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터 봐야지 봐야지 했던 DVD 중 하나가 마틴 스콜세지의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 (No Direction Home : Bob Dylan)'
인데, 오늘에야 일찍 집에 와서 1부를 감상하게 되었다. 일단 1부를 보고 나니 과연 2부를 보고 나서 이 타이틀을 제대로
리뷰할 수 있을런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단 DVD리뷰와는 별개로.

밥 딜런에 대한 영화나 다큐, 그리고 음악은 여러 번 접해왔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 밥 딜런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1부에 등장한 수 많은 곡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은 1965년에 발매되었던 'Highway 61 Revisited'에 수록된
'Ballad of a Thin Man' 이었다. 'Blowin' In the Wind'처럼 누구라도 알만큼 유명한 곡들에 비해 덜 알려져있던 곡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밥 딜런하면 떠오르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역시나 밥 딜런 같았던 곡이었기에
더 인상깊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밤엔 밥 딜런의 목소리가 더 깊이 파고든다.





Bob Dylan - Ballad of a Thin Ma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ㅡ)
바람만이 아는 대답


참 일본영화스러운 괴상한 제목.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그 괴상한 제목에 일단 끌리고, 그리고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영화 <좋아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에이타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고, 포스터나 전단지를 통해 영화 속에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가 수록되었다는 것도 미리
알 수 있었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고 잔잔한 가운데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잔잔한 것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더 큰 범위에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정서는 소소함과 따뜻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라고 하는데, 소설을 미리
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미스테리한 줄거리가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영화가 전개되면서 살짝 놀라게 된 부분도 있었다. 미스테리한 부분이 전개되기 전까지는 보통의 일본 영화들이
그렇듯, 일본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듯한 약간 괴짜 캐릭터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영화겠구나 했는데, 즉 가볍게 슬쩍 즐기고 나오려고 했는데, 제법 짠한 감동마저
받고 극장을 나오게 되는 영화였다. 확실히 일본 영화는 포스터나 제목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래부터 영화의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센다이 시(市)로 이사 온 시이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거리면서 짐 정리를 하는데, 노래를 따라부르는 이웃집 청년 가와사키를 만나게 된다. 괴짜 같은 가와사키는 이웃에 사는 부탄 출신 유학생 도르지가 일본에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 둘을 동시에 잃은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어대사전을 훔쳐 선물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얼떨결에 사건에 가담하게 된 시이나는 가와사키가 훔쳐 온 책이 일본어대사전이 아님을 알고 황당해하고, 우연히 알게 된 펫 숍 주인 레이코는 가와사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시이나에게 경고를 한다. 그리고 시이나는 가와사키의 비밀 이야기를 알게 되는데…(보도자료)

사실 처음 '밥 딜런의 멜로디가 흐르면,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찾아온다'라는 홍보문구를 보았을 때는,
너무 뻔하고 오버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저 문구만 본다면 너무 뻔한 홍보문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뻔하지만 노골적인 문구가 나름대로 영화의 분위기를 잘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의 초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그저 대학진학을 계기로 센다이로 이사온 주인공 '시나'의
하루하루를 조심스레 스케치 해 나가는 평범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바로 옆방에 살고 있는 '가와사키'와
알게 되면서 그를 통해 듣게 된 이야기를 통해 약간은 이상한 주변 사람들과 동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와중에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가와사키 역시 미스테리함이 많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고, 시나는
가와사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자 그의 뒤를 밟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 묻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그저 단순히 괴짜로만 보였던 가와사키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인물임을 알게 되고, 시나가 그를 점차 알아가면서 이 영화는,
미스테리한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한 편, 퍼즐이 하나씩 풀려갈 수록
감동의 조각도 하나하나 완성이 되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와사키가 원래는 가와사키가 아니었고, 옆방에 사는 부탄에서 온 학생 도르지는 그저 지방에서 온 일본 학생
이었으며, 부탄에서 왔다는 도르지는 다름아닌 가와사키 였다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왜 부탄에서 온
도르지가 가와사키라는 이름을 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저 괴짜스럽게만 보였던 가와사키의 행동과 대사들은 이후 진짜 가와사키가 등장하는 후반부를 위해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속에서 그 동안 에이타가 가와사키로 연기했을 때의 장면들을, 에이타가
도르지로 등장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보게 되는데, 이 장면들을 통해 모든 비밀이 풀리고 도르지가 가와사키로
살아야만 했던 이유에 대한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있게 되지만, 거의 모든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 것은 일부
관객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긴 이 영화의 전반부, 그러니까 에이타가 가와사키를
연기하는 부분은, 모두 이 후반부를 위한 도구이니 전부 다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에이타는 기존에 출연한 작품들에서도 제법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었지만, 그것은 연기 외에 인상적인
외모가 한 몫을 했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을텐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에이타를 좀 더
배우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초반 가와사키로 등장할 때의 연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오다기리 죠가 계속 떠올랐는데, 무언가 괴짜스럽고 이상하면서도 남모를 포스를 풍기는 그의
연기는 오다기리 죠가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비슷한 캐릭터를 쉽게 떠올리게 했다. 후반부에 도르지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나이에 걸맞는 순수한 미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 특히나 후반부에 시나가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이후의 그의 연기는 그 웃음, 표정 하나하나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가 너무 에이타에 의해 과대포장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뭐 맞는말도, 틀린말도 될 수 있겠다. 영화는 에이타의 출연 하나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도 할 말이 많은
훌륭한 영화이지만, 이 영화에서 에이타가 차지하는 비중이라던가 그가 보여준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에는 에이타 외에 마츠다 류헤이, 세키 메구미, 하마다 가쿠 등이 출연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국내에서
하마다 가쿠의 홍보가 너무 부족한 것이 아쉽다. 물론 기존의 국내 지명도에서는 조금 뒤쳐지는 배우일지는
몰라도, 엄연히 이 영화에서는 에이타에 버금가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내 전단지에는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는 등 너무 홀대를 당하고 있는 듯해 동정심 마저 느껴졌다. 사실 국내의 전단지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똑같은 옷을 입은 에이타와 마츠다 류헤이가 떡 하니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리뷰 글에 메인 포스터로 일본 포스터를 가져왔다. 저 포스터 속 캐릭터의 비중이
영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밥 딜런의 'Blowin’in the wind'의 경우 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곡이었지만, 앞으로는 이 곡을
듣게 될 때마다 이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유명한 팝송을 영화 속에
자연스레 녹이는 방법으론 이 영화같은 방식이 가장 영리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적절하게 스토리에 녹아들도록
만들어내서, 나처럼 이미 이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노래가 새롭게 들리도록 만드는 방식말이다.




1. 일본어를 잘모르다보니 '코인로커'라는 한국어 제목을 보고는 도대체 뭔가 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나서야 '아, 코인 락커구나'했다는. 락커룸이라고 주로 하지 로커룸이라고는
   안하니까 --;

2. 제목을 보며 왠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스러움을 느꼈다.

3. 센다이는 마치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더라. 특히나 대형 서점의 경우 미국 서부의
   인적 뜸한 주유소를 연상시키는 포스를.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프리비전 엔터테인먼트에 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밥 딜런의 몽타주

음악을 듣는 사람치고 밥 딜런 (Bob Dylan)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 뮤지션을 통해 리메이크 되었던 'Knocking on Heaven's Door' 같은 곡은 누구나 알 정도로,
밥 딜런은 단순히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당시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었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그의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가장 흥분되었던 것은 이미 <벨벳 골드마인>이라는 작품으로,
음악과 문화를 대하는 깊은 태도를 보여주었던 토드 헤인즈가 감독을 맡았다는 점과,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벤 위쇼, 리처드 기어 등 여러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 다음 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일반의 전기영화와는 다른 형식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6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밥 딜런을 연기한다는 점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오랜만에 개봉날 관람하게 된 이 영화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전기 영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영화였으며,
어쩌면 밥 딜런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당시 문화를 꿰뚫고 있는 하나의 시대영화이자,
음악 영화로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 영화에 대해 '밥 딜런의 몽타주'라고 얘기하고 싶다.
몽타주란 여러 사람이 추정하고 상상하고 예측한 것으로, 몽타주의 당사자가 되는 인물과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우디 거스리 역(마커스 칼 프랭클린)' '아르튀르 랭보 역(벤 위쇼)' '쥬드 역(케이트 블란쳇)'
'로비 역(히스 레저)' '잭/존 역(크리스찬 베일)' '빌리 역(리처드 기어)')



역시 가장 눈여겨 볼 점은 각기 다른 6명의 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여섯 명은 밥 딜런의 각기 다른 자아를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각기 다른 시대의 밥 딜런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극 중 이름이 '밥 딜런'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극 중 어디에도 밥 딜런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지도 않는다.
다만 영화 시작전에 '밥 딜런의 음악과 영혼에서 인상을 받아 만들었음'이라는 문구가 등장할 뿐이다.
감독이 이 6명의 밥 딜런을 그리는 과정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캐릭터나 사건, 모습 등이
실제의 밥 딜런과 유사하면서도 완전히 허구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벤 위쇼가 연기한
'아르튀르 랭보'의 경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시인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나는 타자이다 (Je est un autre / I is another)'라는 랭보의 유명한 시구와 이 영화의 제목이자 밥 딜런의
노래 제목이기도한 'I'm Not There'는 여러모로 이 영화의 제목으로 완벽한 것이 아닌가 싶다.
<향수>통해 독특하고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벤 위쇼가 연기하는 랭보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아주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탁자 앞에 앉아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랭보의 시퀀스는,
1965,6년 기자회견 장에서의 밥 딜런의 모습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정적인 캐릭터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갖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기자회견 장에서의 밥 딜런과 영화 속 벤 위쇼가 연기한 '랭보'의 모습)


흑인 소년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연기한 '우디 거스리' 역시, 실존 인물에서 이름을 빌려왔는데,
밥 딜런의 우상이기도 했던 포크 싱어 송 라이터 '우디 거스리'에게서 가져왔으며, 실제로 우디 거스리는
백인이었던 것에 비해 흑인 소년으로 설정한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극 중에서
실제 우디 거스리의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우디 거스리라는 이름의 소년이, 포크 싱어인 우디 거스리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밥 딜런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우디 거스리를
병문안차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느낄 수 있었지만,
감독인 토드 헤인즈가 얼마나 철저하게 관련 인물들과 배경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밥 딜런이 직접 출연도 하고 음악도 맡았던 영화 <관계의 종말>(근데 왜 관계의 종말이지? --;),
포스터 속 빌리로 출연했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아임 낫 데어>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역할은 밥 딜런이 직접 출연도 하고 음악을 맡기도 했던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관계의 종말 (Pat Garrett and Billy the Kid)>의 'Billy the Kid'에서 가져온 듯 하다. 이 에피소드에는
팻 가렛 역할로 브루스 그린우드가 등장하는데, '쥬드'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도 쥬드를 괴롭혔던 언론인
미스터 존스로 등장했던 브루스 그린우드가, '빌리'의 에피소드에서도 빌리를 괴롭히는 팻 가렛 역할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영화적인 재미와 더불어, 이 각기 다른 밥 딜런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 <관계의 종말>에 빌리 역할로 출연했었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인데,
(아래 포스터의 포스터 속 인물), <아임 낫 데어>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다. 이렇게 모든 관련 인물을 세세하게 배치한 토드 헤인즈의 역량이 놀랍기만 하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는 위의 영화에서 캐릭터를 빌려왔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찬 베일은 포크 가수인 '잭'과 목사 '존'을 함께 연기하고 있는데, 이 두 캐릭터 역시 밥 딜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포크가수 '잭 롤린스'는 한참 저항음악의 대표주자로 활동하던 밥 딜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나 잭을 추억하는 '앨리스' 캐릭터는 누가 봐도 '조앤 바에즈(Joan Baez)'임을 알 수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밥 딜런과 함께 공연을 수차례 가졌었으며,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스틸 컷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앤 바에즈와 밥 딜런)


잭 롤린스 시퀀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촬영 방식이었다. 이 부분은 아주 다큐멘터리 적인 촬영방법과
구성을 갖고 있는데, 실제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쓰는 스틸 사진과 인터뷰로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앨리스의 인터뷰 장면의 카메라의 노이즈나 촬영 방식 등은 페이크 다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잭 롤린스라는 캐릭터를 실존 인물인냥 묘사하고 있다(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렇게 허구와 사실을
계속 뒤섞고 있다). 또한 나중에 히스 레저가 연기한 '로비'의 시퀀스에도 '잭 롤린스'는 실존 인물인냥
추억되고 있다.



(크리스찬 베일이 맡은 잭과 존은 마치 실존 인물인냥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도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 과도한 연기보다는 리얼리티에 중점을 두고 임하고 있는 듯 했다)

히스 레저(ㅠㅠ)가 연기한 '로비'는 극 중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허구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실제적인 사건들과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 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뮤지션으로서의 밥 딜런 보다는,
연애와 가정 같은 사적인 면의 밥 딜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극 중
샬롯 갱스부르가 연기한 클레어는 밥 딜런의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첫 번째 부인이었던 사라 라운즈를
반반씩 섞은 인물로 보여진다.



(너무나도 유명한 밥 딜런의 'The Freewheelin' Bob Dylan' 앨범의 커버. 이 커버를 인용한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이런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의 연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는데, 확실히 그에게서는 그 또래의
남자 배우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15세 관람가인 이 영화에서 그는
18세 관람가에 가까운 노출을 보여주기도 해, 순간 움찔하게 했다. 참고로 연인으로 출연한 샬롯 갱스부르
역시 개인적으로는 충격으로 다가왔던 노출연기를 감행(?)하고 있다.



(이제 그의 모습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또 다시 아쉬워지기만 한다)


샬롯 갱스부르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면, 사실 개봉 전 포스터나 다른 소식들을 통해,
밥 딜런을 맡은 6명의 배우에 대한 이야기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외에 더 많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줄리안 무어나 미셸 윌리엄스, 샬롯 갱스부르가 등장했을 때,
너무도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었다(놀랍게도 이 배우들 모두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여배우들이다).
줄리안 무어는 감독의 전작이었던 <파 프롬 헤븐>의 인연을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갔고, 샬롯 갱스부르는
다른 여배우들에게는 없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을 은은히 보여주고 있다(그녀는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한 명의 놀라운 출연은 미셸 윌리엄스 였는데, 많이 살이 빠진 모습으로 까칠한 '코코'역할을 연기한 그녀는,
그 짙은 아이라이너 만큼이나 신비한 '코코'의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미리 알지 못했던 캐스팅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


잘 아다시피 미셸 윌리엄스의 출연이 더욱 뜻깊게 다가왔던 것은 히스 레저 때문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나 예쁜 딸을 두고 있었던 둘 사이었으나, 촬영 당시에는 헤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번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가장 안타깝고
슬펐던 사람은 다른 아님 미셸 윌리엄스였을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시사회 장에서의 히스 레저와 미셸 윌리엄스의 다정했던 모습)


여러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밥 딜런을 연기했지만, 역시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가장 실제 밥 딜런과 가까운 외모와 더불어 내용적으로도 그와 가장 가까운
캐릭터이기도한 '쥬드'는, 의외로 여자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는데, 깡마르고 독특한 모습의 밥 딜런을
표현하기에 여자배우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계획되었다고는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쥬드'는 다른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가운데도 단연 으뜸이라 할 만큼,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내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여신 같던 그녀가, 부시시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밥 딜런의 모습이 이리도 잘 어울릴 줄
누가 알았을까)


사실 모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거의 코스프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케이트 블란쳇이 분한 '쥬드'의 모습은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헤어스타일과 선글라스를
제외하더라도, 독특한 몸짓이나 손짓, 걸음거리나 목소리 연기, 특히 잠깐잠깐 밥 딜런으로 착각했을 만큼
완벽했던 표정연기는 정말 놀라움을 넘어서 소름이 돋기 까지 했다. 특히나 글을 쓰려고 사진을 찾던 중에
실제 밥 딜런과 그녀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차 안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살짝 미소 짓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가장 멋진
장면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적어도 나에게는!).




(사실 이 사진을 보면, 케이트 블란쳇도 블란쳇이지만, 앨런 긴즈버그로 분한 데이비드 크로스의 싱크로율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엔 배우들의 연기에 놀랐지만, 영화가 계속 될 수록, 그리고 글을 쓰려는 지금 시점에 자료를 조사하면서
더욱 놀라게 된 것은 감독인 토드 헤인즈였다. 이미 데이빗 보위 없는 글램 락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통해,
뮤지션에 관련된 또 다른 음악영화에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파 프롬 헤븐>을 통해 시대와 문화를 읽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의 장점이 <아임 낫 데어>에서는 한 꺼번에 발휘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도 기대하지 않았던 밥 딜런에 대한 영화를 밥 딜런이 흔쾌히 허락한데에는 역시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조니 캐쉬의 전기 영화라 할 수 있는 <앙코르 (Walk the Line)>같은 방식도 좋았지만,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그리는데에는 토드 헤인즈가 선택한 이런 모험적인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 일반적인 전기 영화로 만들려했다면 밥 딜런이 허락하지도 않았을 듯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 외에, 알면 알수록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고 이해하고 있는 토드 헤인즈의
통찰력과 연출력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토드 헤인즈라면 앞으로도 무조건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같은 배경 지식을 모두 다 감상전에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를 막상 볼 때에는
그 인과관계를 모두 파악하지 못해 조금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배경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기승전결 방식이 아니고, 그렇다고 에피소드 방식도 아니며,
무언가 이어져 있는 듯 하면서도 개별적으로도 느껴지는 구성 방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기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하고 관람을 하게 된다면 감상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밥 딜런에 대해 큰 관심이나
배경 지식이 없으면 100%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선이라고 보았을 때, 7~80% 정도만 함께 할 수 있는것도
수긍할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밥 딜런에 관해 관심이 있거나 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뉴스
등을 알고 있다면, 120~130% 즐기기에 완벽한 영화가 될 듯 하다.




(영화의 예고편에 쓰였던 이 형식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되었던 밥 딜런의 영상물에서 가져온 것이다)


음악 얘기릏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의 음성으로 불려지는 그의 곡이나, 배우들, 그리고 후배 뮤지션들이 부른
밥 딜런의 곡을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운드트랙을 접하기 전에, 영화의 엔딩 크래딧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크래딧에 등장하는
인디 포크 뮤지션들의 이름을 보고는 미리 기대할 수 있었는데, Sonic Youth, Yo La Tengo, Cat Power,
Iron & Wine, Calexico, Jack Johnson, Charlotte Gainsbourg, Glen Hansard & Marketa Irglova,
Antony and the Johnsons, Sufjan Stevens 등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환장할' 라인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나 소닉 유스의 'I'm Not There'와 Antony and the Johnsons가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는 엔딩 크래딧과 함께 깊은 울림을 가져왔으며, <원스>의 그와 그녀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글로바도 동참하고 있다. 위에 거론한 뮤지션들 모두 앨범이 나오면 무조건 구매할
만큼 좋아하는 뮤지션들이라, 이들 모두를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사운드트랙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들 모두를 하나의 자리에 모이게 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의 대단함도 새삼 느끼게 된다.



(포크 음악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사운드 트랙이 될 것이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