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을 보았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메마르고 황폐하고 남겨진 인물과 장소를 통해 자신 만의 인장을 깊게 새겨왔었다. 항상 장소에 국한되는, 혹은 그곳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장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완성했으며, 이 곳은 감독 자신이 자란 곳이기도 헀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겪고 느꼈던 과거가 담길 수 밖에 없었던 '두만강'은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그저 상황에 인물들을 던져두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상황에 처한 인물들 역시 처연하게 일들을 겪어가는 인상을 깊게 남겼던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은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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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의 한 작은 마을. 이 곳은 북한 함경도에서 탈북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경유하는 곳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리적 배경에 놓인 곳이다. 장률 감독은 바로 이 민감한 두만강 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비유를 들어 관객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한 편, 정 반대로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 (아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가 특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어른들로 대변되는 외부의 요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어떻게 잠식해 가는 지에 대한 과정을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려낸다. 

결국 '두만강'의 일들은 '경계'와 '경유'의 의미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 경계 넘어의 곳인 동시에 돌아가기 위한 경유지였으나 예전에는 존재했던 경계 간의 다리가 사라지면서 결국 그대로 남겨지게 된 두만강 변의 마을. 삶과 죽음의 거리 역시 그 어느 곳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 곳은 마치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연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난 때문이기는 하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항상 같은 옷을 입는 모양새, 배고픔에 경계를 넘어온 아이들 중 하나가 죽어도 '숨이 없어'라고 덤덤히 말하고는 그냥 갈 길을 가는 아이들의 뒷 모습, 그리고 영화 내내 드리워진 겨울의 차가운 공기까지. 마치 이 마을은 어떤 외부의 힘도 깨기 어려운 철옹성이라기 보다는, 조금만 물들여도 쉽게 물들고 마는 순백의 편견없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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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탈북자들의 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이 마을의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편에 서서 탈북자들을 공안에 신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을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전달되고, 아이들의 세상 역시 어른들의 그것으로 물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음'으로 이해되는 부분, 그러니까 누구하나 쉽게 단정지을 정도의 절대적 악한은 등장하지 않는다. 순희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는 무릎 꿇고 감사를 표시하던 탈북자의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그가 순희에게 범한 일은 물론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 역시 가해자라기 보다는 피해자로서 볼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하며, 탈북자들을 도왔던 같은 마을 사람을 신고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보상금을 타려고 한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메시지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장률 감독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애써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보편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조건에 있다. 두만강 건너 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건너 편에서 바라보게 되는 시선 말이다. 상영 후 가졌던 대담에서 장률 감독이 했던 얘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살고 있는 중국이나 연변에서 두만강 건너 편을 바라보면 전혀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데, 남한에 와서 두만강 쪽을 바라보면 경계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역시 남한이라는 정치적, 지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로서 또 다른 경계와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떨쳐내려해도 결국 단순하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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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속의 의미. 이 영화를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린 이유는 아주 미약한 희망 때문이거나 혹은 그 미약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더 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어린 창호와 정진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현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룰에 따라 상처를 받게 된다. 정진은 위험을 무릎쓰고 창호와의 약속을 지켰고, 창호 역시 자신 만의 방식, 아니 아무것도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정진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이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지켜낸 약속의 의미는 결코 희망적이지 만은 않다. 상상 속의 다리가 희망을 꿈꾸게 하기 보다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씁쓸함을 안기는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지켜낸 이 약속의 방식은 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맨 처음 '두만강'을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서 몹시 감정적으로 '극적'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극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치장된 영화들에 못지 않은 감정적인 떨림이 있었다. 실제로 너무 심장이 뛰는 나머지 가슴을 부여잡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동요가 있었는데, 장률 감독의 작품에서 이런 극적인 떨림을 겪게 될 줄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큰 인상을 주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포스터에 새겨진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라는 문구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보고 나니 이 문구에 담긴 정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두만강'에는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1. 영화가 끝나고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정말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장률 감독에 작품 세계와 '두만강'에 대한 깊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공감되고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가득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와의 친분에서 오는 '까페 느와르' 농담들과 더불어 정말로 '재미'있는 얘기들도 많았구요.

2. 이번 '두만강' 시사회는 장률 감독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장률 감독의 팬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질문들의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아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3. 장률 감독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본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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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The Fighter, 2010)
가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매 작품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과 (이젠 많이 지겨운 얘기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접고 배우로서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주고 있는 마크 월버그,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출연하고 있는 데이빗 O.러셀의 신작 '파이터 (The Fighter)'는 라이트웰터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동생 미키 워드와 슈가 레이 레너드와 경기를 치르기도 했던 형 디키 애클런드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미키 워드는 'Irish'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으며 아투로 가티와의 기념비적인 경기로 더욱 유명한 복서인데,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를 연출했던 데이빗 O.러셀 감독은 이 실화를 권투 영화로 그리지 않고 가족 영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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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이터'에는 권투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패배를 계속해 오던 복서의 재기와 성공,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 하던 주인공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권투 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이터'는 스포츠 영화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의 삶에 중심을 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보니 주인고은 오히려 미키 워드가 아니라 디키 애클런드에 더욱 가까워졌다.

둘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후자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보편적인 캐릭터인 미키 워드에 비해 디키 애클런드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 그리고 놀라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덕이었다 하겠다.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파이터'에서 보여준 디키 애클런드의 연기는 그 가운데서도 기존의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로 맡아온 역할은 (몸무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주로 무겁거나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디키 애클런드'는 경망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사고 뭉치인 동시에 떠벌이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캐릭터였기에 더욱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염 기른 점잖은 모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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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본론인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보자면, 극 중 등장하는 미키의 가족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아들을 끔찍히 아끼기는 하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아들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많은 누나들. 멜리사 레오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과 여러 명의 누나들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누나들은 여럿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행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로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경우보다는 우리 영화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고 보아왔던 문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기에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빗 O.러셀은 이 가족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은 공포스럽게도 또 한 편으로는 코믹하게도 그려내고 있는데,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의 든든한 배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많지만 철옹성 같이 두터운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샬린 (에이미 아담스)'의 존재도, 이 가족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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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이터'는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을 굴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 마저도 극복해 나가느냐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겠다. 극중 미키와 디키가 겪는 갈등의 핵심은 성공도 사랑도 아닌 바로 가족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그 말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키와 가족에 모든 기대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디키, 이 영화가 선택한 과정은 챔피언으로 가는 여정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간절하게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미키 워드를 주인공으로 한 권투 영화였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은 아마도 일찌감치 그의 인생에서 배제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가족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복서였던 형 디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파이터'는 결국 권투영화일지도 모른다. 미키와 디키 그리고 가족들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챔피언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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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 실제 주인공들의 뒷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는데,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나타낸다.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별다른 코멘트가 없어도 이들이 실제 미키와 디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영화 속 처럼 활발한 모습의 디키와 이런 형의 넉살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는 미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훈훈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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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함께 아무말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도 디키와 엄마가 차 안에서 Bee Gees의 'I Started a Joke'를 부르는 장면은 역시나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곡이라 더욱 그랬구요. 여기에 Red Hot Chili Peppers의 'Strip My Mind'까지 나와서 황홀!

2. 하도 가족영화, 가족영화해서 권투영화로서의 장점을 조금 보태보자면, 극중 권투 경기 장면은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당시 방송촬영 영상을 컨셉으로 수록되었습니다. HBO의 유명한 방송스타일 말이죠.

3. 극중 등장하는 슈가 레이 레너드는 실제 그가 연기하기도 하였습니다.

4. 극중 디키가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던 슈가 레이의 다운 장면. 이것이 슬립 다운인지 넉다운인지는 직접 판단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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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단도직입,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윤성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수꾼'은 포스터 맨 위에 문구처럼 올해의 발견이자 가장 빛나는 데뷔작이라 할 수 있겠다. 윤성현 감독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어린 나이에 정말 멋진 데뷔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 등을 살펴보자면 더더욱 놀라운 데뷔작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영화는 미스테리의 방식으로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기태의 아버지이며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있어 아들이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데, 이 이후에도 이 미스테리 방식은 계속 되지만 이 영화는 전혀 미스테리는 아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전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시간의 재배열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은 감각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다. 아, 한 편으론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파수꾼'은 학창시절 그 누구도 왜 그래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우정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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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은 기태와 희준, 동윤, 이 세 친구들의 관계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 이전에 '파수꾼'은 소년과 학교 그리고 우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흔히 가곤 하는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표면적인 폭력과 사춘기 솟아나는 사랑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폭력을 권력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사실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파수꾼'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조금은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일단 이 영화가 폭력을 그리는 방식, 폭력의 피해자 보다 가해자(피해자인 동시에)를 묘사하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극중 기태(이제훈)는 학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무리를 거느린 일종의 권력자다. 항상 같이 다니는 무리들 중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무섭게 그리고 상대가 무력화되도록 겁을 주곤 하는 존재다. 그러던 기태가 어느 날 역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희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이 일로 인해 희준은 큰 상처를 입고 기태를 멀리하려 한다. 

이 영화가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기태가 사과를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이유는 바로 폭력의 주체였던 기태조차 자신의 저지른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 몰랐던 것은 물론, 결국 그 결과와 맞닥들이게 되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고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기태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그것처럼 처음부터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이 아니라, 잠깐의 실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로 인해 가해진 상처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게 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역시 비슷한 (혹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훈이 연기한 기태가 그 상황을 맞닥들이는 장면의 전율에 가까운 떨림은 정말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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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평범하지 않은 동시에 더 섬세함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묘사를 들 수 있을텐데, 일단은 기태와 희준, 동윤이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우정을 나눈 친구로 묘사되었다는 점과 더불어 기태 역시 직간접적인 피해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이런 면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직접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기태는 분명 미워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추억과도 같다. 일단 영화는 기태라는 캐릭터의 단서로 그의 아버지와 가족을 들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태의 아버지는 죽음 이후 기태의 친구들을 수소문해 궁금한 점들 혹은 의심되는 점들을 찾아가고 있다. 기태 아버지의 여정은 아들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오는 속죄의 여정에 가깝다. 어머니의 부제와 존재는 했지만 곁에 있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 이로 인해 외로움과 결핍을 겪어야 했던 기태는 주목 받기 위한 삶을 자연스레 택하게 되었고, 어쩌면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와 기태의 자리를 몇 번 그대로 포갠듯이 묘사한다. 영화의 시작, 위 층에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큰 상처를 받은 기태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지고, 동윤이는 같은 장소에서 기태와 기태 아버지를 모두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분명 아버지의 속죄의 여정이지만 그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기에 속죄는 없다. 후회만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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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가장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묘하고 섬세한 관계에 대한 감정 묘사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세한 감정묘사가 단순히 묘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스테리일지도 모른다'라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결국 이 작품은 세 친구의 우정과 그 헤어짐을 통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된 걸까에 대한 물음이자, 아니 묻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아니 그렇게 밖에는 못했던 수 많은 관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극 중 주인공들의 대화를 보면 핵심이 없다. '뭐' '그래서' '그래서 왜' '뭐가 어쨌는데'라는 식의 서로를 방어하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식의 대화들이 주를 이룬다. 자아가 만들어져 가는 시기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이들은 마음을 열고 상대를 이해하기 보다는 이내 마음을 닫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핵심없이 겉돌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조차 서로 알지 못한 채 안타까운 해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파수꾼'은 세 친구에게 똑같은 애정을 쏟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기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크게 묻어나고 있다. 결국 희준과 동윤이 역시 기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과연 더 현명한 우정으로 이 간극을 극복할 수는 없었는지. 영화가 이 안타까움을 그리는 라스트 씬에서는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영화적 기운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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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보고나서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들,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1. 기태 역의 이제훈씨를 비롯해 서준영, 박정민 이 세 사람의 연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기태의 그 흔들리는 눈동자와 불안하고 당황한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2. 사실 이 영화가 조금 더 개인적인 다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된 기차역이, 바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의 장소이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아는 곳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엔딩 크래딧에 원능역이 있는 걸 보고나서 역시!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저 기차길에서는 불량한 형들을 비롯해 학생들이 자주 놀 던 곳이기도 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걸터 앉아 놀던 기억이 있어 제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실제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기차길 바로 앞 아파트에서 살았기 때문에 메일 학교가려면 그 기차길을 지나야 했거든요.

3. 윤성현 감독과 세 배우의 앞날이 모두 너무나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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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이브 (True Grit, 2010)
코엔 형제가 말하는 진정한 용기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진정한 용기 (True Grit, 1969)'와 찰스 포티스의 소설 'True Grit, 1968'을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True Grit (국내 개봉명 : 더 브레이브)'은 서부 영화의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그들의 전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는 또 다른 묵직한 서부영화인 동시에 '시리어스 맨' 이나 '번 애프터 리딩'에서 보여주었던 재기 넘치는 '코엔 형제스러움'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다. 188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서는 당찬 14살 소녀 매티 (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매티가 여정을 위해 만나게 되는 루스터 카그번 (제프 브리지스)과 라 뷔프 (맷 데이먼)의 캐릭터가 더해져, 간단하지만 힘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코엔 형제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용기 (True Grit)'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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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는 처음부터 아주 강인하고 용기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할 때, 글도 못 읽는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밖에는 없어서 내가 나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곤 하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지는 매티의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도 나서고야 말았을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매티가 만나게 되는 카그번과 라 뷔프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지만, 무언가 하나 씩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카그번은 배짱있고 노련한 보안관이지만 정의보다는 돈에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고, 너무 이런 생활을 오래 한 나머지 불한당 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져 버렸을 정도다. 그에 반해 텍사스 레인저 라 뷔프는 역시 레인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현상금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카그번과 협력 했을 뿐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이다. 이런 이들이 매티를 만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어쩌면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이 작품의 전개에 있어 복수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영화는 마침내 매티가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 (조쉬 브롤린)와 만나게 되는 장면을 마치 우연처럼 그리는 한 편, 이 후에도 이들의 조우에 직접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카그번과 라 뷔프의 행동에 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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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찌들 대로 찌든 캐릭터와 냉정하고 차가운 캐릭터가 뚜렷한 목적성으로 똘똘 뭉친 주인공에 의해 동화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엔 형제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이 동화의 과정을 별로 자극적이지도, 더나아가 심심할 정도로 건조하게 그리고 있다. 만약 카그번과 라 뷔프가 동화되는 과정을 어떤 사건을 두고 감정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것으로 연출하거나, 매티의 복수에 촛점을 맞춰 톰 채니와의 긴장 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더 브레이브'는 오락적으로는 더 효과 높은 작품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평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묵직한 주제를 뒤에 탄탄히 받쳐두고는 마치 이 주제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믿는 것처럼, 별다른 수식어 없이 진중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화술 덕에 영화의 마지막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들려주는 후일담은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찬송가의 분위기와 맞물려 종교적이기까지한 무게를 전한다. 후일담을 들려줄 때도 영화는 절대 신파나 감정의 극대화를 노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가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용기란 어떤 수식어나 포장도 필요 없는, 강요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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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연을 맡은 매티 로스 역의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실제로도 14살의 소녀인데, 제프 브리지스, 조쉬 브롤린, 맷 데이먼을 리드할 정도로 당찬 연기가 인상적이더군요.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조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자리를 하기도 했는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라 할 수 있겠네요.

2. 럭키 네드를 연기한 베리 패퍼도 인상적이었는데, 항상 전쟁 영화나 범죄 영화 등에서 우수한 병사나 요원 중 하나로 나온 적은 많았지만, 이번 처럼 무리의 우두머리로 나온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했다는 ㅎ

3. 조쉬 브롤린은 '환상의 그대'에 이어 연속으로 찌질한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이번 작품에서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한 동안 조쉬 브롤린 하면 날카롭고 좀 무섭기까지한 이미지였는데, 이러다가 너무 쉬워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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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그랬다. 그의 이름을 알게 해주었던 영화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이 그랬고, 얼마전 왕년의 스타 미키 루크를 다시금 끌어올린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연출할 작품인 '로보캅'과 '엑스맨 : 울버린 2'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애로노프스키는 항상 대상을 어떤 상황에 던져 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안한 심리와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다. 극한이라는 것은 언제나 완벽이라는 것과 강박이라는 것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런 것에 관심이 많던 애로노프스키에게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은 언젠가는 영화화 해야 했을 작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애로노프스키는 백조의 호수를 상당히 늦게 접하게 되어, 한 명의 배우가 백조와 흑조의 두 가지 자아를 연기해야만 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감독 스스로도 정작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에 자세한 내용은 뒤늦게 알았던 터인지, '블랙 스완'에서는 누구나 알법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두 차례나 거듭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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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발레단의 무용수 니나 (나탈리 포트만)는 누구보다 완벽한 안무와 실력을 갖고 있는 발레리나지만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발레단의 새해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단장인 토마스 (뱅상 카셀)로 부터 듣는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보게 된 단장은 니나를 주인공인 백조 여왕으로 캐스팅하고, 그녀는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에 몰입 또 몰입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흑조를 더 완벽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같은 발레리나로서 딸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큰 기대를 품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압박, 그리고 자신에게 자리를 빼았겨 버린 전 백조 여왕인 베스 (위노나 라이더)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자신이 갖지 못한 매력을 갖고 있는 릴리 (밀라 쿠니스)가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강박까지, 이 모든 것들을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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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블랙 스완'은 강박으로 인해 극한으로 치닫는 주인공의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텐데, 물론 이 강박은 완벽하기 위함 때문이다. 즉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니나는 (사실 이 작품은 강박 그 자체에 대한 텍스트에 더 가깝기 때문에, 본래 니나가 완벽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정황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해 완벽해야만 할 상황에 놓인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로만 보자면 영화 속 니나는 둘 다인것 같지만) 지나친 강박으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자아분열까지 일으키게 된다. 이로 인해 니나는 엄마와 릴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 어디까지가 니나의 환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역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접한 카메라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조명하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전하게 니나의 심리와 결합되어 움직인다. 여기에 동참한다면 관객 역시 니나가 겪는 불안한 심리와 강박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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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감독이었다면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해야 하는 니나의 강박을 그리 되, 심리적인 면에만 집중하거나 관객에게 보여지는 측면에 있어서는 덜 신경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그가 앞으로 맡게 될 '로보캅'과 '울버린 2'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같은 심리변화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 감독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이런 불안함과 강박이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정도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서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그야말로 그 강도와 속도가 심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폭발한다. 사실 나는 바로 극한까지 몰고가는 영화의 이 속도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 강도에 흠뻑 반했다. 사실 '블랙 스완'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독처럼 이 이야기를 잘 몰랐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를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도 흠뻑 빠질 수 있을 정도로 '블랙 스완'의 몰입감은 최고수준이다. 또한 '블랙 스완'은 완벽한 '백조의 호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니나가 백조와 흑조 연기에 모두 완벽해 질 수록 영화는 점점 더 '백조의 호수'에 가까워만 진다.

다시 매력을 느꼈던 그 '극한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블랙 스완'은 주인공인 니나가 극심한 자아분열을 겪게 되면서 부터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강도를 계속 높여 끝에 가서는 마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와 신지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극점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런 시각적인 표현 방법과 클라이맥스의 속도 그리고 이야기의 세기는 분명 과잉이다. 과잉이라는 것은 본래의 그릇을 넘어 넘쳐난다는 것인데, '블랙 스완'은 이 넘쳐나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넘쳐나기를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잉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감정선을 잃지 않은 채 과잉의 끝까지 극한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나는 이 극한을 영화와 함께 경험했다. 진짜 얼마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극중 주인공과 같은 박동으로 뛰고, 허기지고 힘이 들 정도로 몰입하며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블랙 스완'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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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실로 대단했다. 동년배 여자 연기자들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블랙 스완'에서 그녀의 연기는 극한까지 몰고간 감독 애로노프스키처럼 극한까지 표현해 내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작품이 끝난 뒤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시각적인 표현이 지금처럼 없었더라도 아주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만큼이나 무섭도록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뱅상 카셀의 경우, 아주 오래 전 '증오'부터 은근히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나에게 있어 뱅상 카셀은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이 아니라 그냥 오롯이 뱅상 카셀이다), 오랜만에 깊은 인상을 주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특히 뱅상 카셀이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었나? 라고 느낄 정도로 세련된 발레단 단장의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다. 확실히 얼굴 속에 독기를 가득 담고 있는 뱅상 카셀의 캐스팅은 나탈리 포트만 만큼이나 완벽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덴젤 워싱턴과 함께 했던 '일라이'에서는 비쥬얼 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과는 달리, 밀라 쿠니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릴리' 라는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데에 아마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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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아주 불안하고 관객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자아분열의 심리묘사를 다룬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그리고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기가 빨려버린 것만 같은 피로감이 느껴졌지만, 또 한 번 이 극한의 예술을 한 번 더 맛보고 싶다.


1. 예전에는 그냥 흘려보거나 지나쳤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블랙 스완'을 보고나니 너무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갖고 있는 DVD들 중에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타이틀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2. 잔잔한 것만큼이나 극한에 대한 도전적인 영화를 즐기는 저에게 있어서 '블랙 스완'은 올해의 영화 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3. 글을 쓰며 영화를 한 번 더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오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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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Late Autumn, 2011)
유령과도 같은 하루


이만희 감독의 동명작품을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한국인 훈(현빈)과 중국인 애나(탕웨이)가 미국 시애틀에서 만난 하루를 담은 작품이다. 사실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현재는 필름 프린트가 존재하지 않아 본 사람들 보다는 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 많기 때문에 조금은 자유롭지 않았을까도 싶지만, 영화 감독들 및 영화인들 사이에서 이만희 감독의 원작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태용 감독에게는 오히려 더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 역시 원작을 본 적은 없고 단지 이 작품이 갖고 있다던 이미지와 정서만 전해 들은 것이 고작이라, 오히려 오롯이 김태용 감독의 작품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래서였을까. '만추'는 탕웨이와 현빈이라는 배우의 옷을 입은 김태용 감독의 또 다른 하루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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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기 위해 교도소에서 특별히 하루 외출을 허가받은 애나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훈을 만나게 된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그리고 그녀가 처한 현실 때문에 애나는 누군가와의 새로운 만남이나 인연을 굳이 만들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 훈의 적극적인 행동에 아주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훈 역시 자신이 현재 처한 도망자 신세와 직업적인 면에서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점점 애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훈과 애나가 함께 보내게 되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마음의 동요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만추'의 주인공은 탕웨이가 연기한 애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대부분의 심리 묘사가 그녀 위주로 진행되며 현빈이 연기한 훈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애나의 하루를 함께하는 외부 작용으로서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애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담긴 멜로였음에도), 오히려 후반부 훈의 개인적인 이야기 부분은 조금은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차라리 훈의 이야기를 좀 더 쳐냈더라면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너무 친절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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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에게 있어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하루는, 예상치 않았던 훈의 등장으로 인해 판타지스러운 혹은 유령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서로 자신의 말이 아닌 영어로 대화하는 이 둘의 관계는, 각자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 3의 매개체로 이어진 관계라고 볼 수 있겠다. 애나에게 있어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녀의 과거는 중국어가 지배하는 세계고, 훈에게 있어 누님들을 만나 유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일들은 한국어가 지배하는 세계다. 애나와 훈은 하루라는 짧은 시간 탓도 있지만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의 영역에서 서로의 세계는 잊은 채 조우하려고 한다. 그래서 제 3의 언어와 공간이라는 조건은 이들에게 미묘하지만 마음이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은(특히 애나의 입장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다. 훈이라면 이미 많은 것이 어긋나기 시작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미약한 가능성, 혹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아주 조금의 기대. 이런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영화는 느리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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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성과 더불어 김태용 감독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역시 놀이공원에서 벌어진 판타지 시퀀스다. 이미 전작 '가족의 탄생'을 통해 이런 공중부양 판타지를 보여주었던 김태용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즉 두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감성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 시퀀스는 단순히 보여지는 것의 판타지가 아니라 그 안에 외국인 두 남녀의 몸짓과 거리 (서로가 다른 속도와 보폭으로 걷기에 쉽게 만나기 어려운)의 묘사 등을 통해 애나와 훈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퀀스를 역시나 좋아하지만 한편으론 약간 길게 느껴지는 분량을 떠나서, 조금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연극 시퀀스의 감정이 오히려 주인공들의 감정보다 더 과잉이 되어 있어, 시작은 주인공들의 감성에서 시작했지만 시퀀스가 끝날 때에는 그냥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이 내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아주 천천히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시퀀스는 아주 마음에 드는 부분인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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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탕웨이라는 배우의 얼굴은 여러가지 표정을 지을 때보다 절제하고 있을 때 훨씬 진면목이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는데, '만추'에서는 특히 이런 탕웨이 만의 매력이 흠뻑 담겨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특히 화장을 했을 때보다 거의 안했을 때가 훨씬 매력적인 그녀의 얼굴의 오목조목함이 잘 담겨 있고,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안개와 잘 어울려 하나의 그림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빈의 경우 무엇보다 '훈'이라는 캐릭터가 어색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시크릿가든을 보지 않아서 몰입하는데에 아무 걸림돌이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지 모르겠다).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유령같은 하루를 담아낸 것에 만족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려고 했던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그 정도에서 그쳤기에 전반적으로 인상 깊은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1. 이 작품에 일등공신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현빈이 입고 나온 극중 코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묘한 주머니 위치가 만들어낸 미장센이란! 만약 보통 코트를 입고 나와서 일반적인 모양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훈이었다면, 분명 이 정도로 각인 시키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2. 참고로 극중 훈과 식당에서 설전을 벌였던 남자배우는 한국인 배우 김준성 씨네요. 반응들을 보니 이 분 밉다는 분들 많던데, 그 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반증일듯;

3. 시애틀 관광코스에 있던 오리버스(?)는 한 번 타보고 싶더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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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민용근 감독의 영화 '혜화, 동'은 스물 셋 혜화 (유다인)의 지난 겨울 이야기 그리고 아직 겨울인 혜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등학생이었던 혜화와 한수는 서로 사랑했고 혜화는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무렵 한수는 말도 없이 외국으로 떠나버리고, 혜화는 아이를 잃은 채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혜화는 동물병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고 보살피는 일을 하던 중, 다시 나타난 한수에게 아이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다시 한번 혜화의 삶은 크게 요동친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는 데에도 '다시 (Re-encounter)'를 여러 번 사용하게 된 것처럼, '혜화, 동'은 다시 겪게 되는 아니 겪어야만 하는 풀지 못한 미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년이 흐른 뒤 혜화의 모습은 다시 금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냥 터지지 않은 상처일 뿐, 치료 후 아물지 않은 상처와는 다르다. 그냥 시간 속에 꾹꾹 눌러담아 두었던 과거의 일들은 5년이 지난 뒤 다시 나타난 한수로 인해 다시 쓰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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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앉고 있는 혜화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특별한 구분 없이 넘나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의 장면과 현재의 장면이 영화적으로 별다른 장벽이나 구분없이 섞여 놓여있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혜화의 과거의 상처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은 흘러갔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혜화의 시간은 그대로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동일선상에서 두고 풀어가지만, 영화 속 혜화와 한수는 현재를 위해 과거로 계속 돌아가려고 한다. 혹은 치유되지 않은 과거는 무시한 채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한수는 혜화에게 미안한 마음과 혜화가 앉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식을 꺼내온다 (이 방식은 영화의 마지막 일종의 반전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 반전이 극적인 요소를 주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반전의 연관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혜화는 한수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의 상처를 다른 것들을 통해 잊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보다는 다른 것들로 그 빈자리를 채워가는 것이 치유된다고 믿었다. 자신의 아이의 빈자리는 일하는 동물병원 원장의 아이에게서 채우고, 한수의 빈자리는 동물병원 원장과의 관계에서 채워가고 있었고, 어린 시절 키웠던 개 '혜수'와 새끼들을 보내야만 했던 것과 더 나아가서는 이 모든 것을 보내야만 했던 빈자리를, 집을 잃고 상처받고 버려진 개들을 구조해 보살피는 것에서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혜화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듯 했던 존재들은 모두 혜화가 아닌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와 맞물려 한수가 나타나면서 혜화는 결국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니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와 직면하려고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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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으로 잠시나마 직면하고서야 혜화는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혜화가 갖고 있는 상처는 치유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그 앞에 서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혜화는 고민 끝에 이 모든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을 택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가능한 선택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 있다. 혜화의 선택을 통해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길었던 겨울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혜화는 그걸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 사실 고민은 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던 선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은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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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중 삽입되고 엔딩 크래딧에도 흐르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처음 들었을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가 혜화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과 곡의 가사가 잘 맞아 떨어지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이 곡의 가사도 잘 보면 희망적이거나 하기보다는 안되는 것,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담담히 인정하는 것에 가까우니까요.

2. 유다인 씨의 연기는 역시 참 좋았습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 때 그녀의 얼굴은 그저 평범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백지에 점점 무언가가 써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러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 눈망울의 깊이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3. '혜화, 동'은 반려동물에 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혜수의 딸로 여겨지는 그 강아지가 철거된 집에 홀연히 나타나는 그 장면의 컷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서 시시가미가 등장할 때처럼 정적이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확실히 동물의 눈빛이 주는 특별함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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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100번째 영화 '1911' (신해혁명)
(Jackie Chan's 100th Movie) 


성룡의 100번째 영화의 포스터가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신해혁명 영화화한 '1911'이 그 작품인데, 성룡의 100번째 작품과 신해혁명의 100주년이 겹쳐져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국내를 비롯한 중국 외 해외 팬들에게는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이룬 다룬 작품이라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성룡 형님의 100번째 작품이라는 그 한 줄의 문구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텐데, 이런저런 수식어를 가져오지 않아도 'Jackie Chan's 100th Movie'라는 저 문구가 얼마나 눈물나도록 멋스러운지, 그의 오랜 팬으로서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공개되기 전 팬들 사이에서는 제작 계획을 밝힌 바 있는 '용형호제 3'가 성룡의 100번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하곤 했었는데, '용형호제 3'가 되었어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성룡은 좀 더 자신의 100번째 작품에 무게감과 의미를 더 두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에 공개된 포스터 속 성룡의 모습은 그 동안 성룡하면 쉽게 떠오르던 밝고 유쾌한 얼굴은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이런 경향은 이미 최근작 '베스트 키드'나 '대병소장'을 통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던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성룡은 장리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을 맡고 있으며 (General Director), 아시아영화로는 최초로 중국와 미국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 작품에는 성룡 외에 '적인걸'에 출연했던 여배우 이빙빙과 '검우강호'에 출연했던 왕학기 그리고 '색,계'와 '24시티'등에 출연했던 조안 첸이 출연하고 있는데, 참고로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이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장쯔이 역시 캐스팅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아무래도 그녀는 최종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올해 10월 중국와 미국에서 동시 개봉 예정이며, 아직까지 국내개봉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국내에서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성룡 형님의 100번째 영화라는 점도 너무 감동스러웠지만 저 포스터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가 없더라 ㅠㅠ 내 인생 최고의 배우 성룡은 과연 100번째 영화에서 또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어떤 표정과 연기를 보여줄까. 아직은 멀기만한 올 10월이 너무도 기다려진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회상


내게 있어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기억하는 것 만큼 아련한 작품은 사실 아니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사실 그다지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도 있고, 그냥 단편적인 기억에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스~'로만 기억되는 러브 스토리로만 기억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더불어 이와이 슌지 보다는 이누도 잇신에 감성에 더 가까운 편이었고 그의 작품들 가운데도 '러브레터' 보다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더 좋아하는 부류였다. 이렇듯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반적이리만큼 유명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러브레터'가 며칠, 아니 몇 달 전부터 몹시 아련해져오기 시작했다. 특히 너무나도 익숙한 사운드트랙인 'A Winter Story'의 피아노 선율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맴돌았고, 이런 앓이는 결국 아주 예전에 구입하였지만 거의 꺼내어 보지 않았던 DVD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꺼내어 보도록 이끌었다.





그렇게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된 '러브레터'는 확실히 달랐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꺼내어 듣게 되지 않는 뮤지션의 최고 히트곡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도 와닿으면서 '그래, 역시 명곡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왜 '러브레터'인가 라는 것에 대해 새삼 아니 비로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조금 특별한 구조로 풀어놓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게 된 '러브레터'는 그것 보다는 결국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와이 슌지가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 직접적이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인데, 예전에는 이 비유가 그냥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그 비유가 너무 직접적으로 느껴질 만큼, 체감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극 중 후지이 이츠키는 오해로 인한 와타나베 히로코의 편지를 받고서야 자신의 시간 속에 동명이인이었던 남자아이 후지이 이츠키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고, 그와 연관된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놓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녀 시절의 기억들도 떠올리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또 한 명의 후지이 이츠키와 공유한 시간들을 기억해 내게 된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어린 시절 자신과도 같은 소녀들이 전해주는 도서대출카드에 숨겨진 진실은 이 잃어버린 시간들에 대한 영화의 메시지에 확실한 마무리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이 마지막이 없었더라도 이미 후지이 이츠키가 와타나베 히로코를 통해 겪게 되는 회상의 일들은, 그것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쓰~'의 정서를 100%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못했던 것을 이번에 보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장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는 수많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들이 모두 잊혀지고도 남을 만큼 깊은 것이었으며, '잘 지내시나요~ 나는 잘 지내요~' 라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그 때보다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달까. 그리고 '나는 잘 지내요'라는 말이 얼마나 하기 힘든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아무 이유없이 간절했던 '러브레터'를 비로소 보고 나니, 무언가 큰 일을 치른 것만 같은 감흥마저 들었다. 10년 만에 다시 본 '러브레터'. 과연 또 한 번의 10년 뒤에 다시 보게 된 다면 또 어떨까. 그 때는 '나는 잘 지내요'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달을 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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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Tangled, 2010)
디즈니가 가장 자신있는 마법의 세계


애니메이션을 극 영화보다 덜 사랑하지 않고, 디즈니의 최근 행보에 적극적인 환영을 보내는 입장이었음에도 사실 신작 '라푼젤 (Tangeld)'은 처음부터 기대작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소녀와 공주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따지고보면 '라푼젤'은 공주이야기가 맞고, 이런 지나친 소녀 이야기를 사실 싫어하지도 않는다는 아이러니), 시사회를 비롯해 들려온 주변의 평가는 그야말로 호평 일색이었다. 다른 사람의 평에 쉽게 현혹되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볼 필요도 없어'라는 정도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커진 기대감을 안고 극장을 찾게 되었고 결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라푼젤'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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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가 그러했고, 디즈니의 전작 '마법에 걸린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라푼젤'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부담을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아낸 가장 좋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라푼젤'에 와서야 '디즈니는 진작 이래야했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것이, 디즈니는 이 정도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었지만 근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었다. '볼트'의 경우 디즈니가 전통적으로 지향하던 바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작품이었다면 극영화였던 '마법의 걸린 사랑'이야말로, '이것이 디즈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서 선보인 신작 '라푼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디즈니의 노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이 바로 '라푼젤'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말해 픽사가 주도권을 쥐게 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픽사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아닌 (사실 이제는 디즈니와 픽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라푼젤'만 해도 executive producer로 픽사의 수장인 존 라세터가 참여하고 있으며, 아무리 전세가 역전되었다고는 하나 디즈니가 픽사를 따라간다는 것은 픽사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개발하는 길을 택했고, 그리하여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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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생각해볼 것도 없이 뮤지컬 장르를 배경으로 한 유치하리 만큼 순수한 세계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의 전성기에는 누가 뭐래도 뮤지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라푼젤'에서 디즈니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 이어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인 환상적인 뮤지컬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확실히 예전보다 뮤지컬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감안한다면 변화를 걱정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이 마법의 주문은 21세기에도 다시 통한다는 것을 이 작품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3D라는 기술을 적극 도입하기는 했지만 '라푼젤'은 어디까지나 클래식한 디즈니의 전형적 애니메이션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요즘같이 다양하고 소박한 소재들이 넘쳐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왕국과 공주, 마녀와 공주를 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구조는, 영화를 보지 않고 줄거리만 본다면 굳이 작품을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3D 효과를 비롯한 기술적 발전을 과도하게 발견할 수도 없지만, '라푼젤'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즉, '라푼젤'은 본연의 것에 가장 충실하되 그 주변의 부수적인 것들이 중심을 해치지 않을 정도에서 최대치를 제공하고 있는 아름다운 균형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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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디즈니의 기술적 진보에 사뭇 놀라기도 했었다.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분명 최고의 기술 수준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기술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물과 피부 그리고 털의 묘사 장면에서도 한 차원 발전한 디즈니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댐이 부서져 물이 쏟아지고, 그 물에 젖어 동굴 안에 갇히게 된 캐릭터들의 묘사 장면은 아마도 애니메이터들이 가장 뿌듯해 할만한 시퀀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3D 아이맥스의 경우도 기술과 작품이 가장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3D 입체효과를 관객들로 하여금 꼭 인지시키기 위해 부담스러운 시퀀스를 넣지 않고도 관객들이 '황홀한 3D 경험을 했다'라고 느낄 만큼 균형을 잘 맞추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에 3D 영화를 보면서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느낀 장면이 있었을 만큼 (실제로 최근 3D 영화 관람 분위기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입체효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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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린 시절 보았던 디즈니 작품들을 어른이 되어서 떠올려 보았을 때 가장 문제라고, 특히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디즈니과 권선징악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다. 권선징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디즈니가 악당을 묘사하는 방식 때문이었는데,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주인공이고 우락부락하고 덩치 큰 사라은 악당이거나 공룡이 나오는 작품을 예로 들면 초식공룡은 착하고 육식공룡은 나쁘다 라는 식의 겉모습과 외모만을 통한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주기에 교육적으로는 좋지 못한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디즈니의 전통적인 방식을 보기 좋게 꼬집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슈렉' 이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이고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슈렉 1편의 결말에서 디즈니였다면 피오나가 마법에 풀려 다시 아름다운 외모의 공주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한'이야기였을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라푼젤'은 이 같은 전통적인 선입견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극 중반 악당처럼 험상굳은 도둑들이 잔뜩 등장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외모의 선입견으로 한정 짓지 않고 그 나름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후반부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역할을 부여받아 중요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냥 거친 외모와 덩치의 캐릭터들이 사실 나쁘지 만은 않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을 초반에 복선으로 배치한 뒤 후반부에 이들이 그 꿈으로 인해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또 한 명의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마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미묘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저 착한 주인공을 유혹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할 만큼 (사실은 그다지 동정할 만한 부분이 없었음에도), 그녀가 퇴장할 때 전통적인 권선징악 구조의 통쾌함이 들지 않았다. 이건 부연설명으로도 썼던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를 확인해보면 동정할 만한 점이 없었음에도 악당이 악당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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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은 마지막에 가서도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 놓는다. '이러이러하여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에 대해 굳이 변화하려 하지 않고, 나레이션을 통해 '여러분들도 다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이것이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라푼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뻔한 이야기에 감동받고 3D아이맥스의 효과도 좋았던 점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 디즈니가 가장 디즈니다운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디즈니가 어느 날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디즈니의 클래식한 세계를 좋아하지 않던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라푼젤'의 경우처럼 클래식한 디즈니의 방식을 조금씩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디즈니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더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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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컬 시퀀스 때문이라도 '라푼젤'은 한 번 더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네요. 3D 아이맥스 자막 버전으로 보았는데, 더빙 버전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2. 주인공 '라푼젤'의 목소리 연기와 극 중 노래를 가수 출신인 맨디 무어가 담당하고 있는데, 알고 봤음에도 그녀의 목소리와 잘 매치가 되질 않더군요. 그 만큼 라푼젤의 목소리 연기가 훌륭했다는 이야기겠지요. 노래 역시 만족스러웠구요.

3. 마이클 베이 영화를 살짝 패러디한 시퀀스도 재미있었습니다. 뭐 재미를 위해 한 장면 정도 넣은 것 같아 보이더군요 ㅋ

4. 개인적으로 이런 애니메이션 여자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라푼젤은 디테일이나 성격이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 동그란 볼의 디테일에 빠졌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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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The Town, 2010)
클리셰 그 자체의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

척 호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벤 애플렉 감독의 작품 '타운 (The Town)'은 '디파티드', '히트' 등을 비롯해 범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에 매우 충실한, 클리셰 그 자체로 보아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 무리는 은행강도를 일삼는 범죄자이고, 배경이 되는 '찰스타운'은 대대로 범죄가 가업처럼 되물림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이며, 이러던 가운데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애쓰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이곳 (찰스타운)을 떠나야 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마지막 범죄를 계획하게 된다. '타운'은 위의 내용이 전부라고 봐도 좋을 만큼 범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이들도 쉽게 짐작할 만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그 가운데 범죄 영화의 클리셰도 거의 모두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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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타운의 아이들. 이 아이들이 바로 그 아이들이다)

'타운'이 괜찮은 영화일지 아닐지는 철저하게 이 영화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겠다. 만약 서두에 언급했던 '디파티드'나 '히트' 등을 기대했다며 정말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에 허탈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반대로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고 장르영화로서 범죄영화를 만나려고 했던 관객이라면, 적절한 클리셰와 괜찮은 무게감에 만족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다른 장르영화들도 그렇지만, 범죄영화의 경우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그저 범죄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무게감과 적당한 희열을 느끼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타운'은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다른 범죄영화와 조금 다른, 아니 이 영화가 선택한 소재라면 '찰스타운'이라는 보스턴의 지역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팬웨이파크를 범죄의 무대로 삼는 다는 점과 더불어 주인공이 벗어나려는 굴레를 지역과 가족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야기를 가족과 특히 지역적인 것으로 한정하면서 좀 더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한계로 작용하기 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겠다. 만약 '타운'이 '찰스타운'을 벗어나는 더 큰 메시지를 그리려 했다면 정말로 기술적인 클리셰만이 남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감독 자신이 사랑하는 지역의 이야기로 한정지으면서, 오히려 욕심을 덜어낸 결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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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포스틀스웨이트. 그가 없는 헐리우드는 분명 조금은 심심해 졌을거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극 중 조직의 대부로 등장하는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때문이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나 많은 영화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그의 출연사실을 몰랐던 터라 더욱 그랬는데, 스크린을 통해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건 '인셉션'이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결국 이 작품 '타운'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올해 4월 영국에서 개봉예정인 'Killing Bono'라는 작품이 유작이라 할 수 있을텐데, 아마도 이 작품은 개봉이 어려울 듯해 국내 극장에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건 '타운'이 될 것 같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얼마지나지 않아 그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은, 이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히스 레저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역시 영화와는 별개로 쓸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캐릭터가 맞게 되는 상황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역시 분량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장치나 과장 없이도 조직의 대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타운'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지만, 피터 포스틀스웨이트로 인해 조금 더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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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포스틀스웨이트 외에 크리스 쿠퍼도 매우 짧은 분량 출연하지만 강한 인상을 줍니다.

2. 제레미 레너의 연기가 좋더군요. 범죄 영화에 저런 캐릭터는 꼭 하나씩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별로 나쁘지 않았어요.

3. 엔딩 크래딧에 실제 찰스타운에 대해 관객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뭐 찰스타운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의 사람은 저렇지 않다는 얘기에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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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
환상 속에 사는 그대들을 위해



우디 앨런의 신작 '환상의 그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2010)'는 극중 등장하는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와 삶에 대해, 노련한 시각으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극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는 유쾌하고 리듬감이 넘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지만 (그래서 '연애소동극'이란 문구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유쾌하지 만은 않은 씁쓸한 인생의 뒷 맛을 전하는 작품이다. 극중 인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의 탈출구 (희망)를 꿈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늙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보다도 젊은 여성과 재혼하여 더 젊고 생기 넘치는 웰빙 라이프를 꿈꾸는 알피 (안소니 홉킨스). 남편과의 이혼 이후 점쟁이에게 모든 삶을 의지하다시피 하는 헬레나 (젬마 존스). 이 둘의 딸인 헬레나 (나오미 왓츠)는 데뷔 이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 남편 로이 (조쉬 브롤린)와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갤러리를 갖고자 하며, 멋진 직장 상사인 그렉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리게 된다. 남편인 로이 역시 출판사에 보낸 새 원고에 대해 소식이 없어 불안해 하던 중, 길 건너 창밖의 여자 디아 (프리다 핀토)에게 마음을 빼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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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등장하는 대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한 마디를 꼽으라면 '인생은 때론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하다'를 들 수 있을텐데, 우디 앨런이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환상을 갖고 살아야 한다'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라기 보다는, 환상에 잠시 몸을 맡겼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환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삶은 역시 삶이다'라는 냉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냉소적이라고 하니 극중 인물들의 이야기가 날카롭거나 어둡게 진행될 거라 생각하면 아직도 우디 앨런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스크린에 드리우는 그 따스한 색감처럼 시종일관 생기와 유쾌함으로 가득차 있다. 냉소적인 메시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을 보면서, 혹은 집에 돌아와 이 작품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될 때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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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극중 인물들이 빠져들게 되는 환상에 관객들도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노장에 영화 기술도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어쩜 이렇게 적지 않은 나이에 감독이 (쉽게 말해 할아버지가), 연애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넘쳐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인 것일까 라는 점이다. 사랑 뿐만 아니라 연애를 하게 되면서 갖게 되는 복잡 미묘한 감정 묘사를 거추장 스럽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써내려가는 기술이야 말로 우디 앨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환상의 그대'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사실 이렇다할 새로울 것도 없고, 어쩌면 과장 섞인 감정이 필요할 듯한 익숙한 전개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디 앨런은 최소한이자 최선의 감정 묘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감정선을 묘사해 낸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는 참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없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순전히 그 표현 방법을 통해 깊이를 가늠하게 하는 영화 장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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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대'에 서두에는 우디 앨런이 좋아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인용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차 있고,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 작품은 일상에서 환상을 꿈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래서 조금의 환상이 삶에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노련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환상이 나쁘다거나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갖을 수 밖에는 없는 삶의 구조이지만 그 환상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 라는, 한 차원 물러서서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극중 리듬감 넘치던 내레이션 음성은 왠지 더 초월한 듯 담담하게 느껴졌다. 환상에 흠뻑 빠져도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매력 넘치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펼쳐 놓고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하다니. 이거야 말로 정말 냉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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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아' 역할로 나온 프리다 핀토는 정말 '환상' 그 자체더군요. 물론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시간이 좀 흐른 탓도 있겠지만, 이 작품 속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니 보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21세기 여신으로 급부상한 프리다 핀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2. 그리고 로이 역할로 나온 조쉬 브롤린은 보는 내내 마치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나온 배 하며, 대충 차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라니. 진짜 홍상수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김상경이 안겹쳐질 수가 없는 모습이더군요.

3. 아직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안토니오 반데라스에 반해, 나오미 왓츠는 확실히 나이가 이제 느껴지는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느껴지는 동시에 예전 나오미 왓츠에게서 느꼈던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다섯 손가락에 드는 페이보릿 여배우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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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
제 블로그에서 '안녕하세요'하며 글을 써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날 만큼 신선하다못해 손발이 좀 오그라드는 시작이네요 ㅎ 오늘은 제 블로그 관련해서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자랑이에요 ㅋ

다름이 아니라 제 블로그에 작성하는 영화 글들을 '올댓 개봉영화' 모바일 앱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댓 개봉영화 어플은 본래 지인 블로거이신 '신어지' 님께서 혼자 운영을 해오셨던 영화 리뷰 관련 어플이었는데요, 새해를 맞아 함께할 필진을 모집하신다는 말에 늦게나마 조심스레 '저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해서, 이번 달 부터 함께 진행을 하게 되었네요. 참고로 저 외에도 영화 리뷰계에 떠오르는 신성 '탈렌' 님께도 함께 참여하기로 하셨습니다. 신어지, 탈렌, 아쉬타카 이렇게 세 명이서 개봉 영화 위주의 리뷰 글들을 올댓 개봉영화 어플을 통해 제공하게 되었어요.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을 사용하신 분들께서는 '올댓 개봉영화' 어플을 무료로 다운 받으셔서 접속하시면, 위의 스크린 샷처럼 영화 리뷰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처럼 제 '윈터스 본'과 '러브 앤 드럭스' 리뷰가 보이네요 ^^; 참고로 '올댓 개봉영화' 어플은 '올댓' 시리즈 가운데서도 인기나 다운로드 순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어플로서, 현재까지 19만명이 넘는 분들이 다운로드를 하셨네요. 왠지 잘 차린 밥상에 수저를 얹은 듯한 느낌이 있어서,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 열심히 글들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미지 몇장 더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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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영화 리뷰를 쉽게 보실 수 있도록 UI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가독성도 좋구요.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안드로이드 계열 어플이라 정작 제가 아이폰을 통해 볼 수는 없다는 것 ㅠ 참고로 저 같은 아이폰 유저는 모바일 URL을 통해 사파리로 보실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깔끔하지가 않아서 이것보단 그냥 (제 리뷰 밖에는 없지만)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모바일페이지로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참고로 현재 몇가지 기능 개선 및 추가가 된 '올댓 개봉영화 2.0'이 준비중이라고 하니, 저도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되네요~ 신어지 님이 매주 작성해주시는 '주간 개봉영화 소개' 글을 비롯해 매주 영화 한 편 이상씩은 꼭 보고, 꼭 포스팅하는 블로거 세 사람이 만들어가는 '올댓 개봉영화' 어플에 많은 관심부탁드려요~ 나중에 아이폰에서도 제공 가능한 어플에서도 비슷한 제공을 할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네요 ^^;

또 좋은 소식있으면 포스팅을 통해 찾아뵙겠습니다.
'May the Movie with you'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윈터스 본 (Winter's Bone, 2010)
소녀는 울지 않는다


산골 마을의 열 일곱 소녀 '리 돌리 (제니퍼 로랜스)'는, 어느 날 마약협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던 아버지가 집과 땅을 모두 담보로 한채 보석금을 내고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리는 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가정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해), 행방이 묘연해 진 아버지를 수소문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달갑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계속 들쑤시고 다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반응들이다. 하지만 리 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홀로 외롭게 아버지를 찾는 여정을 계속해 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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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윈터스 본'을 미스테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리의 아버지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과 리를 둘러싼 이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뒷이야기를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보의 부제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도 만들어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미스테리와 그 해답이 아닌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주인공 리를 시작부터 바로 사건에 던져 놓는다. 아버지의 부제와 그의 행방을 찾는 여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리의 표정에서, 한편으론 현실을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지만, 오히려 보통의 열 일곱 소녀마냥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하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닌, 고민해볼 여지도 없이 무조건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리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차갑고 스산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한 한 겨울 마을의 풍경은, 마치 한 겨울 개발로 인해 나무가 꺽여나가는 숲 속에 남아 생사에 갈림길에 놓인 한 마리 다람쥐처럼, 무거운 현실과 자신을 탐탁치 않아하는 마을 사람들 속에 홀로 가족과 남겨진 리의 상황을 더욱 시각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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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리가 처한 현실은 그녀를 둘러싼 상황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마을은 외부와 고립되어 마을 전체가 마약 사업를 통해 경제생활을 해오고 있으며, 리의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마약 조직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리의 행동을 마을 전체가 나서서 판결하고 제거하려 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주인공 리가 처해있는 위치다. 만약 리의 아버지의 시점에서 영화가 전개되었다거나, 리 역시 이미 마을에 물든 것을 전재로 영화가 시작되었다면 '윈터스 본'은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떠나려는 한 인물의 몸부림을 그린 범죄드라마로 그려졌겠지만, 영화 속 리의 위치는 어두움에 잠식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했던 아버지를 두었지만 여기에 합류하지는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렇게 주인공 리가 경계에 서 있게 되면서 영화는 많은 희망이 이미 잠식된 동시에 아직 미약한 희망이 남아있는 주인공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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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경계에 서게 된 것과 더불어 영화는 많은 것을 '가족'이라는 정서와 공동체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마약 사업에 관련된 마을 사람들 모두 각각 가족 공동체 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리가 아버지를 찾아 해매는 것은 단순히 그가 가족의 유일한 터전인 집을 담보로 했기 때문도 아니고, 가족을 모두 보살피기 어려워 도움을 청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리는 아버지와의 관계, 그러니까 아버지가 가족에게 드리운 이 마을의 어두운 굴레를 확실히 끊어버리기 위한 증명과 맺음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만약 리가 혼자였다면 그녀도 아마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이 지옥같은 곳을 떠나려 발버둥쳤을 테지만, 리에게는 그녀가 책임져야만 하는 어린 두 동생과 병든 어머니, 즉 가족이 존재한다. 한 때 친척들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군에 입대해 돈도 벌고 오랜 시간 이 곳을 떠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택한다 (여기서 상담을 해준 군인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족과 함께 남기론 한 리는 이 굴레를 끊기 위한 힘든 길에 뛰어든다. 결국 리는 아버지로 이어져 있는 이 거대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직접 아버지의 시체를 부여잡고 그의 손을 전기톱으로 잘라낸다. 이것은 매우 직접적인 비유였다. 마을 사람들은 뒷탈이 없도록 하기 위해 리의 아버지 시체를 그녀가 보는 앞에서 확인시켜주었고, 이 잘린 손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이 증명되어 그녀는 결국 아버지가 드리운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 보석금도 돌려 받고 집도 지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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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서 소녀는 행복해졌을까? 아버지로부터 원치 않게 물려 받은 현실의 굴레를 일부 벗어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녀는 아직 지켜야할 집과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 이 마을을 쉽게 떠날 수 있을 만큼 장미빛 미래는 약속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상 끊임없이 유혹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과 싸워야 할 것이며, 그 두려움의 크기는 오히려 점점 커져만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여전히 따스한 봄은 오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고 있으며 달라진 것이라곤, 리가 아버지의 부재를 스스로 증명했다는 것 (할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남긴 악기를 어린 동생이 연주하며 마무리 하는 마지막 장면에는 영화 전반에 흐르던 차가운 공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리와 함께 이 가족을 돌보기로 한 티어드롭은, 리의 동생들에게 작은 병아리 두 마리를 선물한다. 아마도 영화는 이런 현실에 그대로 남겨진 리와 가족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나마 주고자 새 생명을 선물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영화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따스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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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이 참 많이 내린 날 보게 되었는데, 현실의 펑펑 눈 내리는 날씨보다도 영화 속 마을의 풍경이 훨씬 더 차갑고 스산하게 느껴지더군요.

2.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외롭고 제약된 공간 탓인지 보는 내내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이 떠오르더군요.

3. 티어드롭 역을 맡은 존 호키스는 어디서 봤나 계속 생각이나질 않았었는데 미란다 줄라이의 작품 '미앤유앤 에브리 원'에 나왔던 그더군요. 너무 초최한 모습으로 나와서 몰라보겠더군요.

4. 엔딩 크래딧을 보면 다시 한번 영화가 조금이라도 따스한 희망을 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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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inter's Bone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 (のだめカンタ-ビレ, 2010)
더 치열해진 꿈을 향한 이야기 그리고 피날레


노다메와 치아키 센빠이와 함께 해온 짧지 않은 세월을 마무리해줄 '노다메 칸타빌레 : 최종악장'을 보았다. 이미 개봉했던 극장판 상편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을 통해 파이널을 준비했던 이 꿈에 대한 모험담은, 최종악장에서도 그저 감상에 젖기 보다는 시리즈가 본래 하고자했던 핵심 메시지인 '꿈'에 대한 이야기를 더 심화시키고 마무리한다. 사실 극장판 상편을 보았을 때도 조금 놀랐던 바였지만, 그리고 이 극장판이 단순히 TV판의 인기를 발판으로 추가 확장한 것이 아니라 본래 계획되어진 연장선상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꿈'에 대한 메시지에 포커스를 두었을 것이라고는 사실 예상하지 못했었다. 일반적인 극장판이라는 것이 TV판을 재미있게 본 팬들을 위한 것인 동시에 새롭게 접하는 관객들을 상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화적인 구성과 볼거리가 필요하다고 봤을 때 (그렇다고 노다메 극장판이 이런 점이 꼭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TV판을 인지하지 못한 이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이야기와 주제를 담은 극장판은, 노다메 팬으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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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시리즈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하긴 무려 우울한 감성과 장면으로 마무리했던 극장판 상편을 떠올려본다면 이 같은 피날레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어쨋든 피날레라는 것을 감안해 예전 TV판의 친구들을 다시 유럽으로 불러온 것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미네와 키요라, 마스미 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은 왠지 떠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정말 이 이야기가 끝나긴 하려나 보구나 (계속 연재되고 있는 만화는 별개로;) 하는 감정도 들곤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노다메 칸타빌레 시리즈가 끊임없이 물고 늘어졌던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정작 면밀하게 따지고보면 결국 꿈에 대한 이야기로 종결되곤 했던 이 이야기를, 피날레에서는 더욱 강화한다. 심하게 말해서 TV판의 엽기적이고 유쾌하기만 했던 단편적 기억만 갖고 극장판 피날레를 본 이들이라면, 이거 내 알고 있던 노다메 치고는 너무 심각한데 라고 느낄 정도로, 이번 극장판에서는 노다메의 웃는 얼굴만큼이나 무표정의 심각한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그간 노다메의 고민은 계속 있어왔지만 이번 만큼 노다메의 고민이 깊어졌던 적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노다메의 고민이 피날레에서 폭발한 것이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좋았지만!), 어쨋든 이번 작품에서 노다메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 특유의 장면 만큼, 무표정의 심각한 얼굴로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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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는 이번 피날레에서 웃는 얼굴 만큼이나 진지한 얼굴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극장판 상편에 이어 이번 피날레를 통해 다시 한번 '꿈'에 대한 깊고 진지한 생각을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노다메 칸타빌레 시리즈는 항상 웃고 떠드는 것만 같았지만, 그 안에는 지독하리만큼 치열한 꿈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 가운데 느끼는 자기 성찰과 고민들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찌보면 노다메처럼 자신만의 판타지에 빠져있지 않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고민이 항상 그림자처럼 곁에 있었다. 그런 존재를 극장판에서 드디어 직면하게 되었고, 노다메 그리고 치아키는 자신들의 꿈과 서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제대로 된 기회를 갖게 된다.

자신의 꿈 앞에 직면한 노다메 처럼 나 역시 이번 극장판을 보며 다시 한번 꿈과 도전 그리고 항상 핑계 거리가 되곤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에 다시금 서볼 수 있었다. 영화는 어쩌면 100% 깔끔한 결론을 주지는 않는다. 노다메는 처음부터 꿈꾸던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도 않고, 반대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었느냐 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두가 가능한 결과를 내어 놓는다. 그런데 이 결말이 어정쩡하다거나 뭔가 미흡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다메 칸타빌레의 또 다른 주제이기도 한 '서로'를 얻었기 때문이다. 노다메와 치아키의 관계 만큼 흥미 진진한 관계도 없을 텐데 (흥미진진하면서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관계), 결국 이 관계가 '서로'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되는 것만으로도 앞서 이야기했던 노다메가 어떻게 될까에 대한 궁금증은, 더 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떤 선택을 해도 행복한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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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다메와 치아키의 이야기는 끝이 아닌 끝으로 피날레를 맞이했다. 그래서 인지 한동안 이 커플의 이야기가 더 그리워만 질 것 같다.


1. 노다메 극장판을 극장에서 보며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극 중 등장하는 클래식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에요. 클래식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과 듣는 즐거움을 전하는 동시에, 어렵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버린채 감정으로 듣게 되죠. 실제로 클래식은 많이 감정적인 음악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작곡가가 이런 감정을 담아냈다는 것을 노다메 시리즈는 비교적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편이죠.

2. 사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바로 아래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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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키가 노다메와 몹시 다정하게 있어서가 아니라, 치아키의 세팅안된 자연스럽게 풀어진 머리라니!! 거의 시리즈를 통틀어 처음 보는 것 같은 이 어색한 자연스러움에, 놀라움이 절로 들더라구요 ㅎ 키스씬 보다 이 장면이 더 달달했던 것 같네요;

3. 노다메의 극중 연주를 실제 연주한 '랑랑'의 공연 포스터가 극중 등장하더군요.
4. 예전 TV시리즈의 장면들이 플래시백으로 등장합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짠해지더군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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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드럭스 (Love and Other Drugs, 2010)
치유하고 견디는 것이 사랑이어라


오랜만에 달달한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 탓도 있겠고, 한 동안 영화를 통해 피부림과 각종 음모 등을 상대하다보니 그냥 남녀주인공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여기에 제이크 질렌할과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러브 앤 드럭스'는 잘 어울릴 영화 같았다.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이 에드워드 즈윅 이라는 점은 조금 의외였는데, 예전 그의 작품들은 그렇다쳐도 '블러드 다이아몬드' '라스트 사무라이' 디파이언스' 등 최근 작만 보면, 이런 달달한 로맨스 영화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에드워드 즈윅이 만드는 로맨스라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은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두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실망할 일은 없겠다는 개인적 기대도 더해졌고. 그렇게 보게 된 '러브 앤 드럭스'는 아주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던 괜찮은 '달달하고 따스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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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실제 제약회사 직원의 경험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극중 등장하는 회사 이름과 약품의 이름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pfizer, viagra 같은 이름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 주인공 제이미 랜들 (제이크 질렌할)의 직업인 '약품 (Drugs)' 영업사원의 영업적인 이야기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랑 (Love)'을 강조하기 위한 그리고 빗대어 말하기 위한 효과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랑과 약의 관계를 영화는 괜찮은 대비로 풀어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보았을 때 화이자 사의 영업사원인 제이미의 성공 스토리와 그의 연애담은 별개로 진행되는 듯 하지만 (그리고 사실상 직접적 연관없이 진행되지만), 한 발 물러나서 보게 되면 약을 판매하는 주인공과 그 반대에 놓인 여자 주인공 매기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는 묘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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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러브 앤 드럭스'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깊은 이성과의 만남이 아닌 쿨한 섹스 파트너를 원했던 젊은 두 남녀가 결국은 서로를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 속에서 처음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들과 동시에, 여자 주인공이 겪는 병으로 인해 생기게 되는 아픔과 치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 국내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병에 걸린 여주인공'이 여기도 등장하는 셈인데, 이거 또 뻔한 얘기 아닌가 생각한다면 사실이 그렇다. '러브 앤 드럭스'는 많은 이들에게 '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바로 그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류의 익숙한 줄거리를 갖고 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결코 틀리거나 잘못된 방향이 아니다. 즉, 익숙한 이야기를 관객에게 어떻게 또 빠져들도록 전달하는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 만의 숨겨진 장점이 발휘된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상처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릴 때는 얼마만큼 그 상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가가 전체의 이야기를 판가름하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텐데, '러브 앤 드럭스'는 그 지점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병에 걸린 주인공을 단순히 환자로만 여기지 않고 동정이 아닌 감정으로 감싸고 있으며, 당사자가 느끼는 수 많은 갈등 역시 담백하지만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건 겪어 본 자만이 아는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영화가 병에 거린 매기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나 이를 바라보는 그의 연인 제이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분명 허구의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기 보다는, 실제 그들의 섬세한 감정에 충실한, 그들은 따뜻하게 감싸 앉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연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아픈 이 뻔한 이야기가 또 한 번 감정적으로 눈물을 만들어 냈고, 극 중 유머와 위트들도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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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또 울긴 했지만 오랜만에 극장에서 달달한 로맨스와 훈훈한 두 남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경험이었다. '러브 앤 드럭스'가 오래오래 기억하고 챙겨보는 작품이 되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계속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이런 작품은 가끔씩 꼭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앤 해서웨이도 물론이지만, 제이크 질렌할의 매력이 절정에 달했더군요! 많은 여성분들 눈이 정화되실 듯.
2. 물론 남성분들의 눈이 정화되는 장면도 아주 많습니다. 앤 해서웨이의 과감함에 사뭇 놀라기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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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The American, 2010)
너무 정적이기만한 킬러의 일상


조지 클루니 주연의 신작 '아메리칸 (The American)'은 조지 클루니의 매력보다도 연출을 맡은 안톤 코르빈 때문에 더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데뷔작 '컨트롤 (Control, 2007)'의 인상이 너무나도 깊었기 때문이었는데, U2, 너바나 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했던 그의 영화 데뷔작은 솔직히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가 오래전 부터 '조이 디비전 (Joy Division)'의 팬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컨트롤'은 완벽한 이언 커티스의 관한 영화인 동시에 완전히 객관적인 다른 이야기이기도 한 멋진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작 '아메리칸'은 개인적으로 더 큰 기대를 갖을 수 밖에는 없었다 (절대 조지 클루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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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하여 스펙터클한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것은 애초에 아니었음에도, '아메리칸'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잭' (조지 클루니)은 킬러다. 잭은 스웨덴에서 임무를 마치고나서 신분이 밝혀져 잠시 이탈리아에서 위장신분으로 숨어지내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담담히 다룬다. '아메리칸'은 분명히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 작품이다. 그 과정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킬러라는 직업을 갖은 한 남자의 일상을 아주 천천히 다룬다. 그러니까 표적이 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다이나믹하게 그리지도, 속도감이나 치밀함이 느껴지도록 그리기 보다는 '일상'으로 느껴지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킬러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직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친구를 절대 만들면 안돼'라는 얘기를 듣지만, 누군가가 필요한 잭. 영화는 이런 잭을 더 고독하도록 묘사하기 위해 영화의 제목인 '아메리칸'임을 여러번 강조한다. 이탈리아라는 곳에서는 이방인인 '아메리칸'. 하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제목의 연관성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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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은 고독에 관한 텍스트인 동시에 '불안'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다. 주인공 잭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불안이 서려있다. 이건 분명 긴장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조지 클루니의 연기와 맞물려 이탈리아의 아름답지만 외롭고 정적인 풍경은 안톤 코르빈과 '컨트롤'을 함께 했던 마틴 루이 촬영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고독함을 가득 담아낸다. '아메리칸'은 굉장히 클래식한 방식으로 심리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 안에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부분은 확실히 조금 부족한 편이다. 뭐랄까 감독이 말하려는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너무 많은 감정적인 흐름을 제거한 느낌이다. 전작 '컨트롤'의 경우도 상당히 건조하고 우울하지만 (참고로 '컨트롤'은 내게 있어 그해 베스트 작품인 동시에 그해 가장 우울했던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감정의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칸'에는 이미지만 남을 뿐 감정적 공감대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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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로 19금 장면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2. 올해로 50인 조지 클루니는 아직도 한창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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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 (Tron : Legacy. IMAX DMR 3D, 2011)
제목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되길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1982년 작 '트론 (Tron)'을 2011년에 옮겨다 놓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신작 '트론 : 새로운 시작 (Tron : Legacy)'은, 일단 원작과의 연관성과 더불어 이야기할 거리가 상당히 많은 작품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1982년 작 '트론'을 아직까지 못 본 관계로 섣불리 원작과 연관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 보다는 (그건 나중에 원작 감상 뒤 시도해 보기로 하고), 2011년 작 '트론 :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로만 한정 지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원작에 대한 정보만을 찾아보고 알아낸 흥미로운 점이라면, 이번에 나온 '트론'은 원작의 속편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최첨단 기술로 다시 쓴 것에 가깝다는 것과 원작에서도 케빈 플린 역할을 맡았던 제프 브리지스가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렌 역할을 맡은 브루스 복슬레이트너 역시 마찬가지!) 사실 원작을 접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반복에 가깝다는 이 이야기를 어쨋든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를 전달하는 영상과 기술의 도구는 무척이나 세련되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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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트론'의 이야기 자체는 매우 익숙한 구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였을지 모르겠으나 이미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에 무척이나 익숙한 지금에 보았을 때는, 가상현실이나 프로그램 같은 개념들이 더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이는 반대로 시기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이와 같은 개념에 익숙하게 끔 만들었던 작품들이 1982년작 '트론'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 하지만 이 익숙한 서사의 구조를 드디어 완벽하게 구현 가능하게 된 영상미와 다프트 펑크 완벽한 음악이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익숙한 이야기 조차 그리 지루하거나 재미없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특히나 이 설정과 세계관 자체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일단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아쉬웠던 점이라면 '아, 원작을 보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들이었는데, 만약 원작을 예전에 보았더라면, 극 중 트론의 대사나 행동들에서 좀 더 뭉클한 무언가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쨋든 이번 작품을 통해 '트론'의 세계관을 예상하고 엿보았을 때, 아직까지는 보여준 것보다는 보여줄 것이 많고, 충분히 흥미와 재미를 안겨줄 부분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시리즈로 가는 첫 번째 작품으로는 나쁘지 않은 구성과 볼거리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는 '시리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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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에서는 몇가지 주목할 만한 장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바이크 배틀(?) 장면이었다. 팀을 이뤄 바이크를 타고 상대를 제거하는 게임이었는데, 여기서 보여준 영상 자체가 흥미로웠던 점도 물론 있지만, 그리드로 가기 전 샘 플린이 아케이드에서 예전 트론 게임기를 잠깐 플레이 하는 것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게임 원리가 2011년 헐리웃의 디지털 기술로 실현된 영상이 몹시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트랜스포머'에서 로봇들이 변신하는 장면만으로도 황홀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트론'의 황홀한 장면 중 하나라면 바로 이 장면을 들 수 있을텐데,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을 통해 펜로즈의 계단을 영화화 한 것처럼, '트론'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의 게임을 영화 속에서 제대로 구현해 낸 느낌이었다. 참고로 '트론'은 (적어도 이번 작품 'Legacy'는) 말로하는 것이 절대 보는 것을 이길래야 이길 수 없는 구조의 영상 영화이기 때문에, 직접 이를 비롯한 그리드의 세계를 영화로 보는 것이 그 어떤 글을 읽는 것보다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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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 : 새로운 시작'에서 영화음악에 대한 얘기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단순히 영화음악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극중 '그리드'의 세계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마치 21세기에 듣는 강한 비트의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 트랙과도 같은 이 음악이 더욱 인상깊은 이유는, 영화음악을 맡은 이가 다름아닌 '다프트 펑크 (Daft Punk)'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 이미 다프트 펑크가 음악을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주의깊게 들을 수 밖에는 없었는데, 이미 마쓰모토 레이지와 함께 작업한 'Interstella 5555'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다프트 펑크는 뮤직비디오 이상의 영상물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텐데, '트론'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어쩌면 '트론'이야 말로 다프트 펑크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었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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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트 펑크는 무려 까메오 출연까지하고 있는데, 평소 그들의 스타일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극중 캐릭터와 코스츔 탓에, 그들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그저 그 세계에서는 평범한(?) 클럽 DJ로 스쳐지나갈 만큼 완벽한 싱크로율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아마도 다프트 펑크의 팬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속으로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작품에서 영화 음악이 차지 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결론이다. 덧붙이자면 다프트 펑크의 영화 음악이 자신들의 기존 색깔을 드러내는 동시에 너무 수려한 헐리웃 영화음악이라서 놀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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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트론 : 새로운 시작'은 분명 이번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보다는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이 남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SF영화에서는 그 어떤 요소보다도 세계관이라는 것이 큰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원작 게임과 영화를 통해 바탕이 되는 세계관과 확장 가능한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태어난 '트론'은 21세기 최첨단 영상과 맞물려 좋은 시리즈가 될 떡잎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이 작품이 시리즈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 뻗어나간다면 어떤 방향으로 전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이번 작품이 제목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래본다.


1. 아이맥스 3D로 본 영상은 그야말로 최적화였습니다. 물론 3D 효과는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몇몇 반드시 3D로 표현되어야 할 장면들이 있는 영화임으로 가능하다면 비싼 티켓가격에도 아이맥스 3D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3D는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지언정, 아이맥스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에요. 아이맥스가 아니라면 아마도 영화의 재미가 반이상 감소할 것 같네요.

2. 제프 브리지스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등장하는 '클루'의 경우, 디지털 캐릭터가 연기하고 있는데 물론 아주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실사 캐릭터와의 이질감은 여전히 느껴지더군요. 아무래도 제프 브리지스의 얼굴을 알다보니 더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 

3. 영화 시작할 때 월트 디즈니 로고가 디지털화 되는 장면은 은근히 멋지더군요. 파라마운트 같은 경우야 로고가 변형되는 걸 여러번 봤지만 디즈니의 경우는 거의 처음보는 것 같아서인지 더욱 임팩트가!

4. 1982년작 '트론'의 예고편과 2011년 작 예고편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참고로 원작은 국내에도 DVD로 출시되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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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2010)
개싸움으로 풀어낸 카오스의 세계


나홍진 감독의 2008년 작 '추격자'는 분명 잘 빠진 데뷔작이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붙인 힘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인 동시에, 극적인 공감대를 통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색의 작품이었다. 그런 그가 '추격자'의 김윤석, 하정우와 함께 또 한번 호흡을 맞춘 신작 '황해'는, 동일한 배우와 몇몇 추격하는 장면 탓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전작과는 구성자체가 전혀 다른 감독의 야심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의도하지 않았던 카오스를 통해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오스 그 자체에 관한 담론이라 해야할 것이다. (이제 고작 그의 작품을 두 작품 보았을 뿐이지만) 어쩌면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이야말로 카오스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해'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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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속 문구처럼 면정학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김구남에게는 그간 겪고 있던 삶의 고통보다 더한 카오스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제목은 (택시운전사, 살인자, 조선족, 황해) 단순하게는 주인공 김구남 (하정우)의 현실 혹은 상황을 가리키고 있으며, 더나아가 이 막 구성은 카오스를 그리게 된 영화적 특성을 보완하려는 친절한 구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겠다. 어쨋든 '황해'가 흥미로운 것은 초중반까지는 김구남을 주인공으로 그가 매달려있는 구심점에 동조하도록 의도하지만, 갑자기 이 구심점이 변하고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김구남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더이상 김구남 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전작인 '추격자'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추격자' 같은 경우는 확실한 극적인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에 (하긴 '추격자'는 이 구심점을 아예 처음부터 노출하고 시작한 작품이라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객이 끝까지 공감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반면, '황해'는 어느 정도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가나 싶더니 이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에 잠식되어 갈피를 잃게 되는 동시에, '어?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라고 막 느끼게 될 때쯤 이미 카오스의 중심에 서있게 되는, 그러니까 카오스 자체가 구심점이 되어버리는 흥미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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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이번에도 도망자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황해'의 김구남은 자신도 모르는 일에 휩쓸려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여기서 갈피를 잃었다던가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가 복잡해져서 흔들렸다가 아니라 의도적인 흔들기로 볼 수 있겠다. 제목 역시 '서해'가 아니라 '황해'라고 한 것은 무언가 뿌연 느낌과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모호함을 의도하기 위한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이 처럼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는 일들에 우연 혹은 더 큰 권력과 시스템에 의해 이용되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들은 많은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황해'의 구남은 그냥 휩쓸린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라는 점이다. 조선족으로 많은 빚을 지며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구남은 여분의 돈만 생기면 마작을 통해 더 큰 돈을 벌려고 하지만 매번 여의치가 않다. 그런 그에게 브로커인 면정학 (김윤석)이 접근하게 되고 김구남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초반 마작을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준다. 이 도박이라는 점은 앞서처럼 무고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공감대에 있어서 취약할 수 밖에는 없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관객이 김구남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꾸는 꿈과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라 더더욱 그러한데, 이 점 역시 앞서 얘기한 카오스론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관객들이 구남에게, 일반적으로 주인공에게 느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영화가 끝나고, 구남과 면정학 그리고 김태원 (조성하)의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되어도 그저 뿌연 안개같은 모호함만 남게 되는 결과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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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카오스를 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미한다. 즉, 깔끔한 액션이 아닌 이른바 '개싸움'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이런 '개싸움'의 이미지를 여기저기서 드러내고 있다). 인물들은 상대를 맞아 엄청난 칼부림과 도끼질을 휘두르는데,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개싸움이라고 했던 만큼 주인공들은 멋진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로 뒹굴고 서로 상처를 입는 싸움이 계속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개싸움 와중에도 구남이나 명정학은 항상 그 상황을 빠져나오거나 이겨낸다. 특히 이 정도 스케일을 모르고 휘말리게 된 구남의 생명력은 판타지에 가깝다. 전국의 수배령이 내려지고 뉴스 속보로 자신의 얼굴이 연일 나오는 과정 속에서 몇번이나 직접적으로 맞닥들였음에도 동에 번쩌 서에 번쩍하며 도망다니는 구남의 모습을 보면, 이걸 단순히 공권력에 대한 조롱으로 보기에도 너무 과한 건너 뛰기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면정학의 경우는 구남과는 다르게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부터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갖은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후반부 면정학의 모습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존재로 묘사되는데, 처음부터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에 근거하여 이런 존재의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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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이왕 카오스 그 자체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라면 구남과 아내의 관한 부분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공감대를 완전히 실어 관객이 '구남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이 미칠듯한 개싸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길 의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여기에 관객이 계속 구남에게 여지를 남기도록 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에 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러니까 의도한 모호함이 아니라 그냥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국 죽었는가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엔딩은 그런 의미에서 모호함을 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구남이 영화 내내 오해하고 의심했던 부분에 대한 따듯한 위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구남이 카오스에 빠져들게 된 동기로 그치지 않고 영화 내내 구남을 지배하는 구석으로 남아, 영화에 극적인 온기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오히려 이 감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과감히 정리하고, (어차피 카오스에 집중하려고 했던 만큼) 구남에게도 잔인하리만큼 황폐함을 남겨주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부분이 상업영화로서 마지막으로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남에게 주는 위로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 먹은거 더 밀어 붙였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황폐함과 카오스의 끝으로 말이다 (쓰고보니 너무 잔인한 바램인 것 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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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황해'는 다시 한번 나홍진 감독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꺽으면서까지 대중과의 타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관객에게는 내가 생각해도 불편한 작품일 것 같다'라고 생각될 때 타협을 하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격자'에 이어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투영된 '황해'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확고히 한 것은 그의 팬에게도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팬이던 팬이 아니던 앞으로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나왔을 때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1.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갔다던 카체이스 장면은 나쁘지 않았으나, 너무 카오스를 강조하려는 나머지 필요이상으로 카메라를 흔들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조금만 덜 흔들었어도 좀 더 멋진 카체이스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 바램은 이렇지만, 감독은 분명 더, 더를 외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ㅎ

2. '추격자'의 마지막 슈퍼 장면에서 많은 이들이 허술함을 지적했던 점을 미뤄봤을 때, '황해'에는 이를 뛰어넘는 비약과 건너 뜀이 훨씬 많은 편이에요. 특히 구남이 도망치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죠. 여기서 너무 많이 '풋..'하게 되면 이 후의 개싸움도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3. 하정우, 김윤석의 경우 스크린에 보여지는 표정만 봐도, 얼마나 '찌들어 있는지' 그 질감이 느껴지더군요. 두 배우 모두 쉽게 '황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듯 싶네요.

4. 초반 김구남이 살인을 계획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멋진 장면이었네요. 이런 카오스가 주제인 작품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장면이라는 점만 빼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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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Part 1, 2010)
덤블도어가 남긴 것들


해리포터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드디어 대단원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3편 이전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저 마법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소소한 어드벤처를 그린 듯해 큰 감흥이 없었는데, 점점 청소년의 성장 스토리와 볼드모트와 관련된 어두운 본연의 이야기가 시리즈에 녹아들게 되면서, 점점 마음에 드는 시리즈가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전작이었던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에서부터 대단원을 서서히 준비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는, 마지막 이야기인 '죽음의 성물'에 관한 이야기를 2편의 영화로 나누어 선보이게 되었다.

2편으로 나뉜 작품이라 그런지 '죽음의 성물 1부'는 마치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를 보는 듯한, 그러니까 후편을 염두에 둔 구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이 작품은 이제 더 이상 캐릭터 설명이나 지난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불러오는 친절에 러닝타임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즉,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죽음의 성물 1부가 해리포터 이야기를 처음 만나는 이라면, 전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존 이야기와 캐릭터간의 관계를 관객이 다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과감한 생략과 더불어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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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성물 1부'는 지난 편에 이어 볼드모트를 물리칠 단서가 담겨있는 호크룩스를 찾아 파괴하기 위한 여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여정은 덤블도어가 해리와 친구들에게 남긴 단서를 풀어내는 어드벤처로 이어지며, 결국 영화의 부제이기도 한 '죽음의 성물'에 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죽음의 성물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의 말미에나 그 의미를 알려준다. 그 전까지 이 작품의 주된 스토리는 덤블도어가 남긴 유산에 관한 수수께끼 풀기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3편 이후부터 계속 담아내고 있는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야릇한 감정과 더불어 해리, 헤르미온느, 론 이 세사람의 묘한 삼각관계를 도구로 이들의 우정과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이 부분은 볼드모트에 대항하는 해리의 이야기에서 살짝 빗겨난 정서로 볼 수도 있을텐데, 해리포터 시리즈는 볼드모트와 해리에 관한 이야기 만큼이나, 소년, 소녀들의 성장 스토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음으로, 이 묘사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이번 편에서는 이 세 친구를 제외하면 또래의 친구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삼각관계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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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영화가 또 하나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집요정 '도비'의 관한 이야기인데 러닝타임 상으로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정서상으로는 도비의 관한 이야기가 아주 비중있게 그려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도비에 관한 이야기는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으로 대변되는 우정에 관한 정서처럼, 주종관계를 넘어서는 평등한 관계의 우정이라는 점에서 (잘 아다시피 해리는 시리즈 내내 고아라는 트라우마가 있고, 헤르미온느는 머글 태생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도비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정서는 2부에서 시리즈가 마무리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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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죽음의 성물 1부'는 무엇보다도 '여정'이라는 특성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마치 모르도르로 향하는 프로도와 샘처럼 (절대반지를 하고 있으면 성격이 난폭해지는 것처럼, 여기서도 호크룩스를 목에 걸고 있으면 성격들이 날카로워지는 것도 유사한 점이다)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은 우정을 시험하는 일들도 겪게 되고 그 가운데 동료를 잃기도 하고, 덤블도어가 남긴 유산의 단서를 통해 결국 죽음의 성물이라는 해답에 가까워져 간다. 바로 이런 여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유난히 넓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인물들을 배치하는 장면들을 여럿 배치하고 있다. 

또한 해리포터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볼드모트의 여정 역시 소극적이지만 계속 언급하고 있다. 결국 죽음의 성물 2부에서는 하나이면서 둘인 해리와 볼드모트의 여정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며 사건을 마무리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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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해리와 친구들 보다는 말포이와 혼혈왕자에게 자꾸 마음을 주게 되더군요. 이들에게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직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포커스가 이들에게 돌아갈 때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용기를 내!'하고 외치게 되더군요.

2. 개인적으로 해리포터 시리즈가 갈 수록 어두워짐에 따라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불사조 기사단의 활약상이 영화 속에서는 별로 묘사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상당히 매력적인 집단인데 말이죠 ㅎ

3. 예전 시리즈와는 달리 이번 작품은 IMAX DMR-2D로만 상영했습니다. 즉, 부분 3D 장면도 없습니다.

4. 마지막 엔딩 크래딧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라는 영문 타이틀은 2부의 영문 타이틀을 예상하게 하더군요. 

5. 아, 참고로 저는 원작을 전혀 읽지 않았는데, 영화가 모두 마무리 되면 한 번쯤 읽어볼까 싶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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