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Gravity, 2013)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들과 관계 속에서 혼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그래비티 (Gravity, 2013)'를 보고 나니 외롭다고 느낀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무뎌짐 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이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참 어리석게도 시간이라는 무게에 휩쓸려 머지않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그 순간의 희열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더 새로운 것, 또 다른 것 만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결국, 모든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고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영화 '중력 (Gravity)'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전형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 낸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관객이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SF로 오인하기 쉽지만 '그래비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면 과연 지구 밖 우주라는 배경은 그저 눈 요기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느냐 하면 또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 글의 제목과 맞닿아 있다. 흔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원에 대한 경우일 때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일종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다. 근원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작품이 찾고자 하는, 아니 말하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 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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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특수한 사고로 인해 한 인물이 겪게 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소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래서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체감하도록 만든다. 일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력이라는 것이 없는 우주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중력 상태를 봐야만 현재 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상실해야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을 영화는 차례 차례 꺼내어 놓는다. 사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우주에서 주목할 것은 무중력 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우주의 묘사는 바로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의 타이틀과 함께 마치 극장 안의 소리를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커다란 소리의 소멸은, 앞으로 이 영화가 사운드에 있어서 어떤 현실성을 들려줄 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들려왔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중력 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없는 우주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반사되어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비슷한 영화들이 그러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건 결국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지구라는 행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주로 나가 지구를 바라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비로서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직접 경험할 수 없었으나 의심하지는 않는다). 극 중 코왈스키는 지구를 바라보며 여러 번 라이언에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이는 곧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우리가 이런 지구에 살고 있는 거라고'
(중요하진 않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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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라 일컬어 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극 중 라이언 (산드라 블럭)이 코왈스키 (조지 클루니)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한 것은 오히려 그가 떠난 이후였다 (난 이 라이언의 상상 장면이 만약 실제 장면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우주선에 남게 된 라이언은 통신 여부를 확인하던 중 알 수 없는 외국인과 무선 통신이 연결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이언은 저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 소리에 감정이 터지고 만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지구에 두고 온 애인의 목소리도, 부모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라이언은 그저 자신이 평소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이 소리 들에 감격한다. 라이언의 감격은 사실 감격 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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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라이언은 중국 우주 정거장의 우주선에 탑승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서 유영하듯 한 모습의 라이언은 새로운 탄생의 신호를 알리는 듯 잠시 눈을 감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탄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아직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라이언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녀의 탈출 우주선이 지구 궤도를 향할 때의 모습은 마치 수 많은 정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승리해 수정에 이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와,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발견에 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중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의 중력? 사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탄생 그 자체일 것이다. 결국 라이언은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 논의의 범주에 포함조차 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생명)에 대해 발견하고 다시 태어나 우뚝 서게 된다. 그녀가 지구로 무사 귀환 했을 때 다른 영화처럼 대규모 구조 작업에 의해 구조 된다거나 발견되기 이전에, 홀로 땅을 딛고 선 모습으로 끝내는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 에게 구조됨으로서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고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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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그렇듯이, '그래비티'의 은유는 매우 노골적이다.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기원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라이언을 통해 이를 풀어낸 방식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너무 나도 당연한 것들의 진리가 새삼 가슴에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바쁘게 '그냥' 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들로 이뤄져 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라이언처럼 저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도 있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발견해 낼 수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이미 살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새삼 느낀 내 삶의 중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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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화제가 된 글 '아닌강의 비밀' (http://magazine.movie.daum.net/w/magazine/film/detail.daum?thecutId=6589)
참 대단한 감독'들' 입니다!
2.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역시 인상적이네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촬영 감독이기도 한데, 두 작품의 주제의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고,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네요!
3. 전 이 멕시코 삼총사가 더 잘될 줄 알았어요. 처음엔 이냐리투가 주목 받는 모양새였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제일 덜 주목 받는 그림이 되었군요. 델 토로를 비롯해 이 삼총사가 계속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예전에 봤던 '허블 3D'가 떠오르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5. 아, 왕십리 아이맥스 3D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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