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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The Battleship Island, 2017)

영화와 영화 외적인 것들의 필연적 충돌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는 처음 제작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기대와 걱정, 바꿔 말하면 반가움과 못마땅함이 존재했었던 논란의 영화였다. 흥미로운 건 기대하고 못마땅해하는 이유가 각각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점이었다는 거다. 화려한 캐스팅은 더 많은 대중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는 동시에 영화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이 제작 단계에서부터 얘기된 점은, 더 많은 곱지 않은 시선을 이 영화에 갖도록 만들었다.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된 지금도 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군함도'는 현재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영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담으려 했던 메시지나 내용적인 것에 대한 담론보다는 영화 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 물론 내용에 대한 이야기들도 논란이 되고 있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군함도'는 큰 규모의 제작비가 말해주듯, 처음부터 대중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즉, 더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임을 결코 간과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혹자들은 이런 경우 작가로서의 감독이 상업적인 것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라며 평가 절하하곤 하는데, 내가 봤을 때 '군함도'의 경우 이건 포기라기보다는 선택에 가깝다. 작은 규모로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대규모의 투자가 꼭 필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물론 '군함도'를 주제로도 충분히 훨씬 적은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류승완 감독이 만들고자 했던 건 기본적으로 장르 영화였고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영화였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세트 촬영과 이를 기반으로 한 스펙터클한 화면과 액션의 동선을 가능하게 해 확실히 진일보한 수준을 보여준다 (다른 얘기로 최근 논란이 되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이 영화가 애초부터 작은 기획으로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군함도'는 지금과 같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 (Son of Saul, 2015)'처럼 만들었어야 지금의 논란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없었을 거고, 배급사가 무리한 독과점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 많지 않은 관객 만이 영화를 관람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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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성 측면에서 '군함도'는 장르 영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황정민과 김수안이 연기한 이강옥과 소희의 이야기는 쉽게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상시킨다. 참혹함 속에서도 현실적인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는 (특히 이강옥에게) 이유가 되는 이야기는 가장 전형적인 구조이지만 그와 동시에 가장 보편적 정서로 많은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소지섭이 연기한 최칠성의 이야기는 '군함도'의 또 다른 줄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등장하는 박무영(송중기)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에 잘 묻어나지 못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박무영의 이야기는 전개상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최칠성의 이야기는 필요보다는 선택 측면으로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박무영이 개입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빠르게 탈출(재난) 영화로서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개연성을 위해 몇 가지 장치들을 마련해두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급작스럽게 장르 영화로서 탈바꿈되어 달려 나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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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군함도'는 장르 영화로서만 보았을 때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대규모의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낸 (CG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압도되는 측면이 있고, 그만큼 볼거리 측면에서도 러닝 타임 내내 지루하지 않게 몰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쉬움을 남기는 측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배경이 '군함도'라는 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대규모 장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까지 더해서) 참 어려운 도전이었구나 싶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군함도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해 전달하려던 메시지에 대한 부분은 물론, 탈출 영화로서의 스펙터클 모두 최대한으로 뻗지 못하고 아쉬운 지점에서 그치고만 느낌이 강했다.


특히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아픔을 제3 국의 시선이 아닌 당사국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는 만큼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에 (그것이 허구라 해도)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장르적 전개를 위해 총, 칼과 폭발에 스러져 가는 모습을 전쟁영화의 방식으로 잔인하게 묘사한 것은 그 참혹함을 부각하기 이전에 상처를 더 짓누르는 효과가 크지 않았나 싶다. 보통의 전쟁 영화에서 우리 편 혹은 우리 군이 죽음을 맞을 때의 묘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관객의 심리에서는 일본에게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죽음을 맞는 장면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분명 존재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인들 간에 갈등 전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반대가 더 컸을 텐데, 그런 측면이 더해지면서 이 대탈출의 서사는 완전히 살아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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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기적인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경우 관객들이 그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적지 않은 평가 요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군함도에서 벌어진 강제 징용 역사의 경우 최근 '무한도전'을 비롯해 몇몇 강의 프로그램이나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된 만큼, 관객들의 뇌리 속에는 깊은 상처와 슬픔이 최근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에 이를 장르 영화로 소화해낸 (물론 영화가 담으려던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 '군함도'가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또 정서적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만 영화.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군함도'의 경우는 좀 더 양상이 복잡한 경우다. 일단 개봉일 기준으로 전체 스크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숫자의 스크린을 점유한 것 자체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참혹하고 끔찍한 심정이 들 정도로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합법적일지라도 말이다. 


더 많이 보고 싶어 해서 더 많은 상영관을 가져갔다는 말은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이 문화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건 불공정 거래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점차 시일이 지나면서 '군함도'의 스크린 점유율은 줄어 가고 있지만 이후 개봉될 예정이라는 확장판의 소식까지 더해 만들어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천만 영화가 되어 간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목표로 했던 것들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실패를 몹시 두려워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뭔가 억지로 무리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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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이 독과점의 문제의 탓을 감독에게 돌리는 것도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물론 관객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에 그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감독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일부에서 실망하는 것처럼 류승완 감독이 평소 진보적인 태도로 스크린쿼터나 대기업, 자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었었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마치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의도인 양 또는 심한 말로 돈 맛을 알아 버린 감독이 투자/배급사인 CJ와 손잡고 변절 아닌 변절했다느니 하는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위의 표현들이 많다) 의견들은 수용하기 어려울뿐더러 다른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물론 이런 의견을 갖는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류승완 감독 본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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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한 부정적 의견들은 일부 의견들의 발언 수위가 너무 수준 낮다는 (욕설 수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수위의 대한 정도만 걸러 낸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의 논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참으로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저의가 의심되는 움직임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군함도'를 두고 일본군에 대한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찬양하는 가운데 조선인들끼리 다투는 내용을 담은 친일 영화라는 의견들이 있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팩트부터 말하자면 '군함도'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짙게 깔린 동시에 단 한 명의 일본군도 미화하거나 그들도 피해자라는 식의 묘사는 존재하지 않으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일파가 영화의 주된 갈등으로 등장한다.


묘한 공격 지점이 되고 있는 이 부분은 오히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다. '군함도'는 단순히 제국주의 일본 군의 참상을 평면적으로 그려내는 구도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 남기 위해 스스로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에게 기생해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친일파들에 대한 적대심과 비판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예전 ‘지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가해자인 군인들도 사실 피해자라는 영화의 시선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적 의견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지슬'의 경우는 말했다시피 가해자를 일정 부분 미화하는 (군함도의 경우로 보자면 일본군을 미화하는) 경우고, '군함도'의 경우는 피해자 가운데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쩌면 가해자들 보다도 더한 악행을 저지른 또 다른 가해자인 친일파를 묘사하고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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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가 묘사하는 친일파 인물들의 비중은 오히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내부에 숨어 있거나 오히려 큰소리치고 기득권으로서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친일파 세력의 청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즉 아직도 이러한 전후 청산의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만큼 선행되어야 할 역사적 심판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소 신파적이라고 지적받는 마지막 장면 (김수안 배우의 응시) 같은 경우도 나는 이러한 심판과 감시의 눈빛이라고 생각된다. 


친일파들이야 말로 일본의 여러 가지 악행들이 점점 잊히거나, 친일파에 대한 존재는 지워버린 채 오로지 일본군의 악행 만이 강조되고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텐데, '군함도'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그들에 대한 강한 심판과 감시, 다시 말해 그들의 악행을 반드시 역사에 기록해 미래로 전달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음에도 많은 기득권 세력을 불편하게 만든 (더군다나 천만 관객을 목표로 한 대자본의 영화가)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군함도'를 응원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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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블루레이 : 역대급 부가영상을 만들어냈다!

(Veteran : Blu-ray special features Review)


블루레이로 영화를 다시 혹은 처음 즐기게 될 때 가장 큰 매력은 최고 수준의 화질과 음질로 접하게 되는 영화 본편의 재미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블루레이를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제작 과정 등의 뒷이야기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는 Special Features라고 주로 부르고 우리 말로는 부가영상으로 이르는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들은, 제작 과정에 대한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다룬 메이킹 다큐멘터리나 감독, 배우, 스텝 들의 주요 인터뷰 영상, 그리고 각종 예고편 및 시사회 등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리고 감독을 중심으로 영화에 참여한 이들이나 평론가 등이 참여한 음성해설 (코멘터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블루레이를 보고 난 뒤 개인적으로나 또는 매체 등에 기고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해오면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특히 국내 영화의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해서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극장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 가장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매력 포인트가 바로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국 영화의 부가영상 구성이나 완성도는 매번 아쉬움이 남는 수준이었다. 굳이 변호를 하자면 결국 국내 시장 상황의 현실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실제로 감독 본인이 DVD나 블루레이 제작에 대한 열의를 갖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많은 자료들을 최대한 남기고자 노력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 이후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혹은 흥행을 했더라도 물리 매체를 중심으로한 국내 2차 시장의 규모가 워낙 협소하다 보니 제작비를 감안하여 최소한의 부가영상이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양적으로 부가영상이 많은 경우는 적지 않았으나 질적으로 보았을 때는 확실히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부가영상이 수록된 경우에도 인터뷰 등이 중복되어 수록되는 경우가 많았고,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임에도 특별히 촬영 소스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SD급의 떨어지는 화질로 수록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또한 전반적으로 DVD나 블루레이를 애초부터 감안하지 않은, 그러니까 부가영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다른 성격의 영상들이 끼워 넣기 식으로 수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구성 측면에서는 특히 아쉬운 면이 컸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가 성장하는 가운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스타 감독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자신의 작품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마련되면서,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그 영화를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 본인이, 자신의 영화가 그냥 그저 그렇게 평범한 (솔직히 말해 허접한) 물리 매체로 제작되는 것에 더 큰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긍정적인 의미로 바꿔 말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작품이 더 나은 2차 물리 매체 (블루레이)로 제작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제작사에 어필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물을 첫 번째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류승완 감독의 최근작 '베테랑'이 아닐까 한다. 적어도 내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다. 








예전에 '베를린'의 DVD가 발매되었을 즈음 류승완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베를린' DVD 그리고 그 당시 곧 발매 예정이었던 블루레이에 대해 적지 않은 아쉬움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난다. 감독 역시 이 시장의 규모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영화가 더 풍성하고 높은 완성도의 블루레이로 발매되기를 원하는 갈증을 해소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점 역시 오해가 있을까 부연을 하자면, 해당 타이틀의 완성도가 특별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평소 DVD나 블루레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어떤 팬들 보다도 더 나은 블루레이가 나오길 바랐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후 '베테랑'의 블루레이 제작에는 더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이 있었고 결국 기획과 제작을 맡은 CJ E&M의 주도 하에 제작 진행 및 오소링을 맡은 플레인 아카이브 그리고 구성/편집을 맡은 RABBIT ON THE MOON 까지 세 회사의 협엽을 통해 그간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부가영상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 한국영화 블루레이, DVD의 경우 부가영상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아직도) 대부분이기 때문에, 추후 발매되는 매체의 부가영상 역시 인터뷰가 여러 번 중복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 촬영된 인터뷰나 촬영 장면을 범용 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는 무엇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가영상(메이킹)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인터뷰들과 많은 촬영 분량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추후 천만 관객을 넘는 흥행이 있고 나니 진행한 부가적인 인터뷰 등이 아니라 이미 영화 제작 당시 많은 인터뷰나 자료들을 현장 촬영해 두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후 진행된 인터뷰 들도 있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전체적으로 부가영상이 메뉴에 맞춰 수록하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기획/편집된 영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나 배우의 인터뷰 중간중간에 그 인터뷰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영화 속 장면이 삽입된 것은 물론, 영화 속 장면을 인용해 인터뷰 중간에 유머를 넣은 것도 한국영화 부가영상에서는 거의 첨 보는 경우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영화를 볼 때 보다 더 놀랐다!). 어쩌면 벌써 한 참 전에 이런 부가영상을 가진 한국 영화 블루레이가 있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타이틀을 만나게 된 기분이다.




'탐문수사 (기획 배경/자료조사)'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상세한 인터뷰를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흥미롭게 전한다. ‘베테랑’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이유와 이 제목이 영화에 미친 영향들 그리고 이런 구도의 이야기를 기획하게 된 배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단순히 ‘베테랑’에 국한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감독의 전작인 ‘부당거래’와 ‘베를린’의 영향 혹은 유사한 점과 차이점 들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해 만난 실제 형사들, 경찰, 사회부 기자, 기업 관련인 등과의 취재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다. 더 실감 나고 디테일한 묘사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현실 속 인물들을 만나 취재를 진행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작전설계 (캐스팅/로케이션)'를 통해서는 주요 캐릭터들에 대해 왜 그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뒷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의 인터뷰는 물론 배우들의 인터뷰 역시 부가영상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인터뷰 영상이라 무엇보다 메리트가 있다. 또한 이런 배우 인터뷰 부가영상의 경우 유명한 1~2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광수대 팀원 전원의 캐릭터 소개와 적지 않은 분량의 배우 인터뷰가 수록된 점도 확실히 인상적이다.


로케이션에 대한 부분도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극 중 경찰서의 촬영지는 어떤 곳인지 또 조태오의 공간은 어떤 곳에서 촬영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하는데, 단순히 로케이션 및 세트에 관한 미술적 설명뿐만 아니라, 그 로케이션 장소가 영화적으로 갖는 의미까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더한다. 






'사전훈련 (액션 메이킹)'에는 류승완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액션 메이킹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감독이 좋아하는 성룡 영화의 액션을 구현하고자 했던 이 영화의 액션 디자인에 대해, 감독과 무술감독인 정두홍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현장출동 (촬영/미술)'에서는 조화성 미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상세하게 들려준다. 세트 디자인과 각 공간에 놓인 소품들에 대한 의미들에 대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배치하게 되었는지 들려주는데, 영화를 볼 때 미처 다 포착하지 못했던 미술적 요소들에 대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편집이라는 역할은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 연출만큼이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편집자에 대한 조명이 많지 않았던 것에 반해 이번 ‘베테랑’ 블루레이에서는 별도의 '사건수습 (편집/CG/음악)' 섹션을 통해 영화의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이 영화의 편집을 맡은 김상범 편집감독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는데, 감독의 인터뷰와 코멘터리만큼이나 흥미롭고 유익한 섹션이었다. 참고로 김상범 편집감독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왕의 남자’ ‘아저씨’ ‘부당거래’ 등 약 80여 편의 한국영화의 편집을 맡은 마스터 편집 감독이다.





마지막으로 '사후보고 (개봉/반응/속편계획)' 에서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국내 관객과는 조금 차이를 보이는 해외 관객들의 반응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속편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는데, 언젠가 만나보게 될 ‘베테랑 2’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영상이었다.





* 삭제 장면에는 이동휘 배우의 씬들이 제법 있었다.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전체적으로 각 섹션별 분량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각 20~30분 수준), 확실히 양적인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구성과 편집이 특히 마음에 쏙 드는 완성도였다.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는 각 섹션들을 통해 거의 대부분 등장함에도 중복된 내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정보량이 상당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부가영상'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인터뷰 들이었다.




* SITGES 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에게 보내 온 친필(?) 선물 ㅎㅎ




마지막으로, 영화 장인 리들리 스콧의 DVD나 블루레이를 주의 깊게 살펴본 이들이라면 아마 잘 알겠지만, 그가 연출한 영화의 블루레이에서는 종종 그의 버금가는 잘 짜인, 완성도 높은 메이킹 다큐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 메이킹 다큐멘터리들을 만든 이는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찰스 데 라우지리카 (charles de lauzirika)라는 감독이다. 한 번 그의 메이킹 다큐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이후에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만큼이나 그가 만든 영화의 메이킹 다큐를 기다리게 될 정도로 그가 만든 부가영상의 완성도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찰스 데 라우지리카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 번 별도로 자세히 소개해 볼 예정이다). 



* 찰스 데 라우지리카가 작업한 메이킹 다큐가 수록된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블루레이 부가영상에 대한 소개 글

프로메테우스 _ 그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을 제목 그대로 스페셜한 메이킹으로 만들어 낸 제작진들!


국내에서도 최근 '올드보이'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으로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올드 데이즈'가 별도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물론 '올드 데이즈'는 그야말로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 규모의 시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의 매력을 한층 더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한국 영화 블루레이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전체적으로 기획된 구성의 부가영상을 지속해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의 제목처럼 '베테랑'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해외 영화 블루레이의 부가영상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역대급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한국영화 블루레이의 아쉬움과 현실로 미뤄봤을 때 '베테랑'은 그런 첫 번째 시도로서 몹시 반가운 블루레이임이 틀림 없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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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哭聲, 2016)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 (哭聲, 2016)'은 인간의 의심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현혹을 주제로 신과 악마의 이야기를 가장 현실적인 공간의 배경에 풀어 놓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감독이 분명한 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이나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든 구조의 작품들인데, '곡성'도 그 중 하나다. 개봉 첫 날 부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담론이라기 보다는 궁금함으로 인한 해석과 설명들), 이런 영화들은 사실 한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기 보다는 몇 가지의 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그만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나홍진의 '곡성'은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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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시작 인용한 성서 구절과 마지막 동굴 시퀀스에서 외지인이 들려주는 대사는 그렇게 의심이라는 주제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그리고 그 의심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가벼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이 발생하고 동네에서는 사람들의 입을 거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바로 외지인인 일본인 (쿠니무라 준)이 범인이라는 혹은 귀신이라는 얘기. 경찰인 종구 (곽도원)는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어 넘겼지만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게 되 그 역시 외지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몇 가지의 확신할 만한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면서 이 의심은 더 확고한 확신으로 번져 간다. 한 번 생겨난 의심 그리고 이를 더 확고하게 해 줄 만한 말들과 현실들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개 되어 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종구의 의심과 현혹됨이 관객에게도 동시에 진행되고 발전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주인공인 종구의 시점을 공유하며 같은 입장에서 인물들을 의심하고 그 현혹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의심에 관한 텍스트는 주인공의 결백 등과 맞물려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인데 '곡성'은 여기에 종교적인 이야기를 적절하게 겹쳐 놓았다. 신, 특히 종교야 말로 의심이라는 것에서부터 태어났으면서도 의심이 허용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홍진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관객들의 의심 역시 십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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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외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가장 (특히 초반)공포스럽고 악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벌거벗은 채로 고라니를 뜯어 먹고, 그것이 설령 꿈이라고 하더라도 새빨간 눈동자를 한 모습과 피해자들을 전시해 놓듯 사진들로 가득 찬 그의 공간은 그를 연쇄 살인마 이상의 악마로 (혹은 귀신으로)의심하고 확신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이 외지인 귀신을 떨쳐내기 위해 고용된 무당 일광 (황정민)은 그 등장에서 부터 완벽하게 일본인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서 묘사된다. 더 나아가 일광이 한참 귀신을 쫓기 위해 굿을 벌이던 중, 종구가 결국 약해진 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굿판을 중지 시키게 되었을 때 관객은 '아, 조금만 더하면 귀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 아쉽다..'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 후 외지인은 힘을 잃고 일광도 떠나고 종구의 딸은 병원에 맡겨진 뒤 영화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그간 일방적으로 확신을 가졌던 종구의 시점을 뒤흔든다. 귀신이라고 믿었던 외지인이 만져지고 죽음에 이르는 것을 종구가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것 (그 시체를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길 아래로 던져버리는 행동도)이나 이를 멀리서 마치 귀신처럼 지켜보는 무명 (천우희)의 모습은 무명 = 목격자, 외지인 = 귀신이 아니라 일광의 전화가 알려준 것처럼 무명 = 귀신, 외지인 = 무당 이라는 해석으로 단숨에 전환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치 이것이 반전인 것처럼 급박하게 휘몰아 친다. 마치 귀신일지도 모를 무명을 종구가 다시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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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가족의 목숨이 귀신 혹은 악마에게 모두 빼앗겨 버릴 위기에 놓여있는 종구 앞에 이제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무명이 나타난다. 무명은 딸과 가족을 살리려거든 닭이 세 번 울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직접 외지인의 시체를 목격한 경험과 일광의 전화로 무명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의심하게 된 종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상황은 외지인이 악마임을 확신하고 죽이고자 찾아간 부제인 이삼 (김도윤)의 상황과 겹쳐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귀신이 아닌 악마 적인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는 외지인과 이삼의 대화가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외지인은 이삼에게 '너는 나의 존재를 의심해서 알아보고자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삼에게 외지인은 마치 영화의 시작 성서에서 인용된 예수의 말씀처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나를 만져보아라'라고 말하며 마치 십자가의 못 박힌 예수의 상흔과 같은 손바닥의 상흔을 보여준다. 


이 동굴에서의 대화는 겉으로는 반그리스도 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곡성'의 반그리스도적 상징과 묘사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스며들어 있다. 언급 했던 것처럼 종교, 신 과 같은 절대적인 믿음의 상징들은 의심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려고 온 것이 아니냐는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참으로 별 것 아닌 말들과 오해들로 갖게 된 의심이 어떻게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을 포기하는 것을 인간이 과연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비관적인 질문은 영화 '곡성'이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악마, 악, 공포 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심과 그 의심이 스스로 끌어들인 현혹이 어떤 지옥을 만들어 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이 귀신도 그 귀신을 쫓으려는 무당도 될 수 있고, 악마가 신(예수)의 모습과도 하나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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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영화가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한 또 한 가지가 바로 무지다. 귀신을 봤다는 사냥꾼이 자신의 텅빈 냉장고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증거다'라고 말할 때 종구와 관객 모두가 웃어 넘기지만 사실 이 장면 역시 영화의 메시지와 깊게 맞닿아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보고 직접 손과 발을 만져보고서야 믿게 된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라고 말한 예수의 말처럼, 이 장면 역시 의심의 관한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곡성'에서 말하는 무지란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무명도, 귀신에 씌인 딸도 종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묻는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나 해'.

몇 번을 묻지만 이 질문은 오히려 너무 직접적이라 종구는 결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종구의 마음엔 확신 만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벌어지는 상황들로 인해 계속 불안해 하는 종구에게 무슨 확신 만이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보면 종구는 불분명한 것들로 인해 불안함을 겪어 왔다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확신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 확신이 계속 옮겨 갔을 뿐이지. 편협된 혹은 어쩔 수 없이 편협된 정보들로 이룬 자신 만의 결론과 확신을 두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게 되었을 때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스스로 혼란에 빠져 버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 비극은 더 깊어져만 가고, 맨 마지막 종구가 남긴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할께'라는 말은 이 비극을 쉽게 해피엔딩으로 위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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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은 이번에도 관객들을 아주 불편하게 하고 특히 영화 속 인물들을 아주 고약하게 괴롭히고 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영화가 주인공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불편해 하는데, '곡성'은 결과만 보면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딸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종구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이야기거나 혹은 연쇄 살인사건을 파해치는 형사나 전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온 듯한 평범한 주인공이 어느 날 연쇄 살인과 귀신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맞닥 들이게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자신의 딸이 휘말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과정은, 영화의 주제인 의심과 무지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는 없었던 한 인물의 비극 그 자체라는 점을 영화는 주지 시킨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과연 자신의 딸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의심과 자가 비판 등을 통해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의 위로. 그리고 끊임 없이 '왜 우리 딸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딸에게 이런 일이'라고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래야 스스로 이해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묻지만, 마치 낚시 처럼 그저 네 딸이 걸려든 것 뿐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는 종구의 모습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가족을 잃거나 상처를 받아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엿보인다. 다시 말해 영민한 전문가가 자신의 꾀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는 패배가 아니라, 어쩌면 의심할 수 밖에는 없고 빠르게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종구의 비극을 말이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밖에는 없었던 존재가 악마의 하수인이었던 일광이었다는 점도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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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곡성'을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로만 본다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을 듯 싶다. 개연성을 중시하는 시점으로 바라 본다면 몇 몇 장면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 어떤 측면으로 보아도 모든 퍼즐 조각이 다 맞아 떨어지는 명쾌한 해석은 어렵기 때문이다 (아, 환각 버섯으로 인한 사건으로 보면 100%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마지막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약 '곡성'을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방식으로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거나 특히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반드시)정답을 알고자 하는데,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거나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왜 나인지 알 수 없는 일 가운데는 가족을 잃게 되는 끔찍한 일들도 있으며, 피해자들은 결국 의심하고 또 확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옥같은 현실에 놓이기도 한다는 것. 나홍진의 '곡성'은 의심과 현혹으로 탄생한 지옥을 그리지만,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도 담아낸 작품이었다.



1. 홍경표 촬영 감독이 담아낸 영상미가 인상적이었어요. 오컬트적 요소를 담은 영화 답게 곡성의 아름답고도 서슬퍼런 풍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한.


2. 영화에 대한 평을 보니 호불호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데, 뭐 둘 다 그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물론 그 중에는 아예 잘못 읽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주제와 빗대어 얘기하자면 이미 재미있게 봤거나 재미없게 본 이들이 나중에 평을 나누다가 바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재밌다는 사람이 재미없다는 글을 보는 이유는 '재미없을 리가 없는데'라는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논쟁에 뛰어 들고 싶다가도 절대 끝날 수가 없는 (답이 없는. 둘다 맞는) 논쟁임을 깨닫고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고 있지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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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Veteran, 2014)

울분에 가득찬 현실세계의 활극



2010년 류승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했던 '부당거래'와 2012년,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했을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 이후 그가 선택한 새로운 이야기는 또 한 번의 형사이야기 '베테랑' 이었다. '베테랑'에 대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영화가 자신을 홍보하는 방식은 철저히 '오락영화'라는 것이었다. 범죄오락액션 에서 분명 오락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은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하는 시기가 여름 그리고 휴가철이었기에 마케팅을 오래 해왔던 입장에서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마케팅 방식이었다. 하지만 개봉에 앞서 '베테랑'이 더 오락액션영화 임을 강조해 갈 수록,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의 한 사람으로서는 조금씩 걱정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여름 극장가에 걸맞는 영화도 좋지만, 최근 좀 더 알게 된 류승완 감독이라면 더 진일보한 영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같은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베테랑'은 영화가 자신을 홍보해 온 것처럼 범죄오락액션 영화가 맞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근본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그에 따른 울분과 씁쓸함이 담겨있는, 결코 간단히 볼 수 없는 입체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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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 영화 그리고 메시지가 담긴 분노의 날라차기


먼저 액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전작 '베를린'에서 또 한 번 액션 연출에 있어서 진일보한 시퀀스를 만들어 냈던 류승완+정두홍 콤비는 이번 '베테랑'에서도 뻔한 액션 시퀀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썼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액션 시퀀스는 영화 초반 주인공 서도철 (황정민)이 불법 자동차 공장에서 일당들과 벌이는 장면과 그 이후 이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배경으로 한 항구에서의 장면인데, 일단 첫 시퀀스에서는 성룡 영화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류승완 감독이 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점인데, 액션 연출에 있어서 이 시퀀스 처럼 직접적으로 그 장점을 활용하고자 했던 시퀀스는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액션 연출을 보면 철저하게 도구를 활용하고, 그 도구 및 주변 물건들이 갖는 특성을 100% 액션 연출에 가미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로 인해 코믹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히 잘 싸우는 사람이 주도 하는 액션을 보는 것 이상의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후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베테랑'에는 유독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미스봉 (장윤주)이 마치 필살기처럼 사용하는 이 날라차기는 단순히 캐릭터의 시그니쳐 무브로 활용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날라차기 (그것도 두발 날라차기)라는 기술의 특성을 보았을 때 어쩌면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실패했을 경우 타격이 크고 (실제로 실패했을 경우의 타격에 대한 장면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무언가 모든 걸 다 던져 버린다는 감정이 실린 기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때 이 분노의 날라차기는 설령 실패하거나 한 방에 보내지 못해 더 맞게 될 지언정, 한 번 시원하게 때려줘야겠다는 심정이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주된 모티브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날라차기는 결코 흘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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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혹자는, 특히 전작 '부당거래'를 좋아하는 이들 가운데는 '베테랑'을 보며 그저 오락 영화이기만 하다고 아쉬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베테랑'을 보며 든 생각은 '어? 이거 부당거래 보다도 더 직접적인데?'라는 생각이었다. 아마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이들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를 본 기억들이 있을 텐데 (워낙 세상이 떠들석한 뉴스였으니), 극 중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 재벌가들이 벌이는 행동들은 그저 혀를 차며 '저런 나쁜 놈들...'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묘사였다 (오히려 부당거래의 묘사보다 베테랑의 묘사가 훨씬 더 직접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까지 직접적인 묘사를 한 이유는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끔, 혹은 당장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문득 '아, 이게 그냥 영화가 아니었네'라고 생각될 만한 여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오락영화 임을 강조하고 그렇게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베테랑'에서 돋보이는 대사들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형사나 재벌, 혹은 범죄자들이 현장에서 쓰는 진짜 단어나 대사들이 아니라 서도철의 아내인 주연 (진경)의 대사나, 화물차 운전사로 등장했던 배기사 (정웅인)의 대사들이었다. 이 대사들이 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자로 언급한 대사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였는데 전자의 경우, 진짜 형사나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이 포함된 대사들을 듣게 되면 잘은 몰라도 전문적이고 실감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면, 후자의 경우는 잘은 몰라도가 아니라 너무 잘 알 수 밖에는 없는, 감정이 동요하는 대사들이었기 때문에 와닿을 수 밖에는 없었다. 즉, 대부분의 관객은 형사도 아닐 뿐더러 형사 가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벌이나 셀러브리티도 아니지만, 그들과 엮여 있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너무도 현실 접근성이 높았던 터라 일부분 영화적으로 묘사된 부분들 마저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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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맞아주고 때려주고 욕해주는, 선배의 영화


솔직히 개인적으로 '베테랑'이 통쾌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너무 현실에 찌든 탓인지 극 중 서도철 처럼 조태오 같은 인물에 맞설 자신도 없고, 그의 아내처럼 흔들리는 와중에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과연 이후에 행복해졌을까 혹은 조태오는 제대로 된 심판을 받게 될까 라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도 이 같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먼저 말하자면 '베테랑'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같은 일종의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맹목적 메시지 보다는, 현실에 근거하여 '야,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이건 아니잖아. 형이 먼저 해볼께'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유독 그런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쪽팔리게 살진 말아야지'

이를테면 이런거다. 누구나 거대한 권력이나 무력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는 것조차 일종의 폭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끝까지 소신을 지키라는 것 보다는,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잘못된 것과 끝까지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마저 버려서는 안되며,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지만 그 양심마저 버리게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남는지를 되물으며, 그렇게까지 살지는 말자 라고 이야기하는. 최대한과 최선의 노력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닌, 최소한 지켜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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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 서도철과 조태오의 대립과 결투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것은 분명 권선징악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악을 선이 완전히 물리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누군 가가 악에 대신 맞서서 싸워주고 아니 피 흘리고 멍들고 부러지도록 맞아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줌으로서 그런 용기를 갖지 못했던 이들의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꺼지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도심에서의 액션 장면에서 서도철이 주변의 CCTV를 인지하고 전과는 다르게 미란다 원칙을 먼저 말하고 시작하는 장면 역시, 단순히 정당방위를 성립시키기 위해 참아낸 과정이라고 보기 보단 오히려 그 주변을 둘러싸고 휴대폰 카메라도 지켜보고 있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견디며 기다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연출에서 거의 대부분 발견되는 점은 바로 피로감 그리고 고통인데, '베테랑' 역시 그 점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르게 그 고통과 고단함이 기술적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뒷 받침하는 기능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테랑'의 액션은 더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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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며 든 가장 깊숙한 곳의 느낌은, 영화가 끌어 오르는 울분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를 아주 세련되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울분을 토해내는 것에만 집중해서 결국 아무도 그 울분이 왜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를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것에서 영리하게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 해 낸 그런 오락영화였다.


아, 진짜 베테랑이다!



1. 아트박스 사장님이 좀 더 활약하는 확장판 없나요? ㅎㅎ

2. 초반 정웅인 씨가 등장하는 장면은 왜 죄다 그렇게 불안하고 가슴 졸이게 되는지. 차는 사고가 날 것만 같고, 컨테이너가 어디서 떨어질 것만 같고.

3. 극 중 인물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은 최상무 (유해진) 같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스템 속에 갇혀버린 사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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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2013)

누구나 신세계로의 구원을 꿈꾼다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라는 배우의 출연 만으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 '신세계'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배우들의 이름과 분위기에 끌려 보게 된 영화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훈정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던 이더라. 조직 폭력, 거대한 범죄 조직내 세력 다툼, 그리고 경찰과의 관계에 스파이라는 설정까지. '신세계'는 얼핏 봐도 '무간도'나 '대부' 시리즈를 직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이런 영화들이 갖는 방향성 혹은 평가는 둘 중 하나일텐데, 결국 그 틀 안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이 반복하는 영화이거나 그 틀을 벗어나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이거나 라고 보았을 때, 이 영화 '신세계'는 그 두 가지 경우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더 말하자면 그 틀 안에 있지만 새로울 것 없는 반복이 매력적이었고 조금의 나아감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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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신세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바로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무게감이다. 그 무게감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나오는데, 어쩌면 뻔한 조직 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다시 한 번 집중할 수 있는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물론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따지고보면 '신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 이야기보다도 더 전형적이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되는데, 그럼에도 조직에 심어진 경찰, 그 경찰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또 다른 경찰, 그리고 범죄 조직 내의 인물까지 모두, 새롭지는 않지만 매력적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엔딩을 제외하면 사실 거의 기존 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자체를 보기 보다는, '신세계'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가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결국 누구나 현실에서 신세계를 꿈꾼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그런 꿈을 꿀 수 밖에는 없는 현실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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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크게 공감되었던 것은 그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신세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에 빠져버려서 탈출이라는 선택조차 사실상 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에 놓인 이들이 신세계를 꿈꾼다는 점이었다. 즉, 이들이 꿈꾸는 결과로서의 신세계보다 그들이 현재 처해진 현실(굴레)에 더 공감되었다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이자성(이정재)이 놓인 현실은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굴레 그 자체다. 그리고 강과장(최민식)과 경찰은 바로 이 점을 볼모로 이자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그 의도가 어떤 것이었던 간에 이자성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정말로 답답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른 인물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강과장 역시 조직 내에서 이런 명령을 할 수 밖에는 없는 위치와 상황에 놓인 인물이고, 강과장으로 부터 제안 아닌 제안을 받게 된 정청(황정민)의 현실이나, 역시 유사한 제안을 받게 되는 이중구(박성웅)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벌여놓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시절의 선택 때문에 이러한 진퇴양난의 현실에 놓이게 되는데, 영화는 기본적으로 주요 인물들을 이렇듯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 각자가 신세계로 향하는 방식 혹은 선택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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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세계'가 조금 더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가 취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영화는 결국 신세계를 꿈꾸던 여러 인물들 가운데 이자성에게만 신세계를 허락하는 듯 보이는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자유를 허락했으나 이자성에게만 그렇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은 자신이 결국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모든 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식으로 골드문의 보스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이 엔딩에 대해 무척이나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신세계'를 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여러 나쁜 이들이 결국 단 한 명의 선한 이를 나쁜 이로 만들어버리는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심판의 측면에서 차라리 통쾌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신세계로 가지 못한 것은 이자성 뿐인 것만 같았다. 즉, 나쁜 이들은 모두 속죄 받기를 내심 원했으나 그 기회를 갖을 수 없던 이들이었다면, 이자성은 기회를 갖을 자격조차 없던 이들을 구원하는 동시에 본인 스스로는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어버린 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드문 회장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 이자성의 모습에서는 단순한 씁쓸함이 아니라, 더 큰 한숨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초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라며 몇 번이나 애를 쓰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에필로그 속 6년 전 이야기를 통해 이자성이 벌써 예전에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거나 혹은 그 만의 신세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일말의 동정심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 영화의 건조함이 오히려 더 아픈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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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간도'의 뜻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왔듯이, 이 영화 '신세계' 역시 무간지옥에 갇혀 버린 이들의 이야기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세계 (新世界)'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니었나 싶다.



1.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연기력 측면만 보면 가장 볼거리가 화려한 작품이었어요.


2. 어디서보니까 본래 3부작으로 기획되었단 이야기가 있던데 (미공개 영상으로 공개된 마동석,류승범이 등장하는 에필로그도 그렇고), 전 이 한 편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지만 기대는 되네요. 그런데 3부작으로 가게 되면 너무 '무간도'처럼 가게 될 것 같기도하고;


3. 확실히 이런 캐릭터를 국내에서 황정민 만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배우는 없는 듯. 역시 양면성으로 꼽자면 황정민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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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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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2010)
왜 부당거래인가?


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를 보았다. 검사와 경찰이라는 설정만 들었을 때에는 대략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부당거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왜였을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은 왜 '부당거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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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대 에이스 최철기 (황정민), 젊은 검사 주양 (류승범) 그리고 해동그룹 대표 장석구 (유해진)는 각자의 이해관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엮이고 엮이게 된다. 이들이 서로 엮이게 된데는 물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굴레에 놓였다는 점, 즉 약점을 갖고 있고 이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간파당했다는 점과 반대로 그 자신도 누군가의 약점을 완벽하게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이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이해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의 제목은 '부당거래'지만 이들 간의 거래는 지극히 합당한 모양새다. 이미 서로의 머리 꼭때기에 있는 베테랑들의 간보기는 적당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인정하고 그대신 뒤통수만 치지 말자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는 이 '뒤통수' 역시 계산된 그러니까 서로 보험 하나 씩은 들어두고 있다는 점을 애써 숨기기는 커녕, 서로에게 자신의 무기를 보여주고는 큰 일 없이 서로 좋게좋게 넘기자 라는 합당한 거래를 이어간다.

극 중 상황이 반전되고 역전됨에 따라 인물들 간의 이해관계와 주종관계 (이것은 확실히 주종관계에 가깝다) 역시 역전되지만, 상대를 쥐고 흔들던 자신이 한 순간에 발아래 놓이게 되더라도 이들의 동요는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보통 정의로운 주인공이 등장한 영화라면 이런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억울하고 참기 힘든 심정을 그대로 담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의 분노와 울분에 촛점을 맞췄을 테지만, 영화는 이런 울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 울분이 관객에게까지 100% 공감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즉 이들의 억울한 울분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벌여놓은 합당하지만 부당한 거래의 산물이며 또 하나의 연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의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도 '아, 드디어 내가 이겼군!'이라기 보다는 그저 역전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처럼 보인다. 내 머리 위에 있던 상대가 드디어 내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다고해서, 상대가 드디어 나에게 굴복했구나 라는 것보다는 굴복할 수 밖에는 없는 그 '순간'을 즐기는 정도로 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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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류승완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부를 만큼, 전체적인 짜임새나 에너지가 수준급이지만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라던지 혹은 '짝패'에서 느꼈던 날 것의 느낌에 반했던 이라면 완전히 대중의 코드에 들어온 그의 신작에 조금의 아쉬움을, 반대로 일반 관객들은 기존 상업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인 (물론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몹시 완성도 높은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금은 중간에 걸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뷔작부터 팬이었던 개인적인 시선으로서 류승완의 신작 '부당거래'는 분명 다운 그레이드된 대중성이나 성격으로 인해 모호해진 작품이 아니라, 확실히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그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대중영화에 녹여내는가에 대한 여정이었다고도 생각된다. 그 가운데 좀 더 자신의 성향이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들은 좀 더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하는 반면 대중들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었고, 좀 더 대중적인 코드를 잘 소화한 작품 같은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당거래'는 드디어 이 두가지 지점이 비로소 평균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이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성격을 가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당거래'와 비교하자면 분명 양면이 모두 조금씩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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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국영화들을 되돌아보면 '부당거래'와 비슷한 지점을 지향했던 작품으로 김성수 감독의 2006년작 '야수'를 들 수 있겠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그 뒤에서 이를 조정하는 배후세력 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가 사라져버린 씁쓸한 한국사회를 그려내려 했던 지향점은 같았으나, '야수'는 분명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부당거래'를 보고나니 좀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당거래'는 우리가 TV뉴스를 통해 너무 잘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사회 지배세력과 (혹은 신분) 그 사회에 물들어 권력을 이익을 위해 휘두르고 있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풍자'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철기 역시 완벽한 정의로운 피해자라기 보다는 가해자이자 그 구성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캐릭터에게 공감이나 동정을 주기 보다는 전체적인 씁쓸한 그림을 보고는 혀를 차게 되는, 풍자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아니면 좀 더 대중적으로 그리려고 했다면 관객들이 극중 최철기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의 상황을 좀 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치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처럼 더 감정을 담아줄 수 있는 캐릭터와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사회와 악이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국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바로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안타까움을 풍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내내 이런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 영화의 방식들을 대부분 지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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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후반부의 경우 최철기의 에필로그 정도로 묘사되어, 없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마지막이 있어야만 비로소 '부당거래'가 완성된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 뒷 이야기가 없어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좀 더 친절하고 확실한 방식을 원했다. 그렇게 얽혀있던 이들이 서로 엉켜붙고 하는 통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보호받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도 권력을 통해 상황을 역전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즉 이런 비리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죄를 추궁받기는 커녕 어깨 쭉 펴고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뒤로 서울이라는 도시(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풍경을 비추는 것, 또한 수미쌍관을 이루는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은 희망적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이고 계속된다는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비로서 '부당거래', 즉 법을 수호하는 자들과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합법적으로 만들어낸 '부당한 거래'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들려준다. 그래서 영화는 통쾌하지도 애절하지도 않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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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다들 베테랑들이라 간보기 없이 바로 실력발휘들 하시더군요 ㅎ 가장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오히려 주인공인 황정민이었는데, 이건 주인공이라는 전형적인 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조연들의 연기는 이 세계관을 형성하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으며, 류승범의 연기는 갈수록 물이 오르고만 있는데 하나 걱정되는건, 그의 말투나 연기가 주양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아주 어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류승범을 보는 익숙한 시선 때문에 그저 코믹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2. 류승완 감독의 작품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들도 반가웠어요. 안길강은 거의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지만, 왜 안나오나 싶던 김수현은 나름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하더군요. 이런 캐릭터도 멋졌어요. 김수현씨!

3. 이경미 감독의 연기는 자연스러워서 못알아볼 정도였으나, 이준익 감독의 까메오는 '나 이준익 감독인데 깜짝출연했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어색함 그 자체더군요 ㅋㅋ

4. 조영욱 감독의 음악은 확실히 좀 과잉으로 느껴졌는데, 그 과잉이 이 작품과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확실히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기보다는, '이 장면은 이런 긴장감을 주는 장면이야' '심각함이 극에 달했다고!'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이런 과잉이 좀 더 영화를 장르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아요.

5. 이춘연 님이 특별출연하셨는데 무려 캐릭터 이름이 '엄충수 경찰청장'!! 

6. 류승완 감독님은 예전에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단독으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던터라, 그 이후로는 왠지 더 반가운 느낌이에요. 그 때 제 블로그와 DP닉네임을 이미 알고 계셔서 감동받았었는데 말이죠 ㅠ (류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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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필름트레인, 외유내강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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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2005)


올 가을, 범람하는 멜로 영화들 가운데 무엇을 볼까 고민하던중

여러가지로 감안해보되 가장 제대로 된 신파를 보여준다는 '너는 내 운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덧 당당히 주인공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명실공히 주연 연기를 펼친,

내가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DJ와 이름이 같은 황정민과

본인의 목소리보다 조정린의 성대모사로 국민들에게 더 잘알려져 있는 전도연 주연의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는, 역시나 제대로 된 신파였다.

신파의 본질은 유치함과 정석일터. 이 영화에서는 최근 국내영화에서는 몹시도 찾아보기

어렵고, 개그 프로나 시트콤 등에서만 간간히 등장했던 '나 잡아 봐라' 시츄에이션이

버젓이 등장하는 등 유치한 장면들과 단순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도 이것저것 시도하려다 망한 국내 미스테리 스릴러 물 보다도 훨 나은

느낌을 준것에는, 배우들의 열연이나 역시나 어쩔 수 없는 감정의 동요 등도 있겠지만

제대로,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것에 있는거 같다.


거기에 조금만 어설퍼도 완죤 유치뽕으로 흐르기 쉬운 신파멜로 장르에서 이 정도 퀄리티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수준이라 하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더 큰 감동과 눈물을 기대했었다.

황정민의 완죤 시골 총각의 연기와 외출에 이어 다시금 감초 역할로 출연한 류승수의 연기등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내가 기대한 것은 완죤 '엉엉'우는 분위기였는데,

거기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황정민이 바닷가에서 '은하야~'하고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르게,

역시 바닷가에서 구슬프게 흐느끼던 파이란에 강재가 살짝 떠오르기도했다.


여튼 올 가을 멜로 영화 한편은 제대로 본 것 같다.

이제 멜로는 그만...나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습득하러 가야겠다~

ㅋㅋㅋ



글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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