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시마 테츠야의 '갈증' 블루레이 리뷰

호불호는 두렵지 않다. 이번에도 끝까지 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작품 '갈증' 역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을 텐데, 그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는, 호불호가 갈릴 지언정 항상 이야기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는 다는 점이다. 호불호가 갈린 다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그 확실한 영상과 음악의 스타일 만큼이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과 전개의 속도에 있어서 극명한 호불호를 보여주는데, '갈증'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 해놓은 것 같은 느낌(그것이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가운데, 마무리 역시 보통의 영화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갈증'이다). 보는 내내 괴로움이 드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보는 이를 유혹하려든다. 마치 그 안에 악마성을 반드시 끄집어 내겠다는 것처럼.





영화는 시간과 인물을 뒤 섞어가며 다층 구조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점점 더 카나코(코마츠 나나)의 이야기로 집중한다. 일부러 못 알아차리게 하려거나 집중을 기울여 이전 시퀀스를 기억해야만 성립할 정도로 어려운 전개는 아니지만,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의 빠른 전개가 더해져 전체적으로는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과 진행하는 게임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선입견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일반적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후 영화가 점점 그 진짜 이야기를 드러낼 때에도 몇몇 관객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영화도 알고 있다는 것이 후반부 이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가운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악마 혹은 악마 성에 대한 인물들 간의 복잡 미묘한 게임들이 포진 되어 있다.






물론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게임은 엄청나게 소모적이며 괴로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서두에 밝혔다시피 결코 대충 끝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심화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면의 공감대와 인간적인 면을 불러 일으키려고 애쓴다. 겉으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 학교, 사회, 야쿠자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과 위기(혹은 외로움)에 대해 늘어 놓고 그것을 증폭 시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늘어놓음의 이유는 다른 곳, 즉 내면의 죄 의식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표현해 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카나코의 아버지 역할인데, 이 말도 안되는 캐릭터가 끝까지 이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죄 의식과 이를 표현해 내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이 없었다면 '갈증'은 그저 현란하고 괴롭기 만한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내면에 담겨 있는 죄 의식 때문에 '갈증'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갈증'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멋진 캐스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캐스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주인공 카나코 역할을 맡은 코마츠 나나의 캐스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소녀의 마스크는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되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야쿠쇼 코지를 비롯해 츠마부키 사토시, 오다기리 조 등 연기파 배우들과 이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나카타니 미키와 쿠니무라 준, 쿠로사와 아스카 등 주 조연 배우들의 연기를 즐기는 것도 이 작품에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Blu-ray : Package

 


최근 발매하는 패키지마다 준수한 퀄리티와 다양한 구성물로 콜렉터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더 블루'답게, 이번 ’갈증' 블루레이 패키지도 한정판에 걸 맞는 구성과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더 블루를 통해 발매되고 있는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 보다는 작품성을 더 인정 받거나, 마니아들 사이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외 될 수 있는 작품들을 정식 발매된 우수한 구성의 블루레이로 소장 할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시장에서 아직 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풀슬립 아웃케이스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무광 코팅 된 케이스에 제목은 돌출 된 형태로 제작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전면과 후면의 제목 로고와 스파인 후면의 로고 역시 유광 은박으로 제작되어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선사한다.





구성물로는 접지 형태의 포스터가 수록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다른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이 접지 포스터를 수록하기 위한 별도의 홀더가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이 홀더는 소책자도 함께 보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커다란 기능이나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세심하게 신경 쓴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북클릿의 경우 총 36page로 이뤄져 있는데,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글 외에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내용과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과 원작자인 후카마치 아키오의 대화 형식의 인터뷰 내용도 수록되어 있어 읽을 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최근 들어 블루레이 패키지에서 소책자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데, 간혹 의미 없는 내용들을 수록한 경우도 있지만 ’갈증'의 경우는 특히 인터뷰 형식 위주로 담겨 있어 부담 없이 유익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스카나보 킵케이스의 경우 2중 자켓 형태로 제공이 되는데, 단순히 전면과 후면의 이미지가 달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켓이 아니라, 로고와 텍스트가 인쇄 된 반투명 자켓 1종이 제공되어 기존 자켓 위에 배치했을 때 작품 이미지와 더 어울리는 커버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케이스에 수록 된 포토 카드 5종과 더 블루 콜렉션 한정 카드도 수록되어 한정판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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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Video & Audio


 

'갈증' 블루레이의 화질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 '고백' 보다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느낌에 가까운 편이다. 참고로 '고백' 블루레이 영상은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노이즈나 거친 질감을 0%에 가깝게 구현하여 차가운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본 영상의 의도 자체가 한 없이 거친 질감을 보여준 경우인데, '갈증'은 제작 연도에 따른 블루레이 화질 수록 퀄리티는 높아졌지만 영상 자체의 의도는 '마츠코'와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작품 답게 역시 강렬한 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톤 다운 된 영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카나코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인위적인 효과를 더해 몽환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전작 '고백'의 이미지 쇼크가 워낙 강해서 인지 몰라도, 이번 '갈증'에서는 생각보다는 선혈의 표현에 있어서 의도 된 강렬함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어필하고 있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는 거친 입자로 이뤄진 질감이 느껴지는 영상을 수록하고 있으며, 장면에 따라 조금 화질 편차가 느껴지는 편이다.






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특별한 장 단점이 도드라지기 보다는 무난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임팩트 측면에 있어서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측면이나 멀티 채널의 활용도 측면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감상 시에만 느낄 수 있는 생활 잡음 등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 장의 디스크로 출시 된 '갈증' 블루레이는 본 편 외에 총 4개의 부가 영상이 수록되었다. 첫 번째 부가 영상은 '사랑하니까 죽여버리겠다'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일본 영화 타이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형식의 메이킹 다큐로, 제 3자의 내레이션이 전체 다큐를 기본적으로 소개하는 과정 속에 인터뷰와 촬영장 뒷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의 영상이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야쿠쇼 쇼지가 연기한 ‘후지시마’ 캐릭터에 대한 소개가 수록되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 하나 하나까지 디렉션을 주는 테츠야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야쿠쇼 쇼지 정도의 대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끈임 없이 감독에게 의사를  묻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감독이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주문한 것이 연기할 때 억제하지 말라는 것 이었다고 하는데, 에너지와 감정을 끝까지 소진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인간적인 면모와 그럴 때 만이 가능한 순간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원작자 후카마치 아키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는데, 원작자인 그조차 섬뜩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의 작품 이상의  완성도와 만족을 느꼈다는 내용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두 번째 부가 영상은 '나는 나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모델 출신인 여주인공 코마츠 나나의 오디션 영상으로 시작, 이 작품에 캐스팅 되게 된 과정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인터뷰와 독백으로 이뤄져 있어, 흔한 메이킹 영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뭐랄까, 한정된 공간이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영상이 아니라 마치 코마츠 나나의 영상 화보 같은 형식이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영상이었다 (갈증을 선택한 이들 가운데 상당 수는 그녀 때문이기도 할테니). ‘나는 나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을 촬영하게 되면서, 코마츠 나나가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게 되었는 지가 은연 중에 느껴지는 색다른 메이킹 영상이었다.





세 번째 부가 영상으로는 '원작자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원작자인 후카마치 아키오의 약 8분 분량의 인터뷰를 통해, 이 원작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쓰게 되었는 지와 처음 나카시마 감독이 영화 화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원작자로서 영화를 보게 된 소감, 원작과 다른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의견 등을 들려준다.





마지막으로는 국내 용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본래는 1분 28초 분량의 예고편이 수록되었어야 하는데 제작사의 실수로 인해 약 47초 정도에서 예고편이 종료되는 형태로 수록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오류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으로, 패키지 및 소장 가치에 있어서 많은 공을 들인 타이틀이기에 이 옥의 티가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 평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갈증'은 또 한 번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는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일본이라는 사회 (혹은 세계)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과 연출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선사하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면 '갈증'은 흥미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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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奇跡, 2011)

크리스마스의 기적같은 영화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2011년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로 올 한해 극장에서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 10작품을 선정하는 글을 완성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쓴지 겨우 이틀 만에 다시 수정해야만 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나는 왜 잘 알만한 사람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올해가 가기 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성급하게 '올해의 영화'라는 타이틀의 글을 써버렸던 것일까. 지금와 생각하면 당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올해의 영화의 한 자리를 맡기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나를 울리고 떨리고 웃음짓고 들뜨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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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奇跡)'이라는 원제 답게 영화는 기적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접근방식으로 풀어간다. 부모로 인해 가고시마와 하카다에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와 살고 있는 형 코이치와 동생 류노스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코이치는 가족이 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가고시마의 화산이 폭발해 아무도 이곳에 살 수 없게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새로 개통한 신칸센 열차 '사쿠라'가 교차하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알게 되고 이 소원을 빌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면서 친구들 소원의 이야기까지 영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동생이 류노스케와 그의 친구들 역시 형과의 만남을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역시 류노스케와 친구들의 소원도 이야기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영화의 초기 기획의도가 새로 개통한 신칸센의 홍보 영화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기적'을 통해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에 이은 자신의 세계관을 또 한 번 완벽하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전작들에 비해 희망적이며 더 따듯하고 더 풍성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실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여러가지 화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부모세대의 짐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하고 오히려 어른들의 상처마저 아이들이 감싸안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를 느꼈고, 화산재가 날리는 마을과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연관지어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럴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겠다' 싶을 정도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기적'의 메시지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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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그의 대표작 '원더풀 라이프'의 인터뷰 형식을 다시금 가져왔다. 각자 돌아가며 자신의 소원을 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사적인 바램들이지만, 우리가 흔히 '어린 시절'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추억이자 감성이 더도 덜도 아닌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도 어린 시절 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멀리 여행을 다녀왔던 모험적인 기억이 있는데, 그 추억과 맞물려 그 때의 그 두근거림과 두려움 그리고 모험을 통해 조금 더 알게 된 '세계'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형제의 여정 가운데는 단순히 우연 만으로는 가장 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나는데, 보통 같았으면 너무 영화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들거나 너무 아이 같아서 유치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는 방식은 너무나 황홀했다. 아이에게 어른다운 성숙함을 무리하게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겪는 일과 고민들을 통해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매일 돌아오는 집 앞 신호등과 횡단보도의 이미지, 두근거림을 안고 내려다본 지하철 역 아래의 풍경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코스모스들 그리고 열차와 열차가 교차되어 지나가던 그 아무렇지 않지만 기적과도 같았던 찰나의 순간까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쉽게 생각해보면 결국 기적이라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 혹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서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나는 코이치와 아이들이 '세계'를 깨닫기 전에 믿고 있던 신칸센 교차 순간 역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장난스럽게도 국내 개봉 제목처럼 '진짜로 일어났을지도 모를' 기적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기차길 건너편에 서있던 할머니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나, 영화의 마지막 죽은 강아지가 살아나기를 빌었던 아이의 걸음이 잠시 멈춘 뒤 다시 뛰어가는 장면 등을 통해서 말이다. 뭐랄까. 결국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진리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하게 기적을 믿는 마음도 저버리고 싶지 않은 그의 넓은 마음이 느껴져 더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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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 먹었을 때는 더 다양한 주제들이 많았었다. 이렇게 저렇게 나름의 '썰'을 풀어가며 영화가 전해준 의미들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했었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가 담고 있는 감성이 전해준 인상이 깊었다.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그 행복감을 글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들에 비해 유머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절로 웃음짓게도 되지만, 역시나 그의 작품답게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진짜 왜인지 모르게 펑펑 울것만 같은 (사실상 운거나 다름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이 극장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 내내 들려오던 쿠루리의 음악 역시 이 행복함과 울컥함에 한 몫을 했다. 내가 이 작품에서 느꼈던 울컥함은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려운데, 슬퍼서라기 보다는 행복해겨워서 에 더 가까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포착해 낸 기적같은 순간과 그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또 다른 기적은, 그 기적 속을 살아왔고 경험했던 관객으로서는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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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만난 이 영화는 나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이 영화를 만들 때는 몰랐겠지만 그의 영화는 내게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되었다.


1. 인디음악을 하는 아빠(오다기리 죠)의 음악 CD를 형에게 건네며 '인디 음악이라는게 뭐야?'라고 묻는 류노스케에게 코이치는 이렇게 답해요. '더 열심히 해야하는 음악이야'

2. 극중 형제로 나온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실제로도 친형제더군요. 전문배우가 아닌 이 형제가 만들어내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기적같았어요. 코이치의 진지함과 누구나 행복하게 만드는 류노스케의 '밝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3. 쿠루리의 음악도 정말 좋았어요.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흥얼거렸고 지금도 계속 사운드트랙을 무한반복하는 중입니다 ㅠ (나는 왜 내한공연에 가지 못했나 ㅠㅠ)

4. 개인적으로는 일본여행 갔을 때 갔던 곳이 나와서 더 반가웠어요. 특히 영화 속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는 신칸센 '사쿠라'도 타봤기에 더 남달랐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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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영화


얼마 전이였다.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5월 장애우 주간을 맞이하여 관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레인맨>,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등이 소개된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이 다 마치고 난 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조제...가 장애우 관련 영화에 소개 되었지?’ 개봉 시에 극장에서 보고, 일반판 DVD출시 시에 감상하였으며, 스페셜 에디션이 재 출시된 뒤에도 다시 감상하였었지만,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유모차를 타는 것이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저 습관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즉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작품 속에 녹여버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되는 소소한 체험이었다.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작가 주의 감독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최신작 <메종 드 히미코>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 이상 <조제...>만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지만 주된 배경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게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인 만큼,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직접적인 명령조에 어조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선입관과 잘못된 시각으로부터 치유되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야기의 마술사이다. <조제...>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관련 에피소드를 자주 노출 시키는 편이지만, 역시 게이에 관한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극 중 사오리가 처음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겁을 먹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고 댄스홀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그의 옛 동료 남자에게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이, 관객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된다. 극중 사오리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이 ‘자연스러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어떠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동기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동성애’라는 소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메종 드 히미코>는 일반인들에게 게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지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기 보단, 오히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게이가 된 아버지 히미코를 미워하던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랄까. 특히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는 히미코와 어머니와의 일들을 통해 사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어린 딸을 버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낸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히미코’가 아닌 ‘아버지’로 점점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서플먼트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습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 같아 빼려고 했었다는 댄스홀의 단체 댄스 씬은, 제작자들이 이제와 밝히는 것처럼 본편에 포함한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바보스런 장면이 있어야 슬픈 장면들이 더욱 슬퍼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특유의 ‘뾰루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오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배경에 흐르는 댄스 곡의 가사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댄스 홀에서 흐르던 곡의 가사)





이 영화를 알기 전 개인적으로 두 주연배우인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대표작들은 각각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우를 이야기 할 때 현재로서는 <메종 드 히미코>를 대표작으로 꼽게 되었다. <조제...>에서 조제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라면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하루히코’가 그러하다. 배 바지도 아닌 것이 쫄 바지 같지도 않은(어쩌면 배 바지이면서 쫄 바지 인지도 모르지만)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있는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음에도(거기에다 매번 헝크러져 있음에도 멋지기 만한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한 번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 기는 커녕, 멋지기만 했던 ‘하루히코’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그러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오다기리 죠가 만들어낸 ‘하루히코’는 영화를 외적인 아름다운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바로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사오리’이다. 시종일관 또렷 하다기 보다는 흐릿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오리는 <조제...>의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시바사키 코우는 <고 (Go)>에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줬었는데, 이번 사오리 역할이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멋진 주인공외에 히미코 역할의 다나카 민은 무용가로서 모 시상식 장에서 너무도 멋진 모습에(무대 위 모습이 아닌 보통의 모습) 너무나도 반한 감독에 의해 적극 캐스팅되었는데, 히미코라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력이기 보다는 모습 자체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이 노인들 역할의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쓰도록 감독이 특별히 당부했을 만큼, 배우 출신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연극 연출과 각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캐스팅 되었다. 양로원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개별 조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에 동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같은 리얼리티를 중시한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출시된 <메종 드 히미코 SE> DVD타이틀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되었던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SE>와 같은 컨셉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디지팩의 소장가치 높은 케이스와 2장의 디스크, 그리고 엽서 5종 세트와 <조제...>때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드지형 필름 컷이 포함되었다.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외곡 없이 전달한다. 특별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최신작에 걸맞는, 영화에 분위기와 걸 맞는 최상의 화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크게 강력한 사운드나 채널 분리도가 필요 없는 만큼 2채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과 촬영,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그리고 예고편들과 <조제...>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나,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 등 주연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두 번째 디스크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우리를 다시금 기쁘게 해준다. 가장 주된 서플먼트는 아마도 메이킹 오브 ‘메종 드 히미코’일 텐데,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고 시사회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프로듀서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 그리고 캐스팅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모 시상식에서 반해버린 다나카 민을 ‘히미코’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말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 민을 찾아가게 된 에피소드와 주된 활동 배경이 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러브 호텔 등을 전전한 이야기, 그리고 본래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건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나 너무도 멋진 건물 탓에, 처음 대본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서플먼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 작업이 영화 전반에 끼친 영향에 관한 일들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애초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던 장면과 내용들이 호소노의 음악 작업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게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느꼈다는 호소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음악들과,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사오리의 어머니에 대한 테마를 만드는 등 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호소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덧 입혀지기 전에는 한 번도 이 대본이 헤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호소노가 작업한 엔딩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헤피 엔딩을 찾아낸 점 등이 놀랍다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프로듀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자신들 보다 더 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음악감독 호소노 하루오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음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밖에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이 10장면 수록되어 있으며, 스텝들이 꾸며낸 단편 ‘변호사 아사카 레이코의 사건수첩’ 가족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는 서플먼트이다. <메종 드 히미코 SE> 서플먼트에 장점이라면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의 인터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인터뷰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인터뷰는 별도로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일본 내에서 무대 인사 영상과 도쿄 FM 공개방송 영상,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들을 통해 중복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오다기리 죠가 내한했을 때의 영상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 소개 영상이 아니라 내한 시에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내 떠나지 않는 사랑스런 작품들이다. 슬픈 장면임에도 왠지 모를 행복함이 전해지거나 환하게 웃는 장면에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은, 이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것, 소외되고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레 일 깨워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젠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운데, 어느 것도 한 작품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2006.05.22
글 / ashitaka





비몽 (悲夢: Dream, 2008)
애증, 그리고 꿈


김기덕 감독의 열 다섯 번째 작품이자 오다기리 죠, 이나영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비몽>.
사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레도 <악어>부터 시작해서 <파란대문> <실제상황>
<나쁜 남자> <해안선>등 예전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 것 같고 이들 작품들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최근 화제를 불러모았었던 <빈 집>이나 <숨> <사마리아>같은 영화들은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비몽>을 쉽게 넘기기 어려웠던 것은 역시나 캐스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 & 기사를 보니 스타 배우라 할 수 있는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의 캐스팅은 김기덕 영화가
대중들과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처럼 김기덕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마저 극장으로 불러오는 효과를 거두웠으니 어느 정도 이 소통방법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비몽>은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이라는
스타의 캐스팅으로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시도가 엿보인 작품이며, 그 시도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각자마다 틀려질 수 밖에는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대충 이렇습니다. 극중 오다기리 죠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 하며 매일 꿈을 꾸는데,
오다기리 죠가 꾸는 꿈은, 반대로 연인을 떠나버린 이나영에게 작용하게 되고, 오다기리 죠의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달되게 됩니다. 즉 오다기리 죠는 꿈 속에서 그리도 만나고 싶던 헤어진 연인을 만나지만, 이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옮겨오면 이나영은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증오만 남은 연인에게 매일 새벽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비현실적인 표면적인 설정을 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 대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오다기리 죠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물들과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즉 오다기리 죠가 일본어로 말하면, 이를 받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형식이지요.
만약 한 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 몽유병으로 연결된 다는 설정이나,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설정을, 그대로 넘기지 못하면 이 영화는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영화에
묵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현실적이지만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본 설정은 묘한
분위기 외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과 사랑과 증오의 가까움, 여러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와 교묘하게 교차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본래 김기덕 감독은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에 한국어 자막조차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설정에
전혀 구속 받지 않는 감독임은 확실한 듯 해요.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다기리 죠는 자신이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를 알고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나영 역시 잠을 자게 되면 몽유병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옛 애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구요.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교차로 자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얼마 정도는 성공을
거두는 듯 하지만, 이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서로 수갑을 차고 같은 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죠. 이들이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기 까지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코믹하기도 했는데,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고 얼굴을 쥐어 뜯는 다던가 눈에 테입까지 붙여가며
잠을 안자려고 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 정도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 눈물 겨운 노력들은
무섭게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코믹함으로 느껴졌던 장면들이 분위기에 따라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까지 느껴지는 것을 통해, 사랑과 증오는 어차피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들자면 아무래도 갈대밭에서 4명의 인물이 모두 등장해 벌어지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영화 화법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이상한 장면인 동시에, 마치 현실에서 완전히 차단된
죽은 자들의 세계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장면이긴 하지만,
인물과 인물이 교차되고, 상대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이 사람도
같은 사람인, 즉 모두가 하나이고 모든 감정도 하나라는 것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준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장면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나영은 온통 검은 옷을, 오다기리 죠는 온통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아주 노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덕 영화 하면 가학적이라는 선입관이 있긴 합니다. 그 내면에 정말 폭력성이 있느냐,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쨋든 화면으로 보여지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에서는
가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몽>역시 오다기리 죠의 연기를 통해 이 가학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이었다면 영화 속 오다기리 죠의 후반부의 행동들을 그런 식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이는 분명 김기덕 감독이라 그런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김기덕 감독이 작품이 조금 불편하기도 한 것 같구요.

영화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화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그것이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적인 측면이나 장면들을 통해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백과 강렬한 색,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효과들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와 맞물려 메시지 전달에 시각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과감히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나영 때문이 아닌 바로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배우들 가운데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코믹함부터
극 진지함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오다기리 죠가 김기덕의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지요. <비몽>에서 그가 연기한 '진'이라는 캐릭터가 오다기리 죠만이 할 수 있는, 아니면 오다기리 죠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캐릭터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반 부에 처절하게 변해가는 진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오다기리 죠의 연기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나영의 연기는 사실 연기력 자체보다는 그 무표정의 이미지가 더욱 기억에 남는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무표정으로 대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껴지곤 하니까요.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영화가 될 것 같네요.


1. 결국 잠이 보약!
2. 어디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완전 '한옥투어'무비라고. 그 말에 동감.
3. 아직 <텐텐>을 못봤는데 이 영활 보고 <텐텐>을 보게 되면 그가 어찌보일지 궁금하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김기덕 필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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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배케이션 (サッドブェケイション: Sad Vacation, 2007)

이 영화는 배우들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미지로만 끌려서 보게 되었던 영화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는 감독인 아오야마 신지의 3부작 중 (<헬프리스> <유레카>에 이어)에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는데, 3부작으로 불리는 만큼 동일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다.

일단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감상기를 쓸 때면 어느 정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술술 써가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작품은 어제 낮 시간에 감상을 했음에도 쉽게 감상기를 쓰게 되지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만큼 쉽지 않았던 영화였으며, 감독의 화법에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말)



극 중에 등장하는 마미야 운송회사에 직원들은 모두 떠돌이나 사연이 있어서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나그네 혹은 방랑자 들이다. 그들은 과거에 어떤 일들로 인해 쫓기고 있는 이들도 있고, 자신이 처한 모든 것을
버린 채로 도망쳐와서 숨어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주인공인 켄지는 우연한 기회에 이 곳에, 자신을 예전에 버렸던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여기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잠시 순탄한듯 하지만, 켄지에게도 그리고 이 공간에 함께 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도 점점 운명처럼
그들을 기다렸던 일들이 닥치게 된다. 켄지에게는 더 힘든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다. 모든 일에 너무도 긍정적인 그녀에게 켄지의 복수의 방식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하고 만다.
그러기에 켄지는 좌절하지만, 어머니는 무섭게(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어머니의
모습은 무섭기까지했다)도 이를 모두 '그러면 이러면 돼지'라는 식으로 넘겨버린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속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비누 방울이 터지면서
극한으로 대치했던 무리에게 쏟아지는 장면에서는 어느 정도 희망을 얘기하는 듯 하지만, 완벽하게
희망스러운 이야기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뭐랄까 희망적이다, 정말적이다 라기 보다는 그냥 무기력하고
어쩔 수 없는, 흔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업보'라는 개념이 자주 생각나는 분위기였다.

무거운 삶의 무게는 그것이 운명이던, 아니던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던 극복해내지 못하던 삶은 상관없이 계속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



1. 많은 사람들이 오다기리 죠의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엄연히 이야기의 중심에는 켄지 역을 맡은 아사노 타다노부가 있으며, 오다기리 죠는 조연 정도로 출연한다.

2. 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팬으로서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터라 매우 반가웠다~

3. 기회가 된다면 <헬프리스>와 <유레카>를 본 뒤 다시 한 번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수입사 스폰지에 있습니다.

 
<박치기>를 리뷰하면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너무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박치기’라는 제목 자체가 그러하다. 물론 이 제목은 국내에서 번안하거나 새로 지은 제목이 아니라 원작자가 의도한 제목 그대로가 맞다(맞는 것은 물론 오프닝 크레딧에도 정확하게 한글로 ‘박치기’라고 표기했을 정도). 하지만 국내에서 ‘박치기’하면 일단 액션과 코믹에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또한 여기에 고등학생들의 폭력과 코믹적인 요소만 강조한 홍보 또한),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가 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 끌리게 되었던 것은 앞서 언급했던 코믹 요소들이 걸림돌이 되긴 하였으나 오다기리 죠나 사와지리 에리카 같은 배우들의 이름 때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처음에 예상했던 바는 우려로 끝났고, 배우들의 이름 만에 끌렸던 때가 부끄러울 만큼 더한 의미가 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치기 하면 레슬링의 기술, 단순히 머리로 머리를 받는 일 정도를 떠올리지만, 이 영화와 관련된 일본인 배우, 스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에서는 단순한 액션 적인 의미 외에 경계를 뛰어넘는, 즉 초월(超越)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넓게 보았을 때 초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초월에 사건이고 소재가 되는 것이 바로 일본 내에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의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뉴스나 TV는 물론 예전에 소개했었던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주연의 영화 <고 (Go)>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박치기>는 여기에 코믹적인 요소와 액션적인 요소(코믹과 액션은 그야말로 양념일 뿐이다)를 적절히 배치하고,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로 이전에 재일조선인을 소재로 했던 다른 영화들보다 더 큰 감동을 끌어낸다.



일단 일본인인 코스케와 재일조선인인 경자 사이의 로맨스는 누가 봐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형식을 빌고 있다. 여기에 경자의 오빠이자 무리의 우두머리 격으로 등장하는 인성의 구성은 마치,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대어 그려냈던 뮤지컬 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와도 닮아있다(개인적으로는 특히 ‘웨스트사이트스토리’와의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인성의 캐릭터는 물론이고(붉은 복대와 붉은 셔츠까지 이미지가 흡사하다), 클라이맥스에서 음악(노래)을 배경으로 각각의 인물들의 사건들을 동시에 그려내는 구성 방법에서도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고스케와 경자 사이에 경계를 허물기 위해 등장한 매개체가 바로 ‘임진강’이라는 곡이다. 이 곡의 원곡은 북한 곡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른 임진강에 빗대어 한민족 분단의 슬픔을 담은 노래인데, 1968년 일본의 포크 밴드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안하여 발표하였으나 바로 발매중지와 함께 금지곡이 되었던 곡이다(영화 속에 등장하기도 했던 ‘더 포크 크루세더스’의 멤버인 카토 카즈히코는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본인 고스케는 호감을 느낀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녀가 연주하고 있던 곡 ‘임진강’을 연습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의 슬픔과 전쟁의 무의미, 그리고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어쩌면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도 없고 그저 여자아이들에게 잘 보일 궁리만 하던 두 친구가, 분단 상황에 대해 ‘우리도 이 강을 중심으로 반으로 나뉜다면 어떻게 될까?’하고 가볍게 얘기를 꺼내게 되고,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깊진 않아도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다는 자체가 의미를 갖는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분단의 역사와 재일조선인의 슬픔이 담긴 임진강이라는 곡이, 단순 폭력과 로맨스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며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20대 초반의 어린 배우들조차 처음에는 자신들의 캐릭터나 시대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은 전혀 알지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 처럼 이러한 역사와 상황이 있었고 이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더 깊은 주제로 가는 첫 걸음으로서 좋은 스타트였다고 생각된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에 눈길이 갔던 것은 배우들이었는데, 시오야 슌, 타카오카 소우스케, 사와지리 에리카 등 어린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인다. 한국 사람인 우리가 보았을 때는 재일조선인 역을 맡은 배우들의 한국어 연기가 어색하게 들리긴 하지만, 배우 자신들은 교토 사투리를 배우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이야기할 만큼, 그 이상의 어려움이 있었던 캐릭터들을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오다기리 죠는 프리섹스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그대로 몸소 보여주는 사카자키 역할을 맡고 있는데, 진지하면서도 코믹스런 설정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한다.

1.85:1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최신작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평범한 수준이다. 특히 콘트라스트 비가 높지 않고 채도 또한 그리 높지 않은 화질인데, 감상에 불편을 주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높은 콘트라스트 비와 채도를 선호하는 이들에겐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표면적으로는 아쉬움을 갖게 하지만, 그리 멀티채널을 널리 활용하는 작품도 아닌 터라 감상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본편에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과 사카모토 준지, 씨네콰논의 이봉우 프로듀서가 참여하였는데, 젊은 주연 배우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재미적인 요소로서는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봉우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텝들의 음성해설은 좀 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서플먼트가 수록되었는데, 먼저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이 눈에 띤다. 인터뷰의 경우 대부분 주연배우 2~3명 정도에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박치기>DVD에서는 이전에 소개했던 <스윙걸즈 SE>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배우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 외에 3개의 메이킹 필름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 메이킹 영상에는 감독과 이봉우 프로듀서 등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두 번째 메이킹에서는 주로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데, 계속 NG를 내는 젊은 연기자에게 ‘니 돈 주고 필름 사와’라고 무섭게 다그치는 모습이 이채롭다(특히 촬영 첫 날부터 초반에는 단 한 번에 OK되는 영상들을 보고 난 뒤라 더욱 재미있었다). 3번째 메이킹 필름은 영화에 주요 소재가 되는 곡인 ‘임진강’에 대한 깊고 자세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이 밖에 제작 발표회 영상과 예고편 등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2006.11.16
글 / ashitaka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만든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알게 되었고 보게 된 영화.
 
다 보고 난뒤, 그 동안 얼굴과 이름이 매치가 되지 않았던
오다기리 죠를 확인한 영화.
 
게이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줄은 전혀 모르고 보았지만
그것이 감상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는 않았다.
<조제..>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일 뿐이며
게이라는 소재는 그야말로 '소재'일 뿐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은 독특한 소재를 자신이 말하려는 이야기에
말그대로 소재 뿐으로 녹아내는데에 있다.
영화 초반부에 여장을 한 노인들에 모습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지만, 영화가 계속될 수록 그들의 모습 자체에
웃음짓는 사람은 없었으며, 게이를 게이로 보지않고
그저 인물로만 보게 만드는 그 연출력말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과 각본을 쓴 와타나베 아야의
공동작업은 이번 작품에서도 도 한번 빛난다.
 
 
여운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이미지를 남기는 감독의 능력도
<조제...>에 이어서 여전하다.
 
'메종 드 히미코'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랑에 관한 담론.
 
여운을 글로 정리하기는 역시 어렵다...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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