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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

신카이 마코토 세계의 집대성. 간절히 너에게 닿기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간 그가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세계관들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인장과도 같은 영롱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한 다양한 하늘 이미지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고, 닿을 듯 닿지 않는 두 남녀 주인공의 간절한 로맨스는 '초속 5cm'를 연상케 하고, 판타지적인 요소는 '별을 쫓는 아이'를 떠올리며, 극 중 타키가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의 선배와 나누는 소소한 로맨스는 '언어의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가 가장 잘하는 요소들을 한꺼번에 하나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만큼 감동이 배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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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간절함, 간절하다 못해 필사적이기까지 한 마음과 치닫는 정서를 절제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혹자들에겐 중2병 증상처럼 보여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밀어붙이는 용기와 기개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호소다 마모루의 '썸머워즈'의 내달리는 후반부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에반게리온 : 파의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카이 마코토에게 그것은 애틋함과 닿으려 해도 닿지 않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서를 가장 잘 담아냈던 작품은 '초속 5cm'나 '별의 목소리'라고 생각되는데, '너의 이름은'은 여기에 판타지적인 설정과 배경을 통해 그 간절함의 배가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만들어 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존재 (심지어 주기적으로 같은 몸을 사용(?)했을 정도의)이지만 한 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결코 만날 수는 없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닿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여전히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다. 몸이 뒤바뀌고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남을 노력하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플롯이지만 그럼에도 '너의 이름은'의 감동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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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신카이 마코토가 가장 잘하는 세밀하고 섬세한 감정의 묘사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러한 감성들을 흔히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유치함 혹은 과함으로 평가절하 하기도 하지만, 앞서서도 말했듯이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여기에 신카이 마코토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이름이었다. 누군가를 규정하는 기능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이름. 그 이름을 묻고 싶은 혹은 묻고 싶었던 누군가에 대한 깊은 회한은 이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이름이라는 요소로 대변되는 다른 의미들은 무언가 꺼내지 조차 못했던 내 안의 감정들에 대한 아쉬움과 부족했던 용기에 관한 것들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너의 이름은'도 그렇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 역시 극 중 인물들이 보여준 간절함의 정도가 더했던 이유는 아마도 '절대 그럴 수 없어'라는 정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절대 그럴 수 없어'라는 이전의 실패나 시도해보지 못한 이의 후회가 전제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동기가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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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유는 주인공인 타키와 미츠하가 닿았던 그리고 닿지 못했던 이유에 관한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의 영화들에 비해 '너의 이름은'은 이 설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들고 있는데 바로 재해와 사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상처를 입은 일본인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손쓸 수 없었던 거대한 재난과 자연재해로 인해 소중한 누군가를 한 순간에 잃어야만 했던 이들이 '만약.. 그랬다면?'하고 아프게 떠올려보는 판타지, 아니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단순히 타키와 미츠하 둘 만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가 더 넓은 범위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게 만든다.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일본인들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겪었던 어떤 상실 혹은 준비하지 못했던 이별에 대한 기억을 '너의 이름은'은 소환해 낸다. 아주 간절한 메시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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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삽입곡이 인트로와 엔딩 크래딧 외에도 여럿 등장하는데 확실히 이 부분이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몇 번 정도는 그냥 삽입곡이 없는 편이 더 낫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거든요.


2. 실제로 저도 그런 적이 많아 공감을 많이 했는데, 한 바탕 꿈을 꾸고 나면 정말 바로 몇 초 전까지 꿈속에서 함께 많은 일들을 함께 했던 누군가 (그것도 꿈속에서는 아주 친한 관계로 묘사되던)의 얼굴이나 이름이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대부분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바로 몇 초 전까지 꿈속에서 생생하던 얼굴과 이름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혹시..... ^^;


3. '너의 이름은' 성지순례는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돈데, 조금 열기가 식으면 나중에 한 번 찾아가 볼까 생각중에요 (어차피 지금은 갈 수도 없거니와 ㅠㅠ)


4. 마지막은 예전 2012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특별전으로 내한했을 때 함께 찍었던 사진 (감독님 더 유명해지세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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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없는 거리 (僕だけがいない街)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테리 루프물



아르슬란 전기 1기 이후 새로운 애니메이션으로 무엇을 선택할까 찾아보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나만이 없는 거리 (僕だけがいない街)'는 일단 성공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올레티비를 통해 매주 화요일마다 업데이트가 되는데, 2화 '손바닥(掌)'까지 감상한 결과 일반적인 타임슬립 물과는 조금 달리 29살의 성인 남자인 후지누마 사토루가 18년 전 초등학생 시절로 갑자기 돌아가게 되면서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겹쳐지는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극 중에서 '리바이벌'이라고 표현되는 타임슬립은 어떠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이 사고의 징조나 원인이 되는 시점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무려 18년의 세월을 거슬러가게 되면서 과연 이 시기에 어떤 인물과 일들이 현재의 사건(스포일러가 될까봐)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풀어가게 될 듯 하다 (이제 2화라).


참고로 1화를 보고나서 앞으로 계속 봐야겠다 결정을 했는데, 2화를 보기 전에 잠시 다녀 온 일본에서 우연히 원작 만화책도 발견했다. 그래서 나중에 알아보니 국내에도 소미미디어를 통해 만화책도 5편까지 발매가 된 상태다.



일본 서점에서 발견한 코믹스


작화나 스타일 모두 취향이라 일단 끝까지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코믹스의 경향대로 이 작품 역시 실사 영화로도 곧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실사 영화로도 개봉 예정!



아직 2화까지 밖에 나오지 않은 터라 완성도나 만족도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애니메이션에 이어 실사영화도 그리고 코믹스도 다 찾아보게 될 듯. 앞으로 매주 화요일!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

'혼자'와 '함께'가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에 대해



갈 곳을 잃고 시부야의 뒷골목을 배회하던 9살 소년 ‘렌’은 인간 세계로 나온 괴물 ‘쿠마테츠’와 마주치게 되고, 그를 쫓다 우연히 괴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쿠마테츠’에게 ‘큐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소년은 그의 스승을 자처한 ‘쿠마테츠’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지만 너무도 다른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힌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며 변해가고, 진정한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어느 새 훌쩍 커버린 ‘큐타’가 인간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출처 - 다음영화)


전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통해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더 완벽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려냈던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괴물의 아이 (バケモノの子 The Boy and The Beast, 2015)'는 넓은 의미에서 역시 전작인 '썸머워즈 (サマーウォーズ Summer Wars, 2009)'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늑대아이'의 주제를 또 한 번 확장시킨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다시 말해 판타지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또 한 번 사랑,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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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괴물의 아이'의 플롯은 같지만 다른 두 인물이 서로에게 자극 받아 동시에 성장하는 익숙한 드라마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갈 곳을 잃고 외톨이가 된 소년 렌과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한 편으론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쿠마테츠는 우연히 만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각자 조금씩 성장해 간다. 여기서의 성장이란 단순히 세상과의 소통하는 법이나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은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버려지거나 소외된 존재라는 점을 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닫혀 버린 마음, 즉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 방어적인 가치관이 서로로 인해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리고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 만의 포인트는 역시 '가족'이다. '늑대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인 하나가 스스로 어머니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던 것처럼, '괴물의 아이' 역시 렌과 쿠마테츠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가족애를 문제 해결의 중심으로 정한다. 전혀 다른 인물들이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동반 성장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아주 익숙한 구조인데, 여기에 호소다 마모루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테마는 그 역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늑대아이'에 이어 또 한 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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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는 '괴물의 아이'에서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택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리거나 그 구멍을 메우는 것의 치유 방식과 같은 것은, 아주 직접적인 방식이지만 어쩌면 애니메이션에서만 표현 가능한 형식으로 메시지 전달에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나쁜 생각 혹은 큰 상처를 받았을 때의 자신이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때의 감정으로 남게 되어 스스로를 앗아가게 된다는 설정은 메시지적으로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작품 내내 꺼내들었던 허먼 멜빌의 '모비딕 (백경)'의 비유 역시 아주 직접적인 비유였다고 생각되는데, '모비딕'의 이야기가 결국 상대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괴물의 아이' 역시 앞서 말한 악한 감정으로 남게 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 '괴물의 아이'가 더 좋았던 건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는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결국은 모든 것을 홀로 해내려 하지 말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들의 손을 뿌리치지 말고, 특히 가족이라는 존재가 자신 과의 싸움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내 편인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 문구인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정말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뻔한 말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왜 함께라면 모든지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는, 아니 그렇다는 것을 누구보다 강력하게 믿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의 믿음이 이야기의 힘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 '괴물의 아이'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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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교가 큰 의미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해보자면 '괴물의 아이'는 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썸머워즈'와 '늑대아이'를 적절히 융합한 작품이다. 즉, 어느 작품이 더 좋냐고 물어본다면 앞선 두 작품을 먼저 이야기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이 대부분의 아쉬움은 모두 엄청난 전작들 때문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함께와 가족에 대한 메시지는 이번에도 강렬했다. 자, 이제 다음 작품은 다시 '시달소' 같은 작품 한 번 만들어주세요.



1.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들 중 하나는 바로 렌의 엄마가 등장하는 장면이었어요. 몇 장면 안되고 매우 짧지만, 없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장면이었기에.


2. 또 하나 좋았던 캐릭터는 이오젠의 아들 캐릭터. 여기서도 호소다 마모루의 성격을 알 수 있어요. 뭐 하나 나쁘기만한 캐릭터가 없죠.


3. 이 영화는 국내 개봉이 언제 될지 몰라 일본서 개봉했을 때 일찍이 보러 갔었는데, 처음 보고 바로 든 생각이 '아, 신주쿠가 배경이네..., 여기 또 다 다녀와야 하나 ;;;;'하는 행복한 고민이랄까. 실제로 이미 몇 군데는 다녀왔던 곳들도 있어서 루트가 바로 머릿 속에 그려지던...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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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피스 (Short Peace, 2013)

전통과 미래가 만난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와 '스팀보이'를 연출한 오오토모 카츠히로를 중심으로, 모리모토 코지, 모리타 슈헤이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단편 애니메이션 '쇼트피스 (Short Peace, 2013)'는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오히려 4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각 감독 마다의 색깔과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추세와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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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십구 


폭풍우가 치던 밤, 한 나그네가 비를 비해 밤을 보내기 위해 우연히 들어간 작고 오래된 사당에서 벌어지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쇼트피스' 전체의 짧은 오프닝 영상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시대극과 SF의 묘한 결합을 한 번 더 발전시키고 있는 작품이었다. 캐릭터는 물론 배경과 색까지 온통 일본 전통의 색과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여기에 SF적인 상상력을 더해 마치 '애니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작화의 경우 손으로 그린 느낌이라기 보다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아니 게임 속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단편이라는 구성을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인 동시에, 화려한 색과 단순한 아이디어가 빛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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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요진


'쇼트피스'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마지막 작품인 '무기여 잘있거라'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일본적이고 전통의 느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작품 '화요진'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여기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면의 구성 자체가 마치 일본의 오래된 전통 그림을 보는 듯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쇼트의 전환이나 카메라의 이동 역시 이 구도를 해치치 않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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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보


세 번째 작품인 '감보'는 아주 전통적인 색체와 약간의 SF적인 요소가 결합된 묘한 작품이었다. 전통 설화에나 나올 법한 괴물의 존재와 백곰으로 표현되는 샤머니즘 적인 요소, 그리고 이것들이 SF적으로 결합된 설정까지. '쇼트피스'에 수록된 네 작품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조금은 잔인한 표현을 담고 있다. '감보'도 그렇지만 첫 번째 '구십구'를 제외하면 여기에 수록된 단편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시작과 끝이 확실히 진행된다기 보다는, 마치 장편의 한 부분을 잘라 꺼내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단편을 보고 나면 그 이전과 이후 (특히 이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이 작품 '감보'와 다음 작품 '무기여 잘있거라'의 경우 이 아이디어를 확장시켜 장편으로도 꼭 한 번 보고 싶은,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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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기여 잘있거라


세 편의 시대극이 끝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이 시작된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부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기여 잘있거라'는 밀리터리 적인 요소로 일단 흥미를 끈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밀도가 높은 메카닉과 설정들이 흥미로운데,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전차형 무인 병기와 벌이는 전투 장면은 SF영화의 한 시퀀스를 보는 듯 하다. 무기여 잘있거라' 역시 시대와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앞선 세 편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묵시록적인 분위기와 일본의 현실 혹은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배경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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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블루레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고독 속을 걸으며 악을 행하지 않고

홀로 걸어가는  숲 속의 코끼리처럼"...


2004년, '공각기동대'를 보고 한참 빠져있던 나는 그의 속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노센스(Innocence)'를 극장에서 보고 또 한 번 깊은 카오스에 빠지게 된다. 그 때 당시에는 이 난해하다면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2013년에 다시 보게 된 '이노센스'는, 10년 전 이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 설 익은 것이었다는 것에 거부감 없이 수긍할 수 있었다 (그 얘긴 즉슨, 지금의 생각 역시 10년 뒤엔 스스로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 형식적으로 보자면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속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단순한 속편이라거나 '공각기동대 2'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작품이다. 즉,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에서 펼쳐진 작품이지만, 오히려 '네트는 광대해' 라며 육체를 버리고 한 차원 더 나아간 쿠사나기의 이야기처럼, 한 걸음 더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다. 전작이 쿠사나기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노센스'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 쿠사나기처럼 영화 스스로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나아가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가 비슷한 소재를 다룬 SF 영화들에 비해 특별한 점은, 사이보그, 전뇌 같은 SF적 요소들이 단순히 볼거리 위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모습을 닮은 형태로 만들어 낸 수많은 인형들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한 반성과 의문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이 영화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인간을 그릴 때는 타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 자신으로서 묘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존재나 그 가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노센스'는 그 인간이 만든 존재인 인형(사이보그)들을 등장 시켜, 그들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통해 '과연 인간은 완벽한 존재인가?'라는 물음과 동시에 그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정은 결국 '나'를 버리는 과정, 더 자세히 이야기해서 '나'라는 존재의 이유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수 많은 악(惡)한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노센스'는 이야기의 여러 지점에서 대사나 캐릭터 등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비유를 들려준다. 인간이라는 것의 정의를 어느 시점에서 내릴 것인지. 태어나는 순간, 그러니까 아직 가치관이나 자아가 생성되기 이전 아이일 때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아라는 것이 생기는 순간 부터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라 부르는 것이 완성이나 선(善)의 형성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순수(Innocense)를 잃어버리게 되는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영화는 계속 반문한다. 영화 속 반복되는 장면과 구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적 의미나 이를 통해 '나'라는 실존적 가치에 대한 의문 기호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끊임없는 반문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노센스'의 실질적 주인공이 '바토'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쿠사나기가 '공각기동대'의 마지막에 육체를 버리고 광대한 네트워크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다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반증하듯 쿠사나기는 굳이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도 이야기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바토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지가 이 작품의 핵심일 것이다. 쿠사나기와 바토는 사이보그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커다란 갈등과 의문을 갖고 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쿠사나기는 '나'를 버리고 어쩌면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고, 남겨진 바토는 고스트 더빙이 된 인형이 연관된 사건을 추적하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함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마치 인간과 사이보그의 입장이 뒤바뀐 듯 바토가 불완전함을 스스로 드러낸 인간 군상을 불쌍한 듯한 표정으로(물론 그는 표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이 작품의 정서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데, 더 중요한 건 바토의 이러한 시선이 인간다움에 대한 실망이나 포기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글의 서두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 때는 이 이야기가 몹시 어둡고 우울하고 쓸쓸하기만 한 것인 줄로 알았었는데, 다시 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오히려 희망적이기까지 한 가능성의 작은 불씨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얼핏보자면 '이노센스'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의 여정 속에서 바토가 겪게 되는 인간들의 불완전함과 그와 반대로 한 차원 높은 다음으로 나아간 쿠사나기의 모습을 통해, 결국 인간 세상에는 희망이 없고 하루 빨리 '나'를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만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쓸쓸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은 어떠한가. 바토는 '킴'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과 인간들이 고스트 더빙을 통해 만들어낸 인형들이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간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아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상실감, 실망감이 더 깊어지긴 했지만, 바토는 이곳에 남는다. 전작의 마지막과 이 작품의 시작 시점에서의 바토는 분명 '남겨진' 성격이 강했지만, '이노센스'의 마지막 시점에서의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남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바토는 그 모든 것을 겪었지만 그래도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추구해야 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에 대한 재정립을 통해 더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노센스'가 쿠사나기와 바토의 로맨스 영화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다. 바토가 기르는 강아지를 위해 일부러 좋은 사료를 애써 구하는 것 처럼, 쿠사나기에 대한 바토의 감정은 또 다른 '인간다움'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비록 정답은 없을 지언정 끊임없이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할 화두이기에,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가끔 돌이켜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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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가치 높은 DP시리즈 '이노센스' 블루레이





이번에 DP시리즈로 발매 예정인 '이노센스' 블루레이는 몇 가지 눈에 띄는 개선점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첫 번째는 역시 개선 된 자막을 들 수 있겠다. 기존 DVD의 자막이 주인공의 이름 조차 잘못 번역되었던(DVD에선 '버트'로 번역) 것에 비하자면, 이번 블루레이의 자막은 원문의 정보를 누락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서 다시 번역을 하는 과정을 가졌으며, 특히 철학적인 대사와 인용문이 많은 작품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한국어 자막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본편은 MPEG5/H.264 코덱으로 화질이 향상된 신판(앱솔루트 에디션)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관련 부가영상이 몽땅 누락된 일본의 엡솔루트 에디션과는 달리 초판에 수록되었던 대담 및 메이킹 영상 등 중요한 부가영상을 이번 블루레이에 포함함으로써, 역시 DP시리즈로 제작된 '무협' 블루레이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의 판본과 비교해도 손꼽히는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 외에 아직 발매 전이라 직접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읽을 거리와 볼거리를 포함한 소책자가 정성껏 제작될 예정이라니, 이 소책자도 소장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한 몫을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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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최신 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색감의 표현력이나 노이즈 측면에서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었던 DVD의 화질과 비교해보면 역시 블루레이 화질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특히 '이노센스'는 당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3D와 CG 그리고 실사에 가까운 표현 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블루레이로 감상하는 것이 조금 더 의미 있는 감상이 될 수 있겠다.







2D와 3D가 결합된 시퀀스가 대부분인데, 일일이 표현해낸 배경의 CG들의 디테일을 블루레이를 통해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이 작품이나 2001년 작인 '아바론'을 보았던 이들이라면 그 영상의 이질감을 기억할 텐데, 그 이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블루레이에서는 좀 더 선명한 화질 덕에 오히려 이질감은 조금 덜한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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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 MA 6.1채널의 사운드는 DVD시절의 강력했던 DTS 사운드의 임팩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드 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공각기동대'에 이어 그 특유의 묘한 신비로움을 들려주는 코러스 곡은 이 작품의 성격을 아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날카로움과 공간감이 모두 잘 살아있어 오프닝과 퍼레이드 장면에서 사운드의 쾌감을 선사한다.






몇 장면의 총격 씬과 격투 씬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임팩트를 들려주며 사운드적으로도 크게 불만족스러움은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특성상 안드로이드 들이 여럿 등장하다보니 인간에게서는 발생하지 않는 미세한 금속성 마찰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확실히 기존 DVD버전 보다는 훨씬 더 선명해진 작은 소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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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으로는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연출을 맡은 니시쿠보 토시히코가 참여한 음성해설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데, 아마도 많은 팬들은 이 어려운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 들을 듣고 싶겠지만, 내용 적인 해석이나 메시지의 전달 보다는 기술적 측면의 에피소드나 소개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오시이 마모루는 특히 이 기술적인 측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음성해설 외에 '<이노센스>는 국경을 초월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전문가 대담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비록 HD영상이 아닌 SD영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이 작품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던졌던 메시지와 그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오시이 마모루의 전작 '공각기동대'가 그 이후 헐리웃을 비롯해 수 많은 SF작품들과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영향이 어떻게 미치게 되었는지 좀 더 분석적인 해석들로 소개하고 있다. 약 45분 분량의 영상으로 대담이라는 제목 처럼, 다양한 분야의 반응과 평가를 만날 수 있다.





'메이킹 영상'에서는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의 인터뷰와 더빙 현장, 그리고 가와이 겐지가 만든 영화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또한 칸 영화제에 출품했던 당시의 현장 영상도 수록되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노센스'는 오시이 마모루의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도 압도적인 걸작이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특보와 한국, 일본에서의 예고편 등이 수록되었다.





[총평]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는 누군가에게는 걸작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으로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화제작인 동시에 다시 한 번 볼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공각기동대'와 이 작품 이후의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작품들을 여럿 소화한 시점에서 다시 보는 '이노센스'는 분명 새로운 맛과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개선된 자막과 차세대에 맞게 업그레이 된 화질과 사운드는, 이 새로운 맛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하는데에 부족함이 없는 도구가 될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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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다시 도심으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단언컨대 신카이 마코토는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호소다 마모루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작가이다. 심연을 파고드는 감수성과 아름다울수록 울컥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과 스토리 텔링은 나를 여러 번 울린 동시에 항상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도록 했다. 그런 그의 신작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2013)'의 소식을 처음 듣고, 올해 초 일본에 갔을 때 아니메페어에서 소개 영상과 부스를 보면서 '아, 이번에야 말로 그가 가장 잘하는 작법과 작화로 돌아오려나 보군!'하는 기대감을 더 갖게 되기도 했었다. 그의 전작 '별을 쫓는 아이'는 그의 팬들 사이에서 너무 지브리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작화와 판타지 세계의 스토리 텔링으로 인해 그 답지 않다는 평가도 많이 받았었는데, 개인적으로 '별을 쫓는 아이'는 '초속5cm'와 같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으나 당시에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고, 시간이 갈 수록 주제곡 'Hello Goodbye & Hello'와 함께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되었다 (지금도 듣고 있음!).


그렇게 이번에도 큰 기대를 갖고 보게 된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은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영화였다. 이 세 가지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 만큼, 만족도도 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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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비 오는 오전, 신주쿠 도심 속 공원에서 만나게 된 다카오와 유키노. 그 둘은 매번 비 오는 날이면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학교와 현실이라는 곳에서 벗어나 있는 이 둘은, 점점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고대 하게 된다.


46분이라는 러닝 타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언어의 정원'의 스토리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초속 5cm'와 같이 긴 텀을 둔 감정의 변화와 심리 묘사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둘 사이의 감정과 이 감정이 싹트게 되는 날씨와 공간의 묘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 더 심플 한 작품이 되기도 했다. 사실 '초속 5cm'나 '별의 목소리' 그리고 '별을 쫓는 아이'까지, 그 각각의 이야기가 더 울림이 컸던 건 주인공들의 사연의 절절 함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할애한 스토리 텔링 때문이었다 ('별의 목소리'는 25분짜리 단편이었음에도 그 절절 함이 잘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정원'의 두 주인공이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을 터뜨릴 땐 조금은 갑작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한 편으론 감정을 폭발 시키는 장면 없이 그냥 한 여름의 비처럼, 끝나버린 장마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버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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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깊이에 있어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시 도심으로, 현실로, 멜로로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는 참 매력적이었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작화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정도로 엄청난 디테일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특히 도심 속을 배경으로 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일단 작화 얘기를 떠나서 그의 작품은 도심을 배경으로 할 때, 우리가 흔히 놓치는 일상 속 장면들을 완벽한 영화적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인다. 매일 지나치는 지하철, 거리의 신호등, 교차로의 사람들, 심지어 방안과 집 앞의 평범한 풍경까지도, 신카이 마코토의 손을 거치면 무언가 감성을 잔뜩 머금은 곳으로 탈바꿈한다. 그의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이 이 문구를 보면, 엄청나게 현실을 과장하여 표현 하나보다 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오히려 현실을 깨알같이 있는 그대로 (거의 보고 그리다시피) 표현하는 것이 이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이번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한 편으론 그의 이런 디테일 한 작화 수준이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제품들의 로고가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통 애니메이션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반대로 얘기하면 그냥 지나쳐도 무방한) 사물과 배경의 디테일에 유난히 더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거리에 세워진 광고 메뉴 판의 메뉴들까지도 표현되어 있었는데, 다시 한 번 그의 놀라운 작화와 디테일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신주쿠를 한 두 번 다녀온 이들이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의 디테일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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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개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비'의 대한 표현이 참 좋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양한 강도의 비가 등장하는데, 이거야말로 애니메이션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비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과장 되었다기 보다는 현실적이면서도 실제 현실에서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잘 살려낸 표현이어서 좋았다. 아마도 앞으로는 비가 내리면 적어도 한 번 쯤은 '언어의 정원'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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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신주쿠에 가고 싶네요. 저긴 이미 명소가 되었을텐데 이젠 좀 한적해졌을 테니 내년쯤 한 번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2. 엔딩곡이 생각보다는 임팩트가 덜했어요. 전작들에 삽입되었던 곡 들이 워낙 강렬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곡은 그리 뇌리에 남지는 않는 것 같아요.


3. 아래는 올해 3월 도쿄 애니메이션 페어에 갔을 때 봤던 '언어의 정원' 부스




4. 또 아래는 지난해 3월 감독님이 내한했을 때 함께 사인도 받고 찍었던 사진!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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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 Q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Q Evangelion: 3.0 You Can (Not) Redo, 2012)

종극을 앞두고 다시 처음에 선 신지



지난 해 국내 개봉을 못 참고 먼저 일본에 가서 보고 온 '에반게리온 : Q'를 국내 개봉 전에 두 번 더 보게 되었다. '에반게리온 : 파 (破)'의 충격을 안고 살아오기를 약 3년. 과연 그 이후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는 그 이야기만 꺼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전율을 안겨준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나기사 카오루의 이야기와 그 다음을 가늠하기 어려운 신지와 레이의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 될 지를 기다릴 수 없어 일본으로 먼저 갈 수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국내 개봉으로 100%의 내용을 확인하게 된 'Q'는 뭐랄까, 신극장판의 첫 작품인 '에반게리온 : 서 (序)'와 조금 닮아 있었다. 구성 상으로 말이다. '서'는 '파'를 위한 좋은 준비 과정이었고 신극장판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으며, 그 어떤 작품보다 싱크로율을 주의 깊게 다룰 수 밖에는 없는 성격의 작품이었다. 이번 'Q'를 보며 '서'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다. 'Q'는 신극장판의 마지막 작품인 ':ll '를 준비하는 과정의 작품이자 또 한 번 싱크로율, 즉 마음과 마음을 맞춰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에바는 항상 그랬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마음' 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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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의 마지막 장면은 신지가 드디어 자신을 끝까지 밀어 붙여서 레이를 구해내는 데에 전력을 쏟아, 그 결과 서드 임팩트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Q'는 그 이후 14년의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깨어난 신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즉, 관객은 그 14년 동안의 이야기를 신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인물들에 의해 전해 들을 수 밖에는 없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아이러니 (혹은 갈등 구조)가 시작되는데, 그 동안 항상 두렵고 용기가 없어서 한 발 물러서기만 했던 신지가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데로, 자신이 좋은 그대로 실행한 것이 레이를 끝까지 구해내려 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 행동이 많은 사람들이 막고자 했던 서드 임팩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야기 내내 문제(?)로 지적되었던 (난 신지를 두고 찌질 하다고 하는 것에 단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기에) 신지의 우유부단함과 용기 부족이 해결되는 순간, 가장 큰 인류의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대립하는 관계는 후에도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전 TV시리즈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갈등 구조로서 어쩌면 이미 스스로를 이겨내는 정말 힘겨운 과정을 겪었던 이카리 신지에게는 더 큰 시련이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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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에 등장하는 신지는 분명 각성한 신지다. 즉, '파' 이전에 신지와는 확연히 다른 신지라는 얘기다. 만약 이전의 신지였다면 'Q'에는 신지가 멘붕에 빠져 러닝 타임 내내 자신의 마음을 안으로 안으로 갉아 먹을 만한 사건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서드 임팩트와 동시에 스스로 각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제 3의 소년 신지는, 이런 일들로 이전처럼 한 없는 림보에 빠지지 않는다. 잠시 충격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빠르게 실행에 옮긴다. 이런 신지에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큰 도움이자 위로가 되는 존재는 바로 카오루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이러한 역할(신지를 위한)로 규정하고 있는 카오루 답게, 이번 작품에서 카오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만약 신지가 14년이 지난 뒤 네르프가 아닌 미사토와 아스카가 있는 뷜레에 남았더라면 이 보다 더 큰 정신적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지는 또 다른 레이라 불리 우는 이로 인해 네르프로 오게 되었고, 그를 기다리던 카오루와 만나게 된다.


신지와 카오루의 만남에서 '에반게리온'의 가장 큰 테마이자 사실상 단 하나의 테마인 마음과 마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신극장판 '서'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카오루와 신지의 피아노 연습 장면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습 이라기 보단 그냥 연주 정도겠지만) 흡사 신지와 아스카의 싱크로율 테스트 과정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여기서 'Q'는 마치 기존 TV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스타일의 편집과 영상을 보여준다. 마치 실사와 이미지가 교차되는 듯한 분위기의 장면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 중의 카오루와 신지의 대사는 그야말로 핵심을 꿰뚫고 있다. 이는 TV시리즈에서 내내 다루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연주를 한다는 것, 연주를 잘 한다는 것에 빗대어 카오루는 다시 한 번 각성한 신지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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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앞서 언급한 갈등 지점이 다시 등장한다.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았던, 그러니까 나만 잘하면 나도 좋고 세상도 구하고 다 좋을 것만 같았던 행동이 문제가 되고 만다. 그 과정 속에서 아스카와 미사토로 대표 되는 뷜레와 원치 않는 싸움을 해야 하고, 신지와 마음을 나눈 유일한 친구인 카오루는 신지가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고 만다. 신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큰 충격과 고난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스스로도 답답했던 자아를 이겨내고 드디어 레이를 구해냈다고 생각했는데 레이는 있지만 구해낸 것 같지는 않고,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자신이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 여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동료들을 냉정한 적으로 만나야 했으며, 그 사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인 카오루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마저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이 보다 더 가혹한 운명이 어디 있으랴. 신지 입장에서만 보면 포스 임팩트의 발발보다도 카오루의 죽음이 더 큰 사건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충격은 고스란히 이후의 얼빠진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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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그러했지만 'Q'에서 레이는 존재하지 않고 아스카 역시 비중이 줄게 되면서 온전히 신지 중심의 이야기가 되었다. 각각의 갈등과 스토리가 있었던 TV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다. 이전에는 신지는 물론이고, 레이, 아스카, 카오루, 미사토, 겐도 심지어 카지까지 자신 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는데, 신극장판에서는 특히 'Q'에서는 완전한 신지 중심의 이야기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을 텐데, 이미 TV시리즈를 감상한 팬들에게는 더 이상 각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캐릭터의 성립이 충분하기 때문이며, 기존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과도 함께하고자 했던 신극장판의 목적 성에 부합하는 구조이자, 극장판이라는 포맷의 한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모든 요소들을 재쳐 두더라도 결국 신극장판으로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라면 신지의 이야기로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사골게리온이 다음 편 극장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Q'에서의 신지는 또 한 번 가혹한 롤러코스터에 놓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장면은 완벽하게 루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시 한 번 아스카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나게 되는 신지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신지의 운명이 말이다.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되었던 (하지만 그것이 너무 나도 힘겨웠던) 이전과 신극장판의 신지의 운명은 이렇게 다르다. 신극장판에서 신지의 운명은 좀 더 자신의 운명 그 이상의 것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즉, '에반게리온'의 중요한 테마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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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에 가서 신지의 운명을 어떻게 가져갈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를 선사할 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에 앞서 아무리 생각해도 신지의 운명은 너무 도 가혹하다. 결국 안노 히데아키가 신지라는 자아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모든 소년, 소녀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정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신극장판에서도 어른이 될 수 없는 혹은 되지 않는 소년, 소녀들을 등장 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4년 동안 잠들어 있어 세월을 빗겨나간 신지, 에바의 저주에 걸려 역시 나이를 먹지 않은 아스카, 복제를 통해 영원한 소녀로만 존재하는 레이, 그리고 역시 소년으로만 존재하는 카오루와 소년, 소녀 이후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 토우지를 비롯한 같은 반 친구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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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류보완계획'을 비롯해 수많은 이른바 떡밥을 풀어놓았던 '에반게리온'은 이번 'Q'에서도 어느 정도 그런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극장판의 존재 자체가 떡밥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루프설 등) 신극장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떡밥에 대한 풀이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의미가 있도록 그 본질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이 신극장판이고, 이는 신작이 거듭될 수록 그렇다는 생각이다. 혹자들은 TV시리즈에서 잔뜩 풀어놓았던 떡밥들을 신극장판이 해소 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의혹만 가중 시키거나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어 아쉬워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신극장판에서 안노 히데아키는 여기에 별로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 점이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쉽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쪽에 가깝다.


'에반게리온' TV시리즈와 극장판, 신극장판을 여러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결국 이 이야기는 미스테리나, 복잡한 설정과 떡밥들의 풀이 (물론 그것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라 AT필드로 표현되기도 하는 마음과 마음,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 들 말하는 신지의 '찌질함'은 어디서 오는가? 왜 수도 없이 본인에게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고, 혹은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 하는가?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렇듯 '에반게리온'을 두고 누군가 정신 착란이라고 했던 것처럼 이러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그 끝까지 가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과정은 깊어질 수록 가혹하고 아프기 마련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과연 안노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든다. 이미 안노 히데아키 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에반게리온'의 이야기를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에반게리온 : Q'는 '에반게리온 :ll '를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 같은 영화였다. 어쩌면 '에반게리온 :ll '는 맨 처음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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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 Q'는 아무래도 신극장판 마지막 편이 나온 뒤에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림이 있다는 것 자체를 그리워 할 수년 뒤를 미리 떠올려 보며 천천히 기다려 보련다.



1. 처음 'Q'를 보면 '파'가 보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가 더 보고 싶어지더군요. 아예 '서'부터 쭉 다시 봐야겠어요.


2. 전 카오루와 신지의 므흣한 관계가 남남이라는 성별로만 규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는 생각하지만 (그냥 존재와 존재로서), 그렇다 하더라도 카오루의 표정과 말투, 몸짓 하나 하나는 움찔 움찔 하게 만들더군요. 인정!


3. 다시 말하지만 '에반게리온 : Q'는 극장 상영에 최적화 된 작품입니다. 시네마스코프의 영상은 집에서는 그 만족감을 재현하기 어려워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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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쉬타카 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존댓말로 인사 드리는 이유는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 한 가지 소식을 전하고자 입니다. 아마도 평소 제 블로그 글을 읽어주시던 독자 분들은 대부분 좋아하시는 작품일텐데요,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바로 '에반게리온 : Q' 국내 개봉과 관련한 소식입니다.


이미 기본적인 개봉 소식은 접하셨을텐데요, '에바 Q'와 관련하여 제가 부족하지만 명예홍보위원단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v



http://evangelion-q.co.kr/pop01.html


뭐 저야 에바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이니까 홍보위원단으로 선정되지 않아도 열심히 했겠지만 (훗..) 이렇게 공식적으로 홛동하게 되었으니 좀 더 기존의 리뷰 방식이 아닌 정보 형태의 소개나 미리 접할 수 있는 소식들도 제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국내 개봉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지난 12월에 일본에 가서 '에반게리온 : Q'를 보고 왔었는데요, 그 동안 에바 Q에 대해 더 많은 분들과 얘기하고 싶어 근질근질 했었는데 이제 슬슬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기대가 됩니다.




일본 현지에서 본 에반게리온 : Q (스포일러 없음)

http://www.realfolkblues.co.kr/1731



앞으로 제 블로그를 통해 곧 개봉할 '에반게리온 : Q' 관련한 소식은 물론, 기존 에바 시리즈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들까지 조금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더불어 국내 개봉에 맞춰 진행되는 공식 이벤트들과 시사회 초대 같은 이벤트들도 소개해 드리거나 직접 진행도 될 예정이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어제도 2박 3일 일정으로 도쿄에 다녀왔었는데, 에바 관련한 아이템들을 또 여럿 질렀습니다.... 이건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께요 ㅎ


마지막으로 기존에 제가 썼던 에바 관련 글들 소개하면 마칩니다.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각 글의 제목을 클릭하면 본문으로 연결됩니다~)


에반게리온 해독 _ 에바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

2010 일본여행 #3 _ 진짜 에반게리온을 만나다

에반게리온 : 파 - 블루레이 오픈 케이스

내 책상위의 AT필드 (에반게리온 초호기 피규어 오픈케이스)

에반게리온:파 (破) _ 전율의 미완성

에반게리온 서(序)와 파(破) 사이에 숨은 그림 찾기 (+프리미엄 시사회 스케치)

에반게리온 포토북3종 + 초호기 피규어 살짝 인증샷

에반게리온: 서(序) (Evangelion:1.0 - You Are (Not) Alone)

왜? - part 1 _ 신세기 에반게리온 (Neon Genesis Evangelion)

왜? - part 2 _ 신세기 에반게리온 - 단어연구 (EVA Lexicon)

왜? - part 3 _ 신세기 에반게리온 - 사도 (司徒)

왜? - part 4 _ 신세기 에반게리온 - 이카리 신지 (碇シンジ)

왜? - part 5 _ 신세기 에반게리온 - 아야나미 레이 (綾波レ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부도리의 꿈 (グスコーブドリの伝記, 2012)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부도리의 꿈 (グスコーブドリの伝記, 2012)'에 끌리게 된 것은 미야자와 겐지라는 이름과 고양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었다. 미야자와 겐지는 잘 알다시피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된 '은하철도의 밤'를 쓴 작가로 유명하고 개인적으로도 '은하철도 999'는 물론 '은하철도의 밤'도 인상적으로 읽었기에 이 작품 '부도리의 꿈'에도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었다. 온통 더빙 판 밖에 상영하는 곳이 없어서 어렵게 자막판 상영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부도리의 꿈'은 2012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클래식한 화법과 영상으로 채워진 독특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이었다. 판타지를 담은 듯 하지만 결국에는 '은하철도의 밤'이 그러했듯이 근본적이고, 특히 대지진 이후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부도리의 꿈'은 별로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특히 후반부 클래이맥스 부분은 삭제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생략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더빙판은 삭제된 분량이 있으나 자막판은 없다), 이를 비롯해 몇몇의 내러티브는 논리적으로는 헛점이 많고, 도대체 부도리는 동생인 네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에는 전체적으로 커다란 슬픔과 위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본래 인간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로 변경한 것이나, 더할 수 없이 처절한 상황에 놓인 부도리의 상황을 판타지와 판타지에 가까운 현실로 풀어나간 것은 영화가 바라보는 위로의 시선이 느껴지는 지점이라는 얘기다. 사실 영화 속 부도리와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도저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어린 부도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상황이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다룰 때 그럴 수록 부도리의 편에서서 부도리가 이 어려움을 해쳐나가기를 응원하고 돕지만, 이 영화가 선택한 방식은 어쩌면 어린 부도리가 이 상황을 잊을 수 있도록 망각이라는 장치를 제공하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단락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다시 생각해보면 동생인 네리는 이름모를 이에게 납치된 것으로 나오지만, 어쩌면 납치된 것이 아니라 납치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부터 부도리의 꿈이 발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배고픔을 이야기하던 네리가 '이제 배고프지 않아'하는 순간부터 어쩌면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것. 최악의 기근을 해쳐나가기 위해 집을 나가버린 부모님 때문에 어린 동생과 남겨진 부도리에게, 하나 밖에 없는 네리의 죽음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후 부도리는 어쩌면 결코 찾을 수 없는 네리를 찾기 위해 환상을 꾸게 된 것은 아닐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동생을 아끼던 부도리의 행보라고 보기엔, 아무리 부도리 역시 아이라고 하더라도 이후 그가 겪는 일들 가운데 네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이미 기근이 오고 부모에게 버려졌을 때 부터 부도리는 꿈을 꾸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놓여졌다는 걸, 영화는 부모의 마음으로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후 부도리는 여러 사람들과 장소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관계를 맺어가지만, 그 과정들이 발전적이라거나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애잔해 보이는 일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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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클래이맥스에 왔을 때 부도리는 조금은 갑작스런 선택을 내린다. 그리고 영화는 이 부도리의 선택을 위로하듯 노래를 한 곡 들려준다. 그리고 이 순간 영화는 부도리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듣고 있던 관객들 (특히 일본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부도리의 이야기와 이 곡을 듣는 순간, '아, 이 영화는 확실히 메시지가 강한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대지진을 겪은 이후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해, 자신과 같은 일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는 부도리의 전기를 보여주며, 주변을 위로하고 함께 무엇이든 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영화가 결코 세상을 구하려는 한 작은 소년의 영웅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거창한 영웅담으로 보기엔 부도리가 누군가를 구하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부도리를 더 위로하게 되는, 그런 안쓰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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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 구스코 부도리의 목소리는 오구리 슌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2. 국내 홈페이지가 아주 잘되어 있네요. 볼거리가 많네요 budori.co.kr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있습니다.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워즈'를 만든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늑대아이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2012)'를 보았다. '시달소'와 '썸머워즈' 모두를 인상 깊게 본 입장에서 그의 신작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처음 포스터가 공개되고 예고편을 보게 되면서 그 기다림을 더 깊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늑대인간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즉, 판타지에 더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그냥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진심으로 크게 당했다. 결국 호소다 마모루는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쓴 '어머니의 노래'를 바탕으로 이 세상 어머니들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함을 '늑대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빌려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작품은 '늑대아이'가 되었다. 올해가 다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몰입도가 대단했는데, 왜인지는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정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초반 전개서부터 계속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머니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주인공 '하나 (花)'가 어머니가 되기 전 장면에서부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이미 올라와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픽사의 '업 (Up)'이 초반부에서 이미 관객을 펑펑 울렸던 것에 비할 정도였는데, 이 감정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가 후반부에 가서 다시 끓어오른 것이 아니라, 이 때부터 끝날 때까지 러닝 타임 내내 감정선이 유지되어 글썽였다는 것이 '업'과는 다른 점이었다. 영화는 본격적으로 하나가 어머니의 삶을 살게 되는 시작 시점에서 별다른 대사 없이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일련의 순간들을 그려내는데, 아... ㅠㅠ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유키와 아메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그 근원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보편적인 이야기다. 보편적이지만 위대한 이야기. 정말 천방지축으로 말썽을 부리는 유키의 어린 모습, 숫기가 없어서 본인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아메의 모습, 늑대인간인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들을 피해 인적드문 시골에서 어렵지만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하나의 모습, 이후 유키와 아메가 각각 겪게 되는 다른 이야기는 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과 잘 맞닿아 있지만 늑대인간 이야기를 빼더라도 성립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자 모든 어머니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 만의 길을 택하게 되는 유키와 아메의 모습은 모든 아이들이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하나의 마음, 더 중요한 어머니의 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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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키가 아팠을 때 소아과를 가야할지 가축병원에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에서 전혀 코믹함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여기서 중요한 건 두 병원 사이에 놓인 늑대인간으로서의 유키가 아니라, 아픈 아이를 두고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늑대와 인간 사이를 마음껏 오가는 어린 유키를 학교에 보내는 하나의 마음 역시, 처음 내 품에서 처음 벗어나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메가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 했을 때 하나가 느낀 심정 역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실 말로는 이런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 하는 건 체감하기 어려운데, '늑대아이'는 처음부터 워낙 깊게 빠져있어서인지 이런 클리셰에 가까운 장면들에서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내내 울면서 보다시피 한 것은 역시 태풍이 몰아치던 날의 장면이었다. 하나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과정을 겪게 되는데 바로 아메에 관한 것이다. 이미 인간보다는 늑대의 세계에 더 빠져있던 아메는 태풍이 몰아친 그 날 말없이 숲 속으로 향하는데 이런 아메를 찾기 위해 하나는 정말로 큰 역경을 겪는다. 보통 같으면 왜 기다리는 유키를 데리러 가지 않고 아메를 (끝까지) 찾기 위해 죽음에 문턱까지 겪으면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하나를 아메가 집으로 데리고 온 뒤의 장면에서 조금이나마 하나의 마음을, 호소다 마모루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하나는 엄마가 되면서부터 계속 어떻하면 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어떻하면 늑대아이를 어른으로 키울 수 있을지 난감해 했었는데, 하나는 아메가 바로 그 어른이, 자신의 품을 떠나서도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본인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아메를 끝까지 찾아 헤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가족을 떠나 산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를 닮아있는 아메를 산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은 정말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떤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키워낸 아메인지를 알기에, 그런 아메를 떠나보내기엔 아직 하나에겐 너무 이르다는 것도 잘 알기에 이렇게 '건강하라'며 떠나보내는 하나의 외침은 정말로 감정이 터져나올 수 밖에는 없었다. 모든 어머니들은 이런 삶을 살아왔구나해서....



(스포일러 끝)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늑대인간'이라는 특수성에 더 기반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랬었기에 이 본편적 진리의 이야기에 더 무방비 상태로 눈물을 빼았겨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근본에는 그 동안 지겹게 들어왔던 어머니의 삶에 대해 비로소 '아!'하며 '아...엄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ㅠㅠ'하고 깨달을 수 있었기에 뭉클했었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나가 어머니가 되기 전 일상을 담은 장면에서부터 무언가 감정이 일어났던 것처럼, 영화 내내 호소다 마모루의 마법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면 하나 하나에 눈물이 섞여 나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런 어머니의 삶에 대해 와닿는 부분이 적은 상황이었음에도, 작은 일상에서부터 이 정도로 감정이입과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아직도 머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감정이입을 잘하고 감정적으로 쉽게 빠져드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나임을 감안하더라도 '늑대아이'가 주는 감동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나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알게 될까? 내가 지금 느낀 이 감동이 정확히 무엇 때문이었는지. 혹은 나중에 나도 유키와 아메 같은 내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 알게 될까? 이유도 잘 모른채 내게는 너무도 큰 슬픔과 감동을 전해 준 작품이었다.



ⓒ Studio Chizu. All rights reserved


1. 요 근래 이 정도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극장을 나올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감정선이 유지되고 있고, 유키와 아메를 두 손으로 안고 있는 하나가 그려진 포스터만 봐도 울컥할 정도네요 ㅠㅠ


2. 다른 분들에게는 아마도 아닐 듯 한데, 저에게는 '시달소'나 '썸머워즈'보다 더 좋았던 것은 물론, 올해 남은 기간 동안 무슨 영화가 더 나오더라도,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보다 더한 감동을 전해주거나, 피터 잭슨이 빌보 이야기로 포로도 얘기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해줄지라도, 제게 있어 올해의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가 될 것 같네요 (에바가 나온다면?)


3. 집에 오자 마자 이 주제곡만 무한 반복하고 있어요 ㅠㅠ 바로 HMV에 사운드트랙 주문까지 ㅠㅠ





4.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이 영화가 또 남다르게 다가왔던 것은 하나가 시골에서 살게 되는 것 때문이었어요. 귀농 아니면 귀촌을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로서는, 시골에서 다시 시작하다시피 하는 하나 가족의 일상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군요.


5. 빨리 블루레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아니, 그 전에 극장에서 더 봐야겠어요.


6. '하나' 목소리는 미야자키 아오이가 연기했는데, 제가 미야자키 아오이에 대한 언급을 한 줄도 안했을 정도로 영화에 푹 빠졌었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tudio Chizu 에 있습니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ももへの手紙, 2011)

부치지 못한 편지



'인랑 (人狼, 1999)'을 연출했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ももへの手紙, 2011)'을 뒤늦게 보았다 (원제를 해석하자면 '모모의 편지' 정도).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서운게 예전에 다른 애니메이션에 관한 글을 쓰면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지만, 이 영화를 개봉 당시 선택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우습게도 요괴가 정이 안가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 참 말도 안되는 이유인데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요괴들은 일본 토속적인 모습들을 하고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리 와닿지 않는 터라 볼까 말까 하던 중 결국 나중을 기약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나중이 된 지금에야 보게 된 작품은, 역시나 요괴들의 비주얼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찡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 Production I.G. All rights reserved


사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비슷한 설정의 작품들에서 이미 보아왔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즉, 영화가 시작하고 아버지의 부제로 엄마와도 갈등을 겪는 어린 소녀가 외딴 곳에서 홀로 지내게 되는 가운데, 요괴들을 만나게 되어 벌이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에서 기대하고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그대로 전개된 작품이었다. 캐릭터들 역시 새롭다기보단 이런 이야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정형화 되어 있었고, 이야기 전개 과정 중 색다른 볼거리나 이슈도 사실상 없었다.


그런데 예상되었던 그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이건 눈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신파에 가까운 전형적인 줄거리임에도 그 과정 속에서 관객들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심지어 '여기구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흘러갔음에도 눈물과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 Production I.G.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선택한 딸과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지의 관계에서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콘택트'가 떠올랐다. '콘택트'는 여러모로 내 인생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인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펜사콜라'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펜사콜라 장면에서 있어서 '콘택트'라는 영화가 위대해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의 그 편지 장면은 그 정도로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된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 내내 소중히 다뤄온 딸과 아버지의 감정을 아주 담백하게 표현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 Production I.G. All rights reserved


줄거리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고 주려는 감동의 포인트도 예상되었던 터라 글로써 풀어내기엔 그리 할 말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모의 이야기 자체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아, 그리고 글의 서두에 밝혔던 것처럼 처음에는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했을 정도의 문제였던 요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살짝 그리워졌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대신할 수 있을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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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roduction I.G 에 있습니다.


 





컬러풀 (カラフル Colorful, 2010)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확실히 선입견은 무섭다. 하라 케이이치의 전작 '갓파쿠와 여름방학을'은 포스터의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조금의 아동스러움 때문에 내 취향이 아닐 거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관람을 하지 않았으나 뒤늦게 들려온 평들이 '초감동'이었던 전례를 보았을 때, '컬러풀' 역시 그림체와 마찬가지로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대략적인 이야기 전개에 굳이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포기할 뻔 했던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이 두 작품의 감독이 동일인 임은 '컬러풀'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포스터에서 느껴진 이른바 '뻔한' 전개라는 것이 죽음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후 세계)을 겪게 된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었는데, 넓게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으나 역시나(?) 그 가운데 다시 한번 나로하여금 울컥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확실한 작품이었다.



ⓒ 키노아이.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사후 세계를 맞이한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가기 전 다시 한번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주인공은, 프라프라의 말처럼 일종의 홈스테이 개념으로 다시 누군가의 삶을 잠시 살아가게 된다. 주인공이 기회를 얻게 된 몸의 주인공은 고바야시 마코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소년이다.


'컬러풀'은 마코토로 잠시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생존, '살아라'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후세계에서 다시 한 번 환생의 기회를 얻은 주인공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니, '살아라'라는 주제가 너무 일반적이거나 혹은 신파로만 흐르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담는 데에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마코토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이유를 묘사하는 것에서 일본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들고 있는데, 10대 소녀들의 원조교제, 교내 왕따, 부모의 바람(불륜)으로 인한 문제 등 마코토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심하게 이야기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삭막한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 키노아이.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컬러풀'이 더 좋았던 건 문제점을 묘사하기 위해서만 현실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역시 현실의 것들을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마코토라는 소년에게도 본인 스스로에게도 적응하지 못하던 주인공이 처음 같은 반 친구를 사귀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같은 반 친구는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던 마코토에게 처음 먼저 말을 걸어온 친구라는 점을 넘어서서, 그의 취미를 마코토가 따라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영화의 메시지가 시작되는데, 바로 오래된 일본의 전철들의 역사와 발자취를 현실에서 따라가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잠깐 멈칫 할 정도로 영화의 국면이 전혀 다른 양상을 띄게 되는데, 흡사 일본 전철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한참을 이 오래된 것에 주목하던 영화는 나중에 가서야 왜 여기에 주목했는지 친구의 말을 통해 들려준다. '이렇게 오래된 것들도 내가 관심을 가져주면 생명을 얻게 되는 것 같다'라는 말로. 사실 조금은 이질감마저 줄 수 있는 다른 이야기였음에도 처음부터 그 감성적인 영상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는데, 마지막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영화의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가슴 속에 깊이 박혀버리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 키노아이. All rights reserved


'컬러풀'의 영상은 앞서 이야기한 다큐멘터리 같이 거의 실사에 가까운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 외에도, 상당 부분의 배경들이 실사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감독이 말하려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더 강하게 해주는 장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주인공이라는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영화는 '살아라'라는 메시지 역시 판타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 갖가지 현실의 환경과 이야기들을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 있었던 역사를 그렇게 한참이나 설명했던 것이고, 치킨과 호빵 한 조각에 즐거워 할 수 있는 삶의 행복을 여과없이 중요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라고 영화가 관객에게 물었을 때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 키노아이. All rights reserved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

나는 이 소중한 삶을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나요?



1. 미야자키 아오이가 목소리 연기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극 중 마코토를 주시하던 그 소녀 '사노 쇼코' 역할이더군요. 이걸 알고 나니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


2. 미야자키 하야오가 (1번과 라임 맞추는거 아님 -_-;) 말하는 '살아라'의 메시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살아라'였어요. 뭉클하기로는 '컬러풀' 쪽이 더.


3. 블루레이로도 발매되면 좋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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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쿠리코 언덕에서 (コクリコ坂から, 2011)

직설적이어서 부담스러운 메시지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1년 신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보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전작 '게드전기 (ゲド戦記, 2006)'를 연출했던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한 작품으로서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게드전기'가 물론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브리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경우인 정도라고 관대한 평가를 하기도 했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그보다도 더 아쉬운 작품이었다. 여러 평가들이 '게드전기'보다는 나아간 작품이라는 평이 더 많은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인 동시에 주제를 둘러싼 이야기의 연관성이 깊지 못하고 더불어 21세기에 즐기기에는 너무 올드 풍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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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본 사회,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시작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이 시대적 배경에 영향을 받고 자란 소년 '슌'과 소녀 '우미'가 있다. 이 둘의 러브 스토리는 나이답게 풋풋함이 서려있지만, 그 배경을 둘러싼 시대와 영화의 메시지가 이들에게 너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뭐랄까, 슌과 우미는 순수한 소년 소녀이지만 시대가 만든 아픔으로 인해 일찍 성숙함을 배워야 했던 것은 물론, 이 가운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마저 짊어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짐을 진 듯 한 모습이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얘기해보자면 결국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계승하자는 것과 더 나아가 60년대를 살았던 일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당시의 젊은이들에게서 배우자 라는 이야기가 될 텐데, 이 모든 짐을 풋풋한 러브스토리만 이끌기에도 벅찬 소년 소녀에게 전부 맡겨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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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느 정도까지 관여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스텝롤에 나온 역할 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얘기),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메시지 전달 방식은 기존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여주었던 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주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배경 묘사를 통해 영화를 깊이있게 볼 수록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구성하거나, 아니면 매우 직접적인 은유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대와 배경, 판타지와 현실과는 무관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해 왔었는데, 이번 작품의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는 이러한 영민함 보다는 홍보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직선적인 느낌을 받았다. 특히 극 중 고등학교 동아리 건물 철거를 둘러싼 학교의 이야기는, 슌과 우미의 러브스토리 측면으로만 보자면 없다하더라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약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데, 영화는 이 학교를 둘러싼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두며 메시지 전달의 활로로 이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점이 이 영화를 더욱 풋풋하고 은은한 지브리다운 러브스토리로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가장 아쉬운 점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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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극 중 등장하는 깃발의 의미처럼, 숨겨둔 신호로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은한 방식이었다면, 그것이 아니라면 소년 소녀의 러브스토리 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져야만 했던 그 세대의 이야기와 그들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확실히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에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면'을 연상하며 전자의 기대를 했었기에 너무도 직접적인 이 영화의 방식에 조금은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일본인들이 보기에는 60년대 일본을 추억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아 이런 불편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론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어떤 감성을 담으려고 했는지 의도는 알겠으나 그 것이 가슴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던 아쉬움이 남는 지브리의 첫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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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저도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이른바 '지브리빠'인데, '게드전기'도 재미있게 본 저인데, 이 작품은 극장을 나오며 아무런 뭉클함이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2. 물론 조각조각 좋은 장면들은 여럿 있었어요. 또 급하게 공감해서 울컥한 장면도 없지 않았구요.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았다는게 결국 이 작품을 아쉬운 작품으로 결론짓게 한 이유인 것 같네요;

3. 극 중 수록된 음악들의 분위기는 참 묘합니다. 60년대 일본과 잘 어울리는 동시에 미국의 예전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도 자아내거든요 (어쩌면 둘이 같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서도).

4.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DVD나 BD를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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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 (星を追う子ども, 2011)

나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여정



'별의 목소리 (2002)'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4)' '초속 5cm (2007)' 등을 통해 팬덤을 확고히 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별을 쫓는 아이'를 다행히(?) 극장에서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위의 작품들과 더불어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999)'까지 모두 인상 깊게 보았을 정도로, 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들 중에서도 손 꼽는 감독이기도 해 '별을 쫓는 아이'는 제작이 결정된 시점부터 매우 기대되고 기다렸던 작품이었다. 먼저 공개된 장면들에서 알 수 있었듯이,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지브리스러운,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작동화 풍의 작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단순히 작화 측면을 떠나서도 메시지와 세계관에서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색채가 느껴진 반면, 많이 다른 옷을 껴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신카이 마코토만의 색깔과 메시지 역시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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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별을 쫓는 아이'의 배경은 '아가르타'라는 판타지의 세계다. 기존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서도 판타지스러운 설정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배경으로 사용되는 정도거나 오히려 과학으로 보기에 더 충분한 부분이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는 단순히 배경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판타지의 세계관이 짙게 깔려있는 경우다. 인간 세상의 주인공들이 아가르타로 우연히 빠져들게 되어 벌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들 인간들 역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크게 보았을 때 이 판타지 세계관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고대의 신화와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렇듯 판타지적인 색채가 가미되면서 더더욱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화나 표면적 세계관 보다는 오히려 메시지 적인 측면에서 더 지브리와 닮아있는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특히 두 주인공 아스나와 신의 캐릭터를 보면 지브리 세계 속 캐릭터들과 많은 닮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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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짧게 등장하는 슌의 경우는 크게 얘기할 만한 부분은 없지만 (물론 그의 짧은 아우라에서는 하울의 포스가 풍기긴 했다), 그의 동생인 신의 경우는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인 아시타카와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신 역시 인간 세계와 지하 세계의 중간자적 역할을 (결과적으로) 맡게 된다는 측면을 들 수 있을텐데, 물론 아시타카 처럼 이런 중간자적 성향이 스스로 몹시 강하다기 보다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차 그런 성향을 스스로도 발견해 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어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신 의 많은 부분은 아시타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특히 그가 마을을 떠나는 시퀀스를 보자면, 일족의 원로의 모습이라던가 마을 어귀에서 신을 기다리는 여자 아이의 모습 등은 '모노노케 히메'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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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를 좋아하고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을 신봉하면서도 '별을 쫓는 아이'가 초반부터 와닿지 않았던 점은, 바로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었다면 '게드 전기'도 그럭저럭 최악으로는 감상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 작품 역시 괜찮다 싶은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여러 면에서 이 작품은 '게드 전기'를 떠올리게도 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기대하는 바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느꼈던 강한 매력과 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의 신카이 마코토 1인이 모든 영역을 소화하는 능력과 구성 자체도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 보다는 어떤 시공간과 판타지가 배경으로 등장하건 간에 이런 모든 것들을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매력적인 도구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강력하고 절절한 이야기와 사랑, 그 자체에 있었다. 특히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cm'에서 보여준 그 절절하다 못해 OST의 한 자락만 흘러나와도 금새 눈물이 핑도는 러브 스토리는, 신카이 마코토 라는 감독을 깊이 각인시키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 그의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애절했던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본 나의 추억을 강하게 끄집어낸다는 점이다. '초속 5cm'가 절절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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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는 아이'의 초반에서는 이러한 그 만의 장점이 잘 드러났다기 보다는 판타지 장르의 익숙한 설정들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에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 수록 그 안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애틋함의 힘이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함께 가슴을 저밀 수 있었다. 결국 '별을 쫓는 아이'가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모노노케 히메'와 마찬가지로 '살아라'라는 것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을텐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의 야심이 확인되는 부분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서 주를 이룬 갈등과 애절함의 대상은 남녀 간의 사랑이 깊었었는데, '별을 쫓는 아이'는 그것보다는 존재와 존재간의 관계와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더 심오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판타지 세계관을 적극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판타지라는 겉옷을 너무 두껍게 챙겨입은 터라 신카이 마코토가 본래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가 관객에게 미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너무 거대한 세계관을 가져온 탓에, 그간 거대하기 보다는 소소함과 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던 그의 이야기가 빛을 발휘하기에는 살짝 부촉한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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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별을 쫓는 아이'는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판타지 모험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또 다른 절실함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작품은 좀 더 가슴을 저미게하여 사운드트랙의 메인 테마만 살짝 흘러도 어쩔 줄 모르게 되는 작품이었으면 더 좋겠다.



1.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하면 기대되는 하늘의 묘사는 역시나 반갑더군요. 그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정지된 이미지로 주는 깊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2. 따지고보면 '별을 쫓는 아이' 역시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그 여정 속에서 나를 인정하고 변화시키는 (혹은 놓아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런 점이 극대화된 후반부가 어쩔 수 없이 눈물 나게 했던 것 같아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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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아낸 괴이물


'바케모노가타리 (괴물이야기)'는 일본의 소설가 니시오 이신이 2006년 고단샤 (株式會社講談社)를 통해 연재했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신보 아키유키 감독이 연출을 맡고 샤프트 (SHAFT Inc)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주인공 '아라라기 코요미'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인물들에 각각 관련된 괴이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하렘물(한 남자가 여러 여자 캐릭터에게 둘러 쌓인 구조를 담은 작품)의 구성과 괴이물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는 독창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니시오 이신의 원작에는 이 작품 외에 '키즈모노가타리'와 '니세모노가타리'가 있는데, '키즈모노가타리'는 이 작품의 이전 이야기에 해당하는 아라라기와 하네카와 흡혈귀 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니세모노가타리'는 오시노 메메가 마을을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 가운데 첫 번째 애니메이션 화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근본적으로 괴이물의 미스터리 한 요소를 담고 있다. 주인공 아라라기 코요미는 각각 다른 괴이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이야기와 갈등 구조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이 '바케모노가타리'의 기본 구조다. 센조가하라 히타키, 하치쿠지 마요이, 칸바루 스루가, 센고쿠 나데코, 하네카와 츠바사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는, 각각을 독립적인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 캐릭터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진행된다. 하지만 각 남자 주인공인 아라라기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도 느슨한 관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바케모노가타리'를 깔끔한 구성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한편, 각 캐릭터에게 개성을 부여해 줌으로서 더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또한 스타일리시 한 화면구성을 빼놓을 수 없겠는데, 실사 화면과의 다양한 결합은 물론, 하나의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굉장히 자유롭게 화면을 분할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영상미를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정지 텍스트 이미지를 통해 빠른 전개와 더불어 자신 만의 색깔을 확고히 하고 있다. 실사와의 결합 부분이라던가 정지 텍스트가 등장하는 부분은 이미 안노 히데아키의 걸작 TV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훨씬 더 다양하고 요즘에 맞게 세련된 이미지를 수록하고 있다. 단순히 볼거리로 이런 요소들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잡도록 만들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만큼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 들고 있다.





얼핏 보면 '바케모노카타리'를 단순한 캐릭터 물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괴이물에 근거하여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각 캐릭터들은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에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장점들을 갖추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가 되지만, 여기에는 캐릭터 적인 장점 외에 그 캐릭터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갈등을 마음으로 풀어내는 과정에 집중하면서, 바로 이 갈등과 해결이라는 근본적 재미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설명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바케모노가타리'는 분명 취향을 타는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은 앞서 국내에 출시되었던 애니메이션 블루레이인 '아프로 사무라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바케모노가타리'는 그야말로 오타쿠 문화를 바탕에 깊게 깔고 있는 터라 자칫 관리를 소홀하게 했던 이들이라면 극중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과 패러디, 단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백지 같은 상태로 즐기기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무리는 동반할 수 있을 정도의 스타일이 깊은 작품이며,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스타일이 불편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Blu-ray : Open Case






사실 '바케모노카타리'를 인상 깊게 본 이들조차 이 작품이 국내에 DVD도 아닌 블루레이로서 출시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한 이들은 없었을 텐데, 출시 자체에 한 번 놀라고 그 다음은 일본 판과 동일한 패키지로 출시된 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출시된 블루레이는 '히타키 크랩' '마요이 달팽이' 그리고 '스루가 몽키'가 먼저 출시되었는데, 3개의 타이틀 모두 클리어 아웃 케이스 패키지에 원작자 일러스트카드와 12p 해설집 그리고 OST를 포함한 특전CD가 수록된 버전으로 출시가 되었다. 매번 일본 판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만 했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더 없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Blu-ray 메뉴






Blu-ray : Picture Quality

1080p 풀HD 화질은 최신 애니메이션 작품답게 흠잡을 데 없는 레퍼런스급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작품에 특성상 시원시원한 화면 구성과 더불어 쨍 한 화질을 맛볼 수 있는 장면들과 다양한 효과가 더해진 장면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어 화질의 우수성을 마음껏 즐겨볼 수 있다. 디지털의 차가운 느낌과 구조적인 느낌의 영상은 확실히 블루레이의 차세대 화질에서 더 느낌이 잘 살아나는 편이다.

(스크린샷은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운드는 PCM STEREO만을 지원하고 있는데 제법 사운드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한 장면들도 있어 멀티 채널이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PCM스테레오 채널의 퀄리티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바케모노가타리'는 상당히 대사가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사 전달에 있어서 부족함 없이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간간히 흐르는 배경음악 전달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Blu-ray : Special Features

각 2장씩 총 6장의 디스크로 출시된 '바케모노가타리' 블루레이 1,2,3 타이틀에는 각각 거의 동일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단 특별한 음성해설 트랙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일반적으로 음성해설의 경우 애니메이션 작품이라 하더라도, 감독이나 목소리 연기를 한 성우들이 참여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바케모노가타리'의 음성해설은 이와 같은 방식이 아닌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진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음성해설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이 음성해설은 원작자인 니시오 이신이 직접 쓴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각 캐릭터가 마치 정말 배우인 것처럼 자신들이 나오는 본편을 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한편으로는 이 음성해설이 더 캐릭터적인 특성을 맛볼 수 있기도 할 정도로, 각각의 개성이 잘 묻어나고 있으며, 동시에 본편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팬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음성해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성해설 출연자 목록을 보면 '센죠가하라 히타키, 칸바루 스루가' '하치쿠지 마요이, 하네카와 츠바사'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밖에 특전 CD에는 각각의 주제가와 뒷이야기 완전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장편판+방영판 다음회 예고와 논크레딧 오프닝과 엔딩 영상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총평] '바케모노가타리'는 분명 취향 타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방영되던 그 해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작품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품을 떠나서 조금은 아쉬운 자막 번역 얘기를 언급하더라도, 비교적 비대중적인 애니메이션임에도 특전 CD를 비롯 다양한 부가물을 포함한 패키지로 출시되었다는 점은, 현재의 국내 시장을 고려했을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팬들이 비싼 금액을 지불해가며 해외 버전에 눈 돌리지 않아도 될 만큼, 국내에서 이와 같은 만족스런 블루레이 패키지를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래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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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시간 극장판 (イヴの時間)
안드로이드에 관한 감성적 단편


제 7회 JMEFF를 통해 만난 또 하나의 신작.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의 '이브의 시간'이다. 이 작품은 2008년 8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총 6화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재편집 및 제작한 작품인데, 일단 기존의 내용을 거의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조금 내용을 추가해 극장판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기존 판을 보지 못하였더라도 상관없을 정도다. 그렇게 보게 된 '이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다시 한번 '아시모프 로봇 3원칙'에 기인한 안드로이드의 정체성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있다. SF영화에서 지겹도록 그려진 이 주제를,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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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브의 시간'은 이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감성적이고 캐쥬얼한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단 혼자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서부터 감성적인 작화와 표현력까지, 요시우라 야스히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많이 닮아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 만의 감성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을 보고 있으면 신카이 마코토의 분위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브의 시간'을 보면서 느꼈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상당부분 게임적인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극중 캐릭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샷들은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와 같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화면 구성 느낌을 주고 있으며, 카메라가 이동하는 동선 역시 수 많은 롤플레잉 게임에서 보아왔던 삽입 동영상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영화 음악은 또 어떤가. 영화음악은 완벽할 정도로 게임 음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RPG를 많이 해본 이들이라면 단번에 느낄 수 있겠지만 '이브의 시간'의 음악은 그 악기의 선택부터 흐름까지 '완벽한' 게임음악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앞서 얘기한 장면의 게임스러움까지 더해지니 마치 감독이 조종하는 게임 '이브의 시간'의 리플레이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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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 로봇 3원칙'을 기본으로한 매우 정형화 된 안드로이드 물이지만, '이브의 시간'은 철학적인 고민 보다는 (물론 안드로이드를 논하면서 이런 고민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고민의 비중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정도) 감정적인 부분에 훨씬 더 비중을 두고 있다. 마치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지 않는 극 중 카페인 '이브의 시간'과도 같이, 리쿠오와 사미, 마사키의 이야기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마음과 마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안드로이드라는 형식적인 측면 만을 취한 느낌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로 '이브의 시간'은 마치 일본영화 '우리 개 이야기'와도 같은 반려동물과 인간과의 이야기로까지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애틋함이 느껴져 울컥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반려동물과의 관계마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의 갈피는,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화두를 다시 한번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던 SF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애초에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을 완전히 새롭게 선보이기 보다는 재편집을 통해 극장판으로 선보인 경우여서인지, 아무래도 조금씩은 끊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다 (물론 이건 의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시즌 1격의 이야기라는 점을 미뤄봤을 때, 엔딩 크래딧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후속편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려주기는 하지만, '이브의 시간 극장판'만을 두고 보았을 땐 조금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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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쩃든 '이브의 시간 극장판'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라는 익숙한 소재를 그리 지루하지 않은 터치로 풀어낸 작품이었으며,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같이 본 이와 '과연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라는 끝나지 않는 논제에 대해 또 한 번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니, 그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이미 후속편을 계획해 둔 작품으로서 시즌 2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 되느냐에 따라 '이브의 시간 극장판'의 의미도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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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Redline, 2010)
사이버 펑크 같지만 고전스러워


올해 신주쿠에서 영화를 보았을 때, 상영 전 인상적으로 본 예고편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고이케 타케시 감독의 신작 '레드라인 (Redline)'이었다. 이 예고편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이버 펑크스러운 작화와 자극적인 영상 그리고 예고편 내내 쿵쿵 거리게 했던 영화음악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곧 개봉이었지만 일정상 보지는 못하고 국내에 돌아왔는데, 메가박스에서 주최한 일본영화제 'JMEFF'의 상영작으로 선정되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작품에게 기대한 것은 예고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에너지'였는데, 확실히 그 에너지 하나 만큼은 제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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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은 기본적으로 레이싱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레이싱만에 관한 이야기다. 레이싱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승부 조작 및 배후세력, 레이서의 트라우마 그리고 불꽃튀는 결승전까지. '레드라인'은 이 이외의 것들은 건드리지 않는 제법 충실한 레이싱 영화다. 아, 물론 다른 레이싱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도 등장한다. 결승전 무대 겪인 '레드라인' (옐로우라인, 블루라인 등 다양한 대회에서의 우승자들이 최종적으로 레드라인에 참여하는 방식이다)의 장소로 이 레이싱 대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펼치고 있는 행성이 결정되면서 이들의 군사적인 (혹은 이를 넘어서는 가공할 만한 외부 요인의) 공격마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넓은 의미로 본다면 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다기 보다는 레이싱의 외부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더 맞겠다. 

'레드라인'은 무엇이든 과잉의 연속이다. 부스터를 쓸 때 자동차와 레이서가 모두 비상식적으로 늘어나는 장면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서 상식의 범위는 그리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해온 터라 이것을 문제 삼을 일도 없다. 또한 레이싱 영화의 전형적인 흐름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레드라인'에게 무언가 다른 그 이상의 레이싱 영화를 기대했다면 예상한대로 그대로 마무리 되어버리는 결말과 전개에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 작품의 미덕은 내러티브보다는 그 마초스러움의 뚝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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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JP (기무라 타쿠야)의 경우 이 세계관을 가장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극히 만화적인 동시에 마초적인 캐릭터로서, 그의 무모함은 멋지기 보다는 유치한 느낌이 들지만 희한하게도 마지막에는 멋진 이미지로 기억될 것만 같은 그런 캐릭터다. 이 작품이 만약 TV시리즈 같은 여러 작품으로 기획되었더라면 이런 레이싱이 가능한 세계관을 설명하고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 공을 들여 좀 더 사이버 펑크스럽고 우주 지향적인 작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단 한편의 극장판으로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이런 심플함과 무모하리만큼 밀어붙인 에너지가 더욱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확연한 '끝'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기에는 헛 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통쾌한 웃음이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진정한 쿨함이 바로 '레드라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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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보다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기무라 타쿠야나 아오이 유우, 아사노 타다노부 등 유명 배우들의 영향력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 연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번 JP는 목소리를 제외한 캐릭터가 너무 강한 탓에 반감된 느낌이 있었다. 

2. 마치 클럽에 온 듯 시종일관 극장 좌석이 들썩일 정도로 '쿵쿵' 거렸던 강한 비트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레이싱이라는 소재와 어울려 그 속도감을 잘 살려주고 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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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는 그 장면 #4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전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외면을 당했지만, 나에게는 앞선 작품들 만큼이나 아련한 (혹은 더 감정적인) 작품이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녀적인 감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며, 애틋함의 정서가 굉장히 직접적으로 드러난 따듯한 작품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그리고 리듬이) 완벽하다 못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버린 정말 마법같은 작품이었다.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들려준 왈츠는 아직까지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되었으며, 바로 오늘 '눈물나는 그 장면'에서 소개하려는 이 장면에서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 대원 C&A 홀딩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말미. 소피가 하울의 어린시절로 돌아가 켈시퍼와 하울이 계약을 맺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이 장면. 이 장면 소피가 문으로 들어가며 배경이 온통 검게 변하고, 저 멀리서 뿌옇게 하울의 아지트가 밝아올 때 흐르는, 그 음악에서부터 감정이 치닫기 시작하는데 하울에 대한 소피의 간절함이, 그 간절함이 미야자키의 연출로 승화된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이 코너 '눈물나는 그 장면'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다들 울고 감동받는 장면 외에 개인적으로 특히 더 슬프거나 유별나게 슬픈 장면들이 많은 편인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바로 이 장면도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에 남고 감정적으로 북받쳤던 장면이었다. 그냥 소피에게 흠뻑 동화되어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장면은 언제봐도, 그리고 언제 들어도 참 눈물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DVD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대원 C&A홀딩스 에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신촌 언저리에만 가도 반드시 가야할 곳이 되어버린 '북오프'에 어제도 예정없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예정이 없었다는 건 들어가는 찰나까지도 '그냥 구경만 하자' 였다는 것이죠;). 진짜 구경만 하려고 갔던 북오프. 진짜 갈 때마다 신기한 저의 매의 눈은 어쩌면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만 쏙쏙 골라내는지, 이번에도 몇몇 작품들을 쏙쏙. '카우보이 비밥 설정집'이나 '이누야샤 극장판 화보집' 등 찾고도 눈물을 머금고 선택하지 않은 아이템이 있는 반면, '바람의 검심' 올컬러 화보집 만큼은 그냥 올 수가 없더군요. 가격도 9,000원 정도 밖에 안하는 터라 바로 구입!




일단 표지 이미지부터 확 눈길을 끌었던 화보집은 아주 다양한 정보와 이미지들을 담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도 만나볼 수 있고.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분들의 '멀쩡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켄신을 본 분들이라면 화보집에 담긴 컷 하나하나를 그냥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올컬러라서인지 더더욱 몰입되고 추억되는 장면들이 가득했습니다.





화보집이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드네요. 사실 몇년 간 잊고 있던 켄신이었는데 이 화보집을 보니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ㅠ DVD출시 당시에도 한정판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타이틀이었는데, 어디 중고라도 찾아봐야 겠어요 (아, 중고 찾기가 더 어려웠던 켄신이었지 ㅠㅠ)



*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제작사인 Nobuhiro Watsuki 1998 에 있습니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이누야샤 (犬夜叉, 2000~2010)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犬夜叉)'가 지난 달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누야샤를 방영 때 부터 바로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작품과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수년이 되었다. 물론 이 수년 가운데는 이누야샤 없는 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제대로 된 마지막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잘 아다시피 완결편 이전에 이누야샤의 마지막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팬의 입장에서는 매우 힘빠지는 엔딩이었다. 무언가 아직 결말도 짓지 못한채 그저 '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라고 하며 마무리해버리는 TV판의 엔딩은 '이걸 기다려 말어'를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진짜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하는 아쉬움이 컸었다. 물론 여기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코믹스에 진행과도 연관이 있었던 듯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누야샤를 오로지 애니메이션으로만 접해왔었기 때문에 이렇게 마무리 되어버리는 방식에는 더더욱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리고 나서 수년 뒤에 다시 시작된 '이누야샤 완결편'은 이번에는 제대로 완결을 내주려나보다 라는 기대에서 시작되었고, 빠른 전개와 마치 극장판과 같은 전개들로 그 대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누야샤 완결편과 마지막 회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혼의 구슬과 함께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사혼의 구슬로 마무리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누야샤가 인간이 되길 소원으로 빈다거나 아니면 본래 계획대로 대요괴가 되도록 바란다건가 그렇지 않다면 카고메가 자신만의 소원을 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저 중 하나를 택하는 결말은 뭘 택해도 좀 뻔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이긴 했으나, 그 과정을 그린 방식은 역시나 절절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컥하는 경우는 매우 잦은 편인데(본래 이런 식의 문장이라면 '별로 없는 편인데' 가 되어야 맞다만;;), 이누야샤 완결편의 경우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닫다 보니 이런 장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카고메가 기쿄우에게 '내게도 이누야샤와의 소중한 추억이 있어'라는 식으로 감정이 폭발할 때는 마치 <에반게리온 : 파>의 신지의 그것처럼,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져서 찡했었고, 카구라가 바람처럼 산화할 때도 정말 찡했다. 생각해보면 카구라는 참 묘한 캐릭터였다.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부분이 있음에도 그녀의 마지막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결국 카고메는 이누야샤와 함께하는 것 대신 사혼의 구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소원으로 빌었고, 이것은 이누야샤가 소원을 빌지 않아도 함께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것 외에 이누야샤는 동료, 즉 믿을 수 있는 자의 존재를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있다. 희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암흑 속에서도 항상 동료가 반드시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아니어도 동료가 나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사혼의 구슬이 없어도 원하는 바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 결국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에필로그 격으로 소개한 이야기를 보면, 결국 카고메는 무녀의 옷 (기쿄우의 옷)을 입고 이누야샤 곁에 남기로 하였으며, 미륵과 산고는 결혼해서 무려 아이를 셋 씩이나 나아 기르는 모습이 연출되었고, 싯포는 여우요술시험 연습으로 승급을 노리고 있으며, 코하쿠는 토우토우사이에게 무기를 받아 퇴치사로서 수행을 떠났고,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코우가는 아야메와 결혼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쇼마루는 카고메에게 '아주버님' 소리를 듣는 동시에 링과의 묘한 관계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사실 원작 만화를 읽지 않은 입장으로서는 셋쇼마루와 링의 관계가 살짝 모호한 부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 기모노를 또 선물했다는 대사를 보면 (물어보니 일본에서 기모노를 선물하는 경우는 정인에게 선물하는 경우라고 한다) 결국 링을 좋아하는 것으로 '확정'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미 이곳저곳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면 '역시, 셋쇼마루는 아무리 폼을 잡아도 결국은 로리였다'로 결론지어지고 있는데, 셋쇼마루를 가끔씩 이누야샤보다 더 응원했던 나로서는 좀 실망인걸 ㅎ




최근 종영한 <추노>의 경우도 그랬지만, 악한 캐릭터에게 여지를 주는 경우는 이누야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누야샤는 극 내내 이런 분위기를 내지는 않았었지만, 사실 그 태생을 살펴보자면 나라쿠의 목적이란 것은 단순히 기쿄우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 정도였으며 그것이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혼의 구슬에 힘에 이끌려 오히려 조금 이용당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완결판 마지막회와 그 전회의 나라쿠의 모습은 참 안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카고메가 '결국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구나'라는 말을 했을 때 주저하는 나라쿠의 모습이나, 마지막에 평온함과 구원을 얻게 되는 마지막은, 이누야샤 이야기의 종결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쨋든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이누야샤가 완결편을 끝으로 정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근 애니메이션은 짧은 경우가 많아 종영이 되더라도 이 정도의 아쉬움은 들지 않았었는데, 이누야샤는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끌고 오다보니(분명 끌고 온 뉘앙스가 있다) 막상 끝난 뒤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동안 TV판은 물론이고 국내에 어렵게 어린이 영화제에서만 한정 개봉했던 '홍련의 봉래도'를 보려고 수많은 어린이 속에서 관람한 추억도 있고, 극장판 DVD들도 별로 좋지 않은 사양이지만 모두 소장하고 있기도 하고, 일본가서 작은 피규어도 사왔었고, 이누야샤 덕에 Do As Infinity도 더더욱 좋아지게 되었는데, 이런 여러가지를 안겨준 이누야샤가 진짜 끝나버렸다니 아쉬움 뿐이다.

그 동안 이누야샤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1. 이누야샤의 수록곡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곡.



Do As Infinity - 深い森




Do As Infinity - 真実の詩

2.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 가서 사왔던 이누야샤 피규어도 보너스로.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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