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스 블루레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고독 속을 걸으며 악을 행하지 않고

홀로 걸어가는  숲 속의 코끼리처럼"...


2004년, '공각기동대'를 보고 한참 빠져있던 나는 그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노센스(Innocence)'를 극장에서 보고 또 한 번 깊은 카오스에 빠지게 된다. 그 때 당시에는 이 난해하다면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2013년에 다시 보게 된 '이노센스'는, 10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설 익은 것이었다는 것에 거부감 없이 수긍할 수 있었다 (그 얘긴 즉슨, 지금의 생각 역시 10년 뒤엔 스스로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단순한 속편이라거나 '공각기동대 2'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작품이다. 즉,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에서 펼쳐진 작품이지만, 오히려 '네트는 광대해' 라며 육체를 버리고 한 차원 더 나아간 쿠사나기의 이야기처럼, 한 걸음 더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전작이 쿠사나기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노센스'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 쿠사나기처럼 영화 스스로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가 비슷한 소재를 다룬 SF 영화들에 비해 특별한 점은, 사이보그, 전뇌 같은 SF적 요소들이 단순히 볼거리 위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닮은 형태로 만들어 낸 수많은 인형들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한 반성과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이 영화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인간을 그릴 때는 타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 자신으로서 묘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노센스'는 그 인간이 만든 존재인 인형(사이보그)들을 등장 시켜, 그들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과연 인간은 완벽한 존재인가?'라는 물음과 동시에 그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정은 결국 '나'를 버리는 과정, 더 자세히 이야기해서 '나'라는 존재의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수 많은 악(惡)한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노센스'는 이야기의 여러 지점에서 대사나 캐릭터 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비유를 들려준다. 인간이라는 것의 정의를 어느 시점에서 내릴 것인지. 태어나는 순간, 그러니까 아직 가치관이나 자아가 생성되기 이전 아이일 때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아라는 것이 생기는 순간 부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라 부르는 것이 완성이나 선(善)의 형성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순수(Innocense)를 잃어버리게 되는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영화는 계속 반문한다. 영화 속 반복되는 장면과 구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적 의미나 이를 통해 '나'라는 실존적 가치에 대한 의문 기호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끊임없는 반문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노센스'의 실질적 주인공이 '바토'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쿠사나기가 '공각기동대'의 마지막에 육체를 버리고 광대한 네트워크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반증하듯 쿠사나기는 굳이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이야기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바토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지가 이 작품의 핵심일 것이다. 쿠사나기와 바토는 사이보그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커다란 갈등과 의문을 갖고 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쿠사나기는 '나'를 버리고 어쩌면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고, 남겨진 바토는 고스트 더빙이 된 인형이 연관된 사건을 추적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함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마치 인간과 사이보그의 입장이 뒤바뀐 듯 바토가 불완전함을 스스로 드러낸 인간 군상을 불쌍한 듯한 표정으로(물론 그는 표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이 작품의 정서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더 중요한 건 바토의 이러한 시선이 인간다움에 대한 실망이나 포기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의 서두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 때는 이 이야기가 몹시 어둡고 우울하고 쓸쓸하기만 한 것인 줄로 알았었는데, 다시 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희망적이기까지 한 가능성의 작은 불씨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얼핏보자면 '이노센스'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의 여정 속에서 바토가 겪게 되는 인간들의 불완전함과 그와 반대로 한 차원 높은 다음으로 나아간 쿠사나기의 모습을 통해, 결국 인간 세상에는 희망이 없고 하루 빨리 '나'를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쓸쓸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은 어떠한가. 바토는 '킴'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인간들이 고스트 더빙을 통해 만들어낸 인형들이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상실감, 실망감이 더 깊어지긴 했지만, 바토는 이곳에 남는다. 전작의 마지막과 이 작품의 시작 시점에서의 바토는 분명 '남겨진' 성격이 강했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 시점에서의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남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바토는 그 모든 것을 겪었지만 그래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에 대한 재정립을 통해 더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노센스'가 쿠사나기와 바토의 로맨스 영화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바토가 기르는 강아지를 위해 일부러 좋은 사료를 애써 구하는 것 처럼, 쿠사나기에 대한 바토의 감정은 또 다른 '인간다움'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비록 정답은 없을 지언정 끊임없이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할 화두이기에,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가끔 돌이켜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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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 높은 DP시리즈 '이노센스' 블루레이





이번에 DP시리즈로 발매 예정인 '이노센스' 블루레이는 몇 가지 눈에 띄는 개선점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첫 번째는 역시 개선 된 자막을 들 수 있겠다. 기존 DVD의 자막이 주인공의 이름 조차 잘못 번역되었던(DVD에선 '버트'로 번역) 것에 비하자면, 이번 블루레이의 자막은 원문의 정보를 누락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서 다시 번역을 하는 과정을 가졌으며, 특히 철학적인 대사와 인용문이 많은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한국어 자막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본편은 MPEG5/H.264 코덱으로 화질이 향상된 신판(앱솔루트 에디션)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관련 부가영상이 몽땅 누락된 일본의 엡솔루트 에디션과는 달리 초판에 수록되었던 대담 및 메이킹 영상 등 중요한 부가영상을 이번 블루레이에 포함함으로써, 역시 DP시리즈로 제작된 '무협' 블루레이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의 판본과 비교해도 손꼽히는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 외에 아직 발매 전이라 직접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포함한 소책자가 정성껏 제작될 예정이라니, 이 소책자도 소장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한 몫을 할 듯 하다.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색감의 표현력이나 노이즈 측면에서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었던 DVD의 화질과 비교해보면 역시 블루레이 화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특히 '이노센스'는 당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3D와 CG 그리고 실사에 가까운 표현 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블루레이로 감상하는 것이 조금 더 의미 있는 감상이 될 수 있겠다.







2D와 3D가 결합된 시퀀스가 대부분인데, 일일이 표현해낸 배경의 CG들의 디테일을 블루레이를 통해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이 작품이나 2001년 작인 '아바론'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그 영상의 이질감을 기억할 텐데, 그 이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블루레이에서는 좀 더 선명한 화질 덕에 오히려 이질감은 조금 덜한 듯한 느낌을 준다.



Blu-ray : Audio


DTS-HD MA 6.1채널의 사운드는 DVD시절의 강력했던 DTS 사운드의 임팩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드 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공각기동대'에 이어 그 특유의 묘한 신비로움을 들려주는 코러스 곡은 이 작품의 성격을 아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날카로움과 공간감이 모두 잘 살아있어 오프닝과 퍼레이드 장면에서 사운드의 쾌감을 선사한다.






몇 장면의 총격 씬과 격투 씬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임팩트를 들려주며 사운드적으로도 크게 불만족스러움은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특성상 안드로이드 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인간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미세한 금속성 마찰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확실히 기존 DVD버전 보다는 훨씬 더 선명해진 작은 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연출을 맡은 니시쿠보 토시히코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많은 팬들은 이 어려운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들을 듣고 싶겠지만, 내용 적인 해석이나 메시지의 전달 보다는 기술적 측면의 에피소드나 소개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오시이 마모루는 특히 이 기술적인 측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음성해설 외에 '<이노센스>는 국경을 초월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전문가 대담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비록 HD영상이 아닌 SD영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이 작품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던졌던 메시지와 그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 '공각기동대'가 그 이후 헐리웃을 비롯해 수 많은 SF작품들과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영향이 어떻게 미치게 되었는지 좀 더 분석적인 해석들로 소개하고 있다. 약 45분 분량의 영상으로 대담이라는 제목 처럼, 다양한 분야의 반응과 평가를 만날 수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의 인터뷰와 더빙 현장, 그리고 가와이 겐지가 만든 영화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또한 칸 영화제에 출품했던 당시의 현장 영상도 수록되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노센스'는 오시이 마모루의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특보와 한국, 일본에서의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총평]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누군가에게는 걸작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화제작인 동시에 다시 한 번 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공각기동대'와 이 작품 이후의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작품들을 여럿 소화한 시점에서 다시 보는 '이노센스'는 분명 새로운 맛과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개선된 자막과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 된 화질과 사운드는, 이 새로운 맛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하는데에 부족함이 없는 도구가 될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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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 (Elysium, 2013)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를 떠올린 SF



전작 '디스트릭트 9'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된 닐 블롬캠프의 신작 '엘리시움 (Elysium, 2013)'은 단연 화제작일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타이밍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전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엘리시움'은 '디스트릭트 9'의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아쉬운 (단순한) 작품이었다. 닐 블롬캠프가 단편 시절부터 추구해 오던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는 두 계급에 대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엘리시움'에서도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다.




ⓒ TriStar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엘리시움'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소년은, 어린 시절 함께 자란 한 소녀와 동경의 대상(엘리시움)을 꿈꾸며 언젠 가는 그 곳에 대려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된 현재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영화가 처한 두 가지 세계와 어린 시절에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엘리시움'이 간과한 것은 이 작품이 SF영화라는 점인데,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이 필수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은 좀 그 과정에서 생략이 많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세계관과 장비들이 등장하는데 얼핏 봐도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있을 법한 요소들이 너무 단순하게 '뚝딱'하고 진행되거나 결정되어 버리는 경향이 좀 심한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좀 관대한 편인데 (예를 들어, 아니 어떻게 저렇게 쏘는 데 주인공은 한 대도 안 맞을 수가 있어 라던지, 저 정도로 고도화 된 시스템이 저렇게 허무하게 해킹 되는게 말이 돼? 처럼), 그런 측면에서 봐도 이 작품은 좀 너무 그 과정을 생략하거나 쉽게 생각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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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닐 블롬캠프가 좋아하는 얘기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스로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그 이분법적 세계관을 관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엘리시움' 역시 주인공 '맥스'의 이야기는 사적이고 영웅 심리가 없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전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 영웅적 면모가 없다면 개인 사에 대한 공감대가 깊게 깔려야 할 텐데, 그 부분이 어린 시절의 짧은 플래시백과 작은 약속에 그친 것이, 긴장감이 고조되어야 할 후반부에 생각보다는 심심한 이야기가 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미국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비유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의료보험이 정부를 통해 관리되지 않고 시장경제 상황에 맡겨진 형태인 터라, 의료보험의 가입자 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수 역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정부 주도의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비싼 보험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해결하고자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일명 '오바마 케어' 정책이 있으나, 이 역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여튼 '엘리시움'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국 내의 의료보험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연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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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본 이가 반 농담 조로 '이거 약 타러 가는 영화 잖아'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어찌 보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된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지구 밖 엘리시움을 꿈꾸는 이유는, 부나 윤택한 삶 등의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치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 지구는 부를 갖고 있는 이들과 상류 지배 층이 모두 엘리시움으로 떠난 상황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병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엘리시움에서 제공하는 치료 기기 (뭐든지 척척 고치는 만능 기계) 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려면 엘리시움으로 가야 하는 데, 이 곳은 시민권 자격을 통해 철저히 관리되고 있기에 여기서부터 허들이 발생하게 되고, 이 과정이 영화에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시민권이란 현재의 의료보험이나 다름이 없다. 보험 가입자만 의료 서비스를 (사실상)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시민권 자로 인식된 이들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영화 속 현실과 겹쳐진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이분법적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인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지구의 도시는 '디스트릭트 9'처럼 남아공이 아닌 미국 L.A다. 하지만 이곳에 남겨진 이들은 하나 같이 라틴계 혹은 흑인들이 대부분이며 백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은 현재 미국 내에서 의료보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빈민 측인 이민자들과 저소득 층인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엘리시움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델라코트 (조디 포스터)를 비롯한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들로 묘사되는 반면, 대통령이긴 하지만 힘없이 휘둘리고 있는 이는 흑인이자 히스패닉으로 묘사된 점은, 묘하게 현실과 겹쳐져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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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엘리시움'이 너무 노골적인 비유의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인 의도를 갖고 만들어 졌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비유가 노골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를 반드시 품었다고 하기에는 역시 간과 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도 SF에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냈던 그이기에, 이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현실과 연관 지어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전작에 비해 '엘리시움'은 확실한 판타지다. 영화 속처럼 모든 것을 리셋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엘리시움'의 결말이 '디스트릭트 9' 못지 않게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1. 이 작품은 청소년 관람불가 인데,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잔인함 이더군요. 미래의 무기들도 그렇고, 몇몇 장면에서 잔인한 신체 훼손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야한 장면은 한 장면도 없어요.


2. 샬토 코플리는 전작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바로 그 캐릭터를 '엘리시움'에서 연기하고 있군요. 본인 스스로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ㅎ


3. 이런 설정은 오히려 긴 호흡의 드라마로 만들었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배틀스타 갈락티카' 정도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4. 그러나저러나 '디스트릭트 10'은 언제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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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 (一代宗師 The Grandmaster, 2013)

왕가위의 21세기 동사서독



처음 왕가위 감독이 오랜만에 신작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작품이 양조위, 장쯔이 등과 함께한 엽문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기존 견자단이 연기한 '엽문' 영화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어느 정도 무협 액션 영화가 아닐까 라는 정도의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왜 그런 안이한 예상을 했었는지 답답할 정도로, '일대종사'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즉, 내가 이 영화를 예상했을 때 가장 간과한 것은 바로 감독이 왕가위 라는 점이라는 얘기다. '일대종사'라는 제목과 최근 들어 더 익숙해진 '엽문'이라는 인물 때문에, 스타일리시 하긴 해도 액션이 중심이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지만,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마치 그의 전작 '동사서독 (東邪西毒 Ashes Of Time, 1994)'과 마찬가지로 무예의 정수를 기본으로 하되, 각 인물들의 외로움과 정적인 심리에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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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엽문(양조위)이 빗속에서 수 많은 상대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은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과 슬로우모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퀀스를 보고 있으면 오랜 만에 무협 영화로 돌아온 그가, 다른 무협 영화들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액션 장면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엿볼 수 있다. 엽문을 주연으로 하고 있는 영화답게(물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왕가위의 무협 영화는 이랬을 확률이 높지만) '일대종사'의 액션은 정중동(靜中動)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즉, 빠르기나 힘의 표현과 과장 보다는 멈춰있는 이미지와 그 순간 상대 앞에 서 있는 인물의 마음가짐에 더 주목한다. 만약 이러한 캐릭터 내면의 묘사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는 그냥 제법 스타일리시한 무술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기법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의 액션 시퀀스는 인상적이기는 하나 새롭다 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가위가 '일대종사'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액션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왕가위와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왕가위는 양조위가 연기한 엽문과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의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 한 문파를 대표해야 했던 인물들의 대의 적 삶의 모습은 물론, 그 시대와 역할에 가려졌던 한 인간의 삶과 무예라는 것의 근본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고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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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종사'는 왕가위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그 아름다움 만을 놓고 보자면 첫 번째로 꼽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그 아름다움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 적인 성취 외에 캐릭터의 마음가짐 (심리 상태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일 것이다. 양조위는 물론, 장쯔이가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은 '황홀하다'고 느낄 정도로 영화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을 때를 보여주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홀하지만 그 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함이 깊게 묻어 나는 것이 '일대종사'의 매력이자 여운일 것이다. 왕가위의 영화는 항상 이미지가 잔상 처럼 오래 남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동안의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극장을 나오며 기억에 남는 건 일대종사들이 오롯이 서 있을 때 이를 가능케 한 발 동작들과 그들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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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대종사로서 뚜렷한 이미지가 새겨 진 엽문과 궁이에 비해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는 조금은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보는 중간에는 아마도 후반 부에 가서 엽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겠구나, 그래서 각각의 일대종사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겠구나 라고 예상했으나 영화가 끝난 뒤, 장첸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해 왕가위의 의도는 무엇 이었을까 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장첸의 캐릭터는 없어도 전혀 이야기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록, 그렇다면 왜 이 이야기를 적지 않은 비중으로 함께 그려냈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본래 예상했던 대로 만약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각자의 도장을 차리고 제자를 가르치던 엽문과 그가 만나게 되었다면, 이것은 너무 전형적이고 쓸쓸함과 아쉬움을 담은 이 영화에 정서와는 맞지 않는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왕가위는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영웅이 되기 보다는 개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엽문과 궁이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수 많은 각자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 어쩌면 이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진행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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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그리면서 시대와 무방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은 자칫 무책임한 것으로 그려지곤 하는데,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시대에 무심한 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들이 겪어낸 시대를 미사여구 없이도 완전히 담아낸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 '동사서독'을 오랜 만에 다시 보고 싶다.



1. 이소룡과 관련된 장면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로빈 장면처럼 등장하더군요. 딱 이 정도가 좋았던 것 같아요.


2. 이 영화는 정말 장쯔이를 위한 영화입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과연 '궁이' 만큼 인상적인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지...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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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음악이 참 좋았어요. 영화처럼 너무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


4.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물론 최고는 궁이와 마삼의 기차역 대결 장면), 엽문이 궁이의 아버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정중동을 제대로 표현한 장면이었어요. '영웅문' 등의 무협지에서 보던. 진짜 고수들 간의 대결을 영화적으로도 멋지게 표현해낸 장면이 아닐 수 없겠네요.


5. 쿵 리는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영화에서 본 줄 알았더니 바로 UFC 옥타곤 위 였군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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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스토커 (Stoker)
거역할 수 없는 악마의 탄생


곧 개봉을 앞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와 함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Stoker, 2012)'는 우리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 더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미아 바시코브스카와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 같은 좋은 배우들 혹은 재료를 가지고 박찬욱 감독이 어떤 요리를 해낼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평소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요리를 해낼지 가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스토커'는 헐리웃에서의 첫 작품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울함과 우아함, 그리고 기괴함까지 엿보이는 미장센과 분위기는 누가 봐도 박찬욱 영화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영화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연출해 내는 이안 감독 같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색깔과 스타일을 견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감독들이 더 많은데, 박찬욱의 '스토커'는 그런 점에서 자신의 색깔이 분명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사가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이미지와 정서가 극을 이끌어 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미아 바시코브스카 연기한 '인디아' 스토커의 성장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성장기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보다는 소녀가 악마로서 탄생하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을 선택한 이유로 구체적이지 않고 비어 있는 공간, 여지가 많아서였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 공간에서 인물들의 악마 성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다른 모든 부분은 만족스러웠지만, 오히려 소녀의 성장 드라마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공감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스토커'는 확실히 한 소녀가 악마로 태어나게 되는 아프고도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인디아가 아니라 어쩌면 그 주변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스토커'의 백미이자,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과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디아와 찰리는 경쟁 관계인 동시에 스승과 제자이며, 연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치 그의 전작 '박쥐'에서의 상현과 태주의 관계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미묘한 관계를 그리는 데에 있어서 동떨어진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따듯함과 차가움이 계산되듯 매치되어 있는 집 안의 이미지 그리고 내러티브 상의 반전 포인트는(반전이라는 말은 빼도 무방하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감싸고 있는 불안함과 우아함의 원인이자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의 비중을 차지 한다.






이렇듯 '스토커'는 내러티브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미지가, 분위기가 앞서는 영화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극중 인디아의 심리에 100%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인디아의 집 내부 공간이 주는 분위기, 인물들 간의 대화나 시선이 교차될 때 흐르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도 '불안함'을 만들어 내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영화 내내 흐르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커'에서 어떤 사건이 직접적으로 일어나거나 밝혀질 때 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에 무언가 불안한 그 상태를 묘사할 때가 더 매력적이고 집중도가 높았던 것 같다.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히치콕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우아함과 영화적 구도, 장치들로 채워져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각 캐릭터들을 어떤 공간에 넣어두고 그 공간과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로 녹여버리는 부분이었는데, 류성희 미술감독도 함께 참여했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기존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주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한 폭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배우들의 연기와 외모는 탁월한 캐스팅과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찰리 역을 연기한 매튜 구드의 매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왓치맨'에서 오지맨디아스 역할을 맡아 강한 인상을 주었던 그는, 불안함과 그 분위기 자체가 핵심인 이 영화에서 바로 그 표정과 실루엣 만으로 우아함과 동시에 공포스러움을 탁월하게 표현해 낸다. 개인적으로 '스토커'하면 앞으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은 바로 매튜 구드의 그 미소가 아닐까 싶다.





또한 '스토커'는 여백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공간과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바로 그 공간과 인물, 인물과 인물 사이에 발생한 여백을 두고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리듬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데에 또 다른 공로자는 바로 영화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박찬욱 감독이 헐리웃에 진출했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스텝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을 맡은 클린트 만셀이었는데, 역시 그 기대에 맞게 불안하고 우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픈 음악으로 영화 전체를 표현해 내고 있었다. 또 하나 '스토커'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편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비교적 많은 장면에서 교차 편집을 통해 인디아의 심리를 복합적으로 표현해 내려 했으며,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냈다.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되었던 작품이지만, 작품만을 놓고 따져보았을 때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벌써부터 그의 헐리웃 두 번째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또 누구와 함께 하게 될지 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 Quality


극장에서 '스토커'를 보았을 땐 화질이 특별히 좋다는 느낌까지 받지는 못했었는데, 블루레이로 보니 확실히 더 특유의 색이 잘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토커'의 색은 원색적으로 강렬하기 보다는 조금씩 톤이 다운 된 컬러가 주가 되는 편이라 오히려 더 화질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인데,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색감임에도 흐릿하거나 불분명함 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만족스러운 화질이었다.







대부분 실내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실내 장면에서는 각 캐릭터의 방과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컬러가 잘 살아나고 있으며, 적지만 집 외부의 장면에서는 블루레이 만의 디테일한 화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피부는 물론 파란 빛을 띄는 눈동자까지 아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어두운 장면들도 많은데 특별히 암부의 표현이 탁월하게 뛰어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음영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보여준다.


Blu-ray : Sound Quality


'스토커'에 대한 첫 인상은 비주얼 적인 것만 남았었는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작품이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사운드 효과와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극장에서 보다 작은 공간인 가정에서 블루레이를 통해 이 점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눌 때도 어느 위치에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울림이나 사운드의 공간감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공간감을 블루레이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일부러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려고 삽입한 소리들은 더 날카롭게 들려주고 있으며, 대사들은 작은 소리들을 캐치해 내는 인디아의 능력에 맞춰, 지나칠 만한 작은 볼륨으로 섬세하게 다뤄지고 있다. 만약 '스토커'를 블루레이를 통해 다시 보고 싶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사운드 적인 측면 때문일 것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의 첫 번째로는 '삭제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 3개의 삭제 혹은 확장 장면이 수록되었다. 찰리와 인디아가 처음 만나 계단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는 확장된 버전을 만나볼 수 있으며, 진 고모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본편에는 없던 추가 대화 시퀀스를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 다음은 부가영상의 메인 피쳐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 : 감독의 여정'인데, 일반적인 제작과정 영상이라기 보다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담긴 부가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약 28분여의 영상을 통해 이 작품으로 처음 헐리웃 데뷔를 치른 박찬욱 감독에 대한 배우, 스텝들의 찬사와 존경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는데, 여부를 떠나서 국내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뿌듯한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가 '스토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여러 인터뷰가 등장하는 한 편, 영어를 못하는 외국 감독과의 작업을 두려워했던 스텝들이 그와의 작업을 통해 결론적으로 어떤 점을 느끼고 경험했는지도 전해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현지 스텝들과의 첫 작업이었음에도 평소 본인 작품의 성격과 색깔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현장의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이자 역시 정정훈 촬영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 부가영상에서도 정정훈 촬영 감독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부가영상은 국내 버전에 맞춰 수록된 것이 아니라, 북미 버전에도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부가영상으로서, 이 타이틀을 구매하는 전 세계의 팬들에게도 박찬욱 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뿌듯한 부가영상이기도 했다.






'매리 앨런 마크의 사진 갤러리'와 '런던 극장 디자인'이 갤러리 형식으로 수록되었으며, '프로모션 영상'에서는 총 다섯 가지 주제로 짧은 영상 들이 수록되었다. 프로모션 영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터네셔널 – 한정판 포스터 제작과정'이었는데, 일부는 사진 이미지를 가져다가 쓴 것으로만 생각했던 포스터 속 배우들의 이미지들이 모두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로 그 제작 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밖에 '비밀스러운 캐릭터' '감독의 비전' '스타일 디자인' '음악 창작'이라는 주제로 각각 짧은 영상이 수록되었다.





마지막으로는 '레드카펫 프리미어'와 '영화 예고편 & TV광고'가 수록되었는데, '레드카펫 프리미어'는 생각보다는 상당히 긴 분량 (15분)이 수록되어 여의도 CGV에서 가졌던 레드카펫 행사의 요모조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 해주는 박찬욱 감독과 미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총평]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평소 볼 수 있었던 그 만의 매력이 헐리웃 데뷔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의 말대로 대사로 전달되는 내러티브 보다는 이미지로 전달하는 그의 작법이라면 헐리웃에서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깔끔하게 잘 나온 '박찬욱'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블루레이 속지에 수록된 감독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여럿이 함께 보아야 하는 영화관이 아닌 블루레이를 통한 가정에서의 관람이 더욱 개인적인 꿈체험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악몽' 꾸시길 빕니다. – 박찬욱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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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

아름다워서 더 슬픈 인생의 굴레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2)를 보게 된 것은 라이언 고슬링의 그 표정을 또 한 번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데렉 시안프랜스와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했던 전작 '블루 발렌타인'은 지난 해 극장에서 본 작품들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다시 한 번 이 둘이 만난 작품이라니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요새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인 데인 드한이 출연하는 것은 물론, 브래들리 쿠퍼와 에바 멘데스, 레이 리오타까지 함께 한 작품이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게 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전작 '블루 발렌타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점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무게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되,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연출력으로 빚어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왜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다 끝난 뒤에도 쉽게 좌석에서 일어나기 힘든. 그런.




ⓒ Sidney Kimmel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오토바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 루크(라이언 고슬링)를 따라간다. 루크의 삶은 희망도 내일도 없이 그저 반복 적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크는, 아이의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한 일종의 목표가 생긴다. 이로 인해 은행 강도 짓까지 하게 되고, 그러다 범죄 현장에서 경찰인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와 맞닥들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훌쩍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루크와 에이버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특이한 듯 하지만 사실 일반적이고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고 할 만큼 전형적인 측면도 있다. 아마도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했다면 3류 드라마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15년 뒤 두 주인공의 아들들이 서로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예상된 이야기라는 점의 익숙함과 유치함 보다는 오히려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루크의 잔상과 2대를 이어 온 이 슬픈 운명의 굴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물론 공감까지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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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데렉 시안프랜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두 주인공(넓게 보면 4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브래들리 쿠퍼가 연기한 에이버리의 경우 경찰으로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한 것 뿐이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본인의 직무를 다한 바로 그 사건 때문에 본인의 삶은 물론 자신의 아들의 인생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이버리가 겪는 일들은 더 사면초가의 상황 들이다. 그는 이를 영리하게 해결해 나가지만, 그렇다고 15년 동안은 물론 15년 후의 그의 인생이 결코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루크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함이다. 삶의 어떤 곳에도 의욕 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던 그에게 아들이라는 존재는 삶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정도의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해 루크는 어쩔 수 없이 더 큰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루크의 아들인 제이슨 (데인 드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제이슨이 행한 행동들은 분노에 의한 것 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는 굴레에서 온 것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제이슨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운명의 굴레에서 조금이 나마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전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묘한 인상을 준다. 희망과 슬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하지만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런 장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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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과 '드라이브'에 이어 고독하고 외로운 한 남자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는데,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는 얼굴은 물론 삶의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뒷 모습은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브래들리 쿠퍼는 라이언 고슬링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가까운데, 오히려 이 둘이 영화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다거나 명확한 대칭 점에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브래들리 쿠퍼는 딱 본인이 맡은 캐릭터 만큼만 연기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캐릭터를 통해 그의 연기가 얼마나 무르 익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바 멘데스는 이 둘에 비해 비교적 적은 분량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삶의 고단함을 한 껏 머금은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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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눈빛을 선사한 배우는 데인 드한이다. 이미 전작 '크로니클'을 통해 단숨에 가장 주목 받는 배우로 거듭한 데인 드한의 매력을 이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첫 등장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이 녀석 눈빛이 그 사이에 더 깊어졌구나!'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흡입 력이 대단했다.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서도 그의 못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데인 드한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감독은 그를 잘 활용하고 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여러가지로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 전작 '블루 발렌타인'에 이어 또 한 번 만족스럽고 자신 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데렉 시안프랜스의 작품이자, 라이언 중에 최고라는(?)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가득 만나볼 수 있으며, 데인 드한이라는 적어도 최근 내 게는 가장 뜨거운 배우의 더욱 깊어진 눈빛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 아,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더 출연하고 있어요. 바로 로즈 번인데, 그녀를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 반갑더군요. 캐릭터도 나쁘지 않고!


2. 라이언 고슬링은 이렇게 이미지가 굳혀 가는가 싶은데, 보통 이러면 이제는 다른 걸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라이언 고슬링은 더 이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워낙 멋지니 굳이 변신하지 않아도.


3. 데인 드한은 정말 물건입니다. '크로니클'을 통해 발견했고, 이 작품을 통해 더 깊은 팬이 되었어요.


4. 그리고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장면을 이 영화에서 발견했어요. 레이 리오타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정말x100 무서웠습니다. 실제로 그가 나를 그렇게 쳐다본다고 생각 만해도 ㄷㄷㄷ 레이 리오타는 정말 무서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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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다시 도심으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단언컨대 신카이 마코토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호소다 마모루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이다. 심연을 파고드는 감수성과 아름다울수록 울컥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과 스토리 텔링은 나를 여러 번 울린 동시에 항상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도록 했다. 그런 그의 신작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2013)'의 소식을 처음 듣고, 올해 초 일본에 갔을 때 아니메페어에서 소개 영상과 부스를 보면서 '아, 이번에야 말로 그가 가장 잘하는 작법과 작화로 돌아오려나 보군!'하는 기대감을 더 갖게 되기도 했었다. 그의 전작 '별을 쫓는 아이'는 그의 팬들 사이에서 너무 지브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작화와 판타지 세계의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그 답지 않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별을 쫓는 아이'는 '초속5cm'와 같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으나 당시에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고, 시간이 갈 수록 주제곡 'Hello Goodbye & Hello'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되었다 (지금도 듣고 있음!).


그렇게 이번에도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은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영화였다. 이 세 가지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만족도도 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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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 오는 오전, 신주쿠 도심 속 공원에서 만나게 된 다카오와 유키노. 그 둘은 매번 비 오는 날이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학교와 현실이라는 곳에서 벗어나 있는 이 둘은, 점점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고대 하게 된다.


46분이라는 러닝 타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언어의 정원'의 스토리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초속 5cm'와 같이 긴 텀을 둔 감정의 변화와 심리 묘사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둘 사이의 감정과 이 감정이 싹트게 되는 날씨와 공간의 묘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심플 한 작품이 되기도 했다. 사실 '초속 5cm'나 '별의 목소리' 그리고 '별을 쫓는 아이'까지, 그 각각의 이야기가 더 울림이 컸던 건 주인공들의 사연의 절절 함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할애한 스토리 텔링 때문이었다 ('별의 목소리'는 25분짜리 단편이었음에도 그 절절 함이 잘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정원'의 두 주인공이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을 터뜨릴 땐 조금은 갑작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한 편으론 감정을 폭발 시키는 장면 없이 그냥 한 여름의 비처럼, 끝나버린 장마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버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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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깊이에 있어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는 참 매력적이었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작화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엄청난 디테일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특히 도심 속을 배경으로 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일단 작화 얘기를 떠나서 그의 작품은 도심을 배경으로 할 때, 우리가 흔히 놓치는 일상 속 장면들을 완벽한 영화적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인다. 매일 지나치는 지하철, 거리의 신호등, 교차로의 사람들, 심지어 방안과 집 앞의 평범한 풍경까지도, 신카이 마코토의 손을 거치면 무언가 감성을 잔뜩 머금은 곳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이 이 문구를 보면, 엄청나게 현실을 과장하여 표현 하나보다 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현실을 깨알같이 있는 그대로 (거의 보고 그리다시피) 표현하는 것이 이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이번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한 편으론 그의 이런 디테일 한 작화 수준이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제품들의 로고가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통 애니메이션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반대로 얘기하면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사물과 배경의 디테일에 유난히 더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거리에 세워진 광고 메뉴 판의 메뉴들까지도 표현되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그의 놀라운 작화와 디테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신주쿠를 한 두 번 다녀온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의 디테일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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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개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비'의 대한 표현이 참 좋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강도의 비가 등장하는데, 이거야말로 애니메이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비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과장 되었다기 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잘 살려낸 표현이어서 좋았다. 아마도 앞으로는 비가 내리면 적어도 한 번 쯤은 '언어의 정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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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신주쿠에 가고 싶네요. 저긴 이미 명소가 되었을텐데 이젠 좀 한적해졌을 테니 내년쯤 한 번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엔딩곡이 생각보다는 임팩트가 덜했어요. 전작들에 삽입되었던 곡 들이 워낙 강렬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곡은 그리 뇌리에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3. 아래는 올해 3월 도쿄 애니메이션 페어에 갔을 때 봤던 '언어의 정원' 부스




4. 또 아래는 지난해 3월 감독님이 내한했을 때 함께 사인도 받고 찍었던 사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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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질서와 균형, 굴레를 벗어나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그의 첫 번째 헐리웃 진출작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를 보았다. 두 번 보았다. 사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헐리웃을 통해 선보였던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는 달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작품이자 초호화 캐스팅으로, 상대적으로 더 큰 기대감을 가졌던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 년 전에 구입했던 원작 만화도 일부러 개봉 전 보지 않은 것은, 오롯이 봉준호의 영화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본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와 '하지만'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두 번을 연달아 보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결론적으로는 '역시' 생각할 거리와 이야기할 거리를 여럿 생산해 냈다는 점 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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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개발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빙하기를 가져오게 되 인류가 오로지 영원히 달리는 열차 안에 존재하게 된다는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테마를 그대로 보여주는 서두 이기도 하다. 꼬리 칸에 살고 있는 빈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맨 앞 칸으로 전진해 이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를 향해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체제 전복의 텍스트로 보기 쉽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보다는 오히려 질서와 균형 그 자체와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체제 전복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보기에는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며, 인물들이나 한 칸 한 칸 전진할 때 마다 등장하는 그 다음 칸의 모습 역시 꼬리 칸의 모습과 상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보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주인공 커티스를 중심으로 한 꼬리 칸 사람들의 분노나 억울함의 표출 등이 아니라 (만약 이것이 포인트였다면 영화는 없는 시간을 할애해서 라도 꼬리 칸 사람들의 고통을 초반에 더 묘사해야만 했을 것이다), 전진할 때마다 더 확고해지는 균형과 질서에 관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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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서 부 터 맨 앞 까지 한 칸 씩 전진한다는 설정은, 마치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처럼 한 칸 씩 전진할 때마다 더 강력한 적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거나 더 혹독한 조건을 만나게 돼, 결국 최종 보스와의 결투(?)를 자연스레 고대 하게 되는데, '설국열차'의 내용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칸 한 칸 전진하는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꼬리 칸과 맨 앞 쪽 엔진 칸의 사람들만 서로를 인지하고 반응할 뿐 중간에 위치한 다양한 사람들은 이 반란이나 억압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만약 이 영화가 계급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면 열차 칸이 엔진 칸에 가까워 질 수록 상하 관계를 더 분명히 했을 텐데, 영화는 초반 꼬리 칸 사람들이 멀리 나마 볼 수 있었던 그 영역을 넘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계를 등장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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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중간 이라고 만 표현해도 될 정도로 꼬리 칸의 주인공들이 엔진 칸으로 전진하는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풍경들은, 그 과정 정도로만 묘사될 뿐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그 칸의 성격에 따른 이슈나 담론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커티스 일행과 이를 막으려는 윌포드가 보낸 이들이 부딪히는 배경 장소로 밖에는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균형과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여러 번 극 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다양한 중간 칸 사람들의 모습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클럽에서 파티를 하고 약에 취하고(크로놀), 고급 식사를 즐긴다던가 여유롭게 사우나나 뜨개질을 즐기는 모습들은 '잘못된' 것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극 중 겪었던 것처럼 당황스러울 정도의 의아함을 주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 질서가 반드시 깨야 할 것이라든지, 잘못된 것이라는 일방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후반부 드디어 윌포드를 만난 커티스는 윌포드에게 이 계속 달려야만 하는 열차의 균형을 위해 질서 유지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윌포드의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편이다.  그렇게 윌포드를 증오 했던 커티스조차 그의 제안을 따라 그의 자리를 맡는 것이 이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결정인 동시에 그럼에도 그것이 가장 다수를 만족 시키는 방법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한다면 윌포드의 이 방법은 쉽게 말해 맘에는 안 들지만 그 것 밖에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화가 이 메시지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든 비유는 바로 수족관의 비유였다. 자연(自然) 상태가 아닌 한정된 상황에서 개체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조정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는데, 윌포드는 바로 이 원리를 열차의 모든 칸에 적용하여 남은 인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영화 속 사실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이렇듯 이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구세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대로만 가자는 단순한 텍스트는 아니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구세대의 상황과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만약 '설국열차'가 오롯이 커티스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더 단순 했을 테지만, 이 영화엔 커티스의 전진을 돕기도 방해하기도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다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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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는 내내 워쇼스키의 '매트릭스'를 떠올렸는데, 두 작품의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한 편으론 비슷하지만 잘 따져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매트릭스'를 떠올렸던 건 열차라는 작은 세계(하지만 곧 인류 그 자체)가 존재하기 위한 균형과 질서로서 성립되는 각 인물들과 열차 칸 들의 성격 때문이었는데, 윌포드는 마치 아키텍트와 같이 감정적이기 보단 전체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티스를 네오와 같은 구세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구원이나 체제 전복, 계급 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이기도 한데, 커티스는 오히려 이 거대한 질서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거대한 톱니 바퀴가 돌아가기 위한 제법 큰 또 다른 톱니 바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형태의 영화에서 이 자체가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윌포드와 길리엄이 같은 지향 점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였다는 점이나, 결국 이 거대한 질서를 위해 커티스가 윌포드의 후계자로 사실상 길러져 온 것 자체 말이다), 이 영화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달랐던 건 바로 그 다음, 그 다음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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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러한 구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의 결말을 보면, 무언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 그 허무함의 충격으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면, '설국열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상황에서 힘겹게 발휘된 주인공의 자유 의지를 통해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가 정말 현 시대의 암울함이나 미래의 어두운 면을 다루려 했다면, 아마 관객의 지지를 받았던 커티스가 결국 종극에 다다랐을 때 윌포드의 논리에 수긍할 수 밖에 없어 또 다른 윌포드가 되고 마는, 그래서 열차는 계속 달리고 남은 인류는 또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앞서 잠시 뒤로 미뤄둔 남궁민수와 요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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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남궁민수는 윌포드를 무찌르거나 엔진 칸을 차지하는 것 대신, 열차 밖을 탈출하고자 하는 계획을 말미에 드러내는데, 이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극 중에서도 설명했던 이누이트 족 여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극 중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요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남궁민수의 부인이 바로 이누이트 족 여인이라는 점을 밝혔는데, 극 중 남궁민수가 열차 밖을 나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 여인의 행동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녀가 열차 밖을 나가 몇 발자국 못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바로 깨닫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전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던 그 가능성에 대해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눈이 녹고 있는 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건, 영화가 허락한 열차 밖 세상의 주인공은 커티스는 물론이요 남궁민수도 아닌, 이 열차에서 태어난 요나와 열차의 동력으로 활용되었던 또 다른 어린 아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송강호와 고아성이 부녀 관계로 다시 등장하는 것 외에도 결말 부분에 있어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남겨진 아이라는 테마 때문일 것이다. 요나와 또 다른 아이에게만 생존 가능한 기차 밖 세상을 허락했다는 건, 이 영화가 어른이나 기성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론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반성의 잣대인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커티스에게도, 오래 전부터 열차 밖 세상의 가능성을 꿈꿨던 남궁민수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한 편으론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오히려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의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극 중 커티스가 내내 자신의 오래된 잘못으로 인해 고통 받고 스스로를 옥죄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 결말은 그들에게 진정한 속죄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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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움찔 하게 되었던 장면은 말미에 남궁민수가 급박한 상황에서 부탁을 하게 되는데, 요나가 정색한 얼굴로 '싫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요나의 성격이 좀 이상하고 유별나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동안 비교적 아버지를 잘 따랐던 요나가 극적인 순간에 와서 아주 단호하게 정 반대의 감정 표현을 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결말이 그러하듯 새로운 시대에는 남궁민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설국열차'는 결국 구세대의 종말과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빙하기라는 것 자체가 한 시대의 결말이자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구세대가 스스로 자초한 빙하기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종말(설국열차는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멸종, 종말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 했던 것처럼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종말의 과정에서 멸종되지 않고 살아 남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희망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분명 희망적이다. 혹자는 그렇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의 앞에 또 다른 먹이 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이 등장한 것을 두고, 절망적인 결말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러닝 타임 내내 보여주었던 구세대의 종말 만으로도 이 영화의 결말이 맞은 상황은 분명 싸워서 이겨내 살아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희망의 시대일 것이다. 봉준호의 '설국열차'는 그렇게 질서와 균형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굴레를 벗어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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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흥미로운 건 항상 여러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 그 자체에요. 봉준호 감독이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2. 세계관이나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게임 '바이오 쇼크'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3. 개인적으로는 틸타 스윈튼의 연기야 뭐 더 말할 필요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출연하는지도 잘 몰랐던 앨리슨 필의 등장이 더 반가웠어요!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4. 좀 아쉬운 점이라면 액션 연출이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었고, 영화 음악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듯 했어요.


5. 뭔가 더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정리가 안되네요 ㅎ 기회가 되면 봉감독님 만나서 직접 인터뷰도 하고 얘기 나누고 싶네요!! ㅎㅎ


6. 마지막은 <설국열차> 관련 제가 시도한 인증샷 들 ㅋㅋ




프로틴 블록과 함께 한 진정한 4D 관람 인증샷!



'Are you 냄궁민수?'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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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The Terror Live, 2013)

테러는 거들 뿐, 진실이 먼저다



의외의 복병이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했다면 하정우 외에는 없었던 그런 영화였다. 대략의 설정을 보고서는 오히려 신파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으로 볼거리 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그런 스쳐가는 영화 정도일 거라고 예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하정우라는 배우를 좋아하기에 극장을 찾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제목과는 달리 테러를 생중계하는 것은 영화적 구성 요소로만 사용될 뿐, 감독이 전하려는 진심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메시지에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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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 봤을 때 '더 테러 라이브'는 장르 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그 측면에서 시간을 지루하게 끄는 부분 없이 빠르게 진행되며 리듬감을 잃지 않는 것이 좋았다. 특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캐릭터를 설명하는 부분이 상당히 짧은 편이었는데 (사실상 영화가 시작되고 바로 사건이 발생하는 수준), 과감하게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은 전개 과정에서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흔히 한국영화에서 자주 발견하는 부분이 바로 쓸대 없이 가족이나 유머 코드를 삽입해 한참을 후반부의 신파를 위해 깔아둔다는 점인데,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이런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관객에게 아직 마음에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사건이 터지는 방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교적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전달해주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면 긴장감을 넘어선 긴박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긴박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빠른 전개가 결국 관객에게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거나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도 어쩔 수 없지 발생하지만,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지금의 영화가 선택한 방식이 더 나았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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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기대했던 바는, 한강 다리가 폭파 되는 테러 그 자체와 '다이하드' 나 '폰부스'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테러범과의 대결 혹은 커뮤니케이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의 핵심은 테러를 통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감독은 테러라는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처한 사회 계급에 관한 문제를 하려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는데, 여러 곳에서 중의적으로 등장하는 이 계급 사회의 묘사는 겉으로 보이는 테러 보다도 훨씬 더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계급 사회의 운영 도구로 퇴색되어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걸게 되는 언론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스럽지만 다시 금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 영화의 메시지 전달 방법은 너무 직접적이라 거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좀 더 세련되고 정리된 방법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반대로 직접적인 영화의 방식이 현재 관객들에게는 더 필요한 자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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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며 같이 영화를 본 이와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됐다. 며칠 전 서울 시청 광장에서는 수 많은 인파가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데 이를 보도한 뉴스는 아무 곳도 없지 않았냐고. 우리도 영화를 통해 전지적 시점에서 극 중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 보았으니 이런 생각도 하지, 아마 영화 속 일반 국민이었다면 눈과 귀를 막혀 조작된 채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냐고.


'더 테러 라이브'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며 현실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씁쓸하구만.



1. 이경영씨와 하정우씨가 동시에 등장하니 저절로 '베를린' 생각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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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블루레이

장인의 손길로 태어나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가 PLAIN에서 제작한 DP시리즈를 통해 국내에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영화 10편 중 한 편으로 꼽았을 정도로 인상 깊게 본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이었는데, 극장에서 보면서도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과연 출시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죠. 하지만 PLAIN과 DP를 통해 이 작품을 완성도 높은 퀄리티와 소장 가치 높은 타이틀로 소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멜랑콜리아' 블루레이에 대해 사진 위주로 소개하려 합니다.






배경에 깔린 포스터는 블루레이 발매 전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을 때 받아온 오리지널 포스터인데, 그 퀄리티가 정말 대단합니다. 포스터 종이의 질이나 디자인의 수준이나, 들인 노력이나 퀄리티가 오버라고 느껴질 정도의 결과물이었죠. 하얀 배경의 책자는 개봉 당시 이벤트로 한정 배포했던 짧은 책자인데, 이것 역시 단순한 팜플렛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쏠쏠한 이미지들을 시원한 컷으로 만나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죠. 이로서 '멜랑콜리아' 3종 세트가 완성되었군요!






사진을 통해서는 100% 표현이 안되는 부분인데, 아웃케이스를 로얄 아이보리 용지를 사용했고 캘리그래피 타이틀 및 로고 실크 에폭시 처리를 하여 품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즉, 손으로 캘리그래피 부분을 만져보면 얼마나 섬세하게 만들어졌는지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블루레이 아웃케이스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오버 스펙이 아닐 수 없겠네요.





아웃케이스를 제외한 블루레이 케이스와 소책자. 개인적으로는 블루레이 케이스의 메인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멜랑콜리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들 보다도 저 이미지가 더 마음에 들고, 일반적이지 않아서 더 좋구요.





케이스 안에는 블루레이 디스크와 작은 엽서 한 장이 수록되었습니다. 엽서의 뒷 면에는 PLAIN에서 출시될 다음 블루레이 타이틀인 '더 레슬러'에 대한 이미지가 수록되었습니다.





다른 DP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안에 일반판 속지가 추가로 들어있는데, 역시 DP용 버전이 더 마음에 드네요. 내부에는 프리오더에 참여한 DP 분들의 닉네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소책자에는 여러가지 글과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는데, 역시나 타이틀의 소장 가치를 한 층 더해주는 내용들이 수록되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짧은 글도 만나볼 수 있고.





영화 평론가 최은영 님의 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의 미로를 탐험하는 기이한 안내서'도 수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우울함의 끝과 시작'이라는 제목의 글도 수록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글이 수록되는 입장에서는 내 글이 담긴 페이지에 어떤 이미지들이 수록되었나 하는 것도 관심 사항인데, 이번 메인 이미지는 너무 마음에 드네요. 제목과 잘 어울리는 강렬한 이미지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다양한 읽을 거리는 물론 라스 폰 트리에의 다음 작품인 '님포매니악 (The Nymphomaniac, 2013)'의 홍보 컷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완성도 높은 타이틀에 제가 조금이나마 참여하게 되어 다시 한 번 PLAIN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영화 팬들을 위한 좋은 작품을 블루레이로 꾸준히 소개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영화로서 가능해진 거대 로봇과 괴물의 육박전



최근 가장 기대 작이었던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을 보았다. '퍼시픽 림'을 기대한 포인트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거대 로봇과 괴물이 대결을 펼치는, 일종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실사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후자 만으로도 이 영화는 기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만, 전자인 '길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 때문에 기대치가 더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다면 좀 더 스토리 측면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더 나은,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물론 이런 과한 기대치는 그의 팬이기 때문에 발동되었던 것인데, 결론적으로 이 높은 기대치가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퍼시픽 림'은 충분한 만족감과, 적당한 수긍,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퍼시픽 림'은 포스터의 홍보 문구에서도 말해주듯 규모와 스케일 그 자체인 영화다. 많은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그 크기에 포인트를 두곤 했는데, 아래의 비교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퍼시픽 림'에 등장하는 로봇들과 괴물들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크로버필드에서 살짝 등장했던 괴물이 겨우 반 정도 밖에 못 미치는 크기라니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까? 저 아래 세 번째 작게 표현된 검은 색이 바로 티라노사우르스다)


즉 이 영화의 핵심은 이 엄청난 크기를 관객이 실감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아이맥스 3D의 관람 환경은 적극 추천할 만 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저 그림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도의 규모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워낙 그 크기 대의 두 존재가 결투를 하다보니), 그렇다 하더라도 보는 내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음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 엄청난 크기의 두 존재가 미사일 등의 무기를 통해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질을 통한 육박전을 벌인다는 것 만으로도 이 작품의 볼거리는 사실 충분한 편이다. 이 정도 크기의 괴물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영화라니! 예전 심형래 영화에서 보았던 사람이 공룡 탈을 쓰고 들어가 연기한 공룡과 영구의 육박전 이후에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다. 이것 만으로도 여름 블록버스터로서의 매력에는 부족함이 없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많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팬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라면 전반적인 이야기의 구조나 전개에 관한 것일 텐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 역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라면 뭔가 이 로봇/괴물 액션 블록버스터의 배경 가운데서도 더 색다르거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퍼시픽 림'은 일반적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고, 한 편으론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도 더 나은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즉, '판의 미로' 같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런 여름 블록버스터에 녹여 냈다면 아마 그의 팬들에게는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작품의 인트로였다. 아마 보통 같으면 영화 한 편을 할애할 수도 있었던 이 시기의 배경과 카이주라는 괴물의 등장, 예거 시스템의 탄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그런 것이 있었다는 정도의 설명이 아니라, 한참이 전개된 다음의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 저 부분을 그냥 저렇게 한 줄로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전개였다. 하지만 만약 이 부분을 천천히 다 설명했더라면 (아마도 시리즈의 1편이 되었을) 이 영화에서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육박전을 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전형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덕후의 입장으로는) '아, 그래도 멋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어쨋든 기대했던 것보다는 이야기할 거리가 적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반대로 깔끔하게 즐길 만한 오락 영화라는 반증도 되겠다. 솔직히 완전 개인적인 팬심으로는 '퍼시픽 림'이 대박나서 하루 빨리 델토로가 론 펄먼이 더 늙기 전에 (이미 많이 늙었지만 ㅠ) '헬보이 3'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나중에 따로 기회가 되면 장문의 글을 써보고도 싶은데, '헬보이'는 3편이 나와야만 1,2편의 존재 이유가 성립하는 작품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3편은 꼭 나와야 한다.



1. 보면서 '에반게리온'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예거는 흡사 초호기. 드리프트는 싱크로와 겹치고 (디테일은 좀 다르지만). '에반게리온' 팬으로서 이제 슬슬 실사화를 기대해봐도 되는 건가 싶다 가도, 그러면 안되지 를 새기곤 합니다 ㅎ


2. 극 중 마코의 어린 시절 역을 연기한 아역 배우가 참 귀엽고, 연기도 잘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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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뉴튼' 역을 맡은 찰리 데이는 정말 J.J.에이브람스와 닮았더군요. 출연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도 같고 ㅋ


4. 아이맥스 3D를 추천합니다. 저는 기회가 되면 아마도 물이 막 튈 4D로도 한 번 보고 싶네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에 있습니다.


 



장고 :  분노의 추척자 _ 블루레이 리뷰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언제나 유머와 수다, 그리고 반골 기질이 돋보이는데 그의 최신작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역시 그랬다. '장고'라는 이름에서부터 전통적인 서부 극의 이미지가 짙게 풍기는데,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과 프랑코 네로가 장고 역을 맡았던 1966년 작 '장고 (Django)'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서부극은 배경으로만 차용했다고 해도 좋을 또 다른 타란티노의 영화이기도 하다.


즉 타란티노는 '장고'라는 서부 극을 통해 온고지신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당시의 오리지널 작법에 더 가까운 서부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더 나아가 미국 역사에서 묵과되어 왔던 흑인 노예 (인종 차별)제도에 대한 불합리함을 자신 만의 방식으로 토해내고 있다.






얼핏 보면 전통적인 서부 극의 주인공이 백인이 아닌 노예 출신의 흑인이라는 것 정도의 단순 뒤집기로 볼 수도 있는데, '장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장고(제이미 폭스)가 흑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시선과 차별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그가 말을 타고 나타났을 때 그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모습은, 아니 흑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를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씁쓸한 농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장고가 본인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 여기에 불합리함을 평소 느껴왔다는 것, 그래서 자유 인이 되었을 때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시선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다른 영화의 주인공들에서도 느껴지는 일반적인 측면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노예 제도를 벗어나 홀로 주인이었던 백인들을 처단하는 흑인 장고의 활극이었다면 재미있는 영화는 되었을지 모르나 특별한 영화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자신이 언젠가 제대로 하긴 할 것 같았던 서부극을 연출하면서, 단순한 장르적 오마주나 재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도 타란티노 영화는 보는 맛이 있는데 말이다.






'장고'가 흥미롭고 인상적인 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한 장고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닥터 슐츠는 타란티노가 만든 수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일단 그가 백인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독일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흔히 들 이렇게 일반적인 설정을 뒤집는 영화 라거나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재평가하는 영화들을 보면, 그 가운데도 깨어 있는 이가 있었다라는 식의 면죄부 적인 설정이 등장하곤 하는데 타란티노의 영화엔 당연히 그런 자비로움이나 대충 넘어감은 없다. 바로 그 핵심적인 요소가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배우를 통해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로 세련되게 표현되고 있다.


▽ 다음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닥터 슐츠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사실 장고를 저렇게 도와야 할 만한 이유가 크게 없어 보이는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오직 슐츠 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된다. 즉, 그가 장고를 돕게 되는 과정들을 인정이나 도움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의 연결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포인트일 것이다.


슐츠가 처음 장고를 만나게 된 것도 현상금을 얻기 위한 사적인 이유 때문이었고, 이후 그와 파트너가 되고자 했던 것도 거창한 노예 해방의 의의가 아닌 장고의 능력을 본 뒤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나중에 목숨까지 버려가며 장고의 아내를 구하려고 한 것도 쉽게 말해 노예상인 칼빈 캔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동거지에 배알이 꼬였기 때문이다.





타란티노가 '장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슐츠를 설명하는 동시에 이 영화 전반에 깔린, 그 근본 없는 자존심에 대한 비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칼빈 캔디와 슐츠와의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이미 벌어질 일은 다 벌어졌고 다 종료되어 서로의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였지만, 캔디와 슐츠는 각각의 이유로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캔디는 돈을 벌기는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무언가 자신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 시켜야만 성이 찼을 터이고 (그것이 고작 악수하는 것이라도), 그 악수 정도 그냥 해주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캔디의 행동 하나하나가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슐츠 역시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캔디를 (본인 역시 죽을 걸 알면서도) 결국 죽여야 했던 것이다.


'장고'의 내러티브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참고 억눌린 정서를 그냥 참고 넘기려다가(넘겨주려 했는데) 결국 화를 돋군 이로 인해 폭발하게 되는 점인데, 그 '참고 있는' 이와 '계속 신경을 건드는 이' 사이의 긴장감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흥분되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결국 참지 않고 화끈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설사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들은 그래서 호 불호도 강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 스포일러 끝


한 편으로 '장고'는 전작 '바스터즈'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 편에서도 그냥 뒤집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 만의 다소 과한 방식으로 해소 했듯이, 이번 작품에서 역시 후반부의 총격 씬은 '킬 빌'의 총기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과함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장면을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처음 보았을 땐 보여지는 측면의 재미나 영상미 적인 측면 만을 주목했었는데, '장고'에서부터는 더욱 확연히 메시지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재미나 영상미가 포인트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혹은 울분의 포효처럼 보였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뭔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진지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쿨함을 유지하며 유머와 조소를 섞은 뒤에 마지막에 가서는 피와 살육으로 피해자 혹은 고통 받던 이들의 울분을 토해 내곤 하는데, '장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장고'의 마지막 총격전은 잔인한 장면이 많았음에도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볼 수 있었다.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다양한 장르의 오마주를 선보이던 타란티노가 언젠가는 한 번 꼭 만들 줄 알았던 서부 영화이자, 단순히 오마주를 넘어서 그냥 60년 대 당시 서부영화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만든 오리지널리티는 물론, 사회적 약자의 울분을 분노로만 일방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3자를 통해 극히 상식적으로 표현한 메시지가 참으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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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최신작다운 우수한 화질이나 최근 출시된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는 영상 자체의 성격이 더 부각된 영상이기에, 최신 액션 영화나 드라마의 칼 같은 날카로움과 쨍한 화질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인트로 장면에서는 강한 대비로 인해 강렬하고 인상 깊은 화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후 부터는 좀 더 부드러운 화질을 평균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어두운 장면에서의 표현력도 나쁘지 않고 클로즈 업 장면에서는 역시 블루레이 다운 화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중반 이후 캔디 랜드 장면부터는 붉은 조명 빛이 주가 되는 비교적 어두운 장면들이 많은데, 전반적으로 붉은 화면의 디테일이 매우 뛰어난 편은 아니다. 특히 영상의 포커스에 있어서 디테일 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감의 표현 쪽에 더 집중한 영상인지라 화질 측면에서는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배경, 사물의 디테일 체크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상의 아쉬움은 화질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본래 영상의 의도된 점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실제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화질이 좋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을 정도로, '장고'는 칼 같고 선명한 화질 보다는 서부극의 느낌이 강한 동시에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각 시퀀스마다의 톤이 강한 영상을 담고 있다. 오히려 극장보다는 블루레이를 통해 캔디 랜드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조명의 장면들과 클라이맥스의 대 혈전은 더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전달 된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총격 씬이 많은 영화답게 화려함과 임팩트를 모두 갖추었다. 일단 영화를 보는 순간 구매 생각부터 하게 되는 사운드 트랙의 강렬함이 사운드로 그대로 전달 된다. 타란티노 영화의 수록 곡들이 하나 같이 좋은 것은 이제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장고'의 수록 곡들은 원작인 1966년 작 '장고'에 수록된 곡들이 다시 빛을 발할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보컬과 올드 한 악기 소리들이 귀에 착 와 감긴다.




(오리지널 서부극 느낌이 물씬 나는 타이틀 시퀀스에 흐르는 Luis Bacalov와 Rocky Roberts의 'Django'는 단 번에 보는 이를 화면 속으로 끌어 들인다)


'장고'의 총격 씬 가운데 초 중반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갑작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그 갑작스러움을 배가 시켜주는 것은 바로 그 순간 반짝하는 사운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서부터 발사 시에 발생하는 더 큰 소리까지 (근래의 작은 권총 격발 시에 비하면 더 큰 소리). 총격 씬 만으로도 블루레이 사운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들려준다. 클라이맥스와 그 이전 총격 씬은 그야말로 옆집에 사람이 있다면 리모컨을 손에 들고 볼륨을 예의 조작하며 봐야 할 정도로 강렬한데, 단순히 격발음 뿐 만 아니라 총알이 나무로 된 벽과 사람의 육체에 박히고 튀는 소리들이 정말 피가 사방으로 튀듯 온 방을 휘젓기 때문이다. 공간감과 파워 모두 만족스러운 사운드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크게 총 4가지 정도를 수록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Reimagining the Spaghetti Western'으로 극 중에서 선보인 말들이 동원된 액션 촬영에 관한 이야기와 스턴트의 뒷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실 관객은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장고'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말(Horse)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말이 함께하는 다양한 스턴트 장면을 촬영하면서도 말과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장면들을 시도해야 했기에 쉽지 않은 촬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전설과 선배를 존중하는 타란티노답게 이 스턴트를 위해 이 업계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이들을 영화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이 부가영상은 바로 이 스턴트를 함께 만든 스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Costume Designs of Sharen Davis'는 이 영화의 의상 디자인을 맡은 샤런 데이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시대극인 만큼 고증과 창의력이 더해진 특별한 의상 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Remembering J. Michael Riva'는 이 작품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은 J. 마이클 리바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아쉽게도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동료들의 이야기와 그가 남긴 디자인 작품들로 만나볼 수 있다. 마이클 리바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아이언 맨 1,2' 등 최근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 '장고'가 유작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블루레이 컬렉션과 '장고' 사운드 트랙의 짧은 프로모션 영상이 각각 수록되었다.




[총평]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타란티노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 좀 더 흥미로운 요소가 가미 되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 작품이었다. 특히 색다른 연기를 보여준 디카프리오와 장고 역을 맡아 열연한 제이미 폭스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바스터즈'때 와는 또 다른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선보인 닥터 슐츠를 연기한 크리스토프 왈츠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했다. 추가로 아직 1966년 작 '장고'를 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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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더 자이언트 킬러 : 블루레이 리뷰
동화와 판타지가 더해진 모험 영화


'엑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브라이언 싱어의 2013년 작 '잭 더 자이언트 킬러 (Jack the Giant Slayer)'는 유명한 동화인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에 거인 설화까지 더해져 볼거리를 더한 블록버스터 모험 영화다. 여기에 아역 출신으로 최근 풋풋한 청년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니콜라스 홀트가 주연을 맡고,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이완 맥그리거, 스탠리 투치, 이안 맥셰인, 빌 나이, 에디 마산 등 무게 감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브라이언 싱어라는 감독과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 만으로 예상해 보면, 무언가 특별한 판타지 블록버스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데, 그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큰 기대 없이 접한다면 킬링 타임 용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험 영화라 하겠다.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일단 고민이 많지 않은 심플한 영화다. 무언가 별 것 아닌 것을 대단한 반전처럼 후반 부에 꺼내놓는 모험 영화들에 비하자면, 이 영화는 빠른 전개를 통해 불필요한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 중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들이 많이 부족한 편인데, 마치 TV시리즈의 극장 판 에피소드를 보듯, 간결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부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서 당황스러울 정도의 생략을 느끼지 못하는 점은, 베이스에 깔린 이야기가 관객들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그 전개와 결말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만들었던 브라이언 싱어를 기대했다면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치밀한 전개보다는 '잭과 콩나무'의 판타지와 '거인'이라는 볼 거리를 최대한 활용한 12세 관람가의 오락영화로 보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처음 거인이 등장할 때의 묘사는 이 영화가 앞으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후 거인들의 활용을 보자면 아무래도 12세 관람가답게 조금은 심심하고 평범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거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 중반부 까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역시 이 영화에서 기대한 바는 후반부 왕국의 성을 배경으로 거인들과 펼쳐지는 액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뭐랄까 조금은 팀 버튼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액션 시퀀스였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무래도 조금 귀여운 액션 씬인데, 반대로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는 좀 더 무리 없는, 그러면서도 거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는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시퀀스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보다도 더 기대했던 이완 맥그리거, 스탠리 투치, 이안 맥셰인, 에디 마산의 활용이었다. 이완 맥그리거는 언제나 선명한 그 억양과 함께 역시 빛이 나고는 있지만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으며, 스탠리 투치와 이안 맥셰인도 본인들의 연기력을 펼치기엔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에디 마산은 그 기회 조차 가져보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팬들에게는 더 아쉬울 수 밖에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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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조금 아쉬웠지만 화질과 사운드는 이렇게 2% 부족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 정도로 레퍼런스 급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브라이언 싱어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비교적 사실감이 느껴지도록 많은 부분에 공을 들였는데, CG를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현실감 있게 보이기 위해 실제로 만든 요소들을 많은 부분 더한 것이 이 모험담에 좀 더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바로 이 현실감이 블루레이의 수준급 화질을 통해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다.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최대 1920*1080)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왕국의 갑옷과 의상들의 디테일 표현은 물론, 금속의 질감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클로즈업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은 대신 넓은 풍광을 잡은 장면들에서도 뭉개지지 않는 선예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인들의 피부 표현력을 통해 다시 한 번 우수한 화질을 확인할 수 있는데, 굉장히 여러 가지 잡티와 흉터, 거스름 등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진 피부 겉면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거인들이 착용하고 있는 갑옷의 메탈 느낌도 녹이 슨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표현이 돋보였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는 레퍼런스 급 화질보다 더 만족스럽다. 일단 이 영화는 사운드 측면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장면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판타지와 거인, 거인들과 병사들이 펼치는 공성전이라는 것만 봐도 기대되는 사운드가 있는데, 그 기대에 걸 맞는 화끈한 사운드를 유감없이 들려준다.






거인들이 등장하기 전 거대한 콩 나무가 하늘로 솟아 오를 때의 사운드도 역동적인데,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장면은 일단 음장감이 엄청나서 절로 사운드 볼륨을 줄이게 만들 정도다. 처음 거인이 등장할 때의 사운드는 마치 '쥬라기 공원'에서 티렉스가 등장하는 장면과 흡사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후 거인들이 단체로 등장했을 때와는 분명 구분되는, 사운드의 다양함과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에서의 몰입도는 사운드가 대부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인이 나오는 영화에 딱 맞는 박력과 크기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스페셜 피쳐의 메인 격이라 할 수 있는 'Become A Giant Slayer'는 제작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메뉴가 아닌 콩 나무를 오르는 게임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주연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의 안내로 하나씩 다른 부가영상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첫 번째 'Know Your Enemy'에서는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의 인터뷰와 극중에서 모션 캡쳐 연기를 선보인 빌 나이의 촬영 장면이 수록되었다.






그 외에 나머지 부가영상들에서는 갑옷과 왕국 의상 등 다양한 의상에 관한 이야기와 거인을 표현해낸 모션 캡쳐와 CG파트, 그리고 배우들이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장면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부가 영상들은 짧게는 2분, 길게는 8분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화의 컨셉에 맞는 소개 방법과 영상 전체에 추가되어 있는작은 꾸밈 표현들로 인해 내내 심심하지 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삭제장면' 에서는 콩 나무와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프롤로그의 확장 버전과 잭이 콩 나무 위 세상에서 겪게 되는 작은 모험 장면 등이 수록되었다. '개그 릴'에서는 약 3분 분량으로 짧은 NG 장면들이 수록되었다.


[총평] '잭 더 자이언트 킬러'는 연출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와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한 출연진로 인한 기대에 비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영화이긴 하지만, 12세 관람가로 좀 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인 동시에, 레퍼런스 급 화질과 사운드로 블루레이를 보는 재미는 충분한 타이틀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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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 Z (World War Z, 2013)

진정성 있는 재난 영화



그냥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 영화 정도로만 알고 보게 된 '월드 워 Z'는 일단 좀비 영화는 아니었다. 그리고 '007 퀀텀 오브 솔러스'와 '네버랜드를 찾아서' 등을 연출한 마크 포스터의 작품이기도 했다. 정말 큰 기대 없이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월드 워 Z'는 흔한 재난 영화들 사이에서도 제법 괜찮은 진정성을 담은 영화였다. 그리고 거기에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는, 자신이 배우로서 갖고 있는 아우라를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다.



ⓒ  Plan B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좀비 영화라기 보단 재난 영화에 속할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한 가족이 대 재난을 만나 겪게 되는 이야기이고, 그 재난의 종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좀비화 이기 때문이다. 물론 좀비라는 특성이 아주 활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몇몇 장면은 그 특성으로 인해 가능한 장면들도 있었을 만큼), 좀비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한 내러티브였기에 오히려 이 영화는 좀 더 집중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다시 보며 재난 영화로서의 성격을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는데, '월드 워 Z' 역시 일반적인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롤렌드 애머리히의 영화들 보다는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좀비, 액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  Plan B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일단 가장 좋았던 건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제리 레인의 한계였다. 보통 이런 재난 블록버스터의 경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최고의 액션 영웅이던 주인공이 재난으로 인해 다시 호출되어 어쩔 수 없이(?) 재난을 모두 돌파하는 내용인데, 결과로만 보자면 이 영화 속 제리 레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액션의 측면에서 한정적인 능력으로 그려진 것이 더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액션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좀 줄었고, 가족의 이야기가 더 전면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제리 레인이 람보나 제이슨 본처럼 엄청난 액션 영웅이라 좀비들을 격퇴하는 모습과 여기에 앞장서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아마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특수부대와 제리 레인이 함께 등장할 때를 보면 제리의 역할은 한정적으로 그려지고 있고, 이후 혼자 좀비들과 상대하게 되었을 때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전개 방식이라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 것과는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  Plan B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엔딩을 좋아하기도 한데 (많은 분들이 엔딩 때문에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비전은 정확히 거기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즉 과한 욕심을 부려서 그 이후의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릴 수도 있었겠으나, 영화는 딱 제리 레인 가족의 이야기 해결에서 멈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전 지구적 재앙의 시작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제리의 가족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가 더 큰 진정성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즉, 대 재앙과 맞서는 더 큰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단 한 가족의 작은 이야기를 더 와 닿게 묘사해야 하는 기능을,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진정성과 연기력으로 커버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드 워 Z'는 브래드 피트의 필모 가운데 특별히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지만, 반대로 브래드 피트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작품이 가능했을까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lan B Entertainment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습니다


출시가 된 지는 조금 되었는데 뒤늦게 소개하게 되었네요.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2011년 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블루레이가 국내에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국내 협소한 시장 탓에 하마터면 출시가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프리오더 후반부에는 더 적극적인 판매가 이뤄지면서 무리 없이 발매될 수 있었네요. 개인적으로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해외 판 구매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라이센스 반으로 출시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블루레이에도 제가 제작에 조금이나마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로 꾸민 전면과 영화 속 '서커스'의 문장을 담은 후면 디자인 입니다. 게리 올드만이 서 있는 저 이미지를 참 좋아하는 터라, 블루레이의 커버도 만족스럽네요. 심플하니 좋습니다.






투명 케이스로 제작된 블루레이 타이틀 내부에는 디스크와 함께 라이센스 블루레이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소책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소책자를 포함했을 경우 아웃케이스를 만들어 외부에 수록하는 방식을 택했었는데, 근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케이스의 비닐이 우는 문제가 발생하여 이번에는 내부에 소책자를 포함하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대신 소책자의 사이즈는 조금 작아진 편입니다. 오히려 좀 더 아기자기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에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점은 제 글이 실린 것 보다도 두 감독 님의 멋진 추천사가 포함된 것인데, 굉장히 촉박한 일정으로 부탁을 드렸었는데 흔쾌히, 그것도 짧게 써주신다고 해서 정말 한 문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빌어 또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박찬욱 감독 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연락하게 되었는데, 처음 박감독 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을 때의 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ㅎㅎ 또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현재 차기 작 자료 조사 중이시라 바쁘실 텐데, 긴 추천 글은 물론 박찬욱 감독 님과도 적극적으로 연결해주신 저의 절친(?) 이고 싶은 류승완 감독 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번 '베를린' 인터뷰 차 뵈었을 때 감독 님이 팅테솔을 참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부탁 드렸었는데, 바쁜 일정에도 멋진 글을 보내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곧 '베를린' 블루레이가 출시될 예정인데, 그 때 '베를린' 블루레이를 들고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지네요~






이번 소책자는 제가 참여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깨알 같은 읽을 거리 들이 제법 있습니다. 오히려 이미지 컷들보다도 읽을 거리가 많은 점이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한 번 영광스럽게 제 글도 소책자에 수록이 되게 되었습니다. 국내 정식 출시된 블루레이에 제 글이 수록된 것이 이번이 아마도 일곱 번째 인 것 같은데, 모두 다 제 돈을 들여서라도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들이라 참여하는 자체가 몹시 뿌듯한 프로젝트 들이었습니다. 이번 '팅테솔'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누군 가는 이렇게도 보았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씩 읽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 '팅테솔' 블루레이는 화질과 사운드, 그리고 소책자는 물론 기존 극장 판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오역이 모두 수정된 버전이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분들이라면 전혀 다른 영화를 보시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여러 번의 중역과 번역, 검수를 통해 탄생한 완성도 높은 자막 만으로도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수록한 블루레이 타이틀 발매 소식으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클락 켄트는 없고 칼엘만이 남은 슈퍼맨



브라이언 싱어의 2006년 작 '슈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가 있었지만, 이를 뒤엎고 다시 리부트를 시도한 새로운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을 보았다. 잭 스나이더의 연출 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강하지만, 어찌 되었든 DC코믹스의 또 다른 히어로인 배트맨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 중 하나 인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든든한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의 화려함과 액션 연출이 더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몹시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즉,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에게 기대되고 예상되는 바는 분명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은 물론, 데이빗 S.고이어와 함께 스토리에도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분명 잭 스나이더의 영화라는 점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그렇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보게 된 새로운 슈퍼맨 영화는, 기대에서 많이 벗어나는 의아함과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만족스러움이 교차하는 영화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아쉬운 점이 많지만, 한 번쯤은 이런 슈퍼맨을 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일단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 빠른 전개였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를 시작하는 리부트의 첫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빠른 전개였다. 그 속도는 놀라움을 넘어서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건 슈퍼맨이라는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 들이냐 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와 콘텐츠는 영화로서는 배트맨 보다 더 깊은 이해 도가 있는 작품이었고 (배트맨은 대신 그래픽 노블을 통한 정보가 많았고), 무엇보다 클락의 청년 시기를 다룬 '스몰빌'이라는 TV시리즈를 남들이 '도대체 클락은 언제 나느냐'며 하나 둘 씩 떠날 때에도 꿋꿋이 10년을 기다리며 그 대단원의 피날레를 맞이했던 팬으로서 특별한 애정이 있는 작품이기에 '맨 오브 스틸'은 스토리와 영화가 갖고 있는 철학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다. 


물론 '스몰빌'처럼 10년 동안 날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 사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경우 난 적이 있긴 했지만) 클락이 슈퍼맨이 되는 과정에서의 오랜 시간은 이 텍스트에 중요한 테마이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슈퍼맨이 갖는 갈등은 클락 켄트와 칼엘 이라는 두 존재 사이 에서의 갈등, 즉 외계인으로서 지구인을 구해야만 하는 구세주로서 칼엘의 운명과 그저 스몰빌에서 좋아하는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은 클락 켄트로서의 삶 사이에서 오는 괴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슈퍼맨의 능력을 각성하고 사용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클락이 어떻게 크립톤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신과 같은 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지는 오랜 갈등과 고민 끝의 결정이기에 소중히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맨 오브 스틸'에는 이런 면에서 보기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슈퍼맨이 된다. 따지고 보자면 '맨 오브 스틸'은 그 제목처럼 클락 켄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칼엘 혹은 슈퍼맨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반 크립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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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 작품의 아이러니는 바로 그 운명론에 있는데, 극 중 칼엘은 크립톤에서도 유일하게 자연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크립톤인들이 태어날 때 부터 그 직업과 역할에 맞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슈퍼맨이라는 텍스트의 딜레마는 바로 이 운명론에 있다. 그렇다고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이 이 운명론과는 무관하게 성립된 캐릭터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맨 오브 스틸'의 스토리는 바로 여기서 부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미 운명이 정해진 채로 태어나는 모든 크립톤 인들 과는 달리 유일하게 그 운명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난 칼엘이, 전혀 자유롭지 못한 또 다른 정해진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냥 벌어진 상황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의미로 칼엘을 태어나게 하고 지구로 보낸 조엘 스스로가, 칼엘에게 끊임없이 운명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아이러니다. 이 부분은 달리 돌려 이해해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다른 슈퍼맨 영화와는 달리 크립톤의 이 배경을 강조했기에 더욱 이후의 운명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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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맨 오브 스틸'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로 대표되는 가족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맨 오브 스틸'에는 사실상 없는 클락 켄트이기에 더불어 비중이 축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의 연기와 캐릭터는 모두 좋지만 그 비중이 이 캐릭터와 스토리의 정수를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중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스몰빌'에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는 클락에게 칼엘로서의 운명도 물론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너는 그냥 우리 아들 클락이야'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운데, 이번 작품에서 조나단이 '너는 외계인이고 너를 낳아준 친 부모가 어딘가 있을 거야' 라는 말을 단번에 꺼낼 땐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스몰빌'의 조나단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영화 초반에 이렇다 할 설명이 다 오가기도 전에 어린 클락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조나단의 모습을 보니, '맨 오브 스틸'이 얼마나 클락 켄트의 비중을 적게 두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맨 오브 스틸'에도 슈퍼맨의 텍스트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클락 켄트로서의 요소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방금 아쉬운 점으로 지적한 조나단 켄트와 마사 켄트와의 따듯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도 있고, 그 몇몇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조드와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로서는 이 부분이 단기 속성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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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슈퍼맨 영화임은 분명하다. 방금까지 얘기한 아쉬운 점은 다른 취향을 갖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슈퍼맨이라는 이야기에 그다지 깊고 특별한 애정보다는 극장 판 영화로서 2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 만으로 충분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맨 오브 스틸'의 전개 과정은 슈퍼 히어로가 주인공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딱 어울리는 정보 량과 속도였으며, 긴 시간을 들여 일반인이 슈퍼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물론 슈퍼맨의 경우는 태생부터가 다르지만) 바로 날기도 하고 슈퍼맨으로서의 등장도 빠른 것이 오히려 기다렸던 전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러한 취향을 비꼬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짜임새에는 100% 동의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의 리부트에 걸맞게 처음부터 그 과정을 절반 이상 소개하고, 본격적인 액션은 그 다음으로 미뤘었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당시 관객들과 스튜디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까지 더해진 마당이라면 (브라이언 싱어의 리부트를 다시 뒤엎는 데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의 대성공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런 액션 히어로로서의 면면이 강조된 슈퍼맨의 탄생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슈퍼맨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히어로에 비하면 그 동안 슈퍼맨 영화에서 보여준 액션은 그 크기가 무언가를 들어 올리거나 막아 내는데에 집중된 편이긴 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번 쯤은 '맨 오브 스틸'과 갖은 액션 영웅 슈퍼맨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은 그런 액션 영웅 슈퍼맨을 가장 잘 묘사한 액션 시퀀스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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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스틸'의 액션 시퀀스는 정말 현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데 그저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말도 좀 아이러니지만 슈퍼맨이 등장한 영화의 액션 장면 가운데 가장 현실 감 넘치는 액션이었는데, 슈퍼맨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갈 때의 묘사나 조드 장군 일당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면, 만약 실제로 저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이가 전투를 벌인다면 아마도 저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액션 묘사가 많았다. 특히 슈퍼맨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캐릭터를 담은 영상의 경우, 너무 그 속도 감을 담으려 한 나머지 현실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맨 오브 스틸'의 비행 장면은 카메라 웍이 살짝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설득력 있는 비행 시퀀스가 아니었나 싶다. 결론적으로 벽이 부서지고 건물이 셀 수 없이 부서지고 관통 되고 하는 액션들이 오버스럽기 보다는, 저런 능력자들이 전투를 벌인다면 저 정도가 맞겠다 싶은 연출로서, 잭 스나이더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갈등 하는 영웅이 아닌 분노하고 싸우는 액션 영웅으로서 관객들이 슈퍼맨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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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클락 켄트를 사실상 피해왔던 '맨 오브 스틸'은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클락 켄트의 이야기를 꺼낼 듯한 제스처를 한다. 기존에 시리즈와는 로이스 레인과의 관계도 전혀 다르고, 성장 과정에 대한 묘사의 비중도 전혀 달랐으며, 지구인들이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달랐는데, 과연 속편은 어떤 이야기와 속도로 전개될지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반응에 따라 뒤엎지 말고 잭 스나이더에게 좀 더 맡겨보는 것이 좋겠다. 



1. 집에와서 부족한 점이 무언가를 떠올려봤는데 역시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의 부제더군요. 그 곡을 다시 들어보니 단 번에 알겠더군요. 더불어 '맨 오브 스틸'엔 슈퍼맨이 우아하게 하늘을 유영하는 장면도 없는데, 그 장면을 못본게 아쉽더군요.


2. 아마도 지미 올슨이 나오지 않은 거의 유일한 슈퍼맨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어린 시절 장면이 잠시 나올 때 라나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데 '스몰빌' 팬으로서 어찌나 반갑던지 ㅎㅎ 그리고 후반부에 깨알 같은 루터-콥 로고들도 재미있었어요.


3. '스몰빌'에 출연했던 배우가 '맨 오브 스틸'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스몰빌'에서 닥터 에밀 역할을 맡았던 알레한드로 줄리아니가 초반 등장하더군요. 참고로 전 톰 웰링의 팬이기도 해서 그가 연기하는 극장판 슈퍼맨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무 늦어버리긴 했죠;; 아쉽네요. '스몰빌'이 너무 길었어요 ㅠㅠ


4. '매트릭스 레볼루션'을 볼 때도 '드래곤볼'의 실사화를 기대해보기도 했었지만, '맨 오브 스틸'을 보니 잭 스나이더가 '드래곤볼'을 한 번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더군요. 적어도 액션 장면 만큼은 이질감 없이 황홀하게 만들어 낼 것 같아요.


5. 역시나 새 시대의 슈퍼맨도 안경만 쓰면 못알아보는 건 계속되려나 보네요 ㅎ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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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TV시리즈와 함께 개인적으로 가장 기다렸던 인생의 작품 '카우보이 비밥' TV시리즈의 블루레이가 드디어 국내에 출시됩니다. '카우보이 비밥'의 엔딩 곡이던 'Real Folk Blues'를 블로그 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이 작품은 저에게 있어 정말 대단한 영향은 물론, 수 많은 돈을 쓰게 했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또 한 번 크게 질러야 만 할 상황이 곧 벌어질 것 같네요. 일단 기본적인 스펙 소개를 하자면...



카우보이 비밥 TV시리즈 UCE (7Disc) [탄생 15주년 기념 스틸북 케이스 한정판] 블루레이
우리말 더빙 포함 스토리 보드+총 32P 해설집+부직포 포스터를 고급 수납박스에 담아서 선착순 증정


화 면 비: 4:3
오 디 오: 일본어 DTS-HD 5.1CH, 일본어 LPCM 2.0CH, 한국어 Dolby Digital 5.1CH
자 막: 한국어
상영시간: 약 652분
지역코드: A
디 스 크: 7disc


BD Disc.1
- 본편 (약 47분,에피소드 1,2)
- 코멘터리 (약 24분,에피소드 1)
- 부가영상
*논크레딧 엔딩
*PV & CM
*TANK! 풀사이즈판 뮤직 클립 (디렉터:HARU)-FROM Session #0
*TANK! 클럽 리믹스판 뮤직클립 -UK 버전- (디렉터: HEX & DJ FOOD)-FOROM Session #0
*픽쳐드라마 -아인의 여름 방학
BD Disc.2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3,4,5,6)
BD Disc.3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7,8,9,10)
BD Disc.4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11,12,13,14)
BD Disc.5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15,16,17,18)
- 코멘터리 (약 24분,에피소드 17)
BD Disc.6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19,20,21,22)
BD Disc.5 - 본편 (약 98분,에피소드 23,24,25,26)
- 코멘터리 (약 24분,에피소드 24)


6월 26일 출시예정

정가 : 198,000원


이미 DVD 시절 우수한 퀄리티의 박스세트로 출시되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BD로 화질/음질이 업그레이드 된 것을 제외하면 새로운 부분은 없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바로 그 화질/음질 업그레이드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구요. 참고로 4:3 화면비를 보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는데, 비밥은 당시 TV시리즈로 제작된 작품이라 블루레이로 옮겨와도 본 화면 비인 4:3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와이드 화면비로 비밥을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본이 4:3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일부러 16:9를 만드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디스크 수량과 패키지를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가격이기도 하지만, 정말 선뜻 지르기 쉽지 않은 가격인 건 사실이네요. 더군다나 기존 발매된 '자이언트 로보' 패키지를 보았을 때 스틸북 형태로 발매되는 비밥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일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는 부분도 있구요. 정말 '카우보이 비밥'이 아니면 지갑을 열기 쉽지 않은 가격인 것 같습니다.


블루레이가 나오면 그에 맞춰 다시 시작 하려다가 못하고 있는 '카우보이 비밥 다시 보기' 연재를 이어가야겠네요. 어서 블루레이로 만나보길 고대 합니다!


마지막은 블루레이 출시 소식 기념, 스파이크 스피겔 피규어 짤방!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세월의 무상함 보다는 성숙함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 줄리 델피의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시리즈는 다른 시리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작품이었다. 두 작품 사이에 10년 가까운 텀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시간을 고스란히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적용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비포 선셋' 이후 다시 9년. 이들은 '비포 미드나잇'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찾아왔다. 제시 (에단 호크)와 셀린느 (줄리 델피)는 어느 덧 41살이 되었고, 관객 역시 이들과 고스란히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 버렸다.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은 전혀 의외의 시점과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  Sony Pictures Classics. All rights reserved


당연히(?) 이번에도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할 것만 같았던 영화는, 서로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스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온 제시와 셀린느의 가족은 여느 부부가 그렇듯 아이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과 삶과 사랑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하고 그리고는 정말로 오랜만에, 하지만 관객들로서는 가장 기다렸을 두 사람 만의 저녁 시간을 갖게 된다.


전작들이 그러하였듯이 '비포 미드나잇'도 이렇다 할 줄거리라고 할 것이 거의 없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또 한 번 이 두 캐릭터를 두고 끊임없는 대화의 대화를 이어간다. 거의 러닝 타임의 전부가 대화로만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결코 수다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도 그 대화의 전개 양상이나 이야기 거리가 우리도 삶에서 자주 겪게 되는 것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Sony Pictures Classics. All rights reserved


처음에는 그냥 휴양지로서 그리스라는 곳을 택한 것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제시와 셀린느가 나누는 대화를 쭉 듣고 있노라니 왜 그리스를 선택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의 근원에 대해 다시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오랜 시간 사랑해왔던 둘 이 처음의 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의 근원 혹은 그 정의에 대해 한 번 더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 했다. 한참을 육아를 위해 인생을 보내다가 오랜 만에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된 제시와 셀린느는 자신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부터 지금 사랑해 오기 까지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여느 연인들이 다툴 때 처럼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감정을 비껴 가던 날 선 대화들은, 결국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에 까지 닿게 되고 서로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까지 이르게 된다.


이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가 1차적으로 특별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굉장히 디테일 한 삶의 묘사 때문이었다. 즉, 평범하고 보편적인 다툼의 요소들로 인해 오히려 한참을 이야기하는 데도 집중해서 그 둘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둘째는 이 작품만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영화처럼 아름다운 만남과 사랑을 나누었던 이들을 보았었고 또 이들과 똑같은 세월을 함께 한 관객들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은 이들의 대화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너무 나도 나와 여자친구 사이의 관계를 문득 문득 떠올려 보게 만들고, 앞으로를 내다보게 만들어 더 깊이 와 닿는 대화들이었다.



ⓒ  Sony Pictures Classics. All rights reserved


한참을 다투고 나서 해변가 카페에 앉아 나누는 이 둘의 대화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왜 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것 때문 이라기 보단, 오히려 그래도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라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남녀가 지내다 다투고 화해하고 하는 것이 전부인 시놉시스인데, 그 시놉시스가 얼마나 정교하게 실제 남녀 사이에 근거해서 만들어 졌던 지 나 외에도 수 많은 전 세계의 관객들이 '이건 내 얘기야' 하고 보게 될 듯 하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커플의 미래의 이야기이거나 과거의 이야기 임은 분명할 것이다.


세월의 무상 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보다는 성숙함, 부정하고 싶지 않은 성숙함을 담아낸 멋진 어느 한 밤이었다.



ⓒ  Sony Pictures Classics. All rights reserved


1. 이 마지막 장면의 대화를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오래 연애를 했다 거나 오래 결혼 생활을 한 이들이라면 무언가 느껴질 수 밖에는 없는 장면이 될 거에요.


2. 어디선가 이 작품이 마지막 편이 될 것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울 것 같아요. 제시와 셀린느가 더 나이를 먹고 등장하는 '비포 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ㅠ 2020년 쯤 나올 거라고 기대해 봅니다.


3. 줄리 델피의 깜짝 노출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아마도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의도를 갖고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 장면을 가져갔다는 생각 도요. 


4. 영화 음악도 참 좋았습니다. 국내 발매된 '비포 미드나잇' 사운드트랙에 해설지를 제가 쓰기도 했는데, 영화 만큼이나 잔잔하면서도 편안해 지는 음악들이 담겨 있어요.




5. 홍주희 씨가 번역을 맡았는데 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역시 요새 유행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긴 해요.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번역이 누구인지 인지할 정도이긴 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ony Pictures Classics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 국내 정식으로 출시된 '늑대아이' 블루레이 한정판에 제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이렇게 블루레이에 영화 글을 수록한 것도 이제 제법 여러 타이틀이 되는데요, 아마 그 가운데 가장 처음부터 공을 들인 타이틀이라면 단연 '늑대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인 것은 물론, 정말 운 좋게도 관련해서 여러 기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가운데 첫 번째는 국내 정식으로 출시된 사운드트랙에 해설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이 역시도 단순히 해설지만 쓴 것이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 조금이나마 의견을 드릴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 일이었어요.




'늑대아이' OST가 국내 정식 발매됩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755







'늑대아이' 블루레이는 제작 초기 부터 조금이나마 관여를 할 수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본 작품을 라이센스로 발매하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작업인지도 옆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작권에 특히 까다로운 일본이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이드와 방식에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했어요 ㅎ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온 타이틀이기에 만족감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타이틀인 것 같구요.






제 글은 블루레이 한정판에 함께 수록된 'Collector's Guide Book'에 수록이 되었습니다. 이 가이드북도 본래 기획 단계에서는 더 많은 글들과 한국판 만의 메리트가 가득한 구성이었는데, 조금은 아쉽지만 일본반 블루레이와 유사한 구성으로 발매가 되게 되었습니다. 뭐 제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면 역시 지난 3월 직접 일본에 가서 취재해 왔던 실제 장소 방문기가 최종적으로 빠지게 된 것이겠지요. 사실 이 가이드북 원고 제작만을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라 (물론 매우 중요했지만) 사비로 겸사겸사 떠났던 여행인지라 결정적으로 아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기에 이 공식적인 타이틀에 제 글이 수록된다는 것은 사운드트랙과 마찬가지로 정말 영광스럽고 뿌듯한 일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수록이 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한 동안 좀 멍해지긴 하더라구요 ㅠ






20page 분량의 여행기는 수록되지 못했지만 영화 관련된 제 글은 그대로 수록이 되었습니다. 보통 같았으면 이 것 만으로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했을텐데 아무래도 여행기의 수록이 확정이었다 보니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순 없네요 ^^; 이미 제 블로그를 통해 공유해 드린 바와 같이 이 여행기 '늑대아이, 그 곳을 가다'는 제 블로그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늑대아이, 그 곳을 가다

http://www.realfolkblues.co.kr/1774






제 글 외에는 김세윤 방송작가의 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세계'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코 그렇게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글이었죠 ^^;


아, 그리고 미처 소개를 못했었는데 역시 최근 국내 출시된 '러브레터' 블루레이에도 제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따로 또 글을 쓰긴 뭐해서 여기에 같이 소개합니다~






'러브레터'는 이번 블루레이 출시에 맞춰 오랜 만에 다시 보았는데, 여러가지 다른 의미로 좋은 영화였어요. 그 의미에 대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억에게 묻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겨보았습니다.






이렇게 '늑대아이' 블루레이 타이틀과 '러브레터' 블루레이까지 간단하게 소개를 해보았습니다.

다음 제 글이 수록될 블루레이 타이틀도 2개 정도 확정이 된 상태인데, 블루레이를 구입하시는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괜찮은 글을 써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라는 말,

정말 항상 감사드립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본래 이 글은 오늘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된 '늑대아이' 블루레이 한정판에 수록된 Collector's Guide Book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본 원판권사인 '스튜디오 치즈' 측의 컨펌 과정 중에 "영화 '늑대아이'가 세계 어디에서나 혹은 불특정 다수의 누구에게든 공감될 수 있는 보편적인 판타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의도에 따라, 촬영지의 세세한 정보가 실명으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작품의 연출의도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우려된다는 판단으로 최종적으로 아쉽지만 수록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타이틀을 받아 든 지금도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이렇게 다른 방법으로라도 '늑대아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제 글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 부족한 글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실제 장소와 그 느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정성껏 써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도 본문 전체를 확인하실 수 있으며, 블루레이 소책자 수록을 위해 제작한 디자인이 완료된 버전도 PDF파일을 통해 직접 확인하실 수 있도록 제공을 하려고 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소책자에 수록 예정으로 제작된 최종본의 디자인 파일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도 하나 컬러로 출력해서 별도로도 소장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늑대아이 _ 그 곳을 가다 (PDF파일 다운받기 / Dropbox)

https://www.dropbox.com/sh/cf6q3egmynnxtb7/WoIMP5P5SX


* 접속하신 뒤 파일명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며, 우측 상단의 '다운받기'버튼을 통해 파일로 다운 가능합니다.

(현재는 종료되었습니다 ^^;)



그럼 '늑대아이'와 제 글 '늑대아이, 그 곳을 가다'도 함께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를 너무나 감명 깊게 본 나머지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영화 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장소들이 실제 존재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가는 꼭 한 번 찾아가봐야지 하고 무작정 세웠던 계획을, 국내 블루레이 출시에 맞춰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벚꽃 시즌이던 지난 3월 22일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늑대아이'의 배경이 된 곳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는 하나와 그가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하고, 유키와 아메를 낳고 시골로 이사가기 전까지의 배경이 되는 도쿄이며, 두 번째는 시골 마을이 주된 배경이 되는 도야마현이다. 도야마현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번 여행에 도야마현까지 정말 가고 싶었지만 도쿄와 도야마현을 짧은 일정에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너무 무리라 결국 눈물을 머금고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적지만 중요한 실제 장소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여행 전에 인터넷 등을 통해 철저한 사전 조사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 장소를 찾는 여정이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히토츠바시 대학처럼 유명한 곳이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몇몇 장소는 주소 정보도 없고 그 장소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기 힘든 평범한 장소인 경우라서 위성 사진은 물론, 실시간으로 현위치와 비교해가며 찾는 등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야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가 영화 속 장소와 장면을 딱 만나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길을 찾으며 흘렸던 땀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1. 하나와 그가 다니던 대학교 가는 길


가장 처음 찾은 곳은 하나가 처음 그를 만난 곳이자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던 장소인 히토츠바시 대학교였다. 히토츠바시 대학은 이번에 알게 되었지만 오래된 유럽풍의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실제로 학교의 일부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중앙선 구니타치역에서 내려 남쪽 출구로 나와 대학교 쪽으로 걸어내려 오면 영화 속에 등장한 몇몇 장소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일단 내리자마자 오른 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Coffee 白十字 Cake'라는 간판의 과자점이었는데 영화 속에서도 너무 쉽게 각인되었던 간판이라 실제로 보는 순간 '아, 내가 진짜 늑대아이 속 장소에 와 있구나!'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가게 앞에는 '늑대아이' 포스터가 붙어 있기도 했는데, 영화 속에서 봤던 장면과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이었다. 이 거리에서 가장 놀랐던 건 단순히 실제 배경에서 착안하여 만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실제와 99% 동일한 모습을 극중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과자점은 물론 그 주변의 가게들과 벤치들까지 완전히 동일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 변한 것 외에는 거의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과자점을 찾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극 중에서 하나가 바로 반대편의 시점에서 이 가게 앞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 구도까지도 맞을까 했었는데...







정말로 과자점이 바라다보이는 장소엔 그 전화기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는데, 이 장면에서도 자세히 보면 그냥 전화기가 여기 있었다 라는 정도가 아니라, 전화기와 주변의 디테일한 디자인은 물론, 그 뒤로 보이는 건물들까지 그대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낮시간에 방문하여 영화 속에 등장한 밤시간과의 싱크를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일본에서의 시간이 하루 이틀만 더 있었더라도 극 중의 시간과 맞췄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실제장소와 영화 속 장면의 디테일은 거리를 묘사한 장면에서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위의 장면은 하나가 대학교로 걸어가는 장면인데 아래의 실제 장면과 비교하면 정말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다. 세워둔 자전거들의 위치나 가로등과 가로수의 구도야 말할 것도 없고, 왼쪽의 빨간 소화전이라던가 그 뒤에 보이는 복숭아가 그려진 간판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계절이 달라 푸른 잎이 아닌 벚꽃이 핀 것이 아쉬울 정도로 이 길의 풍경은 영화 속 장면 그대로였다.






조금 다른 앵글로 잡기는 했지만 신호등과 시계 그리고 가로등까지도 실제 장소와 동일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면 이 뿐만 아니라 역시 왼편 아래의 공중전화박스나 멀리 보이는 복숭아가 그려진 간판, 그 앞에 빨간 간판과 파이프 담배가 그려져있는 간판까지도 묘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2. 그와 하나가 처음 만난 대학교






영화 초반 등장하는 주요 배경이자 하나와 그가 처음 만나 감정을 키우는 곳인 대학교는 히토츠바시 대학이다. 방문했던 날은 마침 졸업식 날이었는데, 4시가 지난 시간이라 이미 대부분의 졸업인파는 학교를 떠났고 몇몇 만이 남아 사진 촬영 등을 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히토츠바시 대학은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으로 일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한 장소였는데, '늑대아이'가 아니더라도 한 번 쯤은 와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이 곳 저 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졸업식이 끝난 직후라 대부분의 강의실이 닫혀 있고 인적이 이미 조금 드물어진 시간이라, 영화 속에 등장했던 강의실이나 식당을 직접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나가 학교에 올 때와 그가 강의실을 떠날 때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주던 장면에서 등장하던 커다란 입구 역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면 더 완벽했겠지만 이번 '늑대아이' 여행은 최대한 실제 장소에 피해를 주거나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 (소란스럽게 한다거나)이 또 다른 목표였기 때문에 일부러 학생들이 나가고 닫혀 있는 문을 억지로 열거나 하지는 않았다. 실제 장소에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극중 장면에서 입구 저 멀리 보이는 풍경까지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하나가 걸었던 길을 걸어 조금 더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향은 위와 아래로 다르지만 하나가 처음 그에게 말을 걸었던 그 계단도 찾을 수 있었다. 새로로 길게 뻗은 창문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극 중 등장한 창문과 완벽하게 동일한 모양의 창문은 반대편의 계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교내의 모습들도 극중에 등장한 것과 동일한 앵글로 촬영하고 싶었는데, 졸업식 후 이미 대부분이 떠난 뒤라 불이 꺼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의외의 수확이라면 이 도서관 입구를 찾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번 여행에 앞서 이미 일본 내의 마니아들이 실제 장소를 탐방한 뒤 기록해 둔 사이트를 참고하였는데, 대부분의 장면과 장소를 찾아낸 이 사이트에도 없는 도서관 장면이라 더욱 반가웠달까. 물론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들어가지는 못했고 입구의 촬영도 실례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진행하기는 했지만, 기존 자료에도 없던 곳을 담아낸 터라 좀 더 의미 깊은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도 극 중에 나온 장면은 2~3층으로 생각되는데 실제 촬영한 곳은 1층의 모습이다. 저렇듯 졸업식으로 불이 대부분 꺼져 있는 어두운 분위기였다.



3. 하나가 일하던 세탁소








하나가 일하던 세탁소는 학교에서 나와 다시 구니타치 역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구니타치 역 남쪽출구로 나와 동쪽으로 100미터 정도를 들어오면 왼편에 커다란 주황색 간판을 확인할 수 있다. 제작 당시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터라 완벽하게 동일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로고나 유리 창의 모습, 들여다보이는 내부의 모습까지도 극 중과 동일한 모습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놀란 점들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장소만큼이나 그 주변의 묘사가 정확하다는 점인데, 이 세탁소 역시 그 옆 가게들의 묘사와 오른 편의 돈카츠를 파는 가게의 광고판까지도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마 실제로 옷을 맡겨보거나 하는 시도까지는 하지 못했다 ㅎ



4. 하나와 그가 헤어지던 다리





그가 하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려다가 머뭇거리고 말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그 다리도 실제 존재하는 장소였는데, 이 곳은 니시오기쿠보 역에서 북쪽 출구로 나와 도보로 약 7~10분 정도를 걸어오면 발견할 수 있다. 이 다리는 극 중에서 보았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가장 차이가 나는 장소였는데, 일단 실제 다리는 파란 색의 기둥과 난간이 인상적이었지만 극 중에서는 흰색 혹은 회색으로 묘사되고 있기도 했고, 다리 난간에 물고기 장식도 극 중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라 이곳이 맞는지 여러 번 확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다리 주변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실제 장소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이 다리는 이 후 하나가 빗속에서 그를 발견하게 되는 장면에서도 등장하는데, 실제로 보니 극 중에서 등장한 앵글이 실제 장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장면으로 보면 왼편과 오른편의 건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인데 이 건물들을 다리 위에서 보았을 때 저 정도 거리에 위치하려면, 건물 하나의 거리 정도는 다리가 앞서 위치해야 가능한데 조금은 원하는 구도로 수정을 거친 듯 했다.




그리고 영화 속 장면과는 다르게 그 위치에는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고, 다리와 바로 붙어서 사다리가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기서 한 참을 서서 다리 아래를 바라보다가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5. 그를 찾아 해매는 하나





비가 내리던 날 그가 돌아오지 않자 유키와 아메를 들쳐 메고 그를 찾아 나선 하나. 이 때 등장하는 장소는 약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역시 실제 존재하는 장소였다. 우산을 쓰고 뒤를 돌아다보던 고가는 미타카 역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중앙선 미타카 역 북쪽 출구로 나와 중앙선 선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10분 정도를 걸어오면 바로 그 고가와 통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곳도 주소 등이 정확하지 않아 (이번 여행에서 주소가 확실한 곳은 사실 한 곳도 없었다) 미타카 역에 내려 고가를 따라 마냥 걸어서 확인할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막상 그 장소에 도착하면 그 주변의 디테일까지 그대로 묘사한 장면 탓에 쉽게 그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이 고가 아래 장소 역시 고가가 통과하는 다른 여러 장소 중에 이 곳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던 건, 그 주변의 철망이라던가 나무 등의 정확한 묘사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경사진 골목은 미타카 역 근처가 아니라 앞서 소개했던 '하나와 그가 헤어지던 다리' 근처였는데, 니시오기쿠보 역에서 그 다리를 지나 하류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또 다른 다리가 등장하는데 그 다리에서 우측으로 살짝 방향을 틀면 바로 위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곳은 다른 장소들 가운데서도 싱크로율이 특히 높은 곳이라 보는 순간 '여기다!'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내용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실제 장소들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은 하나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를 찾아나설 때의 동선은 물론이고, 하나와 그가 어디서 만나서 어디서 데이트를 했는 지를 직접적인 동선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추가적인 매력이었다.




6. 고백의 언덕






그가 하나에게 처음 마음을 고백하고, 이후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보여주기도 한 곳으로 연결되는 일명 '고백의 언덕'은 이번 늑대아이 여행에 핵심이었다. 이번 여행을 처음 계획하게 된 것도 바로 고백의 언덕에 가고자 함에서 시작되었는데, 핵심인 만큼(?) 가장 찾기 힘든 장소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곳이 가장 찾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장소이고 또한 완전한 주거 지역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별로 접근할 기회가 없어서였다. 실제로 이 곳에 대한 정보라고는 구니타치 역 북쪽 출구로 나와 동쪽 방향이라는 것과 주거 지역이라는 것 뿐이었는데, 이 곳을 찾기 위해 위성지도와 실시간 위치 파악까지 해가며 조용한 동네의 어두운 골목과 언덕들을 수없이 오르내려야만 했다. 





(위 장면에서 그와 하나는 위 사진 속 풍경을 보고 있었다고 보면 되겠다)


이 곳의 정보가 부족했던 것은 일종의 배려 처럼 느껴졌다. 이 곳은 주거지역, 그 가운데서도 정말 조용한 지역이라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사실상 올 일이 없어 외부인이 오면 바로 주목을 받게 될 정도로 고요함이 느껴지는 장소였는데 (속삭이듯 말해도 멀리서 들릴 정도), 그렇기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고 이 곳을 이미 다녀온 현지 마니아들도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올까봐 주소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듯 싶었다. 


이 곳에 대한 힌트 가운데는 시 경계가 지나고 있어 언덕 위와 아래의 멘홀을 만든 곳이 다르다는 정보도 있었는데, 제법 유용한 정보였다. 정말 한 참을, 하지만 조용히 헤맨 끝에 찾은 고백의 언덕은 그래서 더 값지게 느껴졌고 뭉클함 마저 밀려왔다. 






고백의 언덕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이라면 단연 저 음료수 자판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빨간 색의 자판기가 환하게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참고로 다른 곳은 일부러 시간을 맞추지 못했지만 고백의 언덕 만은 극 중과 최대한 동일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조명이 켜진 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진과 장면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어렵게 찾은 곳인 만큼 한 참을 계단 밑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리고 '늑대아이' 속 장면을 떠올리며 그렇게 앉아 있었더랬다. 참고로 그가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공터는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상태라 확인할 수는 없었는데, 이 계단을 올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언덕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극 중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컷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건물과 나무에 대부분 가려 실제로는 건널목 등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고 빨간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을 하나 사서 마신 뒤, 언덕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짧은 '늑대아이'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글의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극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도야마 현을 가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도야마 현에 가서 아메와 유키가 하나와 함께 힘들지만 행복하게 지내던 곳곳을 둘러 보고 싶다는 바램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겼다. 이렇게 또 '늑대아이'는 내 인생에 있어 더더욱 지울 수 없고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비단, 이 고백의 언덕에서 나도 '늑대아이'의 그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평생을 준비해왔던 말로 청혼을 해서 만은 아니다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작품 속 캡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스튜디오 치즈' 및 한국내 수입사 '(주)얼리버드픽쳐스에 있으며, 
글의 실제 장소를 촬영한 사진의 저작권은 아쉬타카에게 있습니다






에반게리온 : Q 개봉에 앞서 만연한 불법 다운로드를 논하다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가 바로 '에반게리온 : Q'



불법 다운로드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이제는 우습다. 아니 다운로드 앞에 '불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혼자 깔끔 떠는 것 같아 불편할 정도다. 실제로 내 가까운 주변만 봐도 불법 다운로드는 거의 생활화, 문화가 된 지 오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mp3나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 받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최소한 내 앞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포기한 지 오래다. 누군가 토렌트라는 단어를 꺼낼 때, 어제 무슨 영화 받아서 봤다는 얘기를 할 때, 출근 길에 다운 받은 영화를 보다가 왔다는 얘기를 할 때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다운은 불법 다운이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수준이 아니라 '당연한' 수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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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기한 나도 몇 년에 한 번 씩은 울컥해서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최소한으로 바랬던 것은 그냥 최소한 불법 다운로드를 자랑하지는 말자 라는 것, 이게 잘못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저지르자 하는 거였다. 곧 국내 정식 출시 예정인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블루레이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어쩌면 그 동안 잘 신경 쓰지 않았던 국내 불법 다운로드 문화의 실체를 좀 더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문화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늑대아이' 블루레이의 일본반 출시에 맞춰 트위터를 보니 정말 가관도 아니더라. 그냥 다운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불법 다운 받은 영상에 자막 작업을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느니, 무슨 님의 자막을 기다리고 있다느니, 이들에게는 이미 아무런 심리적 부담이나 허들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패키지 시장에서 온라인 다운로드 그리고 불법 다운로드의 변화를 겪은 세대인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불법 다운로드로 문화를 즐기기 시작한 어린 세대들에게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문화 그 자체였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이건 다운로더 만을 탓하기는 어렵다. 이를 조장하다시피 한 사회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웹하드 시장이 대세이던 시절 더 적극적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단속했더라면 지금 같이 심한 상태는 아마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웹하드 사업이 흥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게 묵인되었고, iptv가 대세가 되고 나서야 (돈 되는 사업이 되고 나서야) 그나마 iptv에 반하는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단속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불법 다운로드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지경이 되어버렸고, 허울 뿐인 단속과 캠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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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면 하게 되는 넋두리가 길어졌는데, 어쨋든 이번 '에반게리온 : Q' 개봉을 앞두고 또 한 번 불법 다운로드와의 불편함 (전쟁이라고 하기엔 이미 한 쪽이 너무 강하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내 극장 개봉 일인 4월 25일 하루 전인 24일에 일본에서 블루레이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즉, 운명적으로 '에반게리온 : Q'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만약 지금이 불법 다운로드의 초창기(?)였다면 아마도 '불법 다운로드는 불법이라 절대 안되욧!'이라는 말로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이 더 잘 알다시피 이런 말이 통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그러면 굳이 8천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이런 말을 써야 하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ㅠ) '에반게리온 : Q'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텐데, 단연코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에반게리온 : Q'는 스케일과 규모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는 작품인 동시에, '에반게리온 : 파'와는 달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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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에반게리온 : 서'와 '파'는 모두 1.85:1의 화면비로 제작된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안 방에서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충분한 재미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에반게리온 : Q'는 2.35:1의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작품이라 이 것만으로도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지난해 겨울 일본 극장에서 '에반게리온 : Q'를 보았을 때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스케일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는데, '서'나 '파'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다. 시네마스코프의 영상은 TV나 모니터로 보았을 때 위 아래로 블랙바가 생기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봐야 만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더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 'Q'는 이 시네마스코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극장에서의 관람이 더더욱 최선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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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에바 덕후들이 새로운 에바 시리즈를 방구석에서 불법 다운 받아 감흥 없이 볼 것 같다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덕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는 것에 소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언맨 3'와 같은 날 개봉하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


'에반게리온 : Q'를 불법 다운 받아서 집에서 보는 건 결국 자기 손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khara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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