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고든 레빗 : 연대기 (Joseph Gordon-Levitt : Chronicle)


여기 한 남자 배우가 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화제작 '인셉션'을 통해 '500일의 썸머'에 이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바로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이다. 조셉 고든 레빗의 필모그래피가 흥미롭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는 헐리웃의 대표 배우로 성장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는 마이너한 감성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배우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론 분명 헐리웃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라는 점에서 더 늦기 전의 그의 짧지 않은 연대기를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흥미로운 필모그래피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예상보다 더 흥미롭고 결코 짧지 않은 커리어는 알면 알 수록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에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바로 외계인 가족이었던 것이다)

 
처음 성인이 된 조셉 고든 레빗을 본 사람들은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3rd Rock from the Sun)'에 나왔던 그 아이구나!'라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아역 연기자 출신으로 우리가 흔히 알만한 작품에도 여럿 출연했었다. 앞서 언급한 TV시리즈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을 비롯하여 1994년 작으로 우리에게는 대니 글로버 주연의 야구영화로 기억되는 '외야의 천사들 (Angels in the Outfield, 1994)'에도 출연하였으며, 브래드 피드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에서는 주인공 노먼이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며, 데미 무어와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1996년작 '주어러 (The Juror, 1996)'에서는 데미 무어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TV시리즈와 작은 영화들에서 아역 연기자로 크고 작은 역할들을 연기했었는데, 의외로 배우들이 좋은 작품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이 조금은 놀랄 만한 점이었다.



(이 작품에는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 외에 어린 데이빗 크럼홀츠도 출연했었다. 데이빗 크럼홀츠는 미드 '넘버스'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데, 이런 풋풋한 모습을 보니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꼭 챙겨봐야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 기분이다. 더 재밌는건 '넘버스'의 에피소드에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적도 있다는 사실!)

그러다가 아역의 티를 살짝 벗은 19살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헐리웃 청춘 영화의 산실로 불리는 (점점 불려지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이었다. 이 작품은 초기 소수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가 히스 레저가 주목을 끌었을 때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실 이 작품을 조셉 고든 레빗 때문에 다시 꺼내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을 통해 주목 받은 것은 물론 히스 레저와 줄리아 스타일즈 였겠지만, 여기엔 분명히 조셉 고든 레빗도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했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점점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적어도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의 팬들 사이에서는) 그 중요도가 커져가는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DVD로도 출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미에서는 블루레이로까지 발매가 되었었는데 어쨋든 이 작품을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브릭' 이전에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비중있는 출연이라면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보물성 (Treasure Planet, 2002)'에서 주인공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브릭'은 성인 배우로서 조셉 고든 레빗을 다시 재조명해준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를 이름과 함께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2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던 '브릭 (Brick, 2005)' 이었다. 고등학생과 교내를 배경으로 누아르 장르를 써내려간 이 기발한 작품은 한 편으론 참 유치하고 단순해 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느와르와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전혀 다른 배경에 완전히 대입시킨 작품으로서 평단에 큰 주목을 받았었다. '브릭'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그 였다. '브릭'에서 처음 조셉 고든 레빗을 보았을 때는 사실 히스 레저를 보는 줄 알았었다. 아직까지도 그를 떠올리면 '아, 첨에 히스 레저 닮은 배우로 생각했던' 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을 정도로, '브릭'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좀 더 골격이 작고 여린 히스 레저 같아 보였었다.



(적어도 나에겐 히스 레저를 연상시키는 배우로 출발했던 조셉 고든 레빗에게, 이제 더이상 히스 레저의 그림자는 없다)

그런데 구글링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저렇게 둘이 붙여 놓고 보면 꼭 닮았다고만은 할 수 없을텐데, '브릭'을 보고 들었던 인상은 분명 '히스 레저'였다. 이미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통해 함께 연기했었고, 만약 히스 레저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어떤 작품에서든 다시금 만날 수도 있었을 이 두 배우가 또 한번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팬으로서 역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톰과 썸머는 이미 2001년 '매닉 (Manic)'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났었다)

 
 
'브릭'의 성공 이후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밟겠구나 싶었었으나 의외로 그의 모습을 한 동안 (적어도 국내 극장가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브릭' 이후 2005년부터 2008년 까지 제법 많은 영화에 주연, 조연을 맡았었지만 이렇다할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더 구체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금새 수면 위로 떠오를 줄 알았던 그를 기다리기가 점점 지루해질 때 쯤, 조셉 고든 레빗은 전혀 의외의 영화와 캐릭터로 우리 곁에 다가왔는데 바로 이병헌이 출연해 더 큰 관심을 끌었던 헐리웃 블럭버스터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가 그것이었다 (실제 북미 개봉 시점을 보면 '(500)일의 썸머'가 같은 해 다른 달로 조금 더 개봉이 빠르지만, 국내 개봉 시점으로 보면 '지.아이.조'가 앞서 있었다). 당시 썼던 '지.아이.조' 리뷰에 조셉 관련 부분을 끄집어 내보자면,

'사실 출연 사실을 알고 그나마 기대했던 건 조셉 고든-레빗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았다(마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왜 <이온 플럭스>에 출연했을까 했던 것 처럼). 그가 맡은 렉스 캐릭터 역시 2편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모양이지만, 왠지 이런 영화와 그 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 평가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과연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는 아직까지 좀 의문인데....음....의문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는, 젊었을 때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아마도 수십년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런 클래식함이 더 깊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드디어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최근 개봉한 '인셉션' 대신 '(500)일의 썸머'에서 사용한 이유는, 이 작품에서 이미 그의 연기가 많이 자리를 잡고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이 데샤넬이 영화 속 '썸머' 그 자체였듯이, 조셉 고든 레빗 역시 '톰' 그 자체였다. 이 영화 속 '톰 핸슨'이라는 캐릭터는 비슷한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도 괜찮은 작품이 되었겠지만, 다른 여배우가 맡았더라면 조이 데샤넬 특유의 뉘앙스는 살릴 수 없었을 것처럼, 톰 역시 조셉 고든 레빗 만의 사소한 디테일들이 모여 지금의 '톰 핸슨'을 만들어 냈다. 두 배우 모두 연기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평소의 모습이 은연 중에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했는데, 확실히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조셉 고든 레빗을 '그냥'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라 '매우' 좋아하는 배우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SNL이 맞다)

 
'(500)일의 썸머'이후 조이 데샤넬의 팬을 자처하게 되면서 그녀의 관련 소식을 찾다가 자연스레 조셉 고든 레빗에 관한 소식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 알면 알 수록 마음에 든달까. 그의 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무비 스타 혹은 셀러브리티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커리어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깊게 받을 수 있었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어느 자리, 어떤 상황에서 담긴 사진들을 보아도 모두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있었으며,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들이 더욱 그를 특별하고 개성있는 배우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이런 느낌도??)

그의 다양한 활동들 가운데는 직접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도 있고 단편을 연출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아우를 만한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라면 'hitRECord'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트위터를 알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고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러가지 결과물들을 보고나서야, 그의 아티스트적인 역량과 자부심 혹은 욕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조셉 고든 레빗을 남들과는 다른 배우로 만들어 주는 (연기 외에) 핵심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방문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hitRECord.org'를 방문해보라!





(그리고 우리를 흥분하게 만든 '인셉션' 속 '아서'로 분한 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Inception, 2010)'에서 아서 역할로 분한 그의 모습은 기존 과는 또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코스츔을 입은 듯 곱게 빗어 넘긴 올백 헤어스타일과 좁은 어깨를 그대로 드러낸 타이트한 양복 차림의 그는, 고풍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는 아서와 맞아 떨어지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였다. 특히 시크한 듯 찡그리는 그 표정이나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귀여움마저 드는 표정 연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하차하기로 한다는 소식 이후, '(500)일의 썸머'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새롭게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새로운 피터 파커로 조셉 고든 레빗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으나 '인셉션'에 등장하는 무중력 액션 시퀀스를 보니 새로운 스파이더 맨으로서 (역시 아직까지는 어색함이 더 크지만)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 역할은 다른 배우로 내정이 된 상태).

어쨋든 '인셉션'은 '(500)일의 썸머'와 맞물려 서로 다른 매력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인셉션'을 보는 내내 '아서'로서가 아니라 썸머에게 휘둘리던 불쌍한 '톰'으로 느껴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혹시 자네, 아직도 썸머를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니겠지...)


'인셉션' 후 조셉 고든 레빗은 또 다른 작품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로 우리 곁을 찾아올 예정이다. 북미 기준으로 2011년 1월 공개를 목표로 작업중인 'Hesher'라는 작품인데, 위의 스틸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조셉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는 그 외에 나탈리 포트만과 레인 윌슨 등이 출연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런지는 확실히 미지수다. 

참고로 조셉 고든 레빗은 현재 'Live with It'이라는 조나단 레바인 감독의 작품에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안나 캔드릭, 세스 로건 등과 함께 캐스팅 된 상태이며, '쥬라기 공원' '스파이더 맨' '우주전쟁'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데이비드 콥 (David Koepp)이 연출을 맡은 'Premium Rush'라는 작품에도 캐스팅이 된 상태다. 




(훗, 내 커리어는 이제 시작일 뿐. '인셉션'은 거들 뿐)


조셉 고든 레빗의 커리어를 살펴보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커리어와 필모그래피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좀 좋은데' 에서 시작된 관심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야, 이거 잘못하면 또 하나의 팬 블로그를 만들어야 하는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떠오르는 배우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배우로서 작품 활동 외에 아티스트로서 자신 만의 퍼포먼스 영역을 넓혀가는 점이나, 이 청년이 갖고 있는 자세나 가치관에 동요되었다고나 할까. 알면 알 수록 더 끌리는 배우가 바로 조셉 고든 레빗이 아닐까 싶다. 이제 그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2011.12.15 추가 업데이트

지난 번 조셉 고든 레빗의 연대기 마지막에 출연 예정작이라고 거론 했었던 작품 가운데는
'Live with It'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50/50'이었다.


세스 로건, 안나 캔드릭 등과 함께 출연한 이 작품에서 JGL은 암환자인 '아담'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기존에 그가 갖고 있는 평범한 듯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역시 그 안에서 자신 만의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 캐릭터와 상당한 싱크로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바가 삶과 죽음을 극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저 일상의 한 조각으로 거리를 두고 그리려고 한 점이라는 걸 봤을 때,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의 건조한 듯 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진실이 담긴 눈망울은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일상과 캐릭터로 등장하는 그를 보다보니, 저절로 썸머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한동안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다음 출연 예정작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다. 존 블레이크 역할로 출연할 예정인 JGL의 모습은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과연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을 마무리하는 이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낼까!



2012.10.26 추가 업데이트

업데이트를 깜빡하고 놓쳤는데 2012년 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빼먹을 뻔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영화는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한 '블레이크'를 중심으로 보자면 '블레이크 라이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블레이크의 비중이 의미상으로 중요한 작품이었다.



'인셉션'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다시 한 번 등장한 JGL은, 영화 개봉 전 모든 이가 '로빈'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경찰 '블레이크' 역할을 맡았는데,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만큼은 아니지만 대단원을 마무리 하는 이 작품에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다시 한 번 애정을 갖게 되는 캐릭터인 동시에 거울로 삼게 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기존 그가 연기한 작품들을 보면 그 특유의 좁은 어깨 때문인지 조금은 연약한 이미지가 없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블레이크는 정의라는 것을 대변해 줄 곧은 인물로서 결코 연약하지 않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로빈'이라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한 껏 안고 시작한 캐릭터였지만, 결론적으로는 '블레이크'로서도 충분히 독립 가능한 연기를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에 국내에서 만나보게 된 '루퍼 (Looper, 2012)'. 영화와 별개로 조토끼의 팬으로서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 내내 살짝 못 알아볼 정도의 분장을 한 채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인데,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저러다가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제 얼굴을 찾지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긴가민가한 얼굴로 연기를 펼친 작품이었다. 그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미래에서 온 자신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분장이 아니더라도 그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었을 정도로 브루스 윌리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그의 노력이 엿보였던 작품이었다. 얼굴이 아주 다른게 아니라 미묘하게 (긴가민가 수준) 다른 경우라 어떤 면에서는 익숙한 그가 보였다가도, 다른 장면에서는 낯선 그를 보게 되기도 했는데, 조셉 고든 레빗의 팬이라면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다른 얼굴로 연기하는 JGL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하다.


현재 조셉 고든 레빗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 (Lincoln, 2012)'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연기를 마쳤으며,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과 '다빈치 코드'의 후속작 '천사와 악마'를 연출했던 데이빗 코엡 감독의 신작 '프리미엄 러쉬 (Premium Rush, 2012)'에도 출연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감독, 주연, 각본까지 맡은 영화 '돈 존스 어딕션 (Don Jon's Addiction, 2013)'까지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품은 그 외에도 줄리안 무어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하고 있어 더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를 넘어서서 이제는 감독과 각본에 까지 영역을 넓힌 JGL의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본다!


'연대기' 시리즈는 주인공의 작품이나 앨범이 추가될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조셉 고든 레빗 출연작 리뷰

* 브릭 (Brick, 2005) _ 누아르 장르의 진화 (http://www.realfolkblues.co.kr/449)
*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 _ 예고편을 좀 더 실감나게 즐기는 방법 (http://www.realfolkblues.co.kr/1054)
*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_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189)
* 인셉션 (Inception, 2010) _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330)
* 인셉션 _ 블루레이 리뷰 (http://www.realfolkblues.co.kr/1419)
* 50/50 (,2012) _ 보이지 않던 반대편의 50%에 대해 (http://www.realfolkblues.co.kr/1571)
*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_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되다
(http://realfolkblues.co.kr/1669)
* 루퍼 (Looper, 2012) _ 흥미로운 장르영화 그리고 설마의 가능성 (http://realfolkblues.co.kr/1702)




자료참고 / imdb.com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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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folkblues.co.kr 선정
2010년 올해의 영화


2010년 한 해도 참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몇 달을 고대하여 결국 보게 된 기대작들도 있었으며, 예매하기 버튼을 누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볼까말까를 고민했던 작품도 있었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는 거의 보지 않고 어지간하면 영화의 장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성격이라 그런지, 올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다른 분들과 평이 극으로 갈려 '아, 이제 내 취향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구나'라는 쓸쓸함과 쾌재를 동시에 누렸던 작품도 있었고, 반면 많은 분들의 동의하에 서로 누가 더 이 영화를 사랑하는 지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발산하게 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올 한해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이른바 '올해의 영화'를 꼽아보게 되었습니다.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성된 리스트이며, 순서는 순위없이 개봉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찰리 카우프만의 작가적 야심이 정말 대단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내 안을 카우프만이 훤히 다 꿰뚫어보고 있는 듯해 한없이 위로받고만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내게도 있었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앞으로도 조이 데샤넬과 조셉 고든-래빗의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고 싶을 때 만큼이나, 연애에 관해 떠올려야 할 때면 이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네요.






밀크 (Milk)
구스 반 산트 감독

구스 반 산트의 2008년 작 '밀크'는 동성애자로서는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되었던 하비 밀크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구스 반 산트가 언젠가는 만들었어야 할 운명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이런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라고만 생각하기도 하는데, '밀크'야 말로 보편적인 정서와 동성애적 의미를 모두 완벽하게 감싼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과거를 살았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스 반 산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를 구성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를 추억하는 것은 곧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해요. '밀크'를 보고 느꼈던 가장 큰 생각이라면, '과연 나는 이 만큼 뜨겁게 살고 있는가?'라는 거였죠.

(2008년 작이지만 국내에는 2010년 2월 개봉했기에 포함했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되어 다시 보게 된 영화는, 스토리 자체 보다는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지에 더 반응하며 보게 되더군요.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주차장을 보세요!'는 올해 최고의 대사 중 하나.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어린아이가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논란을 갖기 이전에, 그렇담 '왜? 아이여야만 했나?'를 떠올려본다면 좀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인셉션 (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올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린 작품이라면 단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인셉션'의 맹점은 꿈의 단계별 구조 분석과 그 상관관계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관객이 바로 그 구조를 분석하고 싶게 끔 만드는 구조의 특성에 있다고 생각되네요. 예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썼을 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것이 정답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되는 구조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놀란 스스로 말했거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답이 아닌 그 외의 답들도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구조를 잘 '설계'했다는 거죠. 설계 자체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도 코브의 감정선에 공감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영화였어요.




토이 스토리 3 (Toy Story 3)
리 언크리치 감독

사실 영화를 보기 전 부터 울거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예상되는 줄거리를 가졌더라도 관객을 100% 울리고 마는 픽사인데, 아무렴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난감들 이야기의 마무리를 그냥 적절히 정리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죠. 사실 100% 마음에 드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전편들로부터 이어져온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눈물은 또 한 번 어쩔 수가 없더군요. 






옥희의 영화 (Oki's Movie)
홍상수 감독

올해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와 '옥희의 영화'라는 이른바 '홍상수 월드'의 영화 두 편을 내놓았죠. 두 편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했는데, 둘 모두 리스트에 올리려고 하다가 어렵게 어렵게 '옥희의 영화'를 택했네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수 많은 명장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폭설 후의 강의 실 대화 장면이었어요. 뭐랄까 이 장면은 마치 판타지에 가까운 장면이었는데, 나도 저런 순간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는 한 편, 홍상수 월드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장면이라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장면이기도 했죠. 어쨋든 저는 홍상수 월드의 신봉자입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요.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발음하기도 어려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이라는 이름은 씨네필들 사이에서 요 몇해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였죠. 사실 그럼에도 저는 그의 전작들을 거의 보질 못했었는데, 이 작품 '엉클 분미'가 되어서야 비로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첫 느낌은 물론 '어렵다'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 작품은 결코 쉬운 화법의 영화는 아니에요. 간단히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보기엔 굉장히 깊은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동시대의 감독 가운데 보기 드문 화법을 가진 감독을 만난다는 경험과 '엉클 분미'에서 보여주었던 공존에 대한 경험,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고차원'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웠던 작품이었어요.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감독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는 국내에서는 마치 최연소 억만장자의 성공담 처럼 홍보되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그리고 페이스북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로 여겨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큰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이스북'에 대한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데이빗 핀처의 놀라운 연출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은 모두 좋아하고 특히 '조디악'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셜 네트워크'는 '조디악'과는 또 다른 지점의 경지에 있는 작품이었어요. 트렌스 레즈너의 음악은 올해의 사운드트랙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었구요. 아, 참고로 원제는 'The Social Network'로 별로 쿨하지 못하지만, 국내 제목은 '소셜 네트워크'로 매우 쿨한 편입니다.





그 밖에 아쉽게 리스트에 들지 못한 작품들로는 올해 가장 인상깊게 본 다큐멘터리 형식(하긴 이 작품을 완벽한 다큐멘터리로 보긴 좀 어렵죠)의 '맨 온 와이어'도 있고, '예언자' '인 디 에어' '하하하' '골든 슬럼버' '소라닌' '검우강호' '부당거래'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우강호'는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갈 수록 또 보고 싶었지는 작품이고, '소라닌'은 개인적으로 올해의 청춘 영화였으며, '골든 슬럼버' 역시 이사카 코타로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콤비의 신작으로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구요.

2010년 한 해도 참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2011년 한 해도 극장에서 만날 새로운 영화들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에 있습니다.






www.realfolkblues.co.kr 선정
2010 상반기 좋은 영화 결산


올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해에 비해 좀 더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가 적었다는 것인데, 하반기라도 부지런히 챙겨보도록 좀 더 노력해야겠네요. 지금까지는 결산을 할 때 항상 '베스트'라는 표현을 쓰곤 했는데, 뭐 개인적인 베스트라는 의미이니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 보다는 그냥 내가 좋았던 '좋은 영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렇게 선정한 상반기 '좋은 영화' 들을 한번 짧게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작품 간의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 역순이며, 각각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를 걱정했던 것처럼, 공드리 없는 카우프만도 그 걱정의 정도는 조금 덜했으나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아니 대압도된 느낌이었습니다. 카우프만은 항상 인간 존재와 마음의 심연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인이 감독을 맡게 된 이 작품에서는 드디어 그 심연의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영화란 무릇 이야기가 주는 감동도 있지만 본인만의 것으로 느껴질 때 더 큰 감동이 오기 마련인데, 카우프만의 심연에서 나를 발견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사실 분석해볼 만한 거리가 참 많은 작품임에도, 완전히 카우프만의 세계에 공감한 탓에 굳이 분석할 필요성을 못느낄 정도였죠.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마크 웹 감독

조이 데샤넬의 열혈팬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던 좋은 드라마였죠.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들을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방식, 알콩달콩 하지만 현실적이고 씁쓸함과 희망을 동시에 주는 이 작품은, 몇 년간 본 로맨스 영화들 가운데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나의 '썸머'를 떠올리게도 했구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제임스 마쉬 감독

그냥 포스터에 이끌려 보게 되었던 '맨 온 와이어'는 다큐라서 주는 흥미로움과 다큐답지 않은 극적인 요소가 완벽하게 결합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과 이를 그리는 방식의 진정성이 뒷받침 하는 가운데, 마지막 그 찰나의 순간의 경험은, 실제 이를 경험한 필리페 페티에 그것에는 절대 못미치겠지만 그래도 그 찰나를 스크린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았네요.






예언자 (Un Prophète)
자크 오디아르 감독

'예언자'는 오랜 만에 본 무게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분위기나 범죄를 다루는 방식, 그 안에 캐릭터를 넣은 방식이 회색 빛이라 좋았죠. 특히 '과정'을 그린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이 주는 강렬함, 그리고 그로 인해 유추할 수 있었던 몇 가지 것들도 이야기거리가 되었었고. 한 번쯤 다시 보아도 좋을 것 같네요.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올 상반기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권할 만한 좋은 작품을 꼽자면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를 첫 번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노'를 통해 평범하지만 진리를 그렸던 그답게, '인 디 에어'에서는 좀 더 깊은 삶의 얘기를 한 남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냅니다.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의 역량이 백분 발휘된 작품이었죠.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마틴 스콜세지 감독

'셔터 아일랜드'는 올 상반기 가장 뜨거웠던 작품 중 하나였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결말의 방향성의 여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볼 것이 많은(그러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콜세지가 만든 미장센에 감탄했는데, 올 상반기 호불호가 가장 크게 갈렸던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저의 견해는 물론 '호' 입니다.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
코엔 형제 감독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예전 영화들도 물론 좋아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의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에요. '번 애프터 리딩'도 좋았었는데, 이런 취향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시리어스 맨'이었죠. 이 작품을 보면 볼 수록 '아, 진짜 코엔 형제는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이렇게 삶이라는 것에 대해 유머와 진지함의 완벽히 조화를 이뤄가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재미마저 주는 이들의 영화기술은, 날로 대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많이 배웠던 작품이었어요.







공기인형 (空気人形)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실 이 리스트에 추가할까 말까 끝까지 고민했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공기인형'이었는데, 돌이켜봤을 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남는 잔상이나 깊이는 덜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서 (그리고 팬으로서) 또 한번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어서 최종적으로 리스트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그 '공기'가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죠. 







킥 애스 (Kick-Ass)
매튜 본 감독

'힛 걸' 이라는 인기 캐릭터와 더불어 이를 연기한 클로 모렛츠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 '킥 애스'. '다크 나이트' 이후 힘을 잃었던 (아니 겁먹었던) 히어로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것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과 그냥 웃어 넘겨도 괜찮은 것이 같은 것일 때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하하하
홍상수 감독

앞서 '시리어스 맨'을 이야기할 때 코엔 형제의 작품들에 대한 선호도와 비슷한데, 개인적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 역시 '잘알지도 못하면서'부터 훨씬 더 좋아진 경우에요. 사람들은 흔히 홍상수 영화를 이야기할 때 '먹물' '속물' 등의 표현을 쓰곤 하는데, 전 이것보다는 그 안에 홍상수 감독이 정말 얘기하려는 무엇, 그러니까 너무 순수해보여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것이 점점 확인된다는 점에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의'의 수준으로 발전된 것 같네요. 홍상수 월드의 공감대가 점점 확산되고 있어요~







시 (Poetry)
이창동 감독

21세기에 영화를 통해 시를 쓸 수 있는 감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적어도 국내에서 이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내공을 갖고 있는 감독은 이창동 감독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사실 그의 대표작들로 꼽히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등은 너무 자극적이고 과한 느낌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를 보고나서는 '아, 이 사람 정말 차원이 다른 시를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 작품 중 베스트는 단연 '시' 입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How To Train Your Dragon)
딘 드블루아, 크리스 샌더스 감독

드림웍스는 언제부턴가 '픽사'라는 라이벌 스튜디오의 그림자의 가려 이렇다할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었는데 (물론 그 가운데 '쿵푸팬더' 같은 작품은 제외해야겠죠), '드래곤 길들이기'는 작품 자체도 좋지만 드림웍스가 드디어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잡았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겠죠. 사실 이 이야기는 매우 교훈적이고 단순하고 익숙한 구조인데, 픽사가 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거든요. 다 아는 얘기로 울리고 감동 받게 하는것. 드림웍스도 자신들 나름대로 이런 것을 터득한 것이죠.







2010년 하반기에도 좋은 영화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좋아하는 영화들과 좋아하는 포스터는 너무 많았지만, <이터널 선샤인> 포스터 이후에 딱히 판넬로 구매할 만한 작품을 쉽게 정하지 못했었는데(사실 지금도 사고 싶은 건 너무 많아요. <스타워즈> 포스터들도 몇년 째 눈독만 들이고 있고,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뮤지션 포스터도 그렇구요;), 어쨋든 조이 데샤넬의 팬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그녀의 포스터를 하나 장만해야 겠다고 생각하던 중, <(500)일의 썸머> 해외 버전 포스터가 눈에 들어와 바로 지르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인기가 있었던 탓인지 현재 수급상태가 원활하지 못하고 가격이 뛴 상태라고 하던데, 저는 다행히 그 바로 전에 구입할 수가 있었네요 ^^;




프린팅 상태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무광 코딩인데, 매우 마음에 드네요.




사실 웹상에서 만나던 이미지로는 전부 다 확인을 못했었는데, 이렇게 벽에 걸어두고 자세히 확인해보니 '(500)일의 썸머'라는 제목답게, 포스터를 가득 채운 썸머 양의 얼굴이 무려 하나도 같은 장면이 없네요!!! 다양한 표정을 갖은 그녀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수십개의 표정을 하나로 확인하다보니 실로 '만족'스러울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그녀의 팬으로서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500)일이 썸머>포스터 구매 기념으로 전체 샷 한 컷. 몇 년 전에 구매해서 오랫동안 제 방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는 <이터널 선샤인> 포스터와, 역시 매번 교체 가능하지만 잘해야 연간으로 교체하고 있는 CD 프레임 포스터! 이것도 한 번 교체할 때가 되었군요 ㅎ

아... 볼 때마다 만족스러움이 절로 흐뭇하게 할 것 같네요 ^^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웹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500)일의 썸머>는 누가 뭐래도 주연을 맡은 조이 데샤넬 때문에, 조이 데샤넬 이므로, 조이 데샤넬 이라서 기대했던 영화였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조이 데샤넬은, <예스맨>에 이르러 매력 발산에 정점을 보여주었는데, 그간 그녀가 출연했던 작품 가운데 (국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제대로 된 로맨스 장르라 부를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포스터 속 분위기나 스틸 컷의 분위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이 전해지는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는, 그녀의 팬블로그를 운영하는 한 명의 팬 입장에서 어느 정도였는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조셉 고든-레빗은 <브릭 (Brick, 2005)> 에서 이미 인상적인 연기를 봤던 터라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여배우에 대한 사랑이 컸던지라, 영화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그녀에게 오롯이 받쳐져 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영화는 이런 나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있던 사람이 보아도 중심을 찾게 될 만큼 참 매력적인 영화였다.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어쨋든 <(500)일의 썸머>는 로맨스 영화다. 평범하지 않은 듯 하지만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듯 하지만 매우 특별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두 남녀의 이야기'라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지만, 영화가 그리는 화자나 심리를 그리는 주체는 남자 주인공인 톰(조셉 고든-래빗)이고, 톰의 연애담과 성장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야기다. 톰과 썸머 (조이 데샤넬)의 이야기는 한 번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겪어보았다는 말에 아니라며 불끈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잘 떠올려보면 내가 예전에 만났던 그녀는 썸머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내가 했던 고민들은 톰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누구나 다 겪었을 법한 남녀간의 이야기를 다뤘음에도 <(500)일의 썸머>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마크 웹 감독의 감각적인 편집과 영상 때문 만도 아니고, 영화를 보고나면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는 사운드트랙 때문 만도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처음 보게 될 때는 딱히 내 이야기다라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지만, 곱씹어 보면 볼 수록 나의 예전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에 있어서 <(500)일의 썸머>는 직접적인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어떤 에피소드를 두고 '아, 맞아 나도 예전에 저런 일이 있었지', '나도 저렇게 다투곤 했었지'라는 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겹치지 않을 지라도 무언가 내 기억 한 편을 공유한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진부해 보이는 홍보 카피는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매우 정확한 카피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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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타임라인을 묘사하는 영화의 방식도 흥미로웠다. 일반적이었다면 500일이라는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그릴 때,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그러니까 시간의 순흐름에 따라 굴곡을 겪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을 텐데 (그래서 500일이 되면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마크 웹 감독이 이 '500일'을 그리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시간의 순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유자재로 시간대를 이동하며 두 남녀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연애 초기에는 마냥 좋았던 그녀의 특징들, 공간들이 날짜를 며칠만 뒤로 돌려 보면 오히려 끔찍하고 불편한 것이 되어 버리는 연애의 굴곡을 짧은 호흡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관객에게 '이랬던 남녀가, 저렇게 변했다' 라는 짧은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500일 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에도 수 많은 굴곡을 겪는 남녀 관계를 보여주면서 어찌보면 그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영화의 구성 방식을 통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 역시 인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과정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주기도 하지만, 좀 더 정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렇게 좋았던 그녀의 모든 것을 잊고 살 수 있을 만큼 나는 성숙해졌는가 혹은 익숙해짐으로 인해 처음 느꼈던 설레임을 너무 쉽게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며 나의 추억과 현재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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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락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500)일의 썸머>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참 묘한 매력을 갖는 영화다. 처음에는 일반 로맨스 영화 같지 않은 엔딩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발한 엔딩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묘한 매력이라는 표현에는 은근히 애잔하고 쓸쓸하다는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가 선택한 엔딩은 분명 우울한 엔딩이 아니지만, 톰에게서는 여전히 썸머 양의 그림자가 보이고, 관객에게는 여전히 그 벤치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아른거린다. 물론 이런 감정은 나만의 것일지도 모르겠다(하긴 그 벤치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내 추억 속 한 장면과 너무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영화의 엔딩을 떠올려보면 깜찍한 결말을 선사함과 동시에, 영화가 500일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1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썸머 와의 500일과 똑같은 500일이 다시 한번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들게 한다. 우연 마저 자연이 섭리로 이해하게 된 톰이긴 하지만, 연애는 또 다른 문제다. 가을 양과의 새로운 로맨스가 여름 양과의 로맨스와 완전히 다를 수 있을까?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 (500)일의 썸머>의 소소한 재미라면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화 속에, 그 주변에 등장하는 뮤지션과 음악,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영화 속 톰과 썸머는 분명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취향은 확실히 남들과 좀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The Smiths'를 서로 좋아하고 신세대 답지 않게 예전 영화 '졸업'을 보고, 썸머는 비틀즈 멤버 중에도 링고 스타를 유독 좋아한다. 비틀즈 하면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 지배적으로 많고, 스미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중적인 취향과는 좀 다른 취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고 (나도 어쩌면 그런 면이 많아서인지 더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다 별로라고 하는 밴드와 영화를 몇 번씩 보고 듣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이런 취향의 주인공들을 내세운 것은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인 마크 웹 주변에 아무래도 이런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일반 관객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고, 결국은 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아주 작은 장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평소에 음악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 둘 간의 대화에서 소소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은 데뷔작에서 감각적인 영상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가끔 스크린에서는 과도한 재주를 부려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마크 웹 감독의 경우는, 정말 '딱 좋은' 정도였던 것 같다. 세련됨으로 치장할 수 있었음에도 아련함과 따듯함으로 아우른 오프닝 시퀀스와 중간중간 등장한 올드한 느낌의 시퀀스는 감각적이면서도 그 '온도'는 잃지 않는 영리한 연출이었다.


2009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1. 이 영화에는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1967년작 <졸업 (The Graduate)>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인용이 등장하는데, 특히 졸업의 그 유명한 장면을 패러디한 카메라 구도는 참 흥미롭더군요. 거기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가 아닌 그들의 다른 곡을 배치한 것도 센스라면 센스!

2. <졸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조셉 고든-레빗의 연기 스타일이 고전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여러 모로 더스틴 호프만이 연상되더군요. 확실히 장례가 촉망되는 배우에요.

3. 극 중 두 남녀의 대화 중에 썸머가 '너 토네이도 겪어 본 적 있어?'라는 대사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이 양은 <오즈의 마법사>를 리메이크한 TV단편 시리즈 <틴맨 (Tinman, 2007)>에서 도로시 역이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거든요 ㅎ

4. 극 중 톰이 입고 나오는 뮤지션 티셔츠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Joy Division이나 The Crash의 유명한 앨범 커버 티셔츠들을 입고 나오죠.

5. 극중 언급이 되는 The Smith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추억이 있어서 조금 남달랐었는데, CD/DVD 쇼핑몰을 운영하던 때에 해외뮤직비디오 DVD주문시 스미스를 껴넣으면 사장님이 항상 그랬었거든요, '이거 누가 사겠니?';;; 전 그 때마다 그랬었구요. '네, 이거 한 개씩은 꼭 나가요'. 꼭 스미스 뿐만 아니라 도대체 누가 살까 싶은 앨범들도 꼭 몇 장씩은 판매되죠. 그 때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어요.

6. 사운드트랙은 너무 좋죠. 사운드트랙 음반 리뷰는 http://www.realfolkblues.co.kr/1186 여기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7. 아, 참고로 제가 운영하는 조이 데샤넬 양의 팬블로그는 http://zooey.textcube.com 입니다 ^^; 조이당 여러분은 여기서 만나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Fox Searchlight Pictures에 있습니다.






(500)Days of Summer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영화를 보기 전에도 느껴지는 기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사운드트랙을 구매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인데 (하지만 일반인이 음반을 사는 수보다는 나의 이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_-;), 이런 경우 구매의 이유는 약 2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영화 자체가 워낙에 기대작이라 좋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 두번째는 영화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지만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이 역시 좋아질 것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 이렇게 일텐데, 조셉 고든-레빗과 조이 데샤넬이 주연을 맡은 영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의 사운드트랙은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된 경우였던 것 같아요. 조이 데샤넬 팬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야 말할 것도 없겠고(개봉 못하는 줄 알았었어요 ㅠ),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은 조이 양이 멤버로 있는 'She & Him'을 비롯해, Doves, The Smith, Feist, Wolfmother 등이 포진되어 있음은 물론 이 밖에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기대해 볼만한 밴드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기에, 영화를 미처 보기도 전에 사운드트랙을 집어 들게 되었네요.





지난 번 뮤지컬 영화 <나인>의 사운드트랙을 리뷰하면서, 사운드트랙의 장점은 역시 노래를 들을 때 장면이 저절로 연상되는 것이 최고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에게 있어 <500일의 썸머> 사운드트랙과의 첫 만남은, 분명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접한 사운드트랙은 이런 감점을 충분히 감안했음에도 음악만으로 만족스러운, 더 나아가 영화를 한껏 상상하게 하는 매력을 지닌 앨범이었어요.

독특하게 영화 속 남녀를 소개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두 번째 트랙인 Regina Spektor의 'Us'부터 본격적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Regina Spektor라는 뮤지션에 대해 평소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 곡만으로도 그녀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매력적인 보컬이자 곡이었어요. 특히 이 곡에서 Regina Spektor의 보컬은 마치 한창 때 bjork의 창법을 연상케 하는데, bjork의 광팬인 저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보컬이더군요. 예전 'Human Behaviour' 시절의 뷰욕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좋았어요. 앨범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The Smith의 곡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과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이렇게 두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후자는 She & Him의 리메이크 버전으로도 만나볼 수 있어요. Black Lips의 'Bad Kids'는 복고풍의 리듬과 멜로디 라인의 가벼운 록큰롤 곡이고, Doves의 'There Goes The Fear' 역시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의 곡으로 전체적으로 듣기 편한 곡 구성을 담고 있습니다.

<500일의 썸머> 사운드트랙에서는 브릿 팝, 인디 록 곡들과 더불어
Hall & Oates의 'You Make Me Dreams'나 Simon & Garfunkel의 'Bookends'같은 올드팝들도 수록이 되었는데, 영화에 삽입된 올드 팝들이 여럿 그렇듯이 이 곡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려운 편입니다. 이 곡들이 무척이나 세련되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앨범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물흐르듯 자연스런 진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불어 발음 만으로도 색다른 분위기를 전하는 Carla Bruni의 'Quelqu’un M’a Dit'은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를 전하고, Feist의 'Mushaboom' 같은 곡은 마치 조이 데샤넬이 부르는 듯한 착각 마저 느껴질 정도로(Feist의 음악을 이전에 여럿 들어보았음에도) 이 앨범과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곡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앞서 bjork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했던 Regina Spektor는 'Hero'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을 또 한번 수록하였는데, 이 곡을 듣고나니 더욱 명확해 지더군요. Regina Spektor의 솔로 앨범을 어여 구입해 봐야겠다고 말이죠. 참 심플하고 담백한 악기구성과 보컬이지만 무언가 애절함과 진심이 전해지는 보컬이었어요. 그녀의 앨범은 언제고 구매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Simon & Garfunkel의 'Bookends'는 이렇게 들으니 마치 Eels처럼 느껴지기 까지 하네요. 하긴 Eels 비롯한 수 많은 뮤지션들이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서 이런 감성을 배워온 것이겠지요.

Wolfmother의 Vagabond는 살짝 우울해졌던 앨범에 다시금 활기를 불러옵니다. Andrew Stockdale의 보컬은 역시나 매력적이구요. 앨범을 통틀어 가장 강한(?) 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크게 튀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는 아니에요. 이런 곡들이 어떤 장면에 사용되었을지 새삼 궁금해지는 순간이군요. Meaghan Smith의 'Here Comes Your Man'은 마치 미란다 줄라이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전주가 먼저 반기는 곡이에요. 후반부의 진행은 컨트리에 가까운데 묘하게 장르를 다루는 재미있는 곡이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The Smith의 곡인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를 She & Him의 조이 데샤넬의 보컬로 만나볼 수 있어요. 기존 She & Him의 곡들보다 훨씬 고전적인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는 조이 양의 곡을 듣는 것도 인상적이네요. 'Please, Please, Please'하는 후렴구의 애절함은 (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쪽이 더 애절하네요 ^^;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사운드트랙에 대한 감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 될지도 모를 일이에요. 어찌 되었든 사운드트랙이란 영화와 별개로는 생각해볼 수 없는 부분이 다분하고, 어떤 장면에 어떻게 쓰였는지에 따라 곡이 본래 지닌 매력을 더 배가 시킬 수도 감소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영화를 더더욱 (아직도 '더'가 남았다면!) 보고 싶어졌다는것!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나서 사운드트랙에 대한 짧은 감상을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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