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The Avengers: Age of Ultron, 2015)

마블 세계관의 확장 혹은 한계



마블의 히어로들을 하나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일종의 올스타전 격인 '어벤져스'는 처음 '트랜스포머'가 그랬던 것처럼 원초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훌륭한 오락 영화였다. 조스 웨던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각 캐릭더들의 장점들을 하나의 영화에 잘 녹여 냈고, 단순히 볼거리 만을 늘어 놓은 것이 아닌 (그래도 괜찮은데) 각자의 영화에서 진행되었던 이야기들의 흐름을 이어가는 줄거리까지 완성시키면서, 기존 코믹스의 팬들과 일반 대중들 모두에게 환영 받는 작품을 만들어 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그것 만으로는 양쪽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갖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과연 확장되어 가는 마블의 세계관을 하나로 중간 정리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이 작품이 어떤 완성도와 방향성을 갖고 있을 지는, 영화 자체의 재미 만큼이나 궁금한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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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 된 '어벤져스'는 특히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저'를 기점으로 확연히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단순히 코믹스를 영화 화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래도 괜찮은데!) 독립적인 영화로서도 충분한 완성도와 이야기를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각자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어벤져스는,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어벤져스의 이야기를 떡밥으로, 혹은 주요 테마로 등장 시키면서 팬들로 하여금 다음, 더 나아가 그 다음까지 기대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러한 성공이 계속 될 수록 오히려 부푼 기대감에 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스 웨던의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비교적 재미와 (이 작품이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기능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 먼저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편집과 유머였다. 아마 내가 감독이었다면 가장 많이 고민했을 것이 편집이었을 것 같은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수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누구는 새롭게 등장해 소개부터 해야 하고, 누군는 이미 본인의 영화에서 진전된 이야기나 갈등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이어가거나 혹은 풀어내야 하며, 누구는 출연 시키되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그리는 가에 따라 작품 자체의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편집 포인트는 매끄럽지는 않았다. 단서를 던지거나 전개를 위해 반드시 삽입은 해야 하는데 풀어내는 연출에 있어서는 기복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장면에서는 애매하게 다음으로 점프하는 장면들도 많았고, 단순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외에 전개의 기능은 하지 못하는 장면들도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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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어벤져스'의 히어로들이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상당히 유쾌하다는 점인데, 이번 작품은 앞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유머 역시 여러 캐릭터들의 이해 관계에 맞게 해결하고 전개해야 했기 때문에,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실제로 재밌지는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아쉬움을 꼽자면, 바로 캐릭터들 각자가 겪게 되는 갈등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번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깊게 고민하고, 더 나아가 '시빌 워'의 초석이 되는 고민과 갈등이 바로 여기서 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아이언맨 2, 3'편을 거치면서 점점 부각되고 있는 토니 스타크의 고민과 갈등은 이번 작품에서 주요 포인트가 되며, 캡틴과 헐크, 블랙 위도우, 토르 모두 마찬가지의 갈등을 겪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시간 상의 한계라고 생각되는데, 굉장히 중요한 고민 포인트 임에도 더 깊이 있게 비중을 둘 수는 없었던 시간적 한계가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 짧은 한 편의 영화 속에서도 각각의 고민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서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호불호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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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들만 먼저 잔뜩 늘어놓고 나니 굉장히 실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제법 재미있게 본 편이다 (어벤져스 2에 거는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뻔한 이유를 안들 수가 없다).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영화들은 그 광대한 세계관을 더 많이 알면 알 수록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많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도 놓칠 수 없게 다양한 떡밥들을 주기적으로 노출하고 있는 구성은, 그 자체로 팬들을 위한 장치이자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어벤져스'는 어쩔 수 없이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는 흥분 포인트가 있는 영화다. 영화 말미에 울트론과 결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모든 히어로들이 한 곳에 모여 (마치 게임처럼) 자신의 필살 공격을 퍼붓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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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했던 국내 촬영 분도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 상당히 놀랐다. 그저 수 많은 로케이션 중 한 곳으로 한 두 장면 스쳐가는 것이 아닐까 했으나, 주요 로케이션 장소로 다양한 액션 시퀀스가 벌어졌는데 우리나라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옥의 티라던가 (블랙 위도우의 공간 점프), 아무래도 눈과 귀에 들어올 수 밖에는 없는 한글 간판과 우리 말 대사들로 인해 소소한 영화 외적 재미도 없지 않았다. 기존에 한국을 다뤘던 영화들과 간단히 비교해 보자면, 서울이라는 장소를 아주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오해하지도 않은, 딱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반대로 무언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특별한 포인트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비춰 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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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코믹스인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다 읽지는 못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것만으로 비춰봐도 울트론이라는 캐릭터는 이것 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파워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캐릭터인 듯 한데, 조금은 쉽게 (혹은 갑작스럽게) 무너져버린 경향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어벤져스 멤버들과 만났을 때 대화 시퀀스의 무게감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팽팽하게 가져갔더라면, '윈터솔져'가 그랬던 것처럼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기엔 이 작품이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울트론과 비전의 이야기는 다른 히어로들처럼 독립적으로 한 두 편을 할애해도 충분한 주제와 캐릭터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 만은 아닐 듯 하다. 전반적으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코믹스의 영화 화라는 단순함을 넘어서 이미 그 방대한 세계 관의 깊이를 영화라는 매체에서도 확장해 나가고 있는 마블 작품의, 매력이자 한계가 동시에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수 많은 캐릭터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앞으로도 마블의 영화들이 (특히 어벤져스 류의 작품들이)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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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롭게 등장한 스칼렛 위치는 완전 마음에 들었어요. 역시 염력이 제일 멋있음. 집에 와서 동작을 여러 번 따라해 보게 됨 ㅋ

2. 폴 베타니는 자비스 목소리 연기만 해오더니 이번엔 아예 출연을 ㅎ 물론 이번에도 100% 모습은 아니었지만;

3.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캐스팅은 역시 줄리 델피. 거의 까메오 수준의 역할이었는데 그녀가 출연하다니! 마블의 세계관은 워낙 방대하니 혹 다른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4. 제가 '어벤져스'를 얘기할 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호크아이'가 저들과 동등한 멤버라는 게 말이 돼? (물론 이렇게 따지면 블랙 위도우도;;)'라는 질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쨋든 호크아이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 인정!

5. 아무리 생각해도 스칼렛 위치와 비전이 가장 매력적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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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바이어런트 (A Most Violent Year, 2015)

악마의 탄생이 아닌 정도(正道)의 죽음



'마진 콜'과 '올 이즈 로스트'를 연출했던 J.C.챈더 감독의 신작 '모스트 바이어런트'를 보았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포스터와 스틸컷에서 마치 '대부' 시절의 알 파치노를 연상 시키는 강렬한 이미지의 오스카 아이삭과 근래 가장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는 여배우인 제시카 차스테인 때문이었다. 특히 오스카 아이삭의 이미지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알 파치노의 '대부'를 떠올리기 쉬운 것이었기에, 작품 역시 범죄가 만연하던 1981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갱스터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J.C.챈더는 정반대로 이 힘든 시절 속에서 끝까지 정도(正道)를 지키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지만 아주 치열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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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모랄레스 (오스카 아이삭)는 이민자 출신으로 장인어른의 기름 사업을 물려 받아 계속 사업을 성장시켜온 재능있는 사업가다. 하지만 그가 성공할 수록 그는 각종 비리와 공격에 타겟이 되어 안밖으로 커다란 압박을 받는다. 범죄가 만연한 시기였기에 어쩌면 큰 흠이 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여러 유혹과 회유에도 아벨은 끝까지 자신의 방식, 제대로 된 방식으로 그 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는 주인공 아벨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자 한다. 그의 가족적인 면, 인간적인 면을 감성적으로 부각하는 대신, 상당히 드라이하게 사업가로서의 그의 행동과 결정 위주로 묘사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벨은 범죄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는 물론 아닐 뿐더러,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고귀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는 본인의 방식대로 본인의 꿈을 이루려는 사업가 일 뿐이다. 표현은 '뿐이다'라고 했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작품엔 그 어떤 비하나 상대적 평가 절하의 표현도, 시선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오히려 아벨의 이야기를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면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남게 된다. 왜 아벨은 이토록 정도(正道)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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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역설이다. 즉, 이 질문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관객들을 향한 감독의 질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을 추구한 아벨이 이토록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더 나아가 그런 사회에 얼마나 대중들이 익숙해졌는지를 되묻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악마의 탄생으로 봐야할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의 죽음으로 봐야할 것이다. 순수한 한 남자가 결국엔 어떻게 악에게 잠식되는 지에 대한 과정이 아닌, 아벨이 대변하는 가치관들이 어떻게 스러져가는지에 대한 기록의 측면으로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영화는 이런 측면에서 관객들에게 커다란 짐을 전달하고자 한다. '모스트 바이어런트'엔 극적 쾌감이나 짜릿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상황적인 측면도 그러하지만, 간혹 아벨이 그 어려움들을 우여곡절 끝에 해결해 낸다하더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일지라도)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은 물론,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혹여 성공처럼 비춰질 수 있는 순간이라도 사실은 죽어가는 과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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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바이어런트'의 아쉬운 점이라면 한 남자의 심리와 상황 묘사를 조금은 직접적으로 미국이라는 현상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은 은근하게 빗대어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었으나, 조금은 직접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연상케 하는 샷과 구도들은 영화 전체가 담고 있는 무거움을 조금은 가볍게 만드는 요소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아벨이 처한 상황과 직접적으로 같지는 않지만 상황적으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인지, 그의 고민 하나하나가 200% 와 닿았다. 지켜야 하는 것들과 지키지 않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것들. 성공이라는 상황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수단까지 가능한 것인지. 혹은 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면 끝까지 정도를 가려는 것 자체가 너무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은 판단은 아닐지.

가장 폭력이 만연하던 해를 온 몸으로 통과하고 있는 아벨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게 만든 영화였다.


1. 정말 오랜만에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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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 더 세븐 (Fast & Furious 7. 2015)

형제들이 폴을 추모하는 방법



사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내게 있어 처음부터 그렇게 특별했던 시리즈는 아니었다. 자동차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꼭 봐야 할 만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고, 1,2편에서 주로 보여주었던 액션 역시 다음 편을 꼭 봐야지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시리즈가 꼭 봐야 할 영화가 되었던 이유는 지금 와 생각해 보면 폴 워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대중들에게는 이 시리즈를 통해 각인이 된 배우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폴 워커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된 건 '러닝 스케어드'를 비롯해 대중적으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한 작품들 때문이었다. 폴 워커라는 배우에 매력에 빠지게 된 뒤, 자연스럽게 더 관심을 갖게 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폴 워커 때문에 전혀 다른 영화, 아니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너무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나 버린 폴을 추억하려 하지 않고, 그저 신나게 러닝 타임을 즐기고자 극장을 찾았던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쏟게 만들어 버린,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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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시리즈를 거듭하며 더 강력한 적들과 자동차 액션 외에 몸으로 하는 육탄전의 비중이 커지게 된 일곱 번째 작품 답게, 전편의 루크 에반스를 훨씬 능가하는 진짜 형님 제이슨 스테덤의 등장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다. 제이슨 스테덤의 캐릭터는 사실 어느 영화에 나오든지 비슷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긴 하고 이번 영화에서 역시 그렇지만, 싱크로율이 나쁘지 않다고 해야할까? 빈 디젤, 드웨인 존슨과 1:1로 맞붙어도 중압감을 줄 수 있는 흔치 않은 배우로서 극의 대결 구도를 긴장감 있게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이슨 스테덤이 등장하면서 시리즈에 더해지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격투 액션 측면일 텐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를 비롯해 무려 '옹박'의 토니 쟈까지 출연하면서 (여기에 UFC 챔피언 론다 로우지의 특별 출연까지) 오랜만에 육중한 볼거리의 액션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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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향은 전편 드웨인 존슨이 등장하면서 부터 좀 더 가속화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 시리즈의 영향력 하에 있는 전문 격투 액션이 너무 보편화 되면서 오히려 이렇게 큰 근육과 몸을 더 쓰는, 무게 있는 액션을 보기가 귀해짐에 따라 '분노의 질주' 시리즈 역시 자동차 액션 외에 또 다른 볼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아날로그 액션에 대해 좀 더 이어가자면, 드웨인 존슨이나 빈 디젤 정도의 근육 (혹은 덩치)이 발달해야만 성립이 가능한 도구나 액션 시퀀스는 보는 것 만으로도 쾌감을 선사했는데, 약간은 억지스럽고 '저게 가능해?' 싶은 설정이 분명 있지만 그냥 '가능해'라는 식으로 밀어 붙이는 뚝심도 무식해 보이기보단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소소한 재미이기는 하지만 론다 로우지와 미셸 로드리게즈의 격투 장면은 론다 로우지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챔피언이라는 걸 잘 알기에 오랜만에 로드리게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더 락' 드웨인 존슨이 락 바텀을 시전 할 땐 남모를 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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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액션 영화로서 '분노의 질주' 만큼 창의력 돋보이는 영화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번 편의 자동차 액션은 그 '창의력' 면에서 아주 새롭지는 않았다. 일례로 비행기에서 자동차를 자유 낙하 시키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탑기어 코리아'에서도 시도했던 장면이어서인지, 영화가 주려고 하는 만큼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 낭떨어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시퀀스도 새롭다기 보다는 조금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 시퀀스는 '미션 임파서블 2'의 첫 시퀀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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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리고 폴 워커. 개인적으론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그의 얼굴을 어찌볼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러닝 타임을 즐기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는 것에 성공했던 터라, 다른 개인적 감정 없이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영화가 계속 폴 워커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쭉 봐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작품은 액션 영화를 표방하는 가운데 우정과 가족에 대한 메시지를 아주 강하게 지속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영화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7편의 내러티브도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일 수 있겠으나, 폴 워커라는 특별한 한 사람 때문에 이 평범할 수 있는 (혹은 신파처럼 느껴질 수 있는) 뻔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그대로 꽂힐 수 밖에는 없었다. '더 이상 장례식을 치루고 싶다 않다'라던지, 그를 바라보는 진짜 친구 빈 디젤의 표정 하나 하나에서 영화와 현실이 혼동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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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영화는 결국 마지막에가서 스스로 현실과의 경계선을 넘어버리는 것을 택한다. 바로 폴 워커를 위해서.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인 해변 장면은 아마 올해 가장 슬프고 인상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뛰어오는 폴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이미 스크린을 벗어난 감정이었다. 특히 여기서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미셸 로드리게즈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음을 장담할 수 있다. 작별 인사를 하지 않으려는 친구들. 영원히 함께 있다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 친구, 아니 형제들의 이야기는 정말.


15년 가까운 시간을 한 영화에서 함께한 동료이자 친구이자 형제를 보내는 그들의 방식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옳았다. 아... 폴 워커가 오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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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전설의 최후편 (るろうに剣心 伝説の最期編, 2014)

큰 욕심 안 부린 켄신의 마무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교토 대화재편'을 보러 극장에 갔을 때 '전설의 최후편'이 같이 개봉 중인 줄 알았더라면 연달아서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되 어쩔 수 없이 상영하는 극장을 찾지 못하고 시리즈의 대미는 IPTV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다. 전편이 3편으로 가는 중간 다리 같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마지막인 '전설의 최후편'은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는데, 결론적으로 마지막 편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난한 선에서 마무리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사 버전에서 과하게 욕심을 부려 1,2편을 통해 얻었던 원작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위험을 택하는 대신,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지만 큰 실망은 하지 않는 선택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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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인 시시오와 켄신의 대결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기대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생각보다는 그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정말 문자 그대로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원작에서 시시오가 담고자 했던 분노와 한, 그리고 켄신이 역날검을 사용해야만 했던 죄의식은 긴 호흡을 통해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3편의 영화로 대등한 효과를 얻기엔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리적 아쉬운 점만 배제한다면 영화는 본질을 흐릴 정도로 다른 각색은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화가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이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카오루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중심에 두지 않고 앞서 언급한 시시오와의 대립과 켄신 스스로의 죄의식에 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 영화 시장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한데, 더 많은 일반 대중들을 타겟으로 하기 보다는 기존 원작 팬들에게 포커스를 둔 (둘 수 있는) 구성은 원작 팬으로서 쌩뚱맞은 이야기를 접하지 않게 되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원작에서도 이 둘의 로맨스는 말그대로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해야하는데, 만약 적극적으로 극의 가운데로 끌고 왔더라면 아마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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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실사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실 메시지의 전달 측면이 아니라 액션에 대한 묘사였다.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가장 망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실사에서는 어색하기 쉬운 액션이나 판타지적인 묘사 부분 일텐데, '바람의 검심'은 바로 그 부분의 균형을 잘 이뤄냈다. 켄신의 비현실적인 속도를 표현한 부분은 잘못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워지기 쉬운 부분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수긍 가능한 정도로 표현해 냈으며,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고수의 우월함 역시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같은 액션 묘사의 균형은 전설의 최후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특히 켄신이 다수를 한 꺼번에 상대할 때 확실히 드러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액션 시퀀스를 코웃음치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만으로도 켄신의 실사화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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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가장 우려했던 실사판 영화였던 '바람의 검심'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 시리즈가 되었다. 그로인해 앞으로의 실사화에 대해서도 다시 기대를 갖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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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Whiplash, 2014)

초월의 양면성



보통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나면 기억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물론 어느 정도의 상관은 있다만) 글로 풀어내기엔 상당히 어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음에도 결국 글로 쓰지는 못한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이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2014)'도 그럴 뻔 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럴 뻔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으나 한참이 지났음에도 유독 생생한 기억과 머릿 속 '글감' 때문에 그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 낸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여하튼 오랜만에 드럼을 소재로 한 음악 영화가 나온 줄로만 알고 보게 된 '위플래쉬'는, 끝까지 달려가는 동시에 우리가 흔히 한 쪽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주제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절반 이상 제공하고 있는, 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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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보통의 음악 영화, 혹은 성장 영화였다면 앤드류는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을 끝내 극복해 낸 천재 음악가가 되었을 것이고, 그의 스승인 플레처는 그런 천재 뮤지션을 키워 낸 아버지 같은 멘토가 되었을 것이다. '위플래쉬'가 흥미로운 건 보통의 음악, 성장 영화가 갖는 위와 같은 성취를 이 작품 역시 거두고 있는 동시에, 정반대의 시각이 가능하다는, 더 나아가 그 반대의 시선에 오히려 더 주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일단 일반적인 측면으로 바라 본 '위플래쉬'의 이야기는, 제 2의 찰리 파커를 키워내기 위한 플레처라는 스승의 노력(방법)이 결국 앤드류의 잠재력을 일깨워 (일종의 각성) 또 다른 천재 뮤지션이 탄생하게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해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방식과 주제로 그려낸 영화들과 비교하더라도 '위플래쉬'가 도달하게 된 그 '순간'의 짜릿함과 희열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영화 말미 앤드류가 마치 초사이어인이라도 된 냥 스스로의 한계 점을 뛰어 넘어버리는 초월의 순간은, 근래 본 장면 가운데 가장 말초적으로 자극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마치 집단에게 얻어 맞은 듯한 욱신 거림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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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어라?'하고 조금씩 다르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앤드류의 아버지와 여자친구로 대표 되는 그의 음악 외 일상에 관한 묘사였다. '위플래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드러머로서의 앤드류가 아닌 그 외적인 앤드류를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얼핏 보면 '어? 왜 이런 의미 없는 장면을 넣었지?'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진 앤드류의 일상은, 그렇기 때문에 '왜?'를 질문할 수 밖에는 없었다. '스파이더맨'도 아닌 것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설정을 이렇게 전면에 자주 등장 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특히 그 방법에 있어서 특별히 감정이 교류되거나 갈등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그저 상황을 묘사하는 것 (아버지와 둘이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에 그쳤을 때, 저 장면이 왜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전반 부에는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후 앤드류가 좋아하게 된 여자친구와의 시퀀스가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졌을 때 무언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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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니콜 과의 이야기들은 아버지와의 그것보다 더 건조하게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영화였다면 음악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앤드류의 모습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면서 고조시키거나, 말미에 가서도 그럼에도 돌아온 앤드류와 니콜과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것으로 정리되었을 텐데, '위플래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배제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고 있었다. 즉, 앤드류의 갈등은 갈등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결정처럼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상황에 대해서도 극적인 결말은 영화가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렇게 앤드류의 음악 외적인 일상 들을 비교적 건조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글 서두에 언급한 바로 그 절정. 초월의 순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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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월의 순간, 영화는 엄청난 에너지로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드럼과 음악 역시 말초 신경을 몹시 자극하며 인계 치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정확히 마무리하며 아직 흥분이 가실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끝내버렸음에도, 그 만큼의 정서적 해탈감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드디어 플레처의 바램대로 제 2의 찰리 파커가 된(그 순간 만큼은) 앤드류의 모습에서 성공, 성취, 해피엔딩 이라는 단어들 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상실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앤드류는 플레처가 바라는 대로 음악적으로는 경지에 가까워 짐에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인간성과는 멀어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앤드류가 음악적으로 초월하는 순간을 명확하게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성과 멀어지게 되는 또 다른 순간 역시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지막 아버지와 무대 뒤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앤드류는 음악적으로 경지에 오를 수록 일상에선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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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위플래쉬'를 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게 된다. '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옳았는가?' '경지에 이르기 위해 포기 가능한 가치들은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까지 해서 도달한 경지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과 정도를 두어서는 결국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특히 예술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의견,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결코 어느 한 분야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는 (그건 그야말로 배부른, 속 편한 소리라는) 의견도 가능할 것이다. 영화는 이렇듯 초월이라는 순간을 단순히 멋지고, 일방적인 성공과 연결 지어 이상향만으로 그리지 않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면을 부각 시켜 양면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엄청난 영화인 동시에 진심으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다시 말해 엄청나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인상적이기까지 해서 더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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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서 블루레이로 보고 싶네요. 물론 집에서 맘 놓고 볼륨 키워 감상하긴 어렵겠지만 ㅠ

2.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를 관람하는 걸로?

3. 저에 다음 팬질은 멜리사 비노이스트로 거의 확정적!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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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헬프 더 걸 (God Help the Girl, 2014)

벨 앤 세바스찬 같은 영화



이 영화 '갓 헬프 더 걸'을 봐야겠다 마음 먹은 건 어쩔 수 없이 벨 앤 세바스찬 때문이었다. 평소 광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거의 모든 앨범은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밴드였던 벨 앤 세바스찬의 프론트맨이 스튜어트 머독이 쓰고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어떤 영화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스튜어트 머독이 연출한 작품이라고 했을 때 예상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영화는 그 예상 그대로였다. 머독은 자신의 이야기, 벨 앤 세바스찬의 이야기를 스크린을 빌려 아주 덤덤하게 하지만 솔직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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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을 접해보지 못했거나 별 다른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된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소소하고 예쁘지만 많이 심심한데?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벨 앤 세바스찬의 팬들이 본 영화는 어떠할까? 사실 똑같다. 팬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이 영화는 소소하고 예쁘지만 심심한 영화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 심심함의 여백이 평소 그들의 음악과 닮아 있기에 오히려 여유로웠달까. 평소 극적이기 보다는 평온하고, 자극적이기 보다는 평화로운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처럼 이 영화 '갓 헬프 더 걸'은 마치 그들의 음악처럼, 혹은 그들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뒷 이야기를 만나게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적인 측면에서 몰입이 쉽지 않고 소품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더 나아가 스튜어트 머독이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밴드를 통해 전달하려는 음악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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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거대한 뮤직비디오 같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론 그 보다는 오히려 조금 긴 단편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벨 앤 세바스찬의 팬들이라면 아마도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며 미소짓게 될 그런 영화.


1. 미드 '왕좌의 게임'에 출연해서 익숙했던 배우 한나 머레이를 다시 만나게 되서 반가움. 그녀의 묘한 매력이 터지더군요.


2. 사운드트랙은 솔직히 음악이 엄청 좋아서라기 보다, 벨 앤 세바스찬스러운 앨범 커버 덕에 안 살 수가 없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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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교토 대화재편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2014)

더 이상의 실사화 걱정은 무의미하다



이미 전작 '바람의 검심' 글을 통해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아마도 처음으로 만화/애니 원작 실사화 작품에 대한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 준 작품이 바로 '바람의 검심'이었다. 다른 실사화 작품들의 실패를 거듭할 때도 개인적으로는 (다행히) 별로 애착이 없는 원작들이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바람의 검심'이 실사화 된다고 했을 땐 두 손 들고 말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 등장한 영화 '바람의 검심'은 만족을 넘어서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드디어 그 속편인 '교토 대화재편'을 극장에서 만나보게 되었다. 참고로 2편 격인 '교토 대화재편'과 3편이자 최종편인 '전설의 최후편'은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국내에서도 다행히 두 편 다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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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은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몇 가지의 갈등 구조,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관계가 등장하는데 역시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줄기의 이야기라면 시시오와의 대립 관계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으며 실사화 역시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본 '기생수'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긴 호흡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실사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부분을 옮기느냐 혹은 어떤 갈등 구조에 집중하거나 어떤 인물과 이야기를 버리거나 축소하거나 하는 결정일텐데, '바람의 검심' 3부작은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를 중심에 두는 대신, 어정번중으로 통하는 아오시의 이야기는 비교적 축소하였다 (아마 최종편에서도 지금과 같은 비중이 아닐까 싶다). 이 밖에도 십본도 역시 원작보다는 축소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시시오에게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부분은 모든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겪게 되는 호불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에 집중하는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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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태어 더 만족스러운 점은 전작도 그랬던 것처럼,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원작이 갖고 있는 메시지 적인 측면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흔히 영화화 할 때는 원작 (특히 그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일 때)의 화려함과 볼거리를 실사 버전으로 보여주는 것에 급급하여 원작이 갖고 있는 깊이와 철학은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의 검심'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영화 스스로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켄신의 이야기를 빌어 등장시키고 있다. 바로 역날검의 의미에 대한 것이 그것인데, 왜 켄신은 역날검을 들게 되었는지를 관객들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한 편, 또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시오의 대한 묘사 역시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분노를 관객이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듦으로서, 원작이 갖고 있던 힘을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스크린에서 실사 버전으로 만나는 '바람의 검심'이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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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토 대화재편'을 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흠칫 했던 포인트는, 이제 더 이상 실사 버전의 싱크로율이나 이질감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처음으로 일본 사극 액션 영화를 보게 된 관객처럼, 영화 속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전작이 보여준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옮겨 온' 것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게 된 점은 이번 속편이 이뤄낸 또 다른 성과라 하겠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작의 팬 입장에서는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켄신을 처음 만나는 이들이라면 캐릭터, 특히 이번에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설명이 부족한 탓에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오시의 경우도 짧게 과거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정번중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더 깊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앞서 언급한 십본도의 활용 역시 시시오를 위해 많이 축소된 느낌이 있어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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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오라는 캐릭터가 워낙 아우라가 대단하고 강력한 캐릭터인 점을 감안할 때 (마치 '이누야사'의 나락 처럼), 후지와라 타츠야가 연기한 시시오의 실사화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영화가 시시오라는 캐릭터를 그릴 때 음악이나 배경 등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교토 대화재편'에서는 켄신과 시시오가 거의 만남을 갖은 수준에 그쳐서인지, 더 본격적인 혈투가 벌어질 최후편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최후편의 특성상 아마도 더 극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보았을 때, 영화화 된 '바람의 검심' 3부작은 꽤 매력적인 3부작이 될 것이라고 미리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1. 사토 타케루의 켄신은 보면 볼 수록 잘 어울리네요. 켄신이 실사화에서 이 정도로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었는데 말이죠.


2. 소지로와의 대결 장면도 좋았어요. 그 특유의 발 구르는 장면도.


3. 켄신이 등장하는 액션 장면의 경우 분명 특수효과가 가미 된 장면이지만, 크게 이질감이 없는, 그러니까 원작을 본 이들이라면 켄신은 저 정도는 가능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수준의 액션이라, 멋과 현실감이 공존해 만족스러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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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파트 1 (寄生獣, 2014)

원작 팬들을 위한 실사화



최근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기생수' 때문이다. IPTV를 통해 매주 금요일 일본과 하루 차이로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 만화는 읽지 못했지만 현재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을 워낙 재미있게 보고 있는 터라 실사화가 된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인데, 대부분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지 않았다는 건 원작 팬으로서의 애정이 크면 클 수록 실망감 역시 컸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바람의 검심'의 실사화가 놀랍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다른 실사 화 영화들에 대해서도 '혹시....'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그러던 차에 개봉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기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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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개인적으로는 코믹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의 비교만이 가능) '기생수 파트 1'은 만족할 만한 퀄리티, 영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들의 실망 포인트가 바로 직접적인 표현 부분에 있기 때문인데, 특히 '기생수'처럼 CG가 동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의 경우 조악한 CG의 수준과 활용 방법 때문에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기생수 파트 1'은 이질감 없이 실사화에 적응한 느낌이다. 기생 생물들의 표현도 우스꽝스럽지 않고 공포스러움까지 전달할 정도로 실사에 적응한 모습이며, '오른쪽이'의 완성도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일단 몰입 할 수 있는 영상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실사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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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빠져버린 부분들로 인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신이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영화화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요한 감정선들과 내러티브 역시 함께 제외되어 버렸다. 사실 애니메이션만 본 입장에서도 '기생수'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테마들과 관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는데,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내에 한정지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즐겨야 했던 요소들은 대부분 축소되었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편으론 TV시리즈로 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전개를 따라가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 신이치의 감정선은 물론, 타미야 료코를 비롯한 기생 생물들의 심리를 읽는 데도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즉, 무언가 괴기스럽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생수' 작품 본연이 갖고 있는 깊이까지 느끼기에 실사판 '기생수 파트 1'은 부족함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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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사화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이런 아쉬운 점을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본이라는 시장은 워낙 원작 팬들의 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처음 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를 배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영화화 된 '기생수 파트 1'은 처음 부터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작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영화화로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극장판'이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작품을 실사 버전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측면으로 보면 '기생수 파트 1'은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하는 느낌이 강해요. 애니를 볼 땐 그 정도 위기라고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구종말에 가까운 공포가 느껴지거든요 (느껴야 한다고 영화가 조장하거든요 ㅎ)


2. 사토미가 상당히 보이시해서 애니메이션을 본 입장에서는 잘 적응이...


3. 제목이 파트 1인것처럼 당연히 후속편이 존재합니다. 일본에서는 4월 개봉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아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파트 2에서 본격적인 실사화의 장점이 나올 듯.


4.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파트 2에 대한 짧은 영상이 나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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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2014)

매튜 본의 온고지신 스파이 영화



매튜 본이 콜린 퍼스와 액션 영화를 찍었다고해서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처음엔 그냥 액션 영화인줄로만 알았기 때문인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정통 스파이물의 구조 안에 있는 영화이자 구체적으로는 007 시리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오마주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스파이 영화치고 007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가 없는 작품이 드물고, 이 작품의 전체 방식 역시 스파이물과 매튜 본이 잘 하는 액션을 더 가미한 작품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킹스맨'을 단순히 이 정도로 표현하기엔 턱 없이 부족할 듯 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난 매튜 본의 전작 '킥 애스'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도 참 좋아하지만, 이들 작품 가운데 이제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킹스맨'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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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킹스맨'은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의 구조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최신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오래 된 007 시리지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만 비틀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007 시리즈의 오랜 팬들에게는 향수를, 스파이 하면 제이슨 본을 더 먼저 떠올리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극 중 JB라는 이니셜을 두고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잭 바우어까지 언급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인정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캐릭터의 구성으로 부터 살펴볼 수 있다. 콜린 퍼스가 연기한 해리는 전통적인 007 영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고풍스럽고 세련되었으며 수트가 누구보다 잘 어울려 근사하고 무엇보다 매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다. 이에 반해 태런 에거튼이 연기한 에거시는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고 출신은 보잘 것 없으며, 삶은 퍽퍽하고 비행 청소년에 가깝지만 야마카시를 연상시킬 만한 신체적인 우수함을 타고 난 캐릭터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 아니 전형적인 면에서 벗어나는 장점들이 있다면, 해리는 흡사 제이슨 본과 같은 완벽한 격투 능력을 지녔으며, 에거시는 결과적으로 해리를 통해 매너를 습득하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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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튜 본이 스파이 영화라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은 한 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007 시리즈에 대한 존경과 명예는 인정하지만 다른 시대에 맞춰 바뀌어야만 할 것들에 대한 한계도 분명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극 중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캐릭터의 한계로 빗대어 볼 수 있겠다), 반대로 최근의 단순한 스파이 영화들에는 없는 품격과 매너에 대해서도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아크로바틱한 액션의 가미에 대해서는 적극 반영을 주장하고 있다. 사자성어로 이야기하자면 온고지신 (溫故之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를 간절히 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튜 본의 이 방식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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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에는 이 외에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나 대중들에 대한 풍자 등으로 볼 수 있는 설정 등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무겁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지나가도 상관없고 안다한 들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리듬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심각한 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만은 않은, 말은 쉽지만 실제 구현하기는 어려운 중도를 잘 표현해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 '킹스맨'이 매력적인 영화라는 인상을 주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콜린 퍼스라는 배우를 활용한 방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도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역할은 여러 번 했었지만, 이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콜린 퍼스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연기력의 측면이 아니라 분명 그 '이미지'에 관한 것일 터. 수트를 평소 즐겨 입지 않은 남자라 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면 당장 양복점으로 달려가 맞춤 양복 한 벌 맞추고 싶은 욕망이 들 정도로, 완벽한 핏의 수트 차림으로 (여기엔 안경과 우산을 비롯한 소품들도 포함된다) 벌이는 액션과 액션이 아닌 장면들이 주는 품격은, 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콜린 퍼스여야 했는 지를 설득 없이 이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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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은 무엇보다 최근 본 영화들 가운데서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장면과 이미지가 주는 원초적인 쾌감과 일부 장면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의외의 쾌감과 속시원함이 금새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1. 콜린 퍼스와 마크 스트롱은 또 다른 스파이 영화였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도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이렇게 또 다른 스파이 영화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흥미롭더군요 ㅎ


2. 여기 또 다른 흥미로운 커플이 있습니다. 루크 스카이워커와 마스터 윈두 ㅋ


3. 시리즈 물이 가능한 구조에요. 후속편이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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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타임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를 보았다. 일단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보시다시피 원제는 'Predestination' 즉 풀이하자면 '예정'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타임 패러독스'라는 또 다른 영문 제목이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너무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소개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움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제목과 더불어 국내에 홍보될 때 다른 시간 여행 영화들과 맞물려 여기에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기 때문인데, 물론 이 영화는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가 맞지만, 영화가 이를 다루는 방식이나 비중을 보면 그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기에, 너무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만 집중하도록 만든 제목과 방식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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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본격적인 시간 여행에(만) 집중된 영화인줄로 알았으나 '타임패러독스'는 '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꺼내들었나'에 대한 물음에 더 충실하고자 하는 영화였다. 마치 슈퍼 히어로 영화들에서 주인공이 히어로로 각성하기까지 1시간 이상 러닝 타임을 할애하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꺼내 드는 데에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다. 감독이 얼마나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지워도 그리 나쁘지 않을 만큼 (물론 그걸 지운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기는 하지만) 극 중 사라 스눅이 연기한 인물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없이도 빠져들 만큼 흡입력 있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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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타임패러독스'가 담고 있는 이 소재에 대한 부분은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으나 (이 영화의 한계라기 보단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의 한계 때문), 그래도 그 가운데서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관객이 놀랄 만한 반전 포인트를 뽑아 낸 건 분명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흔히 시간 여행 영화라고 하면 그 논리에 집중하여 머리 싸움을 하는 영화거나 아니면 다양한 시간과 배경을 등장시키면서 화려한 볼거리로 유혹하거나, 그 가운데 감동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이런 요소들 보다는 상황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면서 그 안에 담긴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한 것이 다른 시간 여행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에단 호크가 주연을 맡아서 인지, 직접적인 공통점이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이 영화의 정서는 '가타카'를 떠올리게 했다. 차갑고 쓸쓸하고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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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패러독스'는 기대 했던 시간 여행 영화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여주인공을 연기한 사라 스눅이라는 배우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1.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 생각한 거지만, 여주인공을 연기한 사라 스눅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계속 데인 드한이 떠올랐어요. 묘하게 닮은 마스크 때문인가...


2. 에단 호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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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t, 2014)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직장으로의 복직을 앞둔 산드라 (마리옹 꼬띠아르)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복귀와 보너스를 두고 투표가 진행되었고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것. 하지만 산드라는 반장의 강요에 의해 투표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제보를 받고는 사장에게 재투표에 대한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이틀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히 찾아가 보너스 대신 자신에게 투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줄거리는 명확하지만 이 이틀 간의 시간 속에 담겨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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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가 설득도 부탁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최근 본 영화 속 장면들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장면이었다. 여기서의 수긍이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산드라의 입장은 물론, 그녀가 만나는 회사의 직원들의 입장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는 없는 명확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르덴 형제는 우울증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건강하게 일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산드라의 입장과 1천 유로라는 보너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직원들의 입장을 모두 정당하게 대변한다.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영화가 흔히 '영화적'이게 되는 지점은, 주인공에게만 타당성을 부여해서 반대에 서는 이들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잃게 되는 부분인데, '내일을 위한 시간'에는 이런 양분론이 없다.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녀의 복귀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도 그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고, 반대로 보너스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16명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사람의 입장도 이기적이라고 쉽게 지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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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와 직원들의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나에게 투표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산드라에게 직원들이 하나 같이 처음 묻는 질문이 바로 '누가 찬성하기로 했어요?' '몇 명이나 찬성표를 던진데요?'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각자의 입장이라는 점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직원들 대부분이 양심과의 갈등을 겪는 가운데 다른 직원들, 즉 사회라는 구조의 보이지 않는 구속 혹은 힘(꼭 나쁜 의미만은 아닌)을 크게 염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문제가 명확한 정답이 없어 보인다는 바탕 아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크게 모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려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한 편으론 이 같은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을 보며 '어쩌면 저렇게들 다 이기적이지'라고 쉽게 되 물을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 속에는 그러한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직원들을 만나 설득하기를 반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남편의 이러한 성향이 나와는 가장 거리가 있는 부분이라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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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을 보면서 평소 생각하던 가치관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는 '착한 것은 좋지만, 착하지 않은 것이 곧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평소 갖고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에 비춰 보자면, 산드라의 복직을 찬성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복직 대신에 보너스를 택한 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 중 산드라의 대사를 통해 이 부분은 여러 번 설명되는데, 이 상황은 산드라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회사가 선택한 것도 아닌, 그냥 상황이 벌어진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해도 누구 하나를 탓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보너스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산드라가 아니더라도 곧 누가 실직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저 같이 일하는 직원 이상의 관계도 아닌 한 사람을 위해 내 가정의 경제적 보탬과 직장의 안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난 다르덴 형제가 이 문제를 단순히 '용기'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문제를 용기에 관한 것으로 풀어냈다면 영화는 너무 흑백 논리에 가까운 단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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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가 어떻게 마무리 될까도 궁금했었는데, 마지막 산드라가 남편에게 전화 통화로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보니 다르덴 형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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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渇き, 2014)

이번에도 끝까지 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작품 '갈증' 역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을 텐데,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호불호가 갈릴 지언정 항상 이야기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는 다는 점이다. 호불호가 갈린 다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그 확실한 영상과 음악의 스타일 만큼이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과 전개의 속도에 있어서 극명한 호불호를 보여주는데, '갈증'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 해놓은 것 같은 느낌(그것이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가운데, 마무리 역시 보통의 영화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갈증'이다). 보는 내내 괴로움이 드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려든다. 바로 내 안에 악마성을 반드시 끄집어 내겠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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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간과 인물을 뒤 섞어가며 다층 구조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점점 더 카나코(코마츠 나나)의 이야기로 집중한다. 일부러 못 알아차리게 하려거나 집중을 기울여 이전 시퀀스를 기억해야만 성립할 정도로 어려운 전개는 아니지만,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의 빠른 전개가 더해져 전체적으로는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과 하는 게임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선입견에 관한 것이겠다. 처음에는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일반적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후 영화가 점점 그 진짜 이야기를 드러낼 때에도 몇몇 관객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영화도 아는 눈치라는게 후반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가운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악마 혹은 악마성에 대한 인물들 간의 복잡 미묘한 게임들이 포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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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게임은 엄청나게 소모적이며 괴로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서두에 밝혔다시피 결코 대충 끝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심화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면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려고 애쓴다. 겉으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 학교, 사회, 야쿠자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과 위기(혹은 외로움)에 대해 늘어 놓고 발전시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늘어놓음의 이유는 다른 곳, 즉 내면의 죄의식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표현해 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카나코의 아버지 역할인데, 이 말도 안되는 캐릭터가 끝까지 이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죄의식과 이를 표현해 내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이 없었다면 '갈증'은 그저 현란하고 괴롭기만한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내면에 담겨 있는 죄의식 때문에 '갈증'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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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멋진 캐스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캐스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주인공 카나코 역할을 맡은 코마츠 나나의 캐스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소녀의 마스크는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되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이 작품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길!

2. 오다기리 조, 나카타니 미키, 츠마부키 사토시 등 익숙한 배우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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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무라이 (猫侍 Samurai Cat, 2014)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



한 사람의 집사로서 '고양이 사무라이'라는 제목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이 누구인가 배우가 누가 출연하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극장을 찾았다 (냥심은 역시 칼보다 강한 것인가!). 사실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라는 이 글의 제목에 '고양이 사무라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야마구치 요시타카 감독의 이 작품은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기에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심심한 작품이며, 반대로 집사들이라면 자신들 만이 캐치할 수 있는 포인트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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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야 특별히 말할 것도 없이 간단하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이나 연출력 역시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냥심에 기댄 측면이 강한 탓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땐 감정 선에 공감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사무라이와 고양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존재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인데, 고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 사무라이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것에 갇혀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국내에서 만들어 졌다면 아마도 김보성 씨가 연기했을 법한 딱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이 캐릭터가 영화 전반을 이끌기에는 다소 무리가 느껴졌다. 고양이라는 존재와의 연계 성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극적인 부분이었는데, 사건 자체보다 둘 간의 교감에 포인트를 두었더라면 좀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2013년에 TV시리즈로 먼저 제작된 작품을 영화 화 한 작품인데, TV시리즈의 긴 호흡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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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무라이'엔 집사들이라면 혹할 만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한다. 일부 집사들의 경우 사실상 영화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보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충분히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이 느슨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고양이, 고양이 때문이었다. 집사들이라면 꼭 보라고 까지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만약 더 교감에 집중한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8년 작 '구구는 고양이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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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우주를 건축하고 낭만을 이야기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를 개봉 첫 주말 아이맥스로 보았다. '인터스텔라'는 그의 작품답게 원초적으로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복잡한 설계가 밑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는 가슴을 움직이게 만드는 낭만과 감동이 자리 잡고 있는, 딱 크리스토퍼 놀란 다운 작품이었다. '인터스텔라'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Gravity, 2013)' 이후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본격 우주 체험 영화라는 부담감이 작용했을 수 밖에는 없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던 우주라는 공간과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끌어 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래비티' 이후엔 그 어떤 영화도 (최소한 단 기간 내에는) 우주를 다시 배경으로 하는 것에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일 거다 라고 밝히기도 했던 놀란은,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의미로 체험하는 우주를 그리는 동시에 또 한 번 설계자 다운 면모를 발휘해 다층적이다 못해 다 차원적인 구조를 구현해 냈고, 여기에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의 드라마까지 담아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스텔라'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 작품이지만, 뭐랄까 놀란의 영화관에 있어서 좀 더 명확해 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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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이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본격적인 이유를 하기에 앞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항상 대단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원인은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치밀한 설계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주로 만드는 설계도는 무언가 학구적인 의욕을 한 껏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플래시백 형태로 구성한 '메멘토'도 그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다층 구조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낸 '인셉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100% 완벽하게 분석해 내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했었던 것처럼, 이번 '인터스텔라' 역시 우주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공간을 배경으로, 역시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블랙홀, 웜홀, 4차원, 5차원 이라는 개념과 현상들을 시각적으로 수긍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학구적으로 파고든 설계 탓에 자주 그가 만든 세계는 논리적 오류나 설정의 오류라는 많은 의견들과 부딪히게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가 그의 동생과 함께 쓴 시나리오가 과학적, 논리적 오류가 있는 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가 왜 이런 방식을 매번 택하고 있는 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는 걸 '인터스텔라'를 통해 또 한 번 강하게 느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왜 이렇게 영화를 복잡하고 설명하듯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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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그 세밀한 설계 자체가 갖는 중요성, 그러니까 '인터스텔라'로 비유하자면 5차원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더 쉽게 이해하도록 영화화하기 위해 이를 논리적으로 뒷 받침할 만한 만반의 준비와 설계를 건축하듯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구조와 설계 자체를 중심에 둔 다는 얘기다. 사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손을 들어줄 텐데, 내 의견은 조금 다르다. 사실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인셉션'을 보고나서 부터인데, '인셉션'이 개봉하고 나서 흡사 논문에 가까운 영화 글들이 수를 놓았을 정도로 구조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론 오히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라는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관한 아주 강력한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란 영화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아내를 잃은 남편이거나 가족을 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의 분석은 이미 여럿 있어 왔는데, 여기에 더 힘을 보태서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설계한 구조적 배경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그가 들려주고자 한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터스텔라'를 보며 또 한 번 강하게 들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결국, 기억을 이야기할 때도, 꿈 속의 꿈을 이야기할 때도, 코스츔을 입은 외로운 영웅을 이야기할 때도, 그리고 우주 속 웜홀 뒷편의 5차원을 이야기할 때도 결국 한 인간의 드라마를, 더 나아가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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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측면이 놀란의 모든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고 봤을 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트'의 경우 이 가운데 가장 감정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편이고, 이 작품 '인터스텔라'는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인셉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 구조의 황홀함에 압도되어 만족감을 얻기에 벅찼었지만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니 너무도 명백한 코브의 슬픈 드라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인셉션'은 놀란 영화의 큰 두 가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설계와 감정, 혹은 설계와 낭만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 아니 비중이 크다기 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이었다.



(다음 단락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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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한 데에는 역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표현 방식 때문이 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감정적이라고 느꼈던 '인셉션'에서도 그 표현 방식은 직접적이지는 않은 편이었는데 '인터스텔라'에서의 후반부를 장악하고 있는 정서는, 오히려 한편으론 이런 우주 영웅 가족영화에 대명사로 불리우는 '아마겟돈'보다도 더 강력한 세기로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서 영화의 중반부까지 우주와 웜홀에 대한 방정식을 풀 듯 논리의 파도를 따라오던 관객 입장에서는, '결국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사랑, 사랑이야!'라는 영화의 후반부가 맥이 빠질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론 '인터스텔라'의 방식이 조금 직접적이었을 뿐 놀란의 영화는 항상 이런 드라마를 바탕에, 아니 중심에 놓았었기에 크게 이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 사랑이었어!'라는 식의 전개는 이 5차원이라는 개념을 재료로 하기엔 너무 1차원적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들게 마련인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찰리 카우프만이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을 통해 본인의 메세지를 정말 끝까지 밀어 붙였던 것처럼, 본인이 항상 두 손에 쥐고 있던 설계와 감정의 개념을 한 발 더 나아가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가 아니었나싶다. 이 작품에서 후반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차원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존재한다 라는 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운 가설을 꺼내놓는데,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 아직 인간이 알아 낸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혹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개념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일종의 과학적 산물 혹은 미래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설명이 가능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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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접근이었는데, 처음엔 이 같은 영화의 태도가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만 느껴졌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기반이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콘택트 (Contact, 1997)'가 던진 화두인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경험한 것'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메시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즉, 아빠가 똑같이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가 된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가 바라보든 태도는 이전 다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터스텔라'가 왜 흥미로운 작품인지를 또 한 번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콘택트'와 근본적으로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콘택트'는 이 광할한 우주에 인간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라는 말처럼 외계 생명체에 가능성에 대한 중요성이 짙게 깔려있는 작품이지만, '인터스텔라'는 그 중심이 외계 생명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 혹은 인간의 진화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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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어쨋든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다른 작품들처럼 하나 하나 따져보면 '왜 그런한가?'에 대해 소품이나 배경, 인물, 대사 등 모두 이유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영화일테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것들을 다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강력하게 드러난 낭만적인 가족 드라마이기도 했다. 뒤돌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다들 순수하리만큼 낭만적인 인물들이 중심이 된 드라마였던 것 같다. 마치 더 이상 막는 것이 불가능한 디지털의 시대에 끝까지 필름 촬영을 우선하고 3D를 배제해 온 그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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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차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체험이었어요. 오히려 이 부분은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오면 서플먼트를 통해 좀 더 구조적인 뒷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 한스 짐머의 음악이 참 좋았어요. '다크나이트' 이후 가장 인상적인 그의 작품인듯. 김혜리 기자의 말만 따라 정말로 놀란 작품만 특별히 더 신경 써주는 것 같은 느낌이 ㅎㅎ


3. 본문에도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밝혔지만 개인적으로 놀란은 '5차원은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 만큼, 극 중 쿠퍼가 비디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극의 구성상 중간 정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마지막 대사를 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싶었던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처럼 감정적으론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싶은.


4. 그냥 다른 얘긴데, 만약 이 영화를 그대로 번역해서 '별과 별 사이'로 개봉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감독이 전한 의도는 분명 '별과 별 사이' 일텐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어버리는 묘한 영어 제목 번역의 현실. 꼭 이 작품 만의 얘기가 아니라 가끔 미국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제목들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해지더군요. 우리는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오히려 번역하게 되면 느낌이 애매해지는 경우도 발생하다보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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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결국은 시선에 관한 영화



데이빗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를 보았다. 핀처의 작품이라면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의 최근 작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워낙 좋았고 완성도가 높았었기 때문에 이 작품 '나를 찾아줘 (원제를 따르자면 '사라진 소녀'가 적당하겠다)' 역시 아무런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봉 전 어디에선가 핀처의 최고 작품 중 하나인 '조디악 (Zodiac, 2007)'과 비교하는 평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큰 기대를 앉고 극장을 찾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조디악'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며, 스릴러 이기는 하지만 스릴러 본연의 재미와 요소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를 둘러싼 이야기와 시선에 더 관심이 많은, 조금은 다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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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고 보는 편이 최적의 관람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대략 이러하다. 어느 날 닉은 잠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은 사고가 난 것처럼 어질러져 있고 아내 에이미는 사라져 버렸다. 아내 에이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언론 등에 노출되며 더 큰 사건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닉과 에이미의 이야기는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에게 조금씩 이 둘의 결혼 생활에 이미 균열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핀처의 전작인 '조디악'과 스타일이 유사한, 그러니까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아주 치밀하고 긴장간 넘치는 추리극 일 줄로만 알았다. 에이미가 처음 실종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싶었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단서를 던지고 이른바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종 사건을 두고 주인공 닉 던 (벤 애플렉)을 바라보는 언론과 주변의 시선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는 어느 순간 부터 이 영화의 또 다른 부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맞아 떨어지는 놀라운 에이미 던 (어메이징 에이미)의 활약상(?)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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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는 노골적으로 실종 사건을 두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고 마녀사냥에 빠져드는 언론과 움직이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조금 연출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언급했다시피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한 편으론 정말로 사라진 소녀를 찾아가는 과정의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야'라는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표현해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형식적으로 표현되는 주변과 언론의 반응들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한 에이미라는 캐릭터에 비해 굉장히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통해 더 바보스럽고 멍청해 보이도록 의도했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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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한 에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벤 애플렉이 연기한 닉 던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극 중 닉 던이라는 캐릭터는 참 묘한 느낌을 주는데, 치밀한 에이미와 같은 레벨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불쌍하다'라는 생각에 공감대 혹은 동정심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멋대로 인 부분이 있어서 100% 부합하지는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극 중 많은 장면에서 닉 던이라는 캐릭터와 벤 애플렉이라는 배우가 겹쳐지면서 의도치 않았던 (그 중 반은 의도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유머러스한 장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이 의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영화 전체가 이 사건을 약간의 조롱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심각한 사건 속에서도 당사자들은 황당할 정도로 허술하고 초라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인물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아마 영화가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극 중 대중들처럼 오해했을 관객들에게 '자, 현실은 이럴 때도 있어. 쉽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선 안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튼 농반진반 이지만 이 작품은 벤 애플렉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연기력이 최고조로 발휘 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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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애플렉 이야길 하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나를 찾아줘'는 에이미 역을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영화다. 이 영화는 그녀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로, 초반에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은 물론 마치 중간계의 갈라드리엘을 연상시키는 신비스러운 보이스의 내레이션으로 묘한 매력을 선보이는 한 편, 후반부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의 모습은 극장 내 관객들이 모두 무서워서 치를 떨 정도로 소름 돋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나 역시도 올해를 통 틀어 무서워서(이것도 공포긴 공포다) 소름 돋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전국민이 알고 있는 캐릭터와 평생을 비교 당해야 했을 에이미의 스트레스와 (아마도)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내적으로는 망가지고 폭력적이고 정신이상의 행동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최적화 된 행동을 하게 되는 캐릭터를 '왜 저래?'보다는 '무섭다'가 먼저 느껴지도록 이끌어 냈다. 아마도 많은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될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무서우리 만큼 소름 돋았다.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는 핀처의 또 다른 재주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국내 관객들에게는 극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워낙 강해 그 이면의 디테일이 다 전달되지 않는게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긴 그게 너무 강하긴 했다.



1. 정말로 '사랑과 전쟁' 극장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2. 핀처는 최근 작품들에서 영화 음악을 특히 더 매력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어요. 영화 음악에 의도가 많이 담겨있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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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 (Boyhood, 2014)

1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바로



수년 전 쯤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실제 12년 전의 뉴스 한 토막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이 정말 기대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는 없었던 뉴스였다. 에단 호크와 함께 한 비포 시리즈와 '웨이킹 라이프 (Waking Life, 2001)'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리차드 링클레이터가 또 한 번 에단 호크와 함께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는데, 한 소년의 성장기를 무려 10년이 넘는 실제 시간을 들여 촬영하겠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잊혀졌던 이 소식은 실제로 2014년 완성된 작품으로 극장 상영을 하게 되었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형식적 기대감과 별개로 그의 최근 작이었던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을 인상 깊게 본 터라 이 작품 '보이후드'는 극장에 가는 발 걸음 부터 몹시 두근거렸다. 과연 리차드 링크레이터는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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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링클레이터가 1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조금씩 만들어 온 이 '진짜' 성장담. 작은 의미로는 한 소년, 더 큰 의미로는 한 가족의 성장담을 담은 이 영화는 무엇보다 그 세월 속의 평범하고 보편적이지만 소중한 일상 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지만 영화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요, 오히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3시간에 나누어 담기엔 숨 가쁘기 까지 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감독은 시간의 흐름을 일부러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관객에 이 압축된 3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2년이라는 세월을 문득 돌아보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고 있다. 즉, 보통의 영화가 사용하는 '몇 년 후'의 자막은 쓰지 않을 뿐더러, 마치 우리가 실제 삶에서 10여 년 전을 추억하며 '그 때가 정말 엇 그제 같은데..'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감정이 들도록, 놀라운 3시간의 압축 물을 만들어 냈다. 이 것만으로도 '보이후드'는 놀라운 3시간의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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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후드'를 통해 새삼 느꼈던 감정은 최근 들어 종종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볼 때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일반적인 영화의 흐름 혹은 템플릿에 익숙해져 영화적인 선입견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운전하는 장면을 보다가 조금이라도 부주의한 장면이 나오면 아마도 사고로 이어지겠지 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절로 발동하고, 비슷한 이유들로 기존의 영화적 방식에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다음을 유추 (결국엔 착각)함으로 인해 미리 몇 가지의 결과를 대비하게 되는 습관 말이다. '보이후드'를 보면서도 그런 장면들이 여럿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리차드 링크레이터는 이런 순간들을 그리면서 그 어떤 자극적인 사고나 극적인 요소로 이끌지 않고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저 일상, 일상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일상 말이다. 영화는 이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덤덤히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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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년 넘는 시간의 일상을 늘어 놓는 것 만으로도 사실 충분히 인상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보이후드'가 정말 대단한 영화라는 것은 후반부 리차드 링크레이터가 드디어 본인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꺼내 들었을 때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을 보여주기만 했던 그는 주인공 소년이 다 커서 부모의 곁을 떠날 즈음이 되자, 하나 씩 감정이 심하게 동요할 만한 장면들을 선사한다. 스포일러 랄 것도 없지만, 즉 알고 있어도 이 장면에서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그 누구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직접적인 이야기는 피하고 말하자면,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진심으로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을 담고 있으며, 아마 내가 부모였다면 그 장면에서 더 큰 감정적 공감으로 인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적이었다. 패트리샤 아케이드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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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더 놀라웠던 것. 마치 엄청난 반전 영화의 끝에 그 반전의 내용을 알았을 때 만큼의 충격을 받았던 소름 돋는 순간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사실 난 앞서 이야기한 부모 곁을 떠나는 주인공의 대화 시퀀스에서 영화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한 시퀀스를 더 준비한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비로소 본인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영화 감독이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아마도) 쉽지 않았을 제작과 촬영을 거쳐 끝에 하고 싶었던 말은 놀랍게도 '순간' 이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을 실제의 시간으로 촬영하고 나서야 들려준 해답이 순간 이라니. 아, 정말로 소리 내어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올해 극장에서 느꼈던 가장 황홀한 경험이자 놀라운 순간이었다. 너무 진부해서 한 편으론 오그라들 수도 있는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해답을 찾은 감독이 관객에게 진정성을 얻고자 긴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순간이라니. 순간의 중요성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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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직전까지의 내용 만으로도 '보이후드'는 충분히 올해의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지만, 이 마지막 장면 아니 순간을 통해 '보이후드'는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영화가 되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더 많은 이들이 하길 바라며.



1. 극 중 소년의 누나로 나온 배우 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제 리차드 링크레이터에 딸이에요. 그렇다면 영화 속 아버지로 나온 에단 호크와의 피임 관련 대화 시퀀스에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던 행동이 연기 만은 아니었겠네요.


2. 리차드 링크레이터의 영화 답게 영화 음악이 참 좋습니다. 극 중 밴드 활동을 하는 에단 호크가 부르거나 들려 준 노래들이 정말 좋아요.


3. 꼭 보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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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 (The Maze Runner, 2014)

시리즈가 완결되어야 알 수 있을 것



'메이즈 러너'는 포스터와 스틸 컷, 대략의 줄거리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 까지 관객에게는 매우 최소한의 정보 만이 제공되며, 그 최소한의 정보량 때문에 궁금증과 아쉬움이 모두 들게 마련인 그런 작품. 영문도 모르고 미로로 둘러 쌓인 어떤 곳에 어느 순간 부터 갇힌 채 살게 되어 버린 아이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소년들)이 주인공이며, 영화는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똑같은 방식으로 이 곳에 오게 된 신참 주인공이 새롭게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왜 이 신참은 다른 소년들과 조금 다른 지에 아주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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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즈 러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대한 미로를 달리는 소년들, 그 안에 갇힌 소년들에 관한 얘기다. 여기서는 유사 장르에서 이미 수없이 보아 왔던 클리셰들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의문점 투성이의 현실과 미로 안과 밖의 또 다른 미지의 세계, 그리고 무리를 짓게 된 구성원들 간의 갈등. '메이즈 러너'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이 구성원들이 모두 소년 (나중에 소녀가 등장하기는 하지만)들로만 이뤄져 있다는 점 정도일 텐데 이마저도 아주 신선한 구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소년들로만 이뤄진 무리라는 특성을 살린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지의 존재로 일종의 크리쳐들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이 선택한 미스터리의 한 조각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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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본 이유는 단 하나였는데, 시리즈로 기획되었다는 사전 정보 때문이었다. 시리즈로 제작되는 작품의 경우 간혹 속편이나 추후 작품들에서 잠재력이 폭발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최악으로, 절대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시리즈 물의 첫 번째 작품은 최대한 관람을 하는 편이고, '메이즈 러너'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 물의 특성 상 첫 편에서는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메이즈 러너'는 좀 너무했다. 그리고 그 비밀이라는 것이 장르의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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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 2014)

홍상수의 시간



홍상수 감독이 최근 작품들에서 관심을 가졌던 형식적인 측면은 '시간'이었고, 내용적인 측면은 '착함' 그리고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것들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주를 발견해 내는 그의 영화 답게, 이번 신작 '자유의 언덕'은 더 직접적인 시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간이라는 것을 형식 그 이상의 주제로 이끌어 내며, 이를 영화 안에 머물지 않고 영화 밖 현실로까지 끌어내는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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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근 작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시간의 재배열, 그리고 꿈과 현실의 모호함과 관계에서 오는 각자의 기억을 통해 매번 같은 이야기 같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는데, '자유의 언덕'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등 김상경이 주연을 맡았던 작품들이 담고 있었던 남녀간의 이야기까지 결합한 버전의 또 다른 시간의 관한 작품이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가끔은 무심한 듯 이것이 꿈이어도 상관없고 현실이어도 상관 없으며, 또한 누구의 이야기가 맞고 틀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화자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이런 모호함 보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시간의 재배열에 대해 형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장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중간 중간 화자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시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서영화가 연기한 '권'이 '모리 (카세 료)'가 남긴 편지를 읽는 장면들을 중간 중간 삽입하여 그 때마다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는 것을 영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거의 첫 장면에서 '권'이 모리가 남긴 편지를 가지고 어학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떨어트려 그 편지의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은 이 영화가 갖게 된 형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의 언덕'은 상당히 친절한 방식으로 이 시간의 재배열, 아니 각각의 시간에 대해 시작과 끝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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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뒤 섞여 버린 편지 속 일기 같은 이야기의 순서를 제대로 맞춰보려는 노력도 해보았으나, 사실 이렇게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재조합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다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자연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간의 뒤 섞임을 설명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감독의 의도는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일종의 인과관계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로 느꼈다. 처음 이 이야기가 뒤섞인 줄 모르고 어떤 에피소드를 보게 되면 저 인물들이 왜 저런 대화를 하는 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다음 이 이야기가 본래는 이 에피소드 이전 시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저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었구나'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첫 번째 방법인데,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처럼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면 너무 심심한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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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는 설정.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대사가 영어로 진행되는 설정은 구성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 전달 되는 어감 때문에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홍상수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아마도) 말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인 일상 속에서 번번히 벌어지는 '무례함'에 대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 북촌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된 모리는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들로 부터 매번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일명 호구조사 라고도 하는 이 일반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들의 자세는 친해지기 위한 선의인 경우도 있고, 무언가 의심스러움으로 인한 경계심도 있으며, 정말 별다른 감정 없이 의례 던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히 다루고 있는 모리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보면 별다른 동기 없이도 모리의 입장에서서 약간의 불쾌함이나 피곤함이 느껴진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이 있고 바라는 바가 있을 텐데, 외국인인 모리의 상황을 빌려 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대의 대한 배려보다는, 혹은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결국 온전히 홀로 의지에 따라 있고 싶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는 무례를 범한다. 여기서 '무례함'이란 단순히 극 중 이민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불쾌함을 주는 경우 외에도, 불쾌함을 주지 않았을지라도 극 중 '상원 (이의성)'이 연기한 캐릭터가 모리를 대하는 경우처럼 그것이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을 지라도 100% 내 의지로 행해진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까지 포함된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뭐랄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특히 영화에서) 우연과 운명에 대한 기대감에 고취되어 있는데, 한 편으론 그저 스스로가 처음 원했던 계획대로만 끝까지 (그것의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이) 진행하기 어려운 사회와 관계라는 존재의 피로감을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과 연결지어 이번 작품에서 특히 많이 등장한 '행복해요?'라는 질문은 이렇듯 나 자신을 오롯이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 속 인물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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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야기를 처음 꺼냈던 '인과관계의 무상함'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이 뒤섞인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서 극 중에 펼쳐진 일종의 에피소드들의 인과관계를 맞춰보고 논리를 완성하게 되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홍상수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는 물론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약 이 이야기들이 정상적인 시간의 순서대로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뒤섞여 있을 때 불쾌하거나 무례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과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관객이 이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가고 있을 때 쯤 몇 가지는 맞추었다는 착각을 하도록 힌트나 (관객 스스로가 생각하는) 답을 던지고 있지만, 일부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무관심한 채 그냥 내버려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모리가 누군 가와 싸웠다는 것만 알 수 있도록 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처럼).


즉, 홍상수 감독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이용해 관객들이 오해하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너희 들이 틀렸어 라는 답을 짠~ 하고 내어 놓으며 반전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는 관객들이 스스로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남겨두고 있다. 만약 '자유의 언덕'이 더 재기발랄하고 형식을 강조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편지에 쓴 거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마지막 게스트 하우스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편지의 이야기가 다 끝난 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남겨둠으로서, 이 이야기를 영화 안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면, '자유의 언덕'에서는 '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적으로 묻고 있는 듯 했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번에도 참 놀랍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계속 더 발전하고 있다.



1. 영화 속에 등장한 북촌 코스는 한 번 쭈욱 돌아봐야 겠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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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이번 EIDF 2014에서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애런 슈워츠에 관한 작품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The Internet's Own Boy, 2014)'다.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소년 정도로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말 제목인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그의 편에 서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IT업계에 있긴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였다. 앨런 슈워츠는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블로그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RSS를 개발한 것은 물론, 저작권과 관련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 역시 만든 장본인이다. 특히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이미 프로그램에 눈을 떠서 자신이 생각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코드로 구현 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인생에 대해 특히 천재 프로그래머로서의 면면 외에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면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앨런 슈워츠는 단순한 천재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원했던 용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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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레딧, RSS 등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 그가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미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돌아보며, 현대 정보 통신 이면에 숨어 있는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친다. 무엇이 그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2014년 Hot Docs 개막작


세상을 바꾼, 혹은 바꾸려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보면 감탄과 동시에 우러러 보게 되는데, 앨런 슈워츠의 경우는 정말 최근 내가 알게 된 누군 가의 삶 가운데 가장 진심으로 우러나와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주장했던 것들은 그가 천재 개발자나 해커여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해할 만한 평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그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순 없을 땐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역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던. 그래서 천재 해커로서 그가 이룬 것들 보다 오히려 사회운동가로서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더 대단하고 인정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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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가 사회의 불합리와 싸워온 과정들을 보면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뻔하게만 느껴지는, 바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명제였다. 더 나은 세상은 누구나 꿈꾸지만 막연하거나 실제로는 이를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진심으로 이를 위해 싸우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겁내지 않았던 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몹시 두려워 했고 힘겨워 했다) 애런 슈워츠의 삶과 행동을 보니 무언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 그러니까 이 작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시스템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 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애써 생산한 콘텐츠를 너무 쉽게 도용하는 잘못된 사용과 이해가 만들어 낸 상황들 때문이기도 한데,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좀 더 공유 보다는 만든 사람의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시스템을 만들게 된 계기와 이후 그의 삶에서 그가 보여준 정보 공유가 한 사회, 아니 세대와 역사에 끼치는 영향을 보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작게 생각하면 정보라는 것은 생산하거나 처음 취득한 사람이 개인적 이익의 측면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정말 속 좁지만 내가 어렵게 알게 된 걸 그저 남이 쉽게 알게 되는 자체가 못 마땅해서 지식 공유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애런 슈워츠의 경우 처럼 이를 더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이 한 사회의 단위로 공유될 때, 그 이전엔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까지 가능한 가를 그가 설파 한 논리는 물론 실제 그의 생각을 믿고 있던 이들이 이뤄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애런 슈워츠는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프로그램 안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미처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공유라는 마법의 스펙트럼이 코드로 쫙 머리 속에 펼쳐졌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의 삶에 진정으로 감동 받았고,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만들고자 했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무엇을 행동으로 옮길 까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EIDF]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 - 다시보기

http://www.ebs.co.kr/replay/show?prodId=112658&lectId=10245365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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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DF] 인디게임 (Indie Game: The Movie, 2012)

모든 인디 제작자가 겪게 되는 일들



정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거기다가 인터넷에서 다시 보기로 까지!) EIDF! 매 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영화제라 이번 역시 어떤 작품을 먼저 볼까 고르던 중이었는데, 일단 가장 구미가 당겼던 '인디게임'을 선택하였다. 뭐 게임이라면 워낙 관심이 많고, 지난 해 흥미롭게 읽었던 조던 매크너의 '페르시아 왕자 개발 일지'처럼 내가 평소 즐기는 게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 궁금했기에 주저 없이 이 작품을 가장 먼저 택했다. EIDF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간략한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여기에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젊은이들이 있다...에드먼드와 토미는 게임 <Super..Meat..Boy>의 출시를 7개월 앞두고 있고,..필은 4년 동안 준비한 게임 <FEZ>의 공개를 5개월 남겨두고 있다...화려한 그래픽으로 가득한 스크린 뒤에는 개발자들의 고난과 역경만이 계속되는데……...과연 게임은 무사히 완성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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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디게임 한 편이 어떤 과정, 특히 소비자는 미처 알기 어려운 힘겨운 과정과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출시가 가능한지 그 이면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론 사실 '인디게임' 이라는 제목 가운데 '게임'에 더 흥미가 느껴져서 보게 된 작품이었는데, 보고 난 느낌은 '인디'에 더 전반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게임 측면으로는 나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엑스박스 마켓 플레이스에 출시되는 인디 게임을 다룬 이야기라 하나 하나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역시 '인디'게임의 제작 과정을 소재로 했다는 것. 대형 게임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이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물론 이 과정도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1~2명의 개발자가 기획, 개발, 디자인, 퍼블리싱, 마케팅까지 담당하는 독립적인 제작과정의 이야기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 과정에서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게임 개발이라는 특성상 홀로 사회와 멀어져 오랜 시간을 개발에만 몰두하거나, 그렇게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가까운 심리적 상태를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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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인디 게임과 그 시장의 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부터 출시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십분 공감할 만한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서비스를 운영했던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기도 했고, 특히 최근 다른 새로운 서비스(제품)를 처음부터 하나 씩 만들어 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터라, 이들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일들은 물론, IT업계에서 기획,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이 본다면 아마 여러 부분에서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EIDF는 정말 감사하게도 방영 시간을 놓친 작품이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보기를 제공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 링크를 통해 감상하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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