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스스로 견디지 못함의 대한 울림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때문도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때문도 아닌 오로지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극 중 모습이 커다랗게 담긴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이 포스터는 뭐랄까,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좋아해 오다가 '더 헌트'에 와서 비로소 애정을 고백하게 되었던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120% 발산하고 있는 이미지였기에, 아마도 이런 단계로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 팬들이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그런 포스터였다.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솔직히 포스터의 비주얼에 압도 당해 보게 된 영화였지만 내용은 그 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고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정의'라는 거대한 뜻에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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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판매하는 미하엘 콜하스는 매일 말을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지나던 다리에 통행세를 내라는 남작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일단 말 두 마리를 맡기고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말을 돌려 받으러 가보니 윤기가 흐르던 두 건강한 말을 다치고 더러워진 상태였으며, 이를 찾으러 갔던 하인 역시 공격을 받아 다치고 만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미하엘 콜하스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려 하지만 공작이 손을 쓴 탓에 전해지지 않자 직접 공주에게 이를 전하려 하는데, 대신 전하려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아내를 잃는 과정의 묘사는 물론, 그 이후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 역시 훨씬 더 디테일하고 극적인 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기 보다는 일부러 디테일을 걷어낸 듯 한 느낌이다.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통쾌하지 않고, 어느새 반란군이 되어 버린 그의 일당이 조직되는 과정이나 여정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부당한 것과 그것의 해결 혹은 극복에 포인트가 있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 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되묻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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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우스게 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게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미하엘 콜하스가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피해가거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극 중 묘사되는 모습으로 미뤄보면 미하엘 콜하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겪으며 했던 선택들은 조금은 날이 선,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의의를 두거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만약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 했다면 아내를 잃게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되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그렇담 과연 '융통성'이라는 건 '정의'라는 것을 논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인가 라는 의문도 더불어 갖게 되었다. '그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다'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무엇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인데 (최근 본 '노예 12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 제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한 답을 관객이 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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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극장을 나오며 했던 '융통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답하자면, 영화 속 시대를 배경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상황이었다면 그가 융통성을 부려 두 필의 말을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그냥 넘겼다 하더라도, 결코 평탄한 삶을 영유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조금은 비겁한 융통성의 결론인데, 어차피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계산에 그렇다면 좀 더 (상대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행하는 것이 나은 것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중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계산적이거나 비겁하지 않았던 건, 그 스스로가 계산을 통해 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삶은 정의로운 영웅의 삶이라기 보다는, 정의로울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적인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내적 갈등과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 '마음', 양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그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견디는 것은 아닐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함에 대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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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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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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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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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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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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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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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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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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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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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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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캅 (RoboCop, 2014)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



영화를 선택할 때도 선입관이라는 것은 무섭게 작용한다. 처음 폴 버호벤의 '로보캅'이 리메이크 된다는 얘기를 듣고, 검은 색의 날렵한 수트를 입은 새로운 로보캅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아, 이건 액션이 중심이 된 영화가 되겠구나' 싶었다. 흔한 국내 포스터의 홍보 문구를 흉내 내 보자면 '더 빠르고, 강한 놈이 온다!' 뭐 이런 식의, 액션 중심으로 좀 더 세련되진 영화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조세 파디야 감독의 '로보캅'은 어쩌면 액션과 철학 가운데서 줄 다리기를 하던 폴 버호벤 보다도 더 로보캅이라는 존재의 태생적 고민을 담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즉,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에 관한 것 말이다.



ⓒ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일단 조세 파디야의 '로보캅'은 액션이 아주 드문 편이다. 로보캅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액션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을 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일 텐데, 내용적으로도 액션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깝고, 몇 안되는 액션 장면도 연출을 논하자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더 큰 지점은 액션의 비중이 아니라 로보캅(머피)을 영화가 다루는 방식과 비중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로보캅을 다루는 방식은 영웅이자 주인공으로서 다룬 다기 보다, 오히려 그 로보캅을 둘러 쌓고 있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철학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즉, 나쁘게 이야기하면 극 중 로보캅이 감정을 제어 당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가 로보캅을 활용하는 방식은 그 주변의 이야기를 하는데 도구로 사용하는 격이다.




ⓒ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데넷 노튼 박사와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옴니코프 회장 셀라스를 내세우는 한 편, 로봇 경찰과 관련된 법안을 두고 벌이는 사회적인 반대 의견에 더 주목한다. 사실 이 영화가 모호해 지는 것은 명확한 선악 구조가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인데, 오히려 캐릭터의 관계를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의 이해관계로 묘사하려 한 방식이 그 가운데 놓인 로보캅과 머피라는 존재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영화는 초반 머피가 로보캅으로서의 자신을 처음 인지하는 장면에서, 사실상 뇌 말고는 아무 것도 본래의 것이 남아있지 않은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이전과 달리 머피의 고통이 실제로 느껴져 더욱 끔찍한 장면이었다), 이는 영화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주제, 즉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 혹은 로보캅에서 머피가 차지하는 비중, 서로의 지배 관계 등에 대해 관객들로 하여금 있는 한 번 쯤 제로의 상태에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팻 노박 캐릭터를 상당한 비중으로 내세운 것도 그렇고, 확실히 이 영화는 머피의 개인적인 고뇌에 집중하기 보다는, '로보캅'이라는 존재를 두고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의견으로 나뉘는 지에 대한 논의를 던지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마지막 팻 노박이 던지는 말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이 작품이 새로운 리부트의 시작으로서 추후 속편이 나올 수 있다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로보캅'의 시작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인 동시에, 만약 이 것이 한 편으로 끝난다면 아직 로보캅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것이 몹시 안타까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마지막에서 오리지널의 복귀와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은 적지 않게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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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제가 '로보캅'의 메인 테마음악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첫 소절만 들어도 소름이~


2. 영웅에 대한 대사를 주고 받다가 카메라가 '매덕스' 역할을 맡은 잭키 얼 헤일리를 비추는 장면은 나름 흥미로웠어요. 아무래도 그가 로어셰크 이다보니 ㅎ


3. 확실히 예전 '로보캅'에 비하면 머피의 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이번 작품에서는 그럴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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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엑스칼리버 (Excalibur, 1981)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매해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오랜 만에 함께 했다. 이번 주말 보았던 작품은 존 부어맨의 1981년 작 '엑스칼리버 (Excalibur, 1981)'였는데, 변영주 감독의 추천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이 영화를 언제 어떻게 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홈비디오를 통해서 보았을 것이다. 내게 '엑스칼리버'라는 영화는 안개와 황금 갑옷의 이미지로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작품이었다. 아더왕과 엑스칼리버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니 대략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났었지만, 구체적인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 등은 잘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황금 갑옷,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황금으로 된 투구가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 보았을 텐데, 그 어린 기억에도 황금으로 된 갑옷과 투구는 강렬한 충격이라 깊이 각인 되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엑스칼리버'를 스크린으로 처음 보게 되었다. 그 것도 새롭게 DCP를 거친 좋은 화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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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보게 된 '엑스칼리버'는 세월이 흘러서 인지 조금은 유치하고 (특히 연기는 많이 들 어색하고), 과장된 측면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상당히 과감하고 강렬한 작품이기도 했다. 가끔 예전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놀라움은 컷의 전환이나 시간의 경과, 장소의 변화 등을 처리할 때 상당히 과감하면서도 인상적인 방식들로 처리해 버린 다는 점인데, 이 작품에서 역시 그런 장면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이런 점은 한 편으론 '저렇게 그냥 무시해 버리나?' 싶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땐 '단순히 저것 만으로 모든 것의 변화를 설명해 내다니!'라는 감탄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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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는 역시 빛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의 갑옷 이미지였다. 좋은 화질과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였는지 몰라도, 더욱 더 눈 부신 갑옷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빛나는 것 만이 아니라, 이 갑옷을 일종의 거울 삼아 표현해 내고 있는 방식이었는데, 분명 그 장면에서는 인물의 상대편에 그런 빛을 내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묘한 색의 빛을 갑옷을 통해 투영 시키는 방식은, 이 영화 전체에 드리워진 신화 적인 분위기를 더 고조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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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엑스칼리버'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는 오로지 황금 갑옷이었기에 그의 등장을 영화 내내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는데, 어린 시절의 인상이 워낙 깊었던 탓인지 그 기대보다는 조금 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확실히 기억은 조작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고, 이 영화를 처음 보던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던 추가적인 아더왕 전설의 소스들이 더해져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지금은 중년을 넘긴 배우들의 풋풋한 데뷔 시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 헬렌 미렌과 리암 니슨, 가브리엘 번 그리고 패트릭 스튜어트의 젊은 시절 모습은 보는 것 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다들 생각보다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도 재미있었다. 영화 정보를 보면 시아란 힌즈도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DVD로 볼 때 다시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은 이 영화를 소개해주신 변영주 감독과 GV에 함께 참여했던 허지웅씨 사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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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Fruitvale Station, 2013)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 조차 몰랐으나, 이런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9년 1월 1일 새벽, 캘리포니아주의 프루트베일 역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오스카 그랜트의 하루를 아무말 없이 따라간다.



ⓒ Forest Whitaker's Significan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원제가 단순히 '프루트베일 역 (Fruitvale Station)' 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오스카 그랜트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에 힘쓴다. 가정적이고자 하고 새출발 하려고 했던 그의 긍정적인 모습도, 교도소 생활을 했던 그의 부정적인 모습도 모두 최대한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당시 이 사건은 실제로 흑인사회에서 엄청난 반발과 시위로 이어졌을 만큼 감정적일 수 밖에는 없는 사건이었는데, 영화는 여기에 감정을 더 하는 대신 오히려 최대한 건조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담는 것으로 오스카 그랜트가 겪었던 비극을 관객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 낸다.


나는 이 영화가 영화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오스카 그랜트라는 인물과 사건을 겪기 전까지 그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건이 이후 냉정함을 갖는 것은 오히려 어려울 수 있는데, 영화는 사건 직후 아직 관객들이 황당함과 분노, 떨림이 다 식기도 전에 실제 인물들의 뒷 얘기와 오스카의 어린 딸의 모습을 짧게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선동도 감정적 장치도 없지만, 그 어떤 선동보다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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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영화는 어떠한 해답을 주기 보다는 관객에게 그 몫을 돌리고 있다. 누군가가 또 오스카 그랜트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오스카는 어떤 연유로 인해 비극을 겪게 된 것이 아니기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아직도 존재하는 미국 사회의 실제를 아주 덤덤하게, 하지만 실제론 너무 쓰라린 하루였다.



1.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 영화 제목인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괜찮은 제목이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비해 '충격적 실화' 등의 홍보 문구는 영화와는 다르게 자극적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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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화 제작 환경, 어디까지가 영화라는 것의 경계선일까?


아주 예전에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사이버 가수들끼리 TV에 나와 차트 1위를 다투고, 드라마 주인공들도 전부 사이버 캐릭터들이 맡게 되는 것 아닐까?"


이러한 궁금증 혹은 예상은 이 후 1999년 당시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파이널 판타지 8'의 주제곡 'Eyes on me' 뮤비를 보고 난 뒤 점점 더 가능성에 힘을 싣게 되었고, 이 후 역시 2001년 개봉한 극장 판 'Final Fantasy : The Spirits Within'을 보고 난 뒤 구체적으로 '아, 그런 세상이 곧 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수 년 후 그린 스크린 촬영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모션 픽쳐 기술이 활용된 영화들을 통해 이 같은 우려 혹은 기대는 점점 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화 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누가 뭐래도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였으며 그 중에서도 '골룸'이라는 CG 캐릭터가 있었다.




▲ 앤디 서키스가 연기한 골룸은 모션 픽쳐 역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한참 '반지의 제왕'이 성공을 거두고 '골룸'이라는 모션 캡쳐 CG캐릭터가 주목 받을 무렵,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골룸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그는 잘 알려졌다시피 '킹콩' 역시 같은 방식으로 연기했다)라는 특별한 배우의 면면까지 주목 받고 인정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버가수 아담이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골룸'의 경우는 아담이나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골룸'은 CG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의 '연기력'이 뒷 받침 되어 있는, 일종의 인간미가 직접적으로 투영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혹은 '킹콩'의 DVD나 블루레이의 수록된 부가 영상을 감상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앤디 서키스는 이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 언젠가는 기술상이 아닌 연기상을 받아도 수긍이 될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고 그 연기는 단순할 수 있었던 CG캐릭터에 혼을 불어 넣는 결과를 낳았기에, 이를 인간미 없는 CG캐릭터들만의 세상에 관한 논의에 논제로 포함 시키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사이버 가수 아담이나 골룸에 관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연기라는 것, 더 나아가 영화라는 것에 대한 경계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그 골룸을 탄생 시켰던 피터 잭슨의 '호빗'을 보며 - 정확히는 '호빗' 블루레이의 제작 과정을 담은 부가 영상를 보며 - 또 한 번 발생하였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되었다.




▲ "음...그 땐 정말 너무 막막해서 울기까지 했을 정도였어요"


워낙 긴 시간 탓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기 시작한 '호빗 : 뜻밖의 여정'의 블루레이 부가 영상을 보던 중, 뭔가 복잡한 이유로 주목할 수 밖에는 없었던 영상이 있었다. 바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이언 맥켈런 경이 골목쟁이네 빌보의 집 세트 촬영을 하던 중에 벌어진 에피소드였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호빗'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인 줄로만 알았으나, 보면 볼수록 이 부가 영상은 기술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사람의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부가 영상에서는 골목쟁이집에서 드워프들과 간달프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 현장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제는 바로 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실제로는 각각 촬영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반지의 제왕' 부가 영상을 본 이들이라면 알 수 있듯이, '반지의 제왕'에서는 실제로 배우들 간의 키 차이는 크지 않지만 캐릭터 상으로는 서로 키 차이가 많이 나는 호빗과 다른 캐릭터들 간의 차이를 구현을 위해, 키가 작은 대역 배우들과의 더블 캐스팅과 카메라 웍을 통한 일종의 속임수를 통해 이를 감쪽같이 표현해 냈었다. 즉, 영화 속에서는 프로도와 간달프가 바로 옆에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간달프는 카메라 가까이에 있고 프로도는 상대적으로 멀리 있어 화면에서 보기엔 간달프를 연기한 이언 맥켈런의 몸집이 훨씬 커 보이는 효과가 착시 현상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 이렇듯 카메라와 캐릭터 간의 거리에 따른 착시 현상을 통해, 캐릭터 간의 키 차이를 표현했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하지만 호빗은 달랐다.


하지만 이번 '호빗 : 뜻밖의 여정'의 경우는 이와는 조금 달랐다. 일단 간달프는 한 명 (혹은 네 명)의 호빗이 아닌 13명의 드워프들과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함께 등장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 속임수를 통해 관객을 일종의 착시 효과에 빠지게 할 수 있었던 '반지의 제왕' 과는 달리 처음부터 3D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호빗'은 더 이상 이런 착시 현상에 기댈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3D 영상에서는 이러한 거리감이 정확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3D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론 이전보다 더 쉽고 편리하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장면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현실 감 넘치는 입체 감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정반대로 미치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야기시켰으니, 그것은 바로 기술이 아닌 연기를 하는 배우 때문이었다.




▲ 제작진이 개발한 슬레이브 모션 컨트롤 시스템은 다른 비율의 두 세트를 실시간으로 하나의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한 놀라운 기술이었다


일단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번 '호빗' 촬영을 위해 제작진이 개발한 슬레이브 모션 컨트롤 시스템은 정말 놀라운 기술이었다. 각각의 세트에서 각각 촬영을 하지만, 두 카메라가 연결이 되어 있어 똑같은 앵글과 움직임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서로 다른 비율의 두 세트를 완전한 하나의 공간으로 합치는 것이 가능해, 3D 영상에서도 실제는 같은 비율의 배우들을 간달프와 드워프의 비율 차이가 드러나도록 구현해 냈기 때문이었다. 피터 잭슨 스스로도 이 기술을 일컬어 괴상한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화 촬영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또 한 번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 왼 편에선 드워프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서로 대화하고 호흡을 맞춰가며 연기하는 반면, 이언 맥켈런은 이어폰을 통해 전달되는 옆 세트의 대화를 들으며 그린 스크린을 향해 홀로 연기해야 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의 초반 시퀀스인 골목쟁이네 촬영 분은, 간달프의 사이즈에 맞춰서 그린 스크린을 카메라 앞으로 당겨서 만들어진 세트와 드워프와 호빗의 사이즈에 맞춰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세트로 각각 나뉘어 촬영되었다. 기존에도 이러한 방식의 촬영은 있었으나 여기서 간달프 역의 이언 맥켈런을 힘들게 만든 건 혼자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 시리즈 등을 통해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허공에 연기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한 그이기는 하지만, 이번 '호빗' 촬영은 허공에 대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과 직면하게 되었으니,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가정하고 혼자 대화 시퀀스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호빗'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하여 각각의 세트에서 정확한 동선으로 촬영한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합성하여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그로 인해 한 세트에선 드워프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간달프가 함께 있다고 가정하며 연기하고, 다른 세트에서는 간달프가 텅빈 세트에 드워프들이 잔뜩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연기해야 했던 것이다!




▲ 이렇게 다 함께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 이언 맥켈런 혼자 이렇게 덩그러니 초록색에 뒤 덮인 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언 맥켈런의 말 못할 고통


하지만 아무리 판타지 영화에 익숙해진 이언 맥켈런이라 하더라도 연극 무대를 기반으로 한 정통 연기에 더 많은 시간과 호흡을 맞춰 온 그에게 이 같은 방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아니 수긍하기 힘든 방식이었다. 실제로 힘겨워 하는 이언 맥켈런의 모습을 보고 난 뒤 촬영 현장을 다시 보니, 아무도 없는 초록색 방에 각각 배우를 대신하는 카메라와 그 카메라 앞에 붙어 있는 각 배우들의 얼굴 사진들은 마치 테리 길리엄의 예전 작품을 연상시키며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올드 한 방식일지도 모르나 직접 상대 배우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호흡을 주고 받는 연기에 익숙했고 그렇게 수 십 년을 연기해 왔던 이언 맥켈런에게는 상대의 반응을 알 수 없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현장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어려움 정도가 아닌 영화를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까지 할 정도의 고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 간달프와의 키 차이를 고려해 간달프의 시점에 맞춰 각 카메라의 붙여진 배우들의 사진들은 무언가 그로테스크함마저 느껴진다


그를 이해해서 과장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가 영상에 수록된 그의 촬영장 모습과 인터뷰를 보면,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서 울기도 했을 정도였으며 이를 바라 만 봐야 했던 스텝들도, 옆에서 보기에 이언 맥켈런의 입장에서는 배우로서 감각을 박탈 당하는 것을 넘어 고문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촬영 현장이 너무 힘들었던 이언 맥켈런은 피터 잭슨에게 '이렇게 계속 해야 한다면 이 영화를 그만 두겠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언 맥켈런에게는 그가 수긍할 수 있는 연기와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경우였던 것이다. 울고, 그만두겠다고 하고, 힘들어 하는 그를 보고 혹자는 프로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할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과연 배우로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프로페셔널이기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상황의 지나침 이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간달프와 빌보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장면의 뒤에는...



▲ 이런 이언 맥켈런의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최근 들어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급변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 감정을 전하는 영상 매체로서 여겨지기 보다는 점점 정보와 지식의 소비 데이터로서 분류되는 현상이나, 영화와 절대 별개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었던 극장이라는 존재가 점점 필수 조건이 아닌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들도, 이것들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영화라는 것의 존재 성립 자체를 흔드는 위기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졌다.


이것은 아마 영화라는 것의 경계를 어디 까지로 확장 혹은 한정 짓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어차피 영화라는 것 자체도 현실과는 다르게 연출 되고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이자 부산물이라는 시점에서 본다면, 그 매개체가 반드시 사람이거나 사람들 간이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지만, 반대로 영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연기하는 배우가 존재 성립에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배우를 기술로서 대체할 수 있다 거나 앙상블이 필요한 장면 조차 각자 홀로 연기한 조각을 모아 편집 과정에서 하나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언 맥켈런 왈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해야 한다면 더 이상 못하겠어요"


'호빗 : 뜻밖의 여정'의 촬영 현장을 통해 엿 본 이언 맥켈런의 에피소드는 정말 작은 부분이기는 했지만 - 참고로 피터 잭슨은 이 어려운 상황을 기술이 아닌 동료들 간의 정(情)을 통해 해결해 냈다 - 앞으로 영화 산업의 미래에 비춰 생각해 보았을 때 이렇듯 작게는 '연기'라는 것에 대한 것에서 부터, 넓게는 '영화'라는 것 전체의 개념에 대해 재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 더 잦아질 듯 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싶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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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배우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렸던 이

선과 악, 강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가졌던 배우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막 준비하던 이른 아침, 폴 워커를 잃은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이 때에 또 다른 비보가 들려왔다. 바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사망 소식이었다. 뉴욕의 자신 소유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 된 그의 사망 이유는 약물과다인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다. 이제 그의 나이는 겨우 46이었다.


그의 존재를 처음 제대로 인식한 것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1997년 작 '부기 나이트 (Boogie Nights)' 부터 였던 것 같다. 그 이전 영화들에서도 자주 얼굴을 만날 기회는 종종 있었는데, 얼굴과 이름을 처음으로 매치시킨 작품은 '부기 나이트'였다. 이후 그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페르소나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을 더 많은 영화 팬들에게 깊게 각인시켰던 작품인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에서의 그의 연기는, 톰 크루즈가 연기한 캐릭터처럼 돋보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연기였으나, 확실히 '부기 나이트' 이후 '매그놀리아'를 인상 깊게 보게 되면서 그의 얼굴을 더 자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후 2000년 카메론 크로우의 '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와 2002년 또 한 번 폴 토마스 앤더슨과 호흡을 맞춘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를 거치며, 그의 얼굴과 이름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점점 더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기 시작했다.




다우트 _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http://realfolkblues.co.kr/878


어찌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항상 조연으로 머물러 있던 그가 단숨에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은 누가 뭐래도 2005년작 '카포티 (Capote)' 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하면서 명실공히 명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의 연기를 계속 보아왔던 영화 팬들 입장에서는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준비된 배우였다. 실존 인물 트루먼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은 메소드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며, 영화 자체보다도 이를 연기한 배우인 그가 더 주목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_ 외로운 시대, 외로운 가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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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헐리웃의 주목 받는 연기파 배우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에서 또 한 번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였으며, 2008년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연기한 '다우트 (Doubt)'를 통해 다시 한 번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다우트'는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순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는데, 메소드 연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함께 출연한다면 어떤 연기를 펼칠지 두려움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우트'를 보고 나서 썼던 글을 보면 이 두 배우가 함께 등장해 연기를 펼치는 장면을 두고 액션 영화의 '결투 (Duel)' 장면 못지 않은 긴장감과 치열함, 압도됨을 느낄 수 있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었는데, '다우트'는 연기라는 것의 맛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는, 그여서 가능한 작품이었다.




시네도키, 뉴욕 _ 외로운, 위로의 일기

http://realfolkblues.co.kr/1181


찰리 카우프만의 감독작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그 해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였던 이 작품에서 호프만은 노인 역까지 소화해 내는 등 카우프만의 복잡한 각본을 연기력을 통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소화해 냈다. 이 후 한 동안 그의 작품을 보지 못하다가 2011년 브래드 피트의 주연작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머니볼 (Moneyball)'에서 비교적 적은 분량인 오클랜드 팀 감독 역할을 맡았는데, 사실 생각보다 분량이 적어 놀라기도 했었다. 솔직히 '머니볼'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반드시 그여야 할 만한 이유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으로서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짧게 나마 볼 수 있어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2006년 작 '미션 임파서블 3'를 비롯해 '헝거게임 : 캐칭파이어'에도 출연 하는 등 액션 블록버스터에도 출연하는 조금은 의외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그의 사망 기사에도 많은 대중들이 그를 '헝거게임'으로 기억하는 것도 개인적으론 조금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의 무시무시한 영화 '마스터 (The Master, 2013)'였다. 메릴 스트립과 호흡을 맞췄던 '다우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연기한 '마스터'는 영화도 배우도 연기도 실로 무서운 작품이었다. 역시 표면적으로 강렬하고 압도하는 것은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캐릭터였지만, 이를 받쳐주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아우라를 발산한 것은 다름아닌 호프만이 연기한 마스터였다.




편히 잠들길...



너무 급작스러운 죽음이고 이별이라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죽음이 가장 슬픈 사람 중 한 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보고 싶은 그의 연기와 영화들이 많은데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Rest in Peace.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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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헌사



짐 자무쉬의 신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의 이전 작품들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그보다는 좀 더 영상미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뱀파이어라는 영화의 소재 역시 그 아름다움과 영속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며, 두 주인공 아담과 이브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톤의 캐스팅 역시 아름다움 측면에서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황량한 디트로이트와 이국적인 모로코의 밤 풍경, 그리고 음악과 문학 예술의 역사들은 곧 아름다움의 표현과 헌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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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유머에 더 가까웠다. 즉, 영원한 삶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거의 없고, 정반대로 현대 사회 속에서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생각보다는 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건, 수 백년을 살아온 존재로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예술, 문화, 과학 등의 인물들에 대한 '포레스트 검프' 식의 유머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찬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짐 자무쉬는 최근의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을 한다. 비교적 그 가운데 오래된 이들이라면 모타운 레코드에 대한 것일테고, 가장 최근이라면 잭 화이트에 대한 것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잭 화이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라며 디트로이트의 어느 집을 소개할 땐, 짐 자무쉬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입장을 들려주고자 하는 지를 좀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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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확실히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떤 메시지나 여운은 부족하지만, 어느 한 장면, 어떤 순간은 영화 보다 더 깊게 각인된다. 짐 자무쉬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은 영화 내내 충분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이상을 갖고 있는 두 배우와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땐, 좀 더 끝까지 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 작품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처럼 '살아남는다'는 것과 '사랑'의 연관 성을 좀 더 파고 들거나, 반대로 아름다움의 영속성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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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운드트랙을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해외에서도 OST자체가 발매되지 않은 것 같군요.


2. 수록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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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 (Ender's Game, 2013)

온전한 다음 세대를 꿈꾸다



극장에서 볼까 말까 를 고민하다가 결국 IPTV나 블루레이 등으로 본 뒤 극장에서 볼걸 하고 후회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 해당하는 올 해 첫 작품은 '엔더스 게임' 이었다. 개봉 후 예상과 달리 심심하다는 평과 정반대로 예상 외로 재미있다는 평이 확연히 갈렸던 작품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내게 잘 맞는,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많은 이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 종족과 대규모의 전쟁을 하는 SF 액션 블록버스터를 예상했다가 실망한 케이스 일텐데, '엔더스 게임'은 전쟁 보다는 전략에 더 포커스를, 더 나아가 그 전략을 두고 벌이는 어른과 아이, 기성 세대로 대표 되는 현실적인 세대와 다음 세대로 대표 되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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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성 측면에서 '엔더스 게임'은 롤플레잉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양상을 두루 두루 갖추고 있다. 극 중 그라프 (해리슨 포드)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외계 종족인 포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사령관을 키워내고 엔더가 이를 수행하는 과정은 육성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 요소가 다분하고, 주인공인 엔더 (아사 버터필드)가 팀원들과 함께 모의 전투를 벌이는 과정들은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연상시키듯 전략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짙게 묻어 난다. 즉, SF 액션을 기대했다면 '엔더스 게임'의 전개 방식은 당황스러울 수 있는 정도인데, 반대로 이러한 게임 적 요소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 과정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감과 선택에 따른 결과의 희비에 재미 포인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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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먼저 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이 같은 방식을 취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 적으로 보았을 때는 딱 거기 까지 가 아닐까 싶었었는데, 막상 영화는 메시지 측면에서도 건전하지만 생각해 볼만한 의미 있는 주제를 담고 있어 더 좋았다. 일단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들이라는 점은 '에반게리온'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 텍스트라 하겠는데, '엔더스 게임'은 단순히 어른과 기성세대의 짐을 아이가 지어야 한다는 불합리와 세대의 부담에 그치지 않고, 그 가운데서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꿈꾸고 있다. 즉,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있던 소년이 굴곡을 겪어가며 진정한 어른이 되는 성장기, 그래서 다 함께 박수 받고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그런 것처럼 전개되었지만 한 순간에 그렇게 생각했던 관객마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 지를 말하려 하는 마지막 시퀀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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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 새 어른이 되어가는지 이런 갈등을 볼 때마다 한 편으론 승리 혹은 대의를 위해 희생이나 폭력을 합리화 하는 주장에 현실적으로는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엔더스 게임'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아니면 그런 부당한 방법들이 불가피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어쩌면 더 옳은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 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이미 어른이 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다음 세대 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회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엔더스 게임'은 이기느냐 지느 냐가 중요한 세상 속에서 이기던 지던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백 번 옳은 메시지를 흥미로운 세계관으로 풀어낸 괜찮은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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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Frozen, 2013)

디즈니가 관객을 사로 잡는 법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점점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작 '마법에 걸린 사랑 (Enchanted, 2007)'부터였는데 (실사 영화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정통을 잇는 작품에 더 가깝다), 이 후 '볼트 (Bolt, 2008)'를 거쳐 '라푼젤 (Tangled, 2010)'을 선보이며 드디어 오래 전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한 터였기에, 이번 신작 '겨울왕국' 역시 이러한 기대감을 한껏 앉은 채 보게 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이미 '돌아온' '여전한' '클래식' 등의 수식어 들은 '마법에 걸린 사랑'이나 '라푼젤'을 통해 다 소진한 뒤라, 이것 만으로는 감동을 주기 힘든 상황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또 한 번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보여준 놀라운,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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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은 가장 디즈니스러운 요소들을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다. 왕국과 공주, 마법과 모험 그리고 뮤지컬이 함께 한다. 보통 시놉시스를 보면 정말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너무 평범해서 뻔하게 예상되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인데, '겨울왕국'은 분명 후자다. 줄거리만 보면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모험의 종류도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보아왔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겨울왕국'은 그럼에도 정말 재미있다. 최근 디즈니 작품들을 평할 때마다 했던 이야기인데, 디즈니는 새로운 것을 할 때보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최선으로 보여줄 때 가장 빛이 난다. 실제로 픽사, 드림웍스 등과의 경쟁 속에서 힘을 잃었을 때 무리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흥행도 평가도 모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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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인 이유는 그 본질을 다루는 장인들의 디테일이 최고 수준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왕국'을 보며 몇 번 소름이 돋은 장면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뮤지컬 시퀀스였다.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었던 디즈니는 그 노하우에 새로운 감각까지 더해, 정말로 감동적인 뮤지컬 시퀀스를 만들어 냈다.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 부부인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와 로버트 로페즈의 영화 음악은 뮤지컬 음악의 정수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인물의 감정을 한껏 뿜어내야 하는 솔로 곡은 감정의 최고조를 가사와 멜로디가 정확한 포인트에서 터트려 내며, 듀엣 곡 역시 교차하는 감정을 노래로만 표현할 수 있는 구성을 통해 유려 하게 표현해 낸다 (정말 이번 뮤지컬 시퀀스는 몹시 감동스러웠다). 여기에 음악적인 측면에서 클래식 한 측면 만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더 한 것도 부담스럽지 않고 딱 적절한 정도인 것이 좋았다. 일부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보면 무리하게 최신 트랜드의 음악을 가미 하려 다가 본질마저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겨울왕국'의 뮤지컬 넘버들은 순간 순간 움찔 할 정도의 신선함으로 효과적 업그레이드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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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디즈니 작품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가장 도드라지게 발견되었던 단점은 스토리텔링에 있었는데, 이미 드림웍스가 '슈렉'을 통해 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최근의 디즈니는 이미 이런 문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 되었지만 (픽사를 인수하고 난 뒤에는 더욱), '겨울왕국' 역시 새삼스러우면서도 놀라운 순간은 여전했다. 아마도 예전에 디즈니 영화였다면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한 나머지 성을 떠나 홀로 산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부르는 노래는 '내게 왜 이런 저주가 내렸나' '나는 이제 홀로 어떻게 살아가나' '과연 정상이 되어 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심정의 슬픈 곡이었을 텐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전혀 달랐다. 오히려 앞으로 혼자 자유롭게 살아갈 것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한껏 담긴 희망적이고 기쁜 감정이 담긴 곡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아직도 디즈니 영화에서 이런 순간을 맞을 땐 상대적으로 더 소름이 돋는 게 사실이다 (뭉클하기까지 하더라). 괴물은 나아야 해 라는 식의 화법(물론 여기서 가장 잘못되었던 것은 '괴물'을 정의하는 방식이다)에서 이대로 도 괜찮아를 노래하는 디즈니 캐릭터들은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교육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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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2014년의 첫 달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올해 최고의 감초 캐릭터는 눈사람 '울라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애니메이션 작품 가운 데서는 분명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동 용 애니메이션 만으로 머물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극 중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는 감초 캐릭터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울라프'라는 캐릭터는 극장을 찾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웃게 만드는 슬랩스틱과 메시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흔치 않은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더구나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대부분 이런 캐릭터들은 웃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썰렁한 개그를 선보일 때가 많은데, 울라프는 거의 한 장면도 썰렁한 장면이 없었던 것 같다. 여름을 사랑하는 눈사람이라니. 페이소스마저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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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디즈니의 신작 '겨울왕국'은 메시지 측면에서도 가족 영화로서도 뮤지컬 영화로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그렇게 좋아하던 '라푼젤'이 거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새롭게 좋아하게 된 디즈니 뮤지컬 영화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 영화를 보고 든 유일한 걱정이라면, 픽사일 것이다. 이젠 오히려 픽사의 부활을 기다릴 때다.



1. 본 편 전에 상영한 단편 '말을 잡아라'의 3D버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디즈니는 확실히 다시 주도권을 잡았어요. 존 라세터가 디즈니 작품 외에 픽사 작품에도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2. 안나 역을 연기한 크리스틴 벨은 1980년 생, 엘사 역을 연기한 이디나 멘젤은 1971년 생인데 둘 다 어찌나 목소리가 어리고 선명하던지.


3. 자막 2D 버전으로 스타리움에서 관람하였는데 만족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더빙으로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4. 쿠키 장면이 있어요. 이걸 위해 일부러 기다렸다면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는 장면이기는 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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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Scenery, 2013)

한참을 멈춰서서 바라보다



장률 감독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을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되긴 했지만, 기존 그의 작품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은 물론, 극영화와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건 반대로 그의 이전 극영화들이 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는 이유도 있다) 딱 장률 감독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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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방인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삶을 '꿈'이라는 매개체로 전달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흔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할 때 의례 생각하게 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는데, 아마도 그건 장률 감독 스스로가 대한민국에게 있어 이방인이라는 위치에 서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들은 직간접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 같이 고향 혹은 지금 일하고 있는 이 곳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은연 중에 담고 있다. 어떤 꿈은 너무 직접적이어서 구슬프고, 어떤 꿈은 너무 의외의 것이라 오히려 더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감독은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풍경'이라는 제목을 관통하는 '바라본다'라는 테마를 완성해 낸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샷은 그 공간과 인물을 한참을 바라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인물의 이야기가 그 인물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오기 까지 한참의 시간을 기다려준다. 그리고 그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 역시 한참을 멈춰 서서 응시한다. 그것은 풍경이 되기도, 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말이 없다. 그저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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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이전 작품들 '경계' '이리' '두만강' 등을 보면 그가 주목한 것들은 항상 공간과 경계였다. 보통의 작법과는 달리 장률 감독은 그 안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그 공간과 경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풍경' 역시 마찬가지다. 장률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단, 그런 이야기를 담고 꿈을 꾸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더 주목한다. 우리는 흔히 풍경이라고 하면 곧바로 '장관'을 연상하곤 하는데, 장률이 보여주고자 하는 풍경들은 그런 의미의 장관은 아닐지 모르지만, 더 많은 이야기와 꿈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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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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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2013)

기회의 땅의 그림자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신작 '월가의 늑대'를 보았다. 이미 여러 번 좋은 작품을 만들었던 콤비라 세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임에도 다른 보고 싶은 개봉작들을 제쳐 두고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데, 영화는 역시 스콜세지가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미국의 역사에 관한 또 다른 버전의 '좋은 친구들'이었고, 그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 역시 한껏 과장되고 힘이 들어간 캐릭터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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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1990년대 월 스트리트의 주식 중계인으로 큰 돈을 벌었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교훈 적인 삶을 살았거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연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에 다 해당하지 않는 작품이다. 즉,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의 흥망성쇠를 따라가지만 스콜세지가 영화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던 벨포트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한 국가이자 사회의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의 늑대'는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다룬 '에비에이터 (The Aviator, 2004)'보다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이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에 더 가깝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이면을 그렸었다면,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곳 중 하나 인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스콜세지는 또 한 번 이 기회의 땅이 어떤 꿈과 좌절을 주는지, 그리고 그 기회라는 것 이면에 얼마나 많은 추악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한참이나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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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 보다 도 노출이나 선정성의 빈도가 잦은 작품이었다. 강도로 따지면 제일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빈도 만을 놓고 보면 3시간의 러닝 타임 가운데 거의 2시간은 노출과 욕설, 마약과 섹스로 점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과장과 답답함, 불편함이 섞여 있는 영화였다. 마초 적이어서 불편 하다기 보다는 이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 농담이나 친근함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한 편으론 조롱이라고 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던 벨포트의 개인 사에 집중하기 보단 그가 본격적으로 월 가에 뛰어 들면서 부터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던 과장과 불편함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세미나 장면에서 벨포트의 얼굴이 아닌 그의 강의를 초롱 초롱 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로 끝 맺음을 지은 것은, 겉으로 보기엔 누구 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렇게 3시간 내내 이야기했음에도 관객 중 적지 않은 수는 벨포트가 극 중에서 누렸던 그 부를 한 번 쯤은 누려보고 싶거나, 벨포트와는 달리 폭주하지 않고 적당히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관객들을 영화가 바라보는 시점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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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확실히 과장되어 있어요. 그의 연기가 과장되었다기 보다는 이 캐릭터 자체가 과장되었다고 봐야겠죠. 그의 얼굴과 연기는 점점 더 잭 니콜슨을 닮아가네요. 다음 작품은 좀 더 힘이 빠진 '캐치 미 이프 유 캔' 같은 작품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2. 매튜 매커너히는 출연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반가웠어요. '아티스트'의 장 뒤자르댕도 그랬구요~


3.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극 중 벨포트를 소개해주는 사회자가 실제 조던 벨포트 인 것 같더군요.


4. 국내 용 영화 제목은 그냥 '월가의 늑대'로 했어도 좋았을 텐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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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가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 작을 보면 대부분 가족과 관련된 영화들이었다. 2008년 작 '걸어도 걸어도'는 아들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이었고, 2011년 작 '기적'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또 다른 가족 영화였으며, 제작을 맡았던 '엔딩노트' 역시 한 가족이 가장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또 한 번 가족의 관한, 그 가운데서도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아버지라는 존재의 탄생 혹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단 한 번도 자극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 역시 결코 관객을 향해 소리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의 중대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이를 내적으로 삼켜내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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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버지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연기한 료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까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료타에게 맞춰져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고레에다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감흥을 전달한 작품이었지만, 조금의 석연치 않은 부분들도 있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버지 역할인 료타에게만 맞춰져 있다. 같은 크기의 충격을 맞게 된 두 가정이고, 한 가정으로만 한정 지어도 료타의 아내의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는 오로지 료타의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가 극을 이끈다 는 것 보다는 극이 그 만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도 직접적인데, 결국 영화는 료타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지 바로 그 과정인 '그렇게'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너무 료타의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자체가 러닝 타임 내내 료타가 아버지가 되길 기다려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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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그렇게 아버지가..'에서 료타가 겪게 되는 사건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인물들도 똑같은 세기로 겪게 되는 사건이었기에, 극 중 인물들 모두가 (심지어 상대가 되는 가족까지도) 료타가 자신을 극복하고 아버지가 되길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한 편으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료타가 아버지가 되었다고 과연 두 가족이 겪은 이 고통이 해소되었나? 라는 물음에 조금은 우울함 마저 들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참여한 GV로 한 번, 그리고 나중에 개봉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관람하였는데, 단순 재 관람의 이유 때문 만이 아니라 다시 보고 나서 달리 느낀 부분이 생겼다. 바로 석연치 않게 여겼던 료타와 이를 기다려주는 영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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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료타와 영화의 관계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오는 생각은,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료타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자신의 자각이나 극복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말 없이 기다려주는 가족이었다는 얘기다. 료타가 결정적으로 다시 금 이 잘못된 상황을 재 자리로 돌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장면을 봐도 그렇다. 울고 있는 료타를 본, 이제 막 잠에서 깬 그의 아내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아침 먹을까?'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게 돌아온 료타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또 다른 가족 역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기적'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닐까 하는 것. 이 영화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1. 영화를 본 지는 제법 지났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2. 아래 사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했던 씨네토크 현장.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걸 그 분위기만 봐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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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13년은 저에게 정말 정신 없이 바쁜 한 해 였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영화 관련된 이야기만 주로 올리다보니 얘기할 기회가 없었지만, 지난 해 말부터 올해 지금까지는 제 직장 경력을 통틀어 가장 정신 없이 바쁜 한 해였으며, 그 만큼 중요한 일들과 역할을 맡다보니 본래 좋아하던 영화보고, 음악듣고,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정말 더 더 어려워만 지더군요.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진 못하고, 영화제에 가는 건 꿈도 못 꿀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잠을 덜 자가며 어렵게 본 영화들과 써내려간 글들이라 더 뿌듯하기도 한 한 해 였기도 했네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주 하는 말인데, 이렇게 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쁘고 피곤해도 영화보고 쓰는 일을 잠시 쉬거나 멈추지 않는 건, 한 번 멈추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에요. 올해는 정말 중간에 쉬고 싶은 유혹이 많았었는데, 그 때 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버텨냈던 것 같습니다. 올해 본 '잉투기'를 보면 그런 대사가 나와요.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제게 올해는 이 말을 새삼 깊이 새겨보았던 한 해였습니다.

자, 그럼 제가 올 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10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제가 극장에서 본 순서입니다.







1. 라이프 오프 파이 / 이안


올해 초 본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의 놀라운 영상도 대단했지만,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놀라움이 더 큰 작품이었어요. 믿음에 관한 영화 가운데 아마도 오랫동안 회자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 _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http://realfolkblues.co.kr/1781







2. 가족의 나라 / 양영희


올 해 초 보았던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는 당시 너무 일찍 올해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바로 말할 수 있었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와 관련이 있는 제3자 혹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나라, 내 가족의 대한 이야기로 전달한 수작.


가족의 나라 _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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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월플라워 / 스티븐 크보스키


올 해의 청춘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엠마 왓슨 주연의 '월플라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청춘 영화가 흔히 담고 있는 무모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높은 수준의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있는 영화였어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월플라워 _ 청춘, 그 뜨거운 무한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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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테이크 쉘터 / 제프 니콜스


올 해의 청춘영화가 '월플라워'라면 올 해의 가족영화는 '테이크 쉘터'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엔 약간 미스테리한 SF적 요소에 관심이 있어 보게 된 영화였는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진한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네요.


테이크 쉘터 _ 불안을 이기는 가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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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포 미드나잇 / 리차드 링클레이터


전 물론 제가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하는 지는 바로 이 작품을 보고나서야 알 수 있었어요. '비포 미드나잇'은 뭐랄까, 극도로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가 존재하는 그런 영화였는데, 삶의 아름다움과 현실로 인해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드는 참 이상한 영화였어요. 저도 그들처럼 어른이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비포 미드나잇 _ 세월의 무상함 보다는 성숙함

http://realfolkblues.co.kr/1803






6. 일대종사 / 왕가위


한 동안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던 왕가위가 엽문을 주제로 한 무협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화려하고 기술이 주가 된 액션 영화보다는 정수를 담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가 있었어요. 그 기대를 넘어설 만큼 왕가위 감독은 정수에서도 최고 지점을 간파하는 무협 영화를 만들었으며, 양조위는 기대 만큼 해주었고 장쯔이는 왜 그녀가 중화권 최고의 배우인지를 몸으로 보여준 정말 멋진 연기였어요. 굳이 여우주연상을 꼽자면 그녀.


일대종사 _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http://www.realfolkblues.co.kr/1829






7. 그래비티 /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이 언젠가 일을 낼 줄 알았어요. 제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애착을 갖게 된 것도 그가 연출을 맡았던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때문이었거든요. '그래비티'가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비티 _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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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이비 / 연상호


'사이비'는 가장 흥미롭고 재미 없기 힘든 주제와 (하지만 반대로 그 가운데서 돋보이긴 힘든) 악인이 더 나쁜 악인과 싸우는 익숙한 구조 속에서도, 진정성과 다른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 수작이었어요. 맹신이라는 것을 일 방향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의 다른 방향을 열어둠으로서, 같은 주제지만 새롭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 준 영화이기도 했구요. 전작 '돼지의 왕'보다 모든 면의 진 일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감독 중에서 가장 먼저 아카데미를 수상하게 될 감독은 아마도 연상호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9.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 코엔 형제


아직 국내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특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보게 된 코엔 형제의 첫 번째 음악 영화는, 음악을 소재로 하되 코엔 형제스러운 영화가 될 것이라는 뻔한 예상과는 달리, 코엔 형제 영화이면서도 가장 완벽한 음악 영화의 경지에 오른 작품이었네요. 포크뮤직과 우연, 로드무비와 코엔 형제. 극장을 나오면 더 생각나는 영화였어요.







1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근 몇 년 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면 그는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 보여요. 본인 스스로도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부모를 잃게 되는 등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늘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네요. 이번 신작도 여지없이 좋았어요. 아마도 최근 일본 영화 감독들 가운데 이렇게 편차 없이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감독은 그 밖에 없는 것 같네요.




제가 올해의 영화를 꼽으면서 홍상수 영화를 꼽지 않은 적은 최근 드문 것 같은데, '우리 선희'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은 둘 다 참 좋았지만 10편에 넣기에는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그 밖에 여기에 언급하지 못했지만 좋았던 영화들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 강진아 감독의 '환상 속의 그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등이 있었네요.


올해도 여전히 몇 편의 블루레이에 제 글을 실을 수 있었고, 몇 편의 음반에 해설지를 쓸 수 있었고, 몇 몇 기대하지 않았고 복에 겨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따로 한 번 글로 정리하려구요.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올해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누군 가가 내 글을 정성껏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 외로 삶에 큰 힘이 되거든요 ^^;


감사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변호인 (2013)

이름을 걸고 함께 할 수 있는 용기



양우석 감독의 데뷔작 '변호인'은 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 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맨 처음 지문으로 밝혔듯이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하긴 했지만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그런 인물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은 그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인데, 일단 '변호인'은 여기서 영리하게 비켜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는 직접적인 실명이나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와 인물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는 없는 태생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그 감정을 자극하려 들면 더 촌스러워지고, 그 전달 하려던 본심마저 곡해될 정도로 역효과를 내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변호인'은 최대한 영화 속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고, 일부러 자극하지 않으므로서 더 감정적인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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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은 지극히 상식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 누구나 아는 상식이 통하지 않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상식대로 행동하기 위해선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솔직히 최근 이런 영화를 보게 되면 섣불리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지!'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점점 더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일 것이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변호인'을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저 당시 송우석 (송강호)의 입장에 처했더라면 혹은 송우석의 주변 인이었다면 과연 영화 속 인물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처럼 용기내어 행동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속좁은 이야기지만 제발 내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것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송우석을 비롯해 당시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은 그냥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그들은 애초부터 사명감이 있었다거나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의 일인줄로만 알았던 부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용기와 부끄러움 가운데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부끄러운 삶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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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당시 80년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용기와 부끄러움의 선택지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비록 자신은 내 몸과 마음, 가족을 고통받게 하는 공권력과 상대할 용기를 내진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끄러운 줄은 알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항상 부끄럽고 죄의식을 갖고 불합리한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는 용기를 내기는 커녕 부끄러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아직도 눈에 보일 정도로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피하려고, 피하려고만 애쓴다. 예전에는 용기나 안나서, 지켜야할 것들이 많아서 혹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무서워서 피하려 했다면, 지금은 그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서 피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 그런 현실의 상처가 더 깊이 욱신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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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영화는 슈퍼 히어로의 가까운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저런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들도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큰 그릇이 되자 라는 식이라면, '변호인'은 이와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재판장에 피고로 서 있는 송우석을 지지하고 변호하기 위해 부산 지역 수십명의 변호사들은 자신의 이름 한 자 한 자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영화는 희미한 미소를 남기고 끝이 난다. 결국 '변호인'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송우석의 삶을 기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함께 하고자 했던 수 많은 변호사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게 이렇게 외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의로움을 위해 싸울 때, 최소한 그 뒤에서 그를 지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 달라고.

2013년 대한민국에게는 함께하는 용기가 더 간절하다.



1. 전 사실 최근 몇 작품을 통해 송강호 배우의 연기가 어느 정도 패턴이 읽혀져 새로움을 못 느껴가고 있었는데, 이번 '변호인'의 연기는 왜 그가 대단한 배우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연기였네요. 오열할 때보다 감정을 숨기고 속으로 삼킬 때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한 정서까지도 표현해내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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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감동과 분노를 다 잡은 웰메이드 영화



내가 영화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두 가지는 감독과 배우가 누구냐 라는 것과 포스터 이미지가 어떤 기대감을 주느냐 인데, 방은진 감독의 신작 '집으로 가는 길'은 배우도 배우지만 이 강렬한 포스터 한 장의 이미지에 끌려 관심을 갖게 된 영화였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적잖은 감동을 전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영화는, 역시 예상대로 감동 아니 감정적이었고, 다른 한 편으론 시종일관 분노를 일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전자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후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방은진 감독은 이 두 가지를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을 만큼, 단순히 감동과 신파에만 기댄 그런 작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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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최근 보았던 영화 가운데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던 소더버그의 '쇼를 사랑한 남자'와는 실화라는 자체가 관객에게 받아 들여지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뷰에도 남겼던 것처럼 실화라는 사실은 제거해도 영화 관람에는 전혀 변화가 발생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실화라는 이유 때문에 관객이 분노하게 끔 만드는 지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포스터나 분위기를 보았을 때는 전도연의 열연이 돋보이는, 그래서 감정적으로 눈물을 쏟게 만드는 휴먼 드라마 일 것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영화일 수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여기에 왜 정연 (전도연)이 그런 외롭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였어야 했는 지를, 그녀가 겪는 고통 만큼이나 주목한다. 이런 시선은 자칫하면 너무 건조하게 흐르거나 극적인 요소와 구분되어 딱딱한 느낌을 (다큐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었으나, 이 작품은 오히려 이를 잘 활용하여 정연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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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TV에서 가끔 보게 되는 사회 고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실화이기에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에 적합한 소재이기도 했는데, 방은진 감독은 여기서 주인공과 그 가족의 심리를 어색하고 오버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끌어내, 사회 시스템이 야기 시킨 이 불행한 사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실화 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를 통해 더 큰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후반부 정연의 이야기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등장하는 네티즌들의 이야기는 조금은 낯 뜨거운 연출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긍할 수 있는 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만큼 주인공의 감정과 이 사건을 바라보는 제 3자 및 가족의 분노를 적절히 다루어 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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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도 그렇고, 이렇게 현재를 살고 있는 한 인간이 어떠한 거대한 시스템의 오류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소 외 받고 고통 받게 되는 영화를 보게 되면, '어떻게 든 이 시스템을 개선 해야해! 라는 생각 보다는 '제발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지 않길 바라자'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과연 내가 영화 속 정연 혹은 그 남편이었다면 이 상황을 다르게 해쳐나갈 수 있었을 까를 질문해 보면 답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고, 극장을 나설 때면 다시금 씁쓸해 지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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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씁쓸해...



1. 전도연의 연기는 이제 더 이상 대단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외로움과 막막함, 슬픔, 그리움 등의 감정을 오로지 그녀의 몸을 통해 관객에게 100% 전달하고 있어요. 관객이 이 영화에서 쉽게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는 건, 절대적으로 전도연의 공이 컸어요.


2. 프랑스 영사관 직원을 연기한 두 분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참나!) 관객을 울린 것이 전도연의 공이라면, 관객을 분노케 한 공은 이 두 분에게로~


3. 무대 인사 사진 한 장!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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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HFR 3D, 2013)

또 다른 삼부작의 가운데



피터 잭슨의 호빗 두 번째 작품 '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를 정말 오랜 만에 시사회에서 보았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사회를 피하다보니).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두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팬이지만, 전작인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이미 기존에 글을 통해 설명했으니 간단하게 만 다시 이야기하자면, '호빗'은 원작이 그러한 이유도 있긴 하지만, 영화 작법으로 보았을 때도 너무나 '반지의 제왕'과 거울처럼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보다 진 일보한 영화를 기다렸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번째 작품인 '스마우그의 폐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반지의 제왕'의 두 번째 작품인 '두 개의 탑'이 그러 했듯이, 이번 작품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구성, 갈등 요소까지 거의 '두 개의 탑'과 유사한 구성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작품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 더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실망스러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 수는 없으나, 분명 전 편보다 재미있었고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도 거의 지루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황당해 한 엔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아마도 전 편을 통해 익숙해진 드워프들과 새롭게 등장했으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 덕에, 조금은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 New Line Cinema. All rights reserved


(소린은 아라곤과 겹쳐지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충동적이며 이루고자 하는 바가 처음부터 뚜렷하다)


전작인 '뜻밖의 여정'도 그랬지만 '스마우그의 폐허'는 이보다 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엘론드나 골룸 등의 캐릭터의 등장으로 그 연장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좀 더 절대 반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반지의 제왕'의 주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사우론의 존재가 점점 드러나면서, 직접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호빗 3부작, 반지 3부작으로 각각 나누기 보다 거의 중간계 6부작으로 봐도 좋을 만큼, 전반적인 톤이나 캐릭터, 구성, 음악까지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뒤에 한 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긴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전작에서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을 대부분 긍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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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는 이번에도 원정대를 떠나 홀로 퀘스트를 수행한다)


'반지의 제왕'과 구성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각 인물들의 성숙 도를 들 수 있겠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호빗'에 비하자면 상당히 안정되고 이미 성숙된 캐릭터들이 많았다. 아라곤과 소린을 비교해도 그렇고,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물론 이건 성숙도의 차이라기 보다는 성격으로 인한 부분이 크긴 하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레골라스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올랜드 블룸이 연기한 레골라스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지의 제왕' 속 여유 넘치고 위트까지 있는 레골라스와 '호빗'의 레골라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르다. 훨씬 더 거칠고 날카로우며, 아직 날 것의 느낌이 충만하다. 개인적으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직 성장 중인 레골라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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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겐 눈 깜빡 할 사이의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도 조금이 나마 젊은 레골라스의 거칠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부분의 명 장면은 레골라스가 다 만들어 낸다. 그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스마우그의 폐허'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하다. 그 정도로 이번 작품 역시 멋진 장면은 대부분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기적으로) 독식하고 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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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사회는 본래 3D ATMOS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정 상 변경되어 HFR 3D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더 괜찮은 관람이었다. 사실 아직도 HFR 영상의 그 실제 같은 이질감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데, 그래도 처음 보았을 때 보다는 좀 나아진 느낌이다. 특히 액션 시퀀스에서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르크들과 강을 따라 추격 및 전투를 벌이는 시퀀스에서는, 정말 영화스러운 동작 들과 구성들이 좀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어 HFR 영상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진 경우였다. 더 이상 필름으로 제작되는 영화가 없는 것처럼, 앞으로는 HFR 촬영이 대세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까지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 기술이 어떻게 영화라는 매체와 더 자연스럽게 융합될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확실히 전작에 비해서는 HFR 영상에 대한 이질감이 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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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영화사와 극장 간의 부율 문제로 인해 서울 지역에서 제대로 된 관람이 어렵게 된 점은 분명 안타까운 점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은 아이맥스, HFR, ATMOS 등 최상의 환경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소스인데,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인해 최상의 관람을 할 수 없게 된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고 있어 지금 시점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 없을 듯 하지만, 아무튼 극장과 영화사 측이 관객을 좀 더 생각해서 더 나은 결정과 협의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1. 이번 작품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배우는 다름 아닌 피터 잭슨 입니다 ㅎ

2.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간달프와 그 분이 만나는 장면!

3.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과연 말 미에 얘기했던 것처럼 좋은 관람 환경을 찾을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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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 리덕스

그리고 왕가위 감독과의 GV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은 많은 그의 팬들이 그러하듯이, 내게도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는 이유로 비디오 테입을 통해 보았던 '동사서독'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정말 좋아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 '동사서독'을 재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를 극장에서, 그것도 왕가위 감독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일단 극장에서는 처음 보게 된 '동사서독 리덕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그대로인대 내가 변해서 그런가, 나이를 먹은 탓인지 오히려 더 좋았다. 사실 처음 보았을 때는 한창 영웅문에 빠져있을 때라, 왕가위의 영화 자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김용의 사조영웅전 속 인물들과의 접점을 찾느라 집중했었던 기억인데, 이번에야 말로 오롯이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 번뇌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무협의 최고 수준은 몸으로 겨루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마음 속으로) 겨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왕가위는 최근 작 '일대종사'를 통해서도 보여주었던 것처럼 바로 그 단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미 '동사서독'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1:1 대결 장면이 없는 것처럼, 상대와 마음 속으로 겨루거나 혹은 나 자신과 겨루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영화 내내 등장하는 사막과 파도치는 바다의 장면이 바로 그런 의미다. 물론 이렇게 영화가 나오기 까지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부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왕가위 감독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무협 영화를 완성해 냈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국영, 임청하, 장만옥, 양가휘, 장학우, 양조위, 양채니 등 멋진 배우들을 스크린 가득 만나볼 수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 장국영, 임청하, 장만옥 이 세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배우들인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니 그것만으로도 울컥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된 GV.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진행으로 왕가위 감독을 모시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GV가 진행되었다. 정성일 씨의 말처럼 왕가위 감독이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 관객들을 위해 본인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정성일 씨의 무거운 질문을 슬쩍 피하면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답변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지금 들어도 정말 재밌고, 이 우여곡절 많기로는 손꼽힐 만한 영화인 '동사서독'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그 제작 과정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시사회 시작 시간까지 편집이 완료되지 않아, 일단 상영을 시작하고 마지막 필름 릴이 담긴 차가 배송되는 시간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는 90분짜리 영화를, 어떤 곳에서는 80분, 70분 짜리 영화를 보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참 ㅎ).







그렇게 왕가위 감독과의 GV는 참 귀하고 값진 경험, 아니 시간이었다.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왕가위 감독 작품들에 대한 사랑이 다시 금 피어오르는 것은 물론, '동사서독'이란 영화를 두고두고 다시 봐야 할 의미를 다시 찾게 되기도 했다.


아... 은퇴한 임청하도,

먼저 세상을 떠난 장국영도 보고 싶구나.


1. GV에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9917222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마셰티 킬즈 (Machete Kills, 2013)

우주로 가기 위한 예고편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라인드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된 (결국 가짜가 아니게 된 건가) 대니 트레조 주연의 '마셰티' 시리즈의 속편 '마셰티 킬즈'를 보았다. '마셰티'는 그 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로드리게즈의 장난 같은 프로젝트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한)가 거대한 농담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로드리게즈의 그 독특한 유머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저질 관객이라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전편인 '마셰티'는 이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한 작은 농담이 얼마나 진지하고 그럴싸하게 장편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뽐낸 작품이었다면, 속편인 '마셰티 킬즈'는 그에 비하자면 좀 아쉽고 심심하지만 3편을 기다리게 끔 하는 거대한 예고편으로 볼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마셰티'의 세계관에서는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 어떤 네임 벨류 있는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예외는 없으며, 저 유명한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까 하고 궁금해 할 쯤이면 이미 그는 사지 절단되어 사라지기 일쑤다. '마셰티' 시리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 라면, 마치 홍상수나 우디 앨런 영화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물은 전혀 다를지 모르지만, 구성이나 방식만 놓고 보면 배우들 스스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특히 배우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즐겁게 소비하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즈의 '마셰티'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작정한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 역시 매우 진지하게 임하지만 그래서 더 '큭큭'거리게 만드는 저렴한 재미가 있다. '마셰티 킬즈' 역시 마찬가지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작에 비해 '마셰티 킬즈'는 조금 이야기가 느슨한 편이다. 뭐 전작도 이야기가 얼마나 있었겠냐 만은, 전반적으로 이번 영화는 낄낄 거릴 만한 부분도 좀 적은 편이고, 사지 절단도 줄었으며 혼자만의 심각함이나 장르 적 유희도 조금은 심심한 편이다. 물론 기존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장르의 팬들이라면 더 유쾌해 할 만한 농담 들이 존재하지만, '그라인드하우스'나 전편 '마셰티'에 비하면 확실히 심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데, 이미 또 다른 가짜 예고편을 통해서 공개된 것처럼 마셰티가 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들과 짧은 예고 영상은, 조금은 밋밋했던 영화를 다시금 뛰게 만든다. 즉,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아쉬운 점이 많은 편이지만, 좋게 평가하자면 우주를 무대로 펼칠 마셰티 3편에 대한 거대한 예고편으로서의 의미를 둘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의외로) '마셰티 킬즈'의 이야기와 다음 속편이 매우 깊은 연관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미 시리즈에 연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왜 마셰티가 우주를 배경으로 또 한 번의 활극을 펼치게 되었는지 에 대한 나름 논리적인 이유와, 각 캐릭터들의 사연 들이 이 작품 '마셰티 킬즈'에서 시작된 다는 점에서, 언젠가 나올 (나와야 할) 속편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말을 이렇게 그럴싸하게 했지만, 나중에 속편이 나온다 해도 이 작품을 안봐도 전혀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담 없이 낄낄 거리며 보는 게 이 작품의 묘미고, 로드리게즈의 취향이기 때문에. 아마도 로드리게즈는 이 작품의 형편 없는 평점을 보고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그런 영화야!' 하면서!



1. 본래 로드리게즈의 영화들은 트러블메이커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제작했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Quick Draw Productions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름이 바뀐 것인지, 각각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Quick Draw Productions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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