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년이다. 참 시간은 빠르게도 흐르고, 나는 참 무심하게도 일년에 겨우 하루나마 그를 추억하며 글을 끄적인다. 우연인지 얼마전 TV에서 방영한 '아비정전' 속 장국영의 모습은 당연하지만 그대로였다. 가끔 우리 곁을 일찍 떠난 스타들을 추억할 땐, 내 추억 속에, 내 기억 속에 항상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은데, 정말로 좋아했던 스타의 경우는 그런 욕심을 부릴 수 없는 것 같다. 장국영 역시 이제는 항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늙어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9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 해 본다.



매년 그의 기일마다 그를 추억하며 하는 얘기지만, 장국영이라는 배우 그리고 가수의 얼굴에는 참 묘한 감정들이 녹아있다. 유쾌하고 장난끼 넘치는 얼굴에서부터 연인을 뜨겁게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여유로운 얼굴까지. 그의 표정과 얼굴을 말로 형용하기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내게 있어 특별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과거형이 아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한 없이 슬퍼졌다가도 그냥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고 싶다가도 이내 그저 놓아주어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을 갖고 있다. 장국영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9주기를 맞아 그의 활동 당시 영상들을 찾아보던 중, 유튜브에서 예전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었던 방송을 보게 되었다. 장난끼 넘치지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MC이소라를 리드하며 무대를 즐기던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가 그의 쇼를 즐길 수 있었다. 아, 이게 벌써 13년 전의 방송이구나.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한 장국영 (1999년)



매해 만우절이어서 더더욱 잊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 만우절이어서 모두가 웃는 가운데 그의 추억을 더 아련하고 쓸쓸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일마다 꼭 듣는 '月亮代表我的心' 청해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최근 인상 깊게 본 작품 중 하나인 '클로니클'에서 유난히 돋보이고 또 극장을 나오고 나서도 계속 이미지가 아른 거리는 (여배우도 아닌!) 배우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주인공 '앤드류' 역할을 맡은 데인 드한 (Dane DeHaan) 이었다.



'클로니클'에서 데인 드한이 연기한 앤드류 라는 캐릭터는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기에 좋은 예였는데, 초반 친구도 없이 홀로 외롭게 지내는 소극적인 캐릭터에서부터, 이후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과 이후 분노를 폭발시켜 폭주하게 되는 것까지. 앤드류라는 캐릭터는 데인 드한이라는 신인 배우를 단 번에 세상에 알리는 데에 매우 좋은 옷이였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도 그랬지만 초반 여리고 약해보이는 모습에서부터 후반부의 강한 분노 표출의 모습까지 누군가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누구? 데인 드한??)


실제 생김새에서도 그렇고 이 '앤드류'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느낌도 그렇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되었다. 디카프리오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에 출연했었던 '디스 보이즈 라이프 (This Boy's Life, 1993)' '바스켓볼 다이어리 (The Basketball Diaries, 1995)' '토탈 이클립스 (Rimbaud Verlaine Total Eclipse, 1995)' 등의 작품에서 '클로니클'의 데인 드한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 반대로 되긴 했지만), 여린 와중에도 그 여리고 호리호리한 몸과 팔과 다리로 분노와 울분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앤드류'의 분노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디카프리오를 인식하게 된 것은 '타이타닉'은 물론이요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닌 조니 뎁과 함께 연기한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나 '토탈 이클립스'같은 강렬한 작품이었는데, 데인 드한 역시 '클로니클'을 통해 강렬한 인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도 유사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 데인 드한의 작품을 단 한 작품 밖에는 보질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단 한 작품만으로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키게 만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얘기일터. 참고로 개인적으로 신인 배우에게 디카프리오를 연상시켰다는 이야기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찬사 중 하나인 점을 밝혀둔다. 즉, 대중이 오해하는 것처럼 단순히 얼굴도 잘 생겼고 연기도 좀 하겠네.. 가 아니라 진정한 배우로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신예라는 점이다. 물론 냉정하게 얘기해서 데인 드한에게 레오의 초창기 시절과도 같은 레전드급 미모는 존재하지 않지만 (비교 상대가 레오라면 누구라도 무릎을 꿇어야 할터;) 표정과 연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갖고 있는 매력들이 엿보이는 다는 점만으로도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찬조출연 : 빵 형님)



데인 드한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클로니클' 이전에는 주로 TV시리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왔음을 알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이미 '클로니클' 이후 후속작들이 결정되어 촬영에 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왜냐하면 가끔 보석 같은 배우를 발견했는데 너무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거나 생각보다 후속작이 늦어져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데인 드한은 '클로니클'의 기억이 다 식기 전에 (아마도)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일단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신작 '잭 앤 다이앤 (Jack and Diane, 2012)'이 북미기준으로 올해 6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톰 하디, 게리 올드만, 샤이야 라포프, 가이 피어스, 제시카 차스테인 등 캐스팅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하는 'The Wettest County (2012)'에 캐스팅 되어 올해 8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해리포터' 다니엘 레드클리프와 '덱스터' 마이클 C.홀과 함께 'Kill Your Darlings (2013)'에도 캐스팅 되어 촬영에 임하고 있다.



(아.. 이 사진은 정말 레오의 눈빛을 갖고 있네요. 오른쪽 말고요;)


영화에서 새로운 배우를 만나는 것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클로니클'의 데인 드한은 어린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키는 것 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배우였다. 다시 말하지만 '데인 드한에게서 디카프리오가 보인다'라는 표현은 내가 데인 드한에게 현재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겠다. 차기작에서도 이런 기대와 관심이 더 큰 사랑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멋진 연기와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대되! 데인 드한 (Dane DeHaan)!!!




글 / 아쉬타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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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2012)

나의 첫사랑과 90년대에게 바침



'건축학개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린 남자주인공을 맡은 이제훈 때문이었다. '파수꾼'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그였기에 신작이 기대되었던 것인데, 그래도 볼까말까를 고민하던 차에 들려온 시사회 평들은 더 큰 호기심을 갖게 했다. 그 가운데는 '시라노 : 연애조작단'을 떠올리게 한다 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시라노..'역시 처음에는 이민정만 믿고 갔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건축학개론' 역시 눈물을 이끌어낼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빼먹을 뻔 했는데 이제훈 만큼이나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바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었다. 나의 90년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람회를 떠올렸을 때, 만약 이 작품 역시 전람회를 그런 추억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면 분명히 감동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건축학개론'은 '기억의 습작'만으로도 소름 돋게 만든 것은 물론, 나중에 가서는 안경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리도록 만든 '감동의 걸작'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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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사랑


'건축학개론'을 정의하는 첫 번째 단어는 아마도 '첫 사랑' 일 것이다. 첫 사랑을 담아낸 영화들은 대부분 애틋하고 간절하며 그립기 마련인데, '건축학개론'은 그 가운데서도 굉장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 자신의 첫 사랑을 떠올려 보았을 때 미묘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았던 행동이나 감정들까지 이 영화는 정말 깨알같이 담고 있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하나하나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 지난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때 '맞아, 나도 저랬어' 하는 부분이 정말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은 자연스럽게 공감대로 연결되었다.


너무나 내 추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극중 어린 승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어린 서연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내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런데 이 영화가 첫 사랑을 그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좋았던 점은, 첫 사랑의 상대에 대한 애정을 추억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던 '나'를 추억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나'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깨알 같았기에 영화 속 승민에게 100% 감정이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 누군가를 첫 사랑했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다. 그래서 쓸쓸한 동시에 행복함이 들었다. 이런 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건축학개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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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90년대


첫 사랑의 추억과 더불어 '건축학개론'이 이끌어낸 또 다른 추억은 90년대에 관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70년대 생인 이용주 감독은 1980년대 생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90년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당시의 패션이나 유행하던 브랜드의 활용은 물론이고 유행하던 가요들까지 적절히 배치하고 있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마도 영화가 어린 승민의 입장에서 진행된다는 점 때문에 같은 남자로서 더욱 공감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브랜드 티셔츠와 청바지 하나에 집착하던 모습이나 잘보이고 싶은 이성을 만날 때는 매번 갖고 있는 옷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으려고 했었던 추억이 떠올라 애잔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을 그 때는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래, 그 때는 그것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었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말 못할 무언가가 뭉클하며 끓어올랐달까. 내게 있어 첫 사랑 그 이상으로 중요한 시기였던, 어쩌면 지금까지 짧게나마 살아온 시절 가운데 가장 소중했던 시절이었던 90년대를, 가감없이 그대로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함과 동시에 말 못할 감정에 울컥했던 것 같다. CDP와 독서실, GUESS와 힙합 바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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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이라는 것


영화 제목이 '건축학개론'이기도 하지만, 제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상당히 자주 '집'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반문하고 있다. 어린 서연이 제주도에서 홀로 서울에와서 독립해 살게 되는 공간으로서의 '집', 서연과 승민이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 공간으로서의 '집', '압서방'으로 불리는 이른바 강남이라는 상대적 우월감의 지역적 표현으로서의 '집', 어른이 된 서연이 아버지를 위해 고향 제주에 지으려고 하는 '집', 서연에게 고백하려는 승민이 그녀에게 선물해주고 싶어 직접 디자인 한 '집', 어른이 된 승민이 결혼을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집', 그리고 승민의 어머니가 재개발되어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오래된 정릉의 '집' 등 '건축학개론'은 다양한 의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집'이라는 존재에 대해 영화는 소소한 것부터 현실적인 것까지, 영화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첫 사랑의 추억이라는 주제와 병행하여 은연 중에 '집'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들려주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더 풀어서 자세하게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워낙에 앞선 주제들의 추억에 흠뻑 빠지다보니 분석적으로 달려들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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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건축학개론' 속 승민의 이야기에는 나의 90년대가 너무 많이 녹여져있었다. 완전히 영화 속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더라면 그냥 슬프거나 그냥 즐겁거나 했을 텐데, 이것이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다보니 이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만가지 감정이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울고, 웃고, 후회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와중에 어느 덧 영화는 또 한 번 '기억의 습작'과 함께 젖어들고 있었다. 아.....나의 첫 사랑과 90년대를 심하게 떠올리게 했던 애틋하고 아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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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이런 한국영화에서 재미를 위해 등장하는 캐릭터는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낯뜨거워질 때가 많았는데, '납뜩이'는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납득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ㅋ 그 깨알 같은 대사들과 연기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소리내어 웃게 만들었네요 ㅎ

2. 처음 옥상에서 '기억의 습작'이 나왔을 때 정말로 거짓말 안보태고 온몸에 다 소름이 돋았어요 ㅠ 정말 '버틸 수 없더'군요 ㅠㅠ

3. GUESS 티셔츠에 관한 에피소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막 터져나오더군요. 어쩔 수 없이요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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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비갑 (龍門飛甲, 2011)

아, 그리운 신용문객잔이여...



서극과 이연걸 그리고 무엇보다 1992년작 '신용문객잔'의 뒷 이야기를 그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이 영화 '용문비갑'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신용문객잔'은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을 남긴 홍콩 무협 영화 중 대표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서극이 직접 나선다고 하니 더더욱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토에서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 서극 감독이 아이맥스 3D를 제대로 보여주겠다 라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었던 것 같은데, 국내에서는 3D로 만나볼 기회가 없었으니 이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작품을 본 느낌은 아이맥스 3D였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굳이 '신용문객잔'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으며, 그 이유 중 하나에는 '또!' CG가 포함되어 있었다. 왜? 무협영화는 3D를 거의 단 한 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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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인트로에서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느껴졌는데, 예전 홍콩 무협 영화에서 느꼈던 특유의 음악은 옛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했으나 그와는 반대로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통 CG장면은 불안함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신용문객잔'과 마찬가지로 사막 한 가운데 고립된 객잔을 중심으로 다양한 강호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유로 하나로 모이게 되는 '용문비갑'의 구성은 더할나위 없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중간중간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에게서는 '신용문객잔'을 비롯해 당시 흥하던 무협 영화 속 강호의 캐릭터들을 연상시켜서 '흥분'이 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좋은 (정말 좋은!) 캐릭터들과 설정을 영화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만 느낌이다. 어찌보면 과감하게 코믹적 요소를 거의 배제하면서 진지하게 강호와 무협을 그리려던 시도는 마음에 들었으나 이 전개가 끝까지 가는 데에 너무 외부적인 불필요 요소들이 개입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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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망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몰입을 하려하면 깨고 마는 이질감이 드는 CG의 사용이었다. 최근 본 중화권 무협 영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은 CG의 적극적인 활용과 그로 인한 이질감이었는데, '용문비갑' 역시 그랬다. 일차적으로 배경을 통으로 CG배경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예 배경만 등장하는 경우도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배우와 함께 할 때는 감정이 깨질 정도로 너무 큰 이질감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마도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전 무협 영화에서는 미처 다 구현할 수 없었던 고수들의 무공과 결투 장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을 텐데,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화려해지기는 하였으나 강호의 고수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은 사라져 버렸고, 볼거리 측면에서도 사실 그다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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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전 무협물에서 느꼈던 강호의 그 여백의 미가 사라져버렸다. '강호'라는 특수한 개념은 다른 문화와 고수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정서가 있는데, 그 여백의 여운과 아름다움이 CG로 꽉꽉 채워져 버리다보니 매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용문비갑'의 캐릭터와 설정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스샷만 봐도 두근거릴 정도로 아름다울 뻔 했던 캐릭터들이 많았는데 적어도 그 매력을 영화가 100% 녹여내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왜 최근의 중화권 무협 영화들이 CG 활용에 그렇게 집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관객들이 원하는 건 화려해진 고수들의 기술적 묘사가 아니라 그 뒤에 깔려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쉽게 말해 '가장 잘 알만한 분들이' 왜 그러시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오해가 있을 까봐 이야기하자면 21세기의 중화권 무협 영화가 예전 전성기 때의 홍콩 무협 영화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경향과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데에 더 집중하고 기대도 되지만, 그렇지 않고 이전 스타일을 가져올 거라면 그 근원의 것을 제대로 가져오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간 본 중화권 무협 영화 중 마음에 드는 것은 '검우강호' 밖에 없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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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극의 '용문비갑'이 특히 아쉬운 이유는 큰 기대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경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아쉬움 때문에 또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것 보다는 먼저 예전 '신용문객잔'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진다. 아... 그리운 신용문객잔이여...


1. 개인적으로는 여러 매력적 캐릭터 가운데 특히 주신이 연기한 '능안추' 역할이 매력적이었어요. 예전 무협영화의 임청하를 보는 것도 같고. 주신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ㅠ


2. 마지막에도 썼지만 묘하게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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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 (Chronicle, 2012)

소년이여, 진짜 영웅이 되어라



27살 신예 감독 조슈아 트랭크의 데뷔작 '크로니클 (Chronicle, 2012)'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초능력' 때문이었다. 물론 예고편에서 살짝 맛을 보여주었던 안티 히어로 영화로서의 면면도 기대가 되기는 했지만, 1차적으로는 소년들이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무겁지 않게 그리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년'이었다. 소년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아직 소년의 감성이 풍부한 27살의 조슈아 트랭크는, 초능력이라는 매력덩어리를 21세기 사회에서 빠르게 소외되고 도태되고 또 빠르게 얻고 그 만큼이나 빠르게 잃어버리는 것을 겪고 있는 미성숙한 소년들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그리고 흥미 위주로만 흘려버릴 수 있었던 이야기에(그랬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이야기를) 깊이와 무게를 담아내는 것까지 적지 않게 이뤄냈다. '크로니클'을 보고 '아키라'나 '파수꾼'을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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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클'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술로 사는 아버지와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이 따돌림 당하던 주인공 앤드류가 우연히 두 친구와 함께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이후의 일들이다. 일단 10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초능력과 이들이 이를 활용하는 장면들은 제법 신선했다. 이들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더 나아가 이 능력을 어떤 범위와 한계와 규칙을 통해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도 규칙도 없는 상황이다. 즉, 애초부터 이 초능력을 사용해 세상을 구해야겠다 라는 심오한 가치도 없었음은 물론, 정반대로 나쁜 짓에 활용해서 쉽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기존 초능력과 관련한 영화들은 이 부분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거나 좀 더 무거운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들이 많은데, '크로니클'은 이보다는 미성숙한 소년들이 통제할 수 없는 능력을 얻게 되었을 때에 더욱 주목한다. 그래서인지 앞서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이들이 초능력을 얻고 사용하는 장면들에서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발단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내가 만약 이들과 같은 초능력을 갖게 되었더라면?'이라는 질문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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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크로니클'을 이야기할 때 '페이크 다큐'라는 장르를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페이크 다큐로 정의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페이크 다큐라는 건 SF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들과 세계관이 마치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현실적인 다른 도구들을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크로니클'은 초능력이나 SF적 설정이 핵심인 영화가 아니라 그 역시도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영화이고, 현실처럼 그려서 더 높은 효과를 내려는 의도보다는 그냥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페이크 다큐와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페이크 다큐라는 이야기를 듣는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영화 속에서 주인공 앤드류를 비롯해 대부분의 장면들이 극중 인물들에 의해 캠코더로 촬영된 설정의 장면들이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장르로서가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측면으로 이해했다. 영화 속 앤드류는 친구도 거의 없고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운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앤드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상대로 자기 자신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한다. 나중에 친구들은 앤드류에게 '그만 좀 찍어'를(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대사 중 하나일듯)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초능력을 얻게 된 이후에도 앤드류는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크로니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초능력'보다도 '촬영' (혹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혹은 너무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세계에서 나를 드러내고 기억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 같은 것이 '크로니클'의 영화 속 '촬영'에는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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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따듯한 시선인지 아니면 더 냉소적인 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앤드류를 카메라 속에서 놓치지 않는다. 앤드류가 스스로를 촬영할 수 없을 때 조차, 병원의 CCTV 등으로 앤드류를 담아낸다. 앞서 따듯한 시선인지 냉소적 시선인지 모르겠다고 한 이유는, 앤드류의 마음처럼 영화가(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더라도, 영화라도!) 끝까지 앤드류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느껴진 동시에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조차 앤드류를 바라보는 것은 사람이 아닌 CCTV라는 점에서 결국 더 많은 앤드류가 잠재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반적 시선은 어두웠을지언정 감독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음을 앤드류의 사촌이자 친구인 '맷'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 맷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심을 잡고 있는 캐릭터이자 어쩌면 감독이 영화의 메시지를 실현하는데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부여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읕 텐데, 영화 속 맷은 오히려 초능력을 얻고 나서 더 성숙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성숙함이 초능력으로 부여된 듯!). 스스로도 그 간 자신이 너무 유치하거나 생각없이 행동했던 일들을 반성하고, 앤드류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정말로' 솔직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우연히 얻은 초능력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 (물론 스티브에게는 그럴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맷이 느끼는 그 진정성만은 분명히 앤드류의 분노 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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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는 결국 소년 시기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마무리하는 두 주인공의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는다. 앤드류는 분노로 가득차 있던 소년 시기를 강력한 초능력으로 인한 우월함에 세상을 향해 폭주하며 소년이기를 벗어나려 하고, 맷은 그런 앤드류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앤드류를 지키려는 동시에 스스로도 자연스럽게 어른이(긍적적 의미의)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앤드류와 맷, 혹은 앤드류와 세상이 대립하는 이 마지막 시퀀스의 강렬함은 생각보다 더 인상 깊었다. 앤드류에게서는 이해할 수 있는 분노가 느껴졌고, 맷에게서는 역시 그래야만 하는 그의 책임감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퀀스는 초능력과 액션이 오가는 장면 치고는 눈물이 날 만큼 절절했으며 떨림이 객석까지 전달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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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른이 되기 전 소년들이 겪는 감성과 갈등을 현실적이면서도 가볍지 않게 그려내면서,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묻는 안티히어로 영화의 메시지까지 담아낸 '크로니클'은 분명 대단한 데뷔작이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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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火車, 2012)

삭막한 사회 속 잊혀져 가는 존재에 대한 연민



변영주 감독의 신작 '화차'를 보았다. 이 작품은 버블 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던 일본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신조 교코라는 여성의 삶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풀어낸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그 원인을 주로 사회로부터 찾는 작가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그런 측면에서 변영주 감독의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느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미스테리와 그 속의 인간성 그리고 이를 만든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간접 은유까지 적절한 조화를 이룬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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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혼은 앞둔 문호(이선균)와 선영(김민희)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내려가던 중 들린 휴게소에서 선영이 갑작스레 실종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실종의 미스테리를 풀어가기 위해 전직 형사인 사촌 형 종근(조성하)까지 합류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잡혀가지만, 알아가면 갈 수록 미스테리의 깊이도 마음의 상처도 더 깊어만 간다.


단순히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갑작스레 사라진 선영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선영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화차'를 본격적인 미스테리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화차'는 미스테리가 포인트인 작품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풀어가는 일종의 도구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형사인 사촌 형이 사건을 풀어가는 시점에서, 문호와 선영, 종근의 삼자 구도로 각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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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종일관 차갑고 어두운 색감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거의 웃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어만 가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문호가 선영을 쫓는 과정 속에는 기본적으로 선영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다.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연인으로서의 애정은 물론이고, 점점 미스테리가 풀릴 때마다 인간적인 실망과 분노가 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더 나아가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인간적 연민의 마음까지 도달한다 (특히 마지막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에서의 그 대사는, 애정으로 기인했을지 몰라도 분명 인간적 연민이 나타난 대사였다). 이렇듯 단순한 로맨스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적 연민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좋았다.


이렇게만 보면 김민희가 연기한 극중 선영이라는 캐릭터가 이 사회가 만든 어쩔 수 없는 피해자임만을 강조하여 연민이 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관객이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을 수 있도록 한 것은 맞지만, 그녀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은 인물들 (여기에는 문호도 포함)과 혹은 선영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는 중에 간과될 수 있었던 인물들에 대한 묘사들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선영에 대한 연민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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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감독은 '화차'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삭막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김민희가 연기한 선영이 자신으로 살아오지 못한 현실을 묘사하면서, 사람하나 죽거나 어찌되어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무관심과 단숨에 무너져 버리기 쉬운 낱알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즉, 더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도록 내몰린 사람과 내몰고 있는 사회, 또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각박한 사회와 어쩌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살기에 바뻐서 역시 내가 당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씁쓸한 자화상이자, 그 사회를 살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연민을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용산역, 용산 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은 더욱 의미 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용산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 주인공들의 교차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했고, 마지막 용산역 옥상 위에 선 선영의 모습에서는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인 용산에서 철거민으로 내몰려 망루 위에 올라야만 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이라 더더욱 연관 지을 수 밖에는 없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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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발견하게 되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할의 배우 김별 님. 좋았습니다.

2. 누가 이 영화가 16억 예산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가격대비 매우 훌륭한 때깔이었습니다.

3. 영화 음악도 은근히 좋았어요.

4.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봤으면 어쩔 뻔 했는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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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 (John Carter, 2012)

더 재밌을 수도 있었던 전쟁의 서막



주인공이 존재하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의 유명한 소설 '존 카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앤드류 스탠튼의 영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을 보았다. 사실 원작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고 단지 이런 비슷한 설정을 갖고 있는 SF영화들의 선조 격인 이야기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었던 다른 이유는 '니모를 찾아서'와 '월-E'를 연출한 앤드류 스탠튼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과 디즈니가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이었다. 픽사 특유의 스토리 텔링과 감동을 주는 연출이, 어쩌면 21세기 관객들이라면 대부분 다 잘 알고 있을 이 이야기에 어떤 리듬을 불어넣을 수 있을 지가 기대되었고, 디즈니가 제작한 12세 관람가라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본 제목은 '화성의 공주'인 '존 카터'는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이 배경으로하고 있는 세계관이나 설정, 인물, 종족, 역사 등,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부분들도 많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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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전쟁 시대의 주인공 존 카터가 우연한 기회에 화성으로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흥미로웠다. 지구에서의 일 역시 불필요한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존재하는 것도 좋았고, 교차해서 보여지는 부분들도 반드시 필요한 수준의 것들이라 이야기가 분산되는 것을 덜고 있었다. 지구인 존 카터가 화성에 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그 자체로 흥미있었는데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분명 나쁘지 않았다), 화성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각 종족들에 대한 설명과 역사에 대한 설명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좀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관객 역시 지구에서 갑자기 화성으로 온 존 카터처럼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하긴 존 카터는 그의 비해 너무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긴 했다;) 너무 그러려니 하고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간략하게 넘기기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할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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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타르크 족은 그 생김새 만으로도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요소였는데 영화 속에서는 그저 존 카터가 화성에 와서 처음 만나게 되는 이계의 종족 정도의 비중을 갖다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원작은 잘 모르니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를 시리즈로 기획한 것이라면 1편에서는 존 카터라는 지구의 캐릭터가 화성으로 넘어와서 타르크 족을 만나, 첨에는 애완동물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지만 나중에는 이 종족 자체를 이끌게 되는 이야기를 담아도 충분히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추후 다른 종족들과의 이야기가 겹쳐질 때도 무언가 구심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뭐 앞으로 만약 속편이 제작된다면 이런 면들을 차차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크 스트롱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더욱 부족했는데, 종종 이런 초월적 힘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이런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부족할 경우 뜬금없는 방향으로 빠지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존 카터'의 경우도 아슬아슬 했던 것 같다. 장황한 설명까지는 오락영화에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설명은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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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들을 나열하긴 했지만 글의 제목에 쓴 것처럼 '더 재밌을 수 있었는데'에서 시작한 얘기들이다. 오히려 설명들이 부족해서 여지가 남아서인지, 존 카터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력 때문보다는 화성과 그 세계의 종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흥미를 더 재미로 연결했었더라면!). 액션 시퀀스는 생각보다 많이 심심한 편이었지만 지루한 편은 아니었고, 앤드류 스탠튼 치고는 이야기가 밋밋한데 라고 생각했지만 엔딩에 가서는 역시 '픽사'다운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어 반가웠다. 사실 그 엔딩 생각을 못하고서는 '엇, 이거 너무 심심한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앤드류 스탠튼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존 카터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엔딩 부분이 그의 대한 매력 포인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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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터'는 아쉬운 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면 분명 더 재밌어질 수 있는 여지가 확실한 영화라는 점에서, 부디 속편이 나와서 이런 아쉬운 점들을 스스로 극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할텐데.



1. 크래딧에 사만다 모튼이 있길래 어디 나왔나 했는데 역시나 '솔라'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더군요. 윌리엄 데포의 목소리 연기도 있었고. 좋았어요.


2. 그러고보니 TTSS에 나왔던 배우가 둘이나 나오는군요.


3. 이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글로 표현하기 애매한 부분들이고 (주로 느끼는 것), 반대의 경우는 글로 쓰기 쉬운 부분들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아쉽다'가 된 것 같은데, 결론은 전 재미있게 봤다 입니다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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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 다시보기 (Cowboy Bebop : Again)

#1 시작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카우보이 비밥'이 처음 나온 것도 1999년이고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본 것도 2001,2년 쯤이니 벌써 이 작품을 만난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카우보이 비밥'은 내 블로그의 제목인 'The Real Folk Blues'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데, 2012년에 들어서며 계획을 하나씩 세우던 중 문득, '카우보이 비밥' 다시 보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한 프로젝트인냥 싶지만 사실은 그냥 비밥을 몹시도 다시 보고 싶어졌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또 어떤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라 하겠다. 과연 2012년에 다시 보는 '카우보이 비밥'은 또 어떤 작품일까?






다시 보면서 든 첫 번째 느낌은, 상당히 쿨한 1화 라는 점이었다. 간혹 1화에서도 캐릭터들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작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비밥의 1화는 그 가운데서도 '갑'이 아닐까 싶다. 만약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이들이라면 '엇, 내가 받은게 1화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의 전개인데, 1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스파이크와 제트에 대한 아주 간단한 소개는 물론, 시대와 공간의 배경에 대한 단 한 줄의 설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이미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대략 마쳤다고 가정한 듯 한 시작이자, 시공간적 배경이야 중간중간 나오는 정보들을 통해 알아가라는 식에 가깝다. 더군다나 첫 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마저 굉장히 빠른 전개와 거의 서두 부분 없이 진행이 되기 때문에 '엇, 이거 뭐지?' 싶은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이것은 첫 화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카우보이 비밥' 1화의 러닝타임이 매우 짧은 편이기 때문에 캐릭터나 배경 등에 대해 서두를 길게 가져가기 보다는,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정보를 제공하고 상당히 빠른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다. 결과론 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방식이었는데도 이 정도의 인기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선명한 우리말 광고판. 디테일이 상당하다)


우주력 원년 2022년. 태양계는 워프게이트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 ‘위상차공간게이트’이론으로 태양계 내에서 행성간의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는 신기원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게이트의 실험 도중 ‘위상차 공간 폭발’ 사건으로 달이 파괴되어, 그 파편과 운석 등으로 인해 지구는 인류가 살아가기 힘들 정도의 황폐한 별이 되고 만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로의 이주 계획을 추진하였고, 콜드 슬립(냉동수면)이나 지하도시에 살게 되었다. 비록 위상차공간게이트 실험 도중 발생한 사고로 이러한 사태들이 벌어지기는 하였지만, 또한 위상차공간게이트로 인해 행성과 행성 간의 빠른 이동이 가능해 지면서 화성과 목성을 비롯하여, 더 먼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행동범위를 넓히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광범위한 공간의 대두는 경찰들은 미처 손쓰기 힘든 무법시대를 여는 배경이 되었고, 국가들도 독립국가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무법천지가 계속되기에 이르자 결국 정부에서는 예전 현상금 제도를 부활시키게 되는데...


'카우보이 비밥'의 시공간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간단 소개는 위의 내용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각각 독립국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수의 행성에서는 범아시아적인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 중국어를 베이스로 한 분위기에 한국어도 비교적 자주 만나볼 수 있으며, 인물들도 대부분은 동양인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정확히 동양인이라고 확정짓기 애매한 부분들도 많지만, 반대로 서양인을 그릴 때는 확실히 구분 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할아버지 삼총사가 바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이 캐릭터들의 이름은 음악팬들은 너무나 잘 알다시피 보사노바 음악의 전설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서 가져왔다. 즉, 본래는 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얘기.





인디안 주술사를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다시 볼 때 주목한 것은 주술사가 아니라 그 뒤에 놓여진 20세기의 물건들이었다. 뒤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본격적으로 VH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잘 따져보면 '카우보이 비밥'은 2022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90년대에 만들어진, 20세기에 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2화 에서는 메카닉의 특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여기에 노출된 모습만으로 보자면 '미래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날로그 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전투정의 모습은 실제 현재의 비행선에 상당부분을 기인한 모습 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점 역시 앞서 이야기한 20세기의 감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첫 화에서 나타나는 가장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라면 역시 주인공 스파이크의 액션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바로 스파이크가 총과 전투기 위주로 싸우는 것 뿐만 아니라 무술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캐릭터라는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어쩌면 시공간적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설정이라서 더 흥미를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스파이크 스피겔이라는 캐릭터가 이소룡과 루팡 3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유명한 감독의 인터뷰로 인해 더 큰 흥미를 갖게 되기도 했었다. Session #1 소행성 블루스 (Asteroid Blues)에서 스파이크가 처음으로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면, 전성기 이소룡의 그림자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기도 하다.





비밥 호에서 우주를 바라보며 말없이 절권도를 수련하는 스파이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는 이소룡 (Bruce Lee)을 떠올리게 된다.





Session #2 들개의 스트러트 (Stray Dog Strut)에 등장하는 악당 캐릭터의 이름은 '압둘 하킴'인데, 이름으로 보나 용모로 보나 큰 키로 보나, 이 캐릭터는 이소룡 주연의 1978년작 '사망유희'에서 L.A 레이커스 출신의 농구선수 카림 압둘 자바가 연기한 '하킴'에 대한 오마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스크린 샷을 보면 아예 용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이 장면에서는 아예 이소룡이 등장한 광고 판을 노출하고 있다.



(아인의 역사적인 첫 등장 장면!)


그리고 스파이크와 제트에 이어 페이와 에드 보다도 더 먼저 등장하는 비밥의 주요 캐릭터 '아인'! 이후 수 많은 이들에게 웰시코기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캐릭터이자, 웰시코기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아인! 아인의 그 역사적 첫 등장은 이랬었다.




(에드가 등장하고 나서는 아인은 주로 에드와 콤비를 이루기 때문에, 스파이크와 아인이 콤비를 이룬 이 장면도 흔치는 않은 장면!)

마지막으로, 예전에 카우보이 비밥 DVD출시 때 왕성한 혈기로 작성했던 시리즈 리뷰를 소개하며, 다시 보기 첫 시간은 일단 마무리 해볼까 한다. 다시 보기 2탄에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에피소드 'Session #5 타락천사들의 발라드 (Ballad of Fallen Angels)'에 대한 이야기가 될듯!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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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상암 CGV에서는 '초속 5cm'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소소한 기획전이 열렸다. 이 기획전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다른 이유는, 최근 DP에서 진행한 DP시리즈 블루레이의 4,5호가 바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와 '초속 5cm'이기 때문인데, DP를 통해 이번 행사에 좋은 기회로 참여할 수 있었고, 두 개의 타이틀에 직접 감독님 싸인도 받을 수 있었으면 악수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초속 5cm DVD 리뷰 _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http://www.realfolkblues.co.kr/50




(감독님께 직접 싸인 받은 초속 5cm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블루레이 타이틀)


기존에 나온 DP시리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시, 외출)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판을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신카이 마코토의 대표작 2작품을 다른 것도 아닌 DP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반가웠다. DP시리즈는 국내의 정상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열악한 블루레이 시장 규모를 감안) 나오기 힘든 작품이지만, 작품성이 있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주문 형식으로 받아 수량을 확보하고 발매하는 프로젝트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영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으나 이번 4,5호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초속 5cm'를 집에 오자마자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는데, 아주 간단하게 평을 하자면 20대에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작품 속 두 주인공의 애틋한 감정이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더 깊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조용히 흐르다 갑자기 커질 때의 그 전율과 떨림도 더 커졌다 ㅠ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 Masayoshi Yamazaki


그리고 이 날 상영회의 작품 가운데는 신카이 마코토의 가장 최신작 '별을 쫓는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개봉 당시 그의 팬들이 기존과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지브리화 되었다며) 실망했던 것에 비해서는 덜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전작들에 비하면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확실히 다시 보게 되니 세 명의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절실함이 더 느껴졌다. 결국 '별을 쫓는 아이'의 테마는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행 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이 테마를 생각하면서보니 개봉 당시 극장에서 느꼈던 절실함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Hello, Goodbye and Hello'로 시작되는 엔딩 곡까지.




별을 쫓는 아이 리뷰 _ 나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여정

http://www.realfolkblues.co.kr/1535



'별을 쫓는 아이' 상영회가 끝나고 짧은 시간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을 모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경품도 추첨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형 액자상품들이 하나 씩 주인을 찾아갈 때의 부러움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ㅠ

감독님은 '별을 쫓는 아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별을 쫓는 이야기'에 나왔던 모리사키 캐릭터가 '초속 5cm' 1화의 '벚꽃 이야기'에 나왔던 타카키가 첫 사랑에 실패하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하에 만든 캐릭터라는 얘기였는데,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모리사키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 느껴져 찡해지기도 했다 ㅠㅠ


그렇게 간단한 GV를 마치고 미리 프리오더한 초속과 구름저편 블루레이 속지에 싸인을 받을 시간! 싸인 받은 속지도 넘겨받고 감독님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는데, 갑자기 어떨떨한 상태라 표정 관리가 안되어 부득이하게 신지군이 등장했음 -_-;;





악수를 나누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할까 '감사합니다'라고 할까 라고 고민하는 순간 감독님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서 어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합니다'라고 해버렸는데, 뒤에도 줄이 길게 서 있어서 빠르게 찍고 다음 분께 기회를 드렸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사진이 잘 안찍힌 거 같다며 먼저 'one more'를 외치셔서 본의 아니게 세 장이나 찍었으나 내 표정은 다 관리가 안되어 있더라 ㅠ

정말 좋아하던 감독님도 직접 뵙고 악수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을 수 있어서, 전남 무안 영광입니다 였던 하루였음!


1. 참고로 이 날 저녁에 걸린 감기 몸살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날 내가 신체접촉을 한 사람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 밖에 없으므로 그 때문이라고 최종 결론. (그의 대한 애정 때문인가.... 몸살이 떠나질 않는다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휴고 (Hugo, 2011)

마법같은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사실 나도 오해했었다. 본래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감독, 배우와 포스터 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고 감상해서인지는 몰라도,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휴고 (Hugo, 2011)'를 포스터로 처음 접했을 때의 예상은 3D까지 더해졌다길래 마치 '폴라 익스프레스 3D'와도 같은 스콜세지의 3D 활용기 혹은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영화였다. 판타지 영화도 아닐 뿐더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단순한 추억이나 회환이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로 보기는 어렵다) 가족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도 아니었고 (이 부분은 마치 이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처럼 홍보한 측의 탓이 크다), 액션, 어드벤처로 롤러 코스터를 타듯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오락 영화도 아니었다. 결국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팬이자 감독인 한 사람이, 영화 발명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요즘 관객들이 잊고 있는 '영화'라는 마법과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영화 사랑 가득한 영화였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의 의도를 좀 더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더 알고 있었더라면 바로 알아차리고 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멜리에스에 대한 헌정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사에 대한 무지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멜리에스(=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차리지 못해서인지, 사실 초중반 극중 벤 킹슬리가 연기한 멜리에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다기보다는 거의 전개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와 불필요하다고까지 느껴진 에피소드들까지 있다보니, 속으로는 '아, 스콜세지 영화에 실망을 하게도 되는구나..' 싶었을 정도였는데, 중반 이후 좀 더 이 작품이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부터 이런 실망감과 지루함은 눈녹듯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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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멜리에스 이야기 자체에 주목했다기 보다는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끔 스스로 영화광인 감독 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관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일종의 '꿈의 실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스콜세지의 '휴고'에는 앞서 언급한 '꿈의 실현'의 것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관객에게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DP의 'nostalghia'님이 감상기에서 '스콜세지 님이라면 타란티노 라든지 안노 히데아키 라든지, 뭐 그런 애송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화 덕후 중에서도 상덕후이신데' 라는 표현을 보고 절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정말 스콜세지는 영화로 따지자면 덕후 중에 상덕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 사랑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작품이 바로 '휴고'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해보라. 영화 속 멜리에스를 롤모델로 모든 것을 연구해왔던 그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콜세지가,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을까 말이다. 그래서 스콜세지는 이토록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만 할애하지 않고(물론 자기 만족에 충실하게만 만들었더라도 좋았을테지만)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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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에서는 영화라는 것의 역사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처음 관객들이 영화 속 기차가 기적을 울리고 달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놀라서 모두 몸을 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보는 순간, 나는 '휴고'를 3D로 보러 온 앞 좌석의 아이가 영화 시작 전 3D 예고편을 보고서는 손을 뻗어 화면 속 물체를 잡으려고 했던 장면이 바로 겹쳐졌다. 사실 스콜세지가 3D로 신작을 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도 되었지만 살짝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의문이 한 번에 말끔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영화의 3D 효과가 아주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3D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효과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은 편이라 3D만의 쾌감은 많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처음 본 예전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니, 왜 스콜세지가 이 작품에 3D를 선택했는지를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3D 영화를 보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CG나 3D 같은 최첨단 기술력이 더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재미, 즐거움, 행복함을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3D 입체영상으로 멜리에스 당시의 영화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입체감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 장면이 갖고 있는 본연의 마법같은 매력 때문이라는 자신이 있었던 스콜세지는, 그리고 바로 이 원초적 매력을 다시금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스콜세지는, 일부러 3D를 선택해 이 메시지들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아티스트'를 볼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처음 본 당시의 관객들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영화라는 마법같은 순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스콜세지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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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조르주 멜리에스가 자신이 외면했던 아픈 과거를 인정하고 어린 두 주인공들에게 자신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만들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면에서, 멜리에스를 연기한 벤 킹슬리는 정확히 카메라를, 즉 관객을 응시한다.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 영화 사랑이 이 정도입니다. 어때요, 영화 아주 매력적이죠?'라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영화에 빠졌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풀어놓으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영화의 마법에 너무 익숙해져 행복함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 듯 했다. 농담이 아니라 벤 킹슬리가 스크린 속에서 나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저렇게 내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휴고'는 좀 더 파고들려고하면 이것저럿 해볼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인데, 저런 질문을 영화에서 받고 나니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버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예술.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해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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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본 '아티스트'와 더불어 연거푸어 영화 사랑 충만한 작품을 보았더니 제 영화 사랑도 더 충만해졌어요 ㅎ

2. 진짜 마틴 스콜세지 옹은 덕후 중에 상덕후. 닮고 싶은 분이십니다.

3. 극 중에 '인셉션'이 나옵니다 ㅎ 그러고보니 '인셉션'도 영화에 대한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4. 스콜세지는 자신의 작품에 가끔 까메오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나오고 싶었을 거에요. 아니 처음 영화를 맡기로 했을 때 이것부터 정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

5. 클로이 모레츠는 아직까지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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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The Artist, 2011)

내가 사랑한 뮤지컬 영화들의 탄생기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The Artist, 2011)'는 일찌감치 해외 유수 영화제들에 노미네이트 되고 최근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무성영화의 감성도 물론이지만 그 이야기가 결국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로 연결될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 기대감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는 그간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 더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을 계몽적인 방식 대신 아름다운(제대로 된) 무성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진정성을 갖게 된 동시에, 그로 인해 절로 영화라는 매체와 앞서 영화를 만들었던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배경은 무성영화가 흥하던 시절로 시작해 유성영화로 넘어오면서 영화계와 무성영화의 스타, 그리고 유성영화의 새로운 스타가 겪는 일들을 남자 주인공 '조지 발렌타인 (장 뒤자르댕)'과 여자 주인공 '페피 밀러 (베레니스 베조)'을 중심으로 들려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계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대한 작품들은 여럿 있어왔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이 소재를 배경으로만 활용하거나 아니면 좀 더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려고 한 작품의 경우, 더 직접적으로 무성영화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했었다면, '아티스트'는 아예 21세기 관객들에게 한 편의 무성영화를 그대로 내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어쩌면 모험적일 수도 있었던 이 방식은 보시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경우에서 그렇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간의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들로 하여금 '그래서 무성영화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것과 '아, 아티스트, 이 영화 정말 매력적인데!'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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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가 시작되고 난 극장 안. 물론 대부분이 무성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극장을 찾았을 테지만 실제로는 배우들의 대사와 영화 속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를 체험해본 일이 많지는 않아 조금은 당황함이 느껴지는 초반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내 사그라들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티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3D와 실사와 더 이상 구분이 어려운 CG에 익숙한 21세기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엇, 대사와 소리가 없어도 영화를 이해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네?' '장면으로 담아낸 것 만으로도 맥락이 충분히 읽히는데?'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영화 초반에는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아무런 소리도 자막도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게 되지만, 조금 뒤에는 완전히 이 방식에 적응하여 더이상 소리가 나오고 안나오고를 신경쓰지 않고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순간을 21세기 극장에서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마도 '아티스트'에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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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영화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무성영화의 매력이란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가운데 가장 흠뻑 취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영화 배우의 매력이었다. 최근 작품들에서 배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의 영화보다는 배우의 매력의 비중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를 보니,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의 그 미소와 몸짓,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의 멋스러움, 과장된 듯 하지만 영화라서 멋진 동작들 하나하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은 액션 히어로도 아니고 (물론 영화 속 영화에서는 아니었지만 ㅎ), 최근 영화 속 주인공들에 비하면 굉장한 로맨틱 가이도 아니지만, 놀랍게도 그 멋진 미소 하나 만으로 액션 히어로와 로맨틱 가이를 모두 물리칠 정도의 매력을 발산한다. 가끔 리뷰를 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이 영화를 위해 아껴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발렌타인이라는 캐릭터, 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 -_-;)는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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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아티스트'가 개인적으로 더 의미 깊었던 것은,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였다. 물론 이 작품은 다큐가 아니니 이걸 100%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전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노래도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당시의 뮤지컬 영화는 더 무성영화에 가까운 표현 방식이 아니었나도 싶다. 왜냐하면 장면 뒤에 자막이 나왔던 방식에 비해 오히려 춤과 안무로 대사에 가까운 내용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티스트'는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이 무성영화의 장점과 유성영화 장점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장르라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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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한 사람의 영화 팬으로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행복한 일이다. 최근 보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와 더불어, 이 영화 '아티스트'는 영화라는 매체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참 행복한 작품이었다.


1. 극중 등장하는 강아지 때문에 절로 '틴틴'이 떠오르기도 ㅎ
2. 조지 발렌타인 역을 맡은 장 뒤자르댕이 너무 매력적이라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조지 발렌타인으로 분했을 때보다는 많이 아쉬운(?) 모습이라 살짝 실망도 ^^;
3. 영화는 1.33:1로 촬영되었습니다. 즉, 와이드 화면비율이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신선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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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알렉산더 페인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는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근래 새삼 느끼고 있다. '사이드웨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평소 심심한 영화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 때 마다 또 달라지는 영화 중 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는 '사이드웨이'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이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맷 킹 (조지 클루니)은 하와이에 사는 변호사이자 이 지역에 오랜 유지 가문의 상속자로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문의 상속자로서는 오랜 세월 신탁해온 토지를 신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판매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앞두고 있고,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동시에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두 딸을 보살피는 일도 하게 된다.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


개인적으로 '디센던트'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말 하기 힘든 말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은 이의 모습이었다. 극 중 맷 킹은 한 두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자신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남들이 도와주기도 힘든 일들이다. 사안들이 무겁지 않으면 '나도 좀 쉴래' '이건 그냥 니가 처리해'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하나가 그럴 수가 없는 일들 뿐이다. 즉, 자신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 끝에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구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놓인 맷 킹의 일상에 조용히 집중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릴 때 힘든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포커스가 있었다면, '디센던트'는 이런 상황의 중첩을 통해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을 조용히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맷 킹의 입장에서 힘든 상황을 변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맷 킹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표현에 있어서도 자극적인 것 보다는 유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이 복합적인 비극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시선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에게서 전작 '인 디 에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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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려는 듯 영화 초반 맷 킹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는 것처럼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 휴양지인 '하와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유머와 리듬을 섞어가며 맷 킹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다. 하와이라는 배경, 시종일관 흐르는 따듯한 하와이안 뮤직 그리고 적절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만약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비극적인 것에 더 집중하여 극적으로 몰아갔다면 그 슬픔은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자 했던 슬픔보다 더 큰 개념인 '가족'과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버려 두듯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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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는 앞서 언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맷 킹을 바라보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와 울타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페인에게서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센던트'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그냥 턱하니 던져 놓고선 '가족이면 다된다'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가?'를 이야기와 순간의 연출로서 100%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어 들 때, 뻔하다고 느끼거나 갑작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번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이 지점을 보통의 액션 영화마냥 클라이맥스에 한 방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순간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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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디센던트'는 글로 풀어내면 낼 수록 의미가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즉 그냥 '받아들이면'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때는 빌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마음이 더 와닿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언제가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1. 'Descendants'는 해석하자면 자손, 후예 등일 것 같은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자손의 의미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 속에서의 연결을 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 조지 크루니는 참 대단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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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제 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Män som hatar kvinnor, 2009)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영화화 한 두 작품 가운데 데이빗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보았고, 뒤늦게 스웨덴판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핀처를 평소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없다 아니 사실상 어렵다 라는 주의이기 때문에 스웨덴판을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된 것이 아무래도 핀처의 작품을 이미 보고 나서 보게 된 순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이 감상에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두 작품은 어차피 서로에게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이고, 나처럼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이들이라면 닐스 아르덴의 작품이 조금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작품을 모두 보고 난 결과는 각각의 장단점과 선택 지점이 명확해 각기 다른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핀처의 버전은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좀 더 미스테리와 스릴러적인 측면에 포인트를 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브의 버전은 미스테리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의 부제가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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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배경적으로 보았을 때 데이빗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과 그 마을을 굉장히 춥고 스산한 느낌이 들도록 설정하고 있는데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버전에서는 동일한 겨울이고 춥다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핀처의 그것처럼 몸이 절로 떨릴 정도의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이 있는 다리 넘어 섬을 묘사할 때 외부와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앞으로 진행할 미스테리와 스릴러의 쾌감을 더 증폭시키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는 이 장소가 갖는 특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에 이미지를 부여하여 그 자체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핀처의 특기가 잘 나타난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 점은 후반부로 갈 수록 영화의 긴장감을 돋구는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아마도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데이빗 핀처는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였고 스웨덴 버전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작품에서는 굉장히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연출된 장면들이나 결정적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스웨덴 버전에서는 너무도 쉽게 등장하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즉,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서는 누가 하리에트를 죽였는가 가 중요하기 보다는 이 뱅거가의 사건을 풀어가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겪는 갈등의 지점은 무엇인가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핀처의 작품도 누가 범인인가에만 집중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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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덴 버전과 핀처의 작품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에 더 포인트를 두었는가에 따라 영화의 결말 이전까지 진행되었다면, 범인이 누구인가가 정확히 밝혀지는 결말 지점과 그 이후의 짧은 전개 과정에서는 더더욱 두 작품의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핀처의 경우 이 결말지점이 곧 영화가 시종일관 끌고 오던 미스테리의 종착점이기 때문에 동시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정리가 되어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스웨덴 버전의 경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부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었는가 좀 더 명확해지는 작품이었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이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 차를 짧지만 명확하게 언급하면서, 결국 리스베트 캐릭터에 맞춰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부제인가를 떠올려보게 되고, 핀처의 버전에는 없었던 리스베트의 어머니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리스베트의 심리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포일러 없이 쓰느라 좀 더 구체적인 묘사를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누구인가가 밝혀진 다음 부터의 전개가 매우 흥미로웠고 그로 인해 스웨덴 버전의 리스베트에게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후속편들에 있어서도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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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핀처의 작품이 워낙에 세련되었던 터라 나중에 본 스웨덴 버전이 조금은 세련됨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분명 잘못된 우려였네요. 전체적인 만듦새나 세련됨으로 봐서는 전혀 부족할 점이 없었어요;

2. 핀처의 버전이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비중이 동등하거나 미카엘에게 좀 더 쏠려있던 반면, 스웨덴 버전에서는 확실히 리스베트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 같더군요;

3. 앞으로 각각 펼쳐질 두 작품의 후속편들이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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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백이면 아흔 아홉번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나서 극장에 불이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관람을 하는 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지킨다'가 아니라 '관람을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한 번에 해당하는 경우는, 밤늦은 시간 관람이어서 막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나설 때와 영화가 정말 재미없을 때 뿐인데, 이를 제외하면 정말로 거의 모든 영화를 '완전히 끝날 때까지' 관람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말 대부분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극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거론했던 주제이기는 한데, 오늘은 아예 이 '엔딩 크래딧을 볼 권리'에 대해서만 따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꼭 최근 찾았던 극장에서 엔딩 크래딧이 나오는 동안 한 두명의 직원이 끊임없이 나를 노려보고, 다 끝나고 자리를 일어나자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내 곁을 바람처럼 스쳐가서 이 주제를 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서두에 밝혀둔다. (끙;)


여기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부터 밝히고 시작하자면, 모든 관객들이 엔딩 크래딧을 꼭 다 관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개인적 사정이 없을 경우에도 일찍 자리를 일어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며,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하지 않는 가에 대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첫 째로 쉽사리 가시지 않는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가슴 속에 담아두기 위함이다. 많은 영화의 여운들은 극장을 나서서 현실 세계를 맞닥들이는 순간 상당 부분 손실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작품처럼 그 여운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영화가 막 끝난 뒤 극장 안에 남아 있는 여운과는 비교하기 그 세기를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인상 깊게 본 영화라면 최대한 이 여운을 있는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 싶어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즐기는 편이다.


둘 째는 첫 째로 든 여운과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최고 시설의 환경에서 즐기기 위함이다. 영화 만큼이나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음악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 중 하나는 바로 엔딩 크래딧이 흐를 때 일 것이다. 각자 집에 어떤 사운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를 모르겠지만, 누구나 집에 THX 인증관 쯤은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극장의 시스템보다야 좋겠는가. 이런 최적의 시스템에서, 아직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영화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영화음악을 감상하는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칠 이유가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엔딩 크래딧에 담긴 깨알 같은 정보들 때문이다.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들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것에서 부터, 수록된 곡들의 정보를 한 곡 한 곡 확인할 수도 있고 주요 스텝에는 어떤 인물들이 참여했는지도 관심을 갖고 보다보면 눈에 익은 인물들을 한 두 명씩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인의 참여 여부로 시작한 이름으로 국가 맞추기는, 어떤 국적의 스텝들이 어떤 비중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로케이션의 경우 현지 스텝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CG 같은 기술파트의 경우 어느 회사가 참여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 어떤 국적의 팀들이 참여했는 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셜 땡스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의 평소 인맥도 확인할 수 있고, 이 영화가 실제로 촬영된 장소들의 지명과 상호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들은 영화를 좀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냥 넘기기엔 너무 소중한 정보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엔딩 크래딧을 온전히 즐기기에 현재 대부분의 극장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리고 그 잘못의 대부분은 극장에게 있다. 빨리 청소를 끝내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내가 엔딩 크래딧을 보고 있을 때 들어와서 청소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관객이 있을 땐 청소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는지 계속 불이 켜져있는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내밀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내가 언제 나가는 가를 감시하신다. 그게 내 앞 줄에서 청소를 하시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물론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다수가 옳은 일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많은데, 관객의 다수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정확히 얘기하자면 본편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다고 해서,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이 과연 유난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라면 그렇지 않다. 극장은 영화 시작 시간이 10분이라고 했을 때 광고를 한 15~20분 쯤 틀어주고 나서 실제 영화는 30분쯤이 되서야 상영을 해서인지 몰라도, 러닝 타임이라는 것의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즉, 본편이 끝나는 시간을 러닝타임 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를 포함한 것이 영화의 러닝타임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논리를 따져봐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빵을 사서 90%먹고 나머지 10%는 안먹고 버린다고 해서, 100% 빵을 다 먹는 사람에게 '왜 남들은 안먹는걸 혼자 굳이 다 먹어야 속이 시원하냐!'라고 반문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엔딩 크래딧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극장에 매번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보니 겪게 되는 다양한 일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원들의 눈치야 말할 것도 없고(언제부턴가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눈을 일부러 맞춘 적도 있다), 막 나가려던 다른 관객이 나보고 '저 혹시 끝나고 뭐 있어요?'라고 물어보거나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뭐가 있어서 남았겠지....하고 생각했다가 아무 것도 없자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라며 마치 나 들으라는 듯이 얘기하며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극장이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꺼낼 수 조차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가는 좋은 극장들 가운데는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아 엔딩 크래딧까지 온전히 즐기며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끝까지 머금을 수 있는 곳들도 많다. 실제로 예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극장이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켜고 안켜고는 관객들의 행동에 생각보다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불을 켠다는 것은 곧 나가라는 신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을 경우 실제로 나갈 사람이 훨씬 덜 나가는 것도 목격한 적이 있다. 더 많은 극장들이 이런 시스템을 지향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영화 시작 5분 전까지 앞선 타임의 영화가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스케쥴을 빡빡히 짜고, 그 짧은 여유 시간에는 광고하기 바쁜 극장에게 이런 바램을 갖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엔딩 크래딧을 보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적어도 방해는 받지 않고 끝까지 여운을 즐길 수 있었으면, 그리고 이를 이상한 사람마냥 취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열심히 엔딩 크래딧을 볼 자유는 꼭꼭 챙겨 누릴테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존경해마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지만 의외로 조용하게 적은 상영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워 호스 (War Horse, 2011)'는 어쩌면 최근 영화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고 클래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평소 남들보다 울컥하기를 잘 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요일 오전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상대적으로도 많은 양의 눈물이었으리라. '워 호스'가 감정을 자아내는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직설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에이~ 이거 다 아는, 뻔한 방식이잖아'하며 울컥할 포인트를 스스로 지나쳤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달랐다. 자주 얘기하는 점이지만, '전형적'이라는 건 결코 '별로다'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전형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걸 이미 입증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형적이라도 그 핵심을 깨닫고 제대로만 전달한다면 충분히 관객을 울리고 웃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바로 이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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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의 줄거리는 예상할 수 있는 그 것, 딱 그 정도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과 어린 주인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예상되는 대부분의 얘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워 호스'는 제목 그대로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말'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처음 '조이'의 주인이 되는 알버트 (제레미 어바인)와 조이의 우정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따라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조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워 호스'의 이야기는 정말로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바이고, 그 예상하는 바도 최근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전적 이야기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영화를 본 날이 동물농장이 하는 일요일 오전시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TV동물농장을 보고 울컥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다 알면서도 울 수 밖에는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있었고, 이 포인트를 우직하고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후반 부의 감동 포인트야 말할 것도 없고, 초반 알버트가 조이와 함께 처음 밭을 갈 때부터 눈물을 흘렸으니 이거 뭐 말 다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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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알버트와 조이와의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우정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일들의 비중을 과감하게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즉, 보통 같았으면 관객들은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알버트와 조이가 재회했으면 좋겠다 라는 한 가지 생각만을 하게 되지만, 이 경우는 조이가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비중을 적지 않게 그리고 알버트와 마찬가지로 따듯한 사람으로 그리면서 누군가는 '그래 알버트와 만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조이가 다른 사람과 맺은 인연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니 그의 입장도 무시할 순 없겠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이가 겪게 되는 일들이 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결국 스필버그 영화답게 가족영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잘 살펴보면 조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작농으로서 부모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알버트야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만나게 되는 독일군 형제며 어린 딸과 할아버지의 관계에서도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이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결핍의 해결이나 치유의 의미로) 전달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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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으로도 스필버그와 촬영 감독 야누즈 카민스키는 완벽에 가까운 순간들을 선사한다. 스필버그와 카민스키는 이 고전적 스토리를 다루면서 영상 측면으로도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알버트가 살고 있는 집과 집 근처의 풍광을 그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지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강한 역광의 사용과 더불어 이 시퀀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타이트한 클로즈업(배우의 얼굴 외에는 노을 빛이나 하늘 만이 자리잡고 있는)의 활용은, 이 고전적 스토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뭐랄까, 전형성을 넘기 위해 일부러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옷을 입으려 고민하기보단 예전에 가장 잘 어울렸던 옷을 잘 다려서 다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워 호스'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는 역시 조이가 전장을 누비는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사실 이 장면이 담고자 했던 의미까지 100% 와닿지는 않았던 장면이었지만 그 영상미나 장면 자체가 주는 압도하는 느낌 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나 논리로 설명되기 보다는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설명 불가한 순간을 또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참호 속을 질주하는 조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군인들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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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뻔하고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분명했음에도 이런 의심을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갖을 수 없었을 정도의 우직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극장을 나와 평정심을 찾은 뒤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곱씹어 볼 것도 없이 '그게 말이 돼?' '너무 심한 판타지잖아'라는 생각들이 바로 들었지만,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워 호스'는 그럼에도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1. 말이 주연이라서 돋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닐스 아르스트럽과 '해피 고 럭키'에서 역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에디 마산, '토르' 동생 톰 히들스톤과 루핀 교수 데이빗 튤리스 그리고 셜록 배네딕트 컴버배치까지.


2. 조이 역의 말 연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연기를 하더군요! 총 14마리의 말이 나눠서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정말 연출로 만들어냈다기 보다 말이 연기를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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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르카레의 원작 소설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되는 바였겠지만, 역시나(?) 원작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렛 미 인'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게리 올드만, 톰 하디, 존 허트, 콜린 퍼스, 토비 존스, 마크 스트롱, 시아란 힌즈 그리고 최근 셜록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출연진에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 영화라고 했을 때 혹자는 '누가 스파이인가?'를 찾아내는 반전 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하 TTSS)'는 결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냉전 시기 유령처럼 활동하던 스파이라는 존재를 작전의 역동성이나 활동성으로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스파이가 조직 내의 이중 스파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 시대의 산물인지를 그 시대와 함께 아주 덤덤하게 그려낸작품이었다. 많은 스파이 영화와는 달리 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애잔한 시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야 말로 TTSS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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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혹은 쫓겨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게리 올드만)는 조직 내에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조용하고 빠르게 이중 스파이를 찾아나선다. 영화는 스마일리가 이중 첩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조지 스마일리로 대변되는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한 묘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그의 회상을 통해 그 동안 이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묘사하는데, 이것 역시 양면의 활용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시 '스파이'와 '세계' 그 자체다. 사실 나도 영화 감상 초반만 해도 일반적인 스파이 영화를 볼 때처럼 온몸에 감각을 최고로 곤두세운 상황에서 모든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점점 영화가 전개될 수록 단서보다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클래식한 당시를 디테일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하면서도 톤을 다운시켜 전반적으로 마치 추운 겨울 입 밖으로 내뱉는 차가운 입김처럼 싸늘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서늘함은 곧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연결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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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영화 정말 쓸쓸하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같은 편에 서있던 그렇지 않던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관객은 받게 된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스파이로서 이러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듯 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마치 이 외로움을 누군가 끝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내 뿜는 공기는 주변의 것보다도 차가워 보였고, 홀로 남겨진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애처로워보였다. 시종일관 이러한 분위기를 머금기만 해오던 영화는 종종 이를 분출하기도 한다. 주변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연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연인이 떠난 뒤 홀로 오열하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죽음으로 종결시켜주길 바라는 이나 그런 연인의 바램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는 이의 '눈빛'은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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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마찬가지로 스마일리가 이중 스파이를 찾는 과정은 마치 자신이 걸어온 스파이로서의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되짚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스마일리가 카를라(칼라)와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 이 장면은 회상 장면임에도 플래시백 없이 그저 현시점에서의 대화만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이 장면은 가장 소름돋는 '회상' 장면이자 간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 대화, 아니 회상 시퀀스에도 역시 TTSS만의 쓸쓸한 정서가 담겨있는데, 단순히 경지에 오른 강호의 고수가 또 다른 고수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 아닌, 냉전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스파이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인정함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려고 하는 '스파이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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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된 것에는 역시 스마일리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영향이 컸다.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에게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는 조지 스마일리를 통해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리뷰 중간중간 포함된 스틸컷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게리 올드만이 창조한 '조지 스마일리'는 절제로 가득 덮혀 있음에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 글에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냉전의 시대보다도 더 차갑고 쓸쓸한 스파이라는 존재를 묘사하는데에 있어 스마일리의 그 표정없는 얼굴은 정말 효과적인 거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미지도 잘 어울렸다. '셜록'과는 묘하게 차별되면서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바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콜린 퍼스는 주연으로 홀로 나설 때보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에 섞여 있을 때 더 큰 매력을 발산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고, 마크 스트롱의 그 눈빛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못 잊을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비중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와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로이' 역의 시아란 힌즈의 이미지도 인상적이었으며, 톰 하디와 존 허트, 스티븐 그레헴 등 좋은 배우들의 멋진 이미지가 영화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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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일반적인 영화가 스파이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가장 스파이 영화다운 작품이 되었다. 이던 헌트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좋지만, 조지 스마일리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1.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정말 정말 탁월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지금까지 도대체 몇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2.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보고나면 크게 다시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곤 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BBC에서 제작한 알렉 기네스 주연의 TV시리즈도요.


3. 색감과 질감에 반한 탓인지 블루레이 출시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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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Sherlock)

우아한 21세기형 셜록



오늘 소개할 셜록 홈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 분한 영화가 아닌, BBC에서 방영한 드라마(TV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셜록'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 홈즈'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셜록 홈즈'는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만화 (개가 주인공인) 등 다양한 버전과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었는데, 그 중 거의 대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BBC가 제작하고 '닥터 후'의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티스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셜록'이 기존의 '셜록 홈즈'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역시 '현대의' '모던한' '21세기형' 셜록 홈즈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러 고전들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 중 하나가 '현대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현대화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 단순히 활동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현대에 맞게 최적화했느냐라고 봤을 때 '셜록'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현대화를 이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현대화된 '셜록 홈즈'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셜록이 빅토리아 시대가 아닌 현재의 런던을 누비고 다닌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21세기의 왓슨이라면 일기 대신 블로깅을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과 흥미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추론이 가능한 그림을 그려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고전을 현대화 했지만 마치 고전 속 캐릭터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 '셜록'은  '아주 있을 법한'을 넘어서서 이미 이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아니다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바로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될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건 말로하기는 간단하지만 고전을 현대화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동시에, '셜록'이 가장 잘 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가이 리치의 영화 '셜록 홈즈'에서 홈즈 특유의 능력을 영상화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액션(주로 결투)에 있어서 미리 리허설 하듯 정확하게 계산한 뒤 슬로우 슬로우 퀵퀵 스피드를 조절해가며 표현한 경우였다면, '셜록'은 논리의 추론 과정에 있어서 단서가 되는 것들을 화면 상에 텍스트로 표현 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거나 차갑지만 상당히 감각적인 색감과 앵글로 이뤄진 영상미를 바탕으로, 그 위에 텍스트가 뿌려지는 방식은 자칫 너무 앞서가려는 이질감을 줄 수 있는데, '셜록'의 그것은 세련됬다 라는 느낌을 누구나 받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현대화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세련됨까지 느껴지도록 각본이며 구성이며 배경, 설정 등을 잘 고안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21세기의 셜록이라면 편지 대신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했겠지'라는 가정하에 방식만을 후자의 것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더 깊게 전개시킨다는 점이 '셜록'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하겠다.





(현재의 런던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런던의 모습 가운데 고풍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부분들도 함께 녹여내고 있어, 현대화의 이질감을 덜함은 물론 굉장한 리얼리티를 선사하고 있다)


여러가지 현재에 걸맞게 특화된 부분들이 물론 '셜록'을 결정 짓는 가장 대표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근본에는 역시 '셜록 홈즈' 특유의 추리하는 맛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야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들에서 완성도 높은 각본들을 만나볼 수 있는 터라 시청자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은 여기에 원작의 팬들까지 더해져 커다란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각본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셜록'처럼 추리 그 자체가 극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미치는 작품의 경우, 각본에서 그 작품 자체의 평가가 갈린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의 각본은 시청자가 쉽게 미리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극 중 셜록 홈즈처럼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추리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결국 각본이 시청자를 뛰어넘거나 속이는 것이 가능해야만 된다는 얘기라고 봤을 때 이 작품은 이 미션을 훌륭하게 완료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것이 '셜록' 만의 재미이기도 하고.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주인공 '셜록'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톤먼트'를 보았음에도 '엇? 그가 어떤 역할로 출연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셜록과는 잘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셜록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이전의 필모그라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앞서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작품은 우아함을 가득 담고 있는데, 거기에는 베네딕트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큰 키와 클래식한 마스크,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의상까지. 여기에 마치 알란 릭만을 연상시키는 특별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셜록'이라는 자신 만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 목소리는 이 작품의 전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까지 생각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준다. '셜록'으로 탄력 받아 스필버그의 '워 호스 (War Horse, 2011)'에도 출연했고 앞으로 제작될 스타트렉 시퀄과 호빗 후속편에도 캐스팅 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보게 될 듯 하다.






Blu-ray : Menu








Blu-ray : Quality & Special Features



아쉽지만 블루레이 화질/음질과 부가영상에 관한 내용은 그냥 스크린 샷으로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글도 거의 한 달 전에 써 둔 글인데 나중에 정리해야지 한 게 타이밍을 놓쳐버렸네요;;; 나중에 시즌 2가 블루레이로 출시된다면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루레이에 대한 구체적인 리뷰를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꾸벅.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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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

세월을 흐르는 쿠바음악의 선율



'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는 관능적인 동시에 쿠바 음악의 한 시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다룬 '라비앙 로즈'와 같은 뮤지션의 전기영화였다. '치코와 리타'를 누군 가의 전기영화로 보기는 어렵지만, '라비앙 로즈'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흐르며 계속되는 사랑과 음악의 이야기는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러브 스토리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치코와 리타'는 매우 전형적이고 오랜 세월을 짧은 러닝 타임 내에 담고 있기에 관객이 공감대를 얻기 힘든 속도로 진행되며, 그 러브 스토리의 마지막은 감동보다는 살짝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이기도 하다 (다른 부분으로 보완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마지막이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치코와 리타'에는 이 러브 스토리를 시종일관 감싸고 있는 음악이 있다. 쿠바 음악 특유의 리듬과 애환이 담긴 멜로디는 영화 속 치코와 리타의 곡절 많은 세월을 쉬지 않고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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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지만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인데, 애니메이션의 기법 측면에서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쿠바 하바나의 거리 풍경이나 인물들의 움직임들에 있어서 실사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정도로 사실적인 느낌이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래서 인지 시종일관, 만약 이 영화를 실사영화로 만들었으면 또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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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와 리타'가 이처럼 전형적이다 못해 조금은 너무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음에도 나름의 매력을 갖을 수 있었던 건 역시 음악, 음악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음악은 쿠바 음악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중의 한명인 베보 발데스가 맡았는데, 감독은 이 영화를 베보에게 헌정하고 있는 것처럼 '치코와 리타'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베보 발데스와 연결지을 수 있는 점들이 많은 작품일 듯 하다. 영화 초반 쿠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악들과 이후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지는 재즈 선율들 모두, 이 당시의 재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흥미거리로 다가온다. 지명이나 공연장, 뮤지션들의 이름들은 대부분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인데, 불쑥불쑥 등장하는 전설들의 모습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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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치코와 리타'는 두 사람의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1940~50년대 활동하던 쿠바 뮤지션들과 음악에 대해 헌정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이후 재평가되기까지 음악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그리고 그들의 삶에 얼마나 가깝게 음악이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집 안 CD장에서 쿠바 뮤지션의 앨범 한 장을 꺼내듣게 되는 바로 그런 영화였다.


1. 리타가 뉴욕으로 가서 스타가 되었을 때 스캔들이 나는 장면에서 한 남자와 차에 동승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짧게 나왔지만 옆에 탄 남자는 마론 브란도 같더군요 ㅎ

2. 무려 30곡이나 수록된 사운드트랙이 국내에도 지난해 5월 발매가 되었었군요!
http://hyangmusic.com/View.php?cate_code=WOST&code=3768&album_mode=music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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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아버지 세대의 생존에 대한 씁쓸한 연민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자 (2005)'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았다. 이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어서 기대가 되었던 점도 있지만, 최민식, 하정우, 조진중, 마동석, 곽도원 등 한꺼번에 이름을 늘어 놓으니 뭔가 일을 벌려도 확실히 벌일 것 같은 배우들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개봉전 시사를 통해 들려오는 평들도 한국판 '대부'다, '좋은 친구들'이다 라는 얘기 등 더욱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었기에, 오랜만에 걸죽한 한국영화 한 편을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더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지면 '대부'보다는 '좋은 친구들'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이나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말하는 폭력 조직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조직 폭력과 남자들의 세계 그 자체보다는, 영화의 부제처럼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풍자와 연민이 담긴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즉, 겨우 2~30년 전이었던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는 씁쓸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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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뇌물도 먹고 뒷돈도 챙기던 부산 세관 직원으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손에 쥐게 되면서 만나게 된 조직 폭력배 두목 '최형배 (하정우)'가 먼 친척이라는 것을 이용해, 급속하게 조직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정치사회의 시류를 이용하고 또 이용 당하며 이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던 최익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나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로 대표되는 부산 조직폭력의 세계는 말그대로 '세계'로서 존재한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세계 말이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세계에는 이들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 말고도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그리고 최익현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세계가 더 있다. 영화 속 최익현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움직인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릇된 방법이었을지언정 가족,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다음에 자신의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더 좋았는데, 중간중간 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마지막에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최익현(아버지 세대)의 삶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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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처한 시대가 의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역시 의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즉, 조직폭력배를 그리지만 미화할 만한 구석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건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 선 검사 역시 정의로운 듯 하지만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서 결국 이 시대에 편승한 인물 그 이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최익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쉽게 말해 '어지러운 시대에 휘말려 버린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대를 철저하게 이용해 살아 남은 존재로 그리면서도 묘한 연민이 들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나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로 끌고 가서 가족과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았고, 반대로 난세의 영웅의 성공과 몰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생존해야 했다는 이유가 보여 좋았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의 행보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차라리 더 갱스터 영화이길 바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최익현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바랬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미묘한 지점을 줄타는 윤종빈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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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최익현을 그리는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권총' 아니 '빈총'의 이미지였다. 야쿠자와의 거래를 통해 최익현은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게 되는데, 최형배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와 태생적으로 완전히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최익현은 이 권총을 자신 만의 무기(자신감)로 항상 몸에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총이 빈총임을 몇 번씩 중요하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최익현에게 연민이 들었던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이 빈총의 이미지였다. 대사에서는 장난처럼 '제발 총알 좀 구해달라고'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쩌면 그런 위치에 있었음에도 총알 하나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존재와 허울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빈총을 무기로 삼아 생존해야 했던 그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겹쳐보이는 순간 연민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빈총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들의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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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흐름을 흥미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아직까지도 관통하고 있는 정서에 대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던져놓은 작품이라 더 마음 들었던 경우였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하나 하나 '살아있는' 것이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드는 작품이었고.



1. 미리 무대인사 시간을 확인한 뒤 예매해서 감독과 배우분들이 함께한 무대인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잠원동에서 온 하정우씨도 재미있었지만, 최민식씨가 인사를 할 땐 극장에서 모두 '최민식! 최민식'을 열호하기도!!


2. 조범석(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씨의 연기와 캐릭터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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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베러 월드 (In a better world, 2010)
복수와 용서의 사이에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수잔 비에르는 이 작품 이전에 헐리웃에서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할,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한 리메이크 작 '브라더스'의 원작자로 더 많은 영화 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애프터 웨딩'이 노미네이트 되면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10년 이 작품 '인 어 베러 월드 (Hævnen)'로 그 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의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며 덴마크 영화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헐리웃에 비해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덴마크 영화라는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누군 가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인 어 베러 월드'는 덴마크의 역사나 사회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화두를 덤덤하지만 아주 진중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반드시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아프리카의 난민 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 '안톤'의 이야기와 덴마크의 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과 그 이후의 일들을 그린다. 그리고 영화 초반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남게 된 '크리스티안'을 안톤의 아들이자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인 '엘리아스'와 연결 시킨다. 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이야기 그리고 두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는 조금씩 하나로 연결시킨다. 하지만 이 연결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처럼 결국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식이나 더 직접적인 연결이라기 보단, 같은 고민과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으로 연결점을 삼는다.






'인 어 베러 월드'의 덴마크 원제인 'Hævnen'은 '복수'를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쩌면 폭력에 대한 비폭력의 가치 혹은 수잔 비에르의 폭력의 역사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폭력이라는 작지만 강한 존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작용하고 전달되고 커져가는 과정을 통해, 그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이를 더 큰 가치로 해결해 나가자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는 그 순간, 굉장히 무거워져 버린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야, 정말 무서운 영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랄까 이 작품은 '그래 아직도 세상은 희망이 있어!'라기 보단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아주 무거운 화두를 준비되지 않은 채 받게 되어버린,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직 순수한 존재인 아이들이 폭력인해 그리고 폭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이 문제가 정확히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 지를 좀 더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화두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과연 폭력은 비폭력만으로 저항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수잔 비에르는 이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계속 화두로 남겨 관객들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안고 다시 한번 '겪어 보도록' 만든다. 결국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영어 제목처럼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과연 우리는 좁게는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해 넓게는 내 신념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이처럼 깊은 화두를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던지다니. 수잔 비에르를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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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Quality


2.35:1 화면 비의 DVD화질은 우수한 편이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풍경과 극중 안톤이 머무는 별장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부드럽게 표현되며, 수잔 비에르가 곳곳에 배치한 따듯한 햇살이 가득한 장면들 역시 그 온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과하지 않은 채널 활용과 더불어 비교적 선명하게 대사를 전달한다. 멀티 채널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이라 사운드적인 쾌감은 포인트가 아니라고 보면 되겠다.




장에서 조차 만나기 힘들었던 이 같은 작품을 DVD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예고편 외에는 전무한 부가영상은 아쉬움이 남는다.


[총평]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러 월드’는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화두를 가볍지 않고 무겁게 다루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연출해 낸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혼자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운 용서와 비폭력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면, 이 작품을 꼭 한 번 권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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