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관객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을 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라면 단연 홍상수와 우디 앨런을 들 수 있겠는데, 두 감독의 공통점이라면 몹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다는 것 외에 거의 매 년 영화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포스터였는데, 그래서 끌리는 바가 적어 놓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디 앨런!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인데!'하는 마음에 보게 된 '블루 재스민'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굳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가 최근 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과 유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는 관객에게마저 냉정한 시선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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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의 줄거리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부자였던 한 여인이 금전적으로 한 순간에 몰락하며 자신의 뒤바뀐 처치를 인정하지 못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줄거리의 이야기들이 있다. 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와 그렇게 된 재스민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 영화에 마치 '매치 포인트'나 '스쿠프' 같은 스릴러 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일말의 사실은 반전이나 스릴러로 존재하기에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자체가 스릴러를 전혀 염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시선인, 이 영화가 이런 상황에 놓인 재스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 저 줄거리만 보면 대충 예상되는 바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부에서 멀어져 버린 주인공을 통해 그저 부와 명예가 부질 없음을, 혹은 명품이나 귀족같은 삶이 일종의 허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소박한 것에 소중함을 깨닫는 전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얼핏 보면 그녀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졌던 건 그녀의 변화가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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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스민을 묘사하는 시선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래서 재스민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허상과 그녀가 허상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던 사회를 동시에 다루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재스민을 두고 영화가 관객과 두고 있는 거리 혹은 메시지였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우디 앨런의 전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이런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극 중 로베르토 베니니가 등장한 일종의 유명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있고, 다른 에피소드들과도 사실상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감독 본인을 비롯해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 배우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메시지도 느껴져, 우디 앨런의 최근 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기도 했는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블루 재스민' 역시 이런 메시지 적인 측면이 겹쳐져 전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관객과 거리를 두고 묘사하지 않고 그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관객과의 접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포착해내, 그녀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관객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극 중 재스민은 명품들에 집착하고 (그것이 그녀를 말해주는 유일한 것들이기에), 부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세계를 동경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실제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들은 단순히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함이나 현실성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자극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스민과 마찬가지로 부에 대한 동경심을 무의식 속에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재스민을 동정하기도하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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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재스민의 동생 역할과 그녀의 거친 애인과 친구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극 중 재스민의 그것과 같은데, 이 상황을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재스민과 관객의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등장한 또 다른 부자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는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아, 저 사람도 사기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걸 극장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전형적인 줄거리였다면 그랬겠지만 우디 앨런은 관객의 이런 심리를 꼬집기라도 하듯 보기 좋게 여기서도 또 한 번 재스민을 코너로 몰았다. 


나 역시 그랬지만 부에 대한 동경, 그것이 허상이고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갖을 수 있다면 갖고 싶다는 생각(욕심)을 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영화는 이 자체를 꼬집는다기 보다는 갖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제서야 쿨한 척하며 '그래 그건 다 허상이지'라고 말하려 하는 관객을 한 발 물러서서 참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에 올라갈 때 마치 내 시커먼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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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는 '미드나잇 파리'가 더 좋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조금은 특별한 우디 앨런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 배우들의 참 좋은 연기들도. 케이트 블란쳇이야 너무 많이들 얘기하니까 더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언제나 참 자연스럽더라. 오랜만에 '해피 고 럭키'가 보고 싶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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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Oblivion, blu-ray)

클래식한 SF의 맛



조셉 코신스키의 최신작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은 그의 전작 '트론 (Tron : Legacy, 2010)'과 마찬가지로 장르 영화로서 SF영화의 클래식한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한 동시에, 가장 최신의 트랜드를 반영하려 애 쓴 작품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는데, 하나는 미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과 컬러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장소, 탈 것 등의 아름다움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SF 영화에서만 다룰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와 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먼저 디자인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오블리비언'은 미래를 묘사하면서도 큰 이질감 없이 연상이 가능한 비교적 근미래를 다뤄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지점을 영리하게 표현해 내면서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만들어 냈다. 소품이나 장소는 물론 배경에 이르기까지, 조셉 코신스키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표현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것들을 실제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CG만으로도 거의 실사와 동일한 수준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짜와 가짜, 실제와 허상이 중요한 테마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어쩌면 피부로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차이에 주목했고, 그 작은 차이는 관객들이 '오블리비언'의 세계관을 적은 설명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해냈다.






둘째로 주제 측면에서 '오블리비언'을 보다 보면 여러 SF 영화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경향은 단지 이 작품만의 특성 이라고 하기 보다는 근래의 SF 영화들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정하고 새로운 것 만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영화가 아니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든 거의 기존 SF 명작들이 다루었던 주제나 설정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 깊이가 남다르거나, 시각적으로 압도해야만 더 매력적인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블리비언'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분명히 모든 이야기를 다 마무리 했음에도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다루려 했던 '기억'에 관한 시선이 결코 스쳐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래 단락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의 스토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SF 영화를 여럿 본 관객이라면 다음을 유도하는 카메라 앵글만 봐도 '아, 다음은 어떻게 되겠구나'라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하퍼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잭 하퍼가 본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 영화를 두 번 보게 되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잭 하퍼의 내레이션이 얼마나 직접적인 복선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일반적으로 복제된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고민하거나 혹은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블리비언'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상대적인 논의보다는 무엇이 진짜를 진짜답게 만드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가 선택한 조건은 바로 '기억'이다. 만약 일반적인 경우라면 오리지널과 복제된 존재 간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오블리비언'에는 오리지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복제된 가짜들만 존재한다는 것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관객은 처음부터 이 가짜에게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왔기에 나중에 등장한 가짜 잭 하퍼와 달리, 처음부터 함께한 이 가짜를 사실상 오리지널로 판단하게 된다. 그는 오리지널 잭 하퍼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깨어있는 존재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 잭 하퍼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말 미에 '내가 바로 잭 하퍼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잭 하퍼를 완전히 인정해 버린다.





즉,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같지만 다른 존재들을 명확히 같은 진짜의 잭 하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에 가장 흥미로운 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른 복제 된 존재를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복제된 오리지널과 동일한 진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영화의 선택은 몹시 흥미로운 것이지만, 이런 흥미로움을 더 깊이 있고 매력적으로 표현해 내기엔 조금 부족했던 영화의 깊이 때문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스포일러 끝)






이렇게 민감하거나 철학적으로 여지가 있는 스토리는 드라마 장르보다도 더 치밀한 구성을 요구하게 되는데 - 최근 개봉한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그런 면에서 '오블리비언'은 세심한 작품은 아니다. 디테일한 퍼즐 맞추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디자인과 스케일을 내세우고 느슨하게 전개되는 영화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내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 한 번에 풀려 버릴 땐 시원함 보다는 소소한 해소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액션이 강조된 영화도 아니라 조금 어중간한 느낌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트론'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누가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오블리비언'은 꽤 괜찮은 SF 영화라고 말할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신뢰 가득한 배우가 참여해 부족한 부분을 훌륭히 채우고 있으며, 잘 빠진 곡선의 디자인들은 그 자체로도 황홀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볼 때 마다 조금씩 더 빠져드는 빅토리아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이야기도 '오블리비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일 것이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화질은 말 그대로 레퍼런스 급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블리비언'은 굉장히 시원하고 깔끔하며 질감까지 느껴지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영상을 담고 있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런 장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아이맥스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 보다 더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블루레이 유저들이 선호하는 쨍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영상 자체가 시원 시원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시원함을 쨍한 화질로 표현해 만족감을 더 극대화 하고 있으며, 섬세한 질감도 잘 살아 있어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의 느낌을 양쪽 모두 100% 전달해 낸다. 암부의 표현력도 우수한 편이며,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어진 것들을 촬영한 경우가 많아 더 살아있는 영상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화질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 작품이 공들여 만든 다양한 근 미래의 소품들의 그 우아한 곡선과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만 같은 그 질감을 영상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우수한 화질을 다양한 환경의 장면에서 각각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야외 장면이나 사막에 가까운 모래 위 장면, 적막한 우주 공간, 어두운 밤 수영을 즐기는 장면까지. 화질 측면에서 각각의 재미와 체크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점이 특히 블루레이로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Blu-ray : Audio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 급이다. 사운드 적인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은 대부분 드론이 등장하는 액션씬들인데, 드론이 내는 청명한 기계음들은 물론, 파괴력 넘치는 전투 장면의 사운드는 블루레이 사운드다운 임팩트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또한 버블쉽이 기체를 한 바퀴 빙 돌려 방향을 선회 할 때의 입체감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와~'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등뒤를 휘감는 사운드였다. 여기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M83의 영화 음악까지 더해져,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최근 타이틀 가운데 가장 높은 만족도를 선사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가장 먼저 톰 크루즈와 감독 조셉 코신스키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있는데, 아쉽게도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작품과 장면 장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상 한글 자막 미지원으로 즐길 수 없게 된 점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겠다.







'삭제 장면' 에는 총 4개의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대부분 본편에 수록되었어도 거추장스럽지 않았을 만큼 의미 있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잭이라는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이나, 빅토리아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후 줄리아와의 에피소드에 복선으로 활용되고 있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부가영상은 'Promise of a New World : The Making of Oblivion'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짧게 한 줄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영화로 보고 예상할 수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실제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제작 영상이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웠던 점들을 소개해보자면, 대부분 영화 제작이 결정되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컨셉 아트가 제작 활용되는 것과는 달리, '오블리비언'은 이 컨셉 아트로부터 시작되어 영화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 컨셉 아트를 실제 영화화 된 장면과 비교했을 때 상당 수준에 달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디자인 작업 물들이 영화에 초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가능한 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인데, 실제 크기의 버블쉽을 제작한 것은 물론, 주인공들이 대부분의 생활하는 공중 가옥의 배경이 되는 하늘마저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로 촬영된 다양한 조건의 하늘 영상을 대형 스크린과 다수의 프로젝터를 통해 완벽하게 하나의 입체 배경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M83이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전작 '트론'에서는 Daft Punk가 있었다면 '오블리비언'에는 M83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 출신의 이 일렉트릭/슈게이징 밴드는 영화 음악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또 한 번 발휘해 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최신 앨범 'Hurry Up, We're Dreaming'를 듣고 팬이 되기는 했지만, 영화 음악이라는 분야에도 잘 녹아들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는데, 그냥 무난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정도로 그들의 영화 음악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만약 아직 그들의 음반을 들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최신작 'Hurry Up, We're Dreaming'을 추천하고 싶다.


M83의 영화 음악이 중요도를 말해 주듯, 부가영상에는 별도로 대사 없이 M83의 스코어 위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M83 Isolated Score' 메뉴도 제공한다.





[총평] 조셉 코신스키의 '오블리비언'은 분명 아쉬운 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SF영화다. 영상과 사운드가 그 주된 매력 중 하나라는 점에서, 레퍼런스급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 블루레이는 영화관 못지 않은 - 어쩌면 더 좋은 - 감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빅토리아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처음 볼 때는 미처 다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에 숨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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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역사와 허구의 사이에서



'연애의 목적 (2005)' '우아한 세계 (2006)'등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 '관상'을 추석 연휴 느지막히 보았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더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한데, 송강호를 비롯해 백윤식,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까지 이름 만으로도 포스터를 부족함 없이 채울 면면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청산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관상쟁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대입한 펙션 장르를 취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역사와 허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부담 없이 추천할 만한 웰메이드 영화를 꼽으라면 어렵지 않게 '관상'을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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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이라는 장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영화들 보다 더 큰 흥미를 주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관상'은 전형적인(나쁘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 역사와 허구의 비중을 두고 봤을 때 전체적인 비중은 역시 실제 역사에 더 크게 두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나 전개 과정에서의 신선함은 아무래도 좀 떨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영화가 선택한 허구의 이야기, 즉 관상쟁이 내경 (송강호)의 이야기일텐데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을 제목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함이 엿보였다. 


초반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그 관상을 기가 막히게 보는 주인공 내경의 존재에 집중한다. 내경이 오롯이 관상에 집중할 때만 해도 영화는 균형을 잃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경이 관상쟁이를 초월한 한명회 못지 않은 책사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초반 흥미를 주었던 관상이라는 주제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관상이라는 소재가 이 역사적 비극 가운데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기대와 흥미를 갖게 했는데, 내경이 관상이 아닌 사건에 더 깊게 연루될 수록 그 가능성을 희미해지고 조금은 단순한 사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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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이것은 필히 운명론과 맞닿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전형적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치열한 운명론과의 대립이 주가 되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을 읽는 관상쟁이 내경. 역적 집안에서 벼슬을 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내경의 아들 진형 (이종석), 그리고 왕의 될 운명보다는 역적의 상을 하고 있지만 왕을 꿈꾸는 수양대군 (이정재)의 이야기들을, 치열한 각각의 대립으로 그렸다면 끝까지 강렬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비극을 그리는 방식은 역시 신파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역시 송강호의 열연 탓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지만,  영화가 처음 던졌던 관상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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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무래도 '광해'와 비교 혹은 연상 될 수 밖에는 없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관상'이 더 인상적이었다 (내게 '광해'는 아무래도 심심한 작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멋진' 배우들이 있다.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짧은 시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건 거의 배우들의 응집된 연기력 때문이었다. 송강호 연기는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이제는 좀 더 힘 있고 무거운 연기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고 (소시민 연기가 이제는 조금씩 지루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조정석은 너무 가볍기만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배우 본인이 갖고 있는 깊이가 더해져 무게를 만들어 냈던 것 같고, 존재 만으로 크게 서 있는 김종서 역할의 백윤식이나 김혜수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뭐 그래도 역시 '관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양대군 역할의 이정재였다. '신세계'와 '관상'의 이정재를 보면 특별히 연기력이 갑자기 나아졌다 기 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게 되어 더 돋보인 듯 했다.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는 양면성 보다는 오히려 완벽한 악으로 그려져야 했는데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선), 등장 장면에서 한 눈에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워낙 매력적이었기에 앞서서 그의 운명론으로 영화가 전개되었어도 좋았겠다는 바램도 들었었고. 



1. 한 번 실수록 세 단락 이상 썼던 글을 날린 이후로 다시 쓰는 거라 집중력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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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한국 영화 감독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故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인 '하녀 (1960)'가 드디어 블루레이로 발매된다. 그것도 크라이테리언 시리즈로! 이미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 오랜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복원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이 작품의 복원 작업을 진행했던 세계영화제단 (World Cinema Foundation, 이하 WCF)의 수장인 마틴 스콜세지로 인해, DVD가 아닌 블루레이로도 '하녀'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참고 지난 글 - 하녀 DVD리뷰 _ 기이한 그 남자의 대표작 '하녀'

http://www.realfolkblues.co.kr/1049




이번 '하녀' 블루레이는 '마틴 스콜세지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 (Martin Scorsese’s World Cinema Project)'라는 콜렉션 형태로 발매 될 예정인데, '하녀' 외에도 다섯 작품이 더 수록되어 총 6개의 작품이 함께 수록되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보는 바와 같이 단독 발매가 아니라 콜렉션 형태로 발매된다는 점인데, 마틴 스콜세지의 안목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하녀'에는 특별히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스페셜 피쳐로 추가될 예정이며, 부클릿에는 김경현 교수의 에세이도 수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블루레이 콜렉션에 수록된 작품들의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타이틀은 12월 발매 예정인데, 김기영 감독의 팬으로서 이건 구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외에도 크라이테리언의 9월부터 12월 사이의 라인업은 정말 영화 팬들이라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작품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 (Autumn Sonata, 1978)'가 9월 17일 발매예정이며, 로베르토 로셀리니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함께한 3작품 콜렉션도 9월 24일 발매예정이다. 10월에는 존 카사베츠 감독의 콜렉션도 발매 예정이며,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City Lights, 1931)'이 11월 12일,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Tokyo Story, 1953)'도 11월 19일 발매 예정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우리 선희 (Our Sunhi, 2013)

우리는 누군가를 알고 있는가



홍상수 감독의 신작 '우리 선희'는 그의 전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나 '다른 나라에서' '북촌방향' 등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작품이다. 흔히 어떤 좋은 것을 평가할 때 정반대의 개념을 들며, '이러면서도 이러하다'라는 평가를 하곤 하는데, 홍상수의 최근 작품들만큼 이러한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희'는 살짝 기대를 덜하기도 했었다. 홍상수 월드에 이미 녹아든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과 새롭게 합류한 정재영이라는 조합, 그리고 대략의 시놉시스는 '아, 또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선희'는 정말 또 한 번 큰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었다.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들을 통틀어 봤을 때, 개인적으로 '재미있다'라는 표현을 이렇게 매번 사용한 감독은 아마 홍상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정말 재미있다. 사실 보는 내내 그 재미에 흠뻑 빠져서 흥분이 될 정도다. 어쩌면 이렇게 단촐해 보이는 구성으로도 무궁무진한 재미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지, 놀라움과 부러움이 아니 들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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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최근 작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와 구성을 담고 있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두고 다른 시각의 버전을 포개어 논다거나, 시공간의 모호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 한다거나, 같은 인물을 두고 서로 모르는 다른 인물들이 벌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한 편으론 단순하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을 만들어 냈었다. '우리 선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엔 선희(정유미)라는 같은 인물을 두고 세 남자가 각각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과연 누군 가를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홍상수는 최근 작들을 통해 자신이 의문을 갖고 있는 어떠한 개념들(너무 일반적이라 우리가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들에 대해)에 대해 하나 씩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의 최근 작들을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대사들이 있는데, '이뻐' '착해' 등이 그렇다. 홍상수 감독은 이 일반적인 표현들을 담기 위해 반대로 복잡한 이야기 구성과 깊이를 들고 있다. 이쁘다고 할 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사람을 보고 이쁘다고 할 수 있는지. 착하다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 누군 가에게 착하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 그는 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주제를 최근 탐구해 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선희'는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를 안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정말 안다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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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의 작품들에서 특히 도드라졌던 또 다른 점은, 이야기의 소재나 방식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 있었다는 점인데, 즉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한 아주 개인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영화 감독이거나 영화과 학생들, 교수들 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홍상수는 자신이 실제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조금의 상상력을 더해 관객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는데, 우리 내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지 않듯이, 그의 이야기도 항상 새로움을 들려준다. '우리 선희'를 보면서 특히 더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단 극 중 인물들 가운데 하나를 자신으로 설정하지 않고 선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남자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각각 분배하여 결국은 자신이 살면서 후회스러웠던 행동이나 말, 그러니까 한 번 내뱉거나 실행해 버려서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세 명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했다. 즉, 김상중과 이선균, 정재영이 연기한 각각의 인물들은 두 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보면 서로에게 두 번째 기회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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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 셋이 선희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어 가는 방식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 가에게 선생님이나 선배가 되어 이야기를 해줄 때가 생기게 되는데, 그 말들이 나중에 생각하면 잘못된 이야기인 경우도 있고, 더 나아가 말하는 순간에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존심이나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일들이 종종 있다. 영화는 이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만이 볼 수 있는 이들의 두 번째 기회, 그러니까 직접적이진 않지만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을 통해 기회를 얻게 되는 두 번째 순간을 잘 보여준다. '우리 선희'라는 제목도 그런 측면에서 참 흥미롭다. 남자 셋은 각각 선희를 '우리 선희'로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선희는 이들에게 '우리 선희'였는지 아니면 누군 가에게만 그러했는지, 영화는 참 덤덤하게 이 과정을 묘사한다.


누군 가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우리는 과연 누군 가를 평가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두 질문은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과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 가를 평가할 수 있느냐는 얘기가 된다 (이러고 보니 홍상수의 전작들은 다 같은 맥락이었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의 딸도 아닌 선희를, 우리 선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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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는 홍상수 감독의 최근 작 가운데서도 가장 명확하고 대중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무언가 깊은 슬픔이나 화두를 떠안기 보다는, 오히려 '피식'하는 미소와 함께 '그래 맞아..' 라며 혼자 중얼거리게 만든다. 아... 정말 홍상수 월드의 끝은 어디일까. 금방 끝이 보일 것만 같았던 이 세계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세계라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만 같다.



1.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어요. 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어서 안달 날 정도. 그의 팬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 분들은 '우리 선희'를 보세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홍상수 영화의 정수는 그대로 인 흥미로운 작품이었어요.


2. 이제 이선균과 김상중은 얼굴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큭큭 거림이 ㅋㅋㅋ


3. 이민우씨는 이번 작품으로 거듭나려나 했는데 비중이 거의 없더군요. 은근히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쉬웠어요.


4.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이 곡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겠죠. 정말 신의 한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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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은 남자 이정재 특별전

(2013.9.24 ~ 10.6)



항상 좋은 영화들을 소개해주는 (그것도 무료로!)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배우 이정재의 특별전을 진행하네요. 개인적으로 이정재에 대한 느낌이라면, 사실 처음엔 '젊은 남자'나 '불새' '태양은 없다'를 비롯해 드라마 '모래시계'까지, 그냥 참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 배우 정도였다면, 작품을 거듭할 수록 특히 개인적으로는 최근작 '도둑들' 이후 부터 확실히 그 나이에 맞으면서도 본인 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더 끌리게 된 케이스에요.


이번 특별 전의 그의 대표작들을 데뷔 작 '젊은 남자'에서 부터 최근 작 '신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는데, 그의 전작들을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던 팬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자세한 상영 시간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히 28일(토)에 상영되는 '신세계'에는 이정재가 직접 참여하는 GV가 있을 예정인데, 아마도 발권이 가능한 이틀 전인 26일에 대부분의 티켓이 다 매진되지 않을까 싶네요. 참석하시게 될 분들 미리 부럽습니다 ㅠ


이번 '이정재 특별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koreafilm.or.kr/cinema/program_view.asp?g_seq=107&p_seq=706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

이기적 순수함의 안타까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랜 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가 한 손에 꼽을 만한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은 내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의 신작이자 마지막 작품(아마도)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내 편치 않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 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들이 쏟아져 나오든, 내 입장은 직접 보기 전에는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졸이며 보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아쉽지만 보는 내내 불편한 작품이었다. 혐오스러운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영화니까' 불편함은 없었던 나였는데, 이 작품은 '영화기 때문에' 불편한 경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간 성향이나 가치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논란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본능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그 논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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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근본적으로 반전을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말해왔으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 등 그가 '바람이 분다'를 통해 군국주의를 옹호했다거나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옳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들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은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그냥 이슈를 위한 제 3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시선일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했었다. 따지고 보면 미야자키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가치관에 대한 모순과 갈등은 계속 존재했었다. 그는 일관적으로 반전을 외치며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날 것과 탈 것,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비행기이자 전투기였다. 이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작품과 가장 비교될 만한 작품은 그의 전작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붉은 돼지'는 하늘을 나는 것과 전투기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 된 작품이자, 그 스스로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최대한 빗겨가려고 애 쓴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붉은 돼지'는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서, 어른의 드라마, 낭만과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해 낸 수작이었다. 그렇다면 '붉은 돼지'도 문제인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단 아름다움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포르코는 전쟁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고 이를 행동으로 표현한 인물이었고, '바람이 분다'의 지로는 회의 감은 갖고 있다고 봐야 겠지만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던 이었기 때문이다. 이 별 것 아닌 차이점이 '바람이 분다'의 역사 의식을 말해주는데, 이것은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갖고 있던 모순과 갈등이 적어도 일본인들을 제외한 (특히 아시아인들이) 이들이 기대하던 바로는 표현되지 않은 몹시 안타까운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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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을 설계한 지로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하고 군국주의를 옹호하려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최근 아베 정권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이면 고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는 '바람이 분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고민스럽다. 고민스럽다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고민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모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동경해 오던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든 설계자의 이야기를 언젠 가는 꼭 한 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앞서 여러 번의 은퇴 번복이 있기는 했지만, 평가를 떠나서 이 작품 만큼 그의 마지막 영화로 어울리는 주제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보니 그가 설계한 제로센은 결국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그 것은 일본이 피해자로서가 아닌 가해자로서 범한 전쟁이었다. 그것을 미야자키 하야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모르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의도적으로 전쟁에 관한 장면들을 피하는 한 편, 지로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 속에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는데, 전쟁 장면을 전혀 등장 시키지 않고 있는 점과 지로의 꿈을 지속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 그 꿈에 등장하는 이가 아름다운 비행기를 설계하려 했던 카프로니 백작이라는 것, 독일인이지만 히틀러 정권에게 쫓기고 있는 융커스의 이야기가 바로 그 것이다. 사실 난 이 영화가 논란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하야오가 전쟁을 피한 것처럼,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는 지로의 꿈 장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일본 소년'이라는 걸 특별히 강조하고 있고, 이후에도 관동대지진과 이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장면과 대사로 표현하면서, '일본'이라는 실질적 존재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언급하고 있다.


앞서 일본이라는 존재 역시 전쟁처럼 피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그렇게 해서 모순이 되는 요소에 대해 최대한 언급하는 것을 자제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즉, 하야오가 일본이라는 현실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반드시 이 모순에 대해 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굳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고, 이를 제외한 방식으로 자신이 추구하려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해 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예상이라기 보다 그랬으면 하는 바램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결국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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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엄청난 계산과 의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일부러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날 것에 대한 동경은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알 정도로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그의 전작들은 노인이 되어도 잃지 않은 순수한 동심이 있어서 가능한 순간들이 여럿 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는 그럼에도 순수함으로 평가할 수 없는 순진함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특히 이번 경우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순진한 것은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순수함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를 반드시 예상했어야 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어떤 결과를, 특히 다수의 일본인들 외에 한국을 비롯한 전쟁 피해 국가의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는 작품에 분명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정말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간과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심히 무겁고, 순수함의 발로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처사였다.


하야오의 논리는 이랬던 것 같다. 지로는 제로센을 설계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옹호하는 이는 아니며, 지로가 겪는 삶의 일화들을 통해 정의롭고 인정이 많은 면모를 부각하여 그가 결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로 스스로도 고뇌가 없지 않았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독일(나치)과 일본의 차별점 역시 이야기한다. 만약 지로가 자신이 순수한 의도를 갖고 만든 비행기가 침략 전쟁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 얘기는 수긍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이게 아니면 처음에는 몰랐으나 후에 어떻게 쓰이게 되는 지 알게 된 후 행동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였다면 역시 수긍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회피 정도가 아니라 공범에 가까운 행위이라는 점에서, 그냥 의도치 않던 결과로 그도 계속 고뇌하고 후회했다 라는 것 정도로는 면죄부를 얻기 힘들다. 더더군다나 지로는 자신이 만든 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의 동료에 말처럼 '우린 그냥 비행기만 만들면 돼'라는 건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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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것이 아름다웠던 그렇지 않던, 순수함의 발로이던 그렇지 않던, 지로가 만든 비행기는 본인도 알고 역사도 알 듯,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도구로 사용된 것이 사실이라면 지로라는 인물을 다룰 땐 특별히 조심, 아니 지금 시점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인지 더 면밀히 조사와 책임을 따져봤어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지로의 이야기를 개인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일까? 독일 국민들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독일은 패전 이후 분명한 전범처리와 국제 사회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최근에야 비로소 독일인 가운데서도 나치에 반대했던 이들의 이야기라던가, 전범국이 되어버린 이후 태어날 때 부터 원죄를 갖게 된 세대들의 고민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범에 대한 처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제 사회에 명확한 사과보다는 자위대를 조금씩 다시 정당화 하려는 움직임이나, 대한민국의 침략에 대해 정당화 하려는 우익의 움직임이 정부차원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해도 이건 너무 순진한 거다.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바람이 분다'의 이야기는 발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라는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아직도 가해자가 잘못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통에, 잘못한 건 맞는데 사실 그 안에도 이렇게 순수한 꿈을 쫓는 이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오해 없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라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생각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 작품이 어떤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더 배려있게 생각했어야 하는게 도리였다. 그가 진정 반전주의자라면 이건 옵션이 아니라 필수여야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순수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밀어 붙였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시기상조 였다는 것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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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람이 분다'에 짙게 깔린 역사 의식만 걷어낸다면, 난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한 손에 꼽았을 것이다. 영화적으로도 아쉬웠다는 많은 이들에 평가와는 다르게, 난 불편한 가운데도 지로의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마다, 이 작품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마무리 하는 작품으로서 최고의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품은 내게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그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보면 알 것이다'라는 말 때문에 일말의 믿음을 끝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위와 같았다. 아.. 내가 지브리 작품, 그것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이런 부정적인 글을 쓰게 되다니... 글의 부제를 '안타까움' 정도로 순화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라는게, 이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을 단정적으로 말해준다.



1. 오늘따라 '붉은 돼지'가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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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블루레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고독 속을 걸으며 악을 행하지 않고

홀로 걸어가는  숲 속의 코끼리처럼"...


2004년, '공각기동대'를 보고 한참 빠져있던 나는 그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노센스(Innocence)'를 극장에서 보고 또 한 번 깊은 카오스에 빠지게 된다. 그 때 당시에는 이 난해하다면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2013년에 다시 보게 된 '이노센스'는, 10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설 익은 것이었다는 것에 거부감 없이 수긍할 수 있었다 (그 얘긴 즉슨, 지금의 생각 역시 10년 뒤엔 스스로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단순한 속편이라거나 '공각기동대 2'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작품이다. 즉,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에서 펼쳐진 작품이지만, 오히려 '네트는 광대해' 라며 육체를 버리고 한 차원 더 나아간 쿠사나기의 이야기처럼, 한 걸음 더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전작이 쿠사나기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노센스'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 쿠사나기처럼 영화 스스로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가 비슷한 소재를 다룬 SF 영화들에 비해 특별한 점은, 사이보그, 전뇌 같은 SF적 요소들이 단순히 볼거리 위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닮은 형태로 만들어 낸 수많은 인형들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한 반성과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이 영화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인간을 그릴 때는 타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 자신으로서 묘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노센스'는 그 인간이 만든 존재인 인형(사이보그)들을 등장 시켜, 그들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과연 인간은 완벽한 존재인가?'라는 물음과 동시에 그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정은 결국 '나'를 버리는 과정, 더 자세히 이야기해서 '나'라는 존재의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수 많은 악(惡)한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노센스'는 이야기의 여러 지점에서 대사나 캐릭터 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비유를 들려준다. 인간이라는 것의 정의를 어느 시점에서 내릴 것인지. 태어나는 순간, 그러니까 아직 가치관이나 자아가 생성되기 이전 아이일 때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아라는 것이 생기는 순간 부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라 부르는 것이 완성이나 선(善)의 형성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순수(Innocense)를 잃어버리게 되는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영화는 계속 반문한다. 영화 속 반복되는 장면과 구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적 의미나 이를 통해 '나'라는 실존적 가치에 대한 의문 기호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끊임없는 반문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노센스'의 실질적 주인공이 '바토'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쿠사나기가 '공각기동대'의 마지막에 육체를 버리고 광대한 네트워크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반증하듯 쿠사나기는 굳이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이야기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바토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지가 이 작품의 핵심일 것이다. 쿠사나기와 바토는 사이보그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커다란 갈등과 의문을 갖고 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쿠사나기는 '나'를 버리고 어쩌면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고, 남겨진 바토는 고스트 더빙이 된 인형이 연관된 사건을 추적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함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마치 인간과 사이보그의 입장이 뒤바뀐 듯 바토가 불완전함을 스스로 드러낸 인간 군상을 불쌍한 듯한 표정으로(물론 그는 표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이 작품의 정서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더 중요한 건 바토의 이러한 시선이 인간다움에 대한 실망이나 포기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의 서두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 때는 이 이야기가 몹시 어둡고 우울하고 쓸쓸하기만 한 것인 줄로 알았었는데, 다시 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희망적이기까지 한 가능성의 작은 불씨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얼핏보자면 '이노센스'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의 여정 속에서 바토가 겪게 되는 인간들의 불완전함과 그와 반대로 한 차원 높은 다음으로 나아간 쿠사나기의 모습을 통해, 결국 인간 세상에는 희망이 없고 하루 빨리 '나'를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쓸쓸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은 어떠한가. 바토는 '킴'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인간들이 고스트 더빙을 통해 만들어낸 인형들이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상실감, 실망감이 더 깊어지긴 했지만, 바토는 이곳에 남는다. 전작의 마지막과 이 작품의 시작 시점에서의 바토는 분명 '남겨진' 성격이 강했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 시점에서의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남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바토는 그 모든 것을 겪었지만 그래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에 대한 재정립을 통해 더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노센스'가 쿠사나기와 바토의 로맨스 영화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바토가 기르는 강아지를 위해 일부러 좋은 사료를 애써 구하는 것 처럼, 쿠사나기에 대한 바토의 감정은 또 다른 '인간다움'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비록 정답은 없을 지언정 끊임없이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할 화두이기에,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가끔 돌이켜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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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 높은 DP시리즈 '이노센스' 블루레이





이번에 DP시리즈로 발매 예정인 '이노센스' 블루레이는 몇 가지 눈에 띄는 개선점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첫 번째는 역시 개선 된 자막을 들 수 있겠다. 기존 DVD의 자막이 주인공의 이름 조차 잘못 번역되었던(DVD에선 '버트'로 번역) 것에 비하자면, 이번 블루레이의 자막은 원문의 정보를 누락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서 다시 번역을 하는 과정을 가졌으며, 특히 철학적인 대사와 인용문이 많은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한국어 자막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본편은 MPEG5/H.264 코덱으로 화질이 향상된 신판(앱솔루트 에디션)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관련 부가영상이 몽땅 누락된 일본의 엡솔루트 에디션과는 달리 초판에 수록되었던 대담 및 메이킹 영상 등 중요한 부가영상을 이번 블루레이에 포함함으로써, 역시 DP시리즈로 제작된 '무협' 블루레이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의 판본과 비교해도 손꼽히는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 외에 아직 발매 전이라 직접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포함한 소책자가 정성껏 제작될 예정이라니, 이 소책자도 소장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한 몫을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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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색감의 표현력이나 노이즈 측면에서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었던 DVD의 화질과 비교해보면 역시 블루레이 화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특히 '이노센스'는 당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3D와 CG 그리고 실사에 가까운 표현 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블루레이로 감상하는 것이 조금 더 의미 있는 감상이 될 수 있겠다.







2D와 3D가 결합된 시퀀스가 대부분인데, 일일이 표현해낸 배경의 CG들의 디테일을 블루레이를 통해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이 작품이나 2001년 작인 '아바론'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그 영상의 이질감을 기억할 텐데, 그 이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블루레이에서는 좀 더 선명한 화질 덕에 오히려 이질감은 조금 덜한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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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6.1채널의 사운드는 DVD시절의 강력했던 DTS 사운드의 임팩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드 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공각기동대'에 이어 그 특유의 묘한 신비로움을 들려주는 코러스 곡은 이 작품의 성격을 아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날카로움과 공간감이 모두 잘 살아있어 오프닝과 퍼레이드 장면에서 사운드의 쾌감을 선사한다.






몇 장면의 총격 씬과 격투 씬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임팩트를 들려주며 사운드적으로도 크게 불만족스러움은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특성상 안드로이드 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인간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미세한 금속성 마찰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확실히 기존 DVD버전 보다는 훨씬 더 선명해진 작은 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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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으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연출을 맡은 니시쿠보 토시히코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많은 팬들은 이 어려운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들을 듣고 싶겠지만, 내용 적인 해석이나 메시지의 전달 보다는 기술적 측면의 에피소드나 소개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오시이 마모루는 특히 이 기술적인 측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음성해설 외에 '<이노센스>는 국경을 초월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전문가 대담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비록 HD영상이 아닌 SD영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이 작품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던졌던 메시지와 그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 '공각기동대'가 그 이후 헐리웃을 비롯해 수 많은 SF작품들과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영향이 어떻게 미치게 되었는지 좀 더 분석적인 해석들로 소개하고 있다. 약 45분 분량의 영상으로 대담이라는 제목 처럼, 다양한 분야의 반응과 평가를 만날 수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의 인터뷰와 더빙 현장, 그리고 가와이 겐지가 만든 영화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또한 칸 영화제에 출품했던 당시의 현장 영상도 수록되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노센스'는 오시이 마모루의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특보와 한국, 일본에서의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총평]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누군가에게는 걸작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화제작인 동시에 다시 한 번 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공각기동대'와 이 작품 이후의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작품들을 여럿 소화한 시점에서 다시 보는 '이노센스'는 분명 새로운 맛과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개선된 자막과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 된 화질과 사운드는, 이 새로운 맛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하는데에 부족함이 없는 도구가 될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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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 (Elysium, 2013)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를 떠올린 SF



전작 '디스트릭트 9'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된 닐 블롬캠프의 신작 '엘리시움 (Elysium, 2013)'은 단연 화제작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타이밍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전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 9'의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아쉬운 (단순한) 작품이었다. 닐 블롬캠프가 단편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는 두 계급에 대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엘리시움'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 TriStar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엘리시움'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년은, 어린 시절 함께 자란 한 소녀와 동경의 대상(엘리시움)을 꿈꾸며 언젠 가는 그 곳에 대려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된 현재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영화가 처한 두 가지 세계와 어린 시절에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엘리시움'이 간과한 것은 이 작품이 SF영화라는 점인데,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이 필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은 좀 그 과정에서 생략이 많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세계관과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얼핏 봐도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요소들이 너무 단순하게 '뚝딱'하고 진행되거나 결정되어 버리는 경향이 좀 심한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좀 관대한 편인데 (예를 들어, 아니 어떻게 저렇게 쏘는 데 주인공은 한 대도 안 맞을 수가 있어 라던지, 저 정도로 고도화 된 시스템이 저렇게 허무하게 해킹 되는게 말이 돼? 처럼), 그런 측면에서 봐도 이 작품은 좀 너무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쉽게 생각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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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닐 블롬캠프가 좋아하는 얘기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그 이분법적 세계관을 관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엘리시움' 역시 주인공 '맥스'의 이야기는 사적이고 영웅 심리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전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 영웅적 면모가 없다면 개인 사에 대한 공감대가 깊게 깔려야 할 텐데, 그 부분이 어린 시절의 짧은 플래시백과 작은 약속에 그친 것이,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후반부에 생각보다는 심심한 이야기가 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비유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의료보험이 정부를 통해 관리되지 않고 시장경제 상황에 맡겨진 형태인 터라, 의료보험의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수 역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정부 주도의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싼 보험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해결하고자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일명 '오바마 케어' 정책이 있으나, 이 역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엘리시움'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국 내의 의료보험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연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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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본 이가 반 농담 조로 '이거 약 타러 가는 영화 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어찌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지구 밖 엘리시움을 꿈꾸는 이유는, 부나 윤택한 삶 등의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치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 지구는 부를 갖고 있는 이들과 상류 지배 층이 모두 엘리시움으로 떠난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엘리시움에서 제공하는 치료 기기 (뭐든지 척척 고치는 만능 기계)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려면 엘리시움으로 가야 하는 데, 이 곳은 시민권 자격을 통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기에 여기서부터 허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 과정이 영화에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시민권이란 현재의 의료보험이나 다름이 없다. 보험 가입자만 의료 서비스를 (사실상)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시민권 자로 인식된 이들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속 현실과 겹쳐진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이분법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인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지구의 도시는 '디스트릭트 9'처럼 남아공이 아닌 미국 L.A다. 하지만 이곳에 남겨진 이들은 하나 같이 라틴계 혹은 흑인들이 대부분이며 백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은 현재 미국 내에서 의료보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빈민 측인 이민자들과 저소득 층인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엘리시움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델라코트 (조디 포스터)를 비롯한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들로 묘사되는 반면, 대통령이긴 하지만 힘없이 휘둘리고 있는 이는 흑인이자 히스패닉으로 묘사된 점은, 묘하게 현실과 겹쳐져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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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엘리시움'이 너무 노골적인 비유의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어 졌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비유가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반드시 품었다고 하기에는 역시 간과 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도 SF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냈던 그이기에, 이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전작에 비해 '엘리시움'은 확실한 판타지다. 영화 속처럼 모든 것을 리셋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엘리시움'의 결말이 '디스트릭트 9' 못지 않게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1.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불가 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잔인함 이더군요. 미래의 무기들도 그렇고, 몇몇 장면에서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야한 장면은 한 장면도 없어요.


2. 샬토 코플리는 전작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바로 그 캐릭터를 '엘리시움'에서 연기하고 있군요. 본인 스스로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ㅎ


3. 이런 설정은 오히려 긴 호흡의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배틀스타 갈락티카' 정도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4. 그러나저러나 '디스트릭트 10'은 언제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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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一代宗師 The Grandmaster, 2013)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처음 왕가위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이 양조위, 장쯔이 등과 함께한 엽문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기존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 영화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어느 정도 무협 액션 영화가 아닐까 라는 정도의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왜 그런 안이한 예상을 했었는지 답답할 정도로, '일대종사'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즉, 내가 이 영화를 예상했을 때 가장 간과한 것은 바로 감독이 왕가위 라는 점이라는 얘기다. '일대종사'라는 제목과 최근 들어 더 익숙해진 '엽문'이라는 인물 때문에, 스타일리시 하긴 해도 액션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지만,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마치 그의 전작 '동사서독 (東邪西毒 Ashes Of Time, 1994)'과 마찬가지로 무예의 정수를 기본으로 하되, 각 인물들의 외로움과 정적인 심리에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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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엽문(양조위)이 빗속에서 수 많은 상대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과 슬로우모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오랜 만에 무협 영화로 돌아온 그가, 다른 무협 영화들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액션 장면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엽문을 주연으로 하고 있는 영화답게(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왕가위의 무협 영화는 이랬을 확률이 높지만) '일대종사'의 액션은 정중동(靜中動)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즉, 빠르기나 힘의 표현과 과장 보다는 멈춰있는 이미지와 그 순간 상대 앞에 서 있는 인물의 마음가짐에 더 주목한다. 만약 이러한 캐릭터 내면의 묘사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그냥 제법 스타일리시한 무술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기법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이기는 하나 새롭다 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가위가 '일대종사'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액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왕가위와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왕가위는 양조위가 연기한 엽문과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의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 한 문파를 대표해야 했던 인물들의 대의 적 삶의 모습은 물론, 그 시대와 역할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삶과 무예라는 것의 근본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고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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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는 왕가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그 아름다움 만을 놓고 보자면 첫 번째로 꼽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그 아름다움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 적인 성취 외에 캐릭터의 마음가짐 (심리 상태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다. 양조위는 물론, 장쯔이가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은 '황홀하다'고 느낄 정도로 영화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을 때를 보여주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 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함이 깊게 묻어 나는 것이 '일대종사'의 매력이자 여운일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는 항상 이미지가 잔상 처럼 오래 남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동안의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극장을 나오며 기억에 남는 건 일대종사들이 오롯이 서 있을 때 이를 가능케 한 발 동작들과 그들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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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대종사로서 뚜렷한 이미지가 새겨 진 엽문과 궁이에 비해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는 조금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보는 중간에는 아마도 후반 부에 가서 엽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겠구나, 그래서 각각의 일대종사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겠구나 라고 예상했으나 영화가 끝난 뒤,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왕가위의 의도는 무엇 이었을까 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장첸의 캐릭터는 없어도 전혀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록,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를 적지 않은 비중으로 함께 그려냈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본래 예상했던 대로 만약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각자의 도장을 차리고 제자를 가르치던 엽문과 그가 만나게 되었다면, 이것은 너무 전형적이고 쓸쓸함과 아쉬움을 담은 이 영화에 정서와는 맞지 않는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왕가위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영웅이 되기 보다는 개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엽문과 궁이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각자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 어쩌면 이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진행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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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그리면서 시대와 무방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자칫 무책임한 것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시대에 무심한 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들이 겪어낸 시대를 미사여구 없이도 완전히 담아낸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 '동사서독'을 오랜 만에 다시 보고 싶다.



1. 이소룡과 관련된 장면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로빈 장면처럼 등장하더군요. 딱 이 정도가 좋았던 것 같아요.


2. 이 영화는 정말 장쯔이를 위한 영화입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과연 '궁이' 만큼 인상적인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지...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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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이 참 좋았어요. 영화처럼 너무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4.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물론 최고는 궁이와 마삼의 기차역 대결 장면), 엽문이 궁이의 아버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정중동을 제대로 표현한 장면이었어요. '영웅문' 등의 무협지에서 보던. 진짜 고수들 간의 대결을 영화적으로도 멋지게 표현해낸 장면이 아닐 수 없겠네요.


5. 쿵 리는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영화에서 본 줄 알았더니 바로 UFC 옥타곤 위 였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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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스토커 (Stoker)
거역할 수 없는 악마의 탄생


곧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함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Stoker, 2012)'는 우리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 더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 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스토커'는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분위기는 누가 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이미지와 정서가 극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아 바시코브스카 연기한 '인디아' 스토커의 성장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성장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보다는 소녀가 악마로서 탄생하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을 선택한 이유로 구체적이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 여지가 많아서였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서 인물들의 악마 성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다른 모든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오히려 소녀의 성장 드라마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스토커'는 확실히 한 소녀가 악마로 태어나게 되는 아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인디아가 아니라 어쩌면 그 주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스토커'의 백미이자,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디아와 찰리는 경쟁 관계인 동시에 스승과 제자이며,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치 그의 전작 '박쥐'에서의 상현과 태주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미묘한 관계를 그리는 데에 있어서 동떨어진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따듯함과 차가움이 계산되듯 매치되어 있는 집 안의 이미지 그리고 내러티브 상의 반전 포인트는(반전이라는 말은 빼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불안함과 우아함의 원인이자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 한다.






이렇듯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할 때가 더 매력적이고 집중도가 높았던 것 같다.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영화적 구도,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었던 작품이지만, 작품만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지 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 Quality


극장에서 '스토커'를 보았을 땐 화질이 특별히 좋다는 느낌까지 받지는 못했었는데, 블루레이로 보니 확실히 더 특유의 색이 잘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토커'의 색은 원색적으로 강렬하기 보다는 조금씩 톤이 다운 된 컬러가 주가 되는 편이라 오히려 더 화질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인데,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감임에도 흐릿하거나 불분명함 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만족스러운 화질이었다.







대부분 실내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실내 장면에서는 각 캐릭터의 방과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컬러가 잘 살아나고 있으며, 적지만 집 외부의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만의 디테일한 화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피부는 물론 파란 빛을 띄는 눈동자까지 아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장면들도 많은데 특별히 암부의 표현이 탁월하게 뛰어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음영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보여준다.


Blu-ray : Sound Quality


'스토커'에 대한 첫 인상은 비주얼 적인 것만 남았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작품이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효과와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극장에서 보다 작은 공간인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통해 이 점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도 어느 위치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울림이나 사운드의 공간감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감을 블루레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일부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삽입한 소리들은 더 날카롭게 들려주고 있으며, 대사들은 작은 소리들을 캐치해 내는 인디아의 능력에 맞춰, 지나칠 만한 작은 볼륨으로 섬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만약 '스토커'를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고 싶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사운드 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의 첫 번째로는 '삭제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 3개의 삭제 혹은 확장 장면이 수록되었다. 찰리와 인디아가 처음 만나 계단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는 확장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진 고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본편에는 없던 추가 대화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다음은 부가영상의 메인 피쳐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 : 감독의 여정'인데, 일반적인 제작과정 영상이라기 보다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담긴 부가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약 28분여의 영상을 통해 이 작품으로 처음 헐리웃 데뷔를 치른 박찬욱 감독에 대한 배우, 스텝들의 찬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는데, 여부를 떠나서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뿌듯한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가 '스토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여러 인터뷰가 등장하는 한 편, 영어를 못하는 외국 감독과의 작업을 두려워했던 스텝들이 그와의 작업을 통해 결론적으로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했는지도 전해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현지 스텝들과의 첫 작업이었음에도 평소 본인 작품의 성격과 색깔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현장의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자 역시 정정훈 촬영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 부가영상에서도 정정훈 촬영 감독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은 국내 버전에 맞춰 수록된 것이 아니라, 북미 버전에도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이 타이틀을 구매하는 전 세계의 팬들에게도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뿌듯한 부가영상이기도 했다.






'매리 앨런 마크의 사진 갤러리'와 '런던 극장 디자인'이 갤러리 형식으로 수록되었으며,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총 다섯 가지 주제로 짧은 영상 들이 수록되었다. 프로모션 영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네셔널 – 한정판 포스터 제작과정'이었는데, 일부는 사진 이미지를 가져다가 쓴 것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터 속 배우들의 이미지들이 모두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로 그 제작 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밖에 '비밀스러운 캐릭터' '감독의 비전' '스타일 디자인' '음악 창작'이라는 주제로 각각 짧은 영상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레드카펫 프리미어'와 '영화 예고편 & TV광고'가 수록되었는데, '레드카펫 프리미어'는 생각보다는 상당히 긴 분량 (15분)이 수록되어 여의도 CGV에서 가졌던 레드카펫 행사의 요모조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 해주는 박찬욱 감독과 미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총평]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평소 볼 수 있었던 그 만의 매력이 헐리웃 데뷔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의 말대로 대사로 전달되는 내러티브 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의 작법이라면 헐리웃에서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나온 '박찬욱'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블루레이 속지에 수록된 감독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여럿이 함께 보아야 하는 영화관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한 가정에서의 관람이 더욱 개인적인 꿈체험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악몽' 꾸시길 빕니다. – 박찬욱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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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

아름다워서 더 슬픈 인생의 굴레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를 보게 된 것은 라이언 고슬링의 그 표정을 또 한 번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데렉 시안프랜스와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했던 전작 '블루 발렌타인'은 지난 해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다시 한 번 이 둘이 만난 작품이라니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요새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인 데인 드한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브래들리 쿠퍼와 에바 멘데스, 레이 리오타까지 함께 한 작품이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게 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전작 '블루 발렌타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점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무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되,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연출력으로 빚어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난 뒤에도 쉽게 좌석에서 일어나기 힘든.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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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토바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루크(라이언 고슬링)를 따라간다. 루크의 삶은 희망도 내일도 없이 그저 반복 적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크는, 아이의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한 일종의 목표가 생긴다. 이로 인해 은행 강도 짓까지 하게 되고, 그러다 범죄 현장에서 경찰인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와 맞닥들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훌쩍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루크와 에이버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특이한 듯 하지만 사실 일반적이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고 할 만큼 전형적인 측면도 있다. 아마도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했다면 3류 드라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15년 뒤 두 주인공의 아들들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예상된 이야기라는 점의 익숙함과 유치함 보다는 오히려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루크의 잔상과 2대를 이어 온 이 슬픈 운명의 굴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물론 공감까지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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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데렉 시안프랜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두 주인공(넓게 보면 4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에이버리의 경우 경찰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한 것 뿐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본인의 직무를 다한 바로 그 사건 때문에 본인의 삶은 물론 자신의 아들의 인생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이버리가 겪는 일들은 더 사면초가의 상황 들이다. 그는 이를 영리하게 해결해 나가지만, 그렇다고 15년 동안은 물론 15년 후의 그의 인생이 결코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루크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함이다. 삶의 어떤 곳에도 의욕 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그에게 아들이라는 존재는 삶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정도의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해 루크는 어쩔 수 없이 더 큰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루크의 아들인 제이슨 (데인 드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제이슨이 행한 행동들은 분노에 의한 것 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는 굴레에서 온 것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제이슨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운명의 굴레에서 조금이 나마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전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묘한 인상을 준다. 희망과 슬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하지만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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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과 '드라이브'에 이어 고독하고 외로운 한 남자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데,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얼굴은 물론 삶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뒷 모습은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브래들리 쿠퍼는 라이언 고슬링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가까운데, 오히려 이 둘이 영화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다거나 명확한 대칭 점에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브래들리 쿠퍼는 딱 본인이 맡은 캐릭터 만큼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캐릭터를 통해 그의 연기가 얼마나 무르 익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바 멘데스는 이 둘에 비해 비교적 적은 분량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삶의 고단함을 한 껏 머금은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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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눈빛을 선사한 배우는 데인 드한이다. 이미 전작 '크로니클'을 통해 단숨에 가장 주목 받는 배우로 거듭한 데인 드한의 매력을 이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첫 등장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이 녀석 눈빛이 그 사이에 더 깊어졌구나!'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흡입 력이 대단했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서도 그의 못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데인 드한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감독은 그를 잘 활용하고 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여러가지로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 전작 '블루 발렌타인'에 이어 또 한 번 만족스럽고 자신 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이자, 라이언 중에 최고라는(?)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가득 만나볼 수 있으며, 데인 드한이라는 적어도 최근 내 게는 가장 뜨거운 배우의 더욱 깊어진 눈빛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 아,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더 출연하고 있어요. 바로 로즈 번인데, 그녀를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반갑더군요. 캐릭터도 나쁘지 않고!


2. 라이언 고슬링은 이렇게 이미지가 굳혀 가는가 싶은데, 보통 이러면 이제는 다른 걸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라이언 고슬링은 더 이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워낙 멋지니 굳이 변신하지 않아도.


3. 데인 드한은 정말 물건입니다. '크로니클'을 통해 발견했고, 이 작품을 통해 더 깊은 팬이 되었어요.


4. 그리고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장면을 이 영화에서 발견했어요. 레이 리오타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정말x100 무서웠습니다. 실제로 그가 나를 그렇게 쳐다본다고 생각 만해도 ㄷㄷㄷ 레이 리오타는 정말 무서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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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다시 도심으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단언컨대 신카이 마코토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호소다 마모루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이다. 심연을 파고드는 감수성과 아름다울수록 울컥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과 스토리 텔링은 나를 여러 번 울린 동시에 항상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도록 했다. 그런 그의 신작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2013)'의 소식을 처음 듣고, 올해 초 일본에 갔을 때 아니메페어에서 소개 영상과 부스를 보면서 '아, 이번에야 말로 그가 가장 잘하는 작법과 작화로 돌아오려나 보군!'하는 기대감을 더 갖게 되기도 했었다. 그의 전작 '별을 쫓는 아이'는 그의 팬들 사이에서 너무 지브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작화와 판타지 세계의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그 답지 않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별을 쫓는 아이'는 '초속5cm'와 같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으나 당시에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고, 시간이 갈 수록 주제곡 'Hello Goodbye & Hello'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되었다 (지금도 듣고 있음!).


그렇게 이번에도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은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영화였다. 이 세 가지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만족도도 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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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 오는 오전, 신주쿠 도심 속 공원에서 만나게 된 다카오와 유키노. 그 둘은 매번 비 오는 날이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학교와 현실이라는 곳에서 벗어나 있는 이 둘은, 점점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고대 하게 된다.


46분이라는 러닝 타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언어의 정원'의 스토리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초속 5cm'와 같이 긴 텀을 둔 감정의 변화와 심리 묘사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둘 사이의 감정과 이 감정이 싹트게 되는 날씨와 공간의 묘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심플 한 작품이 되기도 했다. 사실 '초속 5cm'나 '별의 목소리' 그리고 '별을 쫓는 아이'까지, 그 각각의 이야기가 더 울림이 컸던 건 주인공들의 사연의 절절 함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할애한 스토리 텔링 때문이었다 ('별의 목소리'는 25분짜리 단편이었음에도 그 절절 함이 잘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정원'의 두 주인공이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을 터뜨릴 땐 조금은 갑작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한 편으론 감정을 폭발 시키는 장면 없이 그냥 한 여름의 비처럼, 끝나버린 장마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버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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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깊이에 있어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는 참 매력적이었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작화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엄청난 디테일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특히 도심 속을 배경으로 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일단 작화 얘기를 떠나서 그의 작품은 도심을 배경으로 할 때, 우리가 흔히 놓치는 일상 속 장면들을 완벽한 영화적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인다. 매일 지나치는 지하철, 거리의 신호등, 교차로의 사람들, 심지어 방안과 집 앞의 평범한 풍경까지도, 신카이 마코토의 손을 거치면 무언가 감성을 잔뜩 머금은 곳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이 이 문구를 보면, 엄청나게 현실을 과장하여 표현 하나보다 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현실을 깨알같이 있는 그대로 (거의 보고 그리다시피) 표현하는 것이 이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이번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한 편으론 그의 이런 디테일 한 작화 수준이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제품들의 로고가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통 애니메이션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반대로 얘기하면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사물과 배경의 디테일에 유난히 더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거리에 세워진 광고 메뉴 판의 메뉴들까지도 표현되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그의 놀라운 작화와 디테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신주쿠를 한 두 번 다녀온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의 디테일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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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개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비'의 대한 표현이 참 좋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강도의 비가 등장하는데, 이거야말로 애니메이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비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과장 되었다기 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잘 살려낸 표현이어서 좋았다. 아마도 앞으로는 비가 내리면 적어도 한 번 쯤은 '언어의 정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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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신주쿠에 가고 싶네요. 저긴 이미 명소가 되었을텐데 이젠 좀 한적해졌을 테니 내년쯤 한 번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엔딩곡이 생각보다는 임팩트가 덜했어요. 전작들에 삽입되었던 곡 들이 워낙 강렬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곡은 그리 뇌리에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3. 아래는 올해 3월 도쿄 애니메이션 페어에 갔을 때 봤던 '언어의 정원' 부스




4. 또 아래는 지난해 3월 감독님이 내한했을 때 함께 사인도 받고 찍었던 사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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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질서와 균형, 굴레를 벗어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첫 번째 헐리웃 진출작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를 보았다. 두 번 보았다. 사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헐리웃을 통해 선보였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작품이자 초호화 캐스팅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 년 전에 구입했던 원작 만화도 일부러 개봉 전 보지 않은 것은, 오롯이 봉준호의 영화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와 '하지만'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두 번을 연달아 보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결론적으로는 '역시'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를 여럿 생산해 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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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개발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빙하기를 가져오게 되 인류가 오로지 영원히 달리는 열차 안에 존재하게 된다는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테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두 이기도 하다. 꼬리 칸에 살고 있는 빈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맨 앞 칸으로 전진해 이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를 향해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체제 전복의 텍스트로 보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보다는 오히려 질서와 균형 그 자체와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며, 인물들이나 한 칸 한 칸 전진할 때 마다 등장하는 그 다음 칸의 모습 역시 꼬리 칸의 모습과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주인공 커티스를 중심으로 한 꼬리 칸 사람들의 분노나 억울함의 표출 등이 아니라 (만약 이것이 포인트였다면 영화는 없는 시간을 할애해서 라도 꼬리 칸 사람들의 고통을 초반에 더 묘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전진할 때마다 더 확고해지는 균형과 질서에 관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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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서 부 터 맨 앞 까지 한 칸 씩 전진한다는 설정은, 마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처럼 한 칸 씩 전진할 때마다 더 강력한 적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거나 더 혹독한 조건을 만나게 돼, 결국 최종 보스와의 결투(?)를 자연스레 고대 하게 되는데, '설국열차'의 내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칸 한 칸 전진하는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꼬리 칸과 맨 앞 쪽 엔진 칸의 사람들만 서로를 인지하고 반응할 뿐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사람들은 이 반란이나 억압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만약 이 영화가 계급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열차 칸이 엔진 칸에 가까워 질 수록 상하 관계를 더 분명히 했을 텐데, 영화는 초반 꼬리 칸 사람들이 멀리 나마 볼 수 있었던 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계를 등장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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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중간 이라고 만 표현해도 될 정도로 꼬리 칸의 주인공들이 엔진 칸으로 전진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 과정 정도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그 칸의 성격에 따른 이슈나 담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커티스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윌포드가 보낸 이들이 부딪히는 배경 장소로 밖에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균형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여러 번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다양한 중간 칸 사람들의 모습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클럽에서 파티를 하고 약에 취하고(크로놀), 고급 식사를 즐긴다던가 여유롭게 사우나나 뜨개질을 즐기는 모습들은 '잘못된' 것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극 중 겪었던 것처럼 당황스러울 정도의 의아함을 주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 질서가 반드시 깨야 할 것이라든지, 잘못된 것이라는 일방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후반부 드디어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는 윌포드에게 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열차의 균형을 위해 질서 유지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윌포드의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편이다.  그렇게 윌포드를 증오 했던 커티스조차 그의 제안을 따라 그의 자리를 맡는 것이 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인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이 가장 다수를 만족 시키는 방법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윌포드의 이 방법은 쉽게 말해 맘에는 안 들지만 그 것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가 이 메시지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든 비유는 바로 수족관의 비유였다. 자연(自然) 상태가 아닌 한정된 상황에서 개체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조정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는데, 윌포드는 바로 이 원리를 열차의 모든 칸에 적용하여 남은 인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영화 속 사실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이렇듯 이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구세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대로만 가자는 단순한 텍스트는 아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구세대의 상황과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약 '설국열차'가 오롯이 커티스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더 단순 했을 테지만, 이 영화엔 커티스의 전진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다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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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는 내내 워쇼스키의 '매트릭스'를 떠올렸는데, 두 작품의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 편으론 비슷하지만 잘 따져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매트릭스'를 떠올렸던 건 열차라는 작은 세계(하지만 곧 인류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한 균형과 질서로서 성립되는 각 인물들과 열차 칸 들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윌포드는 마치 아키텍트와 같이 감정적이기 보단 전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티스를 네오와 같은 구세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구원이나 체제 전복, 계급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이기도 한데, 커티스는 오히려 이 거대한 질서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거대한 톱니 바퀴가 돌아가기 위한 제법 큰 또 다른 톱니 바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영화에서 이 자체가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윌포드와 길리엄이 같은 지향 점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였다는 점이나, 결국 이 거대한 질서를 위해 커티스가 윌포드의 후계자로 사실상 길러져 온 것 자체 말이다), 이 영화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달랐던 건 바로 그 다음, 그 다음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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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러한 구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의 결말을 보면, 무언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 허무함의 충격으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면, '설국열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상황에서 힘겹게 발휘된 주인공의 자유 의지를 통해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정말 현 시대의 암울함이나 미래의 어두운 면을 다루려 했다면, 아마 관객의 지지를 받았던 커티스가 결국 종극에 다다랐을 때 윌포드의 논리에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윌포드가 되고 마는, 그래서 열차는 계속 달리고 남은 인류는 또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둔 남궁민수와 요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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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남궁민수는 윌포드를 무찌르거나 엔진 칸을 차지하는 것 대신, 열차 밖을 탈출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미에 드러내는데, 이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극 중에서도 설명했던 이누이트 족 여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극 중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요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남궁민수의 부인이 바로 이누이트 족 여인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극 중 남궁민수가 열차 밖을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 여인의 행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녀가 열차 밖을 나가 몇 발자국 못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바로 깨닫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전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그 가능성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눈이 녹고 있는 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건, 영화가 허락한 열차 밖 세상의 주인공은 커티스는 물론이요 남궁민수도 아닌, 이 열차에서 태어난 요나와 열차의 동력으로 활용되었던 또 다른 어린 아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송강호와 고아성이 부녀 관계로 다시 등장하는 것 외에도 결말 부분에 있어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남겨진 아이라는 테마 때문일 것이다. 요나와 또 다른 아이에게만 생존 가능한 기차 밖 세상을 허락했다는 건, 이 영화가 어른이나 기성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론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반성의 잣대인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커티스에게도, 오래 전부터 열차 밖 세상의 가능성을 꿈꿨던 남궁민수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한 편으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의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극 중 커티스가 내내 자신의 오래된 잘못으로 인해 고통 받고 스스로를 옥죄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결말은 그들에게 진정한 속죄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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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움찔 하게 되었던 장면은 말미에 남궁민수가 급박한 상황에서 부탁을 하게 되는데, 요나가 정색한 얼굴로 '싫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요나의 성격이 좀 이상하고 유별나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동안 비교적 아버지를 잘 따랐던 요나가 극적인 순간에 와서 아주 단호하게 정 반대의 감정 표현을 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 새로운 시대에는 남궁민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설국열차'는 결국 구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빙하기라는 것 자체가 한 시대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구세대가 스스로 자초한 빙하기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종말(설국열차는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멸종, 종말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종말의 과정에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희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분명 희망적이다. 혹자는 그렇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의 앞에 또 다른 먹이 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이 등장한 것을 두고, 절망적인 결말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러닝 타임 내내 보여주었던 구세대의 종말 만으로도 이 영화의 결말이 맞은 상황은 분명 싸워서 이겨내 살아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일 것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그렇게 질서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굴레를 벗어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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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흥미로운 건 항상 여러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 그 자체에요. 봉준호 감독이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2. 세계관이나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게임 '바이오 쇼크'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3. 개인적으로는 틸타 스윈튼의 연기야 뭐 더 말할 필요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출연하는지도 잘 몰랐던 앨리슨 필의 등장이 더 반가웠어요!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4. 좀 아쉬운 점이라면 액션 연출이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었고, 영화 음악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했어요.


5. 뭔가 더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정리가 안되네요 ㅎ 기회가 되면 봉감독님 만나서 직접 인터뷰도 하고 얘기 나누고 싶네요!! ㅎㅎ


6. 마지막은 <설국열차> 관련 제가 시도한 인증샷 들 ㅋㅋ




프로틴 블록과 함께 한 진정한 4D 관람 인증샷!



'Are you 냄궁민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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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The Terror Live, 2013)

테러는 거들 뿐, 진실이 먼저다



의외의 복병이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했다면 하정우 외에는 없었던 그런 영화였다. 대략의 설정을 보고서는 오히려 신파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으로 볼거리 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스쳐가는 영화 정도일 거라고 예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하정우라는 배우를 좋아하기에 극장을 찾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제목과는 달리 테러를 생중계하는 것은 영화적 구성 요소로만 사용될 뿐, 감독이 전하려는 진심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메시지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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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봤을 때 '더 테러 라이브'는 장르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그 측면에서 시간을 지루하게 끄는 부분 없이 빠르게 진행되며 리듬감을 잃지 않는 것이 좋았다. 특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이 상당히 짧은 편이었는데 (사실상 영화가 시작되고 바로 사건이 발생하는 수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은 전개 과정에서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흔히 한국영화에서 자주 발견하는 부분이 바로 쓸대 없이 가족이나 유머 코드를 삽입해 한참을 후반부의 신파를 위해 깔아둔다는 점인데,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이런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관객에게 아직 마음에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사건이 터지는 방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교적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전달해주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 긴장감을 넘어선 긴박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긴박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빠른 전개가 결국 관객에게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거나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도 어쩔 수 없지 발생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지금의 영화가 선택한 방식이 더 나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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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기대했던 바는, 한강 다리가 폭파 되는 테러 그 자체와 '다이하드' 나 '폰부스'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테러범과의 대결 혹은 커뮤니케이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의 핵심은 테러를 통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감독은 테러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처한 사회 계급에 관한 문제를 하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중의적으로 등장하는 이 계급 사회의 묘사는 겉으로 보이는 테러 보다도 훨씬 더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계급 사회의 운영 도구로 퇴색되어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걸게 되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다시 금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메시지 전달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라 거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좀 더 세련되고 정리된 방법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반대로 직접적인 영화의 방식이 현재 관객들에게는 더 필요한 자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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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영화를 본 이와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됐다. 며칠 전 서울 시청 광장에서는 수 많은 인파가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이를 보도한 뉴스는 아무 곳도 없지 않았냐고. 우리도 영화를 통해 전지적 시점에서 극 중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 보았으니 이런 생각도 하지, 아마 영화 속 일반 국민이었다면 눈과 귀를 막혀 조작된 채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더 테러 라이브'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씁쓸하구만.



1. 이경영씨와 하정우씨가 동시에 등장하니 저절로 '베를린' 생각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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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블루레이

장인의 손길로 태어나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가 PLAIN에서 제작한 DP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영화 10편 중 한 편으로 꼽았을 정도로 인상 깊게 본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이었는데, 극장에서 보면서도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과연 출시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죠. 하지만 PLAIN과 DP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도 높은 퀄리티와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로 소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멜랑콜리아' 블루레이에 대해 사진 위주로 소개하려 합니다.






배경에 깔린 포스터는 블루레이 발매 전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을 때 받아온 오리지널 포스터인데, 그 퀄리티가 정말 대단합니다. 포스터 종이의 질이나 디자인의 수준이나, 들인 노력이나 퀄리티가 오버라고 느껴질 정도의 결과물이었죠. 하얀 배경의 책자는 개봉 당시 이벤트로 한정 배포했던 짧은 책자인데, 이것 역시 단순한 팜플렛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쏠쏠한 이미지들을 시원한 컷으로 만나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죠. 이로서 '멜랑콜리아' 3종 세트가 완성되었군요!






사진을 통해서는 100% 표현이 안되는 부분인데, 아웃케이스를 로얄 아이보리 용지를 사용했고 캘리그래피 타이틀 및 로고 실크 에폭시 처리를 하여 품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즉, 손으로 캘리그래피 부분을 만져보면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블루레이 아웃케이스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오버 스펙이 아닐 수 없겠네요.





아웃케이스를 제외한 블루레이 케이스와 소책자. 개인적으로는 블루레이 케이스의 메인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멜랑콜리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들 보다도 저 이미지가 더 마음에 들고, 일반적이지 않아서 더 좋구요.





케이스 안에는 블루레이 디스크와 작은 엽서 한 장이 수록되었습니다. 엽서의 뒷 면에는 PLAIN에서 출시될 다음 블루레이 타이틀인 '더 레슬러'에 대한 이미지가 수록되었습니다.





다른 DP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안에 일반판 속지가 추가로 들어있는데, 역시 DP용 버전이 더 마음에 드네요. 내부에는 프리오더에 참여한 DP 분들의 닉네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소책자에는 여러가지 글과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는데, 역시나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한 층 더해주는 내용들이 수록되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짧은 글도 만나볼 수 있고.





영화 평론가 최은영 님의 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의 미로를 탐험하는 기이한 안내서'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우울함의 끝과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글이 수록되는 입장에서는 내 글이 담긴 페이지에 어떤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나 하는 것도 관심 사항인데, 이번 메인 이미지는 너무 마음에 드네요. 제목과 잘 어울리는 강렬한 이미지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다양한 읽을 거리는 물론 라스 폰 트리에의 다음 작품인 '님포매니악 (The Nymphomaniac, 2013)'의 홍보 컷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완성도 높은 타이틀에 제가 조금이나마 참여하게 되어 다시 한 번 PLAIN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영화 팬들을 위한 좋은 작품을 블루레이로 꾸준히 소개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영화로서 가능해진 거대 로봇과 괴물의 육박전



최근 가장 기대 작이었던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을 보았다. '퍼시픽 림'을 기대한 포인트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거대 로봇과 괴물이 대결을 펼치는, 일종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실사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후자 만으로도 이 영화는 기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만, 전자인 '길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 때문에 기대치가 더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다면 좀 더 스토리 측면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더 나은,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물론 이런 과한 기대치는 그의 팬이기 때문에 발동되었던 것인데, 결론적으로 이 높은 기대치가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퍼시픽 림'은 충분한 만족감과, 적당한 수긍,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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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은 포스터의 홍보 문구에서도 말해주듯 규모와 스케일 그 자체인 영화다. 많은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그 크기에 포인트를 두곤 했는데, 아래의 비교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퍼시픽 림'에 등장하는 로봇들과 괴물들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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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버필드에서 살짝 등장했던 괴물이 겨우 반 정도 밖에 못 미치는 크기라니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까? 저 아래 세 번째 작게 표현된 검은 색이 바로 티라노사우르스다)


즉 이 영화의 핵심은 이 엄청난 크기를 관객이 실감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아이맥스 3D의 관람 환경은 적극 추천할 만 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저 그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도의 규모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워낙 그 크기 대의 두 존재가 결투를 하다보니), 그렇다 하더라도 보는 내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음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 엄청난 크기의 두 존재가 미사일 등의 무기를 통해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질을 통한 육박전을 벌인다는 것 만으로도 이 작품의 볼거리는 사실 충분한 편이다. 이 정도 크기의 괴물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영화라니! 예전 심형래 영화에서 보았던 사람이 공룡 탈을 쓰고 들어가 연기한 공룡과 영구의 육박전 이후에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다. 이것 만으로도 여름 블록버스터로서의 매력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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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팬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라면 전반적인 이야기의 구조나 전개에 관한 것일 텐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 역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라면 뭔가 이 로봇/괴물 액션 블록버스터의 배경 가운데서도 더 색다르거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퍼시픽 림'은 일반적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고, 한 편으론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도 더 나은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즉, '판의 미로' 같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런 여름 블록버스터에 녹여 냈다면 아마 그의 팬들에게는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작품의 인트로였다. 아마 보통 같으면 영화 한 편을 할애할 수도 있었던 이 시기의 배경과 카이주라는 괴물의 등장, 예거 시스템의 탄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그런 것이 있었다는 정도의 설명이 아니라, 한참이 전개된 다음의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 저 부분을 그냥 저렇게 한 줄로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전개였다. 하지만 만약 이 부분을 천천히 다 설명했더라면 (아마도 시리즈의 1편이 되었을) 이 영화에서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육박전을 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전형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덕후의 입장으로는) '아, 그래도 멋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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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는 이야기할 거리가 적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반대로 깔끔하게 즐길 만한 오락 영화라는 반증도 되겠다. 솔직히 완전 개인적인 팬심으로는 '퍼시픽 림'이 대박나서 하루 빨리 델토로가 론 펄먼이 더 늙기 전에 (이미 많이 늙었지만 ㅠ) '헬보이 3'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나중에 따로 기회가 되면 장문의 글을 써보고도 싶은데, '헬보이'는 3편이 나와야만 1,2편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는 작품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3편은 꼭 나와야 한다.



1. 보면서 '에반게리온'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예거는 흡사 초호기. 드리프트는 싱크로와 겹치고 (디테일은 좀 다르지만). '에반게리온' 팬으로서 이제 슬슬 실사화를 기대해봐도 되는 건가 싶다 가도, 그러면 안되지 를 새기곤 합니다 ㅎ


2. 극 중 마코의 어린 시절 역을 연기한 아역 배우가 참 귀엽고, 연기도 잘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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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튼' 역을 맡은 찰리 데이는 정말 J.J.에이브람스와 닮았더군요. 출연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도 같고 ㅋ


4. 아이맥스 3D를 추천합니다. 저는 기회가 되면 아마도 물이 막 튈 4D로도 한 번 보고 싶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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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  분노의 추척자 _ 블루레이 리뷰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와 수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돋보이는데 그의 최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역시 그랬다. '장고'라는 이름에서부터 전통적인 서부 극의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데,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과 프랑코 네로가 장고 역을 맡았던 1966년 작 '장고 (Django)'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서부극은 배경으로만 차용했다고 해도 좋을 또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이기도 하다.


즉 타란티노는 '장고'라는 서부 극을 통해 온고지신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당시의 오리지널 작법에 더 가까운 서부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서 묵과되어 왔던 흑인 노예 (인종 차별)제도에 대한 불합리함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토해내고 있다.






얼핏 보면 전통적인 서부 극의 주인공이 백인이 아닌 노예 출신의 흑인이라는 것 정도의 단순 뒤집기로 볼 수도 있는데, '장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장고(제이미 폭스)가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선과 차별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모습은, 아니 흑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씁쓸한 농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장고가 본인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불합리함을 평소 느껴왔다는 것, 그래서 자유 인이 되었을 때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시선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서도 느껴지는 일반적인 측면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노예 제도를 벗어나 홀로 주인이었던 백인들을 처단하는 흑인 장고의 활극이었다면 재미있는 영화는 되었을지 모르나 특별한 영화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자신이 언젠가 제대로 하긴 할 것 같았던 서부극을 연출하면서, 단순한 장르적 오마주나 재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도 타란티노 영화는 보는 맛이 있는데 말이다.






'장고'가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닥터 슐츠는 타란티노가 만든 수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그가 백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흔히 들 이렇게 일반적인 설정을 뒤집는 영화 라거나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재평가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가운데도 깨어 있는 이가 있었다라는 식의 면죄부 적인 설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타란티노의 영화엔 당연히 그런 자비로움이나 대충 넘어감은 없다. 바로 그 핵심적인 요소가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배우를 통해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로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다.


▽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사실 장고를 저렇게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직 슐츠 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그가 장고를 돕게 되는 과정들을 인정이나 도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의 연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일 것이다.


슐츠가 처음 장고를 만나게 된 것도 현상금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이후 그와 파트너가 되고자 했던 것도 거창한 노예 해방의 의의가 아닌 장고의 능력을 본 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나중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장고의 아내를 구하려고 한 것도 쉽게 말해 노예상인 칼빈 캔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동거지에 배알이 꼬였기 때문이다.





타란티노가 '장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슐츠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반에 깔린, 그 근본 없는 자존심에 대한 비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칼빈 캔디와 슐츠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이미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고 다 종료되어 서로의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였지만, 캔디와 슐츠는 각각의 이유로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캔디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 시켜야만 성이 찼을 터이고 (그것이 고작 악수하는 것이라도), 그 악수 정도 그냥 해주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캔디의 행동 하나하나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슐츠 역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캔디를 (본인 역시 죽을 걸 알면서도) 결국 죽여야 했던 것이다.


'장고'의 내러티브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참고 억눌린 정서를 그냥 참고 넘기려다가(넘겨주려 했는데) 결국 화를 돋군 이로 인해 폭발하게 되는 점인데, 그 '참고 있는' 이와 '계속 신경을 건드는 이' 사이의 긴장감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흥분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결국 참지 않고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그래서 호 불호도 강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 스포일러 끝


한 편으로 '장고'는 전작 '바스터즈'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 편에서도 그냥 뒤집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 만의 다소 과한 방식으로 해소 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역시 후반부의 총격 씬은 '킬 빌'의 총기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과함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장면을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처음 보았을 땐 보여지는 측면의 재미나 영상미 적인 측면 만을 주목했었는데, '장고'에서부터는 더욱 확연히 메시지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재미나 영상미가 포인트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울분의 포효처럼 보였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쿨함을 유지하며 유머와 조소를 섞은 뒤에 마지막에 가서는 피와 살육으로 피해자 혹은 고통 받던 이들의 울분을 토해 내곤 하는데, '장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고'의 마지막 총격전은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다양한 장르의 오마주를 선보이던 타란티노가 언젠가는 한 번 꼭 만들 줄 알았던 서부 영화이자, 단순히 오마주를 넘어서 그냥 60년 대 당시 서부영화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만든 오리지널리티는 물론, 사회적 약자의 울분을 분노로만 일방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3자를 통해 극히 상식적으로 표현한 메시지가 참으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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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최신작다운 우수한 화질이나 최근 출시된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영상 자체의 성격이 더 부각된 영상이기에, 최신 액션 영화나 드라마의 칼 같은 날카로움과 쨍한 화질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인트로 장면에서는 강한 대비로 인해 강렬하고 인상 깊은 화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후 부터는 좀 더 부드러운 화질을 평균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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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장면에서의 표현력도 나쁘지 않고 클로즈 업 장면에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중반 이후 캔디 랜드 장면부터는 붉은 조명 빛이 주가 되는 비교적 어두운 장면들이 많은데, 전반적으로 붉은 화면의 디테일이 매우 뛰어난 편은 아니다. 특히 영상의 포커스에 있어서 디테일 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의 표현 쪽에 더 집중한 영상인지라 화질 측면에서는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배경, 사물의 디테일 체크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의 아쉬움은 화질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본래 영상의 의도된 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실제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화질이 좋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을 정도로, '장고'는 칼 같고 선명한 화질 보다는 서부극의 느낌이 강한 동시에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각 시퀀스마다의 톤이 강한 영상을 담고 있다. 오히려 극장보다는 블루레이를 통해 캔디 랜드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조명의 장면들과 클라이맥스의 대 혈전은 더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전달 된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총격 씬이 많은 영화답게 화려함과 임팩트를 모두 갖추었다. 일단 영화를 보는 순간 구매 생각부터 하게 되는 사운드 트랙의 강렬함이 사운드로 그대로 전달 된다. 타란티노 영화의 수록 곡들이 하나 같이 좋은 것은 이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장고'의 수록 곡들은 원작인 1966년 작 '장고'에 수록된 곡들이 다시 빛을 발할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보컬과 올드 한 악기 소리들이 귀에 착 와 감긴다.




(오리지널 서부극 느낌이 물씬 나는 타이틀 시퀀스에 흐르는 Luis Bacalov와 Rocky Roberts의 'Django'는 단 번에 보는 이를 화면 속으로 끌어 들인다)


'장고'의 총격 씬 가운데 초 중반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갑작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그 갑작스러움을 배가 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순간 반짝하는 사운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서부터 발사 시에 발생하는 더 큰 소리까지 (근래의 작은 권총 격발 시에 비하면 더 큰 소리). 총격 씬 만으로도 블루레이 사운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클라이맥스와 그 이전 총격 씬은 그야말로 옆집에 사람이 있다면 리모컨을 손에 들고 볼륨을 예의 조작하며 봐야 할 정도로 강렬한데, 단순히 격발음 뿐 만 아니라 총알이 나무로 된 벽과 사람의 육체에 박히고 튀는 소리들이 정말 피가 사방으로 튀듯 온 방을 휘젓기 때문이다. 공간감과 파워 모두 만족스러운 사운드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크게 총 4가지 정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Reimagining the Spaghetti Western'으로 극 중에서 선보인 말들이 동원된 액션 촬영에 관한 이야기와 스턴트의 뒷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실 관객은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장고'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말(Horse)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말이 함께하는 다양한 스턴트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말과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장면들을 시도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촬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전설과 선배를 존중하는 타란티노답게 이 스턴트를 위해 이 업계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이들을 영화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이 부가영상은 바로 이 스턴트를 함께 만든 스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Costume Designs of Sharen Davis'는 이 영화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샤런 데이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시대극인 만큼 고증과 창의력이 더해진 특별한 의상 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Remembering J. Michael Riva'는 이 작품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J. 마이클 리바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동료들의 이야기와 그가 남긴 디자인 작품들로 만나볼 수 있다. 마이클 리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아이언 맨 1,2' 등 최근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 '장고'가 유작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루레이 컬렉션과 '장고' 사운드 트랙의 짧은 프로모션 영상이 각각 수록되었다.




[총평]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타란티노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 좀 더 흥미로운 요소가 가미 되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다. 특히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디카프리오와 장고 역을 맡아 열연한 제이미 폭스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바스터즈'때 와는 또 다른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인 닥터 슐츠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왈츠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추가로 아직 1966년 작 '장고'를 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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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스 (Cosmopolis, 2012)
직접적인 자본주의의 허상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 '코스모폴리스 (Cosmopolis, 2012)'를 보았다. 이 작품은 크로넨버그의 신작인 동시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패틴슨의 주연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인데, 처음엔 '어? 크로넨버그 영화 같지 않은데?'라고 생각했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역시 크로넨버그 영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당연히 근래 월가에서 일어난 1 vs 99의 시위에 영향을 받아 쓰여진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 드릴로의 원작은 무려 10년 전에 이 일을 마치 보고 쓴 것처럼 정확하게 예상했고, 크로넨버그는 이 이야기를 제한적이지만 심플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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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에릭 패커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본을 다루는 월가의 최고 부자이자 거물인데, 이 영화는 그의 짧은 하루를 그대로 따라간다. 영화의 주된 공간은 에릭 패커가 하루 종일 머무는 그의 리무진이 배경이 된다. 에릭 패커는 하루 종일 자신의 요새와도 같은 리무진 안에서 자신의 일을 맡고 있는 주요 담당자들을 만나게 된다. 회계전문가, 투자전문가, 경제전문가, 큐레이터, 보디가드 등 그가 만나는 한 명 한 명은 마치 각각의 에피소드들처럼 느껴진다. 혹은 각각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세계는 에릭 패커로 대표 되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영향력 안에 존재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에릭 패커의 위안화 투자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에릭 패커는 리무진 밖에서 엄청난 폭동이 일어나고, 자신의 전문가들이 사업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 혹은 조언을 하는 과정 속에서도 섹스 혹은 전혀 다른 것들에 대한 관심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에릭 패커가 놓여있는 세계와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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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후반부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접적인 것으로 인해 이것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점을 더 피부로 와 닿게 만들기도 하지만 (월가 시위 이후 이 영화를 영화로만 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후반부 폴 지아마티가 연기한 캐릭터와 에릭 패커의 긴 대화 시퀀스는 어쩌면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오랜 시간 기회를 갖고 논의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최상위 계급에 위치한 자와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자가 논하는 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를 떠올려 보게 하는 흥미로운 대화 시퀀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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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크로넨버그 영화답지 않다고 여겼다가 다시금 의견을 바꾸게 된 것은 바로 그 직접적인 방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이진 않았지만 육체를 다루고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역시 크로넨버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동안 '폭력'이라는 것에 집중했던 크로넨버그는 어쩌면 또 다른 폭력일지도 모를 '돈'과 '자본주의'에 대해 이번에는 전혀 비 폭력에 가까운 방식들로 묘사하고 있다.


방아쇠를 당겼는가 그렇지 않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 로버트 패틴슨의 출연 사실만 알았던 터라, 한 명 한 명 등장하는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줄리엣 비노쉬, 사만다 모튼, 폴 지아마티, 마티유 아말릭까지.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는 터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은 하나의 에피소드들처럼 더 느껴졌던 것 같네요.


2. 로버트 패틴슨은 차기작도 크로넨 버그의 영화에 출연이 확정되었다던데, 비고 모르텐슨 이후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로서 얼마나 성장할지도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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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더 자이언트 킬러 : 블루레이 리뷰
동화와 판타지가 더해진 모험 영화


'엑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브라이언 싱어의 2013년 작 '잭 더 자이언트 킬러 (Jack the Giant Slayer)'는 유명한 동화인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에 거인 설화까지 더해져 볼거리를 더한 블록버스터 모험 영화다. 여기에 아역 출신으로 최근 풋풋한 청년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을 맡고,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이완 맥그리거, 스탠리 투치, 이안 맥셰인, 빌 나이, 에디 마산 등 무게 감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브라이언 싱어라는 감독과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 만으로 예상해 보면, 무언가 특별한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데, 그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큰 기대 없이 접한다면 킬링 타임 용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험 영화라 하겠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일단 고민이 많지 않은 심플한 영화다. 무언가 별 것 아닌 것을 대단한 반전처럼 후반 부에 꺼내놓는 모험 영화들에 비하자면, 이 영화는 빠른 전개를 통해 불필요한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 중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들이 많이 부족한 편인데, 마치 TV시리즈의 극장 판 에피소드를 보듯, 간결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의 생략을 느끼지 못하는 점은, 베이스에 깔린 이야기가 관객들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그 전개와 결말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만들었던 브라이언 싱어를 기대했다면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치밀한 전개보다는 '잭과 콩나무'의 판타지와 '거인'이라는 볼 거리를 최대한 활용한 12세 관람가의 오락영화로 보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처음 거인이 등장할 때의 묘사는 이 영화가 앞으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후 거인들의 활용을 보자면 아무래도 12세 관람가답게 조금은 심심하고 평범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거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 중반부 까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역시 이 영화에서 기대한 바는 후반부 왕국의 성을 배경으로 거인들과 펼쳐지는 액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뭐랄까 조금은 팀 버튼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액션 시퀀스였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래도 조금 귀여운 액션 씬인데, 반대로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좀 더 무리 없는, 그러면서도 거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시퀀스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보다도 더 기대했던 이완 맥그리거, 스탠리 투치, 이안 맥셰인, 에디 마산의 활용이었다. 이완 맥그리거는 언제나 선명한 그 억양과 함께 역시 빛이 나고는 있지만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며, 스탠리 투치와 이안 맥셰인도 본인들의 연기력을 펼치기엔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디 마산은 그 기회 조차 가져보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팬들에게는 더 아쉬울 수 밖에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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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금 아쉬웠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이렇게 2% 부족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 정도로 레퍼런스 급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비교적 사실감이 느껴지도록 많은 부분에 공을 들였는데, CG를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현실감 있게 보이기 위해 실제로 만든 요소들을 많은 부분 더한 것이 이 모험담에 좀 더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바로 이 현실감이 블루레이의 수준급 화질을 통해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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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왕국의 갑옷과 의상들의 디테일 표현은 물론, 금속의 질감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클로즈업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은 대신 넓은 풍광을 잡은 장면들에서도 뭉개지지 않는 선예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인들의 피부 표현력을 통해 다시 한 번 우수한 화질을 확인할 수 있는데, 굉장히 여러 가지 잡티와 흉터, 거스름 등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피부 겉면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거인들이 착용하고 있는 갑옷의 메탈 느낌도 녹이 슨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표현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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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레퍼런스 급 화질보다 더 만족스럽다. 일단 이 영화는 사운드 측면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장면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판타지와 거인, 거인들과 병사들이 펼치는 공성전이라는 것만 봐도 기대되는 사운드가 있는데, 그 기대에 걸 맞는 화끈한 사운드를 유감없이 들려준다.






거인들이 등장하기 전 거대한 콩 나무가 하늘로 솟아 오를 때의 사운드도 역동적인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장면은 일단 음장감이 엄청나서 절로 사운드 볼륨을 줄이게 만들 정도다. 처음 거인이 등장할 때의 사운드는 마치 '쥬라기 공원'에서 티렉스가 등장하는 장면과 흡사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후 거인들이 단체로 등장했을 때와는 분명 구분되는, 사운드의 다양함과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에서의 몰입도는 사운드가 대부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인이 나오는 영화에 딱 맞는 박력과 크기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쳐의 메인 격이라 할 수 있는 'Become A Giant Slayer'는 제작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메뉴가 아닌 콩 나무를 오르는 게임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주연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의 안내로 하나씩 다른 부가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첫 번째 'Know Your Enemy'에서는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의 인터뷰와 극중에서 모션 캡쳐 연기를 선보인 빌 나이의 촬영 장면이 수록되었다.






그 외에 나머지 부가영상들에서는 갑옷과 왕국 의상 등 다양한 의상에 관한 이야기와 거인을 표현해낸 모션 캡쳐와 CG파트, 그리고 배우들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장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부가 영상들은 짧게는 2분, 길게는 8분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화의 컨셉에 맞는 소개 방법과 영상 전체에 추가되어 있는작은 꾸밈 표현들로 인해 내내 심심하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삭제장면' 에서는 콩 나무와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프롤로그의 확장 버전과 잭이 콩 나무 위 세상에서 겪게 되는 작은 모험 장면 등이 수록되었다. '개그 릴'에서는 약 3분 분량으로 짧은 NG 장면들이 수록되었다.


[총평]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연출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와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한 출연진로 인한 기대에 비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영화이긴 하지만, 12세 관람가로 좀 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인 동시에, 레퍼런스 급 화질과 사운드로 블루레이를 보는 재미는 충분한 타이틀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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