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도 물론 좋지만,
케이스가 더 좋아서 그냥 처리하기가 너무 아깝더라는;;;

내 닉네임도 각인으로 새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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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2008)
사랑과 질투와 분노의 끝까지 치닫는 치정극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상당히 걱정과 우려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일단 시사회를 통해 먼저 접한
전문가들의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뒤 만난 일반 관객들의 평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지 않다기 보다는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였는데, 원래 이런 타인의 평에 좌지우지 되는 편은 아니지만 어쨋든 본래 보다는 훨씬 낮춰진 기대치를
가지고 극장을 찾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아, 개인적으로도 이런 평들에 앞서 분명 <쌍화점>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되는
작품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인상깊게 보아왔던 이로서 유하 감독의 신작임에도,
이 영화가 사극이라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었다. 단순히 사극을 단 한번도 연출해보지 않은 감독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작가로서 유하 감독의 이야기가 시대극과 어울릴 만한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들에서 보여준 장점들은 현대극에서,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군상을 표현해 내는 것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고려 시대에 왕과 왕비, 호위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 하기에 충분했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대중들이 실망한 것처럼 아쉬운 부분도 많았으나, 이야기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이 치정극을 연출해내는
유하 감독의 재주는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지는 것 보다 더 큰 외면을 받는 이유는 첫 째, 홍보 측면에서
치정극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서사블록버스터로 포장된 점일 것이며, 두 번째는 <미인도>와 맞물려
'누가 누가 더 야한가'에만 집중된 시선일 것이고, 세 번째는 아직까지 동성애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하다.




일단 역사에 조금만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인물이 공민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민왕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일단 <쌍화점>에서는 분명 '공민왕'이 아니라
그냥 '왕'이라고만 칭하고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 비해 픽션에 범위가 (완전한 픽션에 측면에서 봤을 때)크지 않지만
영화 시작 전에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없다면 실제 역사와 비교하여 외곡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거
자체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고려 시대를 분명히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쨋든 픽션이라는 얘기다.
주진모가 연기한 '왕',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켰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그리고 원나라에서
왕에게 시집온 왕후(송지효), 이렇게 3명의 인물이 벌이는 치정극이 이 영화에 주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치정극이라 불리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유하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관계의 끝까지 가보자'라는
감독의 의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후반 부에 가면 '이쯤이면 끝나겠지'하는 지점이 적어도 두 번은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느낀 이유가 극이 늘어지고 지루해져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 정도에서 복수던 헤피엔딩이던
마무리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쌍화점>은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반영되어서인지 일반적인 지점에서 몇 번이고 더
나아간다. 그야말로 '치정극'인 셈이다. 자고로 치정극이라 하면 사랑으로 인해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유하 감독의 <쌍화점>
연출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내면에 감정선은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두 얼굴의 캐릭터들, 속마음을 감춘채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해야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사실 배우들은 말을 할 때보다 말을 하지 않을 때 더더욱 연기를 해야하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감정선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크게 좌지우지 되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어색한 문어체 대사 표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음을 동의한다.
특히나 조인성은 일단 연기 여부를 떠나서 사극에서 통용되는 어투와는 이질감 있는 외모를 갖고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그의 어색한 발음 연기와 더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든 계기가 된 듯하다. 이런 면에 있어서 이미 <주몽>으로
사극을 경험했던 송지효의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하겠고, 주진모의 경우도 개인적으로는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화란 한 번 유치하거나 우습게 느껴지면 다시금 중심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은 장르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두 현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들이 한복입고 어색한 문어체 대사를 할 때 '푸훗'하고 웃어버린 관객들은,
이어 벌어지는 동성애 코드가 더해지면서 이 이야기에서 점차 멀어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관람할 때 관객들이 영화에서 멀어짐을 느꼈던 지점은 여러 번 지적했던 것처럼 조인성과 주진모의
배드씬이 등장했을 때 부터였다. 한 침대에 옷을 벗고 나란히 누워 있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이 수근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 이들이 연기를 어색하게 해서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물론 이후에 장면들에서 이 둘의 동성애
연기가 어색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특히 동성애 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동성애'자체가 중심이 된 영화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현실 과의 힘겨운 싸움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쌍화점>의 경우는 동성애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일반적 삼각관계가 조금 더 확장된 경우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후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궁 밖에는 나가본 적도 없고 오직 궁 안에서 왕과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홍림에게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사랑이 가능한 세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일단 홍림이 왕과의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에 눈 뜨게 되는
계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왕을 위해서 혹은 왕이 주선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믿을 만한 신하였던 홍림에게, 후사를 위해 왕비와의 잠자리를 명하게 되는데, 이를 문 밖에서 바라보는 왕의 질투가 홍림이
아닌 왕비에게 쏠려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왕이 사랑하는 사람은 홍림이기 때문에 홍림이 왕비와 관계를 갖는 것을
참을 수 없고, 더나아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분노가 이는 것이다. 하지만 왕은 이런 고통을 잘 컨트롤
해낸다. 세 번째인가 관계를 맺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해 이들을 엿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참아낸다.

이걸로 끝났다면 그냥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던 왕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지만, 왕이 주선했던 이 관계를 통해 홍림이
새로운 세상에 눈 뜨면서 이야기는 점차 발전한다. 물론 홍림이 눈뜬 것은 동성간의 관계 밖에는 몰랐던 그가 이성과의
관계에 눈 뜬 것이기도 하지만,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왕 밖에는 몰랐던(혹은 모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놓여있던) 그가
왕 외에 다른 인물과의 깊은 관계를 처음 경험하면서 얻게 된 일종의 호기심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왕 외에 다른 인물과(그것이 동성이던 이성이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에 심한 불편을 느끼던 홍림이,
관계를 거듭할 수록 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좀 더 욕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중에도 이 '욕정'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는데, 과연 홍림이 이성과의 욕정에만 사로잡혀
이 같은 치정극에 주인공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유하 감독은 본래 부터 그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잘 표현을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정 위주의 동기만을 너무 강조한 듯 하다. 그런데 본래 치정극이란 욕정이 동기나
소스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를 최종 결정하고 움직이는 주된 요소는 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이를 움직이는 것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투와 집착, 애증 등이 주된 요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홍림과 왕비는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마치 둘 모두 욕정에만 잠식당한 듯 마치 자랑하듯 다양한 체위에만 몰두하는 듯 보인다.

이들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부분이었다. <미인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이 영화와
비교되곤 하는 <색, 계>의 경우는 분명 그 중심이 '욕정'에 있었다. '愛'가 아닌 '色'이 제목에 등장했던 것처럼 반역자를
처단하려는 애국심마저 잠식시켜버렸던 '욕정'이 분명하게 중심이 된 영화가 <색, 계>였다면, <쌍화점>은 '욕정'보다는
'애정'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봐야하는데, 이슈에 민감했던 탓인지, 아니면 방향 설정을 잘못한 것인지,
옷을 입고 있을 때 말 없이 표현해 내는 인물 간의 감정들은 참 좋았지만, 옷을 벗고 있을 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쌍화점>의 리뷰 제목으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진모(그가 맡은 캐릭터)다' 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어찌보면 세 명의 인물 가운데 가장 애처롭고 불쌍한 이도 왕이며, 굳이 결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정 속에서 가장 상처 받는 이도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비가 아이를 회임하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왕비마저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음에도 왕비에게 중전에 예우를 다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홍림을
던지면서까지 관계를 맺게 하였고, 이후에 홍림과 왕비가 눈이 맞아 자신을 번번히 속이고 관계를 맺어온 것을 눈치 챘음에도
용서하려 했고, 계속 그러 한 뒤에도 목숨만은 살려주는 아량을 배풀었으며, 왕비를 죽였다고 까지 속여 홍림을 궁으로 오게
만듬으로서 홍림과의 오해를 마지막에라도 풀고 싶어했던 그였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 원나라에 속국으로 전락한 나라의
억울함도 보살펴야 함은 동시에 자신을 왕위에서 끌어 내리려는 대신들의 음모에도 맞서 싸워야 했으니 여간 피곤할 일이
많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그리고 따지고보면 왕은 모든 것을 자신을 희생하면서 배려했음에도 결국 모든 파국을
자신의 몸으로 몸소 흡수해야 했던 안타까운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다.




왕의 이런 안쓰러움은 마지막에 가서 더욱 더 골이 깊어진다.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복선들이 있는데 영화 초반 궁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던 '건룡위'의 한 인물을 용서해준 일을 두고, 왕은 홍림에게 너도 나와 함께 궁밖으로 도망칠 만한 용기가
있느냐고 묻는다. 이는 후반 부 왕비와 홍림이 궁밖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왕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왕과 홍림의
좋은 한 때에 왕이 그린 그림을 보고 홍림은 '저도 이왕이면 활을 쏘고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마지막에 왕은 이 그림을 홍림이 원하는대로 새로 그렸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요한 건 홍림은 끝내 알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왕과 홍림의 마지막 듀얼 씬 가운데 두 사람의 칼에 의해 이 그림은 반으로 잘려지는데,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확실히 홍림이 그림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완성된 것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왕비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있다는 것은 보여주는데, 왕비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왕에 대한 분노가 끝까지
치밀었던 홍림은 왕비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뉘우치며(사실 왕비를 죽이지 않았다고 봤을때
홍림이 왕에게 잘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분노할만한 구실은 없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마지막 남은 힘을
써서 고개를 왕 쪽으로 애써 돌려놓아 그를 바라보며 목숨을 거두게 된다. 이는 너무 진부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관객들을 속이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에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성애라는 표면적 영상에 적응하지 못해 작품에 공감하지 못했던 관객들을 아쉽다고 했던 나로서도,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극한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는 없었다. 초반 왕비가 노래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기는 했으나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후반 연회 장면에서 왕이 직접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간 주진모가 보여주었던
대사 톤과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공기의 보컬이 등장해, 립싱크를 넘어서서 기존 분위기와 전혀 섞이지 못하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듯 했다. 더군다나 가사 자체가 '쌍화점에 쌍화사러 갔다가' 뭐 이런식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은 가사들인데,
분위기마저 이를 돕고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주진모는 역시 말하지 않을 때 감정을 표현하는 면에서 만족스러운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된다. 조인성과의 배드씬 촬영을
앞두고 한달 만 연기해 달라고 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을텐데, 홍림과의 관계 속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는 왕의 감정선을 비교적 잘 연기한 듯 싶었다. 조인성의 경우 일단 사극의 연기톤과 분위기와는 끝내 완벽히
섞이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역시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송지효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도록 연출된 듯 했는데, 대사 전달 측면에서는
세 배우 중 가장 나았다고 생각되며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연기를 펼쳤다고 얘기하고도 싶다.

<쌍화점>에는 몇몇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데, 일단 초반 연회에서 자객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액션씬 연출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칼로 베어졌을 때 피가 튀는 것이 너무 인위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나중 듀얼 장면에서도 두드러지듯
와이어 사용이 너무 티가 나는 액션이었다. 일부에서는 액션 영화로 알려졌던 만큼(?) 배드씬과 더불어 액션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도 많았을법 한데,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액션연출이었던 것 같다. 유하 감독은 주먹 싸움 연출에
훨씬 재능이 있다고 봐야겠다.


<쌍화점>은 조인성이라는 스타의 출연과 조인성과 주진모의 파격 동성애 장면, 그리고 송지효라는 여배우의 노출로 화제가
된 작품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보다는 인물들의 내적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려고 애쓴, 고려발 치정극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유하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인물간의 갈등 구조가 끝까지 가는 치정극의 효과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나, 사극이라는 불편한 옷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느껴졌던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오퍼스 픽쳐스에 있습니다.








볼트 (Bolt, 2008)
트루먼 쇼의 후속편 혹은 진행형?

월트디즈니의 신작인 <볼트>는 애초부터 경쟁사인 픽사와 드림웍스의 작품들과 비교될 수 밖에는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픽사는 <월-E>로, 드림웍스는 <쿵푸팬더>로 각각 최고의 히트작을 근래 선보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월트디즈니의 신작에 거는 기대는 클 수 밖에는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같은 이유로 기대가 적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픽사의 존 라세터가 총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이나, 스틸컷들로 엿볼 수 있었던 3D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은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비교 대상들을 제외하고 봤을 때 그리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디즈니스러운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 여기서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를 논하려고 하면 너무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간단하게만 얘기해보자면, 월트디즈니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성공을
부러워해 그들처럼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 만의 장점을(그게 혹자들에게는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더라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편이 월트디즈니의 옛 명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이런 좋은 예로 지난해 초 개봉했었던 <마법에 걸린 사랑>을
들 수 있겠다. 자신들 만이 가진 히스토리와 장점을 부각시켜 기존의 스토리텔링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던가,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조금씩 가미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나가는 것이, 자신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좋은 옷을 애써 입는 것 보다는
훨씬 낳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볼트>는 약간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작품일 듯 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3D 기술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하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놀랍게 성장했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고전적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부터 두 단락에는 영화 본편에 대한 내용과 영화 <트루먼 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볼트>의 이야기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 쇼>를 바로 연상시킨다.TV드라마 속 슈퍼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개 '볼트'는
촬영장 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TV 속 슈퍼독 캐릭터를 보이는 그대로 믿고 있는 또 다른 '트루먼'이다.
악당인 '녹색눈'으로부터 주인이자 친구인 '페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는 볼트는, TV드라마의 내용상 페니가
녹색눈에게 납치되게 되자 세트장내 컨테이너를 박차고 페니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 속에서 볼트는 우연히 촬영장
밖은 물론 이곳이 위치한 헐리우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부로 옮겨지게 되고, 처음으로 가상 현실 공간을 벗어나 현실 공간에
놓여진 볼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TV쇼라는 가상현실에 이것이 가상현실인 줄 홀로 모르는 주인공이 놓여있다는 점은 <트루먼 쇼>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만,
트루먼은 가상현실 속에서 이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볼트는 우연한 기회에 가상현실을 벗어나게되,
현실 속에서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겠다.
그러니까 한편으론 촬영장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트루먼 쇼>의 후속편 격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음으로 여전히 <트루먼 쇼>와 동일선상에 놓여진 영화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잘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 쇼>의 경우 평생을 가상현실 속에서 살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 자신이 가상현실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극적으로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고 결국 세트장 문을
박차고 나서면서 '사람들의 트루먼'이 아닌 '나 스스로의 트루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볼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볼트에게는 자신의 지나온 삶이 가상현실 임을 알아차린 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다.
볼트에겐 바로 '페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페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페니만은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강한 믿음만이 볼트가 힘든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주원동력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와 이야기를 더욱 선호하지만, <볼트>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디즈니다웠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악당 이라는 설정 속에서도 희망과 빛을 대변하는 페니의 존재는, 이 영화를 이야기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가장
핵심적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가상현실=악당 이었다면 <트루먼 쇼>의 경우처럼 탈출 하는 것이 곧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 (물론 <트루먼 쇼>의 경우도 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트루먼을 안타깝게 여긴 실비아라는 캐릭터가 존재하긴
한다) 페니가 있었기에 <볼트>의 엔딩은 <트루먼 쇼>와는 다른 방향으로 맺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볼트가 여정 중에 그 동안 자신의 삶이 가상현실임을 깨닫고 고양이 친구인 '미튼스'에게 평범한
강아지들의 삶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는 부분이데, 얼핏보면 이 부분이 마치 <월-E>에서 이브가 자신이 정지되어 있을 동안
월-E가 했던 일들을 영상 자료로 후에 보게 되면서 애틋해 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이 보통 강아지들의 삶으로 일컬어진 일련의 이들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에 비판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원래 개들은 이렇게 살아' 하면서 보여주는 것들이 이 영화에서 줄기차게 얘기했던 페니와 볼트 간의 '친구'관계를 떠올려
봤을 때(이 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주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친구'에 더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주인'과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강아지에게까지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앞서도 얘기했듯이 이 영화에서는 줄기차게 '주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계속 '친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반려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들 중 <우리 개 이야기>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볼트>에서 이야기하는
동물과 인간의 친구관계란 어차피 주종관계의 또 다른 이름밖에는 되지 않는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판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했지만 반려동물로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모두 다 키워봤던, 그리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다시 키우고 싶은 사람으로서 <볼트>가 주는 뻔한 감동적 장면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감독인 바이론 하워드와 크리스 윌리엄스를 비롯해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이 상당히 많은 시간
강아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기존 강아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들에서는 현실 속
강아지의 움직임들과는 사뭇 다른 '영화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영화 속 '볼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정말 실제 살아있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했다.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3D 애니메이션 기술력
보다도 이러한 움직임 때문에 더더욱 이 작품이 실감났던 것 같다. 굉장히 미세할 수 있지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던 강아지만의 작은 움직임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고, 관절의 움직임들도 상당히 오랜 시간 연구한
티가 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고양이 캐릭터인 '미튼스'와 햄스터 '라이노'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특히 '라이노'는 <볼트>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라이노가 보여주는 오타쿠적인 설정도 재미있었고, 볼을 이용한 움직임과 유머스런 장면들도
나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튼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울컥했었는데, 볼트가 주인공이라 어쩔 수
없긴 했겠지만 미튼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줬어도 크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튼스가 주인공
이었다면 주인의 무책임함, 그야말로 반려동물을 그저 '애완동물'로만 여기는 인간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볼트가 주인공이니 여기까지 다룰 수는 없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삶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미튼스의 표정에서는 얼마전 한국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보았던 한 작품 가운데 고양이와 강아지 한 마리가 바에 앉아 자신의 처지를 슬프게(정말 구슬프게!) 그들 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던 그 작품이 떠올랐다.

기술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볼트>는 얼핏 사전 정보없이 보면 이 영화가 디즈니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휼륭한
3D 그래픽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볼트의 털들은 자연스럽게 잘 표현되고 있으며('털'이라는 것이 그래픽 수준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점에서 <볼트>는 제법 우수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반 영화 속 장면들 영상에서는
실사를 방불케 하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영상 측면에서 디즈니 작품으로 확 와닿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캐릭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는데, 마치 <인크레더블>에서 뛰쳐나온듯한 인물들의 이목구비는 이 영화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 하다.




존 트라볼타가 더빙한 볼트의 목소리 연기는 만족스러웠다. 존 트라볼타의 목소리가 제법 익숙한 나로서도 영화 초반 이후부터는
그의 이미지를 지우고 극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이다. '페니'는 마일리 사일러스가 연기했는데 크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노래가 한 곡 흐르는데 더빙 연기를 맡은 두 배우가 직접 노래하고 있다.
오랜만에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듣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3D 디지털 자막 버전을 보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사실상 상영하는
곳이 없음으로 불가피하게 일반 자막 버전을 선택했는데, 3D 버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더빙 판본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한데, 나중에 DVD나 블루레이가 출시되면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 사실 원래 제목은 '뻔한 감동, 그래도 감동' 이었다. 아....이 참을 수 없는 동심의 용솟음이란 -_-;;

2. 영화를 보고나니 다시 한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도 용솟음쳤다.

3. 엔딩 크래딧 디자인의 구성이 마치 <월-E>와 흡사함을 느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월트디즈니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선유도는 추운 날씨 덕분에 오히려 깔끔한 느낌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내려오는 햇살의 따사로움.






선유도에 가게 되면 꼭 한 번씩 들르는
이른바 '비밀의 화원', 아니 꽃은 없으니 '비밀의 정원'?









여기를 지날 때면 항상 이병우 작곡의 '한강찬가'를 휘파람으로 끄적이곤 한다~




2009년 첫 외출이었던 선유도에서.

k100d + 21 ltd + 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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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그 어느해 보다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각종 크고 작은 영화제에도 참가해서
고전 영화들을 비롯해 작은 영화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었고, 개봉영화들은 액션과 볼거리가 위주인 블록버스터부터
개봉관을 찾기 힘들어 발품을 제법 팔아야만 볼 수 있었던 작은 영화들까지 가능한한 빼놓지 않고 보려고
노력했던 한해였구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약 150편 정도 올 한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그렇다보니 한해를
정리하며 베스트 작품을 단 10작품으로 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유난히 장르적으로 봤을 때 다큐멘터리나 음악영화가 많기도 했는데, 이를 따로 분류하여 순위를 정해볼까도
했지만, 결국 총 15편의 베스트 리스트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한 것이지만, 아래 선택된 15편의 작품들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평가기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 한국영화 베스트 5와 동일하게 15편 가운데 차등 순위는 없고, 개봉한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미지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블로그에 작성했던 영화의 리뷰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르비차 (Grbavica, 2005) _ 사라예보, 내 사랑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전쟁의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진, 사라예보에 살고 있는
작게는 한 모녀, 넓게는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르바비차>입니다.
이런 소재 역시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줄거리일지 모르나, 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타인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든 그들의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상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르바비차>는 타인이 영화적 극적 요소만 부각시켜 감동을 불러일으키려는 것과는 달리,
전쟁의 모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싶지 않아도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의 자신들의 얘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여운이 깊게 남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주노 (Juno, 2007) _ 유쾌하고 아름다운 성장통


<주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여주인공을 연기한 엘렌 페이지 때문이긴 했습니다.
제목과 비슷한 소재 때문에 우리 영화 <제니, 주노>와 비슷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 더욱 좋았던 영화로 기억되네요. 두 어린 주인공 외에 이를 둘러싼 두 부부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그려낸 시나리오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로우 파이한 인디 록 음악들과 포크음악들로 가득했던
영화음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원스>의 경우처럼 카메라가 서서히 멀어지는 엔딩 장면의 여운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느긋하게 서스펜스를 이끄는 장인의 솜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요 바래 소개할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감독들의 이름들 덕분에
일치감치 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고, 이 큰 기대를 모두 만족시켜준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제는 정말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보는 내내 그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하는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기도 했으며, 올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안톤 시거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을 비롯해, 토미 리 존스와 조쉬 브롤린의 열연도 이 영화를 아주 인상깊은 영화로 기억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구요. 







데어 윌 비 블러드 _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무서운 예언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매그놀리아>는 에이미 만의 음악과
더불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고, 아담 샌들러와 함께 했던 <펀치 드렁크 러브>는 제가 가끔 잠식당하고 마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어준 멋진 작품이었죠. 단 한 마디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정의해 보자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데어 윌 비 블러드>가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제가 쓴
'자본주의와 종교'에 관한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지만 더 다양하고 깊은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시 매번 무시무시한 열연을 펼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굳이 더 거론할 필요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며,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알게 된 폴 다노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 더 정리를 위해 다시 한번 DVD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스피드 레이서 _ 눈이 부신 가족영화의 황홀경

스피드 레이서 BD _ 황홀경의 레퍼런스급 화질로 만나는 레이싱 어드벤처!


올해 개인적으로는 가장 눈이 즐거웠고 황홀했으며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으나 아마도 제가 꼽은 영화들 중에
가장 다른 분들은 썩 좋아하지 않으실 법한 영화가 <스피드 레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맥스 상영시
2번 정도 관람하였고, 블루레이로 시청, 부산에서 열렸던 블루레이 영화제에서 또 한 번 관람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워쇼스키 형제가 얼마나 오타쿠 스럽고 원작을 21세기 스크린에 잘 표현해 냈는지 느끼게 되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저 같은 사람이야 좋아했지만 사실 저렇게 오타쿠 스러운 작품을 헐리웃 메이저 시장에서 저 정도 규모로 만들
생각을 한 워쇼스키 형제도 형제고, 제작자인 조엘 실버도 대인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드리븐>같은 레이싱을
생각하셨다면 얼른 잊으세요. <스피드 레이서>의 자동차들은 앞보단 주로 옆으로 달리고, 쿵푸도 하거든요 ^^;






아임 낫 데어 _ 밥 딜런의 몽타주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 매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뮤지션을 그리게 되면
전형적인 전기 영화 형식으로 그리게 되는데 <아임 낫 데어>는 이런 정형화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그림처럼 밥 딜런이라는 사람, 뮤지션의 일대기를 조명합니다. 다른 뮤지션 같았으면
이런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밥 딜런이라는 뮤지션을 그리는데 이 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
같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은 단순히 밥 딜런의 인생과 주변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만의 장점을 살려
당시의 문화와 사회까지 아우르는 영화를 만들어 냈는데, 밥 딜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에게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점에는 케이트 블랑쳇,
히스 레저,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벤 위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을 하고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출연하는줄 몰랐던터라 더 반가웠던 줄리안 무어와 미셸 윌리엄스가 특히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플래닛 테러 _ 극장에서 즐기는 B무비에 환호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는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하기를 원할 텐데, <플래닛 테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각 장면 장면마다 소리내어 반응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다 였습니다. 일반 관객들과
다 같이 보는 환경이라면 어렵겠지만 특별히 로드리게즈의 팬들이라던가 이 영화에 팬들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 장면 장면 하나에 소리내어 환호하고 역겨움엔 질색하며 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말이죠.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정말 영화 장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러가지 작업을 혼자 뚝딱 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플래닛 테러>는 그의 B무비적
감성과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난 특별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어한 장면들이 많지만 불쾌하다기보다는
신나게(?)그려내고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일부러 옛 것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낸 영상은,
그의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즈 맥고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들도
너무 만족스러웠던 영화였네요.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다크나이트>는 올해를 통틀어 가장 극장에서 여러 번 본 영화입니다. 정확히 몇번 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이란 대형 아이맥스 스크린과 맞물려 엄청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분위기를 한번 더, 한번 더 느껴보기 위해
반복적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나네요. 과연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조커가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연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며, 히스 레저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둠의 기사'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준 대작이었으며, 그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다크나이트>도 이렇게 짧은 몇 줄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하겠네요 ^^;







월-E _ 우주 최고의 러브 스토리


픽사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면서 이런 말을 하게 합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천재야!!!!' <월-E>는 그 가운데서도 그 천재성이 정말 놀랍도록 발휘된 올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쌍안경 렌즈 속에서 저런 오묘한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겠으며,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아날로그한 감성을 이리도 잘 버무린 작품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월-E>의 감동은 '우주최고'였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감정들 중에 특히 '아련함'을 좋아하는데,
이런 '아련함'을 표현함에 있어 월-E와 이브가 보여준 우주최강 애틋 러브스토리는 절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군요.
한동안 입에 '이 봐~' '이브아~'를 달고 살 정도로 중독성있는 대사들과, 장난감 뽐뿌라는 엄청난 부산물들을 만들어낸
올해 최고의 러브 스토리 <월-E>였습니다.






컨트롤 _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본 '음악영화'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컨트롤>을 꼽겠습니다.
뮤지션의 삶을 다룬 만큼 '음악영화'와 '전기영화'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컨트롤>만의
다른 시각을 꼽자면 조이 디비전의 멤버였던 이언 커티스, 즉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살았던 청년 '이언 커티스'를 조명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흑백영상으로 담겨있는데,
흑백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이언 커티스의 고뇌와 혼돈, 그리고 맨체스터의 풍광들은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의 연기는 정말 이언 커티스가 살아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도를 보여주었으며, 의외의 캐스팅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만다 모튼은, 개인적으로 그녀 필모그래피의
최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네요. <컨트롤>영화 팜플렛은 <렛 미 인>과 더불어 제 회사 책상을 장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렛 미 인 _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지난해 <원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렛 미 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이라는 헐리웃 밖의
영화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관심과 반응을 불러낸 것 자체가 우선 반가웠으며, 뱀파이어 영화가 이렇게
진화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을 맞은 북유럽의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광들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이었던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 묘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러브스토리가 남녀 간의 것에 국한되지 않고, 존재와 존재간의 사랑
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한 편으론 러브스토리로만 읽혀지지 않는 여백이 있어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부작용이 있다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 생각하면 <판의 미로>의 메인 테마 음악이
떠오른다는 것 -_-;;;






로큰롤 인생 _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실 15편을 선정하면서 이 작품 <로큰롤 인생>과 <존 레논 컨피덴셜>을 두고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 어느 해 보다 많이 극장에서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 좋은 다큐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그 중 한 작품을 꼽으라면 <로큰롤 인생>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저에게는 올해의 다큐 영화랄까요.
처음 보기 전에는 그냥 인간극장 스타일의 다큐일줄로만 알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닉유스를 노래한다'라는
사실은 그런 화제성 다큐로 만들어지기가 쉽거든요(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구요).
하지만 <로큰롤 인생>은 그들이 노래하는 자체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노인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두시간 남짓을 알았던 것 뿐인데, 극 중 인물에
죽음에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들의 인생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렇게 늙고 싶다'도 좋지만 '지금부터라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가 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라미스>는 올해의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거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었던 영화이기도 한데, 크로넨버그의 전작이었던 <폭력의 역사>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봐야할
그 만의 깊은 연구가 담긴 하나의 결과물 같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와 더불어 매우 드물게 리뷰의
소재목을 따로 정하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며(그만큼 먹먹함이 오래갔죠), 비고 모르텐슨과 뱅상 카셀의 연기에
감탄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비고 모르텐슨의 경우야 다들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하시는터라 제가 더 거들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뱅상 카셀의 연기는 그가 연기한 '키릴'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가를
고려해 봤을 때, 그의 나름 팬으로서 정말 훌륭하고(어쩌면 비고 보다 더) 멋진 연기를 펼쳤다고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정도입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비고가 연기한 니콜라이가 주인공이지만,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키릴'이 주인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동시에,
타셈 싱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그 행위에 대한 행복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감상 전 다른 분들의 평에서는 이야기는 허술하나 볼거리는 대단하다 라는 것이 대세였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그 허술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4년 간의 고생을 하며 볼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런 곳이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의 아름답고 웅장한 미관을 자랑하는 영상미는 물론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의 이야기(화자와 청자가)가 뒤섞여 버무려지는 이야기 구조는 <더 폴>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이고 순간인지를 은연중에 느끼게 했던 '좋은'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이스턴 프라미스>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먹먹함이 심해져 별도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던 경우였지만,
이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경우는, 이 제목 만으로도 대부분이 설명되고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다 설명이
되기 때문에 추가로 제목을 달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제목 뿐 아니라 이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나 나레이션 등을
통해 제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의 다 담겨있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내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스런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일본이 사법제도만을 문제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법이 인간을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카세 료는 정말 일본 남자 배우들 가운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손색이 없을 만한 연기를 펼쳤으며,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과연 <쉘 위 댄스>같은 코미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온 감독인가 싶을 정도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15작품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영화들로는 <존 레논 컨피덴셜> <에반게리온 : 서> <마법에 걸린 사랑> <쿵푸팬더>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한해는 위의 15편 영화들을 비롯해 제가 본 150편 넘는 영화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어 다른 생각하지 않고,
행복해 했던 것 같구요.

2009년에도 더 좋은 영화들과 조우하기를 바래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지난 해까지는 의외로(?) 연말에 영화부분은 베스트를 정리하지 못하고 음반에 관해서만 쭈욱 정리를 해왔었는데,
올해는 음반을 그만큼 듣지도 못한 것도 있고 영화를 워낙 많이 본 것도 있어 본격적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부분을 나누어 선정해 보았는데, 한국영화는 일부러 피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산해보니 의외로 그리 많이 보지는 못했더군요. 그래서 베스트 10을 작성할만한 작품들을
소화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베스트 5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외국영화는 넘쳐나서 베스트 15로 최종 결정하기로 했고,
다큐나 음악영화는 수가 많아서 아예 따로 섹션을 두어 선정할까 하다가 그냥 총 15편으로 선정하게 되었네요).

이미 연말이라 많은 블로거 분들과 전문가 분들이 2008년 베스트 리스트를 작성하셨는데,
한국영화 부분에서 가장 많이 베스트 1위로 선정된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나 전도연, 하정우 주연의 <멋진 하루>를
개인적으로 끝내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은근히 보려고 했던 한국영화들을 놓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요. 못 본 영화들은 다음 달에 DVD로라도 감상을 해야겠네요.

한국영화 베스트 5로 선정된 작품들 간에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으며, 개봉한 순서대로 정렬하였습니다.
각 영화의 이미지나 아래 리뷰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영화의 리뷰로 이동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이른바 '물건'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이렇다할 잘 만들어진 장르 영화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시나리오의 짜임새와 극적 긴장감을 잘 컨트롤하는 연출력은 봉준호 감독의 걸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으며,
주로 조연으로 출연해 오던 김윤석이라는 배우에게 집중 조명을 가져다 주기도 했으며, 하정우라는 신인 아닌
신인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18세 관람가로서 녹녹치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이 정도의 흥행을 거두었다는 것도 놀랍고, 장르 영화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에
반갑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4885 번호를 갖고 계신 분들은 조금 섬찟하셨을듯 ^^;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어찌보면 <추격자>보다도 더욱 지독한 장르 영화라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의 공식블로그에 필진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류승완 감독님은 물론,
임원희 씨와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올해 잊을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단편의 코믹스러움과 한국고전 영화들에 대한 비틀기, 그리고 류승완 만의 액션에 대한 애착이 묻어났던 이 영화가
생각보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편으론 너무 아쉽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국영화 베스트 5에 꼽게 된 작품임에도 두 번의 인터뷰에(특히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은 탓에 따로 리뷰를 작성하지 못했던 케이스이기도 하네요.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려 감독님이 이전부터 제 블로그를 알고 가끔 들러주신다는(dp의 닉네임도 기억하고 계셨다는 ㅠㅠ)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되어 심히 떨기도 했던 바로 그 영화 <다찌마와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입니다.







사실 <고고70>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아쉬웠던 영화이긴 했습니다. 국내에서 음악영화를 만든다면(특히나 라이브를
직접 소화해야만 하는 음악영화라면) 남자 배우가운데 이견 없이 가장 첫 번째로 고려될 배우인 조승우가 출연하고 있고,
현재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차승우가 배우로서 출연하고 있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음악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최호 감독의 작품이었기에 기대치가 평소보다 높았던 것이 사실이긴 했죠.
<고고70>은 조승우의 여전한 연기와 차승우의 실제 무대 위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신민아라는
여배우를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내내 만나볼 수 있었던 'Soul' 가득한 음악도
만족스러웠구요. 한가지 아쉬운건 좀 더 흥행이 될 수 있었을텐데, 영화 외적인 소송 문제들이 더 커져 영화를 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린 관객들이 많아, 의외로 금방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베스트 5를 꼽으면서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한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미쓰 홍당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들과 개성 강한 유머코드로 무장한 시나리오로 불쑥 등장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에서 '캐릭터'가 살아있는 영화를 만난 것 같아 몹시도 반가웠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는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과 더불어 올해 한국영화 최고의
캐릭터였으며, 공효진 외에 서우, 황우슬혜 등이 연기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유기적으로 살아 숨쉬고 있었던
생동감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굉장히 코드가 강한 작품이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절로 뿌듯해지는 영화이기도 했구요. 이런 영화라면 언제든 대 환영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과속스캔들>은 예정에 없던 의외의 영화였습니다.
뻔할 것 같은 제목과 뻔할 것 같은 인물들로 도배되어진 영화일 것이라는 무서운 선입견으로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호평들에 이끌려 보게된 <과속스캔들>은 과연 좋은 가족영화였으며, 괜찮은 성장영화 더군요.
특히나 한국영화를 따져보면 온가족이 볼만한 가족영화나 드라마가 실제로 많지 않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연말에 온가족이 부담없이 볼만한 코미디이기도 했고, 캐릭터들도 과하지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에게 단번에 큰 관심을 집중시킨 영화이기도 했으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된 영화,
그리고 다시 한번 느꼈지만 영화를 선택할 때 선입견은 반드시 버려야할 요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영화였습니다.




2008년 저의 한국영화는 이렇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가장 기대했었던
영화이긴 했지만 베스트 5로 꼽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였네요. 역시 베스트 5까지 꼽기엔 부족했지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느날, 그 길에서>도 인상깊었던 작품이었구요.

내년 한해도 기다려지는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비롯해, 봉준호, 홍상수, 장준환, 장진 등
다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감독의 작품들이 내년에 찾아올 예정이라, 2009년도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네요.
(이 가운데는 제 지인 중 한분의 입봉작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쁜 놈이 더 잘잔다>가 바로 그 영화!>

2008년 한해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09년에도 부탁할께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2008)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애초부터 기대반 걱정반이 동반되었던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1년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것, 키에누 리브스와 제니퍼 코넬리 그리고 윌 스미스의 아들로 더 유명한
제이든 스미스가 출연한다는 것 정도가 이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였죠. 아무리 사전 정보를 피해다니더라도 이 영화가
이른바 'SF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홍보된 것만은 피할 수 없었는데, 일단은 관객들의 기대를 한참이나 부풀려 놓은
홍보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결국 관객들은 낚였지만, 많은 관객들이 어쨋든 보게 되었으니 성공한 홍보라고
해야할까요;). <매트릭스>이후 국내 관객들은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한다고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트릭스>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곤 했는데, 더군다나 SF 블록버스터라고 광고했으니 이 같은 기대가 더 커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기 이전에 워낙에 악평(최악이다 정도의)들을 많이 접하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한 터라,
기대치를 본래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낮추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악까지는 아니다 라는 느낌이었는데,
만약 이 영화가 12월 꼭 봐야할 블록버스터로 홍보되지 않고, 몇몇 소수가 입소문을 내게 된 영화였다면 지금같은
최악의 평가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오히려 돈을 제법 많이 쓴 B무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매우' 관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구요. 하지만 어쨋든 전체적으로 영화가 아쉬운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 합니다.



(아래 단락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아래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인간들이 망쳐놓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이 직접 지구를 방문하여 인간들을
멸종시키는 것으로 지구를 지키려하는데, 이 미션을 수행하러온 외계인 '클라투'(키에누 리브스)가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그들의 선한 본성을 엿보고 결국에는 한 번더 인간들을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떠난다는 이야기죠.

사실 이거 자체가 그리 나쁜 시놉시스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어떻게 마무리하고,
그 결말을 관객들에게 러닝 타임 내내 얼마나 설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지구가 멈추는 날>은 밋밋하고
갑작스런 전개 구조와 더불어 결국 아무것도 설득하지 못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결말 탓에 아쉬운 영화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외계인의 습격이나 공격들로 인해 인류 최후의 위기를 맞는 영화들에 비해 조금 더 아쉬운 점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영화의 클리셰들을 답습하고 있지만, 답습하려면 다 했어야 했는데 그 중간중간 과정들을 상당히 빼먹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간중간 과정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외계인을 비롯한 공포요소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까지의 공포, 즉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인간들이 느끼는 긴장감과 공포를 제대로 표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치닫는 순간에 대한 상실감이나 허탈함, 슬픔 등을 표현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영화들에선 흔히 등장하는 장면들인데,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숭고한 마지막 장면이라던가, 거대한 힘이나
재앙들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치다 사라져버리는 인파의 모습, 그리고 결국 그 마지막 순간에 달했을 때 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게끔 하는 극적 감동 요소가 이 영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물론 이런 장면들이 다
포함되어 있었다면 쉽게 말해 '전형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이런 장면들이 결국 하나도 없었던 이 영화는 '전형적'인
영화보다도 심심한 영화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전형적인 영화 한 편 만드는 것도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니깐요.
물론 가장 좋은 건 전형적인 이야기를 가지고도 진한 감동을 절로 일으키는 영화일거구요.




처음 인류의 위험을 감지한 정부에서는 이 위험에 핵을 쥐고 있는 '클라투'에게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는데,
1951년 작인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그 때나 가능할 법한 무대포식(혹은 너무 순수한) 대화방식이라 적잖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육체는 인간의 것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별다른 안전장치나 보호장치도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한다는 자가 대놓고 심문하는 장면이나, 그를 지킨다는 것이 겨우 예닐곱명의 경호원이 문 밖에 서 있는 것
정도라는 점들은, 이 영화가 과연 2008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완전한
판타지 영화였다거나 아니면 원작처럼 1951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이미 최첨단 시스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관객들에 눈에는 너무도 허술하고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정부 관료들의 모습도 초반에는 매우 전형적이었는데, 케시 베이츠가 연기한 이 정부 요인 캐릭터는 후반부에 가서는
갑자기 헬렌(제니퍼 코넬리)의 말을 새겨듣고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는 공격하지 말것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도 너무 갑작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한발 물러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가 결국에는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임을 감안했을 때, 극한에 몰린 케시 베이츠가 그제서야 말을 듣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케시 베이츠가 맡은 국방부 장관과 클라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케시 베이츠가 '나에게 얘기하면 된다' '내가 대표다'라고 얘기했을 때 클라투가 '네가 전 인류를 대표 하는가?'라는 식으로
캐묻는 장면이었습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에서는 대부분 모든 인류의 짐과 해결을 미군 혹은 미정부가 지는 것이 보통인데,
너무 당연하지만 이 한마디로 미정부 관료를 당황시키는 장면이 나쁘지 않더군요.




결국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지구에 온 클라투가 헬렌과 아들에게서 선한 모습을 깨닫고 이를 막기로 하는데,
아무리 그가 인간이 아니고 터미네이터에 가까운 외계인이라지만, 과연 러닝 타임 내내 이 두 모자가 보여준 모습들이
그 엄청난 계획을 포기하고 인류를 구원할 만한 것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특히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한
제이콥 캐릭터는 <우주전쟁>의 톰 크루즈 아들 역할 만큼이나 짜증나는 캐릭터로 남기에 충분한 역량을 펼쳤는데,
<우주전쟁>의 경우는 그나마 아들 캐릭터가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갔지만, 제이콥의 경우는 막판에 갑자기 착해지는데
아무리 애라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전개였습니다. 이를 보고 '그래, 인간들을 더 믿어보자'라고 클라투가 생각하게
되었다는 설정 때문에 이 전개가 전체적으로 아쉬운 것이지요.

그리고 제작진이 생각하기에도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제목에 어울릴 만한 장면이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막판에 가서 갑자기 멈춘 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건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기 보다는 '시계가 멈추는 날'로
보였습니다. 아무리 뻔하고 권선징악 적인 줄거리라도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 만한 좋은 영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지구가 멈추는 날>은 이 설득 과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일반 관객들에게 '낚였다'라는
느낌만 전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키에누 리브스와 클라투 캐릭터의 싱크로율이었습니다. 스티븐 시걸에 버금갈 만한
모두 비슷비슷한 표정 연기로 유명한 키에누 리브스는 이 영화에서 작정하고 무표정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번 영화 만큼은 그의 이런 표정연기가 득이 되지 않았나 싶군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이 멋지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상조회사'분위기가 나던지, 끝끝내 집중이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ㅎ (더군다나 내용이 내용인지라
상조회사 직원으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이라는 설정과 딱 맞아 떨어지기도 했구요).

제니퍼 코넬리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캐릭터도 그렇고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키에누 리브스랑 제니퍼 코넬리 나온다고 해서 보게 된 영화였는데, 두 배우 모두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이든 스미스는 <행복을 찾아서>같은 경우는 아빠랑 같이 출연해서인지 정말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이 영화에서는 약간 갸우뚱해지네요. 갸우뚱해지는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짜증으로 인해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제이든 스미스의 연기가 짜증이라 별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가 저 조차도 불분명 하거든요 ---;;
연기는 정말 잘했는데 캐릭터 때문에 짜증났던 경우는 <미스트>에 마샤 게이 하든을 들 수 있겠네요 ^^;



1. 본문에도 있지만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키에누 리브스의 모습에서 자꾸 상조회사 직원이 떠올랐습니다.

2. 거대 로봇(?)인 '고트'가 정부 시설에 잡혀있던 장면에서는 '에반게리온'이 연상되더군요. 잡혀 있는 모습이나
    이를 반대편에 앉아 인간들이 보고 있는 구도나.

3.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 로버트 네퍼가 제법 비중있는 캐릭터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트랜스포터 3>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스크린속 활약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군요;

4. 용산 CGV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아이맥스 만의 장점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20세기폭스에 있습니다.






1. 용산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지난 번에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은 문화상품권도 사용할 겸해서 서점에 들렀다.
요즘은 영화만 소화하는 데에도 뇌용량을 초과하여 머리를 쓰고 있는터라, 길고 복잡한 소설이나 책들 보다는
가벼운 책들에 눈이 더 갔는데, 데이빗 린치라는 이름이 확 눈에 들어왔고, 책의 질감과 내용도 살펴보니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빽빽하지 않고 여백이 있는 책을 집어 들었더니 조금 여유가 생긴 듯.




2. 며칠 전 DP DVD게시판에서 '고인돌'님이 타임어택 이벤트를 진행하셨는데, 내가 운좋게도 당첨이 되어
이두용 감독의 친필 싸인이 포함되어 있는 <최후의 증인>DVD를 선물 받게 되었다!
지난번 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상영회에 못가서 아쉽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감독님의 친필 싸인판 DVD까지 얻게 되어
얼마나 경사스러운지 모름!




3. 지난 해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직접 달력을 만들었었는데,
올해도 해볼까 하다가 약간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고해서 지브리 달력을 2년 만에 다시 구매했다.
지브리의 작품들이 한 달에 하나씩 그림으로 제공되는 탁상용 달력인데,
나 같은 지브리 팬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달력인듯.




4. 요며칠 음반을 들은 것이 제법 있는데, 아직까지 리뷰를 못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은 역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라 할 수 있겠다.
자켓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음악들이 요즘 내 귓가를 즐겁게 해준다.


5. 어제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서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상영했었는데,
갈수록 높아지는 씨네토크 수준에 다시 한번 놀랐고, 영화도 좋았다. (요건 리뷰 예정).


6.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키에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을 아이맥스로 관람하였는데,
뭐 하도 기대치를 낮춰서인지 그럭저럭 본듯(이것도 곧 리뷰 예정).


7. 이번 주는 3일말 출근하면 된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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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리턴즈 - Episode 1 : 신비소녀 쥬라 (IMAX)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터라 TV용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국내에서 개봉하게
되는 흔치 않은 경우라던가, 추억의 애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역시 흔치 않은 기회들은
여러 악조건들을 감안하고서라도 꼭 챙겨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하지만 이런 노력도 최근에는 조금
무뎌져서, 예전에 '어린이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이누야샤 극장판 - 홍련의 봉래도>를 본 것이
이런 류의 애니를 극장에서 관람한 가장 최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이런 제게 최근 가장 관심있게 들려온 소식은 바로 '은하철도 999' 관련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냥 극장판을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63빌딩 아이맥스 관에서만 특별 개봉한다는
소식이었죠. '은하철도 999'는 최근 EBS에서 방영하며(현재는 종영했죠) 다시금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
전부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보면서 새삼, 참 어린이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새삼스럽지만 너무 앞서간 작품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여튼 이런 은하철도 999가 아이맥스 포맷으로 새롭게 선보인다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극장들과는 달리 예매 시스템도 편리하게 지원되지 않고(좌석제가 아니죠),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특수성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음에도 과감하게 63빌딩으로 수년만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영화 외적인 얘기를 조금 드리자면, 크리스마스라는 대형 이벤트 데이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리도 사람들이
많을 줄을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요. 63빌딩을 가득채운 엄청난 인파들 때문에 예매를 하고나서도,
'그냥 환불하고 어서 이 빌딩에서 탈출할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정신이 없는 분위기였는데,
63빌딩 아이맥스관의 특성상 좌석제 보다는 그냥 입장하는 방식을 택한 듯도 보이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다보니
극장 분위기보다는 놀이동산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줄을 서서 입장하는 것도 그랬고, 엄청난 인파들과 섞여 자리에 앉아 '관람'이 아니라 '체험'하는 듯한 분위기도 그랬고,
전체적으로 놀이동산에서 대형화면과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특수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러닝타임이 약 40분 남짓 인것도(가격은 대인 8,000원 이었습니다) 그러했구요.

이런 화기애매(?)한 분위기에서 관람한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일단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화질 자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상영 전에 볼 수
있었던 아이맥스 트레일러와 비교하여도 별로 좋은 화질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작품은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인물과 기본 설정만 빌려왔을 뿐
완벽하게 원작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은하철도 999의 아이맥스 버전'이
아니라 '아이맥스 영화의 은하철도 999 버전'이랄까요. 999보다는 아이맥스가 위주가 된 이야기 구조와 영상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었습니다. 3D로 제작된 <폴라 익스프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맥스 포맷을 위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999 열차가 관객들 눈 속으로 빠져들듯 지나가는 장면이라던가, 눈 바로 옆을 스치는 앵글로 만들어진
장면들이 많았죠),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을 멀리서 이동 카메라로 바라보는 듯한 장면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은하철도 999보다는 아이맥스에 집중하고 있다고 얘기한데에는 이런 영상적인 측면 외에 스토리에 관한
이유도 있었는데, '지구의 온난화'와 '공룡의 멸종' '갈릴레오 위성' 등 상당히 교육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마치 교육용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철이와 메텔의 설명을 통해 공룡들이 지구에서 어떻게 멸종했으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지 친절한 설명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공룡을 등장시키다보니
영상 측면에서도 아이맥스의 장점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구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작인 <은하철도 999>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상당히 심오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품인데, <은하철도 999 리턴즈>는 갑자기 너무 아동스러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쌩뚱맞은
희망의 메시지라던가, 아무 설명없이 급하게 시작되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했구요
(그래서 마지막에 '자, 다 같이 안드로메다로 출발!'했을 때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네요 ㅎ).

아이맥스의 초대형 화면으로 보여지는 영상은 흥미로웠으나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더군요.
마치 게임 중간에 삽입된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인물들의 움직임이 게임 속 캐릭터 처럼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요 배역들의 우리말 더빙이 어색하다보니 999스럽지 않아 어색했던 것도 있구요
(참고로 이 작품은 100% 우리말 더빙판만 상영하고 있습니다).
메텔의 목소리는 스컬리 역할로 유명한 서혜정님이 맡았는데 뭐 그럭저럭 이었다고 생각되나, 철이와 차장의 목소리는
끝내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익숙한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없다보니 더더욱 은하철도 999 스럽지 않았던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은하철도 999>를 생각하고 오신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메텔과 철이, 차장, 은하철도 999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익숙한 목소리도 없고, 이야기의 분위기도 사뭇 틀리니까요.
하지만 63빌딩 아이맥스 관 대형 스크린의 웅장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체험'을 원하시는 분들께는 그리 나쁜
선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관람보다는 '체험'이 위주가 된 애니메이션인듯 싶습니다.


1. 하록 선정과 에메랄다스가 우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

2. 엔딩 크래딧을 보니 영어 더빙 캐스트가 나오던데, 미국에서 상영하는 버전에 우리말 더빙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3. 이럴바에야 처음 999호를 타고 출발하는 장면에서 김국환의 주제곡이 신나게 울려펴졌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명곡을 아이맥스 대화면을 통해 들었다면 초 감동이었을텐데 말이죠;;;

4.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쥬라' 캐릭터를 보니, 왜 이렇게 '록맨'이 생각나던지요
    (쥬라의 아빠는 정말 록맨 같더라구요 ㅎ)

5. 원제를 찾아보니 '은하철도 999 별하늘은 타임머신 에피소드 1 : 태양계 공룡 멸종편' 이군요 ;;;

6. 현재로서는 1월 19일까지 상영 스케쥴이 잡혀 있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k100d + 21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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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맨 (Yes Man, 2008)
짐 캐리여서, 주이 디샤넬이어서.

12월 보고 싶은 영화들을 정리하면서 이 영화 <예스 맨>을 소개할 때 '짐 캐리가 출연하는 것 만으로도 보고 싶은 영화다'
'거기에 주이 디샤넬까지 나온다니 더할나위 없겠다'라는 식으로 얘기한적이 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예스 맨>은
애초부터 그 이야기나 완성도에 기대를 했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기 스타일을
갖고 있는 짐 캐리의 출연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은 있으리라는 믿음, 그리고 <해프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등을 통해 완소 배우로 거듭나고 있던 주이 디샤넬의 출연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런 기대가 크게 배반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목과 시놉시스 몇 줄로 알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라는 얘기도 되겠네요.
좀 더 보태자면 짐 캐리보다도 주이 디샤넬에 더 완벽하게 빠지게 된 영화가 되었다고 할까요.




(다음 사진이 나올 때까지 한 단락에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스 맨>은 내용에 대해 그리 깊게 나눌 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 한 단락으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혼자있기를 즐기게 되어버렸으며, 주변의 약속이나 연락에도 그냥 무반응으로 줄곧 대응해 오던
주인공 칼 (짐 캐리)은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한 강연회(?)에서 무엇에 홀린 듯 '예스 (Yes)'의 힘, 긍정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 강의에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마치 모든 점쟁이가 '요즘 힘들지'하면
'맞아요, 힘들어요'하면서 잠시나마 혹하게 되는것 처럼), 단순하지만 뻔한 얘기를 잠시나마 곱씹어 보게 된 그는,
반 강요에 못이겨 '예스'를 외치게 된 일이 발전하여 좋은 인연과 결과를 낳게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러면 정말 '서약'한대로
무조건 '예스'를 외쳐보자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부터 정말 거짓말 처럼 이 '예스'로 인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리고, 그의 생활은 더욱 활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했으며,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아니 누리지 않았던 삶들을 적극적으로 영유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무조건 '예스'로 답한다는 것을
안 주변 사람들이나 은행의 고객들은 그를 곤욕스럽게 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물론 은행 고객들의 경우 곤욕보다는
긍정적으로 풀리긴 했죠). 이런 예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그는 이상한 행동들로 오해를 받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점차 좋은 관계를 맺어오던 앨리슨 (주이 디샤넬)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너무 '예스'를 외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죠. 이 사건을 통해 그는 '노 (No)'를 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간 간과해 왔다는(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다시금 진심으로 자기 주변과 앨리슨을 받아들이게 된다는...뭐 특별할 것은 없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 영화는 짐 캐리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에이스 벤츄라>와 <이터널 선샤인>의 중간쯤에 위치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약간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닌가 싶은거죠. <에이스 벤츄라>같이 포복절도 할 수준의
웃음은 이 영화에 없습니다. 짐 캐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손짓 발짓, 대사들로 인해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폭발력 부분에서는 그의 본격적인 코미디 영화들만 못하며, 부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왔던 캐릭터가
긍정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드라마는 <이터널 선샤인>에 비하면 많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거죠. 물론 두 작품들과 비교해서 모두 혹은 한 쪽만이라도 완전히 만족시킬 만한 영화가 어디 쉽게 나오겠느냐
생각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지점이 조금 모호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짐 캐리하면 기대하게 되는 웃음의 포인트도 조금 부족했고, 이런 이야기 속에서 들려주는 그 메시지의
전달력이나 메시지 자체의 내용도 그리 새롭거나 임팩트가 있지 못했던 것 같구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 캐리'라는 전제조건을 적용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쉬움들입니다.
짐 캐리여서 말이죠.




엄청난 폭발력이 있는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잘 따져보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짐 캐리만의 매력과 코미디 연기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짐 캐리는 참 팔 다리가 긴 배우 중 한 명인데, 그의 팔과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만들어내는
몸 개그 또한 이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몸 개그 장면들 가운데는 그처럼 긴 팔 다리가 아니라면
별로 우습지 않을 장면들도 많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점이 우리가 짐 캐리 영화를 볼 때 너무 익숙해져서
그만의 장점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점 중 하나이기도 하죠.

이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해리포터 코스프레를 하기도 하고, 포크 가수를 흉내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대충 하는거 같지만 짐 캐리가 하면 다르다는 걸 확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포크 가수를 흉내내는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포크 가수라기 보다는 Dashboard Confessional 같은 이모코어 밴드를
흉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굉장히 특징을 잘 잡아서 성대모사 수준의 패러디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워서 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웃음을 유발할 만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되는데
(북미에서 보신 분들 계시다면 외국인들은 이 한국어 시퀀스를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유창하다기보다는
잘 외운 듯한 티가 나긴 했지만, 한 두 마디가 아니고 제법 많은 우리말 대사가 스크린에서 나오다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 캐리가 <예스 맨>에서 보여준 연기는 여전했지만 영화 자체가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약간 어정쩡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절제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지더군요. 그래도 달리면서 사진찍는 장면 등에서는 절로 뿜게 되더라구요 ㅎ




제가 이 영화에 최소한 별 반개를 더 주게 된 이유는 바로 짐 캐리가 아니라 앨리슨 역할을 맡은 주이 디샤넬 때문이었습니다.
주이 디샤넬은 제가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헐리웃의 여배우 이기도 한데, 이렇게 주목하게 된데에는 배우로서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도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에서 그녀가 더 돋보였던 것은 이런 그녀의 뮤지션스러운 재능이 영화 속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 블로그를 통해서 그녀가 속한 밴드인 She & Him의 음악을 살짝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예스 맨>에서는 그녀의 이런
뮤지션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엿볼 수 있습니다. 극중 배역이 밴드의 보컬이라 직접적으로 여기서 그녀의 노래 실력을
맛볼 수도 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Yes Man'이라는 곡의 보컬을 비롯해 그녀가 직접 노래하고 있는 곡들이
사운드트랙에 담겨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음악이 와닿았던 영화이기도 했는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Eels'가 전체적인 음악을 맡고 있어 중간 중간 그의 아련하고 매력적인 보컬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코미디 영화치고는 드물게 사운드트랙을 구매하게 될 것같은 영화였어요. eels와 주이 디샤넬이라면 구입하고도 남죠.
암요(찾아보니 아직 국내에는 라이센스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요즘 해외주문은 꿈도 못꾸는 터라 제발 라이센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 입니다).

주이 디샤넬에 대해서 조금 더 보태자면, <해프닝>에서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가 그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물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맡은 '앨리슨'은 실제 그녀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밴드 멤버인 것도 그렇고, 자유분방한 듯 하면서도 여림이 느껴지는 '앨리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주이 디샤넬이라는 배우를 좀 더 선보일 수 있는 여지가 많았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나온 영화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아름답게 나오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은하수를...>의 캐릭터와 살짝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저는 '앨리슨'의 경우가 더 좋았네요.




이 영화에는 짐 캐리와 주이 디샤넬 외에 조연으로 테렌스 스템프가 등장하는데, 그가 누구인가 하면 왕년에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역할로 출연했었던 배우이며 재미있게도 슈퍼맨의 청소년기를 다룬(하지만 영화 속 슈퍼맨 보다 더 늙어버릴
때까지 진행되고 있는) 미드 <스몰빌>에서는 슈퍼맨의 아버지인 '조엘'의 목소리 연기를 맡기도 했던 배우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로 '예스 맨'이 되라는 강연을 하는 교주스러운 강사로 출연하고 있는데, 그의 진지한 포스가 있어서인지
이 캐릭터가 아주 가볍게 그려지지 만은 않더군요. 테렌스 스템프는 특히 목소리가 너무 멋진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 속에서도
그의 멋진 목소리를 충분히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했던 <원티드>에도
출연했었는데, 어쨋든 자주 뵙는거 같아 반갑습니다 ^^;

그 외에 미드 <앨리어스>시리즈의 '윌 티핀'역할로 눈에 익히고, <미드나잇 미트트레인>을 통해 스크린에서도 어느 정도
각인을 새긴 브래들리 쿠퍼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분량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가 않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거리가
많지는 않네요.




<예스 맨>은 큰 기대없이 본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코미디 배우들에 비해 짐 캐리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는 '미국적'인 색깔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데 크게 불편함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 않을 듯 하구요.

그리고 저처럼 주이 디샤넬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셔야 할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eels와 주이 디샤넬이 참여한 영화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1. <해리포터>를 비롯해 <300>까지 코스츔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인공들 외에 조연들 캐릭터를
코스츔 하고 온 주변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무척이나 웃었습니다.

2. 주이 디샤넬이 극중 참여하고 있는 밴드의 음악도 그닥 나쁘지 않았어요. 특히 가사가 좋았죠 ㅋ

3.

이건 그냥 팬으로서 사진 한 장 추가.
너무 예쁘게 포장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가장 평범하게 나온 그녀의 사진을 한 장 골라봤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12월 27일(토) 오후 2:30분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됩니다.
(예매 오픈은 12/22 일 예정입니다.)

블로그 방문자 투표 결과 최종 상영작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연출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로 결정되었습니다.


연말을 맞아 사랑 영화를 뽑아보자는
초반의 의도와는 조금 어긋나는 듯도 하지만,
외부의 편견을 넘어서는 사랑 이야기 속에서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정보 보기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 씨네아트 블로거 세뼘왕자님의 추천의 글 =======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요? 트러블 메이커, 괴짜 영화감독, 전천후 재주꾼, 겁 없는 게이,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실입니다. 짧은 시간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과 인생이 증명해주듯 말이죠. 다작을 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고, 더구나 36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독일의 감독이 한국땅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공이 큽니다. 영화를 알지 못해도 왠지 제목이 낯설지 않은 이 작품은 파스빈더가 1974년에 만든 영화이면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60세의 독일인 여성과 20대 중반의 아랍 노동자의 사랑. 두 명 모두 독일 사회에서 보호와 애정의 영역 밖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에는 유독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들처럼 말이죠. 그 관심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파스빈더는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작품이지만, 어려운 얘기 다 떠나서 스토리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본 후 과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무슨 의미인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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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도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열립니다~ (벌써 3회째네요 ^^;)
이번 상영작으로는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선정되었습니다.
(제가 추천하고 있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영화제 포맷으로 가지 않는 이상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ㅠㅜ)

이번 주 토요일인 27일 오후 2시 30분에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신청글을 남겨주세요~

이 글에 비밀덧글로 본인 확인을 위한 닉네임과 핸드폰 뒷자리 4번호와 원하시는 매수(최대 2장)를
남겨주시면 총 10장이 다 소진될 때까지 선착순으로 상영회에 초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2008)
다섯 살 아이의 순수함, 그 세계

스튜디오 지브리.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이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만들어낸
스튜디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이지요(이 창대한 시작 문구로
알 수 있듯이 저는 지브리와 미야자키 월드에 흠뻑 빠져있는 팬이며, 객관적인 평가가 되지 못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둡니다. 하긴 평이라는 것이 어차피 주관적이지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다시금 직접 몸소 나서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인 <벼랑 위의 포뇨>는 기획 단계서부터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아들이 연출을 맡았던 <게드 전기>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제가 쓴 <게드 전기>리뷰를 보면 아실 수 있지만,
엄청난 혹평들에 비해 저는 그럭저럭 최악은 아니었다고 봤었구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의 경우가 그랬듯이, 사실 <벼랑 위의 포뇨>는 포스터만 보고는 별로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제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얼굴이랄까요? <갓파쿠와 여름방학을>같은 경우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질 않았던 것도 갓파쿠의 생김새가 크게 작용했었거든요.
이렇게 엄청난 기대와 조금의 우려도 있었던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법같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른으로서 잃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스틸컷만 보니, 마치 괴수물의 도입부분과 흡사하군요. 어떤 공포스런 미확인 물체가 인간을 덮치기 이전에는
꼭 저런 앵글의 컷이 등장하죠. 멀리서 간을 보는 장면이랄까요. 물론 <포뇨>에서는 전혀 이런 분위기를 찾을 수 없지만요)


고전인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미야자키 하야오 식으로 풀어낸 <포뇨>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인면어 '브룬히루데'가
인간인 소스케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다섯 살 어린이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소스케 등장 이전에
'브룬히루데('포뇨'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 본래 이름입니다)'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묘사되는데, 이 세계의 모습은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인간이지만 바다의 여신과 결혼하여 바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해 오염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해 나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후지모토'를 중심으로 이 세계는 조명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과도
같은 포스의 뒷모습을 풍기는 듯 하지만, 이 후지모토 캐릭터의 역할은 '하울'과는 분명 다른 점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후지모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연민이 느껴졌는데, 그에게서는 <렛 미 인>에 등장했던 '이엘리'의
보호자 격 남자의 모습과,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아버지와도 같은 부정이 엿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뇨>는 악당이
나오지 않는 드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들은 '후지모토'가 악당 역할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보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느낌이(매우 동양적인)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포뇨가 인간이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포뇨가 인간에게 선택 받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을 경우 받을 상처와 일들이 걱정이 되어 미리 예방하려 하는 것이고,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결합이 행복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가 직접 느낀 바가 있기 때문에(아마도 그는 바다의 여신을 극진히 사랑해서 인간 세상과 멀어져
바다 속 삶을 택한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외로움도 느꼈을테지요. 자신의 딸인 포뇨가 이런 외로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구요. 잘 생각해보면 '인어공주' 스토리는 포뇨의 아버지인 후지모토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자신의 품 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돌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깊었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후지모토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포뇨가 인간인 소스케와 더불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애초부터 있었다는 걸
엿볼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끝끝내 둘의 만남을 막거나 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브룬히루데'가 '포뇨'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후로 '포뇨'라는 이름을 적극적으로 불러주었거든요.
<포뇨>에서 후지모토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개그를 치는 조연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계를 풍부하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초반 바다속 에서 포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잠깐 움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포뇨와 닮은 수 많은 '포뇨스럽게' 생긴
이들이 단체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뇨는 저들의 엄마인가? 하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포뇨가 먼저 태어났거나 마법으로 인해 생겨난 프로토 타입이라던가 라고만은
생각하게 되지 않더군요. 이후 포뇨가 소스케의 피를 마시고 인간으로 변하기 이전에도 포뇨는 동생들보다 월등히
큰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우친 네오와도 같이, 물 밖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동생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일찌감치 깨우치게 되었고, 이런 깨우침으로 인해 궁금한 점들이나 욕구들이 많아졌으며,
그로 인해 발달하지 않았던 신체가 발달하여 동생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가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이렇게 보자면 아예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똑같이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였지만, 유독 발달하여 '언니'로서의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애초부터 프로토 타입으로 생겨난 존재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마 이 동생들도 포뇨가 이렇듯 시스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전까지는 별다른 욕구불만이 없었겠지만,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생들이 굉장히 포뇨를 부러워하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자신들은 못하지만 포뇨가
꿈을 이루는데에 적극적으로 돕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들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거죠.
포뇨와 동생들의 관계도 흥미로웠던 설정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에 가까운 배경음악과 함께 포뇨가 파도위를 춤추듯 달리는 이 장면은, <벼랑 위의 포뇨>의 명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속도감도 좋았고, 묘한 느낌도 좋았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독특한 캐릭터를 꼽자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역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운전 스킬로(폭풍우 치는 좁을 길에서도 드리프트를!!) 보는 이를 움찔하게 했던 리사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주가 되는
<포뇨>에서 '후지모토'와 포뇨의 엄마와 더불어 어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사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이런 어른이 되야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겠네요). <포뇨>에서 리사가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려한 운전 실력도,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다 못해 영웅적인 면모까지 발휘하는 모습도 아닌, 포뇨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아이가 굴러들어왔을때(포뇨는 굴러들어왔다는 느낌이 강하죠 ㅎ), 단 한번의 의심이나
고민도 없이, 아무런 스스럼없이 포뇨를 소스케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월드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일이도 모르겠는데, 마법을 부리고 더군다나 며칠 전에 물고기로서 만났던 이가 갑자기 꼬마 아이로
등장했음에도 이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사의 모습은, '멍청하다' '허술하다'라기 보다는 '깨어있다' '열려있다'로
봐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아이의 순수함에 대한 경이와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순수함을 갖은 아이에게 얼른 어른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그 순수함을 더 오랫동안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옳은 부모의 자세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반부터 언급한 후지모토를 비롯해,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 그리고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까지...
<포뇨>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를 가감없이 편견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한 작품인 동시에, 한 편으론 이런 아이들을
보호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부모에 대한 영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리사의 옆 모습에선 '하울'이 어렸을 적 '캘시퍼'를 처음 받아들일 때의 옆 모습과, '나우시카'의 옆 모습이 동시에
연상되더군요)

부모에 관한 작품이라는 점은 후반부에 가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포뇨의 앞으로에 대한 일들을 놓고
소스케의 엄마인 리사와 포뇨의 엄마인 그랑망마레가 마치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듯 '누구 어머니 되세요?'하며
만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말도 안되는 비현실 세계에 대한 편견이 없는 리사에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리사와 포뇨의 부모들과 함께 노인정에서 피신한
노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도 리사와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이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한 할머니가 계속 되는
의심을 갖고 불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여느 작품 같다면 이 할머니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으로 등장해서 마수에 걸려있는
중생들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겠지만, 미야자키 월드에서는 '왜 순수하게 믿지 못하는가?'라는 것을 되묻기 위한 캐릭터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를 보니 '다섯 살 아이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여있다' 라고 했던데 이런 마음에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해 노인이 된 미야자키 하야오가 들려주고 싶은 '원석'과도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들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리사와 그랑망마레의 대화는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지만,
분위기로 보았을 때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라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결국은 옳은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세계를 멀리서 지켜주자 라는 것이 이 두 부모의
선택이었던 셈이이죠.



(아마도 '포뇨'는 지브리 역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없이 대놓고 귀여우니까요 ^^;)

<벼랑 위의 포뇨>를 일반 영화보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여기저기 모순 점 투성이고 이해안되는 부분도 분명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화를 볼 때는 의심이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캐릭터의 몸짓, 말짓
하나에도 무언가 암시하는 의도가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보는 스타일인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히 포뇨는!)이런 의심 가득한 시선들 없이 맘 편하게 즐겨라 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는 마냥 즐기는 것보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필요없는 작품들이었거든요.

다섯 살 아이가 중심이 된 순수한 세상에 어떤 의심의 눈초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봤을 땐 한창 때의 미야자키 하야오
였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져봐도 나름 젊었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보면
결국 순수함과 진리로 포용하기는 했지만, 환경파괴와 문명화, 기계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강했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는 점점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입장으로서 비판적인 마인드 보다는
순수함에 대한 동경과 보호가 더 앞서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센과 치히로..>를 보면서도 감독이
치히로를 그리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 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포뇨>에서는 이렇듯 아이를 할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강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것이 일부에서는 일종의 '늙었다'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기본 정서가 동심을 비롯한 순수함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더군요.
장면 장면에서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심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이들이 유치하다라고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섯 살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위해 만든 할아버지의 작은
선물이니까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임팩트 면에서는 최근작 <센과 치히로..>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비해 조금
약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엔딩 크래딧에 흐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주제곡만으로도 깊은 각인을 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네요(이 노래가 입에서 떨어지질 않는군요). 물론 앞서 잠시 언급했던 정통 클래식 스타일의 곡들도
좋았구요. 역시나 미야자키 월드를 완성시키는 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팬심없이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근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순수함에 있기 때문인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점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작품은 계속 아이의 순수함으로
머물러 있으나 보는 이들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기 때문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도 있구요.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벌어진 이 공간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다시 좁혀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의 '포뇨'모습만 보고 조금 이상하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나,
'포뇨'의 주제곡을 미리 듣고는 조금 유치하고 아동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는 다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환경 파괴에 대한 메시지도 분명 담고 있지만, <포뇨>는 이를 전작들에 비해 깊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판적 메시지가 깊게 담긴 작품들을 다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듯이, 이런 작품은 이런 작품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미야자키 월드이구요.

영화라는 것은 어차피 그 세계에 빠지지 못하면 공감하기 힘든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벼랑 위의 포뇨>는 5세에 맞춰졌기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듯 싶구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한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와 그 세계에 매료되게 된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 며칠 전 <다크나이트> 블루레이를 사려고 들렀던 매장에서 <벼랑 위의 포뇨>OST를 보고는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결국은 질러야 겠군요!

2.

후지모토는 왠지 살짝 목소리도 그렇고 오다기리 죠가 연상되기도 하더라구요. 문득 문득 멋진 모습도 보여주는데
폐인스러움도 갖췄다고 할까요 ㅋ

3. 크리스마스에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군요.

4. 사실 닭살스러운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포뇨'는 대책없이 귀여운대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소스케! 좋아!' 더 많은 대사는 필요없어요. 사실 여기에 다 담겨있기도 하구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있습니다.



(사진으로보니 마치 문닫은 와인 가게 셔터에 카드 붙여놓고 불쌍하게 행사한 것 같기도 한데,
실내입니다 -_-;;;)


2008 블칵 송년의 밤 (& 블칵 어워드)

바야흐로 2008년 하고도 12월 하고도 중순을 넘긴 시간.
가는 2008년을 아쉬워 하며(이 무슨 뻔한 멘트) 회사나 친구들, 가족들 간에 여러 모임들이 잦은 요즘이죠.
저도 제가 소속된 회사의 송년회를 제법 이른 날짜인 12월 18일에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한지가 이제 겨우 한 달 된지라 매달 회사에서 갖게 되는 행사들이 다 첫 경험인데,
이번 '2008 블칵 송년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치뤄진 송년회와 2008 블칵어워드 역시,
저로서는 처음 함께하게 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더 두근거리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100분 토론 400회 특집 봐야하는데 늦게 끝나면 어쩌나
조마조마 하기도 했었구요 ;;;





저희가 송년회를 갖은 장소는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죠이의 집'이라는 조용한 가게였는데,
주로 와인가 빵을 판매하는 곳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회사인지라 와인과 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던 이들은,
다른 곳에서 요리를 주문해서 세팅하기에 이르렀고, 아래와 같은 맛있는 음식들을 듬뿍 맛볼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저 닭다리를 남긴 것을 깊이 잠든 밤중에도 불현듯 떠올릴 정도로 맛있었던 음식들이었습니다~).




연어와 치즈가 롤 형식으로 예쁘게 디스플레이된 요리였는데, 맛도 맛이지만 수량도 적어 먹기가 아쉽더군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가장 먼저 다 먹었다는 ;;;;




그리고 역시 따로 공수해 온 회 한 접시. 다른 테이블에 계신 분들은 회를 거의 맛도 못보신 분들도 계신것 같은데,
저는 다행히 은총을 받아 회가 보기 좋게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한 두점도 아닌 여러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곳은 와인바인 듯 했는데, 그래서인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모두 맛이 괜찮았습니다.
순한 레드 와인으로 적절히 속을 달랜 뒤(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았지만, 몇 분이 남은 일 처리를 위해 송년회 장소에
늦게 도착한 탓에, 저희는 거의 40분 가량은 저 많은 음식들을 바로 눈 앞에 두고도 상상 속으로만 맛을 음미해야
했었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시식 가능했던 것이 레드 와인이었기 때문에 그 맛이 더 달콤했는지도 모르겠네요),
탄산기가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맛보았는데, 조금 더워서 인지 부담없고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더 와닿더군요.
와인은 자주 가는 홍대 가게들에서 몇 번 마신 적이 있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나중에 마신
산미구엘 생맥주도 시원 그 자체였구요.




시원하다 못해 뒷 골을 아스트랄하게 때리는 산미구엘 생맥주를 들이키긴 전, 해맑은 책벌레님하늘이님
다정한 한 때. 이 분들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40분 간의 시간들은 사진으로 담기엔 너무 암울하고 어두워서
차마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각고의 시간을 버텨낸 후 얻게된 맥주와 바나나, 닭다리이기에 저런 꾸밈없는
표정이 절로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가장 다정한 사람으로 꼽힌 두 분. 망치님폐인님.
한 분은 받을 만 했고, 한 분은 다들 의외라고 조작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좋은 송년회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큰 수사없이 종료하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도 좀 더 다정함을 나눠주세요~




가장 자신을 아끼는 사람 부분을 수상한 주성치님.
제가 직접 투표한 이가 선정된 터라 남다르기도 했습니다. 나를 가장 아낀다는 것의 다중해석 여부를 감안했을 때
가장 적절한 수상자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가장 자기 주변을 잘 정리하는 사람 부분을 수상한 A2님.
결국 잘 정리하는 비법은 보이지 않는 곳에 몰아넣고 보이는 곳엔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이었다는
비법을 와인 한잔에 빌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우아한 물 밖 모습 뒤에 물 속에서는 정신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는
한 마리 백조처럼, 그의 깨끗하다 못해 썰렁한 책상 뒤에는 우격다짐으로 구겨넣은 서랍 속 이면이 있었던 것이죠.




가장 술을 많이 마신(많이 마실 것 같은 아님) 사람으로 꼽힌 해피님.
'주신(酒神)'이라는 칭호도 얻으신 그녀는, 과연 주신 답게 벌칙으로 받은 원샷의 기회들을 주변의 흑기사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모두 해치워 버리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참고로 제가 입사 한 달만에 이 분야에서 2표를 얻는
쾌거를 거두기도 해, 뿌듯함과 동시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못 찍었지만, 2008 가장 재미있는 사람으로는 비트손님이 선정되어 주위를 훈훈하게 했습니다
(이 부분에도 제가 단 한 달만에 2표를 얻어 순위권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2008 블칵 어워드에 이어 팀별로 치뤄진 각종 게임들을 통해 샌드위치 데이인 1월 2일을 휴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다들 열심히 해준 탓에 1월 2일날은 전체적으로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희 팀 미션을 성공시킴과 더불어, 디자인팀의 미션까지 도와줌으로서 1월 2일 휴무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습니다.





서로에 망가진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하는 블칵인들. 그리고 한 편으론 벌칙으로 받은 500cc 맥주 2잔 원샷을 준비하는
주신과 폐인님의 모습도 인상적이네요.




이 날 몸이 좋지 않으셨던 폐인님을 대신해 하늘이님과 해커님이 흑기사로 나서 대신 원샷을 해주고 계시는
아름다운 현장. 흑기사라하면 맥주 원샷을 하는 것보다 더 하기 싫은 소원을 빌어줘야 제 맛인데,
2008 가장 다정한 사람으로 뽑힌 폐인님을 의식해서인지 다들 소원은 필요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하는
또 한 번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죠이의 집'에서의 송년회가 끝나고 저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직원분들과 어울려 커피숍에서 간단하게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모인 구성원들을 보니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2008 블칵 어워드에
빛나는 수상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리포터로서의 직분에 충실하고자 (마치 수상자들의 모임에 초대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 수상자들의 수상 노하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2008 술을 가장 많이 마신 사람'으로 선정된 해피님이, 시어머님이 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은채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고 계신 사진입니다).




이렇듯 영광의 수상자들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2008 블칵 어워드와 송년의 밤은 저물어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함께 하게 된 행사였으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사람들처럼(인 척하며) 즐겁게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너무 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도 이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함께 다시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지금까지 2009 블칵 어워드에서 다관왕을 노리고 있는 유망주 아쉬타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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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ts, 1987)
한 소년의 담담한 회고록

씨네큐브에서 열린 '루이 말 감독 특별전' 3부작 상영을 통해 <굿바이 칠드런>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라콤 루시앙> <마음의 속삭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루이 말 감독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라 1987년에 개봉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던
영화였죠.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1992년작 <데미지>외에는 본적이 없었는데, 이 <데미지>조차도 예전에
어렴풋이 본 영화라 사실상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은 이 영화 <굿바이 칠드런>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네요.




<굿바이 칠드런>은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 파리 근교에 위치한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기숙 학교를 배경으로 전쟁이
만들어낸 잔혹함을 소년들의 우정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한 진한 휴먼 드라마는 여러 영화들이
있는데, <굿바이 칠드런>은 그런 영화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무덤덤하게 그려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도, 독일군들이 기숙학교를 급습해 유태인들을
골라내는 과정도, 이를 바라보는 줄리앙의 시선도 별로 극적이지 않습니다. 영화적인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달까요.
그래서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들에 비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도, 깊게 공감하게 되는 관객들도
적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굿바이 칠드런>은 이렇게 감정선을 극대화 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아련하고 애틋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1987년작을 이제 와 처음 감상하게 된 이유에서도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는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실제로 감독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작위적이거나 영화적이지 않다는 것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 비슷한 영화들의 다른 클라이맥스 부분에 비하면 심심하기
그지 없을 장면이겠지만, <굿바이 칠드런>을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루이 말 감독만의 연출 재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안녕이라는 말도 못하고 헤어지는 장면이 (보네의 그 눈빛이) 쉽게
잊혀지지 않으니 말이에요.




요즘은 예전에 비해 부쩍 영화 속 행복한 장면들에 대해 더 깊이 받아들이곤 하는데, 어둡고 암울할 것만 같은 이 영화 속에도
주인공들이 아무 생각없이 웃으며 행복해 하는 장면이 한 컷 있습니다. 바로 채플린의 <이민선>을 다같이 관람하는 장면인데,
아직까지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나 관계가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못했던 상태였음에도 다 같이 아무 생각하지 않고
즐기고 웃을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이 장면에서는, 최근 보았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이 역시 채플린의 영화가 삽입되었었죠, 두 작품을 통해 오히려 찰리 채플린의 예전 작품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특히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직접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생음악을 배경삼아 관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예전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반드시 저렇게 했어야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가끔씩 저런 환경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운치있고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 모두가 행복해 하는 그 순간.)


이 영화를 통해 알아본 배우라고는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이렌느 야곱 뿐이었습니다.
<굿바이 칠드런>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레드>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이렌느 야곱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암울한 기숙학교에서 빛과 같은 존재에 가까운 피아노 선생님을 연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유난히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비중이 그다지 큰 것도 아니고, 연기력이 어땠다 라고 말할 정도의 캐릭터도 아니었지만, 그녀를 이미 알고 있는 이상
이렌느 야곱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재미로 인식되더군요.




<굿바이 칠드런>은 기존에 우정을 그린 영화들과, 또 전쟁을 그린 영화들과 완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내용들은 전쟁과 깊숙히 관계가 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전혀 별개의 일인듯 진행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 역시 이 배경을 인식하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전혀 신경쓰지 않으려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겪은 실화라고 봤을 때 좀 더 극적으로 이야기를 몰고 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음에도, 빈 여백을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연출한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좀 더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구요.


1. 줄리앙의 엄마와 형의 유머는 제법 재미있더라구요 ㅎ
2. 저는 왜 저 포스터를 보고 둘다 소녀인줄 알았을까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백두대간에 있습니다.









회사를 새로 다니게 되면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내 맘대로 꾸밀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거창한 걸 치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에 따라 다르게 설정할 수도 있으며,
집을 바꾸듯 이렇게 저렇게 바꿔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이들의 사진이나 그림도 장식할 수 있어 나름 재미가 있다.

아직은 매우 깨끗한 책상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올해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들 중 하나인 <컨트롤>과 <렛미인>의 팜플렛을 제일 먼저 붙여놓았으며,
옆 공간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일러스트와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앨범 내에 포함되어 있는 엽서 한 장도
붙여놓았다.

컵은 회사 컵외에 뭘 하나 더 가져올까 하다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DVD 한정판에 증정되던 머그컵을
일단 가져왔으며, <카우보이 비밥>의 주인공인 스파이크 스피겔 피규어도 집으로부터 고이고이 모셔왔다.
그리고 포스터는 언제나처럼 이효리 포스터를 가져오려다가, 아직은 지켜야할 이미지도 있고;;,
회손(?)의 우려도 있어 시규어 로스의 앨범 포스터를 어찌하다보니 또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은근히 이 포스터가 누드라 그런지 팀원들에게 인기가 있다 --;;;

내 책상이 좀 더 복잡해 지고, 내 자리가 좀 더 화려해질 때까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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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게 된 광화문 시네큐브.

시즌을 맞아 산타모자와 부츠를 신은 해머링맨이 너무 귀엽더라 ㅎ



k100d + 21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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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로 일본 내에서도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큰 인정을 받고 있는 수오 마사유키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카세 료의 영화이기도 하구요.
제목과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본의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강하지만 조용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일단 이 영화가 의외스러웠던 것은 앞선 영화들처럼 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던(코미디 영화가 아닌 
영화들에서도 유머러스함을 언제나 숨기지 않았던)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이렇듯 심각한 주제와 법정드라마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배우란 어차피 감독과 작품에 따라 연기변신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기까지
하지만, 감독의 경우는 자신 만의 스타일이나 세계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전혀 다른 이야기나 장르의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결과물들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도
걱정이 되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수작이었으며,
특히 이렇다할 영화적 장치 없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되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와 분노를 동시에 일으키는
순작용을 만들어낸 영화였습니다(여기서 분노란 영화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에 의한 분노죠).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어느 출근 길에 만원 지하철에 탔던 텟페이(카세 료)가 한 여학생으로 부터 치한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고 이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벌이는 재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이 과정 속에는 그 어떤 영화적 장치들도 없고, 관객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설정된 장면이나 이야기도 없습니다.
감독인 수오 마사유키는 일본 사법재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된 뒤 200건에 달하는 재판에 참가하면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재판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떤 이 제도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이며 어떤 개선
여지가 있는지를 파악한 뒤, 이 이야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영화는 어찌보면 시종일관
참으로 답답하고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보듯 혀를 차게 만듭니다.

사실 이 영화처럼 감상기의 내용과 영화 속 텍스트가 중복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극 중 인물들의
대사나 독백등을 통해 감독은 물론, 관객들이 하고자 하는 말까지 모두 다 담고 있습니다. 그 만큼 감독이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흔히 법이라는 것을 적용할 때, 죄인에게 유죄를 어떻하면 선고할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죄가 없는 이들이
어떻하면 유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잘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생각도 이런데, 그 가장 가까이 있는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관심은 더더욱, 유죄에만 관심이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죄인을 잡아다놓고 무죄라고 판명해 버리면, 자신들의 경력에 흠이 생기게 되고 능력없는 검사, 재판관으로 평가받으며,
결과적으로 정부 권력에서 집행한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무죄를 선고할
가능성은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듯이 99.9% 입니다. 극중 야쿠쇼 쇼지의 대사처럼 '이 99.9%라는 것이 확률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죠. 결국 그 0.1%의 케이스가 자신이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며, 대부분이 유죄를
받을 죄인들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에도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한 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이는 자신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텟 페이의 여정은 바로 이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텟 페이도 처음에는 '자신은 정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재판으로 가봐야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없으니, 그냥 유죄를 인정하고 보석금을 내면 당일날 풀려날 수
있다는 당직변호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은 '정말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텟페이의 생각이 옳았느냐를 넘어서서, 얼마나 힘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선택이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기 전이라면 당연히 무죄 상태로서 죄인 취급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법 제도는 일단 유죄로 판명하여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라도 유치장에 몰아넣고 중범죄자들과 똑같이 취급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좁은 유치장에서 생활하고,
취급받는 텟 페이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텟페이는 이 같은 취급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돌아보게 끔 하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적인 요소를 더 살리려고 했다면,
텟페이가 강하게 반항하고 소리지르며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겠지만, 극중에서는 거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실제로 텟페이와 같은 현실에 놓여지게 된다면, '자신은 정녕 무죄이기에' 얼떨떨함에 아무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영화는 텟페이만을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억울하게 잡혀 있는
존재에 대한 시선도 있지만, 그 만큼이나 그로 인해 고통받고 변해버린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친구가 어느새 완전히 법 전문가가 되어 있다던가, 출근길 복잡한 지하철 역에서
광고판을 몸에 쓰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어머니와 친구의 모습을 보면, 이 잘못된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격지 않아도 될 고통을 주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그리는 수오 마사유키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조금도 극적이지 않고 조금도 더하거나 줄이지 않는 것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자신과 메시지의 힘을 믿었던 것이지요. 결국 어머니가 유죄선고를 받고 울부짓을 때보다도 처음 광고판을 몸에 두르고
인파속으로 나설 때가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결론을 예상할 수 있고,
그런 결과가 별로 중요한 영화는 아닙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실제로 무죄이기에) 점점 텟페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만, 자신 만의 곧은 주관이 있었던 재판관이
결국 교체되고 이 시스템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평가가 조정되면서 점점 텟페이는 유죄로 굳어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재판 시작부터 애타게 찾았던 결정적 증인을 찾았을 때 관객들은 '아,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지만, 이것 역시 그들 나름대로 '해석'되기에 따라 아무런 증언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동영상이 나와도, 직접 방송에서 말을 해도,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현실과 다를 것 없죠).

이렇게 까지 울화가 치미는 일들이 계속 생기지만, 그래도 텟페이는 마지막 유죄를 선고 받기 직전까지도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정말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진실을 알아줄 것이라는것'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라는 순진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현실과 너무 닮아있는 이 영화 속에서는
이런 당연한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텟페이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죄를 합리적으로 증명했음에도
이를 판단하는 법과 제도, 그들에 의해 결국 판단되어 유죄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는 법 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그냥 큰 이익이나 불익이 되지 않는 일들에는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들고, 쉽게 말해 '그냥 좋게 좋게 하는게 서로 좋은거 아니냐'라는 식이 팽배해져 있는
요즘, '아닌건 아닌거다'라고 꼭 외쳐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하겠습니다.




주연을 맡은 카세 료의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구구는 고양이다> <도쿄!> <허니와 클로버> <하나>까지, 최근 일본에서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자배우라는 그의 연기는 흠잡을데가 없습니다(<박치기>에도 출연했다는데, 이 영화를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음에도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DVD를 다시 꺼내봐야 겠네요). 극중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은 나이 인줄 알았는데, 74년 생으로 올해 서른 다섯이더군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감정을 폭발하지 않고 시종일관 한정된 내면의 연기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해야 하는데,
카세 료는 어찌보면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토 아사카, 야마모토 코지, 야쿠쇼 코지 등의 연기도 특별히 나무랄데는 없지만,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카세 료의 영화이긴해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 모든 메시지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있어서, 감상기를 별도로 쓰기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하구요.

사회 비판적인 텍스트를 오히려 영화적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깊게 어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1. 다케나카 나오토가 까메오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2.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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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써 3회째를 맞는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
12월 27일(토) 오후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지난 1, 2회 상영회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1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 10월 31일(금) <원더풀 라이프>
제 2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 11월 29일(토) <쥴 앤 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는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고르고,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컨셉의 상영회입니다.

또한 유명인사나 평론가 없이, 블로거들과 관객들이 동등한 시각에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교류할 수 있는
색다른 씨네토크도 함께 진행됩니다.

상영회 일시: 12월 27일 토요일 오후
상영회 장소: 아트하우스 모모

* 상영 후에는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씨네토크 시간이 이어집니다.
* 본 상영회는 유료 상영입니다.(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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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에서는 씨네아트 팀 블로그 멤버들이 추천하시는
 위 여섯 편의 영화들 중 최다 득표를 얻은 영화 1편을 상영하게 됩니다.

아래의 링크를 눌러 투표에 직접 참여해 주세요.



======== 씨네아트 블로거들의 추천의 글 =======


<리컨스트럭션 Reconstruction> - 환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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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스트럭션>은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만났음에도 강렬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은 여자, 아메에게 알렉스가 다가가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흔한 사랑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이야기는, 알렉스가 아메와 꿈결 같은 사랑을 나눈 뒤로 갑자기 그를 알았던 연인과 친구, 아버지 모두가 더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변화하는 것은 실생활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영화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코펜하겐에서의 24시간 동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알렉스와 아메를 통해 사랑의 기억이 끊임없이 변형되는 모습도 그려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트릭을 알 수 없는 마술과도 같은 사랑이 유발하는 어지러운 세계입니다.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스타일리쉬한 영상은 작품 전체에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리컨스트럭션>이라는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차분히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Fear Eats the Soul> - 세뼘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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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어떻게 소비되고 있을까요? 트러블 메이커, 괴짜 영화감독, 전천후 재주꾼, 겂 없는 게이, 뉴저먼시네마의 기수 등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실입니다. 짧은 시간 순탄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과 인생이 증명해주듯 말이죠. 다작을 했음에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몇 개 되지 않고, 더구나 36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독일의 감독이 한국땅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공이 큽니다. 영화를 알지 못해도 왠지 제목이 낯설지 않은 이 작품은 파스빈더가 1974년에 만든 영화이면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60세의 독일인 여성과 20대 중반의 아랍 노동자의 사랑. 두 명 모두 독일 사회에서 보호와 애정의 영역 밖에 있었던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에는 유독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들처럼 말이죠. 그 관심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파스빈더는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작품이지만, 어려운 얘기 다 떠나서 스토리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를 본 후 과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무슨 의미인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 신어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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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까락스 감독의 1984년 장편 데뷔작입니다. 두번째 장편 <나쁜 피>는 86년에, 그리고 <퐁네프의 연인들>은 91년에 만들어졌죠. 국내에는 <퐁네프의 연인들>을 시작으로 레오 까락스 감독의 작품들이 역순으로 개봉이 되어 <소년, 소녀를 만나다>는 96년에야 정식으로 소개되었더랬습니다. 만들어진지 12년만에 국내 개봉된 작품이 다시 12년이 지나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의 후보작으로 올라온 셈이로군요.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를 앞세운다고 해서 '누벨 이마주' 감독들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던 레오 까락스 감독이었지만 이 흑백 영상의 데뷔작은 오히려 50 ~ 70년대의 누벨 바그 영화에 좀 더 가까웠던 걸로 기억합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들을 수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과 당시 까락스 감독의 연인이기도 했던 미레이유 뻬리에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side Story> - 아쉬타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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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고전, 아니 비단 뮤지컬 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고전 영화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의 슬럼가로 옮겨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또 다른 뮤지컬의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 로버트 와이즈와 <왕과 나>의 안무를 맡았던 제롬 로빈스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고, 레너드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뮤지컬 고전들 가운데서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만의 특징을 꼽자면 안무와 음악의 합을 들 수 있을텐데, 춤추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춤추는 이 안무와 노래의 합은 아직까지도 다른 뮤지컬 영화에서 보기 힘든 최고 수준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팝넘버로도 널리 사랑받은 'Maria'와 'Tonight'같은 곡들을 만나는 감동은 물론이고, 뮤지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카사블랑카 Casablanca> - 스노우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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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는 2차 대전 당시 모로코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당시 나치의 침공으로 현지 촬영이 불가능한 악조건 속에서도 세트 촬영을 통해 카사블랑카라는 이국적인 배경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만난 두 연인 사이에 숨겨져 있던 사연이 드러나게 되고 사랑을 위해 그녀를 보내 줄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붙잡을 것인지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영화를 많이 접하셨겠지만 스크린을 통해 두 남녀의 사랑을 다시 만나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헐리우드 엔딩 Hollywood Ending> - 인생의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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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2002년에 발표한 <헐리우드 엔딩>은 한때 잘 나갔던 영화감독이 새로운 작품을 촬영함과 동시에 눈이 멀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영화로, 노년의 나이에도 변함없는 우디 앨런의 원숙하고 농익은 유머가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신경쇠약에 걸린 마냥 세상에 대한 온갖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을 선사해주는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은 끔찍한 염세주의자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유머러스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은 고통스러워도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는 그의 인생관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엔딩>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유해지는 우디 앨런을 만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유쾌함이라면 한 해 동안의 온갖 짜증과 불만도 다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상영회에 저는 보시다시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번에도 다른 작품들에 밀려 상영작이 될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열심히 홍보해 보렵니다 ^^

혹시 그날 오시고 싶으신 분들은 미리미리 언지를 주셔도 되구요,
오시지 못하는 분들이라도 투표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더 폴>은 (부제목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왜 추가하지 않았냐면, 물론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부제목이기도 해서이지만,
이 부제목에 이유를 잘 알 수 없어서 이기도 합니다. '오디어스'는 알겠는데 '환상의 문'은 뭔지.. 그냥 '더 폴'하기엔
너무 쌩뚱맞은 것은 이해하겠지만 너무 홍보적인 면만 강조된 부제목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유명 CF와
R.E.M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한 인도출신의 타셈 싱 감독의 작품입니다.
볼거리가 많은 12월 극장가에서도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인데,
타셈 싱이 감독으로서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보니 제작자로 참여한 데이빗 핀처와 스파이크 존스가 더 노출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점 중 하나구요(두 감독 모두 뮤직비디오 or CF 연출 경험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의 대체적인 평들은 '영상은 무척이나 뛰어나다' '이야기는 허술하다' 이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얘기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역시나 볼거리는 대단했으며(근데 미리 이것이 CG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가서여서 더욱 대단하다고 보는 내내 느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 역시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정이 깊게 드러나고 있는 시나리오로, 만듦새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화적인
영화의 서술구조로 보았을 때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그 화려하다던 영상미에 대해 가장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4년 반 동안 28개국을 넘나들며 카메라에 담아낸
영상은 이곳들이 지구상에 실존하는 공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극중 화자가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장소들의 미적 아름다움은, 정말로 어린아이들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동화속 장소에 걸맞는 이질적 미를 뽐내고 있는데, 무려 4년 반동안(기사를 보니 장소 섭외에 총 17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촬영한 영상은 이런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들을
선사합니다. 특히 감독의 마인드 자체가 CG를 이용하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그 맛을 살리기 위해 가능하면
실제로 구현하길 원한 탓에 우리가 스크린에서 이렇듯 존재하지 않을 법하지만 존재하는 장소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특히 오디어스의 성이 있는 푸른 도시는 다른 감독들 같으면 CG를 통해 간단히 색을 입히는 것으로
처리했겠지만, 주민들에게 페인트 통을 무료로 제공하여 실제로 도시의 모든 집의 벽과 지붕을 하늘색으로 칠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나비 섬 같은 경우 피지에 있는 섬이라고 하는데, 정말 판타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고, 인도 조드푸르에 있다는 인상적인 계단의 경우 타셈 싱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근처 주민들도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로케이션 장소를 찾고 섭외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끼고도 남을 것 같네요.



(저 하늘색으로 칠해진 지붕과 벽들이 CG가 아니라 실제로 페인트로 칠한 것이라고 하니 놀랄 따름입니다. 제작진에서
페인트를 무료로 사주고 양해를 구하고 칠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몇몇 동의하지 않은 집이 있어서 인가 군데군데
칠하지 않은 집들이 보이더군요 ㅎ)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렇듯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답지 않게 화질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가 본 극장만의 프린트 문제인지, 아니면 기본 화질 자체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디지털 상영의 그런 칼 같은 선명함은 아니더라도 좀 깨끗한 영상이길
원했는데 전체적으로 어둡고 노이즈도 제법 있는 영상이라 조금 아쉬웠습니다. 물론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었으나 워낙에 영상이 영상인 영화인지라 좀 더 좋은 화질로 즐겼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로케이션 이야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얼마나 많은 곳을 촬영하고 수집했는지, 파리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건 1초씩 휙휙 지나가더군요. 그렇게 지난 간 명소들이 제법 많았는데, 잠깐씩 지나간 장면들에
캐릭터들이 있던 걸로 봐서 다 직접 가서 촬영했다는 것이 되길래, 관객입장인데도 너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보니 각국의 로케이션 스텝들 명단이 나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아래 세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스포일러는 없다 생각되는데 약간의
언급들이 있는터라 표기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오래 전 미국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입원한 남자 환자가 한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데, 이를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오디어스' 총독을 무찌르기 위해 모인
영웅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일방적으로 화자의 입장에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도 동시에
영화에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특히 그 청자가 상상력 넘치는 어린 소녀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어 지는데, 이 구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야기 자체의 소중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들려주는 이 영웅담은 그것만으로도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각각 총독에게 원한을 진 독특한 배경과
외모의 캐릭터들이 서로 모여서 총독에게 대항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여정은 만화 영화나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곤
하는 익숙한 이야기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이 이야기를 듣는 어린 아이의 입장이 적극 반영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틀려지게 됩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일 수록 그런 경향이 짙은데, 누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면 그 이야기를 단순히 다른 세상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자신의 세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믿어버리곤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이야기 그대로 믿게 되고 더 나아가 가족이나 친구들 처럼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자신의 상상속에서 이야기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것이지요. 영화는 이런 아이의 순수함을
이야기 속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물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야기 속 캐릭터들에게
전개되기도 하죠.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는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 수 있을텐데, 물론 아주 같은 방식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야기 속의 세계와 이야기 밖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이런 구조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영화 속 이야기가 아이의 상상력에 맞물려만 진행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나중에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남자의 입장이 적극 반영된 이야기 임을 알았을 때,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로워지더군요. 처음에는 장난치듯
남자가 아이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만 보였지만, 중반 이후부터 남자가 현실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쯤에는
결국 이 지어낸 얘기 속에 남자의 현실적 문제들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알게 됨으로서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분명 이야기의 구조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기는 했었습니다. 특히 영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 구조에 있어서는 허술함이 많이 느껴지긴 했는데, 저는 영화에 완전히 동화되서인지(또!), 뭐 어차피 자살을 시도하던
남자가 몰핀을 얻을려고 지어낸 얘기라고 봤을 때 오히려 너무 완벽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까지 하기에
이르렀죠;

개인적으로 이 오디어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고 분량이 적다고 느껴졌는데, 그 만큼 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풀어나갈 여지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장편의 TV시리즈로 제작된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이야기 속
영웅들이 오디어스에게 원한을 품게 된 배경들에 관한 것들도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고, 오디어스의 성까지 가는
여정에 수 많은 에피소드를 배치해 더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워낙에 열려있는 캐릭터들과
방대한 '여지'덕분에 상상력이 불끈불끈 솟을 수 밖에요.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가며 시간과 돈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타셈 싱이라는
감독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애정이 있는가를 엿볼 수 있긴 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더더욱 직접적으로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물론 좋았지만 끝나고 나서 이야기 밖의 얘기를 들려줄 때
더더욱 큰 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찔끔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얘기가 끝난 뒤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나레이션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이와 인연을 맺은 남자는 자신이 스턴트맨으로 출연한 영화를 아이에게 선물하였고, 이 아이는 영화 속 인물이 정말
로이 아저씨가 맞는 확인하기 위해 같은 장면을 수십번씩 돌려보기 시작했고, 그렇다 보니 영화가 재미있어졌고,
로이 아저씨가 스턴트 맨이다보니 매번 떨어지고 넘어지고 하는 장면을 반복해 보다보니 이런 장면들만 보는 습관이 생겼고..
하면서 예전 고전 영화들의 스턴트 장면들과 슬랩스틱 코미디 장면들이 하나 둘씩 스쳐지나가는데,
이건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키스 씬 모음 장면을 보는 것처럼, 짠한 감동이 느껴지더라구요.
한편으론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처럼 스턴트맨에 대한 존경의 뜻을 넘어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는
타셈 싱 만의 방식이라고 느껴져서 감동스럽기도 했구요. 앞선 장면들은 편하게 즐기다가 막판에 이렇게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갑자기 등장하다보니, 갑자기 울컥하는 바람에 적응이 안되기도 했었네요 ^^;




분명 주목받고 화제가 되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로 등장하는 '오디어스'와 영웅들의 이야기였지만,
감독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다 못해 분출(?)해버린 작품을 만난터라 무척이나 반갑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날카로운 잣대를 가지고 본 다면 헛점 투성이인 영화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영화도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1. 영화 초반에 장면이 그냥 인상적인 영상미로만 의미있는 장면인줄 알았는데, 후반 부에 보니 이 인트로 장면이
    일종의 복선이었더군요.

2. 아역을 맡은 카틴카 언타루는 너무도 귀엽습니다. 요즘은 확실히 아역연기자가 대세군요!

3. 구글리, 구글리, 구글리~~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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