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Woody Allen, a Documentary, 2012)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우디 앨런



예전에는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좋아진 감독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감독이라면 국내에는 홍상수 감독이요, 국외에서는 우디 앨런 감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예전 영화들은 몇몇 보아왔지만 사실 그의 많은 작품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작품만을 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디 앨런 영화의 재미를 본격적으로 느낀 것은 어쩌면 2005년 작 '매치 포인트 (Match Point)' 부터 인 것 같다 (덜 우디 앨런스러운 영화부터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함정). 여튼 그 전까지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은,  그 이후 '스쿠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환상의 그대'를 지나 '미드나잇 파리'에 이르면서, 이제는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시기적인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거의 제대로 못 본 상태에서 이미 팬이 되어버린 경우라, 그의 전작들과 그의 과거에 대해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작품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만나면서 좀 더 그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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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디 앨런의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정말로 다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의 경우 어느 한 시기나 사건에 고정되거나, 혹은 시작은 모두 다루지만 현재까지는 다루지 않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운 점들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로 현재 시점, 그러니까 '미드나잇 파리'를 마치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투 롬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 2012)'를 준비하고 있는 시점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더 느껴졌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이 현실감 혹은 동시간대를 느낄 수 있도록 늦지 않게 국내 개봉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 몰랐던 그의 초창기 활동들 즉, 영화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스탠딩 코미디언과 코미디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비교적 자세히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본명인 앨런 스튜어트 코닉스버그 대신 어떻게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는지 (알고 보면 별 것 없지만;), 작은 지역 신문에 코미디를 기고하던 이가 어떻게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당시의 우디 앨런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당시의 귀한 자료들을 보니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미국인들만 웃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인지 분간은 안되어 덜 웃긴 개그들도 있었지만, 지금봐도 우스운 장면들이 많았을 정도로 영화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으로서의 우디 앨런도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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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가 왜 영화 판에 뛰어들었고 더 나아가 왜 영화 감독이 되려 했는지부터, 그렇게 시작한 영화 감독으로서의 활동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직접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층 깊게 만나볼 수 있는데, 우디 앨런이 쿨한 사람이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런가 그의 대한 이야기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들로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런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지나치는 것들이 그 인물에 대한 단점이나 약점 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디 앨런에게 커리어의 끝을 예상했을 정도의 스캔들이었던 양녀 '순이'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감정적인 측면보다 사실을 전달하는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 다른 이유는, 제 3자들로 인해 소개되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소개하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우디 앨런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관련된 과거들, 그리고 자신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함에 있어서 코멘트가 필요한 적제적소에 등장해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이렇듯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개봉 제목처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알려주는 동시에 제법 '잘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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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고나면 누구나 그의 전작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극장을 나와 집으로 오자마자 집에 DVD랙을 뒤져서 그의 전작들의 소장여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처 소장하지 못한 작품들의 DVD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쇼핑몰을 전전하기에 이르렀다. 1935년 생으로 올해 80이 다되어가는 이 감독은, 노장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아직도 정력적으로 작품들을 매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작품들은 심지어 더 좋아지고 더 젊음과 노련함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그의 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디 앨런은 과거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신작 '투 롬 위드 러브'도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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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의 전작 가운데서 현재 가장 보고 싶은건 '애니홀'과 '젤리그', '슬리퍼' 그리고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요. 그 가운데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일 것 같네요 ㅎㅎ


2. '미드나잇 파리'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었으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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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2 (Taken 2, 2012)

아빠와 운전면허 만점과외하기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 이후 이 스타일의 액션을 가장 대중적으로 잘 활용한 영화였던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의 속편을 보았다. 전편도 그랬지만 속편 역시 특별한 기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리암 니슨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악당들을 처리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뿐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속편이라는 것이 이 영화에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본래 '테이큰' 같은 영화에 복잡한 이야기가 있을리 없고 단순하면 할 수록 깔끔하게 떨어지는 영화라고 봤을 때, 바로 이 점을 그대로 반복해야 하나 아니면 그 장점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하나 하는 딜레마에 스스로 빠져버린 영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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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이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테이큰 2'는 새로운 것과 잘하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영화였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아빠'가 (캐릭터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 보다 아빠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터) 또 한 번 가족을 납치 당하는 위기에 놓여 전직 요원답게 훌훌 정리해버리는 것은 맞지만, 전작의 이야기가 이어져 복수라는 것에 대상이 되었다는 점과 그 스스로도 납치를 당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이 조금은 새롭게 시도한 점이라고 해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테이큰'이 보여준 영화의 구조 자체가 단순히 배경과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반복 가능한 (반복한다고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뿐더러, 새롭게 시도해보려 한 것들의 완성도가 워낙에 떨어지다보니 (그런데 우스운건 이 새로운 이야기가 완성도와 복잡함을 갖을 수록 영화는 이 영화는 산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는 영화라는 점이다), 결국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 아쉬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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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글의 제목으로 쓴 것처럼 '아빠와 함께하는 운전면허 만점과외하기' 혹은 '아빠와 함께하는 실전도로연수!'가 오히려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어버렸다. 확실히 감독은 이 점을 염두해둔 듯 하다. 운전면허라는 거대한 삶의 시험을 배경에 깔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과 에피소드 중 하나로 이스탄불에서 벌어지는 납치극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 (반정도만 농담이다). 딸과의 관계에 있어서 운전면허 시험 연습이라는 모티브를 제공했던 영화는, 이후 이스탄불의 극한 상황에 부녀를 몰아놓고 그야말로 돈주고도 하기 힘든 극한의 도로주행연수를 겪게 한다. 악당들을 피해 이스탄불의 좁은 골목을 차로 도망칠 때도 아빠는 딸에게 운전연습을 정확히 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여기서 좌회선!' '더 밟아!' '직진해!' 등 그 어떤 어조보다도 강한 어조로 도로연수를 진행한다. 이 에피소드(?)가 다 끝나고 나서 영화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홀연히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돌아와 만점짜리 운전실력을 갖게 된 딸의 모습을 비춘다. 예전 키에누 리브스의 '콘스탄틴'을 보고나서 우스게 소리로 '이건 금연홍보영화야' 했던 것처럼, '테이큰 2' 역시 운전면허 시험에 대한 거대한 에피소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콘스탄틴'의 경우는 우스게 소리였고, '테이큰 2'는 그것 만은 아닌 것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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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이 험난한 납치극을 빙자한 도로연수 과정 속에서 철저히 소외 당하는 엄마 캐릭터가 안쓰럽게까지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녀가 누구던가. '엑스맨'의 진 그레이, 팜케 얀센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철저히 버려지는 (진짜 버려짐) 모습이었는데, 후반부에 리암 니슨이 또 다시 '여기 잠깐만 있어, 곧 다시 올게'라고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아... 그녀는 무슨 죄인가 (더군다나 현재 남편도 아니고 이혼한 상태의 남편인데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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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우린 어떤 왕을 뽑아야할까



'마파도 (2005)'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를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의 신작, 이병헌 주연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익숙한 '왕자와 거지'의 설정을 조선의 15대왕 '광해'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이병헌의 심각하고도 멋진 이미지와 포스터에, 광해를 둘러싼 음모와 미스테리가 담긴 작품일 줄로만 알았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심각함 보다는 웃음이 시종일관 함께하는 오락영화였다.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와 '왕'이라는 설정의 만남은 사뭇 기대되는 조합이었는데, 그 가능성과 아쉬움을 모두 보여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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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한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있던 광해군 8년, 안전을 위해 자신과 꼭 닮은 이를 찾아 가끔씩 대역을 세우던 광해는, 어느날 반대파의 음모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게 되고 이에 허균은 가끔 왕의 대역을 하던 '하선'을 왕의 대역으로 세우게 된다. 하선은 처음에는 그저 왕이라는 자리에 신기해하기도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주변 상황(조선이 처한 상황까지)을 알게 되면서 점차 그저 대역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영화의 그 다음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단순한 대역이었던 하선을 통해 진정한 왕과 정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끔 하는 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시기적절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가볍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본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심각함 보다는 시종일관 유머가 섞여 있는 무겁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그 유머가 겉돌지는 않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아직도 한국영화에서는 극과 너무 무관한, 누가 봐도 저 캐릭터는 웃길려고 나왔구나 하는 캐릭터가 그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서 극에 녹아들지 못한 채 혼자 개그를 해서 관객을 민망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적어도 '광해'의 유머는 극의 분위기와는 잘 녹아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 균형이 중요하다 하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균형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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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이유가 앞서 얘기한 '시기' 때문인 듯 한데, 평소 같으면 너무 진부한 하선의 정의로운 울부짖음에 '그래,  말을 다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라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겠지만, 대한민국의 중요한 선거를 앞 둔 시점에서는 이 순진무구라고 해도 좋을 누구나 다 아는 정의의 메시지가 그냥 들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느 누가 정의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최근의 대한민국은 그른 것이 옳은 것으로 둔갑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당당하게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또 용인되는 (혹은 설득되는) 세상이다보니, 보통 때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아주 기본적인 정의 구현이 울컥할 정도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왕이 되고자 한 하선의 사자후는 결국 '백성을 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 하겠는데, 그것이 왕과 정치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워낙 백성을 위해주는 왕과 정치를 최근 접하지 못하다보니, 이 뻔하디 뻔한 진리가 감동적일 만큼 팍팍 뇌리에 꽂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문제이지만, 이런 시대를 잘 겨냥한 영화의 촉이라면 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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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는 12월 어떤 왕을 뽑아야 할까? 아니 과연 누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자일까.



1. 여기서 '왕 = 대통령'은 당연히 비유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왕 같은 자리냐고 하시면 얘기가 산으로 가요. 그런데 더 씁쓸한 건 영화 속 광해는 왕이면서도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것에 비해, 우리가 겪었던 대통령은 영화 속 광해를 넘어서는 권력을 휘둘렀죠. 참.


2. 이 영화의 포인트는 누가 뭐래도 이병헌이라는 배우입니다. '왜 그랬어요?'라는 대사들을 땐 소름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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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Pieta, 2012)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 번째 영화 '피에타'를 보았다.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그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에 있어서 호불호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영화는 항상 '날 것'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날 것을 요리하는 방식의 정도에 따라 그의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달랐던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 '피에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보아온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여전히 그의 방식은 날 것에 가깝고 불편함을 숨기지 않는 방식은 그대로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요리의 방식과 메시지를 비교적 은유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 김기덕필름. All rights reserved


잔인한 방법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을 찾아가 보험금을 뜯어내는 강도 (이정진)에게, 어느 날 자신이 엄마라고 말하는 여자 (조민수)가 나타난다. 처음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믿지 못하던 강도는 끈질기게 자신의 곁을 지키는 여자를 점점 엄마로 인정하며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김기덕 감독은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렇듯 불편한 진실을 영화화 하는 것에 대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여러 감독들이 이미 이야기하고 있으니 다른 감독들이 잘 다루지 않는 어두운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겠다는 생각에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고 했는데, '피에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앞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되었다는 소감처럼, '피에타'가 담고 있는 삶 혹은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이면이 전작들에 비해 가장 쓰라리게 느껴졌다. '피에타'의 메시지는 상당히 직접적이다. 종교적인 구원의 색채를 담고는 있지만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도시와 이야기는 에둘러 은유하려고 들지 않는다. 


청계천에 위치한 작은 공업 상가들을 배경으로 그들이 직면한 현실의 삶의 문제, 이자가 원금의 10배 넘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생활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빚을 질 수 밖에는 없는 현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사지로 몰아넣은 자본주의와 대한민국의 현실은, 얼핏보기에 마치 우리 삶과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인냥 진행되지만 바로 서울하고도 청계천, 즉 현실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인지시킨다. 청계천이 훤히 바라다보이는 건물의 높은 곳에 올라 평생을 해온 삶의 터전이 곧 사라질 것을 비관하는 장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기 보다는 그냥 '현실'이다.


(이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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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라는 제목과 조민수와 이정진이 함께한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모습을 한 포스터를 보았을 때 눈치챌 수 있었듯, 이 영화는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구원에 관한 영화였다. 그런데 이런 구도로 가던 영화는 작은 반전을 내어 놓는다. 바로 조민수가 연기한 여자가 강도의 엄마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간 이의 어머니였다는 것. 영화 내내 강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 '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바로 이 악마의 자식을 잔인한 방식으로 처단하는 또 다른 잔인한 복수를 여자는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에타'는 이것이 반전으로 읽히지 않는다. 즉, 여자가 강도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여자가 속이려고 했던 강도의 어머니로서의 이야기로도 읽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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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자는 마지막에가서 자신의 아들에게 '강도도 너무 불쌍해'하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영화 속 사실만을 근거로 하자면 이 연민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복수로 더 잔인한 방식을 택했을 만큼 독한 마음을 먹었던 여자가, 그 복수의 상대에게 '너무 불쌍해'라며 연민을 갖는 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피에타'는 강도와 여자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강도를 묘사함에 있어서 동정심을 유발시킬 만한 장면과 설정들을 담기는 했지만, 그것이 강도를 단순히 사회가 만든 악마로서만 봐달라는 방식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가 강도를 아들로 대하며 겪는 이야기들은 이 영화에 작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설령 복수를 위한 거짓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처음부터 연민 같은 건 없었고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그 복수의 날이 강도에게 향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가운데 이들에게 (여자 스스로를 포함하여)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간곡한 바램의 틈을 작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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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가 종교적인 구원의 메시지로 느껴진 것은 영화가 선택한 마지막 때문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빚을 질 수 밖에는 없는 서민들의 삶. 내 아이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두 손을 내어놓은 삶. 악마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다른 삶을 죽음으로 내몰지만 그 자신도 구원받지는 못하는 삶. 복수로 자신과 아들의 삶을 구원하고자 하지만 결국 더 큰 슬픔만을 간직하게 된 삶.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가 유난히도 아픈 것은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결국 누구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본인이 선택한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결국 여자는 마지막에 더 큰 아픔의 눈물을 흘리기는 했찌만 본래 계획했던 그대로 스스로 몸을 던졌고, 강도 역시 자신의 악마와도 같은 행동으로 더 힘든 삶에 놓인 이들을 빌려 스스로 잔인한 죽음의 길을 택했다. 이것은 순교는 절대 아닐 뿐더러 구원에 이른 죽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마도 이 영화가 영화 속 인물들에게 허한 유일한 자비라면 마지막 여자를 뒤에서 밀어 버리려고 했던 할머니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잃은 복수를 행하려던, 이 굴레에서 더 헤어나올 수 없게 될 수 있었던 할머니에게는 여자와 같은 지옥같은 삶을 주지 않은 것이 이 영화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비가 아니었나 싶다.


다시 문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이 영화에서 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느끼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러한 아픔과 죽음이 일어나지만 그 깊이는 보려하지 않는 고층 빌딩 숲과도 같은 사회에 대한 환멸이 결국 종교적인 구원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빚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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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새삼스럽지만 아니 혹은 잘 몰랐거나 알고자 하지 않았던 현실의 아픔을 보게 해 준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오는 내내 '아프다'라는 말만 되뇌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이 아픔이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1.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자세하게 적지는 못하지만 여자와 강도가 처음만나 엄마임을 확인하려는 그 장면에서 출산의 고통, 순간이 느껴졌어요. 양면성이 담긴 이 장면 참 인상적이었어요.


2. 오랜만에 만나는 아주 강렬한, 아픈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3. 글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 작품 가운데는 가장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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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 뱀파이어 헌터 (Abraham Lincoln: Vampire Hunter, 2012)

흥미로운 소재, 그 이상은 역부족




팀 버튼이 제작하고 '원티드'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가 연출한 '링컨 : 뱀파이어 헌터 (Abraham Lincoln: Vampire Hunter, 2012)'를 보았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첫 째도 소재요, 둘 째도 소재였다. 즉, 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였다는 이야기 자체, 그 자체가 솔깃하게 한 것이다. 링컨의 모습을 한 주인공이 도끼를 들고 선 모습이 '호오~ 이거 재미있겠는데?' 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는데, 역시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딱 거기까지, 그 뿐이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가 가장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도자로서의 링컨 (역사에 근거한 부분)과 이 영화가 만들어 낸 뱀파이어 헌터로서의 링컨을 잘 버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링컨 뱀파이어 헌터'라는 제목처럼 이 두 가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만 이 작품은 비로소 흥미로워 질 수 있겠지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지 못하다보니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것 보다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즉, 역사 속 링컨의 모습은 지운 채 그가 그 이면에서 펼쳤던 뱀파이어 헌터로서의 활약상과 이야기에 주목한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는 얘기다. 영화는 심하게 얘기하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전히 동떨어진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까지 보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전환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도 전에) 전환되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그렇다보니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이끄는 링컨에게도, 어머니를 잃고 뱀파이어에게 복수하려는 링컨에게도 매력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화가 더 완성도가 있었더라면 링컨이 다시 도끼를 꺼내들 때 심장이 두근 거릴 정도의 떨림과 기대감이 들어야 하는데, 미세한 떨림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공감대를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액션 역시 기존 뱀파이어 영화에서 그 동안 보여주었던 것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몇몇 회심의 액션 시퀀스가 있기는 했지만 '아, 여기가 회심의 액션 시퀀스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영화가 관객에게 공감대를 얻을 기회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의 매력에도 빠져들기가 쉽지 않았다. 주연을 맡은 벤자민 워커의 경우 외모에서는 어린 리암 니슨이 느껴졌는데, 확실히 후반부 수염 덥수룩한 링컨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에는 성공했으나 스틸컷으로 본 것 이상의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최근 들어 스크린에서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도미닉 쿠퍼 역시,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보자면 그만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너무 평범한 캐릭터였다. 여주인공 역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역시 그 초롱초롱한 눈빛말고는 기억나는게 없을 정도로, 극에 기여하는 바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노역을 연기한 것은 마이너스로 느껴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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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하다보니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참 흥미로운 소재로 구미를 당기게 한 작품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이상의 것은 없었던 아쉬운 영화였다. 차라리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가 아니라 뱀파이어였다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했을지도.



1.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더군요. 나중에 크래딧 보고 알았네요.

2. 팀 버튼이 연출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명성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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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1974)

감독으로서의 야심이 느껴지는 스필버그의 데뷔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초기작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이번에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초기작들과 함께 상영하는 기획적이 있어서 이 작품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1974)'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상 스필버그의 장편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골디 혼의 정말 풋풋한 모습과 더불어, 이제 막 헐리웃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신인 감독 스필버그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가볍지 만은 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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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랜드 특급'은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인, 작고 소소한 일이 어떠한 큰 사건으로 의도치 않게 확대되고 전개되는지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역시나 그렇기 때문에 그 전개과정에 있어 하나하나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 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발생시키는 재미나 볼거리,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영화니까 뭐'하고 넘어가자는 얘기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내용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아이를 보건국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남편을 탈옥시키고 경찰을 납치하여 아이가 있는 슈가랜드로 떠나는 루 진 (골디 혼)의 이야기를 통해, 결론적으로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 가에 대한 점을 납치된 경찰이 변해가는 모습, 그리고 이 작전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고뇌에 빗대어 쓸쓸한 사회 풍자의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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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용적인 측면보다 '슈가랜드 특급'에서 더 흥미로웠던 점은 당시 신인 감독이었던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야심이었다. '듀얼 (Duel,1971)'이 TV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봤을 때 실질적인 장편 영화 데뷔작은 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스필버그는 신인 답지 않은 물량과 연출력을 통해 자신을 헐리웃 스튜디오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그의 대표작 '죠스 (Jaws,1975)'를 다시 보면서 당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신인 감독에게 이러한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 모험에 가까웠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는데, '슈가랜드 특급'을 보니 아주 맨땅에 헤딩하는 정도의 모험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에도 물론 신경쓰고 있지만 그 못지 않게,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을 연출할 만한 능력에 대해서도 강하게 어필하는 듯 했다. 특히, 수십대의 경찰차들을 동원하는 대규모 씬은 물론 이 자동차들이 충돌하고 섞이는 액션 장면까지 연출하며 마치 '나 이런 정도의 물량은 거뜬히 소화하는 감독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즉, 길게 줄을 늘어선 경찰차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관객들의 뇌리에는 물론, 헐리웃 스튜디오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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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랜드 특급' 역시 거의 데뷔작이라 해도 좋을 작품이기에 스필버그의 이후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 점은 '죠스'와 비교해도 그러하다). 하지만 당시 7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자동차 액션들과 정말로 풋풋하다 못해 짜증날 정도로 백치미를 선보이는 골디 혼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었던 영화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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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

이스트우드의 산악 첩보 영화



현존하는 배우 출신 감독 가운데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최고이며, 그냥 감독으로만 보아도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특별전을 (거기다가 스필버그와의 조인트 기획전이라니!)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갖는 다길래, 별로 주저하지 않고 부산행을 택했다. 이번 특별전은 이스트우드와 스필버그의 초기작 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이스트우드의 작품 가운데는 이 작품 '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을 보게 되었다. 예전 DVD로 얼핏 본 것 말고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대형 스크린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기회를 얻은 것 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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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 존 포드의 서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곳. 역시 서부 영화가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트우드는 이 곳을 굉장히 비중있게 담아낸다)



'아이거 빙벽',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이거 제재'라고 번역해야 할 텐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현재는 교수로 지내고 있는 전직 요원 조나단 햄록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마지막 임무 (임무가 바로 아이거에서 상대를 제재 = 암살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냉전 시대의 첩보물을 기본으로 산악 액션 영화가 가미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전체적으로 보자면 지금의 이스트우드 작품의 완성도에는 많이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점들은 엿볼 수 있었다. 일단 오프닝 시퀀스는 지금봐도 멋스럽고 두근거릴 정도로 참 매력적이었다. 최근 본 영화 가운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오프닝이었는데, 그 음악과 더불어 (이 영화도 그렇고 당시의 영화들은 참 영화 음악이 좋다) 별다른 설명이나 부가적인 장치 없이도 영화의 분위기를 절제하며 표현해내는 머진 오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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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용이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데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극중 햄록이 요원으로 복귀하기 위해 다시 '수련'을 하는 시퀀스였다. 요새 요원 영화들 보면, 전직 요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단숨에 전성기 때로 복귀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걸 많이 봐서 인지, 이런 제법 오랜 분량을 투자하는 준비의 시간이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정말로 그냥 준비를 좀 해야겠어, 정도가 아니라 제법 오랜 러닝타임을 할애하여 이 준비와 수련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에는 냉전과 첩보가 깔려 있지만 (극중 햄록은 여러차례 친구냐 적이냐 를 구분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따지고보면 중반부를 넘기까지는 이 수련의 과정 속에 소소한 작은 실마리들이 진행되고 후반부에는 아이거 빙벽을 등반하며 산악 액션 영화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된다. 지금이야 '클리프 행어'나 '얼라이브' '버티칼 리미트' 등 눈 내리는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산악 액션 영화들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바로 이런 영화들에서 보여준 장면이나 설정 등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영화 '아이거 빙벽'에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왜 있지 않나, 산악 액션 영화에서 꼭 나오는 장면들. 뻔히 알면서도 놀라게 되는 아찔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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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이거 빙벽'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배우가 바로 보네타 맥기 (Vonetta McGee) 였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엇, 저렇게 세련되고 현대적인 배우가 당시에 있었다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묘한 매력을 (그 미소를) 갖고 있는 배우로 한 눈에 들어왔다. 태라지 P.헨슨 (Taraji P. Henson)을 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이목구비와 미소는 그녀의 다른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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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스턴트 장면들을 대역없이 소화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마치 성룡 영화에서나 볼 법한 카메라 앵글이 자주 등장합니다. 즉, 이게 배우가 직접 연기한 것이라는 걸 관객에게 어필하는 카메라 워크 말이죠.


2. 확실히 예전 작품이라 이스트우드의 편협된 가치관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시각)이 더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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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리콜 (Total Recall, 2012)

미래로 간 조폭 마누라



정확히 이야기하지만 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 (Total Recall, 2012)'을 볼 때 폴 버호벤의 원작에 대한 비교는 아예 하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었다. 즉, 기대하는 바 자체가 전혀 달랐다. 필립 K.딕이 만들어 낸 미래 사회와 조작된 기억 등을 토대로한 철학적인 메시지들과 세계관을 렌 와이즈먼의 작품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개봉 전 기대평을 썼을 때도, 폴 버호벤의 원작을 따라가거나 이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액션과 볼거리에 치우친 작품으로서 집중한다면 원작과는 아예 다른 의미의 볼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결과적으로 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은 이런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거기에 그냥 가족으로서의 깜짝 출연 정도로만 (잘못) 알고 있었던 케이트 베킨세일이,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로 등장하여 펼친 그 무서운(?) 활약에 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쓰려 다시 생각해봐도 기억에 남는 건, 케이트 베킨세일 뿐이다! 오죽하면 글의 제목을 '미래로 간 조폭 마누라'라고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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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부터 폴 버호벤의 원작을 잊어야지 했었지만 사실 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는데, 거의 생각할 필요 없이 이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전반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차별화된 스토리 전개가 큰 몫을 했는데,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케이트 베킨세일이 연기한 '로리' 캐릭터, 즉 주인공 더글라스 퀘이드 (콜린 파렐)의 가짜 부인 역할로 등장하는 캐릭터의 활용이었다. 전작에서는 샤론 스톤이 연기했던 이 캐릭터를 렌 와이즈먼의 작품에서는 그의 와이프이기도 한 케이트 베킨세일이 연기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이 역할의 비중이 거의 콜린 파렐에 맘먹을 정도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오락영화로서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점이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영화' 토탈리콜'의 액션 시퀀스는 어디선가 다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장면들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상시키는 자기부상 자동차 액션 시퀀스도 그렇고 전반적인 콜로니의 미장센은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시키며, 그 외의 액션 시퀀스들도 참신하다기 보다는 이미 검증 받은 익숙한 구성들을 불러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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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인데,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케이트 베킨세일이 가장 매력적이었던 영화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로리' 캐릭터를 원작처럼 두지 않고 전면적으로 내세워 거의 더글라스 (콜린 파렐) vs 로리 (케이트 베킨세일)의 구도로 진행한 것이 훨씬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에게 바랬던 점들 중에는 '리콜'이라는 설정 자체의 진위여부나 그가 퀘이드 인지 아니면 하우저인지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을 통한 세계관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공포 영화에 가깝게 죽지도 않고 끝까지 주인공을 쫓는 베킨세일의 모습과 설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언더월드' 시리즈의 베킨세일 보다도 이 영화 속 베킨세일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포 영화 속 죽지도 않고 끝까지 따라붙는 괴물에 가까운 그녀의 강력함과 더불어, 중간 중간 움찔하게 만드는 뱀파이어 당시 습성들은 (잠깐씩 베킨세일이 마치 언더월드인냥 포즈와 표정을 짓는 경우가 있다. 표정은 사실 이 영화 속에서도 거의 시종일관 뱀파이어스럽다;;;), 영화 속 추격전을 더 찰지게 했다. 진짜 조폭 마누라를 TV 방영시 얼핏 본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기억을 잃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고통보다도 '와, 저런 마누라가 있다면 정말 무섭겠다 (그게 베킨세일 같은 외모일지라도!)'라는 생각에서 오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공을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저 멀리서 우뚝 서서 노려보는 장면이나, 정말로 죽었지 싶었는데 다시 나타나 (여기선 정말 에일리언도 생각나고!) 한 번 더 주인공을 해하려드는 모습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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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은 딱 기대했던 정도를 충족시켜준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폴 버호벤의 원작과는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아예 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인지 오랜만에 원작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1. 극중 등장하는 드로이드의 모양새를 보니 절로 '매스이펙트'가 떠오르더군요.

2. 한글로 선명한 '리콜'. 이거말고도 다른 한글들이 더 나와요. 이십구 였나 ㅎㅎ



3. 원작에 대한 오마주는 여럿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건 역시 검색대 통과 장면이었어요. 원작과 같이 얼굴이 열릴 듯한 아줌마를 앞세웠으나 그 아줌마는 훼이크고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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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여름 휴가 다운 휴가도 못다녀왔고, 몸은 몸대로 지치던 찰나에 부산에 있는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 걸작선을 상영하는 기획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통 같으면 그냥 '부산 분들은 좋겠다~'하고 말았을 텐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무리를 해서라도 가야겠다는 작전이 발동! 순식간에 부산 가는 차 편 예약과 동시에 영화까지 예매를 하게 되었다.


기획전은 내일인 8월 23일부터 9월 6일까지 진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올 수 밖에는 없었는데, 이번 주말 시간표 가운데서 내가 선택한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1975년 작 '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과 스필버그의 초기작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1974)'을 선택하였다. 사실 처음 스필버그의 초기작을 상영한다고 했을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듀얼 (Duel, 1971)'이었는데 이번 주에는 상영이 없는 점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이거 빙벽 (The Eiger Sanction, 1975)


시니컬한 매력의 미술사 교수 햄록의 취미는 고미술품 수집. 그런데 교수 월급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 고상한 취미 때문에 그는 첩보기관의 암살전문요원으로 활약하며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한편, 이제 햄록은 손을 씻으려 하지만, 조직은 그를 쉽게 놔주지 않고, 마지막 임무로 아이거 빙벽 등반대에서 스파이를 찾아 제거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트레바니안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웅장한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산악영화에다 첩보 액션 스릴러를 결합시킨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연까지 맡은 이스트우드는 대역을 쓰지 않고 거의 직접 액션연기를 했다고 한다.





슈가랜드 특급 (The Sugarland Express, 1974)


텍사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클로비스는 출소를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아내 루가 면회를 오는데, 그녀는 두 사람의 아들이 강제 입양될 처지에 놓였다며 흥분한다. 이대로 아들을 빼앗길 수 없는 루는 클로비스에게 탈옥하여 자신과 함께 아들을 납치하러 가자고 설득한다. 1969년 텍사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 코믹 요소와 넘치는 긴박감이 잘 어우러진 연출로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스필버그가 만든 최초의 극장용 영화이며,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드물게 사회 비판 의식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듀얼'을 못보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골디 혼의 풋풋한 모습도 기대되고, '아이거 빙벽'은 예전에 DVD로만 봤던 작품이라 스크린을 통한 첫경험이 무척이나 설렌다. 'E.T'와 '미지와의 조우'도 시간이 맞아서 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예전에 극장에서 본 적이 있는 터라 이번에는 아쉽지만 패스하기로;;


이스트우드와 스필버그 기획전을 핑계 삼아 오랜만에 부산 방문한 김에 영화의 전당도 여유있게 둘러보고, 오랜 만에 바다 구경도 할 예정~



* 부산 영화의 전당 - 이스트우드 & 스필버그 초기 걸작선 자세히 보기

http://www.dureraum.org/bcc/mcontents/progView.do?rbsIdx=35&progCode=20120813001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이라니, 일단 제목은 그럴싸 했다. 폴란스키라는 이름과 대학살이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느껴지는 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라일리라는 출연진은, 어지간해서는 실망하기 어렵겠다는 안전성마저 느끼게 해주었기에 주저없이 극장을 찾게 되었다. 사실 전혀 영화에 대한 내용을 모르고 보자는 주의라 이번에도 감독과 배우 말고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코미디라는 점도, 연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몰랐는데, 역시나 몰랐던 것이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연극을 보았거나 원작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았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로서는 이 네 명의 주인공이 처음 현관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아, 이 영화 이 공간 안에서 끝을 보겠구나!'하며 더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SB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스포일러랄 것도 없고 줄거리랄 것도 없는 것이 이건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이자 스포일러인 영화다. 각자의 직업으로 대변되는 점을 좀 더 부각하여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 그냥, 배울 만큼 배운 어른들 네 명의 아웅다웅 정도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라 하겠다. 그런데 그 '아웅다웅'이 어찌나 현실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흥미진진한지! '대학살의 신'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그럴싸하게 느껴질 정도의 티격태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주 심플한 인트로로 시작된다.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배경으로 작은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배경으로 스쳐지나쳐도 좋을 일이 얼마나 큰 (하지만 쓸데없는) 어른들의 일을 야기시키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면 역시나 '문명의 대학살'까지 운운한 어른들의 싸움과는 달리 아이들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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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위의 포스터 이미지와 같이 방안에 각각 위치한 네 명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와 심리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동작과 표정을 취하고 있는 네 명의 캐릭터의 변화를 보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아, 이건 아닌데'하는 지점에 빠져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본인 스스로를 완벽히 컨트롤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일 수록 이런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도 될텐데, '대학살의 신'은 바로 그 점, 사회적으로 성숙한 계급 아닌 계급에 살고 있는 어른들을 아주 작은 아이들의 일로 모이게 해 놓고, 정말 유치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과정을 숨김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더 재미있는 이유는 그냥 멀쩡하게 생긴 캐릭터들이 유치한 말과 행동들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나도 종종 살면서 범하는 실수들이 담겨 있어서 순간순간 섬짓 했기 때문이었다. 이 네 명의 대화 가운데는 짧지만 우리가 쉽게 범하곤 하는 삶의 작은 실수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뭐랄까, '내가 저런 실수를 했을 때 저렇게 하찮게 보였겠구나'라며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랄까. 정말 우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진짜 나도 별일 아닌 거 가지고 저렇게 유치하게 덤빈 적도 있었는데...'하며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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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유치함을 완성하는 데에는 역시 네 명의 배우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정말 캐스팅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인데, 헐리웃에서도 지적인 이미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조디 포스터가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지지 않으려고 정말 목에 핏대를 세우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주장을 펼칠 때에는 코미디 이상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여기에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력도 물론 한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조디 포스터라는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면 역시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조디 포스터 못지 않은 반전 연기는 물론 무엇보다 그 '몸연기'! 선반에 기대거나 벽에 기댄 모습, 그리고 방바닥에 정말 초라하게 웅크리고 앉은 그 몸연기는 올해의 연기 후보에 올려도 좋을 정도로 참~ 볼품 없었다 (과찬임 ㅋ). 존 C.라일리 역시 나머지 세 명과는 조금 다르게 능청을 부리며 이 셋을 비꼬는 듯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극도로 유치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했으며, 케이트 윈슬렛은 의도치 않은 한 방(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그 것!)과 더불어 세련됨과 정제됨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 지를 정말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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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이 네 명의 배우가 유치찬란한 연기를 멋지게 연기했는지, 이제는 스틸컷 속 이들의 얼굴만 보아도 절로 '큭큭'하며 웃음이 날 정도다. 영화의 러닝타임과 영화 속 리얼타임이 동일하고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네 명의 '어른'들 밖에는 없지만, 무언가 (깨알같이 찌질한) 작은 우주를 만난 듯한 그런 영화였다.



1. 처음 원작에 대해서 몰랐을 때에는 폴란스키가 홍상수 영화를 찍었구나 싶었어요 ㅋ

2. 아, 홍상수 영화와의 차이점이라면 배우의 수는 비슷하지만 스텝의 수는 엄청나게 차이난다는 점

3. '다즐링'은 최소한 저에게는 유행되었습니다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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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2012)

뒤집고 쏟아내는 공포의 축제



개봉 당시에도 보고 싶었으나 극장 상영시 필름에 (정확히 말하자면 화면 밝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지인의 이야기에 나중을 기약하고 관람을 못했었는데, 역시나 빠르게 IPTV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캐빈 인 더 우즈'를 다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다름 아닌 '드래그 미 투 헬 (Dreg Me To Hell, 2009)'이었는데, 왜인고 하니 '드래그 미 투 헬' 이후로 마음에 드는 공포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 사이에 무언가 맘에 드는 공포 영화가 있었는지는 좀 더 자세히 따져봐야겠지만, 어쨋든 순간의 기억으로는 바로 이 영화가 떠올랐을 정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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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홍보 타이틀에서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캐빈 인 더 우즈'는 대놓고 공포 영화의 법칙을 모두 뒤집겠다고 공포하고 나선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공포 영화의 법칙을 빗겨가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가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또 다른 반전의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법칙을 모두 빗겨간다는 얘기를 반대로 하면 정반대로 생각하면 다시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캐빈 인 더 우즈'의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은 힘이 있었다. 즉, 뒤집기를 그냥 겉핥기 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잘 이해한 시나리오였다는 얘기다. 그냥 뒤집는 것으로 끝났다면 말그대로 뒤집기라는 점을 아는 순간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작품이 되어버렸을 텐데, '캐빈 인 더 우즈'는 다행히 거기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집기가 없었어도 나름 흥미로운 공포영화라고 했을 만큼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얘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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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으로 여행을 떠난 다섯 명의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 뒤에 존재하는 이야기는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 이런 류 (무언가 거대한 악이 도사리고 있는)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별로 구체적이지도 않고 한편으론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배경에 깔린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이 실체를 알아내면서 부터였다. 보통 같으면 주인공과 공포(악마나 괴물 등)의 대결 구도로 당연히 주인공의 편에서서 영화를 바라보게 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그 중간에 이를 조정하는 조직이 있다보니 어쩌면 더 큰 악을 위해 중간에서 소비되다시피 이용 당하는 각종 크리쳐와 좀비 등등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더 정확히 하려면 '등'을 한 50번은 써야할 것이다)의 애환마저 느껴져 좀 다른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들은 대사 하나 없지만 그 잠깐의 눈빛들 만으로도 무언가 슬픔이 느껴졌는데, 인간에게 이용 당하는 상황과 맞물려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닌 좀 더 인상 깊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막판에 수많은 크리쳐들이 모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는 단순히 장르 영화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더불어 이 같은 감정적인 부분이 겹쳐져 더 시원하고 신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뭐랄까, 이 쏟아지던 장면은 보통 같으면 주인공과 같은 심정으로 절망적인 절정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장면이었겠지만, '캐빈 인 더 우즈'에서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장면이었다.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캐빈 인 더 우즈'는 또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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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PTV로 보면서는 그렇게 어둡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극장에서는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네요. 만약 블루레이로 국내 출시된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어요.


2. 마지막 장면에 공포영화 시리즈로 유명한 여배우가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3. 오래만에 정말 신나는 공포영화였어요. 전 무서우면서도 신나는 공포영화가 좋더라구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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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언 레시피 (ホノカアボーイ Honokaa Boy, 2008)

멈춰버린 그 곳에서 찾아낸 빈자리



이 영화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거의 모든 영화를 예매를 통해 보는 나로서는 우발적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할 수 있었는데, 어느 더운 여름 날. 휴가답지 않은 휴가를 내고 무작정 삼청동을 거닐 던 중, 의도치 않게 발견하게 된 한 장의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사실 평소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는 점에 볼 것 없이 티켓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정말 백만년 만에 현매로 산 영화표였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아오이 유우는 우정 출연이었고, 영화도 포스터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문구와는 다르게 (포스터의 문구에서 풍기는 느낌은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우연치 않게 귀농을 하게 된 한 소년의 이야기 일 것만 같았다) 무언가 애잔하면서도 평화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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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언 레시피 (ホノカアボーイ Honokaa Boy, 2008)는 무언가 묘한 정서가 있다. 즉, 요즘 흔히들 말하는 '힐링영화'와는 조금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얼핏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이지만 (심심하면서 안락감을 주는)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장소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모두에 아픈 구석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우연히 하와이의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된 레오 (오카다 마사키)가 그 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그 중에 자신에게 우연히 식사를 대접해준 비이 (바이쇼 치에코)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1차적으로 비이와 레오의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는데, 남녀 간의 관계로 설정해도 어색하지 않은 로맨스가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호노카아 마을에 오랫동안 홀로 남아있던 비이와 이 곳에 우연히 남게 된 젊은 레오가 서로에게 남녀가 아닌 존재 대 존재로서 관계를 맺는 방식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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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레오가 호노카아에서 보낸 시간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들 때문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글을 쓰려 좀 더 생각해보니 레오보다는 호노카아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더 떠올랐다. 이 영화를 처음 포스터만으로 예상했었을 때처럼, 그저 한적하고 고민거리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마을의 일상을 통해 슬로우 라이프를 떠올려보게 되는 것 정도를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호노카아에서 만난 비이와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 멈춰버린 더 나아가 고립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영화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20세기 초 많은 일본인들이 하와이로 이주하였고 그 결과 1920년 대에는 전체 하와이의 인구 가운데 43%가 일본인일 정도로 많아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근거하여 생각해보니 더더욱 영화 속, 그러니까 하와이를 사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노인들 만이 남아 매일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또' 살아가고 있는 현실. 하지만 벗어나려고 해도 이제는 벗어나는 것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현실. 그 가운데 어쩌면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레오의 등장이 이 영화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비이와 레오의 묘한 관계에서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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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언 레시피'는 무언가 빈자리가 짙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나 반복되고 별다를 것 없었던 인물과 장소들이 갑자기 빈자리로 느껴졌을 때 겪게 되는 쓸쓸함과 후회를 통해, 마치 꿈을 꾼 것과도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것은 치유라기 보다는 회상이나 후회에 가깝다. 40도에 육박하는 이 무더위 속에서도 가슴에 깊게 남을 빈자리에 여운을 남긴. 그 쓸쓸함에 대해.



1. 아오이 유우에 낚여서 보게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품이어서인지 더 좋았던 영화였어요. 이것도 보고나서 알게 된 건데 2008년 작품이 올해 국내개봉한거였네요;;


2. 개인적으로는 정말 휴가 아닌 휴가 기간 동안, 정말 땀으로 범벅이 될 정도로 무더운 대낮에 우연히 보게 된 영화였는데, 그 짧은 휴가 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3. '비이'역할을 맡은 바이쇼 치에코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목소리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했던 소피 목소리였어요! 어쩐지 목소리에서 편안함이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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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오브 에이지 (Rock of Ages, 2012)

아쉬움이 넘치는 80년대 락넘버들의 향연



내 영화 글을 계속 보신 분들은 간혹 아실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유달리 더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뮤지컬'이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오글거려 못 보겠다는 부분들을 완전 빠져서 즐길 만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80년대 록큰롤을 배경으로 무엇보다 톰 크루즈까지 출연하는 이 영화 '락 오브 에이지 (Rock of Ages, 2012)'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올해 가장 기대한 작품들 중 하나일 수 밖에는 없었다. 여기에 연기파 폴 지아마티와 이미 '시카고'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검증따위를 우습게 넘겨버린 캐서린 제타 존스와 최근에는 미드에서 더 자주 만나고 있는 알렉 볼드윈까지 출연한다니 단순히 노래하고 춤추는 재미 말고도 영화적 완성도를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뮤지컬이라 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보는 내내 '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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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을 쓰고도 싶지만) '락 오브 에이지'는 이야기랄 것 자체가 사실 심오하거나 복잡한 것은 아닌데, 이 이야기를 뮤지컬 형태로 풀어내는 데에 있어 매끄럽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단순한게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 영화를 오해할 때 흔히 하는 얘기가 '갑자기, 뻘쭘하게 혹은 어색하게 노래를 한다'라는 점인데, 적어도 뮤지컬 영화 팬의 입장에서 잘 만든 뮤지컬 영화들에서는 이런 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즉, 노래와 노래 사이에 드라마가 제대로 깔려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 자체가 극의 전개와 인물들의 감정선의 자연스러운 연결이라 전혀 어색하지 않고 단지 노래의 형태를 빌린 효과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인데, '락 오브 에이지'는 바로 이 부분을 가장 간과하고 있다 하겠다. 사실상 노래를 제외한 나머지 드라마를 거의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무신경하게 넘겨버리고 있는데, 여기에다가 기존 뮤지컬 영화에 비해 더 많은 노래의 비중 때문에 정말 극을 끊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극의 전개가 사실상 미비했기 때문에) 유명한 록넘버를 듣는 다는 느낌 밖에는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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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너무 80년대 유명했던 록큰롤 곡들만 믿고 영화 자체를 쉽게 생각해 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제대로 된 뮤지컬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면, 이 재료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요리할까에 가장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락 오브 에이지'는 그냥 익스트림의 곡을 이쯤에 넣을까? 본 조비 노래도 넣고, 'I Love Rock'n'Roll '이 이 쯤에서는 나와줘야겠다! 라는 생각만 앞선 듯 했다. 창작곡이 아닌 이미 잘 알려진 곡들을 뮤지컬로 만들어내는 작품의 경우는 오히려 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곡들을 영화적으로 스토리에 어떻게 녹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이 영화는 여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나머지 그냥 당시 밴드의 실황 공연을 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영화가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되어 있다보니 캐릭터가 살아날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젊은 두 남녀 주인공은 이 작품과 전혀 녹아들지 못한 듯 보였다. 일단 여기서 감정이입이 안된 것이 첫 번째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만남만에 별다른 계기도 없이 흠뻑 사랑에 빠져버리는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에 공감할 여지가 어디있겠나. 두 남녀 주인공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 주연의 '그리스'를 상당부분 연상케 했는데 정말 '그리스'를 다시 보고 싶은 것 말고는 별로 느껴지는 점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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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면 후반부에 등장한 메리 제이 블라이드가 연기한 캐릭터도 이렇게 병풍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 쉥크만 감독은 여기 등장한 각각의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모두 충분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마지막에 그들에게 한 소절씩 나눠주는 감동적인 마무리를 준비했다. 이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려면 각각의 캐릭터가 본인의 소절을 부를 때 절로 흐뭇한 미소와 함께 그 캐릭터의 활약상이 자동적으로 떠올라야 정산인데, 이 영화의 경우는 '어? 메리 제이에게 왜 저 정도 비중을 줬지? 가창력이 출중한 가수이니 사운드트랙 측면을 고려한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쉬운 점만 주욱 늘어놓았는데 기본적으로 '아쉽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매력적인 설정과 장르 그리고 배우들 때문이었는데, 어쨋든 80년대를 주름잡던 록큰롤의 향수를 느낄 만한 (개인적으로 정확히 그 세대는 아니지만) 곡들을 극장에서 쉬지 않고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스테이시 잭스를 연기한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아쉽다보니 이런 독립성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차라리 매력이 부족한 두 남녀주인공의 이야기보다는 스테이시 잭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져갔다면 훨씬 더 록큰롤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뮤지컬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도 싶다. 어쨋든 유머와 진지함을 오가며 스테이스 잭스를 연기한 톰 크루즈를 본 것만으로도 팬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아, 그리고 톰 크루즈 외에는 사실상 홀로 고군분투 하다시피한 캐서린 제타 존스도 인상적이었다. '락 오브 에이지'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영화다운 부분은 오로지 그녀가 등장한 장면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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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톰 크루즈가 연기한 스테이시 잭스의 코스츔이나 톰의 몸을 보니 자연스럽게 HBK 숀 마이클스가 떠오르더군요. 특히 바지가 거의 비슷해서 ㅋ


2. 남자 주인공이 록 밴드의 보컬로 설 때보다 차라리 보이 댄스 그룹으로 섰을 때 더 어울리더군요. 이 그룹은 완전히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염두한 것 같아요. 멤버들의 이름까지도요 ㅎ


3. 사실 이 영화에 제작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난 이름은 카메론 크로우였는데, 최소한 그가 연출했다면 더 록큰롤스럽고 디테일한 깊이는 만나볼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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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어덜트 (Young Adult, 2011)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포스터만 보면 '몬스터 (Monster, 2003)'에 이어 또 한 번 샤를리스 테론이 망가진 영화가 아닐까 싶은 작품인데, '주노 (Juno, 2007)'와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를 연출했던 제이슨 라이트먼이 연출을 맡고 '주노'의 디아블로 코디가 각본을 쓴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영 어덜트 (Young Adult, 2011)'이다. 전작들을 통해 제이슨 라이트먼의 영화는 이른바 '믿고 보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결과적으로 무언가 움찔하게 되는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성장담을 그리고 있는데, 성장담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직접적인 텍스트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더 은근하고,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순간 '움찔'하게 되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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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어덜트'라는 제목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제이슨 라이트먼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을 쓰는 대필작가 메이비스는, 자신이 쓰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이다. 도시에서 그럭저럭 괜찮게 보이는 삶을 살던 그녀는 우연히 보게 된 학창시절 남자친구의 득녀소식을 보고는 다시금 그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제이슨 라이트먼의 영화 전개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전 남자친구이자 현재 유부남인 '버디 (패트릭 윌슨)'에게 접근한다.

 

길지 않은 94분이라는 러닝 타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이슨 라이트먼은 주인공 메이비스 (샤를리스 테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아주 간결하게 그리고 빠르게 진행해 간다. 그냥 메이비스가 사는 방의 풍경, 그리고 그녀가 주목한 메일 하나만으로 그녀가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에 대한 모든 설명을 마친다. 그 이후 고향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메이비스가 고향을 떠나오기 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지만 영화는 작은 대화와 설정 들만으로 이를 대부분 해소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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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를 다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메이비스의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100%의 공감대를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즉 더 많은 설명을 영화가 해주지 않을까하며 기다리다가 영화가 끝나버린 감도 아주 없지는 않은데, 묘한 건 그런 정도의 공감대를 갖으며 영화를 감상했음에도 메이비스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움찔하고 와닿았다는 것이다. 그런 묘한 순간을 처음 느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속에서 잘 한 짓이라고는 없는, 보통 영화였다면 악역이라고 해야할 메이비스의 행동들이 밉게 보이지 않았을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디아블로 코디의 각본은 정말 간결했는데 (관객이 공감하고 있다고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어느 순간 내가 메이비스와 동일하게 서는 시점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영 어덜트'라는 영화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극 중 메이비스의 행동이나 불만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영 어덜트'는 이런 메이비스를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그녀 행동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그녀를 감싸고 있는 따듯함 덕분에 메이비스를 좀 더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논리적으로는 타당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음에도, 그녀의 외로움과 삶의 고단함이 느껴져 그 행동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림을 볼 수 있어

움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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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성장담의 질문으로서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는가?'를 묻는다. 고향 사람들은 그녀를 현재 고향에서 가장 성공해 도시로 나간 작가, 즉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메이비스의 생각은 오히려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시기를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때 함께 했던 버디를 다시 만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와 여러 일들을 겪으며 메이비스는 자신의 전성기가 예전도 현재도 아닌,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미래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처음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결심했던 그 날의 아침과 똑같은 포즈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메이비스의 전성기가 앞으로 펼쳐질지 아니면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이 전성기였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메이비스는 이미 전성기가 언제였는지, 언제일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진정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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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이슨 라이트먼의 작품답게 역시나 음악이 좋아요. 의도적으로 삽입한 음악들도 많았던 것 같구요.

2. 제이슨 라이트먼의 필모그래피도 차곡차곡 의미있게 쌓여가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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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 (The Thieves, 2012)

최동훈 세계의 집대성 그 장점과 단점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영화를 소개할 때 '웰 메이드 (well­ made)'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보게 되었는데, 어쨋든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의미라면 국내에서 '웰 메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가 바로 최동훈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죄의 재구성 (2004)' '타짜 (2006)' '전우치 (2009)' 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개인마다 호불호는 나뉠 수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로 보았을 때는 전반적으로 평균적인 완성도가 높은, 배우, 연출, 액션, 시나리오, 대중성 등 다방면에서 준수함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 '도둑들' 역시 적지 않은 기대를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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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은 전반적으로 최동훈의 세계관을 집대성 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극을 이끄는 것이 아닌 여러 명의 캐릭터가 집단으로 등장해 유기적으로 얽히는 설정은 물론, 범죄의 세계에 대한 디테일 (주로 대사에서 오는)을 챙기는 한 편, 액션에도 볼거리를 선사하고 반전을 거듭하는 동시에 드라마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도둑들'은 이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 확연한 작품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조금만 더 간결했더라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배경을 묘사할 때 단순 묘사나 한 두 가지의 디테일로 승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그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 공을 들였던 감독이었다. '범죄의 재구성'은 전문 사기꾼들이 쓰는 찰진 대사들을 통해 실제 그 세계를 러닝 타임 동안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타짜'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박꾼들을 넘어서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도둑들' 역시 최동훈 감독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한 편으론 우리가 사는 이 곳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가끔 이런 이면의 세계를 그릴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도둑들'은 현실성과 영화적인 부분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부산을 배경으로 건물 외벽을 와이어에 매달려 벌이는 총격전이 한편으론 판타지스럽기도 하지만 만족스럽기도 하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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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을 구현하는데에 있어 '도둑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은 캐릭터와 로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집단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경우 장점과 단점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10명에 가깝게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 각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살리기는 불가능하다기보다 안하는 편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몇몇 캐릭터의 경우 딱 그 캐릭터의 비중에 맞게 설정되어 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앤드류-오달수, 예니콜-전지현 등), 몇몇 캐릭터에게는 범위 이상의 이야기가 할애된 듯한 느낌 역시 받았다. 김수현이 연기한 '잠파노'의 경우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예니콜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조금은 모호함이 없지 않았던 것 같고, 임달화 형님이 연기한 '첸'과 김해숙이 연기한 '씹던껌'의 이야기의 경우는 무언가 전체적인 이 영화의 흐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울리지 않다기보다 모호하게 위치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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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도둑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역시, 임달화 형님의 출연 때문 ㅠ)


참고로 첸과 씹던껌의 이야기를 통해 최동훈 감독이 말하고자 한 '도둑들'의 정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이렇게 중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그 둘이 남긴 대사들이 주는 범죄 영화의 감성적인 정서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정서가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한 켠에 머무르지 않고 차라리 중심에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렇다면 현재의 '도둑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정서들도 여럿 있을 테니 총체적인 정리가 필요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정서의 중심에 임달화 형님이 있다보니 이렇게 사이드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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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최동훈 감독의 야심이 집대성 되다보니 발생된 단점이라면, 일단 안그래도 집단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때문에 이야기가 집중되지 못할 확률이 높은데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비교적 더 많은 이야기를 주려고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힘을 잃은 경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도둑들'의 메인 스토리라면 마카오박을 중심으로 태양의 눈물을 두고 벌이는 이른바 '꾼'들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가 연관된 과거사가 포함된 것까지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첸과 씹던껌의 독립적인 이야기는 물론, 무언가 더 할 것처럼 하다가 애매하게 남겨져 버린 잠파노 그리고 추후 비중있게 등장하는 웨이 홍의 이야기까지, 모두 하나의 줄기에 엮여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열매가 조금은 무거웠던 탓에 전반적으로 복잡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 이렇게 복잡한 관계 설정을 가지고 노는 것이 최동훈 감독의 이야기에 장점 중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처럼 시리즈로 계획되었다면 조금은 부담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각각의 비중을 설정하는 데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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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후반부 부산에서 펼쳐지는 건물 외벽 와이어 액션을 들 수 있을 텐데, 어떤 영화와 비슷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시퀀스만 봐도 액션 콘티를 얼마나 신경써서 작업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장면이었다. 사실 그 동안 마카오박에 대해 영화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에 갑자기 이던 헌트처럼 와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날라다니는(?)가 하면 홍콩 조직원들과도 1:1로 결투까지 벌이는 마카오박의 모습에 조금 갑작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어쨋든 그 갑작스러움만 제외한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리듬감을 만나볼 수 있는 시퀀스였다. 두기봉 영화와 성룡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었던 부산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이 장면의 또 다른 승자는 바로 그 건물이다), 와이어를 최대한 적절하게 활용한 이 액션 시퀀스는 '도둑들'이 단순히 머리쓰고 뒤통수 치는 영화가 아니라 볼거리로도 만족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온다면 한 번 본편을 감상한 경우 바로 이 장면을 선택해 다시 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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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그의 영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소들이 총출동하는 작품으로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관객들이라면 그 각각의 매력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될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그 매력적인 요소들이 조금은 과하게 담긴 탓에 넘쳐 아쉬움으로 남게 된 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했던 홍콩 범죄 영화의 장점을 우리 것으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아마 어렵겠지만 '오션스 일레븐' 처럼 시리즈로 제작되어 다음 편에는 정말 조지 클루니가 일원으로 출연한다던지 아니면 양자경 누님 정도가 출연해주신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1.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자 분들의 함성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김수현이 대세이긴 한 것 같아요 ㅎ 그의 등장과 대사 하나하나에 반응하시더라는 ^^;


2. 그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비튼 전지현의 '예니콜' 캐릭터는 확실히 인상적이더군요. 염정아나 김혜수가 내뱉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같은 대사들이었어요 ㅎ 이름부터가 '예니콜'이라는 것에서 피식하기도 했고요 ㅋ


3.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많다보니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카오박(김윤석)의 비중이나 깊이는 조금 덜해진 느낌이더군요. 이건 김윤석 씨가 연기를 못했다기 보다는 상대적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나중에 부산 가면 그 건물과 그 골목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정말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장소 활용이랄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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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
놀란의 배트맨, 이렇게 마무리 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이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완결되었다. 놀란의 배트맨 영화가 처음부터 삼부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개인적 의문이 있지만 ('라이즈'를 보고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다시 본 결과 놀란은 분명히 '다크나이트'에서 종결 짓고자 하지 않았나 싶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분명히 '종결'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성격의 작품이었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점은 물론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이전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배트맨이라는 코믹스의 영웅을 완벽한 스크린의 영웅이자 현실의 영웅으로 만들어낸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로 인해 몇 년간 기다림의 가치와 영화를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즐길 수 있었기에...



(삼부작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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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이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고담의 악당이 되버린 채 떠나버린 그 이후, 하비 덴트 법을 통해 더이상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첫 번째 배트맨의 부제를 묘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대사들과 상황 묘사를 통해 지난 수년간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 어떤 시간을 보내왔고, 고담시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영화 인트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베인 (톰 하디)이라는 캐릭터를 지체하지 않고 고담으로 끌어 들인다.



베인. 베인은 어쩔 수 없이 전편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캐릭터였는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중반까지 베인이라는 캐릭터는 충분히 조커와 비견될 수 있을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베인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메시지와 결부시킨 정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와 사실상 비교대상이 되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가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간 쌓아왔던 캐릭터, 감정,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것에 목적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베인이 중반까지 보여준 메시지의 힘이 마스크를 쓴 인상적인 외모나 특유의 발성이나 압도하는 근육질의 몸매보다도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기에, 베인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다크나이트' 조커의 경우처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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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혼란 (Chaos)'을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경우였다면 베인은 좀 더 계획과 의지를 갖고 있었던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베인이 고담에 던진 이 혁명의 메시지는 '그냥 내가 도시를 지배하겠다'와는 달리, '고담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는 것이었기에 여러가지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담론이었다. 특히 증권거래소를 공격하고 그 과정 속에서 부자들의 돈 놀이를 비판하는 대사들이나, 이후 월가에서 벌어지는 혁명군과(사실 이때는 이미 혁명군으로 불리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된 이후였지만) 경찰들과의 대규모 전투씬 들을 보며, 지난해 미국내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1:99의 월가 시위와 연결지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인이 처음 고담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 이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매트릭스 속을 사는 것이 더 편한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내던 나쁜 결과를 내든 상관없이 누군가 혹은 자본이나 세력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불만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시민들에게, '본래 네 것이었던 것을 이제 온전히 네게 돌려주마' 라고, '너희가 99%인데 왜 1%에게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이야기조차 하지 않느냐!'라고 외부적인 쇼크를 베인이 던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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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베인이 던진 이 혁명과 질문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했더라면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그랬던 것처럼 이 깨우침 (혹은 혼란)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다크나이트'에서 두 유람선의 실험이 그랬던 것처럼)에 따라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꺼내어 놓은 주제에 비해 사실상 답을 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이 혁명을 영화에 주된 테마로 가져와 이를 두고 배트맨과 베인이 벌이는 극렬한 신념의 대립을 메인 테마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마도 계속 남을 듯 하다. 이렇게 소모되기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비중은 너무도 컸고 매력적이었기에 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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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이라는 캐릭터의 담론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린 시점에서 영화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레이크 (조셉 고든 래빗)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상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맨 마지막에 밝혀지는 '로빈' 이라는 풀 네임 때문에 단순히 '로빈'으로만 해석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가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트맨 & 로빈'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로빈이 아니라고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으론 마지막에 등장한 이 조크와도 같은 풀 네임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블레이크의 존재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 할 빛의 사도로서 믿고 선택했었던 하비 덴트와의 연장선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필요없는 고담을 꿈꿨던 브루스 웨인은 결과적으로 타락해버린 하비 덴트의 실패를 통해 수 년간 은둔하고 고담을 떠나다시피 했을 만큼 (레이첼에 대한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배트맨이라는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던 기회를 - 배트맨은 고담에 있어 필요악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 놓쳐버린 것에 대한 실망과 자책이 더 컸을 것이다)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스스로 접근해 와 다시금 희망의 가능성을 갖도록 한 것이 바로 블레이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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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비 덴트에게 자연스러운 이양을 하려다 실패했던 배트맨은 다시 한 번 블레이크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갖게 되자, 조심스럽지만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으로 블레이크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동시에 더 확실한 메시지를 심으려 한다. 이미 블레이크가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는데,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일 때도 배트맨일 때도 블레이크에게 지속적으로 고담시의 수호자로서 겪어야 하는 일들, 해야만 하는 일들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미 레이첼을 잃는 경험을 했던 브루스로서는 아직 신념만으로 뭉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블레이크에게 '혼자 활동하려면 마스크를 써'라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임을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이 고아라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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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이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이 정도면 정말 친절한 거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설명해주는 건 다시 말하지만 하비 덴트에 대한 아픈 상처와 자책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블레이크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고든 (게리 올드만)을 강하게 질책할 정도로 정의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청년 (누가 이 열혈 경찰 좀 데리고 나가지 ㅎ)인데, 사실 이런 정의로움이나 신념으로만 따지자면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 역시 결코 뒤쳐진다고 볼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렇기에 이미 하비 덴트의 실패를 겪었던 배트맨은 이 신념만을 믿기보다는 (I Believe in Harvey Dent) 좀 더 구체적인 방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블레이크를 대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속 블레이크 (새로운 고담시의 수호자)의 이야기가 로빈 혹은 또 다른 수호자의 '비긴즈'에 수록되지 않고 배트맨 삼부작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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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전편에서 실패를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신념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블레이크의 이야기가 그렇고 (알다시피 배트맨의 성격상 자신이 피곤하다고해서 그냥 고담시를 적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방관할 수 있는 양반이 아니다), 셀리나 카일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알프레드 (마이클 케인)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극중 캣 우먼으로 등장하는 (극중에서 실제로 고양이와 관련하여 그녀를 표현한 대사는 처음 웨인 저택에서 만났을 당시의 언급 밖에는 없다) 셀리나 카일과 배트맨의 관계를 보자면 결국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전혀 믿을 만한 위치와 관계에 있지 않은 셀리나를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믿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러닝 타임상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배트맨과 캣우먼 사이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지 않은 것은 이 믿음이라는 테마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배트맨의 믿음은 셀리나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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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리즈 내내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을 믿어왔던 알프레드였기에 어쩌면 가장 필요할 때 떠나버린 그의 존재가 더 안타깝기만 했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를 함께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도 알프레드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알프레드가 끝까지 지키지 못한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자신보다도 더 자신을 믿어주었던 알프레드에 대한 브루스의 보답에 관한 이야기하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삼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으로서 '라이즈 (Rises)'라는 제목처럼 배트맨으로서나 브루스 웨인으로서나 완전히 일어서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자신을 항상 믿음으로 돌봐주던 알프레드에 대한 완벽한 보답으로, 그 알프레드가 믿음을 저버렸을 때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믿음으로 답하는 브루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화의 구성과는 별개로 브루스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떠날 때, 그리고 브루스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알프레드 캐릭터의 묘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브루스 웨인과 알프레드의 관계를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가 아니라 어쩌면 토마스 웨인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들까지 든든하게 지원하는 아버지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로 그리면서, 배트맨 영화의 또 다른 담론과 감정선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선이 드디어 폭발한 이 작품에서 알프레드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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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삼부작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신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또 다른 테마인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 역시 풀어낸다. 자경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인 '감시하는 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담론을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결국 이 거대한 권력을 쥔 자가 타락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힘(권력)을 빼았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떠한가?'라는 화두로 가져와 후자의 경우를 일으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역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면 배트맨의 모든 기술과 무기를 만들어내던 응용과학부서를 베인이 통째로 갖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작용한 신에너지의 핵폭탄화 역시 이 같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 만약 악당들이 이 힘을 얻게 될 경우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럴 경우를 대비해 침수해 폐기하도록 되어 있다는 장치를 설명하지만, 이것 또한 힘을 가진 자의 자만이었다는 것을 영화는 그대로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조커의 위치를 찾기 위해 고담 시민 전체의 휴대폰을 감청하는 반인권 방식을 택했지만, 조커라는 위험을 제거하고 나서는 이 시스템 자체를 폐기시킨 것)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주제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확실히 어느 한 편에 서기보다는 양날의 경우를 모두 인정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을 텐데,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특수성으로 인해 완벽한 중립에서기 보다는 좀 더 필요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편에  더 기울어 있지 않나 싶다. 앞서 이야기했던 '다크나이트'의 휴대폰 감청 시스템도 그렇고 (폐기하긴 했지만 사용했으니. 폭스였으니까 이번만 합니다 라고 했지 블레이크였다면 절대 수긍하지 못했을 것이다 ㅎ),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결국 배트맨이 필요 없어진 고담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배트맨 아니 또 다른 어둠의 기사를 키워낸 것으로 마무리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물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텍스트 자체가 바로 이 완전하지 않은 것 때문에 가장 흥미롭고 여러가지 다른 담론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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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고 쓴 글(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에서도 이야기했 듯이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 테마는 '두려움' 그리고 '극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와는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바로 두려움의 극복이 아닌 '인정' 이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를 잃은 상처와 그로 인한 복수, 그리고 어린 시절 동굴에 떨어져 겪었던 두려움과 박쥐 등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면서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극복의 테마는 고담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갈등은 조커와 하비 덴트의 일을 겪은 뒤에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그저 보지 않으려 한 것 뿐). 하비 덴트 법이 무너지고 베인이라는 고담의 커다란 재앙이 다가오자 브루스는 다시 한 번 '고담에는 배트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고담시에 나타나 베인과의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베인에게 부러지고 난 뒤 감옥에 떨어지게 된 브루스 웨인은 여기서 극복이 아닌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우침을 얻게 된다.

 

즉,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인정함으로서 표면적인 감옥에서는 물론 오랫동안 브루스 웨인을 짓누르고 있던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 비긴즈'에 등장했던 토마스 웨인의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라는 대사는 역시나 의미심장하게 쓰이고 있다. 일어나라 (Rises)라는 죄수들의 외침과 함께 말이다). 이제 두려움을 인정하고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배트맨은 혼자 다 해결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셀리나에게 믿음으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배트맨으로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스 웨인으로서 살아 남는 것을 택하였으며, 자신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주는 것 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를 겪고 또 싸우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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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제(?)의 캐릭터인 탈리아 알굴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누구나 그녀가 탈리아 알굴 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했었기에 그녀가 스스로 '내 이름은 탈리아야'라고 했을 때 극중 배트맨 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놀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베인이라는 멋진 캐릭터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순정마초'스러운 이야기에도 쉽게 동화되는 편이지만 베인은 한 여인을 향한 충성에 가까운 애정보다는, 혁명가로서 더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기에 이렇게 탈리아의 정체와 함께 한 방에 (실제로도 한방에 ㅠ) 무너져 버린 것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이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는 몇 가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갑은 역시 탈리아 알굴이었다. 놀란이 마무리해야할 배트맨 이야기에 탈리아의 자리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엔딩 부분. 이 작품이 종결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엔딩 부분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놀란의 영화치고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친절하게 하나 하나 논란의 여지 없이 정리하는 마무리에 사실은 조금 놀라기도 했을 정도였다. 블레이크의 부상 (Rises), 알프레드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이야기로 정리되는 브루스 웨인의 미래는 사족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이 작품이 '다크나이트'와는 달리 최소한 바로 이어서 4편을 기대할 수는 없도록 완전히 종결지어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신파스러운 장면에서도 위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더 위엄있는 마무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남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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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인셉션 (Inception, 2010)'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놀란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구조나 구성 등에 대해서만 주로 언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셉션'에서는 꿈 속의 꿈이라는 구조를 영화적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낸 것도 물론 좋았지만 아내를 잃고 아이들을 그리워 하는 코브의 이야기가,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감정적으로도 공감되고 마음이 흔들리는 작품이었다. 이번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시리즈 내내 그 곳에 서 있었던 알프레드의 눈물을 보았을 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고, 브루스 웨인이라는 캐릭터가 배트맨을 거쳐 다시금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가게 된 과정에서 오는 고통과 깨달음, 결심을 보았을 때 액션이나 볼거리, 이야기적인 흥미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을 또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좀 가볍게 얘기해서 '고담 밖에 모르는 바보'의 이야기가 그냥 흥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갈등이 한 알 한 알 느껴진 덕분에 가슴 깊이 흔들려 결국 소름과 동시에 울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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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생각해보아도 액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의 범주 내에서, 특히나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작품에서 감독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철학을 이 정도로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낸 것이야 말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으로 그러하였듯,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를 통해 그러했듯,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 만의 비전으로 전 세계 누구나 아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자신의 영화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 삼부작에 참여한 주요 배우들은 모두들 하나 같이 이야기한다. 더이상의 배트맨은 없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다면 출연할 의지가 있다.


나 역시 언제라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면 만사를 재쳐두고 극장으로 향할 의지가 있다. 아..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1. 그냥 담론에만 집중해서 쓰다보니 액션, 한스 짐머의 영화 음악, 트리비아와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인물들과 소소한 설정 들에 대해서는 아예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짧게 정리해 봐야겠네요. 아이맥스로만 2번 관람했는데 이번에는 메가박스 M관의 4K로 볼지 아님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지 (행복한) 고민입니다.


2.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두 번째 보고 온 날 집에오자마자 '다크나이트'를 다시 보았어요. '라이즈'를 보니 더 더욱 '다크나이트'가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아, 물론 아직 '비긴즈'를 다시 보시지 않았다면 이게 무조건 우선입니다.


3. 아직 기다림이 다 끝나지는 않았군요. 블루레이 발매를 또 기다립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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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다시보기 (Batman Begins, 2005)

공포를 극복하고 배트맨으로 태어나다



다음주면 드디어 개봉예정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 Rises, 2012)'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감상에 더 효과적일 만한 각종 작품, 자료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놀란 배트맨 3부작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개봉 당시에도 매우 만족했던 작품이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전반적으로 '다크나이트'급의 열광은 없었으며, 별로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당시 분위기였다), '다크나이트'를 보고 나서 다시 보게 된 비긴즈는 더 매력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라이즈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꼭 한 번 다시 볼 만한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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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역시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나?'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비긴즈' 영화의 숙제이자 반드시 설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특히 배트맨의 경우 후천적인 사고에 의해 본의아니게 히어로가 되었거나 아니면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 난 경우와는 달리, 본인의 의지에 따라 '배트맨'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왜?'라는 물음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배트맨 비긴즈'는 정말로 탁월한 작품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수의 팬들이 '다크나이트'보다도 이 작품을 더 꼽기도 하고, 결국 이 3부작이 완성되려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왜?'라는 물음에 답해야 할 '배트맨 비긴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완벽하고도 충분한 답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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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기존에 보았을 때와는 달리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 이전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굉장히 많은 담론들과 이 3부작을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심어져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브루스 웨인은 스스로가 겪는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 혹은 중간의 해결책으로 배트맨이라는 아이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단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모의 죽음을 눈 앞에서 겪게 된 이후의 공포와 복수의 트라우마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을 잘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 브루스는 그 이전 동굴에 떨어져 박쥐들로 표현된 공포를 겪은 것이 가장 큰 모티브인 동시에 고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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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메인 테마가 '공포'와 '극복'에 있다는 점에서 부모의 죽음,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히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한 상처가 아닌 공포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브루스가 어려서 깊은 우물에서 공포에 빠져있을 때, 이를 극복해준 매개체는 다름 아닌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이었다. 다른 히어로들이 아버지를 비롯해 자신에게 직언을 해준 이의 말을 고비 때마다 되새기며 다시 초심을 다잡는 것과는 달리, 브루스 웨인은 초심을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에 힘입어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게 되는 것이다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돼, 라는 말은 단순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된 이후에도 겪게 되는 일들이나 배트맨이 되려고 한 목적 등을 따져본다면 '올라오면 된다'는 건 브루스 혼자서는 이끌어낼 수 없었던 해결책이었기에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정리하자면 어린 브루스는 공포를 스스로 극복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로 인해 극복하고 의지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아버지를 잃게 되자 다시금 공포에 휩싸인 동시에 본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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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만약 브루스가 본래 계획했던 대로 스스로 복수할 수 있었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공포 - 극복(아버지) - 아버지의 죽음 - 복수 (범인의 처단) 으로 내면적 고통을 해결했거나 혹은 스스로 극복하는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의 손으로 복수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것이 이 기회를 다른 곳 (고담의 악당들을 퇴치하는 것)에 쓰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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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결국 다른 자의 손에 죽게 되자 혼란을 겪던 브루스는, 고담의 지배자인 팔코니와 만나 또 다른 공포를 접하고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기로 작정한다. 노숙자와 옷을 바꿔 입고는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뛰어가는 이 뒷 모습은, 이후 '다크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고담의 다크나이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뛰어가는 그 뒷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이후 라스 알굴과 듀커드를 만나 자경단으로서 훈련을 받는 것 역시 브루스에게는 공포를 극복하는 하나의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대부분의 다른 영웅이 그러하듯이 코스튬을 입고 나선 이후 바로 완전한 영웅으로서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는 훈련 기간이 많아서인지 첫 시도에서도 거의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 역시 공포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겠는데, 즉 브루스 웨인이 진정한 배트맨이 된 시기는 스스로 공포를 극복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적 중의 하나로 닥터 크레인 (허수아비)이 등장하고 있는데, 닥터 크레인의 주 공격 포인트가 바로 상대의 공포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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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과 상대하게 된 배트맨은 바로 이 공포를 자극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거의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 안고 마는데, 영화는 이 지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아직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코스튬을 입고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자신의 공포를 극복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다시 한 번 알프레드를 통해 아버지 토마스 웨인의 유산(재산적인 것 말고)을 비로소 흡수한 브루스는, 진정한 배트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공포를 극복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존재인 듀커드와의 일을 마무리 짓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보면 볼 수록 완성도가 높은 것이 '비긴즈'로서 해야할 숙제들을 모두 만점으로 완료한 동시에 '다크나이트'로 가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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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대놓고 다음 편의 주적은 조커가 될 거라는 장면(이건 암시라고 하기엔 너무 직접적이니)은 이미 '다크나이트'를 통해 보았던 것처럼 속편의 주제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다크나이트'와 연결지어 보면 이 마지막 조커 장면 외에도, '다크나이트'에서 주로 다뤄지는 갈등의 요소에 대한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입장과 생각을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즉, 브루스 웨인이 자신이 공포를 극복해내며 드디어 배트맨으로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존재의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다는 것을 '배트맨 비긴즈'는 은근히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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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음 주 개봉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위해 '배트맨 비긴즈'를 다시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생각은 '배트맨 비긴즈'를 보았을 때 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고 나서야 더 깊게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 이제 여섯 밤만 자면 그 대단원을 만날 수 있겠구나 ㅠ



1. 다시 본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나이트'에 비해 유머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거의 시퀀스마다 하나 둘 씩 등장할 정도니까요. 어쩌면 시작부터 너무 무거워만 질 수 있는 것을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겠네요.


2. '다크나이트' 역시 주말에 다시 보긴 할 건데, 또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비긴즈'에 비해 예전에 써놓은 글의 양이 많다보니 말이죠 ^^;;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1 - 첫 느낌

http://realfolkblues.co.kr/696


다크나이트 _ 히어로물의 역사를 새로 쓰다 #2 - 세계관과 메시지

http://realfolkblues.co.kr/700


3. 모든 이미지는 '배트맨 비긴즈' 블루레이에서 직접 캡쳐하였습니다.


4. 이건 그냥 보너스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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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재미있는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ㅋ 매번 눈 주위만 팬더처럼 까맣게 칠해야하는 배트맨의 이면. 이 장면은 '킥 애스'에서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했죠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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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은 어떤 영화일까?


워낙에 기대되는 작품들이 즐비한 가운데 나름 소소하게(?) 기대되는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폴 버호벤 감독의 1990년 작 '토탈리콜 (Total Recall)'을 리메이크한 렌 와이즈먼의 '토탈리콜'이다 (폴 버호벤의 작품은 잘 알려졌다시피 필립 K.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폴 버호벤의 원작은 어린 시절 보았을 때의 그 충격 (특히 그 뚱뚱한 여자의 얼굴을 벗고 아놀드의 얼굴이 나올 때의!!)은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이후 다시 보게 된 '토탈리콜'은 폴 버호벤의 작품 답게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다시 리메이크 된 다고 했을 때 당연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렌 와이즈먼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제법 괜찮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폴 버호벤의 원작이 담고 있는 메시지나 인상이 워낙에 깊기 때문에 차라리 이와 비슷한 노선을 걷는 것 보다는, 액션과 볼거리에 더 집중한 영화가 좋지 않을까 하는 예상에서다 (이랬는데 아니면 어쩌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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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와이즈먼은 '언더월드' 시리즈와 '다이하드 4.0'으로 유명한 감독인데, '언더월드'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장점 (물론 단점이 없지 않았기에 장점만)을 '토탈리콜'의 세계관에 잘 녹여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놔주지 않고 함께 달려갈 수만 있다면, 폴 버호벤의 원작을 좋아했던 팬들도 다른 성격과 재미의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액션과 볼거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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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토탈리콜'이 기대되는 다른 이유는 출연하는 배우들 때문인데,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게 되는 콜린 파렐은 물론이고 에단 호크까지 나온다고 하니 그의 팬으로서 볼 이유가 하나 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에단 호크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없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의 비중과 연기를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 그리고 렌 와이즈먼 감독의 작품답게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있는 케이트 베킨세일과 한국계 배우 존 조의 활약도 기대된다!





국내에는 8월 개봉예정인데, 시원한 블록버스터 한 편을 기대해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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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s Paris, 2011)

우디 앨런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는 감독 중 한 명인 우디 앨런의 신작이었기에 심히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나온 오웬 윌슨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포스터만 보고는 워낙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우디 앨런이라 파리에 대해 흠뻑빠진 그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작품이 아닐까라고만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미 '스쿠프 (Scoop, 2006)' 같은 작품을 통해 재치를 보여주었었던 그는, '사랑해, 파리' 연작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를 또 한 번 우디 앨런다운 작품으로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자신감있게 만들어냈다. 보는 내내 큭큭 거리고 흐뭇하게도 되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마치 우디 앨런이 쓴 '엑설런트 어드벤처' 같았다. 키에누 리브스가 출연했던 바로 그 '엑설런트 어드벤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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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는 좁게 보자면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넓게 보자면 개개인의 느끼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가장 앞선 생각은 오웬 윌슨이 연기한 주인공 '길'이 너무도 부러웠다는 점이다. 나도 종종 그런 꿈을, 내가 평소 동경하는 인물들과 친구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작가, 예술가 들을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게 되는 '길'의 모습에 대리 만족을 해볼 수 있었다.


극중 '길'은 소설을 한 편 쓰고 있는데, 주변 얘기를 빌리자면 돈 되는 것과는 무관한 그리고 대중들의 취향과도 좀 멀어져 있는 자신만의 세계에 근거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실에서 이렇게 냉대를 당하던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로 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물론, 좋은 반응을 듣게 된다. 앞서 이 영화가 좁게는 작가에 대한 넓게는 삶의 만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작가로서 '길'이 갖고 있는 평소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길'이 사건을 겪고 변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래 갖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의심없이 믿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얘기는 곧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얘기가 된다. 작가인 '길'의 이야기는 감독인 우디 앨런과 겹쳐질 수 밖에는 없는데,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구성 자체에서도 바로 그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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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실상 100% 소화하기는 어려운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극 중 등장하는 헤밍웨이, 피카소, 스콧 피트제럴드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분명 유명한 예술가로서 등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고, 영화는 기존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던 영화들과는 달리 누구나 다 알만한 유명인만을 등장시키지도, 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해서 만약 영화가 이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그건 정말 아니었을 것이다. 이건 '길'의 이야기고 '길'에게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는 이들에 대해 아는 만큼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풀어놓았다. 대사 하나 하나에도 깨알 같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조크들을 배치했는데, 쉽게 얘기해서 아는 사람만 웃어도 좋다는 식이었다. 물론 우디 앨런 쯤 되니 이런 자신감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극 중 '길'이 깨달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이러한 자신감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을 쓸 때 무엇인가를 100% 설명하려다보면 오히려 내가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차라리 누구나에게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정수를 깨닫고 있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글이 결국은 더 많은 '누구나'를 끌어 안을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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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결국 누구나 동경하는 바가 다르고, 호불호가 갈리고, 만족도가 다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에 근거해 지금(현실)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위해 그 세계에 남기로 한 아드리아나(마리온 꼬띨라르)의 이야기가 '길'의 선택 만큼이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들에 대해 100%를 던질 수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겪고, 최근 더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인데 영화 속 '길'과 아드리아나의 이야기가 전한 작지만 임팩트 있는 깨달음은, 파리의 그 아름다운 풍경들 보다도 더 깊게 남았다. 뭐 그래도 파리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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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더 있었더라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물론 이것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말이죠;;


2.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역시 배우들 보는 재미죠. 너무 많은 배우들이 등장해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톰 히들스톤, 마이클 쉰은 물론이요 에드리언 브로디와 앨리슨 필의 출연도 몹시 반가웠어요. 아,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4'에 나왔던 그 바바리 언니 레아 세이두를 보게 된 것도 큰 반가움이었구요.


3. 아직 파리는 못 가봤지만 이제 가게 된다면 꼭 들러야할 명소가 한 군데 더 생겼네요. 12시되면 이제 그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제법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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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2012년 상반기 영화 베스트 10



매해 템플릿처럼 이 맘 때면 반복하는 말이지만 2012년이라는 숫자가 아직 다 익숙해지기도 전에 7월이 훌쩍 다가와버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참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들을 극장을 통해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처음부터 아주 큰 기대를 했었던 영화도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했으나 큰 감동을 준 작품도 있었으며, 볼 계획이 없던 영화였으나 보고나서는 안봤으면 어쩔 뻔 했을까를 되내였던 작품들도 있었다. 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10작품을 꼽아보았다. 10작품 가운데 순위는 없으며, 순서는 개봉일 순이다.



1.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올 상반기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근사하고 우아한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TTSS였다.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배우들의 향연들 만으로도 황홀한데, 스파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이 방식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제 내게 스파이하면 이던 헌트 만큼이나 조지 스마일리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올해의 엔딩곡 후보.

 

 

 

 

2.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스필버그의 오랜 팬으로서 물론 재미나 감동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워 호스'의 감동은 그 크기가 달랐다. 복잡한 얘기도 없고, 신파적이고 우직한 이야기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나를 이토록 많이도 울렸다.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흘린 눈물 가운데 양으로만 따지면 '워 호스'가 아마도 가장 많을 것이다 (극장에서 잘 우는 내 특성상 올 연말에는 꼭 눈물양으로만 순위를 한번 따져봐야 겠다;;).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설명하는 것에는 이제 지쳤다.

 

 

 

 

3.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스필버그가 왜 거장인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것처럼, 조지 클루니가 왜 멋진 배우인가에 대해서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알렉산더 페인과 만난 조지 클루니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디센던트'는 시간을 두고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30대 초반에 본 '디센던트'와 40대가 되어서 보게 될 그리고 50대가 되어서 보게 될 '디센던트'는 또 다른 영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11

블루레이 리뷰 보기 - http://realfolkblues.co.kr/1641

 

 

4.

 

 

크로니클 (Chronicle, 2012)

소년이여, 진짜 영웅이 되어라

 

 

27살 신예 감독 조슈아 트랭크의 '크로니클'은 지난해 '드라이브' 처럼 올해의 복병이었다. 그냥 재치있고 신선한 시도 정도로 머물러도 괜찮았을 텐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담론의 세기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 앤드류 (데인 드한)는 올해 상반기 극장에서 만난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나를 뜨겁게 만든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아직도 후반부 앤드류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할 정도로 에너지가 대단했던 영화.

 

 

 

 

5.

 

 

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은 하마터면 극장에서 놓칠 뻔한 영화였다. 개봉 첫 주에 봤으니 시기적으로 놓칠 뻔했단 얘기가 아니라 볼 생각이 그리 많지 않았던 영화였단 얘기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난 뒤 '건축학개론'은 올해 상반기 본 영화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영화가 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극중 주인공들과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고, 정말 놀랍도록 닮아있는 나의 첫 사랑과 90년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안에서 수지가 연기한 '서연'을 보게 되어 벅찼던 영화가 아니라, 승민(이재훈)과도 같았던 나를 발견할 수 있어 더 움찔하게 되었던 영화.

 

 

 

 

 

6.

 

 

어벤져스 (The Avengers, IMAX 3D, 2012)
올스타전이 주는 쾌감

 

 

'어벤져스'는 일단 기다려온 시간 만으로도 10작품 안에 들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각각의 캐릭터를 하나씩 즐겨왔던 지난 몇 년. 드디어 시작된 올스타전은 올스타전에 걸맞는 매력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비슷한 프로젝트가 많이 무산되었던 것에 미뤄봤을 때, 이 정도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실현된 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7.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도 했었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과연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얼마나 압도 당했는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 동안 좌석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겪는;;). 혹자는 라스 폰 트리에를 일컬어 너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자신이 집중하는 것에 대해 이런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보기는 정말 힘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또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했다.

 

 

 

 

8.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다른나라에서'는 홍상수의 전작들과 미묘하게 닮아있으면서도 '다른' 작품이었다. 유쾌함과 아이러니, 가능성과 희망을 모두 우연인듯 조율해낸 홍상수의 장기는 이자벨 위뻬르라는 배우를 통해 또 한 번 표현되었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멋진 작품을 이렇게나 꾸준히 만들어주는 홍상수 감독에게 감사할 뿐이다. 아, '판타스틱'한 유준상의 영어 대사 역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9.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논란 아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나는 리들리 스콧의 방식을 굳게 지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답'이 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작품이 관객에게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가장 효과적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블루레이를 어서 보고 싶은 이유도 다시 한번 이 작품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이지 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10.

 

 

두 개의 문 (Two Doors, 2011)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접 확인하라

 

 

아마도 '두 개의 문'을 보지 않은 이들은 올해 상반기 베스트 10에서 이 제목을 보고서는, 작품이 갖은 사회적 메시지 때문에 상징적으로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용산참사를 기록한 '두 개의 문'은 당당히 영화적 완성도 만으로도 올해 상반기 10작품에 꼽히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오히려 더 많은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라면 '두 개의 문'처럼 영화적 완성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경우이기도 했다. 아직도 못 본 이들이 있다면 지금 바로 상영관을 찾아 관람하길!

 

 

 

 

 그 외에 10작품에는 꼽지 못했지만 이 안에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좋았던 영화들로는,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카메론 크로우의 '우린 동물원을 샀다',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 데릭 시안프랑스의 '블루 발렌타인' 등이 있었다.


올 하반기에도 이번 달 개봉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비롯해,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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