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아이 OST가 국내 정식 발매됩니다!



오랜만에 존댓말로 쓰는 글이네요 ^^;

아무래도 제 블로그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은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이 많다보니, 그 분들께도 소식을 전달해 드릴 겸해서 오랜만에 정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던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의 사운드트랙이 워너뮤직코리아를 통해 국내에도 라이센스로 발매되게 되었습니다 (3월 5일 발매예정). 이전 포스팅을 통해 직접 산 일본반을 소개해 드리기도 했었는데요, 다행히 국내에도 정식 발매되어 더 많은 분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감동적인 OST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워너뮤직코리아에 지인 분이 계셔서 우연한 기회에 '늑대아이' OST 발매에 조금 관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발매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무조건!'이라며 흥분하며 내야 한다며, 조르다시피 했던 것이 어느 정도 작용 ㅋ, 결국 라이센스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네요 ㅎ


이번 라이센스 반의 발매가 더 의미 깊은 것은 일본반과 동일한 패키지로 제작되었다는 점인데요, 많은 음반들이 국내에 발매될 때는 아주 기본적인 스펙으로 발매되어 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측면이 적지 않았었는데, 이번 '늑대아이' OST의 경우는 워너뮤직코리아에서 적극적으로 이 부분을 검토하여 결국 일본반과 동일하게 패키지와 속지 구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기존 일본반 소개 글을 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이 앨범의 패키지는 분명 소장가치 있고 의미있는 앨범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반가움이 큰 것 같습니다.


더불어 속지에 수록된 내용들 모두 한국어로 100% 번역되었으며, 부족하지만 제가 쓴 음반에 대한 소개글도 속지로 수록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늑대아이' OST를 통해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더 길게 얘기는 못하지만 BD 유저분들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아래 YES24 링크를 통해 프리오더 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쇼핑몰에서도 판매중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8483545?scode=029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비러브드 (Les bien-aimés, The Beloved, 2011)

또 다른 사랑의 역사



크리스포트 오노레 감독의 '비러브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 째도, 둘 째도 주연을 맡은 루디빈 사니에르 때문이었다 (셋 째는 카트린트 드뵈브). 요근래에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조이 데샤넬이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프랑소와 오종의 페르소나였던 그녀에게 한 참이나 빠져있었더랬다 (이 때는 분명히 루디빈 사니에르로 표기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루디빈 새그니어로 표기하는 듯). 당시 프랑소와 오종에게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 등을 통해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 (2000)'까지 찾아보게 되었을 정도로 당시 그녀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적이 있었다. 이후 한 동안 극장에서 그녀의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찾아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국내에 소개는 거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 '비러브드'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 Why No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반가운 루디빈의 출연, 그리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60년대 파리의 아기자기함과 컬러풀한 이미지까지, 이런 것들로 가득찬 사랑스러운 영화일 줄로만 알았으나 '비러브드'는 그것에 그치지 않은 가볍지 않은 사랑 이야기, 아니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영화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의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는 마들렌과 그의 딸 베라로 이어지는 각각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거침 없이 이야기한다. '비러드브'의 이야기에 선뜻 공감하기에는 물론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도 어느 정도 있는 듯 하지만, 그 보다는 아직 감독도 사랑이라는 존재에 대해 완전한 답을 찾지 못한 것 때문인 듯도 하다. 이것은 감독 역량의 부족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존재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모르겠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는 얘기다.


가끔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로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동들도 있고, 또 공감하지 못했기에 더 깊은 이해가 어려운 장면들도 있지만 영화가 마지막으로 가면 갈 수록, 영화 스스로도 그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 '비러브드'는 굳이 같은 장소가 등장하는 어머니와 딸의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를 배경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 Why No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비러브드'가 내어 놓은, 이 알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그나마의 대답은 아마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사랑을 나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워낙에 힘들기도 하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를 역설하기도 한다.


이 짧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사실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말로 길게 풀어놓기 보단 더 느껴보고 사랑해봐야 알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더 들기도 했다.


아, 이 사랑이라는 것 정말 어떻해야 할까?



ⓒ Why No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오랜만에 만난 루디빈 사니에르는 일단 너무 말라버렸어요 ㅠ 어린 시절 통통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는데, 너무 말라버린 탓에 살짝 안쓰럽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저 미소를 보세요 @@


2.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의 스타일도 인상적이더군요.


3. 개인적 욕심이 있다면 그냥 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젊은 마들렌과 자호밀의 러브 스토리만 그렸더라도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도 싶어요. 이러면 전혀 지금의 '비러브드'와는 다른 작품이겠지만 말이에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hy Not Productions 있습니다.


 



공모자들 (블루레이 리뷰)
사회 문제로부터 시작된 범죄 스릴러


지난 해 개봉한 신인 김홍선 감독의 작품 '공모자들'은 그 동안 코미디 연기로 널리 알려져 있던 임창정의 진지한 연기와 불법 장기 밀매라는 사회적 문제와 제법 고어한 수위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09년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한 신혼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는데, 여행 중 아내가 사라져 두 달 뒤 장기가 모두 적출된 채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영화 '공모자들'은 바로 이 사건에서,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사건을 보고 느꼈던 분노에서 시작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인 김홍선 감독은 이 분노를 범죄, 스릴러 장르로 풀어냈다.






일단 '공모자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영화 특유의 난데 없는 개그 시퀀스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몇몇 이름 있는 감독의 작품을 제외하면 한국영화에서는 (특히 초반에) 극의 내러티브나 캐릭터의 설정과는 전혀 무관한 개그 시퀀스가 등장해 후반부에 갑자기 진지해지는 분위기가 더 적응 안되도록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는 적어도 그런 낭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고어보다도 그 사건 자체가 갖고 있는 공포감이 더 중요한 작품이기에, 이렇듯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는 영화에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았다. 일단 임창정의 진지한 연기는 크게 어색할 것이 없었으나 어색한 부산 사투리는 전반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방해하는 요소였으며, 후반 부의 내러티브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측면이 없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 들기 보다는 애초 감독이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그 '분노'만이 과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더 강한 편이다. '공모자들'의 방식과 비슷한 형태의 영화라면 '와일드 씽'을 들 수 있을 텐데, 주제 면에서는 '공모자들'이 갖고 있는 사회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영화적 재미나 내러티브 측면에서 반전의 묘미를 만끽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깜짝 놀랄 정도로 좋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화질을 그렇게 기대하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는 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될 정도로, 최근 본 화질 가운데 손꼽을 만한 수준급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공모자들'은 레드원보다 한 단계 윗급인 알렉사(Alexa) 카메라로 촬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그 영상이 어디 가지 않더라.







'공모자들'을 더 범죄 스릴러답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보다도 최상급의 화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필름 라이크 하면서도 날카롭고 표현력 높은 화질은 영화의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과 분위기를 충분히 표현해 낸다. 특히 오달수가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모든 장면이 화질 중요 체크 포인트라고 해도 좋을 텐데, 그의 얼굴에 거칠게 자란 수염의 디테일을 확인해 보는 것도 (일부러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절로 확인하게 될 정도의 화질) 좋을 것이다. 식당에서의 아무렇지 않은 장면에서도 화질의 우수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오달수가 입고 있는 화려한 무늬의 셔츠 때문이었는데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인다는 게 이 타이틀의 장점이라 하겠다.







어두운 밤 부둣가에 걸터앉아 정박해 있는 배들의 약한 불빛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장면에서도 블루레이의 우수한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클로즈업 장면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중국 로케이션과 사우나 세트 제작 등 영상미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작품인데, 블루레이 화질의 놀라운 디테일이 이런 영화의 숨겨진 보물들을 빛나게 한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공모자들' 블루레이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화질, 화질일 것이다.


Blu-ray : Sound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최신작다운 퀄리티를 들려준다. 초반 수록된 사운드의 우퍼가 조금 강한 듯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극의 긴장감을 배가 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전반부가 차근차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후반부에는 자동차 액션을 비롯하여 좀 더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사운드 메이킹까지는 아니지만 (여기에는 워낙 좋은 화질로 인한 상대 평가가 있다) 특별히 부족한 점도 없는 평균 이상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음성해설인데, 김홍선 감독, 최다니엘, 조윤희, 조달환, 정지윤이 참여하고 있다. 주연을 맡은 임창정은 뮤지컬 공연 관계로, 오달수 역시 공연 준비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유쾌하게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모자들 제작과정'에서는 촬영장의 소소한 일상들과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는데, 일단 제작과정 영상이 HD화질로 수록되었다는 점에 대한 반가움을 말하고 싶다. 한국영화 블루레이를 볼 때 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이 부가영상들이 전부 4:3 비율의 SD화질로 수록되는 경우가 많아 본편을 보며 느꼈던 블루레이의 장점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공모자들'의 제작과정은 시원한 HD화질로 만나볼 수 있어 드디어 화질 측면에서 제대로 된 블루레이 부가영상을 만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제작과정 외에도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 영상도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HD화질로 수록되어 있어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공개 엔딩'도 수록이 되었는데, 실제 엔딩과의 만족도 비교는 둘째 치더라도 만약 이 미공개 엔딩이 수록되었더라면 극중 임창정과 조윤희의 감정선을 연결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었을 한 가지 아이템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진행으로 감독과 임창정, 최다니엘, 오달수가 참여한 제작보고회 현장 스케치와 여배우들까지 모두 참여한 기자시사회 현장까지 짧은 영상이지만 HD화질로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 예고편과 TV 스팟이 수록되었다.


[총평] 신인 김홍선 감독의 '공모자들'은 범죄 스릴러로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감독이 가졌던 문제의식과 차기 작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기대해볼 만한 작품이었다. 웃음기 없는 임창정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 2013년이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올해를 마무리하며 최고 수준의 화질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될 정도로 우수한 화질과 HD 화질로 제공되는 부가영상은, 분명 한국영화 블루레이 타이틀의 수준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퀄리티라 할 수 있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베를린' 류승완 감독 인터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들어가며...


최근에 본 영화 '베를린' 리뷰 말미에 다시 한 번 류승완 감독님과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었는데, 진짜로 감독님 측에서 연락이 왔고, 지난 2월 12일(화) 외유내강 사무실을 방문하여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감독님과는 지난 2008년 (벌써 5년 전;;;) '다찌마와 리' 극장판 개봉시 역시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긴 시간 인터뷰를 나눴던 것이 인연이 되었는데, 먼저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까지 기억하고 계셔서 놀랐다.



그렇게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인터뷰는, 기대한 만큼 좋았던 동시에 최근 세간에서 논란 아닌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의혹에 대한 이야기도 집중적으로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본래 이 인터뷰 글의 제목은 단순하게 '류승완 감독님 인터뷰했어요~' 아니면 '베를린, 류승완 그리고 의혹에 대해' 정도였는데, 결국 최종 선택한 제목은 씁쓸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다.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아쉬타카 : 인터뷰 준비를 위해 주말에 베를린을 한 번 더 보고, 가급적 새로운 질문을 해보려고 다른 인터뷰들도 많이 읽어보았다.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것에 대한 피로감 혹은 부담감이었다.


류승완 : 제작비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해외 로케이션, 여러 명의 스타들이 출연, 처음 해보는 장르, '부당거래' 이후 다시 액션 영화를 하는데 뭔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게 맞겠다.
하지만 역시 많은 제작비의 영화라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막말로 이 영화가 안되면 실업자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다찌마와 리' 이후 겪었던 그 공포를 떠올려보자면.. ㅎㅎ


아쉬타카 : 많은 인터뷰의 말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는 식의 답변들이 많더라. 팬으로서는 조금 안쓰럽기까지 한 부분이었다.


류승완 : 정말로 하면 할 수록 영화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겠더라. '베를린'을 보고 난 반응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본'시리즈에 관한 것들인데, 이 영화가 '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한 점이다.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최대한 '본'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흔한 예로 핸드 헬드를 쓰면 훨씬 더 거칠고 현실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쓰지 않았고, 액션의 합구성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지막 액션의 구성은 '본'이나 '007'에서 나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두홍과 내가 하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본'과 비슷하게 보셨다면 그건 관객의 몫이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쉬타카 : '본' 시리즈나 다른 유사하다고 언급되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다른 가벼운 질문 먼저 해보려고 한다. 윤종빈 감독과 이경미 감독도 등장하는데 류승완 영화라면 빠질 수 없는 김수현과 안길강이 안보이더라!


류승완 : 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말씀을 하시더라. 스스로 변화를 주고자 했던 점이 작용했던 것 같다. 또 워낙에 외국 배우들도 많이 나오다보니 틈이 없더라 ㅎㅎ 승범이도 촬영장에서 둘이 없으니 뭔가 이상하다라고도 하더라 ㅎㅎ 뭔가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 강했던 것 같다.


아쉬타카 : 그럼 처음부터 이번 작품은 무언가 기존과는 다르게 해보자라는 취지나 의지가 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뭐가 먼저였다라고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캐스팅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조금씩 이런 무의식 등이 반영된 듯 하다. 뭔가 너무 익숙한 방식 아닌가? 계속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등의 압박이 어느 정도 작용한 건 맞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 예전에 주진우 기자와 함께했던 MBC '간첩'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베를린'의 시작은 이 때 부터라고 볼 수 있을까?



류승완 : 그 때는 이미 '베를린'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다음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재차 확인했다. '간첩'을 보면 내용 가운데 '베를린'의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기도 하고. '베를린'을 준비하는 취재의 과정과 맞아 떨어진 프로젝트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실제로 '베를린'에 큰 도움을 주었던 분들은 '간첩'에는 공개되지 않은 분들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카메라를 꺼놓고 만났을 정도로 실제로 정보국 활동을 하셨던 분들, 실제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던 분들의 이야기들이 '베를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쉬타카 : 북한정보원이 주인공이라는 점 등으로 베를린으로 설정했다고 어느 정도 볼 수는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특별히 '베를린'이어야만 하는 부분은 비교적 적은 편인 것 같다. 왜 스파이 영화에 또 다른 주인공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베를린'에서는 베를린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로케이션 촬영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류승완 : 그 부분은 크게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베를린으로 향한 첫 번째 이유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이 중요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에서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츠담 회담, 동백림 사건, 송도율 교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사건 등..


실제로 최근 무기거래 등은 모로코나 중동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굵직한 무기거래 등은 베를린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나를 자극시켰던 부분은 역시 베를린 북한대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북한대사관이 베를린에 있는데, 이 곳에서는 촬영이 불가능하다보니 이런 점들은 아쉬웠다. 내가 꼭 찍고 싶었던 장소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었는데,  이 곳은 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팀도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 우리가 뭐라고 가능하겠나 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이야기를 서울에서는 찍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베를린이었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여러한 점들이 작용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베를린'은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영화다



아쉬타카 : 다른 분들은 대부분 '본'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더 나아가 장철 영화 같은 쇼브라더스 시절의 무협영화의 정서가 떠올랐다. 감독님이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스파이 영화 특유의 설정이나 분위기 보다는 이와 같은 정서가 더 강하게 전달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해서 리뷰에 '류승완의 본능적인 느와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류승완 : 오히려 '정전자'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시작은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드 몽 당테스에게 누명이 씌워지는 과정을 보면, 그가 나폴레옹의 스파이라는 누명으로 시작된다. 영향 받은 부분이라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타카 님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어떤 감독이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면 그 부분을 더 말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이 아닌가 ㅎ


아쉬타카 : 아무래도 각자 개인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본인이 영향받는 작품이나 범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일텐데, 개인적으로는 '영웅본색' 등의 느와르 영화의 정서가 깊게 느껴졌기 때문에 반대로 스파이 영화로서의 세밀함은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스파이 영화로서 평가하거나, 스파이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류승완 :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라기 보다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파이 영화라면 '무간도'가 스파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첩 행위가 주가 되는. '베를린'은 그래서 카피도 액션영화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요 몇년간 진짜 스파이 영화라면 아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진짜 스파이들 세계에서 액션이 벌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정보전이 주가 될테니.


결국 '베를린'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다. 개인간의 갈등, 관계의 문제가 더 중요했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 사후의 평양의 정세가 어떻게 바뀌는가, 김정남 편을 들었던 군부의 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몰린 사람 혹은 세력들이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해외 공관의 끈을 놓치 않고 장악하려고 하는 가운데,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파멸시키는가에 집중을 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두 번이나 영화를 본 분이 아쉽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ㅎ


아쉬타카 : 아 ㅎㅎ 하지만 지금 대답에서 정확한 답변을 들었다. 기존에 얼핏 듣기로는 '베를린'을 하면서 스파이 영화를 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저런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었는데, 지급 답변처럼 '스파이가 직업인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전혀 다른 시각과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류승완 : 내가 본질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아쉬타카 : 스파이에 대한 영화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답변을 듣고는 많은 부분이 명쾌해진 느낌이다.



인상 깊었던 두 개의 대사




이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극중 표종성이 언급하고 있는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이 대사가 두 번 정도 반복적으로 언급된 걸 봐서, 결국 이 영화는 결정권이 없거나 결정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던 이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단호하게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이 지속적으로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결국엔 이념적인 선택까지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나. 그래서 그 첫 번째 익숙치 않은 결정들로 인해 겪게 되는 상실이나 고통 등을 다루고자 한 것이 느껴졌다.


류승완 : 맞다.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라던지, 우리는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라던지, 이런 대사들은 실제 북한사람들을 취재할 때 나왔던 말들이다. 북한이라는 시스템은 종교적인 시스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유일하게 비교할 만한 모델이라면 바티칸 밖에는 없을 정도로), 이런 시스템 가운데 교육받고 성장한 이들이라는 전제라면 시스템을 벗어난 개인의 자의적 결정이라는 점은 이야기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아쉬타카 :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는데, 후반부 목숨을 잃어가는 련정희를 만난 정진수가 '고향이 어디에요?'라고 묻는 대사였다. 이전까지는 전혀 남북의 이념적이거나 분단 상황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대사 한 방으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정서가 불현듯 올라왔다. 혹시 어느 정도 포인트를 준 대사였나?


류승완 : 그 대사는 한석규 선배의 즉흥연기였다. 의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깨우려는 설정이긴 한데, 이에 앞선 대사 중에 '너들하고 우리하고 요즘 쓰는 말이 다르데'라는 것에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향이 어디에요?'라는 대사는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한석규 선배가 '베를린' 시나리오를 받고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해외를 배경으로 하면서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한석규 선배는 개인적으로 남북을 소재로한 이야기에 관심이 큰데, 이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냉전이 끝난 21세기에 아직도 냉전 중인 나라는 우리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들이 오히려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쉬타카 : 액션에 있어서는 다 소진된 상태에서 벌이는 처절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너무 제이슨 본 같은 전문가 액션만 있었다면 오히려 류승완 스럽지 않아서 조금 심심했을 텐데, 역시나 클래이맥스에서는 최고 전문가인 두 주인공이 그 기술에 근거하되 이미 본능만 남은 상태에서 벌이는, 육체적인 액션이 인상적이었다. 고통과 피로함이 느껴져서.


류승완 : 그런 점을 봐주어서 고맙다. 액션이 주가 된 영화이기 때문에 클래이맥스의 액션 시퀀스는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권총을 둔기로 사용하는 것도 그 아이디어에 도달하기 위해 정두홍 감독과 엄청난 노력과 고민 끝에 나온 장면이다. 이런 방식으로 권총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는 거의 없지 않나? 그러고보니 '다찌마와 리'에 잠깐 나오긴 했었지만 ㅎㅎ





아쉬타카 : <베를린>은 류승완 영화 최초의 멜로 드라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극중 표종성과 련정희의 관계에는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 애틋한 로맨스가 느껴졌다. 다시 말하자면 다음 작품에도 로맨스적인 요소를 가미해도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점인가?


류승완 : 나도 모르게 그렇게 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냉혹한 인물과 관계들을 생각했었는데, 언제 부턴가 나도 모르게 로맨스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소설 '차일드 44'와의 표절 논란에 대하여



아쉬타카 : 조심스럽지만 팬의 입장에서 최근 굵어진 표절논란에 대해 여쭈어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이 가장 큰 부담이기도 했는데, 일단 몇몇 설정은 장르의 클리셰로 보기엔 너무 디테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내를 의심하고, 광장과 지하철 역에서 추격하고 하는 것 등을 비롯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중에 거의 대부분은 충분히 클리셰로 인정할 수 있고, 스탈린의 유명한 잠언을 사용한 것이나 인간이 가장 나약해지는 시간을 언급한 것도 어느 한 작품만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련정희의 속옷과 관련된 장면이나 동전으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련정희가 임신을 했었다는 디테일한 설정은 의문을 재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차일드 44'와의 디테일한 유사점과 장르의 클리셰까지 표절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결론적으로 표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류승완 : 이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차일드 44'를 재미있게 읽었고 주변에도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장을 했던 소설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신 분이나 이 소설을 번역하신 분이 제기하신 의혹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절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차일드 44'와 관련된 의혹들 중에 '그러면 왜 영향받았다는 얘기 중에 진작 이 작품을 보았다고 얘기하지 않았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50권이 넘는 소설 들을 모두 이야기해야만 하는 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의도적으로 '차일드 44'만 뺐다가 이제서야 뒤늦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아니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차일드 44'는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고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 할 예정이라는 것도 '베를린' 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차일드 44와의 유사점 부분에 대해 이렇게 부분 캡쳐로 비교를 해서 표절로 몰아가면 억울한 부분이 있다. 본래는 이 취재파일과 취재 과정 중에 얻은 실제 인물들의 녹취 기록 등을 기자들에게 다 공개를 하려다가 이미 몇몇 함정 인터뷰도 있었고해서 차라리 여과없이 전달해주실 아쉬타카님 같은 분에게 공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요청한 점도 있다.


(이후 제가 개인적으로 의혹을 갖고 있던 부분들을 비롯해, 세간에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부분들을 설명해줄 많은 양의 취재 자료 들과 녹취 자료등을 직접 보고 듣는 확인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KGB 교육이 구동독에서 러시아로 넘어갔고, 북한 정보원들이 받은 교육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비슷할 수 밖에는 없다. 모방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방과 표절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분 캡쳐만 해 놓으면 내가 봐도 비슷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의혹이 있는 것 자체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란에 휘말려 보니까 알겠더라. 사실관계를 입증하려 자료 등을 공개하려고 보니 이미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도 변명 밖에는 되지 않는 상황이라 가만히 있는 것 뿐이다. 이걸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보다는 같이 일한 사람, 믿어줬으면 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알아주면 그것으로 괜찮다라는 생각이다. 이미 당사자인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것은 명백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직접 보고 들으신 분들이 전해주시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의혹을 제기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직접 보여드리고 들려드리고 싶다.



아쉬타카 : 마지막으로 <베를린>이라는 작품은 좋은 면이든 그렇지 않은 측면이든 감독님에게 어떤 전환점이 될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감독님에게 <베를린>이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


류승완 : 8번째 장편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장르 영화를 한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쉬타카 : 개인적으로는 의혹이 완벽하게 해소되어서 너무 만족스럽고 기쁘기까지 하다. 말은 못했지만 이 인터뷰의 핵심이 이 표절 의혹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질문을 어떻게 하고, 내가 수긍할 만한 대답을 과연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부담 때문에 잠도 못 잤을 정도로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겪기도 했었다. 완전히 해소되어서 좋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표절로 여기고 있고 완벽하게 해결할 만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


류승완 : 어쩌겠나. 아쉬타카 님처럼 몇 분이라도 진실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쉬타카 : 이 광풍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류승완 : 그렇게 하자!



정리하며...


'베를린'을 보고나서 썼던 제 리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차일드 44'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커뮤니티를 통해 정리된 표절 의혹 부분을 보고서는, 이건 장르의 클리셰라고 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판단을 하였고, 이 부분에 대해서 류승완 감독님이 더 명확한 답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었습니다. 그 이후 감독님으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고, 제안을 받고서는 저도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냉정히 봤을 때 의혹을 갖기에 충분한 정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더라도 그 의혹이 명확히 해소될까 하는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에도 있듯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감독 스스로도 내가 봐도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유사점에 대해 의혹을 갖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많은 양의 취재 자료들과 더 나아가 이 표절 의혹에 대해 하나하나 취재원과 대조하는 녹취 파일을 듣고 나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모스크바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던 취재원을 다시 만나 표절이라고 의혹을 받고 있는 소설의 부분 등을 재기하며 사실 여부를 일일히 확인하는 녹취 파일 및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취재 자료들에서는, 개인적으로 클리셰를 넘어서는 디테일한 인용이라고 생각했던 동전 부분에 대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실제 있는 정보원들 사이에서 유니크하지는 않은 일종의 소품이었고 (정보원 취재 자료에서 사진으로 직접 확인), 이 동전을 속옷에 숨기는 장면 및 련정희가 임신을 했다는 설정 모두 실제 취재원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걸 격앙된 북한말투로 이야기하는 취재원 분의 음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녹취는 표절 의혹 이후에 다시 진행된 부분이었는데, 일일히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들을 거론하며 취재원에게 다시 한 번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 자체가 표절이라는 얘기냐?'라는 식이었기에 격앙될 수 밖에는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오인된 의혹들이 그렇듯이, 이 표절 의혹에 휩싸인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 취재원들 모두는 억울함이나 실망을 넘어서서 이 영화 만드는 일 자체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류승완 감독님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취재 자료들과 녹취 자료 등을 통해 표절 의혹이 의혹을 갖는 것은 가능했으나 사실은 아니었음을 두 눈과 귀로 확인했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저 같이 미약한 영화애호가 한 사람의 확인이 모든 의혹을 해소시키거나, 더 나아가 의혹 해소의 계기가 될 만한 신뢰성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도 이해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직접 보고 들었다는 것은 니 말일 뿐이지 않느냐'라고 물었을 때 '보고 들어서 아닌 것을 확인했기에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렇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저 역시 최소한 제 주변에서 의혹을 갖던 분들이나, 제 블로그 등을 통해 제 글을 읽어주셨던 분들만이라도 이 의혹에 대한 사실을 (진실로 까지 포장할 이유가 없어 사실이라고 씁니다) 저를 담보로라도 믿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류승완 감독님 힘내세요!




* 마지막 제 의견을 정리한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설득 혹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까 싶어서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적었었는데, 결국 다 쓰고 보니 구차해진 느낌이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분들이 표절로 낙인찍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혹자는 출판사 측에서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소송 걸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소송하면 100% 출판사가 질 수 밖에는 없어요. 이건 CJ라는 대기업 때문이 아니라 사실관계가 너무 분명히 자료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나올 수 있는 반론이라면 '그러면 그 자료를 공개해라' 일텐데, 아마 이 문제가 더 확산되면 공개를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타블로 때도 그렇지만 공개로 과연 해소가 될까요. 또 자료가 조작이네 이럴 텐데요. 현재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라는 일을 해야할까 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 저렇게까지 번진다면 그 보다는 영화 라는 일을 접는 편을 선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하면서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인터뷰 /정리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부도리의 꿈 (グスコーブドリの伝記, 2012)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부도리의 꿈 (グスコーブドリの伝記, 2012)'에 끌리게 된 것은 미야자와 겐지라는 이름과 고양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었다. 미야자와 겐지는 잘 알다시피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된 '은하철도의 밤'를 쓴 작가로 유명하고 개인적으로도 '은하철도 999'는 물론 '은하철도의 밤'도 인상적으로 읽었기에 이 작품 '부도리의 꿈'에도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었다. 온통 더빙 판 밖에 상영하는 곳이 없어서 어렵게 자막판 상영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부도리의 꿈'은 2012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클래식한 화법과 영상으로 채워진 독특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이었다. 판타지를 담은 듯 하지만 결국에는 '은하철도의 밤'이 그러했듯이 근본적이고, 특히 대지진 이후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부도리의 꿈'은 별로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특히 후반부 클래이맥스 부분은 삭제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생략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더빙판은 삭제된 분량이 있으나 자막판은 없다), 이를 비롯해 몇몇의 내러티브는 논리적으로는 헛점이 많고, 도대체 부도리는 동생인 네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는 전체적으로 커다란 슬픔과 위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본래 인간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변경한 것이나, 더할 수 없이 처절한 상황에 놓인 부도리의 상황을 판타지와 판타지에 가까운 현실로 풀어나간 것은 영화가 바라보는 위로의 시선이 느껴지는 지점이라는 얘기다. 사실 영화 속 부도리와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어린 부도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상황이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그럴 수록 부도리의 편에서서 부도리가 이 어려움을 해쳐나가기를 응원하고 돕지만,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어쩌면 어린 부도리가 이 상황을 잊을 수 있도록 망각이라는 장치를 제공하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다시 생각해보면 동생인 네리는 이름모를 이에게 납치된 것으로 나오지만, 어쩌면 납치된 것이 아니라 납치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부터 부도리의 꿈이 발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배고픔을 이야기하던 네리가 '이제 배고프지 않아'하는 순간부터 어쩌면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것. 최악의 기근을 해쳐나가기 위해 집을 나가버린 부모님 때문에 어린 동생과 남겨진 부도리에게, 하나 밖에 없는 네리의 죽음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후 부도리는 어쩌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네리를 찾기 위해 환상을 꾸게 된 것은 아닐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동생을 아끼던 부도리의 행보라고 보기엔, 아무리 부도리 역시 아이라고 하더라도 이후 그가 겪는 일들 가운데 네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이미 기근이 오고 부모에게 버려졌을 때 부터 부도리는 꿈을 꾸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놓여졌다는 걸, 영화는 부모의 마음으로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후 부도리는 여러 사람들과 장소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관계를 맺어가지만, 그 과정들이 발전적이라거나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애잔해 보이는 일이 더 많았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드디어 클래이맥스에 왔을 때 부도리는 조금은 갑작스런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영화는 이 부도리의 선택을 위로하듯 노래를 한 곡 들려준다. 그리고 이 순간 영화는 부도리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듣고 있던 관객들 (특히 일본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부도리의 이야기와 이 곡을 듣는 순간, '아, 이 영화는 확실히 메시지가 강한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대지진을 겪은 이후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일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는 부도리의 전기를 보여주며, 주변을 위로하고 함께 무엇이든 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가 결코 세상을 구하려는 한 작은 소년의 영웅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거창한 영웅담으로 보기엔 부도리가 누군가를 구하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부도리를 더 위로하게 되는, 그런 안쓰러운 작품이었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1. 주인공 구스코 부도리의 목소리는 오구리 슌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2. 국내 홈페이지가 아주 잘되어 있네요. 볼거리가 많네요 budori.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있습니다.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웨스 앤더슨의 로맨스 동화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확실히 좀 '이상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나도 그 이상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로열 테넌바움' '판타스틱 Mr.폭스' 등의 작품을 보면 대중적으로 친화력이 있다기 보단 조금은 성격있는 작품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사랑 받는 건, 그 인물들이나 배경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신작 '문라이즈 킹덤'은 사전 공개된 이미지들 만으로도 이 귀여움과 아기자기함이 폭발할 것만 같다는 기대를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의 방식으로 귀여움의 포텐이 폭발한 작품인 동시에 제법 진지한 로맨스 영화였다. 아, 물론 이번에도 동화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일단 '문라이즈 킹덤'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카메라 구도였다. 전작인 '판타스틱 Mr.폭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인물을 정가운데에 무조건 위치시키고 좌우 정확한 대칭을 만들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라이즈 킹덤'은 다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러티브의 영화라기 보단 이미지 자체의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측면에서 이 강박적이기까지한 구도는 기억에 강하게 남는 이미지들을 여럿 생산해 낸다. 과장을 조금 보태 '문라이즈 킹덤'의 어떤 장면도 액자에 넣어 보관하면 그럴싸한 그림이 될 정도로 이 구도는 영화만을 위해서라기 보단 독립적인 이미지로도 충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워킹에 있어서도 수평적인 이동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웨스 앤더슨이 신경써서 만들어낸 영화의 소품들과 배경들을 관객이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마치 동화책을 넘기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어쩌면 '문라이즈 킹덤'은 스토리의 내러티브보다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의 내러티브에 더 충실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또한 '문라이즈 킹덤'은 최근 본 어떤 작품들보다 소품과 디자인에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지만 사실 그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을 정도로 이 영화의 배경과 소품, 디자인들은 60년대에 머물러 있다기 보다 문라이즈 킹덤이라는 독특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아이템이 없는 듯한 영화의 이미지는 답답하거나 밀도가 높다고 느껴지기 보다, 오히려 편안하고 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컬러는 다양하지만 강렬하기 보다는 파스텔 톤에 가깝고, 그렇다고 이들의 조합이 힘이 빠져보이기 보다는 살아있는 (만지고 싶은) 느낌을 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은 얻게 된다. 사실 이 영화를 다 보고나면 특별히 무엇이 남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럼에도 지루하거나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웨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묘한 세계관 때문이며 그 때문에 매번 그의 영화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 같다.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또 하나 재미있는 건, 브루스 윌리스,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프랜시스 맥도먼드, 틸다 스윈튼, 하비 키이텔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이들이 기억나기 보다는 두 어린 주인공만이 뇌리에 남는다는 점이다. '오!! 브루스 윌리스가 나와!'하며 기대하고 봤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웨스 앤더슨의 전작을 하나라도 봤던 관객이라면 브루스 윌리스를 비롯한 연기파 배우들의 이런(?) 활용에 오히려 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두 어린 주인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동화일 것이라는 점은 예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강렬한 로맨스 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문라이즈 킹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이야기들은 분명 동화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샘과 수지의 이야기는 이들이 어린 아이라는 점만을 제외하면 그 어떤 로맨스 영화 못지 않은 강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냥 아이들의 사랑이 귀엽다' 정도가 아니라 순수하게 로맨스 영화의 측면으로도 이해가 되었다는 얘긴데,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의 조합을 웨스 앤더슨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은 그의 팬들에겐 종합적인 선물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만의 귀여움과 건조한듯 하지만 깨알같은 캐릭터들, 그리고 하나 하나 갖고 싶지 않은 것이 없는 아이템들이 즐비한 소품과 이미지들까지. 포스터와 미니 캘린더는 득템했으니 이제 사운드 트랙을 질러야겠다.




1. 두 아역 연기자의 얼굴과 이미지가 강렬했어요. 특히 수지 역의 '카라 헤이워드'는 다른 작품에서는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되더군요.


ⓒ Indian Paintbrush. All rights reserved


2. 영화 속과 같은 저런 섬에서 저런 아이템들과 함께 한다면 몇 일간은 평화로운 휴가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Indian Paintbrush 있습니다.


 





베를린 (The Berlin File, 2013)

류승완의 본능적 느와르 영화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팬임을 밝히고 시작하자면, 본래도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좋아하는 감독이었지만 몇 년 전 '다찌마와 리 : 극장판'을 통해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더욱 친근하고 응원하고픈 감독이 된 것이 사실이다. 류승완의 전작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큰 인기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부당거래'였다. 그런 그가 '부당거래' 이후 더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비로 해외 로케이션 스파이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부터,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무척이나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기대와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작은 영화에서 류승완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대형 프로젝트의 규모 탓에 자신의 색깔을 잃고 흔한 대중적 포인트에 휩쓸려 성공은 거두더라도 팬으로서 아쉬움은 남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류승완의 '베를린'은 다양한 장르 영화의 클리셰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히 류승완이 뿌리로 삼고 있는 성룡 영화와 쇼브라더스의 무협 영화와 골든하베스트의 액션 영화들, 그리고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정서를 고스란히 만나볼 수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본 시리즈나 007, 더 나아가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관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급적 피하였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류승완 감독은 '베를린'과 관련된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그 모티브를 '스파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것에서 시작했다'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있어서는 방향성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방향성이 달라졌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류승완 감독이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장르와 정서를 스파이 영화인 '베를린'에 무엇보다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앞선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가장 디테일하고 세련되게 만들어져야 할 '스파이'의 이야기가 조금은 힘을 잃은 것 같았다. 베를린이라는 멋진 로케이션과 북한 정보원과 남한 정보원, 여기에 CIA에 모사드와 아랍 단체까지 엮여 있는 구조는 스파이 영화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그 비밀스러운 일의 과정과 정보를 다루고 처리하는 정보원 특유의 스킬을 관객에게 100% 흡입시키기에는, 무언가 이미지와 정서에 기대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의 '제이슨 본' 시리즈가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서 수시로 케이블에서 재방송을 해주는데도 그 때마다 잠깐만 봐야지 했다가 몰입해서 한참을 보게 되는 이유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과정의 세밀함이 워낙 흥미로워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억마저 의심하게 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에는 바로 이러한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특히 스파이 영화인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라면 바로 '배신'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배신이 더 충격적이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려면 그 정황이나 배경이 더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했으나, 초중반의 흐름은 이와 같은 스파이 영화의 디테일한 재미를 주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디테일한 측면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탓에 정서적인 측면은 오히려 더 부각되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스파이 영화이 대표격인 '007'시리즈의 최근 작 '스카이폴'과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느껴졌던 쓸쓸하고 차가운 스파이 세계를 묘사하는 데에 비교적 성공했으며, 글의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류승완 특유의 액션이 강조되다 보니 자연스레 그가 평소 동경하고 있던 홍콩 영화들의 정서가 은연 중에 함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액션 스타일 등을 들어 '제이슨 본'을 연상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가깝다면 '스카이폴'이 더 가깝다고 여겨졌으며 근본적으로는 오우삼의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 같은 작품에 더 큰 정서적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동생 같은 존재에게 배신 당한 것이나, 가장 멀리 있다고 느껴진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나, 하정우가 연기한 표종성이라는 캐릭터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홍콩 느와르에 열광했고 류승완의 팬인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동일한 정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즉,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와 대칭점에 선 두 인물의 공감대를 보여주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처럼, 단순히 버림 받은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문적인 스파이 영화가 아닌 이를 배경과 도구로 하는 느와르적 정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얘기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베를린'이 흥미로워지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남과 북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베를린'은 기획 초기에 남한 캐릭터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정도로, 남북의 이념이 주제가 되거나 부각되는 영화는 전혀 아닌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바로 이 남북이라는 설정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왔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과 예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가 전향이나 남북의 주인공들이 등장해도 전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딱 한 마디의 대사에서 다른 스파이 영화에는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련정희 (전지현)'를 발견한 '정신수 (한석규)'는 '같은 편이야'라는 말을 한 뒤 점점 숨을 잃어가는 련정희에게 이렇게 묻는다. '고향이 어디에요?'


개인적으로 이 한 마디는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두 주인공의 국적을 한 번에 인식하는 순간이었으며, 더 나아가 분단된 국가라는 새삼스러운 사실 역시 떠올리게 된 의외의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영어를 범용으로 사용하는 서양의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3의 언어를 공유하는 관계라는 점을 넘어서서, 고향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 다른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어도 대한민국을 사는 관객으로서는 이 장면에 흐르는 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액션 연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만든 기술적인 측면은 재쳐두더라도 연출 측면에서 다른 스파이, 범죄 영화와는 다른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후반부 표종성과 동명수 (류승범)의 한계까지 몰아 붙이는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들이 한계에 달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임팩트도 물론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보다는 정서적으로 진이 빠지도록 만든 연출이 더 인상적이었다. 류승완 영화의 액션 클라이맥스 들은 대부분 이렇게 주인공을 더 이상 소모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소모시켜서 관객 역시 피로함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베를린'의 클래이맥스 역시 바로 이 점이 테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장철 영화에서 느꼈던 비장함이나 처절함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미 숨을 거둔 련정희의 시체를 표종성이 들쳐 업고 나오는 장면만 봐도 다른 영화였다면 더 간결하게 갈대 숲 안의 장면으로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으나, 류승완은 이 정서를 더 연장하여 몇 번이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갈대 숲을 빠져나와 슬픔과 아픔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표종성을 계속 응시한다. 이런 시퀀스에서 좀 더 류승완 만의 정서를 분명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 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최근 이 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혹은 클리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 관람하기 전 이미 '제이슨 본' 시리즈의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을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클리셰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 크게 문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래에서 코드 진행이 같다는 사실 만으로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듯이, 스파이 장르와 특히 최정예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액션 영화에서 클리셰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상당 부분 많기는 했지만 이것의 유사점을 들어 표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제이슨 본' 시리즈 보다는 '스카이폴'이 연상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이후 논란이 된 톰 롭 스미스의 소설 '차일드 44'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는 쉽게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베를린'과 유사점이 의심되는 '차일드 44'의 소설 부분 부분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단순히 클리셰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디테일한 설정과 장면의 유사점이 발견되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변함이 없으나,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들의 유사점 만으로도 소설 '차일드 44'와의 논란은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보다 류승완 감독의 팬이기에 이 부분은 좀 더 명확한 이야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1. 표절 논란으로 발전적이지 않은 추가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2.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감독님과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이제 안되려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외유내강 있습니다.


 




경이로운 우주의 가운데 나를 느끼다 -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그 어떤 스릴러 영화의 반전 못지 않았다. 아니, 반전 영화들에서 얻는 충격과는 차원이 다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압도 당한다는 느낌을 보는 내내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그 압도됨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들의 향연과 신(God)과 관계 된 거대한 담론 때문 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그리고 진화,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주눅들어 버리거나 할말을 잃어 압도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 경이로운 우주의 가운데 (여기서 우주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문학적 우주 뿐만 아니라 무한한 시간과 만물, 끝없는 공간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를 가리킨다) 바로 나 자신이 느껴졌기 때문에 보는 내내 압도 당할 수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우주의 탄생, 생명의 진화, 인간의 삶과 죽음 등 범우주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체험'하는 영화라는 얘기다.





블루레이 발매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총 세 번째 감상이었는데, 이전 두 번의 감상에서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놓친 부분들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다기 보다,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 경우라고 해야겠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의 제목도 '경이로운 우주 가운데 나를 느끼다' 였는데, 이번 역시 같은 제목이지만 그 감상의 주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첫 감상에서 느꼈던 경이로운 우주는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무런 대사 없이 이미지로만 표현되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 진화는 놀라우리만큼 완벽한 내러티브가 존재했으며 얼핏 보면 긴 시간인 듯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굉장히 함축적인 방식의 전개였다. 그리하여 인물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우주의 탄생을 거쳐 지구가 탄생되고 그 뒤 공룡이 등장해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전개였는데, 그 가운데 내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큰 아들 '잭'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앞서 신과 우주의 이야기를 펼쳐놓은 영화는 본격적으로 소우주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비춘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새로울 것 없는 갈등 구조와 시간에 흐름에 따른 보편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었음에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상 잭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데, 잭이 커가면서 부모와의 관계, 형제들 사이에서의 관계, 세상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자아의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들이, 한 수 한 수 놀라운 디테일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와중에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메시지의 기반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잭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과 심리적 변화 들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익숙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보편적이지만 미묘한 시간들을 '트리 오브 라이프'는 완벽한 줄기로 그려내고 있다. 앞선 시퀀스에서는 형용하기 힘든 경이로움을 느꼈다면, 이 시퀀스에서는 공감이라는 이름의 경이로움과 인생의 무게 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잭'의 이야기가 놀라운 또 다른 이유는 그 속에서 너무 쉽게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처럼 디테일 한 묘사를 했음에도 반대로 가장 보편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잭'의 이야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영화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완전히 솔직하도록 만드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는데, 이 에너지가 '잭'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전에 영화가 들려주었던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러티브 측면에서 그러했다는 뜻이 아니라, 보는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신과 우주,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나의 경계는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놀라운 체험의 영화다. 이 작품은 평소 삶에서는 미처 체험할 수 없었던, 또 안다고 해도 절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던 수 많은 간극들을 영화적 체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다시 말해 '트리 오브 라이프'의 메시지는 인간이란 존재와 이를 둘러싼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간극이 '있다'라고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간극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의 삶과 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 간에는 유한한 거리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의 것'이 있다 (여기서 '있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앞선 '있다'와는 다르다)라는 것이다.


‘시공간적 크기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들에 비하자면 한 가족의 삶과 고통은 얼마나 보잘것없이 작은 것인가’ 라는 근거로 ‘신(절대자)을 이해할 수 없음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섭리이다’ 라는 결론이 아니라, 한 인간, 한 소년의 삶의 깊이와 고통 역시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의미의 우주라는 위로와 경이로움을 전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앞서 한 인간의 삶을 '소우주'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였으나 다른 담론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 역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바로 자녀 혹은 가족을 잃은 남겨진 이들에 대한 사려 깊은 위로가 그것이었다. 사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신의 섭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와 닿기 쉽지 않은데, '트리 오브 라이프'는 그 섭리에 대해 순응하라는 무력함 혹은 복종의 메시지가 아니라, 기원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섭리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고 있기에 허울뿐 인 위로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이를 잃은 이에게, 더 나아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내 아이를 잃어버린 이에게 진실된 위로를 전하려면, 이 정도의 진정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아마 그 때쯤이면 지금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더 솔직해진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Menu Design





영상 : 시각적 언어로 쓰여진 영화를 빛내는 궁극의 화질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곧 내러티브로 연결되는, 즉 영상미가 그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렌스 맬릭은 그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도 시각적인 측면에 큰 공을 들였으며, 인위적인 것들을 최대한 배제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부분적으로나마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하기도 했다.(물론 이 영화의 시각효과 대부분은 더글러스 트럼블이 가세한 아날로그 기법이 대부분이다) 그 만큼 이 작품에서 시각적인 부분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바로 그 중요함을 놓치지 않도록 블루레이의 화질은 가히 역대급이라 할 수 있을만큼 최고 수준이다. <다크 나이트> 블루레이의 IMAX 시퀀스 화질이 두시간 내내 이어지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의 촬영 감독으로 유명한 엠마뉴엘 루베즈키는 ‘트리 오브 라이프’의 많은 장면을 IMAX 레디의 65mm 필름을 사용했으며, IMAX 카메라, 파나비전 65 하이레졸루션, 레드원, 팬텀 HD 등 최고의 화질을 보장하는 장비들로 촬영하였다. 감독의 의도나 촬영에 사용된 장비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자칫 철학적인 영화로만 비춰질 수 있지만 시각적인 영상미가 바로 그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도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하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바로 이러한 영화의 영상미를 전달하기에 최적의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극장에서 볼 때 영상미 자체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블루레이 감상 시에는 여기에 화질의 우수함이 주는 놀라움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블루레이의 화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하드웨어 적인 퀄리티와 그 퀄리티를 체감할 수 있는 영화적 요소, 이 두 가지를 들곤 하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 BD는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시키는 타이틀이다. 화질의 하드웨어 적 퀄리티야 근래 발매된 타이틀 가운데 최고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런 레퍼런스급 화질을 체감할 만한 다양한 구성과 성격의 영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체감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다고 느껴지는 화질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치적으로도 음성파일을 제외한 영상파일의 용량만 35기가에 달하며 평균 전송 비트레이트 또한 36.8Mbps에 달하는 등 한마디로 '슈퍼비트'급이다.

음향 - 압도하는 스코어가 인상적인 사운드





위 문구는 블루레이로 영화를 최초 재생 시 본편 영상에 앞서 나타나는 안내 문구로, 화질과 더불어 음향 또한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영화에게 있어 기능적인 면에서나 미학적인 측면에서나 대단히 중요함을 실감케 한다. 특히 앞선 시각적 측면과 마찬가지로 테렌스 맬릭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음악이 존재하기를 원했을 정도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영화 음악은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글은 소책자에 실리는 김세윤 작가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칼럼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에도 우주의 기원을 다룬 경이로운 시각적 체험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는 클래식 곡과 영화 음악에 압도되었었는데, 48kHz/24Bit 고사양의 DTS-HD MA 7.1 사운드는 그 압도적인 감흥을 손실 없이 안방으로 가져왔다.





스코어가 들려주는 웅장함 못지 않게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가정의 이야기를 그릴 때에는, 아주 미세한 생활 소음과 새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풀잎들의 디테일한 사운드까지 7.1채널의 풀 서라운드 음장을 통해 놓치지 않고 들려준다.




전반적으로 스코어의 비중이 높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전혀 스코어 없이 자연의 소리들로만 채워져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스코어로 활용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와 같은 블루레이 사운드의 디테일 함은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풍부하게 전달해 준다.


스페셜 피처 #1 : 메이킹 다큐멘터리 - Exploring The Tree Of Life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의 유일한 아쉬운 점이라면 부가영상의 수록 양이 많지 않다는 점일 텐데, 국내 타이틀뿐만 아니라 북미에서 출시된 타이틀 역시 동일한 구성이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다. 더군다나 디스크를 BD-ROM에서 읽어보면 본편 데이터만으로 41기가를 채우고 나머지 용량을 5기가의 메이킹 다큐멘터리 외 기타 예고편 및 BD메이킹 크레딧으로 꽉꽉 눌러담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편을 최고 화질과 음질로 수록하는 것에 전력을 다한 타이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분야의 스필버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로렌트 보제로'가 연출을 맡은 훌륭한 메이킹 다큐멘터리 'EXPLORING THE TREE OF LIFE'(1080p, 29:56초)에서는 이 작품에 참여한 제작자, 배우는 물론 테렌스 맬릭을 존경하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빗 핀처의 인터뷰 등을 통해 ‘트리 오브 라이프’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테렌스 맬릭의 작품관에 대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테렌스 맬릭의 작품을 처음 보고 감탄과 더불어 커다란 매력을 느꼈던 크리스토퍼 놀란과 데이빗 핀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맬릭의 영화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그를 더 알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또한 이 작품을 기점으로 최근 헐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여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인터뷰와 그녀의 오디션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브래드 피트는 본래 제작자로만 참여할 예정이었다가 본래 출연 예정이었던 남자 배우가 출연이 어렵게 되면서 후에야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도 전해 들을 수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배역이라면 세 명의 성인 배우들 보다, 세 명의 아역 연기자라고 할 수 을 텐데, 이 아이들의 오디션 영상과 영화 개봉 이후 다시 촬영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당시를 추억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수록되었다. 테렌스 맬릭은 더 자연스러운 장면을 위해 아이들에게는 거의 대본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 들도록 유도하거나, 촬영 중간 아이들끼리 장난 치는 순간을 몰래 촬영에 영화에 담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속 우주의 기원을 다룬 장면들의 비밀에 대해서도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이뤄진 장면들이 아니라 감독의 지인이자 천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더글러스 트럼블의 작업으로 화학 약품이나 페인트 등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과 회전판, 조명, 고속 촬영 등의 기법의 변화를 통해 발견하고 만들어 낸 장면이라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30분에 달하는 이 메이킹 다큐멘터리에는 정작 감독인 테렌스 맬릭은 은둔자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그답게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매릭의 영화 세계와 그의 연출력에 더 큰 관심과 매력을 느끼게 되는 다큐멘터리다.


메이킹 다큐멘터리 외에 HD 화질의 오리지널 극장용 예고편과 더불어 '가족애'를 강조한 한국 시장에서의 마케팅 포인트를 엿볼 수 있는 한국용 예고편(SD), 그리고 라이프랩스미디어의 차기작이자 역시 기대되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작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 예고편(HD)이 추가로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디피 컬렉션 만을 위한 것으로 DP010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DP회원분들의 크레딧을 수록한 영상을 이스터 에그(찾기는 정말 쉽다)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미리 공지가 된 것처럼 DP회원이자 일렉트로닉 밴드 W&Jas의 멤버 한재원님 (DP닉네임 W)이 작곡한 음악 'In The Flow'와 함께 수록이 되어 더욱 뜻 깊다.






실제로 이런 크레딧을 끝까지 감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영화 속 장면들과 함께 작품의 컨셉 및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한재원 님의 편안하고 감각적이며 독창적인 개성의 음악까지 곁들여져, 말 그대로 5분여의 메이킹 크레딧을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었다.


스페셜 피처 #2 - 컬렉터스 가이드북


지난 ‘멋진 하루’ 블루레이를 통해 76페이지에 달하는 컬렉터스 가이드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스페셜 피쳐를 제공했던 LIFE LABS MEDIA는, 이번 ‘트리 오브 라이프’ 블루레이에도 영화를 더 재미있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수록한 소책자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직 가이드북이 완성되기 전이라 실물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수록될 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작품과 관련해 영화감독 정윤철 님(‘말아톤’, ‘좋지 아니한가’의 그가 맞다!)과 DP 영화게시판 및 재개봉관 게시판을 통해 통찰력 있고 깊이 있는 영화 글을 써오고 있는 홍준호 님, 그리고 아쉬타카까지 총 세 명의 각기 다른 시각으로 다가간 ‘트리 오브 라이프’에 대한 리뷰글이 수록되었다.

여기에 촬영, 미술, 시각효과, 음악 감독 등 이 영화의 각 스태프들에 대한 칼럼들이 추가되었는데, 특히 현 방송작가이자 전 FILM2.0 기자 출신의 인기 작가 김세윤 님이 작성한 음악감독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 관한 칼럼은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이로서도 특히 기대가 되는 글이니,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또한 영화 현장의 고화질 스틸컷 갤러리가 약 10페이지 분량으로 수록되었고, DP블루레이 게시판을 통해 응모를 받았던 이 작품과 어울리는 순간을 담은 DP회원들의 사진들을 담은 코너 'Moment in Life'(아래 사진 참고)도 수록될 예정이라고 하니 LIFE LABS MEDIA의 전작 ‘멋진 하루’보다 도 더 기대되는 소책자라고 할 수 있겠다.




사족을 달자면 본 리뷰에서 소제목을 굳이 '부가영상'이 아닌 '스페셜 피처', 즉 '부록'의 의미로서 두 섹션으로 나눈 까닭은 바로 '컬렉터스 가이드북'의 제공 때문이다. 이 책은 마치 디스크 용량 부족으로 인해 미처 블루레이에 못담아냈을지도 모를 영화의 후일담을 정성스레 기획된 양질의 글들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스페셜 피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리뷰의 스페셜 피처 평점은 디스크에 수록된 부가영상뿐만 아니라 '컬렉터스 가이드북'을 종합하여 매긴 것이다.


더불어 어느새 열번째라는 이정표에 도달한 의미 깊은 디피 컬렉션인 DP010 <트리 오브 라이프> 역시 전 세계 어느 판본에서도 제공하지 않는 충실한 컨텐츠의 가이드북을 제공함으로써,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의 판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게 된 셈이다.

총평 : 작품-AV퀄리티 모두 최고점의 소장용 타이틀





먼저 그 해 가장 뛰어난 작품이자 보면 볼수록 그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는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DP시리즈를 통해 국내에서도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서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영화를 표현하는 데에 어쩌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화질과 사운드에 주저 없이 최고 점수를 줄 수 있는 퀄리티로 발매된 블루레이 타이틀에, 다행을 넘어서 이 작품의 팬으로서 적지 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만약 아직 ‘트리 오브 라이프’를 만나지 못한 영화 팬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그리고 DP시리즈로 출시된 이 블루레이를 추천하고 싶다. 혹자에겐 그저 지루한 영화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진 이들에게 ‘트리 오브 라이프’는 분명히 두고두고 볼 작품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장가치 높은 이 블루레이 타이틀 만한 건 없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더 헌트 (Jagten, 2012)

사냥감이 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유치원 교사인 루카스는 아내와 이혼했지만 아들 마커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중이며,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가장 친하게 장난 치고 놀 정도로 착하고 평범한 남자다. 그런 루카스에게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일이 발생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딸이자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던 클라라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감정의 스침은 루카스를 하루 아침에, 모두가 혐오하는 범죄자로 발전시킨다.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더 헌트 (Jagten, 2012)'는 '사냥'이라는 제목을 들어 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과 이 주인공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어른이라는 이름의 이성과 그 무서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 Zentropa Entertainments. All rights reserved


억울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더 헌트'의 루카스 (매즈 미켈슨)의 이야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그리고 남들보다 좀 더 친절했던 주인공은 어쩌면 그 친절함 때문에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순간, 아주 작은 우연으로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라 작은 우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루카스가 클라라에게 보인 행동을 실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순간의 감정으로 거짓말을 해버린 어린 클라라의 실수 때문 만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원인이 없는, 과정이 원인마저 잠식해 버리는 이야기다. '더 헌트'가 매력적인 건 바로 이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디테일한 부분은 다를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억울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또 한 번 루카스의 이야기에 깊게 공감하고 답답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은, 그 깊이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 영화의 시선과 방식에 있다 하겠다.



ⓒ Zentropa Entertainment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루카스를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 넣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그를 범죄자로 몰아넣는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의 모습을 무지와 억지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즉, 몰상식으로 한 사람을 몰아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이들이 최대한 이성과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충분히 보여준다. 그리고나서는 바로 그 이성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이는 지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그리고 관객에게는 더 나아가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더더욱) 루카스가 처한 상황이 분명히 억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걸 알면서도 만약 내가 저 마을의 한 일원이라면 굳이 루카스와 엮이고 싶지는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까지 불러온다. 즉, 완전히 루카스의 편에만 서 있는 듯 하지만, 은연 중에 루카스를 멀리하는 그의 친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루카스의 친구인 '테오'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더 헌트'의 주인공은 분명 루카스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테오의 영화라고 느껴졌다. 그 만큼 테오의 행동과 갈등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Zentropa Entertainments. All rights reserved


'더 헌트'는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쉽게 부서짐에 노출되어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누군가가 이로 인해 처절히 무너져 가는 과정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열어두고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몇몇 장면은 너무 쉽게 이 희망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영화는, 스윽 하고 다시 나타나 결국 아직도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혹은 더 혹독한 사냥의 시절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남긴다.

사냥감이 되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내가 누군가를 사냥하고 있는 지도 아마 그 전엔 알 수 없을 것이다.



ⓒ Zentropa Entertainments. All rights reserved


1. 매즈 미켈슨의 연기는 정말 좋았어요. 이전 헐리웃 영화에서 보았던 악당의 모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요. 더불어 클라라 역할을 맡은 아이는 어떻게 이런 아이를 찾아냈을까가 더 놀랍더군요.


2. 주인공의 심리에 완전히 공감하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 사회의 입장에 서도록 만드는 연출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Zentropa Entertainments 있습니다.


 





범죄소년 (Juvenile Offender, 2012)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



강이관 감독 연출, 이정현, 서영주 주연의 영화 '범죄소년'을 뒤늦게 보았다. 이미 주변의 호평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2011년 '파수꾼'이 있었다면 2012년에는 '범죄소년'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이 용솟음 치는 작품이었다. 만약 지난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나의 2012년 올해의 영화 목록이 조금은 변경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영화는 '범죄소년'이라는 제목처럼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듯한 한 소년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포스터 속 문구에도 있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가정 환경 탓에 소년원을 들락날락 하는 소년 장지구(서영주)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엄마 장효승(이정현)의 이야기는 어쩌면 너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몰입을 할 수 있었다.



ⓒ 영화사남원.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따지고보면 아들인 지구와 엄마인 효승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 명의 '범죄소년'인 지구와 효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효승은 모자 관계이기 이전에 둘 모두가 같은 현실에 놓여있거나 같은 현실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효승은 지구를 낳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른바 범죄소녀였다. 즉,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던 소녀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캐릭터라는 얘기다. 강이관의 '범죄소년'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시간 대가 다른 두 명의 범죄소년이 하나의 이야기에서 만나는 동시에, 더 나아가 모자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범죄소년과 그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진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애초부터 이 두 가지 관계가 다 성립 (혹은 공감)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좀 더 곱씹어 보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되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두 명의 범죄소년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중했던 영화가, 둘을 모자 관계로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자연스러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한 편으로는 완벽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게 (범죄소년이라는 내용을 지우더라도) 되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생각은 두 배우, 특히 엄마인 효승 역할을 맡은 이정현의 대단한 연기를 보며 절로 들 수 밖에는 없었다.



ⓒ 영화사남원. All rights reserved


'범죄소년'이 좋았던 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를 일상 그 이상으로 특별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자극적일 수 있는 청소년의 임신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 그리고 이런 이들이 가정으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의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결코 선정적이거나 혹은 너무 미화하려 하지 않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지구와 효승이 처한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이 특별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에 영화를 보는 '내'가 대입 가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 영화사남원. All rights reserved


극 중 가난에 찌들리고 더 이상 갈 곳 없던 효승이, 얹혀살던 같이 일하는 미용실 원장에게 이제는 그만 집에서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처음에는 사실 그 미용실 원장의 입장이 더 공감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이미 이 원장은 여러 차례 대가 없이 효승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거기다가 일자리와 집에 방까지 내주었기 때문에 이미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가달라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집기를 부수고 바닥에 들어 누워 오열하는 효승의 모습에서, '왜 저래?'하는 짜증이나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하는 동정 섞인 마음이 아니라 '나는 왜 저렇듯 더 간절하지 못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승의 방법이 옳았다라기 보다 그냥 처해진 상황을 극복하려는 방법이 결코 영리하거나 효과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해결해보려는 효승의 행동에서,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놓였었던 나 자신에게 '왜 너는 더 발버둥치지 않았어?'라며 후회섞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이 영화는 두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범죄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영화사남원.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도 그래서 더 만족스러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계속 진행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영화를 본 '나'의 이야기도 함께 끝나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려주었기에 더 깊은 인상을 준 작품이었다.



1.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참 평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묘한 영화였습니다.


2. 이정현의 연기가 정말로 대단했어요. 너무 여러 장면에서 '와!'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의 완벽함을 보여주어서 그렇게 깊게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한 상태에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연신 들더군요.


3. 강이관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대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영화사남원 있습니다.


 







하룻 밤의 꿈 같았던 오사카 여행기

2012.12.15



어느 덧 다녀온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느껴질까봐 부랴부랴 정리를 해보게 되었다. 지난 해 12월 15일, 정말 짧은 1박 2일의 일본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최우선 목표는 첫 째도, 둘 째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Q'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국내 개봉이 늦어진 탓에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직접 일본에 가서 보게 된 것인데, 처음에는 당연히 도쿄를 노렸으나 역시나 방사능이라는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개인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쨋든 위험을 무릎쓰고 도쿄로 가기보단 가급적 방사능 유출의 위험이 적은 먼 곳을 택하게 되었고, 큐슈와 오사카 중에 오사카를 선택하게 되었다.


스타일 상 외국여행을 가게 되면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느라 일정을 굉장히 빡빡하게 짜는 편인데, 뭐 이번에야 1박 2일에 워낙 짧은 일정이라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으나... 막상 도착하고 나니 시간을 아쉽게 쓸 수가 없어서 여유롭게는 안되더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번에는 데이터 로밍 대신에 우연히 저런 에그 같은 기기의 대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거의 계획을 짜고 가지 않아서 오사카 현지에서 지도를 보며 정하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오사카의 흔한 지하철 풍경들. 일본 갈 때마다 내가 지하철 덕후가 아닌게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원피스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덕후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열차들은 꼭 카메라에 담곤 했는데, 여러 번 가다보니 이제는 귀찮아서 거의 안찍게 되더라 ㅋ






일본 올 때마다 특별한 일 없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규동 먹기. 규동을 먹어줘야 일본에 왔구나 싶음. 그런데 이번 여행은 여행 떠나기 전에 살짝 끼가 있더니, 규동 집에 도착했을 때 쯤에는 이미 코감기 몸살로 정신 못차릴 때라 규동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넘겨버렸을 정도 ㅠ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다시 먹고 싶어지는 건, 당시 먹을 때 전혀 재정신으로 먹지 못했기 때문 ㅠ







에비스쵸역 근처의 덴덴타운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일정이었는데, 가볍게 애니메이션 아이템들을 구경해볼 작정이었다. 분위기가 한가한 평일 낮의 용산 같았는데, 아키하바라를 가 본 나로서는 조금은 심심한 구성이었다.







에반게리온 : Q 개봉에 맞춰 에바 관련 아이템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그리 넉넉치 않았던 여행이라 지름은 최대한 자제. 저 흔한 뽑기 한 번 돌리지 않았음!







밥 먹고 근처를 조금 서성이다가 걸어서 난바까지 가기로 함. 여기저기 구경하며 걷다보니 어느 덧 북적북적한 난바에 도착. 전통있는 식당,가게들과 세련된 가게들이 (거기에 꼭 빠지지 않는 파칭코들도) 잘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골목골목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음.













킨류 라멘은 이미 오사카에 가기 전부터 기대했던 라멘집이었는데, 식사 때와 맞지 않아 가질 못했다. 더 나아가 이번 여행에서는 라멘을 먹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이 ㅠ 레알 느끼한 일본 라멘을 먹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쉽;;







영화는 도호시네마 우메다로 예매를 해 둔 상태였지만, 에바 관련해서 우메다에는 없는 아이템들이 있을까 싶어 일부러 도호시네마 난바에도 들렀다. 역시 우메다에는 없는 아이템들을 몇몇 팔고 있었다.







에바 관련 쿠키 세트와 3D 포스터, 사운드 트랙 등은 우메다에는 팔지 않고 난바에서만 팔고 있었는데, 사운드 트랙과 3D포스터를 살까 말까 다음날 까지 고민하다가 그냥 돌아온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웠다 (2천엔을 그냥 들고 귀국했기 때문에 더 아쉽 ㅠ) 특히 3D 포스터는 일본 아니면 살 수 없는 터라 그냥 살 걸 하는 아쉬움이 ㅠ





도호 시네마를 나와 본격적으로 도톤보리를 즐기기 전 숙소인 호텔 메트로 더 21에 잠시 들러 짐을 풀고 체크 인을.






일본에 여러 차례 오면서 여러 곳의 숙소를 다녀봤지만, 적어도 그 외관과 전체 규모 만큼은 메트로 21이 가장 그럴싸 했다. 객실이야 다 딱 침대 하나 들어가면 꽉 차는 사이즈이지만, 메트로 더 21인 도톤보리 골목 안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이동성이 탁월했고, 로비도 넓고 전체적으로도 상당한 규모를 갖춘 호텔이라 마음에 들었다. 물론 객실에서 바라보는 뷰는 그저 앞 건물이었지만;;






체크 인을 마치고 나온 도톤보리에는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도톤보리 강이 한 눈에 보이는 다리 위에서 한 컷.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불빛들이 켜진 뒤에 다시 오기로 하고, 다시 골목 안으로.





다리 바로 옆에서 파는 타코야키였는데, 줄 서서 먹는 걸 보니 제법 맛집인 것 같아 혹했으나 역시나 패스. 이번 여행에서는 타코야키도 먹질 못했네;;









뭐 도톤보리에 오면 무조건 예외없이 사진을 찍어야 될 것 만 같은 구리코 아저씨 ㅋㅋ 이 시간은 아직 불이 켜지기 전이었는데, 일단 요 정도로만 찍고 이따가 조명이 들어오면 다시 방문하기로!






그리고는 서둘러 '에반게리온 : Q'를 보기 위해 도호 시네마 우메다로! 이때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 우산 없이 나온 우리는 어떻게든 우산 안사고 버텨보겠다고, 요리조리 비를 피하고 피할 수 없을 땐 뛰고 빨리 걷기를 반복하며 결국 극장에 도착 ㅋ






도호 시네마 우메다는 비교적 쾌적한 환경이었다. 자동발권기를 통해 발권했는데 일본어를 몰라도 대충 센스로 발권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원래 한국에서도 팝콘 잘 안사먹는데 일본의 팝콘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비싼 돈 주고 팝콘 구입. 음료수도 하나 샀는데 빨대 꼽는 곳이 하나 밖에 없는 걸 보고는 역시 일본이구나 싶었음.


에바 Q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다른 포스팅으로~









드디어 보게 된 '에반게리온 : Q'의 감동과 떨림을 고스란히 안은 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톤보리로 다시 나옴. 기어이 편의점에서 비닐 우산을 하나 구입. 갑자기 비가 내려서 인가 길가에는 전부 똑같은 편의점 우산을 쓴 사람들이 ^^







오꼬노미야키를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돌아다니다가 딱 봐도 감이 오는 가게를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보니 미리 블로그에서 보았던 유명한 집이었다. 오꼬노미야키와 야끼우동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생을 주문! 아, 그 때의 시원함과 목넘김이 다시 떠오른다!!






다시 돌아온 다리 위. 이왕 찍는거 제대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적당한 포인트를 잡아보려고 보니 다리 위에는 워낙에 사람이 많아서 어디서 찍어도 다른 사람들이 잡힐 것 같더라. 그래서 혹시나해서 다리 아래로 내려가보니 여기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탁 트인 시야가! 여유있게 구리코 아저씨를 대놓고 시원~하게 찰칵!







그렇게 너무 짧지만 알찼던 오사카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일본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코스!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또 한 잔~ 편의점에서 늦은 시간이라 떨이로 파는 저렴한 안주들을 사서 가볍게 한 잔. 몸 상태가 감기로 메롱이라 한 잔 만 더 하고 내일을 기약하기로.





다음날 아침 숙소 앞에서 바라 본 풍경. 저 멀리 대전차가 보이고~

다행이 둘째날은 비가 그쳐서 좋은 날씨에 둘러 볼 수 있었음 (하지만 감기는 여전히 ㅠ)





본토의 북오프에 살짝 들러서 만화책 구경을 실컷 한 뒤 (역시 지르지 않았음;;;) 아침 겸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저렴한 회전 스시 집을 컨택!







아.... 홍대에서 먹는 저렴한 회전 스시집의 퀄리티와는 감히 비교조차 안되는 저 퀄리티 ㅠㅠ 종류도 다양하고 한 점 한 점도 실하게 나와서 배부르게 먹었음. 특히 저 생선 한 마리가 다 들어가 있는 듯한 비쥬얼의 스시는 하나 먹으면 밥 한 공기에 생선 한 마리 먹은 듯한 포만감을 주어 아껴 먹게 됨.






아... 다시 봐도 감동적인 비쥬얼. 이 곳이 고급 스시집이 아니라 아주 저렴한 회전 스시집이라는게 더 중요! 한 접시당 100엔!!







집에 뭐라도 사가지고 갈까 하던 중 미리 블로그에서 보았던 그 유명하다던 치크 케익 집을 방문. 하나씩 사서 집에와 먹었는데, 아~ 정말 부드럽고 맛있더라. 치즈 케익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먹기를 추천!





그렇게 둘 째날은 별다른 스케쥴 없이 도톤보리 여기 저기를 좀 더 구경하고 오후 쯤 늦지 않게 간사이 공항에 도착. 감기 때문에 너무 골골해서 정신이 혼미했던 탓인지, 아니면 정말 보고 싶던 에반게리온 : Q를 봐서 인지, 아니면 그냥 1박 2일이라는 시간 자체가 워낙에 짧았던 탓인지, 공항에 와서 대기하다보니 1박 2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가긴 한 건지 싶더라.


그래서 3월에 또 가기로 했음 --v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위대한 밀로크로제 (ミロクローゼ, 2011)

영상미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워낙 아무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나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정보 아니 선택하게 된 요인은 오로지 주연 배우인 야마다 타카유키 밖에는 없었다. 야마다 타카유키를 몹시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요근래 '13인의 자객'이나 '크로우즈 제로'를 연달아 보면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슬쩍 예고편을 보니 그간 영화에서 보았던 진지한 매력 외에 정말 의외의 매력까지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덥썩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감독이 누구인가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확인해보게 되었는데, '푸콘 가족'을 연출한 이시바시 요시마사 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선택에는 아마 변동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게 된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참 드물게 실망스러웠다. 보는 내내 조금은 민망스럽기도 했을 정도로.



ⓒ 이미지팩토리. All rights reserved



일단 나는 일반 관객들이 '이거 뭐야??'라고 생각할 만한 이른바 '이상한' 영화들도 비교적 잘 보는 편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으면 별로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정말 이상한 걸로 승부를 보는 영화였다면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그냥 이상하기만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처음부터 내러티브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뭐 없어도 너무 없다는 점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사실상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 (이것의 연관성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조차도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마저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더 문제는 각각을 독립적으로 보았을 때 그 자체로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 이미지팩토리. All rights reserved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인 '쿠마가이 베송'의 이야기는 일본 특유의 색깔있는 유머라는 점을 감안하여도 조금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사실 쿠마가이 베송을 연기한 이가 바로 야마다 타카유키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등장하는 외눈박이 검객 '타몬'의 이야기와 이름이 가장 재미있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 역시 아쉬움이 많았다. 타몬의 이야기는 비쥬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비쥬얼이 강조된 에피소드였는데, 비쥬얼만 과장되어 강조되다보니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칭찬한 타몬의 5분이 넘는 슬로우 모션 시퀀스 역시 정교하다거나 신선하다 라는 느낌 보다는 지루하다 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보여주기를 위한 비쥬얼 쇼크의 에피소드, 더나아가 영화라도 최소한의 맥락은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과감하게 비쥬얼만을 내세운 작품이었고, 그 결과는 사실 별로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비쥬얼 쇼크라는 것이 결코 쇼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더라도 감독의 색깔이 비쥬얼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영상은 '조금 색다르네' 정도였기 때문에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 이미지팩토리. All rights reserved


엔딩 크래딧을 보니 감독인 이시바시 요시마사가 연출 외에 각본, 음악, 편집, 미술 등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조금은 과한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이름부터 빵터지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만으로 하나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더 이시바시 요시마사의 장점을 살리고 독특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건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 그 이름이었다.



1. 아직 야마다 타카유키는 이름만으로 작품을 선택할 만한 정도는 아닌듯 ㅠ

2. 상상마당에서 보았는데 오랜만에 필름 상영이라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프린트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화질이 상당히 안좋았어요. 비쥬얼이 중요한 작품인데 그나마 디지털로 봤다면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3. 아쉽지만 '크로우즈 제로'나 한 번 더 봐야겠네요. 세리자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이미지팩토리 있습니다.


 






소니 DSC-RX100

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카메라!



진짜 얼마만에 카메라 업글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가물가물한데, 그 가물가물은 DSLR에서 똑딱이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사실로서 증명이 되었네요. 구매직전까지 RX100과 NEX-6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최종적으로 편의성과 저의 지난 카메라 사용 패턴을 감안해서 RX100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펜탁스 K100D를 처음 샀을 때만 해도 카메라에 엄청난 관심이 있어서 한 동안 사진을 집중적으로 파기도 했었는데, 그간 이런 저런 이유로 멀어지면서 카메라 활용 용도가 DSLR의 기능을 미처 다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준 DSLR의 기능을 하는 RX100으로 최종 결정! 너무 업무가 바쁜 나머지 뜯어볼 시간도 없던 아이템을 퇴근 뒤 뒤늦게 개봉해 보았습니다.





몇 군데 조건을 보다가 이것저것 액세서리 주는 상품으로 골랐는데, 살짝 필요 없는 것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구성이네요. 나중에 상황봐서 추가 배터리만 하나 더 구입할까 생각중입니다.







박스를 딱 열어보고 든 처음 생각은 역시나, '와! 진짜 작다!' 였어요.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실물이 더 작게 느껴지더군요. 최근까지 계속 DSLR을 썼던 터라 아마 더 그랬을 거에요. 한 손에 쏙 들어오고! 디자인은 오히려 심플한 것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구요.









칼 자이즈 렌즈가 앞으로 쭈욱 나온 모습. 저렇게 해도 작아요 ㅎ 아직 제대로 촬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정말 개봉만 겨우 해봤음;;) 대충 찍어본 샷에서도 아웃 포커싱 능력은 탁월해 보이더군요.







RX100의 뽀대는 역시 정면샷. 칼 자이즈 렌즈와 ZEISS의 파란 로고가 다 설명해주는 아우라!





크기 비교를 위한 아이폰 4S와의 비교. 보시면 아시겠지만 길이는 아이폰 4S가 조금 더 깁니다. 그 정도!





그 동안 여행다니면서 매번 커다란 DSLR을 꺼내느라, 또 가지고 다니느라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소니 RX100은 최강이 휴대성이라는 장점으로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됩니다. 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카메라네요. 그래서 조만간 또 여행을......


자세한 사용기는 다음에 올려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사진은 펜탁스 K100D로 촬영되었습니다 (K100D의 마지막 작품인가 ㅠㅠ)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

영속성으로서 가능한 영원에 대하여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워쇼스키 남매의 팬이다.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스피드 레이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도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장하는 바이고. 그럼에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함께 쓰고 연출한 '클라우드 아틀라스 (Cloud Atlas, 2012)'는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는 작품이었다. 원작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시놉시스와 스틸컷들로 보았을 때 워쇼스키가 자신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위해 너무 많은 볼거리를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172분이라는 러닝 타임도 그 우려에 한 몫을 했다). 그렇게 보게 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우려하던 바와 같이 조금은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가운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 나니, 조금은 직접적이지만 순수한 그 의도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있는 유치함으로 도배된 '스피드 레이서'에서 왈칵 했던 것 처럼 말이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기 전 이미 '무릎팍 도사' 등을 통해 알려졌던 것처럼 이 영화는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윤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만약 이 영화가 윤회에 대한 영화였다면 별똥별 표식이 있는 이가 각 시대별로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소개했었을 것이며, 굳이 이 정도의 분장쇼를 동원하며 다른 배우로 윤회를 표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인간 혹은 영혼의 불멸이나 환생, 윤회 등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어떤 메시지 혹은 가치관의 힘이라고 느꼈다. 즉, 시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존재로 윤회하는 영혼의 이야기라기 보다 각 시대, 특히 그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던 어떤 존재 혹은 계층의 움직임이 그 시대 내에서는 비록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패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만약 그렇다면 이건 대단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위로의 메시지가 되는데, 물리적으로 한 시대를 살 수 밖에는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 넘는 영화적 시간 배경은, 하나의 이야기만 보자면 실패담이거나 별 다를 것 없는 성공담일 수 있는 이야기들 간의 영속성을 만들어 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차라리 윤회 보다는 '나비 효과'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영화 속 나비 효과가 윤회라는 형식을 빌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나비 효과'의 영화로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인물들이 놓지 않았던 그 '의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나비 효과는 그 원인이 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주체가 그 원인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고 그 결과에 대해 의도하는 바도 없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시대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혁하고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의지는 본인이 살고 있는 현재의 개혁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다음 세상을 위한 의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나비 효과의 영화라기 보단 영원 (永遠)에 대한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영원에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들의 의지와 삶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 지를 보여준다.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유머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예상 외의 고어한 장면들도 있고, 배경 역시 시대에 따라 클래식부터 SF까지 변화를 계속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아주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사로 전달한다. 거대한 바다 앞에 작은 물방울일 뿐이다 라는 얘기에 그 물방울들이 모여서 바다가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결국 워쇼스키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거였구나 싶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굉장히 단순한 메시지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그 메시지가 너무 순수하고 여린 탓에 마치 '스피드 레이서'가 그랬던 것처럼 유치하거나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여러 겹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순수했다. '순수'와 '순진'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많은 순수한 것은 순진한 것으로 오인되곤 하는데, 엄밀히 말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오인될 여지가 제법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는 없겠다.


하지만 난 그래도 워쇼스키와 톰 티크베어가 말하고자 한 영속성으로 가능한 영원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중이거나, 혹은 실패가 자명하지만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자신이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결코 헛된 투쟁이 아니고, 아니었다고.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 전 Neo Seoul에는 별다른 불만이 없어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은 지금의 서울과 같은 의미로 등장한다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즉, 논란이 될 만큼의 포인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2. 벤 위쇼가 등장하는 부분은 왠지 톰 티크베어가 연출하고 썼을 것만 같은 느낌이더군요. 굳이 '향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어쨋든 벤 위쇼는 정말 멋지게 나옵니다.


3. 배두나는 '공기 인형'과의 연속성이 느껴졌는데, 재미있는 건 잠깐이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외국배우가 한국말 할 때처럼 어색하게 들렸다는 점이었어요 ㅋ


4. 배우들의 분장쇼는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쇼'적인 측면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지만요. 배두나가 분한 1명, 할리 베리가 분한 1명 정도 빼고는 거의 다 알아봤는데, 휴고 위빙이 간호사라는 걸 못알아본 관객이 많다는 것에 전 더 놀랐어요 ㅋㅋ 휴고 위빙은 워낙에 강렬한 얼굴이라 얼굴을 다 지우지 않는 한 너무 쉽게 알아보겠더라구요 ㅎ 아, 주신도 몇 캐릭터는 못 알아봤어요. 하긴 주신이 나오는 줄도 사전에 몰랐던 터라;;



ⓒ Cloud Atla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Cloud Atlas Productions 있습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닮고 싶은 죽음, 아니  삶



비록 제작자라 할지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신뢰의 이름 그리고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을 지낸 마미 스나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도모아키 스나다의 마지막 여정을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도모아키 스나다는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평소 영화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자주 우는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만 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이 영화엔 눈물보단 미소와 부러움이 더 깊게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울지 않았다.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죽음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도모아키 씨의 여정은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진다. 아니 그려진다는 연출의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보다는 유쾌함이 담겨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도모아키 씨가 적어내려간 엔딩 노트엔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장례식 초대 명단 정리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을 믿어보기' 등 적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느껴지는 to-do list가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들이 주인공의 일생을 모두 담으려 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도모아키 씨의 젊은 시절을 사진과 홈비디오 등으로 회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죽음을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라기 보다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 과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배려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유쾌한 분위기가 도모아키 씨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는 철저하게 도모아키 씨의 생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왜 애쓰고 있다고 하냐면 이 작품을 촬영하고 만든 이가 바로 그의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사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어떤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아닌 계획을 짜보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엔딩 노트는 정답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서 과연 이런 계획을 실현 혹은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삶은 '가능하다' 라는 확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엔딩 노트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모아키 씨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모아키 씨의 죽음이 정말 부러웠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꿈꾸었던 죽음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도모아키 씨의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더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꺼이 함께 동참해주는 가족을 갖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엔딩 노트'는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모아키 씨처럼 죽고 싶다' 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도모아키 씨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해피 엔딩이었기 때문에.




ⓒ 영화사 진진.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영화사 진진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IMAX 3D, 2012)

믿음을 말하는 거대한 이야기



연초부터 정말 흥미로운 작품을 보았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는 복합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두 가지 스타일은 각각 정반대의 경우인데, 하나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나 분명해서 이를 영화가 이끄는대로 끝까지 따라간 뒤 영화가 맺은 마지막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선택하면 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영화는 적게는 두 가지의 길을 많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도록 설계 되어 있어서 영화 스스로는 답을 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흥미로운 것은 보는 이에 따라 이 두 가지가 모든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꼭 보는 이에 따라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에게서도, 곱씹어 보기에 따라서 명확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반대의 경우로도 생각해볼 수 있고, 반대로 열려있다고 여긴 지점이 너무도 분명한 주장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넓게 보았을 때 '믿음'에 관한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한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 Fox 2000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에 파이가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두 가지 이야기 중 무엇이 진실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라는 것보다는 둘 중 하나 혹은 모두가 다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영화 내내 공감하고 따라왔던 파이가 들려준 리차드 파커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이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일본 선박회사 사람들에게 들려준 참혹한 이야기 역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내 생각은 불분명 했었다. 파이가 영화 내내 들려준 이야기에 흠뻑 빠져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마지막 파이가 일본 선박 회사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이야기를 들려 줄 땐 '아!'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반대로 의심하지 않게 되었었다. 하지만 극장을 나오며 다시 곱씹어 본 영화는 과연 어떤 것이 진실인가를 넘어서서, 내가 더 믿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영화가 궁극적으로 묻고 싶었던 바로 그 부분말이다.



ⓒ Fox 2000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처음에는 단순하게 실제 참혹했던 일을 이런 판타지로 승화(?)시킨 파이의 이야기에 목적성이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편의상)에서 내가 파이였다면 이런 오인 혹은 회피의 과정 없이 남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에 대입해 인간이란 무엇이든 믿는 바 대로 자신을 컨트롤 혹은 속일 수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에 다다랐는데, 좀 더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이런 방식으로의 회피나 왜곡을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이르렀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근거로 파이에게 일어났던 실제의 일들을 유추해 본다면 (식인섬을 비롯) 파이가 처해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즉, 리차드 파커는 사실상 파이의 또 다른 자아가 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를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3인칭 시점으로 본다면 리차드 파커를 탓하기는 커녕 안쓰러움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리차드 파커를 타자로 인정했을 때의 얘기지, 이것이 파이 본인의 이야기라면 답변은 달라질 수 밖에는 없다.


사실 여기서 리차드 파커의 이야기가 사실 파이 본인의 이야기였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파이가 스스로 리차드 파커로 타자화 하여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파이 스스로가 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의도한 것 자체가 비판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Fox 2000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보니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영화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되었다. 모든 영화는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얘기처럼 이 작품 역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영화라는 것은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감독이 철저히 주도권을 쥐고 관객을 믿게 만들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예술이다. 즉, 어떤 영화라도 '만들어 졌다'라는 태생적 요소를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측면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의 거의 대부분은 특히 더 가짜의 것들로 채워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믿음에 관한 영화임에도, 아니 그래서 인지 몰라도 이 영화의 대부분은 가짜로 '만들어 진' 것들이다.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물론 대부분 CG로 만들어졌고, 바다도, 하늘도, 대부분의 배경들도 CG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만들어진 것들이 겹겹으로 쌓여 복합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영화다. 이 허구로 쌓인 겹겹의 구성이 본래의 진실을 더 강하게 만들고자 함인지, 반대로 본래의 진실 혹은 거짓마저 강하게 부정하려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라기 보다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 Fox 2000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영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겠습니까?'라고.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결론을 내릴 수 없겠다 라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결론을 내려보자면 지금은 답할 수 없다 정도일 것 같다. 다시 말해 이 대답은 대답을 하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마음 한 켠에서는 간절히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필요 없이 장황해질 것만 같은데, 어찌되었든 무언가를 아무 조건 없이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사실'인 것 같다. 그것이 맹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말이다.



1. 아이맥스 3D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이야기' 만큼이나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아이맥스 3D관람을 추천하고 싶어요. 이 영화가 믿음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법 중에는 관객을 압도하려는 시각적 의도가 분명히 있거든요.


2. 이안 감독의 스펙트럼은 진짜 놀라운 것 같아요.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헐크' '색,계' '라이프 오브 파이'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이 같은 감독의 필모그래피라고 믿기는 힘들죠. 이것도 믿음의 문제인가요 ㅎ


3. '라이프 오브 파이'는 좋아하는 영화인 동시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네요. 다시 보고 싶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Fox 2000 Pictures 있습니다.


 





주먹왕 랄프 (Wreck-It Ralph, 2012)

픽사와 디즈니는 변하고 있다



'주먹왕 랄프'도 놓칠 뻔한 영화였다. 제목이나 분위기에서 아동용 영화인 줄 오해했었고, 디즈니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한 흥미를 갖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요 근래 디즈니 영화가 그리 나쁜 편만은 아니었다. 2008년작 '볼트 (Bolt)'는 새롭지는 않았지만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고, 2010년작 '라푼젤 (Tangle)'은 디즈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로 완벽하게 성공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먹왕 랄프'가 처음부터 끌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보고 나서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 영화를 안봤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디즈니가 변하고 있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건 단순히 디즈니 만의 변화라고 볼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가 인수한 '픽사'도 함께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는 얘기다.



ⓒ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주먹왕 랄프'는 몇 해 전 '슈렉'이 디즈니를 비판하던 때를 떠올리면 도저히 디즈니에서 만들어졌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단 주인공은 '펠릭스'가 아닌 악당 '랄프'이며, 그렇다보니 배경이 되는 공간도 랄프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니까 착한 주인공이 악당 역할에 처한 억울한 상황을 극복하는 얘기도 아니고, 온갖 악당들로 부터 이겨내는 영웅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악당 그 자체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인정하면서 진정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악당으로 알고 있는 캐릭터들 혹은 보여지는 외모 측면에서 비호감적인 캐릭터들이 사실은 순수한 영혼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외로움을 갖고 있다 라는 것까지만 얘기했어도 '이런 얘기를 디즈니가?'라며 놀랐을 텐데, '주먹왕 랄프'에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결론마저 전통적인 디즈니의 가치와는 전혀 상반된다고 할 수 있는, 마치 '슈렉'의 엔딩이나 픽사 작품에서나 가능할 법한 결론을 낸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한 번 픽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디즈니와 픽사가 계속 관계를 맺고 있기는 했었지만 디즈니가 완전히 픽사를 인수한 지금. 과연 디즈니와 픽사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또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우연인지 이 작품을 보고 와서 주말에 집에서 본 블루레이가 바로 픽사의 '메리다와 마법의 숲 (Brave)' 였는데, 개봉 당시 워낙에 실망했다는 평들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기는 했으나 개인적으로 그 정도로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기존 픽사 팬들이 어떤 부분을 기대했었고, 어떤 부분이 기대에 못미처 실망스러웠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분명 기존 픽사 영화와는 조금 다른 영화였다. 얼핏 보면 또 다른 상황에 놓인 픽사 영화의 주인공 같기도 하지만, 메리다는 픽사가 그 동안 다루었던 주인공들의 특성 보다는 디즈니 주인공의 모습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는 캐릭터에 가깝다. 반대로 '주먹왕 랄프'의 주인공 랄프는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픽사 영화의 주인공 성격을 더 띄고 있기도 하다.


이 현상은 어느 한 쪽이 단순히 어느 한 쪽을 닮으려고 한 시도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 같은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이 다운그레이드일지 업그레이드 일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두 작품만 보자면 분명 '주먹왕 랄프' 입장에서는 업그레이드고 '메리다...' 측면에서는 다운그레이드의 성격이 짙지만, 두 작품 만으로 디즈니와 픽사의 앞으로를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다.



ⓒ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인 디즈니의 유산 가운데 뮤지컬 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어린이들에게 오히려 잘못된 선입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픽사와의 코옵을 통해 이런 보수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는 것에는 두손들어 환영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조금 고민이 된다. 기존 픽사 작품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성격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했던 관객으로서, 그들이 디즈니와의 결합을 통해 디즈니적 색채를 얻게 되는 것은 별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부분을 아주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을 보자면 조금은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했 듯이 '메리다와...'가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픽사 작품이기에 아쉬운 점이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픽사 작품 특유의 색채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금은 두 스튜디오가 한 지붕 아래에 본격적으로 놓이게 되며 겪는 과도기에 선보인 두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존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각각 보여준 것이 앞으로는 또 어떤 방향으로 각각 전개될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되는 바이다.



ⓒ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어쩌면 '주먹왕 랄프'의 충격적인(?) 만족도에 놀라 디즈니와 픽사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되어버렸는데, '주먹왕 랄프'는 여전히 아동영화의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픽사 영화가 만족시켜주던 어른의 감성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일단 고전 게임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것 만으로도 매력적이었는데, '팩맨'이나 '스트리트 파이터' '슈퍼 마리오' 등을 어린 시절 오락실과 가정용 게임기를 통해 신나게 즐겼던 세대로서 이 작품은 묘한 향수마저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야 오락실이 그렇게 생활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지만, 만약 그 시절에 이런 영화를 보았다면 극장을 나오자마자 오락실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게임기 안 캐릭터들에게 이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공감대 혹은 안스러움마저 들지 않았을까 싶다.



ⓒ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1. 전 원래 이런 스타일의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바넬로피'는 정말 귀여웠어요. 정말.

2. 이 글은 어쩌다보니 '주먹왕 랄프' 보다는 픽사와 디즈니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로 한 번 써보고 싶네요. 충분히 그럴 만한 여지가 있는 영화에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lt Disney Animation Studios 에 있습니다.


 




0.

2012년은 정말로 정신 없이 빠르게 지나간 한 해였다. 2012라는 숫자가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2013이라는 더 어색한 숫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회사 일과 개인사로 정신 없는 한 해 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정말 블로그를 놓치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블로그라는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려서 쉽다는 것이 아니라, 이 나선에서 한 번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 끈을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그 결과 2012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렇게 소소한 결산 글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좋지 아니한가?


1.

글 개수로만 보자면 지난 1년간 약 143개의 글을 블로그에 썼으며 그 대부분은 영화에 대한 글이었다. 올해는 이전 해들과 비하자면 영화를 그리 많이 보질 못했는데 약 88편 정도를 극장에서 본 것 같다 (100편 아래로 본 것은 요 몇 년간 처음이다).


2.

개봉작 리뷰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글들은 블루레이 리뷰 글인데, 많이 쓴 것 같지만 막상 세어보니 그리 많이 쓰지는 못했더라. 14편 정도를 썼고 대부분은 DVD프라임에 공식리뷰로 올라간 원고들이었다. 블루레이 리뷰는 시간이 워낙에 많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만큼 쓰고 나면 보람이 가장 큰 글이기도 한데, 좀 더 기획적이고 자유로운 글들을 더 못 쓴 것이 못내 아쉽다.


3.

2012년 내게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일이라면 역시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에 내 글이 수록된 사건을 들 수 있겠다. 몇년 전부터 그냥 막연히 꿈만 꾸더 일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과 '옥희의 영화' 블루레이 커피북에 내 글이 수록되게 되었고, 이후 이윤기 감독의 영화 '멋진 하루' 블루레이 한정판에도 수록되어 감독님께서 직접 잘 보았다는 말씀까지 전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기도 했었다. 두 작품 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영광인 동시에 부담도 되었었는데, 제작사와 감독님이 만족해주셔서 정말로 뿌듯했다. 올해는 이렇게 세 작품에 내 글을 실을 수 있었고 2013년에도 한 작품 벌써 예약되어 있는 상태라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4.

'북촌방향'과 '옥희의 영화'에 수록될 때에는 별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아쉬타카'라고만 올라갔었는데, '멋진 하루' 때에는 '영화 애호가'라는 타이틀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실 별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를 뭘로 불러야 할까 고민되는 순간들이 많았었다. '파워블로거'라는 호칭은 끔찍하게 싫어하고, 부담스러울 뿐더러 영화 평론은 하질 않으니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그냥 '리뷰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었는데, '영화 애호가'라는 호칭은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어차피 좋아서 쓰는 글이고, 그 '좋아함'을 어떻게 전달할까 만을 고민하는 글인 경우가 많기에 더더욱 '애호가'라는 호칭은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 애호가'로 남고 싶기도 하고.





5.

올해도 어쩌다보니 일본에 또 가게 되었는데 (매년 한 번씩 꼭 가는 듯), 도쿄를 정말 가고 싶었으나 방사능 때문에 오사카로 선회하여 결국 보고 싶었던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Q'를 보고야 말았다. 이 때 워낙 짧은 일정이라 바로 다음 여행 계획을 3월로 잡아버렸는데, 이 때는 또 무슨 테마로 여행을 할지 벌써 부터 고심중이다.


6.

2012년은 개인적인 삶에서도 그랬지만 블로그에서도 장대한 계획이 특히 많았던 한 해였다. 2013년에도 적지 않은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들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열악한 올해도 몇가지를 이뤄냈던 것처럼 새해에도 조금씩이나마 차근차근 이뤄나갈 예정이다. 2013이라는 숫자가 조금은 덜 어색해졌을 즈음엔 계획한 것들 역시 조금은 이뤄져있길 바래본다.


Adios~ 2012. 제발 가라!







2012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

(2012 Movie of the Year)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자면 2012년 한 해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몹시 힘든 시간들이었는데, 이렇게 또 한 해를 버티고 나니 그 시간들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더라. 그럼에도 결코 쉽지 만은 않은 시간들을 버티게 해준 것은 역시 영화였다.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었고 차마 울 수 없었던 현실과는 다르게 영화를 보면서는 마음껏 눈물 흘릴 기회도 주어졌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이나 보고 난 뒤 글을 쓰면서 단순히 영화를 보고 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2012년에는 유난히 보고 싶었는데 못 본 작품, 그리고 봤는데 쓰지 못한 작품도 적지 않았다. 벤 애플렉의 '아르고'는 결국 보지 못했고 '아무르'도 결국 놓쳤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이나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 그리고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은 모두 인상 깊게 보았으나 결국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한 작품을 올해의 영화로 꼽은 적은 '홀리 모터스'가 처음인 것 같다. 너무 감동받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랜 토리노'를 제외한다면).


언제나처럼 각 작품들 간의 순위는 없으며, 아니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1위 작품 하나 만을 꼽으려고 한다. 바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가 그 것이다. '늑대 아이' 외에는 순위와 상관없는 개봉일 역순이며 2012년 한 해 극장에서 본 영화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12월 일본에서 보고 온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Q'는 후보에 넣지 않았다. 아쉽게 빠진 작품이라면 '클로니클' '토리노의 말' '다크나이트 라이즈' '건축학개론' '우리도 사랑일까' 그리고 '다른나라에서'와 '대학살의 신' 등이 있겠다.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하고 우아한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TTSS였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향연들 만으로도 황홀한데, 스파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이 방식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제 내게 스파이하면 이던 헌트 만큼이나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올해의 엔딩곡 후보.

 

 

 



2.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물론 재미나 감동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워 호스'의 감동은 그 크기가 달랐다. 복잡한 얘기도 없고, 신파적이고 우직한 이야기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많이도 울렸다. 올해 극장에서 흘린 눈물 가운데 양으로만 따지면 '워 호스'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극장에서 잘 우는 내 특성상 올 연말에는 꼭 눈물양으로만 순위를 한번 따져봐야 겠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설명하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올해의 헐리우드 클래식!

 

 

 



3.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것처럼, 조지 클루니가 왜 멋진 배우인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알렉산더 페인과 만난 조지 클루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디센던트'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30대 초반에 본 '디센던트'와 40대가 되어서 보게 될 그리고 50대가 되어서 보게 될 '디센던트'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11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41

 



4.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과연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압도 당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동안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겪는;;). 혹자는 라스 폰 트리에를 일컬어 너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런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또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5.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논란 아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나는 리들리 스콧의 방식을 굳게 지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52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700

 


 

6.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드 어드벤처

 

 

요 몇 년 사이 가장 신작을 기다리는 감독 중 하나가 홍상수 만큼이나 우디 앨런이 되어버렸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런 기대감을 120% 만족시켜 준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도시 시리즈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우디 앨런이 만든 도시 중심 영화는 역시나 달랐다. 시공간을 넘나들면서도 이렇게 자유로운 감독이 또 있을까. 올해 본 영화 가운데 '아, 내가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던 작품이기도 했다.

 

 

 

 


7. 스카이폴 (Skyfall, 2012)

새 시대를 맞는 007의 강렬한 대답

 

 

나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 크레이그 007 삼부작의 세 번째 작품 '스카이폴'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감독도 다르고 공식적으로 삼부작도 아니지만, 샘 멘데스는 '스카이폴'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세 작품을 모두 껴앉으며 완성형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만들어냈다. '스카이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영화 자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007'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50주년 기념작으로 더 없이 완벽한 이 작품은, '어떻게 이 시리즈가 50년이라는 세월을 생존해 왔는가'를 넘어서서 '왜 냉전이 끝난 21세기에도 007이어야만 하는가'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8.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2011)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놓쳤으면 후회했을 작품이었다. 실제로 놓칠 뻔 했던 영화를 뒤늦게 보게 되어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이 기적 같은 아니 기적의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올해 마틴 스콜세지의 '조지 해리슨'과 더불어 좋은 다큐 영화들을 여럿 접할 수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칭 포 슈가맨'이 특별한 건, 영화가 특별한 것 +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인공 로드리게즈의 삶이 주는 특별함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뭐라고 말로 할 수가 없다. 보라는 것 밖에는. 에반게리온 : Q가 말하는 순간 스포가 되는 것처럼, 이 영화는 말하는 순간 기적이 되는 영화다.

 

 

 



9.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가

 

 

글의 서두에 밝힌 것처럼 올해 인상 깊게 보고도 글로 풀지 못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다. 영화제를 통해 인상 깊게 보았지만 타이밍을 놓쳐 미처 쓰질 못했는데, 이 영화가 주는 특별한 경험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기본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 그리고 '영화를 본다'라는 것에 대한 영화로 읽혀졌다. 참고로 이 영화는 씨네큐브에서 진행했던 영화제를 통해 보았는데 그 당시 영화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신의 소녀들' '토리노의 말' '홀리 모터스' 가운데 개인적으론 '홀리 모터스'가 가장 좋았다.

 


 

10.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올해의 영화를 몇 년째 꼽으면서 정말 수 많은 명작들을 다뤄왔지만 그래도 순위를 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위 한 작품은 꼽게 되었으니 바로 이 작품 '늑대아이'다. 보통 울컥하는 영화들은 어떤 지점에서 터지거나 클라이맥스에 터지곤 하는데, 이 영화는 하나가 홀로 되던 시점에서부터 이미 울컥하기 시작해서 그 이후에도 쉴새 없이 감정적으로 흔들렸던 작품이었다. 내년에는 기회가 된다면 '늑대아이' 속 실제 장소를 찾아가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일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여운은 아직도 '뜨겁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 에 있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본 에반게리온 : Q

(스포일러 없음)



벌써 열흘 정도가 지났네요. 지난 12월 15일,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사카를 다녀왔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국내 개봉 일정이 희미하기만 한 '에반게리온 : Q'를 보기 위함이었죠. '에반게리온'은 많은 이들에게 그러하겠지만 저에게도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고, 그 가공할 파급력은 신 극장판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죠. 어쨋든 국내에는 기존 수입했던 제작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개봉이 원활하지 않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도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개봉 여부와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더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과감하게 일본으로 오사카로 직접 날아가게 되었죠. 뭐 결론적으로는 절대 후회스럽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에반게리온 : Q를 본 것만으로도 말이죠. 에바 팬이라면 아마 이해하실 거에요.




(저 멀리 보이는 대전차와 도호 시네마즈 우메다)


일본에 가기 전 국내에서 미리 3일 전에 도호 시네마즈 (TOHO CINEMAS) 홈페이지를 통해 예매를 할 수 있었는데, 미리 명당 자리를 선점해서 당일에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개봉한 지가 좀 지난 뒤에 방문한 터라 조금은 한산한 모습이었는데, 좌석을 앞에 아무도 없는 (앞과 뒤가 나뉘어진 구조에서 뒤에 맨 앞 좌석) 곳으로 선택한 건 정말 신의 한 수 였어요. 제가 방문한 도호 시네마즈 우메다의 3관은 좌석 간의 경사가 거의 없어서 앞 사람에 따라 시청 환경이 좌우될 수 있는 구조였는데, 다행히 앞에 아무도 없는 좌석을 선택해서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었죠. 영화 예매 시스템은 국내랑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라서 일본어를 잘 몰라도 대충 감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도호 시네마즈 우메다의 내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다양한 관련 상품들을 파는 곳이 있고, 무인 발권기를 지나 콜라, 팝콘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매점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극장 안에 당췌 앉아있을 곳이 없더군요. 딱 두 군데인가 있었는데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만 있었다면 치열하게 경쟁했을 거에요. 뭐 저도 우리나라 사람이라 틈을 노려 간달프 대형 POP앞 좌석에 앉을 수 있었지만, 정말 좌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거의 없더군요. 계단 같은 곳에 여기저기 걸터 앉아 있기도 하고.






참고로 이번 일본 여행의 목적엔 '에바 Q' 관람과 더불어 관련 아이템도 조금 구매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노렸던 것이 바로 팜플렛이었죠. 국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이런 팜플렛 형태의 화보집을 종종 만나볼 수 있는데, 에바 Q의 경우도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 팜플렛과 (800엔) '에반게리온 : Q - 기록집' (1500엔)을 각각 판매하고 있어 둘 다 사고 싶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1500엔짜리 기록집만 구매를 했습니다.


참고로 위의 사진들은 우메다가 아니라 도호 시네마즈 난바의 모습인데, 숙소가 난바 쪽에 있어서 여기도 일부러 더 들렸거든요. 바로 저런 아이템들 때문이었는데, 확실히 우메다에서는 팔지 않는 아이템들이 제법 있더군요. 신지와 카오루가 등을 대고 있는 저 3D포스터는 마지막 날까지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역시나 샀었어야 했다는 결론이 ㅠㅠ






우메다에는 위의 사진과 같은 에바 Q 카드 뽑기(?)가 있었는데, 저 중간에 아담이 나와있는 카드가 나왔어요 --; 그래서 실망할 뻔 했으나 렌티큘러 방식의 카드 다른 면에는 다행히 카오루가 ^^;





그리하야 드디어 보게 된 '에반게리온 : Q'. 진짜 티켓 끊고 입장해서 앉아있는데 얼마나 두근거리던지. 참고로 이번 에바 Q는 상영 전에 짧은 단편인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가 먼저 상영되는데, 이 작품은 에반게리온 : Q와 상당히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작품으로 본격적인 상영에 앞서 환기되는 측면은 있더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실사와 결합된 결과물이 역시나 이질감이 느껴지더군요. 일본의 전형적인 특촬물의 느낌이 나는데, 메시지는 느껴졌으나 퀄리티 측면에서 조금은 몰입이 깨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어요.



ⓒ Khara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 Q'는 원래도 일본어를 잘 못해서 100%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스포없는 리뷰를 쓰려고 했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스포없이 쓰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을 것 같더군요. 왜냐하면 무엇을 얘기하던 스포가 되는 구조라 아예 언급을 하거나 전부 다 이야기하거나 해야하는 경우였거든요. 어쨋든 끝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볼 정도로 몰입도와 스케일이 대단한 작품이었어요. 전편보다 우울함은 더해졌고, 많은 떡밥들이 제법 진전하며 개인적으로는 Q로 인해 루프설에 좀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카오루가 비중이 많아져서 좋았고 (하긴 그 동안은 비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죠), 기존 에바 TV시리즈의 팬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들이 여럿 반복 혹은 진화하기도 합니다.




ⓒ Khara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내용을 떠나서도 '에반게리온 : Q'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할 이유가 충분한 스케일의 작품이었어요. 2.35:1 화면비의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시원한 스케일과 사운드는 내용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체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럴리는 없을 것이라고 간절히 바래봅니다만, 만약 국내 극장 개봉의 기회를 놓친다면 이건 정말 2013년 가장 안타까운 일이 될 거에요. 다시 말하지만 '에반게리온 : Q'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입니다.


정말 또 보고 싶네요.

(또 갔다 올까, 이러다 가산 탕진 ㅠㅠ)



1. 그리도 기다리던 에바는 보고 왔으나 주변에 모두 못본 분들 밖에는 없으니 얘기할 데가 없어서 답답하기는 하네요 ㅎㅎ 배부른 소리죠;;;


2. 우타다 히카루의 테마곡은 그 이후로 매일 한 번씩은 듣고 있어요.


3. 마리 목소리 연기를 맡은 사람이 사카모토 마아야 군요! 이제 알았네요;;


4. 다시 한 번 하루빨리 국내 정식 개봉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Khara Corporation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