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2014)

시간과 경계가 머물러 있는 곳



처음 '경주'의 예고편을 보았을 땐 누군가가 박해일, 신민아라는 배우를 데리고 풋풋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했었다. 그런데 그 감독이 다름 아닌 장률이라는 것을 알고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급격하게 커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장률이 누구던가. 최근 작 '풍경'을 비롯해 '두만강' '이리' '중경' '경계' 등 재중동포라는 개인의 특별한 환경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며 '우리'에게 계속 생각해 볼만 한 것들을 던지는 시네아스트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장률의 영화에 박해일과 신민아가 출연을 하는 것도 놀라운데, 무언가 로맨스 적인 느낌이 풍겨나오는 영화라는 점에 기대, 아니 궁금증이 더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장률은 이 영화 '경주'를 마치 홍상수 영화처럼 끌고 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자신이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은연 중에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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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재 중국에 살지만 선배의 죽음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된 최현(박해일)은, 7년 전 선배와 함께 갔었던 경주를 다시 가보기로 한다. 그렇게 경주에서 최현이 겪는 하룻 밤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다. 장률은 전작들에서도 지역, 도시를 주인공으로 다룬 적이 많았다. 그가 묘사하는 도시는 그냥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하나의 인격체 혹은 정서로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한 명 한 명의 인격체가 만들어 낸 집단 정서 혹은 그 영혼이 담겨 있는 공간이자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새로운 도시는 바로 '경주'다. 경주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하나씩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모두가 아는 도시인 동시에 사실은 모두가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운데 '죽음'이라는 정서가 어쩌면 드리워진, 특별한 정서가 흐르는 도시이기도 하다. 장률은 바로 그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주목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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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작 하루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천천히 흐른다. 마치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는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커다란 하루의 흐름에, 더 나아가 7년의 시간을 헤아리듯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간다. '경주'는 형식상 홍상수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비슷한듯 하면서 조금은 다르다. 홍상수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감정의 서사가 더 중요한 반면, 장률의 '경주'는 주인공들의 감정 선보다는 오히려 이 공간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경주라는 유수한 역사와 시간이 흐르고 있는 도시 속에 하나의 요소로 존재하는 듯 하다. 그와 동시에 이 영화는 구체적인 경주에 관한 영화이자 단순히 경주라는 도시를 빌린 영화이기도 하다. 장률은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주라는 도시를 흥미롭게 여겨 자신이 흥미롭게 생각했던 경주의 생경함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으며, 또한 경주라는 이 도시에 빗대어 자신이 지속해서 주제로 삼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또 다른 방식으로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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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그저 신비롭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겨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면 죽음이라는 것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인해 오게 되었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오게 되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 때문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가 죽음으로 잠들어 있는 도시. 장률이 바라 본 경주는 이렇게 죽음이라는 테마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래도 묘하게 경주를 다시금 가고 싶게 끔 만들었다. 어쩌면 가슴 한 켠에 그냥 이렇게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일 것이다. '경주'는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백현진의 '사랑'처럼, 가끔 눈감고 생각해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1. 장률 감독이 박해일, 신민아를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역시 장률 영화네요. 좋았어요.


2. 백현진씨와 류승완 감독님의 연기는 단연 이 작품의 활력소더군요. 특히 개인적 친분이 있는 류감독님의 메소드 연기를 보고서는 극에 집중이 안될 정도였어요 ㅎ 감독님 종종 연기도 보여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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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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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

모든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설화



지브리의 신작이자 다카하다 이사오의 신작이라는 이유 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 (かぐや姫の物語, 2013)'를 보았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포스터를 만났을 때는 손 안에 담긴 작은 공주의 모습에 '아, 저런 작은 크기의 공주가 겪는 이야기구나'라고 마냥 생각했었는데, 이야기의 전개는 전혀 달랐다. 전혀 다르긴 했지만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인 ‘다케토리 이야기 (竹取物語)'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다케토리 이야기라는 설화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지만, 어느 나라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설화 들이 그러하듯이 다케토리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구조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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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에서 가구야를 데리러 온 달의 사자가 “가구야공주님은 죄를 저질러서 이 땅에 내려와, 너희처럼 천한 자들 집에 잠시 계신 것이다. 그 죄를 갚는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렇게 모시러 왔다”라는 부분에 대해 감독은 가구야가 달에서 저지른 죄는 어떤 죄며, 달과의 약속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야기를 출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라는 내용을 보았는데, 이미 이 설화에 너무도 익숙한 일본인들에게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이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설화의 내용이라는 것이 혹은 교훈이라는 것이 오늘 날에 와서 보면 너무 진부하고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그 새삼스러운 것들의 감정이 모두 솜털이 하나 하나 서 듯 살아나 가슴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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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배경을 떠나서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는데, 일단 가장 첫 번째로는 공주의 어린 시절을 보낸 대나무 숲과 그 곳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극장에도 부모들과 온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그 아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나 같은 어른에겐 그저 잠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모습. 풀과 들에서 뛰 놀고, 특별한 무엇이 없어도 그저 자연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던 그 때가 요즘 아이들에겐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영화 속에서도 공주의 어린 시절은 훗날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카하다 이사오는 이 어린 시절을 더 담백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은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더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들이었다. 한 편으론 다시 그런 시절을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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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이 작품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부모의 관련된 정서다.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설화에 근거해 판타지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 명백한 부모님에 관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 부모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아주 조용하게, 대놓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워 아주 조용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자, 어쩌면 이제는 스스로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된 그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 하겠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바로 그런 시점에서 작용한다. 공주와 부모와의 거리도 시종일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는 부모의 행동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 스스로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감정선은 조용히 터져 나온다. 내내 돌아가고 싶었으나 결국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땐 남아있는 것이 훨씬 행복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그 회환과 후회의 감정, 미안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주 조용하게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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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굳이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영화 속 이별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막상 이별을 하게 될 땐 그리 슬플 수가 없었다. 뭐랄까 이 작품이 이 회환과 슬픔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은 담백하면서도 몹시 간절하달까. 과장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을 최대한 그대로 담으려 영화가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다카하다 이사오가 선택한 수묵화스럽고 스케치만 한 듯한 느낌의 담백한 작화는, 처음에는 빈 듯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그 빈 공간에 감정이 스며들면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느낌을 주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쩌면 요즘 같이 디테일로 꽉꽉 채워진 애니메이션 들에 비해 여백이 있는 이 작화는, 영화가 말하려는 정서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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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영화보며 잘 울컥하는 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옆에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아이가 우는 탓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는 단순히 영화 속 이별이 슬퍼서 울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우는 아이와 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이 영화 속 정서와 겹쳐져 더 눈물이 나버렸다. 아직 아이도 없고 결혼도 하기 전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나중에 딸 아이를 낳게 되면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어떻게 참으며 볼 수 있을까.


참 좋은 작품을 보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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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IMAX 3D, 2014)

켠 김에 왕까지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 주연의 또 다른 SF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했던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아주 구체적으로 게임을 영화화 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FPS게임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영화화 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흔히 게임을 영화화 했다고 하면 게임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나 그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화 한 경우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1인칭 슈팅 게임인 FPS 게임을 유저가 실제로 플레이하는 과정 그 자체를 영화로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 여행의 개념이 아닌 리스폰, 혹은 리플레이의 개념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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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빌 케이지 (톰 크루즈)는 외계인과의 전투 중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갖게 되어 매일 같은 하루를 살게 된다. 이런 비슷한 설정의 영화로는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 작품은 정확히 타임 루프라는 설정을 가져온 작품인 반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타임 루프라기 보다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즉,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주인공이 어떻게 다르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됨으로 인해 오늘은 가지 못했던 그 다음을 조금씩 계속 전진해 간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정확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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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게임을, 특히 FPS 싱글 모드를 한 번이라도 플레이 해 본 이들이라면 영화 속 케이지의 이야기가 너무 쉽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유저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게임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될 때, 노멀 난이도가 아닌 극한의 난이도로 싱글 모드를 다시 플레이 해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정말 수십번을 반복하고 여러 날을 같은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되는 일이 많다. 사실 게임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보여지는 현실보다 더 어려운 경우인데, 근래의 FPS 게임들은 영화의 경우와는 달리 반복할 때마다 정확히 100% 그대로의 상황이 구현되지는 않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플레이를 해야 만이 여러가지 경우에 미리 대처할 수 있는 편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공감하게 되었던 순간은 케이지가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게임으로 따지자면 이른바 패드를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이 떠올라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번을 반복한 탓에 더 이상은 시도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되던 순간, 우연한 실수 혹은 시도가 드디어 다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순간의 쾌감도 영화의 전개에서 그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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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이 반복되는 게임 설정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몇 가지 제한된 부분들도 있었는데, 지구를 지배하려는 외계인들의 설정이나 이에 대응하는 최첨단 수트를 기반으로 한 병기들의 활용 등도 딱 필요한 만큼만 노출될 뿐 추가 설명이나 활약상은 제한적인 편이라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아마도 이 내용이 실제 게임이었다면 좀 더 자세한 배경이나 활용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영화 속 주인공인 케이지 입장에서는 리스폰 될 때마다 세이브 된 상태에서 다시 시작되는 형태이긴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플레이를 시작해 최종 보스 전까지 한 숨에 달려야 하는, 즉 켠 김에 왕까지 깨버리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혼자서 고약한 생각을 했다. 맨 마지막 장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하루에 케이지가 '아 몰라, 이제 안해안해'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허무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아니면 '아놔, 저장 안했네'하며 황당하게 끝나는 그런 엔딩. 그랬다면 정말 극장에서 환불 소동 벌어졌으려나. 고약한 상상이네.



1. 게임의 세계관과 외계인 등 설정을 보니 자연스럽게 몇 년 전 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 '기어즈 오브 워'가 떠오르더군요. 여러가지로 겹쳐요.


2. 톰 크루즈 주연 영화를 소개할 때 마다 하는 얘기지만, 이 영화 역시 관객을 이끄는 요소 중 절반 이상은 톰 크루즈라는 배우의 힘이죠. 톰 아저씨가 하면 모든지 그럴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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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간다 (A Hard Day, 2014)

충실해서 군더더기 없는 장르 영화



사실 최근 한국 영화들은 제목과 배우, 포스터만 보면 그리 변별력을 갖기 힘든 작품들이 많은 편이다. 액션이나, 느와르, 스릴러 등의 장르를 내세운 영화일 수록 특히 그런 경향이 심했는데, 배우만 바뀌었을 뿐 다들 영화 속 이야기라는 걸 감안해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특히 많았다. 이선균과 조진웅 주연의 영화 '끝까지간다'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다. 두 배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냥 포스터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앞서 이야기한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111분 간의 러닝 타임 동안 단 1분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참 재미있는 장르 영화였다. 무엇보다 장르 영화라는 것에 충실했고,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영화라 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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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의 '끝까지간다'는 전형적인 장르 영화다.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의 클리셰들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르 영화를 많이 접한 이들이라면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정도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이야기에서 충격적인 죽음이나 반전이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예상이 가능했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 반전이나 충격이 핵심인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고, 전반적인 리듬과 속도가 매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주인공이 짧은 시간 동안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악제들을 겹겹히 겪게 되면서 벌어지는 곤란함과 피로함, 여기에 추격과 추리가 더해져 일정하게 빠른 속도로 끝으로 달려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간다'는 군더더기를 최소화 하는 데 집중한 듯 보인다. 가끔 이런 장르를 선택한 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에서)이 실수하는 것이, 영화 스스로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보이는 듯한 너무 거대한 담론을 끌어오려 한다던지, 너무 반전과 충격에 집중한 나머지 그 과정이 결국 재미를 잃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간다'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딱 주인공의 겪는 그 사건에만 집중한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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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도 서브 텍스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서브 텍스트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 쯤, 영화는 다시금 주인공의 이야기로 돌아와 집중하는 것을 택했다. 또 하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어쩌면 영화적일 수 밖에 없는 설정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상당히 한정적인 현실 사건으로 범위를 좁게 가져 감으로 인해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어지는 일들도 '야,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잘 연출되어 있고, 조진중이 연기한 '박창민'이라는 캐릭터 역시 활약상만 놓고 보면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라 할 수 있음에도, 영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어 관객들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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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포와 긴장감이 지속되는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은 것도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의외로 전혀 다른 포인트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기도 했지만, 어쨋든 전반적으로 주인공의 시점에 100% 몰입하게 만든 동시에 중간 중간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 유머를 녹여낸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사회 및 공권력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는 분명 담고 있으나, 딱 그 정도로만 멈춘 것도 좋았다. 만약 여기서 더 나아갔더라면 전체적인 긴장감의 리듬이 속도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역효과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처럼, 에필로그처럼 스쳐가도록 비판의 메시지를 표현한 것은 오히려 이렇게 한 번 더 회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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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 열혈 영화 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 하나의 영화를 추천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끝까지간다'를 추천할 것 같다. 누구든 영화가 상영된 111분 동안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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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피스 (Short Peace, 2013)

전통과 미래가 만난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와 '스팀보이'를 연출한 오오토모 카츠히로를 중심으로, 모리모토 코지, 모리타 슈헤이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단편 애니메이션 '쇼트피스 (Short Peace, 2013)'는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4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각 감독 마다의 색깔과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추세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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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십구 


폭풍우가 치던 밤, 한 나그네가 비를 비해 밤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작고 오래된 사당에서 벌어지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쇼트피스' 전체의 짧은 오프닝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시대극과 SF의 묘한 결합을 한 번 더 발전시키고 있는 작품이었다. 캐릭터는 물론 배경과 색까지 온통 일본 전통의 색과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여기에 SF적인 상상력을 더해 마치 '애니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작화의 경우 손으로 그린 느낌이라기 보다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아니 게임 속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단편이라는 구성을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인 동시에, 화려한 색과 단순한 아이디어가 빛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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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요진


'쇼트피스'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마지막 작품인 '무기여 잘있거라'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일본적이고 전통의 느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작품 '화요진'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여기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면의 구성 자체가 마치 일본의 오래된 전통 그림을 보는 듯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쇼트의 전환이나 카메라의 이동 역시 이 구도를 해치치 않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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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보


세 번째 작품인 '감보'는 아주 전통적인 색체와 약간의 SF적인 요소가 결합된 묘한 작품이었다. 전통 설화에나 나올 법한 괴물의 존재와 백곰으로 표현되는 샤머니즘 적인 요소, 그리고 이것들이 SF적으로 결합된 설정까지. '쇼트피스'에 수록된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조금은 잔인한 표현을 담고 있다. '감보'도 그렇지만 첫 번째 '구십구'를 제외하면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시작과 끝이 확실히 진행된다기 보다는, 마치 장편의 한 부분을 잘라 꺼내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단편을 보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 (특히 이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이 작품 '감보'와 다음 작품 '무기여 잘있거라'의 경우 이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장편으로도 꼭 한 번 보고 싶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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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기여 잘있거라


세 편의 시대극이 끝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 시작된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부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기여 잘있거라'는 밀리터리 적인 요소로 일단 흥미를 끈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밀도가 높은 메카닉과 설정들이 흥미로운데,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차형 무인 병기와 벌이는 전투 장면은 SF영화의 한 시퀀스를 보는 듯 하다. 무기여 잘있거라' 역시 시대와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앞선 세 편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일본의 현실 혹은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배경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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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월드를 꿈꾸는가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시리즈 외에도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 그리고 '작전명 발키리 (Valkyrie, 2008)' 등을 연출했지만, 그래도 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엑스맨' 시리즈였다. 그렇기 때문에 2006년 그가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슈퍼맨의 리부트를 맡게 되었을 때 많은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했었는데, 그 아쉬움은 실제로 브렛 래트너가 연출한 '엑스맨 3 : 최후의 전쟁 (X-Men : The Last Stand, 2006)'이 평범한 액션 영화로 남게 되면서 더 큰 아쉬움이 되기도 했었다. 그랬던 '엑스맨' 시리즈는 '킥 애스'를 연출했던 메튜 본을 통해 2011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X-Men: First Class, 2011)'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는데, 프로페서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이 작품은, 당시 붐처럼 일던 프리퀄 열풍에 단순히 몸을 실은 작품이 아니라 '엑스맨'이라는 시리즈 전체를 다시금 조명하기에 충분한 진정성을 갖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그렇게 다시 브라이언 싱어의 손을 떠난 듯 했던 '엑스맨' 시리즈가 다시금 그의 손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영화가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꿈꾸던 엑스맨 월드의 영화화 비전을, 메튜 본이 이뤄 낸 성과 위에 고스란히 펼쳐 놓으며 한 발 더 확장시킨 엑스맨 월드를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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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이야기의 구성이 반복되는 가운데 캐릭터만 하나 씩 추가되는 양상으로 조금씩 흐를 수 있었던 '엑스맨' 시리즈를 새롭게 구원한 것은, 어찌되었든 메튜 본이 선택한 프리퀄의 방식이었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매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관객들이 서서히 뮤턴트 월드에 지쳐갈 때, 이야기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현재 적이지만 묘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시작을 다룬 선택은 여러 모로 효과적이었다. 단순히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이 시리즈의 가장 핵심 테마라 할 수 있는, 존재의 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마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넓게 봐서 이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메튜 본의 '퍼스트 클래스'에 이은 자연스러운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즉, 감독은 바뀌었지만 가장 최근 작인 '퍼스트 클래스'를 인상적으로 본 관객들이 위화감이 크지 않도록 큰 맥락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이 만들었던 엑스맨 1,2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물론 3편에 등장했던 캐릭터들까지 주조연, 단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시키며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를 아우르는 이른바 '월드'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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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으로는 그러하지만 이런 방식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중 하나는 일반 관객들에게 명확한 구심점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편인 '퍼스트 클래스'는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서사구조와 공감대 형성의 기회가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물론 브라이언 싱어 '엑스맨'의 중심이었던 울버린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화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데, 여러 명의 중심 캐릭터가 겹쳐지다보니 누군 가에게는 여럿이 등장하는 캐릭터 구조에 적응하지 못한 채 누구의 이야기에 더 귀기울여야 하나 갈팡질팡 하다가 끝나버리는 수도 있을 듯 하다. 즉, 다시 말해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형식상 미래와 과거를 다루는 것은 물론,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턱들과의 상관 관계도 은연 중에 내제되어 있다보니 이번 작품 만으로 공감대를 이루기에는 부족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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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부분은 그 동안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물론 브랫 레트너와 매튜 본의 '엑스맨' 까지 모두 즐겼던 팬들에게는, 뭐라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감정선이 포함된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찰스와 에릭의 드라마는 이제 크게 강조하지 않아도 극적인 드라마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중심에 놓인 레이븐의 스토리 역시 제니퍼 로렌스의 표정 연기 하나 만으로도 그 간의 세월을 짐작하게 만드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시리즈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맨 중에 맨 휴 잭맨이 연기한 울버린 역시, 초기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했던 '엑스맨' 시리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로서 전체적으로 세계관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다소 산만할 수도 있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며 이 시리즈 전체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퍼스트 클래스'가 독립적으로 완벽한 작품이었다면,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시리즈 전체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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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과거를 직접적으로 다뤘던 '퍼스트 클래스' 보다도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더욱 이전 '엑스맨 1,2'편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또한 제임스 맥어보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찰스와 에릭의 캐릭터도 또 한 번, 빠르게 다시 보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만 더 나아가도 지루해지거나 과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아슬한 지점의 줄타기를 멋지게 해 낸 브라이언 싱어의 다음 엑스맨 영화가 기다려진다.



1. 센티넬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미래의 상황을 초반에 좀 더 묘사해서 더 어두운 분위기를 냈더라면, 이후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매력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2. 안나 파킨은 정말 잠깐 나오는데 크레딧에서는 상당히 빠르게 나오더군요.


3. 어쨋든 전 이 라인업이 마음에 들어요. 계속 이들이 만들어내는 엑스맨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4. 진 그레이가 등장하는 장면은 정말 엑스맨 1,2를 꺼내 보고 싶도록 만드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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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에 있습니다.




외장형 블루레이 ODD로 맥에서도 블루레이 감상을!

삼성 SE-506CB



DP를 통해 블루레이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요 몇 년 간 나와 블루레이는 땔래야 땔 수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로 겹치고, 좋아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가운데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부에서도 편하게 블루레이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사실 상당히 개인적인 이유로 그 필요성이 절실하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블루레이와 관련된 원고를 기고할 일이 많다보니 모든 원고가 그렇듯 마감에 쫓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요상하게도 글이 잘 써지는 카페에서는 블루레이 리뷰를 작성하기가 쉽지 않아 외부에서도 휴대용 ODD를 통해 블루레이를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본편에 대한 감상은 당연히 안방에서 제대로 갖춘 시스템을 통해 봐야 하지만 방대한 양의 부가영상 같은 경우는 간혹 외부에서도 노트북을 통해 감상하면서 원고를 정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장형 블루레이 드라이브는 물론 재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을 알아보기도 했었는데, 비용 등의 문제로 그간 결정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좋은 기회를 통해 삼성에서 출시된 블루레이 외장형 ODD SE-506CB를 사용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간단하게 제품을 살펴보자.






손바닥 만한 크기의 박스에 담겨 있는데, 일반 외장 하드보다는 디스크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면적은 넓지만 얇고 심플한 ODD 형태라 박스 역시 심플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물 역시 간단하다. 블루레이 ODD가 안전 스티로폼에 쌓여 담겨 있고, 간단한 설명서 1부와 관련 소프트웨어가 수록된 디스크 1장, 그리고 USB 케이블 하나가 전부다. 구성물이 너무 단촐하여 부족하게 느껴진다기 보다는, 누구나 USB만 연결하면 쉽게 블루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딱 필요한 최적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성 SE-506CB 제품은 블랙과 화이트 두 가지 컬러를 제공하는데 나는 화이트를 선택했다. 심플 그 자체.






전체적인 크기나 두께 측면에서도 불편함은 없는 편이다. 이 정도 크기면 노트북과 함께 가방에 넣어서 휴대를 하기에도 큰 무리는 없는 크기.





연결은 더 간단하다. 그냥 동봉된 USB 케이블을 통해 노트북에 연결만 하면 끝. 복잡하게 드라이버를 설치하거나 하는 과정 없이도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문제없이 재생이 가능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블루레이를 테스트 해 볼 시간. 저렇게 드라이브 앞의 작은 버튼을 눌러 트레이를 연 뒤 블루레이 디스크를 넣기만 하면 끝.





보시다시피 내 노트북은 맥북 에어인데, 맥용 블루레이 외장형 드라이브나 재생 소프트웨어 들이 아직 활성화 되있지는 않은 편인데, 그래서 혹시나 삼성 SE-506CB 제품이 호환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잠깐 걱정했었지만, 이 제품은 윈도우는 물론 맥OS도 호환된다. 개인적으로는 큰 무리 없이 맥에서 블루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드는 포인트였다.





사실 동봉된 소프트웨어 디스크에는 재생용 소프트웨어인 파워DVD10을 비롯해 몇 가지 프로그램 등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모두 윈도우용 소프트라 개인적으로는 맥에서 테스트를 해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간단히 트라이얼 버전으로 블루레이 재생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찾아서 테스트 해보았는데, 이번 테스트에 활용한 소프트웨어는 Macgo Mac Blu-ray Player로 홈페이지 (http://www.macblurayplayer.com/)를 통해 트라이얼 버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쉽게 다운 받을 수 있었다.


사실 현재 맥에서 블루레이를 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은 ODD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터랙티브 메뉴를 제공하지 않고 플레이어 자체에서 제공하는 심플한 메뉴만 제공하고 있어, 재생, 챕터 선택, 오디오, 자막, 부가영상 이렇게 심플하게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참고로 챕터나 부가영상은 시간 대로 표기된다.





소프트웨어 때문에 일반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감상할 때처럼 파워풀한 기능들을 모두 활용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재생 기능은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초기에 외장형 블루레이 ODD들은 영상이 끊기거나 속도가 매우 느려서 본편을 즐기기에도 사양에 따라 불편한 경우가 많았는데, 삼성 SE-506CB 제품은 재생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끊기거나 하는 문제가 없어 본편 감상용으로는 외부에서도 충분히 블루레이로 영화를 감상해볼 만 했다.





외부에서도 그렇고 가끔은 가정에서도 풀 시스템을 가동하여 블루레이를 보기 어려운 경우나 가볍게 본편만 잠시 즐기려는 경우, 위와 같은 구성으로 (맥북, 블루레이 ODD, 헤드폰) 간편하게 블루레이를 감상할 수 있을 듯 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도 블루레이를 보고 싶은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 SE-506CB의 활용도는 제법 적지 않을 것 같다.




맥북 에어에 삼성 블루레이 ODD 제품이 함께 있는 모습이 살짝 아스트랄 하기도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내가 딱 필요했던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구성이라 만족스러웠다. 나처럼 무언가를 쓰기 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가정에 아직 제대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블루레이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분들이라면, (맥북을 갖고 있다면) 여기에 블루레이 ODD 제품을 하나 구매하여 간단하게 블루레이를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듯 하다.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스펙 및 기능 들은 아래의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제품 페이지를 참고하면 좋을 듯!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고질라 (Godzilla, 2014)

또 다른 히어로 영화의 시작



롤랜드 에머리히의 1998년작 '고질라'는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이었다. 일본 원작 '고질라'에 대한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전해들은 바만 해도 원작과의 먼 거리는 알 수 있었고, 그렇다고 이런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이나 재미 측면 역시 특별히 매력적이지는 않은 평작이었다. 특히 이번 가렛 에드워즈의 2014년 '고질라'를 보고 나면 롤랜드 에머리히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혹은 오판 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일본 원작 고질라의 팬들이라면 더더욱 그랬으리라.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입장에서 2014년 버전 '고질라'에게 바랬던 것은 그다지 없었다. 오로지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볼 때와 비슷한 기대 정도랄까. 대화면의 극장용 영화로서 평소에는 체감하기 힘든 스케일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왕십리 아이맥스 3D 포맷을 선택하기도 했고. 결과는 만족이었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원작 고질라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번 '고질라'는 신선했다. 일단 처음에 등장한 이름 있는 배우들이 너무 쉽게 사그라드는 것에서 그랬고, 전개 과정도 고질라가 전면에 나오기 전에 무토라는 또 다른 괴수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도 흥미로웠다. 즉, 일반 관객 입장에서 '고질라'라고 했을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인들이 어떻게 고질라를 무찌르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 영화는 그 손가락을 무토로 돌리고 있었고 고질라의 존재를 애매하게 등장시키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인간들 중심의 드라마는 약해질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드라마는 다른 재난, 괴수 영화에 비해 약한 편인데 그래서 아쉬웠다는 것이 아니라 신선했고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박사나 군인 등 주요 인물들의 드라마를 더 걷어 내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그렇다면 흥행은 더 어려웠겠지만) 생각도 했다. 일단 이렇게 조금은 일반 재난 영화들과 다른 구성이 나쁘지 않았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에 (이야기의 무게가 가벼웠음에도) 빠져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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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마치 재난 영화로서 고질라를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질라가 주연인 히어로 영화로서 성립하는 듯 했다. 보통의 히어로물이 그렇듯 주인공이 자각하고 영웅이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고질라' 역시 고질라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고질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의 행보(?)는 더 히어로스럽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반농담을 섞어서 눈물이 찡할 정도의 감동까지 느끼게 되는데, 정말 완벽한 '다크나이트' 급의 뒷 모습을 고질라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고질라와 무토의 대결 장면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고질라가 화염을 쏟아 부을 땐 이 영화를 왜 보게 되었는 지에 대한 확실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흡사 이 영화가 고질라를 다루는 방식은 '킹콩'이 킹콩을 다루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적어도 속편까지는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영웅 고질라가 또 어떤 힘든 상황 속에서 균형을 가져오게 될지 궁금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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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고질라를 보니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질라'를 본 일본 원작 팬들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지 짐작이 뒤늦게 되더군요.

2. 마지막에 TV뉴스를 통해 고질라의 활약이 나오는 장면은 오히려 대놓고 유치해서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요 근래는 제대로 된 블루레이 지름이 참 뜸했었는데, 지난 주에 오랜만에 프랑스 아마존에서 주문한 '설국열차 블루레이 한정판'이 다행히도 무사히 도착했다. 이미 지른 분들의 소감을 빌리자면 프랑스 아마존의 배송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아 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아무런 파손 없이 양품을 받을 수 있었다. 설국열차 블루레이는 국내에도 정식으로 발매될 예정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프랑스 버전이 소장가치가 높아 보이기에 주저 없이 지름.



이번 한정판엔 총 두 가지의 아트북이 수록되었는데 첫 번째는 영화의 인물 들과 스텝들 소개 등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 아트북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사진들의 퀄리티도 좋고, 분량도 적지 않아 만족감이 높음.



두 번째 아트북은 Jean-Marc Rochette의 컨셉 일러스트 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역시 퀄리티 높은 작품들이라 충분한 소장가치를 느낄 수 있음.



그리고 스틸북. 스틸북 디자인이 정말 잘 빠졌다. 스틸북 만으로도 사고 싶은 욕구가 강했었는데 막상 손에 쥐고 나니 더 만족.



타이틀은 코드B에 자막도 프랑스어 뿐이지만 설국열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소장용으로 나쁘지 않을듯.

참고로 국내에서는 아트서비스를 통해 정식 출시될 예정인데, 국내에도 역시 아트북 등을 포함한 한정판 출시 계획이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Le passé, The Past, 2013)

끝나지 않은 과거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연출했던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근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를 뒤 늦게 보았다. 참고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그 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영화 중 하나였으며,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겹쳐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걸작이었다. 그의 신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전작과 유사하게 많지 않은 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란을 둘러 싼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좀 더 극 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자체에만 의미를 둔 작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작의 영향 때문인지 이 이야기 속에서도 무언가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저절로 하게 되어, 여러가지로 복잡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 Memento Films Production.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은 'The Past', 즉 지난 일이다. 관객이 보게 되는 영화 속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일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세 남녀 주인공은 이미 지난 일 혹은 수 년 전에 벌어진 일들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또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아마드가 부인과 이혼 서류를 마무리 짓기 위해 돌아와 만나게 되는 생경한 분위기와 가족들과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하다가, 중반 부터는 마리와 사미르의 관계, 더 나아가 사미르와 그의 아내가 겪게 된 사건으로 조금씩 파고 든다. 전작인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그러했지만, 이 작품 역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 작품 더더욱 진실로의 행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이러한 영화의 시선은 엔딩에 가서 더 확실해 진다.

 

 

 ⓒ Memento Films Production. All rights reserved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과거에 일어난 일로 말미암은 것들이 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에게 어떤 고통과 상처 그리고 갈등을 남기는지를 안쓰럽지만 철저히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현실과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황량한 상처만이 느껴지는데, 영화가 끝나게 되면 그 매마르고 남겨진 감정이 깊은 여운을 준다. 하나의 과거를 두고 진실을 통해 봉합하려는 시도가 교차하지만, 결국 국내 개봉 제목처럼 결론적으로는 아무도 머물지 않은, 끝내 누구도 머물지 못한 채 남겨진 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으로 그래서인가,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1. 전작에 비해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와 스토리텔링의 재미는 만족.

 

2. 본문에도 있지만 감독의 전작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 은유를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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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Memento Films Production 에 있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The Amazing Spiders-Man 2, 2014)

철저한 오락 영화로서의 발전



마크 웹과 앤드류 가필드의 리부트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확실히 기존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의 그것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히어로 물의 플롯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한 편,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좀 더 오락적인 측면이 강화 된 대중 친화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얘긴 즉슨, 각 인물들의 겪는 고뇌에 대해 깊은 탐구를 긴 러닝 타임을 할애하여 설명하기 보다는 액션과 (특히) 로맨스를 부각시켜 대중들로 하여금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이 이유 때문에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고 샘 레이미 삼부작과의 비교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 편에 비해 속편은 확실히 나았다. 실제로 나아지기도 했고, 아마도 마크 웹의 히어로 영화 작법에 좀 더 익숙해져서이기도 할 것이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보면 마크 웹은 마치 스파이디 슈트를 입은 청년이 주인공인 또 다른 '500일의 썸머'를 찍은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가 꼭 '500일의 썸머'를 연출한 감독이어서가 아니라, 이 작품 속 피터와 그웬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500일의 썸머'의 톰과 썸머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로맨스는 실제 연인이기도 한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을 통해 좀 더 달달하고 극적인 요소를 만들어 냈다. 이 영화를 셋으로 나누어 보자면 하나는 피터와 그웬의 로맨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파이더맨과 일렉트로의 대립관계일 것이며 마지막은 피터와 해리의 애증의 관계일 것이다. 이 셋의 비중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좀 애매해진 부분도 없지 않다. 만족하는 입장에서는 세 가지 모두의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셋 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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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처음 러닝 타임을 확인했을 때 142분이라는 시간에 놀라기도 했었는데, 의외로 영화는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 가지의 이야기를 각각 동등하게 늘어 놓느라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2시간 20분이 가는 걸 거의 못 느꼈을 정도로 연출은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더 좋아하는 취향은 이 세 가지를 두 가지로 압축 시켜서 좀 더 각각의 내실을 더 하는 편이긴 한데, 그래서인가 외톨이였던 맥스의 슬픔과 분노도 공감하기엔 조금 부족했고, 또 다른 스토리를 갖고 있는 해리의 간절함도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해리의 이야기는 데인 드한이라는 배우로 인해 200%의 공감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솔직히 마크 웹의 전작은 만족보다는 실망에 더 가까웠었는데,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만족에 더 가까웠다.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 타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하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유머와 가벼움에 어느 정도 적응 되어 불편함이 없었으며, 새로운 해리를 연기한 데인 드한 덕에 그리 많지 않은 비중이었지만 후반부 해리라는 캐릭터를 계속 주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의 테마였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더 마음에 들고 취향이기는 하지만, 좀 더 소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도 그럭저럭 흥미롭고 갈 수록 기대되는 부분이 있었다. 최근 영화화 된 히어로들 가운데 청춘물로 그려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마 스파이더맨 뿐 일 것이다. 마크 웹은 그 지점을 주목했고,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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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인 드한에게 빠져버린지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가 만든 해리 오스본은 또 다른 슬픔이 느껴지더군요. 분명 통쾌해야 하는 지점에서도 그의 아픔이 느껴져 (어쩌면 피터 파커보다 더 공감되서) 영화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밖에는 없었을 정도. 데인 드한은 확실히 현재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배우입니다.


2.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찡했어요. 아마도 3편에 가면 이 테마를 좀 더 메인으로 가져오지 않을까 싶네요.


3. 쿠키는 없지만 크레딧 중간에 엑스맨 예고편이 등장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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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 스마우그의 폐허 _ 블루레이 리뷰 (The Hobbit: The Desolation of Smaug _ Blu-ray Review)
또 다른 삼 부작의 가운데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두말 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팬이지만, 새로운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호빗 : 뜻밖의 여정' 은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쉬움은 전부 '반지의 제왕' 삼부작 때문이라고 - 그 엄청난 기대감 때문이라고 - 할 수 있겠는데, '호빗'은 원작이 그러한 이유도 있긴 하겠지만, 영화 작법으로 보았을 때도 몹시 '반지의 제왕'과 거울처럼 그대로 겹쳐졌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보다 진일보한 영화를 기다렸던 이로서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는 없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번째 작품인 '스마우그의 폐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삼부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점점 더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반지의 제왕'의 두 번째 작품인 '두 개의 탑'이 그러 했듯이, 이번 작품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물의 구성, 갈등 요소까지 거의 '두 개의 탑'과 유사한 구성으로 진행되고, 두 번째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작품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데에 더 충실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실망스러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 수는 없으나, 분명 전 편보다 재미있었고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도 거의 지루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황당해 한 엔딩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두 개의 탑' 때도 극장 반응은 거의 유사했었다). 아마도 전 편을 통해 익숙해진 드워프들과 새롭게 등장했으나 '반지의 제왕'을 통해 익숙한 캐릭터들의 등장 덕에, 조금은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전작인 '뜻밖의 여정'도 그랬지만 '스마우그의 폐허'는 이보다 더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엘론드나 골룸 등의 캐릭터의 등장으로 그 연장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좀 더 절대 반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반지의 제왕'의 주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사우론의 존재가 점점 드러나면서, 직접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하자면 호빗 3부작, 반지 3부작으로 각각 나누기 보다 거의 중간계 6부작으로 봐도 좋을 만큼, 전반적인 톤이나 캐릭터, 구성, 음악까지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뒤에 한 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긴 한데, 이렇게 생각하면 전작에서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을 대부분 긍정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하다.






'반지의 제왕'과 구성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각 인물들의 성숙 도를 들 수 있겠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캐릭터들은 '호빗'에 비하자면 상당히 안정되고 이미 성숙된 캐릭터들이 많았다. 아라곤과 소린을 비교해도 그렇고, 엘론드와 스란두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물론 이건 성숙도의 차이라기 보다는 성격으로 인한 부분이 크긴 하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레골라스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소린은 아라곤과 겹쳐지지만, 그보다 더 노골적이고 충동적이며 이루고자 하는 바가 처음부터 뚜렷한 편이고, 구성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간달프는 '두 개의 탑'과 마찬가지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역시 홀로 원정대를 떠나 퀘스트를 수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올랜드 블룸이 연기한 레골라스의 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지의 제왕' 속 여유 넘치고 위트까지 있는 레골라스와 '호빗'의 레골라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르다.


훨씬 더 거칠고 날카로우며, 아직 날 것의 느낌이 충만하다. 개인적으로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직 성장 중인 레골라스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극 중 스란두일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에겐 눈 깜빡 할 사이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을 텐데, 그래도 조금이 나마 젊은 레골라스의 거칠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는 이 작품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또한 이번에도 대부분의 명 장면은 레골라스가 다 만들어 낸다. 그가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스마우그의 폐허'를 극장에서 볼 이유는 충분했었다. 그 정도로 이번 작품 역시 멋진 장면은 대부분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기적으로) 독식하고 있다.





그리고 개봉 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던 스마우그의 등장 씬은 후반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액션은 물론 대화(혹은 수다) 시퀀스로서 만족감을 주기도 해,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아마도 본격적인 스마우그의 액션은 3편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딱 그 중간까지만 맛만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게 '스마우그의 폐허'는 피터 잭슨의 또 다른 삼부작의 가운데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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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영상을, 그 어두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충실히 표현해 낸다. 피터 잭슨의 호빗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HFR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참고로 전 작이었던 '뜻 밖의 여정'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땐 정말 너무 영화 같지 않는 화면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두 번째여서 인지 아니면 그 간 좀 더 자연스러운 기술의 발전이 있었던 것인지 '스마우그의 폐허'는 조금은 이질감이 덜한 편이었다. 블루레이의 영상에서도 HFR 특유의 영화 영상 같지 않은 (반대로 얘기하자면 실제 장면 같은) 장면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다른 어떤 작품 보다도 그린 스크린과 CG가 폭 넓게 사용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데, 배우들과 배경의 조화에 있어서 블루레이의 선명한 화질은 조금은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너무 선명한 화질 탓에 조금만 집중해서 보게 되면 배우들과 배경과의 이질감을 느낄 수 있고, 액션 장면에서는 대역인 스턴트 맨의 얼굴을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우그의 폐허'의 전반적인 영상 톤이라면 브라운과 그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간혹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장면도 등장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디테일이 우수하고, 만족스러운 블랙 레벨을 보여준다.


Blu-ray : Audio


DTS-HD MA 7.1 채널의 사운드는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스케일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스마우그의 폐허'는 사운드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퀀스가 여럿 있었는데, 특히 술통 안에 든 채로 강을 흘러 내려가며 벌이는 액션 시퀀스의 경우 다양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었다. 조금 의외였던 건 이 장면에서 사용된 소리들 가운데 상당히 현실적인 폴리 사운드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영상 측면에서도 중간 중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상을 끼워 넣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운드 역시 현실감을 주려고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후반 부의 사운드 포인트라면 역시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시퀀스를 들 수 있을 텐데, 워낙 스케일이 큰 스마우그이기에 (극장에서 그 거대한 규모를 온 몸으로 이미 체험했기에) 블루레이의 사운드 퀄리티가 훌륭함에도 조금은 스케일 측면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확실히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감상할 때 더 확인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았다. 그런 작은 소리들을 만나게 되는 건 분명 블루레이 만의 장점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 영상으로는 본 편이 수록된 디스크에 수록된 'New Zealand: Home of Middle-earth, Part 2'를 먼저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촬영지였던 뉴질랜드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다. 본격적인 부가 영상은 별도의 디스크에 수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후 발매될 확장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라 하겠다. 'Peter jackson invites you to the set'은 총 야 40여분의 영상으로 촬영장의 뒷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총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in the company of the hobbit'에서는 스튜디오는 잠들지 않는다는 말처럼,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에 이르기까지 다음날 정상적인 촬영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수많은 스텝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그렇지만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 삼 부작과 호빗 삼 부작 역시 정말 많은 스텝들이 참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스텝들의 활약상이 부가 영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다 (피터 잭슨 작품 타이틀의 부가 영상은 항상 스텝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새벽 일찍 도착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장을 받는 장면으로 배우들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1차로 보형물 작업이 완료되면 그 다음에야 분장과 헤어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의상까지 갖추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본 캐릭터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워낙 많은 스텝들과 분야들이 존재하다 보니 결정 권한이 있는 피터 잭슨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될 정도인데, 각각의 부서를 돌며 최종 결정을 해주고 의견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피터 잭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후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을 사실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구현하고 작업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편집자가 촬영장에서 편집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 때부터 워낙 오래 함께 해온 스텝들이다 보니 모두의 생일을 촬영장에서 챙겨주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흔히 얘기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 라는 건 바로 이들 스텝들을 두고 하는 얘기라고 보면 되겠다






두 번째 'All in a day's Works'는 자신의 촬영 장면을 기다리다가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잠든 배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촬영 2팀 감독을 맡은 앤디 서키스가 촬영장을 지휘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제법 감독 의자에 앉는 모습이 제법 능숙해 보였다. 또한 피터 잭슨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인 웨타 워크샵의 작업장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중간계 특유의 다양한 아이템들, 무기, 갑옷, 조형물 등이 어떤 작업을 통해 실제 만질 수 있는 소품들로 완성 되는지 과정을 소개해준다.






워낙 고되고 빠듯한, 하지만 많은 익숙한 동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양한 장난과 놀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 '위너의 놀라운 바퀴'라는 이벤트는 매일 촬영이 끝날 때 마다 돌림 판을 돌려 나오는 혜택을 제공하는 일종의 뽑기 이벤트를 제공 하는 것으로 촬영장의 또 다른 활력소가 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배우들을 불편하게 했던 두꺼운 보형물과 헤어, 분장을 떼어낼 때 배우들이 얼마나 시원해 하고 후련해 하는지 이렇게 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I see fire'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고, 마지막인 'Live event : In the Cutting Room'에서는 개봉 전 라이브 이벤트로 진행했던 촬영장 소개 실황이 담겨 있다. 피터 잭슨이 촬영장을 돌며 라이브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장면들이 어떤 부분인지 편한 분위기에서 소개를 하기도 하고, 각 부서를 지나가며 그 부서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 지에 대해 기본적인 소개를 해주기도 하며, 이후에는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팬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우들이 셀프 카메라에 가까운 영상으로 그들의 짧은 코멘트를 들어보는 이벤트도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라이브 Q&A라고 하면 팬들의 질문에 대해 단순히 코멘트로 답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번 이벤트는 질문과 답변은 물론 그 답에 대한 부분을 촬영장의 비하인드 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부가영상으로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라이브 이벤트 영상이었다. 실제로도 37분에 달하는 분량의 영상이기 때문에 상당한 정보 량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Production Videos'에서는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제작 영상 가운데 총 4개의 비디오를 소개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1'에서는 호빗 1편 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스텝들과 배우들이 반가워 하는 모습과 1편 촬영 종료 이후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세트와 장비들을 꺼내 다시 2편 작업에 돌입하는 모습 그리고 드워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코믹한 율동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1편에 참여했던 엑스트라 들을 다시 연락해서 모집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는데 엘프를 연기했던 30명의 엑스트라 연기자 중에 2명 밖에 연락이 안되 어려움을 겪는 섭외 스텝의 모습을 유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Production Videos 12'에서는 후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혹성탈출' 촬영 관계로 자리를 비운 촬영2팀 감독 앤디 서키스를 대신 해 피터 잭슨과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사전 시각화 아티스트를 대신 감독으로 촬영한 부가 장면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배네딕트 컴버배치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Production Videos 13'에서는 스마우그가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 장면을 살짝 엿볼 수 있는데, 개봉 전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영상이었기 때문에 스마우그의 모습에 대한 비밀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이 지금으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Production Videos 14'에서는 하워드 쇼어의 작업실에서 그와 함께 이번 작품의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웰링턴에 위치한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화 음악을 녹음하는 장면도 수록되었는데, 영화 음악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시하는 피터 잭슨의 모습이 이채 로웠다. 또한 하워드 쇼어를 통해 이번 작품에 새롭게 등장한 테마곡들에 대한 짧은 소개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마우그의 폐허' 예고편 3종과 '뜻밖의 여정' 확장판 예고편 그리고 레고 호빗 게임 예고편과 또 다른 게임인 Kingdoms of Middle-earth의 코믹한 예고편이 수록되었다.




[총평] 피터 잭슨의 호빗 삼부작, 그리고 그 가운데에 놓인 '스마우그의 폐허'는 확실히 전작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혹은 좀 더 이 시리즈가 삼부작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전달하고 있어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인드로 감상하게 된 작품이었다.


즉, 평가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삼부작이 마무리 된 시점에서야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마지막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은 아무래도 언젠간 출시될 확장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극장을 나오며 혹은 극장에서 놓쳐 빨리 보고 싶었던 이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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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_ 블루레이 리뷰 (The Wrestler : Blu-ray Review)
한계, 그 자체에 대한 찬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작 '더 레슬러'는 최근 개봉한 그의 신작 '노아'와 전작 '블랙스완'과 함께 아로노프스키의 관심사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갈등 그리고 정신 분열에 가까운 스스로에 대한 존재 가치 (아로노프스키는 단순한 고뇌를 넘어 존립의 문제까지 밀어 붙인다)의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배트맨' 영화를 연출하길 간절히 원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더 레슬러'와 '블랙스완' 그리고 '노아'는 비슷한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나, 각각의 강도와 결론의 정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 작품 '더 레슬러'는 그 중 가장 연민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한 편으론 잔인할 정도로 주인공을 홀로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외롭고 쓸쓸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한계에 부딪힌 한 인간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랜디 더 램(미키 루크)은 젊은 시절 프로레슬러로 큰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던 스타였으나, 20년이 지난 지금은 보 청기를 착용해야만 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일해야만 하는 노년에 가까운 남성일 뿐이다. 그런데 랜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점은 바로 그가 아직도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바로 이 점이 스포츠를 주제로 한 다른 성공 스토리의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실버스타 스텔론의 '록키 발보아'같은 경우 - 참고로 미키 루크에게 캐스팅 제의가 가기 전에 스텔론에게도 제의가 있었으나 바로 '록키 발보아'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도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 작품은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이자 미키 루크 본인의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그가 없는 '더 레슬러'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 전성기를 보냈던 주인공이 세월이 흐른 뒤 다시금 전성기 때처럼 열정을 가지고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으로 감동을 그려내고 있지만, '더 레슬러'의 경우는 전성기를 보낸 주인공이 한참 떠나있던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계속 몸을 사용해야 하는 프로레슬러로서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비록 엄청난 주목을 받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금은 작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오고 있으며 쉬지 않고 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랜디가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은 무엇일까. 다른 성공스토리가 '그래, 내가 전성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할 수 있어!' 라는 식의 도전과 성공의 이야기였다면, '더 레슬러'의 구조는 '아,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의 고민과 고통에서 시작된다. 격한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수많은 약물 등을 동원해서 커리어를 이어오던 랜디가 어느 날 심장에 무리를 주는 쇼크로 쓰러지게 되면서, 랜디는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프로레슬러로 살아오느라 소홀했던 딸 스테파니(에반 레이첼 우드)에게도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기로 하고, 자주 가던 스트립 바의 캐시디(마리사 토메이)에게도 오랫동안 숨겨왔던 '손님'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심장에 이상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좀 더 뻔한 줄거리였다면 전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레슬링을 했었을 테지만, '더 레슬러'의 랜디는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위해 큰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주저 없이 커리어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슬링을 떠나서 그가 바로 피부로 겪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프로레슬링 비즈니스 속에서만 살아온 랜디가 이를 관뒀을 때 겪게 되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하나 뿐인 딸은 자신을 아버지로 대하기는 커녕 남 대하듯 쫓아내는 한편, 빈 트레일러 집에 덩그러니 누워서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며, 레슬링을 하지 않으면 생계에 직접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안 어울리는 앞치마와 위생 모를 머리에 쓰고 동네 마트의 식품 코너에서 샐러드를 팔기도 해야 한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불러온 동네 꼬마와 구형 닌텐도로 자신이 등장하는 프로레슬링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랜디는 자신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레슬링 게임에 신나 하는 것에 비해 아이는 최첨단 FPS 게임(콜 오브 듀티 4)을 이야기하는 것은, 랜디가 현실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그 거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랜디가 이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랜디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치는 딸 스테파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캐시디에게 살짝 고백을 했다가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한 뒤에도 약한 불만의 표현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애초부터 하고 싶지 않았을 식품 코너 일도 긍정적이고 즐겁게 하려는 모습도 다른 인물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안쓰러웠지만).


랜디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의 묘사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랐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뿌리치는 스테파니의 입장은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반응이었는데,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없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병을 얻고 나서야 나타나서 호의를 베푸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캐시디 역시 그간 아무리 자주 오가며 정을 쌓았다 하더라도 막상 고백까지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기에 냉정하게 봤을 때 랜디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그리 가혹하다고만 (자초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영화는 최대한 냉정하게 그래서 동정하지 않으려 하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랜디가 현실에 대처하는 방식은 너무 순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닥쳐올 현실을 모두 다 세상의 방식 그대로 받아들이는 랜디의 모습은 애처로운 동시에 너무도 현실적(영화적과 반대의 의미)이다. 사실 이런 현실이 닥쳤을 때 고통을 조금 호소하다가 바로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를 극복하려는 용기를 동시에 뿜어내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너무도 영화적이었던 것에 반해, 랜디의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의 진심을 얘기하며 그 거친 피부 아래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눈물 이상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했다. 랜디가 현실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유일한 부분은 일반 세상에서 통용되는 '로빈 람진스키'라는 본명이 아닌 '랜디'라는 레슬러로서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이 전부다 (이는 캐시디 역시 '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언급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랜디가 처하는 현실의 극적인 대비 측면을 위해 영화는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쇼(Show)'로만 알고 있는 프로 레슬링이 얼마나 많은 '현실' 속의 사람들의 많은 준비와 노력으로 성립되는지를 구 차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보통 같으면 프로 레슬링의 링 뒷면에서는 서로 저렇게 미리 합을 짜고 스토리를 준비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정도였다면 초반 한 두 번 연관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을 텐데, '더 레슬러'에서는 이 부분은 랜디가 링에 오를 때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미리 칼날을 숨겨 이마에 커트를 내고 사용할 무기들에 관해 미리 준비를 하는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이렇게 치열한 경기를 치르고 링을 내려와 쇼의 뒷면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레슬러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라 하겠다.


보통 일반적 영화였다면 퇴물쯤 되는 랜디를 젊은 레슬러들이 그야말로 퇴물 취급하며 왕따 비슷하게 몰아갔을 테지만, 이것은 너무 극적인 요소만을 강조한 전개일 뿐, 현실성과 메시지를 중시하는 '더 레슬러'에서 젊은 레슬러들에게 랜디의 존재는 존경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링을 내려온 랜디에게 서로 등을 두드리며 나누는 '굉장했다' '죽여줬다' '영광이다' 등의 말 들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단순한 한 마디 이상의 대화인 것이다.





가장 쇼에 가까운 프로레슬러에게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또 하나의 진부한 설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더 레슬러'는 아로노스프키의 비전과 미키 루크라는 배우로 인해 현실과 영화를 교차하는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 넣은 또 하나의 장치는 바로 카메라 워크라 하겠는데,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랜디의 뒤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등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킹과 굉장히 가깝게 밀착되어 있는 인물과 카메라와의 거리는, 랜디의 삶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가장 훌륭한 영화적 선택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디테일 한 스토리보드 없이 랜디의 뒤를 따라간다는 기본 설정으로 대부분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워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랜디를 연기한 배우가 미키 루크라는 점에서 이야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랜디와 실제 미키 루크의 삶은 여러 모로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 속 랜디처럼 자신의 한계와 과오를 인정하고 다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간(돌아온) 미키 루크의 열연은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실제로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잘 생긴 청춘 스타였던 미키 루크는 스스로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헐리웃에서 멀어져 전문 복서로서 수 년 간을 활동해 오기도 했던 그의 삶과 극 중 랜디의 삶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미키 루크 본인은 극 중 랜디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비슷해 처음에는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랜디처럼 미키 루크도 더 이상 이 같은 점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실제 미키 루크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블루레이에 수록된 소책자 중 김세윤 작가의 글 '피투성이 휴먼 드라마를 완성한 만신창이 배우의 인생'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립 바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는 캐시디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단순히 주인공 랜디의 로맨스 상대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랜디와 비슷하게 한계에 부딪혀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젊은 댄서들에 밀려서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보인 랜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랜디에 대한 사랑의 감정만이라기 보다는 랜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 용기를 얻고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전이된 경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시디는 랜디가 스트립 바에 와서 돈을 주고 나체의 자신을 보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목숨을 걸고서라도 레슬링을 다시 하려고 하는 랜디가 안쓰러운 동시에 부럽기도 한 것이다.






랜디를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은 링 위 임을 깨닫고 20년 만에 열리는 기념 경기에 보수도 없이 참가하기로 한다. 링 위의 공간은 철저한 쇼의 무대이자 다른 한편으론 가장 치열한 랜디의 현실이기도 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어느 정도 이뤘고, 상대 레슬러도 랜디의 상태가 걱정되어 이쯤에서 끝내자고 하지만 랜디는 결국 더 완벽한 쇼를 위해 마지막 기술인 '램 잼'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링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의 엔딩은 마치 한계와 맞서 싸우다가 산화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계를 뛰어 넘었거나 넘으려는 승리의 정서는 분명 아니었다. 랜디는 자신의 인생과 현실, 링을 돌아보며 한계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이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들인 채, 자신 만의 방법으로 마무리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디는 램 잼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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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에 우선한 소비자를 위한 타이틀


이미 자사 브랜드의 타이틀을 출시하기 전 부터 타 브랜드의 타이틀을 기획과 제작을 통해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을 만들어 내 블루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플레인 아카이브의 첫 번째 스틸북 타이틀인 '더 레슬러'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 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런 부담감에도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우수한 퀄리티의 타이틀을 또 한 번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플레인에서 제작하는 타이틀 소책자에 글을 수록하며 참여했던 적이 있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번 '더 레슬러'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스틸북이라는 높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 밖에는 없는 프로젝트임에도 과감하게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고 출시를 결정한 것에 한 사람의 블루레이 유저로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국내의 현재 블루레이 시장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이 같은 결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번에도 역시 단순히 타이틀을 구매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소장 하고 싶은 '가치' 있는 타이틀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번 '더 레슬러' 블루레이는 총 3가지의 버전으로 출시되었는데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과 스틸북 : 쿼터슬립 버전 그리고 일반판 : 아웃케이스 버전이 그것이다. 여기서 '스틸북 : 아웃케이스 버전' 위주로 소개를 하자면 덴마크에서 직수입한 고급 스틸북 케이스로 퀄리티를 보장하였으며, 제공되는 아웃케이스 역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쓰고 있는 고급 케이스로 스틸북과 소책자를 수납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40페이지에 달하는 소책자 역시 또 한 번 읽을 거리로 타이틀을 구매하는 재미와 가치를 선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틸북 특유의 디자인적 아름다움과 포스터 카드와 레슬링 카드 등의 부가 아이템도 좋았지만 읽을 거리가 풍성한 소책자가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단순한 보도 자료를 옮겨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는 각 전문가들이 쓴 흥미로운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꼼꼼하게 읽어볼 수 밖에는 없었다. 특히 '더 레슬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키 루크에 관한 김세윤 방송작가의 글은 영화의 깊이를 더해줄 정도로 많은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글이어서 유익했고, 김세윤 작가와 함께 음성해설에도 참여하고 있는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의 글도, 작품 성격에 맞는 맞춤형 칼럼이라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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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노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의도에 따라 굉장히 거친 질감의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블랙 스완'이 특히 그랬고 이 작품 '더 레슬러' 역시 마찬가지다. 두 작품은 본래 하나의 기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의도의 거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주인공의 등 뒤를 시종일관 따라다니는 카메라 워크는 거친 입자의 화질과 맞물려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불안함과 무거움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런 의도를 생각한다면 감상에 지장을 줄 만큼의 걱정스런 영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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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조차도 예전 극장에서 보았을 때 화질의 대한 기억과 아로노프스키의 의도적 거친 영상이라는, 이미 각인된 이미지가 있어서 더 좋지 않은 화질일 것이라고 선입관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었는데, 실제로 평가를 위해 살펴보니 대형 TV를 통해 본 편을 감상하기엔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물론 디테일 한 평가를 위해 살펴보게 되면 전반적으로 어둡고 거친 영상 탓에 선명한 화질과는 분명 거리가 있고, 특히 PC환경을 통해 감상할 경우 이런 점이 더 도드라질 수 밖에는 없지만, 이는 블루레이 화질의 퀄리티 저하라기 보다는 본 편 자체의 영상이 그러한 것이므로, 화질의 기술적 평가와는 조금 분리해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실제 레슬링 경기 장의 소음과 링에서 벌어지는 경기 특유의 사운드 (링 바닥의 특성으로 인해 슬램 등이 이루어졌을 때 발생하는 소리들)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레슬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액션 영화로서 레슬링이라는 장르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경기 장면에서의 사운드는 제법 익사이팅 한 편이다. 대화 시퀀스가 많은 편인데 미키 루크의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으며, 마치 다큐멘터리 처럼 장면에 등장하는 공간 전체의 객관적인 소리를 들려줄 때와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거리감을 두고 각각의 소리를 전달할 때 모두, 각자의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블루레이 사운드에 와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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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라면 역시 앞서 언급했던 김세윤 영화전문 방송작가와 현역 레슬러이자 WWE 해설위원 김남훈 선수가 참여한 음성 해설을 꼽을 수 있겠다. 처음 이 두 사람이 음성 해설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 섞여 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아무래도 감독이나 배우 등 직접 작품에 참여한 이가 아닌 제 3자가 참여하는 음성 해설은 덜 흥미로울 수 밖에는 없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 3자의 음성 해설의 경우 정성일 씨가 참여한 음성 해설만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흥미로웠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뒷 이야기를 김세윤 작가가 전하고, 김남훈 선수는 실제 레슬러로서 바라본 시각을 통해 일반 관객이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내는 등 두 사람의 호흡이 제법 괜찮아 듣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김남훈 해설위원은 마치 WWE 방송을 해설할 때 처럼 극 중 랜디의 경기를 디테일 한 기술 명 등과 함께 해설하는 해설 본능이 나오기도 해 WWE를 시청하는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웃음 짓게 되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다른 부가 영상으로는 약 43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 '링 안에서'가 수록되었는데, 몇 가지 제작 및 촬영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레슬러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하기로 하고 일단 전국의 독립 리그들을 찾아 다녔는데, 거기서 감독의 어린 시절 영웅들이 아직도 1~2백 명의 관객 앞에서 백 달러를 벌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삶이 링 위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저 예산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니 영화 속 경기 장면들을 따로 만들어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실제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을 방문하여 이를 배경으로 촬영을 했어야 했는데, 극 중 등장하는 경기는 모두 실제 경기와 실제 선수들이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영화는 단순히 카메라 워크의 측면 뿐 아니라 실제 촬영 및 제작 방식도 그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스토리보드가 있으면 배우들의 연기가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해 스토리보드 없이 배우들에게 상황만 주어주는 형태도 진행했으며, 레슬링 장면과 마찬가지로 마트 장면 역시 배우와 실제 손님들이 섞여 있는 채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짜여 진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담으려 하다 보니 배우들은 물론 스텝들조차도 현재 촬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헤 깔릴 정도였고, 실제 본편에도 실수를 한 장면이 그대로 수록되기도 했는데 이런 면에서는 마치 홍상수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제작 과정 영상과 본 편 장면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기도 했다. 부가영상의 말미엔 극 중 출연하고 있는 실제 레슬러 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레슬링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와 사연들을 통해,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실제 이야기와 그들이 레슬링을 대하는 태도를 만나볼 수 있어 영화 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부른 'The Wrestler'의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었다.



[총평]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는 그의 영화적 비전과 관심사를 잘 드러낸 작품 중 하나였으며, 미키 루크라는 왕년의 스타의 스크린 밖 실제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어 더 깊은 인상과 감회에 젖어 들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깊은 여운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소장가치 높은 블루레이 타이틀의 출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서 영화 팬으로서 행복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패키지는 그 자체로 또 다른 가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 한 편으론 '더 레슬러'라는 영화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들 정도의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치를 정성스레 고이 담아내는 멋진 타이틀들을 국내에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을 정리한 뒤 뒤늦게 비보로 접한, 어린 시절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WWF 최고의 레슬러 얼티밋 워리어를 추억하며. 부디 편히 잠들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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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낭만적인 스토리텔링



웨스 앤더슨의 작품은 모두 다 좋아하지만 (특히 최근작들) 글로 쓰려면 별로 할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역시 마찬가지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지 않은 이유는, 생각하고 토론하는 영화라기 보다는 그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는, 즐기는 형태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의 세계관 만큼이나 확고하고 뚜렷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그의 인물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옷을 입고 있는 모습만 봐도 웨스 앤더슨 세상 속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이고, 말을 해도 물론 마찬가지다. 이번 신작 역시 그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를 살짝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우며 무엇보다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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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기 보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 스토리텔링이 더 중요한 작품이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간혹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다루기도 하고,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에도 한참을 할애하기도 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다거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그저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애정을 담아 보내는 한 편의 그림 엽서처럼 느껴진다 (그림 엽서 라는 점이 중요하다 ㅎ). 그렇기 때문에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 같이 괴팍하거나 이상한 것처럼 겉으론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일 뿐이지 모두들 본인들에게 충실하고 맡은 일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은 각각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할 때 얼마나 아름다울 정도로 귀여운지를 자신 만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통해 최대한 펼쳐놓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다양한 색감은 물론, 이야기가 달라질 때마다 변하는 화면비를 통해 각각 이야기마다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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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덜한 편이었는데 (그 좋아하는 '문라이즈 킹덤'도 의외로 자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덜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런 면에서 여운과 낭만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채플린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극 중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구스타브 라는 캐릭터는 묘하게 애잔함과 낭만, 애틋함 마저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였다. 이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렇게 느껴진 것도 이야기의 주인공인 구스타브 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라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부분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구스타브의 그 모습과 미소가 계속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이 영화를 기억하고 아마도 추억하게 될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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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타셈 싱의 '더 폴 (The Fall, 2006)'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과장되고 특별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 듯 했지만, 왠일인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낭만적인 영화. 웨스 앤더슨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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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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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dier, 2014)

리더의 조건



어벤져스의 일원이자 리더인 캡틴 아메리카가 그의 두 번째 이야기 '윈터솔져'로 돌아왔다. '아이언맨' 시리즈와 토르 1,2편을 통해 어벤져스의 세계관을 점점 확장 및 연결시켜가고 있는 마블은, 또 다른 같은 세계관의 작품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2014)'를 선보이기 전에 먼저 캡틴 아메리카의 속편을 꺼내 들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토르 : 다크월드'는 독립적인 작품으로서는 아쉬운 작품이 많았던 것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는 단순한 세계관의 연장선을 넘어서 독립적으로도 제법 훌륭한 구성과 이야기를 갖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 리더이지만 가장 심심하게 느껴졌던 캡틴, 스티브 로저스 라는 캐릭터에게도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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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를 통해 캡틴은 말 그대로 이 엄청난 히어로들의 조합 가운데 서도 리더라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사실 이들은 각각의 개성이 워낙 강하고 또한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빠지지 않는 유치한 질문처럼 슈퍼 솔져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을 리드 하기엔 능력 측면에서는 부족하기에 다른 장점과 리더 쉽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전작 '캡틴 아메리카'는 스티브 브루스의 도덕성에 대해 그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 주목했고, '어벤져스'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슈퍼 영웅들의 리더가 누구인지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선보인 이 작품 '윈터솔져'는 바로 이런 점에서 왜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의 진정한 리더인 지를 관객들에게 각인 시키려는 시도가 담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영화엔 의외로(?) 다른 슈퍼 영웅들이 까메로오도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블랙 위도우만 빼고), 쉴드라는 조직에 관한 광범위한 이야기를 통해 이 조직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리더 쉽에 대해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로 풀어낸다. 그리고 캡틴은 또 한 번 우직하지만 자신 만의 일관된 방식으로 이 사건을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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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캐릭터이자 이번 작품의 가장 강력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윈터솔져의 경우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그 비밀이라는 것도 1차적으로는 전작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발전되었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즉,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들의 경우 그 세계관 내에서 자유롭게 다른 캐릭터들 혹은 시공간을 활용하는 편인데, 이런 점이 가끔은 너무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라 그 작품 만으로는 100% 즐기기 힘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점에서, 전작에 기인한 미스터리의 발전은 '어벤져스'와는 또 구분되는 '캡틴 아메리카'만의 프랜차이즈를 확고히 하는 매력 포인트였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품은 참 영리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세계관의 떡밥은 적절히 활용하고 쿠키 장면들도 최대한 활용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을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과하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고, 독립적으로 보아도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펼쳐내면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와 긴장감도 충분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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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측면에서도 다른 영웅들에 비해 인간적(?)이기 때문에 몸을 활용한 격투가 기본이라 더 박진감 넘치고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액션의 합을 여럿 만나볼 수 있었으며, 이 시리즈가 자랑하는 스케일의 측면에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충족 시켜 주고 있어 볼거리도 부족함이 없는 편이었다. 확실히 '어벤져스'의 각 캐릭터들은 너무 세계관의 연결에만 기대는 것 보다는 홀로 서도 매력을 갖게 될 때 비로서 추후 '어벤져스 2'가 등장했을 때 더 큰 기대와 매력을 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이번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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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액션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프랑스 해적은 반가운 얼굴이더군요. 심지어 극 중 이름도 비슷한 GSP. 슈퍼맨 펀치도 등장하고. 추후 한 번 더 등장하기도 하고. 까메오 수준으론 비중이 제법 크더군요.


2. 아, 그리고 스탠 리 옹은 갈 수록 연기도 비중도 늘어나는 듯. 이 얘기를 새 마블 작품이 나올 때 마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3. 이 시리즈의 단점이라면 누가 극 중에 죽어도 별로 슬프거나 걱정을 하게 되지 않는 다는 점인듯. 그래도 진짜 인 줄로만 알았던 콜슨 사건 이후엔 더더욱.


4. 초반 캡틴이 놓치지 말아야 할 근래의 것들을 리스팅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노트에 'OLDBOY'도 적혀 있더군요. 그 올드보이 일까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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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Noah, 2014)

새로운 시작을 위한 어떤 죽음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된 바가 명확히 있었다. 달리 말해 아로노프스키가 노아의 방주라는 소재를 가지고 '2012'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건 아마 그의 전작들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전작들을 통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의 육체에 관한 퇴화 혹은 불안정함, 불안함으로 인한 그 육체를 소유한 이들의 정신 착란에 가까운 고통과 혼란을 주목해 왔었다. 그런 시도는 예전부터 그랬고, 최근 작품인 '더 레슬러'와 '블랙 스완'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표현되었었다. 신작 '노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노아'는 자신의 뿌리와 주어진 사명 그리고 원칙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 놓여버린 주인공 노아의 지독한 심리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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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의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낯선 영화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구약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 종교적인 영화를 기대한 이들도 마찬가지. 또한 이 영화의 구성은 마치 슈퍼 히어로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 까지 한참이 걸리는 것처럼, 방주가 완성되고 재난이 오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여기까지는 구약 성서에 나온 내용과 큰 줄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고 들자면 다른 측면이 많지만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방주에 타기 전까지는 크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출신에 대해 명확한 선을 긋는다. 즉, 카인의 후예들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에 대한 죄로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벌이 내려졌고, 아담의 셋째 아들이었던 셋은 태초의 주의 뜻에 따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했고 그의 후예인 노아와 그의 가족 역시 이 뜻을 받들어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카인의 자손인 두발가인은 무기를 만들고 자연을 파괴하려는 (생존을 위해) 이로 , 셋의 후예인 노아는 꽃을 꺽는 아들을 나무라는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과 공생하려는, 즉 명확한 선과 악으로 묘사되는 것은 일반적인 영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명확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경우 이 둘 간의 대립을 그리기 위함이지만, 아로노프스키의 의도는 오히려 선으로 묘사된 노아가 그렇기 때문에 겪게 되는 갈등과 트라우마를 묘사하기 위한 사전 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대의 의미로 두발가인 역시 명확한 악당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은 노아가 스스로 원칙에 얽매이고 갈등을 겪게 되면서 더욱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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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노아는 일종의 선택 받은 자다. 하지만 노아가 받은 선택은 은혜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까지 느껴진다. 신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한 재난에서 무고한 동물들을 지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노아에게는 처음부터 선택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그의 신념 때문 만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의 뿌리, 셋의 후예라는 이유 또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셋의 후예로서도 자신의 신념과도 일치했던 이 임무 수행이 나중에 가서는 신념은 물론, 자신이 세운(부여 받은) 원칙과도 상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아로노프스키의 비전대로 나아간다.


남여 혹은 수컷과 암컷 한 쌍으로만 가능한 방주를 두고 노아는 자신의 자식 가운데 짝이 없는 함의 짝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일라와 짝을 이루고 있는 셈의 짝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순간 자신 역시 스스로 이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책을 깨닫게 된다. 단순히 내 가족의 생존에 관한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점에서 더 발전하여, 결국 이 재난을 주신 이유가 인간을 벌하기 위함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 본인을 포함한 자신의 가족 모두도 구원 받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인해 노아는 가족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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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므두셀라의 은혜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일라가 임신하자 이 아이들이 종족번식을 할 수 있는 딸일 경우 바로 죽이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이는 노아와 가족들을 멀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고, 이 과정 속에서 묘사되는 노아의 모습은 앞서 등장한, 악으로 묘사되는 두발가인 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악의 존재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로노프스키가 이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한 선한 사람이 악한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단 '블랙 스완'의 니나 처럼 강박에 사로 잡혀 육체에 대한 제어 능력을 상실해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는 노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굳이 후반부의 직접적인 안스러운 모습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측은하고 동정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가 방주를 만들고 이 재난을 겪게 되는 과정을 시작부터 보면, 그 스스로 결정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며 후에 가서는 정말 도구로 사용되는 것 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제어 기능, 혹은 자존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렇게 나뉜다. 임무를 부여 받고 원칙대로 행하던 자신감 넘치는 노아와 스스로가 그 원칙의 아이러니 혹은 모순에 혼란을 겪으며 정신착란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겪는 노아,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임무가 완료된 뒤 본인의 육체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무기력한 노아, 이렇게 각기 다른 세 가지 상태의 노아로 나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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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방향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냥 철저하게 이 임무를 위해 도구로 활용되고 한 개인으로서는 버려지다시피 피폐해진 노아의 모습으로 쓸쓸히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아로노프스키의 생각은 더 깊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거대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철저히 희생되어야만 했던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다.


그래도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는 구약 성서의 너무도 유명한 텍스트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한 파트를 극대화시켜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바로 본인들이 믿고 있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 분이 이 영화를 자신을 모독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속 좁게 생각하실지 말이다.



1.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의외의 판타지적 요소도 제법 자연스러웠어요.

2. 대홍수(?)라는 재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포세이돈의 아들인 데미갓 퍼시잭슨을 연기했던 로건 레만이라는 점도 ㅎ

3. 개인적으론 의외로(?) 노아의 극 중 고뇌가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어요. 이런 운명에 놓여버렸다면 아마 저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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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3)

한 남자의 어떤 변화



아카데미를 수상한 매튜 매커너히와 자레드 레토 주연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예상 외로 조금은 덤덤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조금은 더 극적일 거라는 예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과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 그리고 주조연을 맡은 두 배우가 각종 연기상을 휩쓸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영화는 덤덤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실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포인트를 일부러 끌어오지 않았으며, 시한부의 삶을 그릴 때 흔히 다루게 되는 경계에 대한 공포와 넘나 듬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며, 연기 역시 더 메소드 연기를 펼쳤더라도 부족함이 없었을 텐데 생각보단 훨씬 절제 된 연기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한 번 더 보고 싶은 작품이 되었달까.




ⓒ Voltag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시한부의 삶과 에이즈라는 질병과 이를 둘러싼 FDA와 병을 얻은 이들과의 사투, 그리고 성정체성의 관한 소재 등 영화로서 매력적인 소재들이 여럿 담겨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어떤 소재도 끝까지 전력으로 달려가지는 않는다. 특히 이 소재들을 다뤘던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 편으론 조금 심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줄기의 이야기를 따르기 보다는 작은 범위, 하지만 이 모든 소재들을 온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한 남자의 작은 변화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영화가 관객을 별로 설득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주인공 론 우드루프 (매튜 매커너히)처럼 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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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으론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이 영화가 훨씬 전에 나왔더라면 조금은 다른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캐릭터의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 더 치닫을 수 있었을 것이고, 전형적인 마초이자 카우보이였던 우드푸르가 겪게 되는 심경의 변화도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 테고, FDA와 벌이는 사회적인 이슈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쭉 늘어놓고 보니 더 확연해 졌듯이 이 각각의 소재 들은 이미 너무 많이 영화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이젠 제법 익숙해진 소재이기도 하다. 즉, 실화라는 강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이런 절제와 덤덤함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레이언 (자레드 레토)의 이야기는 더 슬퍼할 시간을 줘도 될 것 같으나 그러지 않고, 우드루프의 법정 싸움은 더 치열해도 좋았을 테지만 거기서 멈추며, 그가 겪어야 했던 시한부라는 특수한 상황도 과장되어 묘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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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깊이를 표현해 낸 일등 공신은 역시 배우들이라고 해야겠다. 매튜 매커너히는 기존 까지의 자신을 지운 듯한 연기로 더 넓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개인적으론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의 연기가 더 좋다), 자레드 레토도 한 편으론 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부담스럽지 않게 연기해 냈다.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들었던 배우는 이 둘이 아니라 제니퍼 가너였다. 드라마 '앨리어스' 때부터 조금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터라 그랬는지 몰라도, 이 파란만장한 인생에 놓여있는 두 남자 (혹은 한 남자와 여자)를 말 없이 바라봐주는 눈빛 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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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

스스로 견디지 못함의 대한 울림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의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Michael Kohlhaas, 2013)'을 선택하게 된 것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때문도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때문도 아닌 오로지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의 극 중 모습이 커다랗게 담긴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이 포스터는 뭐랄까, 여러 작품을 통해 조금씩 좋아해 오다가 '더 헌트'에 와서 비로소 애정을 고백하게 되었던 매즈 미켈슨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120% 발산하고 있는 이미지였기에, 아마도 이런 단계로 그를 좋아하게 된 영화 팬들이라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그런 포스터였다. 회색 머리를 휘날리며 등 뒤에 검을 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하이랜더'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는데, 솔직히 포스터의 비주얼에 압도 당해 보게 된 영화였지만 내용은 그 와는 많이 달랐다. 아주 고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정의'라는 거대한 뜻에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 Les Films d'Ici. All rights reserved


말을 판매하는 미하엘 콜하스는 매일 말을 팔러 시장에 가는 길에 지나던 다리에 통행세를 내라는 남작의 말에,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일단 말 두 마리를 맡기고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그냥 지나간다. 하지만 나중에 말을 돌려 받으러 가보니 윤기가 흐르던 두 건강한 말을 다치고 더러워진 상태였으며, 이를 찾으러 갔던 하인 역시 공격을 받아 다치고 만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미하엘 콜하스는 법적으로 소송을 걸려 하지만 공작이 손을 쓴 탓에 전해지지 않자 직접 공주에게 이를 전하려 하는데, 대신 전하려던 아내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 영화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면 아내를 잃는 과정의 묘사는 물론, 그 이후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 역시 훨씬 더 디테일하고 극적인 묘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기 보다는 일부러 디테일을 걷어낸 듯 한 느낌이다.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통쾌하지 않고, 어느새 반란군이 되어 버린 그의 일당이 조직되는 과정이나 여정 역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부당한 것과 그것의 해결 혹은 극복에 포인트가 있지 않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 지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되묻는 영화다.



ⓒ Les Films d'Ici. All rights reserved


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우스게 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러게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미하엘 콜하스가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남들처럼 피해가거나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극 중 묘사되는 모습으로 미뤄보면 미하엘 콜하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조금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겪으며 했던 선택들은 조금은 날이 선, 그래서 본인 스스로도 어떤 의의를 두거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그가 만약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 했다면 아내를 잃게 된 것을 비롯해 모든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되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그렇담 과연 '융통성'이라는 건 '정의'라는 것을 논할 때 선택 가능한 옵션인가 라는 의문도 더불어 갖게 되었다. '그러느니 죽는게 차라리 낫다'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라는 것은 무엇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인데 (최근 본 '노예 12년'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은 국내 개봉 제목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을 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대한 답을 관객이 해야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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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극장을 나오며 했던 '융통성'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답하자면, 영화 속 시대를 배경으로 미하엘 콜하스의 상황이었다면 그가 융통성을 부려 두 필의 말을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을 그냥 넘겼다 하더라도, 결코 평탄한 삶을 영유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야 말로 조금은 비겁한 융통성의 결론인데, 어차피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계산에 그렇다면 좀 더 (상대적으로) 정의의 편에서 행하는 것이 나은 것이겠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 중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이 계산적이거나 비겁하지 않았던 건, 그 스스로가 계산을 통해 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과 삶은 정의로운 영웅의 삶이라기 보다는, 정의로울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적인 한 남자의 삶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하엘 콜하스의 여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해야만 했던 내적 갈등과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 '마음', 양심이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그 마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견디는 것은 아닐까.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그 스스로 견디지 못함에 대한,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들려주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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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 2013)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헐리웃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감독 중 하나는 바로 데이비드 O.러셀 일 것이다. '파이터'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두 작품을 통해 급격하게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과 함께 새롭게 선보이는 이 작품 '아메리칸 허슬' 역시 기대할 수 밖에는 없는 조합이었다 (참고로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는 '파이터'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호흡을 맞췄다. 제레미 레너와는 첫 작품). 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사기, 사기꾼이라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국내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했는데, 분명 영화의 겉모습은 그러하지만 실속은 사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진짜가 되고픈 가짜들의 이야기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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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어빙 로젠필드'라는 캐릭터의 아침 몸 단장으로 시작하는데,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부터 세심한 공을 들여 머리를 세팅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 세심함 만큼이나 한참을 말 없이 들여다본다. 이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렇듯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 혹은 그러기 위해 될 대로 되라 라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공을 들여 그 가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빙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영화가 이후 들려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정서에도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기 자체의 속고 속이는 묘미가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도 치밀한 사기극을 다룬 영화들에 비하면 '아메리칸 허슬'의 사기, 아니 사기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긴장감 넘치는 리듬도 반전이라고 할 만한 연출도 없는 편이다. 이 작품은 실화를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건 자체에 전후 사정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 흥미로운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심정에 서서 각자의 결핍을 그려보려 했던 영화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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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으로 살아 온 어빙이나 시드니 (에이미 아담스) 외에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리치 디마소라는 캐릭터도 FBI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결핍으로 읽을 수 있다. 그는 FBI이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못하고 있어, 자신이 주목 받을 수 있는 큰 한 건을 노리고 이 사건을 기획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승진이라는 형식적인 것 보다는 주목 받는 것 자체, 즉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적인 대사로도 나오는 것처럼 무언가 자신이 여러 인물들을 이끌고 주인공이 되면서 드디어 성공에 까지 가까워 짐에 따라, 그가 겪는 감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하나인데 브래들리 쿠퍼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또 한 번 감정적이면서도 결핍이 있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고 있다. 그가 연기한 리치와 비슷한 이유로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어빙의 부인인 로잘린 캐릭터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녀의 행동도 일부러 남편을 골탕 먹이려고 한 것 이라기 보다는 주목 받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이렇듯 '아메리칸 허슬'은 평생을 남을 속이는 것으로 (신분까지 속여가며) 살아왔던 이들과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즉 가짜로 사는 것에 지쳐버린 이들의 진짜가 되어보려는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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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허슬'에는 특이한 리듬이 있다. 기막힌 당시의 선곡으로 순간적인 몰입 도를 선사하는 한 편, 긴장이나 불안감 없이도 한 참을 카메라가 멈춰서 인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쓸 때는 그 다음에 오는 어떤 사건을 꾸미기 위한 것이라던가, 직접적인 인물의 감정 표현을 위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경우가 다 아니었다. 어떤 반전이나 장면 전환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고 인물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오랜 시간 캐릭터를 다른 아무 장치 없이 바라보게 함으로서 가짜의 껍데기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조금은 이질적인 리듬 감이 존재한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아카데미 10개의 부분에 후보로 오른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더 좋았고, '파이터'와 비교해도 '파이터'가 좀 더 낫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아메리칸 허슬'은 이미 감독과 호흡을 맞춰본 명 배우들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연기한, 연기와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몸을 불린 크리스찬 베일은 마치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연기했으면 딱이 었을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고, 에이미 아담스는 근래 그녀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걸음 클래스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제니퍼 로렌스는 이렇게 빨리 어린 배우가 성장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이 명 배우들 사이에서 완전히 녹아드는 '어른스러움'과 매력을 사정 없이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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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론 에이미 아담스의 팬이라 더 좋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한 번 쯤 그녀가 원톱으로 나서는 영화를 보고 싶네요.


2. 음악이 참 좋은데 아직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발매된 것 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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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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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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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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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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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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