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

더 아프고 더 차가운 유령 드라마였다면...



유령을 볼 수 있는 소설가 지망생 ‘이디스’(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상류사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으며, 글쓰기 외의 다른 것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영국 귀족 ‘토마스’(톰 히들스턴)를 만나게 되고, 둘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아버지 ‘카터’의 만류에도 불구, 이디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영국으로 향한다. 아름답지만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저택 ‘크림슨 피크’와 토마스의 누나 ‘루실’(제시카 차스테인)이 그들을 맞이한다. 이디스는 낯선 곳에 적응하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존재들과 악몽 같은 환영을 마주하게 되고, 그녀 주변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되는데… (출처 : 다음 영화)


길예르모 델토로가 연출하고 톰 히들스톤, 제시카 차스테인,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출연한 공포/멜로 드라마 '크림슨 피크 (Crimson Peak, 2015)'는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감독의 대한 믿음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마치 팀 버튼 영화 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는 영화는 공포와 멜로를 조합한 드라마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기대되는 바는 역시 토토로, 아니 델토로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뻔한 멜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어떤 생경한 비주얼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기대하는 바였는데, '크림슨 피크'는 한 편으론 뻔한 공포/멜로 드라마들 보다 더 나아가지 못했고, 다른 한 편으론 그들에게는 없었던 부분을 충족시켜 준 만족과 아쉬움이 딱 절반씩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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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피크'는 비밀을 갖고 있는 남매인 토마스 (톰 히들스톤)와 루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디스 (미아 와시코브스카)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의 저택인 크림슨 피크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비밀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일지 가짜일지 모를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가 섞여 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연출자가 길예르모 델토로라는 점에서 특별히 기대했던 점은, 멜로가 중심이 된 일반적인 드라마가 아닌 공포와, 특히 배경이 되는 크림슨 피크 저택의 활용 비중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로맨스의 비중은 생각보다는 컸으나 절절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기엔 부족한 수준이었고, 델토로 감독이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후자의 경우도 무언가 하다 만듯한 느낌을 주는 수준이었다. 차라리 한 편의 연출 비중이 더 커서 컨셉을 확실하게 잡는 편이 더 나은 작품이 되었을 듯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강조된 경우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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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델토로는 멜로와 공포, 그리고 본인이 공포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서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슬픔을 함께 구성하려 했는데, 그것보다는 확실히 깊은 슬픔이 담긴 공포로 집중하는 편이 더 색깔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확신)한다. 예를 들면 토마스와 이디스의 멜로를 넣지 않고 실제로 토마스가 이디스에 대한 사랑 역시 자신과 루실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 무서운 두 명에게 맞선 이디스는 다름아닌 바로 크림슨 피크에서 죽음을 맞아 유령이 된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이 슬픈 사연이 담긴 크림슨 피크 저택의 사연을 종결 짓는 이야기였다면 훨씬 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 본편에서도 후반부 저택 지하실에서 유령이 살아날 수 있는 복선을 깔아두길래, 후반부 이디스가 위험을 맞았을 때 이 유령들의 도움으로 살아남겠구나 싶었는데 의외로 이런 전개가 없어서 크게 아쉬웠었다 (사실 좀 놀랐다). 만약 그랬다면 사랑한 죄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토마스의 전 부인들의 유령의 슬픔이 깊게 묻어난, 그러니까 영화의 구도가 남매와 이디스를 포함한 전 부인들의 구도로 이뤄졌더라면 '판의 미로'까지는 어려워도 제법 깊이 있는 슬픈 유령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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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크림슨 피크 저택의 고풍스러운 스타일과 인물들의 의상 등 미술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차가움 만큼이나 시릴 정도의 공기가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아마 이 영화는 한 여름에 보았더라도 손이 시려울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종일관 입김이 느껴지는 이 추위와 공기의 차가움은 '크림슨 피크'가 담고 있는 매력 포인트다.



1.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루실의 후반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럼 그렇지, 차스테인이 어떤 여자인데. 다른 차원에 있는 아버지의 신호까지 알아차리는 진념의 여성인데, 저 정도로 포기할리가 없지' 싶은 ㅋㅋ


2. 여러 편의 출연작을 보았는데 아직도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이름을 못 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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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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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2013)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헌사



짐 자무쉬의 신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의 이전 작품들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그보다는 좀 더 영상미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헌사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뱀파이어라는 영화의 소재 역시 그 아름다움과 영속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며, 두 주인공 아담과 이브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과 톰 히들스톤의 캐스팅 역시 아름다움 측면에서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황량한 디트로이트와 이국적인 모로코의 밤 풍경, 그리고 음악과 문학 예술의 역사들은 곧 아름다움의 표현과 헌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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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뱀파이어를 다루는 방식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유머에 더 가까웠다. 즉, 영원한 삶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거의 없고, 정반대로 현대 사회 속에서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생각보다는 진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건, 수 백년을 살아온 존재로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예술, 문화, 과학 등의 인물들에 대한 '포레스트 검프' 식의 유머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찬사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짐 자무쉬는 최근의 문화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동일한 선상에서 언급을 한다. 비교적 그 가운데 오래된 이들이라면 모타운 레코드에 대한 것일테고, 가장 최근이라면 잭 화이트에 대한 것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잭 화이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라며 디트로이트의 어느 집을 소개할 땐, 짐 자무쉬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입장을 들려주고자 하는 지를 좀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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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확실히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떤 메시지나 여운은 부족하지만, 어느 한 장면, 어떤 순간은 영화 보다 더 깊게 각인된다. 짐 자무쉬가 보여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은 영화 내내 충분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이상을 갖고 있는 두 배우와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았을 땐, 좀 더 끝까지 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 작품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처럼 '살아남는다'는 것과 '사랑'의 연관 성을 좀 더 파고 들거나, 반대로 아름다움의 영속성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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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운드트랙을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해외에서도 OST자체가 발매되지 않은 것 같군요.


2. 수록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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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 다크 월드 (Thor : The Dark World, 2013)

어벤져스의 그늘 아래 놓인 속편



서두에 밝히자면 난 어벤져스의 멤버들 가운데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히어로들 중에서도 토르를 특별히 좀 더 좋아하는 편이다. 오래된 마블 코믹스의 팬들에 비하면 그 정보나 이해력은 미비한 수준이지만, 영화로 시작한 토르의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코믹스로 이어졌고, 크리스 햄스워스라는 배우의 시원 시원한 매력과 맞물려 '토르'의 속편을 더더욱 기다리게 했었다. 그렇게 서울에선 보기 힘들었던 '토르 : 다크 월드'를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줄거리는 의외로 진전됨이 거의 없이 반복되는 양상이었다. 솔직히 전편에 비해 아주 조금 더 나아간 형태인데, '아이언 맨' 시리즈처럼 작품이 계속될 때마다 확장시켜 나아가는 것과 비교하자면, 조금은 아쉬운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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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스터와 스틸컷에서 공개된 제인 포스터 (나탈리 포트만)의 아스가르드 의상을 보았을 땐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면 너무 뻔한 전개이면서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부분은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 전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미 전편에서 세계관과 캐릭터 소개를 마친 토르의 속편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소극적인 전개와 캐릭터의 확장이 아쉬웠다.


단순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자면 아쉬울 것이 없는 구조이지만, 이미 소개를 마친 것은 물론 '어벤져스'를 통해서 또 한 번의 활약을 펼쳤던 토르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단순히 새로운 에피소드에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야기가 좀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했었는데, '토르 : 다크 월드'는 또 한 번의 에피소드를 선택하는 것에 그쳤다. 새로운 적과의 새로운 이야기는 물론 재미있고, 그 중심에 있는 토르와 로키와의 미묘한 관계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전편처럼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더 발전시켜 나아갔더라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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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케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토르라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처음 소개하는 기능도 물론 수행하고 있었지만, 로키의 이야기가 사실상 메인 스토리에 놓이면서 더 고전적인 느낌과 풍모를 갖추며, 다른 어벤져스의 영화들과는 다른 풍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알랜 테일러의 '토르 : 다크월드'는 액션이나 볼거리는 좀 더 화려해졌지만 (사실 이 부분도 더 화끈했어도 좋았다고 생각된다) 갈등 구조나 이야기의 짜임새 측면에서는 조금은 심심한 구성을 보여주며, 그냥 어벤져스 멤버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 하지만 물론 '어벤져스 멤버의 또 다른 에피소드'만으로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화 된 '어벤져스'라는 자체가 캐릭터 각자의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각자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또 다시 뭉쳤을 때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순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나중에 '어벤져스 2' 겪인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했을 때, '토르 : 다크월드'의 이야기는 한 줄 정도의 대사로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 한 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고, 바로 그 재미가 전체적인 세계관을 다루고 있는 '어벤져스' 만의 독특한 포인트 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이 작품이 결코 아쉽다고 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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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된 생각은, 이미 '어벤져스' 이전에 자리를 잡은 '아이언맨'과는 다르게 다른 멤버들의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어벤져스'라는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각각의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될 때에는 분명한 한계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각각이 자신의 영화를 만났을 때 뭔가 화끈한 전개를 이어가려고 해도, 추후 다시 뭉치게 될 '어벤져스'의 세계관과 시간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은 제한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팬들은 영화로서 '토르'를 만나고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영화로서 토르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토르라는 캐릭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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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서 케네스 브래너가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로키 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담아냈다면, 이 작품 '토르 : 다크월드'에서는 '어벤져스' 이후 몰라보게 인기가 높아진 톰 히들스톤을 보란 듯이 활용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측면에서 로키를 둘러 싼 이 작품의 묘한 긴장감은 만족스러웠다. 팬들이 기대하는 로키의 매력을 보여준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토르와 적과의 대결 구도를 보완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영화 제목을 '토르'라기 보다는 '토르와 로키'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탱고와 캐쉬처럼), 로키라는 캐릭터가 그 만큼 매력적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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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더 좋아했기에 더 아쉬움도 많았던 '토르 : 다크월드'였다.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토르의 시원시원한 매력과 로키라는 양면의 캐릭터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또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물론 아이맥스 3D로만 보다가 작은 관에서 보니 답답함이 느껴져 그런 것도 있는 듯.



1. 이제 토르를 또 만나려면 다음 '어벤져스'를 기다려야 하는군요. 2015년 개봉 예정인데, 곧 오겠죠? ㅠ

2. 팬들의 성원만으로 보면 '토르 3' 이전에 '로키 1'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인데, 이건 불가능하겠죠? ㅠ

3. 이번엔 묘묘를 묘묘로 번역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

4. 두 번의 쿠키가 나오는데 첫 번째 장면은 코믹스 팬이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긴 역시 어려웠고, 두 번째 장면은 그냥 소소한 장면으로 스토리가 연결되는 부분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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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인 우디 앨런의 신작이었기에 심히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나온 오웬 윌슨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만 보고는 워낙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이라 파리에 대해 흠뻑빠진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작품이 아닐까라고만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미 '스쿠프 (Scoop, 2006)' 같은 작품을 통해 재치를 보여주었었던 그는, '사랑해, 파리' 연작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를 또 한 번 우디 앨런다운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만들어냈다. 보는 내내 큭큭 거리고 흐뭇하게도 되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우디 앨런이 쓴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았다.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했던 바로 그 '엑설런트 어드벤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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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는 좁게 보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넓게 보자면 개개인의 느끼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가장 앞선 생각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주인공 '길'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종종 그런 꿈을, 내가 평소 동경하는 인물들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작가, 예술가 들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해볼 수 있었다.


극중 '길'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는데, 주변 얘기를 빌리자면 돈 되는 것과는 무관한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과도 좀 멀어져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근거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실에서 이렇게 냉대를 당하던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반응을 듣게 된다. 앞서 이 영화가 좁게는 작가에 대한 넓게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작가로서 '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길'이 사건을 겪고 변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의심없이 믿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얘기는 곧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인 '길'의 이야기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겹쳐질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구성 자체에서도 바로 그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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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실상 100% 소화하기는 어려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헤밍웨이, 피카소, 스콧 피트제럴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분명 유명한 예술가로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영화는 기존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던 영화들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인만을 등장시키지도, 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영화가 이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건 정말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길'의 이야기고 '길'에게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놓았다. 대사 하나 하나에도 깨알 같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크들을 배치했는데, 쉽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만 웃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물론 우디 앨런 쯤 되니 이런 자신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극 중 '길'이 깨달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이러한 자신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인가를 100% 설명하려다보면 오히려 내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차라리 누구나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정수를 깨닫고 있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결국은 더 많은 '누구나'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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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결국 누구나 동경하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에 근거해 지금(현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위해 그 세계에 남기로 한 아드리아나(마리온 꼬띨라르)의 이야기가 '길'의 선택 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에 대해 100%를 던질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겪고, 최근 더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데 영화 속 '길'과 아드리아나의 이야기가 전한 작지만 임팩트 있는 깨달음은, 파리의 그 아름다운 풍경들 보다도 더 깊게 남았다. 뭐 그래도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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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죠;;


2.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역시 배우들 보는 재미죠. 너무 많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톰 히들스톤, 마이클 쉰은 물론이요 에드리언 브로디와 앨리슨 필의 출연도 몹시 반가웠어요. 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4'에 나왔던 그 바바리 언니 레아 세이두를 보게 된 것도 큰 반가움이었구요.


3. 아직 파리는 못 가봤지만 이제 가게 된다면 꼭 들러야할 명소가 한 군데 더 생겼네요. 12시되면 이제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제법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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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존경해마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지만 의외로 조용하게 적은 상영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워 호스 (War Horse, 2011)'는 어쩌면 최근 영화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고 클래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평소 남들보다 울컥하기를 잘 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요일 오전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상대적으로도 많은 양의 눈물이었으리라. '워 호스'가 감정을 자아내는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직설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에이~ 이거 다 아는, 뻔한 방식이잖아'하며 울컥할 포인트를 스스로 지나쳤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달랐다. 자주 얘기하는 점이지만, '전형적'이라는 건 결코 '별로다'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전형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걸 이미 입증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형적이라도 그 핵심을 깨닫고 제대로만 전달한다면 충분히 관객을 울리고 웃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바로 이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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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의 줄거리는 예상할 수 있는 그 것, 딱 그 정도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과 어린 주인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예상되는 대부분의 얘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워 호스'는 제목 그대로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말'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처음 '조이'의 주인이 되는 알버트 (제레미 어바인)와 조이의 우정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따라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조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워 호스'의 이야기는 정말로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바이고, 그 예상하는 바도 최근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전적 이야기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영화를 본 날이 동물농장이 하는 일요일 오전시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TV동물농장을 보고 울컥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다 알면서도 울 수 밖에는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있었고, 이 포인트를 우직하고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후반 부의 감동 포인트야 말할 것도 없고, 초반 알버트가 조이와 함께 처음 밭을 갈 때부터 눈물을 흘렸으니 이거 뭐 말 다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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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알버트와 조이와의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우정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일들의 비중을 과감하게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즉, 보통 같았으면 관객들은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알버트와 조이가 재회했으면 좋겠다 라는 한 가지 생각만을 하게 되지만, 이 경우는 조이가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비중을 적지 않게 그리고 알버트와 마찬가지로 따듯한 사람으로 그리면서 누군가는 '그래 알버트와 만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조이가 다른 사람과 맺은 인연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니 그의 입장도 무시할 순 없겠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이가 겪게 되는 일들이 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결국 스필버그 영화답게 가족영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잘 살펴보면 조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작농으로서 부모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알버트야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만나게 되는 독일군 형제며 어린 딸과 할아버지의 관계에서도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이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결핍의 해결이나 치유의 의미로) 전달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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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도 스필버그와 촬영 감독 야누즈 카민스키는 완벽에 가까운 순간들을 선사한다. 스필버그와 카민스키는 이 고전적 스토리를 다루면서 영상 측면으로도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알버트가 살고 있는 집과 집 근처의 풍광을 그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지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강한 역광의 사용과 더불어 이 시퀀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타이트한 클로즈업(배우의 얼굴 외에는 노을 빛이나 하늘 만이 자리잡고 있는)의 활용은, 이 고전적 스토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뭐랄까, 전형성을 넘기 위해 일부러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옷을 입으려 고민하기보단 예전에 가장 잘 어울렸던 옷을 잘 다려서 다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워 호스'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는 역시 조이가 전장을 누비는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사실 이 장면이 담고자 했던 의미까지 100% 와닿지는 않았던 장면이었지만 그 영상미나 장면 자체가 주는 압도하는 느낌 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나 논리로 설명되기 보다는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설명 불가한 순간을 또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참호 속을 질주하는 조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군인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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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뻔하고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분명했음에도 이런 의심을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갖을 수 없었을 정도의 우직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극장을 나와 평정심을 찾은 뒤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곱씹어 볼 것도 없이 '그게 말이 돼?' '너무 심한 판타지잖아'라는 생각들이 바로 들었지만,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워 호스'는 그럼에도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1. 말이 주연이라서 돋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닐스 아르스트럽과 '해피 고 럭키'에서 역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에디 마산, '토르' 동생 톰 히들스톤과 루핀 교수 데이빗 튤리스 그리고 셜록 배네딕트 컴버배치까지.


2. 조이 역의 말 연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연기를 하더군요! 총 14마리의 말이 나눠서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정말 연출로 만들어냈다기 보다 말이 연기를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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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 천둥의 신 (Thor, 2011)
대서사와 셰익스피어를 입은 마블 히어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총집합하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또 다른 멤버 '토르 (Thor)'를 보았다. 토르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었던 다른 마블의 히어로들과 다른 점이라면,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등의 경우 후천적으로 사고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슈퍼 파워를 얻고 히어로가 되는 것에 (혹은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것에) 반해, 신화에 근본을 두고 있는 토르의 경우 이미 파워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작점을 달리 한다. 이 시작 점이 다른 것은 특히 영화화에서 큰 차이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쉽게 말해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멀쩡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토르'는 오히려 그 반대로 초중반 토르가 힘을 잃게 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상)가 교차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마블 히어로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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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점은 '토르'는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대 그리스 희곡 및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토르'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인과 쉴드 (S.H.I.E.L.D)로 대변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전적인 서사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현재의 이야기와 교차하지 않았다면 '타이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토르'는 왕과 왕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이야기에 히어로 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 때문에 연출을 캐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자 극작가인,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캐네스 브래너 만큼 '토르'가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되는 점을 잘 표현해낼 이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캐네스 브래너가 '토르'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이야 걱정할 바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히어로물이자 블록버스터 연출로서의 캐네스 브래너는 의문 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는 한계 내에서 이 정도 결과물이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액션 전문가가 시나리오까지 맡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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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갖는 한계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처럼 소개가 필요한 첫 작품이었다는 공통의 한계와 다른 히어로와는 다르게 탄생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대를 얻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그 만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토르가 지구로 추방 당한 뒤 겪는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그가 진정한 히어로로서 거듭나는 탄생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사실 빠른 전개 탓에 적극적인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제인 (나탈리 포트만)과의 로맨스도 브루스 배너나 피터 파커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 자체로도 소개가 주목적인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나올 '어벤져스'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더더욱 '토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미가 컸기에, 이 한 편만으로 평가 받기에는 조금 억울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토르'의 속편이 나온다거나 '어벤져스'에서는 좀 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상태라(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니 말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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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쩔 수 없는 한계들 때문이었는지, 극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주인공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가 아니라 동생 '로키 (톰 히들스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극중 토르는 쿨하고 우직한 매력은 있지만 (마치 사조영웅전의 곽정과도 같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적인 갈등이라던가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로키라는 캐릭터는 그 탄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영화에 주요 갈등 및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서, 캐네스 브래너가 그린 셰익스피어적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스포일러 시작)
로키가 극의 주된 갈등을 쥐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악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에서 이해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욕보다도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있고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던 토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엔딩 쿠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만약 계속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스토리에 좀 더 깊이를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영화 '토르'는 토르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로키로 인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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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우리에게 마침내 선보일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 '아이언맨 2'의 쿠키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묠니르 장면은 '토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것 외에도 '토르'에는 '어벤져스' 떡밥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는 편이에요. 동료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라던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그렇고.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더군요. 이래서 마블 코믹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연계되는 부분이 깊다보니 말이죠.


2. 오딘의 아들을 '오딘손'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토르의 풀네임이 Thor Odinson 이네요 ^^;


3. 토르가 지구에 와서 겪는 코믹한 장면들에서는 의외로(?) '엑셀런트 어드벤쳐'가 떠오르더군요.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이 쇼핑몰 가던 장면이 겹쳐져서 ㅎㅎ


4. 짧은 분량이었지만 역시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었던 '호크아이'의 출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호크아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터라 보는 순간 100%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레미 레너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봤기에 비중있는 캐릭터라는건 알 수 있었죠 ㅎ


5. 그의 반해 아사노 타다노부의 활용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런 작품(비중)으로 헐리웃을 노크할 배우는 아닌데, 그냥 들러리 정도로 묘사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6. 요툰하임의 분위기나 이곳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쿠키장면에서 등장한 큐브까지, 얼핏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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