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3 (Transformers: Dark of the Moon, 2011)

마이클 베이의 너무 과했던 욕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화제작 '트랜스포머 3'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람 전 이미 수많은 악평들을 접하고 나서 보게 되는 경우는 그 의견에 물들어 같이 다운되기 보다는, 오히려 반대심리가 작용해서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래서 실망도 덜 하게 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보게 되는 편이다. '트랜스포터 3'의 기대치는 다른 이들의 평을 듣기 전에도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극장에서 볼거리를 가득 2시간 넘게 체험하면 그걸로 족하다' 라는 기대 정도, '트랜스포머에게 뭘 더 바래'라는 식의 태도였는데,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정도에 머물렀으면 그럭저럭 괜찮았을 작품이었지만, 마이클 베이는 이 작품에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뭘 더 바래' 수준에서 딱 만족할 만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좀 더 심플하고 딱 좋은 수준의 영화가 되었을텐데, 마이클 베이는 본인이 잘하던 장점마저 퇴색시켜버렸을 정도로 이 세 번재 시리즈 작품에 많은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시도 혹은 끼워넣기가 차라리 보여주기 측면이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스토리에 관련된 것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함정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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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트랜스포머' 시리즈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역시 황홀경에 가까웠던 변신의 순간과 블록버스터에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 그리고 영화라는 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실감 있는 로봇 액션 정도를 들 수 있을텐데, 1편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관객에게 이런 경험이 일종의 비주얼 쇼크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충격은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약해지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트랜스포머'같은 시리즈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건 액션의 규모와 세기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정교함 정도를 더할 수 있을 텐데, 기본적으로 이 보완책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업그레이드를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마이클 베이가 선택한 보완책이 이것 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트랜스포머 3'를 보며 느꼈던 점 중에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는 마이클 베이가 샤이아 라포프를 데리고 '스파이더 맨'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로봇으로 표현되는 외계 생명체들이 지구에서 벌이는 SF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소년과 청년으로서 주인공 샘이 겪는 성장통, 사회의 일원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 여자친구 및 부모님과의 관계 등에 대한 현실적인 갈등마저 품고 있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던 것만 같은데,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트랜스포머'라는 시리즈에 (결과적으로) 이런 부분들은 너무 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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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간 폭스가 떠나고 로지 헌팅턴-휘틀리가 합류한 여자 친구 역할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냥 둘 사이를 가볍게 그렸다면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려고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마이클 베이가 연출한 것을 보면 다른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주인공들이 초반에 겪었던 갈등 요소가 외적인 사건 (이 작품에서는 센티널 프라임을 둘러싼 사건들)을 함께 겪으며 눈녹듯이 녹아 다시 화해하게 된다는 것으로 그리려고 했던 것 같지만, 결과는 보시다시피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엇, 쟤들 왜 저러지?' 싶은 괴리감만 준다. 또한 패트릭 댐시가 연기한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오토봇 VS 디셉티콘의 대립구도 외에 다른 가지의 이야기를 노렸던 것 같은데, 이 부분 역시 제대로 살지 못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이 글 초반에 있는 것처럼 또 다시 '트랜스포머에 뭘 더 바래'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런 새로운 인물과 관계 그리고 이야기를 추가시켰다면 위에서 언급한 부분들은 어느 정도 반드시 소화되어야만 의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 더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필수여야할 부분이었기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예전 마이클 베이의 영화들 가운데 '아마겟돈'만 봐도, 어떻게 아버지를 잃은 딸이 바로 무사히 돌아온 남자친구에게 그렇게 반갑게 안길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의 딸과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할 때 감정적으로 울컥하는 부분은 분명 존재했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트랜스포머 3'의 내러티브는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해도 너무 배제한 느낌이다. 더 문제인 건 관객은 대부분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느끼는데, 영화 속 캐릭터와 (그 웅장하고 과도한) 음악은 그 어떤 감정적인 영화들 못지 않게 그야말로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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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마이클 베이가 잘 못 건드린 부분 중 하나는 정치적인 이슈였는데, '트랜스포머 3'가 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발을 뺏어야 했는데 이 작품에는 충분히 오해를 사고도 남을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오토봇과 미군이 아랍국가에서 태연하게 작전을 진행하는 장면이 그것인데, 사실 보는 중간에도 '엇, 이거 뭐지?' 싶을 정도로 쉽게 말해 '개념이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영화에서 사건 전후로 어떤 설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이 장면에 대해서는 정말 순수할 정도로 그냥 넘어갔구나 싶은데, 지금이 냉전시대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없이 (버젓이 아랍국가 차량임을 클로즈업 하는 방식까지 취하면서) 이들을 습격하는 오토봇과 미군들의 모습에서는 마이클 베이가 도대체 어떤 정치관을 갖고 있는지, 아니 정치관은 없는 것 같은데 (이것은 비난이 아님) 너무 무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한 사회의 청년으로서 샘이 겪는 일들을, 여자친구, 부모님 과의 갈등 등에 대한 내용은 냉정하게 말해 전혀 없어도 '트랜스포머'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이었으며 넣고자 했더라도 최대한 비중을 줄였어야 했는데, 마이클 베이는 이 부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점과 무지에 가까운 정치관은 '트랜스포머 3'에게는 필요없는 과한 욕심이자 가장 큰 패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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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편부터 계속 말이 안되는 장면이나 스토리상 너무 간과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그런 것들은 다 '트랜스포머에게 뭘 더 바래'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줄에 걸려서 한동안 활약 못하는 거나 갑자기 오토봇들이 전후사정없이 포로로 잡혀있는 거나, 주요 캐릭터가 사라질 때 관객에게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것이나, 도대체 왜 넣었는지 모르겠는 존 말코비치의 분량 등은 이 선에서 이해한다 (해본다)). '트랜스포머 3'는 과욕이 부른 아쉬운 작품이었다. 차라리 '이거 너무 단순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의문점이 있었더라도 아마 그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갖을 필요없는 갈등 요소를 스스로 너무 많이 가져다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무리 해버린 좋지 않은 전개였다.


써놓고 보니 극장을 나올 때보다 훨씬 더 격해진 느낌이 있는데, 사실 훨씬 더 너그러운 자세로 관람한다면 제법 볼만했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아, 2시간 반은 너무 길었다. 쳐내야만 했던 부분들을 다 쳐내고 2시간 안으로 정리했다면 훨씬 좋은 오락영화가 되었을텐데 아쉽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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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매년 상반기와 연말 혹은 연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을 '좋은 영화 베스트'라는 식의 이름으로 정리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느 덧 6월이 훌쩍 지나고 2011년 상반기를 결산해볼 시간이 다가왔다. 간단하게 총평을 해보자면 지난해 이맘 때에 비해 좋은 인상적인 영화들의 숫자가 조금은 적어진 듯 싶다. 지난해 상반기에 리스트를 꼽을 때에는 외국영화 만으로도 10작품을 쉽게 꼽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한국영화를 포함하여 딱 10작품을 선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언제나 그렇듯이 선정 기준은 완전 개인적이며, 더 많은 좋은 영화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정리해 보았다.

(순서는 관람 순) 




1. 윈터스 본 (Winter's Bone, 2010)
소녀는 울지 않는다
http://www.realfolkblues.co.kr/1430 



제니퍼 로렌스 라는 여배우의 발견. 인생을 다 겪은 듯한 소녀의 표정과 몸짓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기억에 남는 작품.






2. 라푼젤 (Tangled, 2010)
디즈니가 가장 자신있는 마법의 세계
http://www.realfolkblues.co.kr/1440



'라푼젤'에서 보여준 디즈니의 마법은 여전했다. 디즈니는 이런 식으로 가면 된다. 픽사를 억지로 따라할 필요도, 오로지 기술적인 측면에만 매진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자신들이 해왔던 방식에 근거하여 조금씩 보완해 가면 된다. 갑자기 너무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려 하기보단, 서서히 스타일 변신이 아닌 보완을 하면 될 듯.

 




3. 혜화, 동 (Re-encounter, 2010)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
http://www.realfolkblues.co.kr/1443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국내 영화 중 한 편. 스물 셋 혜화의 지난 겨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처를 인정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 민용근 감독과 혜화 역의 유다인 씨를 비롯한 이들의 정말 투혼에 가까운 관객과의 대화 릴레이는 올해 그 어떤 영화 마케팅 방법보다 진실되고 값진 것이었다.





4.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극한의 백조의 호수

http://www.realfolkblues.co.kr/1447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방식을 택한 반면,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통해 판타지에 가까운 극적 변화를 담아냈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야심작. 후반 부 백조의 호수가 시작되며 치닫는 극의 과잉된 리듬은 심장을 미치도록 요동치게 한다.

 





5. 파수꾼 (Bleak Night, 2010)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애처로운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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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올해의 국내 영화!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은 지금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적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깊은 것은 물론, 과연 나는 기태였을까, 희준이었을까 아님 동윤이었을까를 떠올려 보게 했던 올해의 발견!






6. 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http://www.realfolkblues.co.kr/1454



장률 감독의 '두만강'은 전작들과는 달리 상당히 감정적이고 극적이며 떨려오기까지 하는 작품이었다.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는 올해의 카피 후보. 개인적으로는 장률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와닿았던 작품.






7. 수영장 (Pool, 2009)
꿈만 같은 치유의 슬로우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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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평화로움이, 보고나서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 지에 대해 말이 아닌 그림 같은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 위의 저 장면은 앞으로 후반기에 어떤 영화의 명장면이 나온다 하더라도 올해의 명장면으로 이미 결정.






8.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http://www.realfolkblues.co.kr/1485



마이크 리의 전작 '해피 고 럭키'와 마찬가지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영화 속 메리에게서 나를 보게 되느냐, 타인의 모습을 보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영화.





9. 슈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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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영화.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한 남자가 스필버그와 함께 그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남. 이것만으로도 J.J는 올해 가장 부러운 남자.






10. 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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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많은 것들 가운데 영화라는 것으로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실뱅 쇼메의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더 이상 영화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는, 마법사의 쓸쓸한 여정.




* 올 하반기에도 더 많은 인상적인 좋은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여러분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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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아름다운 걸작 '시'


2010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Poetry)'는 가혹하리만큼 인간이 고통을 겪는 방식을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인 동시에,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한 탐미적인 작품이었으며, 제목인 '시'에 대한 간접적인 비유는 물론 매우 직접적인 텍스트이기도 한 그 해 최고의 작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 동안 이창동 감독의 전작들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 같은 작품들은 이를 통해 감독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이 깊은 공감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약간의 과잉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서, 완성도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지만 '좋은 영화'라 말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좋은 영화'란 '착한 영화'와는 전혀 다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시'는 착한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좋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시'가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 보면 가혹하리만큼 냉정함이 그 이면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냉정한 시선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과정과 결과 모두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창동의 '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이 사라져버린, 죽음과도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래서 주인공의 이름도 '미자 (美子)'가 아니던가). 미자는 '시'라는 매개체를 만나게 되면서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극중 미자는 시를 배우는 강좌 중에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인과 그들에게 이렇게 자주 질문한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시상은 언제 찾아오나요?'무언가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미자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생각날 때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시상을 얻어 자신 만의 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려 하지만, 어느 한 줄 쉽게 나오는 것이 없다. 그래서 미자는 계속 물어본다.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한 노트에 자연이 직접 쓴 시를 계기로 미자는 진정한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전환점을 갖게 되고, 자신을 둘러 싼 삶에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작품의 제목 '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일차적으로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현실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죽어가고 있는 문학으로서의 '시'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시선'으로서의 시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는 여러 차례 시를 배우는 강좌 장면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단순한 내러티브를 위해서였다면 그냥 '미자가 시를 배운다'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했을 테지만, 이렇게 다큐멘터리에 가깝도록 시 강좌 장면을 다룬 것은 관객들이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속 미자처럼 잠시나마 시라는 예술에 대해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관객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미자처럼 동화되도록 만든 것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관객은 잠시나마 이 작품을 보는 동안에는 극중 미자처럼 시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건 생각해볼 수록 대단한 이 영화의 지점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술'로서의 '시'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주인공 미자를 비롯해 안내상이 연기하는 기범 아버지로 대변 되는 어른들의 시선, 그리고 한 발 물러서 있는 주변 인물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통해 또 다른 '시'를 써내려 간다. 특히 미자를 바라보고, 미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데, 세속적인 사건을 겪는 과정 속에서 세속적인 것과는 조금 멀어져 있던 미자 라는 인물이 어떻게 고통과 현실을 인정하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겪어가는지(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의 이분법 보다는 그냥 '겪는다'가 이 작품에는 더 어울릴 것이다)의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참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미자가 세속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이 추구하던 많은 가치들을 포기해 가는 텍스트라고 여겨, 마지막 엔딩을 맞닥뜨렸을 때 그 어떤 작품들보다 먹먹하고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는데, 블루레이 리뷰를 위해 다시 보게 된 '시'는 그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다시 보게 된 미자의 행동들은 자포자기하는 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삶에 대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세속에 물든 사람들과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미자가 택한 방법들과 그 과정의 행동들은 미자 나름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자기 것인 냥 포용하려고 애쓴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결과는 세상으로 하여금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존재조차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관객에게는 깊은 울림과 더불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미자가 쓴 시 '아녜스의 노래'와 영화 '시'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강의 이미지는 죽음과 슬픔을 노래하는 듯싶었지만, 다시 바라본 강의 이미지에서는 분명 희망의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THE DVDPRIME COLLECTION 002 – 시 블루레이
 

이 작품은 잘 아시는 것처럼 DVDPRIME과 제작사 UEK, 그리고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자랑스런 'DP 컬렉션' 그 두 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사실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두 번째 타이틀인 '시' 가 훨씬 더 큰 부담을 본의 아니게 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만드는 이들의 심정을 주변에서 가깝게 전해들을 수 있었던 입장으로서 부족한 재능이나마 여기에 보태고자 블루레이 리뷰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 타이틀은 '김복남…'과는 또 다른 감회가 드는 타이틀이었다. DP 컬렉션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 역시 이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국내에서 블루레이로 정식 발매되기 사실상 어려웠던 작품인 동시에, 너무 블루레이로 소장하고 싶은 그 해 최고의 걸작이기도 했다. 극장에서 몇 차례 관람을 하면서도 블루레이 라이센스 발매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려 본다면, 이렇게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든 타이틀을 소장할 수 있게 된 현실은 아직도 놀라울 뿐이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 Sound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블루레이에 걸 맞는 우수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작품 자체의 화질이 다른 해외 영화에 비해 뛰어나게 좋은 편은 아니고, 또한 극장에서 보았던 화질도 뛰어난 화질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블루레이의 화질이 오히려 더 좋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블루레이 화질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 단순히 느낌 때문 만은 아닌 것이, 실제로 극장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영상의 디테일 한 부분과 색감들을 블루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처럼 영화 역시 인위적인 조명 보다는 자연광과 최소한의 조명들을 활용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런 빛의 디테일 한 활용의 정도를 블루레이 영상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좀 더 안방 극장의 환경에 맞게 적절한 레벨로 수록되었다. 사운드 적인 측면의 활용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5.1채널의 서라운드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으며, 대사 전달에 있어서도 감상에 지장을 주는 부분은 없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만나볼 수 있었던 강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경우는 영화의 여운을 더 오랜 시간 잡아주는 중요한 사운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욱 선명한 강물 소리에 그 여운을 지속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시'




'시' 블루레이에서 가장 눈에 띠는 부가영상이라면 본편 재생 시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이창동 감독의 영상 메시지'를 꼽을 수 있겠다. 2차 영상물을 즐기는 사용자로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확장 판이나 길예르모 델토로의 타이틀들을 보며, '아, 국내 타이틀에도 감독이 DVD나 블루레이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해주는 챕터를 가져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시' 블루레이에는 바로 이창동 감독의 이런 인트로가 블루레이만을 위해 담겨 있다. 사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블루레이 만을 위한 부가영상이라는 점에서, DP 컬렉션이어서 가능한 서플먼트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하나 DP 컬렉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라면, 이 타이틀이 탄생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DP 회원이자 소비자인 분들의 이름(닉네임)이 담긴 'BD 메이킹 크래딧'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구매자 목록이 아님은 우리가 더욱 잘 알고 있기에 여기에 많은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이 메이킹 크래딧은 내 이름이나 닉네임이 실려 영광스러운 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는 '뿌듯함'이 더 밀려오는 훈훈한 크래딧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가영상은 이창동 감독과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들 수 있겠다. 이창동 감독 스스로가 작가이자 각본을 썼기 때문에 '시'라는 작품에 대한 더 풍부한 의미는 물론 감독으로서의 연출 의도 그리고 전설적인 배우 윤정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시'를 인상 깊게 본 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참고로 음성해설 트랙을 선택하면 편의를 위해 본편 한글자막이 자동으로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다. 만약 음성해설을 들으면서 본편의 한글자막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리모컨을 통해 음성 트랙을 다이렉트로 변경하면 된다.

 



이 밖에 부가영상으로는 전반적인 메이킹 영상들과 감독, 배우 들의 짧은 인터뷰 들이 각 주제에 맞게 메뉴 별로 수록되어 있다. 모든 부가영상은 DVD에 수록되었던 내용과 동일한 영상으로 SD 포맷으로 수록되었다. 

 



[총평] 영화적으로만 보아도 이창동 감독의 '시'는 지난해 개봉한 작품들 가운데 손꼽을 정도의 걸작임은 물론, 그의 수준 높은 필모그래피에서도 단연 꼽을 만한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아낸 동시에, 'DP 컬렉션 002' 타이틀이라는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갖는 블루레이 타이틀 역시, 퀄리티나 내용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와 노력이 엿보이는 만족스러운 타이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DP 컬렉션에 더 큰 응원을 보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아직까지 나카시마 테츠야의 최고작은 이 작품!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하 '혐오스런 마츠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 (2004)'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묘하게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는 제목답게 '불량공주 모모코'는 '혐오스런 마츠코'와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영상과 더불어 기발한 웃음과 유쾌한 감동을 한꺼번에 선사하며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였으며, 2004년 칸느에서의 호평과 키네마 준보 선정 2004 일본 영화 베스트 10에 뽑히는 등 평단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작품이었다. 특히 '불량공주 모모코'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살아 숨 쉬는 캐릭터와 CF감독 출신답게 기존 영화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넘쳐나는 일본 영화계에서도 단숨에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다. 그와 동시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CF출신 감독으로 첫 번째 장편 영화를 발표한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였다. 그가 다른 감독들보다 더욱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대부분의 CF출신 감독들의 태생적인 장점인 감각적인 영상 표현 외에도 영상에만 집중되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내는 실력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불량공주 모모코'촬영 말미부터 계획했다는 후속 작은 과연 어떤 영화일지 기대가 되는 것은 어쩌면 영화 팬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치 '벤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 타이틀. 이 오프닝을 통해 나카시마 테츠야는 '이 작품은 이런 과장과 색체가 넘쳐나는 작품이야' 라고 효과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작품 '혐오스런 마츠코' 이후 선보인 2008년 작 '파코와 마법 동화책'과 올해 국내에도 개봉해 큰 화제를 모았던 영화 '고백'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만의 색감과 영상미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파코와 마법 동화책'까지는 형형색색의 기존 나카시마 테츠야 세계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만, '고백'은 과감히 색을 버리고 무게와 강렬한 콘트라스트에 더욱 집중한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감독에게나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있기 마련인데, 나카시마 테츠야에게 가장 어울렸던 옷은 '고백'까지 포함하여도 이 작품 '혐오스런 마츠코'였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의 가장 큰 장기인 영상미학을 가장 과감하게 시도한 작품이자 자유롭게 풀어낸 작품인 동시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그가 얼마나 정통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며, 원작이 갖고 있던 무게 감을 자신만의 색깔로 더 효과적으로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본래 원작이 된 소설은 내용 그대로 특별히 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던 카와지리 마츠코라는 한 여자가 우연과 사건들로 인해 폭력, 불륜, 매춘, 살인 등 어쩌면 인간의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일들을 겪게 되며 그로 인해 한 여자의 인생이 어떻게 저물고 변해 가는 지를 그려낸, 아주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도 이와 거의 다르지 않다. 영화 속 마츠코 역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덮으려다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그 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며, 나중에는 본인에 대한 사랑마저 완전히 잃게 되어 삶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느끼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저 암울하다, 처절하다 라고 만 느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가장 중요한 점인데, 감독인 나카시마 테츠야는 영화화를 결정하며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여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이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를 오히려 유쾌한 리듬으로 풀어나가기로 한다. 극 중 마츠코는 최악의 일들을 차례로 겪게 되지만, 그 때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스스로 찾아내 자신의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혹은 마음만이라도 긍정적 방향으로) 한 걸음씩 옮기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슬픔보다 긍정적인 면들을 부각시켜 시종일관 유쾌한 리듬과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한 편, 반대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말처럼 원작이 담고 있던 무게 감과 슬픔을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혐오스런 마츠코'를 위해 나카시마 테츠야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뮤지컬'이었다. 암울한 이야기를 밝은 리듬으로 풀어내는데 뮤지컬만한 장치는 없었을 것이고, 감독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완전히 흡수하면서 마츠코만의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 냈다. 만약 뮤지컬이 아닌 일반 드라마 형식을 취했다면, 이 영화는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매우 무거운 분위기의 단순한 신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노래가 갖는 의미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극중 마츠코가 유일하게 행복한 꿈을 꾸는 시간은 노래가 흐르는 순간뿐이며, 노래의 가사는 극 중 어느 대사보다도 마츠코의 심정과 희망을 대변하고 있다. 즉 마츠코의 감정 변화가 대사 보다는 노래로서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되며, 빠르게 진행되는 마츠코의 일생을 각 사건마다 함축적으로 표현해내는 것 또한 노래와 춤 그리고 가사 말인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많이 놀랐던 점은, 영화에 수록된 노래들의 장르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과 수박 겉핥기 식이 아니라 매우 '제대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팝, 동요, 힙합, 엔카, 재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장르마다 고유의 느낌을 제대로 수록한 곡들로서, 영화 삽입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곡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담고 있는 곡들이라는 점에서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전 오리지널 뮤지컬의 기본을 충실히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는 'Happy Wednesday'를 비롯하여, 유명 뮤지션 보니 핑크 (Bonnie Pink)가 직접 쓰고 출연까지 한 빅밴드 풍의 'Love is Bubble'(이 곡은 서플에 추가된 보니 핑크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지만, 보니 핑크의 팬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기존의 보니 핑크의 스타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곡으로 팬들에게 오히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라 하겠다), 역시 AI가 출연하고 작업한 힙합 풍의 곡 'What is a Life',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곡인 'USO' 등 한 곡 한 곡이 그 장르를 대표하는 특성을 아주 잘 수록하고 있다.

 



특히 감옥에서 펼쳐지는 힙합 스타일의 곡 'What is a Life'는 인트로 부분에서 죄수 복을 입은 여 죄수들을 훑어 내려가는 카메라 워크부터,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도미노 식 안무와 멜로디가 강조된 반전되는 후렴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또 힙합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좋아하는 이라면 알 수 있었겠지만, 이 곡의 카메라 워크나 연출 방식은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봐왔던 그대로의 방식이라 놀랍기 까지 했다(마치 F1 레이서인 슈마허가 자선 축구 경기에서 전문 축구 선수들이나 선보일 법한 발리 슛을 선보였을 때의 느낌이랄까).





음악이 삽입된 부분의 놀랄 정도로 높은 완성도가 단순히 CF감독 출신인 감독이 연출한 것 때문만이라고는 볼 수 없을 텐데 그 제작 내면에는 철저한 분업화가 있었다. 위에 언급했던 주요 곡들은 모두 감독인 나카시마 테츠야가 연출을 맡기는 했지만, 기본이 되는 콘티는 모두 다른 감독들이 작업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각 노래마다 주인공만 마츠코로 같을 뿐 각각 전혀 다른 느낌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주 언급하지만 뮤지컬 팬으로서 놀라웠던 점은 감독이 뮤지컬을 처음 연출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고전 뮤지컬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아가씨와 건달들' '사랑은 비를 타고'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등의 고전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인물들이 노래를 주고 받거나 노래가 처음 극으로 삽입되는 부분에서 일정한 형식의 패턴이 존재하는데, '혐오스런 마츠코'는 이런 부분들을 정확히 집어 내고 있다.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는 마치 폴 토마스 앤더슨의 1999년 작 '매그놀리아'의 후반 부 수록된 에이미 만(Aimee Mann)의 'Wise Up' 시퀀스처럼, 영화 내내 삽입되어 주 모티브가 되었던 '구부렸다 몸을 펴서(まげてのばして)' 라는 동요에 맞춰, 마츠코의 인생을 함께 했던 인물들이 한 소절씩 나눠 부르며 영화를 보며 느꼈던 수 많은 감정들을 온전히 하나로 정리하는 멋진 마지막을 선사하고 있다.
 




음악과 더불어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붉은 색감으로 시작된 영화는 시종일관 왜곡 된 색감과 뿌연 영상 등으로 진행되는데, 각 장면 마다 스타일에 맞게 영상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도 있지만 내용적인 극의 전환에 따라서도 영상의 분위기를 달리하여, 제 3자가 마츠코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꿈 꾸는 듯한 뿌연 영상은 끔찍한 인생을 살아온 마츠코 자신이 항상 꿈을 꾸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영화의 내용은 지워져도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혐오스런 마츠코'는, '디즈니 영화의 히로인이 실수로 다른 문을 열어버린다면 마츠코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라는 시점에서 영화를 시작했다는 말처럼, 디즈니 만화에서나 볼 법한 형형색색의 이미지들과, 또 '백설공주'가 숲 속을 산책할 때나 등장할 법한 꽃들과 나비 때처럼, 동화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영상을 담고 있다.

왜곡 된 색감은 감독의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기법이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를 좀 더 영화라는 포맷 안에 담아내는 데에 (이 작품에서는 이 한계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있어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데 공헌을 하고 있다(한 예로, 영화의 자료 사진들 가운데 색감이 적용되지 않은 일반 사진들을 보게 되면, 이 영화가 만약 이대로 일반적인 색감으로 제작이 되었다면 얼마나 심심한 영화가 되었을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츠코를 연기하기 위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인터뷰에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마츠코를 위한 영화이자, 나카타니 미키의 의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나카타니 미키를 캐스팅 했을 때 그녀는 이미 원작을 잘 알고 있었고 마츠코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유쾌한 방식으로 새롭게 각색하려는 감독과 많은 언쟁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영화가 완성된 뒤에야 촬영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나카타니 미키가 감독에게 '죽여버린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혹독한 대우를 당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데, 영화를 찍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자신 역시 감독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러한 생각을 모두 접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카시마 테츠야와는 다시는 작품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인터뷰도 부가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사실 '마츠코'라는 캐릭터가 워낙 배우의 연기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연기와 노래와 춤은 나카타니 미키가 아니면 마츠코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머금게 하는 완벽한 열연을 펼쳤다. 특히나 부가영상에 담긴 인터뷰 장면이나 다른 영화에서 그녀가 출연한 일반적인(?) 모습을 보고 나면, 그녀가 만들어낸 '마츠코'연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게 된다.
 

Blu-ray 메뉴







블루레이 메뉴 디자인은 상당히 깔끔하게 나온 편이다. 마츠코의 이미지를 디자인화 한 우측 이미지를 배경으로 좌측에는 깔끔한 한국어 메뉴가 제공되는데, DVD로 출시되었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타이틀과 비교하자면 훨씬 더 가독성이 높고 구성 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디자인이라 하겠다.
 

Blu-ray : Picture Quality

MPEG-4 AVC 포맷의 풀HD 화질에 대해서는 이 작품 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일본 영화 특유의 화질이 가미된 것에 더해 감독이 의도한 과도한 색감들과 조명의 활용, 그리고 마츠코가 겪는 사건들의 시기와 성격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영상의 컨셉으로 인해 일반적인 타이틀의 화질과 1:1비교를 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하지만 감독의 이러한 의도가 조금 덜 적용된 장면에서는 블루레이만의 장점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즉, 다시 정리하자면 블루레이 화질 자체의 퀄리티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필름 상영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마지막이 될 극장 상영을 재차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확실히 안방에서 보는 블루레이의 화질이 체감하기에 훨씬 선명한 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칼 같은 선예도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영상이지만, 그래도 기존에 출시되었던 DVD의 화질(DVD의 화질도 결코 나쁜 편이 아니었다)과 비교해보자면 그 우수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DVD 버전



▽ 블루레이 버전


▽ DVD 버전


▽ 블루레이 버전


▽ DVD 버전


▽ 블루레이 버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DVD와는 비교 불가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DVD에서는 좀 더 강했던 붉은 색감이 샤프니스가 살아나면서 좀 더 정리된 느낌을 준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극의 리듬감 있는 음악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워낙 음악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사운드 적인 측면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음악은 음악대로 역동적으로 전달하면서도 5.1채널의 멀티채널의 활용도도 높아 전반적으로 만족스런 사운드를 들려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은 기본적으로 DVD와 동일하다. '스넥 마츠코의 단골 손님'이라는 제목의 음성해설도 그대로 수록되었고, '혐오스런 테츠야의 285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제작과정'과 배우들의 인터뷰 등도 DVD에 수록된 그대로 (SD포맷으로) 수록되었다. 



대부분의 DVD와 동일하기는 하지만, 기존 EPK 류의 서플먼트들을 블루레이에서는 교체하였으며 DVD출시 스펙에는 있었지만 누락되었던 예고편 3종과 극장 예고편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또한 자막 역시 기존 DVD의 버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기존 DVD의 본편과 부가영상을 모두 재 번역하여 자막을 새롭게 수록하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블루레이만의 보강된 부분이다. 참고로 부가영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예전 DP에서 리뷰했었던 DVD리뷰를 참고하면 되겠다.
 





[총평] 나카시마 테츠야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상과 음악이 이야기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최고의 작품이었으며, 블루레이 역시 작품의 인상적인 영상과 음악을 차세대에 걸맞게 수록한 만족스러운 타이틀이었다. DVD가 출시되었을 때에도 이 작품을 소장한다는 그 사실에 무척 감격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블루레이로도 소장하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이 작품의 팬들이라면 두말 할 것 없이 소장해도 좋을 것이며, 만약 아직까지 이 작품을 접해보질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혐오와는 거리가 먼 이 아름답고 유쾌하고 슬픈 작품을 꼭 만나보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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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의 간첩
메시지+재미+실속까지 소소한 다큐멘터리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타임'의 네 번째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간첩'이었다. 일단 이 다큐멘터리는 '부당거래' 이후 작품으로 유럽을 배경으로한 첩보원들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던 류승완 감독이, 영화 작업에 앞서 관련 자료조사 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지점이 MBC가 기획한 의도와 부합되는 부분이 있어서 TV를 통해 이 짧은 다큐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류승완 감독과 지인인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함께 북한 공작원, 이른바 간첩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겠지만, 간첩을 찾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이 다큐의 목적성은 '정말 간첩을 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왜 못찾을 걸 애초에 알았으면서 이 과정을 다큐로 담아냈느냐'로 접근해야 알 수 있을 듯 하다.

일차적으로는 항상 영화를 만들기 이전의 사전 자료조사 과정이 매우 궁금했었는데, 그런 부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그 소재가 남북문제를 비롯해 한국사와 연결된 실제 사실이다 보니 더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류승완 감독은 이 '간첩'이라는 다큐를 연출하면서 딱딱하고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매우 리듬감 있게 풀어내고 있었다. 중간중간 고전 영화와 드라마 속 장면들을 끼워넣어 무겁게 흘러갈 수도 있는 주제에 리듬을 주고 있는데, 마치 힙합 음악에서 샘플링을 사용하듯 영상을 활용하고 있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자료 조사 과정의 이야기는 진지하려고 작정하면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무겁고 정치적인 내용으로도 풀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소재는 같지만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이 선택한 이 방식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치고 빠지는 정도가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만약 완벽한 페이크 다큐를 예상했다거나 혹은 완전히 진지한 (MBC 창사 50주년 기념 특별기획에 빛나는;;) 다큐를 기대했다면 양다리를 걸친 이 모습에 갸우뚱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작품은 '간첩을 찾아라!'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 아직도 (말도 안되게) 등장하곤 하는 레드 컴플렉스를 묘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줄타기가 적절한 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맨 마지막에 간첩 신고에 관한 노래를 들려주는 것과 이와 함께 등장하는 간첩신고 문구 (폰트)의 포장은, 누가봐도 아직도 무슨 일만 벌어지면 북한 소행이라고 하는 것들과 더나아가 어처구니 없게도 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회에 대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풍자였다.

자료조사의 과정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나름대로 흥미롭고, 편집과 연출 의도만을 가지고 풍자의 성격을 가미했으며, 결과적으로 나중에 나올 신작 영화에 대한 간단한 떡밥도 깔았으니, 이 정도면 소소하게 만족스러운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1. 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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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셔니스트 (L'illusionniste, 2010)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불리는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를 기리며 만든 실뱅 쇼메의 애니메이션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2010)'를 보았다. 이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자크 타티 때문이 아니라 올해 열렸던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상 후보에 오르면서 부터였는데, 너무 아름다운 작화와 분위기에 예고편 만으로도 흠뻑 빠져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으나, 사실 국내에 개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극중 일루셔니스트 모습과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만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도 아닐 뿐더러 주제 역시 유쾌하지 만은 않고, 헐리웃이 아닌 프랑스에 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이 비좁은 개봉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 구매를 알아보고 있던 중 국내 개봉 소식을 접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보게 된 실뱅 쇼메의 '일루셔니스트'는 아름답고 아련하면서도 쓸쓸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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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일루셔니스트의 모습에서는 여러가지를 빗대어 볼 수 있을 듯 하다. 처음에는 큰 공연장을 돌며 잠깐씩 마술쇼를 보여주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이 설 무대를 잃어가다가, 결국에는 이것만 가지고는 살아나갈 수 없기에 전혀 다른 일들을 잠을 줄이고, 시간을 짜내어 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아직까지 믿어주는 한 소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 이상 마법에 놀라지 않고 속지 않은 세상과는 달리 아직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아 주인공의 마법에 환호하고 마법 자체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는 이 소녀를 위해, 주인공 일루셔니스트는 쉽게 자신의 일과 마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여러가지를 빗대어 볼 수 있는데, 우리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급격하게 잊혀져 가는 모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발견한 메시지는 바로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감독인 실뱅 쇼메가 자크 타티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것 역시 영화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극 중 일루셔니스트의 모습에서는 영화라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아련함과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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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일루셔니스트는 자신은 마법을 믿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마법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소녀의 꿈을 지켜내기 위해 일루셔니스트로서 최선을 다한다. 이 작품이 쓸쓸한 첫 번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일루셔니스트 스스로는 마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더 이상 자신의 마법만으로는 삶을 영유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마법'이 아닌 소녀에게만 보이지 않는 현실의 노력으로 이 마법을 지켜내게 되는 점이다. 일루셔니스트가 현실의 노력으로 이 마법을 지켜내려는 과정을 보는 관객들은 그의 모습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화라는 매체가 점점 본연의 예술적 아름다움과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하기 보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관객들의 일회성 요구에 발맞춰 여러가지를 포기하거나 혹은 내실이 아닌 포장에만 더욱 열을 올리게 되어버린 요즘의 영화계를 떠올려 볼 수 수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대중의 요구로 움직이기 보다는, 만드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완성해낸 결과물들이 점점 더 상업성이 없다는 시장의 논리로 인해, 설 무대가 없었던 일루셔니스트처럼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비춰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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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쓸쓸했던 이유는, 극의 처음부터 그리 열정적이지는 않았던 (이미 나이로 보았을 때 이런 자신의 상황에 내성이 생겨버린, 일종의 포기상태일 듯한) 일루셔니스트가 우연히 만나게 된 소녀를 통해 잠시나마 자신도 조금은 잊고 지냈던 일에 대해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모습과 결국엔 쓸쓸한 안녕을 고하게 되는 현실 때문이었다. 분명 일루셔니스트는 소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즉, 소녀에게 해준 것은 본인이 (아마도) 평생을 해왔을 일루셔니스트로서의 삶, 자신에게 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소녀의 캐릭터가 일루셔니스트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단지 '무지'의 존재였다가 세상을 알게 된 뒤에는 남들과 똑같이 현실에 녹아들어버리는 걸 보았을 때 더더욱 이 이야기는 세상에 놓여진 일루셔니스트의 쓸쓸한 일인극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또 쓸쓸하다. 관객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일루셔니스트의 삶이 결국 일인극으로 마무리된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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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쇼메의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쓸쓸한 감성을 담고 있지만, 영상에서는 다시 한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영화라는 것의 마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다. 무성영화에 가깝도록 대사는 없고 인물들 역시 말보다는 행동과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는데, 특히 극 중 일루셔니스트가 지내게 되는 모텔에서 만나는 그의 광대 동료들의 자화상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실뱅 쇼메의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깨닫기에 완벽한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감독의 말을 듣고 있는 대상이 더 이상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 임을, 감독과 작품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쓸하고 그립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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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8 (Super 8, 2011)
너무 행복했던 J.J의 스필버그 종합 선물세트


J.J. 에이브람스의 '수퍼 8 (Super 8)'은 완벽한 스필버그 영화다. 일차적으로 스필버그가 참여하기도 했으니 스필버그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E.T' '구니스' '미지와의 조우' 등 스필버그 영화들의 자양분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이를 추억하며 만든 종합적인 의미로서의 '스필버그' 영화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수퍼 8'은 새로울 것은 전혀 없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추억의 부스러기들을 잔뜩 끌어와 오마주와 자기 확장만을 더했음에도 이 작품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앞에서 언급한 작품들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없다면 이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일부러 분석해보자면 최근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의 줄거리는 너무 단순하고 건너뜀도 많고, 논리적이라기 보단 허무한 것에 훨씬 더 가깝고, 메시지 역시 동심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점들은 정말로 한 발 물러나서 일부러 찾아본 것들이다. 한 발 물러나 냉정하게 본다면 이런 단점들이 훤히 보이는 작품이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전혀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로 '수퍼 8'은 내 유년의 추억들과 스필버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해 행복하게 만든, 참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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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극장을 나오며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J.J.에이브람스가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이 작품은 J.J가 동경하던 스필버그에 대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스필버그를 보며 영화 감독을 꿈꾸었던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T'나 '미지와의 조우'를 보며 외계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구니스' 같은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 모험을 꿈꾸고 더나아가 이런 작품들을 나중에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J.J의 동경은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엿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동경 그 자체를 담아내고 있다. 사실 어린 시절 꿈꾸던 바를 어른이 되어 이루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꿈을 한치도 엇나감 없이 그대로 이룬 J.J가 몹시도 부러웠다. 그런데 여기서 더 부러운 점은 단순히 동경하던 영화를 연출하였기 때문 만이 아니라, 그 동경의 대상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 그야말로 '꿈 종결자'가 아닌가! 

J.J처럼 직접 그 꿈 실현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지만, '수퍼 8'은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보며 자라온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이와 같은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 또 다른 꿈의 영화였다. 직접적인 이야기도 물론 그렇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후반 미국의 모습에서는 'E.T'가 보여주었던 아이들과 배경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어두워진 동네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카메라 앵글 같은 경우는 직접적인 오마주이기도 했다. 이것 외에도 주인공 아이들 가운데 영화 감독인 아이의 집 세트는 정확히 'E.T'의 그것과 닮아있었으며, 식탁을 두고 벌이는 가족들의 배치나 가족 구성원의 묘사 역시 'E.T'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갈등과 해소가 상처받은 가족의 치유라는 점에서 이것은 그대로 'E.T'의 엘리엇 가족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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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친구들의 구성 역시 '구니스'를 비롯한 스필버그의 세계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요즘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티격태격하며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가 많지 않지만,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세계에서는 꼭 등장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이라면 무언가 어린이답지 않게 만들고 어른들의 것에 능통한 친구를 들 수 있을 텐데, '구니스'와 인디아나 존스' 에 출연했던 키호이콴 (Jonathan Ke Quan)과 마찬가지의 캐릭터를 이 영화에서는 폭죽과 밀리터리에 능한 친구가 대변하고 있다. 나머지 친구들의 모습 역시 스필버그의 세계 관은 물론 '스탠 바이 미'같은 어린이 모험영화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클래식한 캐릭터들이었다. 그 와는 반대로 어른들의 모습은 항상 불친절하고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세계는 믿지 못하며, 소통을 거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설정 역시 요즘 영화로 비춰보자면 너무 뻔하고 올드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이런 점들이 바로 이 영화의 제목이 '레드 원(Red One)'이 아니라 '수퍼 8'이기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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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퍼 8'이 완전히 스필버그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 스필버그 영화이긴 하지만 J.J.에이브람스는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넣어 조금의 확장을 시도했다. 'E.T'의 감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J.J는 여기에 '클로버필드'가 갖고 있는 괴물의 형태와 공포/스릴러 적인 요소를 가미했는데, 확실히 이 부분은 스필버그 영화와 차별되는 J.J만의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클로버필드'와 같은 무게중심으로 흐르지는 않지만, 분명 미지의 존재를 그리는데에 있어서 공포와 충격 요법을 가미하고 있고, 그 형태와 구성 역시 봉준호 감독의 우리 영화 '괴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스릴러적인 요소가 더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두 남녀 어린이 주인공 조 (조엘 코트니)와 엘리스 (엘르 패닝)의 관계 설정 역시 스필버그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완전히 어린이들의 우정이라기 보다는 소년, 소녀의 애틋한 감성을 더해 또 다른 분위기를 극에 담아내고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이런 J.J만의 가미된 부분들의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불편하거나 하는 부분은 아니었으며 소년, 소녀의 감성의 경우 엘르 패닝의 완벽한 소녀 비주얼을 통해 또 다른 활기를 불어 넣는 긍정적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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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의 여러가지 것을 가져온 것과 동시에 이 작품은 '영화'에 관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극 중 주인공 어린 친구들은 '수퍼 8'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 '사건 (The Case)'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중인데, 이 과정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감독인 J.J의 자전적인 경험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고, 여기에 빗대어 영화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 '사건'은 좀비 영화인데 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으로 유명한 조지 로메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실제로 엔딩 크래딧과 함께 볼 수 있는 이 영화 속 영화를 보면, 조지 로메로에 대한 오마주를 더욱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극중 화학공장의 이름도 '로메로화학'이 아니던가!).


전체적인 스필버그 영화라는 그림 속에 영화에 관한 텍스트를 적절하게 결합한 결과물이었다. 심지어 이 영화 만드는 부분에서는 리얼리티마저 느껴지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이 작품 '수퍼 8'은 결국 '사건'이라는 영화의 거대한 메이킹 필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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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에이브람스의 '수퍼 8'은 여러가지 면에서 요즘의 헐리웃 영화가 보여주는 경향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리메이크에 가까운 복고적인 작품이었지만, 그래서 좋았고, 더나아가 '스필버그'여서 더할나위없이 행복했던 작품이었다.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수퍼 8'은 선물세트 겪의 작품이었지만 더 나아가서 예전 우리가 보았던 'E.T'나 '구니스'처럼 아이들이 모험을 경험하고 꿈꿀 수 있는 작품들이 최근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21세기를 사는 어린이들에게도 20세기 어린이들이 느끼고 경험했던 것처럼 모험과 꿈을 꿀 수 있는 '꿈'으로서의 영화가 더욱 많아져야만, 30년 뒤 40년 뒤에도 지금을 추억하며 이런 영화들을 또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1. 엘르 패닝은 이로서 더이상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라는 수식어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코타 패닝도 한 몫 톡톡히 했죠;;)

2. 엔딩 크래딧과 함께 극 중 아이들이 만든 영화 '사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수퍼 8'보다 재밌다는 분들도 상당수가 되니 절대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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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V시리즈 '로스트'는 물론, 픽사의 '업'과 '라따뚜이' 등의 음악을 맡았던 Michael Giacchino의 음악은 상당히 장르적이에요. 음악 역시 존 윌리엄스의 그것을 오마주하려 상당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음악이 완전히 당시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4. J.J는 상당히 의도적으로 당시 SF영화에서 자주 보이던 빛의 굴절 효과를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의도적인게 아니죠. 

5. 그런데 7편을 안보고 8편을 봤더니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있네요. 1편은 너무 어렸을 때 봐서 기억이 잘 안났지만 최근에 출시된 블루레이로 6편까지는 복습을 하고 간터라 복선 등을 확인할 수 있더군요. 7편 보신 분들 얘기 좀 해주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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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극장판 블루레이 (銀河鐵道999, Blu-ray)
기념비 적인 애니메이션 그리고 블루레이


어린 시절 단순한 동심으로 즐겼던 애니메이션들 가운데서도 동심답지 않게(?)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이 몇 작품 있는데, 그 가운데 그 아련함으로만 꼽자면 이 작품 '은하철도 999 (銀河鐵道999)'는 단연 적은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일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 동요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불리웠던 수 많은 만화 주제가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곡 역시 김국환 씨가 부른 이 작품의 주제가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 건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였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한참 많아지던 시절, 애니메이션의 계보 아닌 계보를 거슬러 오르다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으니 바로 '은하철도 999'였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은하철도 999'에 대한 관심은 영감을 얻었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銀河鐵道の夜)'까지 미치게 되었고, '아, 어린 시절 보았던 이 작품이 아련했던 이유가 단순히 스쳐가는 기억만은 아니었구나'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은하철도 999'는 그 주변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참 많은 작품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한 사실들과 분석은 이미 DP리뷰를 통해 페니웨이 님께서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정리해 주셨음으로, 이 글에서는 큰 부담을 덜고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된 '은하철도 999 극장판'에 대한 감상의 측면에 더욱 집중해 보려고 한다.

은하철도 999 블루레이 DP리뷰 (페니웨이 님)


사실 수년 전에 어린 시절 이후 다시 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이 극장판에 대한 진정한 가치까지 느끼지는 못했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라면 그 때도 이제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이라 깜냥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고,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소스의 퀄리티가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는 점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수년 전 구입한 '은하철도 999 극장판' DVD세트를 보았을 때는 이번과 같은 감흥까지는 느끼지 못했었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DVD를 보았을 당시에는 이런 감흥이 포맷의 퀄리티가 향상된다고 해서 그리 향상될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었다. 지금부터 이 작품에 대해 풀어놓는 감상은,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블루레이의 고 퀄리티로 즐겼을 때 새롭게 발견했거나 혹은 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부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겠다. 





린 타로가 감독한 '은하철도 999 극장판'은 새삼스럽지만 참 기념비 적인 작품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다시 보면서 여러 장면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린 타로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요즘에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1979년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TV시리즈를 극장용으로 재편집하거나 축약하여 '극장에서 보는' 정도의 역할이 대부분이었는데, '은하철도 999'는 제작사인 도에이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TV시리즈의 축약과 재편집을 넘어서 아직 진행중인 시리즈의 마무리(극장판 만의 엔딩)를 먼저 지어버렸다는 점만 봐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또한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시도 역시, 결과적으로 아주 성공적인 모험이 되었다. 그 결과 1979년 개봉한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넘어 아직까지도 실사 영화들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고 비교되는 작품인 동시에, 개봉 당시에도 실사 영화를 모두 통틀어서 흥행 1위를 거두었을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후세에 재평가되는 작품들이나 기념비 적이다 라고 평가 받는 작품들을 보면, 결코 그런 호화스런 수식어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은하철도 999 극장판' 역시 상당부분에서는 '당시에는' 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아도 지금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될 만하거나 더 앞서 있을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과 모험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든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라는 점인데, 작품 곳곳에서 성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치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수 많은 놀라운 것들 중에서도 가장 손꼽고 싶은 것은 바로 영화 음악이었다. 명작곡가 아오키 노조미가 만든 음악들은 그 음악 자체로서도 대단하지만, 그 선곡 센스가 파격적인 동시에 글 서두에 얘기했던 '아련함'을 증폭시키기에 너무도 적절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운드트랙 앨범 '교향시 은하철도 999'는 당시 오리콘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룹 '고다이고'가 부른 주제가 역시 오리콘 싱글 차트 2위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직접 들어본 '은하철도 999 극장판'의 음악은 이런 사실 관계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감동의 연속이었다. 뻔한 감동을 부추길 수 있는 일반적인 음악 사용 대신 예상을 빗겨가는 장르의 곡이 갑자기 등장하지만,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커녕 '아, 이런 장면에 이런 곡이 잘 어울릴 수도 있는 거였구나 ㅠ'라고 느껴질 정도로 파격이 단순히 파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관을 열어버린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나중에 린 타로 감독의 작품들 (특히 '메트로폴리스 (メトロポリス, 2001)'에서 잘 나타나는)에서 만나게 되는 이른바 '파괴의 미학'의 시작과 절정을 바로 이 극장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파괴의 미학. 2001년작 '메트로폴리스'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엄청난 파괴와 붕괴의 장면을 배경으로 너무나 감미로운 'I Can't Stop Loving You'가 흐르던 순간이었다. 이 장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장면과 연출이 '은하철도 999' 극장판에 등장하는데, '메트로폴리스'의 경우보다 정리된 느낌은 조금 덜하지만 스케일은 오히려 훨씬 더 큰 편이다. 스케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작품의 스케일은 극장판 임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애니메이션 극장판과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의 액션 연출과 대규모 전투 장면들이 등장한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 같은 경우는 대사없이 진행될 수 있는 한계점을 한참이나 넘어서 버린 느낌을 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대사없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데, 그럼에도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 있는 액션이 장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대사없이 진행되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클래식한 대서사시를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대단한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다.





'은하철도 999' 극장판이 애니메이션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실사 영화들과 동등하게 평가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이 이전까지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들보다 훨씬 더 '극장판'에 어울리는 의도적인 연출과 스케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대규모 전투 씬 같은 스케일 측면도 물론 그러하지만, 이렇게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부분들 외에도 세심하게 극장판에 더 어울리도록, 혹은 극장판이어서 더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었던 부분들을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사실 스토리 자체나 몇몇의 설정들은 당시 일본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분명히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커다란 단점으로 지적되지 않을 만큼 TV시리즈가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극장판만으로 독립적인 자립도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당시 감독인 린 타로가 얼마나 '극장판'이라는 포맷에 신경을 썼는지, 그리고 각본에 참여한 이치카와 콘 처럼 영화 스텝들의 적극적 활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1979년작 '은하철도 999'와 1997년작 '안녕, 은하철도 999'는, 성공한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의 일반적인 공식들과는 다르게 원작자가 아닌 새로운 감독이 맡아 자신만의 색깔을 넣어 많은 것을 새롭게 시도했음에도, 오리지널을 해친다기 보다는 극장판에 걸맞는 확장성과 작품성을 갖게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2011년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게 된 1979년작 '은하철도 999'는 2000년 대에 DVD로 보았을 때보다 한 걸음 더 성장한 듯한 작품성과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으며,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인류가 이 작품처럼 우주를 여행하게 될 때,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게 될 때야 말로, 어쩌면 이 작품의 가치가 비로소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Blu-ray : Menu





Blu-ray : Quality

일본 개봉 30주년 기념으로 도에이 애니메이션사에서 자존심을 건 블루레이 타이틀이라는 말이 결코 겉치레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1080p 풀HD의 화질은 DVD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선명함을 담아내고 있다. 일부 장면에서는 너무 선명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DVD와 비교하여 높은 퀄리티의 화질을 보여주는데, 종종 '아련함'을 담은 작품들이 고퀄리티의 화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은하철도 999' 극장판 블루레이는 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DVD를 볼 때만 해도 잘 몰랐었는데, 블루레이를 보고 나니 차세대 화질과 사운드라는 포맷이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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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신작 블루레이 타이틀과 1:1 비교를 하였을 때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화질이지만, 작품의 제작연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화질이다. 또한 선명해진 화질 탓에 기존 비디오나 DVD버전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미세한 부분들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도 했으며, 레이저 빔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대규모 전투씬을 비롯해 스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배경 장면 등에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추억의 잔상이 깊게 남아있는 팬들에게는 너무 선명해진 화질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이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운드는 일본어 LCPM 2.0, 한국어 2.0 사운드와 리마스터링 된 돌비 트루 HD 5.1채널을 각각 수록하고 있는데, 일단은 일본어와 한국어 두 가지 버전 모두가 각각의 의미를 갖는 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를 추천할 만 하다. '은하철도 999'는 오리지널인 일본어 더빙은 물론 국내 성우들이 더빙한 한국어 버전 모두가 만족스러운 많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데츠로(철이)와 메텔을 연기한 노자와 마사코와 이케다 마사코 콤비 그리고 우문희씨와 정희선씨 콤비의 버전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이 타이틀의 소장 이유가 되겠다. 리마스터링 된 5.1채널의 사운드는 좀 더 블루레이만의 사운드 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오래된 작품이라 아무리 복원된 5.1채널의 사운드라해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액션 시퀀스에서는 제법 멀티 채널의 효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것도 일본어, 한국어 더빙 버전과 마찬가지로 어느 버전이 우월하다고 말하기 보다는,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부가영상으로는 역시 이번 블루레이를 위해 특별히 추가된 음성해설 트랙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겠다. 국내 최초로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음성해설 트랙이 수록되었는데, '은하철도 999'의 매니아 중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 투니버스 '스튜디오 붐붐'의 진행자였던 송락현 님과 PC통신 시절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동호회 '하이텔 애니메이트'의 전 시삽 이주석 님, 그리고 애니메이션 수집가로 잘 알려진 탁상 님이 참여한 음성해설은, 일반 팬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의 뒷 이야기들과 작품과 관련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한 가득 들려준다. 실제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연달아서 일본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그리고 음성해설 트랙으로 마지막 한 번 더 풀로 감상하였는데 그래도 지루하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흥미로운 음성해설이었다. 이 타이틀을 구매한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빼놓지 말고 들어봐야할 음성해설이라 하겠다.




이 밖에 본 예고편과 티저 예고편, 그리고 아직까지도 추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그 유명한 김국환 씨의 '은하철도 999' TV판 주제가 뮤직비디오와 '눈물 실은 은하철도'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었다. 극장판 본편을 보며 작품의 대단함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면, 익숙한 김국환 씨의 주제곡을 들으며 다시 한번 깊은 추억과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총평] 최근 국내에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거나 작품성은 있지만 비교적 마이너한 작품이 블루레이로 국내에 출시된 타이틀을 리뷰할 때, 쉽게 말해 '출시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했었는데, '은하철도 999' 극장판 타이틀 역시 현재 국내 블루레이 시장과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미뤄봤을 때 결코 제작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 라이센스 버전만의 특전을 만들기 위한 제작사 노바미디어의 노력은 한 사람의 블루레이 유저로서 박수를 보내고픈 심정이다.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은하철도 999'를 2011년에 다시 살아 숨쉬게 한 것, 그리고 비로소 이 극장판의 대단함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것 만으로도 이번 블루레이의 출시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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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悪人 Villain, 2010)
외로운 존재와 소중한 자를 둘러싼 슬픈노래


지난해 일본내 가장 화제작 중 하나였던 이상일 감독의 '악인 (
悪人)'은, 그 제목과는 달리 단호하거나 세기가 강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섬세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에서 '악인'이라 불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저 '우리가 악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연약한 이들이 많다' 라거나 '이들을 악인으로 만든건 사회다'라는 것 정도를 담아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관계를 담아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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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 싸고 유이치 (츠마부키 사토시)와 요시노 (미쓰시마 히카리)와 그녀의 아버지 요시오 (에모토 아키라), 요시노와 관계가 있던 남자 대학생 마스오 (오카다 마사키) 그리고 나중에 유이치와 만나게 되는 미츠요 (후카츠 에리)와 요시노를 자식같이 키웠던 그의 할머니 후사에 (기키 기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 있지만 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슬픔 그리고 결핍을 안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못해 원작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악인'은 러닝타임도 139분으로 결코 짧지 않은 편인데, 이 각자의 이야기 (각각이 아닌)는 조금은 독립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러닝타임 내내 동일한 힘의 크기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유이치의 이야기는 너무 가려져 있고 미츠요를 만나기 전과 후의 이야기는 1막과 2막으로 나눠도 좋을 만큼의 거리감이 없지 않으며 할머니인 후사에의 이야기 역시, 중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독립성을 갖는 부분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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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글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악인'에는 더 넓은 의미의 포용과 시선이 존재한다. 이 포용은 마치 연골처럼 이들의 관계를 조금 더 자연스럽도록 연결시켜주는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시킨다. 다시 말해, 좀 더 유이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해 극적인 동력을 얻지 못한 까닭은, 그 만큼 '악인'에서는 악인이 된 유이치 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그로 인해 돌아볼 기회와 잠재적 분노 그리고 슬픔을 표출하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어떠한 사건, 특히 살인사건이나 사이코 패스 등을 그릴 때의 경향을 보면 결국 그 이면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무관심과 잘못이 있었다는 것으로 종결짓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지만 이러한 논리적이고 냉소적인 이유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 더 호소하고 기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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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불필요 하다 싶을 정도로 흩날리게 뿌려놓은 조각들은 마지막에가서 영화가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꺼낼 때,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작동한다. 이 덩어리는 완벽한 하나가 되지는 못해 조금씩 갈라진 균열의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기는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 균열이라는 것 또한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외로움과 포용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을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더라도 영화가 마지막 던지는 메시지는 뭉클하고 울컥하게 되는 지점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 동안 이들의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슬픔과 마음의 짐을 엿볼 수 있었기에, 참아왔던 이들이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소박하게 고백하는 순간 (혹은 끝내 토해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영화가 들려주는 슬픈 노래에 눈물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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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캐릭터의 특성상 깊이를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반면, 할머니 역할을 맡은 기키 기린이나 아버지 역할의 에모토 아키라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 이 작품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배우라면 오히려 이 둘을 더욱 꼽고 싶을 정도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에 상당히 많은 부분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극중 캐릭터들이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을 음악이 상당부분 역할을 부여 받아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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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시 _ 블루레이 출시기념 시연회 및 GV


지난 토요일(11일),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블루레이 출시를 기념한 상영회와 GV가 열렸다. '시'블루레이는 다른 타이틀과는 다르게 국내 출시예정이 없던 작품을 DP에서 소비자들이 미리 선구매형식을 취해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하게 된 특별한 경우인데, DP컬렉션 001 타이틀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었고, 002 타이틀이 바로 '시'다. 참고로 이 DP컬렉션의 배경과 국내 블루레이 시장에 관한 내용은 지난 글을 참고하면 되겠다~






(상영이 시작되기 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시고 계신 DVD프라임의 박대표님!)


사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좀 더 가까이 지켜보게 된 입장에서, '시' 블루레이를 위해 정말 많은 신경을 쓴 이들의 노력을 알기에 감회가 남다른 순간이었다. 특히 첫 번째 타이틀이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정말 얘기치 않았던 오류로 인해 리콜을 결정했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은 이루말할 수 없는 것이었고, 어려운 국내 2차 영상물 시장을 고려했을 때 자칫 이 새로운 가능성 마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탄생한 '시' 블루레이였기에 이번 시연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박대표님도 뵙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미리 프리오더했던 '시'블루레이를 손에 쥐고 나니 무언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800명 넘는 이들이 심정이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시' 블루레이 상영 시작. 왜 이렇게 이런 행사는 깔끔하게 되는 법이 없는지, 영사실에서의 플레이어 조작 미스로 이창동 감독님의 소개 인트로가 나오지 않아 재차 상영을 하게 되었는데, 완전한 손님이라기 보다는 반 운영자의 심정으로 앉아 있던 나도 진땀 났을 정도였으니, 박대표님의 심장은 얼마나 빨리 뛰었을지...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DP 리뷰를 위해 이미 블루레이 타이틀을 여러 차례 먼저 보았던 터였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보는 맛은 역시 또 달랐다. 그 만큼 '시'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던 것도 있겠고. 영화와 블루레이 타이틀에 대한 리뷰는 곧 DP 리뷰를 통해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그렇게 상영이 끝나고 곧 이어진 이창동 감독님과의 GV. 영화평론가 이상용 님의 진행으로 시작된 GV는 이 특별한 자리에 대한 의의와 '시' 블루레이를 처음 보게 된 감독님의 솔직한 (아주 솔직한;;;) 느낌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블루레이에 수록된 음성해설까지 다 들었던 터라, 겹치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가끔씩 서로 웃어가며 즐길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GV였다. DP회원들 외에도 감독님의 팬들 및 영화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자리를 함께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질문자가 많은 GV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후 싸인회를 위해 빨리 마무리해야 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시'에 대한 이야기 외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아주 살짝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셨지만 쉽게 성사될지 여부를 알 수 없는 프로젝트임을 슬쩍 드러내셨는데, 꼭 성사되어서 내년 즈음에는 신작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GV가 끝나고 극장을 찾은 DP회원들 약 150명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셨는데, 아마도 블루레이를 미리 구매했던 이들에게도, 감독님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싸인판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도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뒤 감독님께 나즈막하게 내 이름을 얘기한 후, 블루레이에 멋지게 싸인을 받았다.





일반판에 제공되는 슬리브 대신 DP한정판에만 제공되는 특별 슬리브에 일부러 싸인을 받았다. 감독님께 '나중에 DP에 블루레이 리뷰 올라오면 꼭 한 번 봐주세요'라고 말해보고도 싶었지만, 그 말은 고이 접어두고 그냥 싸인만...

DP컬렉션의 두 번째 타이틀 '시'가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불러와서 그 다음 타이틀이 제작되는 힘을 얻었으면, 아니 더 나아가서는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가 걱정없이 제작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길 꿈꿔본다. 이게 꿈에 가깝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확장판으로 더 깊어진 깔끔한 범죄영화


척 호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벤 애플렉 감독의 작품 '타운 (The Town)'은 '디파티드', '히트' 등을 비롯해 범죄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에 매우 충실한, 클리셰 그 자체로 보아도 좋을 만한 작품이다. 주인공 무리는 은행강도를 일삼는 범죄자이고, 배경이 되는 '찰스타운'은 대대로 범죄가 가업처럼 되물림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동네이며, 이러던 가운데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려 애쓰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이곳 (찰스타운)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마지막 범죄를 계획하게 된다. '타운'은 위의 내용이 전부라고 봐도 좋을 만큼 범죄 영화를 많이 보지 않은 이들도 쉽게 짐작할 만한 이야기로 전개되며, 그 가운데 범죄 영화의 클리셰도 거의 모두 수행하고 있다.






'타운'이 괜찮은 영화일지 아닐지는 철저하게 이 영화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겠다. 만약 서두에 언급했던 '디파티드'나 '히트' 등을 기대했다며 정말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에 허탈함을 느끼게 되겠지만, 반대로 기대하는 바가 크지 않고 장르영화로서 범죄영화를 만나려고 했던 관객이라면, 적절한 클리셰와 괜찮은 무게감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조금 심심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블루레이를 통해 재 관람하니 새삼 영화의 깊이가 은근하게 풍겨져 나와 범죄영화 특유의 공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다른 장르영화들도 그렇지만, 범죄영화의 경우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과 동시에 그저 범죄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게 감과 희열을 느끼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타운'은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아니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다른 범죄영화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배경적인 소재 선택에 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찰스타운'이라는 보스턴의 지역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팬웨이파크를 범죄의 무대로 삼는 다는 점과 더불어 주인공이 벗어나려는 굴레를 지역과 가족으로 구체화 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야기를 가족과 특히 지역적인 것으로 한정하면서 좀 더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것이 한계로 작용하기 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타운'이 '찰스타운'을 벗어나는 더 큰 메시지를 그리려 했다면 정말로 기술적인 클리셰만이 남는 영화가 되었을 텐데, 감독 자신이 사랑하는 지역의 이야기로 한정 지으면서, 오히려 욕심을 덜어낸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지역적 한정성은 실제 찰스타운에서 벌어졌었던 은행강도 사건 및 도주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 더욱 치밀함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주민들의 참여는 물론, 당시를 기억하고 관련한 자들을 통한 자료조사를 통해, 아마도 당시를 기억하는 찰스타운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보더라도 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없도록 '현실성'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타운'에 가장 큰 자부심이 되었으며, 영화의 색깔을 나타내는 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라면, 극 중 조직의 대부로 등장하는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때문이었다. 올해 1월 세상을 떠나 많은 영화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데, 스크린을 통해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건 '인셉션'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이 작품 '타운'이 국내에서 만나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올해 4월 영국에서 개봉예정인 'Killing Bono'라는 작품이 유작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아마도 이 작품은 개봉이 어려울 듯해 국내 극장에서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건 '타운'이 될 것 같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배우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은, 이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의 히스 레저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역시 영화와는 별개로 쓸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인셉션'과 이 작품 모두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역시 분량과는 상관없이 별다른 장치나 과장 없이도 조직의 대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 낸다. '타운'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범죄영화지만, 피터 포스틀스웨이트로 인해 조금 더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s & Sound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보스턴의 풍광을 분위기 있게 담아내고 있는데, 칼 같이 선명한 화질과 외곽선의 표현은 아니지만, 범죄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 장면보다는 보스턴 찰스타운을 하늘에서 바라본 장면들처럼, 배경을 묘사할 때 좀 더 디테일 한 블루레이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레퍼런스 급의 최신작들과 비교하여 조금은 아쉬운 화질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극장에서 디지털 소스로 관람했을 때에도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던 원본을 감안한다면 BD의 화질이 특별히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범죄 영화답게 '타운'에는 다양한 총기들의 격발 음, 자동차 추격전에서 발생하는 긴박한 효과음들과 폭발음 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총기들도 중화기에 가까운 수준에 총기들이 등장하고 대규모 총격 씬이 진행되는 만큼 차세대 사운드를 맘껏 즐겨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팬웨이파크에서 벌어지는 총격 씬의 경우 사운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공간감 있고 임팩트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실제로 극장에서 감상했을 때는 그렇게 사운드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자면, 블루레이의 사운드가 좀 더 체감하기에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Blu-ray : Special Features

'타운' 블루레이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면 123분이었던 극장판과는 다르게 총 153분의 확장판이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무려 30분에 가까운 분량이 추가되었는데, 삭제 장면이 추가된 경우가 아니라 기존 장면이 확장되거나 추가된 경우라 장면에 따라 전혀 볼 수 없었던 시퀀스가 통으로 추가된 장면도 있고, 전체 시퀀스에서 짧은 장면들이 새롭게 추가된 장면들도 확인할 수 있다.





블루레이에는 극장판과 확장판이 각각 수록되었는데, 확장판의 경우 확장된 장면이 나올 때 마다 화면 좌측 상단에 아이콘으로 표기하여 추가된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확장판의 내용들은 극장판과 비교하자면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는 장면들도 있는 한편, 각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탄탄히 해줄 장면들도 담겨 있어 결과적으로 좀 더 풍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장판의 경우 좀 더 주인공 더그와 클레어의 관계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벤 애플렉의 음성해설 역시 극장판과 확장판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되는데,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들어보면 단순히 극장판 버전에 확장된 장면에만 코멘트를 추가한 개념이 아니라, 확장된 시퀀스의 경우 그 앞 뒤까지 고려하여 다른 전개로 음성해설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이 얼마나 많은 세심한 연출을 하고 있는지 과장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음성해설 트랙에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가영상은 'FOCUS POINT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본편을 보다가 관련된 장면이 있을 때 안내가 나오면 확인할 수도 있고, 별도로 부가영상만 따로 볼 수도 있도록 선택할 수 있다. 'Pulling Off The Perfect Heist'에서는 극 중 등장하는 첫 번째 은행강도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현실성에 대해 들려준다. 실제 찰스타운에서 벌어졌던 이 사건을 재현하면서, 찰스타운 사람들이나 FBI에서 보았을 때에도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을 엿볼 수 있다.






'The Town'에서는 작품의 배경이 된 '찰스타운'에 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범죄가 세습되고 보스턴의 대부분 범죄에 연루된 곳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치 유럽에서나 볼법한 아름다운 거리로 이뤄진 곳들도 존재하는 지역적 특성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Nuns With Guns : Filming in the North End'에서는 극 중 수녀 가면을 쓰고 벌이는 노스엔드의 추격전에 대한 뒷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추격전 연출을 위해 동원된 자동차 스턴트에 대한 촬영장 모습과 감독과 스텝들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





'The Real People of The Town'에서는 실제 찰스타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주요 캐릭터를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의 경우 실제 찰스타운 주민들을 캐스팅하였고, 직접적인 캐스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자문을 얻는 역할 등으로 작품에 참여시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부가영상을 보다 보면 '타운'은 마치 재현에 가까울 정도로 현실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Ben Affleck : Director and Actor'에서는 '타운'에서 감독과 각본 그리고 주연을 맡은 벤 애플렉에 대한 동료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물론 다양한 벤 애플렉의 재능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독으로서 그의 면모를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동료들의 인터뷰와 수록된 짧은 촬영장 영상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프로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The Cathedral of Boston'에서는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의 촬영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펜웨이파크에서 다른 촬영도 아니고 총격씬의 촬영 허가는 관계자들이 전하는 것처럼, 레드삭스의 골수 팬인 벤 애플렉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그라면 단순히 세트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펜웨이파크에 대한 존경을 담아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시퀀스 하나는 실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면이 되었다.


[총평] 벤 애플렉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타운'은 찰스타운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현실성을 범죄영화라는 장르에 잘 녹여낸 깔끔한 범죄영화였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으로 미뤄보았을 때 '타운'은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며 또한 극장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확장판은, 이 괜찮은 범죄영화에 좀 더 풍부함을 더해주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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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속 운명론에 대해


'쿵푸팬더'는 히어로 물이다. 그것도 고전적인 운명론에 근거한 히어로 물이다. 비범하기는 커녕 평범하지조차 못한 주인공 '포'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속편에 와서도 또 한 번 이 운명론을 영화의 맨 앞에 내세우고 있다. 평범한 주인공이 본래 부터 영웅이 될 수 밖에는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따져보면 결국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될 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작 좀 힘 빠지고 부정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그럴 운명이야' '너의 인생은 이미 영웅의 길로 정해져있다'라는 말은 그럴싸하고 멋져보이지만, 영웅으로 선택 받은 본인의 의지는 재쳐두고라도, 그 주변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이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힘빠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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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대사부 우그웨이 옹 때문!)


'쿵푸팬더'의 운명론은 대사부인 우그웨이가 전설 속의 용의 전사로 그 동안 수련해오던 무적의 5인방이 아닌 이들을 동경해오던 실수 투성이의 팬더 '포'를 지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꾸 평범하지도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다보니 '포'의 여러가지를 비하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철저히 노력의 정도로 보았을 때 평범에도 못 미친다는 표현이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적인 방식대로 용의 전사로 선택 된 포를 무적의 5인방과 스승인 시푸가 별로 못마땅하게 여겨 포를 구박하고 그 과정 속에서 포는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해 이들 모두를 감동시켜,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 없었던 이 운명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여기에는 간과한 가장 큰 오류가 있다. 특히 포가 이들에게 (특히 용의전사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았던 타이그리스에게) 인정 받는 과정이 딱 드림웍스와 전체관람가 영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번 글처럼 운명론만 가지고 작품을 해석했을 때에는 분명 가장 큰 헛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 이야기를 좀 더 현실에 대입해보자면 평생을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아왔는데, (정말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뚱뚱한 팬더가 그 자리에 적임자로 선택 받았고 그 선택이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현실을 맞닥들였을 때,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얘기다. 한 몇 년 무슨 대회의 우승을 목표로 연습한 것도 아니고 평생을 그것에만 몰두에 수련을 쌓아왔는데 말이다. 이런 현실을 보았을 때 타이그리스를 비롯한 이들의 반응보다는 오히려 타이렁의 반응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 '타이렁'의 이야기가 이제야 나왔는데, '쿵푸팬더'가 인상적이고 더 큰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악당의 롤을 부여 받았다고 생각되는 타이렁 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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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라만 봐도 눈물이 나는 '쿵푸팬더' 최고 동정심드는 캐릭터 '타이렁' ㅠ)


개봉 당시에도 썼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포가 루저를 대변하는 캐릭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타이렁이 더 루저에 각가운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전편에서 등장하는대로 타이렁은 어린 시절부터 마스터 시푸에 의해 차근차근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으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 중에 수재였다. 딱 하나 문제라면 엘리트 코스를 단기 속성으로 수료했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탈이었을 터. 타이렁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결코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기 보다는, 너무 열심히 하고 잘한 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용의 전사가 되기 위한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실력'이 아닌 '운명'에 의해 그냥 '너는 아니다'라는 답을 얻게 되었을 때 타이렁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쿵푸팬더' 전편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캐릭터는 당연히 타이렁이었다. 누구나 타이렁과 같은 현실에 놓이면 더하면 더했지 그처럼 실망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타이렁이 이후에 벌이는 이른바 '삐뚫어진' 행동들은 타이렁을 욕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타이렁은 아마 우그웨이는 물론 자신을 자식 같이 대했던 시푸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나 한테 왜 그랬어요'


정말 운명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면,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같은 피해자는 애초부터 만들지 말았어야지. 이 우그웨이 영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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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운명론은 속편인 '쿵푸팬더 2'에서도 등장한다. '용의 전사'가 될 운명을 타고 난 포의 이야기 대신, 쿵푸를 지키고 셴으로부터 마을과 성을 지키도록 운명지어진 '팬더' 포의 대한 이야기 말이다. 공작인 '셴'선생은 타이렁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도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정해진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싸우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셴'을 알아왔던 예언자는 정해진 예언을 들어 '셴'을 압박하는데, 이유는 정말 '예언' 혹은 '점' 때문이 전부다. 자신의 앞길을 하얗고 검은 무언가가 반드시 막아서게 되리라는 예언을 극복하기 위해, 그 싹부터 모두 잘라내려고 애쓴 셴의 이야기 역시 따지고보면 슬픈 이야기다. 물론 타이렁과 같은 울컥하는 공감대는 부족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쿵푸팬더 2'에서도 역시 이 운명론은 절대 비껴가지 않고, 이들을 둘러싼 현실을 관통한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으며, 결국 정해진 순간에 맞춰 영웅이 어떻게 각성하는 가하는 방법론만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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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는 '쿵푸팬더'의 운명론에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이 시리즈에서 발견한 것은 이런 운명론을 맨 앞에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용의 전사'에게 지워진 짐이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수준의 짐도 아니고, 오히려 누구나 닮고 싶어하고 되고 싶어하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그 지점이 노력이 아닌 100% 운명 (운)에 의해 정해져있다는 것은 여전히 선호하는 줄거리는 아니지만, 영화가 앞서 언급한 타이렁이나 타이그리스, 셴을 그리는 방식을 보면 이들을 완전한 악당으로 그리기 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가득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편에서 타이렁을 묘사하는 건 표피적으로는 분명 선할 여지가 없는 악당으로 설정했어야 더욱 깔끔했을 테지만 (더군다나 이런 오락영화에서는), 영화는 타이렁이 용의 전사가 되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을 짧지만 묘사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승이었던 시푸가 타이렁에게 갖는 미안함과 죄스러움 그리고 안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예전에 1편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스타워즈'가 연상되는 오비원과 아나킨과 같은 관계를 시푸와 타이렁에게서 느낄 수 있었는데,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다시 아나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타이렁에게도 마지막에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그랬다면 '쿵푸팬더'는 좀 더 완벽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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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2'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셴'을 그리는 방법도 전편에서 타이렁을 그리는 방법과 방법론에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그 세기나 비중에 있어서는 분명 타이렁보다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셴에게는 타이렁과 같은 공감대를 이끌 만한 요소가 없었고, 포와 경쟁하는 관계라기 보다는 셴과 운명과의 싸움에 포가 어쩔 수 없는 장애물이 된 경우이기 때문에 좀 더 전체적인 스토리와는 다른 두개의 스토리가 존재한 경우로 볼 수 있겠다. 셴이 성을 차지하고 무기를 개발해 쿵푸를 모두 없애버리려고 한 의도의 근원을 쫓아가보면, 다른 악당들과는 다르게 어떤 야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내쫓았던 (이 과정에서도 부모가 셴을 미워래 내쫓은 것이 아니라 운명론에 근거하여 어쩔 수 없이 쫓아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하지만 결국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과) 본인이 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예언과 쿵푸 등에 관련된 것이었기에 발동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셴이라는 캐릭터 역시 포와 선과 악으로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라기 보다는, 포의 운명론에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또 다른 안타까운 캐릭터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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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쿵푸팬더' 시리즈에 담겨있는 운명론은 결과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는 이를 선택하며 희생될 수 밖에는 없는 캐릭터들에 대한 연민이 조금씩 담겨있어 미묘한 여운을 남긴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운명론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말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 속편 및 만약 이 시리즈가 마무리 된다면 그 마지막 작품에서 포가 맞이했던 운명론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포의 운명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 주변이 모두 희생해야만 하는 운명일지, 아니면 마지막에 가서는 포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다른 길을 택할지, 아니면 또 다른 운명과 맞서 싸우게 될지 그 결과를 꼭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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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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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2 (Kung Fu Panda 2)

포의 근원을 찾는 두 번째 이야기



헐리웃에서 만든 작품답지 않게 동양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패러디 수준이 아닌 오마주로 이끌어 낸 것은 물론 전연령이 즐길 수 있는 재미까지 담고 있던 작품이 바로 '쿵푸팬더'였다. 전편에 대한 만족감이야 개봉 당시 리뷰와 블루레이 리뷰 등을 통해 이미 얘기했으니, 이 글에서는 바로 최근 개봉한 속편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려고 한다. 영화 '쿵푸팬더 2' 역시 이런 생략이 가능한 작품이었는데, 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설정을 전편에서 끝마쳤기 때문에 속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에 휩쓸린 포의 이야기를 좀 더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속편들이 전편만 못한 이유는, 전편에서 비중있게 그리는 캐릭터 설정과 히어로물의 경우 (쿵푸팬더는 어쨋든 운명론에 근거한 히어로물의 범주로 볼 수 있겠다) 평범한 주인공이 히어로가 되는 과정에서 얻는 재미와 감동을 속편에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태생적 이유 때문일텐데, '쿵푸팬더 2'는 이러한 단점을 1편에서 암시했던 포의 출생의 비밀, 팬더인 포의 근원을 찾는 이야기로 보완하려 하고 있다. 사실 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것이 '비밀'이라고 하기 부끄러울만큼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영화는 그 자체보다는 그 배경을 둘러싼 이야기와 사건들을 통해 포가 한 걸음 또 성장하는 계기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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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해 교훈을 주려 했다면, 속편은 아버지와 아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통해 또 다른 교훈을 주려고 하고 있다. 전편에는 '타이렁'이 있었다면 속편에는 공작새인 '셴'이 등장하는데, 이 '셴'이라는 캐릭터 역시 '타이렁'과 마찬가지로 본디부터 악당이었다기 보다는 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내몰려 반대에 서게 된 캐릭터라 할 수 있을텐데, 그러한 점이 이 '쿵푸팬더' 시리즈가 갖는 특별한 (어쩌면 가장 특별한) 점이 아닌가 싶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차원이 아니라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운명론과 결부하여 깊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이 아닌 별도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다뤄볼 예정이다.


그 결과가 허무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쿵푸팬더 2'는 포의 근원을 찾아가는 또 다른 여정이다. 전편이 '용의 전사'로서 각성하게 되는 과정이었다면, 속편은 이미 용의 전사로 활약하게 된 포가 자신의 부모와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인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통해 쿵푸의 고수로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 모두 포의 근원과 관련된 것으로서 결국 하나의 여정으로 볼 수 있을텐데, 영화가 선택한 이 여정의 방법론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만약 단순히 포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켰더라면 굉장히 심심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며, 이 영화가 상당히 힘을 주어 얘기하고자 했던 '쿵푸'에 대한 메시지도 전달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두 가지 이야기의 적절한 접점을 찾은 것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쿵푸팬더 2'의 이야기가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 시리즈가 애초에 몇부작으로 기획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시리즈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2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오락적 요소와 맞물려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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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전편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쿵푸팬더'는 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조명(Lighting)에 굉장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애니메이션에서 조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실사영화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텐데, 그 가운데서도 '쿵푸팬더'는 매우 세심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조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자연광을 논하는 것이 우습지만, '쿵푸팬더 2'에서는 이 작품 속 자연광의 사용이 실사 영화의 그것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단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조명에 있어서 기술적인 우월함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다양한 밝기의 배경을 등장시키고 있으며, 실내와 실외, 자연광과 인공 조명, 불빛과 반사광 등 다양한 조명의 활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작품의 장점은 추후 블루레이를 통해 좀 더 확연히 표현되지 않을까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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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맥스 3D의 볼거리도 충분한 편이다. 최근 들어 3D포맷으로 개봉하는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반대로 3D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하락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4D 상영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작품과 3D가 별로 연관이 없지만, 억지로 포맷에 끼워맞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쿵푸팬더 2' 아이맥스 3D는 포맷과 작품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미 입체 영화의 신기함에는 제법 익숙해진터라 더 이상 입체만을 강조하는 3D영화는 의미가 없지만, 아직까지 입체 효과에 신기함을 갖고 있는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쿵푸팬더 2'는 나쁘지 않은 3D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굳이 입체임을 억지로 뽐내지 않으려는 작품들의 단점이라하면 3D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조금 심심한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포의 회상장면의 경우 일부러 2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좀 더 대비되는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이 회상 장면의 경우 일반적인 본편이 실사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라고 보았을 때 별도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두어, 관객들로 하여금 더 이상 본편을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어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대비는 '쿵푸팬더 2'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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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멀리하는 터라, 이 영화의 감독이 한국계 여성인 여인영 감독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왜냐하면 작품을 보는 내내 오히려 전편보다 더 중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장면과 설정들이 나오는 걸 보고는 '어떤 서양 감독인지 중국 문화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을 만큼, 어설픈 설정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계 감독이 아닐까? 라는 예상마저 했을 정도였는데, 중국이 만든 화약이라는 점을 스토리에 깊게 녹여낸 점이나 예전 '황비홍'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사자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퀀스, 그리고 중국의 곳곳을 표현해 낸 디테일은 단순히 설화나 전설에 기대어 만든 것이 아니라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 만들어 진 것임을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아,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도 이런 세계적 블록버스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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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여러가지 이유들을 다 재쳐두더라도 '쿵푸팬더 2'는 가족오락 영화로서 러닝타임을 신나게 즐기기에 개인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다. 각각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만족도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포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다. 울고, 웃고 즐겼으니 이 정도면 대만족!



1. '쿵푸팬더 2'는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모두 디자인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다른 영화들보다 끝까지 크래딧을 즐기는 관객들이 더 많더군요. 굳이 쿠키 장면이 없더라도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 놓을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나 싶네요.


2. 평소에도 엔딩 크래딧에 관심이 많아 주의깊게 보는 편이지만, 이번 크래딧에서는 놀라운 이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더군요. 일단은 몽키의 목소리 역할을 맡은 성룡을 다른 캐스팅과는 다르게 'and'로 표기한 것이 이채로웠고, 캐스팅 가운데서는 장 끌로드 반담과 빅터 가버의 이름까지 만나볼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그래도 가장 놀라웠던 이름이라면 길예르모 델 토로가 아니었나 싶네요. 참고로 델 토로는 'executive producer'와 'creative consultant'를 맡고 있는데,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야 말로 그의 주종목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가족영화라 그의 컨설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네요 ㅎ


3. 본문에 있는 것처럼 '쿵푸팬더' 시리즈가 담고 있는 운명론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별도로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흥미로운 부분이거든요!


4. 3편도 기대가 되네요. 대충 예상도 되구요. 과연 용의 전사 포의 운명은 어찌될지!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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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愛 (No Name Stars)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5.18 광주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당시를 치열하게 겪은 세대도 아닐 뿐더러,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은 부모 아래서 그 어떤 슬프고 참혹한 역사보다도 많은 자료와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던 터라, 5.18 광주는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 광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참혹한 참상이 그대로 담겨있는 사진들과 책들을 통해서 였는데, 이 사진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너무 어렸었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와 그 배경에 있는 정치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곳에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스러져간 광주시민들, 더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고 알아갈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이제와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이런 기회들이 내 인생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광주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이후 정치적인 잣대를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너무 이 진실 속에서 살아온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언제부턴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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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5월. 나는 또 하나의 오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5.18 광주의 한 가운데에서 투쟁했던 이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주머니들, 어머니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오월애'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1980년 5월 광주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말들을 통해, 2010년 광주를 다시 돌아보는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광주와 관련된 여러 다큐, 인터뷰, 영상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있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롭게 접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 과거사에 왜 눈물을 흘리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현 정권에 들어서서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진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에는 1980년대 피흘려 싸운 광주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즉, 이것은 결코 남의 일,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이며, 현대를 사는 모든 이들은 적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른다면 오월 광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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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관련된 나의 일이라는 점에서 5.18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참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일이지만, 아직도 오월 광주의 슬픔과 희생이 치유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잊혀져야할 과거사로 점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5.18은 혁명으로 인정받고, 희생자들은 민주투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참혹한 일들을 저질렀던 범죄자들은 죄값을 치르기는 커녕, 사과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는 다르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은 놀랍게도 아직까지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보자면 그들이 한 짓은 절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이렇다하더라도 이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개숙여 사죄할 때나 가능한 일일텐데,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점점 지워가고 있는 지금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끄럽고 화가나지만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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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광주의 슬픔과 눈물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당시를 살았던 이들은, 함께 싸우다 먼저 자신을 던져 희생했던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자, 자신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오월 광주를 끌어 안은 채 또 다른 투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흘릴 눈물마저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며 흐르는 내 눈물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사회와 정부는 또 다시 이들을 폭도로 내몰 궁리만 하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는 커녕, 분노하게 만드는 일들만 자행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감출 수 밖에는 없었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 '오월愛'는 광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지난해 도청건물 철거를 두고 벌어진 일들만 제외하면 거의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그렇다고해서 결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퇴색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받아들이는 이들에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 '오월愛'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시금 책임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적어도 내가 안다고 해서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미약한 노력이라도, 5.18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이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세대들, 그리고 더 나아가 오해로 인해 잘못된 사실들로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전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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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오월 광주가 아닌 우리의 광주. 그리고 우리의 오월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았다'로 한정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미래로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담아 '끝나지 않는다'로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하겠다.


1. 보통 때 같으면 슬픔이 더 깊었을 텐데, 이번에는 사실 분노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도 가끔씩 TV에 등장하는 29만원 그 때문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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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조류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양념으로만 가득찬 영화



조니 뎁을 디즈니 가족영화의 캐릭터로 승화시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 '낯선조류'를 보았다. 사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는 거의 조니 뎁에 대한 팬심으로 보기 시작한, 그리고 보고 있는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번 '낯선조류'에서는 페넬로페 크루즈까지 출연한다고 하니 작품의 완성도는 재쳐두고서라도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치가 별로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낯선조류'는 그다지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제작비와는 상관없이 이미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알려져 있는 시리즈의 작품답지 않게 스케일이 느껴지는 볼 거리는 거의 없었고, 소소한 즐거움도 밋밋한 수준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원작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 '캐리비안의 해적'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는 없지만, 만약 '해리포터'의 경우처럼 전체 하나의 이야기를 조금씩이라도 전개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모를까, 아니 그렇다하더라도 큰 줄기의 진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에피소드 정도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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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보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는 있지만, 그 배경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 보다는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그 이야기 역시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캐릭터 뒤에서 근근히 지원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던 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작품의 특성은 3편에서 조금씩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본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3편도 별로이지 않았느냐'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래도 3편이 나름 재미있었던 것은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페로우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원맨쇼를 비롯해, 1편부터 시리즈에 참여해 온 '윌 터너 (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 (키이라 나이틀리)'은 물론,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주윤발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참여를 통해 흥미요소와 연속성을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낯선조류'에서는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바르보사'와 '깁스 (케빈 맥널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연속성 보다는 에피소드의 느낌이 더 강해 단순히 캐릭터를 소비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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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장 큰 이유라면, 그 동안 시리즈를 이끌었던 고어 버번스키 대신 롭 마샬이 연출을 맡은 사실을 들 수 있겠다. 롭 마샬은 '시카고' '나인' 등 뮤지컬 영화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었던 감독인데, 어차피 결과물이 아쉽다보니 제작사도 디즈니겠다, 혁신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에 뮤지컬 적인 요소를 가미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위험한 상상도 해본다. 출연진들이야 뭐 가무에도 능한 배우들이니 괴작이 될 지언정 무언가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마도 이랬다면 이 시리즈의 팬들은 더 떠났을지도 모르니 개인적인 상상으로만 그쳐야겠다. 어쨋든 결과적으로 차라리 뮤지컬 시퀀스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좀 심심한 작품이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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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한 캐릭터와 젋음의 샘에 관련된 이야기와 캐릭터, 그리고 시리즈의 주인공인 잭 스페로우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다보니, 모두가 조금씩 여운 만을 남기는 작품이 된 듯 하다. 특히 인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비중이 모호하다보니 감정을 더 싣기도 애매하고 그냥 곁가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른 가지들에 비해 흥미로운 그런 경우였다. 이야기 자체가 많은 캐릭터들이 젊음의 샘이라는 하나로 모여드는 구조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2시간 정도의 오락영화에서는 좀 더 캐릭터와 이야기의 줄기를 심플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검은 수염, 안젤리카, 인어, 젋음의 샘, 스페인 군대, 바르보사 등 각각은 나쁘지 않은 양념들이었지만, 메인 요리는 없는 양념으로만 가득찬 영화가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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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도 감독인 롭 마샬과의 인연으로 주디 덴치가 카메오 출연을 한 것 같더군요.

2. 이번 작품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잭 스페로우보다도 그의 아버지를 연기한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차드랄까. 뭐 이제는 두말하면 잔소리인 얘기지만, 조니 뎁이 잭 스페로우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많은 부분을 참고한 캐릭터가 키스 리차드였죠. 그래서 전편에 아버지 역할로 등장도 하게 되었던 것이구요. 짧지만 반가운 출연이었습니다!

3.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쿠키 장면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피식'하고 웃을 수 있는 정도의 장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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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와 세스 로건의 그린 호넷 비긴즈


1930년대 중반부터 1950년에 걸쳐 방송되었던 WXYZ 라디오 시리즈로 처음 등장한 '그린 호넷'은, 이후 1960년대 미국 ABC사의 TV시리즈로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또 하나의 히어로 시리즈였다. TV시리즈 '그린 호넷'은 범죄자를 가장한 영웅 그린 호넷과 그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동양인 케이토가 벌이는 악당들과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이 오래된 TV시리즈를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라면 당시 케이토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소룡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다시 헐리웃에서 영화화 된다는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의 감독으로 주성치가 물망에 올랐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이소룡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자주 표한 적이 있는 주성치였기에, '그린 호넷'과의 연결 고리도 어색하다기보다는 기대하는 바가 더 컸으며 또한 케이토 역할에 국내 배우 권상우가 언급되기도 해 또 다른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던 미셸 공드리 감독에게 맡겨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의외일 수 밖에는 없었던 이유는 미셸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등 다른 어떤 감독들보다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감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의외였던 것은 공드리 자신이 이 프로젝트에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스튜디오마저 공드리에게 '이런 주류 상업영화를 정말 하겠느냐?'라고 되물었을 정도라고 하니 제작자와 팬 모두에게 의외였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둘도 없는 팬이었지만 그가 '그린 호넷'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간 공드리의 작품들과 '그린 호넷'과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으며,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 보여주었던 감각들 역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떻게 소비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우려 했던 대로 미셸 공드리와 그린 호넷의 조합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미셸 공드리의 장점은 아날로그 한 것과 소박한 것,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을 무색하게 만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치장한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장점들이 제대로 발휘되기에 '그린 호넷'의 무대는 적절하지 않았으며 주연과 제작/각본을 맡은 세스 로건과의 궁합도 그리 어울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린 호넷'에서 미셸 공드리만큼 (혹은 더!)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라면 세스 로건을 들 수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는 주연인 그린 호넷 역할은 물론 제작과 각본에까지 참여하고 있어 사실상 세스 로건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부자이면서 별다른 정의감보다는 그저 질투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그린 호넷'이 된 브릿 리드 역할과 세스 로건의 캐릭터는 잘 맞아 떨어지는 편인데, 전반전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싱크로율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브릿 리드라는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조금은 부족한 점도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배트맨' 같은 히어로 물 까지는 아니더라도 '킥 애스'와 같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더 나아가 예전 TV시리즈를 즐겼던 세대들은 물론 세스 로건과 나란히 하는 최근 영화 팬들까지 고루 만족시킬 수 있었던 여지가 있었던 작품이었으나, 조금은 아쉬운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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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VC 포맷의 1080P 화질은 준수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장면이 많은 편인데 레퍼런스급 타이틀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암부 표현력은 보여주지 못하지만, 감상에 불편함을 줄 정도는 아니며 장면마다 조금씩 편차를 보여준다. 아주 쨍한 화질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화질이 될 수도 있겠는데, 미셸 공드리의 성향으로 미뤄봤을 때 칼 같은 선예도 보다는 아무래도 지금과도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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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자동차 추격 씬, 케이토의 화려한 무술 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격투 씬 그리고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주인공 '블랙 뷰티'가 만들어 낸 다양한 무기들이 활용되는 사운드를 차세대 포맷답게 수준급 음질을 들려준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는 볼거리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디테일 한 측면보다는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임팩트와 규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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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 로건과 프로듀서 그리고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참여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글자막이 지원되지 않는다. 세스 로건은 시종일관 그 특유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가는데, 이런 유쾌함을 국내 소비자들이 함께 즐길 수 없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Delete Scenes'에서는 총 9가지 삭제 장면이 수록되었는데 모두 본편과 동일한 HD퀄리티의 영상으로 수록되었다.

''Awesoom' Gag Reel'' 은 촬영장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아마도 다른 작품의 Gag Reel이었다면 조금은 흘려 보는 부가영상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세스 로건이 출연하다 보니 좀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고 결과도 여타 Gag Reel 보다는 더 재미있는 부가영상이었다. 의외였다면 미셸 공드리 감독의 '깨는' 모습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





''Trust Me' Director Michel Gondry'에서는 감독인 미셸 공드리가 이 작품을 처음 맡게 된 이유부터 그가 스튜디오에 먼저 보내온 테스트 격투 장면 영상과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그만의 재능이 발휘된 부분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미셸 공드리와 처음 작업해보는 헐리웃 스텝들이 처음에는 그가 의도하는 바와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이유도 모른 채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가 나중에 편집된 영상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아, 그리고 말미에 등장하는 공드리의 충격적인(?) 저질 유머도 인상적이었다.





'Writing The Green Hornet'에서는 각본과 총제작을 맡고 있는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린 호넷'을 쓰면서 고려했던 점들,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해 들려준다. 캐릭터와 캐스팅에 관한 뒷이야기 중 흥미로웠던 것은, 크리스토퍼 왈츠가 연기한 처드노프스키 역할이 본래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The Black Beauty : Rebirth of Cool'에서는 영화 속 만능 자동차인 블랙 뷰티의 상세한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으며, 'The Stunt Family Armstrong'에서는 '그린 호넷'의 스턴트를 맡고 있는 빅, 앤디, 스콧, 이렇게 3명의 암스트롱을 통해 영화 속 스턴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Finding Kato'에서는 케이토 역할을 맡은 주걸륜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예전 '닌자 어쌔신'의 스텝들이 아시아에서 슈퍼스타인 비의 인기에 놀랐던 것처럼, 감독 겸 배우 겸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슈퍼스타인 주걸륜의 면면을 조명하는 한 편, 주걸륜이 케이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들도 만나볼 수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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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2010)

메리를 둘러 싼 삶의 온도



영화를 보기 전 될 수 있으면 감독이나 배우 이상의 정보는 얻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는, 마이크 리의 신작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 역시 감독과 짐 브로드밴트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왠지 따스한 영화가 아닐까 하는,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삶에 대해 위로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보게 되었다. 아무리 영화에 대한 정보를 피하더라도 포스터를 본 이상,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통해 나만의 예상을 잠시하도 해보기 마련인데, 내게 있어 이 영화는 노년의 부부와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내 삶을 다시 한번 깊게 성찰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는 것은 맞았지만, 위로 받기 보다는 더 큰 외로움과 메마름을 겪었달까. 그리고나서 새삼 되내어보니 그의 전작 '해피 고 럭키' 역시 마냥 행복한 영화라기 보다는 그 안에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담은 작품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마이크 리에게 삶이란 결국 이런 깊이로 와닿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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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를 보고 떠올려 보았을 때는 평화로운 노년의 부부생활을 영유하고 있는 톰(짐 브로드벤트)과 제리(루스 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보자면 영화 포스터처럼 자신들이 깊게 뿌린 내린 나무라는 삶에 메리(레슬리 맨빌)와 아들 커플, 그리고 켄과 톰의 형에 관한 이야기가 가지처럼 엮여있고 새싹과 낙옆처럼 흘러가는 하나의 계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톰과 제리는 삶에 대해 통달해 누구든 감싸안아줄 것만 같은 인물들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이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이라 할 만큼, 지독하게 계산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들만의 시간에 원치 않는 이가 끼어드는 것을 불편해하고 참을성의 한계 역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누던 친구였지만, 메리가 자신들의 삶에 원치 않을 정도로 끼어들면서 결국 감싸안기 보다는 냉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데, 우리들의 삶에도 원치 않는 이들이 눈치 없이 껴들거나 굳이 내가 나서서 포용하기에는 벅찬 이들과의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경우를 떠올리게 된다.


즉 톰과 제리의 행동은 앞서 말했듯이 냉정하게 보았을 때 매몰찬 행동이라기 보다는 이해가 가는 한계 상황이랄까. 제 3자가 되어 그들에게 '왜 더 따듯하게 감싸주지 못했나'라고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마음으로 보았을 때 메리라는 인물은 분명 이들 삶에 쳐내고 싶은 가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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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크 리의 시선은 묘하게 메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이것이 감독의 의도한 바 중 하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계절'은 생각하면 할 수록 메리라는 인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작품인 것 같다. 메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삶과 주변은 고통과 외로움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톰과 제리 부부를 비롯한 타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의 행복이 결국 그런 행복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큰 외로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인생의 씁쓸함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지났지만 메리는 그대로였고, 변한 것은 메리를 둘러싼 주변의 공기 뿐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영화는 정확히 메리의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메리를 둘러싼 삶의 공기는 사계절의 온도와 같이 흘렀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영화가 쓸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건, 계절이라는 건 반복되기 때문이리라. 메리에게 다시 봄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 봄은 어차피 매서운 겨울을 위한, 삶이 주는 아주 조금의 배려일 뿐이라는 것이 더욱 안타깝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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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Night Fishing, 2010)

박찬욱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콜라보레이션



박찬욱 감독과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감독의 프로젝트 단편 영화 '파란만장'을 뒤늦게 IPTV를 통해 관람하였다. 공개 당시에 워낙에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화라는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단편영화였는데, 극장 상영 기회는 아쉽게 놓쳤지만 쿡TV를 통해 이제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었던 건 당연히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홍보의 포커스는 아이폰 4였지만 개인적으로 아이폰 4 촬영은 양념일 뿐, 단편이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이런 호기심 정도여서인지 오광록 외에 이정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게 된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단편 프로젝트 '파란만장'은, '박찬욱 + 아이폰 4' 라기 보다는 오히려 '박찬욱 + 어어부 프로젝트' 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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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래도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라는 트랜드와 맞물려, 박찬욱 같은 전문가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화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일까? 라는 궁금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런 측면에서 '파란만장'은 마치 '봐, 아이폰 4로 이런 장면도 찍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의도된 장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마케팅과 기술적 포인트에 맞춰 작품을 만들 박찬욱 감독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포인트를 포함하려고 의도한 부분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영화와 거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앵글을 비롯해, 아웃 포커싱이라던가 스마트폰이라면 아마도 취약점이 아닐까 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밤 장면, 더 나아가 수중 촬영에 이르기까지, 영화 촬영 카메라로서 아이폰 4가 갖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절히' 배치 했다는 점인데, 가끔 3D입체 영화의 경우 너무 기술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의도 때문에 본편과는 어긋날 정도의 연출이나 장면이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는 점에서, '파란만장'은 이런 기술적 가능성의 노출과 작품의 분위기가 잘 균형을 이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한 발 더 나아가 얘기하자면, 스폰서인 올레KT와 박찬욱 감독의 팬들을 모두 적당히 만족시키는 작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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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편이라는 특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은 단순히 장편에 비해 분량이 짧은 것이 아니라, 단편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호흡과 분위기가 있어서 매력적이기 마련인데, 이를 모를리 없는 박찬욱/박찬경 감독은 단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낚시터와 밤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설정, 그리고 굿을 벌이는 또 하나의 시퀀스는 기괴함과 모호함이 맞물려 관객들로 하여금 흥미를 자아내는 동시에 별다른 앞뒤 설명 없이도 어렵지 않게 단편 속 '순간'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오광록과 이정현 두 배우의 연기를 들 수 있을텐데, 이정현이 표현한 캐릭터의 경우 얼핏보면 극중 캐릭터라기 보다는 (특히 노래할 때) 가수 이정현의 모습이 겹쳐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이질감이 '파란만장'만의 아우라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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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작품의 기괴함과 단편 맛의 맛을 내는데 가장 인상적인 재료는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평소에도 아방가르드하고 독창적인 음악과 퍼포먼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파란만장'이 더 단편스럽도록 그리고 더 기괴한 리듬을 갖도록 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박찬욱 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던 어어부프로젝트는, '파란만장'을 통해 또 한번 다른 아티스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리듬과 공기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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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

제목이 8분이 아니라 소스코드인 이유



'더 문 (The Moon, 2009)'을 연출했던 던칸 존스의 신작 '소스 코드'를 보았다. 확실히 이 영화를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이크 질렌할이나 베라 파미가가 아니라 던칸 존스였다. '더 문'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재능과 SF적인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영화에 녹여내는 그의 방식은, '소스 코드 (Source Code)'라는 제목과 함께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을 선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에는 '인셉션 (Inception)'이 항상 함께 했었는데, 그 의도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셉션'을 거론해도 될 만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꿈 속의 꿈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그 꿈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확장시켰지만 결국 그 안에는 주인공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우 감성적인 러브 스토리이자 드라마였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소스 코드' 역시 평행우주론이라는 세계관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SF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접근법으로 풀어낸 같은 방법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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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카고행 기차안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주인공 콜터 (제이크 질렌할)는 열차 안에 있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심지어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 그리고 곧 열차는 폭발하고 또 한 번 영문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한 여성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열차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다시 열차로 돌아가야 하며, 8분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알 수 없는 말을 들은 채 다시 열차 속 시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스 코드'의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시간여행이나 평행우주에 관해 그렸던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설정들이 자주 등장하며, 꼭 이 설정만이 아니더라도 큐브에 갇혀 만져지지 않는 다른 이의 메시지에 의지하게 된다는 점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같은 시작점의 8분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은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을 연상시키게 하는데, 놓인 구체적인 상황만 다를 뿐 극중 제이크 질렌할이 처한 전체적인 상황은 빌 머레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익숙한 재료들과 설정들을 가지고 요리했지만, 던칸 존스의 이 완성된 요리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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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에는 더 강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줄기가 여럿 존재한다. 영문도 모른 채 소스 코드 속에서 '션'으로서 세상을 구해야만 하는 콜터의 이야기, 아프칸에서 헬기 조종을 했던 군인으로서 콜터의 이야기, 소스 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8분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티나 (미셸 모나한)를 비롯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스 코드'는 이들 이야기 중 하나를 선택해 끝까지가는 방법 대신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정쩡하고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이야기에 (설령 그것이 오버스럽더라도) 몰두해서 극한까지 몰아가는 편을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방법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요소를 전부 껴안으려고 하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경우와 비교하였을 때, 던칸 존스의 '소스 코드'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아쉬움 보다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상황에 바로 놓여져버린 주인공 콜터의 개인사는 아버지와의 짧은 인연 (정말 짧은) 정도만 묘사되고 있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짧은 아버지와의 연관관계 만으로도 후반부 콜터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에 아주 큰 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와 아버지 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콜터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화 한통으로 이런 여백을 모두 담아냈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의 숨은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른 SF영화였다면 아마도 가장 큰 이슈가 되었을 소스 코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소재 정도로만 등장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장황한 설명이나 상황 묘사 없이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역시 이 영화에 장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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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군의 주도로 진행되는 소스 코드 프로젝트의 배경에 깔린 음모라던지, 이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성공시키기 위해 암암리에 진행되는 일들, 더 나아가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면 D.J.카루소 감독의 '이글 아이 (Eagle Eye, 2008)' 같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시스템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의 개입은 소극적으로 하면서도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상상을 하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딱 그 정도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 여지와 소스 코드 프로젝트를 대변하는 것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굿 윈'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캐릭터의 묘한 비중이 '소스 코드'를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굿 윈은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닥터 러틀리지'와 주인공 콜터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서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고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연결고리의 훌륭함이 (캐릭터나 베라 파미가의 연기 모두) 이 영화가 더 매력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갖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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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의 제목은 '소스 코드'보다는 오히려 '8분'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독인 던칸 존스가 왜 '소스 코드'라고 제목을 가져갔을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전작 '더 문'을 떠올려 봤을 때, 이 작품이 진정한 SF영화로 인정 받는 이유는 SF적 설정이나 세계관을 부각시켜 드러내지 않고 완벽하게 녹여낸 채, 그 토대에서 자유롭게 다른 얘기를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소스 코드'는 평행우주라는 세계관을 그 중심에 대놓고 부각시키지는 않았지만, 그 기반 위에 완전히 녹아든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 같은 SF영화를 만들어 냈기에 '더 문'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평행우주가 도대체 뭐야?' '그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과연 다른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것을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SF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닐까? 물론 이 영화가 과학적으로 완벽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는 작은 의문들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도 세계관을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SF영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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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영화의 제목이 '8분'이었다면 아마도 그 마지막 키스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났어야 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이라고 느꼈었다). 여기서 만약 영화가 끝났다면 감동과 여운은 더 했겠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평행우주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한 부분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끝났더라도 평행우주에 관한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던칸 존스는 자신이 결국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를 위해 감동적인 엔딩을 과감히 포기했고, 또 다른 감동의 엔딩을 선사했다. 말초적으로는 앞선 장면이 훨씬 더 감동적이긴 하지만, 영화가 선택한 엔딩도 평행우주론을 또 한 번 새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엔딩을 다 갖을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매력적이라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1. 미리 알고 가긴 했지만, 영화가 끝나자마자 평행우주론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신 홍주희씨 덕분에 아쉬움이 들더군요. 의역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주석을 번역자가 인장처럼 남기는 것은 과한 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의 전례가 있었죠). 설령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평행우주론'에 대해 몰랐다고해도 모르는 채로 보고 이해한 것이 잘못이 아닐텐데, 마치 '자 이런거였어'라고 가르치는 듯한 주석은 앞으로도 없는게 더 나을 것 같네요.

2. 저는 왜 닥터 러틀리지 역할을 맡은 제프리 라이트를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스 큐브로 생각했던 걸까요. 심지어 제프리 라이트가 이전에 출연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아이스 큐브라고 생각하며 봤던 작품이 많네요 -_-;;

3. 결국 가장 불쌍한건 '숀'. 숀은 누가 챙겨주나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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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 천둥의 신 (Thor, 2011)
대서사와 셰익스피어를 입은 마블 히어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총집합하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또 다른 멤버 '토르 (Thor)'를 보았다. 토르가 영화로 만나볼 수 있었던 다른 마블의 히어로들과 다른 점이라면, '스파이더 맨' '헐크' '아이언 맨' 등의 경우 후천적으로 사고나 우연한 계기를 통해 슈퍼 파워를 얻고 히어로가 되는 것에 (혹은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것에) 반해, 신화에 근본을 두고 있는 토르의 경우 이미 파워를 갖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작점을 달리 한다. 이 시작 점이 다른 것은 특히 영화화에서 큰 차이점을 갖게 되었는데, 일반적인 히어로물이 쉽게 말해 영화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직 멀쩡한'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토르'는 오히려 그 반대로 초중반 토르가 힘을 잃게 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 (아스가르드와 인간 세상)가 교차된다는 점에서도 이전의 마블 히어로들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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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점은 '토르'는 이미 대중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대 그리스 희곡 및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토르'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셰익스피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제인과 쉴드 (S.H.I.E.L.D)로 대변되는 현재의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상당히 고전적인 서사와 갈등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현재의 이야기와 교차하지 않았다면 '타이탄' 같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토르'는 왕과 왕자, 아버지와 아들의 관한 이야기에 히어로 물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 때문에 연출을 캐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배우인 동시에 감독이자 극작가인,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캐네스 브래너 만큼 '토르'가 다른 히어로들과 차별되는 점을 잘 표현해낼 이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캐네스 브래너가 '토르'를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셰익스피어 적인 측면이야 걱정할 바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히어로물이자 블록버스터 연출로서의 캐네스 브래너는 의문 부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갖는 한계 내에서 이 정도 결과물이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만족스럽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 액션 전문가가 시나리오까지 맡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완성도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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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가 갖는 한계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블의 다른 히어로들처럼 소개가 필요한 첫 작품이었다는 공통의 한계와 다른 히어로와는 다르게 탄생 과정이 필요없기 때문에 극적인 공감대를 얻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그 만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토르가 지구로 추방 당한 뒤 겪는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그가 진정한 히어로로서 거듭나는 탄생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사실 빠른 전개 탓에 적극적인 공감대를 얻기에는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제인 (나탈리 포트만)과의 로맨스도 브루스 배너나 피터 파커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토르'는 그 자체로도 소개가 주목적인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 나올 '어벤져스'의 큰 그림으로 보자면 더더욱 '토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의미가 컸기에, 이 한 편만으로 평가 받기에는 조금 억울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토르'의 속편이 나온다거나 '어벤져스'에서는 좀 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상태라(이미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소개를 마쳤으니 말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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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쩔 수 없는 한계들 때문이었는지, 극 중에서 가장 비중있게 느껴진 캐릭터는 주인공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가 아니라 동생 '로키 (톰 히들스톤)'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극중 토르는 쿨하고 우직한 매력은 있지만 (마치 사조영웅전의 곽정과도 같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내적인 갈등이라던가 감정의 동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 비해 로키라는 캐릭터는 그 탄생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실상 영화에 주요 갈등 및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로서, 캐네스 브래너가 그린 셰익스피어적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스포일러 시작)
로키가 극의 주된 갈등을 쥐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악한이라기 보다는 동정에서 이해될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야욕보다도 그저 아버지에게 용기있고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별다른 갈등구조가 없던 토르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고, 더 나아가 엔딩 쿠키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그의 활약이 만약 계속된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그의 행동으로 인한 스토리에 좀 더 깊이를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듯 하다. 아주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영화 '토르'는 토르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로키로 인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스포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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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마블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또 다른 색깔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캐네스 브래너의 '토르'는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에 우리에게 마침내 선보일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또 한 번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1. '아이언맨 2'의 쿠키 장면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묠니르 장면은 '토르'에서 그대로 이어지는데, 이것 외에도 '토르'에는 '어벤져스' 떡밥이 제법 많이 등장하고 있는 편이에요. 동료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라던가, 토니 스타크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그렇고.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더군요. 이래서 마블 코믹스에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아요. 연계되는 부분이 깊다보니 말이죠.


2. 오딘의 아들을 '오딘손'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토르의 풀네임이 Thor Odinson 이네요 ^^;


3. 토르가 지구에 와서 겪는 코믹한 장면들에서는 의외로(?) '엑셀런트 어드벤쳐'가 떠오르더군요. 소크라테스나 나폴레옹이 쇼핑몰 가던 장면이 겹쳐져서 ㅎㅎ


4. 짧은 분량이었지만 역시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었던 '호크아이'의 출연도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호크아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터라 보는 순간 100%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레미 레너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봤기에 비중있는 캐릭터라는건 알 수 있었죠 ㅎ


5. 그의 반해 아사노 타다노부의 활용은 아쉬운 부분이었어요. 아사노 타다노부가 이런 작품(비중)으로 헐리웃을 노크할 배우는 아닌데, 그냥 들러리 정도로 묘사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군요.


6. 요툰하임의 분위기나 이곳 캐릭터들의 모습 그리고 쿠키장면에서 등장한 큐브까지, 얼핏 '트랜스포머'가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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