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셰티 킬즈 (Machete Kills, 2013)

우주로 가기 위한 예고편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라인드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된 (결국 가짜가 아니게 된 건가) 대니 트레조 주연의 '마셰티' 시리즈의 속편 '마셰티 킬즈'를 보았다. '마셰티'는 그 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로드리게즈의 장난 같은 프로젝트 (하지만 누구보다 진지한)가 거대한 농담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로드리게즈의 그 독특한 유머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약간의 저질 관객이라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전편인 '마셰티'는 이 가짜 예고편에서 시작한 작은 농담이 얼마나 진지하고 그럴싸하게 장편 영화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뽐낸 작품이었다면, 속편인 '마셰티 킬즈'는 그에 비하자면 좀 아쉽고 심심하지만 3편을 기다리게 끔 하는 거대한 예고편으로 볼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마셰티'의 세계관에서는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 어떤 네임 벨류 있는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예외는 없으며, 저 유명한 배우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까 하고 궁금해 할 쯤이면 이미 그는 사지 절단되어 사라지기 일쑤다. '마셰티' 시리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 라면, 마치 홍상수나 우디 앨런 영화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결과 물은 전혀 다를지 모르지만, 구성이나 방식만 놓고 보면 배우들 스스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특히 배우로서의 자신을 완전히 즐겁게 소비하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즈의 '마셰티'는 그런 면에서 완전히 작정한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 역시 매우 진지하게 임하지만 그래서 더 '큭큭'거리게 만드는 저렴한 재미가 있다. '마셰티 킬즈' 역시 마찬가지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전작에 비해 '마셰티 킬즈'는 조금 이야기가 느슨한 편이다. 뭐 전작도 이야기가 얼마나 있었겠냐 만은, 전반적으로 이번 영화는 낄낄 거릴 만한 부분도 좀 적은 편이고, 사지 절단도 줄었으며 혼자만의 심각함이나 장르 적 유희도 조금은 심심한 편이다. 물론 기존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장르의 팬들이라면 더 유쾌해 할 만한 농담 들이 존재하지만, '그라인드하우스'나 전편 '마셰티'에 비하면 확실히 심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인데, 이미 또 다른 가짜 예고편을 통해서 공개된 것처럼 마셰티가 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속편을 암시하는 장면들과 짧은 예고 영상은, 조금은 밋밋했던 영화를 다시금 뛰게 만든다. 즉,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아쉬운 점이 많은 편이지만, 좋게 평가하자면 우주를 무대로 펼칠 마셰티 3편에 대한 거대한 예고편으로서의 의미를 둘 수 있겠다.



ⓒ  Quick Draw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의외로) '마셰티 킬즈'의 이야기와 다음 속편이 매우 깊은 연관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미 시리즈에 연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왜 마셰티가 우주를 배경으로 또 한 번의 활극을 펼치게 되었는지 에 대한 나름 논리적인 이유와, 각 캐릭터들의 사연 들이 이 작품 '마셰티 킬즈'에서 시작된 다는 점에서, 언젠가 나올 (나와야 할) 속편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 될 듯 하다. 말을 이렇게 그럴싸하게 했지만, 나중에 속편이 나온다 해도 이 작품을 안봐도 전혀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부담 없이 낄낄 거리며 보는 게 이 작품의 묘미고, 로드리게즈의 취향이기 때문에. 아마도 로드리게즈는 이 작품의 형편 없는 평점을 보고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그런 영화야!' 하면서!



1. 본래 로드리게즈의 영화들은 트러블메이커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제작했었는데, 이번 작품에는 Quick Draw Productions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름이 바뀐 것인지, 각각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Quick Draw Productions 있습니다.


 




R.I.P 폴 워커 (Paul Walker)


일요일 아침, 아직 덜 깬 눈으로 트위터를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비보가 있었으니, 바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유명한 폴 워커의 사망 소식이었다. 최근엔 워낙 이런 식의 오보가 많기에 처음에는 제발 오보이길 바랬었는데, 결국 사실로 밝혀지고 말았다 ㅠ Reach Out Worldwide라는 이름의 필리핀 자연재해와 관련된 자선행사 참석차 친구와 함께 자동차로 이동 중 사고를 당해, 친구와 폴 워커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아.... 폴 워커는 개인적으로 많은 작품을 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애정이 있던 배우였다. 특히 '러닝 스케어드'는 그에게 빠지게 된 결정적인 작품이었는데, 그 이후 생각보다 주연급으로 발돋움 하지 못해 팬으로서 아쉬움이 많기도 했었다. 그 이후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주요 캐릭터로 캐스팅되면서 많은 대중들에게도 더 큰 인상을 주고 있었고, 계속될 시리즈에서도 더 좋은 모습이 기대되었었는데, 아.... 이건 정말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러닝 스케어드'에 출연한 폴 워커의 모습.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http://realfolkblues.co.kr/331)


1973년 생으로 올해 나이 겨우 40세이다. 배우로서 아직 보여줄 것이 많고, 어쩌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보다 앞으로 더 잘 될 수도 있는 배우였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이렇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 정말 아쉽다.

아... 너무 허무하다


관련 기사 - http://www.imdb.com/news/ni56490147/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3)

이토록 아름다운 엔딩



사실 이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맷 데이먼 말고 다른 주인공이 참 마이클 더글라스를 닮았네' 라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암 진단을 받아 활동이 어렵지 않을까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초 적인 연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라고 보기에는 너무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존재를 분명히 확인하지 못한 채 보게 된 '쇼를 사랑한 남자 (Behind the Candelabra, 2013)'는 그냥 퀴어 영화로 불리기엔 참 좋은 영화였다 (뭐 하긴 대부분의 퀴어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로 머무는 경우가, 그러니까 게이 라는 그 자체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다). 참 좋은 영화인 동시에,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엔딩 장면을 선사한 작품이기도 했다.



ⓒ  HBO Films. All rights reserved


앞서 포스터 속 주인공이 마이클 더글라스인지 잘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난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실화라는 것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실화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관객을 흔들어 놓는 감동이 존재한다. 아, 만약 실화라는 것에 가까운 외부적인 감동 포인트가 있다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실제로 암을 극복하고 다시 이토록 멋진 연기를 펼친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배우의 이야기일 것이다. 본래 연기를 잘하는 베테랑 연기자이긴 했지만, 실제 암 투병을 겪은 이후 만나게 된 '리버라치'는 캐릭터를 연기함은 분명 이전과 달랐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마이클 더글라스가 복귀 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정말 더할 나위 없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겪었던 실제의 경험이 더 극적인 요소로 과장되어 표현될 수도 있었지만, 리버라치의 삶은 어쩌면 그런 아픔들이 겉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더 농도 짙은 캐릭터를 표현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HBO Film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어쩌면 참 뻔한 사랑이야기다. 리버라치 (마이클 더글라스)와 스콧 (맷 데이먼)의 관계에는 다양한 평범하지 않은 환경들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그 특별함 보다는 이 두 사람의 애정에 더 집중한다. 그 보편적 감성은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부분은 이들이 게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 일텐데,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과 닮길 원하는 이나 역시 사랑한 나머지 상대의 요구대로 성형을 하는 이의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서로가 연인이자 부자 관계인 모습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담고 있는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의 표현으로 인해, 이들의 특별할 수 있는 관계와 행동들조차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담고 있어, 조금도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영화가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  HBO Films.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가끔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어느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영화 전체를 만들었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이 영화의 경우는 엔딩 장면이었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는데, 그냥 슬퍼서 울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아름답고 한 편으론 행복해서 울컥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러닝 타임 내내 들려주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 작품과 '사이드 임팩트'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결정은 번복해도 좋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HBO Films 있습니다.


 




퍼시픽 림 블루레이 리뷰 (Pacific Rim : Blu-ray review)
눈 앞에서 펼쳐지는 거대 로봇의 육박전


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 인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이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 '퍼시픽 림'을 극장에서 보기전 이 작품에 대한 기대 포인트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과 그가 본격적으로 대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거대 로봇과 괴수가 대결을 펼치는, 일종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실사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후자 만으로도 이 영화는 기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지만, 전자인 '길예르모 델 토로'라는 이름 때문에 기대치가 더해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다면 좀 더 스토리 측면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더 나은,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물론 이런 과한 기대치는 그의 팬이기 때문에 발동되었던 것인데, 결론적으로 이 높은 기대치가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퍼시픽 림'은 충분한 만족감과, 적당한 수긍,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퍼시픽 림'은 규모와 스케일이 그 자체인 영화다. 많은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그 크기에 포인트를 두곤 했는데, 그 어떤 영화도 '퍼시픽 림'에 등장하는 카이주와 예거의 크기에는 비할 바가 안될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동시에 그 표현이 가장 중요 포인트인 작품이기도 했다. 즉 이 영화의 핵심은 이 엄청난 크기를 관객이 실감할 수 있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극장 상영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던 아이맥스 3D의 관람 환경은 적극 추천할 만 했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앞서 언급한 엄청난 규모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워낙 거대한 두 존재가 결투를 하다 보니), 그렇다 하더라도 보는 내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음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그 엄청난 크기의 두 존재가 미사일 등의 무기를 통해 장거리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주먹질을 통한 육박전을 벌인다는 것 만으로도 이 작품의 볼거리는 사실 충분한 편이다. 이 정도 크기의 괴물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영화라니! 이것 만으로도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많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팬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라면 전반적인 이야기의 구조나 전개에 관한 것일 텐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필자 역시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델 토로라면 뭔가 이 로봇/괴수 액션 블록버스터의 구조 속에서도 더 색다르거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퍼시픽 림'은 일반적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고, 한 편으론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도 더 나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판의 미로' 같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런 여름 블록버스터에 녹여 냈다면 아마 그의 팬들에게는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외면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이 작품의 인트로였다. 아마 보통 같으면 영화 한 편을 할애할 수도 있었던 이 시기의 배경과 카이주라는 괴물의 등장, 예거 시스템의 탄생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히 그런 것이 있었다는 정도의 설명이 아니라, 한참이 전개된 다음의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 저 부분을 그냥 저렇게 한 줄로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한 전개였다. 하지만 만약 이 부분을 천천히 다 설명했더라면 (아마도 시리즈의 1편이 되었을) 이 영화에서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육박전을 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전형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덕후의 입장으로는) '아, 그래도 멋있다!'라고 수줍게 속으로 외치게 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






블루레이를 통해 본편을 다시 보고 다양한 부가영상을 보고 알게 된 점은, 극장에서 볼 때 느꼈던 아쉬움 들을 해소해 줄 만한 요소가 본래의 기획에는 없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가영상에 대해 소개할 때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퍼시픽 림'을 기획하고 연출한 길예르모 델 토로는 관객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디테일과 설정에 이르기까지 확고한 비전과 이야기를 갖고 있었고, 그 부분들을 최대한 본편에 녹여내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신이 나서 들려주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의 이런 확고한 비전이 좀 더 영화에 표현되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신나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상대적일 수 밖에는 없는 아쉬움일 텐데, '퍼시픽 림'은 그 자체로 흥분되고 꿈과 같은 영화화이지만, 감독인 길예르모 델 토로가 카이주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신나게 이야기하는 인터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보다도 더 신나는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퍼시픽 림' 블루레이의 화질은 레드에픽으로 촬영된 소스답게 큰 단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레퍼런스라 부르기에 충분한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볼 때와 비교해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바로 어두운 장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극장에서 아이맥스 3D를 통해 감상할 때는 그 규모는 만족스러웠으나 어두운 장면들의 표현은 조금 아쉬운 편이었는데, 블루레이는 바로 이 점을 거의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다. 특히 '퍼시픽 림'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 장면들이 많은데, 극장에서 볼 때 상당히 어둡다 라는 느낌이 강했던 것과 비교하면, 블루레이의 화질은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전반적으로 선명한 화질을 보여준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확대됩니다.







특히 처음 폭풍우가 치는 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카이주와 예거의 결투 장면은 가장 처음 카이주와 예거가 등장하는 장면임에도 어두운 배경인 나머지 100%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극장 관람 시와는 달리, 블루레이에서는 예거의 메탈릭 한 질감은 물론 형광물질처럼 발광하는 카이주의 일부 피부까지 선명하게 표현해 낸다.






상대적으로 밝은 장면에서는 시원시원한 표현력과 마치 HFR로 촬영한 영상을 보는 듯한 입체감과 선명함을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퍼시픽 림'이 규모의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정에서 감상하는 것이 극장 관람에 비해 부족한 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텐데, 화질과 사운드의 퀄리티만 놓고 보자면 그 규모의 부족함을 충분히 극복할 만한 수준이다.


Blu-ray : Sound


DTS-HD MA의 사운드 역시 10점을 주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 사운드 측면에서 '퍼시픽 림'은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거대 로봇들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사운드는 트랜스포머 못지 않으며, 무엇보다 카이주라는 거대 괴수가 만들어 내는 포효하는 사운드는 블루레이의 차세대 사운드를 통해 방 안 가득 울려 퍼진다.






사운드 역시 극장 관람 시 보다 훨씬 더 디테일 한 작은 소리들을 확인할 수 있는 사운드 디자인이 돋보였으며, 서브우퍼가 과하게 사용될 수 있는 사운드 임에도 무조건 서브우퍼로 파워를 몰아줘서 무겁게 들리기 보다는, 적절한 분배로 임팩트와 밸런스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사운드를 담고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총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퍼시픽 림' 블루레이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부가영상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부가영상 만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형태로 나뉘어 수록되었을 경우 본편이 수록된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별 다른 부가영상이 수록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번 '퍼시픽 림' 블루레이는 첫 번째 디스크에도 제법 볼 만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A Film By Guillermo Del Toro'에서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구상이 이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디테일 한 소품과 배경 설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수에 달하는 지를 확인시켜주면서, 그렇기 때문에 '퍼시픽 림'이 그가 아니고서는 영화화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A Primer On Kaijus & Jaegers'에서는 일본 고전 장르라 할 수 있는 카이주의 특성을 들려주는데, 서구의 괴물들과는 차별되는 카이주 만의 독특한 구조와 크기 등을 소개하며 그 카이주를 너무도 사랑한 길예르모 델 토로의 애정 어린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예거 역시 일본 스타일의 메카에서 가져왔는데, 카이주와 예거를 비롯해 이 작품이 얼마나 아니메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길예르모 델 토로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 그가 아니메에서 발견했던 매력적인 포인트들이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퍼시픽 림'에 녹여 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Intricacy of Robot Design' 에서는 예거의 디자인 적 특성에 대해 들려주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예거 자체가 일본 아니메의 메카 디자인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아니메를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섭외하는 것이 처음부터 목표였다고 한다. 또한 디자이너들의 인터뷰를 통해 길예르모 델 토로가 로봇 디자인에도 얼마나 독특하고 디테일 한 주관과 철학이 있었는지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Honoring The Kaiju Tradition'에서는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인 독특한 이미지의 다양한 크리쳐들에 대한 탄생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카이주 역시 최대한 다른 작품 속 괴수를 연상시키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 기상 천외하고 독특한 모양새와 기능을 갖춘 카이주들이 탄생될 수 있었다. 카이주는 외계에서 온 존재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연상시킬 만한 이미지들을 녹여 실제 하는 듯한 느낌을 더 전달할 수 있었다.





'The Importance Of Mass And Scale'은 이 작품의 거대 스케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데, 영화가 개봉한 뒤 예거와 카이주의 규모를 다른 영화 속에 등장한 다양한 괴수들과의 크기 비교를 통해 표현한 그림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것처럼, '퍼시픽 림'의 또 다른 미션은 바로 이 엄청난 규모를 실감나도록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영화 속에서 다루는 규모의 방식과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한 스텝들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Shatterdome Ranger Roll Call'에서는 상대적으로 카이주와 예거에 가려져 있던 캐릭터들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각각의 캐릭터를 다국적으로 설정하게 된 이유와 캐릭터의 특징을 배우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길예르모 델 토로는 한 국가가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가 함께 구하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호주, 일본, 러시아, 중국 등의 다국적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밖에 액션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배우들이 거친 훈련에 관한 이야기와 물리적 현실감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대형 세트 제작기, 그리고 새끼 카이주가 등장한 촬영 세트와 도쿄 골목 촬영 세트의 모습과 사운드 트랙에 관한 이야기도 각각 만나볼 수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부가영상은 각각 5분 남짓의 짧다면 짧은 영상들이지만, 각각 주제 별로 잘 분류가 되어 있고 겹치는 내용 들도 거의 없어 하나 하나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2번째 디스크에서 첫 번째로 확인해볼 부가영상은 'The Director's Notebook'이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퍼시픽 림'을 구상할 때 작업했던 노트를 메뉴화 한 것으로, 노트 형식의 메뉴 구성이 정말 내용이나 델 토로 감독의 블루레이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노트에 적어놓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카이주의 성격이나 배경 그리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에서 특별히 더 주목해야 할 각종 크리쳐 들의 컨셉 아트 갤러리는 물론, 직접 감독의 설명이 곁들여진 부가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감독의 설명과 함께 소개되는 영화 속 다양한 장치들과 배경 그리고 건축물 들에 대한 내용은,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거의 주목 받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너무 단순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영화의 내용이 실제로는 상당히 깊은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이 담겨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토리텔러로서 길예르모 델 토로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오히려 최종 버전에는 그의 초기 컨셉이나 구상들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직접 언급하기도 한 것처럼, 더 많은 제작비가 있었다면 더 디테일 한 내용이나 설정에 대해 보여주고자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예르모 델 토로는 '퍼시픽 림'이라는 작품을 통해 본인 만의 취향이자 특기인 독특한 크리쳐와 그 뒤에 숨겨진 세세한 이야기들까지 들려주고자 했으나, 제작비는 물론 여러 가지 여건들로 인해 양보해야 했음을 한 번 더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요 설정 중 하나인 드리프트를 블루레이를 감상하는 사용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컨셉 부가영상이 'Drift Space'인데, 상대의 과거와 현재,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드리프트를 마치 실제 경험하는 것과 같은 화면 구성을 통해 영화 속 두 주인공의 과거와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내용들만으로는 다 소개할 수 없었던 마코와 롤리의 자세한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영화 속 배경이 되는 사실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The Digital Artistry of Pacific Rim'에서는 가장 처음 가졌던 델 토로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시각 효과 회의 장면을 시작으로, 이 장면에 사용된 디지털 시각 효과에 대한 여정을 들려준다. 특히 특수효과 팀 출신의 델 토로가 이 부분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 동시에, 논리적으로 계산하고 평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대한 물리학에 근거한 논리를 통해 장면의 구성과 액션 안무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화려한 시각 효과를 통해 '보여 주기식' 액션이 아닌, 이 엄청난 규모의 로봇과 괴수과 대결을 벌일 때 실제로 가능한 작용과 반작용, 파급 효과에 엄청난 신경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시각 효과를 위해 길예르모 델 토로가 스텝들에게 자신의 머릿속에 든 구상과 디자인을 설명할 때를 보면, '퍼시픽 림'의 아주 많은 부분이 그의 머릿 속에서 만들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디테일 한 설정까지 원하는 바가 확실했던 그의 비전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극장에서 본 '퍼시픽 림'을 완성하는 데에 청사진이 되었음은, 이 부가영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이었다.




△ 델토로 감독 "여기선 카이주의 앞 발 모양이 이렇게 되야 해요!"


그리고 역시나 예상했지만 (사실 이 부분이 '퍼시픽 림'을 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예상했던 부분이었는데), 장면 하나 하나를 설명하며 잔뜩 신이 난 길예르모 델 토로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퍼시픽 림'은 감독이 정말 신나게 (신나서) 만든 작품이다. 감독의 '신남'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부가영상을 통해 그 신나 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The Shatterdome'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카이주들과 예거 그리고 코스춤과 배경에 대한 컨셉 아트와 몇몇 주요 장면의 스토리보드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아마도 길예르모 델 토로의 팬이라면 다른 감독의 작품과는 다르게 그냥 지나치기는커녕 기다렸을 컨셉 아트 (갤러리) 메뉴일 것이다. 다른 작품의 갤러리 메뉴가 찬밥 신세인 것에 비해, 본래 컨셉 아트만으로도 팬들의 충분한 수요가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컨셉 아트를 선보이는 길예르모 델 토로답게, 부가영상에는 다양한 컨셉 아트들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카이주들과 예거의 다양한 모델들을 각각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각자가 선호하는 모델들에 대한 컨셉 아트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총 4개의 삭제 장면과 일종의 NG 장면을 만나볼 수 있는 'Blooper Reel' 이 수록되었다.



[총평]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블루레이는 극장에서 볼 때만큼의 임팩트를 전달하는 강력한 사운드와 오히려 더 선명해진 화질로 AV적 쾌감을 최고로 선사하는 타이틀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작품에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가 얼마나 많은 영향과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는 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부가영상은, 극장에서 보면 조금은 아쉬웠던 스토리에 대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어 더 유익한 시간이었다.


아마 길예르모 감독의 팬이라면 '퍼시픽 림' 블루레이의 부가 영상은 꼭 하나도 빼놓지 말고 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부가영상을 다 보고 나면 아마도 조금 더 그의 팬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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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 (Mud, 2012)

사랑에 관한 사실



'테이크 쉘터'는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 적인 작품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을 맡은 제프 니콜스의 다음 작품인 '머드' 역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포스터를 가득 채운 매튜 매커너히의 거칠어 보이는 모습은 '테이크 쉘터'와는 또 다른 어떤 영화일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머드'의 국내 포스터에 가장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는 문구는 바로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인데, 이 문구 덕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그 예상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순수한 사랑에 관한 영화였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머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사실'에 가까운 영화였다.




ⓒ  Brace Cov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몹시 건조하다. 나른하고 매 마른 듯한 분위기가 도는 가운데 엘리스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조용하게 시작되고, 엘리스는 우연히 버려진 보트 곁에서 '머드'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후부터 영화가 엘리스와 머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조금 특이한 편인데, 어느 한 편에 서 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둘 사이의 비중을 자유롭게 오간다. 처음엔 머드의 편에 서서 그가 만나게 된 어린 소년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꿈꾸고 쫓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극장을 나오면서는 머드가 아닌 엘리스의 편에 더 서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히려 엘리스라는 한 소년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처음 겪게 되는 희열과 아픔, 고통과 실망, 상처에 대한 과정을 머드라는 한 남자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들려주고 있는 듯 했다.



ⓒ  Brace Cov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제프 니콜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 소년과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두근거림과 아픔을 동시에 표현해 냈다. 여러가지 장면을 통해 머드와 엘리스는 마치 서로의 거울처럼 겹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점에서 '머드'는 관객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머드는 오로지 사랑 만을 위한 로맨티스트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강가의 외딴 섬에 홀로 갇혀 있고,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쫓기는 신세이기도 하다. 엘리스의 경우도 그 순수한 사랑이 상대에게도 전해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혼자 만의 착각이었고, 머드에게 바랬던 바 역시 엘리스의 기대와는 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즉, 엘리스와 머드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봤을 때, 한 없이 순진하기만 한 과거이거나 한 없이 영리하지 못한 미래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머드와 엘리스를 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은 참 인상적이었다.


결국 머드와 엘리스가 겪게 된 일들로 미뤄봤을 때, 그렇다면 이 영화는 우울하고 쓸쓸한 영화인가 하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이 영화엔 묘한 희망이 있다. 마치 미신 같이 머드를 지켜주는 그 노란 셔츠처럼, 거짓말 인줄 알면서 믿고 싶은 정서가 있다. 그것은 곧 상처 받을 줄 알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사랑에 관한 '사실'이 아닐까.



ⓒ  Brace Cov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Brace Cove Productions 있습니다.


 





올드보이 10주년 (Old boy 10th Anniversary)

다시 보니 완벽한 우진의 영화더라



2003년 극장에서 보았던 '올드보이 (Old boy, 2003)'의 강렬함은 지금도 그대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스테리와 에너지, 쓸쓸함에 휘둘리며 마지막 미도의 왈츠가 나오며 막이 내릴 땐 좌석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만큼 '올드보이'는 강렬한 영화였고 박찬욱 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 '올드보이'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올드보이'는 10주년을 맞아 단순 재 개봉이 아닌 디지털 리마스터링 (색보정 및 일부 장면 보정)을 거쳐 다시 선보이게 되었는데, 좋은 기회에 초대를 받아 박찬욱 감독님의 GV까지 더해진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일단 리마스터링 된 부분은 전반적으로 색보정을 감독님이 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개봉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몇몇 장면의 실수들을 바로 잡았다고 했다. 개봉 당시는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의 장면들을 이번 기회에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감독님이 말한 이번 리마스터링의 가장 큰 의의는 '올드보이'라는 영화 자체가 여러 해외에서 상영되는 등 필름의 보존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업데이트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블루레이 리뷰어로서 본 '올드보이' 리마스터링 버전은 확실히 10년 전 영화라 세월의 흔적이 아주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화질이라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더더욱)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루레이가 정식 발매된다면 화질 측면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이 갖춰 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올드보이'는 예상은 했지만 완벽한 우진 (유지태)의 영화로 받아들여 졌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땐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 역할이 주는 강렬함과 영화의 미장센에 매혹 되었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보니 오대수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우진의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즉, 15년 동안 갇혀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보다, 누군 가를 15년이나 감금해야 했던 사람의 사연이 더 강렬했다는 얘긴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이의 분노 보다는, 어쩌면 15년이 넘는 세월을 복수로 보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이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대사들이 와 닿았는데, '아무리 짐승 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대사와, '그냥 잊어버린 거에요' 라는 대사는 이번 재 관람에서 비로서 발견한 중요한 포인트였다. 우진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 주된 사건은 누군 가의 인생을 통째로 앗아갔음에도, 다른 누군 가는 정말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잊어버린 일이기도 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우리도 살면서 스스로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지나 치는 일들 가운데에는 누군 가 (그 누군 가가 설령 짐승 만도 못한 이 일지라도)의 인생을 빼앗아 갈 정도로 커다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 지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진의 마지막이 더 슬프고 더 쓸쓸하고 더 무기력했다. 오대수의 입장에서 보면 '올드보이'는 강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이우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시작할 때부터 끝이 보이는, 죽음의 그림자와 내내 무기력함이 짙게 깔린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이번 재 관람에서는 한 없는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오대수는 15년 간 갇혀 있다 풀려 났지만, 우진은 이미 학생일 때부터 자신의 삶으로부터 갇혀 버린 것이 아닌가.





극장에서 DVD로. 몇몇 버전의 DVD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리고 블루레이로. 여러 번을 본 '올드보이'였지만 10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다시 본 '올드보이'는 또 달랐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좋은 영화란 세월이 흘러도 좋은, 각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감흥을 전하는 것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기도 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박찬욱 감독님과 주성철 기자님이 함께 한 GV는 예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최근 화제가 된 유연석 씨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까지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분의 GV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중화권 배우와 '올드보이'의 연관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도 주성철 기자님 GV만의 특징이었고 ㅎ







10년 전 극장에서 혹은 다른 매체로 이미 '올드보이'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10주년을 맞아 재 개봉한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다시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누군 가에게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잉투기 (2013)

계속하는 것은 힘이 된다



'잉투기'를 보았다. 이미 시사회를 통해 관계자들로부터 신선하다,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다 라는 등 (이런 표현 개인적으로는 제일 안 좋아하지만;;)의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으로 보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기대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언제부턴 가 '청춘'이나 '젊은이'들의 현실을 논하는 작품들은 모두 다 전형적인 전개로 이어졌고 캐릭터들도 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그 작품이 추구하려 던 현실 감과는 전혀 다르게, 비현실적이고 만들어진 캐릭터 같은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런 측면에서 '잉투기'의 청춘은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어쩌면 가장 특이하고 긱(Geek)한 청춘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럼에도 과장하지 않고 판타지로 나아가지도 않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를 감싸 안는 듯한 이야기가 좋았다.



ⓒ KAFA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많은 부분을 실화에 근거하고 있는데, '칡콩팥' '젖존슨' 등의 닉네임도 그렇고, 디씨인사이드를 통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과 지명, 장소 등을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 디씨인사이드를 이용하는 갤러 들이라면 또 다른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잉투기'는 결코 그들 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가끔 단편 들을 통해 TV에서 보여주는 것 말고 실제 젊은이들이 즐기고 있는 독특하지만 그리 생소하지는 않은 문화에 대해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그저 특이한 문화를 소개하거나 그 생경 함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잉투기'는 역시 같은 생경 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것의 디테일에 집중하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몰락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무너져 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있다. 제목 만 놓고 보았을 땐 현실에서 잉여로 불리는 청춘들이 벌이는 작은 사건에 기반하여 현재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메시지까지 전개 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잉투기'는 참 담백했고,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 KAFA Films. All rights reserved


영화적, 장르적 매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엄태화 감독은 이 작품을 완전한 장르 영화에 두려 하지 않으면서도 장르 영화 만이 갖는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작은 장치들을 배치하고 있다. 서부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 사용도 그렇고, '젖존슨'을 찾아가는 미스테리 구조는 얼핏 이 영화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음에도 은근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자칫 미스테리로 인해 본래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흔들릴 수도 있었으나 딱 매력적일 정도로만 장르를 활용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영화 안에 다양한 이야기,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나, 인물, 설정을 찾아보고 싶게 끔 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잉투기'에도 그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젖존슨'을 추적하다가 발견하게 되는 아이돌 그룹 '볼케이노'는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는데, 그들의 곡 '데칼코마니'와 그 뮤직비디오는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KAFA Film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영화가 중반까지 진행될 때까지도 '아, 무언가 좀 아쉽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태식과 영자, 희준의 이야기는 분명 나아가고 있었으나 갈 곳을 잃은 듯도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답답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 수록 이 영화의 작법이 이해되기, 아니 공감 되기 시작했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땐 무언가 뭉클 하는 감정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잉투기'는 쉽게 부릴 수 있는 욕심을 끝내 부리지 않는 절제하는 영화처럼 보이는데, 보통의 이런 데뷔 작이 주체하기 힘든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에 포커스와 매력이 있는 것과는 달리, '잉투기'는 상당한 절제가 엿보였다. 만약 그냥 에너지를 끝까지 쏟아내는 방식이었다면, 아마 영화는 겉으로 보여지는 힘은 더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태식의 분노와 심정은 더 큰 공감을 얻었을 수도 있고, 영자의 행동 역시 오히려 더 큰 통쾌함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잉투기'는 거기서 멈췄다. 아니 세상이 바라는 방식대로 나아가지 않았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잉여로 불리는 이들은 세상이 주목하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응어리를 해소하는 대신, 비록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자신 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계속하는 것을 택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들 만이 이해하는 작지만 큰 통쾌함이 있는 동시에 한 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끌어 안을 수 밖에는 없는 쓸쓸한 정서도 느낄 수 있었다.



ⓒ KAFA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은 참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들을 둘러 싼 현실이 이들을 바라보기엔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모습이지만, 태식과 영자, 희준이 과연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자신 만의 방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쩌면 반드시 나아갈 필요조차 못 느끼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계속 했고, 영화 속 문구처럼 계속하는 것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잉투기'의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좀 울컥했다.



1. 본문에도 썼지만 볼케이노의 데칼코마니는 꼭 한 번 라이브로 듣고 싶어요 ㅎ

2. 영자 역을 연기한 류혜영 배우는 단연 눈에 띄네요. 다른 작품도 기대됩니다!

3. 무드살롱의 '한강블루스'도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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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폭력적인 글 쓰지 않기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 받는 표현들 가운데는 상당히 폭력적인 내용들이 많다. 글의 의도 자체가 누군 가에게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 버려서 쓰는 이조차 이 표현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된 경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쟁이나 재난과 관련된 폭력적인 단어들을 우리는 은연중에 너무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언론은 물론 개인이 글을 쓸 때에도 더 더 자극적인 표현을 우선시하다 보니 이런 풍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버렸다고 할 수 있을 텐데, 한 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전쟁과 폭력에 물든 표현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경미한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슨 무슨 사단, 무슨 무슨 군단 같은 군사 용어로 시작하여, 핵폭탄, 융단 폭격, 포화를 퍼붓다, 확인 사살 등 직접적인 전쟁과 관련된 용어들은 물론, 쓰나미 같은 재난 용어 역시 일상 속에서 자주 목격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전 국민이 거대한 군사 작전 중에 있는 것 마냥,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폭력적인 표현들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표현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자주 사용했었고, 특히 무언가 헤드라인을 뽑아 낸다 거나, 더 자극적인 표현을 필요로 할 때는 자연스럽게 이런 폭력적인 표현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별 의미 없이 그냥 재미나 선호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이렇게 글을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이유로는 실제 전쟁이나 폭력에 피해를 받았던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이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작은 표현과 단어 하나 때문에도 그 끔찍했던 순간을 고통스럽게 떠올리게 된다는 이유였다. 특히 '쓰나미'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아주 쉽게 무언가 대규모를 표현해야 할 때 쓰나미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쓰나미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규모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그 규모가 앗아간 고통과 피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은가. 과연 쓰나미를 겪은 이들이 '아, 진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네'라는 표현에 '하하하'라고 웃을 수 있을까.


이건 단순한 예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인 예다. 모든 표현을 쓸 때 마다 이 단어가 누군 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고민해 보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글 쓰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 폭력에 가까운 행위가 될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알 만한 전쟁, 재난, 폭력과 관련된 표현을, 굳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글에 사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언급한 것처럼 그런 의도를 가졌을 때는 예외의 경우겠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굳이 더 자극적으로 쓰려고 혹은 그냥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쓸 때 이 부분을 최대한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좀 더 염두에 두면 좋겠다. 대단한 글 쓰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글을 쓰는 한 사람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글과 말이 얼마나 많은 폭력성을 담고 있는 지를 돌아보는 것도 한 번쯤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나부터 더 노력해야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가을 밤, 심하게 젖 들게 만든

버스커버스커 콘서트를 다녀와서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은 해외, 국내를 가리지 않고 꼭꼭 챙겨보았었는데, 올해는 정말 여름에 락페도 하나도 못 갔을 만큼 정신 없이 (나는 어디에 정신이 팔려있나) 보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스커버스커 콘서트 예매가 방금 열렸다는 모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서는, 별 다른 생각도 없이 그냥 예매하기를 몇 달 전. 지난 주말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버스커버스커의 콘서트에 다녀오게 되었다.


예매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난 버스커버스커의 열정적인 팬은 아니다. 물론 그들의 음악이야 음반을 사서 들을 만큼 좋아하지만 일부러 예매 오픈 시간 맞춰서 좋은 자리를 예매할 만큼의 팬은 아니었는데, 맨날 내가 좋아하는 이상한(?)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에 따라 다니느라 (이를 테면 bjork 같은;;;) 남들 못하는 경험들을 여럿 해본 여자친구를 위해, 아는 노래가 무척 많을 이 공연을 아마도 예매했던 것 같다.


버스커버스커 콘서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점이었다. '아는 노래가 무척 많다는 것'. 이번 공연을 보고 새삼 느낀 거지만, 디지털 싱글이 대세가 된 요즘, 버스커버스커 만큼 일반 대중들이 앨범 형태로 듣는 뮤지션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음반을 싱글 보다는 아직도 앨범 형태로 고집해서 듣는 나로서는, 최근 아니 이제 최근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디싱 시장은 아쉬움이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버스커버스커는 참 대단한 게 이런 시장을 상대로 소수가 아닌 다수의 대중들이 '앨범' 듣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뭐 결국 답은 좋은 음악이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디싱 위주의 곡들이 좋지 않은 음악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결책이 좋은 음악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콘서트와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조금은 덜한 설레임으로 보게 된 버스커버스커의 공연은, TV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참 소박 아니 순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장범준 이라는 캐릭터는 참 국내 가요계에서 이 정도로 성공하기 힘든 캐릭터가 아닐 수 없겠는데, 어찌 되었든 그를 알아본 슈스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만약 슈스케가 없었다면 버스커버스커라는 팀을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알기는 시스템의 현실 상 어려웠을 테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버스커버스커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은 3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 동안 쉴세 없이 달렸음에도, 거의 모든 곡을 거의 모든 관객들이 따라 부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정말 열혈 팬들 위주로 찾는 고가의 내한 공연을 가봐도 이렇게 거의 전 곡을 다 따라 부르는 일은 흔치 않은데, 버스커버스커의 공연은 관객 대부분이 이들의 열혈 팬이라기 보다는 일반 관객(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팬 대부분은 일반 관객이라는 얘기)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놀라운 광경이었다.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나이 지긋해 보이시는 아주머니도, 젊은 연인도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곡 들을 여러 곡 신 나게 따라 부르는 광경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처음 여러 명의 스트링 악단이 무대 뒤에 배치 된 것을 보았을 때 버스커버스커 특유의 소박함이나 아날로그함이 그 웅장함에 가려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었는데, 오히려 체조 경기장이라는 공연장에 딱 맞는 스케일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극적인 요소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본질을 해치지 않아 좋았고, 새삼 이번 새 앨범의 곡 들이 스트링 편곡과 제법 잘 어울린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예매할 때의 목표는 일부러 앞자리를 선택하지 않고 가장 멀리 있는 좌석을 예매해서 편안하게 노래나 감상해야지,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즐기기에 참 좋은 공연이었다. 가을 밤과 너무 잘 어울렸던 버스커버스커의 콘서트.



1. 거의 모든 곡이 다 좋았지만, 특별히 이번 새 앨범에서 좋아하는 곡인 '잘할 걸'은 역시나 좋았으며, 타이틀이라 오히려 너무 익숙해 이제는 조금 지나쳐버렸던 '처음엔 사랑이란게'가 참 좋은 곡이란 걸 새삼 깨닫기도 했던.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

사건과 배경의 사이에서



본 시리즈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의 신작 '캡틴 필립스 (Captain Phillips, 2013)'를 보았다. 폴 그린그래스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장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에는 몇 가지 기대되는 바가 있었다. 이미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 93'과 같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룰 때 제 3자인 관객을 얼마나 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일까 하는 것과 이 사건 묘사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까 하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건 기대만이라기 보다는 동시에 궁금한 점이라고 해야 할 텐데, '캡틴 필립스'는 그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못한 작품 같았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이야기는 실화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인질극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관건은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사건 속에 관객들을 얼마나 몰입시키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폴 그린그래스는 본인의 특기인 핸드헬드 촬영 기법과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음을 통해,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필립스의 이야기에 땀을 쥐도록 만든다. 사실 허구로 만들어진 인질극들에 비하자면 '캡틴 필립스'의 인질극 과정은 별다른 극적인 에피소드가 없는 편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인질극 영화였다면 선택했을 몇 가지 극적인 요소들은 이 영화는 거의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당히 단순하지만 한 가지 (필립스와 소말리아 해적과의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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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적으로 '캡틴 필립스'를 보며 떠올렸던 건 '리더'와 그의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납치 사건을 맞닥들이게 되는 선장 필립스 (톰 행크스)를 중심으로, 이 납치 임무를 지휘하게 되는 소말리아 납치범의 리더의 결정과 선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보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필립스에게만 집중된 듯 하지만, 사실은 이 두 인물이 거의 대등한 비중을 가지고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립스는 더 직접적으로 그에게 '니가 리더잖아'라고 묻기도 한다. 따지고보면, 납치 이전이 필립스가 리더로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다뤘다면, 필립스를 납치하고 나서는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다뤘다고 할 수 있겠다. 처한 상황만 보면 오히려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가 훨씬 더 어려움에 놓인 것 처럼 보인다. 필립스는 이런 상황에 항상 준비해왔고 적절한 메뉴얼도 있는 상황이지만, 소말리아 해적은 본래 해적도 아닐 뿐더러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더더욱 리더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영화는 오히려 이 준비되지 않은 리더를 준비된 리더인 필립스가 돕는 듯한 양상을 보여주면서, 단순한 인질극이 아닌 다른 긴장감을 갖은 관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 Michael De Luca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캡틴 필립스'의 처음 시작은 조금 달랐다. 평범한 가장인 필립스의 일상을 보여준 것 뿐만 아니라,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 소말리아 인들의 시작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시작을 보고서 나는 '아, 이 영화가 단순히 인질극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소말리아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나 보구나!'라며 더 기대를 갖은 것이 사실인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폴 그린그래스의 의도는 조금은 모호한 느낌이었다. 분명 영화는 필립스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소말리아 해적의 리더의 심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필립스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원래부터 해적이 아니라 어부였다는 사실이 강조되며,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이들이라는 걸 영화는 직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와 비교되는 이미지로 이 인질극을 해결하려는 미해군과 네이비실 작전팀의 모습은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리된 모습이다. 즉, 네이비실이 인질극을 해결하는 장면을 보고나면 '와, 멋지다'라는 느낌 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소말리아 해적을 동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분명 이 영화엔 두 가지 시선이 다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소말리아의 현실을, 그 배경을 더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어부인 그들이 해적이 될 수 밖에는 없었던 현실. 그것 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왜 없겠냐는 물음에 그저 대답하지 않았던 소말리아의 고통스런 현실을 조금만 더 보여주었더라면, 이 인질극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요소를 어느 정도 다루고 있음에도 결국엔 필립스 만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것이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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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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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 (Gravity, 2013)

당연하다고 여겼던 존재의 발견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들과 관계 속에서 혼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 '그래비티 (Gravity, 2013)'를 보고 나니 외롭다고 느낀 다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무뎌짐 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수 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처음'이라는 순간과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참 어리석게도 시간이라는 무게에 휩쓸려 머지않아 처음 만났던 순간을, 그 순간의 희열을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더 새로운 것, 또 다른 것 만을 찾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결국, 모든 것들에 대해 흥미를 잃고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영화 '중력 (Gravity)'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전형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다시금 끄집어 낸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관객이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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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니 SF로 오인하기 쉽지만 '그래비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면 과연 지구 밖 우주라는 배경은 그저 눈 요기의 도구로만 사용되었느냐 하면 또 절대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 글의 제목과 맞닿아 있다. 흔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원에 대한 경우일 때가 많다. 이 영화 역시 일종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다. 근원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작품이 찾고자 하는, 아니 말하고자 하는 진리란 무엇 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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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특수한 사고로 인해 한 인물이 겪게 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평소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래서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체감하도록 만든다. 일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력이라는 것이 없는 우주를 보여준다. 우리는 무중력 상태를 봐야만 현재 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상실해야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들을 영화는 차례 차례 꺼내어 놓는다. 사실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우주에서 주목할 것은 무중력 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우주의 묘사는 바로 '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영화의 타이틀과 함께 마치 극장 안의 소리를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커다란 소리의 소멸은, 앞으로 이 영화가 사운드에 있어서 어떤 현실성을 들려줄 지에 대한 일종의 선언처럼 들려왔고 실제로 그랬다. 그래서 중력 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없는 우주를 통해 우리는 생활 속에서 반사되어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 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비슷한 영화들이 그러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건 결국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지구에 살면서 지구라는 행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주로 나가 지구를 바라봐야만 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비로서 알 수 있게 된다 (이건 직접 경험할 수 없었으나 의심하지는 않는다). 극 중 코왈스키는 지구를 바라보며 여러 번 라이언에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이는 곧 관객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우리가 이런 지구에  살고 있는 거라고'


(중요하진 않지만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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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라 일컬어 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극 중 라이언 (산드라 블럭)이 코왈스키 (조지 클루니)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한 것은 오히려 그가 떠난 이후였다 (난 이 라이언의 상상 장면이 만약 실제 장면이었다면 정말 실망했었을지도 모른다). 홀로 우주선에 남게 된 라이언은 통신 여부를 확인하던 중 알 수 없는 외국인과 무선 통신이 연결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이언은 저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울음 소리에 감정이 터지고 만다. 다른 영화에서처럼 지구에 두고 온 애인의 목소리도, 부모의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라이언은 그저 자신이 평소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이 소리 들에 감격한다. 라이언의 감격은 사실 감격 이라기 보다는 회환에 가까웠을 것이다. 평소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났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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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라이언은 중국 우주 정거장의 우주선에 탑승하면서부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자궁 속에서 유영하듯 한 모습의 라이언은 새로운 탄생의 신호를 알리는 듯 잠시 눈을 감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탄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아직 더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라이언이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녀의 탈출 우주선이 지구 궤도를 향할 때의 모습은 마치 수 많은 정자들 사이의 경쟁에서 승리해 수정에 이르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와, 이 영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발견에 관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중 우리가 가장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의 중력? 사람?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

바로 자신이라는 존재의 탄생 그 자체일 것이다. 결국 라이언은 가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니 그 논의의 범주에 포함조차 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생명)에 대해 발견하고 다시 태어나 우뚝 서게 된다. 그녀가 지구로 무사 귀환 했을 때 다른 영화처럼 대규모 구조 작업에 의해 구조 된다거나 발견되기 이전에, 홀로 땅을 딛고 선 모습으로 끝내는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 에게 구조됨으로서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고 쟁취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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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그렇듯이, '그래비티'의 은유는 매우 노골적이다.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접적이고 단순하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기원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에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라이언을 통해 이를 풀어낸 방식도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너무 나도 당연한 것들의 진리가 새삼 가슴에 깊게 와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바쁘게 '그냥' 살면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 이 이야기는, 너무 당연한 것들로 이뤄져 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라이언처럼 저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도 있는데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가 아니라,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고 있었던 당연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발견해 낼 수 있다면 그 것 만으로도 이미 살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새삼 느낀 내 삶의 중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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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화제가 된 글 '아닌강의 비밀' (http://magazine.movie.daum.net/w/magazine/film/detail.daum?thecutId=6589)

참 대단한 감독'들' 입니다!


2.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역시 인상적이네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촬영 감독이기도 한데, 두 작품의 주제의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고,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네요!


3. 전 이 멕시코 삼총사가 더 잘될 줄 알았어요. 처음엔 이냐리투가 주목 받는 모양새였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제일 덜 주목 받는 그림이 되었군요. 델 토로를 비롯해 이 삼총사가 계속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4. 예전에 봤던 '허블 3D'가 떠오르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5. 아, 왕십리 아이맥스 3D로 봤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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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BS 국제다큐영화제]

특별 추천작 및 개막작 _ 블랙 아웃 (Black Out)



지난 토요일(12일), 매봉역에 위치한 EBS 사옥에서 있었던 제10회 EBS국제다큐영화제 (EIDF)의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 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번 '계단 2'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EIDF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소개를 했었었는데, 한 번 더 추가하자면 전 세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영화제로, 극장은 물론 TV에서도 영화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영화제였는데, 좋은 기회에 개막전에 미리 간담회에 초대 받아 자세한 설명도 듣고, 개막작인 '블랙 아웃 (Black Out)'을 가장 먼저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의미 깊었던 시간은 EIDF의 프로그래머 분이 직접 소개해주신 'EIDF를 즐기는 10가지 방법'이라는 내용의 간단한 발표였는데, 특히 시놉시스 등 기본 정보 만으로는 흥미를 이끌기에 조금은 부족함이 느껴졌던 작품들을, 몹시 보고 싶게 끔 만드는 핵심적인 소개의 시간이라 매우 유익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EIDF를 매년 함께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렇게 좋은 영화제인 것에 비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라는 점이었거든요. 물론 다큐멘터리 라는 장르의 특성 상 대중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고 다큐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해소 시킬 만한 극 상업 영화 못지 않은 재미있는 작품들도 여럿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고도 별로라는 평을 듣기 이전에 많은 분들이 아직 존재조차 모르는 현실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포스팅으로나마 EIDF를 소개하고자 하는 점도 있구요.





이 시간을 통해 제가 특별히 흥미를 갖게 된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1. 게이트키퍼 (The Gatekeepers) _ 드롤 모레 감독


이스라엘의 3대 정보기관 중 하나 인 신베드(Shin Bet)의 지난 30년 간 수장을 지낸 6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은 작품으로, 정보기관이라는 특수한 조직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 역사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2. 구글 북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Google and the World Brain) _ 벤 루이스 감독


현재까지 1천만 권의 책을 스캔하여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다는 구글. 하지만 이 가운데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책들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빅 브라더가 되고자 하는 구글의 프로젝트에 대한 경계의 시선이 담긴 작품입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입장으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네요.


3. 우리들의 닉슨 (Our Nixon) _ 페니 레인 감독


닉슨에 관한 자료와 뒷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죠 ㅎ 이 작품은 닉슨의 최측근이었던 삼인방 봅 홀드먼, 존 얼릭먼, 드와이트 체이픈이 직접 슈퍼8mm 카메라로 촬영했던 영상들을 담은 작품으로서, 기록으로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Fallen City) _ 치 자오


개인적으로 상실과 상실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런 면에서 주목하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쓰촨은 무너지지 않았다' 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삶이 무너져 버린 가족의 이야기와 그럼에도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 나는 암살당할 것이다 (I Will Be Murdered) _ 저스틴 웹스터


이미 제목에서 부터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암살을 예고한 듯한 발언을 했던 과테말라의 로드리고 로젠버그라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자신이 암살 당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동영상이 공개되며 이 문제는 대통령과 과테말라 전체를 혼란에 휩싸이게 만드는데.. 아, 이 작품도 안보고는 못 배기겠네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날은 간담회가 끝나고 가장 먼저 개막작 '블랙 아웃'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요, 평소 EBS SPACE 공감의 공연이 펼쳐지는 곳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에바 웨버 감독의 이 작품은 서아프리카의 빈국 기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인구의 80%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해 공부를 하려는 어린 학생들이 밤이면 유일하게 전기가 공급되는 공항이나 주유소 등의 불빛에 의존하여 공부를 하는 모습을 통해, 기니라는 나라의 현실은 물론, 우리의 삶을 되 돌아 보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EIDF의 프로그래머 분께서도 간담회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개인적으로도 EIDF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가정에서 손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그런 면에서 '블랙 아웃'을 통해 만나보게 된 기니의 현실은, 얼핏 들어왔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47분의 길지 않은 러닝 타임에도 기니의 핵심을 관통하는 여러 가지 담론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었으며, 이들에 비해 너무도 부유해 한 편으론 배부른 현실에 놓인 우리를 또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EIDF 영화제는 10월 18일 부터 25일 간 TV EBS채널과 건대 시네마테크, 고대 시네마트랩, 인디스페이스 등을 통해 상영될 예정이며, 자세한 스케쥴 및 내용은 아래 EIDF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EIDF 에 있습니다.




대부 트릴로지 블루레이 리뷰

"나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걸세" - 돈 꼴리오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3부작'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미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이자, 갱스터 무비의 기준이며 미국 문화에 대한 안내서이자 가족 드라마로서도, 서사의 측면에서도 모두 최고 수준에 달한 이 작품을 이제와 다시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2013년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블루레이로 드디어 선보인 '대부'를 소개한다면 몇 가지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항상 새로운 포맷의 미디어가 나올 때마다 출시를 바라는 작품들의 리스트 역시 공개되곤 하는데, 그 때마다 '스타워즈' '인디아나존스' '빽 투 더 퓨처' 등의 작품들과 함께 가장 발매를 고대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대부 3부작' 이었다. 발매를 원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대부'는 AV적인 더 나은 쾌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바램 보다는, 좀 더 단순하게 현재 시점에서 최고의 소스로 '대부'를 즐기고 싶다는 원초적인 바램이 더 크게 작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블루레이 시대가 되면서 '대부'는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었고, 뒤에 다시 소개하겠지만 치밀한 영상 복원 작업을 거쳐 블루레이라는 미디어에 걸 맞는 수준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는 다양한 미디어와 수없이 많은 작품들을 통해 셀 수 없을 정도로 인용되고 회자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 만큼 하나의 영화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로까지 대중들에게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측면에 이 클래식을 다시 보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2013년이라는 현재의 시점을 일부러 언급한 이유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이다. 의외로 최근의 영화팬들 중에는 제목만으로도 너무 유명한 클래식 작품들이지만 제대로 본 적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대부 3부작'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반대로 너무 유명한 고전 작품들 가운데는 지금 다시 보면, 아니 처음 보게 되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 3부작'이 클래식으로 불리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대서사를 다루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 의미와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미드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갱스터 영화를 접해왔던 이들이라면, 그 모든 작품들이 빚을 지고 있는 '대부'를 꼭 봐야만 할 것이고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Blu-ray : Menu


- 1편






- 2





- 3





Blu-ray : Video


블루레이의 화질은 연식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훌륭한 복원 작업을 통해 완성된 최선의 화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고전들이 블루레이로 출시될 때 자주 출시에 의의를 두는 경우들도 있으나 '대부' 블루레이의 화질은 분명 그 이상으로 평가될 만하다. 대부의 복원 작업은 원본 필름을 모두 4k 이미지로 디지털 리마스터링 하여 꼼꼼한 개선 작업을 거친 영상이기에 이것이 현재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화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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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블루레이 영상에서 눈 여겨 볼 것은 본 촬영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다.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과감한 시도들을 그대로 구현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블루레이급 화질에 걸 맞는 수준을 이루는 작업을 병행해야 했는데, 영화 전체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황금빛 색감도 깊이 있게 잘 살려내고 있으며, 빛의 노출이 의도적으로 강한 장면들도 그대로 살리고 있으며 반대로 의도적으로 어둡게 촬영된 장면들도 그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다. 사실 이런 어두운 장면들을 어떻게 살려냈는지에 대한 것은 극장에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데, 블루레이의 응집된 감상 환경에서는 더 탁월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Blu-ray : Sound


돌비 TrueHD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흠잡을 곳이 없다. 역시 가장 귀에 먼저 들려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음악이다. 메인 테마 곡을 비롯해 이 대서사를 감싸고 때때로는 이끌기도 하는 영화 음악은 차세대 사운드로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훌륭한 사운드 수준의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되는 작품들마다 느끼게 되는 점이지만, 이 장면에서 저런 소리가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이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미세한 소리들이 들리고, 더 예민한 청각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총격 씬이나 폭발 씬에서도 조금은 의외의 박력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데, 고전 작품들 가운데 폭발 등의 강력한 사운드가 비교적 뭉뚱그려져서 표현되는 것과는 달리, 차세대에 걸 맞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이번 '대부 3부작' 블루레이에서 가장 주목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부가영상이다. 4번째 디스크에 별도로 수록된 부가영상에는 '대부'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뒷 얘기들은 물론, 복원 과정에 관한 아주 자세한 이야기 그리고 DVD에 수록되었던 영상들까지 모두 수록하고 있어 그 소장가치를 더한다.





그 이전에 본편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어 자막이 100% 제공되어 삼부작에 대한 감독의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모두 즐길 수 있는데, 아마도 '대부'의 팬들은 음성해설부터 1회 차 관람을 해도 좋을 것이다.





기사회생한 걸작 (The Masterpiece That Almost Wasn't)에서는 대부라는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를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1960년대 어려움을 겪던 헐리웃에서 새롭게 인수된 파라마운트사가 내놓은 베스트 셀러 원작 영화 '대부'는 배급은 물론, 감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었는데 마피아를 미화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주된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이탈리아인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까지 제의가 가게 되었고, 그 역시 이 작품에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으나 그와 조지 루카스 등이 함께 만들었던 영화사의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돌리게 되었고, 코폴라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극장에서 보게 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사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코폴라는 처음부터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를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영화사는 둘 모두를 교체하기를 바랬다는 점인데 (알 파치노 대신 로버트 레드포드를 원했다), 이 과정을 보면 코폴라가 얼마나 영화사와 싸워가며 지금의 캐스팅, 이야기, 분위기 등을 지켜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내용들은 부가 영상 전반에 깊게 드리워져 있다. 그 만큼 힘겹게 지켜냈다는 걸 부각하고 있다).





이 부가영상은 주로 인터뷰를 통해 소개 되는데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물론 그의 동료이자 이 작품 초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조지 루카스, 역시 동료이자 이 작품의 복원 작업을 맡기도 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배우인 존 터투로와 알렉 볼드윈 그리고 길예르모 델 토로와 영화 평론가, 기획자, 제작자 등 이 영화의 팬이라 자처하는 이들의 솔직한 인터뷰를 통해 새삼스럽지만 '왜 대부라는 작품이 그렇게 대단한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탈리아 출신 배우나 관계자들이 보기에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에겐 갱스터 영화라기 보단 이탈리아 가족영화로 느껴졌을 정도. 굉장히 사소한 것들에서 이탈리아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디테일들이 결국, 이 영화를 갱스터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다.


대부의 세계 (Godfather World)에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대부'에 영향을 받았거나 오마주를 바치고 있는 여러 작품,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만큼 일종의 기준이 되어버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대부'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TV시리즈 '소프라노스'는 물론 '심슨'과 '사우스파크'에 인용된 대부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장면뿐만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같이 대사 자체가 수없이 인용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다시 생명력을 갖게 되었는지의 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필름 복구 대부의 재발견 (Emulsional Rescue - Revealing the Godfather)은 이번 대부 블루레이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상의 복원 부분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부가영상에서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상세한 소개를 만나볼 수 있다. 다른 복원과 관련된 부가영상이 기본적인 복원 기술에 대한 얘기와 전후 비교 정도로 그치는 것에 비해, 이 부가영상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초적인 단어와 기술의 설명부터 시작해, 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고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성과를 이루어 냈는 지를 아주 논리적이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대부'는 왜 더 복원이 어려운 작품인가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걸쳐 소개하고 있어 단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 단언컨대 이 부가영상은 '대부'가 아니더라도 영상 복원에 관한 메뉴얼에 가까운 자료로서 최고의 부가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반작업 (...When the shooting stopped)에서는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 음악 중 하나인 대부의 메인 테마 곡도 처음에는 영화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빼려고 했다는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새삼 이런 것들을 강하게 지켜낸 감독을 비롯한 창작자들의 단호함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편집에 관한 후반 작업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영화에서 속도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편집 작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대부의 섬세한 편집과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편집 과정을 소개할 때도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편집하였으며, 왜 이렇게 편집했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들려주고 있어 훨씬 더 유익한 영상이었다. 


레드 카펫 위의 '대부' (The Godfather on the Red Carpet)는 흥미롭게도 다른 영화인 '클로버필드'의 레드 카펫에 참여한 배우, 제작자들에게 '대부'에 관한 질문을 하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소회 등을 답하는 인터뷰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대부'의 4개의 단편 (Four Short Films on the Godfather)에서는 각기 다른 4개의 주제에 대한 짧은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대부 vs.대부2 라는 주제로 어떤 작품을 더 좋아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카놀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는데 '카놀리는 챙겨'라는 대사가 애드립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클레멘자의 죽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코폴라의 자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캐스팅과 관련해 어쩔 수 없었던 결정이었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대부' 가계도 (The Family Tree)에서는 가계도를 통해 각 인물들의 간단한 소개와 그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소개를 각각 확인할 수 있으며, 범죄 조직 차트 (Crime Organization Chart)에서는 가계도와는 다르게 콜레오네 조직과 라이벌, 관계자들을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마치 범죄자 정보 파일을 보듯 일목요연 하게 특징과 히스토리가 묘사된 정보가 흥미롭다. 둘 모두 영어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2001 DVD Archive는 DVD에 수록되었던 부가영상들을 다시 모아 수록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그냥 내용을 수록한 정도가 아니라 당시 DVD 메뉴 화면 구성 그대로 다시 불러와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Behind The Scenes, Filmmakers, Additional Scenes, Galleries의 메뉴가 수록되었으며 4:3 화면 비로 제공된다. 아마 '대부'의 팬이라면 기존 출시된 DVD를 모두 소장하고 있을 텐데, 이렇게 블루레이에 함께 DVD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총평]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3부작'은 거듭 반복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자 영화 팬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일 것이다. 이번에 '대부'를 다시 보며 새롭게 느낀 점이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면에서 '대부'가 여러 작품들과 문화에 기준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만큼 20세기 클래식인 '대부'를 21세기에 다시 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조금만 먼저 봐야지 했다가는 결국 3부작을 내리 다 보고 마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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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유를 몰랐던 이들의 진혼곡



2003년 작 '지구를 지켜라'를 인상 깊게 보았던 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을 장준환 감독의 신작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이하 화이)를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화이'는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가운데 잔인함마저 가득한, 장준환 감독 만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 납치된 아이를 납치범들이 어른이 되도록 키워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한 구조였는데,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의 구조를 더해 장준환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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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을 텐데, 하나는 영화의 인물이나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음을 왜 선택했느냐 일 것이다. 일단 단순하게 보았을 때 '화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각자의 이야기는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인물들은 화이에게 다섯 명의 아빠가 있는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다수의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 비중이 모두 적은 편이 아니라 일정 수준이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쉽사리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 단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많은 캐릭터들이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분명 이 점은 집중 도를 흐릴 수 있는 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 비중과 수준이 필요 적정 선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허무하다 거나 전체 전개를 흐리는 일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다섯 명의 아빠라는 설정처럼, 때로 나오며 각자의 주특기가 있는 캐릭터로 인해 부가 적인 재미 요소가 있었고, 주변 인물들 역시 이름 있는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어 각각을 인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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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물을 굳이 등장 시켰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를 통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이'의 이야기 구조라면 화이 (여진구)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키워준 납치범 아빠들과 적으로 대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1:1의 대결 구도 (정확히 말하자면 1:5가 될 수도 있지만)에 집중하여, 화이의 분노와 이 이야기의 끝을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준환의 '화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기본 이야기에 몇 가지 곁 가지 이야기를 추가했고, 각각의 캐릭터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부여했다. 그 얘긴 즉,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화이라는 한 인물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등장하는 모두가 같은 갈등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다수의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그 정서를 느꼈겠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인물은 그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어떻게 든 문제를 해결하고 살고자 하기 보다는, 그저 죽음이 순순히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시종일관 느껴졌다. 단순히 죽기 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저 세기말 적인 분위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화이'에서는 왜 인물들이 죽기 만을 기다리는 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이유는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처럼, '왜?'라는 물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에 대해 결국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들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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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어린 아들을 납치 당한 부부는 왜 자신들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끝내 알거나 인정할 수 없었을 터이고, 괴물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이도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하면 이 괴물을 떨쳐낼 수 있을지 그 방법과 이유를 몰랐기에 결국 영화 속 이야기 같은 행동들이 벌어졌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저 무서운 범죄자 정도로만 묘사되었던 극 중 김윤석이 연기한 인물의 이야기는, 영화의 메시지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왜 나는 남들처럼 못하는지'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는지' 등과 같이 '왜?'라는 질문에 결국 세상이 답해 주지 못하면서 그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한 채 자신 만의 왜곡된 방법으로 살아 남을 수 밖에는 없었던 그의 이야기는, 그대로 화이에게로 전이되어 슬픈 진혼곡으로 마무리 된다.


그 절절함. 이미 절절하고 치열한 단계를 다 거쳐 무뎌진 인물의 이야기와 현재 그 치열함 속에 놓인 인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순간이, 이 작품 '화이'의 클래이맥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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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진구의 연기는 제대로 처음 보았는데 괜찮았어요. 교복을 수트로 오해할 만큼 멋지더군요 ㅎ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이 영화를 볼 수 없었다는게 함정.


2. 김윤석은 정말 무서워요.


3. 개봉 첫 날 무대인사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아래 직찍. 조진웅 씨는 생각보다 슬림하셔서 깜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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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BS 국제다큐영화제

이 작품을 주목하라 - 계단 2: 최후의 변론 (The Staircase 2)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극장에서는 물론 TV를 통해서도 함께 소개하는 영화제인, EBS 국제다큐영화제 (EIDF)가 벌써 올해로 10회를 맞았네요. 평소 다큐멘터리에도 관심이 많고 다른 영화제에 비해 집에서 TV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용이함이 있다 보니 이전부터 꾸준히 주목하고 있었던 영화제인데, 올해도 10월 18일 ~ 25일까지 고려대학교 시네마트랩, 건국대학교 시네마테크, 인디 스페이스, EBS SPACE 를 통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올해 EIDF는 '진실의 힘 (Truth Let it be Heard)'이라는 주제로 상영 작들이 초대되었는데, 다큐멘터리가 다른 극 영화 장르에 비해 더 차별 점을 가질 수 있는 '진실' 전달에 포인트를 두었다는 점에서, 초대 된 작품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게 되더군요.





일단 본격적으로 제가 이번 EIDF에서 추천하는 작품에 대해 소개하기 이전에, 아직 EIDF에 대해 조금은 낯선 분들을 위해 좀 더 소개해 드리자면, 앞서 설명 드렸던 바와 같이 다큐멘터리 작품들 만을 소개하는 영화제로서 올해는 91개국의 756편의 작품이 출품 되었으며 이 가운데 23개국 54편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부분 경쟁 국제 영화제로서 영화제 마지막 날 시상식도 진행되며, 무엇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정에서 EBS 채널을 통해 영화제 기간 동안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방영되는 작품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인 영화제 입니다. 물론 극장에서도 상영을 하니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고 싶은 작품들은 고대 시네마트랩, 건대 시네마테크와 인디 스페이스 등을 통해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까지는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와 함께 했었는데, 극장에서 가서 관람했던 기억도 떠오르는군요.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제가 이번 EIDF에서 소개, 아니 추천 드리고 싶은 작품은 장 자비에 드 레스트레이드 감독의 2011년 작 '계단 2 : 최후의 변론 (The Staircase 2)'입니다. 장 자비에 드 레스트라드 감독은 프랑스 출신의 작가, 연출자, 영화/TV시리즈 제작자로서 주로 사회의 구조를 분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왔던 감독인데, 그는 전작 '일요일 아침의 살인'을 통해 아카데미 영화제 최고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이 작품 '계단 2'로 올해 EIDF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단 2'는 '계단 (The Staircase)'에 이어 10년 만에 선보이는 후속 작으로서, 마이클 피터슨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건 8년 후 조사에 참여했던 일부 수사관들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기반으로 다시 재심을 받기 위해 벌이는 긴 법정 심리를 지켜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극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긴장감과 리듬 그리고 실화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만약 이 작품이 EIDF에서 상영되었다는 걸 몰랐다면 다큐멘터리 형식을 띈 일반 극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몰입 감과 긴장 감을 전달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이 작품이 더 흥미로웠던 점은 연출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음에도 하나에 완벽한 작품으로서 성립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 마이클 피터슨이 겪어야 했던 8년 간의 이야기와 지리 한 법정 심리가 영화보다 더 영화 다운 이야기여서 이기도 하지만, 이를 묵묵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감독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해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힘을 얻게 될 때는 감독 본인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어느 한 편에 서서 지지하거나 정반대로 완전히 제 3자의 시선으로 묵묵히 바라보는 경우가 있을 텐데, '계단 2'는 후자에 가깝기는 하나 본 사건 자체가 워낙 한 편으로 치우친 (정의의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사건이었기에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의 힘'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비슷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적지 않게 보았었는데, 만족스러웠던 그들과 비교해도 '계단 2'는 전혀 모자라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EIDF 상영 작 가운데 단연 추천하고 싶네요! '계단 2'는 EBS 채널을 통해서도 상영될 예정인데요, 10월 19일 (토) 오후 11시 45분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또한 극장에서도 상영될 예정인데요,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4층에 위치한 KU시네마트랩에서는 10월 21일 (월) 낮 12시 50분에 상영될 예정이며, 건국대학교에 위치한 KU시네마테크에서는 10월 20일 (일) 오후 7시 40분, 21일 (월) 오후 1시 10분 이렇게 2회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영화 '계단 2 : 최후의 변론'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이번 EIDF는 일반 상영 외에 특별 상영과 부대 행사들도 열릴 예정인데, 비틀즈 팬클럽 관리자였던 프레다 켈리와 'Good Ol' Freda'의 프로듀서인 제시카 로우슨이 참석한 가운데 'Good Ol' Freda'의 특별 상영과 함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멘틀즈와 타틀즈의 공연이 곁들여진 '비틀스 데이'행사가 10월 24일 (목) 4시 반 부터 10시까지 EBS 1층 로비 및 EBS SPACE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한 도시와 건축 섹션 중심으로 선정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관련된 책의 저자와의 만남도 진행하는 '건축 다큐 북 콘서트'도 10월 22일 ~ 24일 KU 시네마테크에서 열릴 예정이니, 건축과 영화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시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네요.


이번 제 1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과 상영 작들에 대한 소개는 아래 EIDF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다음주 금요일인 10월 18일 부터 25일(금)까지 극장과 EBS 채널을 통해 진행될 제 10회 EIDF 영화제의 작품들을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추천한 '계단 2 : 최후의 변론'도 10월 19일 (토) 오후 11시 45분에 방영 예정이니 꼭!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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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너스 (Prisoners, 2013)

누가 죄인인가



휴 잭맨과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 '프리즈너스'를 보았다. 개봉 전에는 두 배우의 출연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을린 사랑'을 연출했던 드니 빌뇌브의 작품이었으며 두 배우 외에도 폴 다노, 마리아 벨로, 테렌스 하워드, 비올라 데이비스, 멜리사 레오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프리즈너스'는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가득 채운, 꽉 찬 스릴러 물이다. 몇 가지 기술적인 면이나 장르 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할 것들은 있지만, 메시지 적으로는 생각보다는 이야기할 것이 그리 풍성하지는 않은 (직관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 부분이 스릴러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2시간 반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이 조금은 지리 하게 느껴졌던 건, 재미가 없거나 느슨해서 라기 보다 이 영화가 선택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도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감독은 관객이 극 중 아이를 유괴 당한 부모와 이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마찬가지로 진이 빠지길 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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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장르 영화적인 면에서 긴 러닝 타임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사건, 그리고 범인에 대한 궁금증은 역시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했던 '조디악'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범죄 스릴러 측면에서 '프리즈너스'는 '조디악'에 한 참 못 미치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2시간 반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끌고 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즈너스'는 '누가 범인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테마를 기반으로, 범인을 찾는 과정 중에 각각의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더 직접적으로 어떤 죄를 짓게 되는 지를 주목한다. 그리고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주인공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어린 내 아이를 유괴 당했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가 내 눈 앞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영화는 이 두 시각을 이야기 속에서도 모두 드러낸다. 심하다 고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연민은 물론, 그래도 이 방법은 잘못되었다는 시선도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인물들이 엮이게 된 이 유괴 사건이 어떤 의도치 않은 사건에서 말미암았는지도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그 자체가 반전일 수도 있지만 이건 반전으로 사용되고 있다기 보다는, '왜 그럴 수 밖에는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답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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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양면성을 갖고 있는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각본 외에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운데 휴 잭맨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듯 하다. 사실 휴 잭맨에 대해서 한 동안은 그저 '휴 잭맨 = 울버린'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 미제라블'을 보고 나서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장발장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새삼 빠져들 수 있었을 정도로 그의 연기력에 매료되었었다. '프리즈너스'에서도 그의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여기에는 실제로 어린 딸을 두고 있는 그의 영화 외 적인 이미지도 크게 작용했는데, 극 중 인물인 도버와 영화 외 인물인 휴 잭맨이 겹쳐지며 이 영화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그로 인해 도버의 행동들은 제 3자의 시선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공감할 수 있어,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죄와 죄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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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오면 크게 남는 것은 없는 영화였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관람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좋은 몰입 감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명 연기와 고립되고 긴장되는 가운데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1.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정말 대단하네요. '스카이 폴'에 버금가는 멋진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에 제이크 질렌할이 빗속을 뚫고 운전하는 장면은, 마치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영상미를 선사하더군요.


2. 제이크 질렌할이 설정한 '로키'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어요. 연기로 표현되는 성격 외에 의상이나 움직임 등에서도 확실히 캐릭터를 잡았다는 걸 인식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3. 폴 다노는 이제 이런 역할만 하는 듯;; 뭔가 천재 아니면 외톨이 혹은 정신이상자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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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

관객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



우디 앨런의 신작 '블루 재스민 (Blue Jasmine, 2013)'을 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라면 단연 홍상수와 우디 앨런을 들 수 있겠는데, 두 감독의 공통점이라면 몹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 다는 것 외에 거의 매 년 영화를 발표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바로 포스터였는데, 그래서 끌리는 바가 적어 놓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디 앨런!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인데!'하는 마음에 보게 된 '블루 재스민'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냉정하고 차가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굳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가 최근 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과 유머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는 관객에게마저 냉정한 시선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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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의 줄거리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부자였던 한 여인이 금전적으로 한 순간에 몰락하며 자신의 뒤바뀐 처치를 인정하지 못해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줄거리의 이야기들이 있다. 왜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이 갑작스럽게 이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와 그렇게 된 재스민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가 그것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 영화에 마치 '매치 포인트'나 '스쿠프' 같은 스릴러 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 등장하는 일말의 사실은 반전이나 스릴러로 존재하기에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자체가 스릴러를 전혀 염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시선인, 이 영화가 이런 상황에 놓인 재스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 저 줄거리만 보면 대충 예상되는 바가 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부에서 멀어져 버린 주인공을 통해 그저 부와 명예가 부질 없음을, 혹은 명품이나 귀족같은 삶이 일종의 허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소박한 것에 소중함을 깨닫는 전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얼핏 보면 그녀의 변화에 주목할 수도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졌던 건 그녀의 변화가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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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스민을 묘사하는 시선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래서 재스민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허상과 그녀가 허상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던 사회를 동시에 다루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재스민을 두고 영화가 관객과 두고 있는 거리 혹은 메시지였다. 다소 실망스러웠던 우디 앨런의 전작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이런 비슷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극 중 로베르토 베니니가 등장한 일종의 유명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도 동떨어져 있고, 다른 에피소드들과도 사실상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감독 본인을 비롯해 헐리웃으로 대표되는 영화 배우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메시지도 느껴져, 우디 앨런의 최근 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기도 했는데,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블루 재스민' 역시 이런 메시지 적인 측면이 겹쳐져 전달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재스민이라는 인물을 관객과 거리를 두고 묘사하지 않고 그녀의 생각과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관객과의 접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포착해내, 그녀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관객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극 중 재스민은 명품들에 집착하고 (그것이 그녀를 말해주는 유일한 것들이기에), 부와 돈으로 살 수 있는 세계를 동경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실제 명품 브랜드들의 이름들은 단순히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함이나 현실성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자극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스민과 마찬가지로 부에 대한 동경심을 무의식 속에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재스민을 동정하기도하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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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재스민의 동생 역할과 그녀의 거친 애인과 친구를 관객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극 중 재스민의 그것과 같은데, 이 상황을 정말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재스민과 관객의 시선이 옳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등장한 또 다른 부자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는데, 피터 사스가드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아, 저 사람도 사기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걸 극장 분위기로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아마도 전형적인 줄거리였다면 그랬겠지만 우디 앨런은 관객의 이런 심리를 꼬집기라도 하듯 보기 좋게 여기서도 또 한 번 재스민을 코너로 몰았다. 


나 역시 그랬지만 부에 대한 동경, 그것이 허상이고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갖을 수 있다면 갖고 싶다는 생각(욕심)을 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영화는 이 자체를 꼬집는다기 보다는 갖을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그제서야 쿨한 척하며 '그래 그건 다 허상이지'라고 말하려 하는 관객을 한 발 물러서서 참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에 올라갈 때 마치 내 시커먼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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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는 '미드나잇 파리'가 더 좋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조금은 특별한 우디 앨런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 배우들의 참 좋은 연기들도. 케이트 블란쳇이야 너무 많이들 얘기하니까 더할 필요 없을 것 같고,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언제나 참 자연스럽더라. 오랜만에 '해피 고 럭키'가 보고 싶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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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Oblivion, blu-ray)

클래식한 SF의 맛



조셉 코신스키의 최신작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은 그의 전작 '트론 (Tron : Legacy, 2010)'과 마찬가지로 장르 영화로서 SF영화의 클래식한 장점들을 최대한 발휘한 동시에, 가장 최신의 트랜드를 반영하려 애 쓴 작품이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는데, 하나는 미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디자인과 컬러로 표현된 아이템이나 장소, 탈 것 등의 아름다움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SF 영화에서만 다룰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와 이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먼저 디자인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오블리비언'은 미래를 묘사하면서도 큰 이질감 없이 연상이 가능한 비교적 근미래를 다뤄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지점을 영리하게 표현해 내면서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만들어 냈다. 소품이나 장소는 물론 배경에 이르기까지, 조셉 코신스키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표현하기 보다는 가급적 이것들을 실제로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CG만으로도 거의 실사와 동일한 수준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짜와 가짜, 실제와 허상이 중요한 테마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어쩌면 피부로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차이에 주목했고, 그 작은 차이는 관객들이 '오블리비언'의 세계관을 적은 설명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해냈다.






둘째로 주제 측면에서 '오블리비언'을 보다 보면 여러 SF 영화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경향은 단지 이 작품만의 특성 이라고 하기 보다는 근래의 SF 영화들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정하고 새로운 것 만을 보여주겠다고 나서는 영화가 아니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든 거의 기존 SF 명작들이 다루었던 주제나 설정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 깊이가 남다르거나, 시각적으로 압도해야만 더 매력적인 SF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오블리비언'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각적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나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분명히 모든 이야기를 다 마무리 했음에도 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다루려 했던 '기억'에 관한 시선이 결코 스쳐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래 단락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블리비언'의 스토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SF 영화를 여럿 본 관객이라면 다음을 유도하는 카메라 앵글만 봐도 '아, 다음은 어떻게 되겠구나'라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하퍼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잭 하퍼가 본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 영화를 두 번 보게 되면 영화 초반 등장하는 잭 하퍼의 내레이션이 얼마나 직접적인 복선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영화가 좀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일반적으로 복제된 존재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고민하거나 혹은 그 존재의 가치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오블리비언'은 진짜와 가짜에 대한 상대적인 논의보다는 무엇이 진짜를 진짜답게 만드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가 선택한 조건은 바로 '기억'이다. 만약 일반적인 경우라면 오리지널과 복제된 존재 간의 공통점 혹은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겠지만, '오블리비언'에는 오리지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복제된 가짜들만 존재한다는 것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데 관객은 처음부터 이 가짜에게 공감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왔기에 나중에 등장한 가짜 잭 하퍼와 달리, 처음부터 함께한 이 가짜를 사실상 오리지널로 판단하게 된다. 그는 오리지널 잭 하퍼가 아님에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깨어있는 존재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 잭 하퍼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말 미에 '내가 바로 잭 하퍼다'라고 말하는 또 다른 잭 하퍼를 완전히 인정해 버린다.





즉,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같지만 다른 존재들을 명확히 같은 진짜의 잭 하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에 가장 흥미로운 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른 복제 된 존재를 또 다른 존재가 아닌 복제된 오리지널과 동일한 진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영화의 선택은 몹시 흥미로운 것이지만, 이런 흥미로움을 더 깊이 있고 매력적으로 표현해 내기엔 조금 부족했던 영화의 깊이 때문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스포일러 끝)






이렇게 민감하거나 철학적으로 여지가 있는 스토리는 드라마 장르보다도 더 치밀한 구성을 요구하게 되는데 - 최근 개봉한 닐 블롬캠프의 '엘리시움'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 그런 면에서 '오블리비언'은 세심한 작품은 아니다. 디테일한 퍼즐 맞추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다는, 눈길을 확 잡아 끄는 디자인과 스케일을 내세우고 느슨하게 전개되는 영화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내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 한 번에 풀려 버릴 땐 시원함 보다는 소소한 해소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액션이 강조된 영화도 아니라 조금 어중간한 느낌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독의 전작인 '트론'이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누가 이 영화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오블리비언'은 꽤 괜찮은 SF 영화라고 말할 것이다. 톰 크루즈라는 신뢰 가득한 배우가 참여해 부족한 부분을 훌륭히 채우고 있으며, 잘 빠진 곡선의 디자인들은 그 자체로도 황홀하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볼 때 마다 조금씩 더 빠져드는 빅토리아라는 캐릭터와 그녀의 이야기도 '오블리비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일 것이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MPEG-4 AVC 포맷의 화질은 말 그대로 레퍼런스 급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블리비언'은 굉장히 시원하고 깔끔하며 질감까지 느껴지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영상을 담고 있는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런 장점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아이맥스로 극장에서 보았을 때 보다 더 훌륭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블루레이 유저들이 선호하는 쨍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영상 자체가 시원 시원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시원함을 쨍한 화질로 표현해 만족감을 더 극대화 하고 있으며, 섬세한 질감도 잘 살아 있어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표면의 느낌을 양쪽 모두 100% 전달해 낸다. 암부의 표현력도 우수한 편이며,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어진 것들을 촬영한 경우가 많아 더 살아있는 영상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화질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 작품이 공들여 만든 다양한 근 미래의 소품들의 그 우아한 곡선과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만 같은 그 질감을 영상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우수한 화질을 다양한 환경의 장면에서 각각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야외 장면이나 사막에 가까운 모래 위 장면, 적막한 우주 공간, 어두운 밤 수영을 즐기는 장면까지. 화질 측면에서 각각의 재미와 체크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점이 특히 블루레이로서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Blu-ray : Audio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레퍼런스 급이다. 사운드 적인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은 대부분 드론이 등장하는 액션씬들인데, 드론이 내는 청명한 기계음들은 물론, 파괴력 넘치는 전투 장면의 사운드는 블루레이 사운드다운 임팩트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또한 버블쉽이 기체를 한 바퀴 빙 돌려 방향을 선회 할 때의 입체감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와~'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등뒤를 휘감는 사운드였다. 여기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M83의 영화 음악까지 더해져, '오블리비언'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최근 타이틀 가운데 가장 높은 만족도를 선사한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가장 먼저 톰 크루즈와 감독 조셉 코신스키가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있는데, 아쉽게도 한글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작품과 장면 장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사실상 한글 자막 미지원으로 즐길 수 없게 된 점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겠다.







'삭제 장면' 에는 총 4개의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대부분 본편에 수록되었어도 거추장스럽지 않았을 만큼 의미 있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잭이라는 캐릭터를 더 풍부하게 설명해주는 장면이나, 빅토리아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후 줄리아와의 에피소드에 복선으로 활용되고 있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인 부가영상은 'Promise of a New World : The Making of Oblivion'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 짧게 한 줄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영화로 보고 예상할 수 있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실제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제작 영상이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흥미로웠던 점들을 소개해보자면, 대부분 영화 제작이 결정되고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컨셉 아트가 제작 활용되는 것과는 달리, '오블리비언'은 이 컨셉 아트로부터 시작되어 영화화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 컨셉 아트를 실제 영화화 된 장면과 비교했을 때 상당 수준에 달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디자인 작업 물들이 영화에 초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가능한 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들려고 했다는 점인데, 실제 크기의 버블쉽을 제작한 것은 물론, 주인공들이 대부분의 생활하는 공중 가옥의 배경이 되는 하늘마저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로 촬영된 다양한 조건의 하늘 영상을 대형 스크린과 다수의 프로젝터를 통해 완벽하게 하나의 입체 배경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M83이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음악에 대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전작 '트론'에서는 Daft Punk가 있었다면 '오블리비언'에는 M83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 출신의 이 일렉트릭/슈게이징 밴드는 영화 음악에서도 자신들의 진가를 또 한 번 발휘해 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최신 앨범 'Hurry Up, We're Dreaming'를 듣고 팬이 되기는 했지만, 영화 음악이라는 분야에도 잘 녹아들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는데, 그냥 무난한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정도로 그들의 영화 음악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만약 아직 그들의 음반을 들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최신작 'Hurry Up, We're Dreaming'을 추천하고 싶다.


M83의 영화 음악이 중요도를 말해 주듯, 부가영상에는 별도로 대사 없이 M83의 스코어 위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M83 Isolated Score' 메뉴도 제공한다.





[총평] 조셉 코신스키의 '오블리비언'은 분명 아쉬운 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SF영화다. 영상과 사운드가 그 주된 매력 중 하나라는 점에서, 레퍼런스급 화질과 사운드를 수록한 블루레이는 영화관 못지 않은 - 어쩌면 더 좋은 - 감상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빅토리아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았으면 한다. 처음 볼 때는 미처 다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에 숨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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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역사와 허구의 사이에서



'연애의 목적 (2005)' '우아한 세계 (2006)'등을 연출했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 '관상'을 추석 연휴 느지막히 보았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으로 더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한데, 송강호를 비롯해 백윤식, 김혜수, 이정재, 조정석, 이종석까지 이름 만으로도 포스터를 부족함 없이 채울 면면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는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수양대군이 자신의 반대파를 청산했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관상쟁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대입한 펙션 장르를 취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역사와 허구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 한국 영화 가운데 부담 없이 추천할 만한 웰메이드 영화를 꼽으라면 어렵지 않게 '관상'을 꼽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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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이라는 장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영화들 보다 더 큰 흥미를 주게 마련인데, 그 점에서 '관상'은 전형적인(나쁘지 않은) 방식을 택했다. 역사와 허구의 비중을 두고 봤을 때 전체적인 비중은 역시 실제 역사에 더 크게 두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렇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나 전개 과정에서의 신선함은 아무래도 좀 떨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재미와 흥미를 주는 것은 영화가 선택한 허구의 이야기, 즉 관상쟁이 내경 (송강호)의 이야기일텐데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을 제목으로 내세웠을 정도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가운데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함이 엿보였다. 


초반 영화는 관상이라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그 관상을 기가 막히게 보는 주인공 내경의 존재에 집중한다. 내경이 오롯이 관상에 집중할 때만 해도 영화는 균형을 잃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내경이 관상쟁이를 초월한 한명회 못지 않은 책사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초반 흥미를 주었던 관상이라는 주제가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관상이라는 소재가 이 역사적 비극 가운데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지 기대와 흥미를 갖게 했는데, 내경이 관상이 아닌 사건에 더 깊게 연루될 수록 그 가능성을 희미해지고 조금은 단순한 사극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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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이라는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아 이것은 필히 운명론과 맞닿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더 전형적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치열한 운명론과의 대립이 주가 되었다면 더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상을 읽는 관상쟁이 내경. 역적 집안에서 벼슬을 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내경의 아들 진형 (이종석), 그리고 왕의 될 운명보다는 역적의 상을 하고 있지만 왕을 꿈꾸는 수양대군 (이정재)의 이야기들을, 치열한 각각의 대립으로 그렸다면 끝까지 강렬한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비극을 그리는 방식은 역시 신파에 기반을 두고 있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았고 역시 송강호의 열연 탓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지만,  영화가 처음 던졌던 관상이라는 테마에 비하면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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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아무래도 '광해'와 비교 혹은 연상 될 수 밖에는 없는데,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관상'이 더 인상적이었다 (내게 '광해'는 아무래도 심심한 작품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멋진' 배우들이 있다. 이 역사 속 이야기에 짧은 시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건 거의 배우들의 응집된 연기력 때문이었다. 송강호 연기는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이제는 좀 더 힘 있고 무거운 연기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고 (소시민 연기가 이제는 조금씩 지루해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나쁘진 않다), 조정석은 너무 가볍기만 할 수 있는 캐릭터에 배우 본인이 갖고 있는 깊이가 더해져 무게를 만들어 냈던 것 같고, 존재 만으로 크게 서 있는 김종서 역할의 백윤식이나 김혜수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뭐 그래도 역시 '관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양대군 역할의 이정재였다. '신세계'와 '관상'의 이정재를 보면 특별히 연기력이 갑자기 나아졌다 기 보다는,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게 되어 더 돋보인 듯 했다. 수양대군이라는 캐릭터는 양면성 보다는 오히려 완벽한 악으로 그려져야 했는데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선), 등장 장면에서 한 눈에 공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재의 수양대군이 워낙 매력적이었기에 앞서서 그의 운명론으로 영화가 전개되었어도 좋았겠다는 바램도 들었었고. 



1. 한 번 실수록 세 단락 이상 썼던 글을 날린 이후로 다시 쓰는 거라 집중력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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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

이기적 순수함의 안타까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랜 팬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내가 한 손에 꼽을 만한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은 내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의 신작이자 마지막 작품(아마도)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2013)'를 기다리는 마음은 내내 편치 않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 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말들이 쏟아져 나오든, 내 입장은 직접 보기 전에는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가슴 졸이며 보게 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아쉽지만 보는 내내 불편한 작품이었다. 혐오스러운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영화니까' 불편함은 없었던 나였는데, 이 작품은 '영화기 때문에' 불편한 경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간 성향이나 가치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논란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본능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그 논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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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는 근본적으로 반전을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말해왔으며,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 등 그가 '바람이 분다'를 통해 군국주의를 옹호했다거나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옳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들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은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그냥 이슈를 위한 제 3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시선일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했었다. 따지고 보면 미야자키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가치관에 대한 모순과 갈등은 계속 존재했었다. 그는 일관적으로 반전을 외치며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날 것과 탈 것,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비행기이자 전투기였다. 이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작품과 가장 비교될 만한 작품은 그의 전작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붉은 돼지'는 하늘을 나는 것과 전투기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 된 작품이자, 그 스스로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최대한 빗겨가려고 애 쓴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붉은 돼지'는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서, 어른의 드라마, 낭만과 아름다움을 멋지게 표현해 낸 수작이었다. 그렇다면 '붉은 돼지'도 문제인가 라고 물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단 아름다움에 집중한 것은 맞지만, 포르코는 전쟁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고 이를 행동으로 표현한 인물이었고, '바람이 분다'의 지로는 회의 감은 갖고 있다고 봐야 겠지만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던 이었기 때문이다. 이 별 것 아닌 차이점이 '바람이 분다'의 역사 의식을 말해주는데, 이것은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갖고 있던 모순과 갈등이 적어도 일본인들을 제외한 (특히 아시아인들이) 이들이 기대하던 바로는 표현되지 않은 몹시 안타까운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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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로센을 설계한 지로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 하고 군국주의를 옹호하려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최근 아베 정권처럼 역사를 잊은 민족에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이면 고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는 '바람이 분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상당히 고민스럽다. 고민스럽다는 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고민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모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동경해 오던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든 설계자의 이야기를 언젠 가는 꼭 한 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앞서 여러 번의 은퇴 번복이 있기는 했지만, 평가를 떠나서 이 작품 만큼 그의 마지막 영화로 어울리는 주제도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보니 그가 설계한 제로센은 결국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그 것은 일본이 피해자로서가 아닌 가해자로서 범한 전쟁이었다. 그것을 미야자키 하야오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모르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의도적으로 전쟁에 관한 장면들을 피하는 한 편, 지로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 속에서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는데, 전쟁 장면을 전혀 등장 시키지 않고 있는 점과 지로의 꿈을 지속적으로 교차하고 있는 것, 그 꿈에 등장하는 이가 아름다운 비행기를 설계하려 했던 카프로니 백작이라는 것, 독일인이지만 히틀러 정권에게 쫓기고 있는 융커스의 이야기가 바로 그 것이다. 사실 난 이 영화가 논란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더라도 '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하야오가 전쟁을 피한 것처럼,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는 지로의 꿈 장면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것처럼 '일본 소년'이라는 걸 특별히 강조하고 있고, 이후에도 관동대지진과 이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장면과 대사로 표현하면서, '일본'이라는 실질적 존재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언급하고 있다.


앞서 일본이라는 존재 역시 전쟁처럼 피해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그렇게 해서 모순이 되는 요소에 대해 최대한 언급하는 것을 자제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즉, 하야오가 일본이라는 현실을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반드시 이 모순에 대해 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굳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고, 이를 제외한 방식으로 자신이 추구하려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해 풀어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건 예상이라기 보다 그랬으면 하는 바램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결국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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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엄청난 계산과 의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일부러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날 것에 대한 동경은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알 정도로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그의 전작들은 노인이 되어도 잃지 않은 순수한 동심이 있어서 가능한 순간들이 여럿 있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는 그럼에도 순수함으로 평가할 수 없는 순진함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특히 이번 경우처럼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순진한 것은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순수함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를 반드시 예상했어야 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어떤 결과를, 특히 다수의 일본인들 외에 한국을 비롯한 전쟁 피해 국가의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는 작품에 분명 드러나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정말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간과라고 하기엔 그 무게가 심히 무겁고, 순수함의 발로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처사였다.


하야오의 논리는 이랬던 것 같다. 지로는 제로센을 설계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옹호하는 이는 아니며, 지로가 겪는 삶의 일화들을 통해 정의롭고 인정이 많은 면모를 부각하여 그가 결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로 스스로도 고뇌가 없지 않았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독일(나치)과 일본의 차별점 역시 이야기한다. 만약 지로가 자신이 순수한 의도를 갖고 만든 비행기가 침략 전쟁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 얘기는 수긍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이게 아니면 처음에는 몰랐으나 후에 어떻게 쓰이게 되는 지 알게 된 후 행동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였다면 역시 수긍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무관심이나 회피 정도가 아니라 공범에 가까운 행위이라는 점에서, 그냥 의도치 않던 결과로 그도 계속 고뇌하고 후회했다 라는 것 정도로는 면죄부를 얻기 힘들다. 더더군다나 지로는 자신이 만든 것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의 동료에 말처럼 '우린 그냥 비행기만 만들면 돼'라는 건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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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것이 아름다웠던 그렇지 않던, 순수함의 발로이던 그렇지 않던, 지로가 만든 비행기는 본인도 알고 역사도 알 듯, 일본의 침략 전쟁에 도구로 사용된 것이 사실이라면 지로라는 인물을 다룰 땐 특별히 조심, 아니 지금 시점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것인지 더 면밀히 조사와 책임을 따져봤어야 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지로의 이야기를 개인의 순수한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일까? 독일 국민들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독일은 패전 이후 분명한 전범처리와 국제 사회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최근에야 비로소 독일인 가운데서도 나치에 반대했던 이들의 이야기라던가, 전범국이 되어버린 이후 태어날 때 부터 원죄를 갖게 된 세대들의 고민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범에 대한 처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제 사회에 명확한 사과보다는 자위대를 조금씩 다시 정당화 하려는 움직임이나, 대한민국의 침략에 대해 정당화 하려는 우익의 움직임이 정부차원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순수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진해도 이건 너무 순진한 거다.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베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라면 '바람이 분다'의 이야기는 발표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라는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이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아직도 가해자가 잘못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통에, 잘못한 건 맞는데 사실 그 안에도 이렇게 순수한 꿈을 쫓는 이의 이야기도 있었는데 오해 없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라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 생각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이 작품이 어떤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더 배려있게 생각했어야 하는게 도리였다. 그가 진정 반전주의자라면 이건 옵션이 아니라 필수여야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순수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밀어 붙였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쪽으로 평가한다고 해도 시기상조 였다는 것 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그래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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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람이 분다'에 짙게 깔린 역사 의식만 걷어낸다면, 난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한 손에 꼽았을 것이다. 영화적으로도 아쉬웠다는 많은 이들에 평가와는 다르게, 난 불편한 가운데도 지로의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마다, 이 작품에 깊게 빠져들기도 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의 필모그래피를 마무리 하는 작품으로서 최고의 선택이 되었을 수도 있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했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 작품은 내게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그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보면 알 것이다'라는 말 때문에 일말의 믿음을 끝까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위와 같았다. 아.. 내가 지브리 작품, 그것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이런 부정적인 글을 쓰게 되다니... 글의 부제를 '안타까움' 정도로 순화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라는게, 이 작품에 대한 내 감상을 단정적으로 말해준다.



1. 오늘따라 '붉은 돼지'가 보고 싶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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