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IMAX 3D, 2015)

한 남자와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



로버트 저메키스의 '하늘을 걷는 남자 (The Walk, 2015)'는 실제로 뉴욕 월드 트레이딩센터 빌딩 사이를 밧줄로 연결하여 건너고자 했던 필리페 페티의 실화를 담고 있다. 아마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보다 앞서 필리페 페티의 이 사건을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맨 온 와이어'와 거의 똑같은 구성을 갖고 있는 극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면에서 '맨 온 와이어'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일종의 관람 순서도 영향을 전혀 끼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맨 온 와이어'가 워낙 좋았던 작품이라 '하늘을 걷는 남자'가 도달하기엔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경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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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저메키스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맨 온 와이어'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묘사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의 구성이야 실화를 배경으로 했음으로 크게 다를바 없다해도 필리페를 화자로 내세운 것도 '맨 온 와이어'와 유사한 방식이었는데, 애정하는 조셉 고든-레빗의 프랑스인 연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실제 필리페 페티의 화술과 매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기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포인트였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 아니 이 필리페 페티의 실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맨 온 와이어'를 통해 다 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다시 할 이야기는 많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가 '맨 온 와이어'와 달랐던 점은 쌍둥이 빌딩으로 불리우는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맨 온 와이어'의 경우 철저하게 필리페 페티가 아티스트로서 이 빌딩 사이를 건너는 그 순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면, '하늘을 걷는 남자'는 구성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필리페 보다도 오히려 쌍둥이 빌딩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즉,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9.11로 인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이 건물에 대한 일종의 송가처럼 느껴지는 연출을 자주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주인공 필리페가 이 빌딩을 바라보는 여러 시점 샷들에서는 단순히 3D 기술을 활용한 기술적 측면 외에도 마치 죽음을 맞이한 한 빌딩이 막 탄생했던 순간을 그리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히 단순히 높이에 대한 경이로움의 시선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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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래도 볼 만한 건, 오랫동안 3D 영상에 매진해 왔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한 적절한 3D 소재 영화라는 점이다. 아마 저메키스에게는 어떠한 액션 판타지 영화보다도 이 이야기에서 3D 영상에 대한 매력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엄청난 고공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줄타기의 순간은 3D 영상을 통해 더 실감나고 집중하게 되는 장면을 선사한다. 사실 이 부분은 '하늘을 걷는 남자'의 분명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만, '맨 온 와이어'를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부분 마저 조금은 이 작품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지점이었다. 왜냐하면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리는 고공 줄타기의 순간은 체험하는 느낌과 필리페의 정서를 모두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맨 온 와이어'는 3D기술 없이도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이 장면을 더 극적이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맨 온 와이어'는 정서적인 만족감과 동시에 체험하는 느낌마저 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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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해서 이 작품을 재미있게 관람하긴 했으나 막상 글을 쓰려니 '맨 온 와이어'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보니 모든 면에서 아쉬운 것처럼 풀어낼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만약 '맨 온 와이어'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나와는 조금 다르게,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하지만 나처럼 이미 손꼽히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맨 온 와이어'를 본 이들에게는, 거의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승전맨온와이어.



1. '맨 온 와이어'는 예전에 하이퍼텍나다 에서 관람했었는데, 그 기억이 생생하네요. 아래는 그 때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걸 읽으시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네요 ^^;


맨 온 와이어 _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2. '맨 온 와이어'는 특히 음악이 아주 좋은 작품이었는데, 이 작품은 좀 음악이 아쉬웠어요.


3. 영화의 의도는 분명 월드 트레이드센터 빌딩에 대한 송가에 가까운데, 북미 성적을 보면 아무래도 미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보는 자체로 고통스러운 측면이 여전한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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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의 마무리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처음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았을 때는 본래 계획에 없던 세 번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했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본인의 입으로 직접 처음 배트맨 시리즈를 맡았을 때 '시작 – 중간 – 끝'의 삼부작을 계획했다고 말했던 만큼,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삼부작을 통해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으로 다시금 일으켜 낸 것은 물론, 무엇보다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지난 몇 년간 영화 팬들에게 새로운 배트맨의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즐거움과 떨림을 선사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쉬움과 동시에 블루레이의 출시를 고대하게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 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재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베인이 던진 혁명의 메시지




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 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 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 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 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렇게 커다란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왔더라면 아마 이 작품에서도 완결을 짓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팬으로서는 그러기를 바랬는지도…)





로빈 이상의 로빈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열혈청년 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신념 그리고 믿음




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 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앗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 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 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인정




시리즈의 첫 작품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 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로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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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블루레이의 화질은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 간의 편차는 분명히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우수한 화질이며, 전작 '다크나이트' 보다 향상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아이맥스로 촬영된 장면들의 화질은 그야말로 레퍼런스급 최상의 화질을 보여주는데, 아웃 포커싱이 많은 장면에서도 뒤 편의 배경들이 뭉개지지 않으며, 날카로운 외곽선으로 베일의 스킨 헤드 피부질감은 물론, 배트맨 슈트 소재의 질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베인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이 화질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장면을 캡쳐해도 대부분이 화질 소개 란에 어울릴 만한 퀄리티의 장면들을 선사하고 있었다.







놀란의 배트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가 아이맥스로 가득 담아낸 고담시의 풍경을 들 수 있을 텐데, 블루레이로 다시 보는 이 아이맥스 시퀀스는 정말로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아이맥스 극장에서 느꼈던 스케일의 감동을 블루레이의 디테일로서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다만, 아이맥스로 촬영되지 않은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장면들의 화질은 아쉬움이 많은 편이다. 워낙 좋은 아이맥스 장면들과 연결되어 있다보니 체감적으로 덜 좋아 보일 수 밖에는 없는 현상도 발생한다. 일반 촬영 장면의 경우 날카로움이 이나 색감의 표현, 전체적인 디테일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편인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기존 작품들의 화질과 워너타이틀의 기존 타이틀을 떠올려본다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의 화질이라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아이맥스 시퀀스가 주는 화질의 감동이 어느 정도 상쇄 시켜준다 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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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의 경우, 시리즈의 마지막으로서 작품이 담고 있는 무게와 스케일을 안방으로 그대로 전달한다. 특히 한스 짐머가 고안한 베인의 테마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부분)의 울림은 우퍼 스피커를 통해 강렬하게 전달되며, 다양한 폭발이나 붕괴의 사운드 역시 최신 타이틀로서 부족함이 없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굉장히 현실성 있게 만들어진 영화답게 사운드 측면에서도 실제의 현실감 넘치는 사운드들로 가득 채워졌는데, 촬영도 그렇지만 사운드 측면에서도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발생하는 소리를 기반으로 나머지를 채워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폭발 장면은 수 천명이 동원된 월가 격투 장면이나, 동굴 감옥 (The Pit) 장면의 소리들 역시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만족시키는 사운드를 수록하고 있다.






사운드를 얘기하면서 베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텐데, 베인이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독특한 목소리와 특유의 울림은 극장에서도 대단했었는데, 블루레이로서도 그 대단한 첫 만남을 만끽할 수 있다. 베인의 목소리는 무언가 다른 공명으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블루레이 사운드 체크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요소라 하겠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보여주는 부가영상


본격적인 부가영상은 2번째 디스크에 수록이 되었는데, 추후 내년 말에 해외에서 발매 예정이라는 UCE 타이틀의 한국어 자막 수록여부나 국내 정식 발매의 불투명성과 굳이 저울질 하지 않더라도, 질적인 측면과 양적인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부가영상이 가득 수록되어 만족스럽다. 쇼핑몰 정보 등에 표현된 부가영상의 큰 카테고리만 보고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The Batmobile'에서는 제목처럼 배트맨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배트모빌의 관한 내용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겨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서브 피쳐 정도로 생각했으나 1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에 걸맞게 독립적으로 충분히 훌륭한 작품인 동시에, 배트모빌을 중심으로 배트맨의 역사를 정리해보는 흥미로운 내용이 수록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얘기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이전의 팀 버튼이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영화에 등장한 배트모빌들 역시 상당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동원된 작품이라는 점과 실제 구동 가능한 차체였다는 점이었다. 팀 버튼 영화의 배트모빌의 경우 페라리의 실제 부품 등과 전투기의 부속품들까지 접목시켜 완성시켰고, 슈마허의 작품에 등장한 화려한 디자인의 배트모빌의 경우, 처음에는 에이리언 시리즈로 더 유명한 H.R.기거에게 디자인을 의뢰했고 실제로 기거가 제작한 배트모빌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의 버전이 쓰이지 못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거 스타일에 기초하여 배트모빌이 디자인 되었고 자동차라기 보다는 하나의 동물과도 같은 형태의 버전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영화와 코믹스가 시대를 거듭해 오면서 서로 얼마나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왔는가를 알 수 있는데, 영화에 등장한 배트모빌이 코믹스에도 적용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아이디어에 착안해 디자인 되는 등의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모빌인 텀블러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배트모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제작 방식이었다.


보통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스케치나 컨셉화를 시작으로 제작되는 것과는 달리, 놀란과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점토나 부품 등을 가지고 덕지덕지 만든 모형을 기반으로 스케치 등이 없이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텀블러는 기획 단계에서 진짜 과학과 현실적 이론에 근거해 최고의 효율을 만들 수 있는 배트모빌을 만들어보자는 것에서 시작한 것 답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동시에 부서지지 않는 차라는, 정말 괴물 같은 디자인과 성능을 실제로 보여주는 배트모빌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짧은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배트모빌의 역사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트모빌을 통해 배트맨 시리즈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동시에, 배트모빌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던 의미 깊은 영상이었다.


'Behind The Scenes : Ending the Knight'에서는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Production' 'Characters' 그리고 'Reflections'의 대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안에도 작은 메뉴들로 세부 구성되어 있다.






프로덕션에 담긴 부가영상들을 보며 알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가능하면 다 실제로 촬영하고자 했다는 점이고, 관객이 느끼기에 저런 것까지 과연 실제로 찍었을까 하는 것까지도 거의 대부분 실제 촬영을 하거나, 실제 촬영한 것을 기반으로 CG작업을 했다는 점이었다.


영화의 첫 시퀀스인 공중 납치 장면 역시 실제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영화 속 장면처럼 실제로 고공에서 스턴트 연기를 통해 촬영되었다. 제작 측면에서는 엄청난 비용과 공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 고집은, 영화 초반 관객들로 하여금 압도당하도록 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단숨에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겠다.






배트맨의 본부라 할 수 있는 배트 케이브와 베인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지하 시설의 경우도 모두 실제 크기의 세트로 제작이 되었는데, 배트 케이브가 자연에 가까운 디자인이라면 베인의 거점의 경우는 산업 현장의 느낌이 나도록 하여 상반된 이미지를 주고자 했다. 두 세트 모두 워낙 거대하다 보니 (베인의 지하 공간의 경우 무려 높이가 30미터가 넘는 세트로 제작되었다), 스텝들 조차 세트라기 보다는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한다.






배트맨의 새로운 탈 것인 'The Bat'의 경우도 실제로 나는 것까지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실제 크기로 제작한 기체를 대형 크레인과 엄청난 길이의 케이블로 연결하여 실제 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더 배트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사운드 디자이너들의 작업 과정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극 중 중요한 지점 중 하나인 배트맨과 베인의 1:1 격투 시퀀스에 대한 내용도 수록되었는데, 베인의 야만적인 면과 처음으로 육체적인 결투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배트맨의 대결 장면은 그 자체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장면 역시 두 배우가 대역 없이 실제로 감정을 실어 연기했기에 더 큰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감정과 액션 디자인이 상당히 복잡한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텝들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임팩트 있는 시퀀스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예고편에 등장하여 더 기대를 모으게 했던 풋볼 경기장 파괴 시퀀스에 대한 뒷 얘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실제 피치버그의 미식축구 장에서 촬영되었고, 실제로 파괴시키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로만 보자면 충분히 파괴시킬 수 있는 논란 감독이기에..) 역시나 만 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동원, CG를 쓰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을 최소화 하려고 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인즈 워드 선수를 비롯해 실제 선수나 선수 출신 들이 출연을 하였으며, 실제 피치버그 시장도 선수로 까메오 출연하는 등 피치버그의 협조가 적극적인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 중에서 블레이크가 차를 타고 갈 때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의 경우, 영화 속에서는 잠시 스쳐간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을 위해서도 수 많은 기술과 비용이 투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한 편으론 그냥 CG로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관객도 거의 눈치채지 못할 듯 하고)하는 생각과 걱정이 들 정도인데, 관객이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길지 않은 장면이라도 더 실감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현실감이란 곧 주제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비상하라' 라는 뜻의 방언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된 베인의 테마가 한스 짐머를 통해 어떻게 음악으로 승화되는지의 과정도 'The Chant'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처음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것도 한스 짐머였는데, 베인의 캐릭터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불안함을 조장하는 불협화음을 전반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e War On Wall Street'에서는 월스트리트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액션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은 헐리웃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수 천명의 출연자'라는 얘기를 다시금 꺼내게 만들었던, 수 천명이 동원된 액션 장면의 촬영장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액션 장면의 스케일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수 천명의 엑스트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집을 부려 이 장면을 완성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연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가 본래 보여주고자 했던 '수 천명이 싸운다'라는 스케일을 표현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대규모 액션 시퀀스의 경우, 시리즈를 마무리 하는 작품답게 전작들의 규모와 재미 요소를 모두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시한폭탄과 추격전이라는 고전적인 구성을 꺼내 들었는데,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의 텀블러를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장면이었다는 것을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또 확인할 수 있었다.






'캐릭터'에서는 브루스 웨인과 베인 그리고 캣우먼으로 나누어 각각의 짧지 않은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브루스 웨인의 경우 단순히 '다크나이트 라이즈' 속 그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삼부작을 거쳐 진행되는 그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이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수트를 입지 않았을 때도 관객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 일텐데, 그런 측면에서 이 부가영상은 배트맨으로서 보다 브루스 웨인으로서 표현되는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배트맨 비긴즈의 DNA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비긴즈를 기반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부가영상은 결국 영화를 이끄는 건 이야기, 이야기를 이끄는 건 캐릭터라는 놀란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번 시리즈의 악당을 선정 하는 데에 가장 큰 조건은 육체적으로 배트맨을 압도할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베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만화 속에 등장한 베인의 모습은 허황되고 과장된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영화 만의 베인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군대 출신의 용병 느낌이 나도록 기본적인 의상이 설정되었고, 거기에 타락한 혁명가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장교느낌과 프랑스 혁명 당시를 엿볼 수 있는 의상 요소를 추가해, 각 장면 별로 컨셉에 맞게 적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스크는 역시 오랜 제작과정을 거쳤는데, 거미나 고릴라 같은 동물적인 느낌이 강한 것에 더해, 공업적인 느낌까지 더해진 영화 속 마스크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톰 하디가 베인 특유의 목소리와 억양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요소들을 참고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 캣우먼이 등장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우려 반 기대 반이었는데, 왜냐하면 캣우먼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적인 면을 강조한 놀란의 영화에도 과연 어울릴까 하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란과 앤 해서웨이가 만들어낸 캣우먼은 가면을 쓰고 수트를 입고 있어도 별로 판타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우스꽝스럽지도 않은 현실감을 갖은 캐릭터로 완성되었다. 이런 양 측면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고안된 의상이나 가면 등 캣우먼 캐릭터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담겨있다. 또한 다른 연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장면을 대역 없이 실제 액션 연기를 펼친 앤 해서웨이에 대한 스텝들의 칭찬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Reflections'의 첫 번째 메뉴인 'Shadows & Light in Large Format'에서는 아이맥스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만나볼 수 있는데, '다크나이트'를 통해 아이맥스 카메라의 장점을 파악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처음부터 아이맥스 촬영 분을 늘려야겠다고 계획했다고 한다. 아이맥스의 장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스케일을 가감 없이 그대로 가득 채운 캔버스에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크리스토퍼 놀란과 촬영팀은 이번 작품을 통해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해 보고자 했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에 비해 단순히 아이맥스 촬영 분량이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노하우나 기술에서도 월등히 발전했기 때문에 이루고자 하는 바의 결과를 대부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굳이 3D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The End Of a Legend'에서는 이 전설의 삼부작을 함께 한 각 분야별 스텝과 배우들의 짧은 인터뷰를 담고 있다. 스스로가 자만이 아니라 자부심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이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으며, 그 인터뷰들은 대부분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부가영상을 보며 새삼 느낀 바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연출은 맡은 그를 비롯하여 각 분야별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자신의 최고 수준의 장기를 마음껏 펼친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총평]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이 작품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각각의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논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으며, 이후 등장한 히어로 물은 물론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블루레이는 극장에서 느꼈던 그 떨림과 긴장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화질과 음질은 물론, 삼부작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소개하는 부가영상들로 쉴 틈 없이 흥미로운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다. 다양한 판본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가는 말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는 말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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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고든 레빗 : 연대기 (Joseph Gordon-Levitt : Chronicle)


여기 한 남자 배우가 있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화제작 '인셉션'을 통해 '500일의 썸머'에 이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바로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이다. 조셉 고든 레빗의 필모그래피가 흥미롭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는 헐리웃의 대표 배우로 성장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는 마이너한 감성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배우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론 분명 헐리웃이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라는 점에서 더 늦기 전의 그의 짧지 않은 연대기를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흥미로운 필모그래피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었지만, 예상보다 더 흥미롭고 결코 짧지 않은 커리어는 알면 알 수록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에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바로 외계인 가족이었던 것이다)

 
처음 성인이 된 조셉 고든 레빗을 본 사람들은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3rd Rock from the Sun)'에 나왔던 그 아이구나!'라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그렇다, 조셉 고든 레빗은 아역 연기자 출신으로 우리가 흔히 알만한 작품에도 여럿 출연했었다. 앞서 언급한 TV시리즈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을 비롯하여 1994년 작으로 우리에게는 대니 글로버 주연의 야구영화로 기억되는 '외야의 천사들 (Angels in the Outfield, 1994)'에도 출연하였으며, 브래드 피드 주연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에서는 주인공 노먼이 아역으로 출연하였으며, 데미 무어와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1996년작 '주어러 (The Juror, 1996)'에서는 데미 무어의 아들로 출연하기도 했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TV시리즈와 작은 영화들에서 아역 연기자로 크고 작은 역할들을 연기했었는데, 의외로 배우들이 좋은 작품들이 제법 있었다는 점이 조금은 놀랄 만한 점이었다.



(이 작품에는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 외에 어린 데이빗 크럼홀츠도 출연했었다. 데이빗 크럼홀츠는 미드 '넘버스'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데, 이런 풋풋한 모습을 보니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꼭 챙겨봐야할 또 한 가지 이유가 생긴 기분이다. 더 재밌는건 '넘버스'의 에피소드에 조셉 고든 레빗이 출연한 적도 있다는 사실!)

그러다가 아역의 티를 살짝 벗은 19살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헐리웃 청춘 영화의 산실로 불리는 (점점 불려지는)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1999)'이었다. 이 작품은 초기 소수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가 히스 레저가 주목을 끌었을 때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었는데, 사실 이 작품을 조셉 고든 레빗 때문에 다시 꺼내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작품을 통해 주목 받은 것은 물론 히스 레저와 줄리아 스타일즈 였겠지만, 여기엔 분명히 조셉 고든 레빗도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했었다. 한가지 아쉬운 건 점점 영화 팬들 사이에서 (적어도 히스 레저와 조셉 고든 레빗의 팬들 사이에서는) 그 중요도가 커져가는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DVD로도 출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미에서는 블루레이로까지 발매가 되었었는데 어쨋든 이 작품을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브릭' 이전에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비중있는 출연이라면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보물성 (Treasure Planet, 2002)'에서 주인공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브릭'은 성인 배우로서 조셉 고든 레빗을 다시 재조명해준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를 이름과 함께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2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던 '브릭 (Brick, 2005)' 이었다. 고등학생과 교내를 배경으로 누아르 장르를 써내려간 이 기발한 작품은 한 편으론 참 유치하고 단순해 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느와르와 장르 영화의 특성을 전혀 다른 배경에 완전히 대입시킨 작품으로서 평단에 큰 주목을 받았었다. '브릭'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그 였다. '브릭'에서 처음 조셉 고든 레빗을 보았을 때는 사실 히스 레저를 보는 줄 알았었다. 아직까지도 그를 떠올리면 '아, 첨에 히스 레저 닮은 배우로 생각했던' 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을 정도로, '브릭'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좀 더 골격이 작고 여린 히스 레저 같아 보였었다.



(적어도 나에겐 히스 레저를 연상시키는 배우로 출발했던 조셉 고든 레빗에게, 이제 더이상 히스 레저의 그림자는 없다)

그런데 구글링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저렇게 둘이 붙여 놓고 보면 꼭 닮았다고만은 할 수 없을텐데, '브릭'을 보고 들었던 인상은 분명 '히스 레저'였다. 이미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통해 함께 연기했었고, 만약 히스 레저가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어떤 작품에서든 다시금 만날 수도 있었을 이 두 배우가 또 한번 함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팬으로서 역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톰과 썸머는 이미 2001년 '매닉 (Manic)'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났었다)

 
 
'브릭'의 성공 이후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밟겠구나 싶었었으나 의외로 그의 모습을 한 동안 (적어도 국내 극장가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브릭' 이후 2005년부터 2008년 까지 제법 많은 영화에 주연, 조연을 맡았었지만 이렇다할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더 구체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게 금새 수면 위로 떠오를 줄 알았던 그를 기다리기가 점점 지루해질 때 쯤, 조셉 고든 레빗은 전혀 의외의 영화와 캐릭터로 우리 곁에 다가왔는데 바로 이병헌이 출연해 더 큰 관심을 끌었던 헐리웃 블럭버스터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가 그것이었다 (실제 북미 개봉 시점을 보면 '(500)일의 썸머'가 같은 해 다른 달로 조금 더 개봉이 빠르지만, 국내 개봉 시점으로 보면 '지.아이.조'가 앞서 있었다). 당시 썼던 '지.아이.조' 리뷰에 조셉 관련 부분을 끄집어 내보자면,

'사실 출연 사실을 알고 그나마 기대했던 건 조셉 고든-레빗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았다(마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왜 <이온 플럭스>에 출연했을까 했던 것 처럼). 그가 맡은 렉스 캐릭터 역시 2편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모양이지만, 왠지 이런 영화와 그 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 평가는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과연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는 아직까지 좀 의문인데....음....의문이다.




(500일의 썸머에서 조셉 고든 레빗의 연기는, 젊었을 때의 더스틴 호프만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아마도 수십년 뒤에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런 클래식함이 더 깊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드디어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2009)'.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최근 개봉한 '인셉션' 대신 '(500)일의 썸머'에서 사용한 이유는, 이 작품에서 이미 그의 연기가 많이 자리를 잡고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조이 데샤넬이 영화 속 '썸머' 그 자체였듯이, 조셉 고든 레빗 역시 '톰' 그 자체였다. 이 영화 속 '톰 핸슨'이라는 캐릭터는 비슷한 다른 배우가 맡았더라도 괜찮은 작품이 되었겠지만, 다른 여배우가 맡았더라면 조이 데샤넬 특유의 뉘앙스는 살릴 수 없었을 것처럼, 톰 역시 조셉 고든 레빗 만의 사소한 디테일들이 모여 지금의 '톰 핸슨'을 만들어 냈다. 두 배우 모두 연기가 아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평소의 모습이 은연 중에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했는데, 확실히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조셉 고든 레빗을 '그냥'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라 '매우' 좋아하는 배우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SNL이 맞다)

 
'(500)일의 썸머'이후 조이 데샤넬의 팬을 자처하게 되면서 그녀의 관련 소식을 찾다가 자연스레 조셉 고든 레빗에 관한 소식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친구 알면 알 수록 마음에 든달까. 그의 활동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무비 스타 혹은 셀러브리티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커리어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깊게 받을 수 있었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어느 자리, 어떤 상황에서 담긴 사진들을 보아도 모두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있었으며,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들이 더욱 그를 특별하고 개성있는 배우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이런 느낌도??)

그의 다양한 활동들 가운데는 직접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도 있고 단편을 연출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아우를 만한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라면 'hitRECord'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의 트위터를 알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고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여러가지 결과물들을 보고나서야, 그의 아티스트적인 역량과 자부심 혹은 욕심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조셉 고든 레빗을 남들과는 다른 배우로 만들어 주는 (연기 외에) 핵심적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방문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hitRECord.org'를 방문해보라!





(그리고 우리를 흥분하게 만든 '인셉션' 속 '아서'로 분한 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Inception, 2010)'에서 아서 역할로 분한 그의 모습은 기존 과는 또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코스츔을 입은 듯 곱게 빗어 넘긴 올백 헤어스타일과 좁은 어깨를 그대로 드러낸 타이트한 양복 차림의 그는, 고풍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는 아서와 맞아 떨어지며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였다. 특히 시크한 듯 찡그리는 그 표정이나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귀여움마저 드는 표정 연기 역시 인상적이었다.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하차하기로 한다는 소식 이후, '(500)일의 썸머'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새롭게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새로운 피터 파커로 조셉 고든 레빗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는데, 처음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으나 '인셉션'에 등장하는 무중력 액션 시퀀스를 보니 새로운 스파이더 맨으로서 (역시 아직까지는 어색함이 더 크지만)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이 역할은 다른 배우로 내정이 된 상태).

어쨋든 '인셉션'은 '(500)일의 썸머'와 맞물려 서로 다른 매력의 조셉 고든 레빗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인셉션'을 보는 내내 '아서'로서가 아니라 썸머에게 휘둘리던 불쌍한 '톰'으로 느껴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혹시 자네, 아직도 썸머를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니겠지...)


'인셉션' 후 조셉 고든 레빗은 또 다른 작품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로 우리 곁을 찾아올 예정이다. 북미 기준으로 2011년 1월 공개를 목표로 작업중인 'Hesher'라는 작품인데, 위의 스틸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조셉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에는 그 외에 나탈리 포트만과 레인 윌슨 등이 출연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개봉할 수 있을런지는 확실히 미지수다. 

참고로 조셉 고든 레빗은 현재 'Live with It'이라는 조나단 레바인 감독의 작품에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안나 캔드릭, 세스 로건 등과 함께 캐스팅 된 상태이며, '쥬라기 공원' '스파이더 맨' '우주전쟁'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데이비드 콥 (David Koepp)이 연출을 맡은 'Premium Rush'라는 작품에도 캐스팅이 된 상태다. 




(훗, 내 커리어는 이제 시작일 뿐. '인셉션'은 거들 뿐)


조셉 고든 레빗의 커리어를 살펴보니 결코 짧지만은 않은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커리어와 필모그래피를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좀 좋은데' 에서 시작된 관심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히 '야, 이거 잘못하면 또 하나의 팬 블로그를 만들어야 하는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떠오르는 배우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배우로서 작품 활동 외에 아티스트로서 자신 만의 퍼포먼스 영역을 넓혀가는 점이나, 이 청년이 갖고 있는 자세나 가치관에 동요되었다고나 할까. 알면 알 수록 더 끌리는 배우가 바로 조셉 고든 레빗이 아닐까 싶다. 이제 그는 내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배우 중 하나다.


2011.12.15 추가 업데이트

지난 번 조셉 고든 레빗의 연대기 마지막에 출연 예정작이라고 거론 했었던 작품 가운데는
'Live with It'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50/50'이었다.


세스 로건, 안나 캔드릭 등과 함께 출연한 이 작품에서 JGL은 암환자인 '아담' 역할을 맡고 있는데, 기존에 그가 갖고 있는 평범한 듯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역시 그 안에서 자신 만의 색깔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라 캐릭터와 상당한 싱크로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바가 삶과 죽음을 극적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저 일상의 한 조각으로 거리를 두고 그리려고 한 점이라는 걸 봤을 때, 조셉 고든 레빗이라는 배우의 건조한 듯 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진실이 담긴 눈망울은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일상과 캐릭터로 등장하는 그를 보다보니, 저절로 썸머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한동안 계속 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다음 출연 예정작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다. 존 블레이크 역할로 출연할 예정인 JGL의 모습은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하게 한다. 과연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을 마무리하는 이 작품에서, 또 어떤 연기와 캐릭터를 만들어낼까!



2012.10.26 추가 업데이트

업데이트를 깜빡하고 놓쳤는데 2012년 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빼먹을 뻔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영화는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한 '블레이크'를 중심으로 보자면 '블레이크 라이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블레이크의 비중이 의미상으로 중요한 작품이었다.



'인셉션'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 다시 한 번 등장한 JGL은, 영화 개봉 전 모든 이가 '로빈'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경찰 '블레이크' 역할을 맡았는데,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만큼은 아니지만 대단원을 마무리 하는 이 작품에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다시 한 번 애정을 갖게 되는 캐릭터인 동시에 거울로 삼게 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기존 그가 연기한 작품들을 보면 그 특유의 좁은 어깨 때문인지 조금은 연약한 이미지가 없지 않았는데, 이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블레이크는 정의라는 것을 대변해 줄 곧은 인물로서 결코 연약하지 않은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로빈'이라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한 껏 안고 시작한 캐릭터였지만, 결론적으로는 '블레이크'로서도 충분히 독립 가능한 연기를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에 국내에서 만나보게 된 '루퍼 (Looper, 2012)'. 영화와 별개로 조토끼의 팬으로서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 내내 살짝 못 알아볼 정도의 분장을 한 채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인데,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저러다가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제 얼굴을 찾지 않을까?' 했는데, 끝까지 긴가민가한 얼굴로 연기를 펼친 작품이었다. 그 이유라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미래에서 온 자신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분장이 아니더라도 그 자연스러움을 살릴 수 있었을 정도로 브루스 윌리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그의 노력이 엿보였던 작품이었다. 얼굴이 아주 다른게 아니라 미묘하게 (긴가민가 수준) 다른 경우라 어떤 면에서는 익숙한 그가 보였다가도, 다른 장면에서는 낯선 그를 보게 되기도 했는데, 조셉 고든 레빗의 팬이라면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다른 얼굴로 연기하는 JGL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하다.


현재 조셉 고든 레빗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 (Lincoln, 2012)'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연기를 마쳤으며,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과 '다빈치 코드'의 후속작 '천사와 악마'를 연출했던 데이빗 코엡 감독의 신작 '프리미엄 러쉬 (Premium Rush, 2012)'에도 출연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감독, 주연, 각본까지 맡은 영화 '돈 존스 어딕션 (Don Jon's Addiction, 2013)'까지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품은 그 외에도 줄리안 무어와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하고 있어 더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를 넘어서서 이제는 감독과 각본에 까지 영역을 넓힌 JGL의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 기대해본다!


'연대기' 시리즈는 주인공의 작품이나 앨범이 추가될 때마다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조셉 고든 레빗 출연작 리뷰

* 브릭 (Brick, 2005) _ 누아르 장르의 진화 (http://www.realfolkblues.co.kr/449)
*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 _ 예고편을 좀 더 실감나게 즐기는 방법 (http://www.realfolkblues.co.kr/1054)
*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 2009) _ 내게도 썸머가 있었다 (http://www.realfolkblues.co.kr/1189)
* 인셉션 (Inception, 2010) _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스스로 발전하는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330)
* 인셉션 _ 블루레이 리뷰 (http://www.realfolkblues.co.kr/1419)
* 50/50 (,2012) _ 보이지 않던 반대편의 50%에 대해 (http://www.realfolkblues.co.kr/1571)
*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_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되다
(http://realfolkblues.co.kr/1669)
* 루퍼 (Looper, 2012) _ 흥미로운 장르영화 그리고 설마의 가능성 (http://realfolkblues.co.kr/1702)




자료참고 / imdb.com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각 영화사와 원저작자에 있습니다.







루퍼 (Looper, 2012)

흥미로운 장르 영화 그리고 설마의 가능성



조셉 고든 레빗과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루퍼 (Looper, 20120)'를 보기 전까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에 팬이라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된 영화였는데, 만약 감독이 라이언 존슨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브릭 (Brick, 2005)'을 연출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더 기대를 했을 것이다. 루퍼는 예고편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시간 여행'에 포인트가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소재로 장르 영화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감독의 전작이 '브릭'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아~'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브릭'이야말로 장르 영화를 아이디어로 승화시킨 매력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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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루퍼'를 SF영화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SF액션은 더더욱).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같이 구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재구성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와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즉, 몇몇 장면은 시간 여행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의 관계 활용 같이) 이런 류의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내지만, 논리적으로 파고들자면 이 영화의 시간 여행은 어렵지 않게 모순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쨋든 깨알 같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소재를 던져준 것이 실수였다면 실수겠지만, '루퍼'에서 시간 여행은 극 중 젊은 '조' 조셉 고든 레빗이 나이가 들어 늙은 '조' 브루스 윌리스로 변한다는 설정을 반박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영화 속 시간 여행은 그저 소재와 배경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운 감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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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감독인 라이언 존슨은 시간 여행이 가미된 서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주인공 조가 미래에서 온 타켓을 제거하는 곳인 캔사스 농지의 풍경도 그렇고, 다른 루퍼들의 총기도 마찬가지지만 조가 사용하는 장총도 서부 영화를 떠올리게 하고, 추격하는 시퀀스는 물론 후반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갈대밭 속 집 한 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자의 분위기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모자'에 대한 내용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그런데 '루퍼'가 조금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클래식한 장르적 특성을 머금은 동시에 후반부에 가면 전혀 다른 류의 장르를 껴안음과 동시에 감성적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사실 후반부의 급격한 전개는 한 편으론 컬트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이질적인 측면이 강했는데, 이 두 가지의 장르가 크게 어긋나지 않게 결합된 것은 영화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감성적인 면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의 조와 미래의 조가 모두 감성적인 측면에서 영화 속 사건을 접근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관객이 어렵지 않게 장르 영화에 녹아들 수 있는 이유였다고 생각되는데, 반대로 이렇게 감성적인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거였다면 좀 더 두 주인공 (본래는 하나인)의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조'의 입장에 서야 할지, 아니면 둘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고 이들의 마지막 결정에 대해 더 깊게 궁금증을 갖고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아래 단락은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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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맨 앞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면에 대해서 일일이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만, 극장을 나오며 '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아직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화의 마지막 미래에서 온 조가 어린 레인메이커를 죽이려고 할 때, 젊은 조는 잠시 멈춰 생각한 뒤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겨 미래의 조가 어린 레인메이커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 이후 쓰러진 현재의 조를 어루만지는 여자(레인메이커의 엄마)의 손길에서, 그리고 그 손길을 몹시 비중있게 담고 있는 연출에서 '설마?'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자면 현재의 조가 미래에서 온 조에게 어린 레인메이커의 엄마가 살해되고 이 상처와 분노를 갖고 크게 되는 아이가 결국 분노를 가득 담은 레인메이커가 되겠다 싶어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겼다고 보는게 맞을 텐데, 1차적으로 이 연상 (혹은 회상) 장면의 디테일에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2차적으로는 바로 그 문제의 손길 때문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예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엄마가 총을 맞은 뒤 분노한 채로 도망치는 레인메이커의 이미지가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처럼 매우 상세했기 때문에 설마 이것이 '그럴 것이다' 라는 예상이 아니라 '그랬었지'하는 기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 초반 현재의 조는 어릴 때 엄마가 머리를 이렇게 만져주곤 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죽은 조를 어루만지는 레인메이커의 엄마의 손길이 바로 이것과 같았고 그 다음 장면에 바로 레인메이커의 옆 머리 부분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더 있고 영화가 끝났다면 모를 텐데 바로 이 장면에서 영화가 그냥 아무런 소리 없이 정적으로 마무리 되어 버린 것이 더더욱 '어? 설마?'하는 기대와 의문을 갖게 했다. 즉, 조가 레인메이커라는 (이상한) 소린데, 물론 이렇게 되려면 몇 가지 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발생하지만, 이 영화 자체가 이 부분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구조이기에 '그렇다면?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예 논리적으로 완벽한 빈틈 없는 영화였다면 바로 답이 나왔을 텐데, 영화 자체가 느슨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보니 이런 생각도 (그 손길은 도대체 마지막에 왜 넣은 것이야 ㅠ)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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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존슨의 '루퍼'는 결과적으로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논리가 무너져도 매력을 잃지 않을 정도의 장르적 매력을 담고 있는 작품이랄까.



1. 개인적으로 조셉 고든 레빗의 분장은 없어도 상관없었다는 쪽이에요. 미래의 조인 브루스 윌리스를 염두에 둔 것 같기는 한데, 저는 이런 분장 없이도 유대감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조토끼의 연기력을 믿으니까요.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런 측면에서 분장이 별로 도움이 안되었다는 얘기도...


2. 폴 다노는 또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군요. '리틀 미스 선샤인'에 이어 '데어 윌 비 블러드'에 나올 땐 더 많은 영화에 주연급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말이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DMG Entertainment 에 있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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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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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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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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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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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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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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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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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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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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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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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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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고든 레빗의 50/50 DVD를 응원합니다


조셉 고든 레빗, 세스 로건 주연의 영화 '50/50'은 자칫 신파로만 흐를 수 있었던 시한부 주인공의 드라마를 덤덤하면서도 본질을 제대로 전달한 인상 깊은 영화였다.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은 대부분 DVD나 블루레이를 구입하는 편인데, 확실히 블루레이로 넘어오면서 부터는 한 단계 이전의 포맷인 DVD를 구입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었든 것이 사실이다. 뭐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LP와 CD의 관계와는 달리 DVD와 Blu-ray 간에는 DVD로 볼 때의 특별한 애틋함이나 장점이 있는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VHS에 대한 애틋함이라면 몰라도) 굳이 더 좋지 않은 화질과 사운드의 DVD를 구매하게 되는 일도 (동일한 작품이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는 전제하에) DVD발매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일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 시야에 들어 온, 정확히 얘기하자면 시야에 들어온 건 오래 됬는데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계속 아른거리는 DVD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50/50' 였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50/50의 국내 DVD 출시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적극적으로 달려들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블루레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에 블루레이가 정식 출시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DVD를 구매할 정도의 감동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봉시에만 이벤트를 진행하던 대부분의 영화들과는 달리 DVD 발매와 관련 상품들 (팔찌, 컵, 포스터, 피규어 등)의 판매 및 홍보가 DVD출시 시점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일단 관심을 끌게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뭐, 팩샷이 깔끔하네~'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이후 공개된 DVD 패키지의 모습을 보니 과연 이 타이틀이 현재 국내 DVD시장에 적합한가 하는 좋은 의미의 부담스러움과 걱정마저 들며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단 현재 어려운 국내 DVD시장의 규모를 감안했을 때 '50/50'같이 대중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거둔 작품이 아닌 영화에 DVD발매를 결정하는 것 자체도 결코 쉽지 않은데, 발매 여부를 뛰어 넘어서 이처럼 패키지에 많은 공을 들여 출시하는 것이나 스티키 몬스터 랩과의 콜라보레이션처럼 관련 상품을 만드는 데에 많은 아이디어와 리소스를 투자한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또한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거나 DVD의 프리오더를 진행하는 것이 전문샾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사이트를 오픈하여 꾸준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실로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http://50-50shop.co.kr)


대한민국에서 DVD나 블루레이를 즐기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시장 자체가 워낙에 협소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논문을 써야할 정도;;) 이런 시장에 어울리지 않는(?) DVD 패키지를 보면 반가움과 동시에 사용자로서 걱정도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진다. '저렇게해도 DVD는 정말 적은 량이 팔릴 텐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말이다. 이런 걱정을 소비자가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어쨋든 이럴 수 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DVD에까지 꼼꼼한 신경을 쓰고 있는 수입사 프레인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에잇, 50/50 DVD를 살 마음까지는 없었는데 사야겠다!!



1. 여담이지만 앞으로 프레인이(다른 분야에서) 잘 되서 DVD나 블루레이 쪽에서 이 정도의 풍족한 취미 생활을 계속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50/50 DVD 및 관련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은 여기 http://50-50shop.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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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보이지 않던 반대편의 50%에 대해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50/50'를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는 정말 그 뿐이었다. 이 영화가 암으로 인해 생존확률 50%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것도,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이자 세스 로건의 실제 친구이기도 한 윌 라이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고 나서야 알았을 정도였으니. 죽음을 앞두거나 직면한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는다. 어느 덧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에 일탈이나 커다란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 혹은 너무나도 차분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약한 속으로는 공포와 슬픔을 겪는 이야기일텐데, 이 영화 '50/50'는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 코미디적 요소까지 더하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대부분 '코미디'로 분류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개인사가 얽혀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다른 이유인지 그다지 코미디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죽음을 직면한 친구 곁에 코믹한 친구가 있을 뿐, 영화의 근본과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50/50'은 죽음을 직면한 한 남자(반대로 얘기하자면 삶을 직면하게 된 한 남자)와 그의 가족, 친구들이 이를 함께 겪어가는 내용을 비교적 무겁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 Mandate Pictures . All rights reserved


극중 애덤 (조셉 고든 레빗)이 암 선고를 받은 뒤 겪게 되는 과정들은 앞서 말했듯 결코 특별하지 않다. 처음에는 내가 그럴리 없다고 인정하지 못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나서는 자신은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고 하지만, 어느덧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있는 (불안해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도 아무렇지 않다고 믿고 싶었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던 자신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순간도 역시 등장한다. 이렇듯 별로 새로울 것은 없는 전형적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다가오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50/50'에서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한 애덤에게는 이러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오만가지 복잡한 심리상태와 자주 표현되거나 혹은 숨기고 싶어하는 감정들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러한 진정성있는 심리 상태가 느껴졌다. 전형적이되 애덤의 이야기가 '뭐, 영화니까'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실화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JGL의 눈빛과 표정 하나 하나는 그럴 수 있다는, 더 나아가 '그래, 맞아'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이로 인해 '50/50'은 설사 전형적인 틀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 영화라 하더라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 Mandate Pictures .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시선은 바로 애덤 주변 인물들의 묘사다. 연인, 친구, 가족, 상담사 등 애덤이 암에 걸리기 전 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과 이후 알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와 변화에 대해 영화는 사실적이면서도 진정성있게 그려내고 있는데, 일단 친구인 카일(세스 로건)에 있어서는 세스 로건 스스로가 실제 그 인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감성적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둔 채 묘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친구인 카일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덤의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 적극적이기 보다는 소극적으로 묘사한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즉, 애덤의 불안함 만큼이나 걱정과 슬픔을 겪는 주변인들의 비중을 대등할 정도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 내면의 이야기를 매우 미미하게 가져갔음에도 이 영화가 죽음을 직면하게 된 애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애덤과 그 주변이 함께 겪는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것이야 말로 '50/50'의 가장 큰 매력이자 영민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Mandate Pictures . All rights reserved


결론적으로 '50/50'은 죽음을 맞닥들이게 된 주인공 애덤의 심리를 진정성있게 묘사하는 동시에(50), 애덤의 친구와 가족들의 걱정하는 마음을 역시 진정성있고 의연하게 그리고 있는(50) 작품이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50%의 희망과 이로 인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관계 속 반대편의 50%를 볼 수 있게 해준, 새롭지는 않지만 의미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1. 브라이드 달라스 하워드는 이 영화에서 마치 썸머 처럼 나오더군요. 아, 썸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렇게 조셉 고든 레빗이 멀쩡하게 나오는 영화에서 썸머가 곁에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더군요 ㅎ


2. 삽입된 곡들의 센스가 다 좋았어요. 라디오헤드의 'High and Dry'는 이 영화에서도 아주 잘 어울리더군요.


3. 안나 캔드릭은 전작 '인 디 에어'와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하고 있는데, 이런 사회초년생 이미지가 굳어지는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ㅎ


4. 아주 소소한 얘기로, 극중 애덤에게 전화가 걸려오는데 아이폰 기본 벨소리의 익숙한 멜로디 하나 때문에 급 공감대가 형성되더군요 ㅋㅋ JGL과 나도 같은 시대를 살고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정도였어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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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Days of Summer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영화를 보기 전에도 느껴지는 기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사운드트랙을 구매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인데 (하지만 일반인이 음반을 사는 수보다는 나의 이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_-;), 이런 경우 구매의 이유는 약 2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영화 자체가 워낙에 기대작이라 좋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 두번째는 영화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지만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이 역시 좋아질 것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 이렇게 일텐데, 조셉 고든-레빗과 조이 데샤넬이 주연을 맡은 영화 <500일의 썸머 ((500)Days of Summer)>의 사운드트랙은 이 두 가지가 다 포함된 경우였던 것 같아요. 조이 데샤넬 팬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영화에 대한 기대야 말할 것도 없겠고(개봉 못하는 줄 알았었어요 ㅠ),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은 조이 양이 멤버로 있는 'She & Him'을 비롯해, Doves, The Smith, Feist, Wolfmother 등이 포진되어 있음은 물론 이 밖에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기대해 볼만한 밴드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기에, 영화를 미처 보기도 전에 사운드트랙을 집어 들게 되었네요.





지난 번 뮤지컬 영화 <나인>의 사운드트랙을 리뷰하면서, 사운드트랙의 장점은 역시 노래를 들을 때 장면이 저절로 연상되는 것이 최고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에게 있어 <500일의 썸머> 사운드트랙과의 첫 만남은, 분명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접한 사운드트랙은 이런 감점을 충분히 감안했음에도 음악만으로 만족스러운, 더 나아가 영화를 한껏 상상하게 하는 매력을 지닌 앨범이었어요.

독특하게 영화 속 남녀를 소개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두 번째 트랙인 Regina Spektor의 'Us'부터 본격적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Regina Spektor라는 뮤지션에 대해 평소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 곡만으로도 그녀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매력적인 보컬이자 곡이었어요. 특히 이 곡에서 Regina Spektor의 보컬은 마치 한창 때 bjork의 창법을 연상케 하는데, bjork의 광팬인 저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보컬이더군요. 예전 'Human Behaviour' 시절의 뷰욕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좋았어요. 앨범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The Smith의 곡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과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이렇게 두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후자는 She & Him의 리메이크 버전으로도 만나볼 수 있어요. Black Lips의 'Bad Kids'는 복고풍의 리듬과 멜로디 라인의 가벼운 록큰롤 곡이고, Doves의 'There Goes The Fear' 역시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의 곡으로 전체적으로 듣기 편한 곡 구성을 담고 있습니다.

<500일의 썸머> 사운드트랙에서는 브릿 팝, 인디 록 곡들과 더불어
Hall & Oates의 'You Make Me Dreams'나 Simon & Garfunkel의 'Bookends'같은 올드팝들도 수록이 되었는데, 영화에 삽입된 올드 팝들이 여럿 그렇듯이 이 곡들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려운 편입니다. 이 곡들이 무척이나 세련되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앨범 전체적인 구성면에서 물흐르듯 자연스런 진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불어 발음 만으로도 색다른 분위기를 전하는 Carla Bruni의 'Quelqu’un M’a Dit'은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를 전하고, Feist의 'Mushaboom' 같은 곡은 마치 조이 데샤넬이 부르는 듯한 착각 마저 느껴질 정도로(Feist의 음악을 이전에 여럿 들어보았음에도) 이 앨범과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곡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앞서 bjork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했던 Regina Spektor는 'Hero'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을 또 한번 수록하였는데, 이 곡을 듣고나니 더욱 명확해 지더군요. Regina Spektor의 솔로 앨범을 어여 구입해 봐야겠다고 말이죠. 참 심플하고 담백한 악기구성과 보컬이지만 무언가 애절함과 진심이 전해지는 보컬이었어요. 그녀의 앨범은 언제고 구매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Simon & Garfunkel의 'Bookends'는 이렇게 들으니 마치 Eels처럼 느껴지기 까지 하네요. 하긴 Eels 비롯한 수 많은 뮤지션들이 사이먼 앤 가펑클에게서 이런 감성을 배워온 것이겠지요.

Wolfmother의 Vagabond는 살짝 우울해졌던 앨범에 다시금 활기를 불러옵니다. Andrew Stockdale의 보컬은 역시나 매력적이구요. 앨범을 통틀어 가장 강한(?) 곡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크게 튀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는 아니에요. 이런 곡들이 어떤 장면에 사용되었을지 새삼 궁금해지는 순간이군요. Meaghan Smith의 'Here Comes Your Man'은 마치 미란다 줄라이의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전주가 먼저 반기는 곡이에요. 후반부의 진행은 컨트리에 가까운데 묘하게 장르를 다루는 재미있는 곡이었습니다.





마지막 곡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The Smith의 곡인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를 She & Him의 조이 데샤넬의 보컬로 만나볼 수 있어요. 기존 She & Him의 곡들보다 훨씬 고전적인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는 조이 양의 곡을 듣는 것도 인상적이네요. 'Please, Please, Please'하는 후렴구의 애절함은 (팬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쪽이 더 애절하네요 ^^;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사운드트랙에 대한 감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 될지도 모를 일이에요. 어찌 되었든 사운드트랙이란 영화와 별개로는 생각해볼 수 없는 부분이 다분하고, 어떤 장면에 어떻게 쓰였는지에 따라 곡이 본래 지닌 매력을 더 배가 시킬 수도 감소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영화를 더더욱 (아직도 '더'가 남았다면!) 보고 싶어졌다는것!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나서 사운드트랙에 대한 짧은 감상을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브릭 (Brick, 2005)
누아르 장르의 진화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이 되었다 혹은 선댄스에서 무슨 상을 수상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부터인가 개인적으로 깐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 등의 수상작이라는 수사들보다 한층 더 끌리는 홍보문구가 된 것 같다. 2005년작이지만 국내에는 최근 개봉한 <브릭> 역시, 그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끌려서 극장으로 이끌렸던 영화였다. 재기발랄한 신인들의 등용문 혹은 무언가 주류 정서와는 다른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영화들이 주로 출품되는 선댄스 영화제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배우들도 감독도 낯설은 영화였지만,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선댄스의 선택답게 첫 감독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치밀한 연출력과 내러티브, 그리고 장르적인 특성을 완전히 업그레이드한 라이언 존슨 감독은 주연을 맡은 조셉 고든 레빗과 더불어 앞으로 주목해야할 영화인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영화의 장르는 기본적으로 누아르 혹은 미스테리라고 보면 될 텐데, 누아르라는 장르는 사실 21세기에 성행하는 장르라기보다는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가 아닌가. <브릭>은 기본적으론 누아르 장르이지만 그 배경을 완전히 현대로 가져오는데 성공하였다. 바바리 코드에 중절모를 쓴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며, 배경도 무슨 암흑가 따위가 아니라 평범한 고등학교 일 뿐이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가져오는 시도는 자칫하면 코미디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브릭>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더불어 21세기 현대의 스타일에 완전히 녹여내면서 누아르 장르의 성공적인 진화를 이끌어냈다. 고등학교와 마약이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그 사이에서 세력이 나뉘고 갈등이 생기며, 그 사이에 생긴 중요한 사건에 대해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만 뺀다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물론 배경을 바꾸더라도 이 정도 연출이면 평범함은 넘어서는 괜찮은 작품이 되었을 터). 하지만 고등학교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면서 영화의 뻔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젊고 신선한 영화가 되었고,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코스튬 플레이는 상당히 인상적이면서도 재미있었는데, 패거리를 형상화 하면서 한 편으론 이를 감각적으로

비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시작은 어느 스릴러 영화 못지 않게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수구에 버려진 시체와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 주인공 브랜든은 아마도 이전에 내부밀고 형식으로 친구를 학교에 고발한 일로 인해 일종의 '왕따'가 되어버린 캐릭터로서 자신이 스스로 몸을 내던지고 고민해가며 홀로 사건을 풀어간다(물론 친한 친구 하나가 도와주긴 하지만). 그리고 여주인공인 에밀리 역시 주류 친구들의 무리에 끼기 위해 마약에 가까워지게 되고. 이렇듯 완전히 마약 얘기로만 가는거 같지만 한편으론 현재 고등학교 내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슬쩍 껴넣고 있는 치밀함이 보인다. 그리고 지하실에선 엄청난 마약 거래와 음모를 꾸미지만, 지하실을 나와 거실로 올라오면 엄마가 시리얼과 음료수를 챙겨주는 고등학생의 모습을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이렇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면에 누아르 정서를 새겨넣으며 영화를 끝까지 몰입할 수 있고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거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잠깐 잠깐 정신을 잃고 깨어나는 부분을 삽입해 왠지 몽환적인 느낌도 들게 하고 있다.




(영화 속 브랜든의 저 포즈는 한동안 인상깊게 남을 것 같다. 점퍼를 입으면 꼭 손을 주머니에 깊게 파고 넣는

저 스타일. 점퍼를 안입으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라 ㅎ)

분명 영화 시작해서 얼마 안되었을 때는 '이게 뭔가'하는 이질감이 느껴졌던 영화였지만,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갈 수록 점점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재주가 있는 작품이었다. 히스 레저를 꼭 빼닮은 주인공 조셉 고든 레빗은 이 영화를 통해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21세기에 누아르 장르가 진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 <브릭>!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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