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라이프 오브 파이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이안에게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감독상을 안겨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는 복합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두 가지 스타일은 각각 정반대의 경우인데, 하나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나 분명해서 이를 영화가 이끄는 대로 끝까지 따라간 뒤 영화가 맺은 마지막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를 선택하면 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영화는 적게는 두 가지의 길을 많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도록 설계 되어 있어서 영화 스스로는 답을 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흥미로운 것은 보는 이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모든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꼭 보는 이에 따라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에게서도, 곱씹어 보기에 따라서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반대의 경우로도 생각해볼 수 있고, 반대로 열려있다고 여긴 지점이 너무도 분명한 주장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넓게 보았을 때 '믿음'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에 파이가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이 진실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라는 것보다는 둘 중 하나 혹은 모두가 다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영화 내내 공감하고 따라왔던 파이가 들려준 리차드 파커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일본 선박회사 사람들에게 들려준 참혹한 이야기 역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불분명 했었다. 파이가 영화 내내 들려준 이야기에 흠뻑 빠져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마지막 파이가 일본 선박 회사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이야기를 들려 줄 땐 '아!'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반대로 의심하지 않게 되었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다시 곱씹어 본 영화는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넘어서서, 내가 더 믿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영화가 궁극적으로 묻고 싶었던 바로 그 부분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실제 참혹했던 일을 이렇듯 비유로 만들어낸 파이의 이야기에 목적성이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편의상)에서 내가 파이였다면 이런 오인 혹은 회피의 과정 없이 남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에 대입해 인간이란 무엇이든 믿는 바 대로 자신을 컨트롤 혹은 속일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에 다다랐는데, 좀 더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의 회피나 왜곡을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르렀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근거로 파이에게 일어났던 실제의 일들을 유추해 본다면 (식인 섬을 비롯) 파이가 처했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즉, 리차드 파커는 사실상 파이의 또 다른 자아가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를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3인칭 시점으로 본다면 리차드 파커를 탓하기는커녕 안쓰러움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리차드 파커를 타자로 인정했을 때의 얘기지, 이것이 파이 본인의 이야기라면 답변은 달라질 수 밖에는 없다.





사실 여기서 리차드 파커의 이야기가 사실 파이 본인의 이야기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파이가 스스로 리차드 파커로 타자화 하여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파이 스스로가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의도한 것 자체가 비판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새삼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영화'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되었다. 모든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얘기처럼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영화라는 것은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감독이 철저히 주도권을 쥐고 관객을 믿게 만들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즉, 어떤 영화라도 '만들어 졌다'라는 태생적 요소를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측면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의 거의 대부분은 특히 더 가짜의 것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믿음에 관한 영화임에도, 아니 그래서 인지 몰라도 이 영화의 대부분은 가짜로 '만들어 진' 것들이다.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물론 대부분 CG로 만들어졌고, 바다도, 하늘도, 대부분의 배경들도 CG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만들어진 것들이 겹겹으로 쌓여 복합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다. 이 허구로 쌓인 겹겹의 구성이 본래의 진실을 더 강하게 만들고자 함인지, 반대로 본래의 진실 혹은 거짓마저 강하게 부정하려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라기 보다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처음부터 '믿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몇 가지 테마를 던진다. 첫 번째는 수영장의 이름에서 따온 파이의 이름이 다른 의미로 읽혀 겪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이름'이라는 것 즉, 불리는 기호로서의 이름에 대해 다룬다. 조련사와 동물의 이름이 바뀌어 그대로 불리게 된 '목마름'과 '리차드 파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이 '이름'이라는 것의 에피소드를 통해 부르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 혹은 부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시작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직접적으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든다. 파이가 종교를 만나고 믿게 되는 과정은 이 영화의 주제와 상당히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힌두 신이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예수님이 알라 신을 소개 해주었다는 식의 전개는 어쩌면 지금의 종교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믿음'에 관한 측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전개였다.


여러 가지 종교를 이토록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모든 종교에게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영화는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라이프 오브 파이'가 종교를 다루고 있는 방식은, 종교를 믿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인 '믿음'이 아닌 종교 그 자체를 믿고 있는 현실을 자연스레 환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러닝 타임 상으로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종교를 다루고 있는 방식은 그 어떤 영화보다 탁월하고 솔직했다.






이름과 종교를 아우르면서 믿음에 관한 것을 풀어내고 있는 것은 결국 '이야기'다. 이 영화는 결국 파이가 작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관객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듣는 입장으로 파이가 겪은 일들을 듣게 된다. 파이는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를 어떻게 믿느냐는 당신에게 달렸고, 이제 더 이상 내 이야기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라고. 이것은 앞서 이 영화를 '영화'에 대한 영화로 보았을 때 더 직접적인 메시지가 된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간혹 감독의 의도나 결론이 무엇인지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데, '라이프 오브 파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라는 것은 감독의 예술이기는 하지만 결국 관객이 완성하는, 관객 한 명 한 명 각자의 것이 될 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겠습니까?'라고.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겠다 라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결론을 내려보자면 지금은 답할 수 없다 정도일 것 같다. 다시 말해 이 대답은 대답을 하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마음 한 켠에서는 간절히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필요 없이 장황해질 것만 같은데, 어찌되었든 무언가를 아무 조건 없이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사실'인 것 같다. 그것이 맹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말이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풀HD 화질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블루레이 리뷰를 작성하면서도 모든 스크린 샷을 다 화질 소개 용으로 써도 무방할 만큼, 화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극장에서 볼 때도 화질이 좋게 느껴졌었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이 보여주는 체감도는 그 이상이다.


▼ 스크린샷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본문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라이프 오브 파이'는 CG의 활용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인데, 극도의 디테일 한 표현으로 인해 '이게 진짜 블루레이 화질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DVD의 화질이 아무리 좋다 한들 '라이프 오브 파이'를 DVD로 보면 감흥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블루레이의 화질은 압도적이다. 표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해가는 파이의 피부 상태는 작은 상처 하나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는 화질을 통해 더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오랑우탄 '오렌지주스'의 털과 피부의 표현은 물론 그녀(?)의 표정 연기마저 돋보이게 만들 정도로 얼굴의 주름 하나까지 잡아낸다.






파이와 리차드 파커가 섬에 도착하게 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화질의 깨알 같은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이하고 잔 줄기가 많은 녹색 나무들의 갈라짐과 셀 수 없이 많은 미어캣들을 화면 가득 잡아내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라운 화질을 보여준다. 장면 자체가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 그 놀라움 가운데는 선명하고 날카로운 화질로 표현되는 미어캣 한 마리 한 마리의 표현력 때문이기도 하다.






어두운 장면에서도 화질의 우수성은 잘 드러난다. 특히 '라이프 오브 파이'의 어두운 장면들은 완전히 어두운 장면이라기 보다는 반사광이 화려하게 표현된 장면이라던가, 미미한 광량으로 인해 아직은 밝기가 남아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어쩌면 애매하게 표현될 수 있는 그 어슴푸레한 순간을 딱 그 수준의 광량이 느껴질 정도로 표현해 내고 있다. 또 어두운 밤 바다를 배경으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에 네온처럼 빛을 발하는 물고기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장관인 동시에 블루레이 화질에 또 한 번 만족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Blu-ray : Sound


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로 평하기에 손색이 없다. 임팩트와 밸런스가 모두 수준급인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는데, 파이가 난파되기 이전까지는 영화 음악과 함께 편안한 사운드를 주로 들려주다가, 침몰 되는 장면에서부터는 '퍼펙트 스톰' 부럽지 않은 강렬한 폭풍우를 안방으로 가져온다. 실제로 이 전까지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다가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볼륨을 줄이게 되었을 정도로, 침몰 순간의 혼란스러움이 휘몰아치는 사운드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리차드 파커의 으르렁 거리는 사운드 역시 굉장히 공간감 있게 울리는데, 특히 처음 리차드 파커가 배 아래에서 등장할 때의 그 사운드 적인 임팩트는, 깜짝 놀라 마치 영화 속 파이처럼 몸을 뒤로 젖혀 지게 만들 정도다.






또 하나 사운드 적인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장면이라면 역시 물고기 떼가 등장하는 장면일 텐데, 복잡한 가운데 오히려 작은 소리들을 하나 하나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운드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물고기 떼가 날아오는 소리와 다시 물 속으로 입수와 날기를 반복할 때 나는 마찰음 그리고 여기에 파이의 몸에 부딪혀 나는 마찰음까지, 적지 않은 소리들이 섞여 있음에도 개별의 소리가 잘 살아있는 장면이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3D버전과 2D버전의 합본으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2장의 디스크에 나뉘어 수록되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3D본편과 부가영상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2D본편과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디스크에는 삭제 장면과 시각효과 과정에 대한 부가 영상 등이 수록되었으며 본격적인 부가영상은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 되어있다.






삭제 장면은 총 5가지가 수록되었는데 '아난디의 두 번째 춤'에서는 본편에서는 짧게 등장했던 아난디의 춤을 훨씬 더 긴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이 버전을 본다면 극 중 파이처럼 아난디의 다양한 표정과 춤사위에 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해피 버스데이'는 물고기 떼가 지나간 이후, 바다 위에서 엄마의 생일을 기념하는 장면으로 파이가 낚시 등에 더 익숙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밖에 파이가 리차드 파커의 몸짓과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시각효과 과정'에서는 포스트 비즈, 프리비즈, 플레이트, 최종 버전 등으로 나뉘어 각각 시각효과가 최종적으로 적용되기 전 과정들을 보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을 통한 사전 시각화 과정 역시 비교하기 쉽게 소개해 준다.






두 번째 디스크에서 가장 대표적인 부가영상이라면 '감독의 여정'을 꼽을 수 있을 텐데, 1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이안 감독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어떻게 기획되었고, 촬영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상세히 들려준다. 무려 4년이라는 제작 기간은 신념과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여정이었는데, 이안 감독과 제작진들은 마치 파이가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이 작품을 영화화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고, 신뢰로 이어져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가족처럼 버텨낼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스개 소리로 영화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3대 요소인 아이들, 동물, 물이 모두 나오는 영화라서 처음에는 모두들 꺼려한 아이템이기도 했다는데, 원작자 얀 마텔도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하듯 처음 폭스가 영화화를 위해 판권을 구매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기에는 너무 복잡한 구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는데, 이안 감독과 제작진이 만들어 내는 과정 들을 보며 조금씩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영화사에 프리젠테이션 용으로 사용했던 다양한 컨셉 아트 장면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영화 장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아니 오히려 더 예술적인 면모가 부각된 작품들로 감독이 연출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CG호랑이 때문에 철저한 사전 시각화 작업을 거칠 수 밖에는 없었는데,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사전 시각화 작업에만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관객이 보게 된 결과물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여 나온 '자연스러움'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파이 역할을 맡은 수라지의 카메라 오디션 동영상도 만나볼 수 있는데, 수라지가 이 영화에 캐스팅 되기 된 계기가 우리가 흔히 듣는 바로 그 케이스, 동생 오디션에 따라 갔다가 우연히 캐스팅 된 경우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그에게 '라이프 오브 파이'가 주는 의미가 어느 정도 인지도 엿볼 수 있었다. 수라지는 영화 촬영 전에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 평생 바다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고 하는데, 수영을 배우고 보트 위에서 생존을 배우는 트레이닝 과정 자체가 수라지에겐 영화 속 파이처럼 큰 도전이자 모험이었다는 얘기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대부분이 대만에서 촬영되었는데, 대만에서 촬영한다는 건 이안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 촬영을 해본 적이 없는 대만이었지만 이안에게는 다양한 시설의 제작은 물론, 시장과 총리까지 직접 촬영장을 찾아 격려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영화 제작 사상 가장 큰 파동 수조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뒷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 초대형 파동 수조는 그 제작과정만 봐도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를 실감할 수 있는데, 부가영상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준다.






부가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실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리차드 파커, 즉 호랑이에 관한 내용들이었는데, 자연스러운 CG호랑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기술적으로 엄청난 조사와 시간을 투입한 것은 물론이요, 그와는 별개로 실제 호랑이 조련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더 진짜 같은 리차드 파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이안 감독은 조련사인 티에리에게도 각본가의 공을 주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안이나 각본가 혹은 애니메이터가 알지 못했던 호랑이의 습성과 심리를 티에리가 조언해 주었으며, 그의 말을 듣고 각본이 수정된 경우도 많았을 정도로 단순히 호랑이를 조련하는 것이 아닌 영적인 교류를 한다는 그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를 설명하며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상당 부분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 기술과 표현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현실에 철저히 기반을 두고 임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의 주된 촬영 장소였던 대규모 파동 수조 세트에서의 촬영 이야기와 함께 3D 촬영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되었다. 이안 감독은 처음부터 공간적인 규모와 범위를 느끼게 하려면 3D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이 이야기를 3D로 촬영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3D는 극장에서 볼 때도 그랬지만 3D 입체 효과를 일부러 과장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깊이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3D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3D영화들과의 차별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라이프 오브 파이'는 지금까지 나온 3D 영화들 가운데서도 단연 손꼽히는 3D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경이로운 영상'에서는 말 그대로 영화 속 경이로운 장면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특수효과 차원이 아니라 예술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가능했던 작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영상 작업이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영화의 이야기 상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숙명을 갖은 작품인 동시에, 대부분이 물 위에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실제 촬영한 물과 CG로 만든 물이 자연스럽게 섞여야 했으며, 그 안에 CG캐릭터인 리차드 파커와 실사 캐릭터인 파이가 섞여 있고 이 모든 것들을 3D로 촬영된다는 점을 또 한 번 염두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곱절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 기술적 완성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었기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이었음을 그 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생생한 벵갈 호랑이의 탄생'에서는 영화 속 리차드 파커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단순히 100% CG캐릭터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호랑이와 CG호랑이가 지속적으로 교차하는 방식이라 자연스러운 연결이 필요해 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던 작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속에서 파이가 보트 위에서 리차드 파커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독립된 또 하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파이와 리차드 파커와의 영적 교감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앞서 소개했던 조련사 티에리의 조언이 각본에도 적극 적용되었다는 걸 한 번 더 소개하고 있다. 또한 천 만개가 넘는 털로 이뤄진 리차드 파커를 표현해 내기 위해 수없이 복잡한 작업을 반복했다는 것도 (이런 작업을 거친 리차드 파커가 물로 뛰어드는 장면도 있으니 말 다했다 -_-;) 소개하고 있다.





그 밖에 마지막으로 갤러리와 총 7가지 장면의 스토리 보드가 수록되었다.




[총평]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결말이 열려있는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영상과 표현 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올해의 명작이다. 영화적으로는 물론 압도하는 화질과 사운드 그리고 성숙한 3D영화의 교본으로서도 완벽한 블루레이 타이틀이기도 하다. '라이프 오브 파이' 블루레이는 압도적인 화질과 사운드를 즐기기 위해서도 가끔 꺼내보는 타이틀이 되겠지만, 다시 한 번 파이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을 때도 꺼내보게 될 그런 작품이 될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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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IMAX 3D, 2012)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연초부터 정말 흥미로운 작품을 보았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는 복합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두 가지 스타일은 각각 정반대의 경우인데, 하나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나 분명해서 이를 영화가 이끄는대로 끝까지 따라간 뒤 영화가 맺은 마지막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선택하면 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영화는 적게는 두 가지의 길을 많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도록 설계 되어 있어서 영화 스스로는 답을 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흥미로운 것은 보는 이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모든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꼭 보는 이에 따라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에게서도, 곱씹어 보기에 따라서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반대의 경우로도 생각해볼 수 있고, 반대로 열려있다고 여긴 지점이 너무도 분명한 주장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넓게 보았을 때 '믿음'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 Fox 2000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에 파이가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이 진실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라는 것보다는 둘 중 하나 혹은 모두가 다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영화 내내 공감하고 따라왔던 파이가 들려준 리차드 파커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일본 선박회사 사람들에게 들려준 참혹한 이야기 역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불분명 했었다. 파이가 영화 내내 들려준 이야기에 흠뻑 빠져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마지막 파이가 일본 선박 회사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이야기를 들려 줄 땐 '아!'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반대로 의심하지 않게 되었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다시 곱씹어 본 영화는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넘어서서, 내가 더 믿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영화가 궁극적으로 묻고 싶었던 바로 그 부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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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하게 실제 참혹했던 일을 이런 판타지로 승화(?)시킨 파이의 이야기에 목적성이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편의상)에서 내가 파이였다면 이런 오인 혹은 회피의 과정 없이 남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에 대입해 인간이란 무엇이든 믿는 바 대로 자신을 컨트롤 혹은 속일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에 다다랐는데, 좀 더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이런 방식으로의 회피나 왜곡을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르렀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근거로 파이에게 일어났던 실제의 일들을 유추해 본다면 (식인섬을 비롯) 파이가 처해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즉, 리차드 파커는 사실상 파이의 또 다른 자아가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를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3인칭 시점으로 본다면 리차드 파커를 탓하기는 커녕 안쓰러움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리차드 파커를 타자로 인정했을 때의 얘기지, 이것이 파이 본인의 이야기라면 답변은 달라질 수 밖에는 없다.


사실 여기서 리차드 파커의 이야기가 사실 파이 본인의 이야기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파이가 스스로 리차드 파커로 타자화 하여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파이 스스로가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의도한 것 자체가 비판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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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보니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영화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되었다. 모든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얘기처럼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영화라는 것은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감독이 철저히 주도권을 쥐고 관객을 믿게 만들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즉, 어떤 영화라도 '만들어 졌다'라는 태생적 요소를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측면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의 거의 대부분은 특히 더 가짜의 것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믿음에 관한 영화임에도, 아니 그래서 인지 몰라도 이 영화의 대부분은 가짜로 '만들어 진' 것들이다.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물론 대부분 CG로 만들어졌고, 바다도, 하늘도, 대부분의 배경들도 CG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만들어진 것들이 겹겹으로 쌓여 복합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다. 이 허구로 쌓인 겹겹의 구성이 본래의 진실을 더 강하게 만들고자 함인지, 반대로 본래의 진실 혹은 거짓마저 강하게 부정하려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라기 보다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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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겠습니까?'라고.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겠다 라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결론을 내려보자면 지금은 답할 수 없다 정도일 것 같다. 다시 말해 이 대답은 대답을 하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마음 한 켠에서는 간절히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필요 없이 장황해질 것만 같은데, 어찌되었든 무언가를 아무 조건 없이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사실'인 것 같다. 그것이 맹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말이다.



1. 아이맥스 3D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이야기' 만큼이나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아이맥스 3D관람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 영화가 믿음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는 관객을 압도하려는 시각적 의도가 분명히 있거든요.


2. 이안 감독의 스펙트럼은 진짜 놀라운 것 같아요.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헐크' '색,계' '라이프 오브 파이'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이 같은 감독의 필모그래피라고 믿기는 힘들죠. 이것도 믿음의 문제인가요 ㅎ


3.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좋아하는 영화인 동시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네요. 다시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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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 특별전 - 'Taking Lee Ang' 이안을 만나다


이안 감독은 제게 있어 참 기복이 있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으로 영화마다 맘에 들고 안들고가 들쑥 날쑥 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날쑥'보다 '들쑥'이 많기에 계속 그의 필모그래피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볼 수록 참 흥미로워요. 그는 대만 출신으로 서양에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는 감독인 동시에 가장 서구적인 작품을 만드는 동양 감독이기도 하거든요. 1993년작 '결혼 피로연'이나 1994년작 '음식남녀' 같은 경우는 특히 영화제를 통해 서구 세계에 동양을 소개했다는 점만 봐도 굉장히 동양적인 정서와 '전통'의 느낌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반해 1995년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나 1997년작 '아이스 스톰' 같은 작품을 보면 과연 이걸 동양 감독이 만들었을까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를 담은 작품이거든요.

그러다가 200년에 와서 '와호장룡'을 통해 다시 한번 전세계적인 관심과 함께 인기를 얻게 되죠. '와호장룡' 역시 따지고보면 굉장히 동양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를 그리는 방식에서는 이안 특유의 정서가 담겨있었죠. 즉, 전통적인 무협영화가 그리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강호' 등 무협영화가 반드시 품고 있어야할 정서도 포함하고 있었구요). 그래서 '와호장룡'은 따지고보면 좀 묘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 다시 이야기할텐데 이런 의미에서 '와호장룡'이 어쩌면 이안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일지도 모르겠네요. 바로 '색, 계'에 비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 다음의 필모그래피는 더 놀랄만 합니다. 가장 미국적이라 할 수 있는 마블 코믹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헐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거든요. '헐크'는 이안이 연출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미국내 팬들의 반발이 상당히 심했던 작품이었죠. 결국 코믹스의 팬들에게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해 속편에서는 전면 리부트 되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는 이안의 '헐크'가 퍽 마음에 든 편이었어요. 왜냐하면 고뇌하는 히어로의 모습을 굉장히 심도있게 그려냈기 때문이었죠. 



(제가 꼽은 이안 작품 베스트 3에는 의외(?)로 '헐크'가 포함됩니다)


'헐크' 이후 그가 선택한 작품 역시 상당히 미국적인 정서를 담은 작품인 '브로크백 마운틴'이었죠. 여기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미국적이라는 이유는 이 영화가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제 아니죠. 소재 맞습니다), 바로 산에서 양치는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건 흑인이 판소리를 열창하는 것 정도는 못되더라도 어쨋든 동양인이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매끄럽지 못한 소재와 배경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싱크로율이 이안 감독에게 통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었죠. 이미 그는 가장 서구적인 작품들도 여럿 연출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울릴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담긴 핵심적인 러브 스토리의 깊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안 감독은 그 깊이를 훌륭한 두 배우에 힘 입어 더 깊은 울림으로 표현해 냈고, 또 한번 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죠.



('브로크백 마운틴'은 확실히 아무때나 문득문득 Rufus Wainwright의 곡과 함께 보고 싶어지는 영화에요)


이 만족스러웠던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 그가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문제작 '색, 계'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아직도 문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적 기술이나 연출력은 확실히 더 깊어졌지만 (마지막 탕웨이가 연기한 '왕 치아즈'가 카페에서 나와 인력거를 부르는 그 쇼트의 무게감은 정말 대단했죠. 영화의 메시지가 문제라고 생각했음에도 이 장면에서는 감탄했던 기억이 있네요) 영화가 담고 있고 그리려한 메시지에는 분명 진중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색,계'의 핵심에는 '이' (양조위)와 '왕 치아즈' (탕웨이)의 로맨스가 있는데 문제는 이들의 신분과 배경이 되는 이야기 때문이죠.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와 독립운동을 하려는 철없는 자 간의 로맨스를 단순히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러브 스토리'로 보기엔 이 둘 간의 간극,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 많다고 할 수 있거든요. 예전 '색, 계' 개봉시에도 글을 통해 이야기했었지만, 여기에는 조국을 배신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동포를 잡아 고문하는 역할인 '이'를 양조위에게 맡겼던 부분과 '이'를 그리는 방식이 가장 핵심적인 논란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 중 양조위가 연기한 '이'는 팩트만 보면 매국노 중의 매국노지만, 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마치 개인적으로 굉장한 고뇌를 담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감성적으로 변하는, 냉정하지만 따듯한 남자로 그려지거든요. 그런데 이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 영화 내내 '이'의 사상은 변하질 않거든요. 오히려 '왕 치아즈'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운동원을 죽음으로 이끌고 말죠. 



이것이 앞서서 계속 이야기한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안 감독의 성향이 잘 못 표출된 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 더군다나 이안 감독은 '색, 계'를 두고 중국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라는 뜻에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미뤄봤을 때, 결국 '색, 계'는 이안 감독을 또 다른 이방인일 수 밖에는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작품이었죠. 



(이안 감독의 문제작 '색, 계'. 여기서 문제는 수위 높은 배드씬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색, 계' 이후 이안 감독의 신작이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었는데, '테이킹 우드스탁'이 그의 새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좀 안심을 한 편이에요. 왜냐하면 또 한번 동양적인 이야기 혹은 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택한다면 다시 한번 실망할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다행히(?) 또 한번 아주 미국적인 소재를 택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록 팬들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너무도 유명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시작을 그린 '테이킹 우드스탁'은, 사실 감독의 여부를 재쳐두더라도 록과 우드스탁의 팬으로서 무척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는데,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앞서 이야기했던 이유들 때문에) 좀 더 기대를 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무대 자체는 그려지지 않을 것 같지만, 이미 여러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확인한 적이 있는 이 유명한 탄생 스토리를 극영화로 어떻게 그려냈을지가 무척 기대가 되네요. 아마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관심이 많았던 록 팬들이라면 그 크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밀크' 이후 점점 더 색깔 있는 배우가 되어가는 것 같아 주목하고 있는 에밀 허쉬와 최근작 '나잇 & 데이'에서도 잠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폴 다노의 출연도 기대 포인트이구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사실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런 이안 감독의 작품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기획전이 있어 소개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ㅎ 이대 내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7월 29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안 감독 특별전 - 'Taking Lee Ang' 이안을 만나다'를 진행합니다. 신작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물론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 계'도 만나볼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신작인 '테이킹 우드스탁'은 물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브로크백 마운틴'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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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만든 또 한 편의 치명적 러브 스토리

개봉 당시 안무에 가까운 아크로바틱한 정사 장면을 두고 선정성 논란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이안 감독의 <색, 계>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노출 수위나 묘사의 정도보다도 내용적인 면에서 더욱 논란이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일단 이안 감독의 장점을 들자면 그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 본연의 섬세한 내면과 심리, 갈등 관계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감독이다. 대만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로부터 헐리우드 출세작이었던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그리고 '거장'으로의 묵직한 발걸음이었던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 주연의 <브로크백 마운틴>에 이르기까지, 동서양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 본연과 관계에 대해 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그의 능력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표현되어 많은 영화팬들의 박수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언급되었듯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라는 표현은 다재다능함으로 적용될 수도 있지만, 약점이자 애매모호함으로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안 감독이 마블 코믹스 전통의 인기 작품인 <헐크>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냈었다. 미국 내에서 코믹스라는 문화가 갖는 남다른 의미는 타 국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미국적인 수퍼 히어로 영화의 감독을 맡은 사람이 동양인이라는 점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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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크> (2003)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경우는 이런 논란을 거의 완벽하게 잠식시켰을 정도로 가장 잘 만들어진 동양 감독의 서양 영화 중 한 편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가장 미국적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카우보이라는 극 중 인물들의 설정과 배경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조율해내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러브 스토리를 성별에 상관없이 아름답게 그려내었을 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히스 레저 등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이끌어내어 더 없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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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크백 마운틴> (2005)


이안 감독의 정체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작품

그렇다면 헐리우드에서의 찬란한 성공과 화려한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서양에서 동양인으로 인식되며, 그 선입관과 맞서 싸우던 이안 감독이 실로 오랜만에 본토로 돌아와 만든 영화인 <색, 계>의 시선은 어떠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보여주어야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이 작품은, 당사자 스스로가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로 비춰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가 이번에 다루고 있는 문제가 상당히 민감한 주제인 '중국의 독립'에 관련된 민족적인 차원이라는 점에 있다.


(※ 아래 단락에 영화 <색, 계>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크롤하여 블루레이 분석 항목으로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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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계> (2007)

독립운동을 벌이는 왕치아즈(탕웨이 분)와 그 친구들의 모습이, 약간의 민족 의식을 지닌 연극 부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벌이는 풋내기적인 활동으로 그려진 것이나("이제 방학도 끝나가잖아"라는 대사는 압권이었다), '색'과 '계' 사이에서 고민하던 왕치아즈가 결국 어이없게도 다이아반지의 황홀함에 매혹되어 계를 버리고 색을 택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의 양 측면에 대한 심리 묘사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안 감독이 택한 마무리치고는 다소 의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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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은 캐스팅을 고려할 때 양조위를 생각하면서, 그가 그 동안 선한 역할만 맡아왔었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부담이 결과적으로 왕치아즈의 선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점도 분명 있는 듯하다. 사실 양조위가 맡은 캐릭터는 그 행위만을 놓고 봤을 때 재론의 여지가 없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양조위라는 호감형의 배우가 친일 장군을 연기하게 되면서 관객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캐릭터의 내면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고(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식의...),  "난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믿지 못했어." 등의 대사를 통해 살펴볼 때 양조위의  캐릭터가 갖는 고뇌를 애써 보여주려고 하는 의도마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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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와 같은 설정을 우리의 사정에 대입해보면 (+그것도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같은 민족임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친일파 장군을 다룰 때, 그 역시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에게도 견제를 받는 나름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가 많은 인물로 묘사될 수 있다. 이것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을 다 버리고 인간의 내면적인 측면에서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면, <색, 계>에서 이안 감독이 보여준 시각에도 역시 의아함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안 감독의 야심작 <색, 계>는 그 스스로 중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역사를 완벽히 꿰뚫지 못하고 있는 서양인의 눈으로 바라본 타국의 아픈 현실과 그 현실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 정도로 머물러버린 영화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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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 가지 첨언하자면 같은 전범국인 독일의 경우 전후에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의 영화들도 어느 정도 용인이 가능하고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의 경우는 자신들의 잘못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 정도로 역사 의식을 다소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상처 입은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표정과 몸짓에까지 묘한 감정과 의미를 담아내는 이안 감독 본연의 섬세한 연출력과 유려한 만듦새는 서양인들을 매혹시켜, 6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과 촬영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지만 실제로 일제 억압의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입장에서 <색, 계>라는 작품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지는 결국 본인 판단의 몫이다.

성적 긴장감이 물씬 묻어나는 치명적인 Full HD 화질!

7월 30일, 세계 최초로 출시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색, 계> 블루레이의  영상은 일단 화질 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초반 부인들간의 마작 게임 신에서 다소 흐릿한 선예도의 영상으로 잠시나마 불안감을 안겨주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는 1080P Full HD 스펙의 영상은 여러 장면에서 영화의 연출 의도를 적절히 강조하는 훌륭한 화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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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클로즈업이 많이 쓰이기도 한 영화답게 일단 각 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보여주는 감정 신에서 블루레이 특유의 섬세한 피부 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탕웨이가 왕치아즈 역할로 등장할 때 화장기 없는 풋풋한 얼굴과 막부인 으로 등장할 때 진한 화장으로 치장한 얼굴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피부의 톤이나 색감을 통해 DVD와는 다른 블루레이 화질의 정밀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실감나는 캐릭터 묘사를 위해 일부러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분장을 했다는 양조위의 갈색 피부도 같은 맥락에서 유감없이 고화질 영상의 위력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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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한 곡면이 많은 얼굴과 피부의 질감을 잘 보여주는 클로즈업 장면에서 대강의 화질을 평가해볼 수 있지만, 화면에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거리 장면처럼, 세밀함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좀 더 디테일한 화질 여부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 초반 왕치아즈가 카페로 들어가기 전 어두운 회색  빛이 감도는 거리의 디테일과 양산을 써야할 정도로 쨍한 낮 시간의 거리 장면 모두 각 건물 사이과 거리를 오가는 인물들의 움직임, 복장 등 다양한 디테일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또한 극중 ‘이’가 막부인을 밤 시간에 데려다 줄 때 가로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조명만이 있는 어두운 장면에서도 바닥의 굴곡과 자동차 광택 등 거리 곳곳의 디테일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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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몇몇 장면에서 노이즈가 평균 보다 조금 더 섞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TV화질 세팅으로 관람하였을 때 노이즈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수한 화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교적 어두운 조명 하에서 촬영된 실내 신과 밝은 실외 장면을 오갈 때 노이즈 수준의 미세한 차이가 있으며, 일부 장면에서는 애써 눈을 부릅뜨고 보았을 때 배경 쪽으로 지글거리는 필름 그레인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영화의 특성상 아주 칼 같고 매끈한 영상을 의도했다기 보다는 시대극을 그리면서 좀 더 당시의 느낌이 나도록 의도한 쪽에 가깝기 때문에 약간의 노이즈 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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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Full HD급 고화질 영상으로 인한 극중 정사 신의 몰입감(?)은 DVD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두 배우의 헐벗은 살색 피부와 흥분이 고조됨에 따라 발갛게 홍조가 달아오르는 탕웨이의 미묘한 얼굴색 변화,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등의 섬세한 표현 등은 <색, 계> 블루레이를 누군가와 같이 감상하는 것을 참으로 민망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중후한 음색의 스코어가 돋보이는 7.1채널 HD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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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M 7.1ch, DTS-HD : MA 7.1ch, Dolby Digital EX 6.1ch 등 화려한 스펙으로 점철된 <색, 계>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다른 무엇보다도 장중하고 유려한 음색의 스코어 재생이 일품이다. 우선 스코어 트랙 재생에 대한 칭찬 이전에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 아마도 <색,계>블루레이를 기다렸던 많은 팬들이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한 '7.1채널의 입체 사운드로 감상하는 정사 장면'의 감흥은 생각보다는 효과가 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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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의 존재 자체를 잊어 버리게 하는 뜨거운 두 남녀의 숨소리는 분명 DVD의 압축된 사운드와는 다른 느낌의 성적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워낙에 센 묘사의 정사 신 때문인지 귀보다는 눈이 먼저 자극받는 측면도 크다. 시각이냐, 청각이냐라는 개인의 성적 기호(?)에 따른 취향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직접 BD를 통해 체험을 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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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특성상 액션 장면이나 특별히 사운드가 돋보이는 장면이 많지 않은 것도 작은 이유가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페인티드 베일>로 골든 글로브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영화음악계의 떠오르는 거장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가 만든 영화 음악이 더욱 돋보인다. 특히 차분하면서도 깊고 중후한 음색의 현과 목관악기로 연주되는 스코어는 블루레이의 차세대 사운드로서 매혹적인 영상과 함께 그 감흥이 더욱 가슴 깊이 전달되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엔딩 크래딧을 쉽게 스킵하지 못하도록 하는 깊은 떨림의 여운과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 부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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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의 AV 퀄리티는 무척 만족할만하나 부가영상은 이 타이틀이 블루레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했을 때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기 발매된 DVD에 수록되었던 ‘내한 기자회견 영상'이 빠진 것은 그 비중이 크지 않은 특성상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유일한 서플먼트라고 봐도 좋을 메이킹 필름이 SD급 화질로 수록된 점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최신작의 경우 영화 제작 단계부터 블루레이의 발매를 염두에 두고 메이킹 필름의 HD 촬영을 기획하는 시스템이 점차 늘고 있어, 블루레이에 수록될 부가영상들도 HD급 화질로 수록되는 경우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최신작이라 할 수 있는 <색, 계>의 블루레이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비롯한 촬영현장의 모습을 선명한 HD급 화질로 만나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래도 국내 자체 제작으로 인한 소스 확보의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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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슬라이드 방식으로 구성된 포토 갤러리는 고화질 HD 이미지로 수록되어 있으며, 이 외에 한국 및 홍콩 예고편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총평]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는 영화의 내용적인 면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블루레이의 선택 여부도 결정이 될 타이틀이라 생각된다. 특히 AV적인 면에서는 화질과 음질 모두 블루레이에 걸맞는 우수한 스펙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HD 매체만의 차별성이 부족한 서플먼트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해외영화 타이틀과는 달리 국내 제작사인 아트서비스가 홍콩 Edko Video와 공동 제작한 판본이 수록된 타이틀로서 무삭제 영상, 세계 최초 출시 등 나름 중요한 의미를 갖는 타이틀이기도 하다.

또한 양조위라는 최고 수준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와 이에 반해 신인으로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를 보여준 탕웨이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묘미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이러한 화제성을 종합해볼 때 <다크나이트> 개봉과 맞물려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 이어, 최근 블루레이 시장에 다크호스로 등장할 타이틀이 <색,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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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브루스 배너는 분노를 적절하게 조절해야만 한다. 명석한 과학자인 평온한 그의 삶은 억제된 욕망을 품고 있으며, 유전적인 기술이 처절한 그의 과거를 숨기고 있다. 옛 여자친구이자 그의 뛰어난 동료 베티 로스는 브루스의 감정 기복에 지쳐서 그의 삶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베티가 배너의 혁신적인 연구로부터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 잠깐의 실수는 폭발적인 상황을 야기 시키고, 브루스는 순간의 결정을 내린다. 그의 충동적인 영웅심으로 다른 이들은 생명을 건지고, 그 자신도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몸은 치사량 이상의 감마선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 후 브루스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을 상실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실패한 실험이 초래한 예기치 못한 결과. 그러나 배너는 자기 내부의 다른 존재들, 낯설긴 하나 매우 친밀하며 다소 위험하지만 은근히 매력적인,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대한 피조물, 난폭하며,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 강력한 존재인 헐크가 간헐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헐크는 파괴를 일삼아, 배너의 연구실과 집안을 모두 파괴한다. 이로 인해 베티의 아버지 로스 장군 휘하의 병력이 동원되고, 브루스의 맞수인 글렌 탤벗이 여기에 동참한다. 개인적인 복수와 가족 관계가 극대화된 위험을 증폭시킨다.
베티 로스는 사건의 배후에 브루스의 아버지 데이빗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브루스와 헐크의 관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며, 군대의 투입을 막으려 노력한다. 괴물을 생포하기 위해 엄청난 병력이 동원되고... 어쩌면 그와 그것을 구하기엔 너무 늦었을 런지도 모르는데...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는 우리에게 [스파이더 맨], [엑스 맨], [데어데블]등의 만화와 영화로 잘 알려진 만화 제작사이다. 주로 마블의 주인공 캐릭터들은 정의의 편에서 악당들에 맞서는 영웅들로 이루어져 있고, 캐릭터마다 능력과 재능, 패션의 다양함으로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마블 코믹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슈퍼 히어로임에서 알 수 있듯 미국식 영웅주의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국내에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미국 내에서 마블 코믹스의 인기는 정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헐리웃 영화 속에서 종종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가장 갖고 싶은 선물로 주저 없이, 마블 코믹스의 만화책 몇 호, xxx 몇 월 호,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나, 박스오피스의 주요 흥행 성적 1위란에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등의 영화들을 제치고 [스파이더 맨]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마블 코믹스, 마블의 히어로에 대한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위의 여러 마블의 작품들만큼이나 많은 인기를 끌었고, 또한 영화화를 고대했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헐크]라고 할 수 있는데, 위에서 주저리주저리 나열했던 사실들로 인해, 헐크는 그 제작초기부터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야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인들이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마블 코믹스의 작품을, 그들의 손이 아닌 이안이라는 동양의 한 이방인에 손에 맡겨졌다는 사실에 있었다. 물론 이안의 전작 [와호장룡]은 극장에서 자막을 보기를 귀찮아하는 미국인들에게 외국어 영화로는 드물게 흥행에서도 내용 면에서도 호평을 받기도 했었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서양의 것을 비교적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이안이란 감독은 이방인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이안이 [헐크]의 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 그들은, ‘이안이 어디 헐크를 제대로 보기나 했겠느냐?’, ‘동양인은 절대 헐크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라는 식의 거센 항의를 제기하였다. 이러한 제작초기의 우려는 개봉 뒤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헐크를 망쳐 놨다’라는 식의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국내에서도 심지어는 ‘’슈렉‘ 형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행에는 별 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었다(결코 슈렉을 폄하하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하지만 필자는(여기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는 헐크의 칭찬이 시작된다)극장 개봉 시에 보았을 때도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였고, 특히 이번에 출시된 DVD타이틀은 타이틀만으로도 높은 소장가치로 인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고 싶다.





마블의 캐릭터는 모두 다 슈퍼 히어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안이 만들어낸 헐크는 슈퍼 히어로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슈퍼 파워’는 지녔지만 말이다. 대부분 헐크를 얘기할 때, 변형된 초록색 거구의 모습이라던가, 엄청난 힘 등에 포커스를 두곤 하지만, 감독인 이안이 중점을 둔 부분은 ‘헐크’라기 보다는 ‘브루스 베너’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 베너라는 한 인물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통해 불우했던 가족사와 베티와의 관계, 자신의 존재의식에 대한 고찰 등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나아가서는 조직과 개인, 권력과 그의 따른 피해자의 관계 등 더 큰 범위의 의미들 또한 포함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헐크를 마블 코믹스의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이미지로 알고 있지만, 이안이 만들어낸 헐크는 ‘영웅’이라기보다는 ‘피해자’에 더 가깝다. 이안의 관점에서 본다면 브루스 베너가 헐크로 변하는 설정은, 피해의식의 분출에 한 방법론으로 인식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관객들이 지루해 하기는 했지만, 브루스 베너가 헐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당히 비중 있게 그렸고, 헐크로 변한 다음에도 덩치 큰 액션들 보다는 흔들리는 눈빛에 더 중점을 두었다. ‘헐크는 영웅이 아니다’라는 식의 결론은 영화를 보다보면 더 확연해 지는데, 솔직히 영화 속 헐크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던가, 악당을 물리친다던가 하는 활약상은 전혀 없다(굳이 들자면 다리에 부딪힐 뻔한 전투기에 뛰어올라 충돌을 막았다는 것 정도). 영화 내내 괴로워하고 고통당할 뿐이다. 이안이 초점을 맞춘 이러한 면은 대중들에게는 크게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맥락에 있어서는 결코 [와호장룡]에 크게 뒤지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Collector's Limited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헐크] 패키지는 몹시도 만족스럽다. 일단 이전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주먹 모양을 형상화한 특별 케이스는 ‘헐크’라는 특성을 잘 살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패키지 안에는 본 편과 서플먼트 등을 수록한 3장의 디스크와 오리지널 마블 코믹스북, 스토리보드, 일러스트레이트 등 그야말로 패키지다운 아이템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패키지의 내용물과 케이스는 전부 직수입된 아이템이라 마니아들에게는 더 큰 소장가치가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본 편의 화질과 사운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영상은 1.85:1의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제공하고 있는데, 실사와 CG가 함께 쓰인 장면이 유난히 많은 만큼, 영상의 퀄리티는 타이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ILM에서 만들어낸 놀라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DVD를 통해 선명하게 재생되고 있다. 특히 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던가, 헐크와 헬기, 전투기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 탱크와 결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깨끗한 영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헐크의 피부의 질감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운드는 DTS트랙과 돌비디지털 5.1채널을 수록하고 있는데, DTS의 강력함이 무척 마음에 든다. 헐크가 등장하는 씬에서의 사운드는, 그야말로 DTS의 강점을 십분 느낄 수 있을 만큼 웅장하면서도 공간감이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채널의 분리도도 뛰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영화가 영화인만큼 우퍼 스피커의 활약이 돋보인다.



다음은 서플먼트인데, 2장에 디스크에 담긴 서플먼트는 헐크를 이해하고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만한 자료들이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3번째 디스크는 한정판에만 수록된 것으로 배우인 샘 엘리엇과 조쉬 루카스의 소개를 따라 헐크의 또 다른 뒷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 2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다양한 서플먼트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메이킹 다큐가 수록되어 있고, 코믹스와 연관하여 헐크의 탄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과 코믹스에서 TV시리즈를 거쳐 영화화되기까지의 과정들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과 기술적인 도움 영상들로 인해, 헐크의 CG캐릭터가 어떻게 탄생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스크린에서 살아 숨쉬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덧붙여 본 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삭제 씬들도 수록되어 있고, 감독인 이안, 주연 배우인 에릭 바나, 제니퍼 코넬리, 닉 놀테의 인터뷰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2003.11.14
글 / 아시타카


색, 계 (色, 戒: Lust, Caution, 2007)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조금은 기대이하였다.

이안 감독의 전작 <브로크백 마운틴>을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에
양조위가 나온다던,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던 것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었었으나
막상 보고나니 그냥 평범한 정도였다고나 할까.

영화는 내용과 스토리가 그러하다보니 분위기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내용보다는 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얼핏보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속에 놓여진 두 남녀의 우여곡절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따지고보면 그냥 러브스토리(더 따지면, 러브 스토리라고 보기도 조금 어려울듯)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두 남녀가 정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영화를 통해서 확실히 전달 받을 수 없었다.
양조위 역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인지, 아니면 자신이 처한 역할과 상황에 대한
돌파구나 해방 그 이상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탕웨이 역시 마지막 다이아반지에 결국 넘어간 것인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디 놓아주기로 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정말 누구 말만 따라, 마지막 다이아반지를 전해주는 시퀀스는 일종의 코미디였다.
그 한 장면으로인해 많은 의미들이 퇴색되었다고 생각한다.

양조위가 맡은 역할은 분명 악역이지만, 양조위가 맡았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되는 캐릭터였다.
악당이지만 어딘가 슬픔이나 사연이있을듯한 눈빛을 갖고 있는 양조위.
양조위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캐릭터였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소모한 것일뿐,
더 나아가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몇몇 장면과 전체적으로 이른바 아우라를 진하게 풍기는 그의 이미지는
동,서양을 통틀어 그만이 갖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신인이라고는 믿기힘든 탕웨이의 연기는 굳이 20분의 무삭제된 배드씬을 제외하더라도
화장하고 안하고가 다른 사람이 되듯,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였다.

이안 감독은 확실히 중국 감독이라기보다는 미국감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몇몇 장면에서 대사 없이 느껴지는
 예술적인 순간순간들은 가볍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글 / ashitaka

 

Brokeback Mountain, 2005
 
이안 감독의 최신작이며, 이미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등
여러 단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라 잔뜩 기대했던 영화.
 
9시반이 넘은 시각, 그리 많지 않은 관객만이 함께한 채 관람했던 영화.
 
뭐, 처음에 알려진대로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소제로 한 영화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동성애'는 그저 '소제'일 뿐이지
결코 '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동성애를 다룬 것이라 처음 접할때 다른 작품보다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말 그대로 소제였을뿐,
남자와 여자와의 사랑이야기가, 남자와 남자와의 사랑이야기로
그려졌을 뿐, 어차피 똑같은 러브 스토리이다.
 
Brokeback Mountain에서 두 주인공은
대자연 속에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영혼의 안식을 마음껏 누리지만,
산을 내려온 뒤의 삶은 에니스와 잭 모두에게
그저 잔혹한 현실일 뿐이었다.
 
잭은 세상에 틀을 깨고 이상향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냈지만,
결국 에니스는 현실에 붙들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잭이 떠난뒤 그의 흔적들을 찾아낸 에니스가
슬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잭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지 못했던 후회가 컸기 때문이었을터.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잭의 시골집 방에서 피묻은 셔츠가 고이 간직된 것을 보았을때
어쩔 수 없이 슬퍼질 수 밖에 없었다.
 
이안 감독의 능력은 사실 <와호장룡>때 보다 이 영화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와호장룡>은 중국인으로서 자문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감으로서 플러스 요인이 있었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6,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완전 미국식 배경과 가치관등을 그려내고 있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안이 감독인 줄 몰랐던 관객들이라면
동양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안 감독은 이미 <센스 앤 센스빌리티>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무마해버린지 오래이긴 하다.
<기사 윌리엄>을 볼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이 남자가 이런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잘하면 이런 류에 비슷한 틴에이지 팝콘영화를 몇 편 더
찍을 지도 모르겠구나...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림 형제>같은 작품에
출연한 것을 보고는 조금씩 견해를 달리하게 되었으나 이번 작품을 통해
확고하게 이 남자, 히스 레저가 분명 배우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제이크 질렌할은 내가 제대로 본 영화라고는 <투모로우>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기대가 되는 배우중에 한명이었다.
역시나 그 기대는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입증되었으며,
히스 레저와 함께 단숨에 배우로 인정받게 되었다.
(역시 배우는 작품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또 하나의 손꼽히는 러브 스토리이자
현실과 이상향 속에서 갈등하고 결국 그 속에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던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두 남자의 이야기는 엔딩 크래딧을 다보고
극장에 불이 켜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글 / ashitaka

p.s/1. 의도는 아니었으나 <메종 드 히미코>이후에 바로 또 이 영화를 보게 되어
누군가에게 내 성향이 의심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을...윽...--;
 
2. 엔딩 크래딧에 윌리 넬슨의 곡 뒤에 흐르던 곡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Rufus Wainwright의 곡이었다. 동성애를 소제로 한 영화에 그가 곡 작업을
했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일인듯;
 
3. 로린 역의 앤 헤서웨이의 연기도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꽤 멋졌다 ㅋ,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알마 역할을 맡은 미쉘 윌리엄스라는
배우가 더욱 마음에 든다...(근데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나와 동갑..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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