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영화를 보고 나면 대부분 감상기를 바로 올리는 편이지만, 쉽사리 감상기가 잘 써지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특히나 영화를 통해 엄청난 중압감을 받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감동과 무게를 느꼈을 때 그런 경우가 있는데
내 경우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을 보고 나서 그러했었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집으로 오면서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멍하게 돌아왔던 것만이 기억난다. DVD가 출시된 다음에 다시 리뷰를 써보려고 했었는데
잘 안되었던 것도.).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고 난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먹먹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냥 한줄 평으로 마무리 할까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한번 끝까지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의외로 크로넨버그의 예전 작품들 가운데 못 본 것들이 많은데, 그래서 인지 내가 그를 기억하는 영화는
<폭력의 역사>였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여러가지면에서 전작인 <폭력의 역사>와 비교되고 함께 이야기 해야할
영화인데, 동전의 양면을 뒤집듯 정반대에 선듯한 두 캐릭터를 통해, 결국 감독은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현실적으로, 아주 무거운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래 부터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이 영화의 배경은 런던이다. 런던을 배경으로 러시아 마피아를 중심으로 그들의 생리와 관계, 그리고 이와 얽히게 된
한 여성과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얼핏 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미 <대부>를 비롯해 이런 러시아 마피아나
폭력 조직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번 반복되었던 익숙한 구조라 할 수 있다. 겉으로는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는
점잖은 노인의 보스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야망만 있고 아직 미숙한 아들이 있으며, 그 아들의 주위에는 아들보다 훨씬
뛰어나 보스에게 오히려 더욱 신인받는 남자가 있고, 이 남자는 이런 폭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인정이 남아
한 여성과 교감을 나누게 되는데 결국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 얼핏 보자면 <이스턴 프라미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 듯한 통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조금만(아주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면 이 영화가 단순히 조직간의 암투나 혹은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혹은 한 남자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폭력의 역사>를 통해 이미 확실히
보여주었듯이 '폭력'에 관한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려주고 있다.




전작 <폭력의 역사>에 주인공이 폭력적인 과거를 숨기고 선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라면, <이스턴 프라미스>의
니콜라이는 선한 본 모습을 숨기고 폭력적인 겉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이다. 이를 비고 모텐슨이라는 같은 배우가
연기해서 더욱 인상깊기도 한데, 이 두 작품은 마치 하나인듯 다른 두 캐릭터를 통해 폭력성에 관해, 그리고 숨겨져있는
폭력적인 면에 대해서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극 중 니콜라이는 말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검은 선글라스,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옷차림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냉혈한 겉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조직의 멤버가 되고 더 나아가 보스가 되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갖은 굴욕도 참아낸다.

보통 같았으면 보스의 아들인 '키릴(뱅상 카셀)'이 모욕을 주었을 때 감정적으로 폭발했었겠지만 크로넨버그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보여지는 극적 요소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욕에 못이겨 하지 말아야 될 일을 저지르는 것보다, 자신이 이루려는
바를 위해 갖은 모욕을 참아내고 마음 깊은 속에서 부터 칼을 가는 것이 더 큰 본능적 폭력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 이후에 니콜라이의 본래 정체가 밝혀지긴 하지만, 이를 통해 니콜라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 설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정말 본래의 의도였던 스파이 활동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견딘 것인지, 아니면 이 과정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존재했던 폭력성에 사로잡혀 스스로 그 세계에 물들어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무거운 대사와 함께 보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니콜라이의 모습에서는
작전 성공에 대한 기쁨도, 조직을 차지한 야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희망을 다루고 있다고 얘기한 것은 바로 극중 타티아나의 아이의 존재 때문이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의
이 아이의 존재는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아이의 존재로 인해 이 이야기는 상당히
예수 탄생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크리스마스에서 가져왔다는 이 아이의 이름도,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크리스마스도 이를 뒷받침하는 조건들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동방박사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으며, 처녀인 안나(나오미 왓츠)가 이 아이를 자신의 딸로서 키우게 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존재를 둘러쌓고 있는 니콜라이의 존재가 마치 천사와 같은 의미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성인은 러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자로서 러시아를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들의 수호자였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주인공의 이름이 '니콜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이런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이가 죽지 않고 안나의 딸로서 계속 살아나간다는 자체가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적 요소이기도 하다.
비록 이 아이의 실제 아버지는 조직의 보스인 세묜이며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지만, 이 아이를 안나가 보듬고 자신의 딸로서
키워간다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아이를 비롯해 안나의 삼촌 등 이 가족을
지켜낸 것은 폭력의 한 중심에 있던 니콜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깊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가 폭력을 마치 조장하고 예술로서 승화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물론 현실은 정반대라 할 수 있다. 크로넨버그는 현실에 사람들이 폭력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술로서 승화시켜버리기 까지 한 것에 대해 비판의 메시지를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겉으로 보여지는 폭력 뿐 아니라 상대를 위압하거나 억누르는 분위기에서 오는 폭력에도
주위를 기울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조직의 보스로 등장하는
세묜(아민 뮬러-스탈)의 경우 겉으로는 많은 가족을 아우르고 손녀들에게도 매우 친절한 할아버지로 보이지만,
그의 이면에는 단 한번의 주먹질을 하지 않더라도 폭력으로 이뤄낸 지배구조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가는 보스로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근데 크로넨버그는 이를 단순히 이면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좀 더 이 폭력적인 면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건 영화적 기술로 인한 것인데, 영화에서 세묜이 이렇다할 나쁜 행동들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카메라 앵글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이 존재에 대한 공포감과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세묜에 모습에서 이런 폭력성을 엿볼 수 있었다면 오히려 그의 아들인 키릴에게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희망을 느낄 수도 있었다.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아이를 강가에 버리려던 키릴은 끝내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는 마치 예수가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을 때처럼, 거둘 수 있다면 거둬달라고 울부짓는다. 하지만 만약 니콜라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미약한 존재는 결국 두려움에 못이겨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이는 이 조직의 비밀을 원치 않게 알게 된
안나의 가족 모습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주정뱅이 삼촌은 그런 놈들은 응징해야 한다며 큰소리를 치지만,
막상 폭력 조직과 대항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이 같은 자신의 신념을 더 이상 주장하지 만은 못한다.
이렇듯 힘 앞에서, 폭력 앞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신념마저 저버려야 하는 폭력성을 영화는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목욕탕 격투씬은 크로넨버그가 폭력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언제부터가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에서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선의를 위한 폭력(여기서 선의란 어디까지나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의 입장에서만 보았을 때 선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필요하다고 까지 굳게 믿게 되고, 자신과 뜻이 다른 자에게(쉽게 말해 악당) 행해지는 폭력에 대해서는
미적 아름다움까지 찾게 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턴 프라미스>의 목욕탕 격투씬에서는 다른 액션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폭력 자체의 잔인함이 느껴진다.
분명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악당들과 벌이는 격투씬이지만, 어느 한 순간에서도 짜릿함이나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폭력일 뿐이고, 폭력은 곧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불쾌하고 나쁜 것임을 관객들을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의 격투나 죽음의 묘사보다 훨씬 더 잔인한 묘사는 여럿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폭력이 등장하는
격투씬에서는 다들 눈을 피하고만 싶어진다. 쉽게 말해 더 잔인한 묘사를 했었던 영화들 보다도 이 영화가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크로넨버그가 바로 그 폭력성 자체에 가장 집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폭력성에 길들여진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괴로운 영화로 기억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중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폭력성과 더불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 마저 비판하려드는 것이
바로 크로넨버그의 영화인 것이다.




크로넨버그가 이 영화를 통해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치로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의도된 카메라 앵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조직의 보스인 세묜이 이렇다할 나쁜 짓을 한 것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도 그에게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배우의 연기와 더불어 카메라 앵글 탓이기도 했다. 이후에 그의 폭력성이 전면에 드러나고
나서는 더욱 노골적인 컷이 등장하는데, 특히 키릴을 내놓으라는 상대 조직의 조건을 보스에게 보고 하는 장면에서의
구도는 세묜을 더더욱 공포스럽게 조명하고 있다. 상하구조가 명확히 드러난 이 구도만으로도 캐릭터의 폭력성이
잘 살아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지하 저장실에서 뒤돌아 술을 마시는 장면 등에서도 구도를 통해 폭력성을(관객이 숨이 막히게끔)
더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워드 쇼어의 음악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무거운 영화를 한시도 놓치지 않고 긴장감과 중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인데, 이렇다할 감정의 과함 없이 영화를 뒤에서 잘 뒷받침하고 있다고 하겠다.




니콜라이 역할로 등장한 비고 모텐슨을 보면서, 정말 저 사람이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과 같은 사람인가 하고 생각할 만큼
그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 특히 전작 <폭력의 역사>에서 정반대의 조건을 갖고 있던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보여준 연기는 말로다 표현하기 어려울 듯 하다. 러시아 식 억양의 영어 연기도 완벽했고,
동작 하나하나에서도 아우라가 느껴지는(눈빛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연기는, 그를 크로넨버그의 페르소나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하겠다.
키릴 역할로 등장한 뱅상 카셀은 오랜만에 좋은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해 우선 반가웠는데, 니콜라이 역의
비고 모텐슨 만큼이나 키릴 역에 다른 배우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컴플렉스 많고 나약한 키릴이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한듯 싶다. 나오미 왓츠의 경우 생각보다 영화 속에서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
그녀 특유의 강인한 매력이 '안나'라는 캐릭터와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세묜 역할의 아민 뮬러-스탈과 스테판 역할의 저지 스콜리모우스키, 그리고 헬렌 역의 시네드 쿠삭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특히 아민 뮬러-스탈이 연기한 세묜 캐릭터는 니콜라이 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연륜가 깊이가 묻어나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중압감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시네드 쿠삭의 경우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낯이 익은 배우였는데,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캐릭터를
깊은 눈빛으로 잘 전달해 내고 있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시종일관 무겁고 음울하게 진행되는 영화다. 특히나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검게 변하면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먹먹해져서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물게 리뷰에 영화 제목 외에 부제목을 달지 못했던
영화이기도 했고.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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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2008)
좋은 가족영화, 괜찮은 성장영화

'과속스캔들'이라는 저 제목과, 저 포스터. 그리고 차태현이라는 배우와 저 홍보문구들.
이 영화는 기대는 물론이고, 볼 생각이 사실상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비슷한 제목과 설정으로 이루어진
한국영화들이 이미 여럿 있었고, 그 영화들 모두 다 이렇다할 재미를 보여주지도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죠.
특히나 코미디 영화라고 하면 최근 개봉했던 <미쓰 홍당무>를 제외하면, 너무 저질 코미디 일색이라(여기서 저질이란
저질을 만들려고 작정한 코미디가 아니라, 만들다보니 저질이 된 경우입니다 ;;;) 제대로 된 코미디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것들도 이 영화를 기대하게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구요(잘 만든 스릴러보다 잘 만든 코미디 영화 한 편 만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 영화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개봉이후
주변 보신 분들의 평들이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절대 보지 않을 것 같았던 분들도 보고 오셔서는 괜찮다고 하시고,
'올해 최고의 영화다!' '가장 감동적 영화였다!' 등 최고의 수식어까지는 부여되지 않았지만, 다들 잘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
혹은 가족영화라는 것에는 적극 공감하는 분위기였죠. 그리고 차태현을 비롯해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들과 더불어
'괜찮은'영화다 라는 평이 지배적이었구요. 영화 감상기를 쓸 때 자주 언급하곤 하는 말이지만,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서
'선입견'만큼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에이~ 뭐 뻔한 얘기에, 뻔한 캐릭터들뿐인, 뻔한 영화겠지'하고 선입견을
갖었던 <과속스캔들>에서 신선한 재미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영화는 각기 가족을 이루지 못한 인물들이 하나의 가족을 이뤄가는 '가족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과속스캔들>은 12월에 잘 어울리는 시즌 영화이자 가족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중 차태현이 연기한 남현수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나름)유명 DJ인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딸이라는 어린 여자가 손자라는 어린 아이와 함께
집으로 들이닥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갑자기 나타난 존재 탓에 남현수는 사실을 부정하기에 급급하고,
오랫동안 홀로 지냈던 자신 만의 공간에서 남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에 굉장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동물병원에서 검사한 혈액검사 결과를 통해 실제 부녀관계임을 알게 된 이후, 막상 떠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던
이들이 떠난다고 했을 때, 남현수는 뭔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이 모자를 붙들게 됩니다(갑자기 든 생각인데, 만약 피 검사가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살인의 추억>의 경우처럼 한참 이후에나 결과가 나오는거라 일단은 같이 사는 걸로 했는데,
나중에 결과가 나와보니 실제 부녀는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만, 그 동안 쌓인 정들로 인해 검사결과와는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라고 하면 오벌까요? ㅎ).

같이 살기로 했다고 해서 이 둘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었죠. 남현수는 자신의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와 명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서 딸인 황제인(박보영)과 손자인 황기동(왕석현)의 존재를 계속 숨기게 되고, 이 와중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 터질지도 모를 불안요소를 계속 안고 가게 되었던 것이죠. 이들의 관계가 점점 변화하게 되는 것은
처음부터 그저 남이었으면 좋겠다하고 바라기만 했던 남현수가 점차 이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부터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가족영화이기 이전에 이 영화는 차태현이 연기한 '남현수'라는 캐릭터의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씨네21에 수록된 강형철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본래부터 '가족영화'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애초에는 남현수라는
캐릭터가 변화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영화로 기획했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측면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초반 타이틀컷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예인으로서 깔끔떨고 럭셔리한 삶을 영유하는 남현수라는
인물이, 전혀 다른 상황에 맞닥들이게 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이 영화에 가장 주된 이야기 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컷은 참 인상적이더군요. 마치 <패닉룸>을 연상시키는 장면들과 영상에 배우와 스텝들의
이름을 삽입한 센스가 돋보이는 시퀀스였는데, '남현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황제인과 황기동을 남처럼 여겼던(여기고 싶었던) 남현수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이들을
가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가 바로 유치원에서 기동이가 헌 옷과 촌스러워 보이는 모습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다고 했을 때 불끈하게 되는 장면인데, 이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잘 캐치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맘에 안드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가 내 가족, 내 친구를 욕하거나 하면 욱하게 되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과정을
오버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잘 그려내고 있더군요. 이후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텝들이 황제인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때 폭발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장면이었구요.

이렇듯 어떻게 보면 항상 자신만만하고 자신 밖에는 몰랐던 연예인 남현수는, 자신의 딸과 손자라는 이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을 완전히 몰랐다기 보다는 애써 외면하고 살려고 했던 자신을
뒤늦게 뉘우치고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라는 식의 구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변 인물들로 인해 주인공이
변화를 겪게 되는 류의 영화는 참 많은데, <과속스캔들>은 코미디라는 장르 내에서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그러셨듯, 이 영화는 박보영이라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

<과속스캔들>이 좋았던 건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코미디 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영화라는 요소와
성장영화라는 요소를 코미디라는 그릇에 잘 담아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영화에서 보여주는 코미디라는 것이
대부분 조폭 코미디나 사투리를 이용한 코미디가 주를 이뤘던 것에 반해, <과속스캔들>은 캐릭터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재미로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좋은 코미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억지스러움이 거의 없으면서도 시종일관 웃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물론 시나리오의 힘이 기본이겠으며, 배우들의 연기가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가 재밌는 영화라고 기억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배우라면 아역 연기자인 왕석현이 연기한 황기동 캐릭터를
들 수 있을텐데, 그저 얼굴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이 아역배우의 연기는 그저 아이가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에서 오는
재미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감독은 실제로 기존의 아역연기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었던 웃음 포인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가능한한 연기경험이
없거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봤다고 하는데, 왕석현이라는 아역배우를 찾아낸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발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극중 황기동은 어른같은 말투를 내뱉기도 하고, 고스톱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센스또한 어른을 능가하지만, 그것보다는 그 상황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소지을 수
밖에는 없더군요(실제로 극장에서 왕석현군이 클로즈업 되거나 개그 한 마디를 던질 때마다 객석 여기저기에서 '귀여워'라는
탄성이 터지더군요). 특히 무표정과 큰웃음을 급격하게 오가는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는데, 앞으로도 CF 좀 찍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황기동 역할을 맡은 왕석현 군의 독특한 표정연기 작렬! 그 배꼽인사와 더불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미녀는 괴로워>에 김아중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보다 더 돋보이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가
바로 박보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 전에도 몇몇 드라마를 통해 크지 않은 배역들로 선을 보였던 그녀인데,
개인적으로 작품을 통해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 과는 다르게 연인관계가
아닌 부녀관계가 영화를 이끄는 주요 관계설정이라고 보았을 때, 아이가 있는 애엄마 역할이긴 하지만 무언가 어려보이면서도
순수함이 묻어나는 황제인 캐릭터에 박보영의 마스크는 더할나위 없이 적역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굉장히 남성스러워보이는 말투와 행동거지부터 너무 천진난만해 보이는 웃음까지....박보영이라는 배우에 흠뻑빠지게 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노래도 가수 뺨치는 실력을 보여주었는데(감독 인터뷰를 보니 100% 박보영이 부른 것은 아니고
대부분 그녀가 소화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본래는 노래를 해야하는 캐릭터라 가수를 캐스팅할까 계획하기도 했다더군요).

어찌하다보니 순서가 3순위로 밀려버렸지만 차태현의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사실 차태현이 기존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들에 조금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고, 그다지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던 터라
처음 영화를 선택할때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이기도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시나리오 단계섭부터 차태현이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주연배우들 외에 유치원 선생님 역할로 <미쓰 홍당무>의 황우슬혜가 출연하고 있는데, 분량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그 선한 포스는 계속 내뿜어주시더군요. 옷도 천사같은 옷만 입고나와서 웃으며 차태현을 바라보는 장면들은
황우슬혜라는 배우를 좀 더 각인시키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황우슬혜양이 출연하다는 정보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신 분이 제법 있었는데, 그 분들께는 황우슬혜양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밖에도 분량은 짧지만 재미있는 조크를 여럿 던지고 빠지기를 반복했던 성지루의 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불꽃 연기를 펼친
홍경민의 연기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ㅋ



(황우슬혜 양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이가 제법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 수
있었네요 ^^;;)

범상치 않은 인트로 장면부터 느낄 수 있었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드라마 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영상적인 측면에서
신선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카메라 앵글 같은 면에서 기존에 잘 사용하지 않는(특히 이런 장르에서)
구도로 인물들을 배치한다던가, 방안 구석구석을 비추는 장면을 봤을 때, 이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실험과 노력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집측면에서도 어찌보면 참 과감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컷을 분할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시도가 그리 나쁘지 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대놓고 들어나지는 않지만 어찌보면 반대로 상당히 전면적으로 패러디가 몇몇 장면 등장하고 있는데,
자칫 패러디 영화로 생각되지 않도록 짧지만 강렬하게 치고 빠지는 작전을 사용한듯 하더군요. 몇몇 장면은 카메라 앵글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했는데 너무 짧게 짧게 지나간 탓에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네요;;(분명 보면서는 저건 저 영화에서
가져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어찌되었든 이 영화 <과속스캔들>은 저 제목만 가지고, 혹은 다른 선입견들을 가지고 판단해 놓쳐버리기에는 후회가 남을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연말에 보기에 좋은 시즌 영화이자 크리스마스와도 잘 어울리고, 가족 혹은 연인들이
보기에도 괜찮은, 대중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올해 한국영화들 가운덴 꽤 괜찮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1. '아마도 그건'을 대부분 모르더군요. 난 왜 알고 있지 -_-;;
2. 홍경민의 불꽃 연기!!!
3. 제목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근데 원래는 '과속삼대'로 할려고 했다는데...음....
   딱히 더 완벽한 제목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히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가 영화와는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4. 왕석현 군의 저 파마머리, 아들 갖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할지도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토일렛 픽쳐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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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12월이었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매트릭스>처럼 해마다 돌아오는 블록버스터
기대작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이런 시리즈 물이 아니더라도 별다른 대작이 없다고 알려졌던 12월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몇 작품만 챙겨봐도 여유있겠구나 했었는데, 상영작과 상영 예정작들을 살펴보던 중,
급좌절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도 아니고, 안봐도 되겠다 싶은 영화를
굳이 포함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가 많은지 말이죠! 물론 지금부터 얘기할 영화들 가운데는
원래 부터 보고 싶던 영화는 아니라, 이번에 12월 개봉작들을 둘러보다가 관심을 갖게 된 영화도 몇 작품 있지만
(사실 한 작품 뿐 --;;) 대부분이 다 보고 싶은 작품들이라 더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몇 작품은
몇년 간 고대했던 영화도 있고,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의 신작은 물론 기대하지 않았으나
입소문을 통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를 등극한 영화도 있고, 더 나아가 이미 봤으나 또 보고 싶은 영화까지 있습니다.
영화팬에겐(특히나 저처럼 조폭 코미디빼고는 전부 챙겨보는 사람에겐) 가혹한 12월이 될 것 같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문제겠네요. 그럼 12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들을 차근차근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순서는 개봉일 순도 아니고, 보고 싶은 순서도 아니고 그냥 그림파일 불러온 순서 입니다 --;;)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감독 : 데이빗 크로넨 버그
주연 : 비고 모르텐슨, 나오미 왓츠, 뱅상 카셀
개봉일 : 2008.12.11

데이빗 크로넨버그를 알게 된 건 그의 팬들 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알게 된 이후로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는
감독입니다. <폭력의 역사> <크래쉬> 등이 작품들도 인상깊었고,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폭력의 역사>에서
함께 했던 '아라곤'으로 더 익숙한 비고 모르텐슨과의 두 번째 작품이라 더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여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명인 나오미 왓츠와 예고편에서 이름 나올때 다른 홍보문구로
대체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던 뱅상 카셀까지(뱅상 카셀의 영화를  <증오>부터 제법 많이 봐온 팬으로서는
이런 굴욕이 남일 같지 않더라구요).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으로 인해 아주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이미 시사회와 유럽영화제를 통해 보신 분들의 평들도 다들 좋은 편이었구요.
'금세기 다시 볼 수 없는 걸작'이라는 문구를 그대로 믿지는 않겠지만, 크로넨 버그와 비고 모르텐슨의 영화라면
한번 쯤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이건 내일 바로 봐야겠습니다. 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지구가 멈추는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2008)
감독 : 스캇 데릭슨
주연 : 키에누 리브스, 제니퍼 코넬리, 케시 베이츠, 제이든 스미스
개봉일 : 2008.12.24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물론 포스터에 큼지막하다 못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키에누 리브스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캐릭터를 키에누 리브스 화 해버리는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거의 안빼놓고 챙겨보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SF장르이기도 하고, 또한 제니퍼 코넬리가
출연하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를 갖게 된 영화네요. 무언가 크게 벌여놓기만 하고 마무리는 흐지부지 해버리는
용두사미격 영화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오랜만에 이런 SF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라 빼놓지 않고
볼 작정입니다. 감독인 스콧 데릭슨은 공포/스릴러 장르의 각본을 써왔던 감독이군요.
아이맥스 포맷으로 개봉될 예정이라 오랜만에 용산 CGV를 찾게 될 것 같군요.





트로픽 썬더 (Tropic Thunder, 2008)
감독 : 벤 스틸러
주연 : 벤 스틸러, 잭 블랙,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개봉일 : 2008.12.10

좋은 드라마나 스릴러 영화 만큼이나, 좋은 코미디 영화를 찾기란 사실상 더 어렵기 마련인데 그래서 이 작당한
삼인조가 만들어내는 코미디 영화가 기다려질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오랜만에 배우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작품을 내놓은 벤 스틸러는 물론, 이 배우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항상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는 잭 블랙은
물론, 얼핏 이런 코미디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까지(다우니 주니어의 경우
이름 없으면 못 알아보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ㅋ). 전 특히 코미디 영화는 아예 작정하고 판을 벌이는 경우를
선호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래서 더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미국식 유머를 쏟아낸들,
이들이라면 100% 이해는 못할 망정 7,80%를 즐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은 뽑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예스맨 (Yes Man, 2008)
감독 : 페이튼 리드
주연 : 짐 캐리, 주이 디샤넬,
개봉일 : 2008.12.18

앞서 얘기했던 잭 블랙과 마찬가지로 짐 캐리와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 중 하나입니다.
짐 캐리 영화가 특별한 것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인데, 그래서 짐 캐리 영화는 거의 고민하지
않고 항상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에이스 벤츄라>이후에 정말 '포복절도'할만한 영화는 많지 않았지만
<케이블 가이>같은 꽤 괜찮은 코미디 영화도 있었고, <트루먼 쇼>같은 좋은 드라마도 있었으며, <이터널 선샤인>
같은 제 인생 최고의 영화도 있었네요. 짐 캐리만으로도 볼만한 필요충분요소가 충족되긴 하지만, 여기에
주이 디샤넬이 출연한다니 이거 참 반가운 일이더군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해프닝>을 통해 좋아하는 여배우로 등극한 그녀의 출연은, 짐 캐리의 개그를 보는 것 과는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트와일라잇 (Twilight, 2008)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개봉일 : 2008.12.10

일단 이 영화의 원작은 170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하는데, 읽어보지 못한 터라 내용도 잘 알지 못하고
단순히 판타지이고, 뱀파이어가 나온다 라는 것 정도밖에는 알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판타지 장르를 워낙에
좋아하기도 하고 드라마 같은 장르에 비해서 집에서 블루레이나 DVD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극장에서 관람했을 때 더 효과적인 관람이 되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장르이기도
합니다(아주 이상한 영화만 아니라면요;; 판타지 장르에서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좀 너그러운 감도 없지 않네요).
뱀파이어/청춘/멜로/액션 영화 인것 같긴 한데,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은터라 그럭저럭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보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청춘 로맨스가 주가 된 영화인것 같군요.
이건 바로 오늘 확인하러 갑니다.





매직아워 (The Magic Hour, 2008)
감독 : 미타니 코키
주연 : 츠마부키 사토시, 아야세 하루카, 사토 코이치, 후카츠 에리
개봉일 : 2008.11.27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배우들이 아니라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미타니 코키는
바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를 연출했던 감독인데, 워낙에 이 영화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관람한지라 그의 작품이라면
봐도 좋겠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해 주조연급 일본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터라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구요. 알려진 바로는 일본에서 개봉된 버전에 비해 인터네셔널 버전은
삭제가 된 러닝타임으로 공개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국내 개봉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니
크게 문제 삼을 거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그렇다 해도 나중에 DVD가 출시될 때에는 일본 개봉버전이 실렸으면
좋겠군요~). 이 영화는 11월 27일 개봉한 영화인데, 집 근처에 자주 가는 극장들에서는 개봉하지 않고,
잘 가지 않는 극장들에서만 개봉을 하다보니 도대체 스케쥴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내릴 것 같은데
과연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을지.....





렛 미 인 (Let The Right On Me, 2008)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주연 : 카레 헤레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개봉일 : 2008.11.13

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께서는 좀 의아스러우실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히 <렛 미 인>은 예전에 봤었는데'
하며 말이죠. 물론 <렛 미 인>은 개봉한 주에 관람을 했었습니다. 올해 최고의 영화 베스트 10에 당당히
선정할 정도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구요.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번 주 부터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도
개봉을 시작했더군요.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에서 볼 때는 좀 작은 스크린의 사이드에서 본 터라, 기회가 된다면
아트하우스 모모의 좋은 시설을 통해 한 번 더 관람할까 생각 중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작만으로도 소화하기
버거운 스케쥴에서 과연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기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긴 하네요;;;
참고로 <렛 미 인>과 더불어 <로큰롤 인생>역시 꼭 한 번 다시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렛 미 인>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로큰롤 인생>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과속스캔들 (2008)
감독 : 강형철
주연 :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개봉일 : 2008.12.03

이 영화는 사실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선입견이 가장 크게 작용했는데,
제목이나 포스터, 배우들을 봤을 때 그저 그런, 또 반복되는 코미디 드라마(계속 웃기다가 막판에 갑자기 눈물짜는)
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볼 생각이 없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개봉 이후 주변의 보신 분들의 평이 하나 같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정말 최고다' 이런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다들 12월에 볼만한 가족 영화다 부터,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박보영이라는 여배우의 발견이다, 편집이나 이야기가 괜찮다 등등 좋은 평들이
가득하더군요. 더군다나 이런 영화 잘 안보실 거 같은 분들이 하신 얘기라 더 와닿기도 했구요.

과속스캔들 _ 좋은 가족영화, 괜찮은 성장영화





굿바이 칠드런 (Au Revoir Les Enfanus, 1987)
감독 : 루이 말
주연 : 가스파스 마네스, 라파엘 페이토, 프랜신 라세트, 필립 모리에르 제노드
개봉일 : 2008.12.24

사실 루이 말 감독의 작품을 접하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씨네큐브에서 루이 말 감독 특별전을
진행하면서 <마음의 속삭임> <라콤 루시앙>과 더불어 <굿바이 칠드런>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앞선 두 작품은 아직 보질 못했으나 <굿바이 칠드런>은 시사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루이 말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예전 영화이긴 하지만(1987년 작입니다)
이미 본 경우가 아니라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구요.
가볍지 않고 진중한 분위기에서 묻어나는 감동을 전해줄 것만 같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I Just Didn't Do It, 2006)
감독 : 수오 마사유키
주연 : 카세 료, 세토 아사카, 야마모토 코지
개봉일 : 2008.12.11

지금까지 영화들이 감독이나 배우들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였다면, 이 영화는 카세 료가 뭔지 모를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포스터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끌릴 수 밖에 없는 제목에 이끌려
관심을 갖게 된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과 포스터 하단에
'유죄 확률 99.9% 그 긴 투쟁이 시작된다!'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법정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렇게 아예 '유죄 확률 99.9%' 라는 것과 '내가 하지 않았다'라는 상충되는 단어를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쉘 위 댄스>를 연출했던 수오 마샤유키가 얼마나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구성했을지도 궁금해지고, 카세 료와 야쿠쇼 쇼지의 연기도 기대되네요(지난 번 <도쿄!> 리뷰에도
썼던 말이지만, 최근들어 카세 료는 저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일본 남자배우보다 자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2008)
감독 : 바즈 루어만
주연 : 니콜 키드먼, 휴 잭맨, 데이빗 윈햄
개봉일 : 2008.12.10

사실 12월 들어서면서 애초부터 가장 보려고 했던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였습니다. <물랑루즈>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한 바즈 루어만의 매우 오랜만의 신작이기도 하거니와,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모여 이른바 '호주 3총사'가
만드는 호주 영화라 어느 정도 기대를 했던 것이었죠. 이 영화는 이미 시사회와 외국의 평들도 미리 접할 수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 많더군요. 그래서 살짝 주춤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볼 영화가 너무 많아지다보니
러닝 타임이 제법 긴 이 영화(166분)를 평일날 보기엔 부담이 되고, 그렇다고 주말에 보자니 주말에나 시간 내어
갈 수 있는 극장에서 하는 영화를 봐야 하느라 미뤄지고 해서, 점점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대서사극을 표방한 영화들은 극 소수가 걸작의 평가를 받았고, 대부분은 너무 장황하고 폼을 잡는 탓에 실망이
커졌던 경우가 많은데,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도 후자의 평가를 받는 듯 하나, 일단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풍광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바즈 루어만의 신작에 대한 큰 기대가 있던터라, 기대만큼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보긴 봐야 겠는데 이것 역시 시간내기가 관건입니다.





열흘 밤의 꿈 (Ten Nights of Dreams, 2007)
감독 : 아마노 요시타카, 이치카와 곤, 짓소지 아키오, 카와하라 마사아키, 마츠오 스즈키 외
주연 : 토다 에리카, 코이즈미 쿄코, 우지키 츠요시, 야마모토 코지, 마츠야마 켄이치 외
개봉일 : 2008.12.18

이 영화도 원래 부터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 12월 개봉작들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게 된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를 본래 좋아하긴 하지만, 저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일본색'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느 정도
불편함이 있기는 한데, 이런 포스터에서 풍겨나오는 일본색으로 인해 영화를 패스하려다가는 큰일 난다는 것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통해 완벽하게 느꼈기 때문에(다행히 극장에서 봤었죠 ^^),
이번 영화도 왠지 놓치면 안될 것 같더군요. 더군다나 옴니버스 형식이고 10명의 감독들에 색깔로 그려지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많은 배우들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일본영화 팬으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
될 것도 같구요. 큼지막하게 나온 마츠야마 켄이치의 뒤로 <린다 린다 린다>를 통해 얼굴을 익힌 카시이 유우가
보이네요 ^^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The Fall, 2006)
감독 : 타셈 싱
주연 :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개봉일 : 2008.12.04

판타지 영화라 하면 상상력을 스크린에 표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CG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더 폴>은 일단 놀랍게도 4년간 28개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촬영한 영상이 주를 이루는 판타지 영화입니다.
공개된 이미지들만 봐도 놀라움을 자아내기 충분한데, 이것들이 실제 존재하는 배경들이라는 점에서
영상만으로도 압도당하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도 감독인 타셈 싱은 R.E.M의 'Losing My Religion'
뮤직비디오를 만든 감독으로 더 유명한데, 제니퍼 로페즈가 출연했던 그의 전작 <더 셀>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 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평은 이야기는 조금 미흡하지만
볼거리만으로도 황홀하다 라는 것이 중론인듯 한데,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게 된다면 아마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겠죠. 아, 그리고 혹시 저 부제목이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의 경우처럼 스포일러는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 영화는 상영관이 매우 적은데, 그 때문에 오랜만에 집과는 한참 떨어진 일산 롯데시네마를 가게 되었네요.
이번 주말 관람 예정입니다(너는 이미 질러져있다).

더 폴 _ 영화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타셈 싱의 동화





벼랑위의 포뇨 (Ponyo on a Cliff / 崖の上のポニョ, 2008)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성우: 야마구치 토모코, 나가시마 가즈시케, 아마미 유키
개봉일 : 2008.12.18

제 블로그를 예전부터 보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광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에서도 손꼽는 분이기도 하구요. 제 닉네임만 봐도 어느 정도 지브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네요 ^^; <벼랑위의 포뇨>는 이런 제가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였죠.
물론 이 이전에 <게드전기>가 있긴 했지만(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실망하긴 했지만, 최악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었던
영화였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감독한 작품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후 제법 오랜만이라 일단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드네요. 사실 포스터만 봐서는 그리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닐것 같긴 한데,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만 믿고 가보는 겁니다. 물론 또 한번 감동의 물결을 몰고 오실 히사이시 조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겠죠. 결과야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개인적으론 <벼랑위의 포뇨>가
가장 기대되는 영화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또 보고 나면 한동안(제법 오래) OST를 입에 달고 살게 되겠군요 ^^



다 정리하고 보니 과연 이 영화들을 12월 내에 다 소화할 수 있을지가 다시 한번 걱정이 드는군요.
물론 이 중에서는 1월에 보게 될 영화도 생기겠지만,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다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네요 ^^;
극장의 위치, 영화의 시간, 연말의 약속 들을 모두 고려하여 완벽한 스케쥴 표라도 하나 만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드네요. 일단 오늘은 <트와일라잇>, 내일은 <이스턴 프라미스>, 모레는 <더 폴>, 글피는 <트로픽 썬더>
혹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달려볼까 합니다. <매직아워>를 그 틈에 끼워넣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 <과속스캔들>도요 -_-;; 그래도 행복하군요 --__--V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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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인생 (Young@Heart, 2007)
현자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로는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에 걸맞지 않는 록큰롤 곡들을 무대에서 노래해
Youtube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고, 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국내 쇼프로그램인 '스타킹'에나 나올 법한 정도의 소재는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재를 그렸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슈와 화제거리에만 집중해 단순히 '노인들이 모여서 록을 연주한다' 정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영상은 전해주지
못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었죠(실제로 이 '영앳하트' 코러스 밴드의 단장인 밥 실먼은 쉽게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미 여러 번 '영앳하트'를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거의 모두가 그저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프로그램들이었기 때문에, 또 한번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겠죠. 결과적으로
스티븐 워커 감독에게 영화화를 허락한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앳하트의 'Alive and Well' 공연을 앞둔 6주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스티븐 워커 감독은 매우 영리하게
6주라는 시간 속에 영앳하트 멤버들의 에피소드와 더불어 어느 영화 못지 않게 재미있는 유머들과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와 노인의 들려주는 지혜에 대해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제하는 것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오히려 더 극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큰롤 인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진리와도 같은 감동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감독인 스티븐 워커는 본래 TV쇼를 연출했던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짧은 러닝 타임 속에도
의도되지 않은 장면들을 통해 어느 코미디 못지 않은 유머러스함을 이끌어냅니다. 극중 노인들이 자신들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는 펑크나 록 음악들을 배우는 과정을 그리는 방법은 특히 돋보이는데, 자칫하면 노인들을 우습도록 보이게
만들 수도 있는 이 과정을 그는 적절한 편집을 통해 유머러스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음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행복한 순간이 가득 넘칩니다. 80이 넘은 노인들이 소닉 유스나 콜드 플레이를 부르는 모습은
설명만 들으면 그저 기이하거나 코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영앳하트가 콜드 플레이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을 본다면 아마 그 누구도 절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아마도 단장인 밥 실먼이 가장 중점을 두었고,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워커가 놓치지 않았던 점은 바로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가요도 그렇지만 팝송의 경우는 더더욱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멜로디나 음악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에서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음악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죠.
영앳하트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이 단순히 노인이 펑크를 부른다 라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워커 감독은 그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미덕을 본 것이지요. 바로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 말입니다. 확실히 이야기나 노래는 그 메시지 자체가 어떤 것이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들려주느냐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새삼스레 깊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80년 넘게 혹은 9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의 가사는 결코 헛되이 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들이 공연 중에 불렀던 곡들의 대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저로서도, 그 노래의 가사들이 다시금 새롭게 심장을 관통할 정도로 놀라운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콜드 플레이 (Coldplay)의 'Fix You'의 가사가 이리도 나를 위로하는 가사라고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었고,
(물론 크리스 마틴이 부르는 'Fix You'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영앳하트의 '프레드 니들'이 부르는 이 곡의 감동만은
못했던 것 같아요) 밥 딜런의 'Forever Young'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 줄은 이제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도소에서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공연 중 'Forever Young'을 부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자
찰나이기도 했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참으려고 하는데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걸 도저히 막을 수가 없더군요.
확실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흡수력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으로 몇번씩 수술을 치루고, 병으로 인해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노인이 거누기 힘든 몸을
이끌며 하나하나 읖조리는 가사의 내용은, 어쩌면 오리지널 뮤지션이 부른 것 보다도 더 뼈저리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눈물이 났구요.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과도 같이 <로큰롤 인생>은 훨씬 더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음에도 매우 영리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던 멤버들 가운데 몇 분이 지병으로 인해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이 과정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 바다에서 허우적대도록
'죽음'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죽음이라는 일종의 사건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처럼요. 8,90이 넘는 나이에 멤버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항상 가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지고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경지이며, 단순히 두려움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공연 바로 직전에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지만, 단 한 명 동요없이 공연을 끝까지 치루기도 하구요.
그리고 카메라 역시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선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버스 내에서 부단장이 멤버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릴 때는 버스 밖을 비출 뿐이고, 다른 멤버가(여기선 그냥 멤버라고 표기했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맞이 했을 때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처리할 뿐입니다.

이렇듯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면서 결과적으로 영화는 훨씬 극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되게 우스운건, 이분들의 80년 넘는 인생에서 겨우 1시간 남짓을 함께 했을 뿐인데,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는 것이었죠. 이건 단순히 존재가 사라졌음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겠지요.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많이 봐왔지만 <로큰롤 인생>처럼 나 스스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된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의 제목도 '로큰롤 인생 _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라고 할까 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말하는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삶 자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음악 자체는 단순히 소재일 뿐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영화의 포스터나 영화의 시작부분
공연의 피날레 장면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에 그들이 갖은 어려움 끝에도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가 주된 클라이막스가
아닐까도 했지만, 오히려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감동했기 때문이죠. 그 나이쯤 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하게 될까요?  영앳하트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마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장난스럽게 툭툭 던지듯 건네는 말들이 하나하나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하다보니 음악 얘기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로큰롤 인생>을 논하면서 음악 얘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는 이들이 공연 준비를 위해 연습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제임스 브라운의 'I Feel Good'을
연습하고 공연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공연날 까지도 가사를 완벽히 외우지 못해
한 구석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더군요. 소닉 유스의 'Schizophrenia (정신분열증)'은
어쩌면 이들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실제로 소닉 유스의 팬이 아니면 이런 가사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죠), 처음에는 단순히 가사를 읽고 따라하는 정도였지만 연습을 해갈수록 가사를 이해해 가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 더 포인터 시스터즈의 'Yes We Can Can'을 연습하는 장면 역시 재미있는 장면인데,
'Can'이라는 단어가 무려 71번이나 등장하는 이 곡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다가 결국 무대에서는 완벽하게 성공해 내는
장면에서는 감동이라기 보다 뿌듯함이 느껴지더군요.

극 중간 중간에는 이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작품들도 굉장히 센스 넘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비지스의 'Stain' Alive' 를 부른 뮤직비디오에서는 이 곡이 삽입되었던 원작인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의 첫 장면을 패러디한(호리호리한 존 트라볼타가 말끔히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발이 클로즈업
되는 바로 그 유명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구요. 볼링 치는 그 장면도 매우 재미있었구요 ~
또 하나 재밌는건, 이 곡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니 굉장히 의미있게 들렸다는 겁니다.
'아직 살아있어' 라는 후렴구가 이리도 인상깊게 들리다니요!
물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본래 듀엣곡이었던 곡이 멤버의 죽음으로 인해 솔로곡으로 변해버린 'Fix You'와
교도소 공연에서 들을 수 있었던 밥 딜런의 곡 'Forever Young'이었구요 (Fix You는 마치 조니 캐쉬처럼 멋지게 소화해
내시더라구요).




모든 좋은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도 아무리 설명글을 주저리 주저리 써봤자,
영화 1회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에 1000분의 1도 전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그저 '유투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라는 것 만으로 이 영화를
판단하시고 영화를 안보시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라는 말 뿐입니다. 영화야 어차치 100% 취향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높은 확률로 많은 분들께 감동을 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같네요.
단순히 슬퍼서라기 보다는 노인의 지혜에 저절로 숙연해 짐을 느꼈기 때문이었겠지요.




Fix You - Young@Heart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




Forever Young - Young@Heart (이 곡은 중반부터 나오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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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연인들 (The Lovers From The North Pole,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 1998)
우연과 운명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는 <섹스 앤 루시아>를 연출했던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Lafont)의 1998년 작입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국내에는 올해 12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게 된거죠. 사실 큰 관심이 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친한 블로거 분이 오프라인에서 전해준 '괜찮다'라는 말과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끌렸달까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바람은 <북극의 연인들>이라는 영화를 보기에 탁월한 환경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장 내가 추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입고갔던 코트를 벗지 않고 관람했거든요.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운명적 사랑' '영원한 사랑' '특별한 운명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등
러브스토리에서 엿볼 수 있는 대부분의 홍보문구들이 즐비한 영화였기에, 뭐 그런 뻔한 영화겠구나 하는 짐작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놓친 사실이 있었다면 바로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었겠지요. <섹스 앤 루시아>는 예전에 얼핏
본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훌리오 메뎀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었고,
스페인 영화라는 점이 유일하게 이 영화에 무언가 특별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소였죠.

스포일러 없이 간단하게 추천의 글과 결론을 내어보자면, 이 영화 이 계절에 보기에 참 좋은 영화입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홍보 문구들처럼 이야기자체는 클리셰 가득한 러브스토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재밌는건 영화를 볼 때는 이 이야기가 전혀 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나중에 든거죠. 그만큼 이 영화는 흔한 러브스토리의
클리셰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루하기는 커녕,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 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비슷한 설정의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기도 했구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국엔 러브스토리이긴 하지만, 오토와 어머니의 관계가 제법 비중있게 그려집니다.
오토의 성장영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요.)


시놉시스

우연과 필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

끝이 시작이 되는 순환적인 구조 속에 두 연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마치 직소퍼즐처럼 짜넣은 더없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주인공 아나와 오토는 8살 때 처음 만나 영혼의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오토의 아버지와 아나의 어머니가 결혼하는 바람에, 아나와 오토는 비밀스럽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 많은 우여곡절로 서로를 떠난 두 사람은 25살이 되어 북극권의 가장자리 핀란드에서 다시 만나지만, 이들에게는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데뷔작부터 줄곧 반복과 순환 구조에 몰두해온 메뎀의 관심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 감독 자신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회문(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단어, Medem, Ana, Otto)인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운명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오토(Otto)와 안나(Anna)는 어린 시절 부모님 덕에 서로 알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이다. 이 영화는 그들의 순환적인 이름처럼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삶에 관한 영화다. 결코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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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만 다시 읽어보아도 이 영화를 선뜻 선택하게 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첫 장면만 봐도 엔딩까지 쭈욱 예상이 되는
영화로 보이니까요. <북극의 연인들>은 결론은 이 예상과 맞아떨어지는데, 보는 과정에서는 눈치 채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첫 번째로 영화를 그리는 독특한 방식을 들 수 있겠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로 입장을 바꿔가며
마치 다른 이야기처럼 그리는 방식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10년 전에도 그리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겠지요?;;;),
훌리오 메뎀 감독은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토와 아나의 이야기를 오가다가 결국은 둘이 아닌
하나의 장소로 귀결되어 지는 구성 방식은, 단순히 같은 얘기를 다른 시각으로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서, 전개 방식 그 전부로
사용되고 있는거죠.




(이 영화에는 아역과 청소년기, 성인으로 같은 인물이 세 명의 배우에 의해 그려지는데, 3명 모두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아이들의 깊은 눈빛은 너무 인상적이었구요. 스페인 아이들의 마스크나 분위기는 언제봐도 매력적인것 같아요.)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오토(otto)와 아나(ANA)인데,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회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내용상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기도 한데, 영화의 구성 측면에서도 이 '회문'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즉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동일하다는 얘기인데, 최근에는 스릴러 장르의 미드에서
자주쓰곤 하는 이 방식이 이 영화에서는 클리셰를 보완하는 영화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 핸드 헬드로
촬영된 흔들리는 화면과 주인공들의 흥분된 표정들은 긴장감만으로 다가오지만, 마지막에 이 장면이 반복될 때에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죠. 분명 첫 장면에서 이미 다 본 장면들이지만 마지막에 다시 볼 때는 사뭇 궁금해하며
장면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1시간 쯤 전에 장면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가 아니라, 그렇도록 잘 연출한 영화의
묘라 해야겠죠.

이 영화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고요한 풍광과 더불어,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인
장면 장면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일단 온종일 해가 지지 않는 인적 없는 호수가에 자리한 집의 풍경은 이 영화의 제목이
'북극의 연인들'이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일정 시기에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더불어
고요함과 더불어 불안함도 전달해내는 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영화의 주인공들 만큼이나 오래 기억될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사춘기를 겪을 때 집과 집 주변의 묘사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어두워진 밤 시간에 창문 밖으로
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최대 명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두 주인공의 긴장되고 떨리는
심정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지로 표현해낸 이 장면이야말로 훌리오 메뎀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핀란드 시골 마을의 그 아름다운 풍광보다도 이 장면이 더 인상깊고 기억에 오래 남을듯
하네요.




이 영화를 '아름다운'영화로 기억되게 하는 다른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배우들과 캐릭터 일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남녀 주인공인 오토와 아나는 각각 3명의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데, 일단 아역을 맡은 두 배우는
최근 개봉했던 <렛 미 인>의 오스칼과 이엘리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오스칼과 이엘리는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이끌어 갔던 캐릭터였고, <북극의 연인들> 아역 배우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아역에만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 두 명의 아역 배우의 인상이 얼마나 깊었나를 가늠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오토 역할을 맡은 페루 메뎀은 그 깊고 불안함이 가득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는데(보는 내내 <바벨>에 등장했던
그 총쏘던 아이가 연상되더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독인 훌리오 메뎀의 아들이더군요.
어린 아나 역할을 맡은 사라 발리엔테 역시 매우 인상깊습니다. 어린 아이임에도 마냥 어린이스럽지 않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이 두 어린이들의 인상과 연기는 <북극의 연인들>을 보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기를 연기하는 두 배우도 인상적인데, 특히 아나 역을 맡은 크리스텔 디아즈 (Kristel Diaz)의 투명한 마스크와
신비스런 표정연기는 너무도 매력적입니다. 뭐랄까요 청소년기의 소년들을 자극하는 신비스런 표정을 갖고 있는
소녀랄까요. 그런데 이 이후로 자국에서 두 작품 정도 더 출연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이렇다할 정보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요. 저 정도 마스크와 분위기라면 충분히 주목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마저 드는군요.

성인 오토와 아나를 맡은 두 배우, 펠레 마르티네즈와 나즈와 님리는 <오픈 유어 아이즈>를 통해 조금 낯이 익은
배우들이었습니다(물론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페넬로페 크루즈 였지만요 ;;;).
이 두 배우의 연기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역과 청소년기를 연기한 배우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탓에,
이들에 대한 코멘트는 여기서 줄이도록 하죠.



10년만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이 된 만큼 신선도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라는 우려도 아주 조금 있었지만,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켜버린 아주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사실 시놉시스만 보면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절절하지 않으면서도 여운이 깊게 남고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올 겨울 극장가에서 단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북극의 연인들>을 꼽을 수 있겠네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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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2008)
무한 긍정 캐릭터로 되새겨보는 행복의 참 정의

<해피 고 럭키>는 개봉 전 부터 은근히 기대하던 영화였는데, 개봉한지 조금 지난 주말에야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베라 드레이크 (2004)>로 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마이크 리 감독의 작품인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베라 드레이크>를 비롯해 제대로 본 영화가 없는 것 같군요(61회 베니스 영화제의 후보들을
살펴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씨 인 사이드>, 프랑소와 오종의 <5x2>,
허우 샤오지엔의 <쓰리 타임즈>등이 포진하고 있는 걸 봐서 <베라 드레이크>는 나중에라도 한 번 챙겨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말고는 다 보았고, 인상깊기도 했구요).

하지만 별다른 감독과 배우에 대한 선호도가 없었음에도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포스터나 스틸 컷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다른 감성들과 '무한 긍정' '행복 바이러스'등 이 영화 홍보에 사용된 문구들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행복한 영화보다는 우울한 영화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더더욱 제대로 된 코미디나 제대로 된
긍정적 영화들이 많지 않아 우울하기도 하던차에, <해피 고 럭키>라는 이 '해피'하고도 '럭키'한 제목이 눈에 쏙 들어올 수
밖에요.

사실 제목과 스틸컷등으로 예상하기로는 무한 긍정의 행복함으로 넘치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의 행복 바이러스를
주의에게 듬뿍 나눠주어, 고뇌하고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들마저 행복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냥 '행복한'이야기 일줄
알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꼭 그렇지 만은 않은 영화더군요. 하긴 행복함을 얘기하면서 그 반대의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는 진실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겠지요.




(아래 부터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급히 이동해 주세요~)








영화의 주인공인 포피(샐리 호킨스)는 정말 긍정적 마인드로 똘똘 뭉친, 행복 그 자체의 캐릭터 입니다. 누구에게나
말 걸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상대가 반응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며, 좋지 않은 일이 닥칠 때에도
자신 만의 초 긍정적 마음 가짐으로 쿨하게 넘기는 캐릭터이죠. 영화의 인트로 부분은 포피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 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를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집약된 인트로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아, 자전거를 타고 서점에 들렸다가 무뚝뚝한 서점 주인에게 여러 번 되도 않는 말들을 던져 보다가
반응이 없자 쿨하게 돌아서 서점을 나오던 포피는,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없어진 것을 알고도 '아쉽네,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는데' 뭐 이 정도죠. 이 초반 에피소드가 '포피'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단 번에 인식시키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행복함이 넘쳐나는 '포피' 캐릭터를 설명이 어느 정도 끝나면, 그녀 주변의 인물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녀 주변에는 그녀처럼 행복한 친구들도 있고, 갖가지 일들로 고민과 갈등을 겪는 이들도 있고, 초등학교 선생님인 그녀에겐
반 아이들의 생각지 못했던 사연들도 있는 등 역시 예상대로 현실적이고 여러가지 일들로 행복하지 못한, 혹은 행복을
갈구하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라면 포피의 운전 강습 선생님인 '스콧'을 들 수 있겠구요.



(전 이 스틸컷만 보고는 샐리 호킨스라기 보다는 쥬이 디샤넬인줄 알았어요. 이 사진은 유독 그렇게 나온 것 같더라구요 ㅎ)


잘 생각해보면 스콧은 조금 거친 캐릭터일 뿐이지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얼핏보면 굉장히 신경질 적이고
과격한 대표적 남성 캐릭터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한 긍정의 포피와 상대 비교를 했기 때문이지,
스콧의 말을 곰곰히 따져보면 그가 그리 오버해서 화내는 것이기 보다는, 화낼 만한 일들에 적절히 화내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전부 다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 때문에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부 정책도 마음에 들지 않고, 흑인들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자신 만의 규칙을 만들어(엔라하~) 그걸 벗어나는 자유스러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런 스캇은 자유분방한 포피를 만나면서 급격하게 부딪히게 되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 둘은 포피가 내뿜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지 조금씩 이야기의 진전을 보여줍니다.

스캇은 말과 행동은 거칠게 하지만 점차 포피에게 자신의 속마음(좋아한다는 애정의 감정 말고도, 그냥 남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시콜콜한 속 얘기랄까요)을 드러내게 되고, 어쩌면 본인 자신은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스캇은 자신이 찾는 행복의 길을 '포피'에게서 일정 부분 찾게 된 것이죠(이건 단순히 포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서
동화되었다기 보다는 행복함 자체에 동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마냥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포피와 스캇의 에피소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영화 같으면 포피의 행복 바이러스가 스캇 같은 냉소주의자에게도 퍼져서 결국 스캇도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식의 얘기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피 고 럭키>는 조금 다르더군요. 달라서 더 좋았구요.




스캇과 포피의 경우도 그렇고, 포피가 가르치는 학생의 문제도 그렇고, 포피의 동생 부부의 일들도 그렇고, 더 나아가
포피가 만나게 된 남자선생님과의 로맨스도 그렇구요. 별로 완벽하게 혹은 행복하게만 마무리 되는 일은 결국 하나도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하던 포피도 자신 과는 방법이 틀렸던 스캇과는 결국 융화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스캇은 본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는 했지만, 이 만남과 이별 뒤에도 결국 스캇은
스캇대로 포피는 포피대로 살아가게 될 것 같구요. 포피의 동생 부부와 또 다른 동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포피가 중간에서
조화를 이뤄보려고 하지만 '다 잘되었다'라고 보기엔 그냥 그대로 마무리 됩니다. 가정 불화를 겪어 폭력성을 드러내는
어린 아이의 문제도 상담으로 알게 되었긴 했지만, 원인을 알게 되었을 뿐 해결이라고 보긴 어렵구요.

결국 포피가 마지막 절친인 조이와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나누는 대화에서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메시지를 엿볼 수
있더군요. 포피는 자신의 행복함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위에게 나누 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맙니다. 뭐랄까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졌던
그녀마저 한계를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인생살이에 고단함 이랄까요. 이런 메시지는 영화 중간에 포피가 뒷 골목에서
만난 노숙자처럼 보이는 아저씨와의 장면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야기하는 이 남자의 질문. '알아?'하는 이 질문에 포피는 '알아요'라고
대답하지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서로 이해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거든요.
만약 두 사람이 별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다면 그렇게 서로에 공간으로 약간은 도망치듯 빠져나오진 않았을 것 같구요.

이 영화는 그래서 더 생각해 볼게 많았던 영화같습니다. 마냥 행복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마냥 행복함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혹은 어렵다 라는 것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만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이 영화가 더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 정도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던 포피마저 한계를 인정해야 할 정도로 현실이 우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에요.




포피 역할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는 이 영화를 통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돋보이고 주목 받기 쉬운 캐릭터인것도 있지만, 샐리 호킨스의 연기력에 의문점이 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확실히 망가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면서도, 망가짐이 그저 망가지는 것 만으로 남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웃게 만드는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하는 행동 하나 하나는 관객들의 입꼬리를 저절로 올라가도록 하더라구요. 박장대소 하는 장면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씨익'하고 웃게 만든 장면은 여러 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좋았죠.

스캇 역할을 맡은 에디 마산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기는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아 필모그래피를 찾아보았더니
상당히 많은 영화에 출연을 했더군요. <미션 임파서블 3> <일루셔니스트> <21그램> 등등 다시 보게 된다면 이제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즘 이런 영화를 만나기가 갈 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해피 고 럭키>는 단순히 '여자 주인공이 망가지더라'
정도로 홍보되고 기억되기엔 아쉬움이 많았던, 행복에 관한 좋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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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영화


얼마 전이였다.
TV 영화관련 프로그램에서 5월 장애우 주간을 맞이하여 관련 영화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레인맨>,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등이 소개된 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이 다 마치고 난 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왜, 조제...가 장애우 관련 영화에 소개 되었지?’ 개봉 시에 극장에서 보고, 일반판 DVD출시 시에 감상하였으며, 스페셜 에디션이 재 출시된 뒤에도 다시 감상하였었지만, 단 한 번도 <조제...>가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장애를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 과제가 아니라 유모차를 타는 것이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저 습관 정도로 느껴질 정도로, 즉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작품 속에 녹여버린 이누도 잇신 감독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되는 소소한 체험이었다.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작가 주의 감독으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최신작 <메종 드 히미코> 역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제 더 이상 <조제...>만을 만든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게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볼 순 없지만 주된 배경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게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인 만큼, 이 영화를 얘기할 때 게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누도 잇신 감독은 직접적인 명령조에 어조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 선입관과 잘못된 시각으로부터 치유되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야기의 마술사이다. <조제...>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관련 에피소드를 자주 노출 시키는 편이지만, 역시 게이에 관한 잘못된 시각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극 중 사오리가 처음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와서 겁을 먹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이해하고 댄스홀에서 이들을 조롱하는 그의 옛 동료 남자에게 끝까지 사과를 요구할 정도로 변해가는 과정과 같이, 관객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노인들의 모습에 웃음과 괴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특별함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된다. 극중 사오리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에서 이 ‘자연스러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보통의 영화 같았으면 어떠한 계기나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생각이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가 있지만, <메종 드 히미코>에는 특별한 사건이랄 것이 사실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동기부족으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이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동성애’라는 소제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면, <메종 드 히미코>는 일반인들에게 게이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지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기 보단, 오히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게이가 된 아버지 히미코를 미워하던 사오리가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시간들을 통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랄까. 특히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는 히미코와 어머니와의 일들을 통해 사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과 어린 딸을 버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미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낸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를 ‘히미코’가 아닌 ‘아버지’로 점점 생각하게 된다.





나중에 서플먼트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습고 극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 같아 빼려고 했었다는 댄스홀의 단체 댄스 씬은, 제작자들이 이제와 밝히는 것처럼 본편에 포함한 것이 백번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바보스런 장면이 있어야 슬픈 장면들이 더욱 슬퍼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특유의 ‘뾰루퉁’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사오리가 환하게 웃는 장면도 만나볼 수 있으며, 특히 배경에 흐르는 댄스 곡의 가사가 곱씹으면 씹을수록 영화의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헤어질 수 없는 그 이유를. 얘기하고 싶진 않아
왠지 쓸쓸해질 뿐, 왠지 허전해질 뿐, 서로가 상처를 주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되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만날 수 있을 그 날까지,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아. 그것은 듣고 싶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과거로 되돌아가니까.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두 사람이 이름을 지워버리면 그제 서야 마음은 무엇인가를 얘기해주겠지. (댄스 홀에서 흐르던 곡의 가사)





이 영화를 알기 전 개인적으로 두 주연배우인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대표작들은 각각 다른 영화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우를 이야기 할 때 현재로서는 <메종 드 히미코>를 대표작으로 꼽게 되었다. <조제...>에서 조제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캐릭터라면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하루히코’가 그러하다. 배 바지도 아닌 것이 쫄 바지 같지도 않은(어쩌면 배 바지이면서 쫄 바지 인지도 모르지만)바지를 입고, 레이스가 있는 셔츠를 바지 속에 넣어 입었음에도(거기에다 매번 헝크러져 있음에도 멋지기 만한 헤어스타일은 또 어떤가) 한 번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 기는 커녕, 멋지기만 했던 ‘하루히코’는 다른 캐릭터들도 모두 그러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오다기리 죠가 만들어낸 ‘하루히코’는 영화를 외적인 아름다운 면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바로 시바사키 코우가 연기한 ‘사오리’이다. 시종일관 또렷 하다기 보다는 흐릿하고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오리는 <조제...>의 츠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시바사키 코우는 <고 (Go)>에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줬었는데, 이번 사오리 역할이야 말로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고 생각된다. 두 멋진 주인공외에 히미코 역할의 다나카 민은 무용가로서 모 시상식 장에서 너무도 멋진 모습에(무대 위 모습이 아닌 보통의 모습) 너무나도 반한 감독에 의해 적극 캐스팅되었는데, 히미코라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를 연기력이기 보다는 모습 자체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밖에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이 노인들 역할의 배우들은, 리얼리티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쓰도록 감독이 특별히 당부했을 만큼, 배우 출신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연극 연출과 각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인물들이 캐스팅 되었다. 양로원의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개별 조명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에 동요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같은 리얼리티를 중시한 캐스팅에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출시된 <메종 드 히미코 SE> DVD타이틀은 같은 제작사에서 출시되었던 감독의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SE>와 같은 컨셉의 패키지로 제작되었다. 디지팩의 소장가치 높은 케이스와 2장의 디스크, 그리고 엽서 5종 세트와 <조제...>때도 큰 인기를 끌었던 하드보드지형 필름 컷이 포함되었다. 16:9 와이드스크린의 화질은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를 외곡 없이 전달한다. 특별히 우수한 화질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최신작에 걸맞는, 영화에 분위기와 걸 맞는 최상의 화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운드는 돌비디지털 2.0채널만을 지원하는데,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크게 강력한 사운드나 채널 분리도가 필요 없는 만큼 2채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질을 들려준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감독과 촬영,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그리고 예고편들과 <조제...>의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이 수록된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나,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 등 주연 배우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없는 점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두 번째 디스크에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짜임새 있고 다양한 서플먼트들이 우리를 다시금 기쁘게 해준다. 가장 주된 서플먼트는 아마도 메이킹 오브 ‘메종 드 히미코’일 텐데,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촬영이 모두 끝나고 시사회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다. 프로듀서와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 그리고 캐스팅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로케이션에 관한 이야기 등을 상세하게 전해들을 수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모 시상식에서 반해버린 다나카 민을 ‘히미코’ 역에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과 프로듀서가 정말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다나카 민을 찾아가게 된 에피소드와 주된 활동 배경이 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어울릴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러브 호텔 등을 전전한 이야기, 그리고 본래에는 바닷가에 위치한 건물로 그려지지 않았으나 너무도 멋진 건물 탓에, 처음 대본과는 다르게 바닷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수정하게 된 에피소드 등이 등장한다.





서플먼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 작업이 영화 전반에 끼친 영향에 관한 일들인데, 감독과 프로듀서들도 애초 의도하지 않았고 몰랐던 장면과 내용들이 호소노의 음악 작업을 통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 특히 이 영화를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나 게이에 관한 이야기 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느꼈다는 호소노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낸 음악들과, 사진으로만 등장하는 사오리의 어머니에 대한 테마를 만드는 등 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호소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또한 음악이 덧 입혀지기 전에는 한 번도 이 대본이 헤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호소노가 작업한 엔딩을 들으며,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헤피 엔딩을 찾아낸 점 등이 놀랍다는 프로듀서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이렇듯 프로듀서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자신들 보다 더 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음악감독 호소노 하루오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도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음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 밖에 본편에는 수록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이 10장면 수록되어 있으며, 스텝들이 꾸며낸 단편 ‘변호사 아사카 레이코의 사건수첩’ 가족 협주곡도 빼놓을 수 없는 서플먼트이다. <메종 드 히미코 SE> 서플먼트에 장점이라면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의 인터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인데, 단순한 인터뷰가 아닌 영화와 캐릭터에 관한 깊은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인터뷰들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두 주연 배우 ‘오다기리 죠’와 ‘시바사키 코우’의 인터뷰는 별도로 수록되었으며, 이 밖에 일본 내에서 무대 인사 영상과 도쿄 FM 공개방송 영상, 토크쇼에 출연한 영상들을 통해 중복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과 오다기리 죠가 내한했을 때의 영상도 수록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순 소개 영상이 아니라 내한 시에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 들어와 이내 떠나지 않는 사랑스런 작품들이다. 슬픈 장면임에도 왠지 모를 행복함이 전해지거나 환하게 웃는 장면에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은, 이제 이누도 잇신 감독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것, 소외되고 가려져 있는 아름다움, 우리가 잘 모르고 지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자연스레 일 깨워주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이누도 잇신 감독. 이젠 그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메종 드 히미코>가운데, 어느 것도 한 작품만을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2006.05.22
글 / ashitaka





지난 토요일 저녁 8시.
이대에 위치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제 2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제 1회 상영작으로는 <원더풀 라이프>가 상영되었었는데, 이번 2회 상영작으로는 블로그에서 진행한 투표를 통해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작품 <쥴 앤 짐>이 상영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2회 블로거 상영회의 후보작들 가운데는 <쥴 앤 짐>외에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와
<도니 다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레이닝 스톤>등 제법 쟁쟁한 영화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어떤 작품이 상영작으로 결정될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는데(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은 있었죠....<메멘토>가
<다크 나이트>의 대흥행과 그간 극장에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이유등을 미뤄 1등을 하지 않을까 예상했었지만),
어찌보면 좀 의외로 <쥴 앤 짐>이 상영작으로 결정이 되어 사뭇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상영회에 오신 분들을 보니 <쥴 앤 짐>의 상영작으로 꼽힌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제 1회 상영작 <원더풀 라이프>때는 양 사이드에 조금 빈자리가 있었는데, <쥴 앤 짐>에는 거의 좌석이 매진되었거든요.
주말저녁이라는 장점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겠지만, 다시 한번 관객이(혹은 블로거가) 직접 선택한 영화는 항상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메멘토>를 상영작으로 추천하기도 했었지만, <쥴 앤 짐>이 상영작으로 최종 결정되었을 때 사뭇 걱정되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올해 '2008 시네마테크와 친구들'을 통해 이미 <쥴 앤 짐>을 극장에서 관람했었고, 그 때의 느낌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는데, 결론적으로는 2번째 관람이라서,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씨네토크 '모모의 수다'시간에 관객 여러분들이 주셨던 많은 의견들을 통해 좀 더 영화를
이해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쥴 앤 짐>을 감상했을 때에는 단순히 까트린느라는 여성을 2008년 현실에 대입시켜보더라도 상당히 도발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자유스런 여성이다 라는 것 이외에는 큰 인상이 남지 않았었는데(물론 그 유명한 장면인, 다리 위에서
쥴과 짐과 까트린느가 달리기를 하는 장면은 정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었죠), 이번 상영회에서 다시 감상을 하고 나니
여러가지 처음 볼 때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 영화가 자유로운 여성이었던 '까트린느'를 숭배하거나 조명했던 영화가 아니라, 남성인 '쥴'의 시점에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이며, 마지막 '그녀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결국 까트린느의 자유로운 삶은 그렇게 보였던 것 뿐이지, 실상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쥴에게 그리고 세상에게는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남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여성의 영화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쥴 앤 짐>이라는 영화에 100% 공감이나 이해를 하지는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 대해
평소처럼 구체적이거나 개인적 감상기를 적극적으로 써볼 엄두가 나질 않네요. 그래서 내용적인것 외에 영화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카메라 워크나 쇼트가 상당히 과감하고 실험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봐도 상당히 과감한 카메라 워크를 볼 수 있었는데, 인물들의 얼굴을 과감하게 클로즈업으로 빠르게 잡는 다던가,
반대로 빠질 때도 상당히 빠르게 빠져나오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고, 화면 분할에 가까운 쇼트들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더군요. 기차역이나 쥴의 시골 집을 고공에서 촬영한 장면들도 세련되게
느껴졌구요. 개인적으로는 네 명이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도 상당히 세련되게 연출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장면을 보니 영화 속에서 대부분 주인공이 자전거 타는 장면들은 행복한 분위기로 연출되는 것 같아,
영화 속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주제로 하여 포스팅을 계획 중입니다 ^^).
그리고 곡선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상당히 의도적으로 반복 노출이 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구요.




제 1회 상영회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번에 영화가 끝난 뒤 씨네토크를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이 행사의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쥴 앤 짐>이라는 영화가 상당히 유명한 영화이고 프랑소와 트뤼포라는 거장의 고전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최근 관객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었기 때문에, 1회 상영회 때 보다는
소극적이고 내용면에서도 조금 부족한 씨네토크가 되지 않을까 주제 넘게 생각도 해보았지만, ........
이런 걱정은 정말 '주제 넘은' '틀린 예상'이었습니다.

1회 씨네토크 보다도 좀 더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켜주셔서 일단 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을 시작으로,
조심스레 한분 한분 말씀을 이어가는데, 정말 한분 한분 자신만의 <쥴 앤 짐>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감탄 또 감탄을
할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참여하고 있는 이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가 가장 내세울 만한 장점은
바로 이 '씨네토크'시간이라고 주저없이 얘기할 수 있을 듯 한데, 영화에 관련된 감독도 배우도 없지만 관객들끼리
서로 부담없는 분위기에서 자신 만이 느낀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는 이 시간에서, 저는 정말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보통 <쥴 앤 짐>정도 고전 영화에 대한 씨네토크라면 일반적으로는 예우를 지키거나, 아니면 그 제목과 감독의 이름에
눌려 자신의 감상기를 스스로 검열아닌 검열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게 되는데(뭐 전부 그런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다들
엄청난 명작이다, 과연 프랑소와 트뤼포다 라고 시작하게 되면 '난 별로다'라고 얘기하기가 쉬운게 아니거든요),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에서는 이런 분위기 없이 매우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번 씨네토크가 1회 씨네토크보다 더 좋았던 것은 <쥴 앤 짐>이라는 영화를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신 분들,
그리고 이 영화가 흑백영화인지도 몰랐던 분들도 영화가 끝난 뒤 씨네토크 자리에 남아 자신만의 의견을 말씀해주신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좋았다는 의견들 외에도 '나는 좀 달랐다', '나는 졸면서 봤는데,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전혀 모르고 봤는데, 씨네토크를 통해 어느 정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등등 다양한 의견을 서슴없이 말씀해주셔서
감동(?)스럽기 까지 하더라구요 ^^; 정말로 이번 씨네토크에 함께 참여하게되면서 미약하지만 이 행사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기존의 씨네토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스럽고 굉장히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관객들 스스로가 궁금한 점을 질문도 하고 답변도 해주는 분위기는 오히려 일반적인 GV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죠. 이번 2회 상영회를 통해 12월 말에 있을 3회 상영회와 씨네토크 시간을 벌써부터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관객분들과 블로거 분들이 만들어주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씨네토크' 시간 때문에 더더욱 좀 더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겠다는 반성이 들더군요. 씨네토크의 시작과 끝 마무리가 조금 어색하게 진행되곤 했는데, 이 부분은
의견 조율을 통해 좀 더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12월에 있을 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정기 상영회에서 또 다른 새로운 영화와 새로운 씨네토크로 여러분을
만나길 기다리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래의 씨네아트 홈페이지 링크 주소를 따라가시면, 이번 상영회의 후기 관련한 이벤트가 진행중이니
상영회에 참여하신 분들께서는 감상기를 트랙백으로 보내주세요~

http://www.cineart.co.kr/wp/event/view.php?vid=530&jes=on&page=1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2008)
고혹적 아름다움의 러브 스토리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은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던 흔치 않은 스웨덴 영화였습니다.
시사회를 통한 평론가들의 별점 평가에서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받기도 했고, 많은 영화팬들이 평점을 비교할 때
많이 찾는 사이트 중 하나인 로튼토마토에서 100점 만점을 기록했다는 말들은, 이 영화가 헐리웃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평가들이었습니다. 특히나 로튼토마토 100점 만점이라는 것은 그 '신선도'가 신선하다 못해
생소하다는 것인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평가들이 결코 크게 오버된 것들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더군요.
알려졌다시피 <렛 미 인>은 뱀파이어 소녀(여기엔 소녀라고 썼지만 이후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와 따돌림 당하는
인간 소년의 애틋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데, 이 둘이 서로에게 표현하는 대사나 몸짓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이 둘을 둘러싸고 있는 스웨덴 북부 도시의 눈덮인 고요한 풍광이 또한 너무 아름답더군요.
앞으로는 스포일러가 가득 담긴 글이 될테니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요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서는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수작이었으며, 아마도 <판의 미로>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장면과 캐릭터의 표정들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 같네요.



(이 후로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과감히 맨 마지막 문단으로
이동해 주세요~)





12살 소년인 주인공 오스칼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살고 있고, 아버지와는 가끔 만나며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른바 '왕따' 소년입니다. 대부분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의 특징처럼 오스칼 역시 계속 괴롭힘을
당하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앞에서는 반항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집 앞 정글짐 앞에서나 나무에 대고 칼로 자신을 괴롭힌
친구를 상상하며 소심하게 욕구를 분출하는 외로운 소년이죠.
이 외로운 소년의 옆 집에 어느날 누군가 이사를 오게 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이사온 이엘리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
눈이 깊게 덮힌 추운 날씨임에도 맨발과 반팔 차림으로 나타난 이엘리와 오스칼은 조금씩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따돌림 당하고 친구 하나 없이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오스칼은,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이엘리 이지만 처음으로 자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서 받아들이고 빠르게 이엘리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엘리 역시 뱀파이어로서
아버지로 보이는 (계속해서 '아버지로 보이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극중에서 이 인물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원작을 보니 성도착자에 가깝게 그려졌다고 하는데, 영화에서 역시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약간
애정 관계에 있는 듯도 하고, 100% 명확하지는 않거든요;;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이 남자 역시 한 때는 오스칼 같은 소년이었고, 오스칼 역시 미래에는 이 남자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남자가 인간들을 죽이고
가져오는 피로 계속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외로운 삶 속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오스칼에게 깊은 애정을 갖게 되구요. 이렇게 지금까지 외로운 삶 속에 놓여있던 이 두 존재는, 처음으로 서로를
나눌 만한 존재가 등장했다는 생각에 그 어느 친구들간의 우정이나, 그 어느 연인들 간의 애정보다도,
서로에게 헌신적인 존재가 되려합니다.




여기서 이엘리가 과연 남성인가 여성인가, 혹은 중성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아무래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일부 대사를
통해 '소녀'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는 이 둘의 관계를 단순히 남녀 간의
로맨스로만 본다면 영화를 반 밖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특히 오스칼이 이엘리는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단순히 '여자친구'로 의식했다기 보다는(물론 대사에는 '여자친구가 되어줄래?'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단순한 우정이나 사랑을 초월한, 서로간의 존재로서 존재를 느끼고 의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됩니다.

이엘리 역시 처음에는 단순히 오스칼이 '여자친구'이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 '여자친구'가 되려하지 않지만, 오스칼이 말하는
'여자친구'가 되어도 지금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다는 말을 듣고는 오스칼이 원하는 '여자친구'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죠.
사실 이엘리가 오스칼에게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들키게 된 이후에, 오스칼에 행동들은 약간은 클리셰에 가까운 행동들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스칼이 12세 소년이라는 점에서 아직 불완전한 소년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뱀파이어라는 것 까지는 알지 못했던 오스칼은,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잠깐 놀라긴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무관심과 외로움을 느낀 다음에는 바로 이엘리에게 달려가게 되죠.
이 이후에 초대받지 못한채 오스칼에 방에 들어오게 된 이엘리가 온몸으로 피를 쏟아내는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걸
보게 되면서, 오스칼 역시 완전히 이엘리의 존재를(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더 이상 크게 중요하게 되지 않은거죠)
받아들이게 되죠. 이렇게 외롭게 지내던 두 아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이야기를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고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 냅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약간에 몫을 한 것 같구요. 스웨덴어가 주는 발음의 느낌도 이 이야기를 더욱 동화스럽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것 같네요.




이 영화는 뱀파이어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뱀파이어 만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제법 여러 번 등장합니다. 특히 병원 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이라던가, 이엘리에게 물린
여자가 결국엔 햇빛에 노출되어 불에 타 죽고 마는 장면, 그리고 높은 곳에서 뚝뚝 떨어져서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 등도 뱀파이어라는 인물에 특성에 맞는, 즉 과도하지 않으면서도(이 영화가 본격적인 뱀파이어 영화로 보기는 조금
힘들테니 말이죠. 그래서 더 좋았지만요;), 뱀파이어의 특성은 잘 살리고 있는 정도로 장면의 묘사들이 이루어진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더욱 슬픈 분위기로 흐르거나, 가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이끌어가도록 만드는 것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기사에서 본 것처럼 이 영화는 음악이 전혀 없다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만큼 멋진 풍광과 절제된
대사 만으로도 분위기를 구성할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확실히 음악이 좀 더 극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긴 합니다.
특히 공포스러운 부분에서는 음악이 상당히 공포스러운 장면이 곧 나올것이다 라는 암시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15세 관람가여서 그런것인지, 관객들에게 미리 준비하라는 사인을 계속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이나 마지막에도 흐르던 그 음악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판의 미로>에서 등장했던 그 테마 음악처럼
그 음악을 듣게 되면 오스칼과 이엘리를 자연스레 떠올릴 만큼, 시종일관 슬픈 사랑이야기를 잔잔하게 강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렛 미 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단 한번 만이라도 내가 되어봐'라는 대사처럼,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마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소년.소녀가 아니라 어른들이었다면 아마도 뱀파이어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인간이 되려하고,
인간은 사랑하는 뱀파이어를 위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려고 했었겠지만,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오스칼과
이엘리에게는 이런 복잡한 계산이 아예 없었던 것이죠.
이엘리는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뱀파이어로서의 모습을 오스칼이 바로 보는 앞에서 노출하기도 했고,
오스칼 역시 이런 이엘리에 모습에 어른만큼 크게 놀라거나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는 거죠. 아마도 어른들이었다면
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 나를 더이상 만나지 않으려 하겠지 라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상당한 시간과 고민이 수반되었겠지만, 이엘리는 아주 순수하게 '그래, 오스칼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나의 진정한 모습도
다 이해해주겠지'하는 단순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 마음이 결국은 오스칼에게도 진심으로 통하게 된 것이구요.
어느 한 편만 이런 순수함을 갖고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로 끝이 나버렸겠지만, 둘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렛 미 인>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분위기 상으로는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슬프다'라고 생각하는 건 제 3자의 시각일 뿐, 오스칼과 이엘리는 계속 함께 하게 되었으니
'행복한'이야기라고 해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되었다 라는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여기에 '그렇다면 이엘리의 생존을 위해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 그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고
묻기 시작하면 이 이야기는 끝이 없어요 --; <렛 미 인>은 여기에 포인트를 준 영화는 아니니깐요;;;).




벌써부터 <렛 미 인>의 헐리웃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아마도 헐리웃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더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감수성은 절대 다 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많은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언정,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이 남긴 깊은 인상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죠.

스웨덴의 눈 덮인 밤의 정취는 공포스럽기 보다는 참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느껴지더군요(물론 이 영화가 본격적인 공포
영화였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수영장 씬과 검은 밤하늘에 눈발이 휘날리는 장면들은
영화적으로도 매우 멋진 장면이었던 것 같구요(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상당히 멋진 장면과 구도가 등장합니다).

개봉관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더 많은 분들이 이 신선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 스웨덴 학교는 참 부럽더군요. 수업시간에 톨킨을 읽어주다니(빌보가 탈출했다고 한걸로 봐서는 '반지의 제왕'보다는
   '호빗'인 것 같더군요).

2. 고양이들의 성내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CG가 사용된 것 같더군요. 좀 티가 나긴 하더라는;

3. 오스칼에 그 표정과 빛나는 금발 때문에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연상되기도.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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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 (重慶, 2007)
한계를 마주하다


재중동포 출신으로 <망종> <경계>등을 연출했던 장률 감독의 작품 <중경>.
사실 <망종>이나 <경계>등을 입소문을 통해 듣기는 했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영화를 접하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 <중경>이 저에게는 장률 감독과의 본격적인 첫 만남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감상기를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한줄 감상평에 '흑먼지를 잔뜩 마신 기분이다'라는 말을 본 것 같은데, 저 역시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별다른 움직임이나 소란스러움없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공포와 어두운 현실을 더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 감상기에는 여러 번 영화 홍보를 위해 만든 문구들에 대한 느낌이 등장하곤 하는데, <중경>의 홍보문구는 영화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리없는 폭발을 향해 달려가는 도시'

이 문구는 크게 멋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영화의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이번 주 개봉할 장률 감독의 작품 <이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가 본래 하나의 영화로
기회되었을 만큼 (아마도)많은 부분에서 <중경>의 이야기가 <이리>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중경>에서는
이런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이리'에 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삽입됩니다.
바로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리를 잃은 한국인 캐릭터가 <중경>에 등장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지금은
'익산'이 되어버린 '이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이리로 부터 도망쳐온 '중경'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영화는 여러부분에 있어서 마치 폭발 직전의 느낌을 주고 있는데, 앞서 말한 이리역 폭발사고의 이야기나(지금은 익산으로
불린다는 대사가 반복되는 걸 보면, '이리'라는 지명이 폭발 직전의 불안하고 혼란스런 점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쑤이가 겪게 되는 삶의 변화, 그리고 '중경'이라는 도시가 처한 현실. 이 모두가 살짝 건들기만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듯한 폭발 직전의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극중 쑤이가 겪게 되는 일들과 그녀의 행동들이 한편으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중경이라는 도시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삭막함으로 보자면 그녀의 행동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얼핏보면 쑤이의 행동은 단순히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후 그녀의 행동들을 보면 점차 그녀
스스로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죽은 자를 부러워 할 정도로 이미 다들
죽어있는 도시인 중경이라는 공간에서, 쑤이는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중경에게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른 것 없는 중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며, 결국은 모든 것을 그저 인정할 수 밖에는 없는 이들을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더 극적인 영화적 요소가 가미된 일반적인 작품이라면, 이런 도시에서 이에 지배당하지 않기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장률 감독의 시선에는 이러한 희망적 메시지보다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움과 '이미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라는 식의 경고와 안타까움이 더욱 느껴집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경'의 모습은 시작부터 이미 한계를 마주한 모습입니다. 한계에 달한 도시는 이미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스러져가고, 영화는 그 안에서 '쑤이'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담히 보여줄 뿐인거죠.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마도 중경에는 쑤이보다 더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장률 감독의 이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리>로 이어집니다.
<이리>는 이번 주 개봉 예정인데,
글쎄요, <중경>보다는 덜 힘들게 볼 수 있을런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드는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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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ピアノの森, 2007)
클래식으로 풀어낸 두 아이의 우정


오랜만에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나고 왔습니다. 국내에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제작했던 '매드하우스'의 작품임을
강조하는 홍보가 강했는데, 이런 면에서 만약 <시달소>를 염두에 두고 극장을 찾게 된다면 이 영화 <피아노의 숲>에는
적잖이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달소>의 경우가 소녀의 풋풋한 감성과 소녀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라면, <피아노의 숲>은 '소년'이라기 보다는 '아이'에 가까운 두 남자 아이가
피아노와 음악을 통해 우정을 키워나가고 조금씩 자신과 주변을 알아가게 되는 내용으로, 전자보다는 좀 더 아동용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아동용'이라는 표현을 마치 작품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아동용이란 말 그래도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절한 영화라는 그 본 의미로 쓰인 것이며, 사실 제대로 된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돋보이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클리셰의 향연이랄까요. 만약 이런 음악가나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과정과 결말을 미리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연주회 부분이나 그 이후에 방향을 보면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많이 비슷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뭐 이건 '노다메'의 전유물이라기 보다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클리셰라고 봐야겠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사실 이야기가 새로울 것이 없어서 굳이 스포일러까지 될까
싶기도 하지만서도), 그렇다면 <피아노의 숲>이 이렇게 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에도 나름 괜찮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뻔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느냐 하는 것에 있을텐데, 일단은 이런
일반적인 흐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더나아가 아이들이 볼 때에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더 컸을 때 비슷한 류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아, 맞어, 예전에 보았던
만화에서 비슷한 걸 보았었는데'하는 기억이 날 정도로 은연 중에 교훈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 피아노 연주와 클래식 음악을 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사진을 보고는 '얘는 누구야?' '쟤는 또 누구고?'하고 얘기하던 주인공 카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점차 얼마나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관심있게 봐야할 장면들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답게
클래식 전문 작품이 아님에도 음악적인 기본기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작은 장면들도 놓치기 아쉬운 장면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나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타고난 천재와 노력파를 각각 그리면서, 이 둘을 갈등을 모두 다
제법 깊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처럼 이런 관계에 대한 묘사는 여러번
있어왔던 것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맞게 아주 심오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정곡은 제대로 찌르고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나 단순히 천재 소년의 놀라운 능력에만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끊임없이 노력해도 천재적인 친구를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을 몸소 체험하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가볍지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동용 작품이라면 아마도 단순히 천재소년에만 집중했겠죠. 그래서 <피아노의 숲>이 오히려 참 교훈적이라는
얘깁니다. 이런 관계를 그리면서도 어느 한쪽을 악당으로 몰아세우지 않고, 각자의 입장이 다 이해되도록 그려내는 점
말이죠).




이 두 아이의 이야기 가운데 선생님의 '어른'이야기가 잠시 끼어드는데, 제가 보았을 땐 끼어들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한 범위 내에서만 참여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더 끼어들었으면 자칫 이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가 있는 이 어른의 이야기로 흘러갈 수도 있었고, 아이들 관객들이 보기에도 어려워질 수 있었으나 그 아슬아슬한
범위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죠.

그리고 리뷰 내 스틸컷은 삽입하지 않았지만 이 두 남자 아이 외에 피아노 콩쿨에 참여하는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후반 부에 등장하는데, 재미면에서 보나 내용면에서보나 이 여자 아이의 등장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너무 뻔한 이야기로만 흐를 수도 있는 과정 속에서 약간의 긴장을 주었고, 개그와 아련함이 적절히 섞인
독특한 시퀀스로 또 다른 메시지를 들려준 것 같기도 하구요.
원작인 만화에서는 영화 속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준다고 하는데, 이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전개가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목소리 연기로 우에토 아야와 이케와키 치즈루가 참여하고 있는데, 이케와키 치즈루의 경우 좋아하는 배우이긴 하지만,
워낙에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져들다보니 그녀의 목소리를 특별히 인지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제게 아이가 있다면 요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줄 것 같아요. 교훈적이기도 하고 많이 어렵지도 않으면서,
음악이나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에도 충분한 작품이니 말이죠.
아마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아이들은(실제로도 제가 본 극장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집에 갈 때 피아노 사달라고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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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카지노 로얄의 속편으로'만' 보자


오랜만에 개봉일에 영화를 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만큼 007의 22번째 시리즈인 <퀀텀 오브 솔러스>는 초기대작은
아니더라도 나름 전통의 시리즈로서,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워낙에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으로서 기대작이었으며,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개봉일날 다른 영화들을 재쳐두고(사실 뚜렷한 경쟁작이 없기도 합니다만;;)극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것 처럼 전편인 <카지노 로얄>의 이야기에서 불과 1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007시리즈가 각각 다 개별적으로 에피소드를 풀어냈던 것을 보자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더군다나 감독도 교체되었는데 말이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목을
<007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할 것이 아니라, <007 카지노 로얄 - 퀀텀 오브 솔러스>라고 부제로 달던가 아니면 제목의 비중상
카지노 로얄 보다는 퀀텀 오브 솔러스가 더 큰 범주라고 할 수 있을테니, 마치 매트릭스 3부작의 제목들처럼
<007 퀀텀 오브 솔러스 - ******> 뭐 이런 식으로 했으면 더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 이어지는 속편 성향에 007이 제작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전편인 <카지노 로얄>을 최근에 보았거나 아니면 극장에서 인상 깊게 보고 DVD나 블루레이를 통해 재차 감상한 이들에게는
조금 덜했겠지만, 전작을 보지 않았거나 어렴풋한 기억만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사실상 전편의 이야기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인물들과 이야기가 가득해, 영화를 100% 즐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 속에서 계속 '베스퍼'가
등장하는데 전편을 안본 사람이라면 이게 누구인지 제목에 '퀀텀'보다도 더 궁금할 것이고, 중간 중간 익숙한 척하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히스토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몰입도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아예 제목에서부터 속편임을 강조하고
들어갔다면 관객들이 스스로 복습을 한다던가 아니면 준비를 한다거나 했을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 일단 일반 관객들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카지노 로얄>을 인상깊게 보고 블루레이의 놀라운 화질로 다시 한번
감상한 경우였기 때문에 괜찮긴 했지만 말이죠.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007 이야기가 3부작 형식으로 다음 작품까지 이어진다면,
그리고 마지막 작품에 해당할 다음 007 영화가 <본 얼티메이텀>처럼 대박을 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이럴 경우엔 어느 정도 전편에 해당하는 실망스런 한 두편의 시리즈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그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론
나쁘지 않았어', '그래, 중간에 약간 쉬어가는 분위기였군'하며 나름 세뇌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현재로서의 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말이 많은 오프닝 시퀀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작인 <카지노 로얄>의 오프닝 시퀀스는
새로운 시대의 본드를 설명하는데 매우 탁월하고 임팩트 넘쳤던 오프닝이었습니다. 깔끔한 비주얼과 동시에(블루레이의
화질은 그야말로 작살이죠), 크리스 코넬(잘 아시다시피 '사운드 가든'의 보컬이었고, 해체뒤에는 'R.A.T.M'의 멤버들과
'오디오슬레이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솔로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였죠)의 인상 깊은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오프닝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고 시작한 경우가 바로 <카지노 로얄>이었습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의 경우는 시작 전 부터 말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Stripes)'의 잭 화이트가
곡을 맡았으며, 그와 알리시아 키스가 듀엣으로 노래를 했는데 전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 때문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잭 화이트가 만든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곡을 좋아하기도 하고, 알리시아 키스야 워낙에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건조한 사막을 배경으로 찐득하고 이질적인 사운드의 음악과 보컬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봤을 때도 뭐랄까 '이색적'이긴 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고 할까요.
제가 감독이거나 잭 화이트라면 '이거 괜찮은데, 하지만 사람들한테는, 특히나 007 보러온 사람들 한테는 안먹히겠다'하면서
이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더군요. 특히나 전작의 크리스 코넬의 임팩트가 아직도 귀에 선하기 때문에 더욱 손해보는
면도 있었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는 두 뮤지션 모두 좋아하는 이들인데, 이전에 <미션 임파서블 3>의 메인테마송을 맡았다가 자신의 경력에
오점 아닌 오점을 남긴 칸예 웨스트 처럼, 이번 오프닝 테마곡이 이 둘에게 앞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듯 합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가 가장 우려되었던 점은 오프닝도, 본드 걸도 아닌 감독인 마크  포스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는 <연을 쫓는 아이> <네버랜드를 찾아서> <몬스터 볼>등 드라마에 장점을 보인
감독이지 액션 영화는 단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는 감독이었거든요(전 저 중에서 <네버랜드를 찾아서>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감독이 다른 영화도 아니고 007의 감독이라. 더군다나 전편에서 다른 본드들과는 달리 '제이슨 본'급으로
액션이 상향 조정된 본드의 감독이라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죠.
결과를 놓고 보자면 확실히 아쉬운 면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핸디캡을 너무 의식했는지 액션을(말그대로 시퀀스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크게 한숨 돌리게 되는)여러차례 감행하고는 있는데, 일단 편집이 너무 급한 감이 있어서 정신을
못차리게 되는 것은 맞지만, 액션의 화려함과 숨막힐 듯한 긴장 구조 때문이 아니라 정신없는 편집 때문에 그리 된다는 것이죠.
예고편에서 본드와 적이 함께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쫓아 떨어지는 장면이라던가, 몇몇 장면에서 카메라가
거의 인물의 시선과 같은 입장에서 이동하는 멋진 샷들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평범함을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퀀텀 오브 솔러스>역시 전작의 본드처럼 다니엘 크레이그는 본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는데,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작보다 이를 더 강조하려는 듯 창문이나 벽 등을 더 많이 부수고 떨어지고 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이런 액션들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의미없는 장면들이라고 할까요. 스토리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나 마크 포스터도 이 정도 액션이 가능하다구!'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애스턴 마틴의 자동차 액션씬과 비행기 액션씬도 등장하는데, 비행기 액션씬은 나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주인공이 탄 비행기라 그런지 어지간히 맞았는데도 폭발하거나 추락하지 않더군요 @@)




확실히 본드는 냉전의 산물이자 총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007은 혼란을 겪는 모습이
역력하거든요. 이렇다할 뚜렷한 적이 없다보니 이번엔 돈으로 무장한 사업가가 그 반대편에 서게 되는데 아무래도 007 무비
에서는 임팩트가 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선과 악의 경계가 미묘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새로울 것도 없고 본드에게는 그리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서 그런지 몰라도 악역의 임팩트가 그리 강하질 못합니다. 정말로 악하다기 보다는
그저 '사장'이상의 포스를 주지는 못하거든요. 악당 '그린' 역할을 맡은 매티유 아멜릭은 <잠수종과 나비>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배우이며, 다니엘 크레이그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뮌헨>에서도 괜찮은 캐릭터를 연기했었는데,
확실히 이런 두목 역할과 그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카지노 로얄>처럼 선액션, 후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무리가 어정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같은 MI6 요원들 3~4명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던 본드가 아무리 미리 몇 대
맞았기로서니 고작 '회사 사장'과 막판 듀얼을 펼쳐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호텔에서의
액션들도 전체적으로 너무 급작스럽고 임팩트가 부족하게 느껴졌구요. 그렇다고 그 이후에 짧은 드라마에도 전작에 비해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연기하는 본드도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드는 본래 느글느글하고 여유롭고 바람둥이다 라는 것이 기본적이긴 하지만, 뭐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의
본드는 그렇게 되기 전 본드이니 이런 점에서는 자유로운 것 같구요. 역대 어느 본드들과 비교하여도 쉽게 뒤지지 않는 그의
수트 입은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움찔하게 되며, 최초의 금발 본드이지만 흑발 본드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그는 제임스 본드에 많이 적응된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역대 본드들 가운데 가장 스턴트 액션이 많고 과격해지다보니
수트는 항상 더러워지고 얼굴은 더 더러워지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델 워킹으로 사막을 걷는 것이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본드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에서 다음 007 영화에 그가 더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은 실로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1~2편 더 정도는 그가 본드로 출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드하면 본드 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카밀'역할로 출연한 올가 쿠리렌코는 기존 본드걸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렇다할 노출이나 배드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액션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것도 아닌데(어느 정도
가담하기는 하죠;), 그 갈색 피부와 검은 머리는 마치 일종의 코스츔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코스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초반 부두가에서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과 헤어를 보니 마치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주인공인
'나디아'가 절로 떠오르더라구요.


(더 나디아 스럽게 나온 풀샷 사진을 찾아보려 했는데 도무지 없군요;;;)

여튼 얼핏 들으면 어디 동유럽에 테니스 스타 이름 같은 올가 쿠리렌코의 다음 영화도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들어 조금은 아쉬웠던 22번째 007 영화였습니다.
약한 악당, 모호한 구조, 1편의 연장, 심심한 액션 등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으로서 과연 다음 007 영화의 행보는 어찌될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감독은 누가 맡게 될지.
다니엘 크레이그는 계속 본드로 남게 될지. 이야기는 3부작의 마지막 형식을 띄게 될지 등등 말이죠.



1. 여러 전작 007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가 등장합니다.

2. 오페라 '토스카'가 등장하는 장면 또한 일종의 오마쥬였는데, 이 장면은 나름 멋지더군요

3. 악당이 손에 넣으려는 것이 '석유'가 아닌 '그것'이었다는 점이, 21세기 답게 느껴지면서 씁쓸해 지더군요.

4. 본드가 한 번 휙 눈치보고 자동차를 훔쳐타는 장면을 보니 '저거 너무 쿨한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우습게
   보이더군요 ㅋ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MGM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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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Control, 2007)
흔들리는 청춘. 그리고 이언 커티스.

안톤 코르빈의 첫 장편 데뷔작인 <컨트롤>은 밴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보컬로, 23세에 짧은 인생을 살다간
이언 커티스(Ian Curtis)에 관한 영화입니다. 롤링 스톤스, U2, 메탈리카 등 밴드들의 사진과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오던
안톤 코르빈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자신이 실제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던('Atmosphere')
조이 디비전의 이야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언 커티스'에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라
해야겠군요. 사실 뮤직비디오 연출을 주로 해오던 감독의 데뷔작을 소개하면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감성적인 영상이
돋보인다'식의 표현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따져보면 단순히 그것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을
감안했을 때, 같은 경력을 같고 있는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서의 장점은 장점대로
다 보여주면서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울림과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연출함에 있어서도
리듬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밴드 '조이 디비전'이 아니라, 청년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밴드의 결성과 공연, 음반 계약과 갈등 등 록 밴드를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주는 듯도 하지만,
이는 이야기 진행을 위한 도구 그 이상으로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시종일관 흐르지만
'밴드' 조이 디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시선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언 커티스를 제외한 다른 밴드 멤버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밴드 조이 디비전에 관한 영화가 이미 존재하기도 했고(같은 해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조이 디비전>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답게 실제 공연 영상과 인터뷰 영상들이 수록된 작품이며,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은 <컨트롤>에도 등장하는 팩토리 레이블과 토니 윌슨을 중심으로
당시의 클럽 풍경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밴드의 흥망성쇠를 주요 뼈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조이 디비전'보다 '이언 커티스'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긴 이언 커티스라는 인물이 워낙에 짧은 생을 살다가 불꽃처럼 산화해버린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밴드가 아닌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단순히 음악 영화로 그려지기 보다는 더 포괄적인
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짐 모리슨처럼 시를 쓰기를 좋아하고(영화 장면에도 나오지만 실제 이언 커티스는 짐 모리슨과 데이빗 보위를
동경했었죠), 무대 위에서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언 커티스이지만,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그가
음악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뮤지션인가 하는 궁금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컨트롤>에 등장하는 이언 커티스의
모습에서는 흔히 이런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만이 나를 살게 한다'식의 느낌은
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뭐랄까요. 아직 어린 그의 나이처럼, 아직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낮에는 직업 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열아홉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딸을 갖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등, 그저 혼란스럽고 컨트롤되지 않는 청춘이 엿보일 뿐이죠.




그런 면에 있어서 <컨트롤>의 흑백 화면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사실 몇몇 흑백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흑백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적인 컬러 영화들 보다도 오히려 더 조명에 신경을
써야하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컨트롤>의 흑백영상은 방황하는 이언 커티스의 삶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인 안톤 코르빈은 이를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여러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7,80년대 당시 맨체스터의 거리를 재현한 장면은 흑백이어서 더욱 돋보이는 장면이었고,
공연 장면은 마치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보는 듯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근데 재밌는건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를 본 건 컬러 버전이었다는 점이죠;).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보면서 속으로 '와!'하고 탄성을 질렀던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그것은 감독인 안톤 코르빈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감독이어서 라기 보다는, 사진작가로서의 그의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영화의 스틸 컷들이나 정지된 장면들을 보면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 기획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정도로, 흑백의 질감이나 조명의 세팅이 놀랍도록 아름답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물론(물론!) 음악도 아주 좋았지만, 흑백의 영상도 음악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영화가 바로 <컨트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컨트롤>은 이언 커티스가 쓴 곡들의 가사들처럼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은 건조한 방식으로 전개가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구성이 아님에도 영화의 마지막 이언 커티스가 결국 자살을 결심하는 장면이
등장했을 때에 달해서는 완전히 그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갑작스러울 수 있었던 그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그래,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하는거야'하는 답답함과 함께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혼란과
제어(Control)되지 않은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공감이 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또 하나 이상했던 것은, 요절한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 가운데 이언 커티스의 경우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유만으로 보자면)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공감을 얻을 만한 부분이 극히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해
더 큰 연민이 느껴지더군요. 영화 <컨트롤>은 실제 이언 커티스의 삶이 어땠느냐를 재쳐두고 보더라도, 전혀 그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담담하고 조용하게 조명하고 있을 뿐이죠.
극적인 감정 묘사보다는 조이 디비전의 음악과 그가 쓴 가사들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데
더 큰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화법이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괴리감을 가져올지 모른다해도,
<컨트롤>과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 사이에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이언 커티스 역할을 맡은 샘 라일리의 연기는 발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이>에서 레이 찰스를 완벽하게 연기한
제이미 폭스와는 또 다르게,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는 얼핏 보면 단순히 이언 커티스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가 조이 디비전의 보컬인 이언 커티스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기에, 
오히려 그의 연기력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고 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 조이 디비전의
라이브 클립을 다시 보아도, <컨트롤>에서 샘 라일리가 보여준 이언 커티스는 실제와는 또 다른 이언 커티스였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영화 팜플렛에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앞서 언급했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hour party people'에 출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하루 속히 이 작품을 눈으로 확인해봐야 겠군요).
샘 라일리의 저 고독한 표정이 짙게 드리워진 <컨트롤>의 포스터는 한 동안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자리잡을 것 같네요.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데보라 커티스 역할을 맡은 사만다 모튼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지자로 출연하였을 때였고, <코드 46>을 보기도 했었지만 전작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었는데 <컨트롤>에서 그녀의 모습은 과연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몸무게가 늘은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마치 <브로크백 마운틴>의 미셸 윌리엄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캐릭터와 연기는, 앞으로 적어도 제 기억속에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녀가 아닌 <컨트롤>의 그녀로
기억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컨트롤>은 샘 라일리라는 배우의 발견이 있었다면(사실 이런 전기 영화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 때문에 배우 자체를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샘 라일리는 다른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사만다 모튼의 재발견 또한 더 큰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대사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워낙에 캐릭터가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억양을 잘 눈치챌 수 없었는데, 영국 출신인
그녀의 독특한 영어 억양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 밖에 더 기억나는 배우를 꼽으라면 '아닉 오노레'역할을 맡은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도 꼽을 수 있겠지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통해 만났었던 조 앤더슨을 더 꼽을 수 있겠네요.




확실히 데이빗 보위,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기 팝, 록시 뮤직 등 이런 류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당시를 그린 영화들은
대부분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대가 한편으론 암울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얼마나 황금기였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처음 <컨트롤>이라는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물론 큰 기대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던 인상적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 첨언하자면, 극중 이언 커티스처럼 불안한 심리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언 커티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던 것처럼, 힘들게 지속해온 오랜 싸움을 그만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거든요.



1. 이 영화는 이언 커티스의 아내인 데보라 커티스가 지은 그의 전기 'Touching from a Distance'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Touching from a Distance'

2. 극중 아닉이 이언에게 무슨 색을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가 '맨시티 블루'라고 하죠. 
   영화에서 가끔 접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맨체스터 내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의 골수팬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3. 영화에 삽입된 대부분이 곡을 배우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더군요. 여기에는 조이 디비전의 전 멤버였던
   뉴 오더(New Order)멤버들의 조언과 도움이 컸다고 하구요.

4. <맘마미아!> 사운드트랙도 어찌어찌 참았었는데, <컨트롤> 사운드트랙은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이런 음악을 워낙해 좋아해서 말이죠.

5. 영화 속에서 조이 디비전의 공연 전에 밥 딜런을 닮은 한 사람이 나와서 랩에 가까운 이상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John Cooper Clarke라는 펑크시인이더군요. 이 분은 실제로 맨체스터 지방에서 당시부터 유명한
   펑크시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조이 디비전 공연에 서포팅 공연을 하기도 했더군요. 영화에 등장하는 이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John Cooper Clarke 본인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John Cooper Clarke

6. 실제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언 커티스의 보컬도 인상적이지만, 피터 후크의 베이스 라인이 상당히
인상적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 요새 한동안 이 두 곡만 듣고 있습니다.
 

transmission & she's lost control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Becker International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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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Tokyo!, 2008)
이방인들의 시선으로 본 현대의 도쿄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까락스, 그리고 <괴물>의 봉준호, 이렇게 세 명의 각기 다른
국적을 갖은(국적 뿐 아니라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감독들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옴니버스 영화 <도쿄!>
(영화를 보기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보고 나니 제목의 느낌표는 확실히 의미있는 의도적 기호라고 생각이 더
들더군요. 뭐랄까 그냥 '도쿄'라는 제목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느낌표로나마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왕팬이었던 미셸 공드리는 물론이고, 봉준호 감독 역시 가장 좋아하는
국내 감독 중의 한 명이라 많은 기대를 했던 영화였습니다(그렇다면 레오 까락스는 지금 무시하는거냐? 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 예전에 비디오로 보고 나이먹고 제대로 보려고 dvd는 구매해 두었는데 아직까지 보질 못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좋다 나쁘다 평할 수준이 못되는 것 같아 일단 보류중입니다 ^^;).



(뭐 다들 아시겠지만, 좌측 부터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봉준호 감독. 공드리는 영국의 인기있는 밴드에서 별로 말없는
베이시스트 처럼 나왔고, 레오 까락스는 서극처럼 나왔고, 봉준호는 배우처럼 나왔네요(아, 배우시죠 ㅎ)).

옴니버스 영화 <도쿄!>는 각기 다른 세 명의 감독들을 대상으로, 도쿄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또 로케이션으로
촬영해야 된다는 일종의 조건만 있을 뿐 각 감독들에게 이 범위안에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던
프로젝트입니다(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어지간하면(?) 일본인 현지 스텝들과 작업해야 된다 라는 조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엔딩 크래딧을 보니 몇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일본인 스텝들로 채워져 있더라구요). 
이렇게 한 도시를 배경 혹은 주제로 담아낸 옴니버스 영화는 <사랑해, 파리>가 있었는데, <도쿄!>는 <사랑해, 파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해, 파리>같은 경우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단순히 파리의 아름다운
장소를 배경으로 하거나, 아니면 짧은 러닝타임에도 '파리'라는 도시에 한 번 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면, <도쿄!>는 도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혹 들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간혹일 뿐,
대부분은 부정적인 모습의 도쿄, 더 나아가 일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본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프로듀서의 생각이나 의도가 이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명의 감독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이런 분위기의 작품들을 만든 것도 놀랍지만, 이런 작품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제작자(일본인)의
입장도 대단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키라와 히로코 (Interior Design) - 미셸 공드리

가장 첫 번째로 만나보게 되는 영화는 공드리의 <아키라와 히로코>입니다. 홋카이도에서 영화작가를 꿈꾸는 애인을 따라
도쿄로 상경한 히로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처음 히로코는 친한 친구의 집에서 애인과 함께 신세를 지며
방도 알아보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친구와 애인에게 점차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점차 의문을 갖게 됩니다. 도쿄를 배경으로 일본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지만, 공드리의 영화는 역시,
공드리스럽습니다. 사실 그가 만든 <이터널 선샤인>은 제 인생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제 인생 최고의
감독이냐 묻느냐면 또 그렇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후 만들었던 <수면의 과학>도 그렇고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는 확실히 결여된 부분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놀라운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영상으로 표현해 내는데 기발한 재주를 갖고 있었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공드리는 아직까지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좀 부족한 것이 카우프만 없는 공드리는 그저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 판타지 그 이상의 것으로
전개시키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이번 같은 옴니버스 영화는 그의 부족함을 많이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히로코가 신세를 지게 되는 친구의 집 디자인을 제외한다면 별로 공드리 스러운 부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데, 중반 이후 히로코가 급격하게 변화(그야말로 변화)를 겪게 되면서 단숨에 공드리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터널 선샤인>때도 잘 보여주었지만 그는 상상력을 표현함에 있어 컴퓨터 그래픽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시각효과를 아이디어가 주가 된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하곤 했는데, 이번 <도쿄!>에서도 사실
시각효과 자체의 기술력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굉장히 작품에 잘 녹여내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별로 대단한 효과가 아님에도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것 같구요(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공드리가 느끼는 도쿄 역시 그리 행복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그 속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결국 다른 존재가 되어서야 자신을 찾게 되는
안타까움이랄까요.


1. 츠마부키 사토시가 깜짝 출연하더군요!
2. <구구는 고양이다>에 이어 카세 료의 속옷 차림을 연달아 스크린으로 보게 되는군요;;
3. 극중 히로코가 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에 등장한 컨테이너 형식의 집은, 정말 그런 집이 있나 싶더군요.




광인 (Merde) - 레오 까락스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무거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보았던 이유는 오랜만에
영화를 연출한 레오 까락스도 까락스지만, 그가 드니 라방과 함께 컴백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극중 '하수구 광인'을
연기한 드나 라방의 연기는 정말 그 만이 연기할 수 있는 몸 연기를 선보입니다. 기괴한 얼굴 분장은 그렇다쳐도,
그의 이상한 걸음 걸이와 몸으로 표현하는 동작들을 '하수구 광인'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더 인상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정체 불명의 언어라는 점인데, 이게 만약 레오 까락스와 드니 라방이
아니라, 김병욱과 박영규 였다면 누가봐도 코미디로 느꼈을 만큼 이상함을 넘어선 코미디이지만, 그들이기에 쉽게
웃게 되질 않습니다.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그 야욕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수구 광인의 이상한 말들도 무언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의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앞서 이렇게 도쿄나 일본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어찌 '도쿄'라는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수용할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레오 까락스의 <광인>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광인은 하수구 밖으로
나와 도심을 활보하며 시민들을 괴롭히고 급기야 대형 살인사건마저 벌이게 되는데, <도쿄>라는 프로젝트에 초대받아서
이런 영화를 만든 레오 까락스나 이걸 수용한 프로듀서나 다 대단한듯 싶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히 이 이상한 광인에
행동에 집중하는 듯 했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런 행동들을 했는지에 관해 들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묘사되고 있는데, 마지막에는 한 술 더 떠서
미국까지 걸고 넘어지는 레오 까락스의 재치는 살짝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극장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했었고, 다른 기사들을 보니 코미디 적인 면을 강조한 평들도
보이던데, 저는 확실히 영화를 좀 많이 진지하게만 보는건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 포인트가 된 그 장면들조차
다 비유나 은유로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살짝 극장의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제 웃음 코드는
대중들과는 동 떨어지는 '광인'일지도 모르겠네요 윽.


1. 우리나라에서 '서울'을 주제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드는데 왠 유럽 감독이 서울서 폭탄테러 벌이는 영화를 만든다면
   절대 허가하지 않았겠죠.
2. 하수구 속 장면 가운데 긴 계단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트인지 실제 장소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도쿄 (Shaking Tokyo) - 봉준호

앞선 두 작품이 각각 다른 이유로 워낙에 판타지스럽다보니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는 가장 보편적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가 된지도 제법 오래 되었고, 국내에서도 TV를 통해 접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히키코모리 자체에서 오는 신선함은 없지만,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도쿄>는 숨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있는 봉준호 감독 영화다운 느낌도 들지만, 한 편으론 정적과
빛의 사용에 있어 상당히 일본영화 같은 느낌도 받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본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겠네요. 히키코모리 역할을 맡은 카가와 테루유키는 필름 2.0 지난호 기사를 보니
봉준호 감독의 엄청난 팬인 것을 알 수 있었는데(참고로 그는 봉준호 감독 연출에 송강호와 함께 영화를 찍게 되면
당장이라도 배우를 관둬도 여한이 없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ㅎ), 히키코모리 라는 것 자체가 워낙에 일본적인
것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별로 외국 감독이 연출한듯한 느낌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 너무
완벽하게 배우들에게 녹아들었다고나 할까요? 주연을 맡은 카가와 테루유키는 물론, 아오이 유우나 깜짝 출연한
다케나카 나오토 역시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카가와 테루유키가 히키코모리를 완벽하게 연기한다면 아오이 유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를 극대화 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냥 '그 하얀 아이'이렇게 묘사될 만큼 별 대사 없이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장면이 되는 아오이 유우만의 장점이 부각된 영화라고 해야겠네요.
봉테일, 봉준호 감독답게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혼자사는 히키코모리를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한 집 안의 세트라던가, 그가 처음으로 변화를 겪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셸 공드리나 레오 까락스의 작품은 다들 그만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나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는데, 봉준호의 경우 너무 현지화가 잘 된 덕분에 비교적 그만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1. 이병우의 기타 선율은 이번에도 멋졌습니다~

2. 극중 카가와 테루유키가 휴지를 다 쓰고 남은 동그란 종이를 손바닥에 대어 동그란 자국을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괴물>에서 송강호가 마지막에 괴물을 쓰러트릴때 손바닥에 역시 동그란 자국이 남았던 것이 떠올라 혼자
   재미있어 하기도 했습니다 ㅎ

3. 더 혼자만 알아챘던건 어떤 스치듯 지나간 배우를 알아본 것이었는데. 저는 원래 배우 얼굴 알아보는 것에 있어서는
   매우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는, 집에와 확인해본 다음에 맞는 걸 알고 저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갑자기 인물들이 뛰쳐나오는 한 장면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본 기억이
   나더라구요. 얼굴이 거의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채 약 1~2초 정도밖에는 안나오지만 워낙에 좋아하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의 남자 중 한 명인 이발소 주인 역할로
   나왔던 배우였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정말로 그의 필모그래피에 <도쿄!>가 있더라구요(혼자서도
   정말 놀랐음 ;;). 이거야 말로 혹시 아직 안보신 분들 계시다면 한번 찾아보세요. 요건 조금 힘드실 거에요 ^^;



   (바로 이분! 아라카와 요시요시 (YosiYosi Arakawa))

4. 극중 아오이 유우에겐 몸에 문신으로 새긴 버튼이 있는데, 그 버튼 모양이 엑스박스 360의 파워버튼과 똑같이
   생겼더라구요. 후원사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ㅎ

5.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은, 히키코모리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 백수들도 누가 매달 생활비 대주면
   모조리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르죠. 다 돈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듯 --;;




6. 이런 분이 피자 배달 온다면 굳이 히키코모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매번 피자 배달 시켜 먹겠죠 아마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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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오브 라이즈 (Body Of Lies, 2008)
리들리 스콧과 레오, 그리고 마크 스트롱!

<바디 오브 라이즈>는 개봉 전부터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를 모았던 영화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인의 반열에 이미
올랐다 할 수 있는 리들리 스콧이 연출하고 스콜세지의 페르소나가 되면서 매 작품마다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항상 선굵고 무게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러셀 크로우가 출연한 영화였기 때문이었죠.
더군다나 이 작품은 리들리 스캇과 함께 <아메리칸 갱스터> <블랙 호크 다운>등을 만들어온 주요 스텝들이 고스란히
참여하고 있는 영화라 또 한 번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특히 <킹덤 오브 헤븐>과 <디파티드>의 각본을 썼던 윌리암 모나한이
이 작품에도 각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간단히 얘기해보자면, 리들리 스캇이 선사하는 장면 장면의 완성도와 <블랙 호크 다운>에 이어 중동을
실감나게 그리는 그 재주는 여전했지만, 무언가 새로울 것 없이 기존 비슷한 영화들에서 보여주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들리 스캇과 레오 모두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이기에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요.


영화는 CIA 비밀 요원 로저 페리스(디카프리오)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알 살림을 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스릴러라는 장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요원인 로저 페리스는 본국의 상사인
호프만(러셀 크로우)에게 지속적으로 지령을 받아 각종 작전을 지휘하게 되는데, 이 둘의 관계는 이 영화의 주된 관계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현장 요원인 페리스는 어느 정도 선한 의도에서 정보원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작전을 수행하는데 있어
신뢰와 우정을 중시하지만, 호프만은 '전쟁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미국에게 이로운 것을 위해서는
전혀 다른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 냉혈한으로 그려집니다. 여기서 조금 아쉬웠던 건 호프만은 사실상 내용상으로 보면
악역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가족에게 신경쓰고 러셀 크로우의 불어난 체중처럼 날카롭지 못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아주 냉혈한스러운 인상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좀 더 정치적으로 모호한 영화가 되기도
했구요. 인터뷰를 보니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입장을 확실히 하기 보다는 단순히 '상황'을 리얼하게 보여주는데에
좀 더 중점을 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스콜세지의 작품에 연속으로 출연하면서 이제 디카프리오에게
'이제는 연기파 배우다'라고 굳이 재차 말할 필요가 없어졌죠. 생각해보면 최근 디카프리오의 작품들에서 그는 거의 한번도
말끔하게 면도한 채 등장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즉 액션이나 스릴러 등 장르에서 좀 더 거친과 강한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해 왔다는 말도 되겠죠. 로저 페리스를 연기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액션이면 액션, 표정이면 표정 다 수준급
이상이지만 뭔가 계속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전작인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그가
연기했던 '대니 아처'와 여러 부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니 아처보다 페리스는 덜 활발하고 유쾌한
대신 액션이나 무게감을 더 주기는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만족스러웠지만,
이런 비슷한 캐릭터가 한 번 더 반복된다면 그 때 부터는 조금 우려스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러셀 크로우의 경우는 알려진 바와는 달리 거의 조연에 가깝습니다(기존에 홍보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마치 디카프리오 VS
크로우 이런 동등한 대결구도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 물론 몸무게를 20킬로 이상 불렸다는 것처럼 약간은 나태함이
엿보이면서도 악역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그만의 카리스마를 다 담기에는 조금 심심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크로우의 굴욕 장면이 나오는데, 속으로 불쌍하기까지 하더군요 ㅎ).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멋진 배우를 꼽으라면 '하니'(달려라 하니 아니에요 --;)역할을 맡은 마크 스트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얼핏 보면 샤프한 앤디 가르시아를 보는 듯도 하고, 한 편으론 베르바토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마스크를 갖은 그는 이 영화에서 요르단의 정보 국장인 '하니'를 연기하는데 정보국장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어야 할
여유로움과 날카로움, 그리고 무서움을 모두 잘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뒤져보니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
중에 보았던 영화들이 제법 있는데 다들 큰 역할은 아니었는지 그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여튼 시종일관 거친 사막과도 같은 곳에서 항상 양복을 입고 포스를 뿜어주시던 그의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답게 몇몇 장면에서는 스케일이 느껴집니다. 헬기가 동원된 액션 씬도 물론이고 총격씬 같은 경우도
헐리웃에서 아마 마이클 만을 제외한다면 가장 수준 높은 총격 액션 씬을 보여주는 그 답게 리얼한 장면을 선사합니다.
일부 액션씬에서는 카메라를 무려 8대나 동원해서 촬영을 했던데 그 만한 노력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과 그의 팀이라서 이 새로울 것 없는 영화가 어느 정도 볼만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겠으나,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좀 아쉬운 영화라고 해야겠네요.
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감독과 배우의 팬이라 그럭저럭 즐겼지만요~ ^^;



1. 최근 개봉했던 <이글아이>같은 경우도 그렇고, 핸드폰 쓰기 참 무서워지는 세상입니다.
   핸드폰 하나면 모든게 감시 가능하니 말이죠.

2. 중동과 유럽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로케이션 촬영 장면을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3. 엔딩에 흐르는 곡은 'Guns n' Roses'의 'If the World'입니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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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2008)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


개봉 전 부터 제법 화제가 되었던 <미쓰 홍당무>를 오늘 드디어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는지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다시피, 박찬욱 감독 제작작품이라는 점 때문이었죠. 일반관객들에게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작품이다라는 걸 마케팅 측면에서 강조하여 홍보하고(전 근데 아직도
박찬욱 감독이
대중적인 홍보 포인트가 된다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만 느껴집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흥행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박찬욱이라는 감독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전혀 달랐음으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올드보이>보다는 더 박찬욱스럽다고 생각되는데, <올드보이>의 엄청난 성공이 그를 너무 대중적인 감독으로 많은 이들이 오해하도록 만든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ㅎ),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박찬욱 감독이긴 하지만 그 이름 자체가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병기를 드디어
꺼낸다는, 신인 이경미 감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죠.

개인적으로는 처음에는 아주 큰 기대를 가졌었다가 막상 포스터 등이 공개되던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코미디인가 보다,
즉 안면 홍조증이 주가 되는 코미디인가 보다 해서 살짝 기대를 접었었는데, 이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안면 홍조증은
마치 주인공이 안경을 썼다 안썼다 정도의 차이일뿐 그저 캐릭터를 소개하는 하나의
소재일 뿐이더군요.
<미쓰 홍당무>는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캐릭터가 빛나는 영화이며,
 마치 우디 알랜의 영화처럼 수다에서 오
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슬랩스틱
코미디서부터 결국엔 유쾌한 웃음과 씁쓸한 웃음마저
동시에 느껴지는 보석과도 같은 2008년
한국영화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슬랩스틱 코믹연기는 정말 빛이 나더군요. 왠지 '허걱'이란 통신용어를 몸으로
시각화 하는
 느낌이었달까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공효진의 인상적인 표정으로 떡하니 채워져있는 포스터가 인상적인 <미쓰 홍당무>는
정말 리얼한
캐릭터 영화입니다. 일단 공효진이 연기한 주인공 '양미숙'의 캐릭터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이자, 오
랫동안 기다렸던 본격적인 캐릭터랄까요. 안면 홍조증으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붉게
변하는 얼굴 빛을 재쳐두더라도,
그녀의 다양한 표정연기와 표정연기에 가려 도드라지진 않지만 몸을 쓰는
연기에서도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그
 자체로 독보적인 존재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미숙'은 캐릭터 영화의 주인공 답게 마치 히어로 영화의
히어로처럼 의상도 거의 저 회색 코트의 단벌로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양미숙'이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그녀의
대사에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연상
시킬 만큼
(실제로 이경미 감독은 우디 앨런의 영화와 찰리 채플린의 영화 같은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합니다),

속사포 같은 대사들과 굉장히 잡다한 대사들이 가득한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다'라는 것의 미덕은 단순히 그 양이 많아서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그 쓸때 없어 보이는 많은 말들 가운데
(나름) 논리적인 바탕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을텐데, '양미숙'의 말들을 듣다보면 굉장히
많은 말들을 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철저히 양미숙 만의 논리적인 바탕을 깔고 있는
대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바로 그 '잡다함' 때문이었는데, 보통 일반적인
캐릭터의 대사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위해 생략하고 절제했던 말들을 최대한
짜르지 않고 확장한 듯한 대사라고 할까요. 시시콜콜 구차한
것을 다 들먹여가며 남들은 신경쓰던 안쓰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끝내고야 마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공은 공효진씨의 맛깔스런 대사 연기에 있다 해야겠죠.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 올해 한국영화 상반기의 캐릭터였다면, 후반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공효진이 연기한 '양미숙'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양미숙'만으로도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됐을 법한 <미쓰 홍당무>에는 이 외에도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몇몇
더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캐릭터는 신인 배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라는 인물입니다.
극중 이종혁이 연기한 서종철의 딸로 등장하는데, 기존 한국영화에서 교복을 입고 등장하는 학생 캐릭터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우라를 선보입니다(교복입은 학생의 대부분은 침 뱉는 불량 학생 아니면
뭔가 사연있는
아리따운 학생이었죠. 아, <좋지 아니한가>에서 황보라가 연기한 캐릭터는 열외로 해야겠군요.
하지만 이 경우는 학교
보다는 집이 주배경이 된 영화였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군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신인배우 서우의 경우 기존에 몇몇 CF를 통해 코믹함과 세련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배우였는데,
일단은 이렇게 키가 작은 배우인지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극중 공효진과 키 차이가
정말 학생과 선생님처럼
나는걸 보고는 처음엔 일종의 카메라 페이크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풀샷을 보니
아니더라구요;), CF 속에서의 진한
화장을 한 모습만 보았던터라 이렇게 화장기 하나 없고 오히려 주근깨와
다크써클까지 있는 얼굴을 보니 같은 사람인가
싶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이런 영화에서 이런 요상한 캐릭터는 그냥 요상함만으로 내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우가 연기한
'서종희'캐릭터는 '양미숙' 못지 않게 매력적인 캐릭터로서 신인배우 서우의 연기력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것 처럼 CF속의 그 인물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중학생스러운 그 표정들,
그리고 우는 장면에서는 정말 여배우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완전히 표정연기함에 있어 '놔버린' 그 연기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첨에 CF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저 요상한 춤을 추는 '무슨 녀'로 잠시
주목 받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앞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로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공효진의 열연이 예상된 수순이었다면, 서우의 발견은 <미쓰 홍당무>의 가장 큰 보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인배우인 서우의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영화를 통해 인상깊은 연기를 펼친 또 한명의 신인배우 황우슬혜의 대한
얘기도 마저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극중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역할을 맡은 황우슬혜 역시 강한 캐릭터가
버티고 있는
이 영화에서 빛을 잃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어디서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 내숭 가득한 '이유리'역할을 소화하기에 그녀의
청순한 마스크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외에 상당히 순수함을 넘어서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밉지만은 않게 표현된 것은 아마도 그녀의 모습과 연기가 큰 몫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도 출연을 하고 있는데, 독특한 이름과 더불어 앞으로 역시 기대가 되는
신인 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남성 관객분들은 벌써부터 '황우슬혜'라는 이름을 외우셨는지도 모르겠군요 ㅎ)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언급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것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전 사실 이 영화가 단순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웃음이 동시에 드는 코미디 영화더군요. 그렇다고 본격적인 블랙 코미디는 아니지만요.
일단 영화는 이른바 '왕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안면 홍조증으로 주목받고
주변인들에게
비호감으로 낙인아닌 낙인이 찍혀 학생 시절이나 선생님이 된 지금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양미숙의
캐릭터를 그리는
태도나 주변인들의 시선을 그리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으로 루저나 왕따(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요)가 주인공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즉 루저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왕따는 우여곡절 끝에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전개는
신파극 중의
신파극 보다도 뻔하다고 느껴지기에 별다른 흥미나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더나아가
교훈적인 면에서는 더더욱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래서인지 <미쓰 홍당무>에서 이들을 그리는
방식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사실 본래 이 리뷰의 제목도 보통 같으면 '궁상이라 욕하지 마라'라고 했겠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전달하는 면에서 접근했을 때는 지금처럼 '궁상이라 욕해도 좋다'가 더 맞다고 생각되더군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양미숙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하나도 이루어지지도 않고 피부과를 다녔지만 안면 홍조증이 결국 낫는 것도 아니죠.
영화의 마지막에 보면 결국 자신과 비슷한 동료 한 명을 더 얻은 것 외에는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서종희'역시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까지 마쳤지만 그렇다고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갑자기 '절친'이
됐을리는 만무하고 계속 찐따나 찐따 애인으로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포스터에 있는 '내가 뭐 어때서?!'라는 문구처럼 루저인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네들의 방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내가 뭐 어때서?!'라면서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편견과 오해와 싸워가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내왔을 그들이 왜 사랑받고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느냐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지지 않겠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영화가 씁쓸했던 건 결국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회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감독은 의도적으로 외모나 편견들만으로 사회가 소수를 왕따시키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집요하게 이들을 무시하는 학생들의 대사라던가,
본인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찐따와 찐따애인'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서 신청해 놓고는, 시간내에 자리에
나타나지 않자 계속 방송으로
이들을 비꼬듯 반복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을 왕따로 만든 다수의 악마적 횡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로 리본 달고 춤을 췄던 여학생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결코 예뻐보이지 않았던 것
또한 이런 면에서 가능한
연출이었죠.



(청각 자료실(?)이라고 해야되나요? 여튼 이 공간에서 이 둘이 등장하는 장면과 후에 모든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법한 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이 영화가 왜 18세 관람가를 받았는가 의아해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폭력적이나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아, 그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군요 --;), 마치 영화 <클로저>의 경우처럼 음란한 채팅이나
<카마수트라>에서 인용한듯한 성적인 표현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에 비해 실제로 시각적인 18세 관람가 장면은 없어서 아쉬운(?)분들도 있을 듯 하네요 ㅎ

개인적으로 극중 양미숙+서종희와 이유리가 채팅을 하는 장면에서는 <클로저>도 그렇고,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건 러시아어를 이용한
개그였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참 단순하지만 그 발음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 영화가 별 세 개 정도에서 별 개를 넘어 다섯에 가까운 영화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청각 자료실(?)'에서 벌어지는 시퀀스 때문이었습니다. 극 중 주요 모든 인물들이 드디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거침없이 의견교환을 나누는 이 시퀀스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작품이기 때문에 그의 전작인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폐교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 시퀀스는 정말 대박이더군요.
이 공간만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한 소소한 유머도 그렇고, 마치 법정에 선듯 서로가 서로를 변호하고 주장하는
이 장면은 마치 최근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에서 갈대밭 씬이 그랬던 것처럼, 단 한 장면에 굉장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멋진 장면이 아니라 할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 장면이 더욱 그럴듯 하고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종철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방은진씨의 포스가 크게 작용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구요. 방은진씨가
묵직하게 무게를
잡고 있던 탓에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이상한 아우라를 갖게 된 부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미쓰 홍당무>는 이 시퀀스 하나 만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억될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공효진의 섬세한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입니다. 저 아기자기한 눈코입과 볼이 만들어내는 표정연기는
양미숙이라는
캐릭터를 만나 120% 결과물을 쏟아냅니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올해의 한국영화다' '상반기에 <추격자>가 있었다면 후반기엔 단연코 <미쓰 홍당무>다'
라던지,
'박찬욱 감독이 밀어주는 신인 감독은 역시 다르다' 등등의 표현들에는 거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렇겠지만 개봉 전 홍보 때는 다들 조금씩 과하게 부풀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미쓰 홍당무>도
너무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거대 포장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이런 표현들이 결코
크게 과장된 것 만은 아니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공효진을 비롯해 신인배우 서우와 황우슬혜, 그리고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방은진씨, 그리고 리뷰에도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아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이종혁씨 등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캐릭터 영화이자 코미디이며, 그 안에 쓸씁한 뒷 맛과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넣어놓은 훌륭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분명 마이너한 코드와 개성적인 분위기가 가득담긴 영화라 보는
이에 따
라서는 시종일관 집중할 수 없고 불편하게까지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코드에 맞는 이들이라면 보는 내내
킥킥
거리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독특한 개성만큼 엄청난 흥행까지는 거두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개성 강한 영화가 좀 더 한국영화계에서
대접받을 수 있는 케이스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봅니다.



1. 뭐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까메오 출연 이야기는 다들 너무 많이 하신터라 ^^;
2. 극중 피부과 병원에 간호원으로 나온 분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마지막에 대모하던 사람 중에
   멀리서 오는
괴물을 한강에서 발견하고 카메라로 촬영하던 그 분이더군요.
3. 엔딩 크래딧에 도움 주신 분들에 '류승범'씨도 있더군요 ^^
4. 음악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전자음악단과 달파란이 참여하기도 했던데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삽입된 것 같습니다.
5. 아마도 제가 근래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6. 서우씨는 본래 서종희 역할이 아니라 이유리 역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당시 다른 촬영때문에 교복을
    입고 오디션장에 가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 아 '서종희'역할에 딱이다 라고 생각되어 급 변경 되었다고
    하네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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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는 고양이다 (グ-グ-だって猫である, 2008)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의 삶을 보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감독인 이누도 잇신과 주연을 맡은 우에노 주리의 GV가 있던 바람에 엄청난 관심을 모으기도 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신작 <구구는 고양이다>. 재미있는건 우에노 주리야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스윙걸즈> <무지개 여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이미 너무도 익숙했던 배우였지만, 국내팬들에게 이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였다는것. 여튼 개인적으로는 또래의 일본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 면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미야자키 아오이에겐 조금 미안한 마음이 ;;;),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고 하면 한 때 쌍수를 들고 찬양의 글을 주절주절
많이도 썼을 만큼 너무도 좋아하는 감독이기 때문에, 이 작품 <구구는 고양이다>가 저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초 기대작이었죠.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과 가장 좋아하는 일본 여배우의 조합이니 뭐 말 다 했죠(만약 미야자키 하야오가
실사 영화를 만드는데 주인공이 미아쟈키 아오이다 라고 한다면, <구구는 고양이다>의 조합이 최고라는데 한 번 더 생각해
보긴 해야겠네요 ^^;).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고양이가 등장하고 이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다는 소식은 저를 엄청난 기대의 바다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산영화제때 부산에 있었음에도 그저 인터넷 뉴스를
통해 주리짱의 샤방샤방한 사진만으로 아쉬움을 달래던 시간을 견디고 나니, 바로 얼마지나지 않아 정식 개봉이 되어
드디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처음에 포스터나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었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인 <우리 개 이야기>속 '포치 이야기'처럼 반려 동물과 인간 과의 관계 자체에 대한 슬픈 이야기, 그것 뿐인줄 알았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복잡한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다음 이미지가 나오기까지의 글에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처음에는 반려동물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인간이 겪는 슬픔과 공허함을 보여주면서, 애완동물이 단순히 인간이
주인으로서 자신 만을 위해 갖게 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후부터 주인공 '아사코'가 '구구'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 하면서 부터는
이야기가 조금씩 복잡해 집니다. 일단은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바'를 떠나보내고 '구구'를 맞이했지만, '사바'의 빈자리를
'구구'가 완벽하게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코는 자신도 모르게 구구를 사바로 부르기도 하고,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내내 사바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합니다. 사바를 떠나보내고 구구가 등장하는 영화의 시점을 봤을때
보통 같으면 구구가 중심이 되어 다시금 완벽한 새출발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나갔겠지만, 이누도 잇신 감독은
새로운 반려동물을 만난 뒤에도 끝내 처음 떠나보낸 '사바'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아사코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았거나 또는 먼저 보낸 분들이라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구구는 고양이다>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조금 아쉬웠던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사코와
사바 혹은 구구의 이야기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에노 주리가 맡은 나오미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약간은
지나치게 개입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는데, 아사코와 사바, 구구의 이야기로만 끌어갔다면 더 호소력 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오미의 미래와 남자친구와의 에피소드, 성장 이야기까지 개입이 되면서 영화가 약간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고 중심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과감하게 얘기해서 나오미 캐릭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영화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입원한 아사코에게 나오미가 남자친구와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들 등(공원에 있던 아저씨까지!!)을 동원하여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은 충분히 감동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완전히 판타지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영화의 원작이 순정만화인것 처럼 너무 만화적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인지 영화의 후반부에 사바와 아사코가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길이길이 남을 만한 대화와 감정이 살아있는 명장면으로 손꼽게 될 만큼, 이누도 잇신 만의 따듯한 감성이 잔뜩
묻어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몇년 전까지 고양이를 키웠던 저로서는 이 장면에서 아니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ㅠ



(우에노 주리외의 3명의 여자 캐릭터는 영화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이들은 실제 개그 소속사에 소속된
개그 트리오로서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느껴졌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 역시 아직까지도 사진첩에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 사진을
끼우고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드라마였던 <우리 개 이야기>
가 그랬던 것처럼 <구구는 고양이다>역시 이런 저로서는 남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특히 제가 키우던 고양이인 '일루'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사바'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더더욱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는
없었는데, 비슷하게 어렸던 시기에 일루를 만나게 되었고, 죽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먼저 보낼 수 밖에는
없었던 경험이 있던 저로서는, 아사코가 사바를 그리워 하는 이야기가 한 장면 한 장면 의미있게 느껴지더라구요.


(우리 일루(ILLU)사진 ㅠㅠ . 분명히 블로그 옮기면서 일루 사진을 다 옮겨왔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하드에도 없고 ;;
 아.....갑자기 슬픔이 와락 밀려옵니다 ㅠㅠ)


저와 일루는 참으로 사연이 많았었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옥탑방에 살 때 저랑 둘이서
티격태격하면서 지냈었는데 정말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둘이서 놀기도 많이 놀았었거든요. <우리 개 이야기>를 볼 때도
그랬었지만 <구구는 고양이다>를 보고 있노라니, 하나 하나 어찌나 저와 일루의 이야기 같은지 중간 중간 울컥하는 걸
겨우겨우 참으며 봐야 했습니다. 이사를 가게 되고 다시금 상황이 좋아지면 저도 다시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지만,
아마도 평생 일루를 잊지는 못할 것 같아요. 영화 속 아사코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국내에는 우에노 주리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큰 인기를 끌다보니 우에노 주리가 마치 단독 주연인
것처럼 홍보가 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에노 주리는 주조연에 가까웠고 실제적인 주인공은 아사코 역할을 맡은
고이즈미 쿄코였습니다. 너무나도 일본스럽고 여성스러운 목소리도 인상적이었고, 그녀의 깊은 내면연기 덕에 극에 깊게
몰입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8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가수 출신이더군요. <춤추는 대수사선>에도 출연했었다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

우에노 주리는 밝고 명랑한 모습과 진지한 청춘의 모습을 모두 잘 연기해 냅니다. 노다메처럼 아주 왈가닥은 아니지만 절로
웃음지게 될 만큼 발랄한 모습도 선보이는 동시에, 마치 <무지개 여신>에서 처럼 자신의 미래와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에노 주리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따뜻한 감성 세계는 이번에도 저를 감동시켜 버린 것 같습니다. 이누도 잇신은 확실히 소소하고 보편적인
생활 속에서 깊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감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습니다.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순정만화스러운 감성과 직접적인 장면들도 등장하지만, 판타지와 생활의 접점을 잘 알고 있는 이누도 잇신은 이번 영화 역시
너무도 이누도 잇신 스러운 영화 한편은 또 내놓은 듯 합니다.
우에노 주리의 단독 주연을 예상하셨던 분들은 좀 더 생각해 보셔야 될지 모르겠지만, 이누도 잇신 감독의 전작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나 일본 영화의 소소한 감성들, 그리고 무엇보다 고양이나 반려동물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 분들께는 강추 할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1. 영화 음악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특히 영화 속 포크 밴드의 곡들도 상당히 좋더군요. OST를 찾아봐야 할 것 같네요~
2. 영화 속 배경이 된 장소인 '기치조지'는 얼마전 친구가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곳으로 여행 사진들을 주의 깊게 보았던터라
    조금은 익숙한 곳이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꼭 한번 가야할 곳으로 제 뇌리에 등록완료 되었습니다 ^^
3. 영화 속엔 조금은 쌩뚱맞게 느껴지는 외국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다름아닌 메탈밴드 '메가데스'의 전 기타리스트인
   마티 프리드먼입니다. 그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데 록 팬들에게는 그의 출연이 색다른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 CJ가 단순히 배급/수입만 한줄 알았는데 제작에도 직접 참여를 했더군요.
5. 고양이 키우시는 분들은 무조건 봐야 해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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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아이 (Eagle Eye, 2008)
시작이 좋았던 킬링 타임 무비


사실 D.J.카루소 감독의 전작인 <디스터비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독의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고,
스필버그가 제작했다는 정보도 뭐 '제작'일 뿐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샤이아 라포프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스필버그가 정말 제대로 밀어주고 있는 이 젊은 배우가 아직까지 연기로서 무언가 큰 몰입감을
준 적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글 아이>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지금까지의 연기했던
캐릭터들 가운데는 가장 괜찮았던 연기라고 생각되네요. 영화는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내내 몰아치는데,
킬링 타임 영화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괜찮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D.J.카루소의 영화는 전작 <디스터비아>도 그렇고(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못봤습니다만 ^^;), 히치콕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구성이나 모티브는 히치콕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지만, 그 짜임새나 연출력에서는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래 한 단락에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인을 받은 주인공이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떻게 벗어냐느냐가 주된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이글 아이>에서
주인공이 오해 받는 사건은 엄청난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것이고, 누구인지도 모를 여성에게 지령을 받아 그녀의 대업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던 제리 쇼는 이 과정 속에서 이 거대한 음모의 뒤에 '누가'아닌 '무엇'이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일단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 음모의 주인공이 '아리아'라는 컴퓨터라는 것을 너무 일찍 밝혔던 게 후반부의 단점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를 보았을 때 이 존재가 밝혀진 다음에는 이렇다하게 세밀하게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사실 살짝 스포일러성 정보를 미리 알고 갔던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류의
영화들을 여럿 보아왔기 때문에 음모의 주인공이 '컴퓨터'일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 디테일한 구성이나 과정의 세밀함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렇게 엄청난 무소불위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아리아'의 보안 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
가장 헛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정보량을 통해 선택된 두 인물 가운데 쌍둥이인 제리 쇼야 어쩔 수 없다고해도,
미셸 모나한이 연기한 '레이첼'같은 경우는 아들이 주요인물들이 모이는 국회에 관련된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제이슨 본 급의 그 엄청난 운전 실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가 잘 모르겠더군요. 그녀에게 어떤 과거가 있어서 그런건가도
싶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았던 것 같구요. 여튼 시작은 매우 창대했으나 음모의 정체가 밝혀진 다음부터는
얘기가 많이 싱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류의 영화는 정체가 밝혀지고 나면 '와!'하는 탄성과 함께 '이거 놀라운데?'
하는 생각이 들어야 성공인건데, 앞서서 신나게 몰아붙이면서 겁을 줬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라 아쉽기도
하더라구요. 맨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야릇한 눈빛을 교환하길래 속으로 '만약 둘이 키스라도 한다면 이건 정말 아닌데'하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키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좋았던 건, '아리아'가 처음 가졌던 생각은 그나마 덜 미국적이었다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테러범일 확률이
겨우 51% 밖에 되지 않아도 무참히 타지에서의 그야말로 '테러'를 범하고(결국 민간인이었죠), 자신들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의
말도 필요할 땐 결국 자신들의 생각대로 하고야 마는 미국의 무소불위 권력에 조그마한 경종을 울리려 했었다는 것이죠.
정말 '아리아'가 처음 미국정부의 모순을 지적했던 그 마음(?)으로 결국 정부 주요요인들이 모인 곳에서의 테러가 진행되고,
제리 쇼도 마치 '다크 나이트'처럼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목숨을 잃고 마는(전 죽은 줄 알았었는데, 팔만 다친채 멀쩡이 나와서
조금 놀랐었습니다;;)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오히려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않고 극장을 찾았었기 때문에 샤이아 라보프 외에는 출연 배우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보게 되었는데 미셸 모나한의 연기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로맨스의 주인공보단 아이를 갖은 어머니의
모습이 더 잘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에 짧은 아쉬움도 들더라구요. 출연하는지 조차 몰랐던 빌리 밥 손튼의 경우 뭐 특별할 만한
점은 없었던 것 같고, 더더욱 몰랐던 로사리오 도슨과 <판타스틱 4>에 모습이 아직 더 익숙한 마이클 쉬크리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 쉬크리 같은 경우 <판타스틱 4>의 그 돌덩이(?)에만 익숙했던 터라 이런 진중한 캐릭터가
사뭇 어색하게도 느껴졌지만 의외로 잘 어울렸을 정도로 괜찮은 연기였다고 생각되고, 로사리오 도슨의 경우 워낙에 강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영화들을 많이 봐왔었기 때문에 이런 심심한 캐릭터에선 그녀의 매력을 다 뽐내기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의 연기는 주인공 다운 비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글 아이>에서도
아직까지는 '어린' 캐릭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하긴 어린 성인(?)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샤이아 라보프 만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인지도 모르겠네요), 극을 완전히 이끌 만한 포스는 충분히 보여준 것 같습니다.
뭐 워낙에 헐리웃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스필버그가 밀어주는 창창한 앞날이 보장된 젊은 배우이니, 앞으로 걱정은 하지
않는데 이 기회를 좀 더 멋지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은 드네요 ^^


만약 시니컬하고 굉장히 암울한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영화화 했다면 좀 더 괜찮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남습니다. 9.11 이후 헐리웃 대테러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무기력'함을
좀 더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더 좋았을껄 하는 바램말이죠. 그래도 이런 때깔 좋은 디지털 영화스럽지 않게
아날로그적인 액션 장면들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오랜만에 극장에 가보았는데 관객들이 (아이들을 포함해서)상당히 많았었는데, 킬링 타임용 영화로서는
별 손색이 없는 '재미'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거의 3주 가까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시금 스타트 하는 입장에서 부담없었던 영화이기도
했구요 ^^;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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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悲夢: Dream, 2008)
애증, 그리고 꿈


김기덕 감독의 열 다섯 번째 작품이자 오다기리 죠, 이나영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비몽>.
사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레도 <악어>부터 시작해서 <파란대문> <실제상황>
<나쁜 남자> <해안선>등 예전 작품들을 주로 보았던 것 같고 이들 작품들에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었기
때문에 최근 화제를 불러모았었던 <빈 집>이나 <숨> <사마리아>같은 영화들은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비몽>을 쉽게 넘기기 어려웠던 것은 역시나 캐스팅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 & 기사를 보니 스타 배우라 할 수 있는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의 캐스팅은 김기덕 영화가
대중들과 소통을 원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처럼 김기덕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마저 극장으로 불러오는 효과를 거두웠으니 어느 정도 이 소통방법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결과적으로 <비몽>은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이라는
스타의 캐스팅으로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노력한 시도가 엿보인 작품이며, 그 시도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각자마다 틀려질 수 밖에는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의 기본 줄거리가 대충 이렇습니다. 극중 오다기리 죠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 하며 매일 꿈을 꾸는데,
오다기리 죠가 꾸는 꿈은, 반대로 연인을 떠나버린 이나영에게 작용하게 되고, 오다기리 죠의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달되게 됩니다. 즉 오다기리 죠는 꿈 속에서 그리도 만나고 싶던 헤어진 연인을 만나지만, 이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옮겨오면 이나영은 자신이 스스로 떠나보낸 증오만 남은 연인에게 매일 새벽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비현실적인 표면적인 설정을 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 대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극 중에서 오다기리 죠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배경이 되는 대한민국의 모든 인물들과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즉 오다기리 죠가 일본어로 말하면, 이를 받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형식이지요.
만약 한 사람의 꿈이 다른 사람에게 몽유병으로 연결된 다는 설정이나,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설정을, 그대로 넘기지 못하면 이 영화는 매우 불편한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서 이런 것들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냥 영화에
묵시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비현실적이지만 일본어와 한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기본 설정은 묘한
분위기 외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과 사랑과 증오의 가까움, 여러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와 교묘하게 교차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본래 김기덕 감독은 오다기리 죠의 일본어에 한국어 자막조차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김기덕 감독은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이라는 설정에
전혀 구속 받지 않는 감독임은 확실한 듯 해요.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다기리 죠는 자신이 잠이 들고 꿈을 꾸게 되면 그 꿈이 이나영에게 몽유병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이를 알고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나영 역시 잠을 자게 되면 몽유병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옛 애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구요.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교차로 자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얼마 정도는 성공을
거두는 듯 하지만, 이도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서로 수갑을 차고 같은 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방법까지
동원하게 되죠. 이들이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겹기 까지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코믹하기도 했는데, 잠들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고 얼굴을 쥐어 뜯는 다던가 눈에 테입까지 붙여가며
잠을 안자려고 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 정도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가면 이 눈물 겨운 노력들은
무섭게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코믹함으로 느껴졌던 장면들이 분위기에 따라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까지 느껴지는 것을 통해, 사랑과 증오는 어차피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들자면 아무래도 갈대밭에서 4명의 인물이 모두 등장해 벌어지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영화 화법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이상한 장면인 동시에, 마치 현실에서 완전히 차단된
죽은 자들의 세계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이상한 장면이긴 하지만,
인물과 인물이 교차되고, 상대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고, 이 사람과 이 사람도
같은 사람인, 즉 모두가 하나이고 모든 감정도 하나라는 것을 매우 단적으로 보여준 어쩌면 매우 현실적인 장면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나영은 온통 검은 옷을, 오다기리 죠는 온통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 역시 아주 노골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덕 영화 하면 가학적이라는 선입관이 있긴 합니다. 그 내면에 정말 폭력성이 있느냐, 그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쨋든 화면으로 보여지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에서는
가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비몽>역시 오다기리 죠의 연기를 통해 이 가학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감독이었다면 영화 속 오다기리 죠의 후반부의 행동들을 그런 식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이는 분명 김기덕 감독이라 그런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김기덕 감독이 작품이 조금 불편하기도 한 것 같구요.

영화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화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그것이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술적인 측면이나 장면들을 통해
메시지를 이미지화 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백과 강렬한 색, 어둠과 빛의 강렬한
대비 효과들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이미지와 맞물려 메시지 전달에 시각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영화를 과감히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이나영 때문이 아닌 바로 오다기리 죠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배우들 가운데도 특유의 여유로움과 코믹함부터
극 진지함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오다기리 죠가 김기덕의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것이 사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지요. <비몽>에서 그가 연기한 '진'이라는 캐릭터가 오다기리 죠만이 할 수 있는, 아니면 오다기리 죠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캐릭터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후반 부에 처절하게 변해가는 진의 캐릭터를 보고 있노라면
오다기리 죠의 연기력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나영의 연기는 사실 연기력 자체보다는 그 무표정의 이미지가 더욱 기억에 남는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무표정으로 대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섬뜩함까지
느껴지곤 하니까요.

쉽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영화가 될 것 같네요.


1. 결국 잠이 보약!
2. 어디서 보았는데, 이 영화는 완전 '한옥투어'무비라고. 그 말에 동감.
3. 아직 <텐텐>을 못봤는데 이 영활 보고 <텐텐>을 보게 되면 그가 어찌보일지 궁금하군요;;;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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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촬영감독 유영길 특별전 - 허진호 감독 씨네토크


제가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를 본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된 것 같네요. 1998년에 개봉을 한 작품이었지만
당시에는 극장에서 보질 못했었고, 비디오로 출시된 다음에야 감상할 수 있었던 기억입니다. 당시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주인아저씨에게 비교적 싼값에 VHS 테입을 샀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던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의 시간표를 확인하던 중 '유영길 촬영감독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고,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인지한 동시에,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한국영화 중 하나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상영과
허진호 감독님의 씨네토크가 있다는 알게 되었고, 주저 할 것 없이 바로 극장으로, 극장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DVD가 출시되었을 때 다시 한번 보았던 기억이 얼핏 나기도 하지만,
제대로 영화를 본 것은 사실상 비디오로 접한 뒤 처음이라, 러닝타임내내 심하게 몰두한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도 <8월의 크리스마스>는 상당히 슬픈 영화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새로운 인연이 등장하고, 이 남자를 둘러싼 삶의 풍광을 담담히 그려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영화였죠.

그런데 거의 10년만에 이 영화를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니 내가 머리로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한 슬픔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를 들자면 이 영화를 처음 비디오로 접했을 때에는 없었던 개인적인 아픔이
생겼기 때문에 더 깊이 공감하며 마음이 동요한 것도 이유겠지만,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혹은 감동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중 한석규가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는 장면이라던가, 마루에 앉아 발톱을 깍는 장면, 천둥이 치는 밤 장면 등 장면 하나 하나가
깊이있게 다가오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열린 차창으로 바람을 맞으며 창밖을 보는데, 버스내 방송에서는 김창환의
노래가 흐릅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에요' 이런 장면은 감정을
쥐어짜거나 극적인 장면이라고는 볼 수 없는데, 절제함으로서 깊은 곳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했었지만, 이번에 느꼈던 이런 깊이는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예전에는 한석규와 심은하의 관계에 대해 더욱 집중하며 보았다면, 이번에 다시 볼 때는 한석규와 그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신구씨와의 장면이 더욱 깊이 다가오더군요(영화 상영뒤 갖은 씨네토크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유영길 촬영감독
역시 이 영화 촬영 몇년 전에 아드님을 먼저 떠나보내신 슬픔이 있어, 이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촬영하실때
가슴이 많이 아프시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을 아버지를 위해 매번 자신이 해오던
비디오 작동법을 아버지께 가르치는 장면에서 아버지가 잘 작동법을 익히시지 못하자 짜증을 내며 방문을 나서는 것은,
그냥 짜증이 아니라 자신이 없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가실까 하는 걱정과 죽음에 대한 또 한번의 인식 때문에
자신에게 화와 슬픔이 동시에 드는 장면이죠. 이런 장면이 얼마나 섬세하게 촬영되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세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꼭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특별전이라 카메라의 위치나 분위기를 특별히 보려하지 않아도, 절로 장면 장면 담긴 따듯함이
엿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여기에는
물론 통속적이지 않은 결말부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감정을 과잉표현하지 않고 계속 절제하고 비워나가는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거의 움직임이
없다시피한 장면이 3분 가까이 진행됨에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절제된 카메라의 연출이라고 생각되구요.

극중 한석규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올 때 마다 속으로 얼마나 울컥했었는지 모르겠네요.
쉽게 말해, 눈물 나는 슬픈 영화라는 사실은 이미 봐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까지 슬픈 영화일 줄은 몰랐다고 할까요.
2008년에 다시 보게 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참으로 슬픈 영화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하는 씨네토크 시간이 있었습니다.
일단 개봉된지 10년이 된 작품이라 감독님께서도 기억을 더듬으며 친절히 답해주셨고, 이 영화의 오랜 팬들이 모인
자리답게 그 어느 자리 못지 않은 애정 가득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왔습니다(거의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느낌이었는데
끝날 때까지도 계속 손을 드는 분위기였고, 손을 들었는데 질문을 결국 못하신 분들이 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영화를 깊이 보게되면 영화 속에 소품이나 각종 장면들에 대해 어떤 의미나 상징을 부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경우 허진호 감독님은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오히려 피하려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곧 의도 되지는 않았던 의미들이었고, 가능하면 이런 것들을 빼려고 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씨네토크 중에 가장 재미있던 것은 군산에서 촬영할 때 한석규씨가 탕수육을 좋아해 자주 먹곤 했는데, 영화 말미로 갈수록
얼굴에 살이쪄서, 그러니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굴에 살이 올라 클로즈업 촬영시에 곤혹을 겪었다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이 외에도 유영길 촬영감독님과의 추억, 그리고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참여한 많은 감독님들의 이야기(이 자리에서 이 영화에
참여한-지금은 다 이름있는 감독분들이 이 영화에 다 스텝으로 참여하고 있더라구요- 스텝들의 이름을 들으니 꼭 한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리고 허진호 영화라 불리는 그의 네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짧게 코멘트 하자면 생각보다 의도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이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초등학생 일기에나 등장할 법한 표현이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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