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지난 해까지는 의외로(?) 연말에 영화부분은 베스트를 정리하지 못하고 음반에 관해서만 쭈욱 정리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음반을 그만큼 듣지도 못한 것도 있고 영화를 워낙 많이 본 것도 있어 본격적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부분을 나누어 선정해 보았는데, 한국영화는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산해보니 의외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더군요. 그래서 베스트 10을 작성할만한 작품들을
소화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베스트 5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외국영화는 넘쳐나서 베스트 15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고,
다큐나 음악영화는 수가 많아서 아예 따로 섹션을 두어 선정할까 하다가 그냥 총 15편으로 선정하게 되었네요).

이미 연말이라 많은 블로거 분들과 전문가 분들이 2008년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셨는데,
한국영화 부분에서 가장 많이 베스트 1위로 선정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나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를
개인적으로 끝내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은근히 보려고 했던 한국영화들을 놓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요. 못 본 영화들은 다음 달에 DVD로라도 감상을 해야겠네요.

한국영화 베스트 5로 선정된 작품들 간에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으며, 개봉한 순서대로 정렬하였습니다.
각 영화의 이미지나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로 이동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른바 '물건'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이렇다할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시나리오의 짜임새와 극적 긴장감을 잘 컨트롤하는 연출력은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며,
주로 조연으로 출연해 오던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집중 조명을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하정우라는 신인 아닌
신인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18세 관람가로서 녹녹치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두었다는 것도 놀랍고, 장르 영화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에
반갑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4885 번호를 갖고 계신 분들은 조금 섬찟하셨을듯 ^^;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어찌보면 <추격자>보다도 더욱 지독한 장르 영화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의 공식블로그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류승완 감독님은 물론,
임원희 씨와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올해 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단편의 코믹스러움과 한국고전 영화들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류승완 만의 액션에 대한 애착이 묻어났던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국영화 베스트 5에 꼽게 된 작품임에도 두 번의 인터뷰에(특히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탓에 따로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던 케이스이기도 하네요.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려 감독님이 이전부터 제 블로그를 알고 가끔 들러주신다는(dp의 닉네임도 기억하고 계셨다는 ㅠ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어 심히 떨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입니다.







사실 <고고70>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아쉬웠던 영화이긴 했습니다. 국내에서 음악영화를 만든다면(특히나 라이브를
직접 소화해야만 하는 음악영화라면) 남자 배우가운데 이견 없이 가장 첫 번째로 고려될 배우인 조승우가 출연하고 있고,
현재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배우로서 출연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음악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최호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기대치가 평소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긴 했죠.
<고고70>은 조승우의 여전한 연기와 차승우의 실제 무대 위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신민아라는
여배우를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내내 만나볼 수 있었던 'Soul' 가득한 음악도
만족스러웠구요. 한가지 아쉬운건 좀 더 흥행이 될 수 있었을텐데, 영화 외적인 소송 문제들이 더 커져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린 관객들이 많아, 의외로 금방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 5를 꼽으면서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한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미쓰 홍당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개성 강한 유머코드로 무장한 시나리오로 불쑥 등장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에서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몹시도 반가웠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는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과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캐릭터였으며, 공효진 외에 서우, 황우슬혜 등이 연기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던
생동감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굉장히 코드가 강한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절로 뿌듯해지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이런 영화라면 언제든 대 환영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과속스캔들>은 예정에 없던 의외의 영화였습니다.
뻔할 것 같은 제목과 뻔할 것 같은 인물들로 도배되어진 영화일 것이라는 무서운 선입견으로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호평들에 이끌려 보게된 <과속스캔들>은 과연 좋은 가족영화였으며, 괜찮은 성장영화 더군요.
특히나 한국영화를 따져보면 온가족이 볼만한 가족영화나 드라마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연말에 온가족이 부담없이 볼만한 코미디이기도 했고, 캐릭터들도 과하지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에게 단번에 큰 관심을 집중시킨 영화이기도 했으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된 영화,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지만 영화를 선택할 때 선입견은 반드시 버려야할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영화였습니다.




2008년 저의 한국영화는 이렇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가장 기대했었던
영화이긴 했지만 베스트 5로 꼽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네요. 역시 베스트 5까지 꼽기엔 부족했지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도 인상깊었던 작품이었구요.

내년 한해도 기다려지는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봉준호, 홍상수, 장준환, 장진 등
다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의 작품들이 내년에 찾아올 예정이라, 2009년도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네요.
(이 가운데는 제 지인 중 한분의 입봉작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쁜 놈이 더 잘잔다>가 바로 그 영화!>

2008년 한해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09년에도 부탁할께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2008)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애초부터 기대반 걱정반이 동반되었던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1년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것, 키에누 리브스와 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윌 스미스의 아들로 더 유명한
제이든 스미스가 출연한다는 것 정도가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였죠. 아무리 사전 정보를 피해다니더라도 이 영화가
이른바 'SF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홍보된 것만은 피할 수 없었는데, 일단은 관객들의 기대를 한참이나 부풀려 놓은
홍보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결국 관객들은 낚였지만, 많은 관객들이 어쨋든 보게 되었으니 성공한 홍보라고
해야할까요;). <매트릭스>이후 국내 관객들은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한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트릭스>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곤 했는데, 더군다나 SF 블록버스터라고 광고했으니 이 같은 기대가 더 커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기 이전에 워낙에 악평(최악이다 정도의)들을 많이 접하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한 터라,
기대치를 본래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낮추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악까지는 아니다 라는 느낌이었는데,
만약 이 영화가 12월 꼭 봐야할 블록버스터로 홍보되지 않고, 몇몇 소수가 입소문을 내게 된 영화였다면 지금같은
최악의 평가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히려 돈을 제법 많이 쓴 B무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매우' 관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하지만 어쨋든 전체적으로 영화가 아쉬운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 합니다.



(아래 단락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이 망쳐놓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이 직접 지구를 방문하여 인간들을
멸종시키는 것으로 지구를 지키려하는데, 이 미션을 수행하러온 외계인 '클라투'(키에누 리브스)가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들의 선한 본성을 엿보고 결국에는 한 번더 인간들을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떠난다는 이야기죠.

사실 이거 자체가 그리 나쁜 시놉시스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어떻게 마무리하고,
그 결말을 관객들에게 러닝 타임 내내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지구가 멈추는 날>은 밋밋하고
갑작스런 전개 구조와 더불어 결국 아무것도 설득하지 못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결말 탓에 아쉬운 영화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외계인의 습격이나 공격들로 인해 인류 최후의 위기를 맞는 영화들에 비해 조금 더 아쉬운 점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영화의 클리셰들을 답습하고 있지만, 답습하려면 다 했어야 했는데 그 중간중간 과정들을 상당히 빼먹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간중간 과정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외계인을 비롯한 공포요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의 공포, 즉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인간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를 제대로 표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치닫는 순간에 대한 상실감이나 허탈함, 슬픔 등을 표현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영화들에선 흔히 등장하는 장면들인데,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숭고한 마지막 장면이라던가, 거대한 힘이나
재앙들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다 사라져버리는 인파의 모습, 그리고 결국 그 마지막 순간에 달했을 때 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게끔 하는 극적 감동 요소가 이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물론 이런 장면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면 쉽게 말해 '전형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런 장면들이 결국 하나도 없었던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화보다도 심심한 영화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전형적인 영화 한 편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니깐요.
물론 가장 좋은 건 전형적인 이야기를 가지고도 진한 감동을 절로 일으키는 영화일거구요.




처음 인류의 위험을 감지한 정부에서는 이 위험에 핵을 쥐고 있는 '클라투'에게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는데,
1951년 작인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그 때나 가능할 법한 무대포식(혹은 너무 순수한) 대화방식이라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육체는 인간의 것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별다른 안전장치나 보호장치도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자가 대놓고 심문하는 장면이나, 그를 지킨다는 것이 겨우 예닐곱명의 경호원이 문 밖에 서 있는 것
정도라는 점들은, 이 영화가 과연 2008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완전한
판타지 영화였다거나 아니면 원작처럼 1951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이미 최첨단 시스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관객들에 눈에는 너무도 허술하고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정부 관료들의 모습도 초반에는 매우 전형적이었는데, 케시 베이츠가 연기한 이 정부 요인 캐릭터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헬렌(제니퍼 코넬리)의 말을 새겨듣고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는 공격하지 말것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도 너무 갑작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한발 물러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가 결국에는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임을 감안했을 때, 극한에 몰린 케시 베이츠가 그제서야 말을 듣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케시 베이츠가 맡은 국방부 장관과 클라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케시 베이츠가 '나에게 얘기하면 된다' '내가 대표다'라고 얘기했을 때 클라투가 '네가 전 인류를 대표 하는가?'라는 식으로
캐묻는 장면이었습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는 대부분 모든 인류의 짐과 해결을 미군 혹은 미정부가 지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당연하지만 이 한마디로 미정부 관료를 당황시키는 장면이 나쁘지 않더군요.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지구에 온 클라투가 헬렌과 아들에게서 선한 모습을 깨닫고 이를 막기로 하는데,
아무리 그가 인간이 아니고 터미네이터에 가까운 외계인이라지만, 과연 러닝 타임 내내 이 두 모자가 보여준 모습들이
그 엄청난 계획을 포기하고 인류를 구원할 만한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특히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한
제이콥 캐릭터는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 아들 역할 만큼이나 짜증나는 캐릭터로 남기에 충분한 역량을 펼쳤는데,
<우주전쟁>의 경우는 그나마 아들 캐릭터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갔지만, 제이콥의 경우는 막판에 갑자기 착해지는데
아무리 애라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전개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래, 인간들을 더 믿어보자'라고 클라투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설정 때문에 이 전개가 전체적으로 아쉬운 것이지요.

그리고 제작진이 생각하기에도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제목에 어울릴 만한 장면이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막판에 가서 갑자기 멈춘 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건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기 보다는 '시계가 멈추는 날'로
보였습니다. 아무리 뻔하고 권선징악 적인 줄거리라도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 만한 좋은 영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지구가 멈추는 날>은 이 설득 과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낚였다'라는
느낌만 전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키에누 리브스와 클라투 캐릭터의 싱크로율이었습니다. 스티븐 시걸에 버금갈 만한
모두 비슷비슷한 표정 연기로 유명한 키에누 리브스는 이 영화에서 작정하고 무표정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번 영화 만큼은 그의 이런 표정연기가 득이 되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멋지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상조회사'분위기가 나던지, 끝끝내 집중이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ㅎ (더군다나 내용이 내용인지라
상조회사 직원으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이라는 설정과 딱 맞아 떨어지기도 했구요).

제니퍼 코넬리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캐릭터도 그렇고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키에누 리브스랑 제니퍼 코넬리 나온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였는데, 두 배우 모두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이든 스미스는 <행복을 찾아서>같은 경우는 아빠랑 같이 출연해서인지 정말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이 영화에서는 약간 갸우뚱해지네요. 갸우뚱해지는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짜증으로 인해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가 짜증이라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가 저 조차도 불분명 하거든요 ---;;
연기는 정말 잘했는데 캐릭터 때문에 짜증났던 경우는 <미스트>에 마샤 게이 하든을 들 수 있겠네요 ^^;



1. 본문에도 있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키에누 리브스의 모습에서 자꾸 상조회사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2. 거대 로봇(?)인 '고트'가 정부 시설에 잡혀있던 장면에서는 '에반게리온'이 연상되더군요. 잡혀 있는 모습이나
    이를 반대편에 앉아 인간들이 보고 있는 구도나.

3.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 로버트 네퍼가 제법 비중있는 캐릭터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터 3>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스크린속 활약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군요;

4.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아이맥스 만의 장점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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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리턴즈 - Episode 1 : 신비소녀 쥬라 (IMAX)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터라 TV용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국내에서 개봉하게
되는 흔치 않은 경우라던가, 추억의 애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역시 흔치 않은 기회들은
여러 악조건들을 감안하고서라도 꼭 챙겨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하지만 이런 노력도 최근에는 조금
무뎌져서, 예전에 '어린이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이누야샤 극장판 - 홍련의 봉래도>를 본 것이
이런 류의 애니를 극장에서 관람한 가장 최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이런 제게 최근 가장 관심있게 들려온 소식은 바로 '은하철도 999' 관련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냥 극장판을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63빌딩 아이맥스 관에서만 특별 개봉한다는
소식이었죠. '은하철도 999'는 최근 EBS에서 방영하며(현재는 종영했죠) 다시금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
전부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보면서 새삼, 참 어린이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새삼스럽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여튼 이런 은하철도 999가 아이맥스 포맷으로 새롭게 선보인다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극장들과는 달리 예매 시스템도 편리하게 지원되지 않고(좌석제가 아니죠),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특수성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음에도 과감하게 63빌딩으로 수년만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영화 외적인 얘기를 조금 드리자면, 크리스마스라는 대형 이벤트 데이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리도 사람들이
많을 줄을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요. 63빌딩을 가득채운 엄청난 인파들 때문에 예매를 하고나서도,
'그냥 환불하고 어서 이 빌딩에서 탈출할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정신이 없는 분위기였는데,
63빌딩 아이맥스관의 특성상 좌석제 보다는 그냥 입장하는 방식을 택한 듯도 보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니
극장 분위기보다는 놀이동산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줄을 서서 입장하는 것도 그랬고, 엄청난 인파들과 섞여 자리에 앉아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는 듯한 분위기도 그랬고,
전체적으로 놀이동산에서 대형화면과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특수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40분 남짓 인것도(가격은 대인 8,000원 이었습니다) 그러했구요.

이런 화기애매(?)한 분위기에서 관람한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일단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화질 자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볼 수
있었던 아이맥스 트레일러와 비교하여도 별로 좋은 화질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작품은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인물과 기본 설정만 빌려왔을 뿐
완벽하게 원작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은하철도 999의 아이맥스 버전'이
아니라 '아이맥스 영화의 은하철도 999 버전'이랄까요. 999보다는 아이맥스가 위주가 된 이야기 구조와 영상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3D로 제작된 <폴라 익스프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맥스 포맷을 위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999 열차가 관객들 눈 속으로 빠져들듯 지나가는 장면이라던가, 눈 바로 옆을 스치는 앵글로 만들어진
장면들이 많았죠),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을 멀리서 이동 카메라로 바라보는 듯한 장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은하철도 999보다는 아이맥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얘기한데에는 이런 영상적인 측면 외에 스토리에 관한
이유도 있었는데, '지구의 온난화'와 '공룡의 멸종' '갈릴레오 위성' 등 상당히 교육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마치 교육용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철이와 메텔의 설명을 통해 공룡들이 지구에서 어떻게 멸종했으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친절한 설명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공룡을 등장시키다보니
영상 측면에서도 아이맥스의 장점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구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작인 <은하철도 999>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상당히 심오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품인데,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갑자기 너무 아동스러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쌩뚱맞은
희망의 메시지라던가, 아무 설명없이 급하게 시작되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했구요
(그래서 마지막에 '자, 다 같이 안드로메다로 출발!'했을 때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네요 ㅎ).

아이맥스의 초대형 화면으로 보여지는 영상은 흥미로웠으나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더군요.
마치 게임 중간에 삽입된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인물들의 움직임이 게임 속 캐릭터 처럼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요 배역들의 우리말 더빙이 어색하다보니 999스럽지 않아 어색했던 것도 있구요
(참고로 이 작품은 100% 우리말 더빙판만 상영하고 있습니다).
메텔의 목소리는 스컬리 역할로 유명한 서혜정님이 맡았는데 뭐 그럭저럭 이었다고 생각되나, 철이와 차장의 목소리는
끝내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익숙한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없다보니 더더욱 은하철도 999 스럽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은하철도 999>를 생각하고 오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메텔과 철이, 차장, 은하철도 999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익숙한 목소리도 없고, 이야기의 분위기도 사뭇 틀리니까요.
하지만 63빌딩 아이맥스 관 대형 스크린의 웅장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체험'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나쁜
선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관람보다는 '체험'이 위주가 된 애니메이션인듯 싶습니다.


1. 하록 선정과 에메랄다스가 우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

2. 엔딩 크래딧을 보니 영어 더빙 캐스트가 나오던데, 미국에서 상영하는 버전에 우리말 더빙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3. 이럴바에야 처음 999호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에서 김국환의 주제곡이 신나게 울려펴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명곡을 아이맥스 대화면을 통해 들었다면 초 감동이었을텐데 말이죠;;;

4.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쥬라' 캐릭터를 보니, 왜 이렇게 '록맨'이 생각나던지요
    (쥬라의 아빠는 정말 록맨 같더라구요 ㅎ)

5. 원제를 찾아보니 '은하철도 999 별하늘은 타임머신 에피소드 1 : 태양계 공룡 멸종편' 이군요 ;;;

6. 현재로서는 1월 19일까지 상영 스케쥴이 잡혀 있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예스 맨 (Yes Man, 2008)
짐 캐리여서, 주이 디샤넬이어서.

12월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정리하면서 이 영화 <예스 맨>을 소개할 때 '짐 캐리가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다'
'거기에 주이 디샤넬까지 나온다니 더할나위 없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한적이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스 맨>은
애초부터 그 이야기나 완성도에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는 짐 캐리의 출연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은 있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해프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등을 통해 완소 배우로 거듭나고 있던 주이 디샤넬의 출연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런 기대가 크게 배반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목과 시놉시스 몇 줄로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라는 얘기도 되겠네요.
좀 더 보태자면 짐 캐리보다도 주이 디샤넬에 더 완벽하게 빠지게 된 영화가 되었다고 할까요.




(다음 사진이 나올 때까지 한 단락에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스 맨>은 내용에 대해 그리 깊게 나눌 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 한 단락으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혼자있기를 즐기게 되어버렸으며, 주변의 약속이나 연락에도 그냥 무반응으로 줄곧 대응해 오던
주인공 칼 (짐 캐리)은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한 강연회(?)에서 무엇에 홀린 듯 '예스 (Yes)'의 힘, 긍정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강의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마치 모든 점쟁이가 '요즘 힘들지'하면
'맞아요, 힘들어요'하면서 잠시나마 혹하게 되는것 처럼), 단순하지만 뻔한 얘기를 잠시나마 곱씹어 보게 된 그는,
반 강요에 못이겨 '예스'를 외치게 된 일이 발전하여 좋은 인연과 결과를 낳게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러면 정말 '서약'한대로
무조건 '예스'를 외쳐보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정말 거짓말 처럼 이 '예스'로 인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그의 생활은 더욱 활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니 누리지 않았던 삶들을 적극적으로 영유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무조건 '예스'로 답한다는 것을
안 주변 사람들이나 은행의 고객들은 그를 곤욕스럽게 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물론 은행 고객들의 경우 곤욕보다는
긍정적으로 풀리긴 했죠). 이런 예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는 이상한 행동들로 오해를 받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점차 좋은 관계를 맺어오던 앨리슨 (주이 디샤넬)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너무 '예스'를 외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노 (No)'를 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간 간과해 왔다는(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금 진심으로 자기 주변과 앨리슨을 받아들이게 된다는...뭐 특별할 것은 없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 영화는 짐 캐리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에이스 벤츄라>와 <이터널 선샤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약간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닌가 싶은거죠. <에이스 벤츄라>같이 포복절도 할 수준의
웃음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짐 캐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손짓 발짓, 대사들로 인해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폭발력 부분에서는 그의 본격적인 코미디 영화들만 못하며, 부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왔던 캐릭터가
긍정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드라마는 <이터널 선샤인>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거죠. 물론 두 작품들과 비교해서 모두 혹은 한 쪽만이라도 완전히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어디 쉽게 나오겠느냐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지점이 조금 모호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짐 캐리하면 기대하게 되는 웃음의 포인트도 조금 부족했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는 그 메시지의
전달력이나 메시지 자체의 내용도 그리 새롭거나 임팩트가 있지 못했던 것 같구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 캐리'라는 전제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쉬움들입니다.
짐 캐리여서 말이죠.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따져보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짐 캐리만의 매력과 코미디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짐 캐리는 참 팔 다리가 긴 배우 중 한 명인데, 그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만들어내는
몸 개그 또한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몸 개그 장면들 가운데는 그처럼 긴 팔 다리가 아니라면
별로 우습지 않을 장면들도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점이 우리가 짐 캐리 영화를 볼 때 너무 익숙해져서
그만의 장점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해리포터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포크 가수를 흉내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대충 하는거 같지만 짐 캐리가 하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포크 가수를 흉내내는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포크 가수라기 보다는 Dashboard Confessional 같은 이모코어 밴드를
흉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굉장히 특징을 잘 잡아서 성대모사 수준의 패러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웃음을 유발할 만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북미에서 보신 분들 계시다면 외국인들은 이 한국어 시퀀스를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유창하다기보다는
잘 외운 듯한 티가 나긴 했지만, 한 두 마디가 아니고 제법 많은 우리말 대사가 스크린에서 나오다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 캐리가 <예스 맨>에서 보여준 연기는 여전했지만 영화 자체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약간 어정쩡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절제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달리면서 사진찍는 장면 등에서는 절로 뿜게 되더라구요 ㅎ




제가 이 영화에 최소한 별 반개를 더 주게 된 이유는 바로 짐 캐리가 아니라 앨리슨 역할을 맡은 주이 디샤넬 때문이었습니다.
주이 디샤넬은 제가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헐리웃의 여배우 이기도 한데, 이렇게 주목하게 된데에는 배우로서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더 돋보였던 것은 이런 그녀의 뮤지션스러운 재능이 영화 속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를 통해서 그녀가 속한 밴드인 She & Him의 음악을 살짝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예스 맨>에서는 그녀의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엿볼 수 있습니다. 극중 배역이 밴드의 보컬이라 직접적으로 여기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맛볼 수도 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Yes Man'이라는 곡의 보컬을 비롯해 그녀가 직접 노래하고 있는 곡들이
사운드트랙에 담겨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음악이 와닿았던 영화이기도 했는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Eels'가 전체적인 음악을 맡고 있어 중간 중간 그의 아련하고 매력적인 보컬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코미디 영화치고는 드물게 사운드트랙을 구매하게 될 것같은 영화였어요. eels와 주이 디샤넬이라면 구입하고도 남죠.
암요(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라이센스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해외주문은 꿈도 못꾸는 터라 제발 라이센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주이 디샤넬에 대해서 조금 더 보태자면, <해프닝>에서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가 그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물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맡은 '앨리슨'은 실제 그녀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밴드 멤버인 것도 그렇고,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여림이 느껴지는 '앨리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주이 디샤넬이라는 배우를 좀 더 선보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나온 영화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나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은하수를...>의 캐릭터와 살짝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저는 '앨리슨'의 경우가 더 좋았네요.




이 영화에는 짐 캐리와 주이 디샤넬 외에 조연으로 테렌스 스템프가 등장하는데, 그가 누구인가 하면 왕년에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역할로 출연했었던 배우이며 재미있게도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하지만 영화 속 슈퍼맨 보다 더 늙어버릴
때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드 <스몰빌>에서는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던 배우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로 '예스 맨'이 되라는 강연을 하는 교주스러운 강사로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진지한 포스가 있어서인지
이 캐릭터가 아주 가볍게 그려지지 만은 않더군요. 테렌스 스템프는 특히 목소리가 너무 멋진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 속에서도
그의 멋진 목소리를 충분히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했던 <원티드>에도
출연했었는데, 어쨋든 자주 뵙는거 같아 반갑습니다 ^^;

그 외에 미드 <앨리어스>시리즈의 '윌 티핀'역할로 눈에 익히고,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어느 정도
각인을 새긴 브래들리 쿠퍼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분량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거리가
많지는 않네요.




<예스 맨>은 큰 기대없이 본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코미디 배우들에 비해 짐 캐리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미국적'인 색깔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데 크게 불편함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 않을 듯 하구요.

그리고 저처럼 주이 디샤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eels와 주이 디샤넬이 참여한 영화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1. <해리포터>를 비롯해 <300>까지 코스츔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 외에 조연들 캐릭터를
코스츔 하고 온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무척이나 웃었습니다.

2. 주이 디샤넬이 극중 참여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도 그닥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가사가 좋았죠 ㅋ

3.

이건 그냥 팬으로서 사진 한 장 추가.
너무 예쁘게 포장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가장 평범하게 나온 그녀의 사진을 한 장 골라봤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12월 27일(토) 오후 2:30분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예매 오픈은 12/22 일 예정입니다.)

블로그 방문자 투표 결과 최종 상영작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연출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로 결정되었습니다.


연말을 맞아 사랑 영화를 뽑아보자는
초반의 의도와는 조금 어긋나는 듯도 하지만,
외부의 편견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 속에서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정보 보기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 씨네아트 블로거 세뼘왕자님의 추천의 글 =======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요? 트러블 메이커, 괴짜 영화감독, 전천후 재주꾼, 겁 없는 게이,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실입니다. 짧은 시간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과 인생이 증명해주듯 말이죠. 다작을 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고, 더구나 36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독일의 감독이 한국땅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공이 큽니다. 영화를 알지 못해도 왠지 제목이 낯설지 않은 이 작품은 파스빈더가 1974년에 만든 영화이면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60세의 독일인 여성과 20대 중반의 아랍 노동자의 사랑. 두 명 모두 독일 사회에서 보호와 애정의 영역 밖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에는 유독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들처럼 말이죠. 그 관심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파스빈더는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작품이지만, 어려운 얘기 다 떠나서 스토리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본 후 과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무슨 의미인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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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도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열립니다~ (벌써 3회째네요 ^^;)
이번 상영작으로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추천하고 있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영화제 포맷으로 가지 않는 이상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ㅠㅜ)

이번 주 토요일인 27일 오후 2시 30분에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신청글을 남겨주세요~

이 글에 비밀덧글로 본인 확인을 위한 닉네임과 핸드폰 뒷자리 4번호와 원하시는 매수(최대 2장)를
남겨주시면 총 10장이 다 소진될 때까지 선착순으로 상영회에 초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그 세계

스튜디오 지브리.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만들어낸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이지요(이 창대한 시작 문구로
알 수 있듯이 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월드에 흠뻑 빠져있는 팬이며,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둡니다. 하긴 평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이지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다시금 직접 몸소 나서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기획 단계서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던 <게드 전기>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제가 쓴 <게드 전기>리뷰를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엄청난 혹평들에 비해 저는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고 봤었구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의 경우가 그랬듯이, 사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스터만 보고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얼굴이랄까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같은 경우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질 않았던 것도 갓파쿠의 생김새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조금의 우려도 있었던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른으로서 잃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스틸컷만 보니, 마치 괴수물의 도입부분과 흡사하군요. 어떤 공포스런 미확인 물체가 인간을 덮치기 이전에는
꼭 저런 앵글의 컷이 등장하죠. 멀리서 간을 보는 장면이랄까요. 물론 <포뇨>에서는 전혀 이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지만요)


고전인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 식으로 풀어낸 <포뇨>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 '브룬히루데'가
인간인 소스케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소스케 등장 이전에
'브룬히루데('포뇨'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본래 이름입니다)'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묘사되는데, 이 세계의 모습은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간이지만 바다의 여신과 결혼하여 바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후지모토'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조명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도
같은 포스의 뒷모습을 풍기는 듯 하지만, 이 후지모토 캐릭터의 역할은 '하울'과는 분명 다른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후지모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에게서는 <렛 미 인>에 등장했던 '이엘리'의
보호자 격 남자의 모습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와도 같은 부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뇨>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드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들은 '후지모토'가 악당 역할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느낌이(매우 동양적인)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뇨가 인간이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포뇨가 인간에게 선택 받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경우 받을 상처와 일들이 걱정이 되어 미리 예방하려 하는 것이고,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결합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직접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아마도 그는 바다의 여신을 극진히 사랑해서 인간 세상과 멀어져
바다 속 삶을 택한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외로움도 느꼈을테지요. 자신의 딸인 포뇨가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잘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스토리는 포뇨의 아버지인 후지모토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돌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깊었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포뇨가 인간인 소스케와 더불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애초부터 있었다는 걸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끝끝내 둘의 만남을 막거나 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브룬히루데'가 '포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후로 '포뇨'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었거든요.
<포뇨>에서 후지모토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개그를 치는 조연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초반 바다속 에서 포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잠깐 움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포뇨와 닮은 수 많은 '포뇨스럽게' 생긴
이들이 단체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뇨는 저들의 엄마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포뇨가 먼저 태어났거나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프로토 타입이라던가 라고만은
생각하게 되지 않더군요. 이후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마시고 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포뇨는 동생들보다 월등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우친 네오와도 같이, 물 밖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동생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일찌감치 깨우치게 되었고, 이런 깨우침으로 인해 궁금한 점들이나 욕구들이 많아졌으며,
그로 인해 발달하지 않았던 신체가 발달하여 동생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아예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똑같이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였지만, 유독 발달하여 '언니'로서의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프로토 타입으로 생겨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마 이 동생들도 포뇨가 이렇듯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욕구불만이 없었겠지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생들이 굉장히 포뇨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자신들은 못하지만 포뇨가
꿈을 이루는데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거죠.
포뇨와 동생들의 관계도 흥미로웠던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 가까운 배경음악과 함께 포뇨가 파도위를 춤추듯 달리는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도 좋았고, 묘한 느낌도 좋았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캐릭터를 꼽자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운전 스킬로(폭풍우 치는 좁을 길에서도 드리프트를!!) 보는 이를 움찔하게 했던 리사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주가 되는
<포뇨>에서 '후지모토'와 포뇨의 엄마와 더불어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사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이런 어른이 되야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포뇨>에서 리사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려한 운전 실력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다 못해 영웅적인 면모까지 발휘하는 모습도 아닌, 포뇨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아이가 굴러들어왔을때(포뇨는 굴러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죠 ㅎ), 단 한번의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아무런 스스럼없이 포뇨를 소스케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월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일이도 모르겠는데, 마법을 부리고 더군다나 며칠 전에 물고기로서 만났던 이가 갑자기 꼬마 아이로
등장했음에도 이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사의 모습은, '멍청하다' '허술하다'라기 보다는 '깨어있다' '열려있다'로
봐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경이와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순수함을 갖은 아이에게 얼른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 순수함을 더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은 부모의 자세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부터 언급한 후지모토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까지...
<포뇨>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가감없이 편견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인 동시에, 한 편으론 이런 아이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사의 옆 모습에선 '하울'이 어렸을 적 '캘시퍼'를 처음 받아들일 때의 옆 모습과, '나우시카'의 옆 모습이 동시에
연상되더군요)

부모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은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포뇨의 앞으로에 대한 일들을 놓고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와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가 마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듯 '누구 어머니 되세요?'하며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리사에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리사와 포뇨의 부모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피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리사와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한 할머니가 계속 되는
의심을 갖고 불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여느 작품 같다면 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으로 등장해서 마수에 걸려있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겠지만, 미야자키 월드에서는 '왜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가?'라는 것을 되묻기 위한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를 보니 '다섯 살 아이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여있다' 라고 했던데 이런 마음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해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고 싶은 '원석'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리사와 그랑망마레의 대화는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라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멀리서 지켜주자 라는 것이 이 두 부모의
선택이었던 셈이이죠.



(아마도 '포뇨'는 지브리 역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없이 대놓고 귀여우니까요 ^^;)

<벼랑 위의 포뇨>를 일반 영화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여기저기 모순 점 투성이고 이해안되는 부분도 분명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의심이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캐릭터의 몸짓, 말짓
하나에도 무언가 암시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보는 스타일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포뇨는!)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들 없이 맘 편하게 즐겨라 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는 마냥 즐기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필요없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다섯 살 아이가 중심이 된 순수한 세상에 어떤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한창 때의 미야자키 하야오
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져봐도 나름 젊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순수함과 진리로 포용하기는 했지만, 환경파괴와 문명화, 기계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했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는 점점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인 마인드 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보호가 더 앞서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센과 치히로..>를 보면서도 감독이
치히로를 그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포뇨>에서는 이렇듯 아이를 할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것이 일부에서는 일종의 '늙었다'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기본 정서가 동심을 비롯한 순수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더군요.
장면 장면에서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심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이들이 유치하다라고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섯 살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임팩트 면에서는 최근작 <센과 치히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비해 조금
약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주제곡만으로도 깊은 각인을 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이 노래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군요). 물론 앞서 잠시 언급했던 정통 클래식 스타일의 곡들도
좋았구요. 역시나 미야자키 월드를 완성시키는 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팬심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근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있기 때문인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점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작품은 계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머물러 있으나 보는 이들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기 때문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벌어진 이 공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다시 좁혀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의 '포뇨'모습만 보고 조금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나,
'포뇨'의 주제곡을 미리 듣고는 조금 유치하고 아동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다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 담고 있지만, <포뇨>는 이를 전작들에 비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적 메시지가 깊게 담긴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듯이, 이런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미야자키 월드이구요.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그 세계에 빠지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5세에 맞춰졌기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와 그 세계에 매료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 며칠 전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에서 <벼랑 위의 포뇨>OST를 보고는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은 질러야 겠군요!

2.

후지모토는 왠지 살짝 목소리도 그렇고 오다기리 죠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문득 문득 멋진 모습도 보여주는데
폐인스러움도 갖췄다고 할까요 ㅋ

3. 크리스마스에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군요.

4. 사실 닭살스러운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포뇨'는 대책없이 귀여운대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소스케! 좋아!' 더 많은 대사는 필요없어요. 사실 여기에 다 담겨있기도 하구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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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ts, 1987)
한 소년의 담담한 회고록

씨네큐브에서 열린 '루이 말 감독 특별전' 3부작 상영을 통해 <굿바이 칠드런>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라콤 루시앙> <마음의 속삭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루이 말 감독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라 1987년에 개봉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죠.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1992년작 <데미지>외에는 본적이 없었는데, 이 <데미지>조차도 예전에
어렴풋이 본 영화라 사실상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은 이 영화 <굿바이 칠드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네요.




<굿바이 칠드런>은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 파리 근교에 위치한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기숙 학교를 배경으로 전쟁이
만들어낸 잔혹함을 소년들의 우정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한 진한 휴먼 드라마는 여러 영화들이
있는데, <굿바이 칠드런>은 그런 영화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무덤덤하게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도, 독일군들이 기숙학교를 급습해 유태인들을
골라내는 과정도, 이를 바라보는 줄리앙의 시선도 별로 극적이지 않습니다. 영화적인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달까요.
그래서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들에 비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깊게 공감하게 되는 관객들도
적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굿바이 칠드런>은 이렇게 감정선을 극대화 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아련하고 애틋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1987년작을 이제 와 처음 감상하게 된 이유에서도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는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실제로 감독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영화적이지 않다는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 비슷한 영화들의 다른 클라이맥스 부분에 비하면 심심하기
그지 없을 장면이겠지만, <굿바이 칠드런>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루이 말 감독만의 연출 재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녕이라는 말도 못하고 헤어지는 장면이 (보네의 그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으니 말이에요.




요즘은 예전에 비해 부쩍 영화 속 행복한 장면들에 대해 더 깊이 받아들이곤 하는데, 어둡고 암울할 것만 같은 이 영화 속에도
주인공들이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행복해 하는 장면이 한 컷 있습니다. 바로 채플린의 <이민선>을 다같이 관람하는 장면인데,
아직까지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나 관계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못했던 상태였음에도 다 같이 아무 생각하지 않고
즐기고 웃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이 장면에서는, 최근 보았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이 역시 채플린의 영화가 삽입되었었죠, 두 작품을 통해 오히려 찰리 채플린의 예전 작품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직접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생음악을 배경삼아 관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예전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반드시 저렇게 했어야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가끔씩 저런 환경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운치있고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 모두가 행복해 하는 그 순간.)


이 영화를 통해 알아본 배우라고는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이렌느 야곱 뿐이었습니다.
<굿바이 칠드런>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레드>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이렌느 야곱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암울한 기숙학교에서 빛과 같은 존재에 가까운 피아노 선생님을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유난히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비중이 그다지 큰 것도 아니고, 연기력이 어땠다 라고 말할 정도의 캐릭터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이미 알고 있는 이상
이렌느 야곱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재미로 인식되더군요.




<굿바이 칠드런>은 기존에 우정을 그린 영화들과, 또 전쟁을 그린 영화들과 완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내용들은 전쟁과 깊숙히 관계가 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전혀 별개의 일인듯 진행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 역시 이 배경을 인식하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전혀 신경쓰지 않으려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겪은 실화라고 봤을 때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를 몰고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음에도, 빈 여백을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좀 더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구요.


1. 줄리앙의 엄마와 형의 유머는 제법 재미있더라구요 ㅎ
2. 저는 왜 저 포스터를 보고 둘다 소녀인줄 알았을까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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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로 일본 내에서도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큰 인정을 받고 있는 수오 마사유키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카세 료의 영화이기도 하구요.
제목과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본의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강하지만 조용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영화가 의외스러웠던 것은 앞선 영화들처럼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던(코미디 영화가 아닌 
영화들에서도 유머러스함을 언제나 숨기지 않았던)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이렇듯 심각한 주제와 법정드라마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배우란 어차피 감독과 작품에 따라 연기변신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지만, 감독의 경우는 자신 만의 스타일이나 세계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전혀 다른 이야기나 장르의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결과물들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도
걱정이 되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수작이었으며,
특히 이렇다할 영화적 장치 없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되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분노를 동시에 일으키는
순작용을 만들어낸 영화였습니다(여기서 분노란 영화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에 의한 분노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어느 출근 길에 만원 지하철에 탔던 텟페이(카세 료)가 한 여학생으로 부터 치한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고 이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벌이는 재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이 과정 속에는 그 어떤 영화적 장치들도 없고,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설정된 장면이나 이야기도 없습니다.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일본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된 뒤 200건에 달하는 재판에 참가하면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재판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떤 이 제도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개선
여지가 있는지를 파악한 뒤, 이 이야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영화는 어찌보면 시종일관
참으로 답답하고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보듯 혀를 차게 만듭니다.

사실 이 영화처럼 감상기의 내용과 영화 속 텍스트가 중복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나 독백등을 통해 감독은 물론, 관객들이 하고자 하는 말까지 모두 다 담고 있습니다. 그 만큼 감독이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흔히 법이라는 것을 적용할 때, 죄인에게 유죄를 어떻하면 선고할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죄가 없는 이들이
어떻하면 유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잘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생각도 이런데, 그 가장 가까이 있는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관심은 더더욱, 유죄에만 관심이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죄인을 잡아다놓고 무죄라고 판명해 버리면, 자신들의 경력에 흠이 생기게 되고 능력없는 검사, 재판관으로 평가받으며,
결과적으로 정부 권력에서 집행한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은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듯이 99.9% 입니다. 극중 야쿠쇼 쇼지의 대사처럼 '이 99.9%라는 것이 확률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죠. 결국 그 0.1%의 케이스가 자신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며, 대부분이 유죄를
받을 죄인들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에도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한 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이는 자신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텟 페이의 여정은 바로 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텟 페이도 처음에는 '자신은 정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재판으로 가봐야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그냥 유죄를 인정하고 보석금을 내면 당일날 풀려날 수
있다는 당직변호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은 '정말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텟페이의 생각이 옳았느냐를 넘어서서, 얼마나 힘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선택이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기 전이라면 당연히 무죄 상태로서 죄인 취급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법 제도는 일단 유죄로 판명하여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라도 유치장에 몰아넣고 중범죄자들과 똑같이 취급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좁은 유치장에서 생활하고,
취급받는 텟 페이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텟페이는 이 같은 취급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돌아보게 끔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적인 요소를 더 살리려고 했다면,
텟페이가 강하게 반항하고 소리지르며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겠지만, 극중에서는 거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실제로 텟페이와 같은 현실에 놓여지게 된다면, '자신은 정녕 무죄이기에' 얼떨떨함에 아무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영화는 텟페이만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억울하게 잡혀 있는
존재에 대한 시선도 있지만, 그 만큼이나 그로 인해 고통받고 변해버린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친구가 어느새 완전히 법 전문가가 되어 있다던가,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 역에서
광고판을 몸에 쓰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어머니와 친구의 모습을 보면, 이 잘못된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격지 않아도 될 고통을 주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그리는 수오 마사유키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조금도 극적이지 않고 조금도 더하거나 줄이지 않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자신과 메시지의 힘을 믿었던 것이지요. 결국 어머니가 유죄선고를 받고 울부짓을 때보다도 처음 광고판을 몸에 두르고
인파속으로 나설 때가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결론을 예상할 수 있고,
그런 결과가 별로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실제로 무죄이기에) 점점 텟페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만, 자신 만의 곧은 주관이 있었던 재판관이
결국 교체되고 이 시스템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평가가 조정되면서 점점 텟페이는 유죄로 굳어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재판 시작부터 애타게 찾았던 결정적 증인을 찾았을 때 관객들은 '아,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지만, 이것 역시 그들 나름대로 '해석'되기에 따라 아무런 증언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동영상이 나와도, 직접 방송에서 말을 해도,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것 없죠).

이렇게 까지 울화가 치미는 일들이 계속 생기지만, 그래도 텟페이는 마지막 유죄를 선고 받기 직전까지도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정말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는것'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라는 순진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현실과 너무 닮아있는 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당연한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텟페이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죄를 합리적으로 증명했음에도
이를 판단하는 법과 제도, 그들에 의해 결국 판단되어 유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는 법 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그냥 큰 이익이나 불익이 되지 않는 일들에는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들고, 쉽게 말해 '그냥 좋게 좋게 하는게 서로 좋은거 아니냐'라는 식이 팽배해져 있는
요즘, '아닌건 아닌거다'라고 꼭 외쳐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하겠습니다.




주연을 맡은 카세 료의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구구는 고양이다> <도쿄!> <허니와 클로버> <하나>까지, 최근 일본에서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자배우라는 그의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습니다(<박치기>에도 출연했다는데, 이 영화를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음에도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DVD를 다시 꺼내봐야 겠네요). 극중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 나이 인줄 알았는데, 74년 생으로 올해 서른 다섯이더군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시종일관 한정된 내면의 연기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해야 하는데,
카세 료는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토 아사카, 야마모토 코지, 야쿠쇼 코지 등의 연기도 특별히 나무랄데는 없지만,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카세 료의 영화이긴해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 모든 메시지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어서, 감상기를 별도로 쓰기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구요.

사회 비판적인 텍스트를 오히려 영화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깊게 어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1. 다케나카 나오토가 까메오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2.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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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써 3회째를 맞는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12월 27일(토) 오후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지난 1, 2회 상영회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1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 10월 31일(금) <원더풀 라이프>
제 2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 11월 29일(토) <쥴 앤 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상영회 일시: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상영회 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 상영 후에는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씨네토크 시간이 이어집니다.
* 본 상영회는 유료 상영입니다.(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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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에서는 씨네아트 팀 블로그 멤버들이 추천하시는
 위 여섯 편의 영화들 중 최다 득표를 얻은 영화 1편을 상영하게 됩니다.

아래의 링크를 눌러 투표에 직접 참여해 주세요.



======== 씨네아트 블로거들의 추천의 글 =======


<리컨스트럭션 Reconstruction> - 환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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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스트럭션>은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났음에도 강렬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은 여자, 아메에게 알렉스가 다가가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흔한 사랑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이야기는, 알렉스가 아메와 꿈결 같은 사랑을 나눈 뒤로 갑자기 그를 알았던 연인과 친구, 아버지 모두가 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변화하는 것은 실생활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화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코펜하겐에서의 24시간 동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알렉스와 아메를 통해 사랑의 기억이 끊임없이 변형되는 모습도 그려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트릭을 알 수 없는 마술과도 같은 사랑이 유발하는 어지러운 세계입니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스타일리쉬한 영상은 작품 전체에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리컨스트럭션>이라는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차분히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 세뼘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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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요? 트러블 메이커, 괴짜 영화감독, 전천후 재주꾼, 겂 없는 게이,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실입니다. 짧은 시간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과 인생이 증명해주듯 말이죠. 다작을 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고, 더구나 36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독일의 감독이 한국땅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공이 큽니다. 영화를 알지 못해도 왠지 제목이 낯설지 않은 이 작품은 파스빈더가 1974년에 만든 영화이면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60세의 독일인 여성과 20대 중반의 아랍 노동자의 사랑. 두 명 모두 독일 사회에서 보호와 애정의 영역 밖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에는 유독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들처럼 말이죠. 그 관심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파스빈더는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작품이지만, 어려운 얘기 다 떠나서 스토리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본 후 과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무슨 의미인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 신어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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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까락스 감독의 1984년 장편 데뷔작입니다. 두번째 장편 <나쁜 피>는 86년에, 그리고 <퐁네프의 연인들>은 91년에 만들어졌죠. 국내에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시작으로 레오 까락스 감독의 작품들이 역순으로 개봉이 되어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96년에야 정식으로 소개되었더랬습니다. 만들어진지 12년만에 국내 개봉된 작품이 다시 12년이 지나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의 후보작으로 올라온 셈이로군요.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를 앞세운다고 해서 '누벨 이마주' 감독들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던 레오 까락스 감독이었지만 이 흑백 영상의 데뷔작은 오히려 50 ~ 70년대의 누벨 바그 영화에 좀 더 가까웠던 걸로 기억합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들을 수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과 당시 까락스 감독의 연인이기도 했던 미레이유 뻬리에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side Story> - 아쉬타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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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고전, 아니 비단 뮤지컬 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고전 영화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슬럼가로 옮겨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또 다른 뮤지컬의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 로버트 와이즈와 <왕과 나>의 안무를 맡았던 제롬 로빈스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뮤지컬 고전들 가운데서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만의 특징을 꼽자면 안무와 음악의 합을 들 수 있을텐데, 춤추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춤추는 이 안무와 노래의 합은 아직까지도 다른 뮤지컬 영화에서 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팝넘버로도 널리 사랑받은 'Maria'와 'Tonight'같은 곡들을 만나는 감동은 물론이고, 뮤지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카사블랑카 Casablanca> - 스노우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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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는 2차 대전 당시 모로코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당시 나치의 침공으로 현지 촬영이 불가능한 악조건 속에서도 세트 촬영을 통해 카사블랑카라는 이국적인 배경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두 연인 사이에 숨겨져 있던 사연이 드러나게 되고 사랑을 위해 그녀를 보내 줄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붙잡을 것인지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영화를 많이 접하셨겠지만 스크린을 통해 두 남녀의 사랑을 다시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헐리우드 엔딩 Hollywood Ending> - 인생의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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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2002년에 발표한 <헐리우드 엔딩>은 한때 잘 나갔던 영화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촬영함과 동시에 눈이 멀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영화로, 노년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우디 앨런의 원숙하고 농익은 유머가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신경쇠약에 걸린 마냥 세상에 대한 온갖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을 선사해주는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은 끔찍한 염세주의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유머러스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은 고통스러워도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는 그의 인생관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엔딩>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유해지는 우디 앨런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유쾌함이라면 한 해 동안의 온갖 짜증과 불만도 다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상영회에 저는 보시다시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번에도 다른 작품들에 밀려 상영작이 될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열심히 홍보해 보렵니다 ^^

혹시 그날 오시고 싶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언지를 주셔도 되구요,
오시지 못하는 분들이라도 투표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은 (부제목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왜 추가하지 않았냐면, 물론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부제목이기도 해서이지만,
이 부제목에 이유를 잘 알 수 없어서 이기도 합니다. '오디어스'는 알겠는데 '환상의 문'은 뭔지.. 그냥 '더 폴'하기엔
너무 쌩뚱맞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너무 홍보적인 면만 강조된 부제목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유명 CF와
R.E.M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한 인도출신의 타셈 싱 감독의 작품입니다.
볼거리가 많은 12월 극장가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인데,
타셈 싱이 감독으로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보니 제작자로 참여한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스가 더 노출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구요(두 감독 모두 뮤직비디오 or CF 연출 경험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의 대체적인 평들은 '영상은 무척이나 뛰어나다' '이야기는 허술하다' 이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얘기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역시나 볼거리는 대단했으며(근데 미리 이것이 CG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가서여서 더욱 대단하다고 보는 내내 느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 역시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정이 깊게 드러나고 있는 시나리오로,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화적인
영화의 서술구조로 보았을 때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그 화려하다던 영상미에 대해 가장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4년 반 동안 28개국을 넘나들며 카메라에 담아낸
영상은 이곳들이 지구상에 실존하는 공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극중 화자가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장소들의 미적 아름다움은, 정말로 어린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동화속 장소에 걸맞는 이질적 미를 뽐내고 있는데, 무려 4년 반동안(기사를 보니 장소 섭외에 총 17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촬영한 영상은 이런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들을
선사합니다. 특히 감독의 마인드 자체가 CG를 이용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그 맛을 살리기 위해 가능하면
실제로 구현하길 원한 탓에 우리가 스크린에서 이렇듯 존재하지 않을 법하지만 존재하는 장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특히 오디어스의 성이 있는 푸른 도시는 다른 감독들 같으면 CG를 통해 간단히 색을 입히는 것으로
처리했겠지만, 주민들에게 페인트 통을 무료로 제공하여 실제로 도시의 모든 집의 벽과 지붕을 하늘색으로 칠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나비 섬 같은 경우 피지에 있는 섬이라고 하는데, 정말 판타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고, 인도 조드푸르에 있다는 인상적인 계단의 경우 타셈 싱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근처 주민들도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로케이션 장소를 찾고 섭외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끼고도 남을 것 같네요.



(저 하늘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벽들이 CG가 아니라 실제로 페인트로 칠한 것이라고 하니 놀랄 따름입니다. 제작진에서
페인트를 무료로 사주고 양해를 구하고 칠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몇몇 동의하지 않은 집이 있어서 인가 군데군데
칠하지 않은 집들이 보이더군요 ㅎ)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렇듯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답지 않게 화질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가 본 극장만의 프린트 문제인지, 아니면 기본 화질 자체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디지털 상영의 그런 칼 같은 선명함은 아니더라도 좀 깨끗한 영상이길
원했는데 전체적으로 어둡고 노이즈도 제법 있는 영상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었으나 워낙에 영상이 영상인 영화인지라 좀 더 좋은 화질로 즐겼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로케이션 이야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얼마나 많은 곳을 촬영하고 수집했는지, 파리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건 1초씩 휙휙 지나가더군요. 그렇게 지난 간 명소들이 제법 많았는데, 잠깐씩 지나간 장면들에
캐릭터들이 있던 걸로 봐서 다 직접 가서 촬영했다는 것이 되길래, 관객입장인데도 너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니 각국의 로케이션 스텝들 명단이 나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아래 세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스포일러는 없다 생각되는데 약간의
언급들이 있는터라 표기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미국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입원한 남자 환자가 한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데, 이를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오디어스' 총독을 무찌르기 위해 모인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화자의 입장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도 동시에
영화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특히 그 청자가 상상력 넘치는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 지는데, 이 구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 자체의 소중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영웅담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각각 총독에게 원한을 진 독특한 배경과
외모의 캐릭터들이 서로 모여서 총독에게 대항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여정은 만화 영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익숙한 이야기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이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틀려지게 됩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일 수록 그런 경향이 짙은데, 누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면 그 이야기를 단순히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자신의 세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믿어버리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이야기 그대로 믿게 되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친구들 처럼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자신의 상상속에서 이야기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것이지요. 영화는 이런 아이의 순수함을
이야기 속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물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야기 속 캐릭터들에게
전개되기도 하죠.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 수 있을텐데, 물론 아주 같은 방식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야기 속의 세계와 이야기 밖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이런 구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이의 상상력에 맞물려만 진행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나중에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남자의 입장이 적극 반영된 이야기 임을 알았을 때,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로워지더군요. 처음에는 장난치듯
남자가 아이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중반 이후부터 남자가 현실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쯤에는
결국 이 지어낸 얘기 속에 남자의 현실적 문제들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알게 됨으로서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분명 이야기의 구조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기는 했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는 허술함이 많이 느껴지긴 했는데, 저는 영화에 완전히 동화되서인지(또!), 뭐 어차피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가 몰핀을 얻을려고 지어낸 얘기라고 봤을 때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까지 하기에
이르렀죠;

개인적으로 이 오디어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고 분량이 적다고 느껴졌는데, 그 만큼 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풀어나갈 여지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장편의 TV시리즈로 제작된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이야기 속
영웅들이 오디어스에게 원한을 품게 된 배경들에 관한 것들도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고, 오디어스의 성까지 가는
여정에 수 많은 에피소드를 배치해 더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워낙에 열려있는 캐릭터들과
방대한 '여지'덕분에 상상력이 불끈불끈 솟을 수 밖에요.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시간과 돈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셈 싱이라는
감독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애정이 있는가를 엿볼 수 있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더더욱 직접적으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물론 좋았지만 끝나고 나서 이야기 밖의 얘기를 들려줄 때
더더욱 큰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찔끔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얘기가 끝난 뒤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나레이션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와 인연을 맺은 남자는 자신이 스턴트맨으로 출연한 영화를 아이에게 선물하였고, 이 아이는 영화 속 인물이 정말
로이 아저씨가 맞는 확인하기 위해 같은 장면을 수십번씩 돌려보기 시작했고, 그렇다 보니 영화가 재미있어졌고,
로이 아저씨가 스턴트 맨이다보니 매번 떨어지고 넘어지고 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다보니 이런 장면들만 보는 습관이 생겼고..
하면서 예전 고전 영화들의 스턴트 장면들과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들이 하나 둘씩 스쳐지나가는데,
이건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키스 씬 모음 장면을 보는 것처럼, 짠한 감동이 느껴지더라구요.
한편으론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처럼 스턴트맨에 대한 존경의 뜻을 넘어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는
타셈 싱 만의 방식이라고 느껴져서 감동스럽기도 했구요. 앞선 장면들은 편하게 즐기다가 막판에 이렇게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갑자기 등장하다보니, 갑자기 울컥하는 바람에 적응이 안되기도 했었네요 ^^;




분명 주목받고 화제가 되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로 등장하는 '오디어스'와 영웅들의 이야기였지만,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다 못해 분출(?)해버린 작품을 만난터라 무척이나 반갑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날카로운 잣대를 가지고 본 다면 헛점 투성이인 영화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영화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1. 영화 초반에 장면이 그냥 인상적인 영상미로만 의미있는 장면인줄 알았는데, 후반 부에 보니 이 인트로 장면이
    일종의 복선이었더군요.

2. 아역을 맡은 카틴카 언타루는 너무도 귀엽습니다. 요즘은 확실히 아역연기자가 대세군요!

3. 구글리, 구글리, 구글리~~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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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영화를 보고 나면 대부분 감상기를 바로 올리는 편이지만, 쉽사리 감상기가 잘 써지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특히나 영화를 통해 엄청난 중압감을 받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감동과 무게를 느꼈을 때 그런 경우가 있는데
내 경우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을 보고 나서 그러했었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집으로 오면서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멍하게 돌아왔던 것만이 기억난다. DVD가 출시된 다음에 다시 리뷰를 써보려고 했었는데
잘 안되었던 것도.).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고 난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한줄 평으로 마무리 할까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번 끝까지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의외로 크로넨버그의 예전 작품들 가운데 못 본 것들이 많은데, 그래서 인지 내가 그를 기억하는 영화는
<폭력의 역사>였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여러가지면에서 전작인 <폭력의 역사>와 비교되고 함께 이야기 해야할
영화인데, 동전의 양면을 뒤집듯 정반대에 선듯한 두 캐릭터를 통해, 결국 감독은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현실적으로, 아주 무거운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래 부터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 영화의 배경은 런던이다. 런던을 배경으로 러시아 마피아를 중심으로 그들의 생리와 관계, 그리고 이와 얽히게 된
한 여성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얼핏 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미 <대부>를 비롯해 이런 러시아 마피아나
폭력 조직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번 반복되었던 익숙한 구조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
점잖은 노인의 보스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야망만 있고 아직 미숙한 아들이 있으며, 그 아들의 주위에는 아들보다 훨씬
뛰어나 보스에게 오히려 더욱 신인받는 남자가 있고, 이 남자는 이런 폭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인정이 남아
한 여성과 교감을 나누게 되는데 결국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 얼핏 보자면 <이스턴 프라미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 듯한 통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조금만(아주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면 이 영화가 단순히 조직간의 암투나 혹은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혹은 한 남자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를 통해 이미 확실히
보여주었듯이 '폭력'에 관한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전작 <폭력의 역사>에 주인공이 폭력적인 과거를 숨기고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라면, <이스턴 프라미스>의
니콜라이는 선한 본 모습을 숨기고 폭력적인 겉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이다. 이를 비고 모텐슨이라는 같은 배우가
연기해서 더욱 인상깊기도 한데, 이 두 작품은 마치 하나인듯 다른 두 캐릭터를 통해 폭력성에 관해, 그리고 숨겨져있는
폭력적인 면에 대해서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극 중 니콜라이는 말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검은 선글라스,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옷차림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냉혈한 겉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조직의 멤버가 되고 더 나아가 보스가 되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갖은 굴욕도 참아낸다.

보통 같았으면 보스의 아들인 '키릴(뱅상 카셀)'이 모욕을 주었을 때 감정적으로 폭발했었겠지만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보여지는 극적 요소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욕에 못이겨 하지 말아야 될 일을 저지르는 것보다, 자신이 이루려는
바를 위해 갖은 모욕을 참아내고 마음 깊은 속에서 부터 칼을 가는 것이 더 큰 본능적 폭력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 이후에 니콜라이의 본래 정체가 밝혀지긴 하지만, 이를 통해 니콜라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 설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정말 본래의 의도였던 스파이 활동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견딘 것인지, 아니면 이 과정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존재했던 폭력성에 사로잡혀 스스로 그 세계에 물들어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무거운 대사와 함께 보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니콜라이의 모습에서는
작전 성공에 대한 기쁨도, 조직을 차지한 야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희망을 다루고 있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극중 타티아나의 아이의 존재 때문이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아이의 존재로 인해 이 이야기는 상당히
예수 탄생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크리스마스에서 가져왔다는 이 아이의 이름도,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크리스마스도 이를 뒷받침하는 조건들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동방박사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으며, 처녀인 안나(나오미 왓츠)가 이 아이를 자신의 딸로서 키우게 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존재를 둘러쌓고 있는 니콜라이의 존재가 마치 천사와 같은 의미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성인은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자로서 러시아를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들의 수호자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주인공의 이름이 '니콜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이런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이가 죽지 않고 안나의 딸로서 계속 살아나간다는 자체가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적 요소이기도 하다.
비록 이 아이의 실제 아버지는 조직의 보스인 세묜이며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지만, 이 아이를 안나가 보듬고 자신의 딸로서
키워간다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아이를 비롯해 안나의 삼촌 등 이 가족을
지켜낸 것은 폭력의 한 중심에 있던 니콜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깊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가 폭력을 마치 조장하고 예술로서 승화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물론 현실은 정반대라 할 수 있다. 크로넨버그는 현실에 사람들이 폭력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술로서 승화시켜버리기 까지 한 것에 대해 비판의 메시지를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겉으로 보여지는 폭력 뿐 아니라 상대를 위압하거나 억누르는 분위기에서 오는 폭력에도
주위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조직의 보스로 등장하는
세묜(아민 뮬러-스탈)의 경우 겉으로는 많은 가족을 아우르고 손녀들에게도 매우 친절한 할아버지로 보이지만,
그의 이면에는 단 한번의 주먹질을 하지 않더라도 폭력으로 이뤄낸 지배구조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가는 보스로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근데 크로넨버그는 이를 단순히 이면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좀 더 이 폭력적인 면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건 영화적 기술로 인한 것인데, 영화에서 세묜이 이렇다할 나쁜 행동들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카메라 앵글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이 존재에 대한 공포감과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세묜에 모습에서 이런 폭력성을 엿볼 수 있었다면 오히려 그의 아들인 키릴에게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희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아이를 강가에 버리려던 키릴은 끝내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는 마치 예수가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을 때처럼, 거둘 수 있다면 거둬달라고 울부짓는다. 하지만 만약 니콜라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미약한 존재는 결국 두려움에 못이겨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이는 이 조직의 비밀을 원치 않게 알게 된
안나의 가족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주정뱅이 삼촌은 그런 놈들은 응징해야 한다며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폭력 조직과 대항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더 이상 주장하지 만은 못한다.
이렇듯 힘 앞에서, 폭력 앞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신념마저 저버려야 하는 폭력성을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목욕탕 격투씬은 크로넨버그가 폭력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언제부터가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선의를 위한 폭력(여기서 선의란 어디까지나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의 입장에서만 보았을 때 선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필요하다고 까지 굳게 믿게 되고, 자신과 뜻이 다른 자에게(쉽게 말해 악당)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서는
미적 아름다움까지 찾게 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턴 프라미스>의 목욕탕 격투씬에서는 다른 액션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폭력 자체의 잔인함이 느껴진다.
분명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악당들과 벌이는 격투씬이지만, 어느 한 순간에서도 짜릿함이나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폭력일 뿐이고, 폭력은 곧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불쾌하고 나쁜 것임을 관객들을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의 격투나 죽음의 묘사보다 훨씬 더 잔인한 묘사는 여럿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폭력이 등장하는
격투씬에서는 다들 눈을 피하고만 싶어진다. 쉽게 말해 더 잔인한 묘사를 했었던 영화들 보다도 이 영화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크로넨버그가 바로 그 폭력성 자체에 가장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폭력성에 길들여진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괴로운 영화로 기억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중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폭력성과 더불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 마저 비판하려드는 것이
바로 크로넨버그의 영화인 것이다.




크로넨버그가 이 영화를 통해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치로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의도된 카메라 앵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조직의 보스인 세묜이 이렇다할 나쁜 짓을 한 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도 그에게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배우의 연기와 더불어 카메라 앵글 탓이기도 했다. 이후에 그의 폭력성이 전면에 드러나고
나서는 더욱 노골적인 컷이 등장하는데, 특히 키릴을 내놓으라는 상대 조직의 조건을 보스에게 보고 하는 장면에서의
구도는 세묜을 더더욱 공포스럽게 조명하고 있다. 상하구조가 명확히 드러난 이 구도만으로도 캐릭터의 폭력성이
잘 살아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지하 저장실에서 뒤돌아 술을 마시는 장면 등에서도 구도를 통해 폭력성을(관객이 숨이 막히게끔)
더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워드 쇼어의 음악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무거운 영화를 한시도 놓치지 않고 긴장감과 중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인데, 이렇다할 감정의 과함 없이 영화를 뒤에서 잘 뒷받침하고 있다고 하겠다.




니콜라이 역할로 등장한 비고 모텐슨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이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과 같은 사람인가 하고 생각할 만큼
그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특히 전작 <폭력의 역사>에서 정반대의 조건을 갖고 있던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보여준 연기는 말로다 표현하기 어려울 듯 하다. 러시아 식 억양의 영어 연기도 완벽했고,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눈빛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연기는, 그를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하겠다.
키릴 역할로 등장한 뱅상 카셀은 오랜만에 좋은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해 우선 반가웠는데, 니콜라이 역의
비고 모텐슨 만큼이나 키릴 역에 다른 배우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컴플렉스 많고 나약한 키릴이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한듯 싶다. 나오미 왓츠의 경우 생각보다 영화 속에서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그녀 특유의 강인한 매력이 '안나'라는 캐릭터와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세묜 역할의 아민 뮬러-스탈과 스테판 역할의 저지 스콜리모우스키, 그리고 헬렌 역의 시네드 쿠삭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특히 아민 뮬러-스탈이 연기한 세묜 캐릭터는 니콜라이 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연륜가 깊이가 묻어나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중압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시네드 쿠삭의 경우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낯이 익은 배우였는데,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캐릭터를
깊은 눈빛으로 잘 전달해 내고 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시종일관 무겁고 음울하게 진행되는 영화다. 특히나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검게 변하면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먹먹해져서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물게 리뷰에 영화 제목 외에 부제목을 달지 못했던
영화이기도 했고.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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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2008)
좋은 가족영화, 괜찮은 성장영화

'과속스캔들'이라는 저 제목과, 저 포스터. 그리고 차태현이라는 배우와 저 홍보문구들.
이 영화는 기대는 물론이고, 볼 생각이 사실상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비슷한 제목과 설정으로 이루어진
한국영화들이 이미 여럿 있었고, 그 영화들 모두 다 이렇다할 재미를 보여주지도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죠.
특히나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최근 개봉했던 <미쓰 홍당무>를 제외하면, 너무 저질 코미디 일색이라(여기서 저질이란
저질을 만들려고 작정한 코미디가 아니라, 만들다보니 저질이 된 경우입니다 ;;;) 제대로 된 코미디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것들도 이 영화를 기대하게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구요(잘 만든 스릴러보다 잘 만든 코미디 영화 한 편 만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영화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개봉이후
주변 보신 분들의 평들이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절대 보지 않을 것 같았던 분들도 보고 오셔서는 괜찮다고 하시고,
'올해 최고의 영화다!' '가장 감동적 영화였다!' 등 최고의 수식어까지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다들 잘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
혹은 가족영화라는 것에는 적극 공감하는 분위기였죠. 그리고 차태현을 비롯해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들과 더불어
'괜찮은'영화다 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구요. 영화 감상기를 쓸 때 자주 언급하곤 하는 말이지만,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선입견'만큼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에이~ 뭐 뻔한 얘기에, 뻔한 캐릭터들뿐인, 뻔한 영화겠지'하고 선입견을
갖었던 <과속스캔들>에서 신선한 재미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영화는 각기 가족을 이루지 못한 인물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뤄가는 '가족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과속스캔들>은 12월에 잘 어울리는 시즌 영화이자 가족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중 차태현이 연기한 남현수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나름)유명 DJ인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딸이라는 어린 여자가 손자라는 어린 아이와 함께
집으로 들이닥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 탓에 남현수는 사실을 부정하기에 급급하고,
오랫동안 홀로 지냈던 자신 만의 공간에서 남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동물병원에서 검사한 혈액검사 결과를 통해 실제 부녀관계임을 알게 된 이후, 막상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던
이들이 떠난다고 했을 때, 남현수는 뭔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이 모자를 붙들게 됩니다(갑자기 든 생각인데, 만약 피 검사가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살인의 추억>의 경우처럼 한참 이후에나 결과가 나오는거라 일단은 같이 사는 걸로 했는데,
나중에 결과가 나와보니 실제 부녀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만, 그 동안 쌓인 정들로 인해 검사결과와는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라고 하면 오벌까요? ㅎ).

같이 살기로 했다고 해서 이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었죠. 남현수는 자신의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와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 딸인 황제인(박보영)과 손자인 황기동(왕석현)의 존재를 계속 숨기게 되고, 이 와중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터질지도 모를 불안요소를 계속 안고 가게 되었던 것이죠. 이들의 관계가 점점 변화하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그저 남이었으면 좋겠다하고 바라기만 했던 남현수가 점차 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부터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가족영화이기 이전에 이 영화는 차태현이 연기한 '남현수'라는 캐릭터의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씨네21에 수록된 강형철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본래부터 '가족영화'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애초에는 남현수라는
캐릭터가 변화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영화로 기획했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측면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초반 타이틀컷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예인으로서 깔끔떨고 럭셔리한 삶을 영유하는 남현수라는
인물이, 전혀 다른 상황에 맞닥들이게 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이 영화에 가장 주된 이야기 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컷은 참 인상적이더군요. 마치 <패닉룸>을 연상시키는 장면들과 영상에 배우와 스텝들의
이름을 삽입한 센스가 돋보이는 시퀀스였는데, '남현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황제인과 황기동을 남처럼 여겼던(여기고 싶었던) 남현수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이들을
가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가 바로 유치원에서 기동이가 헌 옷과 촌스러워 보이는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다고 했을 때 불끈하게 되는 장면인데, 이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잘 캐치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맘에 안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가 내 가족, 내 친구를 욕하거나 하면 욱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과정을
오버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더군요. 이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텝들이 황제인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때 폭발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장면이었구요.

이렇듯 어떻게 보면 항상 자신만만하고 자신 밖에는 몰랐던 연예인 남현수는, 자신의 딸과 손자라는 이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완전히 몰랐다기 보다는 애써 외면하고 살려고 했던 자신을
뒤늦게 뉘우치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라는 식의 구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변 인물들로 인해 주인공이
변화를 겪게 되는 류의 영화는 참 많은데, <과속스캔들>은 코미디라는 장르 내에서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그러셨듯, 이 영화는 박보영이라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

<과속스캔들>이 좋았던 건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 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영화라는 요소와
성장영화라는 요소를 코미디라는 그릇에 잘 담아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영화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라는 것이
대부분 조폭 코미디나 사투리를 이용한 코미디가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과속스캔들>은 캐릭터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재미로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좋은 코미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억지스러움이 거의 없으면서도 시종일관 웃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물론 시나리오의 힘이 기본이겠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가 재밌는 영화라고 기억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배우라면 아역 연기자인 왕석현이 연기한 황기동 캐릭터를
들 수 있을텐데, 그저 얼굴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이 아역배우의 연기는 그저 아이가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에서 오는
재미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감독은 실제로 기존의 아역연기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었던 웃음 포인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가능한한 연기경험이
없거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봤다고 하는데, 왕석현이라는 아역배우를 찾아낸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발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극중 황기동은 어른같은 말투를 내뱉기도 하고, 고스톱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센스또한 어른을 능가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상황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소지을 수
밖에는 없더군요(실제로 극장에서 왕석현군이 클로즈업 되거나 개그 한 마디를 던질 때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귀여워'라는
탄성이 터지더군요). 특히 무표정과 큰웃음을 급격하게 오가는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는데, 앞으로도 CF 좀 찍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황기동 역할을 맡은 왕석현 군의 독특한 표정연기 작렬! 그 배꼽인사와 더불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미녀는 괴로워>에 김아중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보다 더 돋보이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가
바로 박보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 전에도 몇몇 드라마를 통해 크지 않은 배역들로 선을 보였던 그녀인데,
개인적으로 작품을 통해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 과는 다르게 연인관계가
아닌 부녀관계가 영화를 이끄는 주요 관계설정이라고 보았을 때, 아이가 있는 애엄마 역할이긴 하지만 무언가 어려보이면서도
순수함이 묻어나는 황제인 캐릭터에 박보영의 마스크는 더할나위 없이 적역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굉장히 남성스러워보이는 말투와 행동거지부터 너무 천진난만해 보이는 웃음까지....박보영이라는 배우에 흠뻑빠지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도 가수 뺨치는 실력을 보여주었는데(감독 인터뷰를 보니 100% 박보영이 부른 것은 아니고
대부분 그녀가 소화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본래는 노래를 해야하는 캐릭터라 가수를 캐스팅할까 계획하기도 했다더군요).

어찌하다보니 순서가 3순위로 밀려버렸지만 차태현의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사실 차태현이 기존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에 조금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고, 그다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던 터라
처음 영화를 선택할때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이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시나리오 단계섭부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주연배우들 외에 유치원 선생님 역할로 <미쓰 홍당무>의 황우슬혜가 출연하고 있는데, 분량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그 선한 포스는 계속 내뿜어주시더군요. 옷도 천사같은 옷만 입고나와서 웃으며 차태현을 바라보는 장면들은
황우슬혜라는 배우를 좀 더 각인시키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황우슬혜양이 출연하다는 정보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신 분이 제법 있었는데, 그 분들께는 황우슬혜양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밖에도 분량은 짧지만 재미있는 조크를 여럿 던지고 빠지기를 반복했던 성지루의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불꽃 연기를 펼친
홍경민의 연기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ㅋ



(황우슬혜 양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이가 제법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 수
있었네요 ^^;;)

범상치 않은 인트로 장면부터 느낄 수 있었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드라마 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영상적인 측면에서
신선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카메라 앵글 같은 면에서 기존에 잘 사용하지 않는(특히 이런 장르에서)
구도로 인물들을 배치한다던가, 방안 구석구석을 비추는 장면을 봤을 때,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실험과 노력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집측면에서도 어찌보면 참 과감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컷을 분할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시도가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대놓고 들어나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반대로 상당히 전면적으로 패러디가 몇몇 장면 등장하고 있는데,
자칫 패러디 영화로 생각되지 않도록 짧지만 강렬하게 치고 빠지는 작전을 사용한듯 하더군요. 몇몇 장면은 카메라 앵글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했는데 너무 짧게 짧게 지나간 탓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네요;;(분명 보면서는 저건 저 영화에서
가져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어찌되었든 이 영화 <과속스캔들>은 저 제목만 가지고, 혹은 다른 선입견들을 가지고 판단해 놓쳐버리기에는 후회가 남을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연말에 보기에 좋은 시즌 영화이자 크리스마스와도 잘 어울리고, 가족 혹은 연인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대중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올해 한국영화들 가운덴 꽤 괜찮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1. '아마도 그건'을 대부분 모르더군요. 난 왜 알고 있지 -_-;;
2. 홍경민의 불꽃 연기!!!
3. 제목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근데 원래는 '과속삼대'로 할려고 했다는데...음....
   딱히 더 완벽한 제목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히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가 영화와는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4. 왕석현 군의 저 파마머리, 아들 갖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할지도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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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12월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매트릭스>처럼 해마다 돌아오는 블록버스터
기대작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이런 시리즈 물이 아니더라도 별다른 대작이 없다고 알려졌던 12월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 작품만 챙겨봐도 여유있겠구나 했었는데, 상영작과 상영 예정작들을 살펴보던 중,
급좌절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도 아니고, 안봐도 되겠다 싶은 영화를
굳이 포함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지 말이죠! 물론 지금부터 얘기할 영화들 가운데는
원래 부터 보고 싶던 영화는 아니라, 이번에 12월 개봉작들을 둘러보다가 관심을 갖게 된 영화도 몇 작품 있지만
(사실 한 작품 뿐 --;;) 대부분이 다 보고 싶은 작품들이라 더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몇 작품은
몇년 간 고대했던 영화도 있고,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의 신작은 물론 기대하지 않았으나
입소문을 통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를 등극한 영화도 있고, 더 나아가 이미 봤으나 또 보고 싶은 영화까지 있습니다.
영화팬에겐(특히나 저처럼 조폭 코미디빼고는 전부 챙겨보는 사람에겐) 가혹한 12월이 될 것 같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문제겠네요. 그럼 12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들을 차근차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순서는 개봉일 순도 아니고, 보고 싶은 순서도 아니고 그냥 그림파일 불러온 순서 입니다 --;;)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감독 : 데이빗 크로넨 버그
주연 : 비고 모르텐슨, 나오미 왓츠, 뱅상 카셀
개봉일 : 2008.12.11

데이빗 크로넨버그를 알게 된 건 그의 팬들 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알게 된 이후로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입니다. <폭력의 역사> <크래쉬> 등이 작품들도 인상깊었고,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폭력의 역사>에서
함께 했던 '아라곤'으로 더 익숙한 비고 모르텐슨과의 두 번째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여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명인 나오미 왓츠와 예고편에서 이름 나올때 다른 홍보문구로
대체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던 뱅상 카셀까지(뱅상 카셀의 영화를  <증오>부터 제법 많이 봐온 팬으로서는
이런 굴욕이 남일 같지 않더라구요).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으로 인해 아주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이미 시사회와 유럽영화제를 통해 보신 분들의 평들도 다들 좋은 편이었구요.
'금세기 다시 볼 수 없는 걸작'이라는 문구를 그대로 믿지는 않겠지만, 크로넨 버그와 비고 모르텐슨의 영화라면
한번 쯤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이건 내일 바로 봐야겠습니다. 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2008)
감독 : 스캇 데릭슨
주연 : 키에누 리브스, 제니퍼 코넬리, 케시 베이츠, 제이든 스미스
개봉일 : 2008.12.24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포스터에 큼지막하다 못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키에누 리브스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캐릭터를 키에누 리브스 화 해버리는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거의 안빼놓고 챙겨보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SF장르이기도 하고, 또한 제니퍼 코넬리가
출연하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를 갖게 된 영화네요. 무언가 크게 벌여놓기만 하고 마무리는 흐지부지 해버리는
용두사미격 영화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오랜만에 이런 SF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라 빼놓지 않고
볼 작정입니다. 감독인 스콧 데릭슨은 공포/스릴러 장르의 각본을 써왔던 감독이군요.
아이맥스 포맷으로 개봉될 예정이라 오랜만에 용산 CGV를 찾게 될 것 같군요.





트로픽 썬더 (Tropic Thunder, 2008)
감독 : 벤 스틸러
주연 : 벤 스틸러, 잭 블랙,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개봉일 : 2008.12.10

좋은 드라마나 스릴러 영화 만큼이나, 좋은 코미디 영화를 찾기란 사실상 더 어렵기 마련인데 그래서 이 작당한
삼인조가 만들어내는 코미디 영화가 기다려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오랜만에 배우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작품을 내놓은 벤 스틸러는 물론, 이 배우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항상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는 잭 블랙은
물론, 얼핏 이런 코미디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까지(다우니 주니어의 경우
이름 없으면 못 알아보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ㅋ). 전 특히 코미디 영화는 아예 작정하고 판을 벌이는 경우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미국식 유머를 쏟아낸들,
이들이라면 100% 이해는 못할 망정 7,80%를 즐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은 뽑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스맨 (Yes Man, 2008)
감독 : 페이튼 리드
주연 : 짐 캐리, 주이 디샤넬,
개봉일 : 2008.12.18

앞서 얘기했던 잭 블랙과 마찬가지로 짐 캐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 중 하나입니다.
짐 캐리 영화가 특별한 것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인데, 그래서 짐 캐리 영화는 거의 고민하지
않고 항상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에이스 벤츄라>이후에 정말 '포복절도'할만한 영화는 많지 않았지만
<케이블 가이>같은 꽤 괜찮은 코미디 영화도 있었고, <트루먼 쇼>같은 좋은 드라마도 있었으며, <이터널 선샤인>
같은 제 인생 최고의 영화도 있었네요. 짐 캐리만으로도 볼만한 필요충분요소가 충족되긴 하지만, 여기에
주이 디샤넬이 출연한다니 이거 참 반가운 일이더군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해프닝>을 통해 좋아하는 여배우로 등극한 그녀의 출연은, 짐 캐리의 개그를 보는 것 과는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트와일라잇 (Twilight, 2008)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개봉일 : 2008.12.10

일단 이 영화의 원작은 170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읽어보지 못한 터라 내용도 잘 알지 못하고
단순히 판타지이고, 뱀파이어가 나온다 라는 것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판타지 장르를 워낙에
좋아하기도 하고 드라마 같은 장르에 비해서 집에서 블루레이나 DVD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 더 효과적인 관람이 되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장르이기도
합니다(아주 이상한 영화만 아니라면요;; 판타지 장르에서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좀 너그러운 감도 없지 않네요).
뱀파이어/청춘/멜로/액션 영화 인것 같긴 한데,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은터라 그럭저럭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보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청춘 로맨스가 주가 된 영화인것 같군요.
이건 바로 오늘 확인하러 갑니다.





매직아워 (The Magic Hour, 2008)
감독 : 미타니 코키
주연 : 츠마부키 사토시, 아야세 하루카, 사토 코이치, 후카츠 에리
개봉일 : 2008.11.27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배우들이 아니라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미타니 코키는
바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연출했던 감독인데, 워낙에 이 영화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관람한지라 그의 작품이라면
봐도 좋겠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해 주조연급 일본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터라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구요. 알려진 바로는 일본에서 개봉된 버전에 비해 인터네셔널 버전은
삭제가 된 러닝타임으로 공개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국내 개봉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니
크게 문제 삼을 거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그렇다 해도 나중에 DVD가 출시될 때에는 일본 개봉버전이 실렸으면
좋겠군요~). 이 영화는 11월 27일 개봉한 영화인데, 집 근처에 자주 가는 극장들에서는 개봉하지 않고,
잘 가지 않는 극장들에서만 개봉을 하다보니 도대체 스케쥴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내릴 것 같은데
과연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렛 미 인 (Let The Right On Me, 2008)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주연 : 카레 헤레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개봉일 : 2008.11.13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께서는 좀 의아스러우실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히 <렛 미 인>은 예전에 봤었는데'
하며 말이죠. 물론 <렛 미 인>은 개봉한 주에 관람을 했었습니다. 올해 최고의 영화 베스트 10에 당당히
선정할 정도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구요.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번 주 부터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개봉을 시작했더군요.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에서 볼 때는 좀 작은 스크린의 사이드에서 본 터라, 기회가 된다면
아트하우스 모모의 좋은 시설을 통해 한 번 더 관람할까 생각 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작만으로도 소화하기
버거운 스케쥴에서 과연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하네요;;;
참고로 <렛 미 인>과 더불어 <로큰롤 인생>역시 꼭 한 번 다시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렛 미 인>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로큰롤 인생>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과속스캔들 (2008)
감독 : 강형철
주연 :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개봉일 : 2008.12.03

이 영화는 사실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선입견이 가장 크게 작용했는데,
제목이나 포스터, 배우들을 봤을 때 그저 그런, 또 반복되는 코미디 드라마(계속 웃기다가 막판에 갑자기 눈물짜는)
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볼 생각이 없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개봉 이후 주변의 보신 분들의 평이 하나 같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말 최고다' 이런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다들 12월에 볼만한 가족 영화다 부터,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의 발견이다, 편집이나 이야기가 괜찮다 등등 좋은 평들이
가득하더군요. 더군다나 이런 영화 잘 안보실 거 같은 분들이 하신 얘기라 더 와닿기도 했구요.

과속스캔들 _ 좋은 가족영화, 괜찮은 성장영화





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us, 1987)
감독 : 루이 말
주연 : 가스파스 마네스, 라파엘 페이토, 프랜신 라세트, 필립 모리에르 제노드
개봉일 : 2008.12.24

사실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을 접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씨네큐브에서 루이 말 감독 특별전을
진행하면서 <마음의 속삭임> <라콤 루시앙>과 더불어 <굿바이 칠드런>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앞선 두 작품은 아직 보질 못했으나 <굿바이 칠드런>은 시사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루이 말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예전 영화이긴 하지만(1987년 작입니다)
이미 본 경우가 아니라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구요.
가볍지 않고 진중한 분위기에서 묻어나는 감동을 전해줄 것만 같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I Just Didn't Do It, 2006)
감독 : 수오 마사유키
주연 : 카세 료, 세토 아사카, 야마모토 코지
개봉일 : 2008.12.11

지금까지 영화들이 감독이나 배우들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면, 이 영화는 카세 료가 뭔지 모를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포스터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끌릴 수 밖에 없는 제목에 이끌려
관심을 갖게 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과 포스터 하단에
'유죄 확률 99.9% 그 긴 투쟁이 시작된다!'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법정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예 '유죄 확률 99.9%' 라는 것과 '내가 하지 않았다'라는 상충되는 단어를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쉘 위 댄스>를 연출했던 수오 마샤유키가 얼마나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구성했을지도 궁금해지고, 카세 료와 야쿠쇼 쇼지의 연기도 기대되네요(지난 번 <도쿄!> 리뷰에도
썼던 말이지만, 최근들어 카세 료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일본 남자배우보다 자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2008)
감독 : 바즈 루어만
주연 : 니콜 키드먼, 휴 잭맨, 데이빗 윈햄
개봉일 : 2008.12.10

사실 12월 들어서면서 애초부터 가장 보려고 했던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였습니다. <물랑루즈>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한 바즈 루어만의 매우 오랜만의 신작이기도 하거니와,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모여 이른바 '호주 3총사'가
만드는 호주 영화라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것이었죠. 이 영화는 이미 시사회와 외국의 평들도 미리 접할 수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많더군요. 그래서 살짝 주춤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볼 영화가 너무 많아지다보니
러닝 타임이 제법 긴 이 영화(166분)를 평일날 보기엔 부담이 되고, 그렇다고 주말에 보자니 주말에나 시간 내어
갈 수 있는 극장에서 하는 영화를 봐야 하느라 미뤄지고 해서, 점점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대서사극을 표방한 영화들은 극 소수가 걸작의 평가를 받았고, 대부분은 너무 장황하고 폼을 잡는 탓에 실망이
커졌던 경우가 많은데,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도 후자의 평가를 받는 듯 하나, 일단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풍광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바즈 루어만의 신작에 대한 큰 기대가 있던터라, 기대만큼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보긴 봐야 겠는데 이것 역시 시간내기가 관건입니다.





열흘 밤의 꿈 (Ten Nights of Dreams, 2007)
감독 : 아마노 요시타카, 이치카와 곤, 짓소지 아키오, 카와하라 마사아키, 마츠오 스즈키 외
주연 : 토다 에리카, 코이즈미 쿄코, 우지키 츠요시, 야마모토 코지, 마츠야마 켄이치 외
개봉일 : 2008.12.18

이 영화도 원래 부터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 12월 개봉작들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게 된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를 본래 좋아하긴 하지만, 저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일본색'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느 정도
불편함이 있기는 한데, 이런 포스터에서 풍겨나오는 일본색으로 인해 영화를 패스하려다가는 큰일 난다는 것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통해 완벽하게 느꼈기 때문에(다행히 극장에서 봤었죠 ^^),
이번 영화도 왠지 놓치면 안될 것 같더군요. 더군다나 옴니버스 형식이고 10명의 감독들에 색깔로 그려지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많은 배우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일본영화 팬으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것도 같구요. 큼지막하게 나온 마츠야마 켄이치의 뒤로 <린다 린다 린다>를 통해 얼굴을 익힌 카시이 유우가
보이네요 ^^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감독 : 타셈 싱
주연 :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개봉일 : 2008.12.04

판타지 영화라 하면 상상력을 스크린에 표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CG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더 폴>은 일단 놀랍게도 4년간 28개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촬영한 영상이 주를 이루는 판타지 영화입니다.
공개된 이미지들만 봐도 놀라움을 자아내기 충분한데, 이것들이 실제 존재하는 배경들이라는 점에서
영상만으로도 압도당하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도 감독인 타셈 싱은 R.E.M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를 만든 감독으로 더 유명한데,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했던 그의 전작 <더 셀>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 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평은 이야기는 조금 미흡하지만
볼거리만으로도 황홀하다 라는 것이 중론인듯 한데,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게 된다면 아마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겠죠. 아, 그리고 혹시 저 부제목이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의 경우처럼 스포일러는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 영화는 상영관이 매우 적은데, 그 때문에 오랜만에 집과는 한참 떨어진 일산 롯데시네마를 가게 되었네요.
이번 주말 관람 예정입니다(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벼랑위의 포뇨 (Ponyo on a Cliff / 崖の上のポニョ, 2008)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성우: 야마구치 토모코, 나가시마 가즈시케, 아마미 유키
개봉일 : 2008.12.18

제 블로그를 예전부터 보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광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에서도 손꼽는 분이기도 하구요. 제 닉네임만 봐도 어느 정도 지브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네요 ^^; <벼랑위의 포뇨>는 이런 제가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였죠.
물론 이 이전에 <게드전기>가 있긴 했지만(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실망하긴 했지만,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었던
영화였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감독한 작품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제법 오랜만이라 일단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드네요. 사실 포스터만 봐서는 그리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닐것 같긴 한데,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만 믿고 가보는 겁니다. 물론 또 한번 감동의 물결을 몰고 오실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죠. 결과야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개인적으론 <벼랑위의 포뇨>가
가장 기대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또 보고 나면 한동안(제법 오래) OST를 입에 달고 살게 되겠군요 ^^



다 정리하고 보니 과연 이 영화들을 12월 내에 다 소화할 수 있을지가 다시 한번 걱정이 드는군요.
물론 이 중에서는 1월에 보게 될 영화도 생기겠지만,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다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네요 ^^;
극장의 위치, 영화의 시간, 연말의 약속 들을 모두 고려하여 완벽한 스케쥴 표라도 하나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드네요. 일단 오늘은 <트와일라잇>, 내일은 <이스턴 프라미스>, 모레는 <더 폴>, 글피는 <트로픽 썬더>
혹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달려볼까 합니다. <매직아워>를 그 틈에 끼워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 <과속스캔들>도요 -_-;; 그래도 행복하군요 --__--V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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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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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연인들 (The Lovers From The North Pole,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 1998)
우연과 운명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는 <섹스 앤 루시아>를 연출했던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Lafont)의 1998년 작입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국내에는 올해 12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게 된거죠. 사실 큰 관심이 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친한 블로거 분이 오프라인에서 전해준 '괜찮다'라는 말과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끌렸달까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바람은 <북극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를 보기에 탁월한 환경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장 내가 추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입고갔던 코트를 벗지 않고 관람했거든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운명적 사랑' '영원한 사랑' '특별한 운명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등
러브스토리에서 엿볼 수 있는 대부분의 홍보문구들이 즐비한 영화였기에, 뭐 그런 뻔한 영화겠구나 하는 짐작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놓친 사실이 있었다면 바로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었겠지요. <섹스 앤 루시아>는 예전에 얼핏
본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훌리오 메뎀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었고,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 유일하게 이 영화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소였죠.

스포일러 없이 간단하게 추천의 글과 결론을 내어보자면, 이 영화 이 계절에 보기에 참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홍보 문구들처럼 이야기자체는 클리셰 가득한 러브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재밌는건 영화를 볼 때는 이 이야기가 전혀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나중에 든거죠. 그만큼 이 영화는 흔한 러브스토리의
클리셰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루하기는 커녕,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 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국엔 러브스토리이긴 하지만, 오토와 어머니의 관계가 제법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오토의 성장영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요.)


시놉시스

우연과 필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

끝이 시작이 되는 순환적인 구조 속에 두 연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마치 직소퍼즐처럼 짜넣은 더없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주인공 아나와 오토는 8살 때 처음 만나 영혼의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오토의 아버지와 아나의 어머니가 결혼하는 바람에, 아나와 오토는 비밀스럽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 많은 우여곡절로 서로를 떠난 두 사람은 25살이 되어 북극권의 가장자리 핀란드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데뷔작부터 줄곧 반복과 순환 구조에 몰두해온 메뎀의 관심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 감독 자신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회문(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단어, Medem, Ana, Otto)인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오토(Otto)와 안나(Anna)는 어린 시절 부모님 덕에 서로 알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순환적인 이름처럼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삶에 관한 영화다. 결코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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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만 다시 읽어보아도 이 영화를 선뜻 선택하게 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첫 장면만 봐도 엔딩까지 쭈욱 예상이 되는
영화로 보이니까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론은 이 예상과 맞아떨어지는데, 보는 과정에서는 눈치 채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첫 번째로 영화를 그리는 독특한 방식을 들 수 있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로 입장을 바꿔가며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그리는 방식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10년 전에도 그리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겠지요?;;;),
훌리오 메뎀 감독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토와 아나의 이야기를 오가다가 결국은 둘이 아닌
하나의 장소로 귀결되어 지는 구성 방식은, 단순히 같은 얘기를 다른 시각으로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개 방식 그 전부로
사용되고 있는거죠.




(이 영화에는 아역과 청소년기, 성인으로 같은 인물이 세 명의 배우에 의해 그려지는데, 3명 모두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들의 깊은 눈빛은 너무 인상적이었구요. 스페인 아이들의 마스크나 분위기는 언제봐도 매력적인것 같아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오토(otto)와 아나(ANA)인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회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내용상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영화의 구성 측면에서도 이 '회문'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즉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동일하다는 얘기인데,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의 미드에서
자주쓰곤 하는 이 방식이 이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보완하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 핸드 헬드로
촬영된 흔들리는 화면과 주인공들의 흥분된 표정들은 긴장감만으로 다가오지만, 마지막에 이 장면이 반복될 때에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죠. 분명 첫 장면에서 이미 다 본 장면들이지만 마지막에 다시 볼 때는 사뭇 궁금해하며
장면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1시간 쯤 전에 장면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가 아니라, 그렇도록 잘 연출한 영화의
묘라 해야겠죠.

이 영화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고요한 풍광과 더불어,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인
장면 장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일단 온종일 해가 지지 않는 인적 없는 호수가에 자리한 집의 풍경은 이 영화의 제목이
'북극의 연인들'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일정 시기에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더불어
고요함과 더불어 불안함도 전달해내는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영화의 주인공들 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사춘기를 겪을 때 집과 집 주변의 묘사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어두워진 밤 시간에 창문 밖으로
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대 명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주인공의 긴장되고 떨리는
심정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로 표현해낸 이 장면이야말로 훌리오 메뎀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그 아름다운 풍광보다도 이 장면이 더 인상깊고 기억에 오래 남을듯
하네요.




이 영화를 '아름다운'영화로 기억되게 하는 다른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배우들과 캐릭터 일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남녀 주인공인 오토와 아나는 각각 3명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데, 일단 아역을 맡은 두 배우는
최근 개봉했던 <렛 미 인>의 오스칼과 이엘리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오스칼과 이엘리는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어 갔던 캐릭터였고, <북극의 연인들> 아역 배우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역에만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두 명의 아역 배우의 인상이 얼마나 깊었나를 가늠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오토 역할을 맡은 페루 메뎀은 그 깊고 불안함이 가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는데(보는 내내 <바벨>에 등장했던
그 총쏘던 아이가 연상되더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인 훌리오 메뎀의 아들이더군요.
어린 아나 역할을 맡은 사라 발리엔테 역시 매우 인상깊습니다. 어린 아이임에도 마냥 어린이스럽지 않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이 두 어린이들의 인상과 연기는 <북극의 연인들>을 보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기를 연기하는 두 배우도 인상적인데, 특히 아나 역을 맡은 크리스텔 디아즈 (Kristel Diaz)의 투명한 마스크와
신비스런 표정연기는 너무도 매력적입니다. 뭐랄까요 청소년기의 소년들을 자극하는 신비스런 표정을 갖고 있는
소녀랄까요. 그런데 이 이후로 자국에서 두 작품 정도 더 출연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이렇다할 정보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저 정도 마스크와 분위기라면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마저 드는군요.

성인 오토와 아나를 맡은 두 배우, 펠레 마르티네즈와 나즈와 님리는 <오픈 유어 아이즈>를 통해 조금 낯이 익은
배우들이었습니다(물론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페넬로페 크루즈 였지만요 ;;;).
이 두 배우의 연기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역과 청소년기를 연기한 배우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탓에,
이들에 대한 코멘트는 여기서 줄이도록 하죠.



10년만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이 된 만큼 신선도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라는 우려도 아주 조금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켜버린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사실 시놉시스만 보면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절절하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고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올 겨울 극장가에서 단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북극의 연인들>을 꼽을 수 있겠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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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시상식 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최하는 신문사나 주요 스폰서에 구미에 맞게 진행되는 터라 크게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지만, 도대체 내가 보았던 영화들 가지고 상을 주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던 '청룡 영화제'가 워낙에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보는 마음은 한결 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카데미도 그렇고, 사실상 모든 시상식이 주최측에 입맛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시상식의 경우 그 주최측에 판단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항상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영화들이나 소외된 영화들에 특히 관심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주목 받는 영화들만의 잔치인
국내 영화 시상식이 취향에 맞지는 않지만, 최소한 대중적인 면이라던가 여러 사람이 공감할 만한 수상이라면
크게 불편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의지도 없는데, 그러면에서 제 7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은 대부분 수긍할 만한
수상이었던 것 같다. <추격자>의 스윕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 그럼에도 불안했던 것은 <추격자>라는 영화가
이른바 나이 많은 심사위원들에 구미에는 그리 땡기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는데(뭐 이미 이런 불안감이 현실로 들어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 각본/각색, 편집, 조명 등 대부분의 주요상을 <추격자>가
휩쓸고 말았다. 김윤석의 수상 멘트는 이미 여러번 들었던 것이긴 했지만, 말미에 아내나 가족 등이 아닌
파트너였던 '하정우'를 언급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여우조연상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김지영 수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이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실망했던 것이 작용했다고 봐도 되겠다. <놈놈놈>의 경우 MBC와는 사이가 별로인지 주요상의 노미네이트도
되지 않았으며, 방준석은 <고고 70>으로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여러가지 수상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여우주연상 부분이었다.
사실 올해 여우주연상은 모조리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이 수상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한해였는데,
역시나 이 영화나, 그녀의 연기나, 심사위원들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터라 철저히 외면 당했었고,
이 날도 예쁘게 차려입은 손예진을 보면서 '설마.....'하는 걱정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뭐랄까,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심하게 공감해 눈물 마저 글썽거렸던 적은 아카데미에서 포레스트 휘태커가
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공효진의 경우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여자 신인상을 받은 서우와 감독인 이경미는 정말로 펑펑 울었는데, <미쓰 홍당무>를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나로서도, 왠지 모르게 공효진의 수상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무언가 금단의 벽을 넘는 듯한
승리가 엿보여서였달까.

어쨋든 '단상'이라고 했으니 여기서 마쳐야 겠다.



1. 윤정희씨는 등장할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2. 우리나라는 정말 제대로 된 시상식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상을 타는 사람만 참석을 하고, 못타는게 확정되면
    식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버리는 일들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3. 신성일씨의 파마는 조금 쇼킹했다.
4. 박철민씨의 시상 소감은 나름 신선했다!
5. 이제 '비'와 여배우들을 오가는 카메라 워크는 식상하다.


미쓰홍당무 여우주연상/신인여우상 수상 기념 리뷰 다시보기!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무한 긍정 캐릭터로 되새겨보는 행복의 참 정의

<해피 고 럭키>는 개봉 전 부터 은근히 기대하던 영화였는데, 개봉한지 조금 지난 주말에야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베라 드레이크 (2004)>로 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이크 리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베라 드레이크>를 비롯해 제대로 본 영화가 없는 것 같군요(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후보들을
살펴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씨 인 사이드>, 프랑소와 오종의 <5x2>,
허우 샤오지엔의 <쓰리 타임즈>등이 포진하고 있는 걸 봐서 <베라 드레이크>는 나중에라도 한 번 챙겨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말고는 다 보았고, 인상깊기도 했구요).

하지만 별다른 감독과 배우에 대한 선호도가 없었음에도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포스터나 스틸 컷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다른 감성들과 '무한 긍정' '행복 바이러스'등 이 영화 홍보에 사용된 문구들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행복한 영화보다는 우울한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더더욱 제대로 된 코미디나 제대로 된
긍정적 영화들이 많지 않아 우울하기도 하던차에, <해피 고 럭키>라는 이 '해피'하고도 '럭키'한 제목이 눈에 쏙 들어올 수
밖에요.

사실 제목과 스틸컷등으로 예상하기로는 무한 긍정의 행복함으로 넘치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의 행복 바이러스를
주의에게 듬뿍 나눠주어, 고뇌하고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들마저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냥 '행복한'이야기 일줄
알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꼭 그렇지 만은 않은 영화더군요. 하긴 행복함을 얘기하면서 그 반대의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는 진실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겠지요.




(아래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급히 이동해 주세요~)








영화의 주인공인 포피(샐리 호킨스)는 정말 긍정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행복 그 자체의 캐릭터 입니다. 누구에게나
말 걸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반응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며, 좋지 않은 일이 닥칠 때에도
자신 만의 초 긍정적 마음 가짐으로 쿨하게 넘기는 캐릭터이죠. 영화의 인트로 부분은 포피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 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집약된 인트로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아, 자전거를 타고 서점에 들렸다가 무뚝뚝한 서점 주인에게 여러 번 되도 않는 말들을 던져 보다가
반응이 없자 쿨하게 돌아서 서점을 나오던 포피는,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없어진 것을 알고도 '아쉽네,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는데' 뭐 이 정도죠. 이 초반 에피소드가 '포피'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단 번에 인식시키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행복함이 넘쳐나는 '포피' 캐릭터를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면, 그녀 주변의 인물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처럼 행복한 친구들도 있고, 갖가지 일들로 고민과 갈등을 겪는 이들도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그녀에겐
반 아이들의 생각지 못했던 사연들도 있는 등 역시 예상대로 현실적이고 여러가지 일들로 행복하지 못한, 혹은 행복을
갈구하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라면 포피의 운전 강습 선생님인 '스콧'을 들 수 있겠구요.



(전 이 스틸컷만 보고는 샐리 호킨스라기 보다는 쥬이 디샤넬인줄 알았어요. 이 사진은 유독 그렇게 나온 것 같더라구요 ㅎ)


잘 생각해보면 스콧은 조금 거친 캐릭터일 뿐이지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얼핏보면 굉장히 신경질 적이고
과격한 대표적 남성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한 긍정의 포피와 상대 비교를 했기 때문이지,
스콧의 말을 곰곰히 따져보면 그가 그리 오버해서 화내는 것이기 보다는, 화낼 만한 일들에 적절히 화내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전부 다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에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 정책도 마음에 들지 않고, 흑인들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 만의 규칙을 만들어(엔라하~) 그걸 벗어나는 자유스러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스캇은 자유분방한 포피를 만나면서 급격하게 부딪히게 되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 둘은 포피가 내뿜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지 조금씩 이야기의 진전을 보여줍니다.

스캇은 말과 행동은 거칠게 하지만 점차 포피에게 자신의 속마음(좋아한다는 애정의 감정 말고도, 그냥 남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시콜콜한 속 얘기랄까요)을 드러내게 되고, 어쩌면 본인 자신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스캇은 자신이 찾는 행복의 길을 '포피'에게서 일정 부분 찾게 된 것이죠(이건 단순히 포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동화되었다기 보다는 행복함 자체에 동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포피와 스캇의 에피소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영화 같으면 포피의 행복 바이러스가 스캇 같은 냉소주의자에게도 퍼져서 결국 스캇도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식의 얘기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피 고 럭키>는 조금 다르더군요. 달라서 더 좋았구요.




스캇과 포피의 경우도 그렇고, 포피가 가르치는 학생의 문제도 그렇고, 포피의 동생 부부의 일들도 그렇고, 더 나아가
포피가 만나게 된 남자선생님과의 로맨스도 그렇구요. 별로 완벽하게 혹은 행복하게만 마무리 되는 일은 결국 하나도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하던 포피도 자신 과는 방법이 틀렸던 스캇과는 결국 융화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스캇은 본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는 했지만, 이 만남과 이별 뒤에도 결국 스캇은
스캇대로 포피는 포피대로 살아가게 될 것 같구요. 포피의 동생 부부와 또 다른 동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포피가 중간에서
조화를 이뤄보려고 하지만 '다 잘되었다'라고 보기엔 그냥 그대로 마무리 됩니다. 가정 불화를 겪어 폭력성을 드러내는
어린 아이의 문제도 상담으로 알게 되었긴 했지만, 원인을 알게 되었을 뿐 해결이라고 보긴 어렵구요.

결국 포피가 마지막 절친인 조이와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나누는 대화에서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더군요. 포피는 자신의 행복함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위에게 나누 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맙니다. 뭐랄까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졌던
그녀마저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인생살이에 고단함 이랄까요. 이런 메시지는 영화 중간에 포피가 뒷 골목에서
만난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와의 장면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야기하는 이 남자의 질문. '알아?'하는 이 질문에 포피는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서로 이해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거든요.
만약 두 사람이 별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면 그렇게 서로에 공간으로 약간은 도망치듯 빠져나오진 않았을 것 같구요.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생각해 볼게 많았던 영화같습니다. 마냥 행복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마냥 행복함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혹은 어렵다 라는 것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만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더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 정도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던 포피마저 한계를 인정해야 할 정도로 현실이 우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에요.




포피 역할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는 이 영화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돋보이고 주목 받기 쉬운 캐릭터인것도 있지만, 샐리 호킨스의 연기력에 의문점이 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확실히 망가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도, 망가짐이 그저 망가지는 것 만으로 남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웃게 만드는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하는 행동 하나 하나는 관객들의 입꼬리를 저절로 올라가도록 하더라구요. 박장대소 하는 장면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씨익'하고 웃게 만든 장면은 여러 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좋았죠.

스캇 역할을 맡은 에디 마산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기는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아 필모그래피를 찾아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영화에 출연을 했더군요. <미션 임파서블 3> <일루셔니스트> <21그램> 등등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이런 영화를 만나기가 갈 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해피 고 럭키>는 단순히 '여자 주인공이 망가지더라'
정도로 홍보되고 기억되기엔 아쉬움이 많았던, 행복에 관한 좋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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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영화


얼마 전이였다.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5월 장애우 주간을 맞이하여 관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레인맨>,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등이 소개된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이 다 마치고 난 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조제...가 장애우 관련 영화에 소개 되었지?’ 개봉 시에 극장에서 보고, 일반판 DVD출시 시에 감상하였으며, 스페셜 에디션이 재 출시된 뒤에도 다시 감상하였었지만,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유모차를 타는 것이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저 습관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즉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작품 속에 녹여버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되는 소소한 체험이었다.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작가 주의 감독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최신작 <메종 드 히미코>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 이상 <조제...>만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지만 주된 배경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게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인 만큼,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직접적인 명령조에 어조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선입관과 잘못된 시각으로부터 치유되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야기의 마술사이다. <조제...>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관련 에피소드를 자주 노출 시키는 편이지만, 역시 게이에 관한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극 중 사오리가 처음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겁을 먹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고 댄스홀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그의 옛 동료 남자에게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이, 관객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된다. 극중 사오리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이 ‘자연스러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어떠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동기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동성애’라는 소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메종 드 히미코>는 일반인들에게 게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지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기 보단, 오히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게이가 된 아버지 히미코를 미워하던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랄까. 특히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는 히미코와 어머니와의 일들을 통해 사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어린 딸을 버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낸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히미코’가 아닌 ‘아버지’로 점점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서플먼트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습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 같아 빼려고 했었다는 댄스홀의 단체 댄스 씬은, 제작자들이 이제와 밝히는 것처럼 본편에 포함한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바보스런 장면이 있어야 슬픈 장면들이 더욱 슬퍼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특유의 ‘뾰루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오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배경에 흐르는 댄스 곡의 가사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댄스 홀에서 흐르던 곡의 가사)





이 영화를 알기 전 개인적으로 두 주연배우인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대표작들은 각각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우를 이야기 할 때 현재로서는 <메종 드 히미코>를 대표작으로 꼽게 되었다. <조제...>에서 조제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라면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하루히코’가 그러하다. 배 바지도 아닌 것이 쫄 바지 같지도 않은(어쩌면 배 바지이면서 쫄 바지 인지도 모르지만)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있는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음에도(거기에다 매번 헝크러져 있음에도 멋지기 만한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한 번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 기는 커녕, 멋지기만 했던 ‘하루히코’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그러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오다기리 죠가 만들어낸 ‘하루히코’는 영화를 외적인 아름다운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바로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사오리’이다. 시종일관 또렷 하다기 보다는 흐릿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오리는 <조제...>의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시바사키 코우는 <고 (Go)>에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줬었는데, 이번 사오리 역할이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멋진 주인공외에 히미코 역할의 다나카 민은 무용가로서 모 시상식 장에서 너무도 멋진 모습에(무대 위 모습이 아닌 보통의 모습) 너무나도 반한 감독에 의해 적극 캐스팅되었는데, 히미코라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력이기 보다는 모습 자체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이 노인들 역할의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쓰도록 감독이 특별히 당부했을 만큼, 배우 출신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연극 연출과 각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캐스팅 되었다. 양로원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개별 조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에 동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같은 리얼리티를 중시한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출시된 <메종 드 히미코 SE> DVD타이틀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되었던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SE>와 같은 컨셉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디지팩의 소장가치 높은 케이스와 2장의 디스크, 그리고 엽서 5종 세트와 <조제...>때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드지형 필름 컷이 포함되었다.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외곡 없이 전달한다. 특별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최신작에 걸맞는, 영화에 분위기와 걸 맞는 최상의 화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크게 강력한 사운드나 채널 분리도가 필요 없는 만큼 2채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과 촬영,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그리고 예고편들과 <조제...>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나,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 등 주연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두 번째 디스크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우리를 다시금 기쁘게 해준다. 가장 주된 서플먼트는 아마도 메이킹 오브 ‘메종 드 히미코’일 텐데,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고 시사회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프로듀서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 그리고 캐스팅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모 시상식에서 반해버린 다나카 민을 ‘히미코’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말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 민을 찾아가게 된 에피소드와 주된 활동 배경이 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러브 호텔 등을 전전한 이야기, 그리고 본래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건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나 너무도 멋진 건물 탓에, 처음 대본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서플먼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 작업이 영화 전반에 끼친 영향에 관한 일들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애초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던 장면과 내용들이 호소노의 음악 작업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게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느꼈다는 호소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음악들과,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사오리의 어머니에 대한 테마를 만드는 등 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호소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덧 입혀지기 전에는 한 번도 이 대본이 헤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호소노가 작업한 엔딩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헤피 엔딩을 찾아낸 점 등이 놀랍다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프로듀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자신들 보다 더 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음악감독 호소노 하루오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음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밖에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이 10장면 수록되어 있으며, 스텝들이 꾸며낸 단편 ‘변호사 아사카 레이코의 사건수첩’ 가족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는 서플먼트이다. <메종 드 히미코 SE> 서플먼트에 장점이라면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의 인터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인터뷰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인터뷰는 별도로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일본 내에서 무대 인사 영상과 도쿄 FM 공개방송 영상,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들을 통해 중복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오다기리 죠가 내한했을 때의 영상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 소개 영상이 아니라 내한 시에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내 떠나지 않는 사랑스런 작품들이다. 슬픈 장면임에도 왠지 모를 행복함이 전해지거나 환하게 웃는 장면에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은, 이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것, 소외되고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레 일 깨워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젠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운데, 어느 것도 한 작품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2006.05.22
글 / ashitaka





지난 토요일 저녁 8시.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제 2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제 1회 상영작으로는 <원더풀 라이프>가 상영되었었는데, 이번 2회 상영작으로는 블로그에서 진행한 투표를 통해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작품 <쥴 앤 짐>이 상영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2회 블로거 상영회의 후보작들 가운데는 <쥴 앤 짐>외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와
<도니 다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레이닝 스톤>등 제법 쟁쟁한 영화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어떤 작품이 상영작으로 결정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는데(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은 있었죠....<메멘토>가
<다크 나이트>의 대흥행과 그간 극장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이유등을 미뤄 1등을 하지 않을까 예상했었지만),
어찌보면 좀 의외로 <쥴 앤 짐>이 상영작으로 결정이 되어 사뭇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상영회에 오신 분들을 보니 <쥴 앤 짐>의 상영작으로 꼽힌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제 1회 상영작 <원더풀 라이프>때는 양 사이드에 조금 빈자리가 있었는데, <쥴 앤 짐>에는 거의 좌석이 매진되었거든요.
주말저녁이라는 장점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겠지만, 다시 한번 관객이(혹은 블로거가) 직접 선택한 영화는 항상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메멘토>를 상영작으로 추천하기도 했었지만, <쥴 앤 짐>이 상영작으로 최종 결정되었을 때 사뭇 걱정되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올해 '2008 시네마테크와 친구들'을 통해 이미 <쥴 앤 짐>을 극장에서 관람했었고, 그 때의 느낌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2번째 관람이라서,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씨네토크 '모모의 수다'시간에 관객 여러분들이 주셨던 많은 의견들을 통해 좀 더 영화를
이해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쥴 앤 짐>을 감상했을 때에는 단순히 까트린느라는 여성을 2008년 현실에 대입시켜보더라도 상당히 도발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자유스런 여성이다 라는 것 이외에는 큰 인상이 남지 않았었는데(물론 그 유명한 장면인, 다리 위에서
쥴과 짐과 까트린느가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정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었죠), 이번 상영회에서 다시 감상을 하고 나니
여러가지 처음 볼 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 영화가 자유로운 여성이었던 '까트린느'를 숭배하거나 조명했던 영화가 아니라, 남성인 '쥴'의 시점에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결국 까트린느의 자유로운 삶은 그렇게 보였던 것 뿐이지, 실상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쥴에게 그리고 세상에게는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남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의 영화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쥴 앤 짐>이라는 영화에 100% 공감이나 이해를 하지는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 대해
평소처럼 구체적이거나 개인적 감상기를 적극적으로 써볼 엄두가 나질 않네요. 그래서 내용적인것 외에 영화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카메라 워크나 쇼트가 상당히 과감하고 실험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봐도 상당히 과감한 카메라 워크를 볼 수 있었는데, 인물들의 얼굴을 과감하게 클로즈업으로 빠르게 잡는 다던가,
반대로 빠질 때도 상당히 빠르게 빠져나오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고, 화면 분할에 가까운 쇼트들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더군요. 기차역이나 쥴의 시골 집을 고공에서 촬영한 장면들도 세련되게
느껴졌구요. 개인적으로는 네 명이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도 상당히 세련되게 연출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장면을 보니 영화 속에서 대부분 주인공이 자전거 타는 장면들은 행복한 분위기로 연출되는 것 같아,
영화 속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주제로 하여 포스팅을 계획 중입니다 ^^).
그리고 곡선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상당히 의도적으로 반복 노출이 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구요.




제 1회 상영회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번에 영화가 끝난 뒤 씨네토크를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이 행사의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쥴 앤 짐>이라는 영화가 상당히 유명한 영화이고 프랑소와 트뤼포라는 거장의 고전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최근 관객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었기 때문에, 1회 상영회 때 보다는
소극적이고 내용면에서도 조금 부족한 씨네토크가 되지 않을까 주제 넘게 생각도 해보았지만, ........
이런 걱정은 정말 '주제 넘은' '틀린 예상'이었습니다.

1회 씨네토크 보다도 좀 더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일단 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을 시작으로,
조심스레 한분 한분 말씀을 이어가는데, 정말 한분 한분 자신만의 <쥴 앤 짐>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감탄 또 감탄을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참여하고 있는 이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가장 내세울 만한 장점은
바로 이 '씨네토크'시간이라고 주저없이 얘기할 수 있을 듯 한데, 영화에 관련된 감독도 배우도 없지만 관객들끼리
서로 부담없는 분위기에서 자신 만이 느낀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이 시간에서, 저는 정말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보통 <쥴 앤 짐>정도 고전 영화에 대한 씨네토크라면 일반적으로는 예우를 지키거나, 아니면 그 제목과 감독의 이름에
눌려 자신의 감상기를 스스로 검열아닌 검열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게 되는데(뭐 전부 그런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다들
엄청난 명작이다, 과연 프랑소와 트뤼포다 라고 시작하게 되면 '난 별로다'라고 얘기하기가 쉬운게 아니거든요),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에서는 이런 분위기 없이 매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 씨네토크가 1회 씨네토크보다 더 좋았던 것은 <쥴 앤 짐>이라는 영화를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신 분들,
그리고 이 영화가 흑백영화인지도 몰랐던 분들도 영화가 끝난 뒤 씨네토크 자리에 남아 자신만의 의견을 말씀해주신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좋았다는 의견들 외에도 '나는 좀 달랐다', '나는 졸면서 봤는데,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전혀 모르고 봤는데, 씨네토크를 통해 어느 정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등등 다양한 의견을 서슴없이 말씀해주셔서
감동(?)스럽기 까지 하더라구요 ^^; 정말로 이번 씨네토크에 함께 참여하게되면서 미약하지만 이 행사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기존의 씨네토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스럽고 굉장히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관객들 스스로가 궁금한 점을 질문도 하고 답변도 해주는 분위기는 오히려 일반적인 GV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죠. 이번 2회 상영회를 통해 12월 말에 있을 3회 상영회와 씨네토크 시간을 벌써부터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관객분들과 블로거 분들이 만들어주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씨네토크' 시간 때문에 더더욱 좀 더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는 반성이 들더군요. 씨네토크의 시작과 끝 마무리가 조금 어색하게 진행되곤 했는데, 이 부분은
의견 조율을 통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12월에 있을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서 또 다른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씨네토크로 여러분을
만나길 기다리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래의 씨네아트 홈페이지 링크 주소를 따라가시면, 이번 상영회의 후기 관련한 이벤트가 진행중이니
상영회에 참여하신 분들께서는 감상기를 트랙백으로 보내주세요~

http://www.cineart.co.kr/wp/event/view.php?vid=530&jes=on&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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