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조제를 보게 된건 극장에선 어찌 되었는지 소식도 듣지 못한채 지나쳐버렸고,

DVD출시이전에 DVD소스로 보게 되었었다.


얼마전 EBS시네마천국에서 장애인 주간이라며 장애우에 관련된 영화들을 몇편 소개해주었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돋보였던 <레인맨>이라던가, 숀 팬에 연기와 다코타 패닝을

전세계에 알린 <아이 엠 셈>등 몇몇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섹션에 바로 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나왔다.

처음 몇 분간은 굉장히 당황했다.


'왜 조제가 장애인 영화 소개에 등장하는거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영화 소개를 더 본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조제에게 장애가 있었구나'


물론 영화를 보면서 극 중 조제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처음 볼때도 그랬고, 이 후에 다시 보게 되었을때도 그랬고,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의자에서 떨어지고, 매일 누워있고, 외출도 유모차를 타고서야 가능했지만,

단 한 번도 장애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장애인 관련 영화라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 맞다 그랬었지'하고

느꼈던 것이다.


조제는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영화이지만,

이 같은 점이 숨어있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 깨닫지 못하도록 연출한 연출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영화속 인물에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도록 그려낸 것은 장애우에 대한 일반인들에

삐뚤어진 시각마저 감싸앉아 이해하려는 포용력마저 느껴진다.

또 하나.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듯이, 조제에서 장애란 결코 극복해야할 과제가 아니다.

흔히 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장애 = 인간승리 의 과제로

펼쳐지기가 일쑤인데, 조제에게 장애란 결코 극복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츠네오와 조제 사이에 이 같은 불편함은 아무런 문제는 커녕,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것은 또 하나의 삐뚤어진 시각이다.

극복해야한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본인보다는 주변인들에 대리만족에 산물이며,

장애극복이 곧 인간승리라는 것은 가장 잘못된 명제 중 하나인듯 하다.

그렇다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실패한 인생이며,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비장애인과 어울릴 수 없다는 오바스런 결론에 도래하기에 이른다.

장애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에 상징으로

곁에 두려는 것에 불과하다.


난 앞서 얘기한것 처럼 이 영화를 단 한번도 장애 라는 단어와 연관지을 수 없었는데,

장애라는 단어와 연관지으면서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다.


깨달은 뒤에 한 편으론 다른 차원에 메시지가 담긴 영화임을 알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켜왔던 순수함을 잃은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드는 건 왜일까.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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