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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 (Suffragette, 2015)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Suffragette)' 무리의 이야기를 그린 사라 개브론 감독의 '서프러제트'는, 근래 개봉했던 스티브 맥퀸의 '헝거 (Hunger, 2008)'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 (Selma, 2014)'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응당 누려야 할 권리 혹은 자유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투쟁 혹은 그 투쟁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영화 속 런던의 배경 역시 20세기 초로 아주 가까운 과거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올해가 되어서야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근 과거의 이야기 혹은 현재 진행형의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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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는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모드 와츠라는 평범한 인물이 어떤 일들과 변화를 겪으며 투쟁의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로 변모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주목한다. 이런 구조는 전형적일지 몰라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쟁이나 운동에 큰 관심은 없었던 평범한 인물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결국 서프러제트가 되는 이야기는 반복이지만, 투쟁 혹은 운동에 있어서 이 반복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를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선택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와 운동을 하거나 투쟁을 하는 이들을 그저 원래 그런 사람들로 생각하거나, 특별한 이해 관계가 있어서, 성질이 그러해서 그러는 거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수 많은 사고 혹은 피해로 인해 거리에 투사가 된 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평소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역시 누군가 정해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로만 알고 있었던 모드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면서 운동에 뛰어 들게 되는 것처럼,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평범한 이가 투쟁해야 한다는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이미 여러 차례의 반복이 있었음에도 재차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직도 다수는 내가 자의 혹은 타의로 인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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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묘사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공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하거나 하는 종류의 고통 보다는 오히려 주변과 가족으로부터 겪는 이질감과 몰이해에서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 갈등에 주목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중요성 보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투표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과 억누르려는 방향성을 갖고 있을 때, 나서서 피해를 감수하거나 투쟁하기 보다는 그저 조용히 침묵하기를,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은 침묵하기를 바라는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는, 모드에게 그 어떤 무력을 통한 폭력 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파고 든다. 시위를 하다 경찰에게 잡힌 모드를 풀어주면서 '체포하지 말고 그냥 집 앞에 내려줘. 남편이 알아서 하게'라는 식의 대사는 이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사 중 하나다. 그렇게 평범한 인물이 가족과 소중한 아들, 직장 등 모든 것을 잃고, 누군가는 목숨을 통해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반면 그 무언가를 남성들은 너무 쉽게 소유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당함, 너무 쉽게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이들의 무지함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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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서프러제트'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역사 속 투쟁으로 읽을 수가 없다. 최근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여성 혐오 범죄를 비롯해, 다른 곳도 아니고 '서프러제트'의 상영관에서 벌어진 여성 혐오 및 비하, 폭력 사건은, 솔직히 내가 지금 어떤 수준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서프러제트'는 누군가가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실은 그것들을 싸우지도 않고 애초부터 갖고 있어서 자신만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과, 왜 이것들을 싸워야만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역사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이들이 그것을 행동으로 거침 없이 옮길 정도로 사회의 분위기가 썩어버렸다는 것에 한심함 마저 든다. 지금은 우리 사회는 후퇴해도 너무 후퇴했다.



1. 벤 위쇼는 출연하는 지도 몰랐었는데 반갑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되네요

2.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아온 많은 것들에 대해 적지 않은 수가 혐오 혹은 분노를 느낀다는 걸 근래 종종 느끼게 되어 당황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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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 2009)
꿈 그리고 동반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등을 연출한 노라 애프런 감독의 2009년 작 <줄리 앤 줄리아>는 아무래도 연출을 맡은 그녀의 이름보다는 주연을 맡은 두 여배우의 이름이 더 솔깃 하는 작품이다. 노라 애프런의 전작들이 특히 별로였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두 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소설이 있는)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것이 고스란히 그녀의 공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역시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아니 유일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두 명의 배우 때문이었다. 아마도 현존하는 여배우들 가운데 연기 내공으로 따지자면 동사서독 쯤 될 메릴 스트립과 평범한 듯 하지만 자신 만의 영역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에이미 아담스가 그 주인공이다. 잘 알다시피 이 두 배우는 이미 2008년작 <다우트>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는데(참고로 <줄리 앤 줄리아>는 이 두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때와 이번 작품의 양상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메릴 스트립의 실로 무시무시한 연기력과 이를 맞서 겨루기보단 다른 방식의 영리한 연기를 선보이는 에이미 아담스의 모습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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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 배우가 좋아서 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감상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이야기에도 제법 감동하고 나온 경우였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쉽게 접하기 힘든 독특한 이야기 인 것은 또 아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매우 전형적이진 않지만 어쨋든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이고 별다른 클라이맥스도 존재하지 않는, 스토리상으로는 제법 심심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되게 우스운건 몹쓸 감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극중 인물처럼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별 것 아닐 것 같은 장면에서 뭉클하기에 이르기까지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설의 프랑스 요리 셰프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의 이야기와 뉴욕을 살아가는 평범한 공무원인 '줄리(에이미 아담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두 이야기는 다른 세대와 시간의 이야기이지만, 줄리가 동경하는 줄리아의 이야기는 줄리가 막 요리 블로거로서 첫 발을 내딛는 시점에서 동일하게 시작된다. 즉 줄리에게 줄리아는 영웅같은 닮고 싶은 존재이지만, 영화의 구성상은 줄리아 역시 줄리처럼 이제 먹 요리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교훈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다'가 될 수도 있겠고, '시련 없는 성공은 없다'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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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마도 노라 애프런이 말하고 싶었던 깊은 뜻은 이런 전형적인 교훈적 메시지보다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옆에서 항상 아무말 없이 지켜봐 주는 그들의 동반자다. 이 둘에게는 자신이 미국인들을 위한 프랑스 요리 책을 완성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블로깅을 응원해주는 남편이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이야기는 줄리가 줄리아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줄리 부부가 줄리아 부부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을 듯 싶다. 물론 이제 막 요리를 배우고 책을 써가는 줄리아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의 남편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된다(여기서 완벽이란 경제적 능력 따위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지원하는 동반자로서의 의미다). 그에 반해 줄리는 열심한 블로깅 가운데서도 가끔 흔들리기도 하는 한편, 그의 남편 역시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줄리를 응원하는 듯 하지만 너무 블로깅에만 몰두하는 줄리에게 질투섞인 투정을 부리고 다투기도 한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핏보면 줄리아 부부에겐 커다란 힘든 일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저 줄리아의 호탕하고 기분 좋아지는 '호호' 웃음처럼 이들 부부에겐 항상 좋은 일만, 설령 좋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항상 긍정적 마인드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이런 긍정적 마인드는 줄리아에게 있어 지배적인 것이긴 하지만, 영화는 길지는 않지만 이들의 역경을 잠깐이나마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줄리아는 임신을 했다는 동생이 연락에 말없이 눈물 흘리는 것으로 봐서 (그리고 자녀가 없는 것으로 봐서) 자녀를 갖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듯하고, 남편 역시 항상 아무 일 없는 듯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국가에게 불려가 의심받고 조사를 받는 등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련을 딱 이렇게 스쳐가듯 한 장면으로만 묘사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임팩트가 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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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나름 가깝게 다가왔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블로그와 서른이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영화 속에서 흔히 불만족스러운 현실과 정체된 삶 등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이 작품에서 역시 서른은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에 비해 작아만 지는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나는 무얼 잘하고,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스무살 시절과는 또 다르게 고민하게 된다. 사실 따지고보니 영화 속 서른이 다가왔다기보다는 그 서른에 시작하는 것이 블로그여서 인듯 하다.

극 중 줄리가 블로그를 처음 만들고 목표를 잡고 블로그 이름을 짓고, 개설 버튼을 누르는 과정을 보며 새삼 내 블로그를 처음 만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달까. 그것과 동시에 나는 처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가 하는 회상에 잠기게도 되고, 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블로그를 이용하고 혹은 즐기고 있나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과연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듣고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그 때, 처음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주었을 때, 방문자 수가 점점 늘었을 때 등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겪게 되었던 소소한 감정들을 직접적인 장면으로 만나니 이것 참 새롭고 한편으론 감격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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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잘한다 못한다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어버린지 이미 백만년 전의 일이니 추가할 말이 많진 않겠지만, 관객들은 또 한 번 그녀가 부리는 마법에 농락되어 메릴 스트립 = 줄리아 차일드를 그대로 믿게 되어버린다. 그 특유의 억양이나 발음 등은(아마도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척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절로 미소짓게 될 정도였으니, 메릴 스트립이 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야 더 할말이 있을까(이야기의 반절만 맡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에이미 아담스 역시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라 그런지 메릴 스트립과 투 톱으로 진행된 작품에서도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메릴 스트립처럼 압도하는 연기는 아니었지만 현실적이고 있을 법한 줄리라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뇌리에서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의 공주옷이 지워지질 않아서인지 너무 평범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에이미 아담스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배우만 믿고 보러 갔다가 찔끔 감동마저 받고 온 그런 영화였다.


1. 이 영화가 끝나고서는 저녁으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갔었습니다. 안 갈 수 없는 영화였죠 ㅎ
2. 이 영화가 또 한 번 찡했던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온 실제 주인공들의 에필로그 자막 때문이었는데, 줄리아는 언제 세상을 뜨고 그 후 몇년 뒤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는 자막이 특히나 슬펐던 이유는, 줄리아가 먼저 떠난 뒤 몇년을 남편은 얼마나 외롭게 보냈을까가 절로 걱정되서였어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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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트 (Doubt, 2008)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이 작품 <다우트>는 정말로 오로지 이 배우들의 이름들만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던 영화였다. 최근 <맘마 미아!>를 통해 수준급의 노래실력과 색다른 연기변신을 통해 역시 헐리웃 최고의 명배우임을 새삼 확인시켰던 메릴 스트립과 <카포티>로 비로소 더 큰 인정을 받게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카포티>이전에도 그의 연기는 항상 최고였다), 그리고 <준벅>과 <마법에 걸린 사랑>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에이미 아담스까지. 이 영화 <다우트>는 원작인 연극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들만 믿고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고, 결과적으로도 그랬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바로 '의심'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통해 매우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성니콜라스'라는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며,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수녀가 교장을 맡고 있으며,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이 곳의 주임신부이며,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 역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교훈으로 삼는 무서운 교장이자 의심이 많은 수녀이고 이에 반해 플린 신부는 술을 즐기고 아이들과도 격없이 지내는 것들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제임스 수녀는 말그대로 주께 모든것을 바치기로 종신서원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듯한 순수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플린 신부는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론을 하게 되는데, 모든 일에 날이 서 있는 듯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왜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플린 신부가 강론을 했을지,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임스 수녀조차 플린 신부가 학교에 새로 전학온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와의 관계를 서서히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이 세 인물의 갈등구조에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는 인물들 간의 세력다툼과 갈등에 대한 묘사가 몹시도 매력적이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진보적 성향의 플린 신부는 어찌보면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정확한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신부와 수녀의 관계이면서도 한편으론 학교의 교장으로서 더 높은 지위임을 확인시키려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이에 은근히 신부로서 수녀에게 지지 않으려는 플린 신부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는 교장실을 배경으로한 장면에서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설탕 같이 단 것은 죄악시 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설탕을 무려 3개나 타서 먹는 플린 신부, 연필을 고수하는 수녀와 볼펜을 선호하는 신부, 교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교장의 자리인(그러니까 알로이시스 수녀의 자리인) 곳에 앉는 신부와 이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생각하다가 플린 신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냉큼 자리에 앉는 수녀의 모습까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소소한 표현들만 봐도 이 두 인물이 얼마나 다른 캐릭터인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자신 만의 세계가 확고한 이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순수한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제임스 수녀답게 그는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몹시도 갈팡질팡 한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플린 신부를 함께 의심했다가 플린 신부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시 알로이시스 수녀를 의심하게 된다.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의 능동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간의 힘겨루기에 있어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작용되고 있기도 하다. 둘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인 제임스  수녀를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 드는 것이다. 결국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진심에 서게 되지만, 그렇다고 플린 신부가 일종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 <다우트>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제목인 '의심'에만 집중할 뿐 '진실' 자체에는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스릴러였다면 바로 그 진실에 집중해서 플린 신부가 정말 도널드를 비롯해 예전 교구에서도 그렇고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으로 인한 오해였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마무리했겠지만, <다우트>는 진실 자체보다는 제목처럼 '의심'이라는 것에 더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보다는 의심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과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플린 신부를 의심하는 수녀의 말에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반적인 대답으로 대응하던 밀러 부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플린 신부의 잘못을 얘기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결국 본심을 이야기하고 만다. 그 본심인 즉슨 플린 신부가 실제로 아이를 유혹했던 그렇지 않았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널드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이미 여러 학교들을 전학다녔었고, 성 니콜라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조금만 더 서로 눈감고 지내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 그리고 플린 신부가 아이를 유혹했다 하더라도 도널드가 신부에게 지금처럼 의지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고 얘기하는 이 장면은, 실체보다는 그저 자신이 믿는 그대로 이루어만 지면 상관없다는 나약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시퀀스였다.

영화의 마지막 플린 신부는 더 좋은 곳으로 일종의 승진이 되어 부임하게 되었고, 잠시 아픈 오빠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온 제임스 수녀에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울면서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과 믿음에는 결국 아무런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막연한 확신과 선입견을 통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도 완벽히 옳다고 확신할 만큼 강한 자기 최면을 걸어온 것이다. 영화 내내 그 어떤 공포영화의 캐릭터 못지 않는 강한 포스를 내 뿜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니, 결국 가장 나약한 캐릭터는 알로이시스 수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의심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그녀의 눈물의 고백은, 특별한 케이스라기보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컴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과 여러가지로 맞지 않는 이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등은 어찌보면 가장 태생적인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어쩔 수 없는 의심스러움을 결국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구실들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왔던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수녀가 된 것은 어쩌면 이런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 행동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실체없는 의심에 가득차 있는 그녀에게 절대자인 '종교적 믿음'은 분명히 편안한 도피처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만큼 <다우트>의 강점은 연기력에 근거한 전개 방식에 있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작품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언성을 높여가며 열연을 펼치는 장면은, 마치 액션영화의 '듀얼'신을 보는 듯한  치열함과 임팩트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으며, 아무런 영화적 장치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극중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을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이지만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처음부터 맡기위해 정해진 배우처럼 또 한번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서 객석 여기저기서 너무도 동요된 나머지 혀를 차거나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로 (마치 아주머니들이 일일연속극 속 나쁜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를 실제 나쁜 사람인걸로 오해하는 것처럼),  어찌보면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은 깊은 연기 내공을 그야말로 '시전'하고 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서두에 얘기했듯이 대중들에게 늦게 인정받았을 뿐이지, 이미 최고의 연기를 여러 번 보여주었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능글맞게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 역시 그 답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도 선과 악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마스크와 연기력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되는데, 의심을 받고 있어 관객조차 이것이 의심인지 진실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플린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워낙에 쟁쟁한 두 배우 덕에 조금 소외된 듯한 경향도 있지만, <다우트>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영화 속 제임스 수녀를 통해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순수한 표정 연기와  두 거대한 주장들 속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캐릭터를 떨리는 눈동자와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나 영화의 내용적인 면들에서도 은유적을 표현되듯이 <다우트>는 삼각관계 혹은 삼위일체의 구성을 담고 있는 영화이고, 그 축의 당당한 하나는 바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마법의 10분'이라고도 표현했듯이 극중 도널드의 엄마 역할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가 메릴 스트립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비올라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다우트>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연기를 통한 생각해 볼 거리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중견 배우들의 최고 수준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고도 넘치며,  무엇보다 관계와 갈등, 과정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한줄평 : 최고 연기 내공의 고수들이 펼치는 의심과 확신의 나홀로 줄다리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iramax Film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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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미아! (Mamma Mia!, 2008)
아바(ABBA)라서 더욱 행복한 뮤지컬


뮤지컬 장르라 하면 그 어느 장르를 제쳐두고라도 무조건 보는 저로서도 이상하게 처음부터 끌리지는 않았던
영화가 바로 <맘마 미아!>였습니다. 뭐랄까 이건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어려운 좀 이상한 선입견이 있어서였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오붓하게 볼 영화가 없을까 찾아보던 중, 딱 알맞은 시간대에 위치하고 있는
<맘마 미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 아바의 음악이 잔뜩 들었다니까 음악만 듣다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겠지'하는 생각에 극장을 찾게 되었죠. 그런데 이런 설렁설렁한 관람 전 분위기는 영화가 시작되고
소피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I Have a Dream'을 부르는 첫 장면부터 바로 고조되고 맙니다.
'I have a dream~ a song to sing~'하고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청량한 목소리로 별빛 쏟아지는 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 첫 장면부터, '아, 이 영화를 내가 왜 기대하지 않았던가. 다른 이도 아니고, 뮤지컬
영화에 광팬인 내가!'하는 뒤늦은 자책을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극장에서 관람하게 되었으니 너무 늦은
후회는 아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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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절대 스틸 사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뭐 일단 간단하게 그룹 아바(ABBA)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스웨덴 출신의 4인조 혼성그룹으로서
Bjorn Ulvaeus, Agnertha Faltskog, Benny Anderson, Annifrid Lyngstad로 이루어져 있으며 잘 알려졌다시피
브요른과 아네타, 베니와 애니프리드는 각각 결혼한 커플이기도 했죠. '했죠'라고 한 이유는 역시 잘 알려진
것처럼 이후 두 부부 모두 이혼을 하게 되었고, 결국 팀 해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바(ABBA)라는 팀 이름은 각 멤버들의 영문 이니셜 앞 자리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웨덴 그룹이긴 하지만 호주에서 워낙에 인기가 있던 탓에 몇몇 팬들은 호주 그룹으로 알고 있기도 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사실 제 나이를 따져봤을 때 7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아바 음악의 세대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아바의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는 힘을 갖고 있었고, 특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에,
70년대를 살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으며, 가깝게는 직접적인 그들이
앨범과 DVD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CF나 다른 뮤지션들의 커버를 통해 매우 익숙한 그룹이 바로 아바였죠.
아마도 국내에 아바의 음반을 직접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하더라도, 그들의 대표곡 몇 곡씩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 바로 아바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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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 사이프리스의 발견(혹은 재발견)은 영화 <맘마 미아!>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해야함이 마땅하다)

일단 이런 아바의 음악이 전체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 <맘마 미아!>는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입니다. 영국 출신으로 뮤지컬 <맘마 미아!>를 최고의 히트 뮤지컬로 만든 장본인인 필리다 로이드는
그 동안 무대에서만 보여주었던 <맘마 미아!>를 영화화 하기에 이르렀는데, 뮤지컬의 주요 스텝들을 그대로
데려와 만든 영화 <맘마 미아!>는 이런 그들의 장기와 손길이 짙게 묻어나는 뮤지컬 영화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무대에 익숙한 감독과 스텝들 답게 영화 <맘마 미아!>에는 다른 뮤지컬 영화들 보다 훨씬 더
공간을 활용하거나 대규모의 군중 씬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장점과 단점으로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데,
무대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화끈한 감동을 스크린에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아주 만족할 만한 장점으로 들 수
있겠지만, 군중이 동원된 장면에서는 다른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군중들이 노래에 참여하게 되는 동기가 살짝
부족한 점도 느껴지긴 했습니다(대부분은 아니고 초반 'Dancing Queen'을 때창하는 장면에서는 약간
생뚱맞은 군중동원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아주 사소한 개인적 단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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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뮤지컬 영화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초반 아만다 사이프리스가
또래의 여자 친구 둘과 함께 'Honey, Honey'를 부르는 시퀀스는, 뮤지컬 영화의 전형적인 구성 그 자체입니다.
대사를 주고 받는 노래하다가 완전히 노래로 빠져들었다가 장소를 이동해가며 노래는 이어지고, 이 과정
속에서 영화 초반의 스토리에 관한 소스와 캐릭터에 성격에 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구성을
갖고 있죠. 뮤지컬 영화에서는 구구 절절 스토리를 다 설명하거나(반대로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죠)할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대부분 노래로 설명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구성은
아무리 전형적이라 해도 뮤지컬 영화로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예전
뮤지컬 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최근 뮤지컬 영화들에서 이런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설정들이 등장하고 할때면
오히려 아주 반갑더라구요 ^^; 영화 <맘마 미아!>만의 특징을 꼽자면 다른 뮤지컬 영화들보다는 조금 더
무대 뮤지컬에 느낌이 강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감독과 스텝들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전 좀 더 '뮤지컬 영화'스러운 영화들을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맘마 미아!>의 스타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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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콜린 퍼스는 스물 넘은 딸을 갖은 아버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도 아직 20대
여성을 딸로 두기보다는 꼬시려고 할 것 같구요 ㅎ)


뮤지컬 영화를 보다보면 단순히 그 노래가 좋아서인 경우도 있지만, 어느 순간 '찌릿'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노래의 감정선과 영화의 감정선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을 바탕으로 그 극점
역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때 느끼게 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를 꼽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이름 만으로도 쟁쟁한 배우들이 제법 등장합니다.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아만다 사이프리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줄리 워터스 등. 일단 소피 역을 맡은 아만다 사이프리스를
얘기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요즘 세대들 보다는 7080세대들에게 더욱 공감을
얻을 만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주인공은 분명 딸인 '소피'가 아니라 엄마인 '도나'역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더 많은 세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아만다의 연기와
노래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직접 부른 영화 속 아바의 노래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완전히 신선한
뮤지컬 넘버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표현되고 있으며, 대사와 노래를 오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뮤지컬 연기를 선보입니다. 아직 85년 생으로 앞날인 창창한 여배우라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되네요.

이 영화에는 남자 배우 세 명이 누가 될지 모를 '아버지'가 되기 위해 경쟁합니다. 일단 메릴 스트립에 비해
남자배우들이 생각보다 별로 동년배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 몰입이 덜 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메릴 스트립은 49년생, 브로스넌은 53년생, 스카스가드는 51년생, 콜린 퍼스는 무려(?) 60년생이죠)
브로스넌은 실제로는 메릴 스트립과 나이차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워낙에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본드 역할을
오래한 탓인지 왠지 메릴 스트립을  더 누나 벌로 느껴지게 했고, 콜린 퍼스는 아직 아만다 또래의 아이가 있는
아버지 정도의 연령대로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래도 세 배우의 연기는 부족하지 않고 넘치지도 않고
딱 적당했던 것 같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노래가 아무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극에 빠지게 되면 모든게 다 이해되죠 ㅎ

많은 분들이 못 알아본 듯한 분위기였는데, 극중 도나의 친구 두 명중 한 명인 로지 역할을 맡은 줄리 워터스는
바로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에게 발레를 가르치던 그 선생님 역할로 열연한 배우입니다. <맘마 미아!>에서는
코믹한 조역을 맡아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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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배우는 단연 메릴 스트립입니다. 다양한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모두
평균 이상으로 소화해내는 훌륭한 배우 메릴 스트립은 아바의 노래가 가득 담긴 뮤지컬 영화에서도 진면목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만다 사이프리스처럼 정말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녀는 노래 실력
자체보다는 연기에 연장선에서 노래를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감정 연기에
아주 노련하기 때문에 그녀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노래 실력의 유무 따위는 이미 판단하기 어렵게 되죠.
'Dancing Queen' 장면에서, 어쩌면 메릴 스트립 답지 않은 활발함과 발랄함도 좋지만, 'The Winner Takes It
All'같은 장면은 그녀의 노래 실력보다는 연기력이 빚어낸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장면은 정말
그리스의 멋진 섬의 풍광과 함께 메릴 스트립의 연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없이 딸을
키워온 어머니가 갖는 딸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딸을 정말 끔찍이도 아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정말 잘 표현되고
있죠(그래서 인지 제 옆 자리에 앉은 한 여성관객은 이 같은 장면이 나올 때 눈물을 훌쩍이기도 하시더군요).
메릴 스트립의 한창 젊었을 시절의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질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더 멋진
여성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점에서 아만다 사이프리스와는 다른 이유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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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만약 내가 어린 시절 아바를 듣고 자란 세대였다면 아마도
이 영화가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요즘 세대들 보다는 7080세대들에게 더욱
어필할 것이라고 했던 것은 단순히 아바의 음악이 수록되었다는 것을 넘어서서, 7080세대들에게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없는 아바와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창 젊은이들이
아닌 이른바 '왕년에 잘나갔던' 중년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점도 있구요.
저는 아바 세대가 아님에도 만약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영화를 보니 조금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 가사 하나하나가 그리도 와닿을 수가 없더군요. 메릴 스트립을 비롯한 세 명의 여자 배우가
함께 부르는 'Dancing Queen'을 비롯한 모든 곡들은 정말 그 장면 만으로도 황홀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1,20대 여자 배우들이 나와서 아바의 노래들을 불렀다면 이런 감동은 오지 않았을 것 같네요.
아바의 노래를 더 살아 숨쉬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 세대가 다시 들려주는 모습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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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내에는 중년의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극장 분위기가 참 따뜻한게 느껴졌죠.
앞서 말한 그 '추억'이 있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단순히 뮤지컬 영화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지긋이 미소 짓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엔딩 크래딧과 함께 극중 배우들의
멋진 공연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메릴 스트립이 '한곡 더 할까요?'하자, 객석에 앉은 몇몇 관객분이 'yes!'하고
답하는 훈훈한 광경도 벌어졌습니다. 몇몇 분은 박수치며 노래를 따라하기도 하셨구요. 완전히 추억을 공유한
관객이 이렇게 영화와 하나가 된 광경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훈훈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른바 '아바'세대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던 것이겠지요. 아마도 나중에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주요 소재가 나온 영화가 등장한다면 저도 이런 추억을 공유하는 완전한 영화와의
물아일체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겠죠 ^^



1. 댄싱 퀸 시퀀스에서 피아노 치던 남자는 다름 아닌 아바의 멤버인 베니 엔더슨이며, 엔딩에서 월계관을
   쓰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꽃가루를 뿌리던 이는, 역시 아바의 멤버인 비요른 울바에우스
   입니다. 아바의 앨범 커버를 워낙에 많이 보았다보니 슬쩍 지나가는 장면이었음에도 이들이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영화의 자막이 매우 휼륭했습니다. 일단 영화 속 노래의 장면은 물론이고, 엔딩 크래딧의 공연 장면,
   그리고 공연 장면이 끝나고 그냥 크레딧만 나올 때 흐르는 곡에 까지 완전한 자막이 제공되었습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겠네요.

3. 개인적으로 'Dancing Queen'은 처음 들을 때부터 아련하고 애매한 감정이 들었었습니다.
   무언가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인데요, 묘한 아련함이 느껴지는 곡이랄까요. 영화 속 '댄싱 퀸'도 역시
   마찬가지 더군요~

4. 씨네큐브 1관에서 관람하였는데, 사운드가 중간중간 들락날락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5. 물론 스토리상 약간 치밀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뮤지컬 세상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구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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