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_ 블루레이 리뷰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_ Blu-ray Review)
또 다른 삼 부작의 가운데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두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팬이지만, 새로운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호빗 : 뜻밖의 여정' 은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쉬움은 전부 '반지의 제왕' 삼부작 때문이라고 - 그 엄청난 기대감 때문이라고 - 할 수 있겠는데, '호빗'은 원작이 그러한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영화 작법으로 보았을 때도 몹시 '반지의 제왕'과 거울처럼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보다 진일보한 영화를 기다렸던 이로서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번째 작품인 '스마우그의 폐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삼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점점 더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반지의 제왕'의 두 번째 작품인 '두 개의 탑'이 그러 했듯이, 이번 작품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구성, 갈등 요소까지 거의 '두 개의 탑'과 유사한 구성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작품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 더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실망스러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 수는 없으나, 분명 전 편보다 재미있었고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도 거의 지루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황당해 한 엔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두 개의 탑' 때도 극장 반응은 거의 유사했었다). 아마도 전 편을 통해 익숙해진 드워프들과 새롭게 등장했으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 덕에, 조금은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전작인 '뜻밖의 여정'도 그랬지만 '스마우그의 폐허'는 이보다 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엘론드나 골룸 등의 캐릭터의 등장으로 그 연장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좀 더 절대 반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반지의 제왕'의 주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사우론의 존재가 점점 드러나면서, 직접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호빗 3부작, 반지 3부작으로 각각 나누기 보다 거의 중간계 6부작으로 봐도 좋을 만큼, 전반적인 톤이나 캐릭터, 구성, 음악까지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뒤에 한 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긴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전작에서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을 대부분 긍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하다.






'반지의 제왕'과 구성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각 인물들의 성숙 도를 들 수 있겠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호빗'에 비하자면 상당히 안정되고 이미 성숙된 캐릭터들이 많았다. 아라곤과 소린을 비교해도 그렇고,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물론 이건 성숙도의 차이라기 보다는 성격으로 인한 부분이 크긴 하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레골라스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소린은 아라곤과 겹쳐지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충동적이며 이루고자 하는 바가 처음부터 뚜렷한 편이고, 구성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간달프는 '두 개의 탑'과 마찬가지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역시 홀로 원정대를 떠나 퀘스트를 수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올랜드 블룸이 연기한 레골라스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지의 제왕' 속 여유 넘치고 위트까지 있는 레골라스와 '호빗'의 레골라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르다.


훨씬 더 거칠고 날카로우며, 아직 날 것의 느낌이 충만하다. 개인적으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직 성장 중인 레골라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극 중 스란두일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에겐 눈 깜빡 할 사이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도 조금이 나마 젊은 레골라스의 거칠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는 이 작품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또한 이번에도 대부분의 명 장면은 레골라스가 다 만들어 낸다. 그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스마우그의 폐허'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했었다. 그 정도로 이번 작품 역시 멋진 장면은 대부분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기적으로)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개봉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던 스마우그의 등장 씬은 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액션은 물론 대화(혹은 수다) 시퀀스로서 만족감을 주기도 해,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아마도 본격적인 스마우그의 액션은 3편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딱 그 중간까지만 맛만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게 '스마우그의 폐허'는 피터 잭슨의 또 다른 삼부작의 가운데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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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영상을, 그 어두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충실히 표현해 낸다. 피터 잭슨의 호빗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HFR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참고로 전 작이었던 '뜻 밖의 여정'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땐 정말 너무 영화 같지 않는 화면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여서 인지 아니면 그 간 좀 더 자연스러운 기술의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스마우그의 폐허'는 조금은 이질감이 덜한 편이었다. 블루레이의 영상에서도 HFR 특유의 영화 영상 같지 않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실제 장면 같은) 장면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 보다도 그린 스크린과 CG가 폭 넓게 사용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배우들과 배경의 조화에 있어서 블루레이의 선명한 화질은 조금은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너무 선명한 화질 탓에 조금만 집중해서 보게 되면 배우들과 배경과의 이질감을 느낄 수 있고,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인 스턴트 맨의 얼굴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우그의 폐허'의 전반적인 영상 톤이라면 브라운과 그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간혹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장면도 등장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디테일이 우수하고, 만족스러운 블랙 레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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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는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스마우그의 폐허'는 사운드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퀀스가 여럿 있었는데, 특히 술통 안에 든 채로 강을 흘러 내려가며 벌이는 액션 시퀀스의 경우 다양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었다. 조금 의외였던 건 이 장면에서 사용된 소리들 가운데 상당히 현실적인 폴리 사운드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영상 측면에서도 중간 중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상을 끼워 넣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운드 역시 현실감을 주려고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후반 부의 사운드 포인트라면 역시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시퀀스를 들 수 있을 텐데, 워낙 스케일이 큰 스마우그이기에 (극장에서 그 거대한 규모를 온 몸으로 이미 체험했기에) 블루레이의 사운드 퀄리티가 훌륭함에도 조금은 스케일 측면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확실히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감상할 때 더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런 작은 소리들을 만나게 되는 건 분명 블루레이 만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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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영상으로는 본 편이 수록된 디스크에 수록된 'New Zealand: Home of Middle-earth, Part 2'를 먼저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촬영지였던 뉴질랜드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다. 본격적인 부가 영상은 별도의 디스크에 수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후 발매될 확장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라 하겠다. 'Peter jackson invites you to the set'은 총 야 40여분의 영상으로 촬영장의 뒷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총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in the company of the hobbit'에서는 스튜디오는 잠들지 않는다는 말처럼,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에 이르기까지 다음날 정상적인 촬영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그렇지만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 부작과 호빗 삼 부작 역시 정말 많은 스텝들이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스텝들의 활약상이 부가 영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다 (피터 잭슨 작품 타이틀의 부가 영상은 항상 스텝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새벽 일찍 도착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장을 받는 장면으로 배우들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1차로 보형물 작업이 완료되면 그 다음에야 분장과 헤어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의상까지 갖추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캐릭터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워낙 많은 스텝들과 분야들이 존재하다 보니 결정 권한이 있는 피터 잭슨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될 정도인데, 각각의 부서를 돌며 최종 결정을 해주고 의견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피터 잭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후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을 사실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구현하고 작업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편집자가 촬영장에서 편집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때부터 워낙 오래 함께 해온 스텝들이다 보니 모두의 생일을 촬영장에서 챙겨주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흔히 얘기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 라는 건 바로 이들 스텝들을 두고 하는 얘기라고 보면 되겠다






두 번째 'All in a day's Works'는 자신의 촬영 장면을 기다리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잠든 배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촬영 2팀 감독을 맡은 앤디 서키스가 촬영장을 지휘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제법 감독 의자에 앉는 모습이 제법 능숙해 보였다. 또한 피터 잭슨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인 웨타 워크샵의 작업장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 특유의 다양한 아이템들, 무기, 갑옷, 조형물 등이 어떤 작업을 통해 실제 만질 수 있는 소품들로 완성 되는지 과정을 소개해준다.






워낙 고되고 빠듯한, 하지만 많은 익숙한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양한 장난과 놀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 '위너의 놀라운 바퀴'라는 이벤트는 매일 촬영이 끝날 때 마다 돌림 판을 돌려 나오는 혜택을 제공하는 일종의 뽑기 이벤트를 제공 하는 것으로 촬영장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배우들을 불편하게 했던 두꺼운 보형물과 헤어, 분장을 떼어낼 때 배우들이 얼마나 시원해 하고 후련해 하는지 이렇게 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I see fire'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고, 마지막인 'Live event : In the Cutting Room'에서는 개봉 전 라이브 이벤트로 진행했던 촬영장 소개 실황이 담겨 있다. 피터 잭슨이 촬영장을 돌며 라이브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장면들이 어떤 부분인지 편한 분위기에서 소개를 하기도 하고, 각 부서를 지나가며 그 부서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지에 대해 기본적인 소개를 해주기도 하며, 이후에는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팬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셀프 카메라에 가까운 영상으로 그들의 짧은 코멘트를 들어보는 이벤트도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라이브 Q&A라고 하면 팬들의 질문에 대해 단순히 코멘트로 답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번 이벤트는 질문과 답변은 물론 그 답에 대한 부분을 촬영장의 비하인드 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부가영상으로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라이브 이벤트 영상이었다. 실제로도 37분에 달하는 분량의 영상이기 때문에 상당한 정보 량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Production Videos'에서는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제작 영상 가운데 총 4개의 비디오를 소개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1'에서는 호빗 1편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스텝들과 배우들이 반가워 하는 모습과 1편 촬영 종료 이후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세트와 장비들을 꺼내 다시 2편 작업에 돌입하는 모습 그리고 드워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코믹한 율동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편에 참여했던 엑스트라 들을 다시 연락해서 모집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엘프를 연기했던 30명의 엑스트라 연기자 중에 2명 밖에 연락이 안되 어려움을 겪는 섭외 스텝의 모습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2'에서는 후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혹성탈출' 촬영 관계로 자리를 비운 촬영2팀 감독 앤디 서키스를 대신 해 피터 잭슨과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전 시각화 아티스트를 대신 감독으로 촬영한 부가 장면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Production Videos 13'에서는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 장면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영상이었기 때문에 스마우그의 모습에 대한 비밀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이 지금으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Production Videos 14'에서는 하워드 쇼어의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이번 작품의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웰링턴에 위치한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화 음악을 녹음하는 장면도 수록되었는데, 영화 음악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시하는 피터 잭슨의 모습이 이채 로웠다. 또한 하워드 쇼어를 통해 이번 작품에 새롭게 등장한 테마곡들에 대한 짧은 소개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마우그의 폐허' 예고편 3종과 '뜻밖의 여정' 확장판 예고편 그리고 레고 호빗 게임 예고편과 또 다른 게임인 Kingdoms of Middle-earth의 코믹한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피터 잭슨의 호빗 삼부작, 그리고 그 가운데에 놓인 '스마우그의 폐허'는 확실히 전작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혹은 좀 더 이 시리즈가 삼부작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전달하고 있어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인드로 감상하게 된 작품이었다.


즉, 평가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삼부작이 마무리 된 시점에서야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은 아무래도 언젠간 출시될 확장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극장을 나오며 혹은 극장에서 놓쳐 빨리 보고 싶었던 이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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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_ 블루레이 리뷰 (The Wrestler : Blu-ray Review)
한계, 그 자체에 대한 찬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작 '더 레슬러'는 최근 개봉한 그의 신작 '노아'와 전작 '블랙스완'과 함께 아로노프스키의 관심사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갈등 그리고 정신 분열에 가까운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 (아로노프스키는 단순한 고뇌를 넘어 존립의 문제까지 밀어 붙인다)의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배트맨' 영화를 연출하길 간절히 원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더 레슬러'와 '블랙스완' 그리고 '노아'는 비슷한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각각의 강도와 결론의 정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 작품 '더 레슬러'는 그 중 가장 연민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한 편으론 잔인할 정도로 주인공을 홀로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외롭고 쓸쓸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한계에 부딪힌 한 인간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젊은 시절 프로레슬러로 큰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던 스타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보 청기를 착용해야만 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노년에 가까운 남성일 뿐이다. 그런데 랜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그가 아직도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바로 이 점이 스포츠를 주제로 한 다른 성공 스토리의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버스타 스텔론의 '록키 발보아'같은 경우 - 참고로 미키 루크에게 캐스팅 제의가 가기 전에 스텔론에게도 제의가 있었으나 바로 '록키 발보아'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도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작품은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이자 미키 루크 본인의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그가 없는 '더 레슬러'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 전성기를 보냈던 주인공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금 전성기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으로 감동을 그려내고 있지만, '더 레슬러'의 경우는 전성기를 보낸 주인공이 한참 떠나있던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계속 몸을 사용해야 하는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비록 엄청난 주목을 받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작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오고 있으며 쉬지 않고 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랜디가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은 무엇일까. 다른 성공스토리가 '그래, 내가 전성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도전과 성공의 이야기였다면, '더 레슬러'의 구조는 '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의 고민과 고통에서 시작된다. 격한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수많은 약물 등을 동원해서 커리어를 이어오던 랜디가 어느 날 심장에 무리를 주는 쇼크로 쓰러지게 되면서, 랜디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프로레슬러로 살아오느라 소홀했던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에게도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기로 하고, 자주 가던 스트립 바의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에게도 오랫동안 숨겨왔던 '손님'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심장에 이상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더 뻔한 줄거리였다면 전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레슬링을 했었을 테지만, '더 레슬러'의 랜디는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위해 큰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주저 없이 커리어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슬링을 떠나서 그가 바로 피부로 겪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프로레슬링 비즈니스 속에서만 살아온 랜디가 이를 관뒀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하나 뿐인 딸은 자신을 아버지로 대하기는 커녕 남 대하듯 쫓아내는 한편, 빈 트레일러 집에 덩그러니 누워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며, 레슬링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직접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안 어울리는 앞치마와 위생 모를 머리에 쓰고 동네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샐러드를 팔기도 해야 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러온 동네 꼬마와 구형 닌텐도로 자신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랜디는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레슬링 게임에 신나 하는 것에 비해 아이는 최첨단 FPS 게임(콜 오브 듀티 4)을 이야기하는 것은, 랜디가 현실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그 거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랜디가 이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랜디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치는 딸 스테파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캐시디에게 살짝 고백을 했다가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한 뒤에도 약한 불만의 표현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았을 식품 코너 일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하려는 모습도 다른 인물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안쓰러웠지만).


랜디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의 묘사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랐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뿌리치는 스테파니의 입장은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반응이었는데,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병을 얻고 나서야 나타나서 호의를 베푸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캐시디 역시 그간 아무리 자주 오가며 정을 쌓았다 하더라도 막상 고백까지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냉정하게 봤을 때 랜디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그리 가혹하다고만 (자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영화는 최대한 냉정하게 그래서 동정하지 않으려 하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랜디가 현실에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 순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모두 다 세상의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는 랜디의 모습은 애처로운 동시에 너무도 현실적(영화적과 반대의 의미)이다. 사실 이런 현실이 닥쳤을 때 고통을 조금 호소하다가 바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를 극복하려는 용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너무도 영화적이었던 것에 반해, 랜디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며 그 거친 피부 아래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눈물 이상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랜디가 현실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유일한 부분은 일반 세상에서 통용되는 '로빈 람진스키'라는 본명이 아닌 '랜디'라는 레슬러로서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이 전부다 (이는 캐시디 역시 '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언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랜디가 처하는 현실의 극적인 대비 측면을 위해 영화는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쇼(Show)'로만 알고 있는 프로 레슬링이 얼마나 많은 '현실' 속의 사람들의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성립되는지를 구 차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통 같으면 프로 레슬링의 링 뒷면에서는 서로 저렇게 미리 합을 짜고 스토리를 준비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정도였다면 초반 한 두 번 연관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을 텐데, '더 레슬러'에서는 이 부분은 랜디가 링에 오를 때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리 칼날을 숨겨 이마에 커트를 내고 사용할 무기들에 관해 미리 준비를 하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이렇게 치열한 경기를 치르고 링을 내려와 쇼의 뒷면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레슬러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라 하겠다.


보통 일반적 영화였다면 퇴물쯤 되는 랜디를 젊은 레슬러들이 그야말로 퇴물 취급하며 왕따 비슷하게 몰아갔을 테지만, 이것은 너무 극적인 요소만을 강조한 전개일 뿐, 현실성과 메시지를 중시하는 '더 레슬러'에서 젊은 레슬러들에게 랜디의 존재는 존경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링을 내려온 랜디에게 서로 등을 두드리며 나누는 '굉장했다' '죽여줬다' '영광이다' 등의 말 들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단순한 한 마디 이상의 대화인 것이다.





가장 쇼에 가까운 프로레슬러에게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또 하나의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더 레슬러'는 아로노스프키의 비전과 미키 루크라는 배우로 인해 현실과 영화를 교차하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 넣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카메라 워크라 하겠는데,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랜디의 뒤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킹과 굉장히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 인물과 카메라와의 거리는, 랜디의 삶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가장 훌륭한 영화적 선택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디테일 한 스토리보드 없이 랜디의 뒤를 따라간다는 기본 설정으로 대부분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랜디를 연기한 배우가 미키 루크라는 점에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랜디와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은 여러 모로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 속 랜디처럼 자신의 한계와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간(돌아온) 미키 루크의 열연은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실제로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잘 생긴 청춘 스타였던 미키 루크는 스스로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헐리웃에서 멀어져 전문 복서로서 수 년 간을 활동해 오기도 했던 그의 삶과 극 중 랜디의 삶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미키 루크 본인은 극 중 랜디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비슷해 처음에는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랜디처럼 미키 루크도 더 이상 이 같은 점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실제 미키 루크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소책자 중 김세윤 작가의 글 '피투성이 휴먼 드라마를 완성한 만신창이 배우의 인생'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립 바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는 캐시디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단순히 주인공 랜디의 로맨스 상대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랜디와 비슷하게 한계에 부딪혀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젊은 댄서들에 밀려서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 랜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랜디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이라기 보다는 랜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 용기를 얻고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이된 경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시디는 랜디가 스트립 바에 와서 돈을 주고 나체의 자신을 보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목숨을 걸고서라도 레슬링을 다시 하려고 하는 랜디가 안쓰러운 동시에 부럽기도 한 것이다.






랜디를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링 위 임을 깨닫고 20년 만에 열리는 기념 경기에 보수도 없이 참가하기로 한다. 링 위의 공간은 철저한 쇼의 무대이자 다른 한편으론 가장 치열한 랜디의 현실이기도 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상대 레슬러도 랜디의 상태가 걱정되어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지만 랜디는 결국 더 완벽한 쇼를 위해 마지막 기술인 '램 잼'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링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의 엔딩은 마치 한계와 맞서 싸우다가 산화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계를 뛰어 넘었거나 넘으려는 승리의 정서는 분명 아니었다. 랜디는 자신의 인생과 현실, 링을 돌아보며 한계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들인 채, 자신 만의 방법으로 마무리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디는 램 잼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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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에 우선한 소비자를 위한 타이틀


이미 자사 브랜드의 타이틀을 출시하기 전 부터 타 브랜드의 타이틀을 기획과 제작을 통해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을 만들어 내 블루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플레인 아카이브의 첫 번째 스틸북 타이틀인 '더 레슬러'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런 부담감에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우수한 퀄리티의 타이틀을 또 한 번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플레인에서 제작하는 타이틀 소책자에 글을 수록하며 참여했던 적이 있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번 '더 레슬러'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스틸북이라는 높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 밖에는 없는 프로젝트임에도 과감하게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고 출시를 결정한 것에 한 사람의 블루레이 유저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국내의 현재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이 같은 결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번에도 역시 단순히 타이틀을 구매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소장 하고 싶은 '가치' 있는 타이틀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번 '더 레슬러' 블루레이는 총 3가지의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과 스틸북 : 쿼터슬립 버전 그리고 일반판 : 아웃케이스 버전이 그것이다. 여기서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 위주로 소개를 하자면 덴마크에서 직수입한 고급 스틸북 케이스로 퀄리티를 보장하였으며, 제공되는 아웃케이스 역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쓰고 있는 고급 케이스로 스틸북과 소책자를 수납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40페이지에 달하는 소책자 역시 또 한 번 읽을 거리로 타이틀을 구매하는 재미와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틸북 특유의 디자인적 아름다움과 포스터 카드와 레슬링 카드 등의 부가 아이템도 좋았지만 읽을 거리가 풍성한 소책자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단순한 보도 자료를 옮겨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각 전문가들이 쓴 흥미로운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꼼꼼하게 읽어볼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더 레슬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키 루크에 관한 김세윤 방송작가의 글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줄 정도로 많은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글이어서 유익했고, 김세윤 작가와 함께 음성해설에도 참여하고 있는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의 글도, 작품 성격에 맞는 맞춤형 칼럼이라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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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노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의도에 따라 굉장히 거친 질감의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블랙 스완'이 특히 그랬고 이 작품 '더 레슬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작품은 본래 하나의 기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의도의 거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주인공의 등 뒤를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크는 거친 입자의 화질과 맞물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불안함과 무거움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런 의도를 생각한다면 감상에 지장을 줄 만큼의 걱정스런 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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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조차도 예전 극장에서 보았을 때 화질의 대한 기억과 아로노프스키의 의도적 거친 영상이라는, 이미 각인된 이미지가 있어서 더 좋지 않은 화질일 것이라고 선입관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었는데, 실제로 평가를 위해 살펴보니 대형 TV를 통해 본 편을 감상하기엔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디테일 한 평가를 위해 살펴보게 되면 전반적으로 어둡고 거친 영상 탓에 선명한 화질과는 분명 거리가 있고, 특히 PC환경을 통해 감상할 경우 이런 점이 더 도드라질 수 밖에는 없지만, 이는 블루레이 화질의 퀄리티 저하라기 보다는 본 편 자체의 영상이 그러한 것이므로, 화질의 기술적 평가와는 조금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실제 레슬링 경기 장의 소음과 링에서 벌어지는 경기 특유의 사운드 (링 바닥의 특성으로 인해 슬램 등이 이루어졌을 때 발생하는 소리들)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레슬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액션 영화로서 레슬링이라는 장르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경기 장면에서의 사운드는 제법 익사이팅 한 편이다. 대화 시퀀스가 많은 편인데 미키 루크의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으며, 마치 다큐멘터리 처럼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 전체의 객관적인 소리를 들려줄 때와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거리감을 두고 각각의 소리를 전달할 때 모두, 각자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블루레이 사운드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면 역시 앞서 언급했던 김세윤 영화전문 방송작가와 현역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가 참여한 음성 해설을 꼽을 수 있겠다. 처음 이 두 사람이 음성 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여 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아무래도 감독이나 배우 등 직접 작품에 참여한 이가 아닌 제 3자가 참여하는 음성 해설은 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 3자의 음성 해설의 경우 정성일 씨가 참여한 음성 해설만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흥미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뒷 이야기를 김세윤 작가가 전하고, 김남훈 선수는 실제 레슬러로서 바라본 시각을 통해 일반 관객이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내는 등 두 사람의 호흡이 제법 괜찮아 듣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남훈 해설위원은 마치 WWE 방송을 해설할 때 처럼 극 중 랜디의 경기를 디테일 한 기술 명 등과 함께 해설하는 해설 본능이 나오기도 해 WWE를 시청하는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웃음 짓게 되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다른 부가 영상으로는 약 43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 '링 안에서'가 수록되었는데, 몇 가지 제작 및 촬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레슬러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하고 일단 전국의 독립 리그들을 찾아 다녔는데, 거기서 감독의 어린 시절 영웅들이 아직도 1~2백 명의 관객 앞에서 백 달러를 벌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이 링 위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저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영화 속 경기 장면들을 따로 만들어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실제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방문하여 이를 배경으로 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극 중 등장하는 경기는 모두 실제 경기와 실제 선수들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영화는 단순히 카메라 워크의 측면 뿐 아니라 실제 촬영 및 제작 방식도 그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스토리보드가 있으면 배우들의 연기가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해 스토리보드 없이 배우들에게 상황만 주어주는 형태도 진행했으며, 레슬링 장면과 마찬가지로 마트 장면 역시 배우와 실제 손님들이 섞여 있는 채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짜여 진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담으려 하다 보니 배우들은 물론 스텝들조차도 현재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헤 깔릴 정도였고, 실제 본편에도 실수를 한 장면이 그대로 수록되기도 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마치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제작 과정 영상과 본 편 장면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기도 했다. 부가영상의 말미엔 극 중 출연하고 있는 실제 레슬러 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레슬링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와 사연들을 통해,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실제 이야기와 그들이 레슬링을 대하는 태도를 만나볼 수 있어 영화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부른 'The Wrestler'의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었다.



[총평]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는 그의 영화적 비전과 관심사를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였으며, 미키 루크라는 왕년의 스타의 스크린 밖 실제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어 더 깊은 인상과 감회에 젖어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깊은 여운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소장가치 높은 블루레이 타이틀의 출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서 영화 팬으로서 행복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패키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 한 편으론 '더 레슬러'라는 영화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 정도의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치를 정성스레 고이 담아내는 멋진 타이틀들을 국내에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정리한 뒤 뒤늦게 비보로 접한, 어린 시절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WWF 최고의 레슬러 얼티밋 워리어를 추억하며. 부디 편히 잠들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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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낭만적인 스토리텔링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모두 다 좋아하지만 (특히 최근작들) 글로 쓰려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역시 마찬가지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 이유는, 생각하고 토론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즐기는 형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세계관 만큼이나 확고하고 뚜렷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그의 인물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옷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도 웨스 앤더슨 세상 속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고, 말을 해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번 신작 역시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를 살짝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무엇보다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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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기 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한 작품이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간혹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다루기도 하고,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한참을 할애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다거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그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애정을 담아 보내는 한 편의 그림 엽서처럼 느껴진다 (그림 엽서 라는 점이 중요하다 ㅎ). 그렇기 때문에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 같이 괴팍하거나 이상한 것처럼 겉으론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일 뿐이지 모두들 본인들에게 충실하고 맡은 일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은 각각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얼마나 아름다울 정도로 귀여운지를 자신 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통해 최대한 펼쳐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다양한 색감은 물론, 이야기가 달라질 때마다 변하는 화면비를 통해 각각 이야기마다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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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덜한 편이었는데 (그 좋아하는 '문라이즈 킹덤'도 의외로 자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덜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런 면에서 여운과 낭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채플린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극 중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구스타브 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애잔함과 낭만, 애틋함 마저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이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느껴진 것도 이야기의 주인공인 구스타브 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라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부분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구스타브의 그 모습과 미소가 계속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이 영화를 기억하고 아마도 추억하게 될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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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타셈 싱의 '더 폴 (The Fall, 2006)'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장되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 듯 했지만, 왠일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낭만적인 영화. 웨스 앤더슨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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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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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dier, 2014)

리더의 조건



어벤져스의 일원이자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가 그의 두 번째 이야기 '윈터솔져'로 돌아왔다. '아이언맨' 시리즈와 토르 1,2편을 통해 어벤져스의 세계관을 점점 확장 및 연결시켜가고 있는 마블은, 또 다른 같은 세계관의 작품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2014)'를 선보이기 전에 먼저 캡틴 아메리카의 속편을 꺼내 들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토르 : 다크월드'는 독립적인 작품으로서는 아쉬운 작품이 많았던 것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는 단순한 세계관의 연장선을 넘어서 독립적으로도 제법 훌륭한 구성과 이야기를 갖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 리더이지만 가장 심심하게 느껴졌던 캡틴, 스티브 로저스 라는 캐릭터에게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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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를 통해 캡틴은 말 그대로 이 엄청난 히어로들의 조합 가운데 서도 리더라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 이들은 각각의 개성이 워낙 강하고 또한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빠지지 않는 유치한 질문처럼 슈퍼 솔져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을 리드 하기엔 능력 측면에서는 부족하기에 다른 장점과 리더 쉽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전작 '캡틴 아메리카'는 스티브 브루스의 도덕성에 대해 그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주목했고, '어벤져스'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슈퍼 영웅들의 리더가 누구인지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선보인 이 작품 '윈터솔져'는 바로 이런 점에서 왜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의 진정한 리더인 지를 관객들에게 각인 시키려는 시도가 담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엔 의외로(?) 다른 슈퍼 영웅들이 까메로오도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블랙 위도우만 빼고), 쉴드라는 조직에 관한 광범위한 이야기를 통해 이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리더 쉽에 대해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로 풀어낸다. 그리고 캡틴은 또 한 번 우직하지만 자신 만의 일관된 방식으로 이 사건을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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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캐릭터이자 이번 작품의 가장 강력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윈터솔져의 경우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그 비밀이라는 것도 1차적으로는 전작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발전되었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즉,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들의 경우 그 세계관 내에서 자유롭게 다른 캐릭터들 혹은 시공간을 활용하는 편인데, 이런 점이 가끔은 너무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라 그 작품 만으로는 100% 즐기기 힘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점에서, 전작에 기인한 미스터리의 발전은 '어벤져스'와는 또 구분되는 '캡틴 아메리카'만의 프랜차이즈를 확고히 하는 매력 포인트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참 영리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세계관의 떡밥은 적절히 활용하고 쿠키 장면들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을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과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고, 독립적으로 보아도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펼쳐내면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와 긴장감도 충분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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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측면에서도 다른 영웅들에 비해 인간적(?)이기 때문에 몸을 활용한 격투가 기본이라 더 박진감 넘치고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액션의 합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으며, 이 시리즈가 자랑하는 스케일의 측면에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충족 시켜 주고 있어 볼거리도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다. 확실히 '어벤져스'의 각 캐릭터들은 너무 세계관의 연결에만 기대는 것 보다는 홀로 서도 매력을 갖게 될 때 비로서 추후 '어벤져스 2'가 등장했을 때 더 큰 기대와 매력을 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이번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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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액션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해적은 반가운 얼굴이더군요. 심지어 극 중 이름도 비슷한 GSP. 슈퍼맨 펀치도 등장하고. 추후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하고. 까메오 수준으론 비중이 제법 크더군요.


2. 아, 그리고 스탠 리 옹은 갈 수록 연기도 비중도 늘어나는 듯. 이 얘기를 새 마블 작품이 나올 때 마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3. 이 시리즈의 단점이라면 누가 극 중에 죽어도 별로 슬프거나 걱정을 하게 되지 않는 다는 점인듯. 그래도 진짜 인 줄로만 알았던 콜슨 사건 이후엔 더더욱.


4. 초반 캡틴이 놓치지 말아야 할 근래의 것들을 리스팅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노트에 'OLDBOY'도 적혀 있더군요. 그 올드보이 일까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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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Noah, 2014)

새로운 시작을 위한 어떤 죽음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된 바가 명확히 있었다. 달리 말해 아로노프스키가 노아의 방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2012'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건 아마 그의 전작들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들을 통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의 육체에 관한 퇴화 혹은 불안정함, 불안함으로 인한 그 육체를 소유한 이들의 정신 착란에 가까운 고통과 혼란을 주목해 왔었다. 그런 시도는 예전부터 그랬고, 최근 작품인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었다. 신작 '노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아'는 자신의 뿌리와 주어진 사명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 놓여버린 주인공 노아의 지독한 심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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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낯선 영화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 종교적인 영화를 기대한 이들도 마찬가지. 또한 이 영화의 구성은 마치 슈퍼 히어로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방주가 완성되고 재난이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여기까지는 구약 성서에 나온 내용과 큰 줄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고 들자면 다른 측면이 많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방주에 타기 전까지는 크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출신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는다. 즉, 카인의 후예들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한 죄로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벌이 내려졌고, 아담의 셋째 아들이었던 셋은 태초의 주의 뜻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고 그의 후예인 노아와 그의 가족 역시 이 뜻을 받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카인의 자손인 두발가인은 무기를 만들고 자연을 파괴하려는 (생존을 위해) 이로 , 셋의 후예인 노아는 꽃을 꺽는 아들을 나무라는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 공생하려는, 즉 명확한 선과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우 이 둘 간의 대립을 그리기 위함이지만, 아로노프스키의 의도는 오히려 선으로 묘사된 노아가 그렇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과 트라우마를 묘사하기 위한 사전 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대의 의미로 두발가인 역시 명확한 악당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노아가 스스로 원칙에 얽매이고 갈등을 겪게 되면서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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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노아는 일종의 선택 받은 자다. 하지만 노아가 받은 선택은 은혜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신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재난에서 무고한 동물들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노아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념 때문 만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의 뿌리, 셋의 후예라는 이유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셋의 후예로서도 자신의 신념과도 일치했던 이 임무 수행이 나중에 가서는 신념은 물론, 자신이 세운(부여 받은) 원칙과도 상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아로노프스키의 비전대로 나아간다.


남여 혹은 수컷과 암컷 한 쌍으로만 가능한 방주를 두고 노아는 자신의 자식 가운데 짝이 없는 함의 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라와 짝을 이루고 있는 셈의 짝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순간 자신 역시 스스로 이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책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더 발전하여, 결국 이 재난을 주신 이유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 본인을 포함한 자신의 가족 모두도 구원 받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인해 노아는 가족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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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므두셀라의 은혜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일라가 임신하자 이 아이들이 종족번식을 할 수 있는 딸일 경우 바로 죽이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는 노아와 가족들을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묘사되는 노아의 모습은 앞서 등장한, 악으로 묘사되는 두발가인 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가 이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 선한 사람이 악한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블랙 스완'의 니나 처럼 강박에 사로 잡혀 육체에 대한 제어 능력을 상실해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노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후반부의 직접적인 안스러운 모습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측은하고 동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가 방주를 만들고 이 재난을 겪게 되는 과정을 시작부터 보면,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며 후에 가서는 정말 도구로 사용되는 것 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제어 기능, 혹은 자존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나뉜다. 임무를 부여 받고 원칙대로 행하던 자신감 넘치는 노아와 스스로가 그 원칙의 아이러니 혹은 모순에 혼란을 겪으며 정신착란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겪는 노아,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임무가 완료된 뒤 본인의 육체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무기력한 노아, 이렇게 각기 다른 세 가지 상태의 노아로 나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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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방향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냥 철저하게 이 임무를 위해 도구로 활용되고 한 개인으로서는 버려지다시피 피폐해진 노아의 모습으로 쓸쓸히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아로노프스키의 생각은 더 깊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거대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철저히 희생되어야만 했던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구약 성서의 너무도 유명한 텍스트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한 파트를 극대화시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바로 본인들이 믿고 있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 분이 이 영화를 자신을 모독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속 좁게 생각하실지 말이다.



1.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판타지적 요소도 제법 자연스러웠어요.

2. 대홍수(?)라는 재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데미갓 퍼시잭슨을 연기했던 로건 레만이라는 점도 ㅎ

3. 개인적으론 의외로(?) 노아의 극 중 고뇌가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어요. 이런 운명에 놓여버렸다면 아마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더 레슬러 _ 블루레이 스틸북 (아웃케이스 버전)

The Wrestler : Blu-ray



오랜만에 올려 보는 블루레이 오픈 케이스. 그 만큼 그동안은 특별히 소장가치를 느낄 만한 패키지가 많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오늘 소개할 블루레이는 플레인 아카이브 (Plain archive)에서 발매한 '더 레슬러' 블루레이 스틸북이다. 이번 '더 레슬러' 블루레이는 총 3개의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내가 구매한 스틸북 아웃케이스 버전과 스틸북 쿼터슬립 버전 그리고 일반판 아웃케이스 버전으로 나뉘어져있다. 항상 좋은 작품 만큼이나 소장하는 맛, 소장 가치를 중요시하는 플레인 타이틀답게 이번에도 선물 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패키지였다.





아웃케이스에 붙어있는 플레인 아카이브 독점 스티커. 개인적으로 아웃케이스의 비닐 커버는 잘 살려서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이 스티커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총 2,000장의 한정판으로 출시된 스틸북 아웃케이스 버전답게 넘버링도 잘 표기되어 있다.





스틸북 아웃케이스 버전은 종이로 된 아웃케이스 내에 스틸북과 소책자가 함께 수록되었는데, 딱 맞는 크기로 수납과 꺼냄에 큰 불편이 없다.





보기만해도 풍성함이 느껴지는 구성!





스틸북은 덴마크에서 직수입 된 고급 케이스인데 그 특유의 질감은 물론 영화 자체의 질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운 커버였다.





아... 역시 스틸북의 매력은 이 각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스틸북 내부에는 본편과 서플을 담은 블루레이 디스크와 미니사이즈 포스터카드 그리고 총 3장의 카드가 수록되었다.






카드 세 장 중 두 장은 어린 시절 WWF 때를 떠올리게 하는 레슬링 카드가 수록되었고 1장은 영화 카렌다 카드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영화 내 외적으로 유용한 읽을 거리들이 담겨 있는 소책자. 플레인은 예전부터 이런 소책자에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왔었는데 (개인적으로도 필자로 참여하기도 했었고) 이번 '더 레슬러'에 수록된 소책자 역시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오랜 만에 구매의 즐거움과 소장 가치를 한 껏 느낄 수 있었던 만족스런 패키지였다.

앞으로도 플레인 아카이브 흥하길!



플레인 아카이브 홈페이지 - http://www.plains.co.kr/index.html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3)

한 남자의 어떤 변화



아카데미를 수상한 매튜 매커너히와 자레드 레토 주연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예상 외로 조금은 덤덤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조금은 더 극적일 거라는 예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과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그리고 주조연을 맡은 두 배우가 각종 연기상을 휩쓸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영화는 덤덤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포인트를 일부러 끌어오지 않았으며, 시한부의 삶을 그릴 때 흔히 다루게 되는 경계에 대한 공포와 넘나 듬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며, 연기 역시 더 메소드 연기를 펼쳤더라도 부족함이 없었을 텐데 생각보단 훨씬 절제 된 연기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더 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달까.




ⓒ Voltag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시한부의 삶과 에이즈라는 질병과 이를 둘러싼 FDA와 병을 얻은 이들과의 사투, 그리고 성정체성의 관한 소재 등 영화로서 매력적인 소재들이 여럿 담겨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어떤 소재도 끝까지 전력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특히 이 소재들을 다뤘던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 편으론 조금 심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줄기의 이야기를 따르기 보다는 작은 범위, 하지만 이 모든 소재들을 온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한 남자의 작은 변화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영화가 관객을 별로 설득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주인공 론 우드루프 (매튜 매커너히)처럼 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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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론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이 영화가 훨씬 전에 나왔더라면 조금은 다른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캐릭터의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더 치닫을 수 있었을 것이고, 전형적인 마초이자 카우보이였던 우드푸르가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도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테고, FDA와 벌이는 사회적인 이슈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쭉 늘어놓고 보니 더 확연해 졌듯이 이 각각의 소재 들은 이미 너무 많이 영화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이젠 제법 익숙해진 소재이기도 하다. 즉, 실화라는 강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이런 절제와 덤덤함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레이언 (자레드 레토)의 이야기는 더 슬퍼할 시간을 줘도 될 것 같으나 그러지 않고, 우드루프의 법정 싸움은 더 치열해도 좋았을 테지만 거기서 멈추며, 그가 겪어야 했던 시한부라는 특수한 상황도 과장되어 묘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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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깊이를 표현해 낸 일등 공신은 역시 배우들이라고 해야겠다. 매튜 매커너히는 기존 까지의 자신을 지운 듯한 연기로 더 넓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개인적으론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의 연기가 더 좋다), 자레드 레토도 한 편으론 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담스럽지 않게 연기해 냈다.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배우는 이 둘이 아니라 제니퍼 가너였다. 드라마 '앨리어스' 때부터 조금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터라 그랬는지 몰라도, 이 파란만장한 인생에 놓여있는 두 남자 (혹은 한 남자와 여자)를 말 없이 바라봐주는 눈빛 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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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스스로 견디지 못함의 대한 울림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때문도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때문도 아닌 오로지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극 중 모습이 커다랗게 담긴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이 포스터는 뭐랄까,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좋아해 오다가 '더 헌트'에 와서 비로소 애정을 고백하게 되었던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120% 발산하고 있는 이미지였기에, 아마도 이런 단계로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 팬들이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그런 포스터였다.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솔직히 포스터의 비주얼에 압도 당해 보게 된 영화였지만 내용은 그 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고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정의'라는 거대한 뜻에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 Les Films d'Ici. All rights reserved


말을 판매하는 미하엘 콜하스는 매일 말을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지나던 다리에 통행세를 내라는 남작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일단 말 두 마리를 맡기고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말을 돌려 받으러 가보니 윤기가 흐르던 두 건강한 말을 다치고 더러워진 상태였으며, 이를 찾으러 갔던 하인 역시 공격을 받아 다치고 만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미하엘 콜하스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려 하지만 공작이 손을 쓴 탓에 전해지지 않자 직접 공주에게 이를 전하려 하는데, 대신 전하려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아내를 잃는 과정의 묘사는 물론, 그 이후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 역시 훨씬 더 디테일하고 극적인 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기 보다는 일부러 디테일을 걷어낸 듯 한 느낌이다.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통쾌하지 않고, 어느새 반란군이 되어 버린 그의 일당이 조직되는 과정이나 여정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부당한 것과 그것의 해결 혹은 극복에 포인트가 있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 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되묻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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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우스게 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게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미하엘 콜하스가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피해가거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극 중 묘사되는 모습으로 미뤄보면 미하엘 콜하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겪으며 했던 선택들은 조금은 날이 선,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의의를 두거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만약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 했다면 아내를 잃게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되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그렇담 과연 '융통성'이라는 건 '정의'라는 것을 논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인가 라는 의문도 더불어 갖게 되었다. '그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다'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무엇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인데 (최근 본 '노예 12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 제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한 답을 관객이 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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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극장을 나오며 했던 '융통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답하자면, 영화 속 시대를 배경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상황이었다면 그가 융통성을 부려 두 필의 말을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그냥 넘겼다 하더라도, 결코 평탄한 삶을 영유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조금은 비겁한 융통성의 결론인데, 어차피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계산에 그렇다면 좀 더 (상대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행하는 것이 나은 것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중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계산적이거나 비겁하지 않았던 건, 그 스스로가 계산을 통해 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삶은 정의로운 영웅의 삶이라기 보다는, 정의로울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적인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내적 갈등과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 '마음', 양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그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견디는 것은 아닐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함에 대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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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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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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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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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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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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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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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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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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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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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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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드라마 콘서트

드라마의 여운을 마무리하는 콘서트



지난 번 관련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로지 응칠 때문에 처음부터 오히려 관심을 덜 갖게 되었던 응답하라 1994는 결국, 응칠 보다도 더 좋아하게 된 작품이 되어버렸다. 드라마가 끝나고 하루하루를 OST와 관련 소식 들을 접하는 것으로 연명하던 중, 드라마 콘서트 라는 형식의 공연이 준비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이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2월 15일 토요일. 그 날은 왔고, 저녁 8시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흥분과 두근거림은 물론, 무언가 뭉클함 마저 가득 찬 그런 공간과 시간이었다.




토요일 하루 에만 총 2회 공연으로 진행된 이번 콘서트 가운데 8시 저녁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공연을 기다리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일단은 쓰레기, 나정이, 윤진이, 삼천포 등 주연 배우들이라기 보다 캐릭터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극 중 삽입되었던 90년대 히트곡들을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스타들을 오랜만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들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는 최근 가수 활동을 거의 하고 있지 않은 김민종과 아예 연예계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손지창이 정말 오랜 만에 선보이는 '더 블루'의 무대가 가장 기다려 질 수 밖에는 없었다 (손지창이라니!). 그리고 내 90년대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인 015B와 솔리드 김조한의 무대도 기대가 가득했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공연은, 의외로 첫 순서부터 나정이 역할을 맡은 고아라의 '시작' 무대를 통해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새도 없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드라마 콘서트에서 가장 돋보였던 이는 바로 고아라 였다. 박기영의 '시작' 라이브를 시작으로, 김혜림의 '날 위한 이별' 그리고 마지막 앵콜곡으로 정우와 함께 선보인 '사랑보다 깊은 상처'까지. 기성 가수 못지 않은 가창력으로 듣는 재미를 가득 보여주었다. 고아라의 첫 무대가 끝나자마자 바로 도희와 김성균이 함께 하는 '운명' 무대가 이어졌는데, 단순히 드라마 OST를 직접 듣는 쾌감 뿐만 아니라 극 중 캐릭터들이 직접 들려주는 무대라 더 뜻 깊은 시간일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이번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윤종신의 '환생' 무대 이후 4명의 배우들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토크 시간이 있었는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배우들 역시 쓰레기로서 나정이로서 함께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무대여서 인지, 시종일관 행복하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이는 분위기였다 (슬퍼 보이는 건 나중에 자세히..)





토크 중간에는 정우가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열창하는 무대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콘서트 장은 거의 정우 팬미팅 현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과 외침들이 여기저기서 ㅎㅎ 응사 팬 분들만 모여있는 자리여서 인지 아직도 쓰레기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이후 진행된 무대들은 사실 응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기 보다는 90년대와 90년대 우리 곁을 떠난 뮤지션들을 추억하는 자리였는데, 사실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터라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김광석과 서지원의 곡을 만나볼 수 있어 더 애잔 했던 자리였다. 김광석의 '그날들'과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모두 홍대광을 통해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내 눈물 모아'의 무대는 90년대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절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무대라 더 짠한 시간이었다.





이후 하이디의 '가질 수 없는 너' 무대가 끝난 뒤, 공일오비 등장! 하이디와 함께 '슬픈 인연'을 노래한 뒤 본격적으로 '아주 오래된 연인들'과 '신인류의 사랑' 무대가 이어졌다. 정말 당시 끼고 살다시피 했던 앨범의 곡들이라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었는데, 이 공연장의 관객 대부분이 나와 같다는 점이 이 공연만의 특징이랄까 ㅎ 정말 90년대 당시 라디오 공개 방송에 온 듯한 느낌이 충만했다. 이후 윤종신과 함께 한 '친구와 연인'으로 무대는 달아오를 때 까지 달아올랐는데, 이를 잠시 진정 시키는 동시에 주목하게 만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솔리드의 김조한이었다. 그리고 그의 첫 곡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밤의 끝을 잡고'





R&B 대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기교를 활용해 애드립의 꽈배기를 하늘 끝까지 펼쳤고, 이 후 솔리드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댄스곡 '천생연분'을 통해 극 중에도 등장하는 클럽 '스페이스'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 김조한의 무대가 끝나고 바로 이어서 DJ MIX무대가 계속되었는데, 보통 이렇게 가수들이 등장하지 않고 댄서와 음악만 함께 하는 무대는 좀 심심하기 마련이나, 스페이스와 90년대 히트곡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객석은 당최 쉴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R.ef의 '이별공식'과 박진영의 '날 떠나지마'에 이어 도희가 멤버로 있는 타이니지의 등장과 함께 흘러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와 '마지막 축제'. 어렸을 때 소풍이나 축제 등에서 춤추며 불렀던 기억이 선명한 곡이라 안무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 몸이 안무를 기억해~).




이후 이번 공연의 마지막이라는 멘트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할 가수로 등장한 이는 바로 김민종. '하늘 아래서'와 '나를 찾아서'에 이어 드디어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다렸던 더 블루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대여~'라고 시작하는  '그대와 함께'의 첫 소설 만으로 이미 아드레날린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두 번째 소절에서 손지창이 등장할 땐 평화의 전당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쏟아졌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기로 확정된 이후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5kg나 다이어트를 했다는 손지창은, (조금 거짓말을 보태서) 당시와 큰 차이가 없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같은 반 친구와 손지창, 김민종 역을 나눠 맡으며 '그대와 함께'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는 동시에, 진정 90년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넘는 공연은 막을 내렸고, 아직 응답하라 1994를 떠나보낼 수 없는 관객들은 앵콜을 외쳤으며 그 앵콜에 응답한 것은 쓰레기와 나정이 커플이었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불렀는데 노래 보다도 감동적이었던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극 중 포옹 장면을 그대로 재연했는데, 이거야 말로 이번 콘서트 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실제 + 캐릭터 + 감동 이 맞물린 정점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아래 제공 사진과는 달리 정우는 극 중 쓰레기가 입었던 최강의대 티셔츠를 입고 나와 그 감동이 더했다.






그렇게 배우들도 울고 관객들도 울었던 응답하라 1994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콘서트가 응답하라 1994의 공식적인 마지막 행사였기에 관객들은 물론, 참여한 배우들 역시 자신이 한동안 빠져있던 캐릭터들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모습이었다. 반대로 이제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배우들도 눈시울이 붉어진 장면들이 많았다.


사실 이 글의 제목도 그렇고 깊었던 드라마의 여운을 잘 마무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했으나, 결론적으로 더 깊은 여운이 남게 되어버린 어쩔 수 없는 공연이었다. 아.. 1990년대는 참 그렇다.

결국 여운을 주체 못하고 바로 처음 1화부터 다시 보기 시작!



1. 이런 좋은 자리 마련해주신 CJ E&M 관계자 분들 감사드려요~

2. 앞으로도 이렇게 드라마와 팬들이 직접 만나는 문화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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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캅 (RoboCop, 2014)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



영화를 선택할 때도 선입관이라는 것은 무섭게 작용한다. 처음 폴 버호벤의 '로보캅'이 리메이크 된다는 얘기를 듣고, 검은 색의 날렵한 수트를 입은 새로운 로보캅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아, 이건 액션이 중심이 된 영화가 되겠구나' 싶었다. 흔한 국내 포스터의 홍보 문구를 흉내 내 보자면 '더 빠르고, 강한 놈이 온다!' 뭐 이런 식의, 액션 중심으로 좀 더 세련되진 영화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조세 파디야 감독의 '로보캅'은 어쩌면 액션과 철학 가운데서 줄 다리기를 하던 폴 버호벤 보다도 더 로보캅이라는 존재의 태생적 고민을 담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즉,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에 관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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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조세 파디야의 '로보캅'은 액션이 아주 드문 편이다. 로보캅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액션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을 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일 텐데, 내용적으로도 액션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깝고, 몇 안되는 액션 장면도 연출을 논하자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더 큰 지점은 액션의 비중이 아니라 로보캅(머피)을 영화가 다루는 방식과 비중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로보캅을 다루는 방식은 영웅이자 주인공으로서 다룬 다기 보다, 오히려 그 로보캅을 둘러 쌓고 있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철학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즉, 나쁘게 이야기하면 극 중 로보캅이 감정을 제어 당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가 로보캅을 활용하는 방식은 그 주변의 이야기를 하는데 도구로 사용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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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데넷 노튼 박사와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옴니코프 회장 셀라스를 내세우는 한 편, 로봇 경찰과 관련된 법안을 두고 벌이는 사회적인 반대 의견에 더 주목한다. 사실 이 영화가 모호해 지는 것은 명확한 선악 구조가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인데, 오히려 캐릭터의 관계를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의 이해관계로 묘사하려 한 방식이 그 가운데 놓인 로보캅과 머피라는 존재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다. 영화는 초반 머피가 로보캅으로서의 자신을 처음 인지하는 장면에서, 사실상 뇌 말고는 아무 것도 본래의 것이 남아있지 않은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이전과 달리 머피의 고통이 실제로 느껴져 더욱 끔찍한 장면이었다), 이는 영화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주제, 즉 로보캅과 머피의 경계 혹은 로보캅에서 머피가 차지하는 비중, 서로의 지배 관계 등에 대해 관객들로 하여금 있는 한 번 쯤 제로의 상태에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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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L. 잭슨이 연기한 팻 노박 캐릭터를 상당한 비중으로 내세운 것도 그렇고, 확실히 이 영화는 머피의 개인적인 고뇌에 집중하기 보다는, '로보캅'이라는 존재를 두고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의견으로 나뉘는 지에 대한 논의를 던지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마지막 팻 노박이 던지는 말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이 작품이 새로운 리부트의 시작으로서 추후 속편이 나올 수 있다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로보캅'의 시작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인 동시에, 만약 이 것이 한 편으로 끝난다면 아직 로보캅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것이 몹시 안타까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마지막에서 오리지널의 복귀와 속편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은 적지 않게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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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제가 '로보캅'의 메인 테마음악을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첫 소절만 들어도 소름이~


2. 영웅에 대한 대사를 주고 받다가 카메라가 '매덕스' 역할을 맡은 잭키 얼 헤일리를 비추는 장면은 나름 흥미로웠어요. 아무래도 그가 로어셰크 이다보니 ㅎ


3. 확실히 예전 '로보캅'에 비하면 머피의 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이번 작품에서는 그럴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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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엑스칼리버 (Excalibur, 1981)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매해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오랜 만에 함께 했다. 이번 주말 보았던 작품은 존 부어맨의 1981년 작 '엑스칼리버 (Excalibur, 1981)'였는데, 변영주 감독의 추천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이 영화를 언제 어떻게 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 홈비디오를 통해서 보았을 것이다. 내게 '엑스칼리버'라는 영화는 안개와 황금 갑옷의 이미지로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작품이었다. 아더왕과 엑스칼리버의 전설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니 대략적인 줄거리는 기억이 났었지만, 구체적인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 등은 잘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황금 갑옷,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황금으로 된 투구가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 보았을 텐데, 그 어린 기억에도 황금으로 된 갑옷과 투구는 강렬한 충격이라 깊이 각인 되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엑스칼리버'를 스크린으로 처음 보게 되었다. 그 것도 새롭게 DCP를 거친 좋은 화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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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보게 된 '엑스칼리버'는 세월이 흘러서 인지 조금은 유치하고 (특히 연기는 많이 들 어색하고), 과장된 측면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상당히 과감하고 강렬한 작품이기도 했다. 가끔 예전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놀라움은 컷의 전환이나 시간의 경과, 장소의 변화 등을 처리할 때 상당히 과감하면서도 인상적인 방식들로 처리해 버린 다는 점인데, 이 작품에서 역시 그런 장면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다. 이런 점은 한 편으론 '저렇게 그냥 무시해 버리나?' 싶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땐 '단순히 저것 만으로 모든 것의 변화를 설명해 내다니!'라는 감탄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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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는 역시 빛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의 갑옷 이미지였다. 좋은 화질과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였는지 몰라도, 더욱 더 눈 부신 갑옷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빛나는 것 만이 아니라, 이 갑옷을 일종의 거울 삼아 표현해 내고 있는 방식이었는데, 분명 그 장면에서는 인물의 상대편에 그런 빛을 내는 환경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묘한 색의 빛을 갑옷을 통해 투영 시키는 방식은, 이 영화 전체에 드리워진 신화 적인 분위기를 더 고조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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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엑스칼리버'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는 오로지 황금 갑옷이었기에 그의 등장을 영화 내내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는데, 어린 시절의 인상이 워낙 깊었던 탓인지 그 기대보다는 조금 덜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확실히 기억은 조작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고, 이 영화를 처음 보던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던 추가적인 아더왕 전설의 소스들이 더해져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지금은 중년을 넘긴 배우들의 풋풋한 데뷔 시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 헬렌 미렌과 리암 니슨, 가브리엘 번 그리고 패트릭 스튜어트의 젊은 시절 모습은 보는 것 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다들 생각보다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도 재미있었다. 영화 정보를 보면 시아란 힌즈도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DVD로 볼 때 다시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은 이 영화를 소개해주신 변영주 감독과 GV에 함께 참여했던 허지웅씨 사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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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Fruitvale Station, 2013)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 조차 몰랐으나, 이런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9년 1월 1일 새벽, 캘리포니아주의 프루트베일 역에서 벌어졌던 비극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오스카 그랜트의 하루를 아무말 없이 따라간다.



ⓒ Forest Whitaker's Significan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원제가 단순히 '프루트베일 역 (Fruitvale Station)' 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오스카 그랜트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에 힘쓴다. 가정적이고자 하고 새출발 하려고 했던 그의 긍정적인 모습도, 교도소 생활을 했던 그의 부정적인 모습도 모두 최대한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당시 이 사건은 실제로 흑인사회에서 엄청난 반발과 시위로 이어졌을 만큼 감정적일 수 밖에는 없는 사건이었는데, 영화는 여기에 감정을 더 하는 대신 오히려 최대한 건조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담는 것으로 오스카 그랜트가 겪었던 비극을 관객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 낸다.


나는 이 영화가 영화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오스카 그랜트라는 인물과 사건을 겪기 전까지 그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건이 이후 냉정함을 갖는 것은 오히려 어려울 수 있는데, 영화는 사건 직후 아직 관객들이 황당함과 분노, 떨림이 다 식기도 전에 실제 인물들의 뒷 얘기와 오스카의 어린 딸의 모습을 짧게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선동도 감정적 장치도 없지만, 그 어떤 선동보다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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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영화는 어떠한 해답을 주기 보다는 관객에게 그 몫을 돌리고 있다. 누군가가 또 오스카 그랜트와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오스카는 어떤 연유로 인해 비극을 겪게 된 것이 아니기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아직도 존재하는 미국 사회의 실제를 아주 덤덤하게, 하지만 실제론 너무 쓰라린 하루였다.



1.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 영화 제목인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괜찮은 제목이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의 비해 '충격적 실화' 등의 홍보 문구는 영화와는 다르게 자극적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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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화 제작 환경, 어디까지가 영화라는 것의 경계선일까?


아주 예전에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사이버 가수들끼리 TV에 나와 차트 1위를 다투고, 드라마 주인공들도 전부 사이버 캐릭터들이 맡게 되는 것 아닐까?"


이러한 궁금증 혹은 예상은 이 후 1999년 당시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파이널 판타지 8'의 주제곡 'Eyes on me' 뮤비를 보고 난 뒤 점점 더 가능성에 힘을 싣게 되었고, 이 후 역시 2001년 개봉한 극장 판 'Final Fantasy : The Spirits Within'을 보고 난 뒤 구체적으로 '아, 그런 세상이 곧 오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수 년 후 그린 스크린 촬영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모션 픽쳐 기술이 활용된 영화들을 통해 이 같은 우려 혹은 기대는 점점 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화 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누가 뭐래도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였으며 그 중에서도 '골룸'이라는 CG 캐릭터가 있었다.




▲ 앤디 서키스가 연기한 골룸은 모션 픽쳐 역사에 길이 남을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한참 '반지의 제왕'이 성공을 거두고 '골룸'이라는 모션 캡쳐 CG캐릭터가 주목 받을 무렵,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골룸을 연기한 앤디 서키스(그는 잘 알려졌다시피 '킹콩' 역시 같은 방식으로 연기했다)라는 특별한 배우의 면면까지 주목 받고 인정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버가수 아담이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질문들이 터져나왔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골룸'의 경우는 아담이나 '파이널 판타지'의 경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골룸'은 CG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의 '연기력'이 뒷 받침 되어 있는, 일종의 인간미가 직접적으로 투영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 혹은 '킹콩'의 DVD나 블루레이의 수록된 부가 영상을 감상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앤디 서키스는 이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 언젠가는 기술상이 아닌 연기상을 받아도 수긍이 될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고 그 연기는 단순할 수 있었던 CG캐릭터에 혼을 불어 넣는 결과를 낳았기에, 이를 인간미 없는 CG캐릭터들만의 세상에 관한 논의에 논제로 포함 시키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사이버 가수 아담이나 골룸에 관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연기라는 것, 더 나아가 영화라는 것에 대한 경계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그 골룸을 탄생 시켰던 피터 잭슨의 '호빗'을 보며 - 정확히는 '호빗' 블루레이의 제작 과정을 담은 부가 영상를 보며 - 또 한 번 발생하였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되었다.




▲ "음...그 땐 정말 너무 막막해서 울기까지 했을 정도였어요"


워낙 긴 시간 탓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기 시작한 '호빗 : 뜻밖의 여정'의 블루레이 부가 영상을 보던 중, 뭔가 복잡한 이유로 주목할 수 밖에는 없었던 영상이 있었다. 바로 간달프 역할을 맡았던 이언 맥켈런 경이 골목쟁이네 빌보의 집 세트 촬영을 하던 중에 벌어진 에피소드였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호빗'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인 줄로만 알았으나, 보면 볼수록 이 부가 영상은 기술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사람의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부가 영상에서는 골목쟁이집에서 드워프들과 간달프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 현장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제는 바로 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실제로는 각각 촬영되었다는 점에 있었다.


'반지의 제왕' 부가 영상을 본 이들이라면 알 수 있듯이, '반지의 제왕'에서는 실제로 배우들 간의 키 차이는 크지 않지만 캐릭터 상으로는 서로 키 차이가 많이 나는 호빗과 다른 캐릭터들 간의 차이를 구현을 위해, 키가 작은 대역 배우들과의 더블 캐스팅과 카메라 웍을 통한 일종의 속임수를 통해 이를 감쪽같이 표현해 냈었다. 즉, 영화 속에서는 프로도와 간달프가 바로 옆에 함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간달프는 카메라 가까이에 있고 프로도는 상대적으로 멀리 있어 화면에서 보기엔 간달프를 연기한 이언 맥켈런의 몸집이 훨씬 커 보이는 효과가 착시 현상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 이렇듯 카메라와 캐릭터 간의 거리에 따른 착시 현상을 통해, 캐릭터 간의 키 차이를 표현했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하지만 호빗은 달랐다.


하지만 이번 '호빗 : 뜻밖의 여정'의 경우는 이와는 조금 달랐다. 일단 간달프는 한 명 (혹은 네 명)의 호빗이 아닌 13명의 드워프들과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함께 등장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메라 속임수를 통해 관객을 일종의 착시 효과에 빠지게 할 수 있었던 '반지의 제왕' 과는 달리 처음부터 3D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호빗'은 더 이상 이런 착시 현상에 기댈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3D 영상에서는 이러한 거리감이 정확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3D를 비롯한 기술의 발전은 한편으론 이전보다 더 쉽고 편리하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장면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현실 감 넘치는 입체 감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정반대로 미치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야기시켰으니, 그것은 바로 기술이 아닌 연기를 하는 배우 때문이었다.




▲ 제작진이 개발한 슬레이브 모션 컨트롤 시스템은 다른 비율의 두 세트를 실시간으로 하나의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한 놀라운 기술이었다


일단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번 '호빗' 촬영을 위해 제작진이 개발한 슬레이브 모션 컨트롤 시스템은 정말 놀라운 기술이었다. 각각의 세트에서 각각 촬영을 하지만, 두 카메라가 연결이 되어 있어 똑같은 앵글과 움직임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서로 다른 비율의 두 세트를 완전한 하나의 공간으로 합치는 것이 가능해, 3D 영상에서도 실제는 같은 비율의 배우들을 간달프와 드워프의 비율 차이가 드러나도록 구현해 냈기 때문이었다. 피터 잭슨 스스로도 이 기술을 일컬어 괴상한 시스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화 촬영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또 한 번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 왼 편에선 드워프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서로 대화하고 호흡을 맞춰가며 연기하는 반면, 이언 맥켈런은 이어폰을 통해 전달되는 옆 세트의 대화를 들으며 그린 스크린을 향해 홀로 연기해야 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의 초반 시퀀스인 골목쟁이네 촬영 분은, 간달프의 사이즈에 맞춰서 그린 스크린을 카메라 앞으로 당겨서 만들어진 세트와 드워프와 호빗의 사이즈에 맞춰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세트로 각각 나뉘어 촬영되었다. 기존에도 이러한 방식의 촬영은 있었으나 여기서 간달프 역의 이언 맥켈런을 힘들게 만든 건 혼자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 시리즈 등을 통해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허공에 연기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한 그이기는 하지만, 이번 '호빗' 촬영은 허공에 대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과 직면하게 되었으니,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가정하고 혼자 대화 시퀀스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호빗'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하여 각각의 세트에서 정확한 동선으로 촬영한 장면들을 실시간으로 합성하여 하나의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졌는데, 그로 인해 한 세트에선 드워프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간달프가 함께 있다고 가정하며 연기하고, 다른 세트에서는 간달프가 텅빈 세트에 드워프들이 잔뜩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연기해야 했던 것이다!




▲ 이렇게 다 함께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 이언 맥켈런 혼자 이렇게 덩그러니 초록색에 뒤 덮인 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언 맥켈런의 말 못할 고통


하지만 아무리 판타지 영화에 익숙해진 이언 맥켈런이라 하더라도 연극 무대를 기반으로 한 정통 연기에 더 많은 시간과 호흡을 맞춰 온 그에게 이 같은 방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아니 수긍하기 힘든 방식이었다. 실제로 힘겨워 하는 이언 맥켈런의 모습을 보고 난 뒤 촬영 현장을 다시 보니, 아무도 없는 초록색 방에 각각 배우를 대신하는 카메라와 그 카메라 앞에 붙어 있는 각 배우들의 얼굴 사진들은 마치 테리 길리엄의 예전 작품을 연상시키며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올드 한 방식일지도 모르나 직접 상대 배우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호흡을 주고 받는 연기에 익숙했고 그렇게 수 십 년을 연기해 왔던 이언 맥켈런에게는 상대의 반응을 알 수 없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현장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 어려움 정도가 아닌 영화를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까지 할 정도의 고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 간달프와의 키 차이를 고려해 간달프의 시점에 맞춰 각 카메라의 붙여진 배우들의 사진들은 무언가 그로테스크함마저 느껴진다


그를 이해해서 과장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부가 영상에 수록된 그의 촬영장 모습과 인터뷰를 보면,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서 울기도 했을 정도였으며 이를 바라 만 봐야 했던 스텝들도, 옆에서 보기에 이언 맥켈런의 입장에서는 배우로서 감각을 박탈 당하는 것을 넘어 고문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촬영 현장이 너무 힘들었던 이언 맥켈런은 피터 잭슨에게 '이렇게 계속 해야 한다면 이 영화를 그만 두겠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언 맥켈런에게는 그가 수긍할 수 있는 연기와 영화의 경계를 넘어선 경우였던 것이다. 울고, 그만두겠다고 하고, 힘들어 하는 그를 보고 혹자는 프로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할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과연 배우로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프로페셔널이기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던 상황의 지나침 이었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간달프와 빌보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장면의 뒤에는...



▲ 이런 이언 맥켈런의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최근 들어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급변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 감정을 전하는 영상 매체로서 여겨지기 보다는 점점 정보와 지식의 소비 데이터로서 분류되는 현상이나, 영화와 절대 별개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었던 극장이라는 존재가 점점 필수 조건이 아닌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들도, 이것들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영화라는 것의 존재 성립 자체를 흔드는 위기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졌다.


이것은 아마 영화라는 것의 경계를 어디 까지로 확장 혹은 한정 짓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어차피 영화라는 것 자체도 현실과는 다르게 연출 되고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이자 부산물이라는 시점에서 본다면, 그 매개체가 반드시 사람이거나 사람들 간이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지만, 반대로 영화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연기하는 배우가 존재 성립에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배우를 기술로서 대체할 수 있다 거나 앙상블이 필요한 장면 조차 각자 홀로 연기한 조각을 모아 편집 과정에서 하나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 이언 맥켈런 왈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요, 이렇게 해야 한다면 더 이상 못하겠어요"


'호빗 : 뜻밖의 여정'의 촬영 현장을 통해 엿 본 이언 맥켈런의 에피소드는 정말 작은 부분이기는 했지만 - 참고로 피터 잭슨은 이 어려운 상황을 기술이 아닌 동료들 간의 정(情)을 통해 해결해 냈다 - 앞으로 영화 산업의 미래에 비춰 생각해 보았을 때 이렇듯 작게는 '연기'라는 것에 대한 것에서 부터, 넓게는 '영화'라는 것 전체의 개념에 대해 재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 더 잦아질 듯 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싶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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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의 감동!

드라마 콘서트에서 그대로!



사실 몇 번이나 포스팅을 할까 하다가 말았었는데, 뒤늦게 고백하자면 나는 '응답하라 1994'는 물론 '1997'까지 본방 사수에 재방까지 챙겨본 골수 팬이다. 뭐 시대가 시대인 만큼, 90년대는 내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었기에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처음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다. 하지만 '응사'는 좀 달랐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여러 번 이야기했었지만, 응사가 처음 끌리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응칠 때문이었다. 응칠의 감동이 너무 강렬했고 그 감동을 다른 이야기와 캐릭터로 지우고 싶지 않아서 인 동시에, 응사 1회를 보니 응칠과 시대와 인물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구성이어서 더더욱 응칠의 감동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응사엔 응칠에는 없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ㅠㅠ 도저히 참다 참다 못참고 보게 된 응사는 역시 1990년대를 그대로 관통해 내 10대 시절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보게 된 '응답하라 1994'는 정말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명 장면 ㅠ 보통의 드라마에선 한 가지 정도만 갖고 있는 소름 포인트가 응사에는 겹겹이 쌓여 있었으니, 첫 번째는 러브스토리요, 두 번째는 90년대, 세 번째는 90년대를 수놓은 노래들이었다 (남편 맞추기는 거들 뿐). 특히 쓰레기와 나정 커플의 이야기는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계속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는데, 그 때마다 흘러나오던 곡 들은 그 소름을 100배로 더 돋게 만들었다;;;




많은 곡들이 소름 돋게 만들었지만 그 가운데도 한 곡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너에게'. '너에게'라는 곡이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곡이라, 리메이크 된 곡임에도 전주가 흘러나올 때 온 몸이 전율 할 수 밖에는 없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버전과 성시경 버전이 크로스로 주거니 받거니 할 땐 정말 감동적이더라;;

아마도 나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시경이 부른 버전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원곡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최대한 그대로 부른 편곡이, 그래서 더 좋았다. 아, 그리고 이번 설연휴에 특집으로 '응답하라 1994 음악토크쇼'를 방영하길래 빼놓지 않고 보았는데, 성시경이 라이브로 '너에게'를 부르는 순간엔 서태지와 아이들 버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방송 얘기가 나온 김에, 정말 오랜 만에 본 미스터투도 반가웠고, 배우들의 뒷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응사 팬으로서 참 깨알 같은 방송이었다.


그렇게 응사가 끝나고 허전함을 OST로 달래던 중 반가운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바로 '응답하라 1994 드라마 콘서트'! 가끔 이런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매번 고민만 하다가 놓쳐버리곤 했는데 응사는 절대 놓칠 수가 없더라. 쓰레기, 나정이 등을 실제로 보는 것도 물론 설레지만 당시 노래들과 응사에 수록된 버전의 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매력에 이 콘서트를 꼭 가야지 마음 먹었다.




[응답하라 1994 드라마 콘서트] 미리보기 영상



콘서트 출연진을 보니 고아라, 정우, 도희, 김성균은 물론, 더 블루, 김조한, 015B 등이 출연할 예정인데, 정말 손지창, 김민종의 더 블루를 볼 수 있는건가? 더 블루의 함께 하는 모습을 본 건 정말 오래된 일인 것 같은데, 만약 진짜 더 블루가 '너만을 느끼며'를 라이브로 부르는 모습을 본다면 90년대로 바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삽입곡들도 무척 기대되고, (아마도) 솔리드 시절의 노래를 불러주지 않을까 싶은 김조한의 무대와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들려줄 것만 같은 공일오비의 무대도 기대된다!





이번 공연은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2월 15일(토) 딱 하루만, 오후 4시와 8시 2회 공연을 진행하는데, 다행히 평일 저녁이 아닌 토요일이라 부담 없이 가볼 예정!


사실 아직 응답하라 1994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인데, 이 콘서트로 그 여운을 잘 마무리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콘서트 다녀온 이후 더 심하게 빠져버릴 듯 ㅠㅠ)




이제 몇 밤만 더 자면 콘서트에서 볼 수 있겠지??? 흠흠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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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배우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렸던 이

선과 악, 강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가졌던 배우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를 막 준비하던 이른 아침, 폴 워커를 잃은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이 때에 또 다른 비보가 들려왔다. 바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사망 소식이었다. 뉴욕의 자신 소유 아파트에서 죽은 채 발견 된 그의 사망 이유는 약물과다인 것으로 현재 추정되고 있다. 이제 그의 나이는 겨우 46이었다.


그의 존재를 처음 제대로 인식한 것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1997년 작 '부기 나이트 (Boogie Nights)' 부터 였던 것 같다. 그 이전 영화들에서도 자주 얼굴을 만날 기회는 종종 있었는데, 얼굴과 이름을 처음으로 매치시킨 작품은 '부기 나이트'였다. 이후 그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페르소나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을 더 많은 영화 팬들에게 깊게 각인시켰던 작품인 '매그놀리아 Magnolia, 1999)'에서의 그의 연기는, 톰 크루즈가 연기한 캐릭터처럼 돋보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연기였으나, 확실히 '부기 나이트' 이후 '매그놀리아'를 인상 깊게 보게 되면서 그의 얼굴을 더 자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후 2000년 카메론 크로우의 '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와 2002년 또 한 번 폴 토마스 앤더슨과 호흡을 맞춘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를 거치며, 그의 얼굴과 이름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점점 더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기 시작했다.




다우트 _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http://realfolkblues.co.kr/878


어찌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항상 조연으로 머물러 있던 그가 단숨에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은 누가 뭐래도 2005년작 '카포티 (Capote)' 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하면서 명실공히 명배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의 연기를 계속 보아왔던 영화 팬들 입장에서는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준비된 배우였다. 실존 인물 트루먼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시모어 호프만은 메소드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며, 영화 자체보다도 이를 연기한 배우인 그가 더 주목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_ 외로운 시대, 외로운 가족의 초상

http://realfolkblues.co.kr/961


이후 헐리웃의 주목 받는 연기파 배우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유작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에서 또 한 번 무게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였으며, 2008년 메릴 스트립,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연기한 '다우트 (Doubt)'를 통해 다시 한 번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다우트'는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순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는데, 메소드 연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함께 출연한다면 어떤 연기를 펼칠지 두려움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우트'를 보고 나서 썼던 글을 보면 이 두 배우가 함께 등장해 연기를 펼치는 장면을 두고 액션 영화의 '결투 (Duel)' 장면 못지 않은 긴장감과 치열함, 압도됨을 느낄 수 있었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었는데, '다우트'는 연기라는 것의 맛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는, 그여서 가능한 작품이었다.




시네도키, 뉴욕 _ 외로운, 위로의 일기

http://realfolkblues.co.kr/1181


찰리 카우프만의 감독작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2008)'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그 해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였던 이 작품에서 호프만은 노인 역까지 소화해 내는 등 카우프만의 복잡한 각본을 연기력을 통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소화해 냈다. 이 후 한 동안 그의 작품을 보지 못하다가 2011년 브래드 피트의 주연작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머니볼 (Moneyball)'에서 비교적 적은 분량인 오클랜드 팀 감독 역할을 맡았는데, 사실 생각보다 분량이 적어 놀라기도 했었다. 솔직히 '머니볼'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반드시 그여야 할 만한 이유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으로서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짧게 나마 볼 수 있어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2006년 작 '미션 임파서블 3'를 비롯해 '헝거게임 : 캐칭파이어'에도 출연 하는 등 액션 블록버스터에도 출연하는 조금은 의외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번 그의 사망 기사에도 많은 대중들이 그를 '헝거게임'으로 기억하는 것도 개인적으론 조금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의 무시무시한 영화 '마스터 (The Master, 2013)'였다. 메릴 스트립과 호흡을 맞췄던 '다우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호아킨 피닉스와 함께 연기한 '마스터'는 영화도 배우도 연기도 실로 무서운 작품이었다. 역시 표면적으로 강렬하고 압도하는 것은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캐릭터였지만, 이를 받쳐주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아우라를 발산한 것은 다름아닌 호프만이 연기한 마스터였다.




편히 잠들길...



너무 급작스러운 죽음이고 이별이라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의 죽음이 가장 슬픈 사람 중 한 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보고 싶은 그의 연기와 영화들이 많은데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Rest in Peace.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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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헌사



짐 자무쉬의 신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의 이전 작품들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그보다는 좀 더 영상미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뱀파이어라는 영화의 소재 역시 그 아름다움과 영속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며, 두 주인공 아담과 이브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톤의 캐스팅 역시 아름다움 측면에서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황량한 디트로이트와 이국적인 모로코의 밤 풍경, 그리고 음악과 문학 예술의 역사들은 곧 아름다움의 표현과 헌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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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유머에 더 가까웠다. 즉, 영원한 삶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거의 없고, 정반대로 현대 사회 속에서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생각보다는 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건, 수 백년을 살아온 존재로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예술, 문화, 과학 등의 인물들에 대한 '포레스트 검프' 식의 유머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찬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짐 자무쉬는 최근의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을 한다. 비교적 그 가운데 오래된 이들이라면 모타운 레코드에 대한 것일테고, 가장 최근이라면 잭 화이트에 대한 것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잭 화이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라며 디트로이트의 어느 집을 소개할 땐, 짐 자무쉬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입장을 들려주고자 하는 지를 좀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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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확실히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떤 메시지나 여운은 부족하지만, 어느 한 장면, 어떤 순간은 영화 보다 더 깊게 각인된다. 짐 자무쉬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은 영화 내내 충분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이상을 갖고 있는 두 배우와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땐, 좀 더 끝까지 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 작품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처럼 '살아남는다'는 것과 '사랑'의 연관 성을 좀 더 파고 들거나, 반대로 아름다움의 영속성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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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운드트랙을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해외에서도 OST자체가 발매되지 않은 것 같군요.


2. 수록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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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 (Ender's Game, 2013)

온전한 다음 세대를 꿈꾸다



극장에서 볼까 말까 를 고민하다가 결국 IPTV나 블루레이 등으로 본 뒤 극장에서 볼걸 하고 후회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 해당하는 올 해 첫 작품은 '엔더스 게임' 이었다. 개봉 후 예상과 달리 심심하다는 평과 정반대로 예상 외로 재미있다는 평이 확연히 갈렸던 작품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내게 잘 맞는,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많은 이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외계 종족과 대규모의 전쟁을 하는 SF 액션 블록버스터를 예상했다가 실망한 케이스 일텐데, '엔더스 게임'은 전쟁 보다는 전략에 더 포커스를, 더 나아가 그 전략을 두고 벌이는 어른과 아이, 기성 세대로 대표 되는 현실적인 세대와 다음 세대로 대표 되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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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구성 측면에서 '엔더스 게임'은 롤플레잉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양상을 두루 두루 갖추고 있다. 극 중 그라프 (해리슨 포드)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외계 종족인 포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사령관을 키워내고 엔더가 이를 수행하는 과정은 육성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 요소가 다분하고, 주인공인 엔더 (아사 버터필드)가 팀원들과 함께 모의 전투를 벌이는 과정들은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연상시키듯 전략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짙게 묻어 난다. 즉, SF 액션을 기대했다면 '엔더스 게임'의 전개 방식은 당황스러울 수 있는 정도인데, 반대로 이러한 게임 적 요소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그 과정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감과 선택에 따른 결과의 희비에 재미 포인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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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먼저 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이 같은 방식을 취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 적으로 보았을 때는 딱 거기 까지 가 아닐까 싶었었는데, 막상 영화는 메시지 측면에서도 건전하지만 생각해 볼만한 의미 있는 주제를 담고 있어 더 좋았다. 일단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들이라는 점은 '에반게리온'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가지를 표현할 수 있는 텍스트라 하겠는데, '엔더스 게임'은 단순히 어른과 기성세대의 짐을 아이가 지어야 한다는 불합리와 세대의 부담에 그치지 않고, 그 가운데서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꿈꾸고 있다. 즉,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있던 소년이 굴곡을 겪어가며 진정한 어른이 되는 성장기, 그래서 다 함께 박수 받고 전쟁에서도 승리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그런 것처럼 전개되었지만 한 순간에 그렇게 생각했던 관객마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 지를 말하려 하는 마지막 시퀀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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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 새 어른이 되어가는지 이런 갈등을 볼 때마다 한 편으론 승리 혹은 대의를 위해 희생이나 폭력을 합리화 하는 주장에 현실적으로는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엔더스 게임'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아니면 그런 부당한 방법들이 불가피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어쩌면 더 옳은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 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이미 어른이 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다음 세대 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회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엔더스 게임'은 이기느냐 지느 냐가 중요한 세상 속에서 이기던 지던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는 백 번 옳은 메시지를 흥미로운 세계관으로 풀어낸 괜찮은 작품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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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Frozen, 2013)

디즈니가 관객을 사로 잡는 법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점점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작 '마법에 걸린 사랑 (Enchanted, 2007)'부터였는데 (실사 영화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정통을 잇는 작품에 더 가깝다), 이 후 '볼트 (Bolt, 2008)'를 거쳐 '라푼젤 (Tangled, 2010)'을 선보이며 드디어 오래 전 당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의 명성을 완전히 회복한 터였기에, 이번 신작 '겨울왕국' 역시 이러한 기대감을 한껏 앉은 채 보게 된 작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이미 '돌아온' '여전한' '클래식' 등의 수식어 들은 '마법에 걸린 사랑'이나 '라푼젤'을 통해 다 소진한 뒤라, 이것 만으로는 감동을 주기 힘든 상황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또 한 번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보여준 놀라운,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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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은 가장 디즈니스러운 요소들을 가득 담고 있는 작품이다. 왕국과 공주, 마법과 모험 그리고 뮤지컬이 함께 한다. 보통 시놉시스를 보면 정말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너무 평범해서 뻔하게 예상되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인데, '겨울왕국'은 분명 후자다. 줄거리만 보면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모험의 종류도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보아왔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겨울왕국'은 그럼에도 정말 재미있다. 최근 디즈니 작품들을 평할 때마다 했던 이야기인데, 디즈니는 새로운 것을 할 때보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최선으로 보여줄 때 가장 빛이 난다. 실제로 픽사, 드림웍스 등과의 경쟁 속에서 힘을 잃었을 때 무리하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흥행도 평가도 모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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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인 이유는 그 본질을 다루는 장인들의 디테일이 최고 수준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겨울왕국'을 보며 몇 번 소름이 돋은 장면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뮤지컬 시퀀스였다. 뮤지컬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었던 디즈니는 그 노하우에 새로운 감각까지 더해, 정말로 감동적인 뮤지컬 시퀀스를 만들어 냈다. 브로드웨이의 유명 작곡가 부부인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와 로버트 로페즈의 영화 음악은 뮤지컬 음악의 정수를 완벽하게 구현해 낸다. 인물의 감정을 한껏 뿜어내야 하는 솔로 곡은 감정의 최고조를 가사와 멜로디가 정확한 포인트에서 터트려 내며, 듀엣 곡 역시 교차하는 감정을 노래로만 표현할 수 있는 구성을 통해 유려 하게 표현해 낸다 (정말 이번 뮤지컬 시퀀스는 몹시 감동스러웠다). 여기에 음악적인 측면에서 클래식 한 측면 만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더 한 것도 부담스럽지 않고 딱 적절한 정도인 것이 좋았다. 일부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보면 무리하게 최신 트랜드의 음악을 가미 하려 다가 본질마저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겨울왕국'의 뮤지컬 넘버들은 순간 순간 움찔 할 정도의 신선함으로 효과적 업그레이드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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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디즈니 작품들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가장 도드라지게 발견되었던 단점은 스토리텔링에 있었는데, 이미 드림웍스가 '슈렉'을 통해 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최근의 디즈니는 이미 이런 문제에서 벗어난 지 오래 되었지만 (픽사를 인수하고 난 뒤에는 더욱), '겨울왕국' 역시 새삼스러우면서도 놀라운 순간은 여전했다. 아마도 예전에 디즈니 영화였다면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한 나머지 성을 떠나 홀로 산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부르는 노래는 '내게 왜 이런 저주가 내렸나' '나는 이제 홀로 어떻게 살아가나' '과연 정상이 되어 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같은 심정의 슬픈 곡이었을 텐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전혀 달랐다. 오히려 앞으로 혼자 자유롭게 살아갈 것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한껏 담긴 희망적이고 기쁜 감정이 담긴 곡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아직도 디즈니 영화에서 이런 순간을 맞을 땐 상대적으로 더 소름이 돋는 게 사실이다 (뭉클하기까지 하더라). 괴물은 나아야 해 라는 식의 화법(물론 여기서 가장 잘못되었던 것은 '괴물'을 정의하는 방식이다)에서 이대로 도 괜찮아를 노래하는 디즈니 캐릭터들은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교육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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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2014년의 첫 달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올해 최고의 감초 캐릭터는 눈사람 '울라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애니메이션 작품 가운 데서는 분명 그럴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동 용 애니메이션 만으로 머물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극 중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는 감초 캐릭터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울라프'라는 캐릭터는 극장을 찾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웃게 만드는 슬랩스틱과 메시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흔치 않은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더구나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대부분 이런 캐릭터들은 웃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썰렁한 개그를 선보일 때가 많은데, 울라프는 거의 한 장면도 썰렁한 장면이 없었던 것 같다. 여름을 사랑하는 눈사람이라니. 페이소스마저 느껴지는 사랑스러운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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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디즈니의 신작 '겨울왕국'은 메시지 측면에서도 가족 영화로서도 뮤지컬 영화로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그렇게 좋아하던 '라푼젤'이 거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새롭게 좋아하게 된 디즈니 뮤지컬 영화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이 영화를 보고 든 유일한 걱정이라면, 픽사일 것이다. 이젠 오히려 픽사의 부활을 기다릴 때다.



1. 본 편 전에 상영한 단편 '말을 잡아라'의 3D버전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디즈니는 확실히 다시 주도권을 잡았어요. 존 라세터가 디즈니 작품 외에 픽사 작품에도 좀 더 많은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2. 안나 역을 연기한 크리스틴 벨은 1980년 생, 엘사 역을 연기한 이디나 멘젤은 1971년 생인데 둘 다 어찌나 목소리가 어리고 선명하던지.


3. 자막 2D 버전으로 스타리움에서 관람하였는데 만족스러운 관람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더빙으로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4. 쿠키 장면이 있어요. 이걸 위해 일부러 기다렸다면 조금 실망하실 수도 있는 장면이기는 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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