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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올해의 영화


2010년 한 해도 참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몇 달을 고대하여 결국 보게 된 기대작들도 있었으며,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볼까말까를 고민했던 작품도 있었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거의 보지 않고 어지간하면 영화의 장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성격이라 그런지, 올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른 분들과 평이 극으로 갈려 '아, 이제 내 취향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구나'라는 쓸쓸함과 쾌재를 동시에 누렸던 작품도 있었고, 반면 많은 분들의 동의하에 서로 누가 더 이 영화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올 한해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이른바 '올해의 영화'를 꼽아보게 되었습니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성된 리스트이며, 순서는 순위없이 개봉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찰리 카우프만의 작가적 야심이 정말 대단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을 카우프만이 훤히 다 꿰뚫어보고 있는 듯해 한없이 위로받고만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앞으로도 조이 데샤넬과 조셉 고든-래빗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고 싶을 때 만큼이나, 연애에 관해 떠올려야 할 때면 이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밀크 (Milk)
구스 반 산트 감독

구스 반 산트의 2008년 작 '밀크'는 동성애자로서는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던 하비 밀크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구스 반 산트가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운명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라고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밀크'야 말로 보편적인 정서와 동성애적 의미를 모두 완벽하게 감싼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를 살았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스 반 산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를 구성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추억하는 것은 곧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밀크'를 보고 느꼈던 가장 큰 생각이라면, '과연 나는 이 만큼 뜨겁게 살고 있는가?'라는 거였죠.

(2008년 작이지만 국내에는 2010년 2월 개봉했기에 포함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다시 보게 된 영화는, 스토리 자체 보다는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더 반응하며 보게 되더군요.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주차장을 보세요!'는 올해 최고의 대사 중 하나.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어린아이가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논란을 갖기 이전에, 그렇담 '왜? 아이여야만 했나?'를 떠올려본다면 좀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인셉션 (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올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품이라면 단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인셉션'의 맹점은 꿈의 단계별 구조 분석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관객이 바로 그 구조를 분석하고 싶게 끔 만드는 구조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되네요. 예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썼을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것이 정답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되는 구조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놀란 스스로 말했거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답이 아닌 그 외의 답들도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구조를 잘 '설계'했다는 거죠. 설계 자체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도 코브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영화였어요.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리 언크리치 감독

사실 영화를 보기 전 부터 울거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상되는 줄거리를 가졌더라도 관객을 100% 울리고 마는 픽사인데, 아무렴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들 이야기의 마무리를 그냥 적절히 정리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죠. 사실 100% 마음에 드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전편들로부터 이어져온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눈물은 또 한 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옥희의 영화 (Oki's Movie)
홍상수 감독

올해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라는 이른바 '홍상수 월드'의 영화 두 편을 내놓았죠. 두 편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는데, 둘 모두 리스트에 올리려고 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옥희의 영화'를 택했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수 많은 명장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폭설 후의 강의 실 대화 장면이었어요. 뭐랄까 이 장면은 마치 판타지에 가까운 장면이었는데, 나도 저런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는 한 편, 홍상수 월드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장면이라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장면이기도 했죠. 어쨋든 저는 홍상수 월드의 신봉자입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요.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발음하기도 어려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는 이름은 씨네필들 사이에서 요 몇해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죠. 사실 그럼에도 저는 그의 전작들을 거의 보질 못했었는데, 이 작품 '엉클 분미'가 되어서야 비로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첫 느낌은 물론 '어렵다'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 작품은 결코 쉬운 화법의 영화는 아니에요. 간단히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기엔 굉장히 깊은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동시대의 감독 가운데 보기 드문 화법을 가진 감독을 만난다는 경험과 '엉클 분미'에서 보여주었던 공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웠던 작품이었어요.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감독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는 국내에서는 마치 최연소 억만장자의 성공담 처럼 홍보되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리고 페이스북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큰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데이빗 핀처의 놀라운 연출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은 모두 좋아하고 특히 '조디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셜 네트워크'는 '조디악'과는 또 다른 지점의 경지에 있는 작품이었어요. 트렌스 레즈너의 음악은 올해의 사운드트랙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구요. 아, 참고로 원제는 'The Social Network'로 별로 쿨하지 못하지만, 국내 제목은 '소셜 네트워크'로 매우 쿨한 편입니다.





그 밖에 아쉽게 리스트에 들지 못한 작품들로는 올해 가장 인상깊게 본 다큐멘터리 형식(하긴 이 작품을 완벽한 다큐멘터리로 보긴 좀 어렵죠)의 '맨 온 와이어'도 있고, '예언자' '인 디 에어' '하하하' '골든 슬럼버' '소라닌' '검우강호' '부당거래'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우강호'는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 수록 또 보고 싶었지는 작품이고, '소라닌'은 개인적으로 올해의 청춘 영화였으며, '골든 슬럼버' 역시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콤비의 신작으로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구요.

2010년 한 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도 극장에서 만날 새로운 영화들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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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네트와 인간관계에 관한 또 다른 진실


5억명의 온라인 친구,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 등의로 포장하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사실 이와 같은 영화는 아니다. 다시 말해 5억명의 온라인 친구를 만들기 위한 영화도 아니고, 전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도 아니며, 하버드 천재가 창조한 소셜 네트워크 혁명을 그린 영화도 아니다. 물론 성공신화에 솔깃 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과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서비스 페이스북 (facebook)는 어떻게 탄생되고 성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갖을 수 있겠지만, 그래서 이런 기대에 발맞춰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입장에서 멋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더 영리한 데이빗 핀처와 각본을 쓴 아론 소킨은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를 지우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즉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나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바인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에 대한 물음은 이 영화의 정확한 본질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저 이들은 21세기의 소셜 네트워크와 그 중심에 있는 페이스북의 이야기에 빗대어, 네트와 인간관계 혹은 네트의 광활한 발전으로 인한 인간 관계의 진화 (혹은 퇴화)에 대한 씁쓸한 담론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저'와 '뿐이다'라는 표현은 이 영화의 완성도와 임팩트를 억지로 억누르려는 시도였을 뿐, '소셜 네트워크'는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의 또 하나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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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하는 이야기를 구현하려하지 않고 하버드 아이들의 '라쇼몽'을 생각했다 라는 데이빗 핀처의 인터뷰 처럼, 이 작품은 하나의 진실을 둘러 싼 각기 다른 이들의 또 다른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데이빗 핀처는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는 구조를 원했음에도, 이를 복잡한 영화적 트릭이나 장치 없이도 수려하게 완성해 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 (제시 아이젠버그)와 왈도 세브린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윈클보스 형제 (아미 해머)가 싸늘한 테이블 위에서 나누는 논쟁은, '내 이야기는 이랬어' '어, 내 이야기는 다른데?'하며 각자에게 같은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턴을 제공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이어가고 있음에도, '라쇼몽'과 같은 느낌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완전한 치우침 없이 아슬아슬한 이야기의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동등한 공감대의 비중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하려던 얘기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동등함은 필요가 없을 터), 관객은 특히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한 왈도에게 좀 더 공감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에서는 왈도 세브린의 이야기가 임팩트가 느껴진다. 관객은 무의식적으로 약자에게 공감을 하게 되어 있는데 어쩌면 표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왈도가 가장 약자처럼 연약한 존재로 (냉철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묘사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가 흥미로운 것은 모두가 승자인 동시에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마크 주커버그와 왈도 세브린의 작은 프로젝트였던 '더 페이스북'이 전세계 5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으로 성장하였지만 마크의 모습은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고, 반대로 페이스북의 성공으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와 멀어지게 된 왈도의 경우 패배자로 보이지만, 이 고소건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를 보았으니 표면적으로는 패배자로 보기도 어렵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빼았겼다고 주장하는 윈클보스 형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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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셜 네트워크'의 이야기를 단순히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의 어두운 뒷이야기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런 소재의 영화에서 의례 등장하는 이런 방정식으로 풀어내기에 이 영화의 알고리즘은 훨씬 더 견고하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거의 대부분 대변하고 있다. 결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친구에게마저 차인 마크 주커버그는 홧김에 여자 친구를 욕보이게 되는 일들을 인터넷 상에 하게 되고, 결국 이 잘못을 만회하기 위한 방법도 보란듯이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하려 한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하버드의 모든 학생들을 넘어서서 수 많은 대학의 네트워크에 퍼졌을 정도로 유명해졌을지언정, 떠나버린 여자친구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던 마크는 실망보다는 당황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 다시 홀로 남게 된 마크가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베타적 특징 때문에 (이 서비스가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장점 때문에) 본인조차 '수락'의 과정을 거쳐야만 전 여자친구의 소식을 듣거나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현실은, 그리고 그 현실 앞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고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은, 인간관계의 가장 밀접하고 민감한 부분에 기인해 만든 소셜 네트워크이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같으면 영화 속 인물들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막이 등장했을 때, 특히나 이번 영화처럼 '페이스북은 전세계 가입자 5억명이 사용하는 서비스고, 마크 주커버그는 최연소 억만장자다'라는 문구가 등장했을 때 무언가 해피엔딩에 가까운 감흥을 느끼게 되지만, '소셜 네트워크'의 마지막에는 이러한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현실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억만장자이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보게 된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앞서 언급한 '새로고침'하는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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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이들 가운데 빼놓지 말아야 할 한 사람은 바로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이다. 록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의 프론트맨으로 더욱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영화 음악은, '소셜 네트워크'를 전반적으로 쓸쓸하면서도 차가운 정서로 이끄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상당히 깊게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차가운 디지털 사운드로 채워진 음악들은 장면의 리듬감은 물론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느꼈을 법한 긴장감과 동시에 인간관계를 디지털화하여 쉽게 연결해주는 페이스북이라는 도구와, 그 도구로 인해 멀어져버린 진짜 인간관계에 대한 쓸쓸한 정서를 마치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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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가 더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한창 기획하고 준비하는 시기여서 평소에 브레밍스토밍 하고 있는 것들과 연관되는 부분들, 혹은 근본적인 원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해 더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또한 페이스북 서비스를 사용한지가 어느 덧 제법 오래되었고 또 최근 몇 달간 더 자주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류를 잘 읽고 앞서갔던 서비스라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터라, 마크 주커버그가 처음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게 되었는지 (교내 네트워크를 위한 서비스에서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영화로 그 과정을 접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또 '더 페이스북'이 어떻게 '페이스북'이 되었는지, 현재 페이스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몇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설계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업계 사람으로서 업계 1위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의 리얼한 탄생과정의 목격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것이었다 (음악으로 바꿔 이야기하자면 유명한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볼 때, 명곡이 어떻게 우연처럼 탄생하게 되었는지가 등장할 때 소름이 돋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미 지난 예전의 이야기임에도 무릎을 탁치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 혹은 훗날 만들게 될 서비스에 여기서 파생된 아이디어들을 접목시켜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아, 물론 영화 속 이들의 이야기처럼 5억명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진짜 친구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게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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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시 아이젠버그와 완성시킨 '마크 주커버그'는 그야말로 올해의 캐릭터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더군요. 연민과 비난이 동시에 들게 끔 하는 묘한 주인공이었죠. 

2. 극중 윙클보스 형제는 아미 해머가 1인 2역으로 연기하고 나중에 CG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이 완성되었는데, 감쪽 같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 보다는, 오히려 '자, 이건 1인 2역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데이빗 핀처의 영화적 조크와 장난끼랄까요.

3.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필모그래피에서도 현재까지는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아직까지도 얄밉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걸 보면요.

4. 개인적으로 최고의 대사는 '션, 난 니 옆에 서고 싶어. 그럼 내가 더 터프해 보일테니까'라는 왈도의 대사와 '더 는 빼, 그냥 페이스북으로'라는 션의 대사를 꼽고 싶군요. 전자는 감정적으로 후자는 현실적으로요 ㅋ

5. 이 글은 제 페이스북으로도 발행하였습니다. 5억명의 친구들이 보게 될까 두렵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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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토퍼블 (unstoppable, 2010)
속도와 긴장감, 그것만 있으면 돼


'맨 온 파이어 (2004)' '데자뷰 (2006)' '펠헴 123 (2009)'까지 여러작품을 함께 한 토니 스콧과 덴젤 워싱턴 콤비에 '스타트렉'으로 주목을 받게 된 크리스 파인이 함께한 '언스토퍼블'은 마치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았던 1994년 작 '스피드'를 떠올리게 한다. 멈추지 않는 기관차와 이를 인명피해 없이 멈춰야만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스피드'를 통해 이미 재미를 즐겼던 바이지만, 토니 스콧의 '언스토퍼블'은 오히려 이것보다도 더 심플하고 잔가지의 이야기들은 거의 다 쳐낸 깔끔한 작품이다. 만약 형인 리들리 스콧이 이 작품을 연출하려고 했었다면, 토니 스콧의 버전에는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회사와 노조의 이야기와 구조조정 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크리스 파인이 연기한 '윌 콜슨'의 배경 이야기에 더 비중을 두어 두 가지 줄기의 큰 이야기가 동시에 충돌하는 작품으로 탄생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토니 스콧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좀 더 심플한 쪽을 택했고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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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스콧과 덴젤 워싱턴, 그리고 열차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그의 전작인 '펠헴 123'이었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지점이 겹치는 '펠헴 123'과 이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언스토퍼블'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한 심플함을 들 수 있겠다. 확실히 '펠헴 123'은 심플함을 기본으로는 하고 있지만 그 외에 잔가지에도 의욕을 가지고 표현하려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결과 두 가지 모두 힘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었는데, 아마도 이런 전작의 교훈이 반영된 영화가 바로 '언스토퍼블'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시작하고나서 5분만에 대강의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고, 예상대로 끝이 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장점은 전혀 이야기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가 (어떻게 끝이 날 줄도 뻔히 알면서도) 제법 긴장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야말로 바로 토니 스콧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영화 속에서 겪게 되는 주인공들의 몇 번의 위기에도, 주인공들이 여기서 실패하겠구나 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묘한 경험인데, 100% 성공을 확신하면서도 그 과정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연출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이런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한 가장 큰 장치는 바로 미디어다. 우리가 TV를 통해 자주 접했던 사건 사고의 뉴스 속보 형식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좀 더 현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 오는 재미는 영화에서 느끼는 재미보다는 마치 불구경과도 같은, 그러니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뉴스에서 더 큰 충격과 흥미를 갖게 되는 부분을 자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 이 영화가 실제 사건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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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토니 스콧의 '언스토퍼블'은 군더더기 전혀 없는 액션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요새는 현실도 영화도 단순해 보이는 사건에 워낙에 큰 배후나 음모가 엮여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보니, 가끔은 이렇게 단순한 사건 만으로 깔끔하게 종료되는 레일 위의 열차와도 같은 이야기를 더 반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1. 로자리오 도슨이 나옵니다. 뭐 비중은 그리 크지 않고 그녀만의 매력은 거의 발산되지 않았지만요. '이글 아이'에서도 그렇고. 점점 이런 적은 비중의 작품으로 만나게 되는군요. 어서 '데스 프루프'같은 작품으로 돌아와주세요.

2. 덴젤 워싱턴이야 그렇다치고, 크리스 파인은 딱 본인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그 만의 것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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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2010)
언브레이커블 돋는 초능력자를 지지한다


고수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마스크 때문인듯) 반드시 봐야 겠다는 생각은 사실 없었는데, 그래도 '초능력자'라는 구미를 당기는 제목 때문에 극장에서 놓치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게 된 영화 '초능력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설프다, 유치하다 등등의 많은 평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강동원, 고수라는 두 배우의 이름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이 영화는 (물론 '초능력자'라는 제목자체가 엄청난 정보이긴 했지만) 봉준호,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였던 김민석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나 데뷔작임을 감안한다면 아쉬움보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던 취향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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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불운을 타고 난 '초인 (강동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평범하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또 다른 인물 '임규남 (고수)'의 이야기를 슬쩍 얹어 놓는다. 눈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자유자재로 조종 가능한 초인은 여느 때처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손 쉽게 돈을 훔쳐내는데,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과 만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개 된다. 사실 초능력을 갖은 주인공과 이런 초능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들었을 때부터 M.나이트 샤말란의 '언브레이커블'이 얼핏 떠올랐었는데, 막상보고 나니 '초능력자'는 '언브레이커블'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언브레이커블'을 보았느냐 말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보았느냐에 따라 '초능력자'에 대한 인상이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언브레이커블'을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라고 여기는 입장에서, 이를 충실하게 따르며 또 다른 정서까지 담아내려 했던 '초능력자'가 인상적일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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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이 히어로물의 세계관의 충실한 영웅과 악당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초능력자'도 얼핏보면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언브레이커블'은 좀 더 서사적이고 신화적인 측면에서 무겁게 다룬 것에 비해, '초능력자'는 영웅의 탄생을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와 더불어 다른 문화적인 공기를 좀 더 담으려고 애썼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유쾌함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부분들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되는데, 특히 규남의 친구들인 외국인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웃음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이 패거리의 이야기가 그냥 웃긴 것으로 뭉뚱그려 지는 부분이 있었고 규남의 이야기 역시 거꾸로 돌아보면 영웅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태생부터 능력 위주로 연출했던 초인의 이야기에 비해 관객들이 규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본래부터 영웅이었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언브레이커블의 데이빗 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더 심각한 분위기와 신화적인 내용을 담아내려 했다면 영화는 더 실패했을 지언정 어쨋든 히어로 물의 범주에서 논의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영화가 그려내려 했던 그 분위기와 문화적인 주변의 이야기가 '초능력자'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규남의 외국인 친구들의 경우 한국말을 능숙하게 한다는 것 자체와 마치 이 3인조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도색된 다마스 차량 그리고 폐차장에서 일하는 특성을 살린 각종 수공예 무기들과 후반부 만화적인 상상력마저 폭발하게 하는 부스터 개조까지! 이 3인조는 분명 독특한 분위기를 영화 전체에 제공하고 있다. 주류 사회에서 외면당한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또 다른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준 '킥 애스'를 연상시키게도 했는데, 결국 주류 사회를 믿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인 이들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결해야만 하는) 나서는 모습은, 그리고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심한 주류 사회의 모습은 이 영화가 숨기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것들을 다 무시하더라도 일수회사가 몰려 있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배경으로 한국청년과 터키, 가나 청년 이렇게 셋이서 (그리고 다마스!) 만들어내는 아우라는 이런 요상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을 마구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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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규남의 이야기만 했던 것 같은데 초인을 그려내는 방식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영화는 초인 역시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능력을 타고 났지만 그 능력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캐릭터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데, 확실히 이런 영화의 의도는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초인을 연기하면서 좀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즉, 관객들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영화의 내러티브와 큰 상관없이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에 공감을 담게 되기 때문에, 악한 일들을 저지르지만 태생적 고통에 대한 여지를 저절로 얻게 된달까. 물론 이로 인해 적어도 동등한 비중과 공감대는 얻었어야 할 규남의 이야기가 오히려 덜 공감을 얻게 되어 영화가 전체적으로 꼬일 확률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인들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은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규남과 초인의 이야기를 모두 비중있게 다루려 했다는 점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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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카메라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도 상당히 의도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영상은 장면 장면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음악 역시 상당히 장르화 되고 매우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다른 부족한 부분들을 힘으로 커버하고 있는 느낌이다. 카메라의 경우 한 2~30도 쯤 기울여서 찍은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초인과 규남의 대결 구도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리듬감을 주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특히 규남이 임대리로서 첫 출근하는 날의 그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중 하나였다. 

아, 그리고 말 많은 규남의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이 영화가 그냥 '초능력자'였다면 필요없는 과한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언브레이커블'과 마찬가지로 영웅의 탄생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그리는 방식이 좀 세련되다기 보다는 너무 직접적이고 코믹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렇게 오버스러운 연출이 오히려 귀엽고 이 영화를 더 오래 기억하게 할 것 만 같다), 이 장면이 있어야 '아, 그래서 규남이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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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움 보다는 감독의 마니아적 취향과 정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고, 유쾌함과 통쾌함도 느껴졌던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좀 더 세련된 작품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도 분명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날 것의 느낌이 살아있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속편이 나온다면 아, 속편이 나온단 얘기 따윈 없었지. 하지만 유토피아 임대리가 매편 다른 초능력자를 상대하는 시리즈물로 기획된다면 어떨까. 그럴리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작품 '초능력자'는 갈수록 의미있는 '임규남 비긴즈'가 될지도 모른다. 순전히 개인적인 공상이지만.


1. '유토피아 임대리다!' 아, 이 대사가 주는 정서가 좋았어요. '유토피아'라는 회사 이름도 의미심장하고 말이죠 ㅋ

2. 많은 분들이 단순히 '왜 안죽어?'라는 의문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웠어요. 여기서 자유로워지면, 아니 왜 안죽는지를 인정하고 나면 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지는데 말이죠;

3. 몇몇 말깔나는 대사들이 있었어요. '엄마가 단추 끝까지 채운 놈들은 조심하랬어'라는 대사 같은거요. 김인권 씨의 애드립일 수도 있겠군요. 

4. 두 주인공 만큼이나 두 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주는 인상이 컸어요. 단순히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넘어서서, 연기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아, 이 3인조를 오래 기억하게만 될 것 같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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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가까이 (Come, Closer, 2010)
가을로 위로하는 러브스토리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는 각기 다른 다섯 커플의 러브스토리를 느슨한 관계로 엮은 하나의 러브스토리다. '러브 액츄얼리'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과는 달리 인물들 간에 조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확실히 좀 느슨한 관계로 이뤄져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금만 더 가까이'는 전혀 다른 다섯 편의 단편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하나의 장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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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는 작은 프레임 안에서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노트르담에 폴란드인인 그루지엑과 서울 카페에서 전화를 받게 된 효서와의 통화가 전부다. 이 첫 번째 에피소드는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의 시작이자 느슨한 옴니버스의 키가 되는 에피소드이기도 한데, 일단 뮤직비디오 같다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나은 표현이 필요할 영상미 덕분에 금새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프레임을 나누는 방식이나 대사를 나누는 방식은 마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한 번 쯤 생각하게 한다. 그루지엑과 효서는 각가가 노트르담과 서울에 떨어져 있지만 이들에게 그 만큼의 거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통화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제목을 떠올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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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게이 인 영수와 그의 여자후배 세연의 첫 섹스를 담고 있는데,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첫 경험이라는 것보다는 더 많은 미묘한 감정이 담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감정이 피부로 다 느껴질 정도로 (장면의 수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들의 아슬아슬한 감정선 때문에) 정말 '떨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게이인 남자가 여자와 갖는 첫경험의 측면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특별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점을 생각지 않더라도 그 '떨림'과 주저함이 에로티시즘과 함께 맞물려 숨을 멎게 한다. 사실 이런 에로틱한 장면이 있는 작품인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놀랐기도 했었는데, 그 몰입감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정말로 이 시퀀스가 완전히 다 끝나기 전까지 극장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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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 (윤계상)와 은희 (정유미)의 이야기는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 되어버린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 등에 관한 에피소드인데, 영화는 여기서 자신만의 장점을 마음껏 드러낸다. 김종관 감독은 '조금만 더 가까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영화의 공간이 되는 장소와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이라는 공간의 장점이 이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비가 오고, 보케가 아름답게 펼쳐진 창밖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이야기는 마치 비내리는 가을 밤에 수줍게 흘러나오는 이른 입김처럼 관객에게 전달된다. 영화는 이 이야기가 만약 다른 계절과 배경에서 이뤄졌다면 과연 지금과 같았을까 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그 만큼 철저히 공간 안에 놓인 인물들과 이야기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가을이라는 계절로 인해 위로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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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윤희석)과 혜영 (요조)의 이야기도 직접적인 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풍으로 젖어있는 가을 남산을 오르며 나누는 이들의 대화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 가을을 배경으로 했을 때 이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추억과 기억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 장면은 '조금만 더 가까이'를 마무리하는 멋진 피날레가 된다.

사실 '조금만 더 가까이'를 보면서 스스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내게는 항상 위로보다는 우울함과 쓸쓸함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 함께 했던 가을이라는 존재가 '위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들었던 음악,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남겼던 거리, 뜨거운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는 그 곳과 그 계절의 기운이, 특히 가을이라는 것은 매번 아름답지만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위로가 된다는 영화의 감성은 그간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되었던 GV에서 김종관 감독은 유독 '거짓말'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자신의 추억이나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수 많은 거짓말들이 더해지게 되고, 그 많은 거짓말들을 통해 본래 하고자 했던 얘기를 결국 돌려 말하거나 말하지 못하고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어쩌면 가을에 위로받는다는 이야기 역시 또 다른 거짓말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까지 가을에게 위로받는다기 보단 그로 인해 아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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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2010)
왜 부당거래인가?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를 보았다. 검사와 경찰이라는 설정만 들었을 때에는 대략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부당거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왜였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왜 '부당거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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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대 에이스 최철기 (황정민), 젊은 검사 주양 (류승범) 그리고 해동그룹 대표 장석구 (유해진)는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엮이고 엮이게 된다. 이들이 서로 엮이게 된데는 물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굴레에 놓였다는 점, 즉 약점을 갖고 있고 이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간파당했다는 점과 반대로 그 자신도 누군가의 약점을 완벽하게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은 '부당거래'지만 이들 간의 거래는 지극히 합당한 모양새다. 이미 서로의 머리 꼭때기에 있는 베테랑들의 간보기는 적당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인정하고 그대신 뒤통수만 치지 말자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이 '뒤통수' 역시 계산된 그러니까 서로 보험 하나 씩은 들어두고 있다는 점을 애써 숨기기는 커녕, 서로에게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고는 큰 일 없이 서로 좋게좋게 넘기자 라는 합당한 거래를 이어간다.

극 중 상황이 반전되고 역전됨에 따라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와 주종관계 (이것은 확실히 주종관계에 가깝다) 역시 역전되지만, 상대를 쥐고 흔들던 자신이 한 순간에 발아래 놓이게 되더라도 이들의 동요는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보통 정의로운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라면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억울하고 참기 힘든 심정을 그대로 담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의 분노와 울분에 촛점을 맞췄을 테지만, 영화는 이런 울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 울분이 관객에게까지 100% 공감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즉 이들의 억울한 울분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벌여놓은 합당하지만 부당한 거래의 산물이며 또 하나의 연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도 '아, 드디어 내가 이겼군!'이라기 보다는 그저 역전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처럼 보인다. 내 머리 위에 있던 상대가 드디어 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고해서, 상대가 드디어 나에게 굴복했구나 라는 것보다는 굴복할 수 밖에는 없는 그 '순간'을 즐기는 정도로 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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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류승완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부를 만큼, 전체적인 짜임새나 에너지가 수준급이지만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라던지 혹은 '짝패'에서 느꼈던 날 것의 느낌에 반했던 이라면 완전히 대중의 코드에 들어온 그의 신작에 조금의 아쉬움을, 반대로 일반 관객들은 기존 상업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인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몹시 완성도 높은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은 중간에 걸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뷔작부터 팬이었던 개인적인 시선으로서 류승완의 신작 '부당거래'는 분명 다운 그레이드된 대중성이나 성격으로 인해 모호해진 작품이 아니라, 확실히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그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대중영화에 녹여내는가에 대한 여정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 가운데 좀 더 자신의 성향이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들은 좀 더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하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었고, 좀 더 대중적인 코드를 잘 소화한 작품 같은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거래'는 드디어 이 두가지 지점이 비로소 평균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성격을 가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당거래'와 비교하자면 분명 양면이 모두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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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국영화들을 되돌아보면 '부당거래'와 비슷한 지점을 지향했던 작품으로 김성수 감독의 2006년작 '야수'를 들 수 있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그 뒤에서 이를 조정하는 배후세력 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져버린 씁쓸한 한국사회를 그려내려 했던 지향점은 같았으나, '야수'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부당거래'를 보고나니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당거래'는 우리가 TV뉴스를 통해 너무 잘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 지배세력과 (혹은 신분) 그 사회에 물들어 권력을 이익을 위해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풍자'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철기 역시 완벽한 정의로운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이자 그 구성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캐릭터에게 공감이나 동정을 주기 보다는 전체적인 씁쓸한 그림을 보고는 혀를 차게 되는, 풍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아니면 좀 더 대중적으로 그리려고 했다면 관객들이 극중 최철기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의 상황을 좀 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치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처럼 더 감정을 담아줄 수 있는 캐릭터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사회와 악이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안타까움을 풍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내내 이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방식들을 대부분 지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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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반부의 경우 최철기의 에필로그 정도로 묘사되어, 없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마지막이 있어야만 비로소 '부당거래'가 완성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뒷 이야기가 없어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한 방식을 원했다. 그렇게 얽혀있던 이들이 서로 엉켜붙고 하는 통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보호받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도 권력을 통해 상황을 역전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즉 이런 비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죄를 추궁받기는 커녕 어깨 쭉 펴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뒤로 서울이라는 도시(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풍경을 비추는 것, 또한 수미쌍관을 이루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은 희망적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이고 계속된다는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비로서 '부당거래', 즉 법을 수호하는 자들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만들어낸 '부당한 거래'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들려준다. 그래서 영화는 통쾌하지도 애절하지도 않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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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다들 베테랑들이라 간보기 없이 바로 실력발휘들 하시더군요 ㅎ 가장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주인공인 황정민이었는데, 이건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조연들의 연기는 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으며, 류승범의 연기는 갈수록 물이 오르고만 있는데 하나 걱정되는건, 그의 말투나 연기가 주양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아주 어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류승범을 보는 익숙한 시선 때문에 그저 코믹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2.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들도 반가웠어요. 안길강은 거의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지만, 왜 안나오나 싶던 김수현은 나름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더군요. 이런 캐릭터도 멋졌어요. 김수현씨!

3. 이경미 감독의 연기는 자연스러워서 못알아볼 정도였으나, 이준익 감독의 까메오는 '나 이준익 감독인데 깜짝출연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어색함 그 자체더군요 ㅋㅋ

4. 조영욱 감독의 음악은 확실히 좀 과잉으로 느껴졌는데, 그 과잉이 이 작품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확실히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기보다는, '이 장면은 이런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야' '심각함이 극에 달했다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이런 과잉이 좀 더 영화를 장르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요.

5. 이춘연 님이 특별출연하셨는데 무려 캐릭터 이름이 '엄충수 경찰청장'!! 

6. 류승완 감독님은 예전에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터라, 그 이후로는 왠지 더 반가운 느낌이에요. 그 때 제 블로그와 DP닉네임을 이미 알고 계셔서 감동받았었는데 말이죠 ㅠ (류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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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4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전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외면을 당했지만, 나에게는 앞선 작품들 만큼이나 아련한 (혹은 더 감정적인) 작품이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녀적인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며, 애틋함의 정서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난 따듯한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그리고 리듬이) 완벽하다 못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버린 정말 마법같은 작품이었다.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들려준 왈츠는 아직까지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으며, 바로 오늘 '눈물나는 그 장면'에서 소개하려는 이 장면에서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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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말미. 소피가 하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켈시퍼와 하울이 계약을 맺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이 장면. 이 장면 소피가 문으로 들어가며 배경이 온통 검게 변하고, 저 멀리서 뿌옇게 하울의 아지트가 밝아올 때 흐르는, 그 음악에서부터 감정이 치닫기 시작하는데 하울에 대한 소피의 간절함이, 그 간절함이 미야자키의 연출로 승화된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코너 '눈물나는 그 장면'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다들 울고 감동받는 장면 외에 개인적으로 특히 더 슬프거나 유별나게 슬픈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바로 이 장면도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북받쳤던 장면이었다. 그냥 소피에게 흠뻑 동화되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장면은 언제봐도, 그리고 언제 들어도 참 눈물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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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 (劍雨, Reign of Assassins, 2010)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


오우삼과 수 차오핑이 공동 감독하고 (하지만 중론은 오우삼의 그림자가 거의 드리워져 있지 않다는 것), 양자경과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검우강호'는 참으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클래식한 무협 영화였다. 사실 이 영화를 선택하기 전까지는 양자경과 정우성 (특히 양자경!)만 믿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나니 이 작품에는 두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 외에도 고전 무협영화의 팬들이라면 무언가 동요하게 만드는, 요새 찾아보기 어려운 상당히 클래식한 무협영화였다. 사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중화권의 무협영화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미뤄봤을 때, 오히려 예전으로 회귀한 듯한 (좋은 의미로) 분위기의 '검우강호'는 예전 무협 영화들을 인상깊게 보았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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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의 이야기는 복수라는 큰 정서를 배경으로,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러브 스토리가 주가 되는 것이 무슨 정통 무협이냐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무협 영화들은 러브 스토리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지 그것을 그리는 방식에서 무협적인 요소들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우강호'의 러브 스토리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과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동하며 무협 영화에 틀 안에서도 다른 장치들을 크게 건들지 않으면서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가 매우 고전적인 무협영화로 느껴졌던 것은 '강호'라는 세계관을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협영화에 '강호'라는 개념이 없다면 그건 무협영화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화려한 발차기와 무술 동작 등 너무 보여주기에만 치중했던 일부 무협영화와는 달리, '검우강호'는 이 강호의 개념을 뒷 편에 여유롭게 깔고서 준비한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놓는 방식이다. 뒷 편에 강호라는 든든한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검우강호'는 무협 팬들에겐 볼 만한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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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안의 '와호장룡'과 비교하며 '검우강호'의 수준을 폄하하곤 하는데, '와호장룡'은 이 작품과의 비교대상이 아니다. '검우강호'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전 무협영화의 정취를 그대로 계승한 작품이지만, '와호장룡'은 고전 무협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와호장룡'을 무협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검우강호'는 그저 약하기만한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와호장룡'과는 다른 정통 무협 영화에 더 익숙한 이들이라면 '검우강호'는 우선 반가운 작품이며, 그 향수와 정취가 묻어나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호라는 세계 속에서 최고의 비급을 얻기 위해 다투는 고수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들과는 다른 개인적인 원한과 애정으로 엮여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주 익숙하지만 지루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극중 증정과 아생의 이야기는 100% 예상은 못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의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마저 사그라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름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이 그저 웃음거리도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쉽기도 했는데, 따지고보면 이런 조건(?)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예전 무협영화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검우강호'에선 너무 극적인 것이 탈이라면 탈이겠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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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용 포스터에는 정우성이 대문짝만하게 톱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검우강호'의 메인 캐릭터는 양자경이 연기한 '증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양자경이라는 배우는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정말 그녀 아니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싶다. 무협영화의 옷을 입었을 때 양자경이라는 배우가 뿜는 아우라는 실로 대단한데, 이런 아우라를 '검우강호'에서도 잘 살려내고 있다. 정우성은 중화권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벌써 제법 여러편이 있는데, 비교적 큰 편차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양자경과 정우성 외에도 서희원과 여문락 등 중화권의 스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는데, 특히 '뇌빈' 역할을 맡은 여문락의 캐릭터 싱크로율은 거의 완벽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이런 조연 배우들이 완벽하게 강호의 세계를 표현해준 덕에 '검우강호'는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무협영화, 그리고 뭔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보고 싶게끔 만드는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1. 엔딩 크래딧에 양자경과 정우성이 맡은 배역 이름이 '증정'과 '강아생'으로 나오더군요.
2. 정우성도 이 영화에서는 '그저 그런 보통 남자 따위'로 묘사됩니다 ㅎ
3. 이런 무협영화를 적어도 한해에 2~3편은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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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
맞아, 이건 '시라노'였어!


'시라노; 연애조작단'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물론 개인적으로 '스카우트' (참고로 내게 있어 '스카우트'는 광주민주항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다)를 통해 찡한 감동을 주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라서 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최근 내게 새로운 여신으로 자리잡은 이민정 양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즉 팬심이 더 깊었던 것이다. 본래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정보를 최소한으로 접하려 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에는 너무 무심했었다. 그 무심했었던 이유를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초반이 조금 지났을 때 바로 깨우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제목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제목부터 '시라노'임을 밝히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무심한 나머지 '시라노'라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시라노'를 이전에 인상깊게 본 입장에서 이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뻔하게 느껴졌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분명 '시라노'를 본 입장에서 스토리의 신선함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는데에 있어서도 그 감동의 깊이는 줄지 않았으니,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 역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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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하면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1990년작인 프랑스 영화 '시라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의 작품을 제법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하면 가장 먼저 특유의 '코'와 함께 이 작품 '시라노'가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그래서 인지 다른 사람을 빌려(크리스티앙)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쓴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매우 깊게 각인이 되어 있었다. 김현석 감독의 '시라노'는 바로 이 핵심적인 부분이 프랑스 영화와 거의 겹쳐진다. 김현석 감독의 인터뷰를 보다보니 '지난날의 과오를 영화를 통해 고백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고백의 정서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굳이 영화 '시라노'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스토리텔링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음에도, 이 영화가 빛이 나는건 인물들의 감정표현에 있어 매우 섬세하기 때문이다. 극중 엄태웅이 연기한 병훈은 병훈대로, 이민정이 연기한 희중은 희중대로, 최다니엘이 연기한 상용은 상용대로 그리고 박신혜가 연기한 민영은 또 그녀대로 각자의 스토리와 감정선이 있는데, 이 네 명 가운데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와 맞아 떨어지는 인물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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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은 그 자체로 발광한다. 그녀의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숨이 멎는다)

대부분 로맨스 영화는 남녀가 함께 만드는 하나의 이야기나, 남과 여 각각이 만드는 두 가지의 이야기에 각각 공감을 하거나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병훈과 희중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상용과 민영까지 4명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그러나 복잡하게 뒤섞이지 않아도 각각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극중에선 주인공이지만 영화에서는 조연이라 할 수 있는 상용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 그가 크리스티앙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아, 감독이 상용에게도 누구 못지 않은 애정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이런 생각은 박신혜가 연기한 민영을 봐도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민영은 영화 내내 상용 보다도 더 조연에 머물러 있었다. 병훈을 좋아하는 것 같은 미세한 뉘앙스를 주기는 하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한 번도 없고, 정말 끝까지 '연애조작단'에만 머무르는 것 같았으나, 김현석 감독은 민영에게 역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영화가 폭풍같이 몰아치는 감정선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유쾌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민영에 대한 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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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보고서는 마치 '500일의 썸머'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심하게 한번은 겪게 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었던 동시에, 단순히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연관이 되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뜨거운 연애의 경험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작품을 보고나면, '그 때의 자신'을 겹쳐보며 울컥이게 되는 동시에 이 이야기가 다 끝나고나면, '맞아, 나도 그랬었지, 그랬었어' 라고 한 마디 툭 던지며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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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석 작품이라 특별히 야구와 관련된 무엇이 나올까 관심을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약하긴 하지만 고속터미널 씬에서 옆테이블에 야구부가 등장하더군요 ㅎ

2. 최다니엘의 연기변신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 캐스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되구요.

3. 엔딩 크래딧에 고마운 사람들을 보면 맨처음 '이병훈, 김희중'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실제 모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국의 모든 이병훈과 김희중에게 고맙다는 뜻인지 모르겠네요. 뭐 둘다 의미있겠지만요.

4. 오랜만에 참 좋은 연애 영화를 봤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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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
공존을 경험하다


'엉클 분미'를 보았다. 아니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는 한편으론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마저 제외한다면) 의외로 단순한 구성의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엉클 분미'는 개인적으로 단 번에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특히 '엉클 분미' 만으로 이 작품을 평가하기보다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다 본 이후에야 연장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극중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묘사된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만 비로소 '엉클 분미'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보았다'라기 보다는 차라리 '경험했다' (몸을 맡겼다)라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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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들판에 묶여 있던 소 한마리가 줄을 풀고 정글로 도망갔다가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시 잡히는 과거의 시퀀스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인공 분미 아저씨와 인물들이 등장해 얼핏 전생의 이야기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 이 오프닝 시퀀스인 소의 이야기 역시 누군가의 전생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한참 분미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 가려 할 때쯤, 영화는 죽은 그의 아내와 원숭이에게 홀려 역시 원숭이가 되어 나타난 아들 분쏭과의 이상하지만 자연스러운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 이상한 만남을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혀 거리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죽은 아내가 갑자기 귀신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나타나고 아들 역시 원숭이의 모습을 해 나타나지만, 분미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은 그저 '오랜만이네' 라는 식일 뿐이다. 이 이후에도 영화는 이런 이질적인 (적어도 현실적, 일반적으로는 이질적인) 만남과 공존에 대해 매우 자연스러운 시각으로 임하고 있다. 

이런 영화적 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적어도 관객은 '아, 이런 공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구나'라는 간단한 사실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는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이라는 감정이 더해지게 된다. 그러니까 더이상 귀신이나 원숭이가 아니라 아내이자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왜 원숭이가 되어야 했는지 등에 관한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과 메시지를 떠나서 적잖은 감동을 준다. '내가 죽어서 당신을 못찾으면 어떻하지?'라고 말하며 아내를 꼭 껴안는 분미의 장면을 볼 때면, 찰나이긴 하지만 다른 모든 복잡한 요소를 재쳐두고 이 한 마디의 대사가 주는 영향력의 범주에만 오롯이 머물 수도 있다. 따지고보면 죽은 아내를 본인이 죽기 전에 이렇듯 만날 수 있는 공존의 기회야 말로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엉클 분미'는 신파적인 요소가 1%도 없음에도 이런 애틋한 감동마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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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후에도 갑자기 한 공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이상한 시퀀스 역시 누구의 전생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대상이나 주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이렇게 꿈 혹은 전생의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은채 이야기를 들려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는 매우 노골적인 정치적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태국의 정치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갑자기 군복을 입은 요즘의 청년들이 등장하는 스틸컷 형식의 시퀀스는, 형식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더 직접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전에 분미가 '예전에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죽여서 업보를 겪는거야'라는 대사 역시 매우 노골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영화적으로 가장 환상적이었던 동굴 시퀀스. 이 시퀀스는 촬영이나 조명 등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보아도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이를 떠나서 영화 내적으로도 영화의 감정선이 가장 최고조에 달했던 클라이맥스였다. 그런데 영화는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에필로그 같은, 그리고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호텔방의 시퀀스를 더 보여주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참 의미 심장하다. 장면 속 인물들이 바라보는 TV속 현실 사회의 모습과 유체이탈을 하여 이런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바라본다'라는 측면에서 묘한 또 하나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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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아마 좀 더 '영화적'이고 영화 자체가 지닌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었다면, 동굴씬에서 끝났어야 했을 것이고 늦어도 바로 이 호텔씬에서는 마무리 되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적'인 성취보다 더 현실적인 메시지에 대한 성취 의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그 이후에도 현실에 대한 장면을 더 이어간 뒤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배경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 마지막 시퀀스는 아무래도 일종의 여음구나 이질감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실제로 내가 조금 그랬다). 아마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겪어왔던 과거와 겪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았더라면 내게 '엉클 분미'는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충분한 영화적 재미와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존재와 시간, 차원들의 공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내게 '엉클 분미'는 참 아련한 영화였다.



1. 나중에 영화를 보고나서 관련 배경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많았으나 영화를 볼 때 제가 그대로 느꼈던 (어찌보면 무지에서 나왔던) 경험적 감상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이 부분은 글에 담지 않았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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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 (Enlightenment Film, 2009)
과연, 계몽이 필요한 한국사와 현실


제목부터 확실한 이 영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는 (한편으론 '계몽영화'라는 제목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미리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확실한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상처와 청산해야할 과거,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되물림 되고 있는 폭력 (넓은 의미의 폭력)에 대한 '계몽'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니 스케일의 작품이었다. 독립 영화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3대를 그리더라도 시대극일 거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계몽영화'는 한 가족을 이어주고 있는 3대의 이야기를 각각 1931년, 1965년, 1983년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좋고 나쁘고의 의미를 떠나서 독립영화 같지 않은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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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의 내용적인 면을 논하기 전에 이 영화가 '계몽영화'의 영화적 완성도 (촬영 및 스케일)에 조금 놀랐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대극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무리가 없으며, 로케이션이나 공간의 활용 측면에서 보아도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비교했을 때 크게 부족함이 없는 결과물이었다. 이런 영화적 완성도는 영화가 의도하고 있는 이른바 '계몽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좀 더 쉽게 극중 인물들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실제로 아직 독립영화에 익숙치 않은 많은 관객들은 독립영화 혹은 저예산 영화, 그 '날 것'의 느낌 때문에 그 속에 담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전에 실증내고 마는 경우를 자주 보았던 점을 떠올려 봤을 때, '계몽영화'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시네필을 넘어서 더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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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일단 이 가족의 이야기를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한국 사회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과거, 그리고 반대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친일파 후손의 현실 (물론 대부분 친일파의 후손들은 이런 후회보다는 아직까지도 일제 강점기 마냥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의 가장 이상한 부분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족 구조와 살아남아야만 했던 변화의 시대 속에서 '나'를 돌볼 수 없었던 존재들에 대한 연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혹은 그렇게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깍듯하고 아내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섬기던 정학송이 왜 그렇게 폭력적이고 술에 쩔어사는 남자가 되었는지, 딸 태선 역시 그런 아버지의 말도 잘 따르며 순종적이었던 아이가 종교부분에 있어서는 왜 그렇게 극도로 기독교를 민감하게 거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물론 몇 가지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볼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그 과정을 누락하다시피 한 것은 분명 시간 상의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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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런 '과정'을 갖지 못했던 이들의 현실, 이런 '과정'을 갖을 여유를 갖지 못했던 불쌍한 역사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별 것 아닌 학교 단체 사진에서도 '왜 중앙에 서지 않았냐!'라며 딸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나, 매번 상사 욕을 입에 붙이고 살면서도 때마다 음식에 돈뭉치를 함께 전달할 수 밖에는 없었던 씁쓸한 현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하느님을 욕하는 이야기에 오랜 세월 한 번도 대항할 수 없었던 힘 없는 노모의 모습, 그리고 사회에서 엘리트로 취급받지 못하고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알면서도 화조차 내지 못하는 불쌍한 가장의 현실 등, 중간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반론을 제기할 만한 시간은 있었음에도 그 속에서 '여유'나 '용기'는 가져보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무엇이던가. 바로 '계몽영화'다. 즉, 한국사의 암울한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습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단순히 연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몽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이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연민보다는 오히려 냉소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나?'라고 물으며, 현실의 관객들에게는 '저렇게 그냥 두면 안되는 거였다'라고 계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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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를 보고 나오며 좋았던 건, 이 영화가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이루려 한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아마도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극중 '태선' 같이 관객들이 좀 더 감정이입을 하기 쉬운 인물을 완전히 계몽시켜, 영화 안에서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까지 마무리 지었을지 모르지만, '계몽영화'에서는 태선 역시 3대의 한 인물로서 이 굴레 안에 머물러 있다. 마지막에 가서 가족의 역사가 서려있는 서교동 집을 둘러보며 3대의 이야기를 훑으며 결국에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이 시퀀스를 통해, 무언가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영화에 마지막인 것처럼 영화는 바로 여기서 멈춘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그 다음을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1.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 아니 거의 처음으로 느껴보는 '계몽'이라는 단어의 긍정적인 느낌인 것 같네요.
2. 코믹한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큭큭 하고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요.
3. 카라얀의 실황을 녹음하는 장면이나 실크로드 녹화하는 장면들을 보니, 영화 속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좋아하는 TV프로나 라디오 프로를 연달아 가며 녹음하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더블데크가 있어서 테잎으로 녹음할 때 테입을 갈아끼우는 시간의 여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양 쪽에 테입을 넣어놓고 한쪽이 다되면 다른 쪽을 눌러 바로 연결해 녹음하곤 했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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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모호함으로 완성되는 논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옥희의 영화'는 참 특별한 영화다. 최근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하하하'가 묘한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신작 '옥희의 영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으면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우연을 통한 긴장감과 인물들간의 관계의 대한 논리 역시 기대하는 바를 벗어나는 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 특별한 작품이다. '옥희의 영화'는 홍상수의 예전 영화들과 비슷하게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이렇게 4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는 옴니버스는 물론 아닐 뿐더러 단순하 '장'의 개념으로 보기도 힘든 묘한 독립성을 지닌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옥희의 영화'는 이런 모호함의 논리도 가득찬 작품이다. 각 편의 인물들은 같은 인물인 동시에 다른 인물이며, 배우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시에 사실은 1인 다역에 가깝게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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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각 '편'은 완전히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독립적이지도 않다. 즉 각 편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은근히 주고 있기는 한데 (실제로 주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는 확실히 영향을 주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영화들의 인과관계와는 달리 서로의 이야기를 맺어주고 인물들의 연결 고리를 이어주는 것에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중에 읽게 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일부러 이런 고리를 연결하지 않는 것을 통해 이질감을 주려고 했다는데, 확실히 이 부분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특히 이미 이런 인과관계나 복선 등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이런 이질감을 더더욱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진 작가 여성의 경우 묘한 여운을 주고 마는데, 관객은 '아, 이 인물이 나중에 어떻게라도 이야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영화의 GV에서 여성관객에게 예전 여자친구에 대한 질타를 받게 되는 진구의 이야기는 나중에 등장하는 송교수의 이야기 혹은 송감독, 아니면 진구의 다른 이야기와 겹쳐지진 않을까 엮어보게 되지만 사실 이들 간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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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호함의 연결 고리는 각 편에 등장하는 같지만 다른, 아니 다르지만 같은 인물들로 인해 더 깊어진다. '주문을 외울 날'의 등장하는 결혼한 진구의 집은 이후 '키스 왕'에서 등장하는 옥희의 집과 동일한 곳이다. 하지만 진구는 이 집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은 관객만이 느끼는 이질감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네 편의 이야기를 시간 상으로 분류해보고 그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다시금 정리해보게 되는데, 뭐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비교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인셉션'은 치밀한 설계를 통해 관객이 여러가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한 경우라면, '옥희의 영화'는 처음에는 이와 비슷하게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이는 감독이 의도했다기 보다는 일반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스스로 학습한 결과로 인한 것이라 봐야겠다) 것 같지만, 막상 답을 찾으려 연구하다보면 결국 애초부터 답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다. 다시 말하자면 '인셉션'은 여러가지 정답을 정해둔 경우고, '옥희의 영화'는 정답을 아예 만들어두지 않은 경우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모호함은 곧 이 영화의 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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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지막 편인 '옥희의 영화'에 가서 본격적으로 이 모호함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말그대로 이 네 번째 편은 옥희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젊은 남자 (진구), 늙은 남자 (송교수)와 각각 동일한 아차산에 갔던 경험을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해 놓은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는) 이 '옥희의 영화'는 이 모호함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된다. 씨네 21의 정한석 기자가 글을 통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 번째 편인 '옥희의 영화'를 통해 결국 진구와 송교수는 극중 배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배우가 되어버린 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선균, 문성근 등이 연기한 캐릭터가 1명이 아닐 수 있다는, 1인 다역일 수 있다는 좀 더 확실한 이유가 된다. 

더불어 '옥희의 영화'는 좀 더 홍상수 개인의 영화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극중 주인공이 영화 감독 및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국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극중 유준상에게 질문을 하던 학생이나 이번 진구의 GV의 장면을 보면서도 역시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 감독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관객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가끔은 바램 정도가 아니라 작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나 방향을 강요하듯 요구하는 관객들에게, '니가 뭘 알아'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말하는 듯 해 오히려 시원한 부분도 있다. 감독이 원해서 18세이상 관람가가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맘 같아서는 30금 정도로 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한 자존심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 만으로도 인정해야할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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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러 장면이 인상 깊었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호기심이 넘쳤던 장면이라면 '폭설 후'에 등장한 강의실 장면을 들 수 있겠다. 폭설로 인해 수업에 진구와 옥희만 오게 되자 송교수는 이들에게 아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하여 이 문답은 시작되게 되는데, 그 질문들이 그야말로 아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에 가깝다. '저는 현명한가요? '제가 영화에 재능이 있나요?' '성욕은 어떻게 이기시나요?' '사랑은 꼭 해야하나요' 등의 질문에 송교수는 비교적 주저하지 않고 답들을 한다. 물론 이 답은 정답도 아니고 완벽하지 않은 것들도 대부분이지만, 내게 이 문답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렇듯 아무것도 꺼릴 것 없고, 과연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없이 물어볼 수 있을까 라는 의심과 부러움은 물론, 저런 상황과 관계를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랄까. 이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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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는 우연의 법칙을 일부러 피해가려 하고 있지만, 홍상수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여전히 우연과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그 날의 느낌 혹은 당시의 상황 등에 충실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103년 만에 폭설이 내린 그 날, 영화 속에서 보았던 식의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생각한 홍상수 감독은 배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본이 당일 나오는 것이야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 것 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현장과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만들기를 보면 놀라움과 더불어 몹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다. 특히 정유미와 이선균이 웃으며 포즈를 취한 메인 포스터의 경우, 사실 '포즈를 취한' 것 같은 느낌이라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것이 정말로 촬영장에 왔던 일반 분이 배우들을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해 촬영된 사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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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수 많은 영화와 매체에 등장했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이렇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몰랐다. 앞으로는 '위풍당당 행진곡'을 들으면 '옥희의 영화'가 떠오를 것만 같다.

2. 아차산 시퀀스에서는 예상하지 않았던 몇몇 아름다운 영화적 장면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자연광을 받아 더욱 빛나는 정유미의 자태랄까.

3.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아래 씨네21 정한석 기자의 글을 읽었는데, 이 글 보고 많이 힘이 빠졌어요. 이미 전력을 다 쏟아낸 글을 보고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하죠;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정한석.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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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 (のだめカンタ-ビレ, 2009)
피날레를 향해가는 노다메 월드


니노미야 토모코의 원작 만화를 TV시리즈로 옮긴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노다메 TV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원작인 만화보다도 더 만화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사실 애초에 화제가 된 것은 이런 엽기적이고 일본 만화스러운 과장된 표현들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맛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인식시키는데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닌 노다 메구미와 (아, 어색한 이 풀네임;;) 치아키의 관계를 통해 꿈에 대한 깊은 이야기마저 들려주게 되었다. 그래서 TV시리즈의 팬들은 말그대로 노다메 때문에 '울고 웃을 수' 있었다. TV시리즈가 종료되고 유럽편을 통해 그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노다메 칸타빌레는 두 편의 극장판을 통해 드디어 이 대단원의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그 피날레를 만나기 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장판 Vol.1을 국내 극장가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은 일단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특히나 이 극장판은) 노다메 TV시리즈를 즐기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별로 재미도 감동도 없을 만한, 즉 TV시리즈와 유럽편의 연장선 상에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노다메의 팬들이라면 이 극장판을 절대 놓쳐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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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극장판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워낙에 늦은 개봉이라 반가운 마음이 우선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극장판들이 그렇듯이 그저 TV시리즈의 캐릭터와 설정을 가져온 외전격 (에피소드 형식)의 작품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완전히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 극장판들이 TV시리즈를 기존 팬들에 대한 팬서비스 창구인 동시에 새로운 관객들을 향한 구애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은 거의 기존 팬들만을 위한 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수준이라 오히려 더 마음에 든 경우다. TV시리즈를 연출했던 타케우치 히데키가 극장판의 연출을 맡은 것도 그렇고,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보다는 기존 캐릭터들이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라, 부담스러운 부분이 없고 매우 자연스럽게 TV시리즈와 유럽편의 기억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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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기존 팬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엽기적인 부분이 그리 과하지 않게 느껴지는 편이다. 만약 새로운 관객을 더 의식했다면 한번에 관객들의 시선과 재미를 불러모을 수 있는 이 엽기와 만화적인 코드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을 테지만,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가야만 하는 숙명의 성격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과하지 않게 사용되었고 오히려 전개와 피날레를 암시하는 설정들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물론 그대신 이 만화적인 부분을 극장판에 걸맞는 스케일로 보여주는 정성도 잊지 않는다. 기존 TV시리즈가 주로 노다메의 엽기적인 표정과 액션(?)연기에 치중했었다면, 극장판은 노다메의 환상 부분을 스케일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그 가운데 '변태의 숲' 시퀀스는 극장판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이자 노다메 월드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이기도 하다. 즉 처음 이 시퀀스를 접하는 이들은 '뭐야 이거, 너무 유치하잖아'라고 생각하는데에 그칠 수 있지만, 이미 이 유치함에 익숙(?)해진 팬들이라면, 이 시퀀스에서 그 유치함을 넘어선 노다메 월드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다메 월드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지 표현방법이 만화적이고 유치하고 유아적일 뿐이지, 가끔씩 보여지는 진지함처럼 그 안에 하고자하는 메시지는, 그 어느 작품보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깊은 고민을 함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이 몹시도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무아지경에 빠진 순간에 멋진 음악과 배경으로 표현되는 것과 달리, 단지 노다메의 무아지경에는 이런 멋진 배경대신 망구스와 고로타, 가즈오 군이 등장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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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은 클래식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빼놓지 않고 있다. 처음 등장한 '볼레로 (Bolero)'의 그 유명한 메인 테마를 비롯해 (이 테마는 예전 바리시니코프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백야'의 삽입곡으로 더 익숙하다), 치아키가 말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게 되는 장면은 극장판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일 정도로 거의 한 곡이 풀로 수록되기도 하였는데, 마치 잠시나마 클래식 공연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극장에서 나도 모르게 'Bravo'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치고 싶도록 (진짜 이럴 뻔했다) 만드는 힘도 갖고 있다. 또한 단순히 음악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음악의 진정한 면, 즉 음악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는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곡은 베토벤이 무슨 일이 있어서 만들었으며, 극 중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은, 듣는 이로 하여금 '아,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단순히 어렵기만한 것이 아니라 참 재미있는 음악이구나!'라고 절로 느끼도록 만든다. 

마치 요근래 유행하는 모 항공사의 광고 컨셉처럼 음악과 동시에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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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Vol.1'이 노다메 시리즈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노다메와 치아키 간의 특별한 관계, 즉 꿈과 사랑을 공유하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여전히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아다시피 노다메는 치아키를 좋아하는 동시에 치아키가 꿈을 향해 먼저 앞서가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보며 그리고 점점 치아키 센빠이와 격차가 나는 듯한 불안감에 초초해 하고 슬퍼하곤 하는데, 이 극장판에서 역시 이런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노다메 시리즈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를 위해 하향 평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상향 평준화를 노력하는 이 커플의 모습은,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것과 동시에 과연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특히나 그 엔딩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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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Vol.1'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이번 가을에 개봉할 Vol.2의 앞선 이야기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런 전초전 적인 성격을 서서히 풀어가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Vol.2, 그러니까 피날레에 대한 떡밥을 마구 뿌려댄다. 과연 노다메와 치아키는 어떻게 될까. S오케는 다시 치아키와 노다메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슈트레제만은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이미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은 종결이 난지 오래지만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미 올해 4월 개봉했었지만), 올 가을 극장에서 직접 피날레를 함께 하고 싶다.


1. 극중 노다메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의 실제 연주는, 무려 '랑랑 (Lang Lang)'이 연주했더군요. 다..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2.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Vol.2 예고편이 나옵니다.

3. 극중 서양사람들은 모두 일본어를 하는데, 노다메는 친절하게도 특별 자막을 통해 '편의를 위해 모든 외국인들이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점 양해바랍니다'라고 재치있게 넘어가고 있어요. 노다메 월드니까 가능한 이야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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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2010)
지브리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드디어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 및 기획을 하고 신예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은 (신예라고는 하지만 단독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이 없었을 뿐, 지브리에서 15년 간을 애니메이터로 활약해온 준비된 감독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지만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공개 시점부터 좋은 반응과 기대를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좋은 반응을) 모았던 작품으로, 자칭 지브리의 광팬인 나에게도 아니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원작이 존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맡은 만큼 완전히 요네바야시 만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연속성을 이어갈 만한 괜찮은 작품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인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의 답으로 보기는 조금 어려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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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형의 집을 바라보는 다양한 인간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전작인 '벼랑 위의 포뇨'에 비하면 상당히 더 어른스러워진 느낌이다. 여기서 '어른스러워졌다'라는 표현은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전개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인데, '벼랑위의 포뇨'가 내적으로는 죽음을 관통하는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이 비해,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오랜 메시지인 환경과 '살아라'라는 화두는 그대로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포뇨'에 비해 아이들이 즐길 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한 느낌이다. 소인이라는 종족의 등장한 평소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은 전달해주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 세계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포장하는데에 생각보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이런 설정들이 활용될 만한 에피소드를 자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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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더 메시지를 지우거나 유쾌함으로 전달하려고 했다면, 소인 종족과 인간들의 만남에 있어서 화합의 에피소드를 강조했을텐데, 이 영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영화 속에서 나름 악당으로 등장하는 아줌마가 그려지는 방식이야 그렇다쳐도, 주인공인 '쇼우'의 첫 등장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이 장면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서 '무서워'라는 말이 터져나오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브리가 인간을 그릴 때 자주 묘사했던 방식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포 (특히 다른 종족이나 사물, 세계 등과 비교했을 때는 더욱)를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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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마루 밑 아리에티'에 담긴 정서는 확실히 쓸쓸하다. 한창 때의 디즈니 영화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보통 같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인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에 의해 인간과 소인이 모두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이 작품은 이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세기말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소인인 '아리에티'와 교감을 맺고 있는 주인공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만화적 전개라면 소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쇼우의 심장병을 치유라도 해주겠지만, 보시다시피 영화 속 소인들에겐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그들은 단지 인간에 비해 몸의 크기가 매우 작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미에 가서도 쇼우에게 확실한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 쇼우는 그저 힘내겠다 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오히려 이 마지막은 죽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자신과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공존하려했던 인물이 죽어간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의 핵심인 부분이다. 아, 그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인간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쇼우의 첫 등장장면 만큼이나 쇼우와 아리에티의 대화 장면에서 그 공포와 잔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리에티에게 너희와 같은 소인 종족이 멸종해 가는 종족이라는 점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속으로 '와, 아이들도 보는 영화인데 너무 무서운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너흰 죽어가고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터라 정말 놀랍기까지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쇼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리에티의 가족이 결국 화해나 공존을 포기하고 이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세기말적인 쓸쓸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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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와중에도 지브리가 포기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교훈인 '살아라'의 대한 것과 다른 세계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메시지 역시 여전하다. 쇼우의 행동에서 이러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쇼우는 직간접적으로 아리에티를 도우려고 하지만, 마지막의 순간에는 아리에티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마무리 한다. 아리에티의 엄마가 아줌마에 의해 잡혔을 때도 직접 아줌마를 따돌리고 엄마를 구해서 아리에티 앞에 턱 하고 놓을 수도 있었고, 더나아가 악당인 아줌마를 할머니에게 고자질해 아줌마를 집에서 떠나게 하고, 아리에티 가족과 함께 잘 살 수도 있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이사를 위해 험난한 여정을 가야만 할 아리에티의 가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욱 안전하게 도울 수도 있었으나, 쇼우는 그냥 길을 터주고 미련 없이 보내는 것을 택한다.

지브리가 택한 방식은 매번 이런 방식이었다. 어려움에 처했거나 약자를 돕는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약자가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말이다. 물론 쇼우도 맘은 그렇지 않았지만 첨부터 이런 지혜를 완전히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직접 해결해주기를 원해서 각설탕을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했으나, 처음 쇼우가 준 각설탕과 마지막에 준 각설탕의 의미는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첨에 준 각설탕은 말그대로 '너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내가 줄께'라는 식의 것이었지만 (그래서 아리에티는 쉽게 받을 수 없던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준 각설탕은 아리에티와 이런 모험과 교감을 겪고 나서 진심으로 전하는 '선물'의 의미, 즉 '그 땐 내가 경솔했어, 하지만 이제는 내 진심을 받아줄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전달되는, 그래서 아리에티도 더이상 '빌려가지' 않고 오전히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내내 '빌려가는'것으로만 살아왔던 이 두 종족의 관계가 더 이상 빌려가고, 도둑질 해가는 것이 아닌 선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런 교감을 나눈 쇼우는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희망과 절망을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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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히사이시 조 없는 지브리의 사운드트랙은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작이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인 것과 더불어 사운드트랙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 '세실 코벨'의 음악은, 기존 지브리의 작품들 보다 훨씬 더 유럽풍의 인상을 준다('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도, 유럽을 배경으로 했던 '붉은 돼지'보다도 더하다). '썸머워즈'에서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 군은 주인공 '쇼우'를 연기하고 있으며, '도쿄 타워'와 '걸어도 걸어도'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키키 키린은 나름 악당인 '하루' 아줌마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에 있습니다.





사실 명절 연휴기간이라고 해서 영화를 더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쨋든 명절연휴라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기간내에 상영하는 영화들이 기대되곤 하는데, 매번 너무 '추석연휴'를 노린 듯한 영화들만 많았던 것에 비해 올해 추석연휴 극장가는 그런 작품들 외에도 볼만한 소소한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본격적인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2주 후를 비롯해 다음 주 개봉작들까지 아울러서, 연휴 기간 볼만한 작품들을 정리해보았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목록을 정리해놓고 반 이상을 못보게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 연휴기간에는 꼭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기를! (순서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1. 계몽영화
감독 - 박동훈
출연 - 정승길, 김지인, 오우정
개봉일 - 2010.09.16

'전쟁영화'를 연출했던 박동훈 감독의 신작. 매번 좋은 다큐영화들을 소개했던 '인디스토리'의 시작이기도 하다. 최근 훈훈함이 주가 되었던 가족영화들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미완성 가족교향곡'이라는 설명처럼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 




2. 땅의 여자
감독 - 권우정
출연 -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개봉일 - 2010.09.09

오늘 개봉한 '땅의 여자' 역시 인디씬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다양한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은 재쳐두고서라도, 이 '진짜' 이야기가 과연 어떤 울림을 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잔뜩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몇년 전 귀농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터라, 그녀들의 농촌 라이프가 여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풀냄새, 땀냄새 나는 인생의 맛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3. 노다메 칸타빌레 Vol.1
감독 - 타케우치 히데키
출연 - 우에노 쥬리, 타마키 히로시
개봉일 - 2010.09.09

우에노 쥬리의 왕팬이자 '노다메'의 팬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작품!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개봉했던 작품이라 국내 개봉은 결국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소규모이지만 국내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TV시리즈는 원작인 만화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었음으로, TV시리즈를 재미있게 본 이들에게만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미 TV시리즈를 통해 이 황당하고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연출과 유치한 설정들에 적응되지 않은 이들이라면 아마도 유치함게 못이겨 극장을 빠져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노다 메구미와 치아키 센빠이에 흠뻑 빠진 이들이라면 적은 상영관도 큰 걸림돌은 되지 않을듯.




4. 마루 밑 아리에티
감독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개봉일 - 2010.09.09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른바 '빠'로서 이번 연휴의 최대 기대작은 볼 것도 없이 '마루 밑 아리에티'라 할 수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은 '게드 전기'의 실패 이후, 다시 선보인 지브리의 비 하야오 작품으로서 더 큰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적으로 실망을 표현했던 '게드 전기'와는 달리 만족을 표현한 작품이라니 일단 안심이 된다. 지브리의 작품은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면 된다. 물론 그 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화두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런 것 다 무시하고 봐도 좋은 것이 바로 지브리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야말로 '초' 기대작이다.




5. 시라노; 연애 조작단
감독 - 김현석
출연 - 엄태웅, 이민정, 최다니엘, 박신혜
개봉일 - 2010.09.16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국내 로맨스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나의 여신으로 떠오른 '이민정' 양의 출연 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 따위는 볼 것도 없이 기대되는 작품이긴 하지만, '스카우트' 'YMCA야구단' 등을 만들었던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니 완성도 역시 기대해봐도 좋겠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로맨스를 즐길 생각을 하니 두근거리는 동시에 (이민정 양을 스크린을 통해 본다는 기대도 동시에!), 과연 이번 작품에서도 소문난 야구광인 김현석 감독의 야구사랑이 드러난 장면이 있을지도 체크 포인트.




6. 엉클 분미
감독 -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출연 - 사크다 카에부아디
개봉일 - 2010.09.16

최근 시네필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이 있다면 단연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신작 '엉클 분미'였다. 이미 이 작품을 본 이들의 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냥 '좋다'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인 느낌이 들 정돈데, 다행히도 오래 기다릴 필요없이 극장에서 빠르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아니더라도, 좀 더 제대로 아피찻퐁 감독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보고 싶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과연 어떤 영화, 어떤 감흥을 선사할까. '아리에티'와는 또 다른 설레임이다.




7. 옥희의 영화
감독 - 홍상수
출연 -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개봉일 - 2010.09.16

홍상수. 홍상수의 영화다. 언제부턴가 홍상수 영화라는 것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는 또 다른 절대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는데, 그의 신작 '옥희의 영화' 역시 이미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부터 몹시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는 포스터 속 모습 만으로도 이미 홍상수 월드에 완벽 적응한 듯해 이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기대되는 가운데, 오랜만에 홍상수 월드로 돌아온 문성근의 연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옥희의 영화'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은 것만 보자던 홍상수 감독의 의지가 이 영화에서는 또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이번 추석연휴도 개인적으로는 극장을 매일 들락날락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들로 인해 더 풍성한 추석연휴가 되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소라닌 (ソラニン, Solanin, 2010)
청춘의 또 다른 이름


청춘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는 언제나 반가운 동시에 아련하다. 청춘을 그린 영화의 특징이라면 한참 이를 겪는 이들은 그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즈음엔 이미 청춘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지나온 뒤이기 때문이리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키 다카히로의 '소라닌 (ソラニン)'은 이런 청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자에서 돋아난 싹에 있는 독성물질'을 뜻하는 '소라닌'이라는 제목처럼, 기존의 청춘 영화들 과는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 모든 청춘 영화들이 특유의 아련함으로 보는 이를 추억과 감성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지만, '소라닌'은 유난히도 아련하다. '소라닌'은 한 때의 소나기로 기억될 수도 있고, 작은 방에 드리워진 햇살로 기억될 수도 있고, 행복했던 추억 혹은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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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사실 이런 감정은 이미 영화를 보기 전 감성스러운 사운드트랙을 들었을 때부터 얘견되었던 것이었다. 무언가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이 풋풋하고 자유로움이 샘솟아나는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니, 사무실이라는 현실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어졌는데,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감정은 더욱 본격화 되어버렸다. 극중 메이코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네다 (코라 켄고)는 각자 회사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거를 하는 중인데, 어느 날 이런 평범하고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려 조금은 우발적으로 사표를 내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큰 압박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렇게 용기내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끔 했던 것은 아마도 청춘, 그 자체였을 것이다.   

'소라닌'은 이런 청춘이 가진 양날의 검을 모두 담담히 그려낸다. 무조건 현실에서 도망쳐 사표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정해진 길을 그대로 가라는 것만도 아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이 자체에는 무심한 듯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이들의 행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지만 않을 뿐 영화 내내 이 현실의 그림자는 주인공들에게 드리워져 있으며, 은연 중에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별다른 자극적 연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그럼으로서 이를 맞닥들이게 되는 관객들은 오히려 이런 현실에 처한 청춘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현실에서 잠시 혹은 영영 벗어난 이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현실에 놓여져있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본격 사표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깊은 과정이 포함된 (결과는 같지만, 과정의 깊이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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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밴드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청춘은 흔히 록(Rock) 음악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어쩌면 록이라는 음악은 그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장르이기 때문에 청춘과 비견된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소라닌'은 그 지점을 아주 잘 짚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청춘을 록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작품은 '린다린다린다'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소라닌'은 그 가운데서도 '밴드 (Band)'라는 것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록만을 (혹은 펑크를) 부르 짖는 청춘과 밴드가 위주가 된 청춘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록의 정신을 청춘고 결부시킨 것보다는 밴드라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는,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시절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유독 강조한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전자를 강조한 작품들 역시 이런 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라닌'은 분명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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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라닌'은 미치도록 기타 연주를 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라기 보다는 미치도록 밴드하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다.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겠지만, 혼자 연주할 때와 합주할 때의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분명히 밴드와 함께 할 때는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소라닌'는 극중 등장하는 밴드 'ROTTI'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대리만족을 가능케 해준다. 여기에 이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더해져 ROTTI가 부르는 '소라닌'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떠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서를 안겨준다. 이건 도저히 말로 설명이 안된다.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수록곡의 원곡인 'Asian Kung Fu Generation'의 곡을 들어보게 되면 금새 알게 된다. 원곡도 물론 좋지만, ROTTI가 부를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ROTTI가 '소라닌'을 부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이 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 절절함과 뜨거움이 미처 식기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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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소라닌'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앉아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니, 한 편으론 참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었던 작품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보는 이에 따라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지리하게 흘러가는 청춘들의 흔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라닌'에는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힘 만큼이나 강력한 이미지와 정서가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소라닌'을 보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미야자키 아오이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아오이보다 '소라닌'이 더 깊게 각인되었을 정도로, 이 영화에는 깊은 청춘의 자욱이 남아있다. 

사실 청춘 영화들이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춘 영화' 역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주 심하게 얘기해서 영화가 시종일관 별로 였다 하더라도 청춘의 순간을 제대로 그려낸 장면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억에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소라닌'은 참 인상 깊은 청춘 영화였다. 내게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였던 청춘이란 순간을, 어쩌면 바로 오늘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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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 만화책은 뒤늦게 사려고 보았더니 모두 품절이라 좌절했었는데, 곧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재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급 기대중입니다!

2. 미야자키 아오이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있었구나 싶네요. 그 에너지는 아마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3. 사실 청춘 영화는 이렇다할 설명이나 비평이 필요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구요. 보고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죠.

4. 영화를 보고 난 뒤 무한반복 중인 아지캉의 'ソラニン'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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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 2010)
괜찮아, 우린 모두 괜찮아요


줄리안 무어와 마크 러팔로, 그리고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에브리바디 올라잇 (The Kids Are All Right)'은, 어떤 기사의 제목처럼 '특별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결국 이 특별해 보이는 가족조차 '평범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소스라면 주인공인 닉 (아네트 베닝)과 쥴스 (줄리안 무어)가 레즈비언 부부로 등장한다는 점일텐데, 이런 점에 불편한 점만 없다면 아마도 '에브리바디 올라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게이나 레즈비언을 그린 영화들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아주 부담없이 즐길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타부시 될 때에는 좀 더 자극적이고, 이렇게 타부시하는 사회와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조금씩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러워진 지금에는, 이 작품처럼 레즈비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들 꼭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다시 말해 관객들이 더 이상 주인공의 성정체성에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 것 같다. 그런면에서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특별한 듯 하지만, 참 평범해서 더 깊이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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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부모를 둔 이복 남매인 조니와 레이저. 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정자를 기증한, 친부를 찾고 싶은 궁금증에 친부인 폴 (마크 러팔로)을 만나게 되고, 폴과 이 가족은 점점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를 이어간다. 이 가족과 폴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여러가지 삶의 다양한 의미들을 짚어 간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닉은 갑자기 나타난 폴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가족을 송두리채 흔들까 두려워 그를 심하게 경계하는 한편, 닉과의 관계에서 점점 권태기를 느껴가던 쥴스는 새롭게 등장한 폴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아이에게도 다르게 나타난다. 

조니는 폴과의 만남을 통해 그 동안 집에서는 억눌려 있었던 자아를 찾는 데에 속도를 내게 되지만, 레이저는 닉과 마찬가지로 궁금하긴 했지만 폴의 등장이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반응이다. 그렇게 이 네 명의 가족 구성원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폴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화목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갈등을 겪고 있던 이 가족은, 폴이라는 또 다른 가족을 통해 다시금 자신들(가족)을 되돌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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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의 이야기만 보아도 이 이야기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각각이 겪는 갈등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가부장적인 닉이 겪는 갈등, 사랑과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던 쥴스의 갈등, 이제 막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가족과 떨어지는 연습을 해야하는 조니의 갈등 그리고 아직은 자신이 속한 이 가족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는 레이저의 갈등까지. 영화는 별다른 큰 에피소드를 넣지 않았음에도 폴이라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장을 통해 이 모든 갈등을 부각시키고 치유하는 것까지 성공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연히 부각이 아니라 치유다.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그저 하나의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또 다른 '가족이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은 마냥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관계 못지 않게 서로 견뎌야만 하는 것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집단이라는 점을 영화는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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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제인 'The Kids Are All Right'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 혹은 잘 모르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려 섞인 일들이나 관계들이 사실은 그런 우려만큼 문제가 아니라는, 그래서 '우린 다 괜찮아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연 레즈비언을 부모로 두고 있는 이복 남매인 아이들이 잘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혹은 그들 스스로조차 내가 레즈비언인데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잘 커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이들은 조금 다를 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것들이 편견이나 선입견이 대상이 될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이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가깝게 겪어보고 난 뒤에는 이러한 편견을 갖기 않게 되곤 하는데, 이런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이런 잘못된 편견을 조금이나마 지워내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확실히 더 극적이고 간절한 이야기를 할 때보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나가는 편이 오히려 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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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올라잇'을 보고 나면 확실히 내가 속한 가족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내 부모, 내 자식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다시 한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마치 극중 쥴스의 그 뜨거운 고백처럼 말이다.


1. 아네트 베닝의 가부장적인 캐릭터 연기는 정말 놀랍더군요. 한 때 '러브 어페어'등에 출연하며 아름다운 여배우 중에 하나로 꼽혔던 그녀가, 이렇게 남성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 만으로도 흥미롭더라구요.

2.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던 미아 바쉬이코브스카는 확실히 이런 영화에서의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편이더군요. 앨리스 이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3. 마크 러팔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본래도 그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그는 뭐랄까, 매력을 막 줄줄 흘리고 다닌달까. 여튼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섹시스타에요!

4. 영화를 보고나니, 극중 마크 러팔로처럼 유기농 농장을 하나 운영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과, 극중 아네트 베닝처럼 와인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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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브 (The Cove)
잔인한 진실, 이제는 행동할 때 


지난해 가장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중 하나였던 '더 코브'를 뒤늦게 EIDF 프로그램을 통해 TV로 감상할 수 있었다. 극장 개봉 당시 이미 많은 화제를 불어일으켰고 선댄스에서의 수상 등 주목받는 작품이었는데, 늦었지만 EIDF 덕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카피 들을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더 코브'의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는 저 황홀한 이미지에만 끌려, 단순히 해양세계와 돌고래의 압도적인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작품인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저 카피들이 말해주듯 '더 코브' 에 담긴 내용은 (그리고 사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인간의 잔혹함과 공존에 대한 신랄한 경고이자 신고의 성격을 갖고 있는 힘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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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린피스의 활동이나 가끔씩 들려오는 해외 토픽 등을 통해 불법 고래잡이에 관한 사실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예전에 포경 관련해서도 일본의 행동들을 알게 된 적이 있는데, '더 코브'를 통해 알게 된 일본 타이지의 잔인한 진실은 그 동안 철절히 숨겨져 왔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곳에서는 매년 2만 3천마리가 넘는 돌고래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데, 일단 그 사실 이전에 이것을 은폐하려는 타이지 사람들과 관리들의 모습들이 가관이다. 가끔 이런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에는 그 어느 극영화 못지 않은 악당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이 곳 사람들 역시, 그 어떤 작가가 만들어낸 악역 캐릭터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실존인물들이 아닐 수 없겠다. 자신들의 부당함을 숨기고 이를 밝혀내려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고 있노라면, 인간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끔까지 만든다. 

작게는 마을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정부와 돌고래 사업과 관련된 거대 회사와 국제 단체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너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고발은, '더 코브'가 갖고 있는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다. 영화는 이를 위해 '오션스 일레븐'에 버금가는 정예 팀을 만들어 잔인한 진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대에 결국 성공하는데, 물론 이 과정이 극영화 못지 않게 긴장감 넘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극영화 다른 점이라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극영화와는 다르게 이 잔인한 장면이 사실이라는 점 때문에 그저 재미만 느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만큼 일본 타이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잔인함 그 자체였다. 

극영화에서도 가끔 사용하는 방식이기도 한데, 루이 시호요스 감독은 드디어 그 충격적인 영상을 영화를 통해 공개하게 되는 순간, 그 어떤 영화적 묘사의 장치도 사용하지 않는다. 극적인 음악도 없고, 그 동안 계속 포함되었던 내레이션도 이 순간엔 침묵한다. 그리고는 그저 어부들이 잔인하게 돌고래를 학살하고, 그로 인해 붉게 물든 바다를 말없이 보여준다. 이 장면이 얼마나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는지는 직접 보고 느끼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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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자신 역시 돌고래들을 사육하고 돌고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한 남자 후회로 부터 시작되었다. 릭 오배리는 이 다큐를 통해 여러번 '그 때는 몰랐었다' '왜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를 후회하곤 한다. 어쩌면 이 큰 후회가 그를 지금까지도 돌고래 보호를 위해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후회는 이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우린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다큐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사실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문해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막말로 이런 것들을 모두 염두에 둔다면 내가 먹는 것, 보는 것, 사는 것 들 모두가 행복이 아닌 삶의 제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논리로 다시금 나를 합리화하며 작게 나마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시작도 전에 관두게 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합리화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부당함을 느꼈고,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자신이 믿는 가치가 계속 구현되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한 발이나마 내딛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코브'를 보고 나서 아주 작은 결심을 하나 했다. 사실 돌고래는 너무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놀이공원의 '돌고래쇼' 는 꼭 한 번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적어도 볼 수 없는 '쇼'가 되어버렸다. 나 하나 안본다고 돌고래쇼를 보는 사람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돌고래를 잡아들이는 행동이 줄지는 않겠지만, 분명 한 건 돌고래쇼를 보려는 사람의 수가 하나는 줄었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미약하나마 돌고래 사업에 손실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다큐의 힘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는 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 말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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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에어벤더 (The Last Airbender)
너무 순진했던 샤말란의 졸작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름 자랑한 만한 거리가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내 취향에 맞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선택해내는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걸 들 수 있을텐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만 대부분이 긍정적이고 인상적인 평을 끄적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선택에서 살아남은 작품들 가운데 아주 가끔 만족스럽지 않은 영화들도 있었는데, M.나이트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보기 전부터 '이걸 과연 봐야할까?'라는 고민을 굉장히 심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제작이 들어가고 연출을 샤말란이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을 훨씬 더 했었으며 (그 때 내 반응은, '왜?, 도대체 왜 샤말란이 이런 작품을?' 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시사회와 개봉 이후 들려오는 지인들의 평들을 보니 '샤말란의 팬이라도 안보는 편이 낫다'라는 것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그래도!'라는 마음에 속는 셈 치고 이 작품 '라스트 에어벤더'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여기에는 '그래도 나는 재미있게 볼지 몰라'라는 일말의 생각이 있었는데, 결론은 나조차 샤말란을 편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총체적 난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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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렇다고 해도 어쨋든 영화화된 작품이라면 반드시 있어야할 몇가지 요소들에서 너무나 결핍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유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렇다할 기본 요소들의 힘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각각의 원소를 다스리는 벤더와 이 모두를 다스릴 수 있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아바타라는 존재와 세계관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자체가 굉장히 유아적이긴 하지만 이는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라스트 에어벤더'를 보고나서 얼핏 떠올랐던 작품은 또 다른 판타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자 실패로 인해 속편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황금 나침판'이었는데, 결과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조금 차이가 있다 하겠다. '황금 나침반'은 애초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점에 기인해 1편에서는 대부분의 분량을 세계관과 캐릭터 설명에 할애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너무 지루했으며 그 과정에서 전혀 리듬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설명 조차 다 하지 못해 1편이 해야할 역할들을 겨우 해낸 듯도 했지만 결국 그 기대가 2편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지는 못했던 작품이었다.

이에 반해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는 사실 이 보다도 못한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일단 그 세계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캐릭터의 설명도 거의 없는 편에 가깝다. 그리고나서는 다짜고짜 여정을 시작하는데, 당연히 공감대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 갑자기 나타난 캐릭터와 말 한번 섞지 않고도 목숨을 바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전혀 위압감이나 공포스러움은 물론 존재감마저 주지 못하는 악당들도 문제다. 그런데 영화의 중간중간, 관객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데 마치 영화는 스스로 이 장면이 굉장히 멋진 장면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장면들이 많다. 관객은 이 굴곡 없는 이야기에 점점 수면에 가까워지는 와중이지만, 영화는 이와는 다르게 '이것봐, 이거 정말 환상적이지않아?'라며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여럿 느껴지는다는 얘기다. 이것은 순수하기보다는 순진한 것으로 봐야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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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샤말란의 '라스트 에어벤더'에 대한 실망감들이 바로 이런 '순진함' 때문이기를 사실 바랬었다. 샤말란은 이전 작품들을 통해 대중들에게는 외면 당할 지언정 그 순수함은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계속 그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아왔었는데 (그래서 이번 작품의 악평들도 이런 순진함 때문이길 바랬었는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이런 순수함이 아닌 그저 순진함으로 만들어진 아쉬운 작품이었다. 순진함으로 인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거의 모두 간과하고 있으며, 캐릭터의 미스 캐스팅은 지금까지 본 영화 가운데 손꼽을 정도이며, 그렇다고 화려한 CG나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나보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 영화가 문제인건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런 요소가 모두 있는냥 자신들이 이렇다고 믿는 장면에서 나름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관객은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는 언제 얻을 수 있나? 하고 기다리고 있지만 영화는 이미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믿고 있으며, 관객은 과연 에어벤더만의 특별한 액션 시퀀스는 언제 볼 수 있을까?라고 기다리지만, 영화는 이미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순수한 영화라면 관객이 공감을 못할 지언정 이런 결과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담 이걸 유아용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라스트 에어벤더'는 그냥 순진하기만 한 것이다. 지금까지 M.나이트 샤말란은 순수하긴해도 순진한 감독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은 처음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부터 '왜?'라는 물음을 갖게 하더니, 결국 이런 의문을 더 깊게 만들만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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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캐스팅 얘기를 잠시 했는데, 정말 '황금 나침반'처럼 호화캐스팅을 바라보는 재미마저 이 영화엔 없다. 주인공을 연기한 노아 링어는 전혀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으며 (물론 이건 이 아이의 잘못만은 아니다), '카타라' 역할을 맡은 니콜라 펠츠는 너무 평범해서 길에서 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고, '소카'역을 맡은 잭슨 라스본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매력적인 캐릭터마저 잊게끔 만들 정도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데브 파텔 역시 샤말란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왜 이 영화에 나왔을까 싶을 정도의 미스 캐스팅이었다.

M.나이트 샤말란은 과연 자신이 만든 '라스트 에어벤더'가 만족스러웠을까? 제발 나중에 인터뷰 등을 통해, 스튜디오의 압박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없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하는게 마지막 바램이다. 아...샤말란...이건 정말 아니다.


1. 3D로 봤는데 전혀 3D로 볼 필요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거의 3D로 밖에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고민없는 3D는 이처럼 아주 심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더군요.

2. 너무 자신있게 속편을 암시하고, 아니 광고하고 있는데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만약 나온다면 제발 샤말란은 손 때주길. 팬으로서 부탁드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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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I Saw The Devil, 2010)
악마를 본 자의 대답


비가 추적추적 내리길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의 금요일. 우연치 않게 이 날에 딱 들어맞는 영화 한 편을 보았으니 바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였다. 박찬욱, 봉준호 등과 함께 국내 감독 중 신작을 낼 때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을 앞서 언급한 감독들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널 뛰듯 만족스러움의 정도가 각각 달랐고 느끼는 완성도의 차이도 그러했다. 그의 전작들에게서 느껴지는 첫 번째 감정이라면 무언가 조금 부족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 항상 기대는 갖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나면 또 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제한 상영판정과 삭제 뒤 개봉 등으로 화제가 된 그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에서 느껴지던 그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과잉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의미없지 않은' 이야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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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과 이병헌, 최민식이라는 두배우 그리고 분위기를 암시하는 포스터의 문구와 배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같은 상대와 주인공의 대결 구도가 아닌, 관객에게 누가 악마인지를 묻는 다던가, 혹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구조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보면 이 영화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분명 '광기의 대결'이자 '복수의 두 얼굴'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내가 본 시점은 오히려 악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방적인 구조로 받아들여졌다. 즉, 악마는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이고 그를 본 사람은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인 것이다. 영화는 일단 '악마'로 불리는 장경철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대부분 이런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처럼, 장경철 역시 악마적인 행동들을 먼저 보여준 뒤 그가 어떤 개인적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천히 알려준다 (물론 이 영화는 장경철의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개인사를 묘사함에 있어 이런 여지를 두지 않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수현을 설명하는 방식은 그가 국정원의 요원임에도 이 특수한 사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한 여인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해 그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배경 설정은 있으면 이야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캡슐로된 GPS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나 강력계 형사 여럿을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의 격투실력) 반대로 말하면 요원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끌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똑같은 예로 들자면 캡슐 GPS는 암시장을 통해 구하고, 본래 격투에 능하다고 설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장경철을 압도하는 것으로 설정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애초부터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악마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에 집중하지만,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는 그 제목처럼 '보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악마가 되어가는 듯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한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은 항상 미장센은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굴곡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악마를 보았다'에 와서야 미장센이 그저 보기 좋은 그림으로만 활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공간에 미적인 매력만이 아니라 영화의 감성과 분위기를 담아낸 좋은 결과물로 느껴졌으며, 장면을 그리는 방법 역시 작정하고 만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수현의 '이제 시작인데' 라는 대사처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기존의 느껴졌던 아쉬움이 훨씬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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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처음부터 지독한 복수를 결심한다. 그냥 총을 구해 한 방에 죽음으로 이끄는 방식이 아닌, 그리고 무엇보다 단 한번의 고통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대가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들 복수를 구상한다. 그래서 장경철을 흠씬 두들겨 패고 난 뒤 풀어주고, 또 그가 나쁜 짓을 저지르려고 하면 나타나 몸을 부숴트리고 또 놔주기를 반복한다. 장경철의 친구인 태주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김지운 감독이 정말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게 까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설정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간섭으로 일을 그르친다거나 확대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구성이 있었다면, 정말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 더한 악마가 되어가는 흐름에 따라가게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흐름은 없다. 

수현은 치밀하고 무엇보다 복수의 뜨거움보다는 차가운 머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딱 필요 만큼의 고통만 주고 풀어주는 것에 계속 성공한다. 마지막에 한번 실수 하지만 (사실 이 실수도 그의 부하 요원이 경철이 잠든 줄 알고 했던 말을 경철이 들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다), 그 이후에도 재빨리 상황을 수습한 뒤 '니 말대로 너를 과소평가 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본인이 준비한 복수의 마지막을 치뤄내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악마' 그 자체가 되는 것보다는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한 차가운 감정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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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방식대로 복수를 성공한 수현의 오열은 이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엔딩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오열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첫 째로 약혼자를 처참한 죽음으로 잃게 된 슬픔과 자신의 복수 때문에 역시 처첨한 고통을 당한 장인어른과 처제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라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도 악마처럼 변해버린 모습 (장경철에게만 복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상관없는 가족들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과 이제는 절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린 것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정이라면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자신이 예상한대로, 원했던 방법으로 모두 복수를 행했음에도 결국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여기서 오는 진정한 공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택한 이 마지막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갖는 마지막에는 몇 가지 선택의 옵션이 있는데, 하나는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처럼 주인공이 마지막에 악마를 죽음으로 응징하지 않고 법의 잣대로 판결하게 되는 것이고 (대부분 이런 이야기의 경우 주인공이 경찰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치 '세븐'의 경우처럼 법이 아닌 죽음으로 응징하였으나 이것조차 악마의 의도였다는 것 때문에 더 황량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주인공과 한 편이 되어  '법대로 처리하지 말고 저 악마를 그냥 죽여버려'라는 내 안의 악마성을 드러내게 되고, 후자의 경우는 그런 악마성의 결과물로서 황폐함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악마를 보았다'는 후자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언급한 '세븐'과는 다르게 영화 속 장경철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모두 수현이 계획한 것 그대로였다. 즉, '세븐'의 브래드 피트는 제 손으로 악마를 제거하고서도 결국 악마의 손에 놀아난 것에 대한 후회와 이겨내지 못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면,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행했음에도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대로 복수를 다 이룬다 한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자신과 이 상황에 대한 공포가 서린 오열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면서도 갈 수 밖에는 없었던 주인공이 그 끝을 만났을 때 예상했음에도 겪게 되는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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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상영판정 논란과 더불어 고어한 표현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일단 극장에서 본 '악마를 보았다'의 고어 수준은 분명 일반 관객에게 있어 (고어 영화를 즐기는 팬들이 아닌)서는 '고어'라 부를 만한 수위의 것이었다. 매번 변하는 등급위원회의 평가 잣대 때문에 이번 제한 상영판정 논란은 '도대체 얼마나 고어하길래?'하는 다른 감상 포인트를 일부에게 제공하고야 말았는데, 물론 '호스텔' 등을 비롯한 고어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수준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나,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 영화에서 표현된 수준으로는 분명 고어한 수준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 정도가 뭐가 고어냐?'라는 논란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고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악마를 보았다'에 담긴 고어한 장면들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영화에서는 굳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을 굳이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그냥 안보이는 것으로 처리하거나, 소리나 효과로만 처리할 수도 있고, 컷 전환을 통해 결과만 알려주어도 될 것을, 이 영화는 굳이 여러 차례 내리치는 장면이라던가 찢어지는 입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터져나오고 뭉게지는 신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학적이고 공포스러운 표현과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과연 이 복수가 성공한 것인가 아닌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 대신에 마지막의 오열과 더불어, '이 복수는 처음부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에게는 복수를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요즘은 뉴스에서 이 보다도 더한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만약 그것이 내 가족, 내 약혼자의 이야기였다면 누구든지 마음만은 영화 속 수현과 같았을 것이고, 그 중 몇은 수현처럼 복수를 결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한 남자, 즉 악마를 본 남자의 대답을 들려준다. 여기서 아이러니하면서 공포스러운 점은, 영화 속 수현처럼 이 대답을 충실히 들은 관객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상황에 닥친다면 수현처럼 끝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할 수 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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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장에 관객들이 정말 견디기 어려워하더군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그래서 극중 수현에게 '그냥 차라리 빨리 끝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분도 계셨던 것 같구요. 이런 몰입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2. 장경철의 학원버스 안 그 천사날개 조명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조명이 처음에는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는게 흥미로웠죠.

3. 가제였던 '아열대의 밤'이나 '사냥꾼의 밤'보다 '악마를 보았다'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만약 이 제목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글의 부제목으로라도 이 제목을 자연스레 썼었을 것 같아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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