 불쑥 끼어들고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나름의 재미를 주며, 자신의 이야기가 없이 다른 캐릭터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의 표현도 거추장스럽지 않다. 뭐랄까, 우디 앨런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영화 속에 또 다른 화자 혹은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지점이 최근 우디 앨런 영화에서 묘한 매력을 주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  Medusa Film. All rights reserved


우디 앨런이 끊임 없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테마 중 하나가 바로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노장은 아직도 신선한 감각으로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또 다른 남녀 간의 미묘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번 작품은 좀 더 풍자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도시로 온 두 남녀가 겪게 되는 의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들이 평소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욕망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으며, 제시 아이젠버그와 엘렌 페이지가 연기한 커플의 이야기도 자신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에 근거한 이들의 미묘한 감정 교류를 보여준다. 그리고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기한 캐릭터의 에피소드는 어쩌면 이 쇼 비지니스의 세계를 살고 있는 모든 배우들을 향한 우디 앨런의 메시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로마 위드 러브'의 아쉬운 점이라면 이렇듯 여러가지 이야기가 좀 뒤섞여 있다는 점이었는데, 하나의 이야기와 흐름에 완벽히 녹아든 '미드나잇 파리'나 '환상의 그대'에 비하자면 조금은 에피소드 별 주제가 달라 하나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차라리 완전히 에피소드 화 화여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  Medusa Film. All rights reserved


우디 앨런은 러닝 타임 내내 각각의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마지막에 가서, 이건 그냥 수 많은 이야기 중 하나 일 뿐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 드릴 께요 라고 마무리한다. 사실 '로마 위드 러브'는 정작 로마에 가고 싶어지는 생각은 덜 드는 작품이었는데, 이 마지막을 보니 한 번 쯤 가보고 싶어졌다. 로마의 무엇이 그리도 우디 앨런에게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샘솟게 했는지 궁금해져서 말이다.



1.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보게 된 배우는 알렉 볼드윈이었어요. 최근 좀 우스운 역할로 자주 출연 해서인지 예전 꽃미남 시절의 알렉 볼드윈을 떠올리게 할 만한 매력은 엿볼 수 없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진짜 배우의 매력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더군요. 이 다음에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웨스 앤더슨!



ⓒ  Medusa Film. All rights reserved


2. 좋아하는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것 만으로도 황홀한 작품이죠. 엘렌 페이지, 페넬로페 크루즈, 앨리슨 필, 로베르토 베니니, 제시 아이젠버그 등. 특히 페넬로페의 출연은 그냥 관객에 대한 일종의 선물 같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Medusa Film 있습니다.


 




호랑이와 눈 (La Tigre E La Neve, 2005) _ 사랑의 기적

<인생은 아름다워>로 외국어영화상과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분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으로
자신의 이름과 영화를 알렸던 로베르토 베니니.
그 이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코미디물 <아스테릭스>와 아마도 베니니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렸을 법한
소재였던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영화 <피노키오>를 만든 뒤, 2005년 개봉한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이다.
<피노키오>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당시 얼핏 보았던 예고편이나 평들, 그리고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그해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새 영화 <호랑이와 눈>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선뜻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었다. 결국 극장 앞에서 얼마간을 고민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었는데,
어젯 밤 TV에서 '희망을 주는 이야기'(였나?) 라는 주제로 이 영화를 방영하는 것이 아닌가.
1시를 조금 넘긴 늦은 시간이었고, 베니니의 영화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극장에서 못본 영화를 TV에서 이렇게 얼마 되지 않아 해준다니 기쁜 마음에 감상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첫 번째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으며,
두 번째로 너무나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의 최고 히트작인 <인생은 아름다워>와 닮아있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 점에서 이 두 영화는 가장 큰 시점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인생은 아름다워>의 경우 주인공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로서 겪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면,
이 영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사건과 바그다드 라는 곳에서 이탈리아인이라는 제 3자의 입장으로서
겪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혹자들은 이 영화를 보고 <인생은 아름다워>에 비해 주인공의 처한
상황이나 태도가 정치적인 그들의 상황은 무시한채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 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보다 이 영화 <호랑이와 눈>이 더 자연스럽고,
더 베니니 스럽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전작을 통해 이미 직접 사건에 중심에 위치한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았던 베니니로서는, 이 번에는 자신이 실제 처한 제 3자로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으로서, 전작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고, 또 다른 제 3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로서 좀 더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영화 속 처럼 로베르토 베니니를 비롯한 미국과 이라크를 비롯한 다른 많은 나라의 관객들은
제 3자의 입장이며, 어쩌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되었던 먼나라의 전쟁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전쟁의 무의미함과 잔혹함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게 되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소수의 이기심으로 발생한 전쟁이라는 악이 얼마나 관련없는 무고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지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런 방식이 역기능 보다는 순기능이 많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다른 영화들이 거의 다 그러하듯이,
이 영화 역시 사실상 동화에 가깝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동화적인 이야기를
동화적인 화법으로 풀어내는데 재주가 있는데, 이 영화 역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혹은 울다가
웃음이 나는 그런 장면들이 많다(그럼에도 가장 동화적인 소재였던 '피노키오'가 가장 최악이었던 건
아이러니다). 영화 속 아틸리오(로베르토 베니니 분)의 희망은 오로지 한 가지다.
어찌하다 그리되었는지 모르지만(사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어떻게 이리도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적인 남자가 어쩌다가 아내와 두 딸을 놔둔채 떠나게 되었는지 말이다),
지금은 멀어진 아내(빅토리아)에 대한 사랑. 그 것 뿐이다. 미국의 침공이 한창 진행중인 바그다드에서
그녀가 다쳐 목숨이 위태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로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의사를 위장해
적십자 비행기를 타고 이라크에 도착했고, 차가 고장나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걷기도 했으며,
약이 없다는 의사에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 직접 약을 재조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는 동화적인 우연의 배치와 베니니만의 재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실상 더이상 살아나기 힘든 상황에서, 모두 포기하고 포기할 수 밖에는 없었던
상황 속에서도 아틸리오는 끊임없이 말하고, 의식이 없이 잠들어있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다정한 말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었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이들 속에서도 계속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은
역설적으로는 그렇지 않으면 한 번에 우르르 무너져버릴 수도 있음을 알기에, 어쩌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보다 몇 배 더 슬픈 장면이었다. 보통 다른 영화 같았으면 주인공이 몇 번은 더 절규하고
펑펑 눈물을 쏟고, 독하게 변해갔을 이야기였겠지만, 동화나라의 아틸리오는 그 와중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져 걸어가야가게 되자 '이라크에서 기름이 떨어지다니 이게 말이돼?'하며
혼잣말을 하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아틸리오의 직업이 시인이라는 점이 훨씬 더 영화를
풀어나가는데 좋은 구실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아틸리오'인지 '베니니'인지 해깔릴 정도로
시종일관 수다를 떠는 그의 모습은, 그 이기에 가능했던 연기라고 생각된다.

 

'아틸리오'인지 '베니니'인지 해깔린다는 말은, 실제로 로베르토 베니니도 저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실제로 베니니의 아내 사랑은 유난스러운데, 이 영화를 비롯 대부분의 베니니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이자 연인으로 등장하는 배우는,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니콜레타 브라스치이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 의자위로 뛰어올라 껑충껑충 뛰던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사람인지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인지 뭐랄까 이 영화 <호랑이와 눈>은
보는 관객들에게도 인상 깊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만든 베니니와 그의 아내 니콜레타에게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하긴 대부분의 베니니 영화가 그렇겠지만).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로베르토 베니니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또 그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니콜레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의 영화의 주제는 항상 같다. 자칫 동화적인 이야기로만 비춰질 수도 있지만,
기적은 이뤄진다는 것. 그리고 그 기적의 원동력은 대부분 사랑이라는 것. 즉 사랑의 기적은 이뤄진다는 것.
유치하고 억지스럽다고 느껴질런지는 몰라도, 그래도 마지막 비토리아가 그 모든 것을 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아틸리오라는 것을 뒤 늦게 알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짓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 동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2008.01.0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