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만 감독의 1992년 작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을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왼발 (1989)'과 더불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 라는 배우를 영화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 시킨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와 따져보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그렇고 감독인 마이클 만에게도 이 작품이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감독과 배우 모두의 비교적 초기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살펴볼 만한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18세기 미대륙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전쟁을 배경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연결된 역사적 사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디테일 한 측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당시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설정들과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아직 원시적인 모습을 다 잃지 않은 모히칸족의 모습들과 숲과 폭포 등 웅장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자연의 풍경은, 웅장함에 비장함마저 드는 사운드 트랙과 맞물려 순간 순간 장관을 연출한다. 존 윌리엄스나 한스 짐머의 음악처럼 작곡가의 이름까지 기억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트레버 존스가 만든 '라스트 모히칸'의 메인 테마 곡은 누구나 들으면 '아, 이 음악!'할 정도로 유명한 곡이라 할 수 있을텐데, 세월이 지나도 이 영화를 웅장하게 남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이 테마 곡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15세 이상 관람가로서 지금보자면 피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잔인한 듯 하지만 영화적 표현에 있어서는 상당히 절제된 액션 장면들이 조금은 소극적으로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에 반해 당시를 재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 디자인과 의상, 풍습 등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 단순히 명작이라는 기억만 어렴 풋이 남아있던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개인적인 소감은, 서사 측면에서도 무게감이 조금은 아쉽고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이나 완성도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큰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좀 더 세밀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이유로 글의 서두에 마이클 만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초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게 되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공할 만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보다는 '호크아이'라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그도 그렇고, 총기류 디테일의 화신인 마이클 만보다는 식민지 전쟁과 인디언이라는 대 상징을 이미지화한 마이클 만도 그렇고, 현재의 시점으로 본다면 다른 시각에서 접근 가능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Blu-ray : Video Quality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1992년 작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다 이겨내지는 못한 듯 하다.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 최신작과 겨뤄도 전혀 손색이 없는 화질 정도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화질이다.






노이즈 현상도 발견되며 특히 어두운 장면의 경우는 최근 작들의 암부 표현력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아쉬운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몇몇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화질 다운 퀄리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쨍 하고 선명한 수준급의 화질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화질이라 하겠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의 경우 웅장한 사운드 트랙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으며, 대사 처리와 다양한 효과음들 역시 제법 다이내믹 함을 들려준다. 사운드는 화질에 비해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지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배경 음악이 흐르는 일부 장면에서 우퍼 스피커의 울림이 과도하게 세팅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출시되었던 DVD타이틀에서도 발견되었던 문제라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블루레이 자체의 문제 라기 보다는 본 소스의 문제가 아닐 까도 싶은데, 이 점이 수정되지 않은 부분은 DVD와 마찬가지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나인 (Nine, 2009)
뮤지컬은 결국 판타지와 챕터의 예술


<시카고>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하고, 일일이 다 언급하기도 벅찬 캐스팅으로 더더욱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영화 <나인 (Nine)>은, 앞선 이유만으로도 뮤지컬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영화 팬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호불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대부분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혹평을 등에 업고 관람을 하게 된 <나인>은 그래서인지, 아니면 뮤지컬 세계에 유난히도 동화가 잘 되는 개인적 특성 때문인지 크게 아쉬울 것 없는 멋진 뮤지컬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와 롭 마샬 감독(혹은 롭 마샬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과 나의 시선은)은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큰 인기와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카고 (Chicago, 2002)>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이지 못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나인>의 리뷰를 쓰기 전에는 적잖은 고민도 되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 영화가 좋았다는 평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들었기 때문에(최근 본 <파르나서스....>의 경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인상 깊게 보았다는 글을 쓰기가 잠시나마 머뭇거려지기도 했다는 점이다. 뭐 어차피 개인적인 차이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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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합성논란까지 있었을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이 화려한 캐스팅을 보라!)

<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에 영감을 받아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그러니까 정확히 얘기하자면 <8과 1/2>의 리메이크라기 보단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천재 영화 감독이자 카사노바인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자신의 새로운 작품(이탈리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보여지는 것에서만 벗어나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뇌를 고백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과정 속에 그의 인생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는 여러 여성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으로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에 어떤 특별한 감동이 요소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영화의 주된 요소 중 하나가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는 분명 낙제점에 가까운 작품일 것이다.

또한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공감대도 많이 부족한 편이다. 귀도가 영화 감독으로서 창조의 고통을 겪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지기 보다는, 그의 여성편력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는 편이라 귀도의 고뇌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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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들이 내러티브나 공감대(특히 공감대)면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무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경우일 때 더 자주 나타나는데,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타 장르의 영화들보다 챕터의 성격이 짙으며, 그 챕터들이 노래라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캐릭터나 에피소드에 관한 설명을 대사나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 대신 노래를 통한 시퀀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화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래 한 곡은 정확히 챕터와 성격을 같이 하기 때문에,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비교적 다음 에피소드로 빨리 이야기가 전환되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 인물들의 가사가 관객에게 좀 더 공감대를 얻어야만 챕터 방식이라도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텐데, 대부분이 이 장면을 '노래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에 몰입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뮤지컬을 제외하고 최근 그나마 좋은 반응을 끌었던 뮤지컬 영화들을 떠올려보자면, 뮤지컬은 뮤지컬이되 주인공이 가수이거나 쇼비지니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의 뮤지컬은 음악영화와 뮤지컬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작품들인데 (가까운 예로는 <드림걸즈>를 들 수 있겠다), 이런 작품들은 일반적인 대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구성도 있으면서 또한 가수로서 노래하는 구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적은 부담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되곤 한다. <나인>의 경우는 또 조금 다른 경운데,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는 상당수가 그렇지만 '노래하는 것 =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이런 공식에 가까운 작품이다. 애초부터 귀도가 상상하는 영화의 장면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나인> 속 노래하는 장면들은 귀도의 판타지이자 뮤지컬의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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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리도 화려한 여배우들이 캐스팅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판타지적인 특성과 강조된 챕터 형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은 확실히 무대 뮤지컬의 성격을 깊게 띄고 있는데, 사실 그러기엔 좀 캐릭터가 많았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에 캐릭터가 많은 탓에 거의 소개와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곡에서 모두 소화해야 했던 탓에, 이야기보다는 '소개'의 인상을 더 깊게 남긴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저 '니콜 키드먼 나왔다!', '아니, 소피아 로렌이잖아!', '퍼기는 역시 가수출신이라 무대가 강렬한데', '페넬로페 크루즈는 늙지도 안나봐' 등 배우마다 간단한 소감을 풀어내기가 일쑤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무대화되고 영화화 되면서 영화라는 것과 감독,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다. 맨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 <나인>은 펠리니의 작품보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로 인한 혹평들은 어쩌면 예정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뮤지컬 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나인>이 좋았던 것은 클래식 뮤지컬 영화스러운 분명한 챕터별 구성과 환상적인 노래와 춤 때문이었다(확실히 클래식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챕터를 감싸는 기본 이야기의 전개가 아쉬웠던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려한 캐스팅의 배우들은 각자의 챕터에서 짧지만 강렬한 등퇴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니콜 키드먼 같은 경우는 확실히 그 금발과 아름다움 외에는 이렇다할 분량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내가 감독이라도 누가봐도 범접하기 어려운 여배우다운 한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배우 캐릭터에는 주저없이 니콜 키드먼을 캐스팅했을 듯 하다(그녀 외엔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릴 수 있겠다). 블랙 아이드 피스 출신의 퍼기의 경우는 사실 드라마타이즈의 연기는 하나도 없이 노래와 춤에만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욱 그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사실 이런 여배우들 사이에서 어설프게 연기하느니 안하는게 나을듯 하다). 많은 이들이 페넬로페의 시퀀스와 더불어 최고의 장면으로 그녀의 시퀀스를 꼽고 있는 것처럼, 완벽한 무대 뮤지컬의 한 시퀀스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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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여배우와 챕터는 바로 케이트 허드슨의 시퀀스였다. 'Cinema Italiano'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기도 했는데, 무리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주디 덴치의 캐릭터는 조금 어정쩡한 감이 없지 않았고, 소피아 로렌 역시 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출연 소식 만큼의 인상은 주지 못한 듯 하다. 마리온 꼬띨라르의 경우 드라마 타이즈에 있어서는 페넬로페와 함께 가장 분량이 많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아카데미 수상자 답게 화려함이 없는 가운데서도 빛이 나고 있다(이 영화에선 숨막힐듯한 그녀의 클로즈업이 나온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섹시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선사하며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처럼 보라색으로 표현하면 좋을 매력을 선사하는데, 확실히 그녀의 출연분이 다른 챕터에 비해 튀는 편이긴 하다. 오히려 주연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경우 그의 출연작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편한 연기를 펼친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관객을 옴싹달싹 못할 정도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가 어느 정도 힘을 빼고 펼치는 이번 연기도 색다르게 볼 만하다(첨에 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또 하이라이트에서 목에 핏줄 세우며 열창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황홀함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었던 영화로서, <나인>은 뮤지컬 영화팬인 내게 가슴 뛰는 영화였다.


1. 음악이 오히려 고전적이라 참 좋더군요. 사운드트랙은 이미 질러져있다.
2. 배우들의 연습장면이 짧게 나오는 엔딩 크래딧도 좋았어요.
3. 이 작품의 각본은 안소니 밍겔라가 마이클 톨킨과 함께 작업했었는데, 아시다시피 2008년 세상을 떠났죠. 영화는 그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4. <시카고>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카고>를 재미있게 본 관객을 홍보타켓으로 삼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을 것 같네요.
5. 어쩌다보니 최근 본 두 작품(파르나서스...)이 전부 저만 좋아하는(혹은 응원하는) 작품이 되어버렸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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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 1985)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를 통해 만나게 되는 영화들 중에는, 정작 영화는 제대로 본 적이 없으나 그 제목만은 익히 들어왔던 작품들을 여럿 만나볼 수가 있었는데, 지난 상영작들 가운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등과 같이 이번 상영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출연작이라는 점과 그 제목만은 매우 익숙한 작품이었다. 어찌보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출연작이라는 것 외에는 (그리고 여러 영화제들을 통해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다시피 했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2009년에야 처음 접하게 된 영화는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최근 개봉작으로 씨네큐브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디스 이즈 잉글랜드>였다. 영화의 시기적인 배경이나 다루는 내용의 일부분이 <디스 이즈 잉글랜드>와 동일한 지점을 갖고 있었는데, <디스 이즈 잉글랜드>가 마가렛 대처 수상 시절 당시를 배경으로 영국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이었다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인도/파키스탄 등 영국을 사는 이민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국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실 전혀 내용을 모르고 본 영화였기에 동성애 코드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내용은 조금 의외이기도 했는데, 어쨋든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당시 영국 사회를 이민자의 입장에서 그려내면서 사회가 용납하지 않았던 금기시 되는 요소로서 동성애 코드를 추가로 삽입한 듯 했으며, 전혀 의외의 공간일 수도 있는 '세탁소'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가족과 이민자, 이를 받아들이는 영국인들의 현실을 실험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듯 했다.

사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기대보다 못 미친다고 생각된 데에는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물론 주제나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가까운 기간 내에 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겹치는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1985년작인 이 영화가 너무도 1985년스러운 영화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하니, 예전 영화들 가운데서도 금새 빠져들게 되는 영화들을 보면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을 비롯하여 보편적인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너무도 당시의 영화 기술이나 연출 스타일을 반영하는 구성과 장치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주제에 빠져들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특히 음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텐데, 너무도 80년대 틱한 이른바 '촌스러운' 음악들은 지금와서 보기엔 주제마저 잠식하는 듯한 이질감을 주고 있으며, 세탁소가 등장한다고 시종일관 물방울 터지는 효과음으로 구성된 배경음악은 확실히 그 촌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를 한 영화음악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시대를 넘어 공감을 얻을 만한 시도까지는 못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 묘한 느낌을 주는 음악 탓에 마치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을 연상시킬 정도로,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한스 짐머가 영화음악을 직접 맡은 것은 아니지만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1.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뽀송뽀송한 얼굴은 참 어색할 정도로 어리더군요 ㅎ 지금이 무서우리만큼 인상적인 연기보다는 쿨한 미소년 정도의 모습이 색다르더군요 ^^

2. 이 타이틀은 무려 워킹 타이틀의 작품입니다. 워킹타이틀이 정말 생각보다 오래된 스튜디오였군요.

3. 그런데 정말 당시에는 그렇게 세탁소가 문을 열면 모두들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있었던 걸까요? 영화 속 묘사를 보면 세탁소에서 게임도 하고 전화도 하는 등 거의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4. 주인공 아마르 역할을 맡은 고든 워넥키는 생김새나 바바리를 차려 입은 모습이 마치 <영웅본색>을 자꾸 떠올리게 하더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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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2007)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스포일러 있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작품은 몇 작품 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전작 <매그놀리아>와 <펀치 드렁크 러브>는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영화들 중 하나로,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의 작품을 지금까지도 계속 기다리게 하는 원인이 된 영화들이었다.
그가 2002년 <펀치 드렁크 러브>를 연출한 뒤, 5년이라는 제법 긴 텀을 두고 지난해 선보인 영화가
바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데어 윌 비 블러드>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작곡상, 촬영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드디어
3월에 이르러서야 소규모 단위의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사실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작품들은 흔히 기대 만큼이나 걱정도 하게 마련인데,
폴 토마스 앤더슨 만은 걱정하지 않았었다.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분명 '장인'의 분위기를
갖고 있음을 적은 연출작에서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 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거운 주제를 깊은 성찰과 통찰력으로 풀어낸 또 하나의 수작이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 석유 개발이 아메리칸 드림으로 자리잡던 이 시기를
배경으로, 폴 토마스 앤더슨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와 종교의 폭력성과 모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석유개발자인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 라는 캐릭터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그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말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서 유전을 발견한 뒤
특유의 사업수단으로 이 유전사업을 무섭게 번창해 나간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다가가길 원하는데, 유전 개발 중 목숨을 잃은 동료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면서,
사람들에게 가족이 중심이 되는 경영전략을 이해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아들 H.W가 불의의 사고로
청력을 잃게 되면서 다니엘은 H.W를 버리듯이 다른 곳에 보내고 만다. 이후 자신의 이복 동생이라는 헨리가
등장하는데, 그 동안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던 다니엘은, 헨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여기고
중요한 일들을 함께 하게 된다. 초반에는 완벽하게 헨리를 믿는 듯 하지만, 나중에 헨리가 결국 거짓말을
한 것을 실토하기 전에도, 다니엘은 헨리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성공을 공유할 수 없고, 나 외에는 모두 적이라는 그의 논리에 있어서는 가족조차(이복 동생이긴 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니엘은 자신을 속인 헨리를 결국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기에 이르고, 자신의 일을 계속 방해하는
선교사 일라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행동에는 기본적으로 경제논리, 즉
자본주의의 이념이 깔려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돈을 벌고, 성공하기 위해서 그 성공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한다는 의미의 행동들이지, 이것이 그가 본래 나쁜 사람이라던가 폭력적인 성향을 갖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점이라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풀어가고,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시되며, 경쟁에서 성공하는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이 인정이 되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 영화는 무섭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그저 석유개발이 성행했던 시대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과 자본주의의 모순만을 그렸다면
(뭐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멋진 작품이 되었을 듯 싶지만), 아마도 이 영화가 이 정도로 무섭고 처절한
인간의 군상을 보여준 영화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인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더불어 종교의 모순을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다니엘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 바로
선교사 일라이의 역할이다. 개척교의 예언자이자 선교사로 등장하는 일라이 선데이는, 처음부터 다니엘에게
매우 호전적이다. 왜냐하면 점점 세를 불려나가길 원하는 그의 교회에는 자본이 필요하고, 그 자본은
바로 다니엘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중반까지 일라이의 모습은 그저 광신도 정도로만 그려진다.
퇴마의식을 갖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모습이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서
다니엘 만큼의 폭력성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갈 수록, 일라이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댓가를 치르지 않는(금전적으로) 다니엘에게 계속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의 직접, 간접적인 대결 구도는 매우 흥미롭다. 흔히 등장하는 선악 구도가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도, 혹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경쟁관계로서 두 모순된 가치관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둘의 대결구도는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오래전 석유 개발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교회에 가서 일라이에게 무릎을 꿇고,
뺨을 맞아가며 자신의 죄를 소리 높여 크게 외쳤던 다니엘은, 자본이 궁해 자신을 찾아온 일라이에게
자신이 예전 당했던 그 모욕을 그대로 돌려줄 기회를 맞는다. 다니엘이 교회에서 '나는 죄인이다'라고
목청 높여 소리지르기를 강요당하던 장면이 자본주의의 무섭고도 처절한 면을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일라이가 '나는 거짓 예언자다'라고 크게 말하길 강요당하는 장면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퇴색되어 버린 종교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두 장면은 이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최근 본 영화를 통틀어서도 가장 무서운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의 제목을 우리말로 해석해보자면
'피를 부를 것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 제목은 이 영화의 의도를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순수함과 정의를 잃은 폭력적인 자본주의와 종교는 결국 피를 부르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원작자와 감독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나의 왼발>도 그렇고,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그랬고, 특히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연기를 보여준다. 흔히들 배우들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되어 버린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아마도 이런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닐까 싶다.
얼핏 보면 감정이 고조된 장면에서 단순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 연기를 보면서 느끼는 공포감이 단순히 윽박지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콧수염 만큼이나 진한 눈섭과 그보다 더 깊은 눈에서 쏘아내는
검은 광선은 웃으면서 얘기할 때에도 폭력성이 느껴질 정도로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만큼이나 인상깊었던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바로 일라이 선데이와 폴 선데이 역할을 맡은 폴 다노 였다. 개인적으로 2006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침묵 수행을 하는 역할로 등장했던 폴 다노는(아이러니하게도 두 배우 모두
자신의 본명과 같은 이름의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 무서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겨뤄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 신인으로서는 해내기 힘든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와 평화로운 표정 속에 퇴색된 인간성을 드러내야 하는 일라이 역할을
소화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그 무서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내며,
연기를 주고 받은 것 만으로도 그로서는 대단한 경험과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중요한 영화가 될 듯 싶다
(이런 것에 비해서 상에 있어서는 너무 외면을 당한 것이 개인적으론 아쉽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 받는 것은 바로 음악인데,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은 음악은, 굉장히 이질적이고 날카로움을 들려주며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불안함과
불편함을 조성하게 한다. 극적인 부분에서도 보통 우리가 들어왔던 방식으로 감정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약간은 어긋나는 음들과 강한 악기의 사용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좀 더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영화를 딱 보고나서는 이 영화가 쉽게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배우들의 무서운 열연과 무거운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느껴지긴 했었지만,
단번에 느껴지는 걸작은 아니었는데, 감상기를 쓰며 영화를 되돌이켜보고, 곱씹어 볼수록
참 무섭도록 깊은 통찰력과 연출력이 만들어낸 걸작이 아니었나 싶다.



* / 영화의 마지막 부분, 엔딩 크레딧이 다 끝나고 말미에
'이 영화를 로버트 알트만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로버트 알트만 감독에게 얼마나 영향을 받았고,
그 존경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마지막 문구였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iramax Films and Paradmount Vantage에 있습니다.



 2007/11/21 - [BD/DVD Review] - Punch-Drunk Love - 당신 없이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아요



뉴욕의 역사란 곧 미국의 역사라는 말과도 같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전하는, 미국인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뉴욕의 피비린내 나는 탄생의 보고서. [갱스 오브 뉴욕]
 
Synopsis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월 스트리트의 비즈니스 지구와 뉴욕 항구, 그리고 브로드웨이 사이에 위치한 파이브 포인츠는 뉴욕에서 최고로 가난한 지역이며 도박, 살인, 매춘 등의 범죄가 만연하는 위험한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항구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매일 수 천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꿈의 도시도 하다.



그러나 파이브 포인츠에 사는 정통 뉴요커들은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침입자라 여기며 멸시한다. 결국 두 집단의 갈등은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아일랜드 이주민의 존경을 받던 데드 레빗파의 우두머리 프리스트 발론은 빌 더 부처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그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 발론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16년 후, 성인이 된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위해 빌 더 부처의 조직 내부로 들어간다. 뉴욕을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으로 지배하며 파이브 포인츠 최고의 권력자로 성장한 빌 더 부처는 자신을 향한 음모를 까맣게 모른 채 암스테르담을 양자로 삼게 된다. 암살계획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암스테르담은 빌 더 부쳐의 정부(情婦)이자 소매치기인 제니 에버딘을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고 처절한 복수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마틴 스콜세지의 필생의 프로젝트
 
[갱스 오브 뉴욕]이 기획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는 언젠가는 반드시 뉴욕의 역사에 관한 딱 잘라, 뉴욕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이미 20년도 더 전에 [갱스 오브 뉴욕]에 관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만한 이야기를 담아낼 만한 여력이, 스콜세지에게도 제작사에게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제작사에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긴 러닝 타임 등을 고려해, 이 프로젝트를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지난해인 2002년에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갱스 오브 뉴욕]은 이와 같은 커다란 기대 때문이었는지 전체적으로는 관객들에게도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에서 볼 때에도 크게 지루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 전체적인 반응은, ‘지루하다’였다. 블록버스터 치고는 긴 러닝타임인 2시간 40분이 넘는 시간과(아시다시피 16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본래 2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제작사인 미라맥스에 설득 끝에 편집된 것이라고 한다),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서사적 보고서에 가까운 이야기와 전개가, 자극에 민감한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결코 달가웠을 리가 없었다. 흥행 성적은 그렇다쳐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중요 시상식의 중요 부분을 노렸음에는 분명한 영화였는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골든 글로브를 수상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득을 본 것이 없었다. 특히 아카데미에서는 무려 10개의 중요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단 한 개의 오스카상도 가져가지 못하였다. 이는 어쨌거나 감독인 스콜세지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으며, 제작사인 미라 맥스 역시 울상 짓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이 컸던 것 같고, 마틴 스콜세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임엔 분명하지만, 처음 기획부터 영화화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체되면서 많이 지쳐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갱스 오브 뉴욕]은 최근 영화들에 비하면 오락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는 그래도 오락적 요소가 제법 있는 영화라 생각되고,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를, 콕 찍어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살펴보자.
 
영화가 지루했다는 사람들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연기에는 뭐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시큰둥한 반응이 많았었지만 그런 반응을 보인 사람들조차도 무시 못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빌 더 부쳐 역할을 맡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였다. 이미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 [라스트 모히칸]등에서 선 굵고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었던 다니얼 데이 루이스는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은퇴선언을 번복하며 출연한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연기를 선보였다. 일명 ‘도살 광’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토박이들의 리더 격인 ‘빌 더 부쳐’역할을 맡은 그는, 이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과는 또 다른, 완전히 다른 한 인물을 새롭게 그려내면서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과 육체적으로도 강한 인상의 ‘빌’이 된다. 함께 출연하였던 ‘리암 니슨’의 말을 빌리자면,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촬영을 하는 동안이 아닐 때에도 동료 배우들을 극중 이름으로 대하고, 그중 캐릭터처럼 생활했다는 것이다. ‘빌 더 부쳐’라는 인물에 너무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동안은 그중 그의 악센트를 결코 쉽게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카메론 디아즈의 말로도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는 스콜세지의 영화에 주인공하면 떠오르던 로버트 드니로를 잠시도 생각나지 않게 하였다.




[갱스 오브 뉴욕]은 대부분 모두의 박수와 관심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맞추어 지긴 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할을 훌륭히 연기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관심에 초점이 되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레오가 [타이타닉]때보다는 많이 성숙했다는 것이었다. 잘 생긴 외모와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으로 단번에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레오는, 이제는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볼 여유가 생긴 듯 하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레오 자신도 배우로서 많이 발전한 듯 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 카메론 디아즈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방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터득한 것 같다. 관객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완벽한 연기에 눈을 빼앗겼지만, 레오 자신에게는 [갱스 오브 뉴욕]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 DVD의 자켓에도 주연 배우 세 명의 이름과 얼굴이 크게 프린트 되어 있지만 [갱스 오브 뉴욕]에는 이들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능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초반부 ‘빌 더 부쳐’와 맞서는 발론 신부 역할로 출연한 리암 니슨을 들 수 있다. 비록 시작부분 잠깐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설정한 중요한 역할인 발론 신부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하였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치인을 연기한 짐 브로드밴드. 그리고 존 C.라일리브랜든 그리섬 등은 다른 영화라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도 젼혀 손색이 없는 배우들이지만 또한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조연 역할에도 익숙한 배우들인지라,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주연 배우들에 비해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카메라가 돌아왔을 때에는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었을 쟈니 역할은 바로 이전 [E.T]에 주인공 엘리엇으로 출연했던 헨리 토마스가 맡았다. 그 동안 몇몇 작은 영화에 출연했었던 헨리 토마스는 [갱스 오브 뉴욕]을 계기로 다시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Gangs of New York / DVD

일단 기본적인 화질과 음질은 최신 출시된 타이틀답게 비교적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재공하고 있다. 시대, 서사극을 표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 의상 등일 것인데, 1800년대의 뉴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엄청난 크기의 세트들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다양하고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한 의상들은 [갱스 오브 뉴욕]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VD는 이 같은 배경과 의상 디자인을 섬세하게 재공하고 있으며, 영화 자체가 표방하는 컬러인 갈색과 회색 톤의 색감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제법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갱스 오브 뉴욕]에서 사운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데, DTS와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잔혹한 전투의 소리들을 현실적으로 전해준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대포에 의해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DTS의 음장감을 실감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갱스 오브 뉴욕]DVD 타이틀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는 것은 바로 본 편이 두 장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많은 DVD 마니아들이 귀찮아하는 일로, 타이틀의 구매를 한 번 더 선택하게 하는 단점이 된 것 같다. 본 편과 같이 두 장의 디스크에 나뉘어 담긴 서플먼트를 살펴보자.




일단 가장 반가운 서플은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의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다른 어느 영화보다도 감독이 할 말이 많았었을 법한 영화인지라 음성해설의 수록은 DVD마니아와 마틴 스콜세지의 팬이라면 아니 기쁠 수 없을 것이다. 화질을 언급하며 잠시 거론되었듯이 [갱스 오브 뉴욕]에서 스토리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세트와 의상 등 디자인 요소를 들 수 있는데, DVD타이틀도 이 같은 중요성을 강조하듯 디자인에 관련된 서플먼트들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다. 또한 세트를 설명하는 영상에서 360도 팝업을 지원하는 서플은, 넓고 다양한 1800년대 뉴욕의 거리를 좀 더 가까운 시선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몇 가지 다큐멘터리 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에 관련된 제작 과정 노트라던가 에피소드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 뉴욕의 역사에 기인한 다큐멘터리가 수록되어 영화의 기본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 같은 영상들은 위와 같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흔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극장용 예고편과 U2가 부른 주제곡 ‘The Hands that Built America'의 뮤직 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다.
 
2003.09.08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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