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극장에서 본 뮤지컬 영화의 마스터피스!
사실 우려했지만 실제 극장에서 본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는 DVD에 수록된 버전과는 달리 오프닝 타이틀 부분이 일부 삭제되었으며 (DVD버전을 보면 한곡이 온전히 끝날 때 까지 타이틀이 컬러만 변경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상영 필름에서는 이 부분이 금방 지나간다), 화면비 역시 상하 좌우가 모두 온전치 못한 것 같았으나(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자면, 좌우의 화면비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아주 예전에 국내 개봉되었을 때 역시 여러가지 문제로 인터미션 등 삭제가 된 버전이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번 상영분 역시 인터미션은 추가되지 않았다).
얼마전 EBS에서 방영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보고 난 뒤라 이 작품의 음악과 장면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빨랐는데, 음악이 어떻게 이야기를 꾸미는지, 반대로 같은 음악에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는 번스타인의 설명을 떠올리니, 장면과 음악이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이 작품의 구성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확실히 번스타인의 음악에서는 장면이 그대로 느껴진다. 뭐랄까 번스타인의 음악은 장면을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니라 장면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음악으로 장면을 쓰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래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노라면 그 어느 뮤지컬 영화보다 영화 속 장면이 속속들이 전부 떠오르곤 한다. 이것이야 말로 뮤지컬 영화의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이 작품은 특히 주연 한 두명이 만드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제트단과 샤크단, 그리고 그들 각각의 무리가 '그룹'지어서 연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 구성원 하나하나의 모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토니가 노래할 때 뒤에서 제트 단원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베르나르도와 아니타가 화면 맨 앞에 춤을 출 때 샤크단원들은 각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숨겨져 있지만 반드시 챙겨야할 이 작품의 보석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엔 그냥 노래가 좋고 춤이 멋져서 보았던 영화였다면, 이제와 다시 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새로운(?) 발견이라면 안무의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의 경우 발레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안무가로서 영화의 안무들은 발레 동작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갱들의 이야기와 발레 안무가 엇나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막상보고 나면 클래식한 음악과 발레 안무가 얼마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당시 한참 유행하던 고전적인 MGM뮤지컬과도 거리가 있고,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현대적인 신세대 뮤지컬로 보기에도 어려운(당시에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음악을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 안무가이자 연출을 맡은 제롬 로빈스, 그리고 뮤지컬계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 이렇게 각각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어 시너지를 이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야기의 기본 뼈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져오긴 했지만, 단순히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소년 갱집단의 이야기로 옮겨왔다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들이 각자를 적대하는 이유 가운데는 단순한 세력 다툼이 아닌, 당시 미국내의 사회적인 문제와 이민자 문제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유쾌하고 흥겨운 리듬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었다는 점이다. 사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저 저런 가사들이 장난으로 느꼈을 정도로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가사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사 역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상당히 라임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극장에서 보면서 새삼 발견한 영화의 장점이라면 손드하임의 가사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어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밤 결투'가 끝나고 난 뒤의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공감도 재미도 못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투 이후 영화는 급격히 어두워지고 다운되기 때문이다. 그 중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있다면 결투 이후 혼란스러운 제트단의 분위기를 잘 그린 'Cool'을 들 수 있겠는데, 예전 기억에 이 시퀀스는 그저 '지루한 부분' 정도 였는데 이제와 보니, 극중 시퀀스 가운데 가장 난이도 높은 안무는 물론 구성 면에서도 매우 완성도 높은 시퀀스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극장 관람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라면 분명 'Cool'의 재발견을 들어야겠다.
(마리아가 입고나온 옷 색깔을 유심히 보라. 마리아는 드디어 자신이 입고 싶던 빨간 드레스를 입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감상이라 2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빠져들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더 완벽하고 온전한 화면비로 즐겼더라면 감흥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내 인생의 뮤지컬 영화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또 한번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앞으로도 허락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고, 너무나 고마운 생일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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