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인 우디 앨런의 신작이었기에 심히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나온 오웬 윌슨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만 보고는 워낙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이라 파리에 대해 흠뻑빠진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작품이 아닐까라고만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미 '스쿠프 (Scoop, 2006)' 같은 작품을 통해 재치를 보여주었었던 그는, '사랑해, 파리' 연작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를 또 한 번 우디 앨런다운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만들어냈다. 보는 내내 큭큭 거리고 흐뭇하게도 되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우디 앨런이 쓴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았다.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했던 바로 그 '엑설런트 어드벤처' 말이다.



Gravier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미드나잇 인 파리'는 좁게 보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넓게 보자면 개개인의 느끼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가장 앞선 생각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주인공 '길'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종종 그런 꿈을, 내가 평소 동경하는 인물들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작가, 예술가 들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해볼 수 있었다.


극중 '길'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는데, 주변 얘기를 빌리자면 돈 되는 것과는 무관한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과도 좀 멀어져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근거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실에서 이렇게 냉대를 당하던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반응을 듣게 된다. 앞서 이 영화가 좁게는 작가에 대한 넓게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작가로서 '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길'이 사건을 겪고 변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의심없이 믿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얘기는 곧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인 '길'의 이야기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겹쳐질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구성 자체에서도 바로 그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Gravier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실상 100% 소화하기는 어려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헤밍웨이, 피카소, 스콧 피트제럴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분명 유명한 예술가로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영화는 기존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던 영화들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인만을 등장시키지도, 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영화가 이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건 정말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길'의 이야기고 '길'에게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놓았다. 대사 하나 하나에도 깨알 같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크들을 배치했는데, 쉽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만 웃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물론 우디 앨런 쯤 되니 이런 자신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극 중 '길'이 깨달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이러한 자신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인가를 100% 설명하려다보면 오히려 내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차라리 누구나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정수를 깨닫고 있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결국은 더 많은 '누구나'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Gravier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결국 누구나 동경하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에 근거해 지금(현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위해 그 세계에 남기로 한 아드리아나(마리온 꼬띨라르)의 이야기가 '길'의 선택 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에 대해 100%를 던질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겪고, 최근 더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데 영화 속 '길'과 아드리아나의 이야기가 전한 작지만 임팩트 있는 깨달음은, 파리의 그 아름다운 풍경들 보다도 더 깊게 남았다. 뭐 그래도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Gravier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글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죠;;


2.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역시 배우들 보는 재미죠. 너무 많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톰 히들스톤, 마이클 쉰은 물론이요 에드리언 브로디와 앨리슨 필의 출연도 몹시 반가웠어요. 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4'에 나왔던 그 바바리 언니 레아 세이두를 보게 된 것도 큰 반가움이었구요.


3. 아직 파리는 못 가봤지만 이제 가게 된다면 꼭 들러야할 명소가 한 군데 더 생겼네요. 12시되면 이제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제법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Gravier Productions 에 있습니다.






컨테이젼 (Contagion, 2011)
21세기형 진짜 공포 영화


'체 (Che, 2008)'는 아직 보질 못했고 '오션스' 시리즈는 몸집이 커진 이후로 역시 보질 않았으니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걸 글 서두에 알게 되었다. 한 때는 헐리웃이 총아이자 천재 감독이라 일컬어지며 개인적으로도 아주 관심이 있었던 소더버그란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작품이 바로 '컨테이젼 (Contagion, 2011)'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배우들의 면면들 때문이었다. 맷 데이먼, 케이트 윈슬렛, 마리온 꼬띨라르, 로렌스 피쉬번,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까지, 이름만 들어도 영화 선택이 가능한 배우들이 여럿이라 이 작품도 주저없이 선택했다 (여기에 출연 사실을 몰랐던 존 호키스까지 더!).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얻지 않은 채 극장을 찾는 스타일 덕에 이번 작품 역시 배우들 말고는 아무 정보가 없었는데, '컨테이젼'은 이 배우들이 주인공이 아닌 바이러스 그 자체가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진짜 무서운 21세기형 공포영화였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컨테이젼'이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이유는 그 현실성에 있다. 좀비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전쟁 영화나 스릴러 영화라 하더라도 관객이 실제로 보면서 '아, 저건 내 얘기일 수 있겠다'라고 느끼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내 것처럼 즐기는 것과 영화라는 것을 망각한 채 실질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컨테이젼'은 적어도 나에게는 후자의 경우였다. 예전에 바이러스에 관한 영화를 볼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딴 세상'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졌었는데, 직접적으로 내가 병을 앓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신종 플루나 사스 등의 공포를 주변과 매스컴을 통해 실감하면서, 그와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이 작품의 내용이 몹시도 공포스럽게껴졌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컨테이젼'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 바로 그 좋은 예 일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에 당하는 인간들은 물론이고 이 재앙을 겪는 과정 속에서 무너지는 인간성과 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는 그냥 무섭다 정도가 아니라 실제 저런 일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혹은 이미 발생했거나) 일이기 때문에 저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할까 라는 걸 계획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컨테이젼'이 다루고 있는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사회와 인간성, 정부 및 기업의 음모 등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새로울 것은 없는 것들이지만, 2011년이라는 시대가 만든 현실성이 이 영화를 더욱 공포스럽게 한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오랜만에 본 소더버그 영화. 소더버그는 여전히 이야기를 작은 조각으로 분리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더버그의 영화 가운데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의 이런 재능에 대한 자신감 이라고도 볼 수 있을텐데, 산만함 보다는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분리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컨테이젼'의 여러 인물들은 각각이 맡은 역할이 확실하기 때문에 좀 더 집중하면서 각자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고, 각각의 이야기가 점차 하나로 완성되어 가는 전개 방식이 아니라 매순간 서로 작용하게 되는 방식이라 더 몰입도가 높지 않았나 싶다.


영화 속 누군가를 마냥 비난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 보다도 이런 공포가 이제는 '더이상'도 아닌 그냥 현실이라는 사실이, 영화 속 바이러스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보다 훨씬 더 비중있고 공포스럽게 그려졌던 그런 작품이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다크나이트'에 나왔던 조연 배우들이 눈에 띄더군요. '라우'역할을 맡았던 친 한과 '라미레즈'형사로 나왔던 Monique Gabriela Curnen까지.

2. 다행히 극장에서 아무도 기침을 하지 않아 눈총 받거나 의심할 일은 없었습니다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인셉션 (Inception, 2010)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사실 많이 걱정했었다. '메멘토'부터 그의 작품을 ( '미행' 제외) 모두 극장에서 보고 팬이 된 입장에서는 '인셉션' 역시 기대되는 그의 신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다크나이트'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은 영화 팬 뿐만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기대하고 관심을 갖게까지 만드는 이른바 '모두의 기대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기대라는 것은 감독에게 있어 가장 부담스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다크나이트'는 몹시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정도의 기대를 안고도 대다수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팬으로서 걱정부터 앞선 던 것이다 (사실 이 걱정 자체는 모순인데, 대다수의 기대를 꼭 만족시켜야할 의무도 없고 어떤 영화든 개인에 따라 더 좋고 덜 좋음이 다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의 기대를 뒤로하고 순전히 개인적으로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인셉션'은 과연 '다크나이트' 이후 스튜디오의 더 큰 전폭적 지지를 얻게 된 놀란 감독이 더더욱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었을지 아니면 좀 더 대중친화적인 작품을 만들었을지가 궁금한 점이었는데, 이런 궁금증이 무색할 정도로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도  (타협없이도) 대중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한, 어떤 측면에서 진정한 아티스트임을 '인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셉션'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장자와 프로이트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깝게는 '매트릭스'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매트릭스'의 경우 문화와 철학의 인용 그 자체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면 '인셉션'은 익숙한 것들을 인용보다는 소재로 그리고 장치로 사용하되, 이를 양분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새롭게 설계한 또 다른 신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과연 저것이 가능할까?' 싶은 정도의 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새롭게 갈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펼쳐놓는 여유까지 (하지만 이 여유 뒤엔 자신감보다는 치밀함이 있다)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꺼풀만 보자면 '인셉션'에서는 여러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들이 겹쳐지곤 한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시티'는 세계관이나 그 이미지에서,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은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것에서, '매트릭스'나 '오션스 일레븐'은 몇몇의 캐릭터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겹쳐지는 부분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꺼풀만 벗겼을 때 '인셉션'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바로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 뉴욕' 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인셉션'이 아니라 '시네도키, 뉴욕'이었더라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우프만의 작품일 때 보다는 더 큰 파급효과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만큼 카우프만의 만들어낸 시네도키의 세계관은 '인셉션' 못지 않은 (혹은 더 복잡한) 심연을 파해치고 있는데, 카우프만은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마음의 심연에 몹시 집중한 반면, 놀란은 이 세계관을 보다 흥미롭게 단계화(Level)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프만의 작품은 좀 더 개인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된 반면, 놀란의 작품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해하고 싶어 안달하게 하는 (정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더 큰 매력을 지닌 작품이 된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 _ 외로운, 위로의 일기



(이제부터 슬슬 스포일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음 모피어스와 함께 매트릭스에 접속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 글은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나서 쓰게 된 글인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비로소 두 번째 보았을 때 이 영화의 정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재미없던 것이 재미있어진 경우가 아니라 영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첫 번째 보고 난 후의 간략한 소감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동시대에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 기술자이자 장인이기는 하지만, 정서적인 측면 즉 이야기의 주인공이 갖게 되는 정서적 울림에 있어서는 다른 측면에 있어서 조금 부족하지 않나 (특히 '인셉션'의 경우) 싶은 것이 전반적인 느낌이라, 둘 중에 굳이 더 나은 작품을 꼽으라면 메시지의 울림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보고나서는 이런 결정을 쉽사리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야 말았다. 마치 '프레스티지'는 '참 영리한 두뇌로 쓰여진 치밀한 시나리오다'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리스찬 베일과 휴 잭맨이 연기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했던 '인셉션'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양한 해석과 많은 논란 혹은 해석할 여지가 존재하는 작품이다. 사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것 그리고 잘 편집된 한 편의 영화라는 것은, 이렇듯 보는 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작품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인셉션'은 이것 만으로도 부족할 것 없이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제목인 '인셉션' (다른 사람의 무의식, 꿈 속에 생각을 심는 것) 의 의미처럼만 만들어졌어도 이 영화는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 속에서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팀이 피셔 (킬리언 머피)에게 실행했던 방법처럼, 인셉션을 통해 심은 생각이 단순히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심은 생각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야 인셉션이 성공하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성해 냈다. 즉, 관객들은 놀란이 심은 기본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나래를 펴 점차 더 깊은 인셉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이미 관객은 영화 속 맬 (마리온 꼬띨라르)처럼 더이상 인셉션의 경계를 확인하는 대신에 자신만의 세계를 더 굳건히 믿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믿는 다는 것은 영화 속 과는 다르게,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을 끊임없이 맞추고자 하는 욕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꿈' 혹은 또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인셉션 (Inception)'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영화적 야심인가. 남들이 100점 만점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 때 놀란은 150점 짜리 이야기를 구상해 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관객이 느끼는 것에 따라 160점도, 200점도 될 수 있는 구조까지 마련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관객이 놀란을 완전히 신뢰하며 인셉션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놀란 역시 자신의 영화를 100점 이상으로 봐줄 관객들을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마도 첫 번째 관람 후에 글을 바로 썼다면 여기까지에서 간단히 마무리 했다거나 아니면 논란이 풀어놓은 퍼즐 조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가며,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을 것이다. 사실 정답이라 한다면 이게 정답인데, 두 번째 보고 나니 이 수 많은 갈래길들 가운데 단 하나의 길 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앞서 했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게 되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처럼 메시지가 강한 영화가 아닌 경우라면 세계관 설계에는 누구도 따라오기 어려운 탁월한 재주를 보여주지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는 공감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다는 생각 말이다. 확실해진 갈래길을 따라가보니 이 영화는 놀란의 작품 가운데 그 어느 작품보다도 주인공의 이야기와 감정적 동요가 큰 작품이었다. 마치 '메멘토'를 완벽하게 확장시킨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메멘토'하면 그 영화적 형식에 더 귀를 기울이지만 '메멘토'에는 분명 주인공 '레너드'의 사연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10분 간만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는 특수한 설정을 흥미위주로 구성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 겪어야만 했던 감정의 이면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셉션'을 두 번 보고 느낀 것은 바로 이런 주인공 코브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내러티브가 가장 자연스럽고 또 감정적이며 가장 많은 부분이 맞아 떨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헛점은 있다. 하나하나를 다 맞추려고 하면 맞지 않는 부분은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피셔에게 코브가 인셉션을 시도했듯, 코브에게 인셉션을 한 것은 바로 장인인 마일스일지 모른다)

코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진짜 인셉션

첫 번째 보고나서 그 엔딩의 쓰러지지 않는 팽이와 공항 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몇가지 단서들 덕에, 이것이 결국 코브의 꿈, 그러니까 코브의 인셉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확신이라기 보다는 다른 수 많은 갈래길 중 좀 더 유력한 길 정도로 생각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번 보게 된 영화는 확실히 달랐다. 이것은 완벽한 코브의 인셉션의 관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확실일 뿐, 다른 분들이 갖는 확신 역시 틀리다기 보다는 또 다른 맞는 확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일단 코브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바로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몰게 했다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엄청난 죄책감이다. 코브와 아내 맬은 드림머신을 통해 꿈의 세계를 설계하는데에 흥미를 갖게 된 뒤,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 등 더 깊은 꿈의 세계, 즉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결국 이 과정 속에서 맬은 자신이 믿고 있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더이상 믿지 않는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꿈 속의 세계를 현실로 믿어버리게 된다 (즉, 림보에 빠진 것이다). 꿈과 현실의 단계가 단순히 한 단계로 이루어졌더라면 이런 혼동이 없었겠지만, 꿈의 꿈 그 꿈의 꿈, 또 그 꿈의 꿈으로 이어지는 영역을 경험한 이들에겐 현실을 자각하는 능력이 점차 사라져갔고, 맬은 결국 꿈을 현실로 믿게 된 것이다. 이런 맬을 끝내 설득시키지 못한 코브는 결국 맬에게 인셉션을 감행하게 된다. 즉, 맬이 꿈을 꿈으로 믿고 돌아올 수 있게 생각을 심는 것이었는데, 그리하여 오랜 꿈 속에서 벗어난 맬은 하지만 이 현실 역시 꿈으로 받아들이고는 이 꿈에서 깨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이 과정 속에서 코브가 얻은 교훈이라면 단순히 생각을 주입하는 인셉션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즉, 스스로 그 생각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일터).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에서부터 코브의 인셉션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코브에게 엄청난 죄책감이 된다. 꿈의 끝까지 가보고 싶었던 것도 본래 본인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림보에 빠진 맬을 구하기 위해 성공확률이 높지 않았던 인셉션을 맬에게 직접 시도했으며, 결국 이 인셉션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맬을 진짜 죽음으로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코브의 죄책감은 이후 그가 다른 의뢰인의 꿈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자신이 죽게 했다는 생각에 맬의 존재는 언제나 꿈 속에서 코브나 꿈의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이런 죄책감이 가져온 불안감은 점점 더 예고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코브가 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어린 아들, 딸과 다시 재회하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인셉션으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코브가 이렇게 되길 가장 바라며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맬의 아버지, 그러니까 코브의 장인어른으로 등장하는 '마일스' (마이클 케인) 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아버지인지 장인인지 좀 불확실한 면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부자관계나 아니냐 라기 보다는 꿈에 침투하는 것을 가르친 사람이 마일스 라는 점이다). 마일스는 일단 코브에게 직접적으로 이 일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점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코브를 구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충분하다. 또한 자신이 가르친 기술 때문에 결국 딸의 죽음과 사위의 트라우마가 생겼음으로, 마일스 스스로도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동기가 되겠다.

또한 코브에게 이를 가르친 만큼 코브의 인셉션을 설계할 만한 능력은 물론, 수제자 (엘렌 페이지)를 통해 이를 완성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놀랍도록 맞아 떨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처음 파리에서 코브와 마일스가 만나 나누는 대화 장면을 보면 이런 심증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 대화를 보면 마일스는 은근히 코브가 진행하려는 인셉션을 막아서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유도하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코브는 애초에 인셉션을 마음먹고 이를 설계해줄 아키텍트를 구하러 오긴 했지만, 마일스는 이런 코브의 심정을 이용하여 좀 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코브가 계획을 세우도록, 코브의 말을 받아들이기도하고 반대로 그를 잘 아는 만큼 일부러 약을 올려 더 하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대화를 이끄는 마일스, 그리고 이를 연기한 마이클 케인의 연기를 보면 무서울 만큼 디테일이 느껴진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이후 코브의 토템이 쓰러지는 장면, 즉 현실임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코브의 팀이 피셔에게 인셉션을 심는 상황을 그대로 코브에게 대입하면 된다. 극중 임스 (톰 하디)는 피셔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삼촌인 브라우닝 (톰 베린저)으로 분장해 아버지와의 관계 등 더 많은 깊은 정보를 캐내게 되는데, 피셔와 브라우닝으로 분한 임스의 관계는 그대로 코브와 아리아드네 (엘렌 페이지)의 관계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아리아드네는 코브를 더 알아야만 불안요소를 업애고 더 완벽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코브가 동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묻는다. 그리고 코브의 꿈에도 적극적으로 접속해 코브와 맬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한다. 이는 코브에 대한 인셉션을 성공시키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리아드네는 결국 아무도 알지 못했던, 코브와 맬이 림보에서 겪었던 일들마저 알게 되었고 이는 피셔가 인셉션을 겪으며 스스로 발전한 것처럼, 코브 역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결심하게 하는 계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따지고보면 경쟁 회사를 분리하기 위한 사이토의 의뢰는 말그대로 코브가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어려운 미션일 뿐인데, 이 자체가 마치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냥 코브의 트라우마 이야기와 비중을 같이하며 (혹은 더 큰 비중으로) 그려지는 것은 단순히 볼거리 측면 때문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셔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은 그대로 코브에게 인셉션을 하는 것과 겹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셔가 사이토의 뜻대로 회사를 나누는 것은 영화 상에서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는 사실이고,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인데도 이 과정을 그렇게 심도 있고 비중있게 그린 이유가 바로, 이마저도 피셔의 이야기가 아닌 코브의 이야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갇혀있는 맬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인 동시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과정인 것이다. 다시 말해 너무 직접적인 (1차적인) 인셉션을 코브에게 시도했다면 코브는 이를 금새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셔의 인셉션이라는 복층의 인셉션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코브는 그의 무의식 속에 있는 맬과는 다르게 정확히 현실과 꿈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꿈에서 나올 때마다 토템을 통해 현실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고 있으며, 다른 영화의 감상적인 주인공들처럼 영원히 맬과 림보에 남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코브에게는 맬에 대한 죄책감 만큼이나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런 맬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코브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맬에게 했던 인셉션이 실패로 돌아갔던 과거 때문에 (꿈의 설계에 상상력만이 아닌 기억을 동원하게 된 점) 자신이 설계한 인셉션으로는 절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즉, 계기가 필요했던 것인데 (헬기에 탄 사이토의 인셉션 제안에 너무 쉽게 수락한 경향이 있다. 인셉션의 실패 경험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파리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 마일스를 찾아갔고 자연스레 인셉션에 몸을 맡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리아드네를 그의 꿈에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도 쉽게 수긍이 된다. 아마도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여기 오면 안돼' 그 이상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도 절대 아리아드네를 맬이 있는 자신의 꿈에 들이지 않지 않았을까).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보면 '인셉션'은 그 어떤 영화 못지 않게 주인공 코브의 절절한 감동의 이야기가 된다. 정말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둘이 함께 추구하는 바를 이루려 꿈꾸던 그 곳에 끝까지 가게 되었지만,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내를 위해 자신도 그곳에 남아 아내의 꿈 (둘이서 함께 늙고 싶다는)을 이뤄줄 때까지 기다려주기도 했고, 한 차례 꿈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아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자 인셉션을 동원해 어떻게든 아내를 현실로 데려오려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하고 결국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어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인셉션을 통해 스스로 죄책감을 벗어내려는 노력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야기는, 첫 번째 관람시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몹시 동요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즉, 이 인셉션이라는 세계, 꿈의 꿈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화려하고 매력적인 표피 속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 왜 이들은 림보에 빠지게 되었나, 왜 이들은 인셉션을 하게 되었나, 왜 코브는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나에 대해 비로소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나니 처음 볼 때도 뭉클했던 림보에서 코브와 맬이 나누었던 대화 장면이 더더욱 눈물날 수 밖에는 없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은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코브는 피셔의 인셉션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가서는 그 동안 죄책감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들 (맬에게 인셉션을 했던 사실, 50년 넘게 림보에서 둘이 함께 늙어갔던 사실)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눈 앞에 만져지는 진짜 같은 꿈 속의 맬을 용기 있게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맬에게 인셉션을 고백하는 장면부터 코브가 드디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이 시퀀스가 몹시도 슬프고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셉션'은 트라우마라는 점에서 역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셔터 아일랜드'와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결말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의 레오는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정하긴 했지만 이겨내진 못했던 반면, '인셉션'의 레오는 눈물겹고 힘들었지만 결국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것이 마일스가 설계한 (물론 세부 내용은 아드리아네가 설계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코브의 인셉션이라고 해놓고선 현실로 돌아오는데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무슨 얘기냐고 물어올 수 있겠는데,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분은 마지막 시퀀스로 미뤄 봤을 때 아직 꿈 속이라고 볼 수 있겠다.

비행기 내에서 깬 뒤 공항에 도착한 순간, 유난히 코브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들도 그렇고 이를 마중나온 마일스도 그러하며, 결정적으로 결국은 쓰러지지 않은 팽이와 (물론 이는 쓰러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엔딩 크래딧 말미에 흐르던 킥을 신호하는 에디뜨 피아프의 노래까지. 코브가 이 꿈에서 깨는 순간 다시 모든 것을 잊고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그 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전한 인셉션인 만큼 꿈에서 깬 다음에도 이 어렴 풋한 기억을 발판으로 반드시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코브가 바라던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고 (정확히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셉션'이 결국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라는 점은 영화 속 킥의 도구로 사용된 에디뜨 피아프의 유명한 곡 'Non, Je Ne Regrette Rien'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곡이 본래 워낙에 유명한 곡이기도 했지만, 에디뜨 피아프의 전기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를 감상한 탓에 이 곡은 물론, 이 곡의 가사들도 미리 머릿 속에 인지하고 있던 것이 '인셉션'을 감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정말 굴곡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결코 자신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곡의 제목과 가사처럼, 킥 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이 곡은 마치 코브의 트라우마를 덜어주려는 아키텍트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코브와 '난 후회하지 않아'라는 곡의 대비는 아이러니와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를 더 확고히 하는 장치가 되었다 (물론 '라비앙 로즈'의 주인공이 마리온 꼬띨라르 였다는 점도 묘한 흥미거리였지만).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꿈인지 생신지 볼을 꼬집, 아니 얼른 토템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사람같으니라구!)

개인적으로는 두 번 보고 나서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래서 '인셉션'을 더 격하게 좋아하게 되었지만), 처음 보고나서의 느낌처럼 '인셉션'을 이런 감정적 내러티브보다 다층적이고 흥미로운 세계관에 집중한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 대단한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놀란은 '인셉션'이라는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 인셉션을 심어 결국 관객들이 스스로 이를 발전시켜 더 큰 세계로 혹은 자신조차 의도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확장시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놀라운' 세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1.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각종 정리글과 분석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는데, 제 생각과 일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완전 이 세계관에만 집중해서 하나하나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이미 대부분을 다른 분들이 해주셔서 이 부분은 생각날 때마다 보충하는 것 정도로 하려구요.

2. 이것이 코브의 인셉션이라해도 피셔의 인셉션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로 인해 설득력을 얻게 되더군요. 사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로 설득력이 없어보였거든요. 경쟁사의 회사를 반쪽내기 위해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한 사이토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런데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진짜 영화 속 영화처럼 설득력을 주더군요.

3. 디카프리오야 동시대의 배우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이니 더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좋아하게 된 배우가 있다면 역시 조셉 고든-래빗이죠. '브릭'과 '500일의 썸머'는 물론 왜 나왔을까 싶은 '지아이조'마저 본 팬인데, '인셉션'에서의 조셉은 정말 멋졌어요. 물론 멋진걸로만 따지자면 '임스' 역할로 나온 톰 하디에게 좀 밀렸지만요 ㅎ

4. 이미 3회차 관람은 예매가 완료되어 있고, 지금은 나만의 토템을 찾는 중입니다.

5. 참고로 제 핸드폰 벨소리도 바꿨어요. 'Non, Je Ne Regrette Rien'로요.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킥이 되는거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나인 (Nine, 2009)
뮤지컬은 결국 판타지와 챕터의 예술


<시카고>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하고,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벅찬 캐스팅으로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영화 <나인 (Nine)>은, 앞선 이유만으로도 뮤지컬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호불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혹평을 등에 업고 관람을 하게 된 <나인>은 그래서인지, 아니면 뮤지컬 세계에 유난히도 동화가 잘 되는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 크게 아쉬울 것 없는 멋진 뮤지컬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와 롭 마샬 감독(혹은 롭 마샬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과 나의 시선은)은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큰 인기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카고 (Chicago, 2002)>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인>의 리뷰를 쓰기 전에는 적잖은 고민도 되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영화가 좋았다는 평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최근 본 <파르나서스....>의 경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인상 깊게 보았다는 글을 쓰기가 잠시나마 머뭇거려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뭐 어차피 개인적인 차이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ㅎ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한 때 합성논란까지 있었을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이 화려한 캐스팅을 보라!)

<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에 영감을 받아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8과 1/2>의 리메이크라기 보단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천재 영화 감독이자 카사노바인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작품(이탈리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보여지는 것에서만 벗어나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뇌를 고백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과정 속에 그의 인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으로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어떤 특별한 감동이 요소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분명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또한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공감대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귀도가 영화 감독으로서 창조의 고통을 겪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보다는, 그의 여성편력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는 편이라 귀도의 고뇌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뮤지컬 영화들이 내러티브나 공감대(특히 공감대)면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무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경우일 때 더 자주 나타나는데,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타 장르의 영화들보다 챕터의 성격이 짙으며, 그 챕터들이 노래라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관한 설명을 대사나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 대신 노래를 통한 시퀀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화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 한 곡은 정확히 챕터와 성격을 같이 하기 때문에,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비교적 다음 에피소드로 빨리 이야기가 전환되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 인물들의 가사가 관객에게 좀 더 공감대를 얻어야만 챕터 방식이라도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텐데, 대부분이 이 장면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에 몰입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뮤지컬을 제외하고 최근 그나마 좋은 반응을 끌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뮤지컬은 뮤지컬이되 주인공이 가수이거나 쇼비지니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의 뮤지컬은 음악영화와 뮤지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작품들인데 (가까운 예로는 <드림걸즈>를 들 수 있겠다), 이런 작품들은 일반적인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구성도 있으면서 또한 가수로서 노래하는 구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적은 부담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되곤 한다. <나인>의 경우는 또 조금 다른 경운데,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는 상당수가 그렇지만 '노래하는 것 =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이런 공식에 가까운 작품이다. 애초부터 귀도가 상상하는 영화의 장면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나인> 속 노래하는 장면들은 귀도의 판타지이자 뮤지컬의 판타지다.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이리도 화려한 여배우들이 캐스팅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판타지적인 특성과 강조된 챕터 형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은 확실히 무대 뮤지컬의 성격을 깊게 띄고 있는데, 사실 그러기엔 좀 캐릭터가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에 캐릭터가 많은 탓에 거의 소개와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곡에서 모두 소화해야 했던 탓에, 이야기보다는 '소개'의 인상을 더 깊게 남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저 '니콜 키드먼 나왔다!', '아니, 소피아 로렌이잖아!', '퍼기는 역시 가수출신이라 무대가 강렬한데', '페넬로페 크루즈는 늙지도 안나봐' 등 배우마다 간단한 소감을 풀어내기가 일쑤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무대화되고 영화화 되면서 영화라는 것과 감독,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다. 맨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 <나인>은 펠리니의 작품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인한 혹평들은 어쩌면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나인>이 좋았던 것은 클래식 뮤지컬 영화스러운 분명한 챕터별 구성과 환상적인 노래와 춤 때문이었다(확실히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챕터를 감싸는 기본 이야기의 전개가 아쉬웠던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은 각자의 챕터에서 짧지만 강렬한 등퇴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니콜 키드먼 같은 경우는 확실히 그 금발과 아름다움 외에는 이렇다할 분량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내가 감독이라도 누가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여배우다운 한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 캐릭터에는 주저없이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했을 듯 하다(그녀 외엔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릴 수 있겠다). 블랙 아이드 피스 출신의 퍼기의 경우는 사실 드라마타이즈의 연기는 하나도 없이 노래와 춤에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욱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사실 이런 여배우들 사이에서 어설프게 연기하느니 안하는게 나을듯 하다). 많은 이들이 페넬로페의 시퀀스와 더불어 최고의 장면으로 그녀의 시퀀스를 꼽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무대 뮤지컬의 한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다.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여배우와 챕터는 바로 케이트 허드슨의 시퀀스였다. 'Cinema Italiano'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기도 했는데, 무리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주디 덴치의 캐릭터는 조금 어정쩡한 감이 없지 않았고, 소피아 로렌 역시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출연 소식 만큼의 인상은 주지 못한 듯 하다. 마리온 꼬띨라르의 경우 드라마 타이즈에 있어서는 페넬로페와 함께 가장 분량이 많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카데미 수상자 답게 화려함이 없는 가운데서도 빛이 나고 있다(이 영화에선 숨막힐듯한 그녀의 클로즈업이 나온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섹시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처럼 보라색으로 표현하면 좋을 매력을 선사하는데, 확실히 그녀의 출연분이 다른 챕터에 비해 튀는 편이긴 하다. 오히려 주연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경우 그의 출연작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편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관객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가 어느 정도 힘을 빼고 펼치는 이번 연기도 색다르게 볼 만하다(첨에 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또 하이라이트에서 목에 핏줄 세우며 열창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황홀함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던 영화로서, <나인>은 뮤지컬 영화팬인 내게 가슴 뛰는 영화였다.


1. 음악이 오히려 고전적이라 참 좋더군요. 사운드트랙은 이미 질러져있다.
2. 배우들의 연습장면이 짧게 나오는 엔딩 크래딧도 좋았어요.
3. 이 작품의 각본은 안소니 밍겔라가 마이클 톨킨과 함께 작업했었는데, 아시다시피 2008년 세상을 떠났죠. 영화는 그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4. <시카고>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카고>를 재미있게 본 관객을 홍보타켓으로 삼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5. 어쩌다보니 최근 본 두 작품(파르나서스...)이 전부 저만 좋아하는(혹은 응원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씨너지에 있습니다.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2009)
마이클 만의 실험적인 갱스터영화


<히트> <콜레트럴> <마이애미 바이스>등을 연출했던 마이클 만이 조니 뎁, 크리스찬 베일 등과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등'에는 상당히 많은 거론할 만한 배우들이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이 작품 <퍼블릭 에너미> (원제목은 'Enemies'임으로 우리말 제목으로 하자면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들'이 맞겠다)는 기대작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필몰그래피 가운데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협연한 1995년작 <히트 (Heat)>를 최고의 작품을 꼽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999년작 <인사이더 (The Insider)>부터, 아니면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가 출연했던 2004년작 <콜레트럴 (Collateral)>에서야 본격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그가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갱스터 '존 딜린저'를 영화한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점들은 분명 몇 가지가 있었는데 (최신형 총기들의 격발음의 디테일을 선보였던 마이클 만이, 시카고로 대표되는 기관총의 사운드는 어떻게 차별화하여 들려줄 것인가 등등), <퍼블릭 에너미>는 그런 점들도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콜레트럴>과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사용 빈도를 높여왔던 HD카메라의 사용을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한 상당히 실험적인 영상물이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시작되고나서 솔직한 심정은 조금은 의외였다. 마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에서나 볼 법한, 아니면 역시 그의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의 HD버전을 보는 듯한 영상은, '정말 이대로 끝까지 다 담으려는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마이클 만은 작정을 한 듯 이렇게 조금은 관객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이질감이 느껴지는 화면으로 영화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특히 초반 장면들 같은 경우 실외 장면에서는 그 미치도록 파란 하늘에 혼이 팔려 감각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외 장면보다 실내 장면에서 더욱 크게 그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HD다큐멘터리르 보는 듯한 화면의 질감과 전혀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이 영상은 확실히 몰입도 측면에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퍼블릭 에너미>를 소개하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1930년대를 구경하기 보다는, 그 안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는 소견을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런 그의 의도를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카메라 워킹과 영상이었다. 이 작품의 카메라 워킹을 보다보면 화면 속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저리 비켜요'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전히 VJ가 된마냥 인물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특히 법정 장면에서의 앵글은 완벽하게 방청석에 앉아 있는 시점에서 이를 빠져나가는 주인공들을 뒤 쫓고 있다(그렇다고 <클로버필드>마냥 완벽한 촬영자적 입장에서 본다고만은 볼 수 없는 영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핸드헬드 기법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런 카메라 워킹은 '그 속에 진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HD카메라만을 통한 그 필름 라이크하지 않은 화면의 질감은 확실히 실험적인 것이었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이런 식의 장면들이 몇몇 있긴 했었지만 전체적으로 2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을 커버하리고는 생각지 못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HD카메라로 담은 영상은 한 편으론 정말 그 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일반적인 영화적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무언가 떨어져 보이는 영상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도 사실일 것이다. 특히나 만약 이 영화를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이 운명의 적수로 만나는 대결구도(.vs)의 액션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온 관객들에게는 적잖이 당황스런 경험이었을 것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실존 인물인 존 딜린저와 그와 관련된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것은 실화입니다'라고 강조하는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따로 자막을 통해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실제 있었던'이 아닌 '실제하는' 이야기로 전달하려는 욕심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확실히 영화의 영상은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좋을 정도인데, 마치 유명한 뮤지션들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투어필름 감독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실제로 당시 경찰들이 영화 상영 전 홍보를 위해 촬영한 영상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만약 존 딜린저가 이런 작업을 진행했었다면 이런 비슷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클로즈업 시에는 굉장히 카메라를 인물에게 타이트하게 들이대는데, 이런 방식은 정말 라스 폰 트리에가 자주 썼던 방식으로, 관객들이 극중 인물에 심리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마치 극중 인물의 숨이 내 얼굴에 와 닿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또한 정경을 멀리서 촬영하거나 카메라가 먼 곳으로 빠지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인물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실제하는 공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 감상기를 쓰면서 스포일러 걱정없이 술술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에는 별로 스포일러가 될만한 요소들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존 딜린저가 매우 유명한 실존 인물임을 감안했을 때 이 영화의 결말은, 히틀러의 암살작전을 다룬 <발키리>와 다를 바 없으며 (그렇다고 해놓고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센스 ^^;), 그 과정의 이야기들도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뿐이다. 존 딜린저는 시대를 풍미했던 갱스터로서 은행털고, 세력 다툼도 있었고 그를 잡으려는 경찰들은 더욱 조직화 되었으며, 운명 같은 사랑도 나누었다는 이야기 가운데 적어도 마이클 만은 내용 안에 특별한 메시지나 논란거리를 던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만은 이 처럼 얼마든지 영화적으로 상상력을 더해(더하지 않더라도) 극적인 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던 소재를 그저 다큐처럼 조명하는데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 속 총격씬에는 기술적인 구현 외에 극적인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있다면 윈스테드 경관의 앞구르기 정도!), 총격전 사이에도 긴장감은 별로 찾아볼 수 없고 각각의 인물들에게도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서 공감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단 하나 이 영화에서 극적인 부분을 조장하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음악일텐데, 마치 <다크 나이트>의 스코어와 살짝 흡사한 음울한 스코어는 장면 장면 분위기를 만들려고 끼어드는데, 무언가 담백하게 가려는 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조니 뎁이 이런 무거운 갱스터 영화에 어울리까도 싶었었지만, 터프하기보다는 섬세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존 딜린저 역에 그의 캐스팅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살짝 살이오른 그의 얼굴은 은근히 네모내 보이기도 하는데, 확실히 '넌 이제 내 여자야' 라는 대사를 그나마 덜 어색하게, 그래도 어느 정도 수긍 가능하게 만든 것은 '조니 뎁'의 역량이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찬 베일은 역시나 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씨네21 리뷰에서는 그의 연기를 평하면서 <다크 나이트>보다도 오히려 이 영화의 등장한 멜빈 퍼비스
를 연기하기 위한 배우같았다고 짧게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정말 더 꽉 다문 입에서 브루스 웨인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그래도 첫 대사를 할 때 그 목소리는 마치 변조된 배트맨 목소리가 살짝 연상되긴 했다).

마리온 꼬띨라르는 <라비 앙 로즈>에 이어 또 한 번의 시대극이라서 그런지 에디뜨 피아프의 잔상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조니 뎁과 은근히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버를 연기한 빌리 크루덥은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연기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기 보다는 자꾸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이 생각나서 집중되지 않기도;; (닥터 맨하튼이 갱스터 하나 못잡아서 곤란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주연급 연기자들 외에도 이 작품엔 참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서 배우들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파라미르' 데이빗 윈햄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고, 며칠 전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스테판 그레이엄 역시 '참~ 맘에 안드는' 캐릭터를 맡아 열연하고 있고,
<블레이드>에 출연했던 스티븐 도프, 따져보니 본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데 얼굴만은 참 익은 지오바니 리비시, 마지막에 잠깐 등장했지만 얼굴을 보고는 반가웠었던 <딥 임팩트>의 그녀 릴리 소비에스키까지. 예상치 못했던 조연급 연기자들이 다수 출연해 그것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기도 했다. 물론 그 중 가장 놀라웠던 출연자는 UFC와 프라이드에서 활동했었던 격투선수 돈 프라이였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어느 정도 있는 캐릭터였는데, 돈 프라이를 마이클 만 감독 작품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ㅎ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결론적으로 마이클 만의 <퍼블릭 에너미>는 예상하던 장르 영화로서의 갱스터영화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영화 장인으로서의 마이클 만의 야욕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1.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HD카메라의 의도적 영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2. 초반 클럽에서 노래하는 여가수는 다름 아닌 다이애나 크롤이더군요. 깜놀.
3. 누가 조니 뎁 아니랄까봐, 이름이 뭐냐는 물음에 '잭'이라고 하더군요 ㅎ
4. 극장 장면은 하나는 참 재미있었고, 다른 하나는 참 영화적으로 인상적이더군요. 셜리 템플 지못미.
5. 무언가 더 할말이 있었는데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유니버설 픽쳐스에 있습니다.








80th Academy Awards

이번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골든 글로브나, 미감독조합 시상식의 결과 등을 통해
미리 쉽게 점쳐볼 수 있었던 시상식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이변들도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시상식이었으나, 그래도 이변은 있었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각각 여러부분을 나누어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남우주연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주요부분을 수상하지 못하였다.

일단 이변의 첫 번째 조짐을 보여준 것은 예상 외의 복병 <본 얼티메이텀>이었다.



물론 기술상이고 음악편집상이나 음향효과상 중 하나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던 바였지만,
이 두 가지 부분을 모두 수상할지는 몰랐었고, 더군다나 더더욱 예상하지 않았던 편집상까지
가져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번 시상식의 숨겨진 승자라고나 할까



작품상과 감독상에서는 사실상 이변은 없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예상되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경쟁작이었던 <데어 윌 비 블러드>와
이변이 일어난다면 가장 유력했을 <주노>를 재치고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코엔 형제 역시 드디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그들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감독인데, 코엔 형제를 만난 것이 불운이었던 듯 싶다.






뭐 누구도 다른 수상자를 염두하지 않았던 남우조연상의 하비에르 바르뎀.
그 역시도 워낙에 압도적인 지지여서 그런지, 첫 번째 아카데미 수상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담담한 모습이었다. 사실 압도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의 수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하비에르 바르뎀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이변.
남우조연상의 하비에르 바르뎀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전문가들과 매체들이 예상했던
<어웨이 프롬 허>의 줄리 크리스티를 재치고 <라비 앙 로즈>의 마리온 꼬띨라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여우주연상 역시 이변이 일어난다면 <주노>의 엘렌 페이지에게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었지만, 이 프랑스 영화에서 열연을 펼친 외국 배우에게 아카데미가 주연상을 안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개인적으로 <어웨이 프롬 허>는 못보고, <라비 앙 로즈>는 보았지만,
<라비 앙 로즈>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그녀의 여우주연상 수상에 반대하지는 못하리라.



또 하나의 이변이라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틸다 스윈튼.
우리나라 관객들이 흔히들 케이트 블란쳇(블랑쉐)과 많이들 해깔려 하는 틸다 스윈튼은, 흥미롭게도
그녀와 함께 후보로 올라 수상을 하였다. 이 역시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으로 분한 케이트 블란쳇의
수상이 점쳐졌던 부분이었는데(더군다나 여우주연상에도 동시에 노미네이트 되었었기 때문에),
그녀의 수상은 하나의 작은 이변이었다. 그 동안 참 여러 영화에서 다양하고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틸다 스윈튼이었기에,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의 팬이지만, 그녀의 수상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내가 뽑은 오늘 아케데미의 승리자! 원스의 그와 그녀!
사실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다 이글로바가 주제가상 후보로서 'Falling Slowly'를 공연한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마치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그들의 공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펼쳐질 줄이라고는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공연 만으로도 흥분된 상태였는데, 주제가상 마저 수상을
하다니!! <마법에 걸린 사랑>이 3개나 후보에 올리기도 했지만, 미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디즈니식 곡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마법에 걸린 사랑>이 수상하지 않을까 했지만, 원스가 수상자로 불려지고
눈물을 글썽이는 글렌 한사드를 보니까 나도 절로 눈물이 글썽거렸다.
예전 할리 베리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때, 스필버그가 드디어 감독상을 받았을 때, 포레스트 휘태커가
수상했을 때도 감동적이었지만, <원스>가 수상했을 때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인냥 이 편에서 응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르케타가 미처 수상소감을 다 하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왔었는데, 나중에 다시 그녀를 불러
소감을 말하게 하는 장면은, 아카데미를 여러번 보았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만큼 아카데미와 미국영화계가 이 작은 영화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었던 작은 해프닝이었다.


코엔 형제의 영화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탄 것도 좋았고, 나의 <원스>가 주제가 상을 받은 것이
무엇보다 기뻤으며, <주노>가 이변을 못 일으킨 것이 조금 아쉬웠던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p.s - OCN은 81회 부터는 진행자를 바꿔야 할듯.
        이무영씨는 너무 자주 틀려서 더 말할 것도 없고, 정지영씨 역시 논란을 잠재우며 컴백하기엔
        실수가 많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