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트 (Doubt, 2008)
신앙과도 같은 의심의 나약함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이 작품 <다우트>는 정말로 오로지 이 배우들의 이름들만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던 영화였다. 최근 <맘마 미아!>를 통해 수준급의 노래실력과 색다른 연기변신을 통해 역시 헐리웃 최고의 명배우임을 새삼 확인시켰던 메릴 스트립과 <카포티>로 비로소 더 큰 인정을 받게 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카포티>이전에도 그의 연기는 항상 최고였다), 그리고 <준벅>과 <마법에 걸린 사랑>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에이미 아담스까지. 이 영화 <다우트>는 원작인 연극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들만 믿고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화였고, 결과적으로도 그랬다. 그리고 이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바로 '의심'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을 통해 매우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성니콜라스'라는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교구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며,
알로이시스(메릴 스트립)수녀가 교장을 맡고 있으며,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는 이 곳의 주임신부이며,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 역시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교훈으로 삼는 무서운 교장이자 의심이 많은 수녀이고 이에 반해 플린 신부는 술을 즐기고 아이들과도 격없이 지내는 것들에서 알 수 있듯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제임스 수녀는 말그대로 주께 모든것을 바치기로 종신서원을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듯한 순수함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플린 신부는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론을 하게 되는데, 모든 일에 날이 서 있는 듯한 알로이시스 수녀는 왜 '의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플린 신부가 강론을 했을지,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이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임스 수녀조차 플린 신부가 학교에 새로 전학온 유일한 흑인학생인 도널드와의 관계를 서서히 의심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이 세 인물의 갈등구조에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또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는 인물들 간의 세력다툼과 갈등에 대한 묘사가 몹시도 매력적이다.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진보적 성향의 플린 신부는 어찌보면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다. 정확한 상하관계는 아니지만 신부와 수녀의 관계이면서도 한편으론 학교의 교장으로서 더 높은 지위임을 확인시키려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이에 은근히 신부로서 수녀에게 지지 않으려는 플린 신부의 미묘한 밀고 당기기는 교장실을 배경으로한 장면에서 흥미롭게 묘사되고 있다. 설탕 같이 단 것은 죄악시 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와 설탕을 무려 3개나 타서 먹는 플린 신부, 연필을 고수하는 수녀와 볼펜을 선호하는 신부, 교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교장의 자리인(그러니까 알로이시스 수녀의 자리인) 곳에 앉는 신부와 이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생각하다가 플린 신부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냉큼 자리에 앉는 수녀의 모습까지. 이 작은 공간 안에서 소소한 표현들만 봐도 이 두 인물이 얼마나 다른 캐릭터인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자신 만의 세계가 확고한 이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순수한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도 매우 흥미롭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제임스 수녀답게 그는 이 두 인물 사이에서 몹시도 갈팡질팡 한다. 알로이시스 수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플린 신부를 함께 의심했다가 플린 신부의 진실된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시 알로이시스 수녀를 의심하게 된다. 제임스 수녀라는 캐릭터는 본인 스스로의 능동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 간의 힘겨루기에 있어 중요한 캐스팅보트로 작용되고 있기도 하다. 둘의 의견 중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자적 입장인 제임스  수녀를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려 드는 것이다. 결국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의 진심에 서게 되지만, 그렇다고 플린 신부가 일종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 <다우트>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제목인 '의심'에만 집중할 뿐 '진실' 자체에는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가 아니다. 스릴러였다면 바로 그 진실에 집중해서 플린 신부가 정말 도널드를 비롯해 예전 교구에서도 그렇고 무슨 문제를 일으켰던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으로 인한 오해였던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마무리했겠지만, <다우트>는 진실 자체보다는 제목처럼 '의심'이라는 것에 더 큰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보다는 의심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도널드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과 알로이시스 수녀의 대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플린 신부를 의심하는 수녀의 말에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반적인 대답으로 대응하던 밀러 부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플린 신부의 잘못을 얘기하는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결국 본심을 이야기하고 만다. 그 본심인 즉슨 플린 신부가 실제로 아이를 유혹했던 그렇지 않았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널드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이미 여러 학교들을 전학다녔었고, 성 니콜라스 학교를 졸업하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조금만 더 서로 눈감고 지내기만 한다면 된다는 것, 그리고 플린 신부가 아이를 유혹했다 하더라도 도널드가 신부에게 지금처럼 의지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다고 얘기하는 이 장면은, 실체보다는 그저 자신이 믿는 그대로 이루어만 지면 상관없다는 나약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시퀀스였다.

영화의 마지막 플린 신부는 더 좋은 곳으로 일종의 승진이 되어 부임하게 되었고, 잠시 아픈 오빠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온 제임스 수녀에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울면서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자신에게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심과 믿음에는 결국 아무런 실체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막연한 확신과 선입견을 통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도 완벽히 옳다고 확신할 만큼 강한 자기 최면을 걸어온 것이다. 영화 내내 그 어떤 공포영화의 캐릭터 못지 않는 강한 포스를 내 뿜던 알로이시스 수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니, 결국 가장 나약한 캐릭터는 알로이시스 수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가 자꾸 의심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그녀의 눈물의 고백은, 특별한 케이스라기보다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컴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과 여러가지로 맞지 않는 이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등은 어찌보면 가장 태생적인 컴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어쩔 수 없는 의심스러움을 결국 인정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구실들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왔던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녀가 수녀가 된 것은 어쩌면 이런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도피 행동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 실체없는 의심에 가득차 있는 그녀에게 절대자인 '종교적 믿음'은 분명히 편안한 도피처가 되었을테니 말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만큼 <다우트>의 강점은 연기력에 근거한 전개 방식에 있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작품에 비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메릴 스트립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언성을 높여가며 열연을 펼치는 장면은, 마치 액션영화의 '듀얼'신을 보는 듯한  치열함과 임팩트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으며, 아무런 영화적 장치없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극중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맡은 메릴 스트립을 보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배우이지만 마치 알로이시스 수녀 역할을 처음부터 맡기위해 정해진 배우처럼 또 한번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면서 객석 여기저기서 너무도 동요된 나머지 혀를 차거나 탄성을 내질렀을 정도로 (마치 아주머니들이 일일연속극 속 나쁜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를 실제 나쁜 사람인걸로 오해하는 것처럼),  어찌보면 그저 이상하게만 보일 수 있었던 캐릭터에 영혼을 불어넣은 깊은 연기 내공을 그야말로 '시전'하고 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서두에 얘기했듯이 대중들에게 늦게 인정받았을 뿐이지, 이미 최고의 연기를 여러 번 보여주었었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능글맞게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 역시 그 답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도 선과 악을 동시에 담고 있는 마스크와 연기력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되는데, 의심을 받고 있어 관객조차 이것이 의심인지 진실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플린 신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워낙에 쟁쟁한 두 배우 덕에 조금 소외된 듯한 경향도 있지만, <다우트>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영화 속 제임스 수녀를 통해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녀의 순수한 표정 연기와  두 거대한 주장들 속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는 캐릭터를 떨리는 눈동자와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포스터 이미지나 영화의 내용적인 면들에서도 은유적을 표현되듯이 <다우트>는 삼각관계 혹은 삼위일체의 구성을 담고 있는 영화이고, 그 축의 당당한 하나는 바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제임스 수녀라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마법의 10분'이라고도 표현했듯이 극중 도널드의 엄마 역할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가 메릴 스트립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비올라의 연기는 이 영화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에이미 아담스와 함께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다우트>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연기를 통한 생각해 볼 거리에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중견 배우들의 최고 수준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고도 넘치며,  무엇보다 관계와 갈등, 과정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한줄평 : 최고 연기 내공의 고수들이 펼치는 의심과 확신의 나홀로 줄다리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iramax Films에 있습니다.







티스토리로 옮겨와 'the real folk blues'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조금 넘었네요 ^^;
그간 많은 분들과 좋은 관계도 맺었고, 대화도 나누었으며 좋은 글들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세운 작은 목표 하나는, 좀 더 좁은 우물을 벗어나 더 많은 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보자
라는 것인데,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예전에 DVD관련 쇼핑몰에 일했던 경력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각종 영화/dvd 관련 아이템들이나,
판매하기에는 조금 거시기한 비매품 아이템들, 그리고 지금은 취향이 틀려져 개인적으로 별로 소장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중복으로 갖고 있는 아이템들을,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무료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할까 합니다.

참고로 이 이벤트는 주 단위로 갈 수도 있고, 좀 더 짧은 주기로 할 수도 있고, 변동의 여지는 있지만,
대충 아이템 수를 따져보니 최소 몇달 간은 지속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 첫번째 아이템은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인 <유령신부> DVD출시에 초회 한정으로 배포되었던 일러스트 북입니다.
워너브라더스에서는 만원이 조금 넘는 DVD출시시에 초회 한정으로 제법 퀄리티가 좋은 아이템들을 증정하곤
했었는데, 유령신부 일러스트북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네요. 증정품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퀄리티가 좋은 아이템입니다.
일단 몇 장 안되지만 사진으로 확인해보시죠~








팀 버튼의 팬이라면 혹 할만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저는 당시 선물용으로 2장을 구매했던 터라 일러스트북이 하나 더
있어서 이번에 첫 번째 아이템으로 주저없이 내놓게 되었습니다~


<유령신부> 일러스트북을 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이 글에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사실 퀴즈를 해볼까, 선착순으로 해볼까, 아니면 dp에서 자주 하는 타임어택 형식으로 해볼까하다가
일단은 그냥 신청 댓글을 남겨주시면 제가 그 가운데 무작위로 선발하여 보내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당첨(?)되시면 받아보신 뒤에 소박하게 적절한 포스팅 하나만 해주세요 ^^;
(예 : '실존했던 천사 아쉬타카 님에게 받은 레어 아이템 자랑이에욧!' 이라던가, '아쉬타카 님에게서 받은 소소한 즐거움'
이라던가;;; 농담이니 너무 깊게 새겨들으시진 마시구요 ㅎㅎ)

그럼 댓글로 신청글 남겨주시구요,
발표는 16일 오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11시 정도할 예정인데, 혹시 그날 스케쥴에 따라 몇분 정도 변경될 수도 있구요;;
선정되신 분껜 받아보실 주소를 여쭤보기 위해 다시 알려드리도록 할께요.

많은 참여 부탁드리고 다음 아이템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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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발표!!!

첫 번째 이벤트 상품의 주인공은 페니웨이님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 동안 많은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나누기도 하였고, 최근 제가 블루레이 PC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도움말씀 주신것도 있고해서
첫 번째 당첨자로 페니웨이님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신청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구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이번주 내로 시작될 두 번째 이벤트 상품은 아마 페니웨이님이 몹시도 부러워하실 만큼 더 좋은 아이템을 드리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

페니웨이님께는 개별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연락드리고 발송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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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순간의 성장영화

F.스콧 피츠제랄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데이빗 핀처가 연출하고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우리말 제목에
괸해서는 조금 직접적이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 그대로 '흥미로운 사건' 혹은 '기이한 사건' 이라던가
아니면 그냥 '포레스트 검프'처럼 '벤자민 버튼'이라고 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던터라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었으나, 우리말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것 정도 외에는 별다른 정보를 수집하지 않은채 관람하였는데(아!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상영시간에 대해서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나 성향 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영화도 어느 정도 이런
성향에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이 영화의 주된 흐름은 로맨스에 있었다. 원작을 이미 읽어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원작과는 사뭇 다른 각색으로 실망도 했다고 하는데,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스타일리쉬하고 독특한 장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조디악>이후 확실히 <조디악> 이전 작품들과는 구별되는
연출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미 스포아닌 기본 줄거리로서 알려진 바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태어날 때 노인의 몸(정확히 말해서는
몸상태라 해야 맞겠다)으로 태어나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이 젊어지는 독특한 인생을 타고난 캐릭터이다. 태어나자 마자
노인과 같은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하고 나온 아이를 아버지인 토마스 버튼은 어느 한 집에 버리게 되는데, 이 집은 일종의
양로원 같은 공간으로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원작에서 벤자민의 부모는 벤자민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은 일반
평범한 가정이 아니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소 설정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듯 하다.
이 곳을 관리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 벤자민은 어렸을 때 부터 노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내게 된다. 거꾸로 시간이
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기 어렵고 그들의 죽음을 계속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역시 의미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이 공간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이 되고 있다. 자신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세상을 보여주었던 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다
겪어야만 하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들을 은연 중에 전달하고 있다.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공간과 벤자민의 나레이션들을 통해 이 '인생'에 관한 깊은 메시지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이야기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바로 소외된 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선입견이
없이 수용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가 판타지스러운 것은 단순히 시간을 거꾸로 적용받는 주인공 때문 만은 아닐 것
이다. 앞서 언급한 이 공간, 이 공간은 어찌보면 매우 판타지스러운 공간이 아닐 수 없겠다. 일단 이 시기라면 완벽하게
인종차별이 없었던 시기라고 할 수 없을텐데(하긴 오바마 정부인 최근조차 완벽하게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상
흑인들이 운영하는 이 공간에 굉장히 격식이 차려진 삶을 살아온 듯한 백인 노인들이 이 공간에 아무런 불평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인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장신구들로 미뤄보아 다들 여유로운 마지막을 준비하려 이곳을 선택한
이들임을 알 수 있는데, 이들에게서는 전혀 인종차별의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다.

인종차별에 관한 건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한 다른 시선은 바로 선입견 없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에 모습에 있다. 벤자민의 아버지는 벤자민이 태어나자 마자 '괴물'같이 흉측한 모습이라며 아이를
버렸지만, 이를 발견한 '퀴니'는 거의 단 한번도 주저함 없이 벤자민을 겉모습이 아닌 '아이'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
이 공간 속에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같으면 퀴니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벤자민을 공개했을 때 기겁들을 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들은 '내 죽은 남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농담까지 할 정도로 퀴니가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벤자민을 처음 친구로 받아주었던 피그미족 남자도 그랬고, 키작고 노인으로만 보였던 벤자민을
자신의 선원으로 받아준 선장 마이크 역시 그러했고, 벤자민의 연인이었던 데이지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 모두는
우리가 쉽게 보는 벤자민의 기이한 겉모습에 전혀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이렇지 않기에
이런 구성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이 씁쓸하기까지 한데, 이를 반영하는 캐릭터들을 노인이나, 흑인, 선원들로 묘사한 것은,
그 반대에 서있다 할 수 있는 이른바 '지식층'들에 대한 조롱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괴물 같다며 벤자민을 버렸다가
나중에 점점 젊어지고 번듯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전재산을 물려주며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 아버지임을 밝히게 되는
토마스 버튼이 기업가(사업가)라는 점도 앞선 것들과 연관지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케이트 블란쳇 만큼이나 좋아하는 줄리아 오몬드도 만나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화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 캐롤라인이 예전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중간중간 계속 나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더더욱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좀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비춰
봤을 때도 그렇고, 부모가 (직간접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판타지스럽다는 측면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기이하게 태어난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매우 보편적
이다. 노인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벤자민은 노인들과의 생활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우연히 함께하게 된 인양선 항해를
통해 마치 사춘기 소년이 그러하듯 성에 대한 첫경험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으며, 데이지를 통해 이성에 대한
감정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하나씩 배워나가게 된다. 시작은 남들과 정반대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점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반대방향에서 걸어간다고 보면 될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설정만 제외하면 완벽하게 성장영화와
맞아 떨어진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데이빗 핀처라는 점이었는데, 이 기이한 설정을
컨트롤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역량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바이지만,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맨스와
드라마에 가까운 이 영화를, 스릴러와 강한 스타일이 장기인 핀처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데이빗 핀처는 <조디악>이후 이렇게 느긋하게 극을 이끌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스릴러 적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조디악>은 물론 범죄 스릴러 라는 장르 안에 있었지만 이전 그의
작품들처럼, 장르적인 특성과 분위기에만 기대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런 장점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다시금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특히 순간순간 장면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것을 보니 '과연 이 장면들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야기가 잠시 헛나갔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이 영화가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는데 있어서 얼마나 순간과 지금에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점은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게 되는 시퀀스를 통해 아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데이지가 차에 치이게 되는 과정에 얽힌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렇듯 여러가지가 제대로 정상적
으로 작용하지 못했음에도 즉 단 한가지라도 어긋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찰나의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순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지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벤자민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일종의 '접점'을 기다려왔다고 할 수 있는데,
서로 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 둘의 나이가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도달했을 때, 이들은 그야말로 서로를 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에 집중한다. 얼핏보면 이 시기가 곧 '청춘'이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만개했다
지는 꽃처럼, '한 때'를 찬양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았을 때 '찬양'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실 조금 의외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일단 벤자민의 어린 시절(?)의 묘사를 위해 엄청난 CG가 사용되고 있다. 이부분은 모션캡쳐를 통해
브레드 피트의 얼굴 부분을 그래픽으로 완성하고, 얼굴 외 부분은 대역 연기자가 연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짜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을 촬영했던 방식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도 작고 노인의 몸을 갖고 있는
브레드 피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재미있는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등장한 순서대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는데,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다음에야(틸다 스윈튼이 등장할 때) 등장하는
것으로 나온다).

캐릭터 묘사에 사용된 CG와 이에 따른 비용도 많았겠지만, 이 밖에도 배경 묘사나 로케이션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난 CG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극 중 벤자민 버튼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데 물론 실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된 분량도
조금 있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완벽한 CG로 채워졌으며(예전 파리 시내를 아우르는 장면은 CG이지만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브래드 피트가 인양선을 타고 간 곳 거리의 디테일도 로케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묘사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이 두 배우의 모습 묘사에도 많은 CG가 사용되었는데, 특히 브래드 피트의
경우 할아버지 분장부터 <델마와 루이스>시절 혹은 더 이전을 연상케 하는 '미소년'의 모습까지 연기하고 있어,
이른바 '뽀샵'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중 데이지가 발레를 하는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데이빗 핀처도 이런 감수성이 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고)

극중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레드 피트는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 캐릭터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젊어진 다는 설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외모는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겠는데,
점점 젊어질 때마다 더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외모는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사실 의외로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자체로 표현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극중 틸다 스윈튼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가 연기한
것이 아니라 모션 픽쳐를 사용한 대역 연기자가 벤자민을 연기하였고, 이후 에도 외모 적인 변화 만큼 인상적인 연기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물론 그의 외모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스럽긴 했다;;).

그에 반해 데이지 역할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훨씬 깊은 편이다. 대부분 CG에 큰 도움을 받았던 벤자민 버튼 역할과는
달리, 죽음을 앞둔 노인 역할부터 20대의 풋풋한 발레리나 까지, 또 한번 그녀의 놀라운 연기 스펙트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워낙에 빛을 발하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조금 가려져 있긴 하지만, 20대의 데이지를 연기한 케이트의 놀라운 외모는
(물론 CG의 도움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다시 한번 여신의 포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라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연기면에서는 그녀의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데이지의 딸로 등장하는 줄리아 오몬드의 경우 브래드 피트와 <가을의 전설>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터라 이 같은 관계설정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어찌보면 큰 기대에 비해 표면적으로 별로 들려주는 얘기는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젊어진다는 설정을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하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들지만, 개인적으론 이 설정에
국한되지 않고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단지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2시간 40분이라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가 단지 두 배우의 외모적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콘스탄틴>등에서 잘 보여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멋지게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 로고를 통해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살짝 예상해볼 수 있었다.

2. 초반에 허리케인이 온다며 잠시 간호도우미가 자리를 뜨는데, 이 도우미의 이름이 도로시라는 점도 재미있었다.
참고로 영화 마지막 장면의 날짜는 뉴올리언즈가 카트리나에 피해를 받게 되었던 그 날이라고 한다.

3. 본문에도 썼지만 영화의 초중반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모션 캡쳐하여 대역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등장순서대로 나오는 엔딩 크래딧에 브래드 피트는 세 페이지가 지난 뒤에야 이름을 올리고 있다.

4.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은 알렌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 <바벨>에서 부부로 등장했던 적이 있다.

5. 의외로 케이트 블란쳇과 틸다 스윈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은데(비슷한 시기에 마녀 혹은 여왕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듯 하다), 이 두 배우가 한 영화에 등장한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요며칠 정리하지 못한 영화 티켓들을 정리하는 김에(요며칠 2~3일간 포스팅을 못한 것도 있고), 예전에 정리했던 노트도
꺼내어 한번 추억들을 정리해보았다. 그런데 정작 가장 오래된 티켓북은 찾질 못해 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티켓을 모은지가 영화를 본격적으로 본 것에 비하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닌데(중간에 잠깐 모으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각 브랜드별로 다양한 티켓 디자인을 보는 재미도 있고, 역시 각 극장 브랜드마다 분기마다 혹은 발권을 담당하는 시스템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이 변해가는 걸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참고로 티켓을 열심히 모으는 입장에서 얼마전 부터 CGV가
티켓이 아닌 영수증으로 현장발권을 한다는 소식은 충격에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었는데(다행히 무인발권기를 통한 예매발권은
적용되지 않는다), 앞으로 정말 모든 티켓이 영수증화 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두려움이 앞선다.




영화를 보다보면 인상깊은 영화의 경우 여러번씩 극장에서 중복으로 관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도 꼭꼭 티켓을
별도로 챙겨두곤 한다. 위의 사진의 영화는 잘 안보이긴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인데, 저렇듯 예전 티켓들은 제목을
인쇄한 부분이 흐려져 나중에 가면 도대체 무슨 영화를 봤던 것인가 엄청난 추리를 해야만 알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그래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활용하게 된 것이 일명 '티켓 보호용 필름'이다. 티켓 위에 위와 같이 투명 보호 필름을 부착하면
저렇듯 선명한 상태로 오랜 시간동안 티켓을 보관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걸 상당히 늦게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아쉽다.
예전 티켓들을 보면 한 10% 정도는 아무리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알 수 없는 티켓들이 있기 때문이다 ㅠ




이 영화는 <원스>의 티켓인데, 보시다시피 당시 CGV에서 적극 홍보하던 영화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라 저런 테러아닌
테러를 당하게 된 꼴이 되어버렸다. 영화 <원스>의 감동을 막 잠식하려고 할 정도의 충격과 공포의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위 사진은 <이누야샤 극장판 : 홍련의 봉래도>의 티켓인데, 보통 상영이 아니라 롯데시네마에서 있었던 어린이 영화제를
통해 감상했던 영화였다. 말그대로 어린이 영화제라 관객의 95%가 어린이들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거침없이 웃고 거침없이 비웃고 하는 그 분위기 ㅎ




티켓북에는 영화 티켓만 보관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오나 싶다가 결국 2007년에야 볼 수 있었던 뮤즈(Muse)의 내한공연
티켓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힙합계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Jay-Z의 내한공연 초대티켓도 있고.
(리뷰 : Jay-Z Live in Seoul )



내 생애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평생 남게될 비욕의 내한공연 티켓도 자리하고 있다 ㅠㅠ
(bjork 내한공연 리뷰 : 그녀가 진짜로 살아있다!!!)




공연 티켓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서울'의 축구경기 티켓도 있다.
아직도 가끔씩 자랑하곤 한다. '나 무려, 긱스랑, 루니, 호날도가 뛰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야!'




CGV는 예전에 이렇게 일러스트를 이용한 큰 사이즈의 티켓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았었고 무엇보다
돈을 조금 더 주고 선택할 수 있었던 '포토티켓'도 참 좋았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영수증만 남아 아쉽기만 하다.





최근 가장 자주 가는 극장 중 하나인 씨네큐브의 예전 티켓들도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다.
.
.
.

앞으로 언제까지 영화 티켓을 지금처럼 열심히 모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모으려고 한다면 모을 수 있는 여건이라도 계속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세븐 파운즈 (Seven Pounds, 2008)
살아남은 자의 또 다른 선택


윌 스미스를 떡하니 내세운 포스터가 나름 인상적이었던 영화 <세븐 파운즈>. 언제부턴가 윌 스미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어느 정도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배우가 된 듯 하다. 특히 이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배우들이 개인적으로는 애초부터
이런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윌 스미스는 작품이 하나 하나 더 해질 수록 차곡차곡 그 영향력을 더해나간 결과
이제는 감독 이름도 확인하지 않은채 그의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선택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세븐 파운즈>였으며, 보는 내내 한 편으론 그의 전작이었던 <행복을 찾아서>와 비교하곤 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작품의 감독이었던 가브리엘 무치노와 윌 스미스 콤비의 또 다른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선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는 '하느님은 7일 만에 세상을 만들었고, 나는 7초 만에 모든 것을 잃었다' 라는 주인공 '벤'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러곤 자신이 자살한다고 911에 신고전화를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러고는 별다른 설명없이 이 남자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간다. 사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윌 스미스가 연기한 '벤'의 행동들에 근거를 초반에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시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 눈이 안보이는 전화 상담원에게 전화하여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는지, 친구로 보이는 남자와는 왜 다투는 것인지, 동생의 전화는 왜 계속 피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걸 미스테리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숨겨온 것이라고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초반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전화 장면이 나왔고, 무언가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더 직접적으로 장기기증을 필요로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것만 봐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첫 장면과의 연계성을
통해 하나 둘 등장하는 이 인물들에게 벤이 장기기증을 하겠구나 하고 예상하게 된다. 만약 감독인 가브리엘 무치노가
벤이라는 인물의 행동의도에 대해 숨기는 것으로 이 영화를 미스테리 하게 풀어나가 나중에 어느 정도 비밀이 밝혀졌을 때
관객들로 하여금 '그랬었었구나...'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라면 이는 큰 '오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븐 파운즈>는 초반에 이야기의 전개를 다 알려주고 시작하는 셈이 된다(만약 가브리엘 무치노가 위와 같은
이유를 감동 포인트로 잡았다면 이건 좀 문제일 듯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좀 더 작은 디테일이나 감정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며 영화를 보게 되었다. 쉽게 말해 좀 더 '벤'이 되어보려 한 것이다.
벤이 이렇듯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앗아가며 7명이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기로 한 것은, 영화 중간중간 스쳐가는
회상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사고로 부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을 죽게한 사고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이 회상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전까지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나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을 정도로, 이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벤이(더군다나 자신의 과오로 일어난 사고였기에) 스스로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런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사실 이 영화에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미스트>의 경우가 그랬듯이
주인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죄의식의 해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7명의 생명을 살리는 행동 자체의 숭고함으로
볼 것인지에서 나뉠 듯 하다). 영화는 이처럼 관객에게 주인공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준 뒤
이 남자의 심정을 공감케 하는데 더 집중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진짜 윌 스미스가 '벤'이라서 국세청 직원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조회하고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특권'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일종의 '권력'을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에 쓰면 괜찮은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영화가 될 줄 알았었는데, 알다시피 윌 스미스가 '벤'이 아니라 '팀'
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런 논쟁은 필요가 없어진다(참고로 엔딩 크레딧에 윌 스미스의 배역 이름은 '벤'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역시 남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남자의
심정에 빠져드는 것이 남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어서인지 이 착하게만 보이는 스토리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첫 장면에 '신(神)'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이 영화는 굉장히 영적인 부분의 접근이 가능한 영화라 하겠다. 마치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여러 생명을 살리려는 '벤'의 여정은 이를 자연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동기 부분에서 '벤'은 죄책감에 근거했다는 것 때문에 한 편으론 아쉬움도 남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감독과 배우의 전작 <행복을 찾아서>에서처럼 인간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기도 했다.

영화 속 '벤'은 집이며 장기며 모두 내주는 것에서 '히어로'나 '신'적인 모습이 비춰지기도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벤'이
겪는 괴로움과 고통을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신이 지켜내려는 7명의 이름을 악을 쓰며 외우는 모습에서,
결정을 내린 뒤에도 끊임없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에밀리와의
관계가 가장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결국 사랑에 감정을 느끼게 되 담당 의사를 다시 찾아가 심장을 의식 받을 수 있는
확률을 되묻는 장면은, 확실히 신적이라기 보다는 몹시도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따지고보면 에밀리와의 로맨스는
로맨스라기 보다는 '벤'의 생존본능에 의한 구실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스스로 에밀리와 행복한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혹은 납득시키고 싶어하는 그의 불안하고 인간적인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말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가 남겠지만, 영화 속 벤처럼 자신에게는 특히나
엄격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만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디테일한 드라마로서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사실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에서 예고 했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눈물이 났다.
보통 이식을 받거나 큰 상처가 있는 경우 숨기려는 것과는 달리, 가슴이 파인 원피스로 오히려 자신의 수술 상처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에밀리의 모습이나, 벤의 안구를 이식받은 에리자(우디 헤럴슨)가 에밀리(로자리오 도슨)를
알아보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리뷰의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보는 내내 윌 스미스의 연기와 그 비중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특히 이제는 감정을 움직이는
휴먼 드라마에 있어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 영향력을 가진 배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믿음직함이 느껴졌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속으로만 해야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펼쳤다.

로자리오 도슨은 영화 속에서 몸이 아픈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아픈 로자리오 도슨의 모습을 보니 며칠 전 보았던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가 자꾸 떠올랐다. 둘다 강한 여성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아파서 골골해 하는 모습을 보니
측은함과 동시에 배우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된 것 같다. 우디 헤럴슨은 뭔가 이렇게 착하게만 나오니 조금 적응이
안되긴 했다 ^^;


1. 메가박스 신촌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감상하였는데, 정말 화질이 좋더군요! 마치 블루레이를 집에서 보는 듯한 디테일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좋은 화질이었습니다. 화질이 감상에 10%이상 도움이 확실히 된 경우입니다.

2. 삽입곡들도 참 좋았습니다. 특히 닉 드레이크의 곡이 좋았고, 뮤즈의 곡도 좋았구요.

3. 이 영화를 보니 오랜만에 <행복을 찾아서>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콜럼비아 픽쳐스에 있습니다.




 



적벽대전 2 _ 최후의 결전 (Red Cliff 2, 2009)
오우삼의 삼국지 주유전

사실 많은 이들이 실망했던 1편의 경우도 2편을 위한 거대한 예고편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는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특히나 1편에서는 제목이 '적벽대전'임에도 정작 적벽대전은 거의 치뤄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언가 2편에 가서는
주유와 공명의 심리전을 예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2편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일단 리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전에 짚고 넘어갈 점은, 영화 <적벽대전 2>는 원작인 삼국지연의 와는 거리가 있는
허구의 서사 장르일 뿐더러,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자체도 정사와는 차이가 있는 일종의 과장된 소설이다보니, 아예 원작이고
익숙한 삼국지와의 비교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으로 줄이려 한다. 뭐 어쩔 수 없이 거론하게 되겠지만, 하나하나 비교해 가며
따져보기에는 워낙에 어긋난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냥 '오우삼의 삼국지'라던가 '삼국지 주유전' 정도로 러프하게 인정하고
리뷰를 이어가 본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미 1편을 통해서도 그렇고, 양조위라는 배우가 캐스팅 된 것만을 놓고 보았을 때도 알 수 있었지만, 오우삼이 만든
<적벽대전>은 어디까지나 주유가 주인공인 영화이다. 물론 삼국지에서 주유가 주목 받는 것을 보았을 때 적벽대전 당시가
가장 주목받는 때이기는 하지만, 오우삼의 <적벽대전>만큼 집중되 있는 편은 아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개인적으로는
양조위와 금성무가 인물을 바꿔서 연기했어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우삼은 주유를 너무 사랑했기에
양조위를 선택하게 된 듯 싶다). 주유가 워낙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탓에 다른 장수들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가 소홀히 되는
것이 원작팬으로서는 가장 아쉬울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등 촉 장수들에 대한 묘사는 기존
이 삼형제로 대변되는 삼국지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당황될 정도로 그저 동네 힘쎈 형(장비), 얼굴 벌건 동네 형(관우),
그리고 공원가면 만날 것 같은 아저씨(유비)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조자룡의 경우는 굉장한 비중을 부여받고
있는 경우인데,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처럼 주유와 등을 맞대고 싸우는 이도 조자룡이고, 레골라스 급의 아크로바틱한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는 장본인도 다름아닌 조자룡이다(이런 경향은 1편에서도 드러났다).

하지만 촉의 장수들은 조조로 대표되는 위나라 장수들과 비교하자면 그나마 양반이라 할 수 있겠다. 위나라 장수들은
그나마 배신한 채모와 장윤을 제외하면 이렇다하게 이름이 거론되는 장수조차 없으며, 그 외에 거론되는 장수라고는
위나라에 속한 것도 아니요 장수도 아닌 '화타'가 유일하며, 마지막 장면에 '하장군'으로 묘사되는 모 장수가 있겠다
(애꾸눈이 아니었던 걸로 봐서 하후돈은 아닌듯 싶고, 그렇다면 하후연? 하후상? 하후덕? 등 인 듯도 싶지만, 어쨋든 중요한건
이들이 전부 일반 장수들 이상으로는 묘사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조조에게는 그 어느 세력보다 훌륭한 장수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휘하의 장수들의 묘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사실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2>에서는 영화적인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소교의 에피소드와 손상향의 에피소드를
매우 비중있게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일반 영화였다면 매우 효과적인 장치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으나, 삼국지를 베이스로
하는 <적벽대전>에서 이런 쌩뚱맞은 에피소드를 만나니 사실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아니 왜, 적벽대전에
'바보온달'시퀀스를 삽입한 것인가!). 물론 정사가 소설화 되고 영화화 되면서 과장에 과장이 더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하여도,
결국 이 여인 한 명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거나, 마지막에 소교를 인질로 잡고 협상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영화구나'할 수
밖에는 없었다.

개봉이후 조금 늦게 영화를 보게 된지라 이미 많은 사람들의 스포일러 없는 감상평들을 접하고 간 탓에, 원작과의 비교에 대한
기대를 접고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주유와 공명, 혹은 주유와 조조의 허허실실 지략 대결에 대한 묘사는 2편에서 가장 기대하던
바였다. 물론 <적벽대전 2>에는 바로 이 '허허실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지략 대결이 등장하지만, 좀 더 치밀하고 비중있게
묘사했으면 하는 바램과는 달리, 빨리 빨리 맛만 보여주고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만약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공명이 화살 10만개를 얻어오는 장면이나, 서로가 서로를 속일 것을 예상하여 수를 두는 계략에 혀를 내두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오히려 예상보다 못한 수 놀림에 감탄할 장면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내용상으로는 역시나,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무엇이 되었든 욕을 먹을 수 밖에는 없다'라는 지론처럼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으나, 그렇다고 오우삼의 <적벽대전 2>가 단순히 아쉽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1편과 마찬가지로 전투 씬에 있었는데, 기존 전쟁영화들에서는 대규모 인원이 등장한 전투씬을 그릴 때
단순한 치고 박는 식의 연출을 어떻하면 효과적이고 미적으로 그릴까 혹은 리얼하게 그릴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삼국지라는 특성에 잘 부합하여 '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전투 씬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전편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진법이 사용된 전투 장면이었는데, <적벽대전 2>에서도 이 진법을 이용한 공성전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방패로 주위를 둘러쌓은채 기회를 도모하다가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신출 기몰하게 나타나 적을 베는 장면이나,
공성을 오르기 위해 진을 쌓는 장면 등은 오우삼이라는 감독과 중국이라는 인프라가 만났을 때만 가능할 법한 대규모
장면으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예전부터 삼국지 게임을 즐겨해온 입장으로서는 각 부대별로 네모낳게 모양지어
전진하는 장면이 반갑기까지 했으며, 공성전을 연출하는 방법도 실제와 허구가 적절히 섞인 장면들로 이뤄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런 전쟁 씬의 경우 음악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벽대전 2>의 경우 음악 없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았으며, 이 분위기에 따라 한쪽이 계속 밀리다가 다른 한쪽이 다시 우세하곤 하는 본편적
연출과는 다르게, 계속 서로가 죽고 죽이는 현실적인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이 영화에선 실제로 촉과 오의 연합군이 기세를
몰아 조조의 군대를 잠식해 갈 때도 상당히 많은 아군이 전사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연기와 캐릭터를 묘사한 배우는 조조 역할을
맡은 장풍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영화가 완전히 주유의 원사이드 영화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조조라는
캐릭터가 다른 한편에서 열심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오우삼은 조조를 완벽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선한 면(동시에 독한 면이 될 수도 있겠다)또한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좀 더 캐릭터를 확장시킬 여지가 있었다면,
훨씬 더 풍부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장풍의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조조 라는 캐릭터에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장풍의가 출연한 다른 영화들에도 급 관심이 가게 되었다.

주유 역할을 맡은 양조위와 공명 역할을 맡은 금성무에 연기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애초에
처음 캐스팅 얘기가 나올 때부터 양조위가 주유와 공명 역할 모두에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양조위는 언제나처럼
괜찮은 연기를 펼쳤으나 자신의 부인을 적장에게 빼았길지도 모르고, 자신을 생각해서 부인이 스스로 적장에게 간 장수의
깊은 갈등까지는 표현해내지 못한 것 같다. 공명 역할의 금성무는 확실히 멋지긴 했으나, 뭐랄까 좀 더 공명스럽지는
못했다고나 할까. 하긴 공명스럽다는 것이 기존 삼국지 관련 작품들을 통해 얻게 된 일종의 선입관이긴 하겠지만,
그가 공명 같다기 보다는 여전히 금성무 같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기도 하겠다. 소교 역할을 맡은 린즈링은 아름답기는
하나 아무래도 캐릭터가 조금 쌩뚱맞다 보니 '그저' 아름답게만 묘사되고 있고, 손상향 역할의 조미는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나 삼국지와는 덜 어울리는 캐릭터였으며, 손권 역할의 장첸은 손권 자체가 어찌보면 유비만큼이나 힘없이 그려지기
때문에 무언가 갈팡질팡 하는 느낌이 깊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2>는 역시나 삼국지의 팬들에게는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 구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아쉬운 작품이긴 했으나, 원작과의 1:1 비교라는 점에서 조금 벗어난 다면, 그럭저럭 오우삼
감독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장함이 라던가, 대규모 자본과 엑스트라가 동원된 인상적인 공성전 만으로도
볼만했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점에서 보았는데, 화질이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노이즈가 너무 심하고 전체적으로 색감도 별로 좋지
못하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분명히 제가 본 프린트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극장에서 사운드 볼륨도 별로 크지 않아
임팩트도 심히 부족했던 것 같구요.

2. 혹자들은 3편이 나온다고 하는데, 물론 루머일 것이며, 나온다면 그건 적벽대전 3가 아니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겠죠.

3. 양조위는 연기할 때 우리가 극장에서볼 때와는 다른 언어로 연기한 것 같더군요.

4. 다시 생각해보아도 조조 휘하 장수들의 묘사는 정말 안습이네요 ㅠㅠ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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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시티 (24 city, 2008)
타인은 거론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스틸 라이프>를 연출했던 지아장커의 신작 <24 시티>는 사실 보기 전부터 조금 겁을(?)먹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다름이 아니라 기존 그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더 건조할지도 모르겠다는 이미 본 지인의 말 때문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명절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저녁에 이루어진 시사회라 잠깐 졸긴 했지만,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되었던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의 씨네토크 덕분에 한결 영화에 대한 이해가 수월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이루어진 <24 시티>는 중국 서남부 쓰촨성에 위치한 청두라는 도시에 있었던  '420 공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며 한 때 청두의 주요 생활 터전이기도 했던 이 공장이 국가의 정책 변경에 따라
재개발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24시티'라는 최상급의 고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 곳에 살고 있던 혹은 일하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24 시티>는 거의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극중 인물들의 인터뷰로 채워가고 있는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동장르의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긴 호흡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내용 자체가 크게 극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굉장히 사소하고 소소한 얘기거리 들이며, 인내심을 요할 정도로 상당히 길게 진행되곤 한다. 이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점은 우리가 자신이 모르는 (혹은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현실에 가까워 있다는 다큐멘터리 들을 보아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극적인 요소를 위해 편집되기 마련이다(물론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인터뷰도 편집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길게 까지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이 별로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지아장커 감독은 의도적으로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어찌보면 별로 중요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늘어놓음으로서, 기본적으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고 길게 들어준 적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과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보통 같으면 이 긴 이야기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감독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겠지만,
지아장커는 정반대로 이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듣게 하는 형식 자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듯 싶다.
즉 누군가의 사정과 인생을 듣고 보는 것 만으로는 절대 이들의 이야기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가 끝나고 두 평론가 분들과 함께 했던 씨네토크를 함께 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바에 대해
약간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무언가 깨름직하긴 한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피보면 <24 시티>는 '청두'라는 도시에 살았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개발을 통해 사라져간 이 도시의 옛 모습을 그리며,
노동의 현장이었던 이 곳이 자본의 상징으로 변해간 것에 대해 연민과 이 속에 살았던 자들의 삶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었으나(거의 그럴 뻔 했음), 두 평론가 분의 의견을 듣기 전에도 이렇게만 보기에 <24 시티>는 무언가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일단 이 영화는 리얼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허문영님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노동자들도 있지만,
조안 첸 같은 유명한 배우들도 출연하고 있으며,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는 말그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자들의 이야기 가운데 '가짜'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 알 수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배우들이 출연해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에서는 의아함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을 수 밖에는 없었는데, 어떤 이야기는 정말 사소함을 넘어서서 불필요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지막 등장한 젊은 여성의 시퀀스는 결과적으로 이 의아함에 어떤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노동자의 딸 임을 부정하려고 했던 그녀가 결국엔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나는 노동자의 딸이다 라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러면서 그 공장을 허물고 생겨난 괴물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다짐은,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은 공간 안에 놓여있지만 세대가 이어지면서, 같은 공간이
어떻게 달라 보일 수 있는지와 그 속의 인물들의 가치관도 얼마나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으나, 이 마지막에 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열심히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재벌 아들들의 사치 용품 쇼핑을 대신해 주며
쉽게 돈을 버는 것도 그렇고, 결국 이 상징과도 같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시겠다며 눈물 흘리는 라스트는 마지막 현재의 청두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니가 있어 찬란했다'라는 식의 자막과 더불어 이상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영화를 보면서 깜빡 속을 뻔할 정도로 동화와 이상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은 바로 음악의 사용이었는데, <24시티>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와 영화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음악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거의 한 인터뷰 시퀀스 마다
하나의 테마 음악이 존재하고 있을 정도고, 이런 형식이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아, 이 남자의 이야기 뒤에는 이 노래가
나오겠구나'하고 미리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게 음악과 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달리보면 굉장히 인위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일부러 넣은 장치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페이크의 수준이 굉장히 디테일한 터라 아주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는 것 그대로를 믿기 쉬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를 통해 지아장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를 본 것 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만으로 청두를 이해했다고 하지 말라, 혹은 중국의 현재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배우를 이 다큐멘터리 형식에 넣어가며 이 이야기가 가짜 일 수 있다는 걸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통해 이것들 만으로는 알 수 없음을 인정하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허문영,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하는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리뷰에 언급했듯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의아스러웠던
부분들에 대해 좀 더 명쾌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 해석에 대한 이야기들은 물론,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전해들을 수 있었으며,
이후 관객들의 열띤 분위기 속에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참여하는 씨네토크도 장점이 있지만, 이렇게 영화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
영화가 끝난 뒤 좀 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1. 사실 이 날 피곤하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굉장히 '잠이 오도록' 진행된 터라 깜빡 졸기도 했었는데, 이런 잠을 확 깨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있던 순간 이후로는, 끝까지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2. 그 순간이란 바로 <첩혈쌍웅>에서 엽청문이 불렀던 노래가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였는데, 정말 잠이 확 깰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곡을 본래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크린에서 이 곡을 만나니 그 감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더라.




(24시티에 등장한 곡이 <첩혈쌍웅>처럼 엽청문이 부른 버전인지는 100%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인상적이었음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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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첫 블로거 상영회인
제 4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1월 31일(토) 저녁 8:00시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지난 상영회 관련 링크]
1회 <원더풀 라이프>
2회 <쥴 앤 짐>
3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상영작: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는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Freeze, Die, Come to Life


얼음같이 차가웠던 그 겨울날의 동화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품 소개

"내 삶이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난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비탈리 카네프스키 Vitali Kanevski

거칠고 쓰린 유년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90년대 영화의 최고 걸작!!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인상적인 이 영화의 제목은 러시아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놀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제목의 유래가 알려주듯 이 영화는 한 소년의 유년시절을 다룬 작품으로, 카네프스키 감독 자신의 유년시절을 그린 자전적 이야기이다.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에서 카네프스키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란 결코 달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세상에 자신이 있을 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상처로 얼룩진 시간들... 이 영화는 어른들의 거친 세상에도 아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는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사랑을 중심으로, 여러 비극적인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면서, ‘러시아의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 때론 고통스럽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시놉시스

슬픈 사랑의 발라드,
아픈 유년의 멜로디. 그 따뜻한 회상...

 러 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스촨이라는 탄광도시가 나온다. 일 년의 반은 눈이 내리고 얼음이 녹지 않는 곳. 1947년의 그곳은 옛 소년 지식인의 유배지이기도 했으며, 일본군 죄수와 포로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두 가닥의 철로가 가로질러 달리는 스촨의 한 모퉁이.. 열세 살의 어린 주인공. 발레르카는 엄마와 단 둘이 외롭게 산다. 발레르카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미운 털이 박힌 장난꾸러기이며, 그의 엄마 니나는 술집 바텐더를 하며 ‘그저’먹고 살기위해 하룻밤에 5센트짜리 매춘을 한다.

 어느 날 발레르카는 여자친구 갈리아가 수완 좋게 차(茶)를 파는 것을 보고, 자신도 벼룩시장에 나가 차를 판다. 그럭저럭 모인 돈으로 꿈에 그리던 썰매를 장만하던 날. 발레르카는 수용소 앞의 비탈길에서 썰매를 도둑맞는다. 다음날, 발레르카는 갈리아의 도움으로 겐카의 집에 몰래 들어가 썰매를 다시 훔쳐온다. 그러나 며칠 후, 발레르카는 집으로 가는 화물 열차에 올라탔다가 철도에서 일하는 겐카 아빠에게 실컷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며칠 뒤, 발레르카는 학교로 돌아오지만 일전에 화장실에 이스트를 뿌려 학교가 발칵 뒤집혔던 일이 들통 나 퇴학을 당한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겐카 아빠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게 된 발레르카는 철도의 선로를 바꾸는 장난을 하다가, 우연치 않게 열차 전복 사고까지 일으키게 된다. 비밀경찰을 피해 할머니 댁으로 도망치는 발레르카. 그곳에서 그는 갱단의 사기에 넘어가 일본인 보석상을 털게 되고 살인까지 목격하게 된다.

 발레르카 걱정에, 물어물어 그곳을 찾아온 갈리아. 그녀의 도움으로 발레르카는 갱단으로부터 도망쳐 나오게 되고, 둘은 스촨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올라탄다. 나란히 걷는 철로 사이로 한 소년의 노래 소리와 한 소녀의 가는 비명이 엇갈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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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맞아 처음 갖게 되는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네요.
이번 달은 겨울을 주제로 블로거분들의 투표를 받았었는데, 제 43회 깐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데뷔작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가 선정되었네요.

이번 토요일 저녁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래 비밀 댓글로 닉네임과 명수(최대 2명)본인확인을 위한 핸드폰 뒷자리 4번호를 남겨주시면
토요일 상영회에 초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감합니다!!!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원치 않는 변화를 겪어야만 하는 현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2008년작 <체인질링>은 개봉전 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래 안젤리나 졸리가 다시 한번 아카데미를 두드려볼 수 있을 정도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도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였지만, 무엇보다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으로 노년에 더욱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우리말로 '동림'선생 ㅎ)의 최신작이기 때문이었다. 배우와 감독을 겸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두 분야 모두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지속적으로) 드물다고 할 수 있을텐데,
언제부턴가 동림선생의(감독으로서) 작품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극장으로 달려갔었던 것 같다. 이 작품 <체인질링>역시
마찬가지 경우였다.


(아래부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 영화의 제목인 '체인질링 (Changeling)'의 뜻을 찾아보면 대략 이렇다.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 《요정이 앗아간 예쁜 아이 대신에 두고 가는 못 생긴 아이》'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몰랐었기에 생각해볼 수가 없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의 뜻을
새겨보니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직접적인 뜻 외에도 은유적인 여러 다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좋은 제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1928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실화를 그리고 있다(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화다 '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실화 (A True Story)'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극중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전부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나중에 여러 자료들을 확인해본 결과 실제 사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영화도 담고 있다. 비슷한 시기를 그린
다른 영화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이 당시 미국은 금주법으로 인해 밀주를 일삼는 대형 범죄조직이 등장했으며,
경찰 역시 타락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 <체인질링>은 이 시기에 아들을 잃어버렸던(혹은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당했던)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크리스틴 콜린스는 전화 교환원 일을 하며 홀로 아들 월터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이다(영화 속에서는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실제 월터의 아버지는 당시 절도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인 월터가
없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서는 실종신고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얼마만에 경찰에서 월터를 찾았다고 해서 기차역으로
달려가보지만, 자신이 월터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는 분명 월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경찰의 존스 반장은 '시험 삼아
아이를 한번 데려가 키워보라며' 일단 사건을 종결시키려고만 한다. 크리스틴은 혼란스러움에 어쩔 수 없이 이 '가짜 월터'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정신을 차린 뒤 이 아이가 월터가 아니라는 확신에, 경찰에게 다시금 이를 호소하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아 점점 골치거리가 되어가는 크리스틴을 정신병원에 감금하게 이른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과 힘으로 대표되는 외부 작용으로 인해, 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이렇게 될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변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무거운 현실이다. 그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만을 바랬던
크리스틴은 어느덧 원하지도 않았던 부패한 경찰 권력과의 정의로운 싸움에 주인공(이자 희생양)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크리스틴이 처음 부터 '남이 걸어온 싸움을 내가 마무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초반 기차역에서
가짜 월터를 확인하고서도 경찰 반장의 말도 안되는 말에 일단 수긍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었고, 더이상
못참겠다고 경찰서를 찾아가 반장에게 따져도 보았지만, 정의를 외치기 보다는 아들을 되찾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경찰에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사과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따져보려고도 하지만, 결국 앞선 것과 같은 이유로
이들이 하라는대로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아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때 부터 이 원치 않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수행하기로 마음 먹는다.

극중 존 말코비치가 연기한 구스타브 브리그랩 목사는 크리스틴의 억울한 상황을 돕기 위해 진심으로 돕는데, 물론 여기에는
진심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계속 해왔던 부패 경찰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이 케이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음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종의 쇼크나 사건(혹은 스타)이 필요했던 구스타브 목사에게
크리스틴의 억울한 케이스는 좋은 원동력이 될 기회였으며, 결국 그녀가 직접 경찰과의 싸움에 나서게 되면서 대규모 군중들이
참여하는 시위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마치 구스타브 목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크리스틴을 이용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목사가 원하는 것이 개인적인 것도 아닐 뿐더러, 반드시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 일에만 관심이 있던 그녀에게는, 정신병동에서 만난 억울한 사연의 여성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도 나서게 되고, 반대로 같은 유괴/살인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극중 크리스틴이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아들인 월터를 찾고 싶었을 뿐이지,
부패한 경찰을 몰락시키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영화 속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에서는
단 한번도 강인함이라던가 생기있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한 때 터프한 여전사의 상징이었던 '라라 크로프트' 안젤리나 졸리가
이렇게 러닝 타임 내내 아파보이고 힘없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는 크리스틴 만큼 중요한 캐릭터가 또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20건에 달하는 아동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이다. 영화가 실화인 것처럼 이 사건과 그 역시 실존인물이자 실제 사건인데,
일단 <체인즐링>에서는 노스콧에 대해 더 나아갈 것 처럼 하다가 어느 선에서 그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예 단순한
사이코 패스 정도로만 묘사했으면 모르겠지만(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지만), 재판장에서 자신은 무죄이며, 크리스틴에게
너만이 착한 여자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이후 사형을 앞두고 크리스틴과 만나 복잡한 심리상태를 살짝 엿보이는 장면을
보면, 한편으론 크리스틴과 맞닿아있는 캐릭터로서 그리려는 시도가 얼핏 보였기 때문에 더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다.

실제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가정사와 사건 정황이 있었다고
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연쇄 살인범에게 일말에 자비도 배풀지 않고 있다(실제로 노스콧의 어머니는 이 살인사건에
함께 가담한 공범이기도 했으며, 어머니가 아니라 사실은 할머니였는데, 그러니까 고든 스튜어트 노스콧은 아버지와 딸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던 것이다).

뭐랄까 권력의 힘에 의해 평범한 아이 엄마에서 부패와 맞서싸우는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크리스틴과 맞물려, 불우한
가정환경과 역시 잘못된 권력의 부패로 인해(고든이 잡혀갈 때보면 '예전에 몇년 동안 휴가를 보냈던 곳'이라고 감옥을
칭하기도 하는 걸로 봐서 이미 전과가 있었고, 그럼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는 얘기로 봐서
역시 경찰에 대한 무능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마지막 이 둘의 정면 대면 장면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냈던 것처럼
크리스틴과 노스콧의 캐릭터를 정반대에 서있지만 동일한 피해자라는 개념으로 그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쇄살인범에게 연민의 감정을 선물하지는 않았다(이것이 반드시
나쁘거나 좋거나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선 이유들도 그렇고 사형장에 끔찍하게 끌려가는 모습이나 마치 <어둠 속의 댄서>
의 셀마 처럼 사형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세어가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노래하다 사형당하는 장면을 넣은 것에서는,
분명히 이 노스콧의 캐릭터를 단순하게만 느껴지도록 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조금 애매하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영화 초반 부에 관객을 분노케 하는 것은 바로 부패한 경찰 권력이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하겠다.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아이의 엄마에게 가짜 아이를 안겨주고는 시험삼아 키워보라고 말을 하고는,
언론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에만 급급하는 모습이나, 점점 말을 듣지 않고 감히 권력에 대항하려 들자 정신병자로 몰아
감금하기까지 이른다. 권력이란 항상 그렇지만 자신들이 그리는 큰 크림에서 한 사람의 인격은 별로 신경쓰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애초에 깨끗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이렇게 커질 일도 아니었지만, 커다란 힘을 가졌음에도 조금의 흠집조차
내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 <체인즐링>에서는 짧지만 이 권력 구조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존스 반장이 혼자 나쁜 놈
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하수인으로서 스스로가 권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자라 믿었던
불쌍한 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위의 청장 또한 옷을 벗게 되었지만, 애초에는 일이 커지자 그냥 이선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존스를 희생양(희생양까지는 아니겠다. 잘못을 안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으로 만들고 끝내버리려고 했던 권력의 모습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권력에 어떻게 언론과 진실을 외곡하고 조작하는지에 대한 것도 엿볼 수 있다. 가짜 아들을 안겨주며 지금은 혼란스러워
착각을 하는 것이라며 말도 안되게 아이를 넘겨주고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름다운 장면만을 제공하고,
문제점을 알아내고 조사를 하려는 부하 경찰에게 신문도 안보냐며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2차 권력을 그대로 이용하려는
부패의 전형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신문도 안보냐고 물은 다음에, '아마 다른 신문을 보나보지'하고 얘기하는 장면에서는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너무도 우리 현재의 현실과 닮아있는 이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신병원이 정신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정신병을 만들어내는 곳이며, 전기고문 등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연상되기도 했다.




<체인질링>을 보는 내내 2009년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으로서 국내의 현실이 겹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 똑같은
이야기를 국내 감독이 만들어 한국에서 개봉하려 했다면 아마 국가에서 큰 제제라도 받았을 정도로, 영화 속 이야기는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다른 것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는 실화이긴 하지만 1930년대 라는 과거의
것이고, 우리의 이야기는 2009년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영화 속 부패 경찰은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자들은
그대로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에게는 정신병자라는 죄목을 부가하여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만다.
인터넷에 정부 정책의 잘못됨을 이야기하면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하는 것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언론 마저 통제하여 진실을 점점 알기 어려워지는 모습도 닮아있고, 문제가 있을 때 하위 담당자를 경질하는 것으로
불을 끄고 보려는 모습도 너무나 닮아있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부패한 경찰을 처벌할 수 있는
공정한 사법부가 있었지만, 국내에 현실을 떠올리며 이 마지막 재판 장면을 보니, 그야말로 딴 세상 얘기로만 보여서
더욱 씁쓸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원티드>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확실히 너무 예전에 비해 살이 많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크리스틴을 연기하려면 예전 라라 크로포트 같은 건강한 몸매는 불편했겠지만, 깊은 아이 라인을 지우더라도 퀭해 보이는
눈가와 그녀 답지 않게 너무 마른 팔과 다리는 캐릭터가 측은하다 보니 더욱 더 측은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는 기존 안젤리나 졸리의 캐릭터를 떠올려봤을 때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녀의 연기 변신을 높이 사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선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체인즐링>이 안젤리나 졸리의 필모그래피에서 베스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아직까지 그녀의 베스트는
<처음 만나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디테일하게 묘사된 당시의 미장센 만큼이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관객들이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에 적극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 외에 인상적인 배우를 꼽으라면 존스 반장 역을 연기한 제프리 도노반을 꼽을 수 있겠다. 그의 마스크에서는
캐릭터가 캐릭터이니 만큼 <L.A 컨피덴셜>의 가이 피어스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정말 옆에 있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캐릭터를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존 말코비치는 분량이 적은 관계로 깊은 인상까지는 주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물론 음악까지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말 대단한 할아버지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가 만들어낸
영화음악은 생각보다는 극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데,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일부 장면에서 음악이 감정을 주도 할 때도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 만큼이나 재즈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인데, 영화를 보고나오면서 바로
스코어를 흥얼거렸을 정도로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재능도 상당히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화 장인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텐데, 그가 장면장면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정말 움찔움찔 할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 많았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크리스틴'의
모습을 발견해낸 점이나 관객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해내는 그의 능력은, 사실 이제 더이상 언급하는 것조차
실례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개인적으로 결정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감독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좋은가,
아니면 배우로서의 그가 더 좋은가 하는 점일텐데, <체인즐링>을 보고나니 감독인 그에 조금 더 기울기도 하지만,
곧 개봉할 <그랜 토리노>를 보고나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 대해 평론가들의 평가가 조금 나뉘는 것을 보고 든 아쉬운 생각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평가 평균을 너무 높여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뭐랄까 항상 90점 이상을 기본적으로 받아오는 우등생이다보니
100점을 받지 않고서는 다들 반응이 미지근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체인질링>은 안젤리나 졸리를 배우로서 다시 보게된 작품이었으며, 영화 장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솜씨를 다시 한번
접할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영화 속 과거의 미국 현실이 현재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어 씁쓸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유니버설 픽쳐스에 있습니다.



 


1. 최근 구매한 블루레이 3종. <쿵푸팬더>는 DP리뷰를 위해 이미 감상하였으나 소장을 위해 구입.
<인디아나 존스 4>는 영화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팬으로서 어쩔 수 없이 구입.
<아이언맨>역시 남들에 비해 특별히 재미있게 본 편은 아니었으나 구입. 다행히 논란이 되고 있는
기스나 굉음은 없음.

참고로 2월 초에 출시될 블루레이 중 이미 질러놓은 건 <월-E>와 <아메리칸 갱스터>가 있음.




2. '와치맨'은 너무 늦어서 그냥 안보려고 했으나 갑자기 끌려서 결국 보게 된 케이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은 산지가 제법 되었는데, 린치 특별전 전까지는 어느 정도라도 봐두어야 할듯.




3. 사놓고 뜯기만 한 DVD 2개. <노 디렉션 홈>은 할인행사를 통해 저렴하게 구입했으며,
<최후의 증인>은 예전에 글을 썼던 것 처럼, 무려 이두용 감독님의 친필 싸인판임.




4. 요즘 게임은 정말로 못했었는데 설 연휴를 앞두고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엑박360을 돌릴 수 있었음.
'페르시아의 왕자'는 최근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었는데, PS3용 소프트를 중고로 팔고 중고로 업어왔음.
'스타워즈 : 포스 언리쉬드'는 이미 클리어했으나, 매우 어려움 모드로 다시 해서 또 다시 클리어 했는데,
도전과제가 완료되지 않아 대략 난감 --;;




5. 최근 들어봐야지 하고 작정하고 있는 앨범들. (맨위 왼쪽부터)
Musiq - ONMYRADIO
Madlib - WLIB AM : KING OF THE WIGFLIP
Common - UNIVERSAL MIND CONTROL
마이 앤트 메리 - 5집 CIRCLE
Ray Lamontagne - GOSSIP IN THE RAIN
재주소년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미니앨범)

사실 찾아보면 더 많겠지만 일단 이 정도라도 소화해봐야겠다.




6. '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후덜달한 라인업 중에 일단 이번 주 일요일날 상영하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작 <란 (亂)>을 예매했다. 며칠전 EBS방영시 제대로 보질 못했었는데, 이 엄청난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근두근.




7. 어젯밤 EBS에서 설날 특선 영화로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방영했다.
무려 HD로 방송했는데, 물론 최신 블루레이에 비할바는 못되는 화질이었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만족할만한
화질이었다. <석양의 무법자>는 지난해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있었던 세르지오 레오네 회고전을 통해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는데, 다시 봐도 역시나 인상적이더라.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멋지고, 엘리 웰라치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지만, 보면 볼 수록 리반 클리프가 멋진 건 어쩔 수 없는 듯.




8. 오늘 드디어 이스트우드 선생의 최신작 <체인즐링>을 보러 간다. 최근 개봉작들 가운덴 은근히 제일 기대하는
작품! 수요일은 허문영,김영진 평론가와 함께하는 지아장커 감독의 <24 시티>시사회가 있으며, <적벽대전 2>와
재개봉한 <타인의 취향>도 이 주내에 소화해야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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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Valkyrie, 2008)
서스펜스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

며칠 전 내한하여 수많은 한국팬들에게 톱스타 다운(혹은 답지 않은) 엄청난 매너와 그 많은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어 일부에서는 '성인'으로 까지 추앙받기도 했던 톰 크루즈 주연의 스릴러 영화 <발키리>를 보았다(이 영화를 액션 대작
으로 잘못 알고 극장을 찾은 분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국내에서는 <작전명 발키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잘 알려졌다시피 히틀러 암살 계획을 다루고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개봉전 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비단 톰 크루즈 때문만은 아니었다. <엑스맨>과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에, 과연 <식스 센스>오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반전 영화로 꼽히기도 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완성도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재미있는건 <유주얼 서스펙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추는 '퀴즈'같은 형식이었다면, <발키리>는 이미 누구나 다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해설'
같은 형식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영화다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




히틀러 암살 작전에 관한 영화는 이전에도 몇 편있었고,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역사로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건이라
영화화 하는 것에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워낙에 반전 자체에만 목을 매는 국내 관객들을 감안해보자면
차라리 '어떻게 될까?'하고 기대를 하지는 않을테니 나쁜 선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그런데 재미있는건 극장에서
분위기를 보니 이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더 흥미진진한
서스펜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결말이 이미 나와있는 이야기라면 결국 그 과정을 얼마나 설득력있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터. 정말 잘 만들어진다면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문득 문득 '히틀러가 정말
암살되었던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서스펜스를 이끌 수도 있을텐데, 이런 면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발키리>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확실히 브라이언 싱어는 장르 영화에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결말을 다 아는 이야기를 영화화 할 경우, 그 과정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 새로운 방식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발키리>는 이런 경우도 아니라 하겠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실제 역사와 흡사한 설정과 장면들을 디테일하게 배치하였고, 현실감을 더 하기위해
제작비의 대부분을 미장센을 만들어내는데 쓰기도 했다.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도 서스펜스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들을 여기저기 배치하고 있다. 영화 초반 슈타펜버그(톰 크루즈)가 적군의 폭격을 받아 부상을 당하는 장면에서,
고개를 옆으로 하고 쓰러지는데, 이 장면은 그의 최후에 그대로 다시 복선으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된 긴장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가방'에 관한 시퀀스도 매우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가 만들어낸 <발키리>에서는
'저거 예전에 본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거의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이것은 감독의 연출력은 물론이고, 여러 중견 배우들의
무게있는 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발키리>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않은 상태에서
항상 영화를 감상하기 때문에 익숙한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었는데, 영화가 영화이니 만큼
이들 중 한 두 명만 있어도 가능할 법한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모두가 적절하게 분량을 나눠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최근 <추적>을 연출하기도 했던 케네스 브래너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고(해리포터 이후 스크린에서는 오랜만에
만난것 같네요), 빌 나이, 톰 윌킨슨, 크리스찬 버켈, 토마스 크레취만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인상적인 조연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중견 배우들을 가득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토마스 크레취만 같은 경우 최근 <원티드>를 비롯해, <킹콩> 'U-571',
<피아니스트>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였는데,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표현해 내는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여자 배우가 출연하고 있지 않은 이 영화에서 슈타펜버그의 부인 역할로 등장하는 캐리스 밴 허슨은 비중이 특히
더 적어 좀 아쉬웠던 경우였다. 그녀는 이미 <블랙북>을 통해 비슷한 시기의 인물을 연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의 배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으나 비중 자체가 많지 않아, 외모를 비롯한 보여지는 것외에 연기를
펼칠만한 여지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수 많은 인상 적인 조연 연기자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단연 테렌스 스템프라 할 수 있는데, 그는 특히 최근들어 <원티드> <예스맨>등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 같아 더욱 반갑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 많은 조연 연기자들이 비중을 적절히
나눠 갖은 것은 한편으론 '적절하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캐릭터를 표현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뜻도 되는데,
테렌스 스템프 역시 워낙에 아우라가 강한 배우여서 그렇지, 연기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마스카와 목소리 만큼은 여전히 유효했다.




<발키리>는 서스펜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뮌헨> 정도의
깊은 인상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일단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긴 했지만 히틀러를 두고 벌이는 이 '암살작전'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왜 충성을 맹세한 것을 거두고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하느냐'에 대한 동기부여는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슈타펜버그는 그저 본래 부터 히틀러를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거나, 그저 조국 독일을 위하는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 그 이상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데, 그의 가족을 조명하는 장면에서 어느 정도 의도는 알 수 있었으나,
설득력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암살작전에 가담하는 다른 조연 캐릭터들의 경우는 더더욱 부족한 면이 있어
전체적으로 서스펜스에는 이끌려가지만,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작전 자체에 집중한 것도 좋았지만, 구테타 세력이냐 히틀러냐를 두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인물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좀 더 비중있게 그려주었다면 좀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조금은 아쉬웠다(만약 이대로 되었다면 아마도 리뷰의 부제목이 '역사의 선택의 놓인 사람들'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




아, 얘기하다보니 정작 톰 크루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항상 톰 크루즈는 연기력에 대해 과소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역시 또 한 번 부족할 것 없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발키리>에서 그가 맡은 슈타펜버그가 톰 크루즈 최고의 연기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발키리>는 톰 크루즈와 여러 중견배우들과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한 영화이기도 했다.




1. <발키리>는 나치당원인 독일인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매우 반길 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2. 히틀러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그 캐릭터도 괜찮더군요. 문득문득 '독재자'다운 포스가 느껴졌달까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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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9.T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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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 95min
개막식 Opening Ceremony







01.30.Fri
13:30
구멍
The Night Watch
131min

16:30
그랜드 뷔페
The Grande Bouffe
130min

19:30
4월 April
78min
시네토크_정윤철







01.31.Sat
13:3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 91min

15:30
거울
The Mirror / 108min
시네토크_정가형제

19:00
1월 작가를 만나다
강이관
사과 Sa-kwa / 118min







02.01.Sun

13:00
4월 April
78min


15:00
란 Ran / 160min
시네토크_변영주


20:00
겟카터
Get Carter / 112min







02.02.Mon
휴관
휴관
휴관







02.03.Tue
14:30
캘리포니아 돌스
...All the Marbles
113min

17:00
들판을 달리는 토끼
And Hope to Die
127min

20:00
퍼제션
Possession
123min







02.04.Wed
13:30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 95min

16:00

Ran
160min

19:30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95min
시네토크_김영진







02.05.Thur
14:00
영화관 속 작은 학교
빼꼼의 머그잔 여행
Mug Travel
76min

17:0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91min

19:00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29min
시네토크_배창호







02.06.Fri
13:00
겟카터
Get Carter
112min

16:00
구멍
The Night Watch
131min

19:00
들판을 달리는 토끼
And Hope to Die / 127min
시네토크_오승욱







02.07.Sat
13:00
밤 그리고 도시
Night and the City
95min

15:30
그랜드 뷔페
The Grande Bouffe
130min
시네토크_박찬욱

19:00
퍼제션
Possession
123min
시네토크_박찬욱







02.08.Sun
12:30
구멍
The Night Watch
131min
시네토크_오승욱

16:00
밤 그리고 도시
Night and the City
95min
대담_오승욱+박찬욱

19:30
들판을 달리는 토끼
And Hope to Die
135min







02.09.Mon
휴관
휴관
휴관







02.10.Tue
14:30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29min

17:30
무셰트
Mouchette
78min

19:30
열대병
Tropical Malady / 18min
상영 전 영화 소개_관객







02.11.Wed
14:30
선셋대로
Sunset Blvd.
110min

17:0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91min

19:30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95min
시네토크_김성욱







02.12.Thur
13:00

Ran
160min

16:30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95min

19:00
캘리포니아 돌스
...All the Marbles
113min
시네토크_류승완







02.13.Fri
14:00
밤 그리고 도시
Night and the City
95min

16:30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29min

19:30
무셰트
Mouchette
78min







02.14.Sat
14:30
열대병
Tropical Malady
118min

17:00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00min
시네토크_김지운

20:00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95min







02.15.Sun
13:00
카비리아의 밤
Night of Cabiria
117min
시네토크_이명세

16:30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10min
시네토크_안성기

20:00
거울
The Mirror
108min







02.16.Mon




19:00
서울아트시네마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







02.17.Tue
13:00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95min

17:30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10min

20:00
그랜드 뷔페
The Grande Bouffe
130min







02.18.Wed
15:00
카비리아의 밤
Night of Cabiria
117min

17:30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00min

20:00
4월
April
78min







02.19.Thur
14:30
무셰트
Mouchette
78min

16:30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10min

19:00
선셋대로
Sunset Blvd.
110min
시네토크_권해효







02.20.Fri
14:30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00min

17:30
겟카터
Get Carter
112min

19:30
히스 걸 프라이데이
His Girl Friday
92min
시네토크_하정우+전계수














02.21.Sat
14:00
무셰트
Mouchette
78min

17:00
2월 작가를 만나다
이경미
오디션 Audition / 16min
잘 돼가? 무엇이든
Feel Good Story / 36min

19:00
2월 작가를 만나다
이경미
미쓰홍당무
Crush And Blush
100min







02.22.Sun
14:00
탐욕
Greed
128min(24fps)
시네토크_홍상수

17:30
열대병
Tropical Malady
118min

20:00
선셋대로
Sunset Blvd.
110min







02.23.Mon




19:30
영화·희망·나눔 영화인 캠페인*







02.24.Tue
15:0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Gentlemen Prefer Blondes
91min

17:30
무셰트
Mouchette
78min

20:00
카비리아의 밤
Night of Cabiria
117min







02.25.Wed
15:00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00min

17:30
선셋대로
Sunset Blvd.
110min

20:00
히스 걸 프라이데이
His Girl Friday
92min







02.26.Thur
15:00
카비리아의 밤
Night of Cabiria
117min

17:30
캘리포니아 돌스
...All the Marbles
113min

20:00
그랜드 뷔페
130min







02.27.Fri
15:00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10min

17:30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95min

20:00
겟카터
Get Carter
112min







02.28.Sat
14:30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29min

17:30
히스 걸 프라이데이
His Girl Friday
92min

19:30
탐욕
Greed
128min(24fps)







03.01.Sun
14:30
퍼제션
Possession
123min

17:00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95min

20:00
캘리포니아 돌스
...All the Marbles
113min





















***모든 외국어 영화에는 한글 자막이 제공됩니다. = English Dialogue, = English Subtitled



올해 라인업은 정말 대단하군요.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머로 나서서 선정한 특별세션 '최선의 악인들'에 속한 작품들이 우선 기대되고,
여러 감독들이 참여하는 GV들도 기대되며, 무엇보다 평소에 찾아 보기 어려운 영화들이나 필름을 통해 극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군요!

회사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몸이라 많은 스케쥴을 소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되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최대한 이 즐거운 영화제를 즐겨야 겠군요~

스케쥴표 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군요.
참고로 씨네큐브에서는 데이빗 린치 기획전을 준비중인데 이건 따로 포스팅 해야 겠네요.

볼 영화가 잔뜩이라 행복한 시간들이 곧 닥치겠군요 ^^;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7)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

미셸 공드리는 내게 있어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인생 최고의 멜로 영화를 안긴 영화 감독이자, bjork, beck 등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더 먼저 알게 되었던 뮤직비디오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 이전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더 익숙했던 그의 작품들에는, 동시대의 다른 뮤직비디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세계가 있었다. 그는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한 방식을 선호하는 감성의 소유자이고, 일반적인 것들 속에서 독특한 것을 찾아내는 탐험가이기도 하며,
어른이지만 아이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피터팬이자,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공드리'스러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조자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던 그가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된 것은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2001년 작 <휴먼 네이처>와 2004년 작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독특한 코미디를 연출해낸 <휴먼 네이처>와
21세기 감성 멜로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이터널 선샤인>은 미셸 공드리의 작품인 동시에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의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2005년 작인 <수면의 과학>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놀라운 결과물이
오롯이 공드리의 것인지 아니면 찰리 카우프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면의 과학>을 보고 난 이후에는
이 것이 카우프만의 역량이 가미되었을 때만 발휘되는 효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영화 감독으로서 미셸 공드리에게는
언제 부턴가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바로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도라 할 수 있었던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으로 높아질 때까지 높아진 기대도 더해진 탓에,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었다.

(미셸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를 잔뜩 만나볼 수 있는 'Director's Label Series Boxed DVD 자랑 ^^;
http://www.realfolkblues.co.kr/2 )




그런데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나니, 이 <수면의 과학>이 그리 홀대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크게 보면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에 관한 굉장히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와 비교하자면 <수면의 과학>은 조금 은유적이고,
방식면에서는 조금 달리했던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수면의 과학>에 주인공인 '스테판'은 누가 뭐래도 미셸 공드리 자신의
모습이 적극 투영된 캐릭터였다. 현실과 꿈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꿈의 세계에 빠져있는 스테판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꿈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현실 뿐인데, <수면의 과학>은 이 상황에서 '현실'이 아닌 '스테판'의 세계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 꿈의 세계이 정당성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면의 과학>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부분은 있었지만(여기서 세련되지 못했다는 표현은 대중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는 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가 될 수 있겠네요)
공드리의 진심이 100% 담긴 영화였다. 어찌 보면 찰리 카우프만의 역할은 미셸 공드리가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인식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카우프만 없이 처음 홀로 서기를 했던 <수면의 과학>에서
미셸 공드리는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레오 까락스, 봉준호와 함께한 프로젝트 <도쿄!>에서는 단편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훨씬 성숙해진 공드리의
연출을 만나볼 수 있었다. <도쿄!>에서 그가 연출한 'Interior Design'은 공드리가 특히 관심을 갖기도 했던 일본 문화를
배경으로 공드리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것에만 급급해 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는데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수면의 과학>과 <도쿄!>사이에는 보지 못한 하나의 영화가 더 있는데, 그것이 바로
최근 개봉한 <비카인드 리와인드>였다. 국내는 개봉이 늦어지면서 2008년 작인 <도쿄!>가 먼저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도쿄!>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점을 미뤄보자면, 이렇듯 점차 찰리 카우프만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그의 신작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유난히 좋아하는 잭 블랙과 모스 뎁을 재쳐두고서라도 충분히 기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영화였다.


(이후 부터는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도시 계획을 위해 철거위기에 놓인 건물에 속해있는 한 오래된 비디오 가게가
있는데, 주인인 플레쳐 (대니 글로버)가 다른 행사 참석을 핑계로(사실은 VHS에서 DVD로 넘어가기 위한 시장 조사였지만)
자리를 비우고 마이크 (모스 뎁)에게 가게를 맡기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이크의 친구인 제리 (잭 블랙)는 우연한 사고를
통해 일종의 전기인간이 되고 이 때문에 그가 지나간 곳에 있던 가게 내의 비디오 테입들은 전부 내용이 지워지게 되면서,
이 사고를 주인아저씨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영화를 찍어서 이를 담아 손님들에게
대여를 해주자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영화를 직접 찍기는 찍는데, 그냥 오타쿠에 가까운 매니아들이라 예전 영화들을
직접 찍는 것으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비디오가게에 테입이 전부 지워져서 이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직접 찍기로 한다는
설정 자체가 무척이나 공드리스러운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와 제리는 직접 'Sweded'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이 과정들은 재미도 있고 나름 의미도 엿볼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이들은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영화를 설명하기를
스웨덴에서 수입된 영화들이라 특이하다 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Sweded'한 영화를 찍는 장면이었는데,
이 과정이 단순히 재미 만을 주지는 않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후에 합류한 엘마 (멜로니 디아즈)가
영화를 촬영하는 방식이 바로 실제 미셸 공드리가 예전부터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방식, 더 나아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면 예전 클래식한 자동차들을 섭외하지 못해 사진을 대형으로 프린트해 마치
어린이 인형극처럼 대형 사진을 활용하는 장면이나, 결국은 카메라로 촬영된다는 점을 100% 적용하여 서 있는 대형 구조물을
눕힌 상태로 마치 서있는냥 촬영하는 것이나, 어두운 장면을 촬영할 때 네거티브 방식으로 촬여하면서 얼굴 부분은
복사기로 스캔한 것을 반대로 사용하는 것 등(마지막 같은 아이디어는 정말 빛이 났다!)은 이미 미셸 공드리가 이름을
날리게 된 여러 뮤직비디오들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기법들이었다. 사실 'Sweded Movie'라는 신조어가 이 영화를 통해
생겨나기도 했지만, 따지고보자면 '공드리 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예전 작품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을 통해
작업된 결과물들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 <고스트 바스터즈>나 <러시아워 2> <킹콩> <캐리> <알리> <로보캅>등 다양한 영화들을 'Sweded'하게
촬영하는 장면들이, 단순히 패러디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미셸 공드리의 역사를 읊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국내 개봉시에는 마치 잭 블랙 주연의 완전 코미디 영화처럼 포장이 되어 '잭 블랙이 너희를 웃게 하리라!'라는 우스꽝스런
카피 문구로 홍보가 되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연히 마이크이며, 코미디는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영화에 대한
미셸 공드리의 고백과 사랑이 담긴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단순히 영화 패러디
장면에서 잠깐 잠깐 보여지는 잭 블랙의 개인기에만 환호하거나 혹은 실망하게 된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제리 역할을 잭 블랙 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도 없을 것 같지만, 반대로 잭 블랙이라는 배우에게서는
일종의 선입관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100% 장면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더 폴>이 그러했듯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미셸 공드리가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이
그 동인 영화(뮤직비디오)를 만들어온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고스란히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맞아 떨어지고, 후반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더이상 영화를 직접 찍을 수 없게 된 다음,
스스로 Sweded한 영화가 아닌 자신들 만의 영화를 여럿이 함께 모여 만드는 과정은, 어쩌면 순수하기만한 미셸 공드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고백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면의 과학>이 아쉬웠던 것은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빗대어 보자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만 있고, 나중에 직접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고 이를 다 함께 모여 관람하는
과정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 공드리 같았으면 Sweded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주제이자 목표인 영화를
만들었을 테지만, 점점 홀로서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공드리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는 점점 자신의 장기와 이야기를
결합시키는 방법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비카인드 리와인드>가 인상적인 영화로 남느냐, 아니면 그냥 그런 영화로 기억되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후반부에 시사회를 하는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 장면에서
'푸훗'하며 유치하고 아동스럽다며 웃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이 장면에서 찡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면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이터널 선샤인>과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미셸 공드리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기억될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극중 잭 블랙이 연기한 '제리'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한창 날리던 시절 미셸 공드리의 모습이라면,
대니 글로버가 연기한 '플래처'는 영화 감독으로서 최근의 미셸 공드리를 엿볼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미셸 공드리는 아직까지 동심을 갖고 있는 피터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순수함을
통해 남들을 볼 수 없고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표현해 내던 시절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의 그였다면,
영화 감독으로서 요즘의 미셸 공드리는, 영화 속 '플래처'처럼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의 꿈을 꺽거나,
희망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편리함과 새로운 것만을 찾는 도시계획처럼, VHS만의 정겨움과 불편함을 어서 DVD로 대채하려고만 하는 문화처럼(그런데
실상에선 이 DVD도 이제 퇴물 취급을 받는터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 자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으로 종결시켜 버리는 문화에 대해, 미셸 공드리는 유치하리만큼 순수한 이야기로라도 현실에 호소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은 극 중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정부 직원 캐릭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캐릭터는 극의 전개상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캐릭터는 영화 속 어느 캐릭터보다
현명하게 묘사되며,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함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음'을 동반하고 있다. 이들이 정성스레 만든 비디오 테입들을
불도저로 부숴버려야 하는 이 캐릭터에게, 확연한 악당의 이미지 보다는 그럴 수 밖에는 없는 현실성을 부여함으로서,
미셸 공드리는 관객들에게 강요보다는 부탁조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 가게 주인인 플래처는 '제리를 가게에 들이지 말라'는 글을 기차 유리창에 남기는데, 마이크가 보는 방향을
생각해서 일부어 반대로 쓴 이 글은 마이크에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져 한동안 이 뜻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종이를 반대로 보게 되고 나서야 참 뜻을 알게 된다. 작은 웃음 소재로만 사용되는 줄 알았던 이 설정은 영화 후반부
모두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장면에 복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창문에 천을 달아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를 보게 되는데,
창 밖에서는 이를 찍어온 방향과 정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영화적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은 이들이 스스로 만든 영화를 다같이 모여서 보는 이 장면(이때 스크린을 비추지 않고 프로젝터 빛에 비친 관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감동의 장면이다)에서 이미 다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부러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영화를 그것도 외곡된 방향으로 즐기고 감동하는 장면을 삽입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한 편으론 제대로, 혹은 원래 있던 그대로의 방식으로는 외면 받을 수 밖에 없고, 뒤집거나 외곡하고 나서야 이들의 진심이
이해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셸 공드리 입장에서 보았을 땐,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대중들이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마이크 역할을 맡은 모스 뎁이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물론 그가
블랙뮤직의 슈퍼스타였을 때였는데, 알리시아 키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을 때 '제법 영화배우 분위기가 난다'고 생각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 영화를 통해 완전히 뮤지션으로서의
허물을 벗었달까. 완벽히 영화 배우 '모스 뎁'다운 모습이었다. 잭 블랙과 대니 글로버 사이에서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캐릭터로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으며, 연기 외적으로는 아마도 본인이 직접 코디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멋진 의상들의 향연도
인상적이었다. 힙합 뮤지션으로서 활동하다가 배우로 전업한 경우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아이스 큐브라고 봐야 할텐데,
내 취향에는 모스 뎁의 앞날이 훨씬 기대된다. 그는 확실히 영화 배우로서도 대단한 재능이 엿보인다.

잭 블랙은 국내에서는 마치 단독주연처럼 홍보되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히 조연에 만족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만의 오타쿠 캐릭터를 크게 오버하지 않는 수준에서 연기하고 있으며, 역시 잭 블랙 답게 디테일한
조크들을 사이사이 껴 넣는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종종 이렇게 영화광으로 영화 속에 출연했던 것 같은데
<비카인드 리와인드>에 와서 비로서 본격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혹자들은 잭 블랙도 별로 안웃기더라 하며
실망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일부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이런 평가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을 것 같다.

대니 글로버와 미아 패로우는 잭 블랙과 모스 뎁 만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따듯함을 이 영화에 불어넣고 있다.
특히 두 배우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패러디할 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조연으로는 <아임 낫 데어>에
출연했던 아역 연기자인 마커스 칼 프랭클린을 들 수 있겠는데, 그의 비중은 사실 까메오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크래딧에서는
매우 상위에 위치해 사뭇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고니 위버는 연기 자체보다도 <고스트 바스터즈>와 연관이 되어
슬쩍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렇듯 미셸 공드리의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공드리가 꿈꾸는 시네마 천국을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설득시키기 위해,
좀 더 일반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영화인 동시에, 영화 감독 미셸 공드리의 자전 적인 이야기이기도 한 작품이다.
잭 블랙이 마구 웃겨주는 코미디를 생각했다면 Sweded한 영화 장면 외에는 별로 재미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겠지만,
감독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터널 선샤인> 못지 않은 흥미로운 감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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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이었던가. 이 때 내 경제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턱 밑까지 차다 못해 혀끝으로 뛰쳐나오기 직전이었던 이 때. 내게는 2007년 최고의 영화였던 <원스 (Once)>의 주인공이자, 이미 음반으로 더욱 익숙해진 존재이기도 했던 그들 'The Swell Season'의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많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돈이 어찌되었던 누리고 보자는 성격인 나는 이들의 공연에 한치에 주저함도 없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예매 시작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예매를 하기에 이르렀다(할부는 아직도 계속된다!!). 2007년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 주인공들의 내한 공연 이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비슷한 시기에 예매를 했던 다른 공연들과 비교해 보자면, 내가 The Swell Season의 공연을 택한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들 가운데는 거의 10년을 기다려온 Jamiroquai의 내한공연 관람 포기가 있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이토록 기다려왔던 그들의 공연이 바로 어제와 그제 이틀간에 걸쳐 있었다. 나는 18일(일) 공연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공연장인 세종문화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일종의 포토존에 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제서야 아주 조금 실감할 수 있었다. 아, 참고로 이번 내한 공연을 한 The Swell Season은 잘 알려졌다시피 영화 <원스>의 주인공인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이르글로바로 이뤄진 프로젝트 밴드이며, 영화 사운드 트랙 외에도 앨범을 따로 발매하기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는 이들 외에 글렌 한사드가 소속된 아일랜드의 인기밴드 '더 플레임즈 (The Frames)'도 함께 했는데,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깊었던 공연이었다. 사실 영화 <원스>를 접하기 이전부터 플레임즈를 알고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되었던 나로서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저번 bjork 내한공연 때 기념 티셔츠를 공연 끝나고 사야지 했다가는 결국 못사고 말았던 기억을 되살려, 이날은 도착하자마자 티셔츠 부터 구매했다. 아, 그리고 내한공연 기념 포스터도 추가로 구매했다. 그런데 구매하려고 보니 현금이 모자라 세종문화회관 밖의 인출기로 향했는데, 근처 일식음식점 앞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모여있길래 보았더니, 다름 아닌 글렌 한사드가 일행과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부터 나는 마치 파파라치 같은 습성을 스스로 자극하여 그의 모습을 밀착 촬영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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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렇게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의외의 장소에서 글렌 한사드를 만나 크게 동요되기 시작한 내 심장은 공연장에 들어서면서 더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연장 내부의 모습은 대략 이러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공연장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려했던 것처럼 이들의 공연과 세종문화회관은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일단 사운드 자체가 별로 좋지 못했는데, 피아노를 비롯한 대부분의 악기들을 단순히 볼륨만 강조하다보니 전체적인 사운드 완성도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았고, 몇몇 곡에서는 귀가 불편할 정도였다. 그리고 스탠딩이 아니라 좌석제인 점도 불만스러운 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클래식 공연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전하는 공연장의 구조가 불만스러웠다 해야겠다. 지난해 펜타포트에 플레임즈가 내한한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이들의 음악을 2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서만 관람하려니 역시나 좀이 쑤실 수 밖에는 없었다. 단순히 앉아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활동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공연을 함께 즐긴다기 보다는 이들의 일방적인 공연을 그저 감상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물론 감상만으로도 황홀하지만 @@). 아마도 스탠딩으로 이뤄지는 다른 공연 이었다면 더 자연스럽게 노래들을 따라부를 수 있었을 것이고, 더 크게 호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분위기 자체가 조용하게 흐르다보니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튼 아쉬운 점은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인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날 공연에는 수 많은 명장면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연의 첫 장면이 가장 인상깊지 않았나 싶다. 길거리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며 절규하듯 노래하는 영화 <원스>의 첫 장면처럼, 자신이 아끼는 낡은 기타를 홀연히 들고 나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기타반주 만에 의지하여 'Say It To Me Now'를 불러주었는데, 아, 절로 소름이 돋았다. 글렌 한사드의 매력은 서정적인 감성과 폭발하듯 터지는 가창력이라 할 수 있는데, 세종문화회관을 몇 바퀴는 돌고도 남을 가창력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이 곡의 임팩트는 실로 대단했다.




노래가 끝나고 짧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한 글렌 한사드의 옆으로 빨간색 치마를 입은 마르케타가 걸어나왔다. 초반에는 영화 속에 삽입되었던 곡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Lies'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예전 영화를 인상 깊게 보고 난 이후에 한동안은 유튜브를 전전하며 이들의 공연 클립들을 일일이 다 찾아 하나하나 감상했던 때가 있었는데, 실제 눈 앞에서 글렌과 마르케타가 서로 눈을 맞추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꿈만 같았다. 영화에 수록된 곡 외에 'This Low', 'The Moon'같은 Swell Season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연주하였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영화에 수록된 곡들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When You Mind's Made Up'이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원, 투'하는 곡 시작 전 글렌의 준비 신호마저 외워버린 곡 'Falling Slowly'가 드디어 연주되었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곡이라 부족한 실력으로 연주도 해보고 했던 곡이라 특히 기대되기도 했는데, 정말 수천번도 더 듣고 본 노래와 장면이지만, 또 한 번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글렌이 곡 중간중간마다 곡에 담긴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참 '착한' 그들처럼 노래 속에 담긴 메시지들도,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는 그 속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그 상처를 달래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들처럼 참 착하기만 했다. 공연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영화 속 장면처럼 글렌이 즉흥적으로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를 부르던 순간이었는데, 영화 속 처럼 처음에는 감미롭게 들려주다가 그 헤비하게 변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연출해 주었다. 자신도 재미있는지 참을 수 없는 록커의 본능을 살짝 살짝 표현해주곤 했다. 공연장의 사운드 시설이 별로 좋지 못해 그가 디스토션을 걸고 연주할 땐 사운드가 별로 좋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 느낌만은 제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의 1부라고 봐도 좋을 순서가 끝난 뒤부터는 마르케타가 먼저 홀로 나와 'The Hill'을 불러주었는데, 아...ㅠㅠ 이 장면은 그대로 영화였다. 마르케타의 라이브가 이리도 감동적일 줄이야. 정말 5분이 안되는 시간 동안 완전히 얼어 붙은 듯이 멈춰있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는 '건전지송'으로 더욱 익숙한 'If You Want Me'
가 이어졌는데, 확실히 국내에서는 더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영화 엔딩 크래딧에 삽입되었던 'Once'가 이어졌고, 앵콜 요청이 있은 뒤 다시 무대로 나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모두가 (드디어) 함께하는 분위기 속에 흥겨운 피날레가 이어졌다.




행복해하는 더 플레임즈 멤버들의 표정도, 살랑살랑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노래하던 마르케타의 모습도, 그리고 항상 따듯했던 글렌의 모습도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보통 같으면 카메라 촬영 제제가 조금은 허술해지는 마지막에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몇 컷이라도 건지려고 안간힘을 썼었겠지만, 이 날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뭐 비매너이기도 하고, 수십명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와중에도 계속 제지하러 여기저기 동분서주하는 세종문화회관 직원이 안쓰러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진 찍느라 이 순간을 찰나일 지언정 놓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모든 내한 공연이 그러하듯, The Swell Season의 공연도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들의 온기는 영화가 그러했듯, 음악이 그러했듯, 내 맘 속을 영원히 따듯하게 해줄 것만 같다.







워낭소리 (Old Partner, 2008)
삶과 죽음의 관한 담담한 여정


<워낭소리>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재쳐두더라도(하지만 재쳐두기엔 그간 선댄스가 주목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 좋긴 했다), 다큐멘터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내게 개봉 훨씬 이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품이었다.
사실 40년을 함께한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인간극장' 정도의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영화라는 포맷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에 남다른 기대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왠지 보기도 전에 내용을 다 알것만
같았고, 보기도 전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이 영화는, 의외로 단순히 할아버지와 소와의 애틋한 관계만을 조명한
단순한 작품이 아니었으며, 인간극장처럼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서,
그 과정 속에서 더 깊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미깊은 다큐멘터리였다.




70이 넘는 평생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최노인에게는 무려 30년이나 함께 해온 소 한마리가 있다. 이 소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함께 지어온 가장 믿음직한 동료이며, 할머니의 계속 되는 구박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함께했던 파트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을 전해듣고 예상했던 것은 이렇듯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 속에서,
소가 결국 할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겪게 되는 일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소에게 다정하게
애정을 쏟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소가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물론 관객들까지 슬픔에 젖도록 만드는 구성일
것으로 알았었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렇게 일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지만 할아버지에게
소는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굴레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항상 말없이 묵묵히 일을 해왔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얼핏 봐서는 늙어서 자신 몸 하나 겨누기도 힘겨워 보이는 늙은 소를 할아버지가 고되게 부려먹는 것만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자식처럼 살아왔는데, 그 흔한 '누렁이'같은 이름조차 없다. 그냥 '소' 라고 하거나
화가 날 땐 '소새끼' 일 뿐이다.

소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의 말처럼 주인을 잘 못 만나서 사람으로 치면 벌써 세상을 떠날 나이가
지났음에도 매일 같이 무거운 수레를 끌고 일을 해야 한다. 어찌보면 할머니의 말이 더 설득력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서
그렇지 사람이었으면 벌써 욕을 해도 한 바가지는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사람이었다면 벌써 소에게 맞아 죽었을 것이라며
자신이 소에게 고된 삶을 주었던 것을 인정한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에 소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 둘은 표현방법이 일반적인 경우가 틀릴 뿐이다. 할아버지는 말 한 번 따뜻하게 하는 법이 없지만,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고 매일 소를 먹일 '꼴'을 배러 가고 그 힘든 농사도 소가 농약먹은 풀을 먹으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는 힘든 길을 고수해왔다. 소 역시 말 못하는 동물이긴 하지만(동물은 말을 하지 못할 뿐, 표현은 분명히
할 수 있는 존재다), 자신의 힘듦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힘든 길이면 가지 않겠다고 힘을 써볼 수도 있고, 내키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지만 소는 항상 할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따른다.
이 관계를 주종관계로 보게 되면 마치 소가 내내 희생만 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이 관계를
그려내는 방식은 이들을 주종관계로 보기 보다는, 동반자 혹은 파트너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카메라 구도나 이야기 구성면에서 보았을 때 죽어가는 소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아니라 함께
삶과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동일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마치 두 인물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듯한 구도가
이 영화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소다. 서로 겨누기 힘든 다리를 발 맞추어
가며 걷는 장면이나, 담배를 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할아버지의 옆으로 포커스 아웃된 소의 모습을 담는 다던가,
무릎을 끌며 농사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저 멀리 떨어져서 지긋이 바라보는 소의 시선을 담아낸 것이 그렇다.
할아버지는 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소리내어 '아파, 아파' 하던 것은
말 못하는 소의 심정을 대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파올 때마다 아마 소도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가 예전 같지 않자 할아버지는 수의사를 불러 소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데, 수의사는 길어야 1년 밖에는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후 할아버지는 우시장에 나가 새끼 밴 암소 한마리를 집으로 사오게 된다. 이 암소가 집에 오게 되면서 늙은 소는 그 동안
사용하던 자리도 이 소에게 내어주고, 이 젊은 소에게 힘으로 밀려 먹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이 암소가 송아지를 낳게 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된다. 이 힘있는 암소와 어린 송아지는 할아버지가 처해 있는
상황에 그대로 비유된다. 모든 농사를 직접 손으로 짓고 농약도 전혀 치지 않아 모두 손수 벌레를 잡아주고, 잡초를 일일히
제거해야 하는 방법을 고수해온 할아버지에게 빠르고 간편한 농사 기계와 농약은, 나쁘다기 보다는 가는 길이 틀리다고
해야겠다. 모든 편리함을 마다하고 고집스럽게 가장 힘든 길을 택한 할아버지에게, 아니 그것이 더 힘든 길 인줄도 모른채
그저 묵묵히 열심히만 살아온 할아버지에게 급속하게 변해가는 세상은 적응하기 힘든 세상이다. 할머니는 이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에게 제발 좀 편하게 살자고, 소를 팔자고, 농약을 치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하지만, 할아버지는 진짜 안들리는지
아니면 안들리는 척 하는 건지 대답이 없다. 어쩌면 대답할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살아가는 것에만 열심이었던
그의 인생에 변화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세상의 문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큰 결심을 하고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갔다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가격들을 듣고 다시 소를 끌고 돌아오게
되는 장면은, 할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이 세상과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이런 소는 돈주고 데려가라고
해도 안가져 간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할아버지는 큰 상처 아닌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에게 크게 한 소리를
해주고는 집으로 소를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나중에 송아지 역시 팔려고 하는데 가격 면에서는 역시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가격에 송아지를 팔게 된다. 송아지를 팔아버리게 된 것이 단순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FTA관련 뉴스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늙은 소 역시 헐값에 팔아버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 늙은 소는
자신과 똑같은 세상과 멀어진 존재였기에 할아버지는 팔아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와 소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워낭소리>에는 의외로 제 3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그려지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는 관찰자적 입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자신처럼 고생 많이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예기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열 여섯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할아버지에게 시집와서는 지금까지 이렇게도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와 살아왔지만,
말로는 온갖 불평들을 할아버지에게 쏟아내지만, 그 후회스러운 불평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어린 시절 남의 집 살이를 하면서 일찍 일어나 일을 해야만 했던 할아버지가 그 이후에도
습관적으로 매일 같이 일을 해야만 하는 모습이 안쓰러운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할아버지가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 고집을 꺽을 수 없는 것에 안쓰러운 것이다.

편리하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곧이 곧대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도를 가는 이의 삶이 간편한 삶에 의해
잠식당하는 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 어찌보면 할머니의 입장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항상 할아버지가 하는 일을 묵묵히 돌봐주고 있는 것이다.




<워낭소리>는 소가 죽는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이 죽음 자체를 극 적인 소재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데, 실제로 영화는 이 소의 죽음 자체보다는 이별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매일 같이 아무리 힘들어도 발걸음을 일으키던 소가 어느 날 아무리 애를 써도 일어나지 않자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죽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수의사의 말이 있은 후, 무려 40년 동안이나 코를 두르고 있던
쇠꼬뚜레와 고삐를 풀어주며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그 동안 애 많이 썼단'말을 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삶과 죽음에는
연연하지 않고 무덤덤할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이지만 이 순간 이들 모두는 매마른 피부 위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슬픔 보다는 감사의 감정이 더 큰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워낭을 손에 쥐고 있는 남겨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는 담담히 보여준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보지 않고서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질 않았다. 어느새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대처하는 노인의 지혜를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어버린 것이다.





1. HD로 촬영된 영상과 친절한 자막은 감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영화를 보고나니 나도 대체될 수 없는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어떻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3. FTA를 반대하며 미친소를 외치던 시위 행렬 앞으로,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가던 장면은 정말 묘한 순간이더군요.
   더군다나 소가 한 번 스윽 돌아보는데, 오만가지가 연상되는 장면인듯.

4. 이번 감상기는 평소보다 더 정리가 잘 안되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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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시사회를 통해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를 보게 되었는데,
맹랑한 연기면 연기, 귀여움이면 귀여움, 노래면 노래, 뭣 하나 귀엽지 않은 구석이 없었던 꼬마 소녀
클레어 부아닉 (Claire Bouanich)은 전형적인 틀 속에서 유난히도 빛났던 아역 연기자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주변의 유부남 동료들은 저런 딸을 낳아야 한다며 클레어에 흠뻑 빠지기도 했는데요,
오늘 영화를 함께 보았던 직장 동료분이 결국 놀라운 검색 능력을 발휘하여, 클레어의 최근 사진을 찾아내고야 말았네요.

뭐,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의 최근 사진들입니다.






아...훈훈하지 않습니까?
사실 귀여움으로 무장했던 수많은 아역 연기자들이 청소년기만 되어도 어른스러움을 넘어서서 '징그러움'마저
느껴질 정도로 변한 경우가 다수 있었음으로, 최근 사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클레어 부아닉의 경우는 놀라움과 훈훈함 그 자체인것 같습니다 @@

뭐 아직도 어린 나이이니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연기수업을 받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스크린에서의 만남도 기대되네요.

첫 번째 웃는 사진은 정말 중독성이 있네요.
제가 요즘 빠져있는 주이 디샤넬이 연상되는 미소라 더욱 그런것도 같구요.

이런 포스트는 잘 안올리는데,
날씨도 추운터라 포스트라도 훈훈함을 담아봅니다.








버터플라이 (Butterfly, Le Papillon, 2002)
노인과 아이가 벌이는 현문현답(賢問賢答) 로드무비

2002년작인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는 2006년에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있는데, 정식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위드블로그와 함께한 시사회 기회를 통해 영화를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사실 2002년 작이라는 점도 그렇고,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저 '착해만 보이는' 아우라 때문에 그다지 보려고 애초부터 기획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앞선 이유로 보게 된 영화는 생각보다는 덜 심심했고, 나름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으며, 예상했던 대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본 어제 명동 거리는 몹시도 추웠는데, 나비가 나는 따뜻한 풍광을 담은 영상과 노인과 아이가
주고 받는 알콩달콩한 대사들은,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마음 한 켠을 조금이나마 뜨듯하게 뎁혀주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출발 스포일러 여행 등을 통해 이미 알려져다시피 포스터에 등장하는 노인과 아이가 길을 떠나면서 벌어지게 되는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나비를 수집하는 할아버지 줄리앙과 이집 위층에 사는 외로운 소녀 엘자는 우연한 기회에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1년 내내 딱 며칠만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나비 '이자벨'을 채집하려 떠나는 줄리앙의 여행에,
부모님이 잘 돌보지 않아 항상 외롭던 엘자는 줄리앙의 동의 없이 함께 하게 된다. 이렇게 떠나게 된 여행은 뒤늦게 딸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엘자의 엄마에 의해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고, 줄리앙과 엘자의 여행은 일종의 납치극으로 세상에
비춰지게 된다. 좀 더 코믹함을 강조하려는 영화였다면 납치극으로 오해된 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뤘겠지만,
<버터플라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나중에 엘자 엄마와 줄리앙을 만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연결고리일 뿐이고 영화의 중심은, 이 둘의 여행과 그 과정 속에 담겨있다 하겠다.

엘자는 항상 외로운 자신의 삶을 버텨내기 위해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영특한 소녀라 할 수 있는데,
일단 관객은 이 맹랑한 소녀 엘자와 노년의 줄리앙의 대화 속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때로는 너무 어른스럽고 때로는
너무 철없는 질문들은 던지는 엘자에게 줄리앙은 때로는 친손녀처럼 다정하게, 때로는 너무 귀찮아 신경질도 내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서 둘을 점점 서로를 배워가게 된다. 아이는 노인에게. 노인은 아이에게 말이다.




포스터에서 벌써 알 수 있었듯이 이 영화는 아이와 노인이 관계를 맺는 전형적인 영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과 아이가 등장한다고 해서 철없던 아이가 노인에게 지혜를 배워 결국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츄어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왜 이래, 아마츄어같이). 대부분 노인과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노인이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설정이 대부분인데, <버터플라이>역시 마찬가지다.
줄리앙은 여러 종류의 나비를 수집하는 일종의 수집가인데, 그가 이렇게 나비 수집에 몰두하게 된 이유는 영화 중반에야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먼저 떠나보낸 기억 탓인데,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은 줄리앙을
나비 수집이라는 일종의 도피처를 갖게 했고, 그것으로서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항상 자신을 족쇠고
있는 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엘자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서 점차 하나 둘 씩 깨닫게 된다.

사슴을 잡는 것은 밀렵 행위고 나비를 수집하는 것은 고귀한 행동으로 넘어가려던 안이한 생각은, 순수한 소녀의 눈에는
똑같은 나쁜 행위로 보였을 뿐이고, 가장 단순하고 뻔한 질문들만 던지는 엘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줄리앙은 잊고 있었던,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인정하는 방법을 점차 배우게 된 것이다.
중간에 들린 민박집에서 계속 고장한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는 은유적으로 줄리앙의 삶을
표현하고 있고,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수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은유라 할 수 있겠다. 마치 가지도 않는 시계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처럼 줄리앙은 돌이킬 수 없는 일에(다른 말로 하면 꼭 자신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에),
죄책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했던 것인데, 이 고장난 시계를 줄리앙이 직접 수리해 준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짐을
벗어버리는 점을 배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앙에게 엘자는 매개체라고 보면 되겠다. 줄리앙은
이 꼬마소녀의 맹랑한 대답들처럼 다 알고는 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엘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터플라이>가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보기는 어렵짐나, 이 영화의 주제는 로드무비라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로드무비라는 것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으려고 길을 떠나곤 하지만, 따지고보면 대부분은 길 위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것들을 통해 처음부터 자신의 내면에 있었던 것을 깨우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버터플라이>는
줄리앙의 로드무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렇게도 희귀하고 갖고자 했던 나비 '이자벨'을 스스로 놓아주는
장면은, 드디어 줄리앙이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을 상징한다(이자벨을 찾으려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자벨의 애벌레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설정은, 주제를 설명하는 매우 직접적인 은유일 것이다).
엘자 엄마의 이름이 '이자벨'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숨겨놓은 귀여운 설정 중 하나였다. 원제인 '나비(Le Papillon)'에서도
알 수 있듯, 고치를 벗고 스스로 나와야만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줄리앙에게 씌워진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영화 초반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아이의 순수함에서만 던질 수 있는 이른바 '현문'이다. 어린 아이와 나이 많은 노인은
서로 닮아 있는 것처럼, 엘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표현에 있어서는 단순하지만 때묻은 어른들이 선뜻 대답하기에는 쉬운 질문들이
아닌데, 줄리앙 역시 처음에는 어른의 시각으로 '왜 이런 질문들을 하느냐'라는 식의 '우답'들을 내어 놓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래딧에는 두 배우의 문답 형식으로 이뤄진 노래가 흐르는데, 이 가사들을 보면 영화 초반에는
'우답'들을 내어놓던 줄리앙이 이 노래 속에서는 엘자의 '현문'에 맞춰 '현답'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문현답 (愚問賢答)'이 아닌 '현문현답 (賢問賢答)'. 이 곡이 단순히 귀여운 불어발음과 재미있는 가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엘자를 연기한 클레어 부아닉은 그 깨물어주고 싶은 불어 발음과 더불어 웨인 루니를 연상케 하는 외모까지(웨인 루니의
귀여운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수긍할 수 있을 듯), <버터플라이>의 전체 온도를 2도 쯤 상승시키는 귀여움을 선보였다.
어른스러운 아이, 맹랑한 아이 캐릭터는 여럿 있어왔지만, '엘자'를 보면서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유명배우인 미셸 세로의 편안한 연기도 엘자와 좋은 콤비를 이뤘던 것 같다(참고로 미셸 세로는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화려하고 치밀한 영화들 가운데 <버터플라이>는 분명 조금은 심심한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심심한 영화치고는 지루하지
않았던 영화였다.


1. 돌틈에 대신 들어간 그 남자아이는 어찌되었는가?
 '난....혼자 몸이 작았을 뿐이고, 그냥 할 수 있냐길래 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고, 이미 몸에 로프 감겨 있고!, 엄마 보고 싶고 ㅠㅠ'

2. 예전 조르디가 불렀던 노래 이후 오랜만에, 아이가 부른 중독성있는 (불어로 부른) 곡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슬아~' 이후 대화체로 이뤄진 인상적 곡이기도 하고 ㅎ



3. 아무리 프랑스에 사는 할아버지 라지만 'NBA'를 모르다니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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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제 6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오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상 리스트를 정리해볼까도 했지만, 일단 영화는 국내 미개봉작들이 많고
TV부분 역시 못 본 작품이 다수이기 때문에 리스트를 정리해봐도 만족스럽게 정리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히스 레저의 수상 장면 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더군요.
(짧게 하나 언급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덱스터>에 마이클 C.홀이 이번에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팬으로서 너무 아쉽더라구요)

사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수상이긴 하지만(근데 예상되었다는 말로 그냥 넘기기엔 함께 오른 후보들이
너무 쟁쟁했죠. 톰 크루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랄프 파인즈였으니까요),
그의 수상 장면은 역시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데미 무어가 후보를 거명하면서 'Heath Ledger'라는 이름은 언급만 했는데도 소름이 돋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수상자로 호명되고 후보에 오른 동료 배우들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기립박수로 그를 기리고
인정하는 장면은 감동적일 수 밖에는 없더군요.

히스 레저가 상을 수상할 경우 누가 대리수상할 것이냐를 놓고도 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그의 전 부인인 미셸 윌리엄스가 받아도 좋다, 그녀는 안된다 라는 논란이 있었죠),
오늘 시상식에서는 <다크 나이트>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나와 대리수상을 했습니다.

상을 받고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가 연기하는 짧은 클립을 보여주었는데,
며칠전에 블루레이로 재감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인상적인 연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수상소식에 ,
괜시리 마음이 동요되는군요.



그가 오늘 시상식에 참석했다면 이렇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쌍화점 (2008)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상당히 걱정과 우려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전문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뒤 만난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지 않다기 보다는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는데, 원래 이런 타인의 평에 좌지우지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쨋든 본래 보다는 훨씬 낮춰진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아, 개인적으로도 이런 평들에 앞서 분명 <쌍화점>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작품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인상깊게 보아왔던 이로서 유하 감독의 신작임에도,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다. 단순히 사극을 단 한번도 연출해보지 않은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로서 유하 감독의 이야기가 시대극과 어울릴 만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장점들은 현대극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군상을 표현해 내는 것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고려 시대에 왕과 왕비, 호위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충분했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대중들이 실망한 것처럼 아쉬운 부분도 많았으나, 이야기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치정극을 연출해내는
유하 감독의 재주는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지는 것 보다 더 큰 외면을 받는 이유는 첫 째, 홍보 측면에서
치정극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서사블록버스터로 포장된 점일 것이며, 두 번째는 <미인도>와 맞물려
'누가 누가 더 야한가'에만 집중된 시선일 것이고, 세 번째는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역사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인물이 공민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민왕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쌍화점>에서는 분명 '공민왕'이 아니라
그냥 '왕'이라고만 칭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픽션에 범위가 (완전한 픽션에 측면에서 봤을 때)크지 않지만
영화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없다면 실제 역사와 비교하여 외곡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거
자체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를 분명히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쨋든 픽션이라는 얘기다.
주진모가 연기한 '왕',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그리고 원나라에서
왕에게 시집온 왕후(송지효), 이렇게 3명의 인물이 벌이는 치정극이 이 영화에 주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치정극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유하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관계의 끝까지 가보자'라는
감독의 의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후반 부에 가면 '이쯤이면 끝나겠지'하는 지점이 적어도 두 번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느낀 이유가 극이 늘어지고 지루해져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에서 복수던 헤피엔딩이던
마무리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쌍화점>은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반영되어서인지 일반적인 지점에서 몇 번이고 더
나아간다. 그야말로 '치정극'인 셈이다. 자고로 치정극이라 하면 사랑으로 인해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유하 감독의 <쌍화점>
연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내면에 감정선은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두 얼굴의 캐릭터들, 속마음을 감춘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해야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배우들은 말을 할 때보다 말을 하지 않을 때 더더욱 연기를 해야하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감정선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크게 좌지우지 되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어색한 문어체 대사 표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음을 동의한다.
특히나 조인성은 일단 연기 여부를 떠나서 사극에서 통용되는 어투와는 이질감 있는 외모를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의 어색한 발음 연기와 더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든 계기가 된 듯하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미 <주몽>으로
사극을 경험했던 송지효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하겠고, 주진모의 경우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화란 한 번 유치하거나 우습게 느껴지면 다시금 중심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장르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두 현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이 한복입고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할 때 '푸훗'하고 웃어버린 관객들은,
이어 벌어지는 동성애 코드가 더해지면서 이 이야기에서 점차 멀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관람할 때 관객들이 영화에서 멀어짐을 느꼈던 지점은 여러 번 지적했던 것처럼 조인성과 주진모의
배드씬이 등장했을 때 부터였다. 한 침대에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이 수근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 이들이 연기를 어색하게 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물론 이후에 장면들에서 이 둘의 동성애
연기가 어색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특히 동성애 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체가 중심이 된 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현실 과의 힘겨운 싸움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쌍화점>의 경우는 동성애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 삼각관계가 조금 더 확장된 경우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궁 밖에는 나가본 적도 없고 오직 궁 안에서 왕과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홍림에게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사랑이 가능한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일단 홍림이 왕과의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에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왕을 위해서 혹은 왕이 주선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믿을 만한 신하였던 홍림에게, 후사를 위해 왕비와의 잠자리를 명하게 되는데, 이를 문 밖에서 바라보는 왕의 질투가 홍림이
아닌 왕비에게 쏠려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이 사랑하는 사람은 홍림이기 때문에 홍림이 왕비와 관계를 갖는 것을
참을 수 없고, 더나아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하지만 왕은 이런 고통을 잘 컨트롤
해낸다. 세 번째인가 관계를 맺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해 이들을 엿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참아낸다.

이걸로 끝났다면 그냥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던 왕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왕이 주선했던 이 관계를 통해 홍림이
새로운 세상에 눈 뜨면서 이야기는 점차 발전한다. 물론 홍림이 눈뜬 것은 동성간의 관계 밖에는 몰랐던 그가 이성과의
관계에 눈 뜬 것이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왕 밖에는 몰랐던(혹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놓여있던) 그가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깊은 관계를 처음 경험하면서 얻게 된 일종의 호기심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그것이 동성이던 이성이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불편을 느끼던 홍림이,
관계를 거듭할 수록 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좀 더 욕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중에도 이 '욕정'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는데, 과연 홍림이 이성과의 욕정에만 사로잡혀
이 같은 치정극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유하 감독은 본래 부터 그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잘 표현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정 위주의 동기만을 너무 강조한 듯 하다. 그런데 본래 치정극이란 욕정이 동기나
소스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를 최종 결정하고 움직이는 주된 요소는 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움직이는 것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투와 집착, 애증 등이 주된 요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홍림과 왕비는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마치 둘 모두 욕정에만 잠식당한 듯 마치 자랑하듯 다양한 체위에만 몰두하는 듯 보인다.

이들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부분이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이 영화와
비교되곤 하는 <색, 계>의 경우는 분명 그 중심이 '욕정'에 있었다. '愛'가 아닌 '色'이 제목에 등장했던 것처럼 반역자를
처단하려는 애국심마저 잠식시켜버렸던 '욕정'이 분명하게 중심이 된 영화가 <색, 계>였다면, <쌍화점>은 '욕정'보다는
'애정'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봐야하는데, 이슈에 민감했던 탓인지, 아니면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인지,
옷을 입고 있을 때 말 없이 표현해 내는 인물 간의 감정들은 참 좋았지만, 옷을 벗고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쌍화점>의 리뷰 제목으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진모(그가 맡은 캐릭터)다' 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어찌보면 세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애처롭고 불쌍한 이도 왕이며, 굳이 결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정 속에서 가장 상처 받는 이도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비가 아이를 회임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왕비마저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음에도 왕비에게 중전에 예우를 다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홍림을
던지면서까지 관계를 맺게 하였고, 이후에 홍림과 왕비가 눈이 맞아 자신을 번번히 속이고 관계를 맺어온 것을 눈치 챘음에도
용서하려 했고, 계속 그러 한 뒤에도 목숨만은 살려주는 아량을 배풀었으며, 왕비를 죽였다고 까지 속여 홍림을 궁으로 오게
만듬으로서 홍림과의 오해를 마지막에라도 풀고 싶어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원나라에 속국으로 전락한 나라의
억울함도 보살펴야 함은 동시에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려는 대신들의 음모에도 맞서 싸워야 했으니 여간 피곤할 일이
많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왕은 모든 것을 자신을 희생하면서 배려했음에도 결국 모든 파국을
자신의 몸으로 몸소 흡수해야 했던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왕의 이런 안쓰러움은 마지막에 가서 더욱 더 골이 깊어진다.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복선들이 있는데 영화 초반 궁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던 '건룡위'의 한 인물을 용서해준 일을 두고, 왕은 홍림에게 너도 나와 함께 궁밖으로 도망칠 만한 용기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후반 부 왕비와 홍림이 궁밖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왕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왕과 홍림의
좋은 한 때에 왕이 그린 그림을 보고 홍림은 '저도 이왕이면 활을 쏘고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마지막에 왕은 이 그림을 홍림이 원하는대로 새로 그렸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건 홍림은 끝내 알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왕과 홍림의 마지막 듀얼 씬 가운데 두 사람의 칼에 의해 이 그림은 반으로 잘려지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확실히 홍림이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완성된 것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왕비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있다는 것은 보여주는데, 왕비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에 대한 분노가 끝까지
치밀었던 홍림은 왕비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뉘우치며(사실 왕비를 죽이지 않았다고 봤을때
홍림이 왕에게 잘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분노할만한 구실은 없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남은 힘을
써서 고개를 왕 쪽으로 애써 돌려놓아 그를 바라보며 목숨을 거두게 된다. 이는 너무 진부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관객들을 속이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라는 표면적 영상에 적응하지 못해 작품에 공감하지 못했던 관객들을 아쉽다고 했던 나로서도,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극한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다. 초반 왕비가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기는 했으나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후반 연회 장면에서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주진모가 보여주었던
대사 톤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공기의 보컬이 등장해, 립싱크를 넘어서서 기존 분위기와 전혀 섞이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듯 했다. 더군다나 가사 자체가 '쌍화점에 쌍화사러 갔다가' 뭐 이런식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은 가사들인데,
분위기마저 이를 돕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주진모는 역시 말하지 않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면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조인성과의 배드씬 촬영을
앞두고 한달 만 연기해 달라고 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을텐데, 홍림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는 왕의 감정선을 비교적 잘 연기한 듯 싶었다. 조인성의 경우 일단 사극의 연기톤과 분위기와는 끝내 완벽히
섞이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송지효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도록 연출된 듯 했는데, 대사 전달 측면에서는
세 배우 중 가장 나았다고 생각되며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고 얘기하고도 싶다.

<쌍화점>에는 몇몇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데, 일단 초반 연회에서 자객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액션씬 연출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칼로 베어졌을 때 피가 튀는 것이 너무 인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나중 듀얼 장면에서도 두드러지듯
와이어 사용이 너무 티가 나는 액션이었다. 일부에서는 액션 영화로 알려졌던 만큼(?) 배드씬과 더불어 액션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많았을법 한데,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액션연출이었던 것 같다. 유하 감독은 주먹 싸움 연출에
훨씬 재능이 있다고 봐야겠다.


<쌍화점>은 조인성이라는 스타의 출연과 조인성과 주진모의 파격 동성애 장면, 그리고 송지효라는 여배우의 노출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보다는 인물들의 내적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려고 애쓴, 고려발 치정극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유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끝까지 가는 치정극의 효과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사극이라는 불편한 옷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느껴졌던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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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 (Bolt, 2008)
트루먼 쇼의 후속편 혹은 진행형?

월트디즈니의 신작인 <볼트>는 애초부터 경쟁사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픽사는 <월-E>로, 드림웍스는 <쿵푸팬더>로 각각 최고의 히트작을 근래 선보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는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이유로 기대가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픽사의 존 라세터가 총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스틸컷들로 엿볼 수 있었던 3D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교 대상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디즈니스러운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 여기서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논하려고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간단하게만 얘기해보자면, 월트디즈니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성공을
부러워해 그들처럼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 만의 장점을(그게 혹자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더라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편이 월트디즈니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런 좋은 예로 지난해 초 개봉했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을
들 수 있겠다. 자신들 만이 가진 히스토리와 장점을 부각시켜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던가,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조금씩 가미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것이,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좋은 옷을 애써 입는 것 보다는
훨씬 낳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트>는 약간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일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D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랍게 성장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두 단락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내용과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볼트>의 이야기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바로 연상시킨다.TV드라마 속 슈퍼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개 '볼트'는
촬영장 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TV 속 슈퍼독 캐릭터를 보이는 그대로 믿고 있는 또 다른 '트루먼'이다.
악당인 '녹색눈'으로부터 주인이자 친구인 '페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는 볼트는, TV드라마의 내용상 페니가
녹색눈에게 납치되게 되자 세트장내 컨테이너를 박차고 페니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 속에서 볼트는 우연히 촬영장
밖은 물론 이곳이 위치한 헐리우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부로 옮겨지게 되고, 처음으로 가상 현실 공간을 벗어나 현실 공간에
놓여진 볼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TV쇼라는 가상현실에 이것이 가상현실인 줄 홀로 모르는 주인공이 놓여있다는 점은 <트루먼 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트루먼은 가상현실 속에서 이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볼트는 우연한 기회에 가상현실을 벗어나게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촬영장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트루먼 쇼>의 후속편 격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음으로 여전히 <트루먼 쇼>와 동일선상에 놓여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 쇼>의 경우 평생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적으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 결국 세트장 문을
박차고 나서면서 '사람들의 트루먼'이 아닌 '나 스스로의 트루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볼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볼트에게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가상현실 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볼트에겐 바로 '페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페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페니만은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이 볼트가 힘든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주원동력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와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지만, <볼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디즈니다웠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악당 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희망과 빛을 대변하는 페니의 존재는, 이 영화를 이야기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가상현실=악당 이었다면 <트루먼 쇼>의 경우처럼 탈출 하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도 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트루먼을 안타깝게 여긴 실비아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긴
한다) 페니가 있었기에 <볼트>의 엔딩은 <트루먼 쇼>와는 다른 방향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여정 중에 그 동안 자신의 삶이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고양이 친구인 '미튼스'에게 평범한
강아지들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 부분이데, 얼핏보면 이 부분이 마치 <월-E>에서 이브가 자신이 정지되어 있을 동안
월-E가 했던 일들을 영상 자료로 후에 보게 되면서 애틋해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이 보통 강아지들의 삶으로 일컬어진 일련의 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원래 개들은 이렇게 살아' 하면서 보여주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페니와 볼트 간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봤을 때(이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주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친구'에 더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주인'과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아지에게까지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계속 '친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들 중 <우리 개 이야기>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볼트>에서 이야기하는
동물과 인간의 친구관계란 어차피 주종관계의 또 다른 이름밖에는 되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했지만 반려동물로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다 키워봤던,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다시 키우고 싶은 사람으로서 <볼트>가 주는 뻔한 감동적 장면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인 바이론 하워드와 크리스 윌리엄스를 비롯해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
강아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기존 강아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들에서는 현실 속
강아지의 움직임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영화 속 '볼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정말 실제 살아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3D 애니메이션 기술력
보다도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실감났던 것 같다. 굉장히 미세할 수 있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강아지만의 작은 움직임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고, 관절의 움직임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연구한
티가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양이 캐릭터인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특히 '라이노'는 <볼트>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라이노가 보여주는 오타쿠적인 설정도 재미있었고, 볼을 이용한 움직임과 유머스런 장면들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튼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볼트가 주인공이라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미튼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줬어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튼스가 주인공
이었다면 주인의 무책임함,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트가 주인공이니 여기까지 다룰 수는 없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삶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미튼스의 표정에서는 얼마전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보았던 한 작품 가운데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바에 앉아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정말 구슬프게!) 그들 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기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볼트>는 얼핏 사전 정보없이 보면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휼륭한
3D 그래픽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볼트의 털들은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털'이라는 것이 그래픽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점에서 <볼트>는 제법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영화 속 장면들 영상에서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영상 측면에서 디즈니 작품으로 확 와닿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는데, 마치 <인크레더블>에서 뛰쳐나온듯한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이 영화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 하다.




존 트라볼타가 더빙한 볼트의 목소리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존 트라볼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한 나로서도 영화 초반 이후부터는
그의 이미지를 지우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이다. '페니'는 마일리 사일러스가 연기했는데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노래가 한 곡 흐르는데 더빙 연기를 맡은 두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3D 디지털 자막 버전을 보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상영하는
곳이 없음으로 불가피하게 일반 자막 버전을 선택했는데, 3D 버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더빙 판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한데,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 사실 원래 제목은 '뻔한 감동, 그래도 감동' 이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동심의 용솟음이란 -_-;;

2.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한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용솟음쳤다.

3. 엔딩 크래딧 디자인의 구성이 마치 <월-E>와 흡사함을 느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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