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

타란티노의 첫 번째 오리지널 서부 영화



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은 설원 속에서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눈보라를 피해 산장으로 들어선 4명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또 다른 4명, ‘연합군 장교’, ‘이방인’, ‘리틀맨’, ‘카우보이’를 만나게 된다.  큰 현상금이 걸린 ‘죄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에게 ‘교수형 집행인’은 경고를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참혹한 독살 사건이 일어난다. 각자 숨겨둔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서로를 향한 불신이 커져만 가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증오의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출처 : 다음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영화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2015)'은 그의 장기가 집대성 된 영화다 (아, 그 전에 헤이트풀팔 이라는 국내 제목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냥 증오의 8인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관련 글 링크). 또 한 번 여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다는 재료가 아니라 핵심이며,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도 여전하다. 타란티노는 이미 전작들을 통햇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장르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를 빌어 다양한 진화된 결과물을 보여주었었는데, 이번 '증오의 8인'이 전작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바로 오리지널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이트풀 8'은 어떤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거나 오마주를 활용해 더 흥미로운 작품을 만든 경우가 아니라, 명백한 장르 영화로서 첫 번째 오리지널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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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롤이나 엔딩 크래딧 등만 보아도 이전 그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 적이 있으나, 전작들에서는 말그대로 명확한 컨셉에 따른 선택이었다면 이번 경우는 어떠한 의도를 갖기 이전에, 그냥 진짜 서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성향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이번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 가장 많이 화제가 되기도 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어? 예전에도 타란티노의 영화에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은 많이 나오지 않았나?'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어쩌면 모리꼬네의 열렬한 팬이었던 타란티노의 선택으로 인한 일종의 삽입곡인 경우였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들 외에도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그가 선택하는 유명한 넘버들로 인해 사운드 트랙 측면에서도 매번 끝내주는 앨범을 선사하곤 했는데, 전작들의 사운드트랙이 컴필레이션 앨범에 가깝다면 이번 '헤이트풀 8'의 사운드 트랙은 오리지널 정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이 영화 만을 위해 새롭게 만든 스코어들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로서의 의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타란티노는 모리꼬네의 새로운 곡을 받고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흥분이 스크린 밖까지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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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가까운 168분의 러닝 타임이지만 영화는 아주 한정된 공간만을 무대로 한다. 잡화상 건물 안에 각기 다른 이유로 오게 된 인물들을 가둬두고 챕터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제약을 가장 큰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인물들이라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무기는 대화가 된다. 타란티노에게 대화 시퀀스란, 아니 수다란 가장 매력적인 도구이자 자신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던가. 타란티노는 이 수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장인답게 오로지 수다 만을 통해 각 인물들의 성격을 부여하는 동시에, 묘한 긴장감과 이야기의 복선과 반전 등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면 서부 영화를 봤다는 느낌과 함께 한 편의 설화를 전해 들은 듯한 느낌이 남는다. 즉, 캐릭터가 빛나는 캐릭터 영화이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심에 있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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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풀8'은 제목의 요상함 보다도 그 화면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되었는데, 다행히 스타리움 관을 통해 최대한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화면비로 감상할 수 있었다. 타란티노는 오리지널 서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금은 집착에 가깝게 고전적인 화면비율을 고집했는데, 일반적인 2.35:1 화면비가 아닌 울트라 파나비전 70렌즈와 70mm 필름 촬영을 통해 무려 2.76:1의 극단적인 화면비로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 요즘 관객들은 위아래로 가득 찬 화면비를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좌우로 길게 뻗은 시네마스코프 화면 만이 만들어 내는 영상미는 분명 존재하고, 또 압도적인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작품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타란티노는 와이오밍의 설원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작게 언덕 넘어 등장하는 이 장면 하나 만을 위해서라도 아마 이 화면비를 고집했을 감독이다. 바꿔 말하면 이 장면은 최근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화면비를 선택한 것치고는 풍광을 담은 로케이션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데, 하지만 잡화점 내에서도 이 화면비는 감독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에 탁월한 영상을 선사한다. 타란티노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주로 인물들 간의 대화와 구도로 이뤄지는 영화의 내용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될 수 있도록 이 화면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1.85:1의 비스타비전 화면비에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인물 간의 거리와 그 거리를 이용한 신선한 구도들은, 8명의 인물들이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계속 구도가 달라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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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데이지 도머그 역할을 맡은 제니퍼 제이슨 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여러 배우들 가운데서도 (마이클 매드슨, 커트 러셀, 팀 로스 등) 단연 돋보였던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 작품의 상징과도 같다. 뭐라고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이 도머그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고 심지어 사랑스럽게까지 만든 그녀의 연기는 진정 올해의 캐릭터로 꼽힐 만하다. 아마도 타란티노 만이 창조할 수 있었을 이 캐릭터를 구현해 낸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헤이트풀 8'은 지루하지 않다 (그녀는 심지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도 한다). 국내에서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미국에서는 도머그 성대모사도 나오지 않을까? ㅋ



1. 응답하라 시리즈의 라면처럼, 영화 속 스튜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아, 그리고 이제 어디가면 커피는 좀 가려 마셔야겠어요.

2. 벌써 블루레이 국내 발매 소식이 전해졌는데, 무조건 구매입니다.

3. 사운드트랙도 구입했는데 오히려 타란티노의 전작 OST에 매력을 느낀 분들이라면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어요. 본문에 쓴 것처럼 전작들은 삽입곡 위주의 컴필레이션 같은 구성이었다면, 이번엔 스코어의 성격이 더 강하거든요.

4. 아래는 이전에 썼던 타란티노의 최근 작 글들


* [블루레이] 장고 : 분노의 추적자 _ 울분을 토해내는 타란티노식 서부극

* 바스터즈 _ 타란티노가 말하는 내 생애 최고의 걸작

* 바스터즈 _ 블루레이 서플먼트 다시보기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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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Inglorious Basterds)
Motion Picture Soundtrack


일반 앨범들도 그렇지만 사운드트랙이야 말로 영화를 딱 보고 나오는 순간 구매여부를 거의 100% 가깝게 결정하게 되는 듯 하다. 특히 일반 아티스트의 정규 앨범들은 나중에 좋아지거나 천천히 좋아지기도 하는 반면, 사운드트랙은 나중에 좋아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고, 영화의 감동이 아직 몸속에 살아 숨쉴 때 사운드트랙의 감동 역시 특별히 강한 생존력을 보인달까. 하긴 영화의 장면과 느낌과는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사운드트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의 사운드 트랙 역시 처음 듣는 순간 '이건 물건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바스터즈>의 사운드 트랙 역시 기존 타란티노의 사운드 트랙이 자주 그러하였듯, 이 영화를 위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곡들이 수록되기 보다는 기존에 존재했던 곡들이 기가 막힌 선곡으로 이루어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곡의 경우, 모두 이미 영화에 사용된 적이 있는 곡들이다. 하지만 <바스터즈>에서 얼마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터. 엔니오 모리꼬네의 대한 타란티노의 애정과 존경은 이번 사운드 트랙에서도 여전하다.




많은 곡들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렇다고 모리꼬네의 곡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앨범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소울 뮤지션인 빌리 프레스톤(Billy Preston)의 곡 'Slaughter'도 만나볼 수 있으며, 1982년 작 <캣 피플>에 수록되기도 했던 데이빗 보위의 'Putting Out The Fire'도 수록되었다.




북클릿은 비교적 심플한 디자인으로 이뤄져 있는데 특히 색이 바랜듯한 느낌의 컬러가 인상적이다. 여러 공개 스틸샷 들을 통해 미리 만나볼 수 있었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언제부턴가 음반 속지들을 거의 한상철씨가 독점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니면 내가 사는 음반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상철씨의 속지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매우 잦은데, 다양한 시각이 살짝 그립기도 하지만 한상철씨의 리뷰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속지는 음악적인 평가 외에 수록된 한 곡 한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 (오리지널이 존재하는터라 본래 삽입되었던 영화 등에 대한 소개)이 담겨 있어 매우 유익한 편이다. 또한 타란티노가 빌보드지와 가졌던 인터뷰 내용이 곳곳에 인용되어 있어 색다른 재미가 있기도 하다.





타란티노의 사운드 트랙은 확실히 다른 영화 혹은 감독의 사운드 트랙을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흥을 준다. 그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사실 아무 걱정없이 그가 선곡해 준 곡들에 다시 한번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참 새삼스럽지만, 엔니오 모리꼬네는 정말 장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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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타 (Lolita, 1997)

지난 주말 어김없이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팻걸>이나 <돌이킬 수 없는>등 다른 후보작들은 이미 극장이나 DVD를 통해 보았었기 때문에, 말로만 들어왔던 <로리타>에 소중한 한표를 던졌었는데, 치열한 순위 다툼 끝에 결국 <로리타>가 최종 상영작으로 결정되어 애드리안 라인의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로리타' 혹은 '로리타 컴플렉스' 등 말만 많이 들었지, 정작 그 말이 유래된 작품인 영화는 보질 못했었기 때문에 이번 감상은 더욱 기대가 되었던 기회였다. 결말부터 이야기하자면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는 우리가 흔히 모르고 상상하는 그 '로리타'와는 사뭇 다른 진지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였으며, 야하기만 하고 성적인 측면에만 포커스를 맞춘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선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스탠리 큐브릭도 영화화 했었던 이 작품은 애드리안 라인 연출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이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인상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막연히 '로리타'라고 하면 그 언어가 갖게한 일종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그저 '성적인' 이미지 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 속에도 분명 그런 시선도 담겨있긴 하지만, 거의 이것은 소스 정도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로리타'보다는 남자 주인공인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험버트라는 남자의 심리상태를 드라마로 풀어낸 수작이랄까. 왜 험버트가 로리타라는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내(어쩌면 만들어낸 것에 가깝다고 해도 맞겠다), 그 운명과 시간들에 힘들어하고 고뇌하고 결국 파멸로 향해가는 이 이야기를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알기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하지만 실험적인 장치들도 곁들여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어쩌면 중년의 지성으로 대표되는 한 남성이 소녀에게 빠지게 되어 일어나게 되는 줄거리는 굉장히 전형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단순히 성적인 코드만을 다루는 것으로, 탐욕하고 해소하고 파멸하고 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만,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는 이 감정선을 유치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으며, 영상미학의 측면에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단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험버트라는 캐릭터가 어쩌면 '로리타'보다도 더욱 돋보이는 영화였다.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돌출형 소녀 캐릭터가 '로'라면 '험버트'는 왜 그가 어린 소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후반부 까지 그의 심리상태에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었던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영 일반적인 선입관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뻔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이었던 관람이었다. 물론 일부 장면이 삭제된 버전이라 야한 장면이 삭제된 점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국내에 개봉한 이 버전이라면 사실 15세도 가능할 정도다), 이 삭제된 장면이 대부분이 단순히 노출 문제 뿐만 아니라 길어서 자른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그 장면들이 전부 포함된다고 해도 이 같은 선입견을 깨어버린 경험이 변하게 될 것 같진 않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다가 정말 속으로 '와!'하고 외쳤던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험버트가 '퀼티'를 죽이려고 방문한 시퀀스였다. 총을 쏘며 달려드는 험버트와 몸싸움을 벌이며 저항하던 퀼티(프랭크 란젤라)는 갑자기 나이트 가운을 연주자처럼 휙 하니 재치더니 피아노에 앉아 갑자기 연주를 시작한다. 이 장면의 포스도 엄청났는데, 그 이후에 퀼티가 떠난 다음에도 피아노가 혼자 연주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이건 마치 린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ㄷㄷㄷ ). 퀼티가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의 묘사도 정말 인상적이었고(총맞고 죽어가는 사람이 굳이 이불을 덮으려고 애쓰는 장면;;;). 이 장면은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위의 장면도 그렇지만 <로리타>에는 예상을 깨는 기이한 설정의 장면들이 제법 등장하고 있는데, 벌레 잡는 전기불을 클로즈업하며 갑작스레 영화를 공포분위기로 몰고가는 시퀀스도 그렇고, 욕실에 들어갔던 험버트가 1초만에 옷을 갈아입고 나온것으로 편집한 장면도 그렇고, 발의 위치에서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해 촬영한 장면들도 그렇고. 이런 드라마 장르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기법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는데, 험버트가 자동차를 좌우로 운전해가며 쓸쓸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 흐르던 테마 음악은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의 테마와 음율이 비슷해 자꾸 연상되기도 했다(나중에 애드리안 라인은 음악을 따라가 마치 레오네가 누들스를 비추듯, 험버트를 카메라로 비추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되었던 씨네토크는 평소보다는 조금 적은 분들이 자리에 남아 계셨지만, 언제나 처럼 흥미로운 시간들로 채워졌다. 특히 이 영화에 오랜 팬이신 관객 분이 남아계셔서 원작과 큐브릭 버전의 <로리타> 등 다양한 기본 지식들을 공유해 주셔서 더욱 도움이 많이 되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벌써부터 제7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상영회가 기다려진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분명히 영화 사상 가장 인상적인 엔딩 장면 중 하나인 마지막 장면의 누들스의 그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앞으로도 눈 감는 날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슬픔과 씁쓸한 감정을 가슴 깊이 각인시켰다.



누들스를 주축으로 짝눈, 팻시 등은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며 좀도둑질을 하는데 어느날 술에 취한 주정뱅이를 털려다가 프랑스에서 막 이민 온 맥스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누들스는 이렇게 만난 맥스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한편 짝사랑하는 데보라는 누들스가 한낮 깡패에 불과하다며 거절한다. 맥스가 가담된 이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머리 좋은 누들스의 기발한 방법으로 갱단의 밀수품을 안전하게 운반하고 큰 돈을 모은다. 이들은 그 돈을 넣은 가방을 역의 간이 보관함에 넣고 벌어들이는 돈의 절반을 떼어 공금으로 모으기로 한다.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뻐하며 거리를 걷던 이들에게 곧 총을 든 버그가 뒤 쫓아와 누들스는 첫 살인을 하게 되어 감옥에 들어간다.



뚱보의 술집을 방문했던 누들스는 공원의 고급 묘지에 묻혀있는 어릴 적 친구들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는 묘지에서 자신에게 남겨놓은 현금 가방이 든 열쇠를 발견하고 그 역에 가는데 거기서 그는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선불'이라고 쓰인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막 출감한 누들스는 마중 나온 맥스를 따라 뚱보의 술집으로 간다. 누들스가 감옥에 있는 사이에 맥스의 수단으로 이들은 프랭키라는 거물과 손을 잡고 밀주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다. 하지만 금주법이 끝나면서 이들에게도 시련이 닥쳐온다. 누들스는 비록 맥스와 함께 불법 일을 하기는 하지만 맥스의 지나친 검은 야망에 둘 사이는 점점 금이 간다. 맥스는 평생 꾸어온 꿈이라면서 연방 준비은행을 털자고 제안하지만 누들스는 반대하는데..



사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이라는 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일명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인 [황야의 무법자]로 거장의 대열에 올랐던 레오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야의 무법자]보다 더 뛰어난 영화는 아마도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을 떨쳐내고,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을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하 원스)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레오네가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의 [원스]를 내놓기 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과 역경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으로서도 다른 영화들보다 엄청나게 긴 러닝타임 덕분(?)이었다. 처음 편집을 마치고 난 작품의 길이는 무려 8시간이 넘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오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 같은 러닝타임은 조금 무리라고 생각되어 내용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재편집을 한 결과 229분, 즉 3시간 49분 가량으로 단축(?)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대부분의 영화들이 2시간 남짓으로 이루어진 것에 견주어 보았을 때 결코 짧은 러닝타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사에서는 러닝타임을 과감히 삭제한 2시간 19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하여 개봉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2시간 19분 동안에는 감독이 하려는 말을 모두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흥행을 목적으로 편집을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흥행에도 참패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삭제된 러닝타임을 복원하여 공개된 영화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도 전혀 달랐다. 드디어 세르지오 레오네의 진가를 깨달게 된 평론가들은 1980년대 최고의 영화를 뽑는데 주저 없이 [원스]를 선택했고, 관객들 역시 레오네가 만든 한 편의 대서사시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장으로 추앙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는 장르영화에 명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서부영화로 장르자체를 개척한 작품이 되었고, 이 작품 [원스]는 마피아를 다룬 갱스터 영화로 장르적 성향이 짙은 영화였다. 이러한 그의 역량은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많은 젊은 감독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존재가 되었다. ‘한계를 모르는 분이죠’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이다.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관한 얘기들은 타이틀 두 번째 디스크에 담긴 서플먼트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가 위대한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얼마나 위대하고 따뜻하고 완벽한 사람이었는지 말이다. 그 다큐멘터리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한 마디를 옮겨 적어본다.

My way of seeing things is sometimes naive but with the sincerity of the kids from the Viale Gloriose steps - Sergio Leone (1929-1989)
내가 사물을 보는 방법은 때로는 단순하지만 진지하다.




사실 호화 캐스팅이라는 광고가 걸린 작품들은 뚜껑을 열어보면, 이름만 있을 뿐 그 속은 비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스]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은, 절대 관객을 실망시키는 이름들이 아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와 함께 현재 활동하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기력과 앞으로 각종 공로상을 휩쓸게 될(이미 수상하기 시작했다)배우가 바로 로버트 드니로이다. 그는 이미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대부], [카지노],[좋은 친구들], [디어 헌터]등 많은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관객에게 선사하였다. 이 작품 [원스]에서도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누들스 역할을 맡은 드니로는 감정 선이 굵은 면서도 섬세한 누들스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연기해 내고 있다. 특히 이미 언급하였듯 영화의 마지막, 그가 연기하는 누들스의 미소는,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 낸다. 위에 나열한 영화들과 같이 로버트 드니로는 수많은 명작들에 출연하여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감히 [원스]에서의 연기가 그중 최고가 아닐 까 싶다.



제임스 우즈는 [원스]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강열한 연기에도 전혀 눌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우즈의 이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주로 악역을 연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원스]에서 그를 악역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표독스러우면서도 주도면밀하고 누들스와 우정과 시기, 배신을 겪는 맥스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해 냈다(참고로 모든 나오는 배우마다 훌륭하다, 최고의 연기, 완벽한 연기 등 칭찬 일색의 수식어를 쓰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자신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절정에 있었던 시기가 바로 레오네 감독과 함께한 [원스]의 기억이라고 얘기하듯, 그를 아는 관객들도 그의 최고 절정의 연기를 [원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은 이 두 배우들 외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다. 먼저 국내 팬들에게는 [나홀로 집에]의 코믹한 이미지로 더 알려진 조 페시. 그는 사실 유명한 마피아 영화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마피아, 갱스터 영화의 주로 출연한 성격파 배우이다. [원스]에서는 많은 러닝타임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역시 그가 출연하는 것만으로 영화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역 배우들 가운데 우리에 눈을 유난히 끄는 배우가 한 명 있는데, 그녀는 바로 제니퍼 코넬리이다. 우리에게는 [뷰티풀 마인드]로 잘 알려져 있고, [레퀴엠]과 최근작 [헐크]에도 출연했던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에서 정말 깜찍하면서도 어린 나이 답지않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다. 어린 누들스가 몰래 훔쳐보는 그녀의 발레 연습장면은 아마도 누들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성인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맥거번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제니퍼 코넬리에게 더 감동을 받게 될 것 같다.



처음 [원스]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비단 짤려나간 영상들 뿐만은 아니었다. 삭제된 버전에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역시 제대로 수록이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원스]에서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고 있는데,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가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작품의 일부를 완성시켰을 만큼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요소라 하겠다. 타이틀의 커버를 장식한, 뒤로는 다리가 보이는 양쪽 건물 사이로 어린 주인공들이 벅시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에서 흐르던 너무나도 유명한 ‘뚜뚜두뚜~’하는 테마를 비롯하여 영화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아름답고도 너무나도 슬픈 모리꼬네의 음악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아니, 돕고 있다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누들스를 연기한 드니로의 눈빛 연기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슬픈 감정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지면서 연기 자체에도 날개를 단 격이 아니었나 싶다. [황야의 무법자]를 시작으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계속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만 같이 감독과 작곡가가 콤비를 이루어 영화를 완성하게 되는 케이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엔니오 모리꼬네는 브라이언 드 팔마, 페드로 알모도바르, 로만 폴란스키 등 거장들과의 꾸준한 작업으로, 매번 감독적인 영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이 궁금증은 영화가 개봉한 1984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는 물음이다. 타이틀의 서플먼트를 보다보면 이에 관한 제임스 우즈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그 역시도 아직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 같은 궁금증을 물어온다는 것이다. 제임스 우즈도 감독인 레오네에게 물어보았지만, 레오네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맥스가 쓰레기차에 타고 안타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로 이해된다. 그리고 개봉당시 한 팬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지막 장면의 웃음의 의미에 관해 물었으나 그 대답은 듣질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가 아편으로 인한 누들스의 꿈이라는 답변을 들을 까봐 그랬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는 긴 러닝타임 때문임을 제외하더라도 시간과 사건의 편집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점은 어린 시절로 감옥에 다녀온 뒤로, 노인이 되어 나타난 요즈음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시점의 변화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정의 선이 그대로 이어지게 편집한 기술은 영화만의 매체의 장점을 백분 살리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배경이 되는 아편굴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꿈인가 아닌가의 중요성보다는, 부질없음과 슬픔에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일단 반갑다는 말을 해야겠다. 229분의 무삭제 버전으로 출시된 것 말이다. 하지만 완벽한 무삭제라는 말을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데, 누들스가 출소하여 장의사 차안에 누운 여자 시체(물론 아니었지만)를 보는 장면에서 뿌옇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옥에 티라고 불러야 할 장면이 될 것 같다. 개봉한지 2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출시된 타이틀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높은 퀄리티로 출시되었다. 일단 화질은 애너모픽 1.78:1의 화면을 재공하고 있는데, 최근 영화들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화질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색감에 충실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음향은 예상외로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를 지원하고 있는데, 5.1채널을 체험할 만한 시퀀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전체적인 대사의 볼륨이 좀 작은 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같은 점 역시 충분히 감안되어질 만한 정도이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여전히 감동적으로 들려온다.



2장의 디스크로 한정판의 양장본으로 출시된 타이틀은 일단 외관상으로는 양장본인 만큼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제외하면 일반판과 똑같은 타이틀이 들어있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제작사가 워너임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양장본 케이스에 만족해야할 듯싶다(이 같은 평가는 양장본 케이스가 맘에 안 든다고 하기 보다는, 한정판만의 특전이나 부클릿 등이 수록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서이다). 일단 본편이 워낙에 긴 러닝타임을 자랑함으로 두장으로 나뉘어져 있다(참고로 중간에는 휴식 시간을 알리는 자막도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가장 기대가 되는 서플먼트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코멘터리가 눈길을 끈다. 리차드 쉬클이라는 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은 반갑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을 떠난 레오네 감독은 아닐지언정, 로버트 드니로나 제임스 우즈 같이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음성해설에 참여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멘터리 외에 다큐멘터리 하나가 수록되어 있는데, 영화의 제작과정을 감독인 세르지오 레오네를 추모하고 기리는 뜻에 포함시켜 들려주고 있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제임스 우즈와 어린 누들스 역할을 맡았던 배우, 주요 스텝들의 인터뷰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영화가 최고의 걸작인 만큼 출시된 DVD타이틀도 이 정도면 반드시 소장해야 할 타이틀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2003.07.08
글 / 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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