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_ 블루레이 리뷰 (Hanna)
총을 든 소녀의 동화


'오만과 편견 (2005)'과 어톤먼트 (2007)'를 연출했던 조 라이트 감독의 2011년 작 '한나 (Hanna)'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유독 평가가 엇갈렸던 올해 작품 중 하나였다. 어떤 이들은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꼽기도 할 정도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 영화에서 액션을 다루는 방식은 결국 하나의 '맥거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는 이야기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한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맥거핀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영화의 구성상으로 보았을 때에도 액션이라는 장르를 맥거핀으로 사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나'가 이러한 맥거핀을 뒤로 한 채 진짜로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만약 '한나'를 액션 영화의 범주 안에 가둬 놓으려 한다면 이 작품은 굉장히 시작만 창대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볼거리는 없는 심심한 액션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 곳곳에 아주 노골적으로 이 작품이 동화라는 사실을 (액션은 거들 뿐) 강조하고 있다. 주인공 한나는 '레옹'의 마틸다 보다는 라푼젤이나 인어공주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인간 세상과 격리되어 자라오던 어린 주인공이 드디어 세상에 나와 처음 보고 듣고 만지게 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혼란스러운 성장 통이 결국 '한나'가 들려주고자 했던 본래의 메시지인 것이다. 제이슨 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나가 '킥 애스'의 힛 걸과 같은 캐릭터였다면 영화는 '킥애스'와 같은 액션 영화나 또 한 명의 새로운 히로인을 탄생시키는 작품이 되었겠지만, 이 영화가 주목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C.I.A, 전직 요원, 킬러 등 액션 영화의 자극적인 옷들을 입고 있지만, 재차 이야기하듯이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동화에 가깝다. 아니 아주 노골적인 동화다. 단순히 동화 같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관까지 동화 속 설정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데, 앞서 설명한 인어공주와 같은 주인공 한나의 상황은 물론이고 에릭 바나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는 일종의 '나무꾼'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으며,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C.I.A의 마리사 위글러 캐릭터는 전형적인 마녀 캐릭터이자 그녀가 고용하는 두 명의 악당 역시 코스츔까지 차려 입은 완벽한 악당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녀가 고용한다는 설정이다). 더불어 영화 후반부 등장하는 그림 형제의 집이나 버려진 놀이공원의 이미지는 아주 직접적으로 '자, 이 이야기는 동화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단지 '총'을 든 소녀가 주인공일 뿐.






주인공 '한나'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은 킬러로서의 차가운 이미지와 동화 속 주인공의 신비로움을 모두 갖고 있는 이미지로 '한나'라는 캐릭터에 더 깊은 이미지를 살려냈다. 감독의 전작 '어톤먼트'에서도 독특한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그녀였는데,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에 이어 자신만의 특별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아니면 누가 이 캐릭터를 더 잘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은 마리사 위글러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경우, 기존에도 여왕과 마녀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배우답게 C.I.A의 코스츔으로도 동화적 이미지를 가장 완벽하게 끌어냈으며, 아버지 역할을 맡은 에릭 바나의 경우 비중 면에서는 확실히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과하지 않은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즉, 에릭 바나에 기대를 걸었다면 비중 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삭스' 역의 톰 홀랜더는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고 있다 ('한나'는 특히 상징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삭스'가 주는 이미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나'에서 또 하나 꼭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케미컬 브라더스 (The Chemical Brothers)가 맡은 영화 음악을 들 수 있겠다. 케이컬 브라더스의 곡이 영화에 삽입된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그들이 직접 영화음악을 맡은 적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톰과 에드 본인들도 이 새로운 작업을 즐기면서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극중 이삭스가 휘파람으로 불기도 하는 'The Devil is in the Details' 같은 곡에서는 동화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공포감까지 담겨있어 캐릭터와 영화를 기억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추격 장면에서 강한 비트의 음악은 평소 케미컬 브라더스의 색깔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영화에 속도를 더하는, 아주 꼭 맞는 조합이었다. 확실히 케미컬 브라더스의 영화음악은 마치 다프트 펑크 (Daft Punk)의 '트론'이 그러하였듯,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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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 Quality


블루레이의 화질은 올해 극장에 선보인 최신작답게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풀HD의 깔끔하고 선명한 화질을 체감할 만한 장면들을 여럿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한나의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과 금발 머릿결은 블루레이의 화질을 통해 더 선명하게 구분되며, 영화 초반 등장하는 눈덮인 핀란드의 풍광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들 역시 선명하게 전달된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C.I.A 본부의 차가운 블루 톤의 색감과 케이트 블란쳇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클로즈업 할 때의 디테일도 만족스러운 편이며, 한나를 비롯해 극중 한나의 친구로 등장하는 여자 아이의 주근깨 가득한 얼굴과 피부 역시 블루레이로서 그 질감이 제대로 표현된다. 후반부의 놀이공원 장면은 어스름하게 안개가 깔린 배경에서 펼쳐지는데, 손에 잡힐 듯한 공간감이 잘 표현되고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만족스럽다. 케미컬 브라더스의 금속성 강한 비트와 사운드 트랙을 강한 울림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음장감도 만족스러워 액션 장면의 쾌감이 더해진다. 액션 장면에서는 대부분 배경음악과 함께 진행이 되는데 액션의 효과음과 배경음악이 모두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배우들마다 독특한 억양이 선명하게 확인될 정도로 대사 전달에서도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운드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케미컬 브라더스의 음악을 멀티 채널을 통해 차세대 사운드로 만나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첫 번째로 만나볼 스페셜 피쳐는 감독인 조 라이트가 참여한 음성해설인데 아쉽게도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사실상 즐겨볼 수 없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Alternate Ending'과 'Deleted Scenes'에서는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또 다른 엔딩 장면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수록된 최종 버전이 훨씬 더 깔끔한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부가영상에 수록된 버전도 본편에 수록된 엔딩과 마찬가지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엔딩으로서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Adapt or Die'는 '한나' 블루레이에 수록된 가장 기본적인 메이킹 다큐 영상으로서 감독과 배우, 스텝들의 인터뷰와 촬영장의 생생한 장면들을 통해 '한나'라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특히 액션에 있어서 한나라는 캐릭터를 위해 시얼샤 로넌이 여러 가지 훈련을 받는 영상과 상대역인 에릭 바나와 합을 맞추는 장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Central Intelligence Allegory'에서는 'C.I.A'를 묘사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이 작품이 동화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대해 캐릭터, 특히 마리사를 중심으로 설명해 준다. 'Chemical Reaction'에서는 직접 영상으로 만나볼 수는 없지만 전화 음성을 통해 영화 음악을 맡은 케미컬 브라더스의 부가설명과 영화음악을 맡은 소감을 전해들을 수 있다. 영화의 팬 뿐만 아니라 케이컬 브라더스의 기존 팬들에게도 의미 있는 영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The Wide World of Hanna'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케이션 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각각의 에피소드를 간단하게 들려주고 있으며, 'Anatomy of a Scene: The Escape From Camp G'에서는 영화 초반 한나의 탈출 시퀀스를 통해, 감독이 의도하려고 했던 점들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영화의 메시지를 짧게나마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Hanna Promo'에서는 영화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조 라이트 감독의 '한나'는 본 시리즈 같은 액션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 담긴 동화적 구성과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매우 흥미롭고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케미컬 브라더스의 인상 깊은 영화 음악과 더불어 블루레이로서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다른 시각으로 즐겨보길 적극 권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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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2009)
죽은 자의 동화



앨리스 시볼드의 2002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한 <러블리 본즈>는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은 이유만으로 관심을 끌게 된 작품이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흘러나오는 분위기만 보아도 피터 잭슨이 최근 작들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잔잔한 작품일 것 같아 오히려 좀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평소처럼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는 조금 의외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CG를 통한 월페이퍼 스러운 영상들이 많은 한 편, 판타지와 스릴러에 가족 드라마를 섞은 묘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그리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고, 피터 잭슨이라는 이름만 믿고 극장을 찾는 이들이라면 더욱 실망할 확률이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속에서도 흥미로운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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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이 소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영화 초기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영화적 사건을 서두에 언급하였다는 것은 이 죽음이 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알려준다. 소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죽음을 통해 벌어지는 가족의 이야기와 소녀가 겪는 여정을 그린다는 것인데, 그래서 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수지(시얼샤 로넌)는 영화 내내 죽음이라는 범주안에 있지만 영화 자체는 별로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있지는 않는다.

일단 수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갑작스러워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때문인 것도 조금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자신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큰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수지는 그저 지난 번 한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약속에 나가야 하는데 못나가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는 아빠에 대한 걱정 그리고 커가는 동생에 대한 부러움 뿐이다. '뿐이다'라기 보다는 포커스가 '죽음' 그 자체라기 보다는 이렇게 개인적인 것에 더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서 영화 <러블리 본즈>는 죽음이라는 설정을 아주 가깝게 끌어 안고 있음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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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는 분명 여러 토끼를 잡으려 한 흔적이 느껴진다. 사후세계를 떠도는 수지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떠나보내고 남게 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수지를 죽인 살인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버무려내게 되면서 영화는 판타지와 스릴러 그리고 가족 영화와 소녀의 성장영화에 이르는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소녀의 로맨스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버금가게 이성을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부분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죽음을 그리지만 어둡지 않은 이야기가 되는데에 한 몫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 부분에 할당량은 차라리 판타지에 가까운 사후세계로 더 보충했었더라면 조금 더 집중력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극초반 설명 정도로 그친 소녀의 로맨스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는 모티브로 등장하면서 중간중간 영화는 힘을 잃기도 했고, 더불어 판타지 세상에서 뛰어노는 수지의 모습이 쌩뚱맞음과 어울려, 관객으로 하여금 중심을 잡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 역시 그저 애타게 수지를 찾는, 수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가족의 이야기 정도라면 힘을 얻었을 텐데, 부부 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이 역시 조금은 거추장 스러운 부분이 되어버렸다(이런 느낌을 받은데에는 엄마 역할의 배우가 무려 레이첼 와이즈 였다는 점도 한 몫 톡톡히 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야기가 구심점은 있지만 (수지의 죽음) 완벽한 조화는 이루지 못하면서 진행에 조금씩은 더딘 느낌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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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피터 잭슨의 <러블리 본즈>가 그럭저럭 좋았던 것은 <네버엔딩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판타지적인 사후 세계관과 이외로 스릴러 적인 매력이었다. 이 작품은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언급하게 되는 CG영상의 경우, 분명 조금 과한 감은 있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의도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와 떠올려보면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한 판단은 어렵지만, 사후 세계의 분위기를 이리도 아름답고 판타지적인 세계로 그린 것은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의 자식이 죽어서 가게 되는 세계가 무섭고 어두운 곳이 아니라 영화 속 처럼, 죽음을 인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만 싶은 아름다운 세계였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 말이다(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슴이 찡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서는 살인범이 잘 살아가고 있는 어두운 세계가 펼쳐진다. 후반부 살인자의 집에서 펼쳐지는 추격씬을 비롯해 그가 등장할 때는 굉장한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피터 잭슨이 연출력을 십분 느껴볼 수 있었다. 판타지적인 느낌을 지우고 이 부분에만 집중했더라도 제법 괜찮은 범죄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조디악>이나 <양들의 침묵>을 문득 문득 떠올리게 되는 흥미로운 스릴러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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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시네마스코프의 적극적인 활용이라 하겠다)

<러블리 본즈>가 흥미로웠던 또 다른 점은, 이 영화가 시네마스코프 (2.35:1)의 화면비를 갖고 있다는 점, 아니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위의 스냅샷처럼 시네마스코프의 화면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들이 매우 많다. 위의 장면에서는 남자와 수지 사이의 엄청난 거리가 느껴지는데, 이런 거리는 무언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는데, 즉 캐릭터나 이야기보다도 저 '간격'이 더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네마스코프는 화려한 사후세계를 그리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간격을 그리는데에 탁월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굉장히 빈번하고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거리 외에 피터 잭슨은 '외로움'을 표현하는데에 이 화면비를 또 한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와이드한 화면비의 중심에 캐릭터를 두어 좌우 여백을 십분 활용하여, 넓은 배경 속에 외로이 남은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다. 광활한 사후 세계에 홀로 남은 수지와 딸을 잃고 방황하는 아빠 잭 (마크 월버그)이 더욱 외로워 보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는 이 화면비만의 장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는데, <러블리 본즈>의 피터 잭슨은 이 화면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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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톤먼트>의 이후가 궁금했던 시얼사 로넌은 그 때의 영롱했던 눈빛은 그대로 간직한 채 좀 더 성숙한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으며, 마크 월버그의 '아빠' 연기도 수긍이 되는 부분이었다. 레이첼 와이즈는 비중 자체가 마크 월버그에게 쏠리는 바람에 큰 활약을 펼칠 여지는 부족했으며, 수잔 서렌든은 등장은 제법 하지만 비중은 카메오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조지 하비' 역할을 맡은 스탠리 투치의 연기는 이 영화를 잠시나마 스릴러로 오해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연기였다.


1. 피터 잭슨이 역시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사진관에서의 연기는 너무 티났어요 ㅎㅎ
2. 피터 잭슨과 그의 아내인 프란 윌시는 각본과 제작을 이번에도 겸하고 있습니다.
3. 극장에서는 찾지 못했는데 혹시나 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피터 잭슨의 아들이 카메오로 출연했군요.
4. 음악은 브라이언 이노가 맡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ingNut Films.DreamWorks SKG 에 있습니다.



 


어톤먼트 (Atonement, 2007)
오해와 거짓말의 나비효과

올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분 작품상과 아카데미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았었던 <어톤먼트>를 오늘에야
관람할 수 있었다. 예전에 포스터만 보고서는 그저 전쟁통에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예전 <브릭>을 리뷰할 때 선댄스 영화들은 다르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확실히 워킹 타이틀의 영화 역시
그 이름만으로도 믿고 관람할 수 있는 브랜드인 듯 하다. 워킹 타이틀의 영화들이 그러하였듯이 <어톤먼트>역시
훌륭한 이야기 구성과 높은 영화적 완성도를 보여준 수준급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002년 출판된 이완 맥이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소설의 팬들이 이 미묘한 심리 묘사들을 과연 어떻게 영화화 할 수 있을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인물들이 겪는 무거운 마음들을 매끄럽게 묘사한 좋은 작품이었다.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도, 전쟁도 아니다.
바로 한 사람의 거짓말과 이로 인한 오해가 가져온 무수한 일들. 거짓말을 할 때에는 이런 일이 생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이로 인해 오해를 받은 인물들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엄청난 결과가 생겨버리게 되는,
소녀의 거짓말이 이들 세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버렸는지를 조용하지만 무섭게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목인 <어톤먼트>(속죄, 참회)가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로비를 사랑했던 10대 소녀 브라이오니는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가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난 뒤, 그 날 밤 저택 부근에서 있었던 강간 사건의 범인을 보았음에도 범인이 아닌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이로 인해 로비는 감옥에 가게 되고, 감옥에서 징병이 되어 전쟁에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고,
세실리아 역시 로비를 찾아 간호사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브라이오니는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의 거짓말이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깨닫고, 뒤늦게 속죄하지만 이미 이 둘에게는 그 속죄의
뜻을 전할 수 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브라이오니는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마지막 소설로
남기는데, 자신의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로비와 세실리아가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상상의 이야기를 수록하지만,
이것은 말그대로 상상의 이야기일 뿐, 브라이오니의 속죄는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뒤였고,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현재를 보여주고 몇 일 전,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방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브라이오니의 속죄로 돌이킬 수는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고 깊은 인상을 주기 시작했던 것은, 브라이오니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한 순간 부터였는데,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 군인들의
모습들도 등장하지만 그 무엇보다 안타깝고 슬펐던 것은, 브라이오니가 속죄를 해도 이미 모든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는 마지막 인터뷰 장면이었다.

이 마지막이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노년의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예전 주디 덴치가 가장 짧은 러닝 타임만을 출연하고도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했던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안타까운 속죄의 마음을 전하는 브라이오니의 인터뷰 장면에서의 레드그레이브의 연기는,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슬픈 영화가 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션 임파서블>의
'맥스'역할로 익숙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연기는 어린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연기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물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도 좋았지만,
<어톤먼트>를 보고나면 가장 큰 인상이 남는 것은 바로 어린 브라이오니 역할을 맡은 시얼샤 로넌의
그 연기와 표정일 것이다. 흡사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시얼샤 로넌의 차가운 마스크는 그 새침한 단발 머리와
맞물려 이 모든 일들을 있게한 브라이오니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어톤먼트>로 인해 가장 주목을 받게 된 영화인이라면 아마도 어린 이 소녀가 되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또 어떤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무한 기대가 되는 바이다.

마릴린 먼로의 그 유명한 치마폭을 감싸 앉는 장면에서 등장했던 의상을 물리치고, 당당히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의상으로 선정되었다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녹색 드레스는, 이미 이렇듯 화제가 된 바를 알고 가서
인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해 너무 짧은 시간 등장한 것 같아 아쉬웠다.
아, 그리고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
분명히 어디서 본 듯은 한데, 영화를 보는 내내 잘 기억이 나질 않았었는데, 집에와서 찾아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나니아 연대기>에서 톰 누스 역할로 출연을 했었기 때문.
분장을 지운 멀쩡한 얼굴을 보니 본듯은 하지만 확실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
그 역시 이 불쌍하고 기고한 운명에 처해진 로비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낸 듯 하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것처럼, 이 영화의 음악은 굉장히 창조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면을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타이핑 소리를 음악의 소스로 사용한 것은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으며,
세 인물의 기고한 운명을 음악으로 극대화 시키는데 공헌을 하고 있다.
아, 그리고 촬영기법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데, 두 주인공의 서재에서의 키스씬은 거의 얼굴만을
클로즈업 하고 있지만 마치 <색. 계>의 배드씬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감각적인 촬영기법이었으며,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대사없이 단 한 번에 모두 설명해 내는 아주 긴 롱테이크 샷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준비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 아닌가 싶다.

굉장히 고전적인 배경과 스타일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세련되게 뽑아낸 것은 아무래도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다. 조 라이트 감독의 전작 <오만과 편견>은 개인적으로 아직 보질 못했는데,
확실히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운명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잔인한,
하나의 거짓말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에 관한 슬픈 이야기,
어톤먼트 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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