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안다미로. All rights reserved



마이크롭 앤 가솔린 (Microbe & Gasoline, Microbe et Gasoil, 2015)

소년, 공드리가 되다


작고 소극적이지만 섬세한 예술가, 마이크롭 ‘다니엘’.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가솔린 냄새 풀풀 풍기는 괴짜 모험가, ‘테오’. 첫만남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 본 소년들은 영혼의 단짝이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던 중,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엘과 테오는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로드 트립을 계획한다. 가진 건 고철상에서 주운 잔디깎이 모터와 널빤지뿐. 우여곡절 끝에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시크릿 드림카!  낭만 없이 볼 수 없는 미운 열여섯의 깜찍발칙한 반항이 시작된다. (출처 : 다음영화)


나에겐 어쩔 수 없이 놓아줄 수 없는 애정하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 (또 다른 감독으로는 샤말란이 있다)의 신작 '마이크롭 앤 가솔 린'은 소년의 성장 영화이자 미셸 공드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미 공드리는 자신이 각본을 쓴 전작들을 통해서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해 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경계, 그러니까 공드리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균형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수면의 과학' 이 공드리의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의 측면보다 훨씬 더 앞서 간 경우라면,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딱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작품인 편이다.



ⓒ (주)안다미로. All rights reserved


이야기는 전형적인 편이다. 다니엘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기댈 곳,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이해해주는 곳이 없는 외톨이이며, 작은 체구와 긴 머리 탓에 여자 아이로 오해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소년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같은 반의 로라를 좋아하지만 쉽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런 다니엘이 어느 날 전학 오게 된 엉뚱한 테오를 만나 바로 친구가 되고, 둘 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소년이 등장하는 로드 무비의 구조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만약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전형적인 소년 성장영화이자 로드 무비인 이 영화에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조심스럽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왜 그런 영화가 있지 않은가. 특별할 것도 별로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묘하게 사랑스럽고 행복해 지는 영화. 공드리의 이 영화가 그렇다. 단순히 열 여섯 어린 나이의 소년이어서가 아니라, 미셸 공드리의 어린 시절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두 소년의 엉뚱함과 순수함은 가식적이지 않은 웃음과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올라 가는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공드리의 전작들을 떠올려 봤을 때 아마도 최대한 상상력의 나래를 덜어내고자 (참아내고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단순히 세상이 포용하지 못하는 외로운 아웃사이더 소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그 나이 대의 소년 만이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 (주)안다미로. All rights reserved


그렇기에 '마이크롭 앤 가솔린'은 역으로 성숙해진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속 소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런 그들을 그려 낸 공드리는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느낌. 너무 갑자기 철이 들어서 어색할 정도는 아니라는게 다행스럽다.


이렇게 또 미셸 공드리에 대한 애정을 끊을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그가 각본을 쓴 작품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주)안다미로 에 있습니다.





[아쉬타카의 레드필]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찰리 카우프만이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개봉 10주년을 맞아 다시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은 그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었는데, 또 다시 보게 된 이 놀라운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 혹은 새로운 영화가 되어 있기 보다는 오히려 맨 처음 보았던 10년 전의 그 영화처럼 두근거림 가득한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한창 씨네필들 사이에서 이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그랬던 것처럼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한 이 기억의 퍼즐 맞추기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가 해피 엔딩인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결론적인 것에서부터, 그 타임라인의 순서 맞추기에 있어서 어떤 것이 더 먼저인지에 대한 담론은 이런 장르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연구하고픈 흥미요소가 충분했었다. 나도 한 때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따져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분명 정답에 대해서 까지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그 기억은 시간이 갈 수록 흐려졌다. 보통 반복 관람을 하는 경우 이런 팩트에 관한 것은 더 깊이 각인되기 마련인데, '이터널 선샤인'은 정반대로 보면 볼 수록 그 기억만은 점점 지워져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 된 '이터널 선샤인'은 이제는 무엇이 먼저 일어난 일인지, 엔딩이 해피엔딩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에만 빠져들고 말았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나누는 모든 대화들은 그 시간 순서와는 별개로 하나하나 움찔움찔 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연애를 오래 한 커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다투거나 혹은 한 마디만 더 하면 되었을 것을 하지 못해 후회할 일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관계에서는 그 열정과 냉정이 모두 느껴져 몹시 치명적이었다. 만약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열정과 냉정의 대화나 상황이 한 100가지 쯤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처음엔 한 2~30개 정도에 공감했었다면 지금은 한 7~80개 정도를 공감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수 없이 반복하고 외우다시피 한 대사들이었는데, 그 변함 없는 대화들이 내가 그간 겪은 시간들과 내가 연인과 나눈 대화들로 인해 더 깊이 있는 대사들이 되어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얼핏보면 후회에 관해 인정하는 수동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차피 또 그럴 꺼니까 그냥 인정하자 라는 약간의 자조적인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래도 또 사랑할 거라는 더 저극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라는 걸 오늘 다시 보고 알 수 있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다시 만나도 또 후회할 일이 발생할 거고, 어쩌면 또 다시 서로를 너무 힘겨워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길 바랄 것이다. 내가 처음 이 영화의 엔딩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다시 반복된다해도 뭐 어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 정도의 희망적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본 '이터널 선샤인'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강하게 '다시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난 너를 꼭 다시 만날거야'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즉,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엔 분명 다를 꺼야'가 아니라 '또 반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난 너를 선택할거야'에 가까운 더 큰 범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난 후회할거야. 그래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아'

'난 그래도 또 몬타우크행 기차를 탈거야'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아쉬타카의 레드필]
인생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개봉 10주년을 맞아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이 국내 개봉 1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11월 5일 재개봉을 한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내 대답은 그 때 그 때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지만 항상 빠지지 않았던 영화 한 편이 바로 '이터널 선샤인' 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셸 공드리라는 아티스트 때문이었는데, 영화 감독이기 이전에 bjork, massive attack, beck 등의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워낙 유명했었고 특히나 당시 이 뮤지션들에 아주 깊게 빠져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드리에게도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는데 그가 연출한 영화라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10주년을 기념하여 재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것이다. 일단 이 영화가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놀랍기만 했다. 요근래 한국영상자료원을 통해 자주 한국영화 10주년 기념 상영회 기획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때 마다 드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와, 벌써 10년이 되었다니...'


누군가 영화는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떤 영화를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게 되면 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 비디오 테입으로 영화를 소장하던 시절에 비해 블루레이나 특히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기회가 잦아진 요즘은 이러한 경험을 더 자주하게 되곤 한다. 근 시일내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경우, 극장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나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보게 되는 영화 속에서는 분명히 여러 번 본 장면에서 전혀 새로운 감정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가장 크게 했던 작품은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였는데, 이 영화를 처음 볼 땐 주인공 빌리에 공감하며 영화를 따라갔었지만 한 참 뒤에 다시 보게 된 영화는 빌리가 아닌 빌리 아버지의 행동에 더 깊게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못 되더라도 처음 볼 땐 전혀 보이지 않았던 빌리의 아버지의 현실과 가치관의 대립을 통한 갈등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 그 전까지는 블로그에 영화 글을 쓰면서 별점을 통해 나름의 평점을 주고 있었으나 이 이후 부터는 영화에 점수를 준다는 것이 예술 작품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의미 이전에, 지금의 점수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최종적 판단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의미 없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별점 주기를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고, 이 생각은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듯 하다.


이렇듯 영화라는 매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시간을 두고 보게 되거나, 그 시간 속에 개인이 어떤 삶을 겪었는 지에 따라 이미 본 영화를 통해서도 전혀 다른 감정과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어떤 영화의 몇 주년, 몇 10주년 기념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저 '와, 이 영화가 벌써 이렇게 오래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근래에는 '그렇다면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떤 영화일까?'라는 호기심이 더 발동한다. 거의 처음 영화를 보게 될 때의 버금가는 설레임이다.


내 방에는 이미 '이터널 선샤인' DVD와 블루레이가 모두 존재하지만 스크린에서 다시 볼 기회를 절대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찰리 카우프만이 설계하고 미셸 공드리가 표현한 '이터널 선샤인'은 또 어떤 영화가 되어 있을까.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이야기는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쉬타카의 레드필]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했듯이,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진 진짜 현실을 직시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실 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연상호 감독님의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DP시리즈를 통해 합본으로 블루레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돼지의 왕'과 '사이비'는 정말 독보적인 작품들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제 글을 수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 글은 플레인 아카이브를 통해 발매된 (사이비는 KD미디어) '돼지의 왕' 블루레이 내 소책자에 실렸습니다. 언제나 얘기하지만 영광이네요!






플레인 아카이브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단순히 참여해서가 아니라 다른 라이센스 타이틀에는 없는 소책자라던지 (최근엔 점점 다른 제작사들도 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죠. 좋은 현상입니다), 소장 가치를 최우선 한 손으로 만져 지는 타이틀의 느낌이 좋아서 항상 관심 있게 보고, 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에는 감독님과 배우들 분 중 한 분의 싸인 엽서가 동봉되었는데, 저도(?) 연상호 감독님 싸인 엽서네요. 최근 분위기는 감독님 옆서를 뽑으면 꽝이라는 것이 대세입니다 ㅎㅎ 





그리고 수록된 소 책자에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제 글. '그 때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 지배자와 피 지배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계급사회의 현실. 이라는 제목의 글을 담았습니다. 이것도 매번 소책자 소개를 할 때 마다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글이 수록되다 보니 수록된 그 페이지의 이미지도 되게 궁금하거든요. 아, 그런데 이번에도 참 마음에 듭니다. 저 이미지! 그냥 관련 이미지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글의 성격에 따라 최대한 그 글과 맞는 이미지를 선택하려고 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다른 영화 글을 쓸 때도 이미지를 삽입할 때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인데, 플레인 아카이브는 제 선택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네요.






요렇게 글 말미에 제 서명과 함께. 매번 인쇄되어 지는 매체에 글을 담는 건 대단한 영광이자 부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일인 것 같고요.






씨네21 '전영객잔'에 실렸었던 장병원 평론가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비교하진 마세요 ㅎㅎ)

아,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자세하게 소개하겠지만, 이번 '돼지의 왕' 블루레이 프로젝트에서는 소책자 글 뿐만 아니라 부가 영상에 수록된 감독님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모습은 안나와요 ^^;





아, 그리고 추가로, 제가 한 때 정말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했던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에도 제 짧은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발매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정작 제가 타이틀을 너무 늦게 받아봐서 이제야 간단하게 소개하네요.







이번 글의 제목은 제법 오래 고민한 제목이었는데, '귀여운 골판지 왕자'와 '귀여운 셀로판지 왕자'를 두고 혼자 오래 고민했었다는 ㅋ 그래도 골판지로 한 게 더 적절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소책자의 톤이 마치 골판지 톤으로 이뤄져 있네요. '수면의 과학' 블루레이 소장하신 분들도 한 번씩 읽어봐주세요~


참고로 아직 저도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최근 1~2달 사이에 제 글이 수록된 타이틀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하나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블루레이이고, 두 번째는 홍상수 감독 초기작 블루레이 박스세트에도 제 글이 수록되었고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말고 애니메이션 '리오 2' OST에 해설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다 일정이 몰려 있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 써 놓고 보니 흐뭇하네요 ^^;


앞으로도 계속 영화와 음반 관련된 글들로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미셸 공드리와 세스 로건의 그린 호넷 비긴즈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에 걸쳐 방송되었던 WXYZ 라디오 시리즈로 처음 등장한 '그린 호넷'은, 이후 1960년대 미국 ABC사의 TV시리즈로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또 하나의 히어로 시리즈였다. TV시리즈 '그린 호넷'은 범죄자를 가장한 영웅 그린 호넷과 그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동양인 케이토가 벌이는 악당들과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이 오래된 TV시리즈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 당시 케이토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소룡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시 헐리웃에서 영화화 된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의 감독으로 주성치가 물망에 올랐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이소룡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자주 표한 적이 있는 주성치였기에, '그린 호넷'과의 연결 고리도 어색하다기보다는 기대하는 바가 더 컸으며 또한 케이토 역할에 국내 배우 권상우가 언급되기도 해 또 다른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던 미셸 공드리 감독에게 맡겨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의외일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는 미셸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등 다른 어떤 감독들보다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의외였던 것은 공드리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스튜디오마저 공드리에게 '이런 주류 상업영화를 정말 하겠느냐?'라고 되물었을 정도라고 하니 제작자와 팬 모두에게 의외였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둘도 없는 팬이었지만 그가 '그린 호넷'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간 공드리의 작품들과 '그린 호넷'과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으며,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 보여주었던 감각들 역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떻게 소비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우려 했던 대로 미셸 공드리와 그린 호넷의 조합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미셸 공드리의 장점은 아날로그 한 것과 소박한 것,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을 무색하게 만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치장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장점들이 제대로 발휘되기에 '그린 호넷'의 무대는 적절하지 않았으며 주연과 제작/각본을 맡은 세스 로건과의 궁합도 그리 어울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린 호넷'에서 미셸 공드리만큼 (혹은 더!)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라면 세스 로건을 들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주연인 그린 호넷 역할은 물론 제작과 각본에까지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세스 로건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부자이면서 별다른 정의감보다는 그저 질투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린 호넷'이 된 브릿 리드 역할과 세스 로건의 캐릭터는 잘 맞아 떨어지는 편인데, 전반전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싱크로율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브릿 리드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조금은 부족한 점도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배트맨' 같은 히어로 물 까지는 아니더라도 '킥 애스'와 같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더 나아가 예전 TV시리즈를 즐겼던 세대들은 물론 세스 로건과 나란히 하는 최근 영화 팬들까지 고루 만족시킬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던 작품이었으나, 조금은 아쉬운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준수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장면이 많은 편인데 레퍼런스급 타이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암부 표현력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감상에 불편함을 줄 정도는 아니며 장면마다 조금씩 편차를 보여준다. 아주 쨍한 화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수도 있겠는데, 미셸 공드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칼 같은 선예도 보다는 아무래도 지금과도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자동차 추격 씬, 케이토의 화려한 무술 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격투 씬 그리고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인공 '블랙 뷰티'가 만들어 낸 다양한 무기들이 활용되는 사운드를 차세대 포맷답게 수준급 음질을 들려준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볼거리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디테일 한 측면보다는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임팩트와 규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세스 로건과 프로듀서 그리고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세스 로건은 시종일관 그 특유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데, 이런 유쾌함을 국내 소비자들이 함께 즐길 수 없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Delete Scenes'에서는 총 9가지 삭제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본편과 동일한 HD퀄리티의 영상으로 수록되었다.

''Awesoom' Gag Reel'' 은 촬영장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아마도 다른 작품의 Gag Reel이었다면 조금은 흘려 보는 부가영상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세스 로건이 출연하다 보니 좀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고 결과도 여타 Gag Reel 보다는 더 재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의외였다면 미셸 공드리 감독의 '깨는' 모습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Trust Me' Director Michel Gondry'에서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이 작품을 처음 맡게 된 이유부터 그가 스튜디오에 먼저 보내온 테스트 격투 장면 영상과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그만의 재능이 발휘된 부분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미셸 공드리와 처음 작업해보는 헐리웃 스텝들이 처음에는 그가 의도하는 바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이유도 모른 채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나중에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아, 그리고 말미에 등장하는 공드리의 충격적인(?) 저질 유머도 인상적이었다.





'Writing The Green Hornet'에서는 각본과 총제작을 맡고 있는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린 호넷'을 쓰면서 고려했던 점들,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들려준다. 캐릭터와 캐스팅에 관한 뒷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것은, 크리스토퍼 왈츠가 연기한 처드노프스키 역할이 본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The Black Beauty : Rebirth of Cool'에서는 영화 속 만능 자동차인 블랙 뷰티의 상세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The Stunt Family Armstrong'에서는 '그린 호넷'의 스턴트를 맡고 있는 빅, 앤디, 스콧, 이렇게 3명의 암스트롱을 통해 영화 속 스턴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Finding Kato'에서는 케이토 역할을 맡은 주걸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예전 '닌자 어쌔신'의 스텝들이 아시아에서 슈퍼스타인 비의 인기에 놀랐던 것처럼, 감독 겸 배우 겸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슈퍼스타인 주걸륜의 면면을 조명하는 한 편, 주걸륜이 케이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도 만나볼 수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7)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

미셸 공드리는 내게 있어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인생 최고의 멜로 영화를 안긴 영화 감독이자, bjork, beck 등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더 먼저 알게 되었던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 이전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더 익숙했던 그의 작품들에는, 동시대의 다른 뮤직비디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가 있었다. 그는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한 방식을 선호하는 감성의 소유자이고, 일반적인 것들 속에서 독특한 것을 찾아내는 탐험가이기도 하며,
어른이지만 아이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피터팬이자,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공드리'스러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조자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던 그가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작 <휴먼 네이처>와 2004년 작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코미디를 연출해낸 <휴먼 네이처>와
21세기 감성 멜로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이터널 선샤인>은 미셸 공드리의 작품인 동시에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2005년 작인 <수면의 과학>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놀라운 결과물이
오롯이 공드리의 것인지 아니면 찰리 카우프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면의 과학>을 보고 난 이후에는
이 것이 카우프만의 역량이 가미되었을 때만 발휘되는 효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화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에게는
언제 부턴가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바로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었던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으로 높아질 때까지 높아진 기대도 더해진 탓에,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미셸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를 잔뜩 만나볼 수 있는 'Director's Label Series Boxed DVD 자랑 ^^;
http://www.realfolkblues.co.kr/2 )




그런데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나니, 이 <수면의 과학>이 그리 홀대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크게 보면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에 관한 굉장히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비교하자면 <수면의 과학>은 조금 은유적이고,
방식면에서는 조금 달리했던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수면의 과학>에 주인공인 '스테판'은 누가 뭐래도 미셸 공드리 자신의
모습이 적극 투영된 캐릭터였다. 현실과 꿈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꿈의 세계에 빠져있는 스테판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꿈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현실 뿐인데, <수면의 과학>은 이 상황에서 '현실'이 아닌 '스테판'의 세계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 꿈의 세계이 정당성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면의 과학>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은 있었지만(여기서 세련되지 못했다는 표현은 대중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가 될 수 있겠네요)
공드리의 진심이 100% 담긴 영화였다. 어찌 보면 찰리 카우프만의 역할은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인식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카우프만 없이 처음 홀로 서기를 했던 <수면의 과학>에서
미셸 공드리는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 까락스, 봉준호와 함께한 프로젝트 <도쿄!>에서는 단편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훨씬 성숙해진 공드리의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도쿄!>에서 그가 연출한 'Interior Design'은 공드리가 특히 관심을 갖기도 했던 일본 문화를
배경으로 공드리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에만 급급해 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는데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수면의 과학>과 <도쿄!>사이에는 보지 못한 하나의 영화가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였다. 국내는 개봉이 늦어지면서 2008년 작인 <도쿄!>가 먼저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도쿄!>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점을 미뤄보자면, 이렇듯 점차 찰리 카우프만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그의 신작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유난히 좋아하는 잭 블랙과 모스 뎁을 재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기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영화였다.


(이후 부터는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도시 계획을 위해 철거위기에 놓인 건물에 속해있는 한 오래된 비디오 가게가
있는데, 주인인 플레쳐 (대니 글로버)가 다른 행사 참석을 핑계로(사실은 VHS에서 DVD로 넘어가기 위한 시장 조사였지만)
자리를 비우고 마이크 (모스 뎁)에게 가게를 맡기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이크의 친구인 제리 (잭 블랙)는 우연한 사고를
통해 일종의 전기인간이 되고 이 때문에 그가 지나간 곳에 있던 가게 내의 비디오 테입들은 전부 내용이 지워지게 되면서,
이 사고를 주인아저씨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영화를 찍어서 이를 담아 손님들에게
대여를 해주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영화를 직접 찍기는 찍는데, 그냥 오타쿠에 가까운 매니아들이라 예전 영화들을
직접 찍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비디오가게에 테입이 전부 지워져서 이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직접 찍기로 한다는
설정 자체가 무척이나 공드리스러운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Sweded'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 과정들은 재미도 있고 나름 의미도 엿볼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이들은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영화를 설명하기를
스웨덴에서 수입된 영화들이라 특이하다 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Sweded'한 영화를 찍는 장면이었는데,
이 과정이 단순히 재미 만을 주지는 않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후에 합류한 엘마 (멜로니 디아즈)가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이 바로 실제 미셸 공드리가 예전부터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방식, 더 나아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 예전 클래식한 자동차들을 섭외하지 못해 사진을 대형으로 프린트해 마치
어린이 인형극처럼 대형 사진을 활용하는 장면이나, 결국은 카메라로 촬영된다는 점을 100% 적용하여 서 있는 대형 구조물을
눕힌 상태로 마치 서있는냥 촬영하는 것이나, 어두운 장면을 촬영할 때 네거티브 방식으로 촬여하면서 얼굴 부분은
복사기로 스캔한 것을 반대로 사용하는 것 등(마지막 같은 아이디어는 정말 빛이 났다!)은 이미 미셸 공드리가 이름을
날리게 된 여러 뮤직비디오들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기법들이었다. 사실 'Sweded Movie'라는 신조어가 이 영화를 통해
생겨나기도 했지만, 따지고보자면 '공드리 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예전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해
작업된 결과물들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 <고스트 바스터즈>나 <러시아워 2> <킹콩> <캐리> <알리> <로보캅>등 다양한 영화들을 'Sweded'하게
촬영하는 장면들이, 단순히 패러디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미셸 공드리의 역사를 읊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국내 개봉시에는 마치 잭 블랙 주연의 완전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이 되어 '잭 블랙이 너희를 웃게 하리라!'라는 우스꽝스런
카피 문구로 홍보가 되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마이크이며,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영화에 대한
미셸 공드리의 고백과 사랑이 담긴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 패러디
장면에서 잠깐 잠깐 보여지는 잭 블랙의 개인기에만 환호하거나 혹은 실망하게 된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제리 역할을 잭 블랙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도 없을 것 같지만, 반대로 잭 블랙이라는 배우에게서는
일종의 선입관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100% 장면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더 폴>이 그러했듯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미셸 공드리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이
그 동인 영화(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고스란히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맞아 떨어지고, 후반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더이상 영화를 직접 찍을 수 없게 된 다음,
스스로 Sweded한 영화가 아닌 자신들 만의 영화를 여럿이 함께 모여 만드는 과정은, 어쩌면 순수하기만한 미셸 공드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고백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의 과학>이 아쉬웠던 것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빗대어 보자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만 있고, 나중에 직접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고 이를 다 함께 모여 관람하는
과정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공드리 같았으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주제이자 목표인 영화를
만들었을 테지만, 점점 홀로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공드리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는 점점 자신의 장기와 이야기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인상적인 영화로 남느냐, 아니면 그냥 그런 영화로 기억되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후반부에 시사회를 하는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 장면에서
'푸훗'하며 유치하고 아동스럽다며 웃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이 장면에서 찡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이터널 선샤인>과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미셸 공드리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기억될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극중 잭 블랙이 연기한 '제리'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한창 날리던 시절 미셸 공드리의 모습이라면,
대니 글로버가 연기한 '플래처'는 영화 감독으로서 최근의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미셸 공드리는 아직까지 동심을 갖고 있는 피터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순수함을
통해 남들을 볼 수 없고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표현해 내던 시절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의 그였다면,
영화 감독으로서 요즘의 미셸 공드리는, 영화 속 '플래처'처럼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의 꿈을 꺽거나,
희망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편리함과 새로운 것만을 찾는 도시계획처럼, VHS만의 정겨움과 불편함을 어서 DVD로 대채하려고만 하는 문화처럼(그런데
실상에선 이 DVD도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터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 자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으로 종결시켜 버리는 문화에 대해, 미셸 공드리는 유치하리만큼 순수한 이야기로라도 현실에 호소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은 극 중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정부 직원 캐릭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캐릭터는 극의 전개상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캐릭터는 영화 속 어느 캐릭터보다
현명하게 묘사되며,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함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동반하고 있다. 이들이 정성스레 만든 비디오 테입들을
불도저로 부숴버려야 하는 이 캐릭터에게, 확연한 악당의 이미지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성을 부여함으로서,
미셸 공드리는 관객들에게 강요보다는 부탁조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 가게 주인인 플래처는 '제리를 가게에 들이지 말라'는 글을 기차 유리창에 남기는데, 마이크가 보는 방향을
생각해서 일부어 반대로 쓴 이 글은 마이크에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져 한동안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종이를 반대로 보게 되고 나서야 참 뜻을 알게 된다. 작은 웃음 소재로만 사용되는 줄 알았던 이 설정은 영화 후반부
모두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장면에 복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창문에 천을 달아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를 보게 되는데,
창 밖에서는 이를 찍어온 방향과 정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영화적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은 이들이 스스로 만든 영화를 다같이 모여서 보는 이 장면(이때 스크린을 비추지 않고 프로젝터 빛에 비친 관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감동의 장면이다)에서 이미 다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러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영화를 그것도 외곡된 방향으로 즐기고 감동하는 장면을 삽입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한 편으론 제대로, 혹은 원래 있던 그대로의 방식으로는 외면 받을 수 밖에 없고, 뒤집거나 외곡하고 나서야 이들의 진심이
이해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셸 공드리 입장에서 보았을 땐,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이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마이크 역할을 맡은 모스 뎁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물론 그가
블랙뮤직의 슈퍼스타였을 때였는데, 알리시아 키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을 때 '제법 영화배우 분위기가 난다'고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 영화를 통해 완전히 뮤지션으로서의
허물을 벗었달까. 완벽히 영화 배우 '모스 뎁'다운 모습이었다. 잭 블랙과 대니 글로버 사이에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캐릭터로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으며, 연기 외적으로는 아마도 본인이 직접 코디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멋진 의상들의 향연도
인상적이었다. 힙합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다가 배우로 전업한 경우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아이스 큐브라고 봐야 할텐데,
내 취향에는 모스 뎁의 앞날이 훨씬 기대된다. 그는 확실히 영화 배우로서도 대단한 재능이 엿보인다.

잭 블랙은 국내에서는 마치 단독주연처럼 홍보되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히 조연에 만족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오타쿠 캐릭터를 크게 오버하지 않는 수준에서 연기하고 있으며, 역시 잭 블랙 답게 디테일한
조크들을 사이사이 껴 넣는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종종 이렇게 영화광으로 영화 속에 출연했던 것 같은데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 비로서 본격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혹자들은 잭 블랙도 별로 안웃기더라 하며
실망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일부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이런 평가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대니 글로버와 미아 패로우는 잭 블랙과 모스 뎁 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따듯함을 이 영화에 불어넣고 있다.
특히 두 배우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패러디할 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조연으로는 <아임 낫 데어>에
출연했던 아역 연기자인 마커스 칼 프랭클린을 들 수 있겠는데, 그의 비중은 사실 까메오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크래딧에서는
매우 상위에 위치해 사뭇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고니 위버는 연기 자체보다도 <고스트 바스터즈>와 연관이 되어
슬쩍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렇듯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설득시키기 위해,
좀 더 일반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영화인 동시에, 영화 감독 미셸 공드리의 자전 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잭 블랙이 마구 웃겨주는 코미디를 생각했다면 Sweded한 영화 장면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겠지만,
감독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터널 선샤인> 못지 않은 흥미로운 감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뉴라인 시네마에 있습니다.





도쿄! (Tokyo!, 2008)
이방인들의 시선으로 본 현대의 도쿄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까락스, 그리고 <괴물>의 봉준호, 이렇게 세 명의 각기 다른
국적을 갖은(국적 뿐 아니라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감독들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옴니버스 영화 <도쿄!>
(영화를 보기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보고 나니 제목의 느낌표는 확실히 의미있는 의도적 기호라고 생각이 더
들더군요. 뭐랄까 그냥 '도쿄'라는 제목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느낌표로나마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왕팬이었던 미셸 공드리는 물론이고, 봉준호 감독 역시 가장 좋아하는
국내 감독 중의 한 명이라 많은 기대를 했던 영화였습니다(그렇다면 레오 까락스는 지금 무시하는거냐? 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 예전에 비디오로 보고 나이먹고 제대로 보려고 dvd는 구매해 두었는데 아직까지 보질 못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좋다 나쁘다 평할 수준이 못되는 것 같아 일단 보류중입니다 ^^;).



(뭐 다들 아시겠지만, 좌측 부터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감독. 공드리는 영국의 인기있는 밴드에서 별로 말없는
베이시스트 처럼 나왔고, 레오 까락스는 서극처럼 나왔고, 봉준호는 배우처럼 나왔네요(아, 배우시죠 ㅎ)).

옴니버스 영화 <도쿄!>는 각기 다른 세 명의 감독들을 대상으로, 도쿄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또 로케이션으로
촬영해야 된다는 일종의 조건만 있을 뿐 각 감독들에게 이 범위안에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던
프로젝트입니다(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하면(?) 일본인 현지 스텝들과 작업해야 된다 라는 조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엔딩 크래딧을 보니 몇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일본인 스텝들로 채워져 있더라구요). 
이렇게 한 도시를 배경 혹은 주제로 담아낸 옴니버스 영화는 <사랑해, 파리>가 있었는데, <도쿄!>는 <사랑해, 파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해, 파리>같은 경우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단순히 파리의 아름다운
장소를 배경으로 하거나, 아니면 짧은 러닝타임에도 '파리'라는 도시에 한 번 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면, <도쿄!>는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간혹일 뿐,
대부분은 부정적인 모습의 도쿄, 더 나아가 일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본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프로듀서의 생각이나 의도가 이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명의 감독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이런 분위기의 작품들을 만든 것도 놀랍지만, 이런 작품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제작자(일본인)의
입장도 대단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키라와 히로코 (Interior Design) - 미셸 공드리

가장 첫 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영화는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입니다. 홋카이도에서 영화작가를 꿈꾸는 애인을 따라
도쿄로 상경한 히로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처음 히로코는 친한 친구의 집에서 애인과 함께 신세를 지며
방도 알아보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친구와 애인에게 점차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점차 의문을 갖게 됩니다. 도쿄를 배경으로 일본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지만, 공드리의 영화는 역시,
공드리스럽습니다. 사실 그가 만든 <이터널 선샤인>은 제 인생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제 인생 최고의
감독이냐 묻느냐면 또 그렇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후 만들었던 <수면의 과학>도 그렇고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는 확실히 결여된 부분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놀라운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영상으로 표현해 내는데 기발한 재주를 갖고 있었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공드리는 아직까지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좀 부족한 것이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는 그저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 판타지 그 이상의 것으로
전개시키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이번 같은 옴니버스 영화는 그의 부족함을 많이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히로코가 신세를 지게 되는 친구의 집 디자인을 제외한다면 별로 공드리 스러운 부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데, 중반 이후 히로코가 급격하게 변화(그야말로 변화)를 겪게 되면서 단숨에 공드리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터널 선샤인>때도 잘 보여주었지만 그는 상상력을 표현함에 있어 컴퓨터 그래픽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시각효과를 아이디어가 주가 된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곤 했는데, 이번 <도쿄!>에서도 사실
시각효과 자체의 기술력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굉장히 작품에 잘 녹여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별로 대단한 효과가 아님에도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 같구요(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공드리가 느끼는 도쿄 역시 그리 행복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그 속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결국 다른 존재가 되어서야 자신을 찾게 되는
안타까움이랄까요.


1. 츠마부키 사토시가 깜짝 출연하더군요!
2. <구구는 고양이다>에 이어 카세 료의 속옷 차림을 연달아 스크린으로 보게 되는군요;;
3. 극중 히로코가 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에 등장한 컨테이너 형식의 집은, 정말 그런 집이 있나 싶더군요.




광인 (Merde) - 레오 까락스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보았던 이유는 오랜만에
영화를 연출한 레오 까락스도 까락스지만, 그가 드니 라방과 함께 컴백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극중 '하수구 광인'을
연기한 드나 라방의 연기는 정말 그 만이 연기할 수 있는 몸 연기를 선보입니다. 기괴한 얼굴 분장은 그렇다쳐도,
그의 이상한 걸음 걸이와 몸으로 표현하는 동작들을 '하수구 광인'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더 인상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정체 불명의 언어라는 점인데, 이게 만약 레오 까락스와 드니 라방이
아니라, 김병욱과 박영규 였다면 누가봐도 코미디로 느꼈을 만큼 이상함을 넘어선 코미디이지만, 그들이기에 쉽게
웃게 되질 않습니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그 야욕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수구 광인의 이상한 말들도 무언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의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앞서 이렇게 도쿄나 일본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어찌 '도쿄'라는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수용할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레오 까락스의 <광인>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광인은 하수구 밖으로
나와 도심을 활보하며 시민들을 괴롭히고 급기야 대형 살인사건마저 벌이게 되는데, <도쿄>라는 프로젝트에 초대받아서
이런 영화를 만든 레오 까락스나 이걸 수용한 프로듀서나 다 대단한듯 싶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히 이 이상한 광인에
행동에 집중하는 듯 했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런 행동들을 했는지에 관해 들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묘사되고 있는데, 마지막에는 한 술 더 떠서
미국까지 걸고 넘어지는 레오 까락스의 재치는 살짝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극장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했었고, 다른 기사들을 보니 코미디 적인 면을 강조한 평들도
보이던데, 저는 확실히 영화를 좀 많이 진지하게만 보는건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 포인트가 된 그 장면들조차
다 비유나 은유로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살짝 극장의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제 웃음 코드는
대중들과는 동 떨어지는 '광인'일지도 모르겠네요 윽.


1. 우리나라에서 '서울'을 주제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드는데 왠 유럽 감독이 서울서 폭탄테러 벌이는 영화를 만든다면
   절대 허가하지 않았겠죠.
2. 하수구 속 장면 가운데 긴 계단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트인지 실제 장소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도쿄 (Shaking Tokyo) - 봉준호

앞선 두 작품이 각각 다른 이유로 워낙에 판타지스럽다보니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가장 보편적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가 된지도 제법 오래 되었고, 국내에서도 TV를 통해 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히키코모리 자체에서 오는 신선함은 없지만,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도쿄>는 숨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는 봉준호 감독 영화다운 느낌도 들지만, 한 편으론 정적과
빛의 사용에 있어 상당히 일본영화 같은 느낌도 받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히키코모리 역할을 맡은 카가와 테루유키는 필름 2.0 지난호 기사를 보니
봉준호 감독의 엄청난 팬인 것을 알 수 있었는데(참고로 그는 봉준호 감독 연출에 송강호와 함께 영화를 찍게 되면
당장이라도 배우를 관둬도 여한이 없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ㅎ), 히키코모리 라는 것 자체가 워낙에 일본적인
것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별로 외국 감독이 연출한듯한 느낌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 너무
완벽하게 배우들에게 녹아들었다고나 할까요? 주연을 맡은 카가와 테루유키는 물론, 아오이 유우나 깜짝 출연한
다케나카 나오토 역시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히키코모리를 완벽하게 연기한다면 아오이 유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를 극대화 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냥 '그 하얀 아이'이렇게 묘사될 만큼 별 대사 없이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장면이 되는 아오이 유우만의 장점이 부각된 영화라고 해야겠네요.
봉테일, 봉준호 감독답게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혼자사는 히키코모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한 집 안의 세트라던가, 그가 처음으로 변화를 겪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셸 공드리나 레오 까락스의 작품은 다들 그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나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는데, 봉준호의 경우 너무 현지화가 잘 된 덕분에 비교적 그만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1. 이병우의 기타 선율은 이번에도 멋졌습니다~

2. 극중 카가와 테루유키가 휴지를 다 쓰고 남은 동그란 종이를 손바닥에 대어 동그란 자국을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괴물>에서 송강호가 마지막에 괴물을 쓰러트릴때 손바닥에 역시 동그란 자국이 남았던 것이 떠올라 혼자
   재미있어 하기도 했습니다 ㅎ

3. 더 혼자만 알아챘던건 어떤 스치듯 지나간 배우를 알아본 것이었는데. 저는 원래 배우 얼굴 알아보는 것에 있어서는
   매우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는, 집에와 확인해본 다음에 맞는 걸 알고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갑자기 인물들이 뛰쳐나오는 한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본 기억이
   나더라구요. 얼굴이 거의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채 약 1~2초 정도밖에는 안나오지만 워낙에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의 남자 중 한 명인 이발소 주인 역할로
   나왔던 배우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정말로 그의 필모그래피에 <도쿄!>가 있더라구요(혼자서도
   정말 놀랐음 ;;). 이거야 말로 혹시 아직 안보신 분들 계시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요건 조금 힘드실 거에요 ^^;



   (바로 이분! 아라카와 요시요시 (YosiYosi Arakawa))

4. 극중 아오이 유우에겐 몸에 문신으로 새긴 버튼이 있는데, 그 버튼 모양이 엑스박스 360의 파워버튼과 똑같이
   생겼더라구요. 후원사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ㅎ

5.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히키코모리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 백수들도 누가 매달 생활비 대주면
   모조리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르죠. 다 돈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듯 --;;




6. 이런 분이 피자 배달 온다면 굳이 히키코모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매번 피자 배달 시켜 먹겠죠 아마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폰지에 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라는 영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건 전적으로 감독 미셸 공드리 (Michel Gondry) 때문이었다. 뷔욕 (Bjork)의 광팬이었던 나는 그녀의 'Human Bahavior', 'Bachelorette',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Joga'의 뮤직비디오를 접하게 되면서 과연 이 기묘하고도 괴상하기까지 했던, 당시로서는 뷔욕의 음악과 함께 충격적인 영상으로 다가왔던 이 작품들을 한 사람이 감독했다기에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라는 매체에서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 극한까지 도달해 이제는 복고적인 성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뷔욕, 벡 (Beck), 라디오헤드 (Radiohead), 매시브 어택 (Massive Attack), 레니 크래비츠 (Lenny Kravitz)등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는 누구라도 감상한 뒤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는 완성도 높고 초감각적인 영상이었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감독 외에도 리바이스, 나이키,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CF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2001년작 <휴먼 네이쳐>이후,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 새롭게 내놓은 영화가 바로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터널 선샤인을 주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각본을 담당한 찰리 카우프만 (Charlie Kaufman) 때문이었다.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우는 카우프만은 이미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휴먼 네이쳐> 등을 통해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창조적인 시나리오로 천재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었다. 그의 각본은 굉장한 두뇌 회전을 요하면서도 동시에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펼쳐왔는데,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그의 장난끼와 복잡함은 계속되지만, 전작들과 비교해 봤을 때, 러브스토리에 걸 맞는 매우 사랑스럽고 감성적인 면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터널 선샤인을 지배하는 정서는 대충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처음 사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정서와 이별에 아픔을 잊기 위해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뇌에서 지워 버린다는 비현실적인 정서, 그리고 이 현실과 비현실을 감싸는 따뜻한 감성. 앞선 현실적인 정서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어떤 큰 줄기의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날 때와 같은 설레임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널 영원히 사랑해’라는 식의 결론을 맺는 일반적인 영화가 되었을 테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주를 이뤘다면 영화는 <메멘토>식 시간 퍼즐 놀이와 같이 관객과 두뇌 싸움을 치열하게 벌이는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실제로 많은 주변 사람들이 <메멘토>를 연상했다), 이터널 선샤인에만 있는 따뜻한 감성은 이 영화를 앞선 두 가지 형태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 만약 이 같은 복합적인 요소 없이 현실적인 러브스토리나 기억과 현실을 어지럽게 배치한 이야기로만 진행되었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주고받는 'Okay', 'Okay'라는 대사가 그렇게 가슴 시리도록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며, 마지막 해변에서 나누던 대화 중 ‘조엘, 이제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게 돼 (This is it, Joel. It's gonna be gone soon)’, ‘알아 (I Know)’, ‘어떻하지? (What do we do?)’라는 물음 뒤에 ‘그냥 음미하자 (Enjoy it)’했을 때, 참을 수 없는 전율과 눈물이 쏟아지진 않았을 것이다(여러 번 보아도 이 대사는 정말로 감동적이라 원문을 굳이 참조하였다. 'Enjoy it'을 ‘음미하자’로 해석한 것은 정말 탁월했던 것 같다).




영화의 해석에 대해서는 이 DVD, 정확히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을 듣기 전에는 나조차도 분분했었다. 논란에 중심은 아무래도 해피엔딩이냐 언해피엔딩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시간이 지나면 서로 지루해하고, 따분하게 여길텐데?’하는 클레멘타인의 질문에 웃으며 'Okay'로 답한 조엘과 역시 웃으며 'Okay'로 답한 클레멘타인을 보며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 극장에서 2번째 관람하였을 때에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겼고, 급기야 영화의 크래딧과 함께 조엘이 차안에서 슬프게 울며 테이프를 차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조엘에 눈가에 기억을 지울 때 사용하는 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둘은 다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진다는 언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음성해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조차 100% 완벽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어쨌든 감독과 작가의 말을 통해 알게 된 확실한 사실은 그들은 영화를 결말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눈 덮인 해변 가를 뛰어가는 장면이 현실인지 추억인지의 여지를 남기면서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음성해설 중 테이프를 밖으로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 카우프만은 ‘저것은 라쿠나 테이프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음성해설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집중했던 것은 이같이 모호한 결말 때문이었는데, 다 감상하고 난 뒤 생각해보니 감독과 작가는 그 자체에 그렇게 큰 비중은 두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적으로만 달려들었던 자에게 결말은 관객에게 남겨두었다는 작가의 말은 처음에는 조금 허무했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결말의 종류나 시간 퍼즐 맞추기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 영화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것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난 뒤 헤어지면서 창밖으로 인사를 전해 받은 뒤 살짝 눈 내리는 거리를 뒤로하고 너무나도 행복해하며 차로 돌아가던 장면(그리고 그 때 흐르던 존 브라이언의 그 음악!), 첫 전화 통화를 하며 너무나도 행복해하던 조엘의 얼굴,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비 오던 날을 떠올리며 탁자 아래로 비를 피하던 장면(그 때 흐르던 그 감성적 스코어!), ‘몬타우크에서 만나자’라며 속삭였을 때 느꼈던 애잔한 정서, 그리고 이미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전율이 흐르던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정서가 바로 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말하고자 하는 따뜻함이 아닐까 한다.

이제 배우들에 연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실 ‘이터널 선샤인’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거나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유는 짐 캐리라는 배우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짐 캐리 하면 <마스크>나 <덤 앤 더머>를 떠올리며 코믹 연기에 달인 정도로만(사실 짐 캐리가 펼치는 코믹 연기는 그 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정극 연기를 한다고 할 때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아담 샌들러 주연의 <펀치 드렁크 러브>가 소수에게만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맨 온 더 문>, <트루먼 쇼>, <마제스틱> 등에서도 이미 괄목할만한 드라마 연기를 펼쳤으나 아직도 그를 단순히 코미디 연기자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가장 아쉽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짐 캐리의 연기는 어느 명배우 못지않은 감동을 전한다. ‘조엘’ 캐릭터는 이전에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달리 짐 캐리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짐 캐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클레멘타인 역할에 케이트 윈슬렛은 본인에게도 그러하듯이 조금은 의외에 캐스팅 이였는데, 그동안 주로 영국의 시대극을 주로 연기했던 그녀에게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맡긴 영화의 선택은 어찌 보면 모험일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케이트 윈슬렛에 말을 빌리자면 ‘조엘’은 케이트 윈슬렛이 그 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닮았고 ‘클레멘타인’은 짐 캐리가 그 동안 연기해왔던 캐릭터를 닮았지만,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지만, 그녀가 이리도 사랑스러운 여자인 줄은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밖에 ‘프로도’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갖가지 다른 역할에 도전하고 있는 일라이자 우드는 영화에 잘 묻어드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마크 러팔로와 커스틴 던스트, 톰 윌킨스 역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영화 전체를 풍성하게 해주는 캐릭터로서 열연을 펼쳤다. 감독과 작가가 톰 윌킨스와 커스틴 던스트의 연기를 보면서 ‘지도할 필요가 없는 배우다’, ‘너무 잘 해 주었다’라고 말한 것이 단순히 예의상으로 한 말이 아님을 영화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극장을 나오자마자 DVD는 언제쯤 출시될까 기다리게 되었는데, 사실 내 생애의 영화로 꼽을 만큼 사랑한 영화지만 DVD의 퀄리티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크게 흥행하지도 못하였으며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을 비춰봤을 때 국내 DVD출시 여건상 우수한 스펙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1장의 디스크에 본편과 예고편만 달랑 수록한 초라한 버전으로 출시될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달리 코드 1로 출시된 콜렉터스 에디션을 기본으로 한 2장의 디스크의 스페셜 에디션 DVD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다. 먼저 1.8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신작 DVD로서 손색이 없는 화질을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 자체가 의도적으로 뿌옇거나 흐리거나 어둡거나 하는 등의 기법을 쓴 장면이 많아 100% 화질의 우수함을 체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운드는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 트랙이 특유의 강력함을 뿌리는 장면은 드라마의 특성상 그리 많지 않지만, 감독이 음악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만큼,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스코어와 감동적인 배경음악과 함께 대사 또한 또렷하게 전달된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 DVD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서플먼트에 있다 하겠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함께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음성해설은 기술적인 면이나 스토리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음성해설 도중에 말이 없을 경우 영화 본편의 대사에 대한 자막 처리가 된 점도 특징적이다. 아, 또한 모든 메뉴의 한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터널 선샤인 영화 속으로’는 별도로 제작된 홍보용 영상으로서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가 영화 속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미셸 공드리와 제작진이 들려주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천재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블루 스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셸 공드리는 대부분의 장면들을 순수하게 아이디어만으로 극복하여 만들어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저런 장면은 CG를 썼겠지’했던 장면들이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편집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배우와 스텝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롱 테이크 원 샷으로 촬영된 장면이라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와 ‘케이트 윈슬렛과 미셸 공드리 감독과의 대화’에서는 서로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촬영 중 에피소드들을 전해들을 수 있는데, 단순히 웃고 떠드는 내용이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전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소중한 대화가 오간다. ‘Saratoga Avenue 장면이 완성되기 까지’에서는 이 한 장면 속에서 어떠한 컴퓨터 그래픽 등이 사용되었으며 어떠한 아이디어 들이 사용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조엘이 창밖으로 클레멘타인에게 너를 지워가고 있다며 말할 때 클레멘타인의 다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 서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밖에 ‘메이킹 필름’에서는 촬영장에 모습을 더 가깝게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삭제/추가 장면’은 본편에는 수록되지 못한 장면들로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장면들이 담겨있다(영화 초반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집에 가게 되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는데, 이 삭제 장면을 통해 사건에 시간 순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밖에 Beck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의 뮤직비디오와 그래픽을 통한 짐 캐리의 립싱크가 재미를 주는 'Light & Day'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라쿠나 회사의 광고가 담겨있어, 뭐하나 놓칠 것이 없는 서플먼트를 마무리한다.




<이터널 선샤인>은 <반지의 제왕>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의 위대함과는 또 다른 위대함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슬퍼질 수 있는지,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작품이다. <이터널 선샤인>으로 인해 받았던 감동과 행복함,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포함한 여운은, 영화 속 ‘라쿠나’ 회사와 같이 기억을 지워주는 인위적인 행위 없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2006.01.18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2005) 
 
미셸 공드리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온갖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영화.
또한 이 기대와 더불어 과연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의 영화는 어떨까 하는 걱정도
갖게 했던 영화. 수면의 과학.
 
내가 가본 중엔 처음으로 씨네큐브가 매진되어 빈자리가 없었던 가운데
관람했던 수면의 과학.
 
빛과 색의 움직임이 인상적인 인트로 부분부터
공드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건 공드리 영화야 할 만큼
색다르고 기괴한 상상력들이 가득 넘치는 장면들이, 가득한게 아니라 전부다.
이 영화는 오롯이 공드리의 상상력이 100% 발휘된 장면들과
이야기이며, 그간 그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았던 재기 넘치는 영상들을
영화라는 그릇에 담아놓은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걱정했던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는, 역시나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영화의 홍보 문구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사랑은 왜 꿈처럼 되지 않을까요?' 라는 말처럼
왠지 전작 <이터널 선샤인>과 같은 애절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무척이나 갖게 했지만, <이터널 선샤인>정도의 그것은 없었다.
하지만 <수면의 과학>과 <이터널 선샤인>은 엄연히 다른 영화이고
비슷한 장르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같은 감동을 원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듯 싶다.
 
잠과 꿈.
현실과 꿈.
공드리의 작품에 항상 베이스로 깔려있던 이 세계관을
작정하고 풀어낸 영상.
 
 

 

 
글 / ashitaka

**** / 1. 실재로 그리 우스운거 같지 않았던 장면에서도,
사실 웃지 말았어야 했던 장면에서도,
사람들은 많이들 웃었다. --;
내 웃음보가 고장난 것일까 --;
 
2. 여주인공인 샬롯 갱스부르는 얼마전 보았던 21그램에서 봤던 인상이
남아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음반도 들어봐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 날 문득 다가온 지름신의 부름에 옳거니 하고 질러줬던 박스세트.
내가 좋아해 마지 않는 미셸 공드리와 크리스 커닝햄, 스파이크 존스의 뮤직비디오만 모아논
컬렉션 박스세트!!!
물건너 아마존에서 지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셸 공드리 컬렉션.
White Stripes가  장식하고 있으며
Beck의 모습도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스 커닝햄 컬렉션.
표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었던 bjork의 all is full of love가 장식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파이크 존스 컬렉션.
메인 자켓도 인상적이지만 역시 나에게는 'It's Oh So Quiet'가
더 인상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각 감독 컬렉션 마다 제법 두툼한 칼라 부클릿이 포함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셸 공드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너스 디스크는 박스세트에만 포함된 아이템.
 
사실 이 박스세트가 출시된지는 몇년이 지났지만
요 몇 해 지름에 관해(특히 해외 아이템이나 bjork관련 아이템들) 신경을 못 썼던 터라
이렇듯 나에게 더없이 걸맞는 아이템이 나왔는지도 모르고 지나왔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김에, 그 자리에서 바로 질러버렸다.
 
그냥 각각의 뮤직비디오 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라 절대 아쉽지 않은 컬렉션이며,
미셸 공드리나 크리스 커닝햄, 스파이크 존스 등 감독들의 팬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며
(감독별로 개별출시도 되었다).
나처럼 좋아하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가 가득 있는 경우라면
그야말로 필수 아이템!

 
글 / ashitaka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10.18 홍대 Hollys Coffee  (1) 2007.10.15
2006.09.05 홍대 '春山'  (0) 2007.10.15
하늘공원  (0) 2007.10.12
Jeero와 지갑  (0) 2007.10.12
포스 1 로우 07 프리미엄 필라델피아 흰남빨 DOWN NORTH (AF 1 PRM WH/VRST RD-OBSD-PRL WH)  (0) 2007.10.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