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


여기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한 남자가 있다. 아프리카 수단의 황무지 땅 톤즈에서 슈바이처 아니 '졸리' 신부님으로 더 익숙했던 이태석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땅에서 힘없고 병든 자들을 돕는 한 신부의 이야기라고 하면, 감동은 있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되는 그런 얘기가 아닐까 하고 그냥 넘겨 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울지마, 톤즈'의 이야기는 이런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누구의 희생이 더 고귀하고, 누구의 인생이 더 아름다웠다고 비교 우위로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비슷한 감동 스토리를 초월하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이태석 신부가 걸어온 길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감동과 더불어 자책감을 넘어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삶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감동 실화'같은 수식어 정도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간 이 작품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울지마, 톤즈'는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던 이태석 신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고 바로 수단 톤즈로 여정을 옮긴다. 내레이션의 말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일생을 특별히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톤즈라는 곳에 실정을 알리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었으며 단지 이태석 신부라는 사람의 삶은 어떠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 그렇다면 그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보기로 한 시도로 진행되었다. 그의 죽음을 작품 서두에 배치한 것은 '울지마, 톤즈'가 하고자 하는 말이 눈물에 가려 희석되길 바라지 않는 감독의 바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삶을 일부러 극적으로 구성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따라가고,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그가 아닌 진짜 이태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울지마, 톤즈'가 인상적인 또 다른 지점은 종교적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했던 한 신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 너무나도 충실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이 작품에서 '신부'라는 것은 단지 호칭이자 직업일 뿐 그 어떤 종교적인 색깔도 드리우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태석 신부는 톤즈에 가서 이들의 현실을 알게 된 뒤 '만약 예수님이 톤즈에 오셨다면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니면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 먼저 지으셨을것 같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석 신부 역시 종교인으로서 이들에게 다가갔다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톤즈를 바라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기도 하고.




Open Case

의미있는 작품이라 제작사에서 패키지 디자인에 큰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아웃 케이스 제작에 사용된 종이 재질이나 케이스 내 내용물들 모두 최고급품을 사용해 제작되었다.





DVD Menu





DVD Quality


KBS한국방송에서 기획, 제작된 '울지마, 톤즈'는 화질이나 음질로 말하는 작품은 아니기에 스펙에 대한 평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거들어보면, 이태석 신부의 주변인들의 인터뷰 영상은 대부분 고화질로 촬영된 터라 추후 블루레이에서도 손색이 없을 화질을 수록하고 있고, 톤즈에서의 영상은 이태석 신부 생전 영상의 경우 풀스크린과 와이드스크린을 오가고 있지만 4:3으로 촬영된 영상들도 화질이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이금희 씨의 차분한 내레이션이 주를 이루는 돌비디지털 2.0 채널의 사운드 역시, 멀티 채널이 그리 필요치 않은 작품이라 2.0채널 만으로도 충분히 사운드를 전달하고 있다.





2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DVD는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을 두 번째 디스크에는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작품 외의 부가영상이 극 영화에 비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L.A에 위치한 CGV에서 상영회를 가졌던 영상과 작품을 보고 나온 L.A 한인 관객들의 반응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관객 30만 돌파를 기념하는 오찬 영상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밖에 짧은 예고편과 영등위 시상식 영상 그리고 예고편과 하이라이트가 수록되었다.




[총평] '울지마, 톤즈'는 감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자제하여 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갔음에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를 수 밖에는 없었던 강한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故 이태석 신부는 '왜 오지인 톤즈까지 가야만 했나?'라는 세상이 던진 질문들에 끝까지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하기 보단 그저 톤즈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더 줄 수 있을 까라는 질문에 더욱 충실한, 그 누구보다 충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 것만으로도 이 작품 '울지마, 톤즈'는 존재의 의미가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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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티 (Machete, 2010)

일부러 그 수준으로 만든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쿠엔틴 타란티노, 이 두 사람이 쿵짝쿵짝 거리며 만들었던 '그라인드 하우스 (Grindhouse,2007)'는 이들의 팬들은 물론 B무비의 감성을 그리워 했던 영화 팬들에게도 몹시 반길 만한 작품이었다.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로 이뤄진 이 B무비는 사실 보는 사람도 보는 사람이지만, 로드리게즈와 타란티노가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좋아했을까? 라는 것이 떠올라 더 훈훈했던 작품이기도 했는데, 이 '그라인드 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셰티 (Machete)'였다. 이미 가짜 예고편 만으로도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은 결국 거짓말처럼 정말 장편 영화화 되었고,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B무비 아닌 B무비로 탄생했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셰티'의 예고편은 적어도 '플래닛 테러' 정도를 예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만화처럼 두려움을 모르고 다양한 각도로 펼쳐지는 칼부림과 그로 인해 터져 나오는 선혈과 어긋나는 관절들, 헐벗은 미녀들과 후끈한 영상은 '야, 이거 플래닛 테러처럼 또 한 번 신나게 즐길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마셰티'는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작품이었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이런 류의 예고편들이 매번 그렇듯 조각을 전체처럼 포장한 그럴 듯한 예고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셰티'가 마음에 안들었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라인드 하우스' 특히 '플래닛 테러'는 B급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로드리게즈가 마음 껏 펼쳐본, 즉 갈때까지 가 본 작품이었다. 그 절제 없는 막장 에너지에  관객은 환호했고 터져나오는 폭소와 키득거림이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즐길 수 있게 될 줄이야!'라며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셰티'가 갖고 있는 성격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뭐 '플래닛 테러' 스타일을 기대하게 한 예고편 때문에 많이들 실망할 수도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이 영화에 미지근함과 촌스러울 정도로 전형적인 구조와 장면, 연출들은 말그대로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셰티'는 일부러 촌스럽고 미지근한 전개와 장면을 연출하려고 디테일하게 애쓴 작품이다. 사실 그 표면적인 열기는 달랐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느꼈을 로드리게즈의 희열은 아마도 '플래닛 테러' 못지 않았으리라 예상된다. 로드리게즈는 '마셰티'의 플롯도 화면 연출도 자신이 동경하는 B무비의 사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마셰티'가 답습하고 있는 B무비의 전형은 괴상하고 유치하리만큼 이질적인 소재와 캐릭터(플래닛 테러)도, 어린 시절 TV시리즈와 영화에서  보았던 올드한 향취(데쓰 프루프)도 아닌 바로 관객에게 외면 당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그 뻔뻔함과 촌스러움이었다.

언제부턴가 B무비라고 하면 대중적인 영화와는 조금 차별되는 감성과 소재를 다룬 저예산 영화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우리가 B무비라고 기억하는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매끄러움이나 세련됨, 영화적 재미 부분들은 상당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종의 악취미가 없다면 보기 힘든 작품들이 많았는데, 로드리게즈는 '마셰티'를 통해 바로 이런 B무비만의 성격(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갖게 된)을 다시금 불러오고자 했던 것이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일부러 가져다 놓은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 정색을 하고 있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니 트레조가 연기한 마셰티 역할이야 캐릭터 자체가 상반대는 대사 하나 만으로도 코믹스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경우라 많이들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멀쩡하게 정색하고 촌스러움의 전형을 연기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제시카 알바가 연기한 사타나 라고 할 수 있겠다. 요원인 동시에 전직 요원 출신인 마셰티에게 빠져 결국 그와 함께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사타나 캐릭터는, 이 전형적인 스토리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텐데, 패러디 영화에서 처럼 일부러 오버하지 않아도 제시카 알바가 이 캐릭터에 충실하면 충실할 수록 더욱 키득거릴 수 밖에는 없었다.

참 전형적인 포즈로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와 알몸으로 샤워를 하며 고뇌에 사로 잡히는 모습은 (비록 제시카 알바의 몸매에 눈을 빼앗겨 장면의 정서를 놓쳐버릴 확률이 높긴 하지만) 이 영화가 B무비를 지향하는 B무비이기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로드리게즈가 추억을 갖고 동경하는 B무비에서 이러한 장면들은 웃길려고 연출되었다기 보다는, 그 촌스러움에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장면이었다는 얘기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결국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들과 자신이 동경했던 B무비의 정취를 가져다가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격한 표현들로 풀어내긴 했지만, '킬 빌'처럼 오마주 그 자체의 영화는 물론, '오스틴 파워'처럼 패러디 영화도 아닌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단점들까지 그대로 다 갖고 있을 정도로 정말 '딱 그 수준'의 영화를 만든 터라, 앞서 언급했던 갖가지 양념들을 제외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이건 좀 심심한데?'라는 평을 듣기에 딱 좋은 영화가 되었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 '마셰티'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종착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즉, 반대로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플래닛 테러'나 '데쓰 프루프'가 더욱 좋긴 했지만, '마셰티'는 '마셰티'대로의 정도를 지키고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갖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이것은 절제였다. '플래닛 테러'를 만든 로드리게즈였다면 '마셰티'에서도 근질근질 할 정도로 참기 힘든 장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창자 탈출 씬을 제외한다면 거의 정도를 지키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극적 욕망을 꾹꾹 눌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절제의 영화라고는 부를 수가 없는 것이, 로드리게즈는 B무비의 이런 단점들까지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매니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셰티'는 다시 말하면 참느라 힘들었던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00%를 발휘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 Troublemaker Studios. All rights reserved


1. 로드리게즈는 이번에도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그와 함께 이름을 올린 에단 마니퀴스(Ethan Maniquis)는 '플래닛 테러' '씬 시티' 등의 편집을 맡았던 인물이네요.

2. 이번 작품 역시 로드리게즈는 1인 다역을 맡고 있습니다. 연출, 제작, 편집, 비주얼 이펙트, 음악 등. 

3. 그의 작품들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도 계속됩니다. 톰 사비니, 치치 마린 같은 배우들은 그의 작품에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배우들로서, 이번 작품에서 역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이 외에 마치 실제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게도 했던 린제이 로한과 또 여전사이긴 했지만 그래도 완소 미셸 로드리게즈, 이 작품에 딱 맞아 떨어진 캐스팅 중 하나였던 스티븐 시걸과 돈 존슨 까지. 로버트 드니로 전편의 브루스 윌리스 같은 비중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4.  이 영화의 마지막엔 놀랍게도 마셰티 속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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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부활을 알린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가 그러했고, 디즈니의 전작 '마법에 걸린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라푼젤 (Tangled)'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부담을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아낸 가장 좋은 결과물이었다. 사실 '라푼젤'에 와서야 '디즈니는 진작 이래야 했다 '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것이, 디즈니는 이 정도의 임팩트를 주지는 못했었지만 근래 작품들을 통해 꾸준히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었기 때문이다. '볼트'의 경우 디즈니가 전통적으로 지향하던 바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작품이었다면 극영화였던 '마법의 걸린 사랑'이야말로, '이것이 디즈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나서 선보인 신작 '라푼젤'.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디즈니의 노력이 궤도에 올라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접점을 맞은 작품이 바로 '라푼젤'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말해 픽사가 주도권을 쥐게 된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픽사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아닌 (사실 이제는 디즈니와 픽사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라푼젤'만 해도 executive producer로 픽사의 수장인 존 라세터가 참여하고 있으며, 아무리 전세가 역전되었다고는 하나 디즈니가 픽사를 따라간다는 것은 픽사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개발하는 길을 택했고, 그리하여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즈니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생각해볼 것도 없이 뮤지컬 장르를 배경으로 한 유치하리만큼 순수한 세계관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디즈니의 전성기에는 누가 뭐래도 뮤지컬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라푼젤'에서 디즈니는 '마법에 걸린 사랑'에 이어 자신들의 가장 큰 장점인 환상적인 뮤지컬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확실히 예전보다 뮤지컬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감안한다면 변화를 걱정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이 마법의 주문은 21세기에도 다시 통한다는 것을 이 작품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처음 라푼젤의 솔로곡 'When Will My Life Begin'과 마더 고델의 캐릭터와 노래가 돋보이는 곡 'Mother Knows Best'의 경우, 영화 시작 관객들에게 '라푼젤은 이미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클래식 뮤지컬 영화야'라는 디즈니의 야심마저 느껴질 정도다. 예전 '알라딘'이나 '인어공주' 등을 보며 느꼈던 향수를 가득 담고 있었던 초반 뮤지컬 시퀀스 덕에 한결 '라푼젤'에 빠져들기가 쉬웠다고나 할까.




뮤지컬 시퀀스 '엄마가 제일 잘 알아 (Mother Knows Best)'는 개인적으로 가장 디즈니답고 클래식해서 마음에 쏙 드는 장면이었다.


3D라는 기술을 적극 도입하기는 했지만 '라푼젤'은 어디까지나 클래식한 디즈니의 전형적 애니메이션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요즘같이 다양하고 소박한 소재들이 넘쳐나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왕국과 공주, 마녀와 공주를 구하는 남자가 등장하는 구조는, 영화를 보지 않고 줄거리만 본다면 굳이 작품을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3D 효과를 비롯한 기술적 발전을 과도하게 발견할 수도 없지만, '라푼젤'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즉, '라푼젤'은 본연의 것에 가장 충실하되 그 주변의 부수적인 것들이 중심을 해치지 않을 정도에서 최대치를 제공하고 있는 아름다운 균형 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디즈니의 기술적 진보에 사뭇 놀라기도 했었다.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분명 최고의 기술 수준임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 기술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물과 피부 그리고 털의 묘사 장면에서도 한 차원 발전한 디즈니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댐이 부서져 물이 쏟아지고, 그 물에 젖어 동굴 안에 갇히게 된 캐릭터들의 묘사 장면은 아마도 애니메이터들이 가장 뿌듯해 할만한 시퀀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3D 아이맥스의 경우도 기술과 작품이 가장 조화로운 균형을 이룬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 3D 입체효과를 관객들로 하여금 꼭 인지시키기 위해 부담스러운 시퀀스를 넣지 않고도 관객들이 '황홀한 3D 경험을 했다'라고 느낄 만큼 균형을 잘 맞추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정말 오랜만에 3D 영화를 보면서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느낀 장면이 있었을 만큼 (실제로 최근 3D 영화 관람 분위기와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 속으로 손을 뻗기도 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입체효과를 내고 있다.






사실 어린 시절 보았던 디즈니 작품들을 어른이 되어서 떠올려 보았을 때 가장 문제라고, 특히 아이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디즈니가 권선징악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권선징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디즈니가 악당을 묘사하는 방식 때문이었는데, 예쁘고 잘 생긴 캐릭터는 주인공이고 우락부락하고 덩치 큰 캐릭터는 악당이거나 공룡이 나오는 작품을 예로 들면 초식공룡은 착하고 육식공룡은 나쁘다 라는 식의 겉모습과 외모만을 통한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주기에 교육적으로는 좋지 못한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디즈니의 전통적인 방식을 보기 좋게 꼬집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드림웍스의 '슈렉' 이었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이고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슈렉 1편의 결말이 디즈니의 경우였다면 피오나가 마법에 풀려 다시 아름다운 외모의 공주로 돌아가는 '행복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라푼젤'은 이 같은 전통적인 선입견에서 긍정적으로 변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극 중반 악당처럼 험상 굳은 도둑들이 잔뜩 등장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외모의 선입견으로 한정 짓지 않고 그 나름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후반부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역할을 부여 받아 중요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냥 '거친 외모와 덩치의 캐릭터들이 사실 나쁘지 만은 않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을 초반에 복선으로 배치한 뒤 후반부에 이들이 그 꿈으로 인해 역할을 부여 받게 되는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또 한 명의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마더 고델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미묘하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는데, 그저 착한 주인공을 유혹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할 만큼 (사실은 그다지 동정할 만한 부분이 없었음에도), 그녀가 퇴장할 때 전통적인 권선징악 구조의 통쾌함이 들지 않았다. 이건 부연설명으로도 썼던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를 확인해보면 동정할 만한 점이 없었음에도 악당이 악당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라푼젤'은 마지막에 가서도 자신들의 있는 그대로를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 놓는다. '이러이러하여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에 대해 굳이 변화하려 하지 않고, 내레이션을 통해 '여러분들도 다들 예상하는 바와 같이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이것이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이야기 방식이다 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라푼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뻔한 이야기에 감동받고 3D를 비롯해 우수한 기술적 효과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디즈니가 가장 디즈니다운 방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을 때문이었다. 디즈니가 어느 날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면 디즈니의 클래식한 세계를 좋아하지 않던 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는 '라푼젤'의 경우처럼 클래식한 디즈니의 방식을 조금씩 승화시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디즈니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더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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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1080p 풀HD 화질은 역시 실사 영화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화질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랜만에 '접대용' 타이틀이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라푼젤' 블루레이의 화질이 전혀 결점 없는 완벽한 화질이라고 까진 말하기 어렵지만, 유저들이 눈으로 체감하는 화질 측면에서는 그 어떤 타이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수준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라푼젤'에는 블루레이 화질의 우수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대표 요소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는데, 일단 라푼젤의 긴 머리 결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라푼젤의 머리는 단순히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움직임이 많아 그 때마다 탄력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만 했는데, 확실히 이런 디테일은 극장에서보다도 오히려 블루레이를 통해 감상했을 때 더 도드라지게 느껴진다. 화질 측면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볼 만한 장면이라면 라푼젤과 플린이 병사들에게 쫓기다가 댐이 터져 동굴 속에 갇히게 되는 장면인데, 동굴에 물이 차 두 주인공이 흠뻑 젖은 이 장면은 화질은 물론 영상기술의 최고 수준을 만끽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에 젖은 라푼젤의 머리와 얼굴 피부 그리고 여기에 조명이 어떻게 반사되는지에 대한 묘사는 블루레이의 우수한 화질로 십분 확인할 수 있다.





외곽선의 표현력과 디테일이 워낙 좋기 때문에 3D버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따듯한 느낌의 색감과 파스텔 톤을 갖고 있는 영상이기에 날카로운 측면이 조금 부족한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색감과 기법의 차이일 뿐 뭉개지거나 디테일이 떨어지는 부분은 없으니 안심해도 되겠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7.1의 사운드 역시 접대용 타이틀로 손색이 없다. 고전 뮤지컬 장르답게 노래와 대사를 모두 풍부하게 들려주고 있으며, 액션이 가미된 추격 씬에서는 스펙터클 한 사운드까지 들려준다. 또한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사운드와 활발한 채널 분리도를 들려주는데 뮤지컬 시퀀스에서도 배경의 디테일 한 사운드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말 더빙은 돌비디지털 5.1채널로 수록되었는데, 국내 성우들의 연기 역시 추천할 만한 수준이다. 전 연령대가 감상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우리말 더빙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대사 처리는 물론 삽입곡들까지 소화해 내는 수준이 오리지널에 뒤진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극장에서는 오리지널 더빙 버전만 감상했지만 블루레이로는 우리말 더빙을 더 자주 감상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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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Features

첫 번째로 만나볼 부가영상은 '삭제 장면'인데 총 3가지의 삭제 장면을 수록하고 있다. 각 삭제 장면마다 공동감독인 네이선 그레노와 바이런 하워드의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져 해당 장면이 최종 본에서 빠지게 된 이유와 이 삭제 장면이 갖는 의미와 의도를 알기 쉽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두 번째로 만나볼 부가영상은 '오리지널 스토리북 오프닝'인데, 최종 본에 수록된 오프닝과는 달리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스토리 북 방식의 오프닝을 만나볼 수 있다. '라푼젤' 역시 본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오프닝을 제작하였으나, 여기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살짝 변형해보자는 취지아래, 플린이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의 오프닝이 최종 본에 수록되게 되었다. 총 2가지 버전의 오리지널 스토리북 오프닝을 만나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라푼젤'은 디즈니의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의미 깊은 작품인데, 이런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부가영상이 바로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카운트다운'이다. 50편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흥겨운 배경음악과 함께 짧게 나마 확인해 볼 수 있다.





'추가된 노래'에서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라푼젤의 솔로곡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될까'와 마더 고델의 캐릭터가 돋보이는 곡 '엄마가 제일 잘 알아'의 확장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두 곡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지라, 확장된 버전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체크 포인트라 하겠다.






'라푼젤 : 동화만들기'는 가장 일반적인 메이킹에 가까운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주인공 라푼젤과 플린 라이더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맨디 무어와 재커리 리바이가 등장해 작품과 관련된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13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퀴즈 형식의 문제를 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다.







'티몬과 품바의 3D BLU-RAY의 발견'은 3D 블루레이 영상과 그 시스템 환경에 대한 일종이 홍보 영상으로서, '라이온 킹'의 감초 캐릭터인 티몬과 품바의 설명으로 진행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총평] 디즈니의 '라푼젤'은 가장 디즈니다운 방식으로 멋지게 다시 성공한 작품인 동시에, 레퍼런스 급의 블루레이 타이틀은 오랜만에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접대용 타이틀로서 손색이 없는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더 많은 주옥 같은 스크린 샷을 잔뜩 캡쳐해 두고도 지면상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니, 얼른 소장하셔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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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7

타이타닉



'눈물나는 그 장면' 그 일곱 번째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을 꺼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서울극장가서 함께 보고 흠뻑 감동받은 것은 물론, 영화 말미 케이트 윈슬렛의 간절한 외침이었던 'Come Back~'을 목놓아 쉰소리로 따라하기도 했었다.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비극을 다룬 영화라 말미에 가서는 가슴 찡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흠칫 눈물을 훔치곤 하는 내게 가장 슬프게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케이트 윈슬렛)가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이었다.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배가 침몰하고 정신없이 탈출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음악을 연주하던 악사들은, '이제 아무도 듣지 않으니 그만 연주하지'라는 식의 말을 남기고는 서로 헤어지려고 하지만, 홀로 남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다시 조용히 'Nearer My God To Thee'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돌아가려던 다른 악사들도 다시 돌아와 이 곡을 함께 연주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음악의 힘이랄까. 이 장면 전까지는 비극을 볼거리와 액션 위주로 다루었다면, 이 장면에서 부터는 감정적인 것으로 그리기 시작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타이타닉'을 떠올려 보면 수 많은 명장면들 가운데서도 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오늘 밤, 자네들과 함께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었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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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렛 미고 (Never Let Me Go, 2010)

외로운 영혼의 나직한 노래



가즈오 이시구의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고 (Never Let Me Go)'는, 인간 복제나 장기 기증 등에 대한 배경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나 'A.I' 등 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네버 렛 미고'는 이 설정을 제외한다면 거의 SF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미가 짙게 깔린 작품인 동시에, 반대로 그래서 더 SF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진면목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네버 렛 미고'가 관객에게 던지는 화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SF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데,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의 존엄성이나 정체성 등에 대해 옳은가 그른가를 묻는 것보다는,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고 '종결 (Completion)'되어지는 운명에 힘겹게 순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교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성에 대해 그리고 영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끔 한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네버 렛 미고'에 전반적으로 드리워져 있는 정서는 체념과 순응 그리고 나직한 슬픔이다. 극 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알고 나서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겪기도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과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경계를 넘는 사투를 벌이는 것 보다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순응의 범주 안에서 그 누구도 강하게 탓하지 못하는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이런 주인공들의 여정이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구성적 측면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음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읽어내려가는 캐시 (캐리 멀리건)에게 애잔함이 드는 동시에 동정이 아닌 같은 존재로서의 슬픔마저 느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이 소멸되어 가는 이들의 운명에 빗대어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를 생각하게 끔 하는게 아니라 더 큰 범주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과 슬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원작은 읽어보지 못해 영화와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의 존재론 적인 화두보다는 오히려 세 남녀의 미묘한 삼각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던,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 것은 결과적으로 더 큰 인상을 주었다. 결국 방법론의 차이 정도일 수도 있지만, 마크 로마넥이 선택한 이 방식은 이 작품을 SF라는 장르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고, 인간과 인간을 위한 존재에 대한 영화가 아닌 그냥 '우리'에 관한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앞서 운명에 순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 순응이 극복이나 반항보다 인상적인 이유에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 번째는 개인적으로 결핍과 장애 혹은 경계 아래에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인데, 이런 것들을 반드시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견디는 과정에 더 포커스를 둔 방향성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만드는 타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환경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극복하도록 강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캐시의 1인칭 입장에 가깝게 그리려고 한 영화의 과정이 더욱 인상적이게 느껴졌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에서 언급했던 그 과정, 바로 견디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 중 캐시의 대사를 보면 이런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와 캐시가 말하고자 했던 점은 '우리는 결국 너희와 같다'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너희보다 더 인간적이다'라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담담히 '우리는 결국 삶을 끝까지 살아냈다'라는 것이었다. 정확히 알지 못했고 모두를 이해할 수도 없지만 '삶을 끝까지 살아냈다'라는 캐시의 이 말은 인간들을 한탄하는 메시지보다도,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존재가 되는 이야기보다도 더 강한 인상과 무게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참고로 표현상 구분했을 뿐이지, 저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간 아닌 존재가 아니라 그냥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어요;). 결국 이런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여정은 단순히 답답한 순응이라기 보다는 내적인 치열함의 또 다른 방향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캐시의 말처럼 그 누구도 이해했다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하나의 소중한 '삶'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무언가 먹먹함과 쓸쓸함 그리고 자기연민까지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영화로 기억되기보다는 음악이나 한 폭의 그림으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하구요.

2. 캐시 역할의 캐리 멀리건은 정말 캐릭터와 잘 어울리더군요. 아역을 맡은 배우도 멀리건과 많이 닮아있어서 보는 순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구요. 전 '언 애듀케이션'보다 '네버 렛 미고'의 캐리 멀리건이 더 좋았네요.

3. 짧은 출연이지만 샐리 호킨스와 샬롯 램플링도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인상 깊었네요. 샐리 호킨스는 '해피 고 럭키' 이후로 계속 이렇게 조연으로 등장하는 작품들만 보게 되는 것 같네요;

4. 기회가 된다면 가즈오 이시구의 원작 소설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영화 속에 나오는 저런 바닷가에 앉아서 보면 더 확확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네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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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Pool, 2009)
꿈만 같은 치유의 슬로우 무비



태국의 '치앙마이'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 한 여자가 도착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이 여자 사요는 이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인 쿄코의 딸이다. 손님 없는 한적한 게스트 하우스에는 일을 도와주는 이치오와 가끔 놀러오는 키쿠코 그리고 어린 태국 소년인 비이가 함께 살고 있다. 

오모리 미카 감독의 '수영장 (Pool, 2009)'의 이야기 구조는 사실 위의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미약하나마 갈등의 구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카모메 식당'과 같은 선상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슬로우 무비'의 전형을 맛볼 수 있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슬로우 무비가 담고 있는 '치유'의 과정은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리만큼의 여유로움을 통해 절로 아무는 과정이라고나할까, 아니 더 나아가 갈등 극복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유 그 자체가 주인공인, 그래서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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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에서는 자주 소소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는 하지만 '수영장'은 그 가운데서 가장 느린 영화 중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지루하리만큼' 여유로운 영화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영화들이 너무 자극적이기만 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매번 영화를 통해 '무언가 더! 더!' 만을 바라며 오감을 자극하는 민감한 것들에만 반응하느라 자칫 잃어버릴 수 있었던 혹은 누군가는 이미 잃어버렸던 느린 템포의 여유를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얘기다.

확실히 이런 '슬로우 무비'를 지향하는 작품들은 극중 캐릭터들 간에 감정을 주고 받는 것 보다,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감정이 더 도드라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게스트 하우스에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들 믿기 힘들 정도의 여유를 한껏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현재가 마냥 평온한 것 만은 아니다. 영화는 그런 배경을 아주 살짝 드러내는 것에 그치는데, 이 작은 단서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따라 스스로를 온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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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의 가능성을 돕는 장치 중 첫 번째는 바로 태국 '치앙마이'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그 자체를 들 수 있겠다. 손님 하나 없고 자연과 맞닿아 있는 이 게스트 하우스의 정경은 그 것 만으로도 여유가 가득 느껴질 만큼 평화롭고 심지어 고요함까지 느껴진다. 리뷰의 부제목을 '좋은 아침의 영화'라고 쓰려고 했을 만큼 '수영장'에는 아침인사 (ぉけょぅ)가 자주 등장한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여러 번 등장할 만큼, 이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얘기하면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인사말이 형식적인 인사로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좋은 아침'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이렇게 만든 요리를 둘러 앉아 맛보고, 근처에 살고 있는 고양이와 개들과 자연스럽게 공생하며, 수영장에 함께 모여 말없이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평화로움. 삶에 지쳐있는 관객들에게 이런 여유로움은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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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이다. '카모메 식당' '안경' '심야식당'의 음식을 담당했던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가 만든 요리들은 전작들처럼 그 자체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이 느리고 여유있는 삶을 더욱 동경하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로서 작용한다. 단순한 '음식'이 아닌 '요리'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순간을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영화에서 이이지마 나미의 요리는 그 과정 없이도 '슬로우 무비'를 대변하는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수영장'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음악, 노래다. 영화에는 두 번 정도 인물들이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쿄코가 혼자 기타치며 노래하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수영장을 배경으로 쿄코와 사요, 이치오, 비이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두 번째 장면을 내 인생의 장면 중 한 컷으로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이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아름다운 장면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도 인물들의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지만, 비이가 몸을 살랑살랑 흔드는 작은 움직임과 넷이서 입을 맞춰 함께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라는 장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리고 여유라는 것이 어떤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이를 더 완벽한 하나로 만들어주는 음악. 이 장면은 완벽에 가깝다.
 

ⓒ 조제.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수영장'은 보는 내내 평화로움이, 보고나서는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 되어다. 답답하고 빠르게만 치닫는 삶 속에서 훌쩍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마다, 이 영화의 여유로움과 아침의 공기를 떠올려보게 될 것 같다. 아마 그것 만으로도 내 삶은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1. 물론 그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 땐, 무리해서라도 치앙마이로 떠날 수도 있죠;;
2. 아니면 이 유튜브 영상을 무한반복 하거나요 ^^;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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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조제 에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블로그 리뉴얼을 맞아 오랜만에 영화 장면 맞추기 퀴즈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문제 들어갑니다!

일단 난이도는 조금 조절하긴 했는데 맞추시는거 봐서 혹시 너무 어렵다 싶으면 힌트라도 추가하죠~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영화의 정답을 맞춘 분께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레이어 케이크'와 덴젤 워싱턴, 존 트라볼타 주연의 '펠햄 123' 블루레이를 드립니다 (모두 개봉품이에요 ^^;)

최우선은 가장 많은 작품을 맞춰주신 분이며, 맞추신 작품 숫자가 동일할 때에는 먼저 댓글 달아주신 분께 드립니다~ 참고로 모든 스크린샷은 블루레이 스크린샷 입니다.

아, 그리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가운데 티스토리 초대장 원하시는 분들 계시면, 정답과 함께 메일주소 남겨주시면 초대장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00장 넘게 있으니 이건 여유있게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초대장의 경우 일일히 댓글은 못 달아 들이지만 확인하는대로 최대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다른 건 쓰지는 않았지만 보내드리게 될 때 무언가 덤으로 더 드릴지도 ^^;;

자, 그럼 시작합니다!


1.


2. 해프닝


3.


4. 500일의 썸머


5.


6. 칠드런 오브 맨


7.


8.


9. 이바라드의 시간


10.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비극으로 희망을 얘기한 로드 무비


흔히들 여성영화를 꼽거나 로드 무비를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리들리 스콧의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일 것이다.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 두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와 영화사에 남을 마지막 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 작품은, 사실은 전형적인 로드 무비 혹은 버디 무비의 전개를 따르고 있지만 두 명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개봉 당시와 지금까지도 특별한 인상을 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2011년 지금에 와서 다시 본 '델마와 루이스'는 델마와 루이스가 여성이어서 느껴지는 바는 조금 덜했지만, 1991년 당시만 하더라도 스튜디오에서는 주인공인 두 여성이 총을 들고 강도 짓을 벌이고 엔딩 마저도 유쾌하지 않은 이 영화를 결코 반기지 않았었고, 이 영화로 인해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는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까지 등장하는 등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작품이었다.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여성의 남성살해에 관한 것이었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당시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떠올려 보게 된다


'델마와 루이스' 역시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많은 것이 변경되었는데,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가 직접 연출을 맡고 싶어했으나 스튜디오 측은 리들리 스콧을 제안, 코우리도 이를 받아들여 최종적으로 그가 연출을 맡게 되었으며, 델마와 루이스 역에도 처음에는 미쉘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를 염두에 두었었고 이후에는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도 물망에 올랐으나 제작이 지연되면서 결국 모두 이 프로젝트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당시 이름있는 배우이기는 했으나 슈퍼스타는 아니었던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캐스팅되게 되었다. 이런 뒷이야기를 듣고 나니 물망에 올랐던 다른 배우들이 출연했더라면 어땠을까 궁금증이 들게 되는데, 미쉘 파이퍼와 조디 포스터는 조금 겹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골디 혼과 메릴 스트립이라면 지금의 델마와 루이스 만큼이나 멋진 영화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 싶다 (참고로 이 둘은 '델마와 루이스' 대신 '죽어야 사는 여자'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두 주연배우 외에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J.D'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브래드 피트는 이 역할로 인해 단숨에 가장 섹시한 남자로 주목 받게 되었다.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J.D'역할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의 경우 이 작품을 실질적인 헐리웃 데뷔작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지금 보면 그 풋풋함과 어린 목소리에 몸서리칠 정도로 간드러지지만 델마가 넋을 놓고 빠져들 만한 매력은 남자가 봐도 느껴질 정도니 역시 브래드 피트는 브래드 피트다. 그의 최근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델마와 루이스' 시절의 풋풋한 모습을 잠시나마 즐길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CG없는 진짜 그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로 'J.D'역할은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았으나 결국 브래드 피트가 배역을 따낸 경우.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 조차 브래드 피트를 처음 보는 순간 완벽한 'J.D'다 라며 이 캐스팅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 외에 그간 악역을 주로 맡았던 하비 케이틀이 이 작품에서는 선한 역을 맡은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두 주인공이 타는 자동차라고 할 수 있을 텐데 1966년산 초록색 썬더버드 (Thunderbird)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 영화가 클래식이 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고 있다.

'델마와 루이스'가 진정한 로드 무비로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정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얘기하는 것처럼 '델마와 루이스'의 이야기는 사실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결국 자신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은 세상을 등지고 떠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당시의 관객들도 그렇고 지금까지 이 영화를 기억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결코 비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희망을 그린 작품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비극으로서 희망을 이야기한 진정한 로드 무비이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도 강한 인상을 남긴 마지막 장면은 마치 '내일을 향해 쏴라'의 부치와 선댄스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은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 이 비극을 비극 아닌 희망으로서 받아들이도록 하는 영화적 경험을 가능케 했다.


Blu-ray : Menu



메뉴 디자인은 폭스 타이틀의 기본적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으며, 모두 한글화 되어 있다.


Blu-ray : Pictures Quality

MPEG-4 ACV 포맷의 1080p 화질은 작품의 제작연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장면에 따라 조금의 편차는 있는 편이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최근 개봉 작에 가까운 우수한 화질을 보여주기도 하며, 블루레이 특유의 날카로운 맛도 확인할 수 있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깊은 블랙 레벨로 인해 전체적으로 색감이 잘 살아나고 있으며, 뭉개져 버릴 수 있는 장면들에서도 선예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강렬한 태양아래 노출된 배우들의 얼굴 피부 표현에 있어서도 블루레이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모피어스' 로렌스 피쉬번 정도의 감흥은 아니지만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의 생얼에 가까운 피부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사운드 적인 측면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DTS-HD M.A 5.1채널의 사운드는 제법 임펙트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한스 짐머의 스코어를 비롯해, 후반 부 추격장면에서는 각종 효과음들과 썬더버드와 여러 대의 경찰차가 만들어 내는 소리들이 삽입된 배경음악과도 잘 분리되어 수록되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을 감상할 때 가끔씩 영어 외에 다른 언어로 진행되는 더빙들을 확인해볼 경우가 있는데,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스페인어나 헝가리어, 타이어 등은 모두 해당 언어로만 수록이 되었지만 러시아어의 경우 영어 더빙 위에 그대로 겹쳐져 두 가지 언어가 모두 들린다는 점이다. 뭐 러시아어 더빙으로 이 작품을 볼 이는 없을 테지만.



Blu-ray : Special Features

'델마와 루이스' 부가영상 가운데 가장 먼저 손꼽을 만한 것이라면 역시 음성해설을 들 수 있을 텐데, 리들리 스콧 단독 음성해설과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그리고 시나리오를 쓴 캘리 코우리가 함께한 음성해설이 수록되었다. 리들리 스콧의 음성해설의 경우 역시나 그답게 장면 장면에 대한 디테일 한 설명은 물론이고, 델마와 루이스 각 캐릭터에 대한 부가 설명과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사실은 더 큰 의미가 있는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빼놓지 않고 들려준다. 확실히 이 음성해설이 있어서 좀 더 타이틀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허나 이와는 반대로 두 번째 음성해설은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음성해설도 그렇지만 이 외에 수록된 부가영상들 역시 DVD에 수록된 것과 동일한 내용과 화질(SD)로 수록되었다. '델마와 루이스' DVD를 감상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화질과는 상관없이,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과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메이킹 영상인 'Thelma and Louise: The Last Journey''를 보길 권한다. 또한 15개가 넘는 삭제 & 확장 장면을 통해 이 장면들이 있었다면 더 풍부한 작품이 되었을지 아니면 더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작품이 되었을 지를 직접 판단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특히 확장된 엔딩 씬의 경우 감독을 비롯해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영화 속에 수록된 엔딩이 훨씬 더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총평] '델마와 루이스'는 버디 무비, 로드 무비 그리고 여성 영화로서 영화사에 큰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장르 영화의 법칙에 매우 충실하여 장르 영화로서도 인정 받지만, 그 주인공이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 영화로 오히려 더 오래 회자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보게 된 '델마와 루이스'는, 더 이상 여성 영화로 불리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작품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이 작품을 처음 기획했던 사람들이 바랬던 진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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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告白, Confessions, 2010)
지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삶에 대한 고백


'불량공주 모모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을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문제작 '고백 (告白, Confessions)'을았다. 이미 전작들을 통해 독특한 색감과 강렬한 스타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의 신작이기에 기대를 가졌던 것은 물론,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동명 소설이 담고 있는 주제 자체가 화제였기 때문에 더 큰 기대를,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까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충격을 그대로 몸으로 다 흡수할 수 있었는데, 2000년작 '배틀로얄'을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 하지만 결국 그 속에 담긴 사회적인 문제나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시선 때문에 더 강렬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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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날 교사 '유코 (마츠 다카코)'가 자신의 어린 딸을 죽인 살인자가 자신의 반 학생들 가운데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 '고백'은 총 5명의 다섯 가지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유코의 고백이 가장 강렬한 것이 사실이다. 학생에게 깍득이 존댓말로 대하는 유코의 성격답게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차갑고 냉철하게 조목조목 설명해 가는 이 첫 번째 고백은, 이 영화가 '누가 죽였느냐'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왜 죽였느냐', 더 나아가 그 '왜'를 둘러싼 이야기들과 이 '왜'를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한다. 

영화 구성의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첫 번째 유코의 고백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어지는 다른 이들의 고백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살인 장면이나 자극적인 장면들보다도 선생인 유코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때 벌어지는 교내의 상황들이 훨씬 더 지옥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교권이 무너지고 학급내 아이들 사이에서도 친구 관계가 더 이상 우정으로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거대한 하나의 권력 집합체로 연결되어 있는, 그래서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다수의 권력에 위배되는가 아닌가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이 중학교 한 학급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모습 중 하나였다. 하나같이 중학생의 풋풋함을 갖고 있고 꾸미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아직 어린 생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학생들로 캐스팅한 것 역시 이런 효과를 더욱 배가 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소년, 소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는 이들이 살고 있는,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이 지옥같은 곳을 묘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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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아이들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포스러운 아이들만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아이들이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어른들과 사회의 잘못을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아이들 못지 않게 악마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얼마전 개봉했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잘 표현되었듯이, 큰 상처를 받고 지독한 복수를 계획한 피해자는 그 복수가 진행될 수록 본래 가해자 보다도 더한 악마같은 모습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고백'에서 복수를 차분하게 진행해 가는 유코의 모습에서는 어쩌면 아이들보다도 더한 악마같은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나오키의 어머니의 행동과 말 역시 인정에 기인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이기적인 것에 근거했기에 또 하나의 지옥의 조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코의 후임으로 온 선생 베르테르의 캐릭터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지에 가까운 그의 캐릭터는, 비록 알지 못하고 행한 행동이나 말이라도 상대에게 죄를 범할 수 있으며, 더 잘 알려고 하지 못했거나 결국 이해하지 못한 것도 역시 어른의 죄악에 가깝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다. 더불어 교실과 학교 옥상에서 그리고 강당에서 조회 시간에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선생님(어른들)들의 모습들 역시, 방관 자체가 또 다른 가해임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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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동요될 수 있는 부분들을 거의 다 제거했다는 점이다. 즉,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는 없었던 불우한 환경 속에 자란 아이라던가, 유코의 복수가 잔혹하기는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 아이의 죽음 앞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의 행동으로 더 묘사한다거나, 슈야와 나오키, 미즈키의 이야기 모두 그럴 수 있는 여지는 갖고 있지만 결코 이 부분을 부각해 감정적으로 공감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장치라면 영상미와 삽입곡 정도 일듯). 사실 이 점이 가장 이 영화에서 논란이 되는 근본의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속에서 흔히 지옥이나 지옥같은 상황을 그릴 때에는 관객이 어느 한 곳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을 두어 연민을 느끼거나,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게 끔 만드는 것이 일반적일테지만, 이 영화 '고백'은 관객이 쉽게 공감하고 마음 줄 곳을 주지 않고 그냥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을 그대로 경험토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논란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확실히 '고백'은 탈출구를 만들어 놓지 않는 구조나 다름없다. 자신도 모르게 지옥에 빠져든 사람, 지옥에 빠져들 수 밖에는 없었던 사람, 이왕 지옥에 빠져들 수 밖에는 없겠다싶어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한 사람, 자신이 지금 지옥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 모두에게 탈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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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화려한 색감을 대폭 줄이는 대신 차가운 톤의 컬러와 영상 그리고 클로즈 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고백'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이 작품이 마치 프랭크 밀러나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과도 같은 영상과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레이션과 슬로우 모션, 강한 콘트라스트와 타이트한 영상 그리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름다운 하늘들과 Radiohead를 비롯한 감성적인 삽입곡들까지. 감독의 전작들이 마치 형형색색의 동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고백'은 잿빛의 그래픽 노블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화려한 색의 마술사에 가까웠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 만든 흑백에 가까운 잿빛 영화을 본다는 의미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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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고백'이 담고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를 들어 이 작품이 사회적으로 가당한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왜' 이런 지옥같은 고백을 하려고 했는가에 대한 것과 이 지옥 속에서 서로 뒤엉킨 이들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떠올려보는 편이 더 약이 될 듯 하다. 


1.
  

톰 요크의 외롭고 건조한 목소리는 영화의 매마른 감성과 참 잘 어울리더군요. 진짜 Radiohead 노래가 나올 땐 '왓치맨'의 한 장면 같았어요;;


2.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블루레이 국내 출시가 확정된 상황에서 이 작품도 꼭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워낙에 영상이 한 몫 하는 작품이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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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 애프터 (Hereafter, 2010)
죽음이 세상을 사는 방식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히어 애프터 (Hearafter)'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단, 좀 더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간 수 많은 드라마와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던 이스트우드였지만 죽음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히어 애프터'는 한 편으론 상당히 밋밋하다. 클래이막스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울컥하는 것에 가깝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승전결에 따른 절정으로 보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영화가 마지막으로 향할 수록,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부터 그 깊이가 더 느껴지는 깊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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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거대한 쓰나미에 휩싸인 여주인공 '마리 (세실 드 프랑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또한 입양되지 않고 약물중독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도 꺼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후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제는 더상 이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려하는 '조지 (맷 데이먼)'의 이야기도 시작한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하나의 사건 혹은 결국 연관되고 있다는 (연관된다는) 이야기는 흡사 '바벨'과 '아모레스 페로스'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작품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히어 애프터'는 인간들 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과 죽음, 더나아가 죽음이라는 것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아주 천천히 들려준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 그러니까 죽은 자를 그리워해 그들과 단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산 자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영화화 되어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히어 애프터'도 겉모양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쌍둥이 형을 잃고 내내 그리워하며 형과 단 한 번이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는 뻔히 알면서도 눈물이 날 수 밖에는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분명 이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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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영화가 다소 밋밋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히어 애프터'는 죽음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세 가지의 경우를 모두 등장시켰다. 사후세계를 볼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와 사후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난 뒤 인생이 바뀐 한 여자,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형제를 잃은 한 소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의 이야기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처럼 하나로 완벽하게 만나지도 않고, 각자 절정에 이르지도 않는다. 무언가 더 드라마틱한 전개와 결말은 없지만, '히어 애프터'는 이 세 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결국 또 한 번 새삼스레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한 편, '어떨까?'라는 단순한 호기심 대신 무언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흥을 살며시 안겨준다.  

솔직히 '히어 애프터'를 글로 표현하기는 참 모호한 부분들이 너무 많다. 아니, 글로 표현할 만한 요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무언가가 분명 가슴에 남도록 한 작품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인정일지, 삶에 대한 위로일지 아니면 그 모두를 아우르는 위로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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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출 외에 음악도 맡고 있는데 (이 작품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확실히 이스트우드의 음악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 이 음악이 영화가 주는 담담함과 위로를 더 배가 시켜주는 것 같네요.

2.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도 출연하는데, '스파이더맨 3'에 비하면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그 어느 영화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더군요;;

3. 데릭 제코비는 본인 역할로 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극중 맷 데이먼이 자기 전에 항상 듣는 오디오 북의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그였죠. 본인 역할로 출연했다는 것처럼, 데릭 제코비는 실제로 영국이 나은 명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오디오 나레이션 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죠. 최근 '킹스 스피치'에서 주교 역할로도 출연했었구요.

4. 참고로 영화 초반에 나오는 대형 쓰나미 장면 때문에 일본에서는 개봉이 취소되었죠. 저도 그 장면을 보는데 결코 영화로만 느껴지지 않아 더 안타까웠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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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일 그가 떠난 이후로 내게 있어 4월 1일은 단 한 번도 만우절인 적이 없었다. 그가 떠나고서야 새삼 느끼게 된 사실이었지만, 장국영은 성룡, 주윤발 등과 함께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스타였고, 영화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 더 정이 들게 된 진정한 배우였다. 좋아했던 스타들 중에 먼저 이별하게 된 이들이 꼭 그 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장국영 과의 이별은 아직까지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몹시 아려온다.

그가 떠난지 벌써 8년이나 지났다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매년 4월 1일엔 그의 작품 DVD 중 하나를 골라 보곤 했는데, 오늘 밤에는 '아비정전'이나 '백발마녀전'을 봐야겠다. 아니면 내내 해맑게 웃고 장난스런 표정짓던 '동성성취'도 보고 싶다. '천녀유혼'의 영채신도 그립고.

어디에 있든 그 곳에서 편히 쉬길.
아....그리워라...장국영..




그가 떠난 이후로 '당년정' 만큼이나 더 자주 듣게 된 '월량대표아적심'.
등려군이 부른 원곡보다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블루레이로 다시 태어난 '렛 미 인'

스웨덴 영화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이 블루레이로 발매되었다. 2009년 4월에 DP공식 리뷰를 통해 DVD 리뷰를 제공하기도 했었는데, 당시만 해도 과연 이 작품을 블루레이로 만나볼 수 있을까 기대조차 못했던 것을 떠올려보자면, 이번 블루레이 출시 역시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DVD 리뷰를 통해 대부분 정리했었으므로 이에 대한 내용은 지난 리뷰로 대신하려 한다.


렛미인 DVD 리뷰 바로 가기




여기서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한 가지만 보태보자면, 마치 '빌리 엘리어트'가 처음 볼 때는 몰랐으나 시간이 흘러 보면 볼수록 '빌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빌리 아버지'의 이야기로 공감하여 보게 되는 것처럼, '렛 미 인' 역시 처음 몇 번은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에 대해 집중 또 집중하며 보게 되지만 보면 볼수록 이엘리와 함께 하는 그 남자의 이야기에 마음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스칼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를 이 남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깊은 인상을 준다. 확실히 이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전에는 그가 이엘리를 향하는 시선이 마치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은 걱정의 시선으로만 받아들여졌으나, 여기에 더 집중하고 보니 이는 걱정보다는 질투에 가까운 시선이었으며, 그가 이엘리는 바라보는 평소의 시선 역시 오스칼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엘리를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는 그의 모습에서는 간절함과 더불어, 영화의 주인공인 오스칼의 모습과 겹쳐 생각해볼 수 있는 점들이 많아 여러모로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Blu-ray 메뉴





심플한 메뉴 구성이지만,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눈발이 날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인트로를 구성하는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메뉴 디자인으로서도 매우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붉은 빛으로 표현되는 영화 제목 역시 심플함과 깔끔한 인상을 준다.


Blu-ray : Picture Quality

VC-1 코덱을 사용한 1080P의 화질은 무척 만족스럽다. '렛 미 인'은 극장 개봉 당시에도 국내에 들어온 필름 프린트의 상태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어서 극장에서도 최상의 환경에서 관람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번 블루레이의 화질은 DVD의 화질은 물론, 극장에서 보았던 영상의 화질을 훨씬 상회하는 최고 수준의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몇몇 장면은 그 칼 같이 살아있는 디테일 덕에 장면을 새롭게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단 간단하게 DVD와의 화질 차이부터 눈으로 확인해보도록 하자.




사실 DVD의 화질도 DVD로서는 결코 나쁘지 않은 준수한 화질이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블루레이 앞에서는 비교 대상은 못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위의 스크린샷 비교만으로는 DVD와의 차이만 확인 될 뿐 블루레이 화질의 우수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아래의 스크린샷에서는 좀 더 블루레이만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하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극장 필름 프린트 때문 만이 아니라, '렛 미 인'을 보면서 영상의 디테일한 부분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블루레이에서는 이런 디테일한 부분들이 날카롭게 살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정서 중에 하나는 스웨덴의 겨울 그리고 그 겨울이 품고 있는 차가운 공기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이런 차가운 공기를 표현해 내기에 블루레이의 날카로운 선예도는 무엇보다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 블루레이에서 비로소 살아난 날카로움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기와 계절을 더욱 차갑고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차세대 사운드에 걸 맞는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는데, 사운드 역시 극장이나 DVD를 통해 감상할 때는 미처 다 느낄 수 없었던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스코어 측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놓치기 쉬운 작은 소리들의 디테일 역시 놓치지 않고 있음을 조금만 귀를 기울여 보면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운드 측면에서는 크게 메리트를 느껴보지 못한 작품이었는데, 이번 블루레이 감상을 통해 이렇게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사운드가 담겨 있음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블루레이에 수록된 부가영상은 DVD에 수록된 것과 동일하다. 내용뿐 아니라 화질 역시 SD 포맷으로 수록되었지만, 국내 버전만 SD로 수록된 것은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겠다.




[총평] '렛 미 인' 블루레이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화질과 음질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타이틀이었다. 실제로 이 작품에게 있어서 화질과 음질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게 중요할까 라고 까지 생각했던 작품이었는데, 막상 차세대의 그것을 접하고 보니 결코 기술이 해가 되기는커녕 큰 플러스가 되는 경우였다. 부디 블루레이의 화질과 음질로 다시 살아난 '렛 미 인'의 감성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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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6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언제부턴가 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는 얘기를 할 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버린다는 얘기를 할 때 꼭 예로 드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였다.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당연히 제이미 벨이 연기한 빌리에게 동화되어,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억눌린 한 소년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함께 웃고 울었었는데, 언제인가 시간이 흘러 다시 보게 된 '빌리 엘리어트'는 분명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처음 볼 때는 몰랐던 빌리 아버지의 현실이 와닿았기 때문이었는데, 아들을 위해 오랫동안 지켜온 신념을 꺽어야만 했던 그래서 동료들과 자신의 또 다른 아들에게마저 등을 돌릴 것을 각오해야만 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어쩌면 이 영화가 말하려는 본래의 가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하는 것은 탄광촌에서 자라나 남자로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춤과 발레를 꿈꾸던 빌리가 아니라, 평생을 몸에 밴 신념과 가치관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던 빌리 아버지와 그의 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땐 어려서인지 전혀 이들의 마음이 보이질 않았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결국 이 작품을 아버지를 위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 Working Title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래서 이 장면.
빌리의 아버지가 큰 결심을 하고 동료들을 배신하고서 빌리의 형에게 '우리는 끝이 났지만, 그래도 빌리에게는 길을 내어주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울부 짖으며 말하는 이 장면은, 정말로 말할 수 없이 눈물 겹다. 영화를 처음부터 보지 않고 이 장면을 바로 선택하여 보더라도 눈물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이 장면이 갖고 있는 그 삶의 무게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동안 이 장면을 보고 마냥 울기만 했었다면, 이제는 이 장면을 보며 '가끔은 포기하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다'라는 점을 되새기곤 한다. 

아...하지만 아버지와 빌리의 형이 서로를 꼭 움켜 안고 있는 저 등만 봐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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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사 선생님 (Dear Doctor, 2009)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에 대하여


'유레루'를 연출했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2009년 작 '우리 의사 선생님 (Dear Doctor)'을 뒤늦게야 DVD로 감상하였다. 전작을 통해 제법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렸음에도 이 작품은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갖질 못했었는데, 보고나니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로 채워져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 잔잔함과 소소함 속에 깊은 여운을 주는, 그냥 놓치기에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DVD를 선물 받은 것도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이번 주말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고이 모셔져 있던 DVD를 꺼내 감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의사 선생님'이라는 제목을 처음보았을 때 느꼈던 선입관은 너무 착하기만 한 영화는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착하기만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과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 영화의 대부분을 예상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닐까 하는 오해 때문이었다. 이 글에 사용된 포스터말고 대표적으로 사용된 포스터에는 의사선생님 역할을 맡은 쇼후쿠테이 츠루베가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 한 가득 머금고 있는 장면이 사용되어서 더욱 그랬는지르겠는데, 그런 반면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무언가 외로워 보이면서도 의문을 담고 있는 듯한 표정과 분위기를 풍기는 위의 포스터가 오히려 좀 더 작품의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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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서로 정반대에서 시작해 접점에 이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사실 다른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인데 시간의 흐름과 풀어가는 방식에 따라 갈린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마치 신처럼 추앙받은 의사 선생님을 소개하는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서는 그 의사 선생님이 의문스럽게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미래의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 놓는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사건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었던 더 깊은 가치와 정서에 주목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 특히 이 작품 같은 경우는 이렇듯 존경 받는 의사 선생님이 왜 그렇게 된 걸까 라는 의문을 처음부터 갖고 보게 되기 때문에, 반대로 처음부터 디테일한 감정 표현과 캐릭터 묘사에도 주목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보게 된 '우리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진정성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진정(眞情)에 관한,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그리고 가짜보다 더 가짜 같은 진짜들의 이야기. 쉽게 (조금은 경박하게) 풀어내자면 이런데,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짜 가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면허증이나 자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고 받아들이냐에 관한 이야기. 영화는 이 측면에서 비록 자격은 갖지 못했지만 마음가짐만은 그 어떤 진짜보다도 진정을 갖고 있던 한 남자와 이 남자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듯 했지만 사실은 그저 자격과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끌어 안고 있었던 작은 사회에 관한 양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후자의 이야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마냥 착하고 따스한 영화로 보긴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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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나온 대사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는 극중 의약품 판매상으로 나왔던 카가와 테루유키의 말이었는데, 약을 팔면서 한 번도 환자의 병을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대사였다. 즉 무엇이든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초심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너무 직업이 되어버려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일들에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대사이자,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담아내려한 진정에 대한 묘사이기도 했다. 인간이란 기계와는 달라서 처음과 끝이 똑같기 어렵고 무슨 일이든 내성이 생기면서 안좋은 쪽으로 익숙해지기도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들이 초심을 잃는 속도, 내성이 생기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오로지 그 마음 가짐만으로 이미 내성이 생겨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한참을 우뚝 솟았던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그가 진짜였냐 가짜였냐를 떠나서 수 많은 이미 갖은 자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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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골든 슬럼버'나 '디스트릭트 9'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딱딱하고 정형화된 수사의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판타지와도 같은 순간으로 따듯한 미소를 짓게 하는 감독의 연출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아, 엔딩 크래딧에 흐르던 More Rhythm의 '웃음꽃'의 가사가 주던 여운 역시...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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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5
업 (UP)


어쩌다보니 2011년 들어서는 처음 맞게 된 '눈물나는 그 장면'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오늘의 작품은 픽사의 2009년작 '업 (Up)'이다. 픽사의 작품들은 실사 영화와 비교해봐도 눈물 겨운 장면들이 정말 많은데, 아니 꼭 하나씩은 있는데 '업'이 조금 특별한 점이라면 영화의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인트로라고 할 수 있는 초반에 관객을 눈물 펑펑 흘리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처 감정잡고 울 준비조차 되기 전에 눈물을 정말 펑펑 흘리게 만들었던 작품으로서 '업'이 주었던 인상은 정말 대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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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반 장면이 놀라웠던 또 다른 점은 어린아이 시절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인생을 고작 몇분 안에 스틸 컷처럼 묘사했을 뿐인데도, 마치 이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까지를 2시간 정도 분량으로 그린 영화에서나 느꼈을 법한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시퀀스에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존재하지 않는데도 시간의 변화와 칼 할아버지의 표정 변화만으로 그냥 슬픈 정도가 아니라 펑펑 울릴 정도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사실은 새삼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업' 역시 스크린샷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 짓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픽사의 매직이 아무렇지도 않게 극대화되어서 표현된 가장 좋은 시퀀스 중 하나였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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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 2010)
절제하는 치유의 영화


이번 아카데미의 주요 부분을 석권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 (The King's Speech)'를 이제야 만나보게 되었다.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 그리고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는 말더듬이 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몇가지 예상되는 수순들이 있었다. 실제로 '킹스 스피치'는 대부분의 수순을 그대로 밟아가지만 감정적으로 과잉되거나 신파로 충분히 그려질 수 있는 부분들을 과감히 절제하고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꾹꾹 눌러담는 영국 영화의 위엄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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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의 미덕이라면 감정적으로도 그렇고 이야기 구성면에서도 곁가지들을 과감히 다 쳐내고 조지 6세(콜린 퍼스)의 치유의 영화에만 집중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인 배경 측면에서도 왕위에 대한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 등 디테일하게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이런 부분들을 그냥 배경처럼 은은히 배치하고 핵심적인 이야기는 매우 소소한 것을 내세움으로 인해 오히려 배경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때와 맘먹는 효과를 일으켰다. 즉, 위의 이야기들을 배경 정도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것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이 영화에서 매우 큰 차별점이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말더듬이를 비롯해 결핍을 겪어온 주인공의 배경이 왕자(왕)라는 점에서 핵심의 깊이를 더해준다. 다시말해 뉴스 아나운서를 꿈꾸는 주인공이라던지, 연설이 생활인 정치인이었어도 이 이야기는 충분히 동일한 이야기였을테지만, 실제 왕이었던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과 갈등에 깊이가 더해졌고 그를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라이오넬 (제프리 러쉬)의 캐릭터 역시 상대적인 깊이를 더 풍부하게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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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치유에 관한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치유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의 면면에 모두 충실한 작품이었다. 말더듬이 왕으로 수많은 연설들 앞에서 매번 긴장하고 힘들어 해야만 했던 조지 6세의 심정은 콜린 퍼스의 완벽한 연기로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물론 말더듬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연기한 장점도 분명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콜린 퍼스가 진정으로 빛나는 장면들은 말을 할 때가 (더듬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떠나서)아니라 눈빛과 표정으로 말할 때 였다. 

사실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좀 더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바로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 때문이었다. 일단 제프리 러쉬가 연기한 라이오넬의 경우는 조지 6세에 버금가는 자신 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을텐데 (초반 연극 오디션을 보는 장면을 보고서는 그의 이야기가 제법 이어질 줄로만 알았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좋았지만 라이오넬의 이야기는 조금은 더 비중을 두었더라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즉, 대부분의 치유의 영화가 그렇듯이 일방적인 치유가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되는 동시에 그 상대마저 그 과정 속에서 자연 치유가 되는 구조말이다. 이랬더라면 좀 더 감정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톰 후퍼는 어찌나 절제하는지 이 마저도 허락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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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를 묘사하는 섬세함에 있어서 돋보였던 캐릭터는 헬레나 본햄 카터가 연기한 왕비 캐릭터였다. 라이오넬의 이야기가 절제되어 조금은 아쉬운 경우였다면, 왕비야 말로 절제를 통해 완벽하게 묘사된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안쓰러워 하며 고치려고 자신의 일처럼 매달렸던 사람의 심정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보통 더 감정적인 영화였다면 마지막에 가서 펑펑 눈물을 흘렸을테지만 오히려 꾹꾹 가슴으로 삼키는 그녀의 캐릭터 묘사에 오히려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다. 헬레나 본햄 카터가 영화 내내 보여준 따듯한 시선은 이 영화의 가장 보석같은 부분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킹스 스피치'는 요 근래 오랜만에 보는 1.85:1 화면비의 영화였는데, 그래서인지 상하의 높이를 적극 활용한 장면들과 공간의 여백을 활용한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가 위엄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물론 왕과 그 주변을 다룬 탓도 있겠지만 이를 묘사할 때 상하의 높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앵글과 화면비가 준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스코프가 좌우 넓이를 통해 스케일을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1.85:1 화면비에서는 상하의 높이를 통해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는데, '킹스 스피치'는 이런 위압감과 스케일을 전달하는 것 외에 여백을 강조한 앵글을 통해 (초반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대화 시퀀스와 캐릭터 묘사에 있어 독특한 리듬감을 주고 있다. 또한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도 미술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라이오넬의 방과 왕실의 대부분의 공간들처럼 천정이 높은 공간을 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한껏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공간이 주는 미적 효과를 십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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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는 흥미로운 소재(실화)를 가지고 보편적인 흐름에 충실한 평범한 이야기였지만, 자칫 감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었던 부분들을 과감할 정도로 배제하고 또 절제함으로서 깔끔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오히려 감정적으로도 동요될 만큼 위엄있는 작품이었다.


1. 티모시 스펄은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직책으로 나온 영화가 아니었나 싶네요. 매번 쥐(?)나 하인 등으로 단골 출연했던 그였는데, 무려 윈스턴 처칠이라니!!

2. 짧은 분량이었지만 우리의 덤블도어 마이클 겜본의 포스는 역시 무시할 수 없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 놓고 보니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마이클 겜본과 제프리 러쉬가 몹시 닮아보이더군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프리 러쉬의 1인 2역인가 싶었었다는.

3. 수 많은 조연들 가운데 가장 놀랐던 캐릭터는 역시 가이 피어스였습니다. '더 로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깜짝 등장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멀쩡하게(?) 출연하기는 했지만 왕년에 그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확실히 많이 늙어버린 그의 모습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질 않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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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결코 작지 않은 사건

DP와 블루레이 시장에 대해



요 근래 DVD프라임(http://dvdprime.cultureland.co.kr)의 블루레이 게시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었다. 커뮤니티의 특성상 종종 논란거리로 인해 뜨거워지는 일은 많았지만, 이번의 열기는 논란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같이 해보자는 동의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DVD프라임 (이하 DP)은 영화나 DVD/BD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글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커뮤니티로서의 강한 애착이 있는 곳이라 벌써 1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활동 외에 영광스럽게도 블루레이나 DVD의 대한 리뷰를 회원들에게 먼저 소개하는 필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어 더욱 애착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사실 아는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국내 2차 영상물 시장은 정말 거의 죽다시피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DVD의 부흥기 시절에는 국내 제작사들도 많았고 해외 제작사들도 국내에서 다양한 런칭 행사, 출시 때마다 호텔에서 기념 행사를 하는 등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분명 당시 DVD시장은 가능성이 보였던 시장이었다. 이제와 떠올려보면 이 때 제작사들에 출시 기념 행사에 초대받아 고급스런 음식 얻어먹고 두 손에는 다양한 기념품도 한아름 안고 돌아오던 시절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질 정도다. 어쨋든 그 이후는 다들 잘 아시다시피 불법다운로드와 IPTV가 대중화 되면서 (불법이 대중화 되었다니 쓰면서도 우습다) 2차 영상물 시장은 빠르게 축소되어 갔고 DVD시절이 막을 내리고 블루레이 시대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마지막 힘을 내보려고 했으나 현실은 대부분의 직배사들이 우리나라를 떠났으며, 국내 제작사들도 대부분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을 하였고 그 많던 DVD쇼핑몰들도 대형몰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사라졌으며, 얼마남지 않은 사용자들만 이런 시장의 피해를 온몸으로 맞닥들이며 해외로 해외로 눈을 돌리며 영어 교육열을 상승시키는 웃지 못할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어쨋든 이 서론만 가지고도 논문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의 역사가 존재하니 이 부분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오늘 본격적으로 하려는 이야기는 서두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런 시장 상황 속에서 피어난 작은 사건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그것은 바로 장철수 감독의 작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블루레이 출시에 관한 일인데, DVD는 출시가 된 상황이었지만 블루레이 출시를 장담할 수 없었던 제작사 측에서는 DP를 통해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기를 원했고 이런 궁금증은 단순히 수요예측에 그치지 않고 결국 쉽게 말해 선공동구매 형식이 되어 제작을 위해 필요한 최소판매수량을 달성, 하마터면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블루레이 타이틀을 만나볼 수 없었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블루레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DVD 리뷰를 의뢰받았을 때부터 제작사에서 블루레이를 출시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었고, 과연 최소수량 정도의 판매가 가능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도 같은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는 어차피 수요를 알아보고 될 것 같으면 제작하고 부족하면 안하면 그만인, 즉 밑져야 본전인 일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밑져야 본전이라기 보다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다들 눈짐작으로 혹은 체감하는 정도로 어려워진 블루레이 시장을 느끼고 있었다고 해도, 이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노출하며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분명 해당 제작사는 물론 시장 자체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모험이었을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론 이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배수진의 심정에서 나온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반기는 동시에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한 쓰라린 마음도 들었다. 예전에 시장이 살아있을 때는 국내에만 다양한 한정판 혹은 특별 패키지들이 출시되기도 하는 한 편, 마이너한 작품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고 인기작들의 DVD출시를 걱정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반해, 요즘은 어떤 영화를 인상깊게 보고 나오면 그와 동시에 과연 이 작품이 국내에 출시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 묻게 될 정도로, 그 어떤 타이틀도 출시를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 만드는 사람은 과연 이 타이틀이 최소수량은 팔릴까를 걱정해 제작자체를 매번 고민해야 하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원하는 타이틀을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어버려 갈수록 블루레이 생활을 하기 어려워만 지는 현실.


혹자는 이런 소비자의 고민을 보고 그깟 취미생활 쯤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생활의 일부분이며 이미 오랫동안 영유해온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버를 조금 보태면 평생을 쌀밥 먹어온 우리나라 사람이, 이제는 국내의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도 손해만 보는 입장이라 거의 농사를 포기한 상태여서 쌀밥을 먹고 싶으면 해외에서 쌀을 수입해 먹어야 하거나, 농부와 직접적으로 딜을 해 농사 지어도 적어도 피해보지 않을 정도의 수량을 소비자가 모아야만 쌀밥을 먹을 수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블루레이 그까이거 안보면 되지'와 '우리쌀 없으면 수입해 먹거나 빵먹으면 되지'나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조상 같다는 이야기다.





어쨋든 이런 풍토 속에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블루레이 출시는 '확정' 되었다. DP를 통해 먼저 구매의사를 묻고 수량을 예측한 뒤 바로 선구매로 이어졌고, 처음에 예상했던 최소 수량 500장은 훌쩍 넘어서서 선주문만으로 1,000장을 넘어서는 대단한 사건 (이건 사건이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천장 가운데는 냉정하게 얘기해서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아마도 구매하지 않았을 분들의 숫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분들은 단순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영화를 보고 구매한 것이 아니라 국내 블루레이 시장과 DP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투자의미의 구매가 장기적으로는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관심과 참여가 많은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져서 더 많은 분들이 선주문에 참여한 것과 동시에 장철수 감독이 특별 한정판에 대해 싸인을 지원하기로 했고, 표지 커버 역시 초회 선주문 자들에게만 DVD프라임 한정판이라는 문구와 구매자의 이름 or 닉네임이 새겨진 속지까지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단순히 구매자 목록이 아니라 이 타이틀이 탄생될 수 있었던 조력자들의 이름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내 이름도 당당히 포함되었다!)



dp-001이라는 한정판 라벨을 달고 나온 타이틀이 결정되고 얼마지 않아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dp-002 타이틀에 대하나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그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걸작 '시'였다. 사실 dp-001의 제작과정도 결코 쉽지 만은 않았고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제작사가 쉽게 바로 결정할 수 있을까 의문이라 dp-002에 대한 논의는 조금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추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DP와 제작사가 만들어낸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그리고 이후 진행되고 있는 '시'의 블루레이 프로젝트를 보면서, 이 업계에 몸담았었고 지금도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블루레이 시장에 작지만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모든 타이틀이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것은 도화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내가 지금 조금만 힘을 보태면 앞으로 미래에는 혹시나 더 영유로운, 아니 적어도 DVD시절 같은 정도의 문화생활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시장을 포기하다시피했던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런 계기를 발판 삼아 무언가 조금씩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런 기대를 위해서 이번 DVD프라임의 프로젝트는 두손두발 들어 환영하는 동시에 지지를 넘어서 돈이든 재능이든 기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조금이나마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바라보고 있는 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얘기라면, 이런 상황 속에서 다 같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니 가혹할 정도의 질책은 참아주시길 그리고 비판보다는 애정으로 응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하지만 한 때는 뛰어다녔던 아이에게), 빨리 걷는 법과 뛰는 법을 논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말이다. 지금은 일단 걸을 수 있게 도와주자. 잘 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걷고 난 다음에도 늦지 않을테니.




두번째 프로젝트인 이창동 감독의 '시' 블루레이 타이틀도 꼭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응원, 또 응원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두만강 (Dooman River, 2009)
경계와 경유 그리고 약속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을 보았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메마르고 황폐하고 남겨진 인물과 장소를 통해 자신 만의 인장을 깊게 새겨왔었다. 항상 장소에 국한되는, 혹은 그곳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장률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영화를 완성했으며, 이 곳은 감독 자신이 자란 곳이기도 헀다. 어쩔 수 없이, 아니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겪고 느꼈던 과거가 담길 수 밖에 없었던 '두만강'은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그저 상황에 인물들을 던져두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상황에 처한 인물들 역시 처연하게 일들을 겪어가는 인상을 깊게 남겼던 전작들과는 달리, 조금은 더 감정적인 동요가 일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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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변의 한 작은 마을. 이 곳은 북한 함경도에서 탈북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경유하는 곳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리적 배경에 놓인 곳이다. 장률 감독은 바로 이 민감한 두만강 변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많은 비유를 들어 관객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한 편, 정 반대로 특별할 수 밖에는 없는 이 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 (아이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가 특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어른들로 대변되는 외부의 요인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어떻게 잠식해 가는 지에 대한 과정을 섬뜩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려낸다. 

결국 '두만강'의 일들은 '경계'와 '경유'의 의미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 경계 넘어의 곳인 동시에 돌아가기 위한 경유지였으나 예전에는 존재했던 경계 간의 다리가 사라지면서 결국 그대로 남겨지게 된 두만강 변의 마을. 삶과 죽음의 거리 역시 그 어느 곳보다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 곳은 마치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연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난 때문이기는 하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항상 같은 옷을 입는 모양새, 배고픔에 경계를 넘어온 아이들 중 하나가 죽어도 '숨이 없어'라고 덤덤히 말하고는 그냥 갈 길을 가는 아이들의 뒷 모습, 그리고 영화 내내 드리워진 겨울의 차가운 공기까지. 마치 이 마을은 어떤 외부의 힘도 깨기 어려운 철옹성이라기 보다는, 조금만 물들여도 쉽게 물들고 마는 순백의 편견없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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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탈북자들의 문제가 점점 커지면서 이 마을의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편에 서서 탈북자들을 공안에 신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을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전달되고, 아이들의 세상 역시 어른들의 그것으로 물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글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음'으로 이해되는 부분, 그러니까 누구하나 쉽게 단정지을 정도의 절대적 악한은 등장하지 않는다. 순희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는 무릎 꿇고 감사를 표시하던 탈북자의 행동은 거짓이 아니었으며, 그가 순희에게 범한 일은 물론 옳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그 역시 가해자라기 보다는 피해자로서 볼 수 있는 면이 분명 존재하며, 탈북자들을 도왔던 같은 마을 사람을 신고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행동도 보상금을 타려고 한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메시지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장률 감독은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을 애써 피해가지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치적으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보편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조건에 있다. 두만강 건너 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건너 편에서 바라보게 되는 시선 말이다. 상영 후 가졌던 대담에서 장률 감독이 했던 얘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살고 있는 중국이나 연변에서 두만강 건너 편을 바라보면 전혀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데, 남한에 와서 두만강 쪽을 바라보면 경계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역시 남한이라는 정치적, 지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로서 또 다른 경계와 맞닿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떨쳐내려해도 결국 단순하게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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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속의 의미. 이 영화를 아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린 이유는 아주 미약한 희망 때문이거나 혹은 그 미약한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더 큰 슬픔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어린 창호와 정진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현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룰에 따라 상처를 받게 된다. 정진은 위험을 무릎쓰고 창호와의 약속을 지켰고, 창호 역시 자신 만의 방식, 아니 아무것도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정진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이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아이들이 지켜낸 약속의 의미는 결코 희망적이지 만은 않다. 상상 속의 다리가 희망을 꿈꾸게 하기 보다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씁쓸함을 안기는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지켜낸 이 약속의 방식은 더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맨 처음 '두만강'을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하면서 몹시 감정적으로 '극적'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정말로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자극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치장된 영화들에 못지 않은 감정적인 떨림이 있었다. 실제로 너무 심장이 뛰는 나머지 가슴을 부여잡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의 동요가 있었는데, 장률 감독의 작품에서 이런 극적인 떨림을 겪게 될 줄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큰 인상을 주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포스터에 새겨진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라는 문구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는 없었는데, 보고 나니 이 문구에 담긴 정서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두만강'에는 삶의 슬픔이 침묵으로 흐른다.





1. 영화가 끝나고 장률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정말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단 장률 감독에 작품 세계와 '두만강'에 대한 깊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공감되고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가득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평론가와의 친분에서 오는 '까페 느와르' 농담들과 더불어 정말로 '재미'있는 얘기들도 많았구요.

2. 이번 '두만강' 시사회는 장률 감독특별전을 통해 상영되는 방식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시네마테크를 찾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장률 감독의 팬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질문들의 깊이가 결코 가볍지 않아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3. 장률 감독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본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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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The Fighter, 2010)
가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매 작품마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스찬 베일과 (이젠 많이 지겨운 얘기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접고 배우로서 꾸준한 필모그래피를 보여주고 있는 마크 월버그, 그리고 에이미 아담스까지 출연하고 있는 데이빗 O.러셀의 신작 '파이터 (The Fighter)'는 라이트웰터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동생 미키 워드와 슈가 레이 레너드와 경기를 치르기도 했던 형 디키 애클런드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미키 워드는 'Irish'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으며 아투로 가티와의 기념비적인 경기로 더욱 유명한 복서인데,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를 연출했던 데이빗 O.러셀 감독은 이 실화를 권투 영화로 그리지 않고 가족 영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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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이터'에는 권투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패배를 계속해 오던 복서의 재기와 성공, 마약 중독으로 힘겨워 하던 주인공이 이를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 시련을 이겨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권투 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파이터'는 스포츠 영화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미키 워드와 디키 애클런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복서의 삶에 중심을 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보니 주인고은 오히려 미키 워드가 아니라 디키 애클런드에 더욱 가까워졌다.

둘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후자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비교적 보편적인 캐릭터인 미키 워드에 비해 디키 애클런드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으로 느껴졌기 때문, 그리고 놀라운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덕이었다 하겠다.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자유자제로 조절하는 것과 더불어 다양한 연기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파이터'에서 보여준 디키 애클런드의 연기는 그 가운데서도 기존의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찬 베일이 주로 맡아온 역할은 (몸무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주로 무겁거나 어두운 캐릭터가 많았는데, 그런 면에서 '디키 애클런드'는 경망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고 사고 뭉치인 동시에 떠벌이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캐릭터였기에 더욱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에 놀라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염 기른 점잖은 모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던 그 남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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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본론인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와서보자면, 극 중 등장하는 미키의 가족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는데 아들을 끔찍히 아끼기는 하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아들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인생이 되어버린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많은 누나들. 멜리사 레오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과 여러 명의 누나들은 이 영화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겠다 (누나들은 여럿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행동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로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실 이런 억척스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의 경우보다는 우리 영화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고 보아왔던 문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렇기에 이런 가족의 이야기가 우리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이빗 O.러셀은 이 가족이라는 캐릭터를 조금은 공포스럽게도 또 한 편으로는 코믹하게도 그려내고 있는데,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의 든든한 배경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많지만 철옹성 같이 두터운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고자 하는 '샬린 (에이미 아담스)'의 존재도, 이 가족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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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영화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파이터'는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을 굴레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 마저도 극복해 나가느냐에 대한 과정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겠다. 극중 미키와 디키가 겪는 갈등의 핵심은 성공도 사랑도 아닌 바로 가족이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그 말이 가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미키와 가족에 모든 기대를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아닌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디키, 이 영화가 선택한 과정은 챔피언으로 가는 여정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회복이었다. 만약 이 영화가 간절하게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미키 워드를 주인공으로 한 권투 영화였다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가족은 아마도 일찌감치 그의 인생에서 배제되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가족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챔피언이 되길 원했고, 그 이야기 속에는 또 다른 복서였던 형 디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파이터'는 결국 권투영화일지도 모른다. 미키와 디키 그리고 가족들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챔피언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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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기 전 실제 주인공들의 뒷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는데,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실제 주인공들의 모습을 스크린에 나타낸다. 영화를 보고 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별다른 코멘트가 없어도 이들이 실제 미키와 디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영화 속 처럼 활발한 모습의 디키와 이런 형의 넉살에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는 미키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훈훈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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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들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함께 아무말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인데, 이 영화에서도 디키와 엄마가 차 안에서 Bee Gees의 'I Started a Joke'를 부르는 장면은 역시나 인상적이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곡이라 더욱 그랬구요. 여기에 Red Hot Chili Peppers의 'Strip My Mind'까지 나와서 황홀!

2. 하도 가족영화, 가족영화해서 권투영화로서의 장점을 조금 보태보자면, 극중 권투 경기 장면은 실제와 같은 현실감을 주기 위해 당시 방송촬영 영상을 컨셉으로 수록되었습니다. HBO의 유명한 방송스타일 말이죠.

3. 극중 등장하는 슈가 레이 레너드는 실제 그가 연기하기도 하였습니다.

4. 극중 디키가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던 슈가 레이의 다운 장면. 이것이 슬립 다운인지 넉다운인지는 직접 판단하시길.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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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에 '새삼스런' 이 빠졌다. 영화가 앞으로는 모두 데이터로 대체 될 것이고, 극장이란 곳이 희귀한 장소가 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합법이든 불법이든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처음 했던 것도 벌써 수년이 흘렀다. 그 때는 단순히 씁쓸한 미래에 대한 예측 정도였는데 '새삼스럽지만' 이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불법 다운로드의 수준은 '불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문화로 확산되었으며,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최소 마지노선인 '죄책감'도 이제는 더 이상 말할 여력 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이야기하자면 불법 다운로드가 합법 다운로드보다 쉽고,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지언정 이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최소한의 죄책감을 갖고 부끄러운 일인 줄만이라도 잊지 말자 라는 것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은 죄책감은 커녕, 내 하드에 얼마나 많은 영화파일을 갖고 있는지와 풀HD급 화질의 소스를 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최신영화 파일을 얻었는지가 영화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영화 본다는 사람들'에 나는 없다) 자랑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어쨋든 오늘 갑자기 이 새삼스런 이야기에 대해 말을 꺼내게 된 것은 불법다운로드를 하지 말자 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극장 예술에서 파일형태의 데이터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가끔 이런 얘기를 꺼내면 혹자들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만 영화란 말이냐 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BD나 DVD 혹은 합법적인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후자의 경우가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 전달 방법이 되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음반업계를 들 수 있을텐데, 최근 극소수만이 CD로 음악을 즐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mp3나 스트리밍으로 음악 자체를 즐기게 된 현상을 보자면 이것은 분명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CD가 아닌 몇백원에 다운받는 파일 형태를 선호하고 즐기기 때문에 뮤지션들은 CD형태로 제작을 할 때는 항상 모험을 해야하고, 어차피 몇백 k정도의 좋지 않은 음질과 이어폰으로 즐기게 될 음악에 사운드적인 퀄리티의 비중을 줄일 수 밖에는 없게 되었다. 현재 국내가요 시장을 보면 앨범 형태로 음반을 내기보다는 디지털 싱글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일일 차트 혹은 주간 차트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수준까지 왔는데, 이것이 주객이 전도된 대표적인 안타까운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최신 트렌드와 기술,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그대로 남아있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모든 예술은 시대에 맞춰 변화해 왔으며 그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을 즐기는 소비자나 시장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가 본질을 해치는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음반의 예를 계속 들어보자면 뮤지션들이 기본적으로 음반이나 앨범형태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토양과 이런 형태로 즐기는 층이 유지되는 시장에서 mp3나 스트리밍 등 형태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은 후자의 변화에 본질이 큰 영향을 받아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뒤틀림이 생겨버린 현실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감독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웹사이트를 통해 극장 개봉과 웹개봉을 동시에 진행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며, 북미에서는 대여용 디스크 시장이 제법 활성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극장 상영을 걱정하고 영화가 자본에 완전히 잠식될 걱정을 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국내의 현실은 이런 암울한 미래가 (누군가에겐 더 편리한 미래겠지만) 머지 않아 찾아올 것만 같다. 영화를 만들 때 스케일이나 극장 환경을 고려하여 영상과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장면을 연출해 내는 것이 보통일텐데 이런 작품이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서 말그대로 '재생'되길 원하는 창작자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역시 음반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나 휴대폰 환경에서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 이 환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워너브라더스가 '다크 나이트'를 시작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최근 페이스북에 누구보다 재미를 느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주 흥미로운 뉴스였지만, 이런 흥미와 기대보다는 점점 극장 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시장과 문화의 변화에는 발맞춰 가야겠지만, 그것이 본질을 해칠 정도의 속도와 세기라면 조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아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더욱 데이터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의 음식들은 배달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으로 먹게 된 들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데이터화 된 영화 예술은 영화라는 매체가 담고 있는 참 맛을 과연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들에 있어서는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커피 맛이 쓰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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