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Oblivion, blu-ray)

클래식한 SF의 맛



조셉 코신스키의 최신작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은 그의 전작 '트론 (Tron : Legacy, 2010)'과 마찬가지로 장르 영화로서 SF영화의 클래식한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한 동시에, 가장 최신의 트랜드를 반영하려 애 쓴 작품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는데, 하나는 미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과 컬러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장소, 탈 것 등의 아름다움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SF 영화에서만 다룰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와 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먼저 디자인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오블리비언'은 미래를 묘사하면서도 큰 이질감 없이 연상이 가능한 비교적 근미래를 다뤄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지점을 영리하게 표현해 내면서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만들어 냈다. 소품이나 장소는 물론 배경에 이르기까지, 조셉 코신스키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표현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것들을 실제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CG만으로도 거의 실사와 동일한 수준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짜와 가짜, 실제와 허상이 중요한 테마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어쩌면 피부로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차이에 주목했고, 그 작은 차이는 관객들이 '오블리비언'의 세계관을 적은 설명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해냈다.






둘째로 주제 측면에서 '오블리비언'을 보다 보면 여러 SF 영화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경향은 단지 이 작품만의 특성 이라고 하기 보다는 근래의 SF 영화들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정하고 새로운 것 만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영화가 아니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든 거의 기존 SF 명작들이 다루었던 주제나 설정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 깊이가 남다르거나, 시각적으로 압도해야만 더 매력적인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블리비언'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분명히 모든 이야기를 다 마무리 했음에도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다루려 했던 '기억'에 관한 시선이 결코 스쳐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래 단락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의 스토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SF 영화를 여럿 본 관객이라면 다음을 유도하는 카메라 앵글만 봐도 '아, 다음은 어떻게 되겠구나'라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하퍼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잭 하퍼가 본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 영화를 두 번 보게 되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잭 하퍼의 내레이션이 얼마나 직접적인 복선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일반적으로 복제된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고민하거나 혹은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블리비언'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상대적인 논의보다는 무엇이 진짜를 진짜답게 만드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가 선택한 조건은 바로 '기억'이다. 만약 일반적인 경우라면 오리지널과 복제된 존재 간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오블리비언'에는 오리지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복제된 가짜들만 존재한다는 것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관객은 처음부터 이 가짜에게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왔기에 나중에 등장한 가짜 잭 하퍼와 달리, 처음부터 함께한 이 가짜를 사실상 오리지널로 판단하게 된다. 그는 오리지널 잭 하퍼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깨어있는 존재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 잭 하퍼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말 미에 '내가 바로 잭 하퍼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잭 하퍼를 완전히 인정해 버린다.





즉,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같지만 다른 존재들을 명확히 같은 진짜의 잭 하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에 가장 흥미로운 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른 복제 된 존재를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복제된 오리지널과 동일한 진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영화의 선택은 몹시 흥미로운 것이지만, 이런 흥미로움을 더 깊이 있고 매력적으로 표현해 내기엔 조금 부족했던 영화의 깊이 때문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스포일러 끝)






이렇게 민감하거나 철학적으로 여지가 있는 스토리는 드라마 장르보다도 더 치밀한 구성을 요구하게 되는데 - 최근 개봉한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그런 면에서 '오블리비언'은 세심한 작품은 아니다. 디테일한 퍼즐 맞추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디자인과 스케일을 내세우고 느슨하게 전개되는 영화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내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 한 번에 풀려 버릴 땐 시원함 보다는 소소한 해소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액션이 강조된 영화도 아니라 조금 어중간한 느낌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트론'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누가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오블리비언'은 꽤 괜찮은 SF 영화라고 말할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신뢰 가득한 배우가 참여해 부족한 부분을 훌륭히 채우고 있으며, 잘 빠진 곡선의 디자인들은 그 자체로도 황홀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볼 때 마다 조금씩 더 빠져드는 빅토리아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이야기도 '오블리비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일 것이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화질은 말 그대로 레퍼런스 급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블리비언'은 굉장히 시원하고 깔끔하며 질감까지 느껴지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영상을 담고 있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런 장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아이맥스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 보다 더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블루레이 유저들이 선호하는 쨍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영상 자체가 시원 시원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시원함을 쨍한 화질로 표현해 만족감을 더 극대화 하고 있으며, 섬세한 질감도 잘 살아 있어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의 느낌을 양쪽 모두 100% 전달해 낸다. 암부의 표현력도 우수한 편이며,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어진 것들을 촬영한 경우가 많아 더 살아있는 영상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화질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 작품이 공들여 만든 다양한 근 미래의 소품들의 그 우아한 곡선과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만 같은 그 질감을 영상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우수한 화질을 다양한 환경의 장면에서 각각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야외 장면이나 사막에 가까운 모래 위 장면, 적막한 우주 공간, 어두운 밤 수영을 즐기는 장면까지. 화질 측면에서 각각의 재미와 체크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점이 특히 블루레이로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Blu-ray : Audio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 급이다. 사운드 적인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은 대부분 드론이 등장하는 액션씬들인데, 드론이 내는 청명한 기계음들은 물론, 파괴력 넘치는 전투 장면의 사운드는 블루레이 사운드다운 임팩트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또한 버블쉽이 기체를 한 바퀴 빙 돌려 방향을 선회 할 때의 입체감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와~'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등뒤를 휘감는 사운드였다. 여기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M83의 영화 음악까지 더해져,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최근 타이틀 가운데 가장 높은 만족도를 선사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가장 먼저 톰 크루즈와 감독 조셉 코신스키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있는데, 아쉽게도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작품과 장면 장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상 한글 자막 미지원으로 즐길 수 없게 된 점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겠다.







'삭제 장면' 에는 총 4개의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대부분 본편에 수록되었어도 거추장스럽지 않았을 만큼 의미 있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잭이라는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이나, 빅토리아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후 줄리아와의 에피소드에 복선으로 활용되고 있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부가영상은 'Promise of a New World : The Making of Oblivion'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짧게 한 줄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영화로 보고 예상할 수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실제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제작 영상이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웠던 점들을 소개해보자면, 대부분 영화 제작이 결정되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컨셉 아트가 제작 활용되는 것과는 달리, '오블리비언'은 이 컨셉 아트로부터 시작되어 영화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 컨셉 아트를 실제 영화화 된 장면과 비교했을 때 상당 수준에 달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디자인 작업 물들이 영화에 초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가능한 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인데, 실제 크기의 버블쉽을 제작한 것은 물론, 주인공들이 대부분의 생활하는 공중 가옥의 배경이 되는 하늘마저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로 촬영된 다양한 조건의 하늘 영상을 대형 스크린과 다수의 프로젝터를 통해 완벽하게 하나의 입체 배경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M83이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전작 '트론'에서는 Daft Punk가 있었다면 '오블리비언'에는 M83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 출신의 이 일렉트릭/슈게이징 밴드는 영화 음악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또 한 번 발휘해 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최신 앨범 'Hurry Up, We're Dreaming'를 듣고 팬이 되기는 했지만, 영화 음악이라는 분야에도 잘 녹아들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는데, 그냥 무난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정도로 그들의 영화 음악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만약 아직 그들의 음반을 들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최신작 'Hurry Up, We're Dreaming'을 추천하고 싶다.


M83의 영화 음악이 중요도를 말해 주듯, 부가영상에는 별도로 대사 없이 M83의 스코어 위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M83 Isolated Score' 메뉴도 제공한다.





[총평] 조셉 코신스키의 '오블리비언'은 분명 아쉬운 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SF영화다. 영상과 사운드가 그 주된 매력 중 하나라는 점에서, 레퍼런스급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 블루레이는 영화관 못지 않은 - 어쩌면 더 좋은 - 감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빅토리아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처음 볼 때는 미처 다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에 숨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기억이라는 것의 존재



이 작품을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의 전작이 '트론'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저 톰 크루즈 주연의 SF 영화라는 정보 만으로 보게 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은 괜찮은 SF 영화였다. 일단 전작 '트론'과 마찬가지로 미래 다운 디자인과 컬러로 표현된 이미지들을 아이맥스의 꽉 찬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눈요기는 충분한 작품이었다. 여기에 '드론'과 주인공이 타는 비행체 등의 곡선 디자인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디자인 적인 측면 만큼이나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 깊이가 충분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 반대로 '오블리비언'이 던진 화두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바로 기억에 관한 것 말이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오블리비언'을 보다 보면 여러 SF 영화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경향은 단지 이 작품만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근래의 SF 영화들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작정하고 새로운 것 만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영화가 아니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든 거의 기존 SF 명작들이 다루었던 주제나 설정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 깊이가 남다르거나, 시각적으로 압도해야만 더 매력적인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블리비언'은 후자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전자는 그 가능성 만을 던져 놓은 작품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분명히 모든 이야기를 다 마무리 했음에도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였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다루려 했던 '기억'에 관한 시선은 제법 흥미로운 것이었다.



(아래 단락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오블리비언'의 스토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SF 영화를 여럿 본 관객이라면 다음을 유도하는 카메라 앵글만 봐도 '아, 다음은 어떻게 되겠구나'라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하퍼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잭 하퍼가 본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이미 복제된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고민한다거나 혹은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블리비언'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상대적인 논의보다는 무엇이 진짜를 진짜 답게 만드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가 선택한 조건은 바로 '기억'이다. 만약 일반적인 경우라면 오리지널과 복제된 존재 간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오블리비언'에는 오리지널이 현존하지 않는 다는 것, 그래서 복제된 가짜들만 존재한다는 것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관객은 처음부터 이 가짜에게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왔기에 나중에 등장한 가짜 잭 하퍼와 달리, 이 가짜를 사실상 오리지널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렇게 깨어있는 존재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 잭 하퍼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말미에  '내가 바로 잭 하퍼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잭 하퍼를 완전히 인정해 버린다. 즉,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같지만 다른 존재 들을, 명확히 같은 진짜의 잭 하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에 가장 흥미로운 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른 복제 된 존재를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복제된 오리지널과 동일한 진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영화의 선택은 몹시 흥미로운 것이지만, 이런 흥미로움을 더 깊이 있고 매력적 이게 표현해 내기엔 부족했던 영화의 깊이 때문에 아쉬움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민감하거나 철학적으로 여지가 있는 스토리는 드라마 장르보다도 더 치밀한 구성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오블리비언'은 세심한 작품은 아니다. 디테일 한 퍼즐 맞추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디자인과 스케일 그리고 분위기로 느슨하게 전개되는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내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 한 번에 풀려 버릴 땐 시원함 보다는 소소한 해소만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액션이 강조된 영화도 아니라 조금은 어중간한 느낌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트론'이 겹쳐지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오블리비언'은 괜찮은 SF영화였다. 더 심오할 수도, 더 박진감 넘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매력이 동시에 느껴졌던.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개인적으로는 알렉스 프로야스가 연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2. 이 영화가 매력적인 첫 번째 이유는 역시 톰 크루즈.

3. 극 중 잭이 몰던 비행체는 모형이 나오면 하나 구입하고 싶을 정도. 물론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온다면 가격이 문제겠지만요;;

4. '장고'에 이어 연이어 보게 된 조이 벨도 반가웠고, '왕좌의 게임'에 킹슬레어 니콜라이 코스터-왈다우도 반가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Universal Pictures 있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인빅터스 (Invictus, 2009)
영감(靈感)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지난 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그랜토리노>였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좋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눈물 흘리지 않았을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그랜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와 감독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걸작이었다. 그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인빅터스>는 그래서 볼 것도 없이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다. 남아공의 유명한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를 주인공으로 실제 있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원작을 영화화한 <인빅터스>는, 럭비 (스포츠)라는 소재가 더해져 또 한번 뻔한 감동 공식이 아닌 이스트우드 만의 깊은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럭비라는 소재 때문에 이 영화를 스포츠 영화로 오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빅터스>는 근본적으로 영감 (靈感)의 전달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깊게 묘사한 그의 또 하나의 수작으로 기억될 듯 하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국민들(흑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 (모건 프리먼)는, 흑백으로 나뉘어져 있는 남아공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 럭비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경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럭비팀 ‘스프링복스(Springboks)'를 지지하며 그 주장인 프랑소와 (맷 데이먼)를 만나 스프링복스에게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바라게 된다.

<인빅터스>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근본적으로 영감(靈感)의 전달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그 영감으로 인해 행하게 되는 행동과 가치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스포츠 경기와 관중들을 비중있게 묘사한 것도 그렇고 그 전달 과정의 묘미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누군가의 신념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반대하는 이들에게까지도)에게 영감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깊게 그려내고 있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왜 스포츠일까?'라는 점을 의아해하기도 했었는데, 앞서 얘기한 영감의 전달과정을 표현하는데 이 스포츠라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었다.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으로 당선 된 뒤 흑인과 백인들로 나뉘어진 국가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은 일에도 직접 나서며 행동으로 실천하게 된다. 그러다가 럭비와 곧 있을 럭비 월드컵을 알고나서는 이 럭비라는 스포츠가 자신의 이 신념을 영감으로 승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주장인 프랑소와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주장에게서 이 영감을 받아들인 팀원들은 점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신념에 동화되어 가며, 더 나아가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관중들 그리고 TV로 이 경기를 지켜보는 수천만의 국민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만델라의 메시지가 전달되게 되는 것이다.

얼핏보면 '꼭 우승해야 된다'라는 만델라의 주장이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영감의 전달 도구로서 생각해보았을 때, 왜 만델라가 그리도 우승을 원했었는지 절로 알게 된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이 영화 <인빅터스>는 여러모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올리게 했다.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우리도 저런 대통령을 가졌었지'라는 탄식과 그리움이었다.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 경중을 따지지 않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영화 속 만델라의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오랜 투옥 생활을 마치고 당선 된 이후 경기장에 나타나 국민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는 이런 지도자가 나온 영화를 보면 '아, 우리는 언제쯤 저런 지도자를 갖을 수 있을까?'라고 기대만 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아, 가졌었지...'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곤 한다.

그리고 럭비 월드컵의 선전을 통해 전국민들이 가득한 열기로 하나가 되는 모습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은 영화 속 럭비 월드컵과는 달리 흑백의 화합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는 없었지만, 영화처럼 어려움에 겪고 있던 국민들에게 희열(영감)을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단순하게는 스포츠라는 것이, 더 나아가서는 영감과 메시지가 확산되어 나가는 과정을 경험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인빅터스>는 여러 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전작 <그랜 토리노>를 떠올리게도 한다. 전작 <체인즐링>과 비교해봐도 <인빅터스>가 훨씬 <그랜 토리노>에 가까운 것은,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과 연출자로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빅터스>의 이야기 전개는 그리 느린 편이 아니지만, 영화의 리듬은 상당히 느린 편이고 관조적인 편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랜 토리노>를 연상시키는 톰 스턴의 카메라 앵글과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 제임스 J. 무라카미의 미술은(이들은 모두 이스트우드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해오고 있는 팀이다), 스스로 <그랜 토리노>의 영감을 이어 받은 듯 하다. 특히 카일 이스트우드의 음악과 곡 구성은 몹시도 <그랜 토리노>스럽다. 굳이 '노인의 지혜'를 다시 들먹이지 않아도 카일의 음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하려는 것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인빅터스>는 <그랜 토리노>같은 엄청난 감정의 동요는 없지만, 이스트우드의 노련한 영화 기술과 의외의 볼거리인 럭비 월드컵 경기 장면만으로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 엔딩 크레딧에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이 스틸 컷으로 제공되는 것은 좋았습니다. 실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만델라의 모습과 프랑소와를 비롯한 실제 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2. 언젠가 넬슨 만델라를 영화화 한다면 그 1순위는 당연히 모건 프리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싱크로율은 대단하더군요. 특히 만델라 특유의 그 의상을 입고 나온 장면에서는 잠시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3.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아들인 '스콧 이스트우드'가 스프링복스의 선수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4. 디지털 상영으로 보았는데 화질이 상당히 좋더군요. 보면서 내내 블루레이 출시가 된다면 화질을 기대해 볼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5. 참고로 ‘인빅터스(invictus)’는 ‘정복되지 않는 자들(Unconquered)’이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글 : 신현이 (a_shitaka@nate.com)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쿨한 액션 영화

<원티드>는 마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국내 팬들에게는 원작 자체의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안젤리나 졸리'와 몇몇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액션 영화로 포장되어 소개되었던 영화다.

아무래도 <원티드>하면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기발한 총격 액션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에 총과 권법을 크로스 오버한 액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퀼리브리엄>과는 다른 총기 액션, 즉 총을 직선이 아니라 휘어져 나가도록 비껴 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원티드>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기본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 <원티드>라는 작품을 인지했을 때만 해도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앞선 액션 장면들이 주가 되는 단순 ‘총질’ 액션 정도로만 알았었는데, 역시 탄탄한 세계를 기초로 하는 그래픽 노블 원작의 작품답게 히어로물과 쿵푸 영화에 기인한 설정들은 물론, 액션이나 전개에 있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쿨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 배우들이 감독 이름 외우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인터뷰를 서플먼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는 러시아 출신으로서 <나이트 워치>를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원티드>에서는 원작의 독특한 분위기에 자신 만의 촬영과 연출 기법을 적극 가미하여 색다른 액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액션 영화들 보다도 특수효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총을 휘어져 나가도록 쏘는 것에서 야기되는 액션 장면들과 일반인들보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 시간을 느리게 쪼개어 컨트롤 할 수 있는 주인공의 능력이 발휘되는 장면 묘사에서도 그 만의 독특한 특수효과와 연출 기법이 잘 드러나고 있다.





감독인 티무르는 단순히 와이어를 이용한 점프와 액션에 그치지 않고, 치밀한 동선 연구와 슬로우 비디오를 카메라의 줌인 기법과 적절하게 섞어가며 와이어 액션에도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총을 휘어지게 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고 대대적으로 홍보된 이 영화 액션의 장점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시간을 세밀한 단위로 나누어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했기에 더 멋진 장면들을 만들 수 있었다.

<원티드>가 액션 영화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나름 반전 요소와 갈등 구조를 다루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극의 흐름을 깔끔하게 전개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구구절절 하지 않고 스피디한 전개와 깔끔한 마무리는 킬링 타임용으로는 물론이고, 좀 더 복잡하고 본격적인 속편을 기대하게끔 만든다.

Blu-ray Menu







유니버설 블루레이의 전형적인 메뉴 화면을 볼 수 있다. 유니버설 타이틀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장면 선택' 메뉴에 보이는 3가지 버튼의 실체가 궁금할텐데 이 부분은 글 후반부에서 그 궁금함을 해소해 드릴 예정이다.

Blu-ray Picture

1080p 풀HD의 해상도를 지원하고 있는 '원티드' 영상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평가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다. 오리지널 영상 자체에 그레인 노이즈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는 분명 극장 상영 시에도 그랬듯이 의도된 거친 화면이긴 하지만, 깔끔한 블루레이 화질을 선호하는 유저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질 듯 하다. 칼 같이 선명하고 분명한 화질보다는 거친 느낌을 선호하는 감독의 성향은 작품의 성격과 전작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원티드>의 경우엔 선명한 화질로 제작되었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래 2장의 스크린 샷을 클릭하면 720P 해상도의 확대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레인 노이즈가 화끈하게 드러나는 거친 화면의 장점이라면 좀 더 질감이 살아있는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조명이 어두운 장면에서도 극선명 화질과는 또 다른 질감을 얻을 수 있는데, 노이즈에 민감한 유저만 아니라면 작품의 분위기가 맞물려 관람하는데 있어 지장은 없을 듯 하다. 다만, 최근 출시되는 신작 블루레이들이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어 <원티드>의 영상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감독에 의해 의도된 거친 화면이며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밝힌다.

Blu-ray Sound

화질이 약간의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면 사운드의 경우는 대부분이 만족할 만한 우수한 수준이다. DTS-HD 5.1 채널의 오디오는 레퍼런스에 가까운 수준급 사운드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원티드>는 사운드 측면에서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장면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귀에 실제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것은 아닌지 작은 혼동을 주기까지 한다. 주인공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시간을 컨트롤 할 때 발생하는 SF적인 효과음의 공간감 전달도 훌륭하며, 무엇보다 총알이 휘어져 나갈 때의 사운드는 스피커 주변에서 바람이 이는 듯한 감칠맛이 난다. 보통 총기 액션의 경우 총알이 직선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멀티 채널의 활용도나 공간감을 100%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있는데, <원티드>의 경우는 ‘휘어져’나가기 때문에 모든 스피커를 둘러가는 채널별 활용도가 높고, 스피커와 스피커를 이동할 때 느껴지는 사운드의 공간감도 매우 훌륭하다.






총기 액션에서 발생하는 효과음 외에도 스포츠카가 등장하는 체이스씬 이나 대형 기차가 철로에서 탈선하는 장면에서는 장면의 스케일을 고스란히 사운드로 돌려준다. 이런 대형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 씬을 비롯해 마지막 폭파와 함께 하는 액션 씬에서는 다양한 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데, 주위를 기울여 보면 그 와중에 주인공의 발소리까지 생생하게 담겨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배경 음악과 총기 발사음, 격투로 인한 소리들, 그리고 폭발로 인한 소리들 까지 뭉개지지 않고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얼핏 단순히 높은 볼륨 감에 의한 쾌감만으로 사운드를 평가할 수 있는데, <원티드>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이 같은 표면적인 측면은 물론, 디테일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는 사운드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팀 버튼의 콤비로 더 익숙한 데니 엘프먼이 맡고 있다).

Blu-ray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쳐는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면면이나 이야기 자체 보다는 기술적인 면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구성 면에서는 블루레이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능적인 메뉴들이 여럿 수록된 것도 인상 깊다. 메뉴 화면이 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BD-Live!를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현재 유니버셜의 BD 타이틀들은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기술적으로 다소 앞서나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가장 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My Scenes’인데, 제목처럼 영화 속 영상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녹화하듯이 오려내어 클립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다. 자신 만의 영상 클립을 만드는 방법은 리모콘의 빨강, 초록, 파랑 버튼으로 조작이 가능한데, 초록 버튼을 누르면 영상을 녹화하기 시작하고, 파랑 버튼을 누르면 정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장면에 상관없이 원하는 부분의 클립을 개수에 상관없이 만들 수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클립은 인터넷 연결을 통해 친구에게 전송할 수도 있다.







<원티드>블루레이에는 ‘U-Control’이라는 기능이 수록되었는데 일반적인 PIP기능을 조금 더 확장시킨 편리한 기능이다. <원티드> BD에는 원작인 코믹스의 장면이 수록된 ‘Motion Comics’와 촬영장에서 따로 촬영된 카메라 영상과 스토리보드 영상 등이 담긴 ‘Scene Explorer’, 그리고 여러 제작과정이 담겨있는 ‘Picture in Picture’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세 가지 영상들을 ‘U-Control’기능을 통해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U-Control’을 선택하고 원하는 영상에 체크한 뒤 본 편을 재생하면 해당 장면에 연관되는 각각의 추가 영상이 있을 때마다 자동으로 재생이 되며 하나 이상의 영상이 담겨 있을 경우에는 리모컨 조작을 통해 원하는 부가영상을 팝업 창으로 감상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이 부분에서는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상들이 많게는 동시에 세 가지 이상 표시되기 때문에 한글 자막을 수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Alternate Opening’은 본 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또 다른 오프닝 시퀀스를 수록하고 있는데, 영화 속 등장하는 결사단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영상으로서, 총이 아닌 화살을 비껴 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어 흥미롭다. 실제 영화와 동일한 풀HD 화질로 제작되었다. ‘Extended Scene’은 역시 본 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확장 격의 영상을 담고 있는데, 그리 분량이 많지 않고 문맥상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영상은 SD 영상으로 수록되었다.




Cast and Characters’는 일반적인 메이킹 영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임스 맥어보이와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먼, 힙합 뮤지션이기도 한 커먼 등 출연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후반 부에는 감독과 그래픽 노블의 원작자인 마크 밀러의 인터뷰를 통해 캐스팅 과정과 배우들에 대한 생각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그간 액션 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제임스 맥어보이가 주인공 역할에 익숙해 지기까지 겪었던 트레이닝과 노력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고, 배우들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Stunt On the L Train’은 안젤리나 졸리가 미끄러지듯 기차 위에서 다리 밑을 통과하던 장면이 어떤 스턴트와 특수효과로 촬영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기차를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다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특수세트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Special Effects : The Art of the Impossible’에서는 전체적인 특수효과가 어떻게 디자인되고 구성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액션과 스턴트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CG에 의지하지 않고 가능한 한 기술적인 특수효과를 통해 표현해 내려고 한 점을 알 수 있고, 기차 칸을 360도 회전 가능한 구조물에 부착하거나 역시 360도 회전 가능한 구조물에 스포츠카를 장착한 특수효과 장치/세트들의 활용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다. ‘Groundbreaking Visual Effects : From Imagination to Execution’ 에서는 본격적인 CG 효과부분에 대한 제작과정이 담겨있다. 감독과 동일한 러시아 스텝들로 주로 이루어진 CG팀의 활약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장면을 만들기 이전에 CG를 이용해 세밀한 부분을 미리 시각화 하는 사전작업으로 좀 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차가 탈선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촬영 8개월 전에 이미 사전 시각화 작업이 마무리 되어 CG를 통해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에 세트와 구도 연출 등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The Origins of Wanted : Bringing the Graphic Novel to Life’에서는 이 영화의 원작인 마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원티드’에 대한 기원과 세계관을 만나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슈퍼맨을 동경했던 소년 마크 밀러가 이런 점을 어떻게 ‘원티드’라는 작품을 통해 풀어낼 수 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과 마치 영화의 상세한 스토리보드로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영화적 디테일을 보여준 원작에 대한 찬사와 독특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Through the Eyes of Visionary Director Timur Bekmambetov'는 감독인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에 대한 배우들과 스텝들의 생각을 전해들을 수 있다. 6년간 미술을 공부하여 미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스텝들의 인터뷰와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독특한 시각 언어로 표현해 내는 눈을 가져, ‘미친 천재’라고 부른다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Wanted : Motion Comics’에서는 영화의 원작인 그래픽 노블 속 장면을 재구성하여 수록하였으며, ‘The Making of Wanted : The Gams’에서는 게임 ‘원티드’의 제작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게임은 영화 속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주인공들의 뒷이야기라던가 이해를 도울 만한 내용도 담고 있어 영화의 팬이라면 한 번쯤 플레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될 듯 하다.





마지막으로 ‘BD-Live’기능을 지원하고 있으며, 서플먼트를 감상하다 보면 일종의 코드가 화면에 나오면서 ‘Unlock’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이는 게임 ‘원티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코드이며, 이 화면을 통해 ‘BD-Live’메뉴 아래 이스터 에그 메뉴를 확인할 수도 있다.

2009. 1. 11 | 신현이 (a_shitaka@nate.com)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과 극찬들. 국내 시사회 이후에 역시나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걸작이라는 거침 없는 평가들. 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면도 있고(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저 뿐 아니라 기대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 수록 실망이 자연적으로 커지는 법이라 감상전의 이 같은 엄청난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 말들은 분명히 곧 만나게 될 <다크 나이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습니다. 즉 쉽게 말해 100점짜리 영화를 만들었어도 워낙에 커진 기대 탓에 120점 정도는 보여줘야만이 100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는 얘긴데,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부담스런 기대를 안고 관람했음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는 200점짜리 결과물을 저에게 안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감동과 전율의 눈물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위대함에 대한 박수를 보낸 영화였으며, 그 동안 알고 있던 히어로 장르의 영화들을 모두(과장을 보태자면)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보여준 것은 정말 의미있는 시작이었다는 것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 기존 판타지스럽고 기존 히어로 물의 일반적인 구성에 충실했던(물론 팀 버튼의 <배트맨>이 이런 전형적인 히어로 물의 룰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니죠) 배트맨의 이야기를,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실로 가져와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인간적인 면으로 그려냈고,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 왜 배트맨이 되었나에 관한, 혹은 될 수 밖에는 없었나에 대한 이해가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정말 놀란이 만든 <배트맨 비긴즈>이전에는 단 한 번도 고담시가 현실에 존재할 법한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처음 맡게 된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워진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하는데에 <배트맨 비긴즈>의 최대 공을 들였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러한 프롤로그 없이 이미 비긴즈에서 설명이 된 세계와 인물들을 중심으로 본래 하고 싶었던 복잡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꺼내 놓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배트맨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적으로 조커가 등장하게 되었고, 투 페이스도 등장하게 되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웅이 악당을 무찌르는 기본적인 히어로 물의 아주 커다란(아주) 바탕 아래 범죄 스릴러의 요소를 가져왔으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와 히어로로서 겪는 갈등의 요소를 극대화해 어느 리얼한 극 영화들 보다도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고 지치고 곤란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의 갈등을 야기시키면서(그것도 히어로 물에서 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심리극의 분위기로 배트맨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이 팀 버튼의 배트맨과 차별되는 배트맨을 만들기 위해 리얼리티를 강조함에 있어 마이클 만을 거쳐가는 방법을 택했다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이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 동안은 그저 코믹스나 영화 속에나 만나볼 수 있는 가상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고담씨티를 실제 시카고를 배경으로한 로케이션 촬영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요 인물들과 배트맨, 조커 등의 캐릭터에 대한 리얼리티도 동시에 부여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마이클 만이 <히트>에서 보여주었던 총격씬에서의 리얼리티와 사운드(마이클 만은 역시 총소리의 달인!), 그리고 <콜레트럴>에서 보여주었던 L.A의 밤거리의 묘사 같은 장면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특히나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에서는) CG가 아닌 리얼리티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초반 프롤로그 장면을 비롯해 영화 속의 사운드는 엄청난 박력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밤거리를 배경으로 벌어진 차량 추격씬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오히려 묵직함과 박력이 느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우들의 열연은 <다크 나이트>를 위대한 영화로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먼저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사실 조커 역의 히스 레저의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에 가려서이지,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다크 나이트>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신뢰를 깊게 할만큼 인상적입니다. <비긴즈>에서 배트맨이 되어야만 했던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해 냈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언제 까지 배트맨이 고담시에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배트맨의 등장이 악을 소탕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 오게 된 계기는 아니었나'하는 '배트맨'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더 집중적으로 리뷰할 글을 위해 남겨두느라 자세한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겪는 고민은 관객도 예상할 수 없음은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해도 기회비용이 따르는,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크리스찬 베일만한 배우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서는 배우 히스 레저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짙은 분장과 의도된 목소리 연기 탓만이 아니라, 그의 놀랍도록 몰입된 연기에서는 히스 레저는 물론, 조커 하면 떠오르는 잭 니콜슨의 그림자 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간 히스 레저가 출연한 작품들은 <카사노바>를 제외하면 거의 다 보았던 것 같은데, 그 작품들 어디에서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도된 목소리 연기와 입맛을 다시는 동작 등을 볼 때는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서도 너무나 감탄스럽고 칭찬할 부분들이 많은데 이 부분 또한 나중 포스트에 좀 더 자세하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을 때보다 <다크 나이트>를 보고 나온 오늘의 느낀 그의 공백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ㅠㅠ


초반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는 이 정도면 거의 까메오 수준입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이런 스쳐가는 분량에도 기꺼이 참여한 그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결과적으로 킬리언 머피도 이 걸작의 영화에 동참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알프레드 역의 마이클 케인과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역시 <배트맨 비긴즈>에 비하면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캐릭터는 <다크 나이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거치면서 어느새 악역의 기존 이미지는 거의 다 희석되다시피 되어버린 게리 올드만 역시 고든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냈고(코믹스 속 고든의 모습을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코믹스 속 고든과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고든의 모습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케이트 홈즈에 이어 레이첼 역할을 맡은 메기 질렌할은 객관적인 미모 평가에서는 조금 뒤쳐진다는 평들도 있으나(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작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지는 캐릭터 가운데 유일하게 배우가 교체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몰입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물론 영화 자체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만든 감독의 연출력이 바탕이 되었죠).

하비 덴트를 연기한 아론 에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트맨과 조커 만큼이나)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선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하비 덴트와 악당이 모습으로 변해버린 투 페이스의 캐릭터 모두를 연기함에 있어, 캐릭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되지 않도록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배트맨, 조커, 투페이스,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아론 에크하트 등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 포스트에 따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스 짐머와 제임스 뉴튼 하워드가 무려(!) 함께 작업한 사운드 트랙은 그야말로 걸작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중후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를 한꺼번에 전하고 있습니다. 액션 장면에서도 너무 오버되지 않은 표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서사적이면서도 슬픈 감정이 묻어있는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오랜만에 스케일이 느껴지는 사운드 트랙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 너는 질러져있다).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된 이후에 작정하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연재를 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단 한 번 보고, 단 번에 연재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떠오르고 계획하게 된 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영화의 세계관 / 감독의 메시지, 배우/캐릭터 열전,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배트맨 이야기 등등 적게는 3회, 많게는 4~5회에 걸쳐 <다크 나이트>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작이자 히어로 물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에 대해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성의이겠지요 ^^;



1.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건 느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말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2. 하비 덴트가 투 페이스로 변해가는 과정과 배경을 보니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투 페이스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약간 우습게만 보였던 그의 모습들이 다시 보였달까요. <다크 나이트>중복 관람이 어느 정도 끝나게 되면 <배트맨 포에버>를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3.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 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이 뜨자 한 번, 그리고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와 스텝의 이름이 떴을 때 한 번, 총 3번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4. 전 원래 어느 영화든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 까지 다 보고 나오는 편이지만, 화요일 6시 용산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고 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쳐다봤는데, 아마도 제가 본 이래에는 가장 많은 관객들이 완전히 끝까지 남아있던 광경이었습니다.

5. 에릭 로버츠의 모습도 오랜만이라 반갑더군요.

6. 고든의 아들 역할로 나오는 아역배우 나단 겜블은 <미스트>에서 토마스 제인의 아들로 나오기도 했었죠.

7. 엔딩 크레딧에 히스 레저와 함께 추모의 뜻을 보냈던 이는 Conway Wickliffe 라는 특수효과 전문 스텝이었습니다. 1966년 생으로 지난해 9월 25일 유명을 달리하셨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티드 (Wanted, 2008)
또 하나의 시리즈물의 탄생인가?


처음 이 영화의 대한 정보가 알려지고, 안젤리나 졸리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떠올리는 액션이
강조된 예고편 등을 보고나서, 이 영화에 대해 든 선입관은 그저 '총질' 액션이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특히나 예고편에서도 강조했듯이 비껴쏘는 창조적인 총질을 봤을 때, 예전 총과 권법을 크로스오버한 액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퀼리브리엄>과 같은 조금 색다른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정도(?)의 예상이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한 '총질'영화 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총질은 그 창조적인 아이디어 만으로도 훌륭한
액션 장면들을 만들어냈지만 그것 외에도 히어로물이나 쿵푸 영화에서 기인한 설정들이나, 구구절절하지
않고 깔끔하게 뽑아낸 얘기로서, 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이 영화는 엔딩 크래딧의 스텝 명단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상당히 특수효과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을 직선으로 쏘지 않고 휘어져 나가게 비껴쏘는 것에서 야기되는 액션 장면들도 색다른 재미를 주지만,
일반인들보다 심작박동수가 빨라 시간을 느리게 쪼개어 컨트롤 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능력으로 야기되는
장면들은 필연적으로 특수효과를 요구하는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점프나 액션 들의 묘사도 인상적이고,
슬로우 비디오를 카메라의 줌인 기법과 적절하게 동시에 사용하면서 액션에 더욱 힘을 보태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총을 비껴 쏘는 것이 일반적으로 쏘는 것에 비해 얼마나 더 잇점을 갖고 있나 의아스럽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어쩌면 미션을 위한 일종의 기술적 옵션에 해당하는
정도이고, 앞서 언급한 시간을 더 느리게 컨트롤 할 수 있는(시간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순간을
세밀한 단위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능력이 더 핵심 포인트임을 알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티드>를 보면서 최근에 인상깊게 보았던 <쿵푸팬더>가 여러모로 떠올랐는데, 일단 안젤리나 졸리가
두 작품 모두 출연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타이그리스와 폭스의 연관성을 어찌어찌 연결해볼 수도 있겠으나
살짝 억지가 필요할 것 같아 이정도에서 ^^), 이 영화 역시 일반인 주인공이 고수로 거듭나는 '수련'의 과정이
영화 초중반을 이끌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대개의 쿵푸 영화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수련이란 것이
매일 매일 새로운 과정을 겪는다기 보다는, 반복적인 과정을 매일 매일 거듭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서서히 적응하면서 나중에는 모든 과제를 컨트롤 하게 되는데, 이런 수련의 과정을 <원티드>는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계속 맞기만 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를 때려줄 때에는 통쾌함도 느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단락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가 결국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깔끔한 이야기 처리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웨슬리가 성을 공격하여 마지막 슬로언과 결사단 무리에게 포위 당했을 때, 진실을 알게 된
결사단 단원들이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장면에서, 보통 액션 영화들 같았다면,

a. 일단 결사단원들이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남기보다는 슬로언에 말에 따라 웨슬리에게 공격을 퍼붓고
    웨슬리가 여차저차해서 그 위기를 벗어나 슬로언과 맞짱을 뜨는 분위기로 연결되거나.

a-b. 이 과정에서 다른 결사단원들은 다 슬로언의 뜻을 따르기로 하나 진실을 알고 결심을 한 폭스는
       슬로언을 배신하고 웨슬리와 결합하여 결사단을 일방타진하고, 키스하며 해변을 스포츠카로 달리며
       엔딩크래딧이 나오거나.

b. 다 죽기로 결사단이 마음을 먹고 결국 총알이 폭스의 머리를 관통하려는 찰나, 폭스에게서 총을 받아든
   웨슬리가 총을 쏴서 총알을 막아내 a-b의 후반부와 같은 결과로 이어지거나.

했을텐데 <원티드>는 이 중 어느 것도 따르지 않고 그냥 깔끔하게 원칙대로 목숨을 버리고 마는 진정한
결사단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b안을 가장 유력하게 보았었는데, 마지막까지도 웨슬리의
총알이 날아오지 않아 '어라, 이것봐라'하며 흥미로워 했었다.
결국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여지를 주지 않고, 무언가 속편이나 더 안정된 결말을 과감히 포기하면서,
깔끔하게 엔딩을 맺은 것은(슬로언이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센스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감독의 자신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가 액션 영화로서 어떤 영화가 될까 걱정되었던 하나의 요소는 바로 주인공인 제임스 맥어보이였다.
그가 출연한 작품을 적지 않게 보았었지만, 이런 액션 히어로(일종의 히어로) 영화에 남자 주인공으로는
어딘가 연약하고 어울리지 않는(그렇다고 피터 파커 식도 아니고 말이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영화를
보니 회사원으로서 주변의 압박에도 별 저항없이 참아내며 그저 꿈없이 하루하루 살고 있는 회사원에서,
180도 변신한 암살단의 단원으로서의 변모를 모두 표현해내는데, 불안한 눈빛과 강렬한 눈빛을 모두 갖고 있는
맥어보이의 캐스팅은 결국 성공적이었지 않았나 싶다. 특히 사무실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보여주는 소인배의
모습에서 친구의 말만따라 '멋진 남자'의 모습까지 모두 소화하는데에는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아마도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속편에서는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여전사의 느낌과 신비스러운 느낌을 폭스 라는 캐릭터에 잘 투영시킨
모습이다. 사실 '폭스'라는 캐릭터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일단 주인공과 이렇다할 로맨스도 없고,
그렇다고 완벽한 스승과 제자의 분위기로 보기도 애매하며, 친구나 적으로 구분짓기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제임스 맥어보이와의 실제 나이차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듯 하지만, 어쨋든 웨슬리가
액션을 보여주기 전에(보여줄 능력이 되기 전에), 액션을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로서 예고편과 화려한 액션에서
안젤리나 졸리만의 아우라를 잘 보여주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최근 너무 마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모건 프리먼은 예전 <럭키 넘버 슬레븐>에서 비슷한 지위와 분위기의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원티드>에서도 그 만의 진중하고 믿음직한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 그리고 <스모킹 에이스>와
<아메리칸 갱스터>에 이어서 괜찮은 작품에 계속 모습을 보이고 있는 랩퍼 커먼 (Common)의 모습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U-571' 과 <피아니스트>등에 출연했었던 토마스 크레슈만의 모습도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갑고 인상적인 배우는 바로 펙워스키 역의 테렌스 스템프 였는데, 최근까지 재미있게
보고 있는(몇 안남은 시청자 중의 하나가 바로 나다!)스몰빌에서 조엘의 목소리 연기로 등장하고 있는,
그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모습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들어도 참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잘 알다시피 테렌스 스템프는 영화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 역할을 맡았는데, 재미있게도 슈퍼맨의
청년시절을 다룬 TV시리즈 <스몰빌>에서는 '칼엘'의 아버지인 '조엘'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연기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과적으로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원티드>는 특수 능력을 갖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또 하나의
액션 혹은 히어로 시리즈 물로 이어져갈 확률이 높은 영화라고 생각된다(나중에 알고 보니 원작은 DC코믹스
작품이더라). 마치 <매트릭스>처럼 이제는 자신이 누군인가를 정확하게 알게 된 웨슬리가 본격적으로 펼치는
적들과의 우여곡절이 속편에서는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속편이 나오긴 하는거겠지?? --;;).



*. 음악이 데니 엘프만이더라.
**. <쿵푸팬더>와 겹쳐지다보니 기차가 다리위에 걸리는 장면에서도 무적의 5인방과 타이렁이 다리위에서
   싸우는 장면이 바로 떠오르더라.
***. 본문에 있는 것처럼 원작은 DC코믹스 작품이다.
****. 많은 멋진 액션 장면들이 있었지만, 날아오는 총알을 근거리에서 칼로 막아내는 액션 연출은 정말 멋지더라
*****. 'Time to Say Goodbye'음악은 그야말로 센스작렬.
******. <놈/놈/놈>예고편을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보니 역시 더욱 기대!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습니다.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RSS등록하기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 vol.4]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 1992)

줄거리

극악무도한 리틀 빌 보안관에 항거하는 한 창녀 집단이 1천달러 현상금을 내건다. 젊은 총잡이 스코필드 키드가 현상금을 차지하러 나서면 인근의 전설적 무법자 출신 농부 윌리엄(이스트우드)과 동행하자며 유혹한다. '손을 씻었다'고 마다하던 윌리엄은 마지막으로 작업에 나선다. 윌리엄은 건실한 친구 네드 로건(모건 프리먼)까지
동원하게 되는데...

리틀 빌은 자신을 잡으러 온 총잡이도 간단하게 처리하는 솜씨와 함을 과시하는데 그를 잡겠다고 나선 윌리엄은 옛날의 총솜씨도 녹슬었고, 체력은 달리기만 하는데...



사실 이번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를 연작하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더티 해리 시리즈와
바로 이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더티 해리>시리즈의 경우 1편이 국내에 DVD로 출시가 되지 않은터라
결국 올해 출시될 블루레이 박스로나 만나볼 수 있을 듯 한데, 이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는 물론 개봉당시에는
만나보지 못하였고, 비디오로 어설프게 관람했던 기억만 있던터라 이번에 거의 새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역시 멜파소 컴퍼니가 제작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서
이스트우드에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주고, 진 핵크만에게 남우조연상을, 그리고 편집상까지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서부 영화 역사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역시나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역시'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이번 연작을 하면서 리뷰한 작품들이 모두 정형화된 장르의 특성을 따르는 영화라기 보다는, 의외성을
갖고 있는 장르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서부 영화라는 장르를 갖고 있지만, 일반적인 서부 영화들처럼
영웅도 등장하지 않고, 로맨스도 없다.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종의
후회와 성찰에 관한 영화이며, 폭력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윌(클린트 이스트우드)'은 한 때 여자와 아이까지 죽여버리는 악마같은 총잡이로
이름을 떨쳤지만, 아내를 만나고 나서는 자신의 옛일을 후회하며 그저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손 씻은 고수가 나중에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일단 다시 총을 잡게 된 이유가 단지 두 아이들과의 생활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그 와중에서도 계속 심적 갈등을 하고 있고, 자신의 예전 행적들로 인해 악몽을 꾸는 등 끊임없이 후회하고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악령에 계속 고통받고 있는 힘없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두 캐릭터의 성격도 매우 흥미로운데, 악마같던 시절을 함께 했던 '네드(모건 프리먼)'는 처음에는 아직
실력이 죽지 않았다며 오히려 말조차 제대로 타지 못하는 윌을 걱정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방아쇠를 결국 당기지 못하고 결국 자신이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농부로 돌아간 것을 깨닫고는 일에서
빠지겠다고 윌에게 말하게 된다.

또한 처음 현상금 소식을 알려온 스코필드 키드는 아직 어린 나이로 5명을 죽여봤다고 허풍을 떨지만,
실제로 처음 사람을 죽이고 나서는, 그 폭력성과 공포에 잠식되어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고야 만다.
이렇게 기존 서부극에서 등장하는 쿨한 영웅들과는 전혀 다르게 겉으로는 아닌척 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을 통해
현실적인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볼 캐릭터는 진 핵크만이 연기한 '리틀 빌'역할이다. 보안관으로서 약간 거친 면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그가 악역으로 그려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 리틀 빌이 한 일들은,
보안관으로서 해야할 지극히 당연한 일들이었으며, 따져보자면 현상금 때문에 자신들을 잡으려는 보안관들을
살해한 주인공 '윌'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 것이였다. 여기에 또 다른 이 영화의 특징이 있다. 바로 극하게
대립과 선을 보였던 기존 선악의 구조에서 벗어나, 확실한 선도, 확실한 악도 없는 모호한 인물 구조를 통해,
어떠한 폭력도 결국엔 정당화 되지 못한 다는 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의미깊은
것은 영화 속 '윌'처럼 서부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실제로 그런 과거를 갖고 있는 캐릭터로서
노년에 와서는 자신이 저지른 만행들을 깊이 후회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사실 어느 영화에서나 악당이 주인공의 편을 죽일 때는 상당히 깊게 묘사되지만, 주인공이 악당들을 죽일 때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그저 '빵'하는 총소리와 함께 죽는 것만으로 묘사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모호한 설정도 그렇지만, 자신이 예전에 죽였던 이들이 악몽으로 떠올라 고통받는 윌이나,
사람을 처음 죽여보고는 '앞으로 숨도 쉴 수 없는 거겠죠?' '실감이 나지 않아요'라는 스코필드 키드의 말에,
'그 사람의 모든 것과 미래를 빼았은 것이지'라며 대답하는 윌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과 악을 떠나
하나 뿐인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성이 미치는 영향(사라져간 영혼 만큼이나 가해자의 영혼도 앗아가는)을
깊게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라는 제목은 매우 직접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 윌이 네드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예전 악마같은 실력으로 보안관무리를 모두 소탕하지만,
이 결말이 다행이거나 통쾌하다고 여겨지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후회한 날들을 보냈던 윌이
다시금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 안타깝고, 결국 용서받지 못한 채로 마무리되는 결말에 슬픔마저 느껴진다.
영화 속의 음악은 이런 윌을 위로하듯 따듯하게 감싸고 있지만, 결국 제목처럼 그는 용서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 소개했던 작품들은 초기작들임에도 연출력이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미 감독으로서도 연륜이 쌓인
이 작품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배우로서는 물론 감독으로서 1인 2역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서부극의 이미지를 토대로 또 다른 서부극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진 핵크만과 모건 프리먼, 그리고 리차드 헤리스의 연기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중년을 넘어선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그야말로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전성기를 지난
캐릭터들을 연기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들의 연기 자체는 아직도 전성기라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타이타닉>에서 로즈의 엄마 역할로 나왔던 프란시스 피셔의 얼굴도 반가웠다.


훌륭한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연기와 더불어 폭력성과 기존 서부영화가 갖고 있었던 모순들을,
감독 본인이 느끼는 대로 풀어낸 작품으로 세월이 흘러도 그 의미가 전혀 퇴색되지 않은 걸작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008/03/06 - [Moive] -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 vol.1]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2008/03/07 - [Moive] -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 vol.2] 알카트라즈 탈출
2008/03/10 - [Moive] - [클린트 이스트우드 시리즈 vol.3] 무법자 조시 웨일즈





배트맨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물이 그러하듯 만화책을 원작으로 영화화되어 인기를 얻으며
시리즈물로 거듭난 작품이다. 코믹스에 원작을 두었다는 것은 다르게 해석해보면 국내보다는
미국 내에서 훨씬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배트맨을 비롯한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미국 내에서의 슈퍼 히어로를 그린 코믹스의 인기는,

일반 영화 속에서 가끔 광적으로 만화책에 유난히 집착하는 주인공들을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슈퍼 히어로 장르를 이야기 할 때마다 다른 히어로 캐릭터들과 비교가 빠질 수 없는데,
배트맨은 다른 히어로들과 극을 달리는 캐릭터임으로 비교가 쉬운 편이다.



슈퍼맨은 타고난 능력을 가진 크립톤 행성 출신의 외계인이니 일단 접어두고,
헐크나 스파이더맨은 방사능 노출이나 후천적 사고에 의해 능력을 갖게 된 경우이나,
배트맨은 이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배트맨에겐 선천적으로 주어진 탁월한 능력도 없으며
후천적으로 얻게 된 능력 또한 없다. 그에겐 오직 부모님께 물려받은 엄청난 재력.
재력을 바탕으로 갖게 된 최첨단의 신형 무기들. 그리고 후천적 트레이닝을 통해
얻게 된 능력 들이 전부이다. 슈퍼 히어로들 가운데에는 가장 일반인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소시민을 대변했던 스파이더맨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배트맨은 매우 우울하고 슬픈 히어로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살해되는 장면과
동굴에서 박쥐들에게 느꼈던 공포를 바탕으로 분노와 복수심에 시작된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그 시작이 중요한 캐릭터가
바로 배트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팀 버튼의 ‘배트맨’과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배트맨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물론 비긴즈에도 등장하는 부모님에 살해 장면은 등장하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이후 갖가지 잡다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배트맨과 로빈’ ‘배트맨 포에버’ 등은
거론할 필요도 없을 듯.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나왔던 두 편의 배트맨은 연기력, 캐스팅,
작품성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작품들이었다.
배트맨 슈트를 아무나 입혀놓는다고 흥행할 수는 없었던 것.



이에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 천년에 새롭게 시작될 배트맨의 감독으로
워너가 점찍은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 워너 입장에서
배트맨이라는 블록버스터의 감독으로 ‘메멘토’나 ‘인썸니아’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크리스토퍼 놀란을 선뜻 감독으로 캐스팅하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싶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워너에서 3편과 4편의 실패 요인을 제대로 분석한 처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들어내는 배트맨이 화려함에서 뒤 떨어질 것 같은 우려는 할 수 있을지라도,
이야기 구조가 엉성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액션의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배트맨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나를 비중 있게
그려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놀란을 감독 의자에 앉힌 것은 매우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겉으로 드러날 정도의 엄청난 초호화 캐스팅은 아니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조지 크루니,
우마 서먼, 알리시아 실버스톤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만(?) 모았던 ‘배트맨 & 로빈’에
전혀 뒤질 것이 없는 화려한 캐스팅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어느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연기파 배우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트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무래도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 일 텐데, 배트맨과 웨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연기해야 하며, 쉽지 않은 액션도 소화해야하고 무엇보다 내면연기를 이어가야 하는
복잡한 캐릭터임을 감안하였을 때, 크리스찬 베일이 재 창조해낸 배트맨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배트맨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싱크로 율을 선보인다.
크리스찬 베일은 영화 제작 전에 팬들에게 의견을 물었던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배우였었다.

크리스찬 베일 외에 가장 눈에 띠는 배우 중 하나는 바로 리암 니슨일텐데, 지금까지 주인공의
스승이나 현자 등 지적이고 좋은 역할로만 분했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거의 처음 악역을 맡아
새로운 악역 캐릭터를 그려낸다. 완전 나쁜 놈이라기보다는 그저 주인공과 이상향이 다른 인물로
느껴지는 것도 그의 우아한 연기덕분 일터.



이와 반대로 악역 연기에 고수로 널리 알려진 게리 올드만은 참으로 오랜 만에 선한 역할을 맡아
극의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특히나 그의 캐릭터 ‘고든’은 코믹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으로 만화책의 열렬한 팬들에게도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 만한 캐릭터라 생각된다.
이 밖에도 이전 시리즈의 알프레드 보다 더욱 인자하고 아버지에 느낌을 물씬 전해주는 캐릭터를 그린 마이클 케인과 주인공을 돕는 조연 역할로는 최고의 선택이었을 모건 프리먼,
여자 주인공으로 나름대로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준 케이티 홈즈, 이 밖에도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인
실리안 머피와 켄 와타나베,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 룻거 하우거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모든 배우들 중 아무나 주연을 맡아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을 정도의
화려한 캐스팅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출시된 DVD는 블록버스터에 걸 맞는 수준급 화질과 음질을 수록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액션 블록버스터 하면 떠올리게 되는 DTS사운드는 제공되지 않지만
돌비디지털 5.1채널만으로도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들려준다(워너는 DTS사운드를 수록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배트맨 비긴즈에는 역시나 수록되지 않았지만 최근 이와 함께 출시된 전작들의 SE버전에는 DTS트랙이 수록되어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전하기도 했었다).
슈퍼 히어로를 다룬 영화답게 멀티 스피커를 최대한 이용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동굴에서 박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의 공간감이라던가, 영화의 하이라이트 겪인 텀블러(배트카)를 타고 벌이는 추격 씬 에서의 사운드는 레퍼런스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조금 못 미치는 매우 우수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텀블러가 만들어내는 그 묵직한 사운드는 우퍼 스피커를 통해 무겁게 전달된다.



이 바로 전에 ‘킹덤 오브 헤븐 DE'를 리뷰 한 뒤라 그런지 모르지만, 배트맨 비긴즈의 화질은 레퍼런스에는
역시나 조금 못 미치는 우수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영화 자체가 어두운 장면이 많았던 터라 화질의
여부는 여느 때보다 매우 중요한데, 암부의 표현력도 우수한 편이여서 감상에 전혀 지장을 주지는 않을 듯하다.
서플먼트는 두 번째 디스크에 따로 수록되었는데 코믹스 풍의 메뉴 화면이 인상적이다.
마치 이스터 에그를 찾듯 하나씩 공개되는 서플먼트에는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과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통해 마치 비밀스런 007작전과도 같았던 배트맨 프로젝트의 탄생과 준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또한 크리스찬 베일을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인터뷰와 만화가 영화로 옮겨지기까지의 과정,
배트맨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배트맨의 특별한 의상의 제작과정 등이 흥미롭다.



특히 영화를 위해 실제로 운전이 가능한 텀블러를 제작하여 영화에 적용하기까지의 과정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이밖에 각 캐릭터들을 설명해주는 파일 형식의 메뉴와 배트맨의 각종 무기 등을 설명해주는 영상이 수록되었다. 최근 서플먼트의 경향을 보았을 때 감독과 배우, 스텝의 음성해설이 수록되지 않은 점, 그리고 기존 시리즈가 DTS를 포함한 SE버전으로 재 출시된 것을 감안하였을 때, 더 나은 버전에 ‘배트맨 비긴즈’가 나올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최근 출시된 버전으로도 저렴한 가격과 스펙을 감안하였을 때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DVD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2005.10.17
글 / ashitak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