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 (Prince Of Persia: The Sands Of Time, 2010)
게임과 정치, 만족스러운 재미



마이크 뉴웰의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했던 PC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시작으로 리뷰를 하려고 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이 PC게임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는 이것보다는 오히려 이 PC게임을 원작으로 지난해 XBOX360/PS3를 통해 발매되었던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만 언급해도 될 만큼 원작인 PC게임보다는 최근 발매된 게임과 분위기나 컨셉 면에서 더 유사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제리 브룩하이머 제작의 작품이라 블록버스터다운 재미는 주겠구나 싶은 것이 기대의 전부였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전 게임과 최근 게임을 모두 해본 입장에서 (추후에 언급하겠지만 다른 게임 하나 더를 해본 이유로) 많은 장면들이 보이는 영화였고, 의외로 정치적이기도하고 스케일이나 재미 측면에서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괜찮은 액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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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PC게임인 '페르시아의 왕자'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어서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다들 이 PC게임을 떠올리게 될텐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이크 뉴웰의 이 영화는 '페르시아의 거지'로 더 유명한 최근작 게임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물론 이 게임의 세계관은 영화 속 세계관과는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영화는 거친 페르시아의 왕자 '다스탄'의 이미지와 로케이션의 이미지 등을 참고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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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거지' 아니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게임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쌔신 크리드'인데,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는 PC원작 게임, 그리고 지난해 발매된 리메이크 게임과 모두 비교해봐도 '어쌔신 크리드'에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주 배경이 되는 성과 마을의 모습도 '어쌔신 크리드'의 배경이 되는 모습과 매우 닮아있고, 주요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지붕위나 장애물을 딛고 건너 뛰는 설정들은 어쌔신 크리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특히 영화 초반 성스러운 성을 공격하던 중 다스탄이 망루 비슷한 곳에 올라 점프하기 직전 성내를 주욱 돌아보며 카메라 앵글이 주변을 스윽 훑어내리는 장면은 '어쌔신 크리드'에 대한 오마주 장면이라고 해도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마이크 뉴웰이 '어쌔신 크리드가 뭐에요?' 한다면 그건 정말 말이 안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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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어쌔신 크리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나리오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 구조였다. 영화를 수미쌍관으로 구성한 것도 괜찮았고, 블록버스터 답게 스케일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쁘지 않았다(이런 느낌에는 THX관의 사운드가 한몫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인공인 제이크 질렌할을 비롯해 벤 킹슬리, 알프레드 몰리나 등 수준있는 연기자들의 공도 컸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안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페르시아의 거지'에 가까운 컨셉이라 그런 면도 있지만(ㅋ), 일부러 몸도 키운 것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다스탄과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벤 킹슬리야 선과 악을 모두 오갈 수 있는 헐리웃의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니 더 말할 필요 없겠고, 알프레드 몰리나는 첨엔 못알아볼 정도로 분장이 짙던데, 어쩌면 그 치고는 참 심심한 캐릭터가 아니었나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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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의외로 깔고 있는 정치적인 메시지 때문이었다. 영화 줄거리의 주된 설정 중 하나는 페르시아가 성스러운 성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야욕을 위한 침공의 이유로 자신들의 적국의 무기를 대고 있다는 의혹을 들고 있고, 결국 이 의혹이 있지도 않은 의혹이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이건 너무 노골적인 미국의 이라크 전에 대한 비유가 아니던가. (스포 있음) 그래서 인지 영화의 마지막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침공 사실을 정중히 왕으로서 사과하는 장면은 현실과 빗대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오바마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이렇게 사과했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치적 비유로 생각해볼 수 도 있지만 어쨋든 이건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다. 이런 비유를 해볼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어쨋든 액션 블록버스터이고 그냥 몸을 맡기고 2시간동안 즐기면 되는 유희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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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작품들은 전부 먹먹해지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참고로 게임은 후속편이 나올 예정인데, 영화는 어찌될지 모르겠다.


1. 참고로 영화의 뒷 이야기를 다룬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망각의 모래'가 곧 발매될 예정입니다. 전작과 영화를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이 게임 역시 안해볼 수 없겠네요.

2. '캐리비안의 해적' 만큼 강력한 캐릭터는 없음으로 그 만한 인기를 끌긴 어렵겠지만, 게임 원작 작품들이 대부분 실망스러웠던 것에 비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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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밴드 라이브 투어 - The Mobius : 극장관람기
(2009 Seotaiji Band Live Tour - The Mobius)


태지매니아라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공연 실황을 또 한 번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서태지 밴드 라이브 투어 - The Mobius'를 지난 금요일 관람하였다. 그 어떤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 인터넷 예매에도 실패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도, 이번에는 제법 위험하게(?) 겨우겨우 예매에 성공! 나쁘지 않은 좌석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역시 같은 상영관인 메가박스 서태지 M관에서 볼 수 있었던 '서태지 심포니 실황' 이후 태지의 공연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뫼비우스 실황이 훨씬 좋았다 ㅠ 그도 그럴 것이 심포니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심포니는 공연 자체가 컨셉이 강한 작품이었고 이번 뫼비우스는 그와는 다르게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과 더불어 서태지 밴드의 새로운 투어 브랜드로서 훨씬 더 보여주고 들려줄 것들이 많은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 갔어야 했어. 무리를 해서라도 갔어야 했어'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 만큼 뫼비우스 투어는 (특히 용산에서 갖은 공연은) 다양한 무대 장치와 효과들로 스케일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런 아쉬움은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자유롭게 열고 닫히는 병풍 스크린(ㅋ)을 통한 영상들과 마치 마이클 잭슨의 'Beat It' 공연을 연상시키듯 리프트를 타고 객석 가까이로 다가가는 무대 연출이나, 이제는 두말하면 입 아픈 'Take 5'의 노란 종이비행기 퍼포먼스까지. 기존 태지 공연의 레퍼토리들은 적절히 살리면서도 대형 무대만의 효과들에도 상당히 신경 쓴 공연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극장에서본 '뫼비우스 투어'가 더 좋았던 건 곡 중간중간에 바로 이어질 곡의 리허설 장면을 짧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서태지를 비롯해 밴드 멤버들의 평소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만나볼 수 있는 그야말로 '팬서비스'였다.




곡들에 대한 짧은 평을 해보자면, 지난 번 직접 보았던 'WORMHOLE' 콘서트를 통해 명곡으로 재 발견된 '내 맘이야'를 비롯해, 45RPM과 함께한 새로운 '하여가' 그리고 태지의 연기마저 돋보이는 '제킬박사와 하이드', 오랜만에 함께한 락과 탑의 트윈 기타를 만나볼 수 있었던 '대경성'과 '슬픈 아픔'. 특히 '슬픈 아픔'은 개인적으로도 추억이 깊은 곡이라 더더욱 반가웠다!! (여기서 개인적 추억이란 고등학교 축제 때 이 곡과 '널 지우려해'를 엮어서 불렀던 추억). 그리고 이스터섬으로 떠나는 'Moai'. Moai는 장담하건데 세월이 가면 갈 수록 나중에 가서 명곡으로 더평가(재평가 아님) 될 것이다. 들으면 들을 수록 참 대단한 곡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 10년쯤 뒤에 다시 집중해서 듣고 글을 써보리라.

이번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곡들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들이었다. '서태지 심포니' 상영은 극장에서 본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뫼비우스 투어'는 진짜 공연장에 가서 보고 난 느낌이 들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후반부를 장식한 아이들 시절의 곡들 때문이었다. 팬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했겠지만 어찌나 찡하게 만드는 선곡들인지.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는 (그저 쓰려고 생각만 했는데 소름이 돋았다 ㅠ) 팬들이라면 아마 누구나 글썽이지 않았을까 싶다. 뭐랄까 점점 서태지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공연을 공연 자체로 즐기는 것 외에,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뮤지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해져 가는 것 같다. 아이들 시절의 영상과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 자체로도 찡하지만 그 당시의 학생이었던 내가 떠올라 더 찡해진달까. 그렇게 태지와 나는 깊이 연관되어 있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공연장에서 그리고 또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정말 행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운아고, 서태지의 영원한 팬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우에노 주리 (上野樹里)

1986년 5월 25일 생인 우에노 쥬리가 올해로 스물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오늘 오전에야 그녀의 생일 소식을 챙겨 듣고는 급작스럽게 그동안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간단하게나마 그녀의 짧은 연대기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거슨 팬으로서의 도리!). 한 때 아오이 유우와 미야자키 아오이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 3인방이었던 (이 가운데 개인의 취향대로라면 배우로서는 주리 짱을 팬으로서는 아오이 짱이랄까 -_-;;) 그녀의 짧은 연대기를 주요 출연작들 소개로 살펴보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ジョゼと虎と魚たち, 2003)


그녀의 데뷔작은 이누도 잇신 월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2003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본 이들 가운데서도 '엇, 조제에 쥬리 짱이 나왔어?'라고 할 정도로 지금의 '노다메'이미지 우에노 주리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데, 우에노 쥬리는 '카나에' 역할로 출연하며 데뷔작 다운 풋풋함을 물씬 풍긴다. 사실 이 작품은 워낙에 두 주연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깊은 인상을 주는 작품이긴 한데, 어쨋든 이누도 잇신의 대표작인 '조제, 호랑이....'를 통해 데뷔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우에노 쥬리의 2003년 풋풋한 모습. 이 때만해도 이 어린 여배우가 앞으로 어떤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였다. '조제, 호랑이....'에서 그녀가 보였다면 그건 솔직히 거짓말일듯. 하지만 그 다음 작품 부터는 우리가 아는 우에노 쥬리를 가득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이 서서히 시작된다.




스윙걸즈
(Swing Girls, 2004)

 

야구치 시노부의 2004년작 '스윙걸즈'는 분명 '소녀들'이 단체로 등장하는 작품이었지만 그 중에서 유독 빛나는 주인공은 우에노 쥬리였다. 이 작품부터 우에노 쥬리는 코믹함과 드라마를 두루 갖춘 연기를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따지고보니 데뷔작은 이누도 잇신, 그리고 다음 작품 (물론 그 사이 두 작품이 있긴 하다)에서는 야구치 시노부라니. 축복받은 여배우로세. 어쨋든 '스윙걸즈'부터 우에노 쥬리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장기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사실 최근 팬들에게 익숙한 '노다 메구미' 캐릭터는 이 작품 속 그녀가 연기한 '토모코'에서 이미 엿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녀의 연기만을 두고 본다면;;).  '스윙걸즈'는 우에노 쥬리에게나 영화적으로는 여러모로 바람직한 영화였다.




'스윙 걸즈'의 많은 명장면 가운데 역시 최고 하이라이트는 '맷돼지와 함께 하는 시츄에이션' ㅋ

 

스윙걸즈 SE - DVD 리뷰
http://www.realfolkblues.co.kr/326

 



무지개 여신
(Rainbow Song, 2006)


쿠마자와 나오토의 2006년작 '무지개 여신'은 참 풋풋하고 아련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수 많은 엽기 캐릭터들 가득한 그녀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치하라 하야토와 함께 출연하며 딱 그 나이 또래 친구들의 고민과 우정과 사랑을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그려낸 이 작품에서 우에노 쥬리는, 그녀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평범하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는데, 이런 정극 드라마에서도 매력을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엿볼수 있다.  




극중 우에노 주리는 영화 촬영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으로 출연하는데, 뭐랄까 제일 진짜 우에노 주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청춘 (靑春)'을 떠올린다면 반드시 봐야 할 그녀의 작품 중 하나!

 



그리고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영화 속 영화 '지구 최후의 날 (The End of the World)'. 이 괴작(?)은 너무 좋아해서 가끔씩 이것만 꺼내보기도 ㅎㅎ


 

무지개여신 _ 아련한 청춘 (靑春)
http://www.realfolkblues.co.kr/354


 



노다메 칸타빌레 
(のだめカンタ?ビレ, 2006)


그리고 이런 우에노 쥬리를 더 커다란 스타덤에 오르도록 만들어준 TV시리즈 '노다메 칸타빌레'. 만화가 낫다, 애니메이션이 낫다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어쨋든 노다 메구미와 우에노 쥬리는 정말 잘어울리는 배우와 캐릭터의 조합이었다. 진짜 보는 사람이 절로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그 특유의 '의성어'들과 혼자 있을 때 몰래 따라해보게 되는 요상한 몸짓들 (ㅋ). 이것이 과연 우에노 쥬리가 아니면 누가 가능토록 했을 것인가!




자, 이런 표정! 우에노 쥬리이기에 가능한 부분임이 틀림없다. 이런 표정이 더 효과적인 것은 멀쩡할 때(?)의 연기가 그리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구구는 고양이다
(グ-グ-だって猫である, 2008)


사실 이 작품은 우에노 쥬리 때문이라기보다는 '고양이' 때문에 본 작품이기도 했는데, 이 작품에서 우에노 쥬리는 크게 인상을 남기기 보다는 작품에 은은히 묻어난 느낌이다(하긴 이 작품은 그녀보다는 코이즈미 쿄코와 카세 료가, 그리고 그 보다는 고양이가 빛나긴 한다 ㅎ). '무지개 여신'에 이어서 정극에 가까운 평범한 연기에도 큰 무리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에노 쥬리 때문에 '구구는 고양이다'를 보라고 하기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팬이라면 꼭 봐야할 작품!




구구는 고양이다 _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의 삶을 보다




어쨋든 우에노 쥬리짱,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쫄깃한 연기 보여주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2010)
교훈적이기까지한 드림웍스의 성공작


드림웍스는 한동안 픽사의 성공을 부럽게 바라봐야만 했었다. '슈렉'이후 주춤했던 그들에겐 좋은 애니메이션이었던 '쿵푸 팬더'가 있었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자, 이제는 픽사와 동등하게 겨뤄볼 수 있겠다'라고 미뤄보기는 어려웠던 것이, 그 이후 내놓았던 '몬스터 vs 에이리언'의 경우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경우였기 때문이다. 픽사의 가장 강한 점은 역시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드림웍스는 본인들도 스토리텔링으로 바로 경쟁하기 보다는 기술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었다. 그것이 앞선 '몬스터 vs 에이리언'을 3D 포맷으로 제작한 경우였는데, 이 작품은 굳이 스토리텔링의 부족함을 꺼내지 않아도 3D효과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 드림웍스의 신작은 사실 스튜디오에게 몹시도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픽사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걸 확고히 하는 작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한동안 픽사에게 모조리 다 빼았겨 버렸던 명성을 이제야 찾아오게 되는 자랑스런 작품이 될 것인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후자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도 뻔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데에 성공한 동시에, 3D라는 측면에서는 최근 보았던 영상혁명 '아바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어쩌면 더 나은) 영상으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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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스토리텔링하면 구구절절을 떠올릴지 모르겠는데, 그것보다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가 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필요 없는 이야기는 거의 다 쳐낸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만약 이 작품이 실사 영화이고 주인공 '히컵'이 상처 입은 용 '투슬리스'를 타고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시퀀스 같은 것은 없는 그리고 더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요하는 작품이었다면, 아마도 아쉬움이 많이 남을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을 것이다. 영화를 볼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보고나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는 너무나도 생략된 이야기들이 많다. 버크 섬에 사는 바이킹과 용들과의 대립 관계에 대해서도 아주 짧은 내레이션이 있을 뿐이고, 초반에 히컵이 선망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스트리드' 같은 경우도 전혀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무엇보다 투슬리스와 히컵이 친해지게 되는 과정의 경우 '너무 쉽게' 이루어진 느낌을 줄 정도로 간결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래곤 길들이기'는 치밀한 짜임새를 요구하는 작품도 아니고, 환상적인 비행 장면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략이 전혀 단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히컵과 투슬리스가 친해지는 과정의 간결한 묘사같은 경우는, 의미상으로도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풀어낸 것보다는 '그간 오해했었다' (최근 국내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오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다) 라는 의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적절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리도 간결하고 쉽게 해결해볼 수 있었던 걸, 누구도 그럴려고 해보지 않았던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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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래곤 길들이기'를 통해 인상 깊었던 정서는 바로 '장애'와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투슬리스는 꼬리 날개에 상처를 입고 혼자 날기 어려운 용이었다. 그를 투슬리스를 히컵이 알아보고 직접 꼬리 날개를 만들어주면서 이 둘의 마음은 통하게 된다. 처음에 이 둘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히컵이 조종하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투슬리스' 정도로 그려지지만 갈 수록 이 둘의 관계는 그것 이상으로 발전한다. 투슬리스는 자신이 날기 위해 -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 - 히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히컵 역시 단순한 동정으로 투슬리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말 따지고보면 극중 히컵의 시선이나 대사에서는 거의 단 한번도 투슬리스를 동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이것조차 동정어린 시선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히컵 같이 어린 소년에게는 아직 그런 복잡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이건 분명 어른들이 사용하는 '동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투슬리스의 장애는 영화의 마지막 다소 충격적인 히컵의 장애로 대구를 이룬다. 아버지에게도 인정 받고 마을을 구하는 동시에 드래곤들과 함께 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뤄낸 히컵은 안타깝게도 다리 한 쪽을 잃고야 만다. 이런 설정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전체관람가인 이런 애니메이션에서는 굳이 택하지 않았던 결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같았으면 모든 것을 해결한 히컵에게 영화 속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이상적인 그림이 펼쳐지며, 버크 섬의 바이킹들은 드래곤들과 함께 잘 살았더래요~ 로 마무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영화는 굳이 히컵에게 장애의 요소를 부여했다. 

그리고 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이킹으로 나오는 캐릭터를 보면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극중 인물들들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보는 이들 역시 꼭 애니메이션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불편함을 별로 장애로 느끼지 못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마지막 히컵이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을 때, 이를 두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주변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이걸 단순히 바이킹 특유의 대범하고 쿨함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런 건 어른들도 물론이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교훈적인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편견을 갖지 않게 하는, 그러니까 투슬리스의 꼬리 날개처럼 누군가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부분도 필요하지만, 그것 외에 묘사들처럼 장애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혹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많이 다르거나 틀린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는 것을 은연 중에 일깨워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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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드래곤 길들이기'가 인상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 비싼 아이맥스 3D 티켓값을 할 정도로 환상적인 영상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몬스터 vs 에이리언'에서는 이렇다할 인상적인 3D 영상을 보여주지 못했던 드림웍스로서는 전작에서 보여준 3D기술 및 영상의 수준을 확실히 업그레이드 해냈다. 투슬리스와 히컵이 하늘을 자유롭게 - 여기선 정말 자유가 느껴진다! - 그리고 구름 속을 빠른 속도로, 그리고 황홀한 각도로 비행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고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3D에 최적화된 영상이라는 점은 여러가지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일단 장면 속 속도나 질감 그리고 공간감 (크기)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투슬리스를 타고 구름 속을 빠른 속도로 날 때면 마치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지고, 크기 역시 커다란 캐릭터의 경우 그냥 '와, 크구나' 정도가 아니라 '와! 진짜 무지막지하게 크구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런 크기의 입체감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3D 영상은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3D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관객이 손을 절로 뻗도록 만드는 약간의 인위적인 효과와, 이것보다는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을 넘어서지 않는 한도 내에서 효과를 주는 경우. '드래곤 길들이기'는 경우의 중간 정도, 그러니까 아주 적절한 3D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별것 아닌것 같은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입체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는 한편, 3D 효과를 한 껏 낼 수 있는 액션 시퀀스에서 역시 너무 과도한 입체 효과는 주지 않으면서도 (이 정도를 말로 표현하긴 좀 어려운데, 직접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진정 3D를 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폴라 익스프레스'부터 '아바타' 까지 거의 한편도 빼놓지 않고 본 3D영화들 가운데, 3D효과 측면에서는 최고로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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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예고편이나 포스터 등이 공개되었을 때는 이 정도의 작품일 줄은 몰랐었는데, 시사회와 먼저 보신 분들의 쏟아지는 호평을 듣고서 '과연?'하는 물음과 기대가 들었던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는 결국, 많은 호평들 속에 내 밥 숟가락 하나 기꺼이 얹어놓고 싶은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1. 전날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 영사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제가 보는 날도 못보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정상화되어서 문제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네요.

2. 

3D안경은 또 바뀌었던데 그간 써봤던 안경들 가운데서 착용감 측면에서는 가장 좋더군요. 영화 보는 내내 단 한번도 흘러내림에 신경쓰지 않고 볼 수 있었으니까요.

3. 또 블루레이를 기다려야할 작품이 생겼군요. 아, 과연 그전에 3DTV를 장만할 수 있을까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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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Poetry, 2010)
시가 죽어버린 시대, 다시 시를 쓰다


주인공 '미자 (윤정희)'는 경기도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남긴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많은 나이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거동이 불편한 회장님 (김희라)의 수발을 드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는 평범한 할머니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직도 소녀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이런 미자에게 어느 날 얘기치 않은 세속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영화는 오히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미자에게 더욱 주목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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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하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요?' 시인의 대답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대답 속에도 있듯 시라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자체는 무어라 정답지을 수 없을 터. 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되나요?'

이런 미자에게 며칠 전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의 죽음이, 자신의 손자의 성폭행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현실을 풀어놓는다. 사실 미자는 이 상황을 그리고 이 상황을 대처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완벽한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이 이야기를 조용히 마무리하려 한다. 가해자의 부모들 뿐 아니라 학교 측, 언론,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합의금을 받을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의 부모까지. 이들에게 미자가 알고 있었던 도덕적인 가치는 거세되고 없다. 하지만 미자는 투사가 아니라 그저 힘없는 노인일 뿐이다. 합의금 500만원을 만들기 어려워 그나마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은 같은 가해자 아버지 (안내상)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쉽게 들어줄리 없다.

그런데 이창동의 '시'는 이런 도덕이 거세된 세계를 현실로 등장시키면서도 이들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악한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안내상이 연기한 가해자의 부모 같은 경우만 봐도 사람이 나빠보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극중 미자가 처음 본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될 정도로 사람 좋은 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묘사 방식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자와 상반되어 더 큰 쓰라림을 준다. 도덕적인 헤이가 너무 당연해진 세상. 그러니까 꼭 악당이라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도덕적 헤이가 익숙해진 세상이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런 순리 아닌 순리에 익숙해져 버린 세상을 그림으로서, 어쩌면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하는 돌이킬 수 없을 듯한 쓰라림과 회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주인공의 정의의 투사가 되어 이런 세상을 계몽하려 드는 것보다, 이렇게 자신도 힘없이 휩쓸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이 더 무섭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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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결국 오백만원의 합의금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야 만다. 그런데 회장님 (김희라)에게 돈을 받기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오백만원을 달라는 말을 굳이 노트에 적어서 보여준 이유는 단순히 주변에 가족들이 있어서, 이들의 귀를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등장하는 노트의 클로즈업 장면을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감독은 오백만원만 달라는 이 메시지를 이전 미자가 어렵게 작성했던 시 한줄을 보여주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시를 쓸 때는 그렇게 한 줄 한 줄이 어렵던 것이,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적인 활동에 있어서는 너무도 쉽게 써지는 모습을 볼 때, 또 한 번 쓰라림을 겪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미자는 스스로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사건이 잘 마무리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 있을 용기도 없고, 시를 좋아한답시고 모였지만 사실은 미자처럼 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벼운 마음, 또 하나의 유흥으로 여기고 모인 이들 사이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낀다. 도덕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세속에 적당히 물들어야만 '좋은게 좋은' 이 세상을 미자는 견딜 용기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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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자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를 쓴다. 시를 쓰고자 마음 먹은 이후부터 계속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울림을 찾으려 했던 미자의 마지막 시는 결국, 자신의 손자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여중생에 대한 미안함을 담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는 곧 그 여중생의 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영화 속 미자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서 기억을 잃게 되는 것 또한 쓰라린 일이다. 이미 물들어버린 세상과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가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난다.


1. 글을 쓰면서도 계속 울컥하네요.
2. 사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예전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밀양'은 좋아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진정 그는 작가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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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Robin Hood, 2010)
로빈 후드 비긴즈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로빈 후드' 이야기를 리들리 스콧이 새로 쓴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주인공이 러셀 크로우라고 했을 때 기대되는 바는 분명했다. 이미 '킹덤 오브 헤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던 리들리 스콧의 장점과 '막시무스'로 정점에 올랐었던 러셀 크로우의 강인한 이미지가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본 '로빈 후드'는 하나의 개별 영화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3부작의 1편의 성격이 강한 그러니까 '로빈 후드 비긴즈'의 내용을 담고 있는 프리퀄이었다. 이 이야기는 곧 무언가 '글래디 에이터' 급의 극적인 요소나 '킹덤 오브 헤븐' 같은 완성도를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로빈 후드 이야기가 아닌 '로빈 후드 비긴즈'의 이야기를 다룬 리들리 스콧의 이번 작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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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로빈 후드'에는 정작 로빈 후드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에는 '로빈 롱스트라이드'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 후드는 나오지 않을 뿐더러 '로빈 후드'로서의 활약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가운데 러셀 크로우가 로빈 후드로 등장하는 장면은 엔딩 장면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다. 영화의 중반 쯤에 나라의 불합리한 점을 알게 된 로빈이 동료들과 '후드'를 뒤집어 쓰고 밤에 몰래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약탈을 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아, 이제부터 저런 로빈 후드 다운 활약상이 펼쳐지겠구나!' 싶었는데, 정확히 딱 그것 뿐이었다. 영화는 아직까지는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듯 오히려 본격적으로 그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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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가 아니라 로빈 롱스트라이드로서 수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장면은 사실 조금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쉬운 예로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의 경우는 작은 마을에 살던 월레스가 어떻게 전설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 명성과 지지를 얻게 되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는데 반해, 로빈 롱스트라이드는 그저 한 번의 발언권으로 옳은 말을 했을 뿐인데 수 많은 영주들을 재치고 대군을 이끌게 되는 전개과정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느껴졌다(물론 그가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은 무리들 사이에서 그가 대표될 만한 이유이지만, 이 아들이라는 점이 대중들에게 전파되는 부분이 없던 관계로 조금은 미흡하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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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드디어 우리가 알고 있는 '로빈 후드'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현상금이 걸린 채로 숲에서 아이들과 숨어서 살며, 국가에 반해 선의의 도적질을 일삼게 되는 로빈 후드가 된 건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결국 영화는 왜 '로빈 롱스트라이드'가 '로빈 후드'가 되어야 했나에 대한 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사실 그런 면에서 그리 나쁘지는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이 영화를 본격적인 로빈 후드의 활약상으로 예상했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낯설고 심심한 경험이 될 것 같다.


1. 사극 전문 조연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더군요. 왜 있잖아요. 정확한 이름은 몰라도 역사극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배우들.
2. 러셀 크로우는 예전 숀 코네리와 함께 '로빈 후드'를 영화 속에서 연기한 가장 나이 많은 배우로군요 (45세)
3. 그런데 속편에 대한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비긴즈'만 하고 마는건가요, 이 작품?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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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2010)
계급사회에 대한 쌍방향적 비아냥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극장에 '하녀'를 보러 갔을 때까지도 계속 머릿 속으로 주문처럼 외웠던 것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잊자' 였다. 대부분의 리메이크는 원작보다 좋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쳐두더라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주었던 충격과 완성도와 그 독특함은 현대의 그 어떤 감독이 다시 만들더라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임상수의 '하녀'에 대한 좋지 않은 평들이 흘러나오는 것은, 원작의 구조만 빌려온 수준은 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쓰지는 않은 약간 모호한 지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김기영의 원작을 기억하는 이들은 저절로 두 작품을 비교해보게 되니 아쉬움이 보일 수 밖에는 없고, 일반 관객들에게는 좀 어려워 보이는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해 끝나고 나서는 허무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어쨋든 개인적으로 임상수의 '하녀'는 김기영의 원작과는 다르다, 그러니 아예 비교를 말자 라고 수없이 되새긴 다음에 보게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려(?)와는 다르게 임상수 특유의 잘못된 사회에 대한 비아냥과 영화적인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괜찮은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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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의 라페스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매우 현대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무언가 원작과의 거리를 두려는 감독의 의지 같아 보였다. 이 오프닝만 보고 있노라면 절대 '하녀'라는 작품을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 죽음이 담긴 오프닝은 마지막을 위한 대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바쁜 도시, 어떤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잠깐의 이슈일 뿐,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본연의 이야기인 '하녀'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임상수의 '하녀'는 너무 노골적인 계급사회에 대한 비아냥이다. 그런데 이 비아냥은 일방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서민이고 이들과 갈등을 겪는 자들은 지배 계급이자 부자인 것이 아니라, 주인공 역시 아파트를 전세주었을 정도로 별로 서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처음부터 쉽게 빠져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전도연이 연기한 '은이'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은이가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은 사실상 영화가 끝나기 바로 전, 그러니까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 이전까지 은이의 행동들을 보면 단순히 남성이 그리워하는 유혹하는 여성도 아니고, 주어진 하녀일에만 열심히 하려는 일꾼도 아닐 뿐더러, 주인집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노리려는 야심찬 자도 아니다. 그런데 극중 은이에게는 이런 요소들이 미약하게 나마 중간중간 드러난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은이라는 캐릭터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이었다. 

주인집에 하녀로 들어온 첫 날 부터 별로 주눅들지 않아 보이는 대범함도, 주인집 남자의 유혹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모습도, 나중에 가서야 이들을 심판하고 저주를 내리고자 스스로를 산화하는 모습도 모두 갑작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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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적 비아냥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극중 은이에게서는 관객의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은이 역시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주인집의 엄청난 부를 부러워 하는 동시에 별다른 갈등 없이 성의 유혹에 사로 잡히고(이 순간을 신분 상승을 위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 공감대가 없다), 극중 안주인 (서우)의 대사처럼 정말 인간적으로 잘해준 안주인을 봐서라도 거부해야 했던 것이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은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집 남자를 받아들인다. 이렇듯 '은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주인집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듯 '은이' 역시 비아냥의 대상으로 삶으려던 것이라면, 그러니까 이런 부를 누리고는 싶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이를 불평만 하는 중산층 (혹은 서민)으로 그릴려고 했다면(다시 말해 갖을 수 있어도 갖지 않은 자가 아니라,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해 못 갖은 자) 좀 더 확실할 필요가 있었는데 영화 속 은이는 무언가 모호하다. 그리고 이런 모호함은 주인집과 은이 사이에 놓인 늙은 하녀 (윤여정)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와 '충녀'에 출연한 것으로 인해 어느 정도 작은 배역을 부여 받은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가 연기한 또 다른 '하녀'인 것 같았다.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는 '은이'가 보여주지 못한 공감대를 어느 정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그녀의 행동과 감정선이 더욱 확실하다. 그녀는 주인집 사람들에게는 오래 일해온 만큼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만, 역시 오래 일해온 만큼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며 (왜 은이에게도 계속 얘기하지 않던가), 이런 부 역시 동경하여 주인 집이 집을 비웠을 때 자신이 이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을 충분히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검사 아들과 주인집에 무시 당했을 때 술취해 혼잣말 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역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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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은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민은 은이에 대한 연민인 동시에 자기 연민의 성격이 더 크다. 은이가 주인집 남자와 관계를 갖는 소리를 몰래 듣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묘한 부러움의 정서가 담겨 있으며, 그런 은이가 큰 돈을 받게 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보는 장면에서 역시 질투 같은 것이 느껴진다. 반대로 주인집의 무서운 사람들로 인해 은이가 완전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시선에서는 연민과 동시에 어느 편에 서야할지 고민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그런데 나 같아도 고민할 것이, 극중 은이는 주인집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비아냥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시원하게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는 마지막 은이가 자살을 시도하려 할 때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그저 '그냥 안하면 안돼?'라는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친 것이다. 은이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은이에 대한 비아냥과 주인집 사람들과 같은 지배 계급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런 응징에 대한 대리 만족 등 복합적인 정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재미있는 건 극중 늙은 하녀가 은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 때 이 하녀를 연기했던 배우가 윤여정이였기 때문에 독특한 정서가 생겼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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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주 비아냥의 대상인 주인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 윤여정이 연기한 하녀 다음으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꼽으라면 이정재가 연기한 주인남자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정하고 만들어진 이 계급사회의 지배 캐릭터는 친절한 듯 하지만 강압적이고, 깨어있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 꽉 막혀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미술 작품이나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듯 하지만, 오히려 이 저택에 있는 예술 작품들은 이런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도구로 작용한다. 피아노 연주 역시 이들의 동물같은 본성을 숨기려는 도구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역시 장모님(박지영)과의 대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이 캐릭터의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감히'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데, 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이 지배 계급에게는 뼈속부터 '감히 너희들이 나랑 말이나 섞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정서를 갖고 있음을 이 시퀀스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치 사극에 등장하는 왕처럼, 결혼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내 아이는 누가 낳아도 내 아이이거늘, 누가 감히 나에게 뭐라 할 수 있느냐'라는 식의 정서.

비아냥의 주 대상인 만큼 임상수는 이들 가족을 (특히 이정재를) 깍아내리는 대에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불타는 은이에 놀라 당황하며 서둘러 집을 빠져나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영화의 마지막 이런 일을 몇년 전에 겪었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히려 더욱 추해지고 가짜스러운 모습은, 왜 이들이 '정말 무서운 사람들'인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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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를 보면서 눈여겨 본 것은 역시 세트와 구도 였는데, 세트는 '계단'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인상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으며, 여러 공간이 등장하지만 로비에 가깝도록 큰 거실이 '와, 넓다'라는 느낌을 준 것 외에는 큰 효과를 주지 못한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의 가장 큰 장기 중 하나가 미장센이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아무리 비교안하려 해도 이 세트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부분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메라 앵글은 의도적인 샷이 굉장히 많았다. 일단 인물을 정확히 중앙에 두고 좌우의 여백을 크게 두는 앵글이 상당히 많았고, 무엇보다 한 샷을 여러개의 공간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구도를 자주 볼 수 있었다(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구도를 사용할 때는 포커스 인과 아웃 방식이 매우 자주 사용되고 있다). 마치 그래픽 노블을 보듯 공간을 통해 정확히 선을 그어 인물과 인물을 나누는 구도 등은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의 이해를 돕는 하나의 도구로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윤여정이 술에 취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에서의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도 딱 한번 뿐이어서 그런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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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하녀'는 김기영의 '하녀'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좀 더 확실했더라면 좀 더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임상수 감독 특유의 풍자와 비아냥이 부족한 스릴러에 오히려 잠식 당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윤여정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본다면 좀 더 괜찮은 드라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직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못 본 이들이라면 반드시 보길 바란다. 


1. 아드메치.
2. 첫 시퀀스에 나온 일산 라페스타는 예전 회사가 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더군다나 극중 전도연이 올랐던 그 옥상은 바로 예전 저희 회사 건물이었던 것 같아요.
3. 쥐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집 거실에서의 마지막 시퀀스는 약간 기괴한 것이 원작을 살짝 떠올리게 하더군요.
4.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었을 땐 하녀 역할로 오히려 서우가 더욱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임상수의 '하녀'에서는 안주인 역할에 서우가 더욱 어울렸던 것 같아요.
5. 예전에 심혈을(?) 기울여 썼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 DVD 리뷰 입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049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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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夏夏夏, 2010)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철학적 놀이


(참고로 이 글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루를 훌쩍 넘기고도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막걸리 한 잔을 건하게 걸치고 나서 작성하는 글 임을 밝힌다. 본래 술을 마시고 쓰는 글은 매번 위험하지만, 이번 '하하하' 리뷰 만큼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랬다. 일단 이것저것 복잡한 것을 떠나서 홍상수 감독의 열번째 장편 영화 '하하하'는 나에게 있어 술을 부르는 영화였다. 참고로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는 그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라는 슬픈 국환 때문에 차마 글을 남기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 술 한잔을 더해가며 글을 가져가게 되었다. 최근 15주년 기념 버전으로 발행된 '씨네 21'이 특별히 홍상수 에디션을 내어놓은 것도 그렇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홍상수가 대세라고 할 정도다. 사실 나는 예전 홍상수 영화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편이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떠나서 별로 달갑지 않게까지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랬던 홍상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 였다. 남들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이전과 이후의 홍상수가 확연히 달라보일 만큼, 인상적인 변화였고 가볍지만 더욱 생각할 거리는 많아진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기대를 갖고 보게 된 '하하하'는 새로워진 홍상수 월드를 좀 더 견고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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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영화를 논하면서 많은 이들이 '속물 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나도 '잘알지도 못하면서'를 보았을 때는 이런 논리에 동의 했었으나 '하하하'를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그래, 너도 나도 다 속물이다'라는 것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남자는 각각 통영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술 한잔에 실어 나누기로 한다(나중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설정은 은근히 무협지 속의 인물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렇게 두 남자는 서로 만이 겹쳐지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준다.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관객들 뿐이다(영화의 마지막 왕성옥이 이 일부분을 알게 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분이다). 

'하하하'를 보면서 시종일관 느껴졌던 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들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의 전작 '잘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작품은 아는 것에 대한 물음과 주장을 끊임없이 펼치고 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단 한 시퀀스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은 대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는 서로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안다는 것인가에 대한 선문답으로 이뤄져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걸 안다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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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알고 모르는 문제'는 영화가 택하고 있는 구조로 더 선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두 남자의 하나이지만  두 개인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자는 서로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그대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들이 각자 말하는 인물들과 관계의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거짓이 많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이야기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의 인물을 두고 각자가 보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상을 두고도 말하는 화자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좋은 어머니'도 되었다가, '돈 많은 식당 주인'도 되는 것, '동굴 같은 곳'에서 '희망을 꿈꾸게 되는 집'도 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알고 모름의 방식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비유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방식도 아니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속내를 겉보다도 더욱 진솔하게 드러낸다.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며 '속물'이내 뭐내 하는 것은 바로 이 미칠듯한 진솔함 때문일텐데, 사실 이런 솔직함을 그냥 '찌질함'으로 얼버무리기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 많다. '하하하'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찌질한게 아니라 지극히 솔직한 것 뿐이다. 뭐랄까 우리가 일상에서 속으로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들 겉으로 거침없이 이야기할 뿐이다. 이것은 분명 찌질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지나치리 싶을 정도의 솔직함은 (그런데 개인적으로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이런 솔직함 자체를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영화가 의도하는 점이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극 중 인물과 나를 완전히 겹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웃을 지언정 그 안에서 내가 완벽하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처럼 솔직하게 '저건 완전히 나다'라고 말하지는 못해도, 속으로는 '맞아, 나도 저런 적 있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하기만 한 듯한 영화에서 나를 보는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홍상수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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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하하'에 대한 감회를 짧은 글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따른다. 진짜 홍상수 월드 속 인물들처럼 (홍상수 월드의 인물들은 모두 주당이다) 대낮부터 나 한잔 너 한잔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줘야 어느 정도 정리해볼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설프게 남아버린 글에서 더 본격적인 것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영화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려 한다. 이번 씨네 21에 실린 홍상수와 정성일의 엄청난 대담을 보면(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지난 호를 반드시 소장해야 한다. 그 만큼 압도적인 컨텐츠가 실려있다), 홍상수는 줌을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리듬으로 사용한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하하'에 사용된 줌에서는 리듬 감이 느껴진다. 그냥 인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역시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홍상수 영화에 이렇게 음악이 많이 사용되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음악이 인식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떤가. 이제는 다른 설명 필요없이 그냥 '홍상수'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짙게 풍기는 김상경은 말할 것도 없고(주책 떠는 그의 연기가 단순히 '주책'으로만 보이지 않고 진정이 느껴졌던 것은 오롯이 그의 몫이라 하겠다), 전작에 이어 또 다시 출연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는 유준상의 발견은 계속 되고 있으며(영화를 보고나니 흡사 한석규의 말투를 연상케하는 그의 말투를 자꾸 따라하게 된다), 예지원, 윤여정, 김강우, 김민선의 연기들도 잘 녹아들고 있다. 앞선 두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김강우나 김민선의 경우는 홍상수 월드에 들어오게 되면서 발견할 거리를 제공한 듯 하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영호도 인상적이었으며(리뷰를 하다보니 이 시퀀스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못했는데, 작정하고 쓴다면 이 시퀀스만 가지고도 한 편의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던 문소리의 연기가 무엇보다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 문소리가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그녀의 연기였던 것 같다('오아시스' 보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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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없는 듯 했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완벽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번 영화 '하하하'. '잘알지도 못하면서'와 마찬가지로 인물 하나하나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록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발견하게 되는 아름다운 대사들. 이제는 홍상수 월드에 완벽히 적응한 페르소나들과 이제막 세계에 입성한 신예들의 신선함이 돋보이는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홍상수. 내게 있어 '하하하'는 참 재밌고, 참 의미있고, 참 깊은 영화였다.


1. 리뷰를 그저 '하하하하하하하하'라고 써보고도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2.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영화 속 배경이 된 통영에 다녀온지라 살짝 남다르더군요. 나폴리 모텔에서 잘 뻔도 했었구요.
3. 서두에 밝혔듯이 술을 부르는 이 영화 때문에, 아래의 그림 처럼 순대에 막걸리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영화 속 처럼 '막걸리에 도토리묵', '순대에 소주'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화 분위기가 나더군요 ㅎ




4. 재미있어요. 또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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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훈장 (The Medal of Honor, 2009)
시대의 회환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보기 위해 갔던 이번 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 보다 먼저 보게 된 영화는 루마니아 영화 '아버지의 훈장'이었다. 영화제가 두근거리는 이유는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만나는 것 외에 모르는 감독과 작품을 감으로만 선택하여 즐기게 되는 '긴장감' 때문이기도 한데, 내게 있어 칼린 피터 네쳐의 영화 '아버지의 훈장'은 그런 종류의 미지의 영화였다.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놉시스를 보고는 그냥 노인이 주연한 코믹과 감동의 드라마 일 줄 알았는데, 막상 본 영화는 루마니아라는 나라가 겪었던 시대와 그로 인해 벌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슬픈 자화상을 아주 개인화한 사건을 통해 풀어낸 '좋은 영화'였다.

변변한 직업 없이 연금으로 하루하루를 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노인 '이온'. 집 관리비가 밀려서 주인을 피해다니고, 난방이 안되 방안에서도 옷을 껴입고 있어야 하지만 고칠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남편과 말조차 섞지 않은 지 한참이 된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을 알 수 없는 훈장 하나가 이온에게 수여된다는 통보를 받게 되고, 이온은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면서 이야기는 한 발 더 나아가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이온은 참 정직한 사람이다. 보통 이런 줄거리의 주인공이라면 무언가 '생색'을 낼 수 있는, 넝쿨째 굴러온 좋은 기회를 그저 놓치지 않으려 바로 움켜쥐려고만 할 텐데, 이온은 도대체 자신이 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유를 집요하게 찾아내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지만 중요한 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온은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되고, 그제서야 이 훈장을 떳떳히 자랑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대통령에게까지 초대를 받게 되면서 그의 이런 자랑은 그의 주변 사람들과 한 동안 말 한마디 않고 지냈던 아들에게까지 퍼지게 된다. 

루마니아가 겪었던 역사와 이로 인한 현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는 나처럼 정보가 적은 이가 보아도 어느 정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이런 일들이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왜 '이온'은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 배경을 떠올려 보게 한다. 왜 이온은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밀고하여 감옥에 보낼 수 밖에는 없었으며, 그로 인해 가족들은 한 동안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소통을 닫고 살아야 했으며, 왜 훈장이라는 것에 그렇게 의미를 둘 수 밖에는 없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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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몰고 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한 순간에 무너트리고 만다. 그 무너지는 순간은 곧 이온의 좌절의 순간이며, 이 좌절은 허무함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운 감정이다. 그래서 별다른 장치 없이 드디어 만난 아들 앞에서 나서기를 주저하고, 주변 인물들이 모두 모인 즐거운 식탁 앞에서 이들의 대화가 단순한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순간적으로 자신의 회환에 휩싸이는 마지막 시퀀스는 감정적으로 압도적이다. 루마니아가 겪는 시대를 떠올리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그래서 시종일관 이온의 행동들을 그저 한 노인이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로 보았던 이들 조차도, 마지막 이온의 울컥함에는 공감할 수 밖에는 없다. 그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마치 매일 웃으며 보던 TV 시트콤의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울컥하게 되는 것처럼, '아버지의 훈장'은 좋은 엔딩을 갖고 있다. 


1. 사실 큰 기대 없이 그 시간 대의 영화 가운데 시놉시스만 보고 고른 영화였는데, 대 만족이었습니다.
2.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노래도 좋았어요. 마치 '그르바비차'의 엔딩에 흐르던 '사라예보, 내 사랑' 과 같은 느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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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Brothers, 2009)
토비 맥과이어마저 변화시킨 그 것.



일찌감치 지난해 하반기 기대작이었던 짐 쉐리단의 '브라더스 (Brothers)'를 조금 늦었지만 개봉하여 만나볼 수 있었다. 짐 쉐리단은 일찍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한 '나의 왼발 (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3)'를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었는데, 좀 의외였던 50센트 주연의 '겟 리치 오어 다이 트라인 (2005)'이후 오랜만에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역시 포스터를 채우고 있는 세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피터 파커 토비 맥과이어와 나탈리 포트만 그리고 제이크 질렌할까지. 이 세 명의 배우만으로도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은 되겠구나 싶어 보게 된 '브라더스'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특히 토비 맥과이어) 어쩌면 배트남 전처럼 그리고 9.11처럼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로 남게될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관한 쓸쓸한 뒷 맛(동시에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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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봐도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샘(토비 맥과이어)은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두 딸을 남겨둔 채 또 한번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의 파병이 결정되던 날 그의 동생인 토미(제이크 질렌할)는 출소를 한다. 그렇게 아프카니스탄에 파병된 샘은 적의 공격으로 헬기 추락사고를 겪게 되고, 미국에서는 이들을 찾지 못해 전사로 결정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샘은 부하 군인과 함께 살아남아 아프칸 세력에 포로가 되었고, 샘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그레이스와 가족들의 빈자리는 그의 동생인 토미가 조금씩 채워나간다.

'브라더스'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영화는 최근 본 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였다. '허트 로커'야 군인과 전장을 배경으로 했으니 좀 더 본격적이긴 하지만, '브라더스' 역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로 느껴졌다. 두 작품은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나는데 전자는 전쟁 그 한 가운데 놓여진 인물의 중독과 공포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다면, 후자는 전쟁이 야기시키는 갈등과 슬픔들을 통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이 방식 역시 전쟁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브라더스'는 진정성이 있었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중요한 영화는 전혀 아니지만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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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다녀왔을 정도로 문제아인 동생 '토미'. 토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기대에 맞춰가는 형 샘에 비해 자식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었고, 샘이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가족의 갈등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된다. 토미는 아버지에게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던거죠!'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영화는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이 갈등은 여기서 더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형의 빈자리를 착실하게 토미가 채워나가며 형수인 그레이스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듯 하지만, 이것 역시 이 곳에서 멈춘다. 영화는 이렇게 몇가지 일반적인 길들을 보여주지만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않고, 다시 샘(토비 맥과이어)의 이야기로 돌아와 그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랑하는 아내 그레이스와 다시 만나기 위해,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두 딸을 다시 한번 품에 안기 위해, 샘은 자신의 후임병을 직접 죽이는 일을 그들의 강요에 의해 저지르고야 만다.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죽게 되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서, 샘은 아내와 딸들을 다시 볼 것을 생각하며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야 만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샘은 동생과 아내의 관계를 의삼하게 된다. 동생과 아내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샘은 이 말을 믿지 못한다. 이 둘은 정말 샘이 생각하는 것처럼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관객이 본 것처럼 이들의 관계는 키스 한 번으로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관객 뿐 샘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샘의 행동은 '관객으로서' 공감이 될 정도로, 샘이 아프칸에서 겪은 일들은 그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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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그 것만을 위해 자신의 후임병을 스스로 죽여야만 했던 샘에게, 아내와 동생의 이런 미묘한 관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용서하기도 어려운 것이었을 터. 샘은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지고 결국 딸들에게도 위협을 가하기까지 이른다. 사실 영화를 평면적으로만 본다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샘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 두 딸들의 말처럼, 차라리 토미랑 더 살고 싶을 정도로 두렵고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데 샘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겪은 일들을 안다면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은 전쟁이란 것이 한 가정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는 점이다. 함께하기 위해 신념을 꺽고 살인마저 저지르게 만들었던 남자가 스스로 이런 가족을 떠나 아프칸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게 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을 만들어버린 것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와 남편이 돌아왔으나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도 역시 전쟁이라는 무서운 존재다.

첨에 영화를 보고나서는 '브라더스' 라는 제목의 의미를 잘 접목시킬 수 없었는데, 글을 쓰는 와중에 한 가지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영화 속 동생 토미는 형이 총을 들고 난동을 부릴 때도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할 때도 단 한번도 형을 질책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평생 형과 비교당하며 살았고, 형수인 그레이스와 두 딸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했던 자가 아니었던가. 형의 몰락을 계기로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 토미이지만, 토미는 단 한번도 이런 마음을 먹지 않은 듯 하다(형이 돌아왔을 때 공항에서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짓긴 하지만, 토미에겐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끝까지 형을 이해하려 안심시키려 하는 것도 토미다. 이것을 단순히 그 동안 감옥에 다녀온 것을 비롯해, 잠시나마 형수와 그런 맘을 품었던 것에 죄책감으로 인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제목 '브라더스'처럼,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위로와 포용을 할 수 있는 형제로서의 무언가가 있다.

앞서서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미국에게 있어 앞으로도 계속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영화는 이런 주장을 더욱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영화 속 아버지는 힘들어 하는 샘을 보며 '나도 베트남에서 왔을 때 이유없이 화를 내고 조절하기 어려웠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미국의 오랜 트라우마인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아프칸 전쟁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아니 '왜?'라는 물음과 깊은 상처만 남긴 전쟁이 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질식할 것 같아'라는 샘의 여린 한 마디는 이렇게 자의와는 상관없이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 상처 깊은 외마디 비명 같아 눈물이 핑돌았다(떠날 때는 그렇게 빠지지 않던 결혼반지가 돌아온 뒤에는 손가락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정도로, 변해버린 샘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묘사도 짧지만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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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부제목으로 썼을 정도로 토비 맥과이어가 만들어낸 무서운 캐릭터는 피터 파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토비 맥과이어는 분노가 아니라 전쟁이 한 다정한 가장을 어떻게 변화시켜 버렸는지를 날카로운 턱선과 매마르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이런 날카로운 연기를 보고서는 일라이자 우드가 '씬 시티'에서 맡았던 캐릭터가 떠올랐는데, 항상 해맑았던 일라이자 우드가 변하면 약간 사이코 틱한 느낌이라면, 역시 밝았던 토비 맥과이어는 정말 무섭도록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싶었다(물론 캐릭터 차이겠지만서도;). 어쨋든 기존 피터 파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시종일관 불안해하게 되는 영화 속 맥과이어의 모습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이 영화는 순전히 그의 연기 덕택에 스릴러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1. 최근 '언 에듀케이션'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던 캐리 멀리건이 깜짝 출연하더군요.
2. 사실 토비 맥과이어 만큼이나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다름아닌 큰 딸로 출연한 아역 배우였어요. 마치 어른처럼 울음을 참으며 가슴으로 우는 연기나, 이렇게 무섭도록 변한 토비와 대결할 정도의 눈빛 연기나. '빵꾸똥꾸' 해리 만큼이나 강렬한 연기였어요.
3. U2의 음악은 영화 속에 'BAD'로 한 번, 이번 영화를 위해 만든 'Winter'로 한 번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영화를 보고나서 예고편을 보니 본편에는 없는 장면이 있군요. 없어도 큰 문제는 없는 장면 같긴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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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2 (Iron Man 2, 2010)
이젠 (슬슬) 어벤저스를 보고 싶다.


존 파브로의 '아이언 맨 (Iron Man)'은 참 잘 빠진 액션 히어로 영화였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와 비슷한 점이라면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여럿 갖췄다는 점이겠고, 차별점이라면 전반적인 히어로 물에 근본을 두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어쨋든 유머와 센스가 있는 존 파브로는 자신 만의 스타일로 마블의 작품 '아이언 맨'을 성공적으로 영화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 성공에는 존 파브로의 유머를 완벽하게 소화할 만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완벽한 배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1편의 다이나믹한 마지막 장면은 2편을 기대하게 하는 한편, 걱정을 하게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이언 맨 2'는 이런 걱정스러운 면이 더욱 도드라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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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2'가 걱정스러웠던 요소는 소포모어 징크스로 표현할 수도 있겠는데, 3부작으로 기획된(혹은 최소 3편까지는 예정된) 대부분의 작품들의 경우 1편에서는 캐릭터 소개와 설정 소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속편에서는 확실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앞서 '아이언 맨 2'가 이런 걱정을 안고 시작했던 것은 1편의 마지막에서 대놓고 공개된 부분 때문이었다. 속편이 어려운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반대로 첫 번째 작품이 수월한 이유라면 캐릭터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배경을 소개하며 그 캐릭터가 갖는(특히 히어로라면) 특성을 바탕으로 큰 줄거리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만으로도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편은 다르다. 속편에서는 적어도 전편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다보니 오히려 전편 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잦은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일단 '아이언 맨 2'는 히어로 물이 갖고 있는 주인공의 정체에 관한 부분을 다시금 이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커다란 흥미요소를 하나 잃어버린 격이었다(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가장 흥미로운 요소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강력한 적의 등장 정도를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일단 2편에 등장한 악당 '위플래시/이안 반코'는 비중이 그나마 많은 편이었지만 임팩트는 부족하고 해머사의 CEO '저스틴 해머' 역시 악날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지 못하면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힘을 잃게 된다. 더군다나 그 안에 중간중간 '어벤저스'의 떡밥을 풀어놓는데에도 열심히다 보니 더더욱 포커스가 흔들릴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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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이 있는 경우, 특히 '아이언 맨 2'의 경우처럼 그 원작이 코믹스이며 더 넓은 세계관을 갖은 경우는 어찌되었든 영화로 처음 접하는 이들도 100% 만족할 만한 영화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언 맨 2'는 기본 이야기의 힘이 달리다보니 저절로 그들이 떡밥으로 남겨둔 어벤저스 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사실 코믹스의 세계는 워낙 광활하기도 하거니와 정확하게는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아이언 맨 2'를 통해 어벤저스와 관련한 코믹스의 세계관에 대해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 건 사실이다. 캡틴 아메리카나 닉 퓨리, 쉴드 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맨 마지막 대형 떡밥을 투척한 '토르' 같은 경우는 이번 '공부'를 통해 좀 더 그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블랙 위도우'를 비롯해 사무엘 L.잭슨이 연기한 '닉 퓨리',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와(참고로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1편에도 등장했었죠), 마지막 쿠기 장면까지. '아이언 맨 2'에는 어벤저스의 거대한 예고편으로 봐도 좋을 만큼 이에 관련한 캐릭터와 소스들이 여기저기 노출되어 있다. 사실 이런 '떡밥'들은 말 그대로 곁가지로 활동할 때 좀 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이언 맨 2'는 기본적인 스토리가 힘을 잃다보니 이런 떡밥에 더욱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이언 맨에 대한 스토리는 얼른 깔끔하게 정리하고 어서 어벤저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미드 '스몰빌'이 저스티스리그를 슬쩍 꺼냈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도 비슷한 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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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 2'는 이렇게 기본적으로 소화해야할 캐릭터와 이야기에 더불어 어벤저스의 떡밥들까지 풀어놓다보니 전체적으로 흐지부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그래서인지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역시 살짝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언급해야할 아쉬운 점은 역시 캐스팅이 변경된 제임스 로드 역을 들 수 있겠다. 전편에서 테렌스 하워드가 연기한 로드는 속편에서 돈 치들이 맡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는데, 돈 치들이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로드'라는 캐릭터에는 테렌스 하워드가 더 어울린다고 볼 수 있겠다. 앞서 존 파브로의 장점으로 유머를 들었던 것처럼, '아이언 맨'을 관통하는 정서 중 하나는 쿨한 유머를 들 수 있는데, 로드라는 캐릭터가 돈 치들로 인해 너무 경직되면서 전체적으로도 토니 스타크와 로드가 함께 등장할 때 별다른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했던 것 같다. '매트릭스'의 오라클도 아니고 어지간하면 테렌스 하워드로 계속 갔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스칼렛 요한슨이 맡은 블랙 위도우는 물론 매력적이지만,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를 등장시킨 것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었으며(그런데 반대로 블랙 위도우의 비중을 늘리면 영화는 더 꼬이고 만다), 미키 루크 역시 '더 레슬러'로 재기한 그 이미지를 또 한번 사용하는 것 이상은 보여주질 못했으며, 페퍼 포츠 역의 기네스 펠트로우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전편부터 그래왔듯이 이 페퍼 포츠 역할을 꼭 기네스 펠트로우가 해야만 했나 라는 (팬의 입장에서) 생각 역시 여전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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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주욱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아이언 맨 2'가 최악의 경험이라고는 볼 수 없겠다. 기대하는 바가 낮다면 '아이언 맨 2'는 여전히 매력적인 액션 블럭버스터라 할 수 있겠다. 아이맥스를 통해 감상한 아이언 맨의 활강 장면은 역시나 매혹적이었으며, 의외로 엑스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장면이 더 멋스럽기도 했다. 액션은 분량이나 임팩트만 떼어 놓고 본다면 전편 보다 강해졌으나 (사실 이 정도 히어로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조금 부족한 편인데, 1편을 떠올려보자면 확실히 2편이 좀 더 강하다), 아마도 수 많은 코믹스 팬들이 고대했던 것이 비하면 그의 걸맞는 장면은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뭐랄까 '아이언 맨 2'는 우려되었던 길을 그대로 간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아이언 맨이 이렇게 흔들리면서도 계속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역시 '로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ㅎ
2. 오랜만에 아이맥스 관에서 영화를 봐서인지 시원시원하더군요.
3. 다들 아시겠지마나 극중 '해피' 역할을 맡은 배우가 바로 감독 존 파브로 입니다.
4. 트리비아를 보면 미키 루크가 이 캐릭터를 위해 많은 조사와 애정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정성이 100% 드러날 만큼 캐릭터의 깊이가 깊지 않은 것이 새삼 아쉽게 느껴지네요.
5. 스탠 리 찾기는 마블 영화 보기에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일반인이 아니라 '래리 킹' 역할로 나와서 더욱 재미있었어요 ㅎ
6. '아이언 맨 2'를 보며 새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2'가 얼마나 잘 만든 속편인가를 알 수 있더군요.
7. 자, 각자로 흩어져있는 어벤저스 주인공들의 영화는 과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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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 (Kick-Ass, 2010)
히어로물의 또 다른 진화론


잘못 봐도 한 참 잘못 봤었다. 처음 매튜 본의 <킥 애스>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 '힛 걸'의 그 안대 위장 때문인지, <인크레더블>의 유쾌한 영화버전인 줄로만 알았었다. 오해도 이런 심한 오해가 없었다. 그 다음에 스샷 들이 공개되고, 그 안대를 한 소녀가 <500일의 썸머>에 출연했던 크로 모레츠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나에게 <킥 애스>는 그럭저럭 관심있는 영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깊은 오해는 영화가 시작되고나서부터 바로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슈퍼 히어로물의 정석을 이어가려는지 <슈퍼맨>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오프닝 크래딧부터 범상치 않은 조짐을 들어내더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산뜻한 음악을 배경과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아, 이 영화 진짜들이 만든 야심찬 작품인데?'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아, 이번 주말 <킥 애스>를 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영화 팬들을 넘어서 대중들을 압도한 히어로 물의 걸작이었다면, 매튜 본의 <킥 애스>는 그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공감할 지언정 그 적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그 어떤 영화보다 신나게 즐길 만한 또 다른 히어로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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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 오프닝의 참신함으로 '어랏?'하는 느낌을 주긴 했지만, 그 이후에는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한 듯도 보였다. 그러니까 이른바 왕따에다 루저 주인공이 히어로가 된다는 피터 파커 식 전개인데, 영화는 주인공 '데이브'의 내레이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미에게 물리지도 않았고, 외계에서 온 존재도 아닌' 그냥 히어로를 꿈꾸는 소년이라는 점에서 <슈퍼맨>등의 히어로 물은 물론 가장 가깝울 것만 같았던 <스파이더 맨>류의 히어로 물과도 차별된다는 점을 애초부터 강조하고 있다.

<킥 애스>가 뭔가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는 뉘앙스는 영화 속 킥 애스가 처음 공개적인 장소에서 결투를 벌이는 시퀀스 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왜 아무도 슈퍼 히어로가 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데이브의 무모한 '킥 애스'되기는, 사고를 통해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부분과 맞물려 (어쨋든 아주 평범한 건 아니었다 ㅋ) 불의를 보고 참지 않고 뛰어든 우연한 사건이 여러 사람들에게 촬영되고 유튜브를 통해 인기를 얻으면서 커다란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끝까지 방관하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보통 같았으면 이렇게 방관하다가 이후에 가서는 적어도 '계몽'되었을 군중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끝까지 이 군중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실 <킥 애스>는 그냥 미친듯이 웃고만 즐겨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끝까지 씁쓸한 뒷 맛을 남기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이 작품을 인상적인 영화로 만들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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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군중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더 전개를 해보자면, <슈퍼맨> 속 군중들은 가끔 언론에 휘둘려 슈퍼맨을 오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웅이라 칭송하는 분위기가 있고, <스파이더 맨>의 경우는 2편의 모습으로 미뤄 봤을 때 '우리의 아들이자 이웃일 수 있는 이 소년을 지켜주자'라는 분위기까지 드러내지만, <킥 애스>속 군중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부정적인 시각 뿐이다. 여럿에게 당하고 있는 한 남자를 구하던 킥 애스가 '다들 구경만 하고 있잖아!'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표정들이고, 그렇게 영웅시하던 킥 애스가 TV에 나와 공개처형 당할 위기에 처했음에도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른 인터넷으로 자리를 옮겨 이 '화끈한' 사건을 구경하려는 모습들 뿐이다. 그런데 <킥 애스>가 의미 심장한 건 적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군중들을 계몽시키지 않는 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반 사람들은 끝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는다. 이 사람들은 끝까지 구경꾼이며 또한 방관자다. 영화는 시종일관 통쾌한 웃음을 주는 가운데서도 이런 씁쓸한 시각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생각해 볼 점은 주인공이 소년과 소녀라고 부르기도 모호한 어린 '아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일반적인 성장담으로 이어지곤 하지만, <킥 애스>는 성장담으로 보기 어렵다. 성장하지만 이것은 성장이라기 보다는 자각에 가깝다. <킥 애스>에 관한 글을 쓰면서 부제목으로 고려 했던 또 하나는 '왜 아이인가?'였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 테마가 인상 깊었다. 영화는 어린 아이가 어른스러운 삶과 현실 그리고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 놓여지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는 확실히 불편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런데 <킥 애스>는 이 '힛걸'을 그냥 살인기계처럼 길러진 아이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받은 교육 탓에 이런 비지니스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프로페셔널이 되었지만, 어쨋든 아이라는 점을 영화는 계속 상기시켜 준다. 훈련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요구하는 것이나 특히 적과의 대결 중간 중간 아이다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몇 번씩 삽입한 것은 분명 '힛걸은 저래뵈도 아이다!' 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으리라. 결국 모든 짐을 어린 아이와 소년이 지게 되는 영화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대중의 모습과 더불어 이 작품이 배경에 깔고 있는 씁쓸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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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장르적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쨋든 마크 밀러와 매튜 본의 <킥 애스>는 히어로 물의 새로운 진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킥 애스>는 스스로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이야기의 변종으로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오마주와 이야기를 통해 밝히고 있다. 뭐랄까 <스파이더 맨>이 <슈퍼맨>류의 슈퍼 히어로 물이 아닌 일반인의 성장담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영웅담 격의 A-Side라면, <킥 애스>는 이런 전형적인 룰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B-Side의 느낌이다. 영화는 그래서 일부러 <스파이더 맨>의 여러 설정을 가져와 오마주와 변이를 반복하고 있다. 앞서 피터 파커와 데이브의 다른 점에 대해 언급했으니 그 외에 점을 들어 보자면, 데이브가 처음 킥애스가 되어 연습을 갖게 되는 옥상은 피터 파커가 올라서 있던 그 옥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물론 미국 내에 이런 풍경의 옥상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쨋든 그 옥상의 풍경이나 옥상에서 스파이더 맨이 벌였던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면 분명 염두에 둔 설정인 듯 하다). 그 외에 데이브 아버지의 모습과 벤 삼촌의 모습은 상당히 흡사하지만, 벤 삼촌이 피터 파커에게 책임에 관한 메시지와 트라우마를 동시에 주었던 것에 반해, 데이브의 아버지는 그 자신도 그렇고 데이브 본인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하다(만약 피터 파커가 그런 위기를 당했다면 당연히 벤 삼촌을 떠올렸겠지만 데이브는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로스트 마지막회 정도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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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배경에 깔고 있는 비판적인 텍스트나 장르적인 면을 모조리 무시하더라도 <킥 애스>는 그냥 웃어 넘기기에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영화의 곳곳에 숨어 있는 미칠듯한 인용구들과 코믹북이나 이런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쉽게 발견할 만한 갖가지 설정과 소스, 소품들 그리고 히어로 물의 기본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벌어지는 웃지 못할 장면들(그런데 웃긴)만으로도 <킥 애스>의 재미는 사실 충분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또 다시 유아적인 감성으로, 이 그냥 껄껄 웃고 넘겨될 이야기에 동화된 나머지 많은 이들이 웃고 넘겨던 장면들에서도 심하게 감정 몰입이 되어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킥 애스>의 장면 장면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다크나이트>를 비롯한 <배트맨> 시리즈를 보면서 예상할 수 있었던 히어로의 노고, 그러니까 검은 가면을 쓰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눈 주위를 검게 팬더 처럼 칠하는 장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거나(레드 미스트는 아예 팬더 같은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몸이 타들어가는 심각한 장면에서 그들만의 매니악한 암호들을 주고 받는 장면들을 보면, 막 웃다가도 무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마도 빅 대디(BD)가 아니었나 싶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빅 대디의 이야기만 보면 <스폰>이나 <왓치맨> 못지 않은 어두운 히어로 물인데, 이 이야기가 유쾌함이 묻어있는 데이브의 '킥 애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히어로 무비의 양면성을 갖게 된 것 같다. '킥 애스'의 이야기와 '빅 대디와 힛걸'의 이야기 중 하나만을 가지고 전개했다면 영화는 더 깔끔할 지언정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킥 애스>는 기존 히어로 물과는 또 다른 새로운 양면성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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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을 대놓고 두 손들어 찬양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래픽 노블의 세계가 무궁무진 하다는 것은 이번 마크 밀러의 <킥 애스>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그래픽 노블의 장점이란 나처럼 대부분의 작품을 영화화된 작품과 연결지어 알게 되고 보게 된 이들조차 느낄 정도로, 그 수 많은 작품의 수 만큼이나 스스로를 인용하고 복제하면서(좋은 의미로) 진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킥 애스>를 논하면서 거창하게 <다크 나이트>를 언급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킥 애스>는 <다크 나이트>처럼 완벽에 가까운 히어로 무비는 아니지만, <다크 나이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혹은 '다크 나이트'가 말하는 양면성과 비교 또는 차별되는) 또 다른 양면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 그 옥상이 <스파이더 맨>의 그것과 닮았다면 마크 스트롱이 수련하는 수련장이나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창을 깨고 등장하는 장면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게 하죠. 그것 외에 엘레베이터 입구에서 수 많은 적들과 총격을 벌이는 것도 그렇구요.

2. 마지막 바주카를 사용할 때의 장면은 정확히 마크 밀러의 작품인 <원티드>의 첫 장면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더군요.

3. 사운드 트랙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들이 잔인한 장면들과 함께 엉켜있죠. 미카(Mika)의 곡이 수록된 것은 적절하면서도 의외였어요 ㅎ (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4. 개인적으로는 <노잉>도 좋았지만 연기 측면에서는 최근 몇년 간 본 니콜라스 케이지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우스움과 진지함을 다 보여주었달까요.

5. <500일의 썸머>에서 될 성 부른 떡잎으로 눈길을 끌었던 '힛 걸' 역의 크로 모레츠 (Chloe Moretz)는 겨우 1997년생! 앞날이 창창합니다. <렛 미 인> 리메이크 버전에도 캐스팅 되었군요.

6. 원작을 스틸컷으로나마 본 결과 그 보다는 덜하지만, 어쨋든 잔인한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알고 보면 그리 잔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애들이 주연하는 깔깔대는 히어로 무비만 생각하고 보시면 사뭇 놀라실 수도 있어요.

7. 최근 영화 팬들 사이에서 '힛 걸'의 기세를 보면 마치 예전 <엑스맨 3> 개봉 당시 엘렌 페이지를 보는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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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왜 그들은 그곳에 가야만했나?


제임스 카메론과 <아바타>에 관련된 영화 외적 이슈들은 너무 많이 언급이 되었으니,여기서 또 언급하지는 않겠다. 개인적으로는 <아바타>를 누르고 아카데미를 수상해서가 아니라 <폭풍 속으로> <K-19>등 이른바 '남성영화'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여성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 <허트 로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계속 미뤄지는 국내 개봉 탓에 혹시 개봉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 때쯤, 아카데미 시즌이 한참 지나고나서야 겨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폭풍 속으로>도 물론이지만 <K-19>같은 작품을 보면 도저히 이 작품을 여성 감독이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쉽게 믿기 어려운 정도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전을 다룬 영화였음에도 '제대로 묘사나 할 수 있었겠어?'라는 편견은 전혀 없이 오롯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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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라기보다 배경은 이라크 전에 참전하고 있는 미군들, 그 가운데서 폭발물 제거반 (EOD)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허트 로커>는 기승전결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지만 한편으론 줄거리보다는 위의 배경만으로도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폭발물 제거반'이라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스릴, 곧 긴장감이다. 과연 폭발물이 언제 터질까 혹은 제거 중에 터지는 것은 아닐까, 무사히 제거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이 영화의 기본적인 긴장 요소다. 그런데 캐서린 비글로우는 이 긴장 요소를 다른 극영화들처럼 더 극적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보통 같았으면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에 긴박감 넘치는 음악을 삽입하고 편집과 컷을 통해 관객의 아드레날린도 조종하려 했겠지만, 이런 점에서 비글로우는 매우 담백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더 긴장감을 느끼게 되니 그것이 이 영화에 미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긴장감을 다루는 캐서린 비글로우 만의 장점이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은 주인공 제임스와 샌본이 사막에서 먼 거리의 적을 만나 오랫동안 대치하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였다면 이 특화된 액션 시퀀스를 더 박진감 넘치게 그리려고 했을 텐데, <허트 로커> 속 장면은 이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오히려 느린 템포로 가져가고 있다. 해치웠다고 생각된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두는 장면은 영화가 긴장감을 다루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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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오프닝에 나오는 인용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에 중독되어 버린 자들을 빗대어 전쟁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99% 전쟁 영화는 그 방식이 무엇이 되었든 전쟁이라는 것의 참혹함과 끔찍함을 통해 '왜 이런 전쟁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좀 더 스릴과 중독이라는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정치적인 측면과 더불어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전쟁 영화는 '왜?'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누가 이런 참혹한 전쟁을, 왜 일으키는가 말이다. <허트 로커>는 이런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전쟁에(폭발물 해체에) 중독되어 있는 제임스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국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들이고 제임스라는 캐릭터 역시 전쟁으로 인해 탄생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거기 갈 필요가 없었어' 라는 엘드리지의 한 마디는 단순히 제임스의 명령으로 인한 사건에 국한 되기 보다는, 미국이 결국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대사가 가장 뇌리에 남는다).

혹 전쟁에 중독되어 버린 제임스 라는 캐릭터를 두고 '미국'으로 연관지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제임스 역시 이로 인한 피해자로 그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쇼핑마트에서 시리얼 하나 사지 못하는 제임스의 모습은 웃음 코드로 넣은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현실에서 전쟁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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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의 첫 느낌은 조금 뻔한 전쟁 영화(그러니까 충분히 예상되었던 메시지)라고 느껴졌었는데, 곰곰히 생각할 수록 흥미로운 기법들을 통해 메시지를 은은히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라크 전과 아프카니스탄 전에 관한 자각있는 미국인들의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허트 로커>는 그런 면에 있어서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1. 가이 피어스, 랄프 파인즈, 데이비드 모스, 미드 <로스트>의 케이트 '에반젤린 릴리'와 역시 미드 <덱스터>의 아이스트럭 킬러 '크리스찬 카마고'까지. 까메오 분량으로 출연한 여러 배우들의 모습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2. 현대 소나타가 비중있게(?) 나오더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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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인형 (空気人形, 2009)
외로움에 관한 위로의 판타지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를 비롯해 지난해 <걸어도 걸어도>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은 매번 삶의 관한 깊은 통찰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한 켠이 심하게 저려오는 현상을 일으키곤 했었다. 이런 그의 작품들을 함께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팬이 되어버렸는데, 이런 그의 신작 <공기인형>에 대한 첫 인상은 사실 조금 의외라는 느낌이었다. 전작들로 미뤄 봤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계관이란, 너무나 현실적이고 평범한 것들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의 조각을 찾아내 성찰하고 투영해내는 것이라고 느꼈었기 때문에, '공기인형'이라는 소재와 무언가 사이버 판타지스러운 느낌의 기본 골격은 왠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변하지 않았다. '공기인형'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가지고 다시 한번 인간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선과 더불어,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본 사회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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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남자가 성생활 보조 도구로 구매한 '공기인형' 노조미가 어느 날 마음을 갖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형이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설정은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인데, <공기인형>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공기인형>은 노조미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마음을 갖게 되어버린 공기인형 노조미를 통해 그녀를 둘러 싼 인간들의 외로움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기인형>에는 노조미 외에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외로움과 결여됨에 힘겨워 하는 이들이다. 젊은 여성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 탓에 점점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 하는 노처녀, 역시 사회와 단절되어 애니메이션과 영화에만 빠져사는 오타쿠 청년, 거식증에 먹는 것으로만 하루를 보내는 히키코모리 여자, 홀로 어린 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사람의 따스한 손길을 그리워 하는 노인, 현실과는 상반된 모습을 영화로나마 풀어내려는 경찰 그리고 공기인형을 마치 사람처럼 여기며 하루를 살아가는 남자까지. 모두들 결여된 부분이 있는터라 날이 서 있는 사회 속에 차마 섞이지 못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이다. 사실 <공기인형> 속 캐릭터들은 이런 결여된 부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각의 특별한 배경이 주어진 경우지만, 실제로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겹쳐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결국 차가운 도시를 살아가는 외로운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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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움과 연민을 관통하는 캐릭터는 역시 노조미 (배두나)이다. 인형인 노조미가 마음을 갖게 되면서 그 갖지 말았어야할 마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들을 통해, 이미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인간들을 거꾸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런 외로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끊임 없이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결여 혹은 결핍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부족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채워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여의 테마를 '채운다'의 메시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공기인형인 노조미가 사고로 몸에 구멍이 나 바람이 빠진 뒤에 묘한 감정이 싹트고 있던 비디오 가게 점원인 '준이치'가 직접 바람, 아니 숨을 불어 넣은 행위는 매우 직접적인 표현 방식인 동시에 이런 '채운다'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것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숨'이라는 점은 이 이전과 이후, 그러니까 공기가 들어 있을 때와 숨이 담긴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틀린 노조미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저 펌프질을 통한 바람이 담겨있던 '공기'인형 노조미는 인형처럼 움직이고 인형처럼 행동했지만, 준이치가 '숨'을 불어넣은 노조미는 혈색도 사람다워졌고 무엇보다 이전에는 없던 '표정'이 생겼다는 점에서 관계를 통해 보다 의미있어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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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공기인형'이 갖는 메시지는 누군가로 인해 '대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 누구나 내가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지만 관계를 맺다보면 서로가 느끼는 존재감이 다를 수 있게 되고, 이런 것에서 상처를 받다보면 나중에는 영화 속 남자처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홀로 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게 된다. 여기서 고작 얻을 수 있는 위로라고는 '나 같은 이가 더 있다'라는 것 정도 뿐이다.

점점 세상을 배워가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게 된 노조미는, 이제 용기를 얻어 자신도 무언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 데에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하지만 노조미의 이런 의지는 그녀의 바램과는 다르게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는 자신의 숨이 왜 누군가를 더 다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벌어진 결과 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태생적으로 결여된 존재였던 노조미에게 세상은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고, 그녀는 이 가혹함을 가혹함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한채 사그라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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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항상 희망을 이야기하던 작가였다. <공기인형> 역시 얼핏보면 너무도 슬프기만 한 판타지로 보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노조미는 그 주변을 둘러 싸고 있던 인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홀씨를 남기는 계기가 된다. 어떠한 희생으로 인해 희망을 엿보게 된다는 것은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노조미가 남긴 홀씨를 희망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려 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마지막 노조미가 꾸는 환상은 너무나도 슬픈 장면이었다. 이때 까지 몇번 외로움에 울컥했던 나는 이 환상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공기인형>은 그냥 너무 슬프고 짠하기만한 판타지가 되었을 텐데, 이로 인해 영화는 그래도 위로 받게 되는 판타지가 되었다. 이 장면에 대한 감회는 사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매번 이런 지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곤 한다. <공기인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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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몇 달 전 다녀왔던 일본의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 터라 더 남다르게 다가온 작품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느꼈던 그들의 외로움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 'world's end girlfriend'가 참여한 사운드 트랙도 영화와 잘 녹아드는 모습이었다. 새로 작업한 곡들 외에 그들의 지난 앨범 'Hurtbreak Wonderland'의 수록곡도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좋았고. 배두나의 연기는 더 말할 것이 없더라. 확실히 아오이 유우나 미야자키 아오이 등이 할 수 없는 연기와 아우라가 배두나에게는 있다(단순히 노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과감히 잡은 배두나의 선택은 역시 옳았다.


1. 'world's end girlfriend'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참 좋습니다. 영화의 쓸쓸함과 위로를 모두 담아내고 있어요.

2. 사실 전혀 모르고 간 터라 조금 놀랐는데, 영화 속 노출이 생각보다 높더군요. 전 그것도 몰랐는데, 이 영화를 검색하려보니 '배두나 노출'이 연관 검색어로 뜨더군요. 여전히 작품은 보지않고 노출에만 열을 올리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또 한번 한심스럽습니다.

3. 극중 배두나가 오다리기 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메트로 폴리스>나 <블레이드 러너>가 살짝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오다기리 죠의 기존 이미지에 많이 기댄 캐릭터는 그것 만으로도 훌륭한 캐릭터가 되더군요.

4. 마지막 노조미의 환상 부분은 <에반게리온> TV판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겹쳐지더군요. 그래서 더 왈칵 했을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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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 (The Book of Eli, 2010)
세상을 구하는 서부극


언제나처럼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영화 <일라이 (The Book of Eli)>는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종말 후의 지구(혹은 대재앙 뒤의 지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서부극이었다. <프롬 헬>을 연출했던 휴즈 형제가 연출한 이 작품은 묵시록적이고 종교적인 색체와 서부극의 분위기, 그리고 액션의 요소까지 다루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볼 만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세가지 중에 어떤 한 가지에 조금 더 비중을 실었다면 더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반전이 있지만 (사실 후반에 드러나는 반전 외에 영화의 주된 소재인 '그 책'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은 반전이라고까지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나로서도, 대재앙 이후의 지구와 주인공과 이 책을 갖으려는 카네기(게리 올드만)로 미뤄보았을 때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는 명확하지만, 거기까지 끌고 가는 과정의 맛은 조금 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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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대재앙으로 인해 야외에서 활동할 때는 선그라스를 써야만 하는 그러니까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린 지구를 배경으로 수십년간을 떠도는 주인공 (덴젤 워싱턴)이 등장하는데, 이 주인공은 무언가 임무가 있는 듯하고 무술에도 초고수다. 그러다 만난 어떤 작은 마을의 지배자 카네기는 자신이 갖은 권력을 어떤 한 권의 책을 갖기 위해 모두 쏟고 있는데, 주인공을 만나게 되면서 이 책의 비밀에 좀 더 가까워 진다.

<일라이>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역시 최근 보았던 <더 로드>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 속 지구의 풍광은 <더 로드>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으며, 몇몇 장면은 그대로 가져온 듯한 느낌이 날 정도다. 하지만 <더 로드>의 풍광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듯한 매마름의 황폐함이라면, <일라이>의 풍광은 전체적으로 황폐하지만 서부극의 그것과도 같은 황폐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영화의 대부분은 서부극의 구성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라이>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서부극의 면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마을의 묘사는 물론, 주인공과 악당들이 대결하는 구도 역시 서부극에서 거의 다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심지어 캐릭터 중 한명은 모리꼬네의 유명한 스코어를 휘파람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또한 한 세대가 끝나고 다른 세대가 시작되는 것 역시 서부극에서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모티브로서, <일라이>는 전체적으로 서부극을 깔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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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살펴볼 만한 요소는 역시 '포스트 묵시록'적인 종교적 색체다. 이 작품은 너무 표면적으로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어 오히려 종교적이지 않게 느껴질 정도인데, 덴젤 워싱턴이 맡은 캐릭터는 처음부터 무언가 '임무'에 충실한 것이 너무 역력히 드러나고(혼자 반복하는 대사들도 그렇고), 나중에 악당들과 대치했을 때의 장면 구성에서는 더더욱 그를 메시아 혹은 메신저로 여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종교적 색체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종교적인 작품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분위기를 위한 트릭일 뿐 본연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종교적인 것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다. 마지막 결말과 결부지어 이것저것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성경의 내용들과 결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점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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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라이>의 아쉬운 점이라면 서두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종교적인 색체는 트릭으로 분위기만 흘리고, 액션과 스타일은 과하고 본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들에 가려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이 셋 중의 하나만 집중했더라면 영화의 호불호는 더 갈렸을지언정 적어도 지지하는 편의 힘은 더 강해졌을 터인데, 중간의 모호한 지점에 남게 된 경우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거의 비슷한 표현을 이미 한 평론가가 있어 말을 빌려오자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웬 글라이버맨은 “이 무거운 실패작은, 카 체이스가 없는 <매드 맥스 2: 로드 워리어>이자, 휴머니티가 없는 <더 로드>이다"라고 평했는데, 정확히 맞지는 않지만 비슷한 느낌이 많은 편이었다. 어쩌면 치열했던 <더 로드>보다 더 깊은 철학은 물론 더 깊은 세계관을 품어낼 수도 있었던 그릇이었고, <매드 맥스>보다 더 세련되고 묵시록적인 액션과 분위기를 낼 수도 있었던 작품이었지만, 두 가지 모두 이들에게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보니 맨 마지막에 본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반전으로 풀어내었을 때, 그 반전의 충격 정도를 떠나서 크게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부분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쓰다보니 스포일러 없이 써보자는 글이 되어버려 반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만약 영화 내내 주인공의 여정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더라면 마지막 반전에 당연히 더욱 빠져들 수 있었을텐데, 반전은 반전대로 여정은 여정대로 심심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장면이 등장했을 때, 왜 저런지 머리로는 알면서도 심정으로는 '왜 저러는 거지?'라고 묻고 싶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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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큰 기대 없이 본다면 제법 볼만한 작품인 것은 틀림 없다. <더 로드>같은 깊이를 기대한다면 너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그래서 계속 그냥 '그 책'이라고만 숨기는 주인공들이 안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책의 비밀과, 크게 놀라게 되지는 않는 반전 (고로 메시지)에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관객에게 믿을 주는 덴젤 워싱턴의 연기와 오랜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게리 올드만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볼 만한 작품일 듯 싶다.


1. 역시 세상이 아무리 황폐해도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음악인듯. 거의 첫 장면에서 Al Green의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가 극장 가득 울려퍼졌을 땐 소름이 돋더군요. 워낙에 좋아하는 곡이었는데 이런 황폐한 지구에서 또 만날 줄이야. 마치 <12 몽키스>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2. 극중 노인들만 사는 집이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해요. 집주인이 무려 '덤블도어'니까요.

3. 마지막에 친절하게 '어디 버전'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더 좋을 뻔 했어요. 그냥 그 유명한 다리와 멀리서 본 모습만으로도 어디인지 다 알 수 있었으니까요.

4.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 자체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뻔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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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 2000)
카메론 크로우의 완벽한 자전적 영화

<제리 맥과이어>로 유명한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2000년작 <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는 개인적으로 카메론 크로우에게 조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의 최고 작품이 될 영화다. 사실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제대로 보았다는 것이 (난 왜 이리도 이전에 스치듯 본 영화들이 많았던 것일까) 이상할 정도인데, 그의 다른 작품들은 <제리 맥과이어>는 물론 2005년작 <엘리자베스타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을 즐겼으나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오랫동안 신작에 대한 소식이 없구나), 가장 그 다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왜인지, 이제서야 꺼내 들게 되었다.




앞서 이 작품을 카메론 크로우의 전무후무한 최고 작품이라고 한 까닭은, 잘 알다시피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여러모로 감독 본인의 자전적 영화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자전적인 이야기라 그가 살아온 시간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정도의 현실성 때문만이 아니라, 겪어온 시간들을 스스로 어떻게 그리고 있는 지에 관한 방법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도 감독 이전의 크로우의 경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보고 나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주요 경력이라 할 수 있는 음악 잡지 '롤링 스톤'지에 기고하기까지의 일들을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영화 속 '윌리엄 밀러'처럼 어린 시절 월반을 통해 또래들 보다 먼저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며,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지역 음악지에 관련 글을 기고하기에 이른다.




패트릭 후짓이 연기한 '윌리엄 밀러'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카메론 크로우 그 자신이다. 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음악 평론가 '레스터 뱅스'는 실존 인물이며, 극 중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밴드 '
스틸워터(Stillwater)'는 그가 당시 겪었던 수 많은 밴드들과 뮤지션들을 섞어 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물론 '스틸워터' 외에 언급되거나 등장하는 뮤지션들은 '블랙 사바스', '밥 딜런', '데이빗 보위', '믹 재거' 등과 같이 모두 실존하는 뮤지션들이다. 사실 극중 윌리엄 밀러라는 이름 대신 '카메론 크로우'로, '스틸워터' 대신 그가 당시 가장 좋아했던 어느 한 밴드를 등장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듯 한데, 굳이 새로운 캐릭터인 '윌리엄 밀러'와 '스틸워터'를 등장시킨 것은 속보여서도 아니고 밴드 명에 관한 저작권 때문도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카메론 크로우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의 카메론 크로우는 몰랐던 것을 '윌리엄 밀러'는 알고 있고, 당시 그가 따라다녔던 밴드들은 미처 말해주지 못했던 것을 '스틸워터'는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직접 겪은 이가 들려주는 매우 실랄한 뮤직 비지니스의 어두운 면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고, 뮤지션과 팬의 관계에 관한 복잡미묘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으며, 더 나아가 당시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의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에는 실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뮤직 비지니스와 뮤지션들의 허상에 가까운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매니저가 안을 숨긴 두 주먹을 보여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쪽을 택하지만 결국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이런 허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카메론 크로우는 자신이 스스로 가까이서 겪은 뮤직 비지니스와 신격화 된 밴드들의 실체를 보여주려 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고발이나 현실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뮤지션과 팬이 관계에 대한 묘사는 어떨까. 사실 당시의 문화를 조금만 관심있게 들춰본다면 '밴드 에이드' 페니 레인과 같은 인물이라던가 밴드의 투어에 항상 함께하는 팬 문화에 대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표면적으로 팬에게 진정한 팬으로서의 미덕은 무엇일까? 그리고 밴드에게 역시 자신의 팬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메시지를 주려 하는 부분도 있지만, 더 넓게 보면 영화가 이 모든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으로 진정한 팬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 그러면 길었던 서두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카메론 크로우가 <올모스트 페이머스>를 통해 이야기하려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는지 말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크로우가 겪었던 이 실화는 매우 가혹한 이야기로 그려낼 수도 있었고, 더 극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었던 소스였다. 한편으론 중간의 모호한 지점을 택한 듯도 보이지만,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는 정서라면 바로 '긍정'과 '따듯함', 즉 '애증'도 아닌 그냥 순수한 '애정'을 들 수 있겠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몇몇 장면들은 말도 안되게 판타지적이고 긍정적인 장면들이 여럿 있다. 버스 안에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윌리엄에게 '여기가 바로 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페니 레인의 한 마디나, 보통의 영화 같으면 위기의 상황에 갈등이 봉합되는 것과는 달리 반대로 위기의 순간에 터져나온 갈등이 너무 쉽게 눈녹듯 녹아내리는 것도 러셀과 윌리엄의 재회 장면도 역시 한편으론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윌리엄의 어머니를 그리는 방식은 또 어떠한가. 여기에는 프란시스 맥도먼드라는 훌륭한 여배우의 공도 무시할 수 없는데, 윌리엄의 어머니는 단순히 아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려는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인물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항상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듯한 미소와 실제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말과 행동들로, 성장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지식하지만 결국엔 자녀를 이해하는' 부모 캐릭터는 보여줄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캐릭터로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모든 배경에는 긍정과 따듯함을 기초로 하고 있는 카메론 크로우의 방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작품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만들어낸 이야기나 다른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그릴 때와는 다르게, 이미 감독 스스로가 한번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기 때문에 (성장한 것을 본인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한 걸음 더 여유있고 이해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양쪽 어느 쪽으로도 날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또 영화가 그리는 팬 문화와도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카메론 크로우는 음악과 뮤지션을 비평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였지만 (영화 속 스틸워터의 표현대로 '우리의 적'), 이런 비판은 모두 그들의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비판을 하더라도 그 애정을 넘어서는 수준의 것은 의미 없음을 (설사 당시에는 날을 세웠다 하더라도 성장한 카메론 크로우는 윌리엄을 통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쩌면 바보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카메론 크로우의 따듯한 이해는 극중 윌리엄이 밴드의 프론트맨인 '러셀'을 비롯해 인터뷰마다 묻는 '음악의 어떤 면을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바보 같아 보이고 추상적이기만 한 듯한 질문을 카메론 크로우는 영화적 기교를 통해, 맨마지막에 가서는 '아, 그래. 바보 같지만 결국 본질은 이거잖아'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뭘랄까, 카메론 크로우는 자신이 만들어낸 윌리엄 밀러와 스틸워터 (더 직접적으로는 러셀)를 통해, 과거에 자신은 하지 못했던 혹은 이제야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음악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올모스트 페이머스>가 카메론 크로우의 최고 작품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되겠다. 사실 여기에는 부러움 가득한 이유도 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이렇게나 멋지게 만들어낸 크로우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감독을 꿈꾸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남기고픈 욕망이 있을텐데,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이런 면에서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완벽한 '자전적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1. 음악 평론가 출신의 카메론 크로우가 직접 선곡한 곡들 답게 영화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적절하고 아름답다. 사운드 트랙 한 장으로 한 시대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경험이다. 영화 없이 들어도 좋은 흔치 않은 선곡이다.

2. 카메론 크로우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120% 표현된 장면은 바로 엘튼 존의 'Tiny Dancer'를 함께 부르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로 (특히나 갑작스레,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노래하는 장면은 대부분이 감동적인데,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이 장면은 그 기막힌 가사와 페니 레인의 마법 같은 대사가 곁들여져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3. '촛불을 켜고 '토미'를 들어보렴, 네 미래를 볼 수 있을거야', 아.... 이런 대사는 음악 평론을 하던 카메론 크로우만이 쓸 수 있는 대사가 아니었나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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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2009)
삶의 불확실성, 그래서 관조하다


코엔 형제는 천재다. 뭐 새삼스럽겠느냐만은 그들의 신작 <시리어스 맨>을 보고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과 이를 영화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는가에 대한 기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 거의 실망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모두 인상깊게 보았었는데, 최근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나서는 코엔 형제의 영화가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어떤 경지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번 애프터 리딩>을 통해서는 녹슬지 않은 그들의 재치와 블랙코미디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음을 역시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번 애프터 리딩>을 보고는 코엔 형제의 쉬어가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엔 형제만이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코엔 형제의 신작 <시리어스 맨>에 대한 기대는 사실 이 정도로 크지는 않았었다. 어쩌면 <번 애프터 리딩>을 보러 갈 때의 기대와 비슷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보고난 <시리어스 맨>은, 아니 보는 내내 <시리어스 맨>은 참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엔 형제는 또 어떤 걸작을 만들고야만 것인가?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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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의 집 안의 구성과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체크 요소다. 이 집안의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의상 컨셉이 있는데, 딸은 항상 화려한 꽃무늬 잠옷을 입고나오고, 방안의 벽지 역시 모두 다른 화려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집 안의 커튼 역시 방 마다 모두 다른 각각의 화려한 무늬를 하고 있다. 아내 역시 매번 다른 체크 무늬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종의 강박에 관한 암시다. 관객들에게 강박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동시에 매사에 진지한 주인공과는 정반대되는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패턴으로 뭉쳐있는 집 안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래리라는 캐릭터에 공감지수를 드높여 준다)

영화는 이상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이 프롤로그에 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는 글 말미에 추가하도록 하겠다). 배경이나 정확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이 프롤로그는,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살펴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프롤로그였음을 뒤늦게 알게 해주는데, 일단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전혀 달랐다는 것 그리고 영어가 아닌 (그러니까 영어권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외국어로) 언어로 진행되는 시퀀스라는 점 정도만 기억해두자.

영화의 주인공인 래리 (마이클 스털바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곧 대학의 종신재직권 심사를 앞두고 있고, 아들은 성인식을 치룰 예정이며, 옆집 사는 남자가 자꾸 자신의 영억을 조금씩 침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고,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이 조금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런데 영화는 래리의 소개를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 학생은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슬쩍 돈봉투를 남기고 가버리고, 아내는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왔던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며,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이 주목하고 있고, 큰 문제없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종신재직권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만한 악의적 편지들이 도착하는 등 너무 갑작스러게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정작 래리는 아무것도 '잘못 한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래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마치 그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래리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냥 그를 둘러싸고 조여온다. 래리는 여기서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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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가 처한 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재앙은 하나같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내는 '싸이'와의 관계 때문에 래리와 이혼하기를 바라지만 싸이를 사랑해서도, 싸이와의 관계가 깊어져서인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냥 위자료를 받아내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내 스스로도 '내 말이 말은 안되지만 이혼은 해야돼'라고 느껴질 정도다. '싸이'는 또 어떤가. 그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싸이는 마치 래리를 아버지처럼 감싸 안으면서 래리에게 왜 이혼을(서약서를) 해야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진다. 싸이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의 말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말만 놓고 보자면 이건 전혀 설득이 될리 없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논리들이다.

낙제점을 면하게 해달라며 돈을 놓고 갔던 한국 학생 '클라이브'의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돈을 두고 간 것을 놓고 래리와 클라이브가 벌이는 대화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런데 더 나아가 클라이브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건다고 집으로 찾아온다. 이 아버지 역시 클라이브와 래리의 아내의 말처럼 스스로가 '내 말엔 논리가 없다'라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래리가 항상 불편하게 생각하던 옆 집 남자는, 클라이브의 아버지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냐며 도움의 한 마디를 건낸다. 래리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맞다. 래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이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래리는 매사에 '진지한 (Serious)' 남자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한 래리는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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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보기로 했던 랍비가 자리를 비워서 대신 만나게 된 젊은 랍비는 래리의 말을 다 듣고는 역시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럴 땐 그저 주차장을 보라' 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이 젊은(어린) 랍비의 능력 부족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져보면 우문현답일 수도 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그럴 땐 주차장을 보라'는 말은 쌩뚱맞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인 불확실성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대할 땐 관조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다 끝난 뒤에야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고, 래리는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그 다음 다른 랍비를 찾아가게 된다.

두 번째 랍비는 이빨의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이 이야기 역시 이상하기 짝이 없다. 무언가 거창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을 것만 같았던 이 '이빨' 이야기는 결국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무언가 답을 찾으려던 래리는 이 두 번째 랍비와의 만남에서도 이를 찾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랍비인 마르샥과의 만남을 어렵사리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래리는 랍비를 만나려고 했느냐'라는 점이다. 앞서 물리학자이지만 수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불확실성의 이론을 엄청나게 긴 수학적 공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래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래리라 랍비를 찾게 된 이유는 역시 '정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마르샥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마르샥 개인을 원해서가 아니라, '마르샥 = 정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같았으면 영화에서 특별히 자막까지 삽입해 가며 이 랍비와의 만남의 중요성을 이끌어 갔던 구성상, 마르샥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깨우침을 주고 (그것이 허허실실, 공수레공수거 일지라도) 래리가 이로 인해 삶이 변화를 얻는 것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코엔 형제는 래리에게 마르샥과의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다. 고대했던 정답을 마르샥이 갖고 있다 없다를 떠나서, 현실은 이렇듯 생각대로, 단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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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래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내의 이혼 요구로 인해 동생과 모텔에 나와 살았었지만 싸이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어쨋든 다시금 집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아들의 성인식으로 인해 아내와 다시금 화해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고, 동생의 일도 악몽을 꾼 것처럼 끔찍한 일은 당하지 않았고, 걱정하던 종신재직권 문제도 순조롭게 풀린 듯 하다. 하지만 어쩌면 더 커다란 불안요소 일지도 모르는 일의 그림자도 존재한다. 영화 초반 검사를 받았던 의사는 전화가 와서, 검사결과에 대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뉘앙스로 봐서 아마도 삶과 죽음이 달린 심각한 정도일지도 모른다.

글에서는 미처 다 언급을 못했지만 래리의 아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첫 시간에 마리화나를 산 돈 20달러와 함께 라디오를 빼았긴 아들 대니는, 영화 내내 이 돈을 값지 못해 쫓겨다녔지만 성인식 때 랍비 마르샥을 만나 조언을 듣고 라디오와 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마르샥과 대니의 만남을 보면, 만약 래리가 마르샥을 만났더라면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디어 돈을 돌려주려고 친구를 불렀을 때 그들의 앞에는 커다란 토네이도가 닥쳐온다. 여기서 토네이도가 이들 모두를 덮쳐 죽음이나 큰 사고에 이를 것인가 말 것인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계속 말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것처럼, 저 토네이도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확실성 그 자체에 가깝다. 내내 불편했던 돈을 드디어 값을 수 있게 된 순간에 토네이도를 만나 모두 망쳐버릴 현실에 맞닥들이게 된 것은, 역시 '정답은 없다'라는 것과 '생각한대로 되지 만은 않는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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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사용된 외국어처럼, 영화는 내내 이 언어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통해 주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인 학생 클라이브의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딱딱한 발음과 억양은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었으며, 아들 대니가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가 대부분 욕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역시 래리와 대니의 관계의 거리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래리가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이혼증명서라는 뜻의 랍비 언어를 매번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 역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서로간의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안테나를 바로 잡으러 올라간 지붕 위에서 옆집 부인의 나체를 보게 되는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불확실성이다.

사실 영화는 보는 중간에는 키득 거리며 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지만 (마치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볼 때와 비슷한 경우였다), 글로 정리하려 되돌아보니 영화 중간 중간 느껴졌던 삶의 대한 깊이가 더 와닿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래리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 (영화가 말하는 진지함은 '잘못됨'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임' 이다), 젊은 랍비의 말처럼 그저 관조하지 못했지만, 코엔 형제가 이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분명 관조다. 시리어스 맨인 래리를 주인공으로 두고 래리에게 '그냥 주차장을 한 번 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주차장을 봐'라는 대사는 이 영화의 명대사다 (웃음에서나 깊이에서나 말이다).


1. 프롤로그에 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무엇인고 하니, 상영시간에 딱 맞춰서 상영관에 입장을 해서 정신없이 앉았는데,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시대와는 전혀다른 시대와 배경의 프롤로그가 등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 혼란을 더욱 부추겼던 건 바로 옆 상영관에서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의 <푸른 수염>이 상영중이었다는 것이죠. 옆에 앉은 분도 저에게 '시리어스맨 보러 오신거 맞죠?''라고 물어오시고, 저도 좀 더 잠자코 있어보자 하며 떨고 있었는데, 이것 참 코엔 형제에게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 4:3화면비라 '그래 푸른 수염은 아닐꺼야'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순간 혼란스러웠다구요 ㅎ

2.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보았는데 특별히 디지털 상영이라는 말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건 분명 필름의 화질 수준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화질이 무척이나 좋더군요.

3.


리뷰를 쓰는데 200% 도움을 주었던 사운드트랙 'Dem Milner's Trern'.
사운드트랙은 아무래도 아마존에 주문을 해야겠네요. (했습니다 -_-v)

4. 마이클 스털바그의 모습에서 은근히 톰 행크스의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아마 예전 같으면 <레이디 킬러>의 경우처럼 톰 행크스가 했을 수도 있겠죠.

5. 미드 '빅뱅이론'으로 익숙한 사이몬 헬버그의 등장에 혼자 빵 터졌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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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Clash of the Titans, 2010)
이번엔 블록버스터 그리스 신화다

1981년작 <타이탄 족의 멸망 (Clash of the Titans)>를 원작으로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동명 신작 <타이탄>은, 제목과 원작에서 알 수 있듯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요 근래 개봉했던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의 경우도 그랬지만, 이 두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기본 줄거리를 갖고 있지만 그 전개 속도 면에서는 매우 빠른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생략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가끔 생략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퍼시잭슨'을 리뷰하면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이런 작품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진수를 얻어내려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다. 그래서 애초부터 이 작품에 거는 기대라고 한다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을만한 스케일과 액션의 재미 정도였을 텐데, 이런 면에서 <타이탄>은 제법 만족스러운 킬링 타임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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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에는 그리스 신화의 익숙한 내용들이 가득 등장한다. 제우스와 하데스, 올림포스와 페가수스 등 우리가 이미 소설과 만화, 영화등으로 너무 많이 소비했던 내용들이다. 사실 요즘에는 그리스 신화의 정석에 포인트를 둔 작품이 거의 없는 관계로 이런 컨셉 작품들이 더 몰매를 당하는 경향도 있지만, 어쨋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야기의 정수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한 이 작품에게 그리스 신화의 깊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렇다고 해도' 라는 개인적인 이유들이 가능하다).

이렇게 부담없이 보게 된 <타이탄>은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예 부담없이 만들려고 했던 거라면 제목을 '타이탄'이 아닌 더 이 작품만에 걸맞는 걸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하면 신작 '타이탄' - 원작인 '타이탄 족의 멸망'을 떠올리면 더'에는 제목을 연상시킬 만한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금은 닭살스럽고 한편으론 오후 4~5시 시간 대에 방영하는 아동용 히어로 드라마 풍의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블록버스터로서 보여줄 만한 장면들은 그럭저럭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 특히 거대 전갈들과 사막에서 벌이는 전투 장면이나 후반부 크라켓 등장 장면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살짝 좌석을 움켜 쥘 정도로 스펙터클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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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가 (12세)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벌이는 액션들도 괜찮았고, 영화의 스케일의 걸맞는 로케이션의 멋진 풍광들도 좋았다. 하지만 액션에 치우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원작이나 배경의 세계관이 깊은 작품일 수록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는 없는데,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 만으로도 영화 한편은 족히 만들 수 있는 캐릭터들이 즐비한 작품이기에, 이런 캐릭터들이 자신의 이름을 한 번 알려보지도 못한채 사그라드는 빠른 전개는, 깔끔하다 보다는 서운하다 쪽이 가깝다.

최근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 이 작품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야기의 구조가 거의 같은 편이라 두 작품을 비교아닌 비교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랄까 '퍼시잭슨'이 아동용 판타지라면 '타이탄'은 액션 블록버스터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짧은 기간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다룬 두 가지 버전의 작품을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어쨋든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이야기보다는 컨셉에 포커스를 그리고 빠른 전개를 무엇보다 중요시한 작품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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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을 보면서 '와, 어떻게 이런(?)영화에 저런 기똥찬 캐스팅이 가능했던 것일까?라며 의아했던 적이 있는데, <타이탄> 역시 이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캐스팅이라 할 수 있겠다. 제우스 역할의 리암 니슨의 경우 연기보다는 그 제우스의 의상 때문에 더 눈길이 갔는데, 기존 신화의 신을 그릴 때 등장 했던 일반적인 의상과는 다르게 블링블링한 갑옷을 입은 그와 신들의 모습은, 어쩌면 '퍼시잭슨'보다 더 아동스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빛나는 갑옷만 보면 존 부어맨의 1981년작 <엑스칼리버>가 떠오르곤 하는데, 어쨋든 이 작품 속 신들의 묘사는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데스 역의 랄프 파인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앗, 이름을 거론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이후 오랜 만에 또 다른 악당(?)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데 캐릭터 자체의 깊이가 깊지 않다보니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 허술한 갈등 구조를 그나마 구해낸 건 분명 리암 니슨과 랄프 파인즈라는 배우의 힘이리라. 주연을 맡은 샘 워싱턴은 이 작품을 통해 의외로(?) 작은 키가 공개된 것 같은데, 그의 얼굴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의 이미지는 분명 이런 액션 영화에 주인공으로서 잘 어울리는 편이다.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완전히 이런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기 전에 색다른 작품을 선택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그 밖에 제법 이름 있늡 배우들이 단역에 가깝게 출연하는 경우도 많은데, 빠른 전개 탓을 해야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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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그럭저럭 볼 만한 액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서 아주 조금만 더 기대해도 이 작품의 실망도는 급격한 곡선으로 커질 듯 싶다.

1.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과 이 작품은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하나의 팩으로 판매해도 좋을 것 같아요 ㅎ
2. 영화 속 안드로메다 공주는 그 이름답게 개념이 충만하더군요.
3. 은근히 여러모로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게도 했어요. 사막에서 전갈들과의 전투라던가 그 '정령'의 모습이 말이죠.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은 세트 촬영과 로케이션 촬영에 큰 차이가 있더군요. 세트에서 촬영한 바다 위 장면의 경우 너무 화질이 좋은 나머지 세트 촬영인게 너무 티가 나더라구요.
5. 최근 PS3 게임 '갓 오브 워 3'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비슷한 배경이 이 게임이 연상되더군요.
6. 크라켄은 그 스케일로 겁주는 건 좋았는데, 정작 보여준건 별로 없다는 점이 '액션 블록버스터'로서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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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만우절이라는 날이 별다른 이벤트로 느껴졌던 적도 없었지만, 2003년 4월 1일 이후로 나에게 만우절은 오로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그 장국영.

사실 되돌아보면 좋아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 곁을 훌훌 떠나갔던 사람들은 많았었는데, 누군가의 기일을 매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장국영 외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것 같다. 죽음과 거짓말, 만우절과 충격, 이런 것들로 인해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실감나지 않고 매년 맴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4월 1일이 되어 다들 만우절로 떠들석 할 때, 나는 자연스레 장국영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영화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배우와의 이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와의 추억에 대한 글은 예전에 썼던 적도 있었고, 오늘은 그냥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겨 보는 것으로 짧게 마무리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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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과 함께 했던 시간들. <아비정전>의 한 장면 처럼, 길고도 짧은 아니 찰나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I Miss You, Leslie.
2010.04.01





p.s - '월량대표아적심 (月亮代表我的心)'은 물론 등려군이 부른 것도 좋지만, 난 특히 장국영이 불렀던 1997년도 이 버전을 좋아했었다.





언 애듀케이션 (An Education, 2009)
교육, 과정의 중요성


어쩌다보니 연출을 맡은 론 쉐르픽 보다 각본을 쓴 닉 혼비가 더욱 유명세를 탔던 영화 <언 애듀케이션>을 지난 주말 보았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과 주연 배우 정도만 알고 가는 나로서는 (모르면 모르고 볼 수록 최적의 조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포스터만 보고는 '좀 샤방한 로맨스겠구나' 했는데, 물론 로맨스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성장담이었으며 가족과 교육의 굴레를 보면서 의외로 우리내 교육현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이 작품을 보며 이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 또 성장이야기야?' 싶은데, 사실 영화 가운데 성장담이 아닌 영화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매번 반복되는 성장담(그것도 소녀!)임에도 <언 애듀케이션>은 한 번쯤 또 볼만한 성장담이자, 그 외에 여러가지 요소를 조용히 들려주는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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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소녀의 성장담 이전에 그 소녀가 처한 현실의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1년 영국을 살고 있는 17세 우등생 '제니' (캐리 멀리건)는 보수적인 부모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옥스퍼드 대학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니는 이런 부모님의 기대와 통제 아래 열심히 공부해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지만, 마음 한 켠에는
'왜 옥스포드에 꼭 가야하나?'라는 의문이 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만난 연상남 '데이빗' (피터 사스가드)은 17세 소녀 제니가 동경하던 세상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급 부상하며, 제니는 급속도로 데이빗과 이 새로운 어른의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일단 일탈 전 제니가 살고 있던 가정을 살펴보면,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오로지 우등생만을 목표로 하는 듯한 이 가정은 의외로(?)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옥스포드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작은 레슨비 하나하나에 형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하지만 딸의 인생을 위해 가족 모두가 제니의 교육이라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후반부에 좀 더 터져나오지만, 이 가족의 목표(즉 부모의 바램)는 꼭 '옥스포드'는 아니다. 바꿔 말하면 성공적인 삶이며, 그것이 옥스포드 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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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니가 탈출해서 만난 데이빗의 세상은 실로 어른의 세상이다. 겉보기에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옥스포드를 목표로 매번 압박 속에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치열하기 보다는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며 사는 듯 한 데이빗의 그럴 듯한 삶에 제니는 단번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17세 소녀 제니의 욕망도 있다. 제니는 데이빗과의 삶을 통해 단숨에 어른의 삶에 물들어 버렸고, 동경하던 삶을 너무 쉽게 이뤄버린 탓에 그 과정에서 배워야할 것들을 놓치고 만다.

그런데 중반까지 영화가 그려내는 데이빗의 삶은 정말 완벽해 보인다. 이 영화를 그냥 데이빗과 제니의 알콩달콩 로맨스로만 가져갔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이 둘의 묘사는 17세 소녀라는 점을 지워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데이빗이라는 캐릭터는 느끼함과 귀여움을 고루 갖춘 매력을 선사한다. 멀쩡한 로맨스 영화를 요새 별로 못 본 것도 있지만, 이 둘의 연예를 보면서 오랜만에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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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가 후반으로 갈 수록 인상 깊은 것은 알프레드 몰리나가 연기한 제니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이 캐릭터는 여러모로 한국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1960년대 영국 남자에게서 근래 한국의 아버지상을 보다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딸의 인생은 지금의 자신보다는 나아지게 해야겠다는 일념하에, 성공적인 삶의 목표 (혹은 길)로 알려진 옥스포드 대학에 반드시 제니를 진학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데이빗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듯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딸의 성공'이나 '딸의 편안한 삶'이지 '옥스포드'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눈치채지 못한 어린 제니는 나중의 아버지의 태도가 급변 했을 때 (사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급변이라 보긴 어렵지만, 제니의 눈으로 보았을 땐 그렇게 느껴지기 충분했다) 몹시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고,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제니는 한 여름의 꿈과도 같은 바람을 겪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혹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된다. 결국 이런 획일적인 교육과 삶이 싫어서 일탈했던 제니가 바람을 겪고 다시 (스스로) 돌아온 곳은, 또 다시 교육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그렇다고 '부모님 말씀 하나 틀린 것 없다' 라던지, '결국 삶에 순응하며 살아야된다'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돌아왔으니 그 길이 맞는 것이었다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에 본래 의미, 즉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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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애듀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연을 맡은 캐리 멀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소녀의 전작들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오만과 편견>과 <퍼블릭 에너미> 정도가 본 작품인데, 어쨋든 이들 작품 속에서 멀리건의 이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쨋든 이 영화는 캐리 멀리건을 위한 작품임에 틀림 없다. 그녀의 얼굴과 표정연기는 참 유니크한데,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표정과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으로 단번에 관객들과 평단에 찬사를 받은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그녀 외에 알프레드 몰리나의 연기가 몰입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데이빗' 역할을 맡은 피터 사스가드의 그 영국식 억양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배경이 영국이다 보니 다들 영국식 억양을 쓰긴 하지만, 사스가드의 그것이 가장 매력적이더라).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의 깜짝 출연이었는데, 전혀 다른 인상이긴 했지만, 워낙에 인상적인 페이스라 단번에 알아보겠더라. 그녀의 모습을 본 건 의외의 수확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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