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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怒り, 2016)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


2010년작 '악인'에 이어 다시 한번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영화화 한 이상일 감독의 신작 '분노 (怒り)'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분노라는 제목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물론 그 질문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더 큰 메시지는 믿음이라는 아주 진부하고 원초적인 감정 혹은 행동에 있다.


영화는 도쿄에서 벌어진 한 부부의 잔혹한 살인사건을 던져두고 이 사건의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치바와 도쿄, 오키나와를 각각 배경으로 하는 전혀 다른 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 구성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영화 '분노'는 범인을 찾는 스릴러가 아닌 이 하나의 살인사건이 각기 다른 세 명의 인물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앞서 언급했던 의심과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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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스크린에 등장하지만 이 세 개의 이야기는 결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 즉,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존재가 가능하되 단지 전제가 되는 사건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셋 중 어떤 이야기 하나 만을 골라서 영화화를 했어도 충분히 힘 있는 드라마가 가능했었을 텐데, 왜 세 개의 이야기를 같은 시공간에 겹쳐 놓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인물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지, 즉 비슷해 의심과 신뢰의 과정 속에서 어떤 잘못이나 상처를 겪게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이 영화의 네 번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나만의 분노, 아니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게 만든다.


이상일의 '분노'를 보며 새삼스럽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믿는다 는 말을 자주, 또 쉽게 하곤 하는데 그 믿는다는 말속에 과연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것과 같은 각오나 확신이 내포되어 있었는가 싶다. 이 영화가 끝까지 힘을 받게 되는 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예상되는 세 명의 인물에 대한 그 주변 인물들의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이고 수긍이 되는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의심을 보고는 '어떻게 저들을 의심할 수 있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세 명이 다 범인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이 더 쓰라린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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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를 보고 들었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영화 속 인물들의 의심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의심이 확신에 가깝게 발전하게 된 이유다. 이들이 의심을 갖게 된 과정을 보면 그 대상의 말과 행동이나 과거 등으로 미뤄봤을 때 충분히 의심이 갈 정도의 합리적 추론은 결정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별 다른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상태에서 자신이 아끼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써 경계 차원으로 의심을 갖게 되고, 또 확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앞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들의 의심을 두고 뭐라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과정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이고 또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그저 어쩔 수 없음의 비관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인가 라고 묻는 다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상일 감독의 '분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다.  그 과정의 상처를 잔인하리만큼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걸 관객이 이전처럼 쉽게 내뱉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자 끼치고자 했던 영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완전히 믿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 혹은 완전히 믿어야만 하는 존재를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것. 이건 인생의 커다란 고통이자 또 희망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그럼에도 믿고자 했었던 아이코 (미야자키 아오이)가 타시로 (마츠야마 켄이치)를 지긋이 바라보는 그 눈빛은 그래서 더 처연하고 또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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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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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고질라 (シン・ゴジラ, 2016)

현 일본 정치/사회에 대한 메시지의 한계


에반게리온의 후속 편을 고대하고 있었으나 안노 히데아키는 고질라가 등장하는 실사 영화를 먼저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노는 '신 고질라'를 마치 야시마 작전의 실사 버전처럼 그려냈다. 실제 에바에 등장했던 배경음악까지 그대로 삽입되었기에 이러한 싱크로율은 더했는데, 고질라의 활약상(?)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안노의 '신 고질라'는 상당히 정치적이고 또 현재의 일본 사회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조금 의외의 영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시각은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동시에 상당히 우려할 만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기도 해 실망스러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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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신 고질라'는 미지의 존재인 고질라가 일본 대륙에 상륙하면서 벌어지는 그 자체의 사건보다는 이 일을 통해 드러나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훨씬 더 비중 있게 그려낸 영화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자면 고질라는 그저 몇 걸음 걷는 것을 반복할 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정부의 각 부처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일본의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과 국제 사회 속에서 일본이 처한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의 시선은 꼭 일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에 좀 더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물론 여기도 더 깊게 일본에 한정 지어 따져볼 만한 부분은 존재한다), 국제 사회 속 일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영화의 시선은 제3자의 입장 (굳이 침략당했던 당사국으로서의 입장을 꺼내기 전에도)에서 보았을 때 분명 불편하고, 시기상조의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핵공격을 두고 여전히 피해자의 입장에만 서고자 하는 그들의 시선과 자위대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현실을 최대한 고립과 무능으로 밀어 넣는 방식은, 결국 이제는 미국이나 국제 사회의 허용 없이도 스스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위권 발동의 논리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일본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주장일지는 몰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분명 시기상조와 편협한 논리일 수 밖에는 없었다. 


영화는 고질라가 도쿄 한 복판에 등장해 도시를 잠식해 나가는 상황과 이 가운데 정부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결국 아무것도 없잖아'라는 식의 한탄과 불만을 터뜨리는데, 처한 현실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이전에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원인을 감안했을 때 어떤 부분들을 감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동반되지 않은 점이 바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국 내에서만 머물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신 고질라'는 괴수 영화로서도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지 못한 채, 메시지의 문제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아쉬운 영화였다. 


안노, 이제 에반게리온을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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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마지막으로. 매번 마스킹을 잘해주던 극장에서 마스킹이 되지 않아 나중에 알아보니, 수입된 원본 소스 자체에 레터박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문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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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죽음을 다룬 영화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의 시점에 대해 미리 알게 되는 시한부 삶에 관한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통해 그 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구성으로, 주로 회환의 정서를 담아낸다.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이상일의 '분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등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가와무라 겐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2016)' 역시 시한부 죽음과 회환의 정서가 담긴 작품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세상에서 한 가지가 사라질 때마다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일종의 판타지적 설정이다. 그렇게 영화는 주인공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사라지게 만든다. 전화를, 영화를, 시계를 그리고 고양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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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복잡한 플롯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 이 영화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과의 직간접적 연관성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면.


영화 속 주인공은 영화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으로 연결되지만, 세상에서 영화가 사라진다는 설정은 내게 그 이상의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대해 쓰기를 좋아하고 또 부업으로도 삼고 있지만,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 이 영화라는 것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볼 때가 있었다. 이 영화처럼 만약 영화가 사라진다면 하고 말이다. 영화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꿈꾸는 것을 그만두는 것과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꿈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연결되는데, 내게 영화란 바로 그런 꿈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기에 영화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꿈꾸는 것 자체가 턱 하고 먹먹하게 막혀버리는 듯한 심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극장, 비디오 가게 등과 관련된 즉, 영화와 관련된 삶의 모든 추억들이 사라진다고 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부분 영화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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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영화를 보기로 처음 마음먹었던 건 역시 제목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미야자키 아오이가 출연한다는 사실 보다도 먼저 알게 된 이유였다. 수년 전에 옥탑방에 살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었고, 이후 녀석을 입양 보내고 몇 년 뒤부터 지금까지 유기묘였던 한 녀석과 당시 여자 친구가 키우던 또 한 녀석과 함께 하고 있는 집사 인터라, 만약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이라는 궁금증은 결코 영화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이미 이별을 경험했거나 혹은 언제가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는 걸 천천히 준비하려 할 것이다. 흔히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말해서 가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존재다. 뭐랄까, 고양이와 나, 나와 고양이가 서로가 서로에게 100% 의지하는 관계랄까. 나는 고양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순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녀석들에게 많은 의지와 위로를 받고 있다. 이건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순간인데, 문득 집에 있다가 녀석들을 보며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또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그런 고양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설정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밖 현실의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는 없었다. 언젠가는 닥치게 될 그 이별의 순간을 상상하게 되어 견디기 힘들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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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을 구성해 온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인연, 친구, 추억, 고양이 그리고 가족. 앞서 집사의 한 사람으로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하는 영화 속 가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족의 이야기 역시 얼마 전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더 인상 깊게 느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이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일까 라는 질문과 연결이 되는데, 다시 말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였나, 나는 내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였나, 나는 내 가족에게 어떤 아들, 아빠, 남편이었나를 떠올려 보게 했다. 


그리고 참 새삼스럽고 낯간지럽지만, 지금이라도 후회스러운 일들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살아가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살아야겠다'라는 말은 한 편으론 참 거창하고 또 허세가 느껴지기도 하는 간지러운 표현인데, 이 영화가 담아낸 이 메시지는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면 '살아야겠다'는 맘을 먹게 하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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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좋아하는 배우들과 제목의 고양이가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기 전 예상했던 건, 일본 영화 특유의 알맹이 없는 그럴듯한 분위기의 감성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왜,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겠는데, 영화 스스로가 너무 앞서가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아도 공감은 덜한 그런 영화. 


누군가에겐 이 영화 역시 그저 그런 비슷한 일본 영화 한 편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영화 속 죽음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직접적인 내 삶과 지금껏 나를 구성해 온 것들에 대해 설령 잠시였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영화였다. 

역시 미야자키 아오이는 언제나 옳다.


1. 우리가 왜 헤어졌었지?라는 대사는 참 현실적이어서 와 닿더라는. 실제로도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왜 그랬었지?' 싶은 일들이 많더라는.

2. 영화 속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는 나중에라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

3. 영화 속 미야자키 아오이의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팬이라면 이 영화는 놓치면 안 되겠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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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어 히어로 (I Am a Hero, アイアムアヒーロー, 2015)

좀비물과 영웅물의 조금 다른 전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사토 신스케 감독의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좀비 영화의 장점과 현 일본의 사회문제, 젊은이들이 느끼는 현재의 일본의 문제를 녹여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단순한 좀비 액션 영화로 포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전개 과정 중 영화가 선택하는 방향이나 마지막을 비롯해 영화 내내 존재하는 단절과 무력함은 이 영화를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로 만든다.


(이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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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분의 짧지 않은 러닝 타임이지만 관객이 느끼기에는 많은 부분이 축약되거나 소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아마도 원작 만화를 접한 이들이라면 더 그러한 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나타나고 확산되는 과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좀비와의 맞닥들임과 거리를 온통 뒤덮은 좀비들로 간략하게 묘사한다. 


이후 주인공 히데오 (오오이즈미 요)는 좀비를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 여고생 히로미 (아리무라 카스미)와 동행하게 되는데, 다른 일반 좀비 영화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 히로미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었다. 히로미는 상당히 빠른 타이밍에 자신이 좀비에게 물렸다는 것을 고백하고 또 그로 인해 좀비로 변하게 되는데, 아마도 다른 좀비 영화 같았으면 (이를 테면 최근의 '부산행'이라던가)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가까운 인물이 좀비로 변하게 되는 것은 최대한 뒤로 미루었을 텐데, 이 영화는 거의 초반에 주요 캐릭터인 히로미를 등장시키자마자 좀비로 변하게 만드는 점이 이채로웠다. 그래서 이 히로미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려나 싶었을 때 히로미가 다른 좀비를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아주 빠른 타이밍에), '아, 히로미가 일종의 좀비와 대적하는 대에 꼭 필요한 인물로 활용되는구나'라고 예상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알다시피 히로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오히려 짐이 되고 만다 (정말 마지막에 히데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땐 무언가 능력이 발휘되겠지 싶었는데 정말로 끝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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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히로미의 약간은 낭비 혹은 방치되는 듯한 캐릭터 활용에 대한 의문은 이후 주인공 히데오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그렇고 초반 히데오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극적인 순간에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데, 표면적으로만 보면 '아이 엠 어 히어로' 역시 그런 영화로 오해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히데오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항상 '한자로는 영웅이라고 쓴다'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정작 영화의 맨 마지막 살아남은 이들이 히데오를 가리켜 영웅이라고 부를 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더 이상 '영웅'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이쯤 되면 영웅적인 면모가 들어 나야할 장면에서도 (캐비닛에 숨어 있다가 무전을 받고 일행을 구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장면), 몇 번이나 상상 속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반복한 뒤 드디어 실제 벌어진 상황에서는 실패가 아닌 좀비들을 무찌르는 결과를 보여주기는커녕 그냥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성공도 실패도 아닌 결과를 보여준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일반적인 직선의 방향으로만 풀어냈다면 평소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용기도 부족했던 히데오가, 결국 좀비들로 인해 모두가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 용기를 발휘해 모든 좀비를 해치우는, 그래서 진짜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엠 어 히어로'가 흥미로운 건 표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전개와 결말이 그대로 벌어졌는데도, 영화의 정서는 영웅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모든 끔찍한 상황이 마무리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히데오 스스로 더 이상 자신의 이름에 영웅이라는 소개를 하지 않는 장면은, 겸손으로 또 긍정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는 결국 영웅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씁쓸한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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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끝)


좀비물 만의 장점이라면 끔찍한 움직임과 모습 탓에 가끔 움찔하며 눈을 피하게 되는 공포와 동시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는 유머가 공존할 수 있는 점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 엠 어 히어로'는 그 끔찍함과 잔인한 장면들에 긴장하는 동시에 묘하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던 괜찮은 좀비 영화이기도 했다. 내용적으로도 아주 뻔한 선택으로 흐르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그 이면에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가 깔려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1. 엔딩 크래딧을 보니 한국 스텝들이 많이 나오길래 찾아봤더니 쇼핑센터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군요 (파주 아웃렛에서).


2. 아리무라 카스미는 최근 필모그래피가 꾸준하고 또 괜찮네요. 드라마 mozu, 영화 '나만이 없는 거리'와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까지'. 요새 지켜보고 있는 일본 여배우 중 하나.


3. 국내에 블루레이로도 정식 발매 예정이라고 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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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

어제의 나에게 보내는 안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 (海よりもまだ深く, 2016)'를 보았다. 언제부턴가 신작을 가장 기다리게 되는 감독 중 하나인 그의 새로운 영화는, 또 한 번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삶의 진리를 어김 없이 찾아 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를 통해 발견하고 꺼내 드는 삶의 순간, 깨달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모두의 삶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부정하려 애쓰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후자의 경우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후회하고 포기하고 자책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당부 같은 이야기다. 막연하게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한 번의 마법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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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중요하다는 것. 특히 가족의 죽음이나 부부의 이혼 등을 겪은 이후에 '그 때 잘 할걸'하며 그러니까 지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머리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요성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다룬 다른 영화들이 그 후회를 말끔히 씻어 줄 방법과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를 돌이켜 그 잘못된 매듭을 풀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반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번 되 묻지만 결국 그 답을 찾아내지 못한 주인공들을 그린다. 다시 말해 '태풍이 지나가고'의 이야기는 과거 나태하고 실수를 많이 하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인해 정신차리게 되는 이야기나, 과거 오해나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이 비로소 해결되는 방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말할 수 없는 삶의 행복이 느껴진다.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 료타의 후회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힘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바로 그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하는 가가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애써 무리하게 억지로 행복하려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후회를 덮지 않도록 료타(아베 히로시)를 감싸고 돌보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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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가 떠올랐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이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인권의 그 노래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는 일인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 인정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에 영화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허무맹랑한 낙천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약 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이 한 가족의 이야기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자신 만의 결말을 맺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의 이야기를 연달아 그리는 가운데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고심해 왔다. 어른스럽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인지에 대해 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내세워 그 고민과 답을 이어왔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과 무게는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은 감독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부터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이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또한 과거의 후회스러웠던 일들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있으면 그러한 감독의 고민과 지금의 답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분명 후회되는 일들이 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는 것.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 내일에 먼저 도달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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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에게 진정으로 안녕하고 안부와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나에게도 어제의 나를 미소 지으며 떠나보낼 수 있도록 (이건 쿨한 안녕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진짜 안녕이다)작은 용기를 불어 넣어준 영화였다. 나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알 수 있을까. '안녕'하며 인사할 수 있을까. 



1.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어머니가 홀로 사셨던 연립아파트단지의 기억을 이 영화에 그려냈다고 하는데,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연립아파트의 모습이나 풍경이 마치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주공아파트의 기억과 겹쳐졌어요. 외할머니와 함께 살기도 했었고. 무언가 그 자체가 추억인 주공아파트의 풍경이...


2. 키키 키린의 연기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하는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장면을 그러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 속의 진리와 소중함을 관객에게 100% 전달하는데에 그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에요. 


3. 극 중 아베 히로시의 아들 '싱고' 역의 배우는 우리 배우 김새론과 몹시 닮았더군요 ㅎ


4. 사실 이번 작품은 전작 이후 텀이 좀 짧기도 했고, 포스터나 시놉에서 '걸어도 걸어도'가 연상되기도 해서 아주 큰 기대까지는 갖지 않았던 작품이었는데, 아..... 또 한 번 완벽한 드라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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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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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달 (紙の月 Pale Moon, 2014)

공허하게 떠도는 유령의 그림자



무언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영화들이 있다. 담아내고자 한 이야기가 너무 거대해서 일일이 말이나 글로 옮기는 것이 버거운 경우도 있고, 정반대로 명확하게 전달하기 보다는 모호하게 담아내 딱 부러지게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요시다 다이하치의 '종이 달 (紙の月 Pale Moon, 2014)'은 후자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국내 개봉 포스터를 보면 메인 카피로 '그녀가 그토록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라는 문구가 있는데, '종이 달'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지만 영화가 끝나도 그 명확한 답은 주지 않는다. 아니 주지 않았다기 보다는 애초에 답이 없었다는 편이 더 맞겠다. 은행의 계약직 사원으로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리카 (미야자와 리에)에게 어느 날 갑작스럽게 하지만 오래 전 부터 이미 천천히 그녀를 잠식했었던 '무엇'으로 인해, 그녀의 삶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틀려 간다. 이렇게 평범하고 별 문제 없어 보이던 그녀가 깊은 늪에 빠지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그토록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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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달'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하나로 묶여 전개 된다. 하나는 유부녀인 리카가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원인 그녀가 거액을 횡령하게 되는 범죄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종이 달'이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끝은 불륜이나 범죄 사건이 모두 아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녀가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와 관계를 맺고 일탈하게 되는 것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며, 은행원의 신분을 이용하여 점점 큰 금액을 횡령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돈에 대한 욕심이나 부에 대한 욕망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부정한 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런 행동들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아주 천천히, 섬세하게 묘사해 간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대화나 장면에서도 그녀의 마음 속은 복잡한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남편과의 관계로 무언가 단절된 듯한 느낌이 있고, 퇴근 길에 우연히 들린 화장품 가게에서 평소 완 다르게 과소비를 하게 되는 모습에서도, 직장 동료의 얘기를 흘려 듣는 듯 하는 순간에서도 그녀는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음이 목격된다. 그리고 이 작은 일상의 순간들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녀를 삼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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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가 점점 더 고가의 사치를 누리게 되고, 그에 따라 더 큰 비용을 횡령함에 따라 점점 더 늪의 수렁으로 깊게 빠져드는 과정도 일련의 다른 이야기와는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흔히 평범한 인물이 범죄, 도박 등 어떤 것에 빠져들게 되면서 나중에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잠식되는 이야기가 일종의 중독에 관한 것이라면, 리카의 행동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혹은 완전한 탈출(자유)에 대한 추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리카의 이상 행동이 점차적으로 커져가는 과정은, 그 과정 속에서 아직까지도 그녀가 얻고자 하는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영화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녀가 그토록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종이 달'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내야 했던 인물에 대한 질문이다. 리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은 그저 흔한 일탈이 아니라 그 남자에 대한 가여움 때문이다. 큰 비용을 빚지고 대학생 신분으로 학비도 내기 힘든 그를 리카는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점점 더 큰 사치를 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행복을 사고자 한 행위였으나 끝까지 알 수 없었기에 계속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영화가 리카와 관계를 맺게 되는 남자를 빚 때문에 의도적으로 리카에게 접근하거나 이용한 것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리카의 행동에 대한 질문과 답이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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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달'이 범죄영화거나 스릴러가 아니라는 점은 후반부에 드러난 영화의 태도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모든 범죄 행위가 발각된 리카는 자신의 죄를 묻는 동료와의 대화 중 자신의 진심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리카의 진심을 듣게 된 동료 역시 그녀를 연민과 더 나아가 부럽기까지 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 의미로 이 시퀀스에서 리카가 유리창을 깨고 달려가는 장면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이건 그럼에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그녀가 결국 삶의 늪에 잠식되어 스스로 죽음을 수긍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설령 그것이 유령처럼 현실을 떠도는 것일지라도 이 곳에서 벗어나 여정을 계속 하겠다는 것으로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카의 여정은 또 다시 파국으로 혹은 죽음으로 치닫을 확률이 더 클 것이다. 답을 찾기엔 그녀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그 속에서 살아냈고, 더 나아가 그 답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조차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종이 달'은 그래서 참 쓸쓸한 영화였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잘못한 그녀를 동정할 수 밖에는 없었던 이 가짜 세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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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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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의 '갈증' 블루레이 리뷰

호불호는 두렵지 않다. 이번에도 끝까지 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작품 '갈증' 역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을 텐데, 그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는, 호불호가 갈릴 지언정 항상 이야기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는 다는 점이다. 호불호가 갈린 다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그 확실한 영상과 음악의 스타일 만큼이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과 전개의 속도에 있어서 극명한 호불호를 보여주는데, '갈증'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 해놓은 것 같은 느낌(그것이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가운데, 마무리 역시 보통의 영화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갈증'이다). 보는 내내 괴로움이 드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보는 이를 유혹하려든다. 마치 그 안에 악마성을 반드시 끄집어 내겠다는 것처럼.





영화는 시간과 인물을 뒤 섞어가며 다층 구조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점점 더 카나코(코마츠 나나)의 이야기로 집중한다. 일부러 못 알아차리게 하려거나 집중을 기울여 이전 시퀀스를 기억해야만 성립할 정도로 어려운 전개는 아니지만,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의 빠른 전개가 더해져 전체적으로는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과 진행하는 게임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선입견에 관한 것이다. 처음에는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일반적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후 영화가 점점 그 진짜 이야기를 드러낼 때에도 몇몇 관객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영화도 알고 있다는 것이 후반부 이 작품의 포인트 중 하나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가운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악마 혹은 악마 성에 대한 인물들 간의 복잡 미묘한 게임들이 포진 되어 있다.






물론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게임은 엄청나게 소모적이며 괴로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서두에 밝혔다시피 결코 대충 끝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심화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면의 공감대와 인간적인 면을 불러 일으키려고 애쓴다. 겉으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 학교, 사회, 야쿠자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과 위기(혹은 외로움)에 대해 늘어 놓고 그것을 증폭 시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늘어놓음의 이유는 다른 곳, 즉 내면의 죄 의식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표현해 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카나코의 아버지 역할인데, 이 말도 안되는 캐릭터가 끝까지 이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죄 의식과 이를 표현해 내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이 없었다면 '갈증'은 그저 현란하고 괴롭기 만한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내면에 담겨 있는 죄 의식 때문에 '갈증'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갈증'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멋진 캐스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캐스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주인공 카나코 역할을 맡은 코마츠 나나의 캐스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소녀의 마스크는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되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야쿠쇼 코지를 비롯해 츠마부키 사토시, 오다기리 조 등 연기파 배우들과 이미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나카타니 미키와 쿠니무라 준, 쿠로사와 아스카 등 주 조연 배우들의 연기를 즐기는 것도 이 작품에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Blu-ray : Package

 


최근 발매하는 패키지마다 준수한 퀄리티와 다양한 구성물로 콜렉터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더 블루'답게, 이번 ’갈증' 블루레이 패키지도 한정판에 걸 맞는 구성과 퀄리티를 수록하고 있다. 더 블루를 통해 발매되고 있는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 보다는 작품성을 더 인정 받거나, 마니아들 사이에서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외 될 수 있는 작품들을 정식 발매된 우수한 구성의 블루레이로 소장 할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시장에서 아직 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풀슬립 아웃케이스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무광 코팅 된 케이스에 제목은 돌출 된 형태로 제작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전면과 후면의 제목 로고와 스파인 후면의 로고 역시 유광 은박으로 제작되어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선사한다.





구성물로는 접지 형태의 포스터가 수록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다른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이 접지 포스터를 수록하기 위한 별도의 홀더가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이 홀더는 소책자도 함께 보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커다란 기능이나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세심하게 신경 쓴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북클릿의 경우 총 36page로 이뤄져 있는데,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 글 외에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내용과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과 원작자인 후카마치 아키오의 대화 형식의 인터뷰 내용도 수록되어 있어 읽을 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최근 들어 블루레이 패키지에서 소책자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데, 간혹 의미 없는 내용들을 수록한 경우도 있지만 ’갈증'의 경우는 특히 인터뷰 형식 위주로 담겨 있어 부담 없이 유익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스카나보 킵케이스의 경우 2중 자켓 형태로 제공이 되는데, 단순히 전면과 후면의 이미지가 달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켓이 아니라, 로고와 텍스트가 인쇄 된 반투명 자켓 1종이 제공되어 기존 자켓 위에 배치했을 때 작품 이미지와 더 어울리는 커버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케이스에 수록 된 포토 카드 5종과 더 블루 콜렉션 한정 카드도 수록되어 한정판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Blu-ray : Menu








Blu-ray : Video & Audio


 

'갈증' 블루레이의 화질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 '고백' 보다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느낌에 가까운 편이다. 참고로 '고백' 블루레이 영상은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노이즈나 거친 질감을 0%에 가깝게 구현하여 차가운 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본 영상의 의도 자체가 한 없이 거친 질감을 보여준 경우인데, '갈증'은 제작 연도에 따른 블루레이 화질 수록 퀄리티는 높아졌지만 영상 자체의 의도는 '마츠코'와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작품 답게 역시 강렬한 영상을 수록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톤 다운 된 영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카나코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인위적인 효과를 더해 몽환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전작 '고백'의 이미지 쇼크가 워낙 강해서 인지 몰라도, 이번 '갈증'에서는 생각보다는 선혈의 표현에 있어서 의도 된 강렬함 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어필하고 있다. 블루레이의 화질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반적으로는 거친 입자로 이뤄진 질감이 느껴지는 영상을 수록하고 있으며, 장면에 따라 조금 화질 편차가 느껴지는 편이다.






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특별한 장 단점이 도드라지기 보다는 무난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임팩트 측면에 있어서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운 측면이나 멀티 채널의 활용도 측면에 있어서는, 역시 블루레이 감상 시에만 느낄 수 있는 생활 잡음 등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1 장의 디스크로 출시 된 '갈증' 블루레이는 본 편 외에 총 4개의 부가 영상이 수록되었다. 첫 번째 부가 영상은 '사랑하니까 죽여버리겠다'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일본 영화 타이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형식의 메이킹 다큐로, 제 3자의 내레이션이 전체 다큐를 기본적으로 소개하는 과정 속에 인터뷰와 촬영장 뒷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의 영상이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야쿠쇼 쇼지가 연기한 ‘후지시마’ 캐릭터에 대한 소개가 수록되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 하나 하나까지 디렉션을 주는 테츠야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야쿠쇼 쇼지 정도의 대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끈임 없이 감독에게 의사를  묻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감독이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주문한 것이 연기할 때 억제하지 말라는 것 이었다고 하는데, 에너지와 감정을 끝까지 소진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인간적인 면모와 그럴 때 만이 가능한 순간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원작자 후카마치 아키오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는데, 원작자인 그조차 섬뜩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의 작품 이상의  완성도와 만족을 느꼈다는 내용의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두 번째 부가 영상은 '나는 나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모델 출신인 여주인공 코마츠 나나의 오디션 영상으로 시작, 이 작품에 캐스팅 되게 된 과정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인터뷰와 독백으로 이뤄져 있어, 흔한 메이킹 영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뭐랄까, 한정된 공간이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영상이 아니라 마치 코마츠 나나의 영상 화보 같은 형식이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영상이었다 (갈증을 선택한 이들 가운데 상당 수는 그녀 때문이기도 할테니). ‘나는 나를 찾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을 촬영하게 되면서, 코마츠 나나가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게 되었는 지가 은연 중에 느껴지는 색다른 메이킹 영상이었다.





세 번째 부가 영상으로는 '원작자 인터뷰'가 수록되었다. 원작자인 후카마치 아키오의 약 8분 분량의 인터뷰를 통해, 이 원작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쓰게 되었는 지와 처음 나카시마 감독이 영화 화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원작자로서 영화를 보게 된 소감, 원작과 다른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의견 등을 들려준다.





마지막으로는 국내 용 예고편이 수록되었는데, 본래는 1분 28초 분량의 예고편이 수록되었어야 하는데 제작사의 실수로 인해 약 47초 정도에서 예고편이 종료되는 형태로 수록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오류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는 부분으로, 패키지 및 소장 가치에 있어서 많은 공을 들인 타이틀이기에 이 옥의 티가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총 평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갈증'은 또 한 번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는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일본이라는 사회 (혹은 세계)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과 연출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선사하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면 '갈증'은 흥미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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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파트 2 (寄生獣 PART2, 2015)

인간으로 살아남는 법



'바람의 검심'에 이어 코믹스 혹은 애니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 영화들의 약진을 이어갔었던 '기생수'의 속편은, 원작에서 보여준 무거운 주제는 물론 실사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액션의 쾌감을 선사해야 하는 두 가지 미션을 지닌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 편의 글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원작이 갖고 있는 화두의 깊이를 두 편의 (그것도 액션이 주가 될 수 밖에는 없는) 실사 영화로 표현하기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 그렇다면 밸런스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가 이 작품 '기생수 파트 2'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 물론 원작의 팬으로서 '그 정도로 취급될 수는 없었던' 장면들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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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생수'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타미야 료코가 중심이 된 공원 시퀀스와 시청을 배경으로 한 작전 시퀀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연설 장면), 그리고 마지막 오른쪽이와 신이치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세 가지 파트는 '기생수'라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가치가 담긴 파트로, 앞선 두 시퀀스는 기생수라는 제목을 통해 작가가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질문이 직접적으로 담겨있어 이 작품의 평가 가치를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중요한 지점이며, 마지막 시퀀스는 어쩌면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울컥'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가치들을 제대로 표현해 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예, 아니오로만 답해야 한다면, 아니오라 해야 할 것이다. 타미야 료코의 대사 하나 하나가 작품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공원 시퀀스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나, 급한 전개 탓에 공감대가 아직 다 형성되지 않은 채 급작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영화로 처음 접하는 관객들이라면 타미야의 고뇌를 이루다 공감하긴 어려웠을 듯). 개인적으로 이 시퀀스를 그래도 살려 낸 건 타미야 역할을 맡은 후카츠 에리의 연기력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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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중요 포인트인 시청 진압 작전은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 액션 측면에서 상당히 긴장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는 구성이 돋보였던 시퀀스였는데, 이 작품에선 역시나 조금 급하게 처리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시퀀스의 묘미는 기생 생물 입장에서 정체가 탄로나느냐 마느냐의 긴장감 + 기생 생물이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르는 가운데 어두운 복도를 나아가는 공포감인데, 이 두 가지가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었다).


시청 시퀀스에서 가장 포인트라면 시장의 연설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이 역시 이 시퀀스 자체가 아쉬웠다기 보다는 이 연설 장면 전까지 끌고 오는 데에 있어 긴장감이나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마지막 순간의 임팩트가 덜했다고 봐야겠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이 장면은 어지간한 반전 영화에 버금가는 반전으로 충격과 동시에 작품이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는데, 영화에서는 너무 급하게 그려진 측면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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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른쪽이 (아무래도 미기가 더 입에 달라 붙는다;)와 신이치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원작을 볼 때 '어?...어??'하며 나도 모르게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울컥해서 당황스럽기 까지 했던 장면이었는데, 원작을 볼 때의 잔상이 깊게 남아있던 탓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이 장면은 여전히 짠했다. 이건 다른 얘긴데 '기생수' 실사 버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오른쪽이의 목소리였다.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가 정말 강렬했고 차분하면서도 냉정함이 엿보이는 음성이었기 때문인데, 영화 버전의 목소리는 그 차분함이 부족하고 중성적인 맛이 없어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 속 오른쪽이의 목소리는 정말 기생 생물 목소리 같은데, 영화 속 목소리는 그냥 친구 목소리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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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을 늘어 놓기는 했지만 영화로 만난 '기생수'는 글 서두에 언급했던 '바람의 검심'과 더불어 꽤 괜찮은 실사 화 영화였다. 원작이 그랬 듯 기생 생물을 통해 전해지는 돌직구 질문에 가슴이 턱 하고 내려 앉을 정도로, 답할 수가 없게 만드는 순간은 '기생수' 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1. 오른쪽이 성우와 마찬가지로,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이 올라갈 때 영화 버전의 엔딩곡이 아닌 애니메이션 삽입곡이 흘러 나왔다면 감동이 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번에도 ㅎ


2.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준수해요. 어쩌면 말도 안되는 설정을 말이 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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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전설의 최후편 (るろうに剣心 伝説の最期編, 2014)

큰 욕심 안 부린 켄신의 마무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교토 대화재편'을 보러 극장에 갔을 때 '전설의 최후편'이 같이 개봉 중인 줄 알았더라면 연달아서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되 어쩔 수 없이 상영하는 극장을 찾지 못하고 시리즈의 대미는 IPTV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다. 전편이 3편으로 가는 중간 다리 같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의 마지막인 '전설의 최후편'은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는데, 결론적으로 마지막 편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난한 선에서 마무리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실사 버전에서 과하게 욕심을 부려 1,2편을 통해 얻었던 원작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위험을 택하는 대신,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지만 큰 실망은 하지 않는 선택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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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해보자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인 시시오와 켄신의 대결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기대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생각보다는 그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정말 문자 그대로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원작에서 시시오가 담고자 했던 분노와 한, 그리고 켄신이 역날검을 사용해야만 했던 죄의식은 긴 호흡을 통해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나아간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3편의 영화로 대등한 효과를 얻기엔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리적 아쉬운 점만 배제한다면 영화는 본질을 흐릴 정도로 다른 각색은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화가 좋았던 또 다른 점은 이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카오루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를 중심에 두지 않고 앞서 언급한 시시오와의 대립과 켄신 스스로의 죄의식에 두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본 영화 시장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한데, 더 많은 일반 대중들을 타겟으로 하기 보다는 기존 원작 팬들에게 포커스를 둔 (둘 수 있는) 구성은 원작 팬으로서 쌩뚱맞은 이야기를 접하지 않게 되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원작에서도 이 둘의 로맨스는 말그대로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해야하는데, 만약 적극적으로 극의 가운데로 끌고 왔더라면 아마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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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실사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사실 메시지의 전달 측면이 아니라 액션에 대한 묘사였다.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가장 망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실사에서는 어색하기 쉬운 액션이나 판타지적인 묘사 부분 일텐데, '바람의 검심'은 바로 그 부분의 균형을 잘 이뤄냈다. 켄신의 비현실적인 속도를 표현한 부분은 잘못하면 아주 우스꽝스러워지기 쉬운 부분이었으나 현실적으로 수긍 가능한 정도로 표현해 냈으며,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고수의 우월함 역시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이 같은 액션 묘사의 균형은 전설의 최후편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특히 켄신이 다수를 한 꺼번에 상대할 때 확실히 드러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액션 시퀀스를 코웃음치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만으로도 켄신의 실사화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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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가장 우려했던 실사판 영화였던 '바람의 검심'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남긴 시리즈가 되었다. 그로인해 앞으로의 실사화에 대해서도 다시 기대를 갖게 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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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 교토 대화재편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2014)

더 이상의 실사화 걱정은 무의미하다



이미 전작 '바람의 검심' 글을 통해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아마도 처음으로 만화/애니 원작 실사화 작품에 대한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 준 작품이 바로 '바람의 검심'이었다. 다른 실사화 작품들의 실패를 거듭할 때도 개인적으로는 (다행히) 별로 애착이 없는 원작들이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바람의 검심'이 실사화 된다고 했을 땐 두 손 들고 말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 등장한 영화 '바람의 검심'은 만족을 넘어서서 속편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드디어 그 속편인 '교토 대화재편'을 극장에서 만나보게 되었다. 참고로 2편 격인 '교토 대화재편'과 3편이자 최종편인 '전설의 최후편'은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국내에서도 다행히 두 편 다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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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은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몇 가지의 갈등 구조,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관계가 등장하는데 역시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줄기의 이야기라면 시시오와의 대립 관계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으며 실사화 역시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본 '기생수'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긴 호흡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실사로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부분을 옮기느냐 혹은 어떤 갈등 구조에 집중하거나 어떤 인물과 이야기를 버리거나 축소하거나 하는 결정일텐데, '바람의 검심' 3부작은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를 중심에 두는 대신, 어정번중으로 통하는 아오시의 이야기는 비교적 축소하였다 (아마 최종편에서도 지금과 같은 비중이 아닐까 싶다). 이 밖에도 십본도 역시 원작보다는 축소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는 시시오에게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같은 부분은 모든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겪게 되는 호불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시시오와의 갈등 구조에 집중하는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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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보태어 더 만족스러운 점은 전작도 그랬던 것처럼,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원작이 갖고 있는 메시지 적인 측면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흔히 영화화 할 때는 원작 (특히 그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일 때)의 화려함과 볼거리를 실사 버전으로 보여주는 것에 급급하여 원작이 갖고 있는 깊이와 철학은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의 검심'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영화 스스로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켄신의 이야기를 빌어 등장시키고 있다. 바로 역날검의 의미에 대한 것이 그것인데, 왜 켄신은 역날검을 들게 되었는지를 관객들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한 편, 또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시오의 대한 묘사 역시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그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분노를 관객이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듦으로서, 원작이 갖고 있던 힘을 영화 속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스크린에서 실사 버전으로 만나는 '바람의 검심'이 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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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토 대화재편'을 보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흠칫 했던 포인트는, 이제 더 이상 실사 버전의 싱크로율이나 이질감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처음으로 일본 사극 액션 영화를 보게 된 관객처럼, 영화 속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전작이 보여준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더 이상 '옮겨 온' 것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게 된 점은 이번 속편이 이뤄낸 또 다른 성과라 하겠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원작의 팬 입장에서는 특별히 아쉬운 점은 없었는데, 이 작품으로 켄신을 처음 만나는 이들이라면 캐릭터, 특히 이번에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설명이 부족한 탓에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오시의 경우도 짧게 과거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정번중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더 깊이를 느끼기는 어려우며, 앞서 언급한 십본도의 활용 역시 시시오를 위해 많이 축소된 느낌이 있어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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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오라는 캐릭터가 워낙 아우라가 대단하고 강력한 캐릭터인 점을 감안할 때 (마치 '이누야사'의 나락 처럼), 후지와라 타츠야가 연기한 시시오의 실사화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특히 영화가 시시오라는 캐릭터를 그릴 때 음악이나 배경 등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교토 대화재편'에서는 켄신과 시시오가 거의 만남을 갖은 수준에 그쳐서인지, 더 본격적인 혈투가 벌어질 최후편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최후편의 특성상 아마도 더 극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보았을 때, 영화화 된 '바람의 검심' 3부작은 꽤 매력적인 3부작이 될 것이라고 미리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1. 사토 타케루의 켄신은 보면 볼 수록 잘 어울리네요. 켄신이 실사화에서 이 정도로 어울릴 줄은 정말 몰랐었는데 말이죠.


2. 소지로와의 대결 장면도 좋았어요. 그 특유의 발 구르는 장면도.


3. 켄신이 등장하는 액션 장면의 경우 분명 특수효과가 가미 된 장면이지만, 크게 이질감이 없는, 그러니까 원작을 본 이들이라면 켄신은 저 정도는 가능하다는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수준의 액션이라, 멋과 현실감이 공존해 만족스러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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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파트 1 (寄生獣, 2014)

원작 팬들을 위한 실사화



최근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기생수' 때문이다. IPTV를 통해 매주 금요일 일본과 하루 차이로 애니메이션 '기생수'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와아키 히토시의 원작 만화는 읽지 못했지만 현재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을 워낙 재미있게 보고 있는 터라 실사화가 된다고 했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인데, 대부분 그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좋지 않았다는 건 원작 팬으로서의 애정이 크면 클 수록 실망감 역시 컸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바람의 검심'의 실사화가 놀랍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다른 실사 화 영화들에 대해서도 '혹시....'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그러던 차에 개봉한 작품이 바로 이 영화 '기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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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의 실사화라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개인적으로는 코믹스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과의 비교만이 가능) '기생수 파트 1'은 만족할 만한 퀄리티, 영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들의 실망 포인트가 바로 직접적인 표현 부분에 있기 때문인데, 특히 '기생수'처럼 CG가 동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의 경우 조악한 CG의 수준과 활용 방법 때문에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허다했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기생수 파트 1'은 이질감 없이 실사화에 적응한 느낌이다. 기생 생물들의 표현도 우스꽝스럽지 않고 공포스러움까지 전달할 정도로 실사에 적응한 모습이며, '오른쪽이'의 완성도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일단 몰입 할 수 있는 영상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이번 실사화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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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빠져버린 부분들로 인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신이치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영화화 과정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요한 감정선들과 내러티브 역시 함께 제외되어 버렸다. 사실 애니메이션만 본 입장에서도 '기생수'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테마들과 관계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는데, 2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내에 한정지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즐겨야 했던 요소들은 대부분 축소되었거나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한 편으론 TV시리즈로 가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원작을 접한 이들이라면 (아쉽기는 하지만) 전개를 따라가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 영화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는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 신이치의 감정선은 물론, 타미야 료코를 비롯한 기생 생물들의 심리를 읽는 데도 턱 없이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는 없을 듯 하다. 즉, 무언가 괴기스럽고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생수' 작품 본연이 갖고 있는 깊이까지 느끼기에 실사판 '기생수 파트 1'은 부족함이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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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실사화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이런 아쉬운 점을 몰랐을리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본이라는 시장은 워낙 원작 팬들의 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화 과정에서 과감하게 처음 보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를 배제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영화화 된 '기생수 파트 1'은 처음 부터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작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영화화로서 또 다른 작품을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극장판'이라는 단어 그대로 자신이 좋아했던 작품을 실사 버전으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측면으로 보면 '기생수 파트 1'은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일본 영화 특유의 과장하는 느낌이 강해요. 애니를 볼 땐 그 정도 위기라고는 못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구종말에 가까운 공포가 느껴지거든요 (느껴야 한다고 영화가 조장하거든요 ㅎ)


2. 사토미가 상당히 보이시해서 애니메이션을 본 입장에서는 잘 적응이...


3. 제목이 파트 1인것처럼 당연히 후속편이 존재합니다. 일본에서는 4월 개봉 예정으로 국내에서도 아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파트 2에서 본격적인 실사화의 장점이 나올 듯.


4. 엔딩 크래딧이 모두 끝나고 파트 2에 대한 짧은 영상이 나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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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渇き, 2014)

이번에도 끝까지 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작품 '갈증' 역시 기대하는 바가 분명했을 텐데,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호불호가 갈릴 지언정 항상 이야기를 어느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지 않는 다는 점이다. 호불호가 갈린 다는 말처럼 그의 영화는 그 확실한 영상과 음악의 스타일 만큼이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과 전개의 속도에 있어서 극명한 호불호를 보여주는데, '갈증' 역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 해놓은 것 같은 느낌(그것이 좋은 의미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 들 정도로 폭발하는 에너지를 끝까지 밀어 붙이는 가운데, 마무리 역시 보통의 영화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을 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갈증'이다). 보는 내내 괴로움이 드는 가운데서도 이 영화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려든다. 바로 내 안에 악마성을 반드시 끄집어 내겠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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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간과 인물을 뒤 섞어가며 다층 구조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점점 더 카나코(코마츠 나나)의 이야기로 집중한다. 일부러 못 알아차리게 하려거나 집중을 기울여 이전 시퀀스를 기억해야만 성립할 정도로 어려운 전개는 아니지만, 스타일리쉬한 음악과 영상의 빠른 전개가 더해져 전체적으로는 몹시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영화가 관객과 하는 게임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일단은 선입견에 관한 것이겠다. 처음에는 극 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일반적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후 영화가 점점 그 진짜 이야기를 드러낼 때에도 몇몇 관객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영화도 아는 눈치라는게 후반부 이 영화의 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게임 가운데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악마 혹은 악마성에 대한 인물들 간의 복잡 미묘한 게임들이 포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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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게임은 엄청나게 소모적이며 괴로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서두에 밝혔다시피 결코 대충 끝나는 법이 없다. 이렇게 심화되는 이야기는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감독은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내면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려고 애쓴다. 겉으로만 보면 이 이야기는 가족, 학교, 사회, 야쿠자 등 다양한 관계와 환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과 위기(혹은 외로움)에 대해 늘어 놓고 발전시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늘어놓음의 이유는 다른 곳, 즉 내면의 죄의식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를 표현해 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카나코의 아버지 역할인데, 이 말도 안되는 캐릭터가 끝까지 이 소용돌이의 가운데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죄의식과 이를 표현해 내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점이 없었다면 '갈증'은 그저 현란하고 괴롭기만한 폭력적인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내면에 담겨 있는 죄의식 때문에 '갈증'은 한 번 더 생각해 볼만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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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멋진 캐스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캐스팅을 하나만 꼽자면 역시 주인공 카나코 역할을 맡은 코마츠 나나의 캐스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의 연기력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 소녀의 마스크는 그 자체로 영화의 이미지가 되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이 작품도 꼭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되길!

2. 오다기리 조, 나카타니 미키, 츠마부키 사토시 등 익숙한 배우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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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무라이 (猫侍 Samurai Cat, 2014)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



한 사람의 집사로서 '고양이 사무라이'라는 제목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감독이 누구인가 배우가 누가 출연하는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극장을 찾았다 (냥심은 역시 칼보다 강한 것인가!). 사실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는 영화'라는 이 글의 제목에 '고양이 사무라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야마구치 요시타카 감독의 이 작품은 집사만이 포용할 수 있기에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심심한 작품이며, 반대로 집사들이라면 자신들 만이 캐치할 수 있는 포인트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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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야 특별히 말할 것도 없이 간단하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구성이나 연출력 역시 특별한 수준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냥심에 기댄 측면이 강한 탓에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땐 감정 선에 공감하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사무라이와 고양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존재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재미를 선사하는 이야기인데, 고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 사무라이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것에 갇혀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만약 국내에서 만들어 졌다면 아마도 김보성 씨가 연기했을 법한 딱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이 캐릭터가 영화 전반을 이끌기에는 다소 무리가 느껴졌다. 고양이라는 존재와의 연계 성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소극적인 부분이었는데, 사건 자체보다 둘 간의 교감에 포인트를 두었더라면 좀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2013년에 TV시리즈로 먼저 제작된 작품을 영화 화 한 작품인데, TV시리즈의 긴 호흡으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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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무라이'엔 집사들이라면 혹할 만한 장면들이 분명 존재한다. 일부 집사들의 경우 사실상 영화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보러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충분히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이 느슨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고양이, 고양이 때문이었다. 집사들이라면 꼭 보라고 까지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질 만한 작품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만약 더 교감에 집중한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8년 작 '구구는 고양이다'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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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이라는 것



오다기리 조의 내한 소식 때문에 급하게 보게 된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은 그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츠다 류헤이 등 좋은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고 있음에도 처음부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작품은 아니었다. 극장으로 가던 마음 가짐도 오다기리 조를 실제로 본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 하지만 잔잔하고 소소하기만할 것으로 예상되던 영화는 의외로 진중하고 내 현실과도 겹쳐져 생각해 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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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95년 한 출판사의 사전편집부를 배경으로 이들이 '대도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 가운데 몇 가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오로지 사전 만드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심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과정의 묘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일로서, 일반 사람들이 흔히 이용하는 (최근엔 전자 사전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지만)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 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누구도 호기심을 갖지 않았을 사전 만들기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과정을 견뎌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은 일단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 아닌, 어쩌면 관심은 물론이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일들을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생을 바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사실상 전혀 몰랐던 일의 시작과 과정, 완성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부분은 인물들이 그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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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가장 큰 행복을 이야기할 때 하고 싶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즉 하고 싶은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영화 속 대도해를 만드는 일은 이런 점은 물론 그것이 비록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더라도 '일'이라는 것에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평생 직장에 관한 것을 떠올렸다. 마츠다 류헤이가 연기한 마지메는 대도해를 만드는 일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이 일에 평생을 매진하기로 결정하는데, 일단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마지메라는 사람이 몹시 부러웠다. 어떤 일이든 간에 평생을 바칠 만한 일을 선택 혹은 만나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일을 만나고 그 과정을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던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약간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부럽기도 했다. 또한 더 부러웠던 것은 그런 자신을 끝까지 이해해주고 묵묵히 바라봐주는 동반자를 만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 수록 이런 소소한 일상의 일들을 담은 영화들이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느껴지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대도해를 만드는 과정 속의 마지메의 삶도 한 편으론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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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평생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선택할 때 직장의 조건 및 환경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그런 배경이 아니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이거나 '가치 있는 일' 그 자체였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것을 일로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언가 가치를 영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이 작품은 단순한 사전 만들기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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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주저없이 바칠 만한 일을 만날 수 있을까?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는 건 환상에 가까운 일일까? 조용한 한 무리의 사전 만들기 이야기가 작은 파도를 불러왔다.



1. 이 영화에 출연하는 지도 몰랐던 터라 등장부터 놀랐던 우리의 조제, 이케와키 치즈루. 조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깜놀.


2. 아래는 지난 2월 18일 씨네큐브에서 있었던 '행복한 사전' 상영 이후 GV에 참석한 오다기리 조 사진. GV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제되지 않은 질문들에 답하느라 배우나 감독들이 고생이 많은 듯;; 오다기리 조는 이날 무심한 듯 하면서도 나름 솔직한 답변들을 들려준 편이었어요.


왜 미야자키 아오이는 내한하지 않은 것인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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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가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 작을 보면 대부분 가족과 관련된 영화들이었다. 2008년 작 '걸어도 걸어도'는 아들로서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이었고, 2011년 작 '기적'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또 다른 가족 영화였으며, 제작을 맡았던 '엔딩노트' 역시 한 가족이 가장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또 한 번 가족의 관한, 그 가운데서도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아버지라는 존재의 탄생 혹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단 한 번도 자극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번 작품 역시 결코 관객을 향해 소리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사건 자체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의 중대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이를 내적으로 삼켜내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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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버지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연기한 료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 까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료타에게 맞춰져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고레에다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감흥을 전달한 작품이었지만, 조금의 석연치 않은 부분들도 있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철저하게 아버지 역할인 료타에게만 맞춰져 있다. 같은 크기의 충격을 맞게 된 두 가정이고, 한 가정으로만 한정 지어도 료타의 아내의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는 오로지 료타의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가 극을 이끈다 는 것 보다는 극이 그 만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도 직접적인데, 결국 영화는 료타가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지 바로 그 과정인 '그렇게'를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석연치 않았던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너무 료타의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자체가 러닝 타임 내내 료타가 아버지가 되길 기다려주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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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그렇게 아버지가..'에서 료타가 겪게 되는 사건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인물들도 똑같은 세기로 겪게 되는 사건이었기에, 극 중 인물들 모두가 (심지어 상대가 되는 가족까지도) 료타가 자신을 극복하고 아버지가 되길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한 편으론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판타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료타가 아버지가 되었다고 과연 두 가족이 겪은 이 고통이 해소되었나? 라는 물음에 조금은 우울함 마저 들었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이 참여한 GV로 한 번, 그리고 나중에 개봉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관람하였는데, 단순 재 관람의 이유 때문 만이 아니라 다시 보고 나서 달리 느낀 부분이 생겼다. 바로 석연치 않게 여겼던 료타와 이를 기다려주는 영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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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료타와 영화의 관계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오는 생각은, 어쩌면 그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료타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자신의 자각이나 극복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말 없이 기다려주는 가족이었다는 얘기다. 료타가 결정적으로 다시 금 이 잘못된 상황을 재 자리로 돌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장면) 장면을 봐도 그렇다. 울고 있는 료타를 본, 이제 막 잠에서 깬 그의 아내는 그가 울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아침 먹을까?'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게 돌아온 료타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또 다른 가족 역시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즉, 판타지라고 생각했을 정도의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 '기적'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닐까 하는 것. 이 영화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1. 영화를 본 지는 제법 지났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2. 아래 사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이창동 감독님이 함께 했던 씨네토크 현장.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는 관계라는 걸 그 분위기만 봐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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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 Q 개봉에 앞서 만연한 불법 다운로드를 논하다
꼭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가 바로 '에반게리온 : Q'



불법 다운로드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이제는 우습다. 아니 다운로드 앞에 '불법'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혼자 깔끔 떠는 것 같아 불편할 정도다. 실제로 내 가까운 주변만 봐도 불법 다운로드는 거의 생활화, 문화가 된 지 오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mp3나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 받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주변 사람들은 최소한 내 앞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포기한 지 오래다. 누군가 토렌트라는 단어를 꺼낼 때, 어제 무슨 영화 받아서 봤다는 얘기를 할 때, 출근 길에 다운 받은 영화를 보다가 왔다는 얘기를 할 때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다운은 불법 다운이다),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수준이 아니라 '당연한' 수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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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포기한 나도 몇 년에 한 번 씩은 울컥해서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최소한으로 바랬던 것은 그냥 최소한 불법 다운로드를 자랑하지는 말자 라는 것, 이게 잘못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저지르자 하는 거였다. 곧 국내 정식 출시 예정인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블루레이에 참여를 하게 되면서, 어쩌면 그 동안 잘 신경 쓰지 않았던 국내 불법 다운로드 문화의 실체를 좀 더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문화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늑대아이' 블루레이의 일본반 출시에 맞춰 트위터를 보니 정말 가관도 아니더라. 그냥 다운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불법 다운 받은 영상에 자막 작업을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느니, 무슨 님의 자막을 기다리고 있다느니, 이들에게는 이미 아무런 심리적 부담이나 허들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패키지 시장에서 온라인 다운로드 그리고 불법 다운로드의 변화를 겪은 세대인 나와는 달리, 처음부터 불법 다운로드로 문화를 즐기기 시작한 어린 세대들에게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문화 그 자체였다.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이건 다운로더 만을 탓하기는 어렵다. 이를 조장하다시피 한 사회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웹하드 시장이 대세이던 시절 더 적극적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단속했더라면 지금 같이 심한 상태는 아마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웹하드 사업이 흥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럽게 묵인되었고, iptv가 대세가 되고 나서야 (돈 되는 사업이 되고 나서야) 그나마 iptv에 반하는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단속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때는 이미 불법 다운로드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지경이 되어버렸고, 허울 뿐인 단속과 캠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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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면 하게 되는 넋두리가 길어졌는데, 어쨋든 이번 '에반게리온 : Q' 개봉을 앞두고 또 한 번 불법 다운로드와의 불편함 (전쟁이라고 하기엔 이미 한 쪽이 너무 강하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국내 극장 개봉 일인 4월 25일 하루 전인 24일에 일본에서 블루레이가 출시되기 때문이다. 즉, 운명적으로 '에반게리온 : Q'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만약 지금이 불법 다운로드의 초창기(?)였다면 아마도 '불법 다운로드는 불법이라 절대 안되욧!'이라는 말로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이 더 잘 알다시피 이런 말이 통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그러면 굳이 8천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이런 말을 써야 하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ㅠ) '에반게리온 : Q'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텐데, 단연코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다. '에반게리온 : Q'는 스케일과 규모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는 작품인 동시에, '에반게리온 : 파'와는 달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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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에반게리온 : 서'와 '파'는 모두 1.85:1의 화면비로 제작된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안 방에서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충분한 재미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에반게리온 : Q'는 2.35:1의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작품이라 이 것만으로도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지난해 겨울 일본 극장에서 '에반게리온 : Q'를 보았을 때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스케일을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는데, '서'나 '파'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다. 시네마스코프의 영상은 TV나 모니터로 보았을 때 위 아래로 블랙바가 생기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극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봐야 만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 대해서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더 말하기 어렵지만 이번 'Q'는 이 시네마스코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극장에서의 관람이 더더욱 최선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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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에바 덕후들이 새로운 에바 시리즈를 방구석에서 불법 다운 받아 감흥 없이 볼 것 같다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덕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는 것에 소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언맨 3'와 같은 날 개봉하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


'에반게리온 : Q'를 불법 다운 받아서 집에서 보는 건 결국 자기 손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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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밀로크로제 (ミロクローゼ, 2011)

영상미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워낙 아무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나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정보 아니 선택하게 된 요인은 오로지 주연 배우인 야마다 타카유키 밖에는 없었다. 야마다 타카유키를 몹시 좋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요근래 '13인의 자객'이나 '크로우즈 제로'를 연달아 보면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고, 슬쩍 예고편을 보니 그간 영화에서 보았던 진지한 매력 외에 정말 의외의 매력까지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덥썩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감독이 누구인가는 영화를 보고나서야 확인해보게 되었는데, '푸콘 가족'을 연출한 이시바시 요시마사 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선택에는 아마 변동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보게 된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참 드물게 실망스러웠다. 보는 내내 조금은 민망스럽기도 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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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일반 관객들이 '이거 뭐야??'라고 생각할 만한 이른바 '이상한' 영화들도 비교적 잘 보는 편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으면 별로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정말 이상한 걸로 승부를 보는 영화였다면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그냥 이상하기만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처음부터 내러티브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뭐 없어도 너무 없다는 점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사실상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 (이것의 연관성을 '사랑'이라는 테마로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조차도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있다)마저도 이해하려고 했는데, 더 문제는 각각을 독립적으로 보았을 때 그 자체로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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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인 '쿠마가이 베송'의 이야기는 일본 특유의 색깔있는 유머라는 점을 감안하여도 조금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사실 쿠마가이 베송을 연기한 이가 바로 야마다 타카유키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등장하는 외눈박이 검객 '타몬'의 이야기와 이름이 가장 재미있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 역시 아쉬움이 많았다. 타몬의 이야기는 비쥬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좋을 만큼 비쥬얼이 강조된 에피소드였는데, 비쥬얼만 과장되어 강조되다보니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칭찬한 타몬의 5분이 넘는 슬로우 모션 시퀀스 역시 정교하다거나 신선하다 라는 느낌 보다는 지루하다 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보여주기를 위한 비쥬얼 쇼크의 에피소드, 더나아가 영화라도 최소한의 맥락은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는 과감하게 비쥬얼만을 내세운 작품이었고, 그 결과는 사실 별로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비쥬얼 쇼크라는 것이 결코 쇼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별로 새롭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모든 아쉬움을 뒤로 하더라도 감독의 색깔이 비쥬얼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인상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위대한 밀로크로제'의 영상은 '조금 색다르네' 정도였기 때문에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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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래딧을 보니 감독인 이시바시 요시마사가 연출 외에 각본, 음악, 편집, 미술 등 다양한 역할을 혼자 소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조금은 과한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이름부터 빵터지는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의 이야기만으로 하나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더 이시바시 요시마사의 장점을 살리고 독특한 영화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진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건 '오브레넬리 브레넬리갸' 그 이름이었다.



1. 아직 야마다 타카유키는 이름만으로 작품을 선택할 만한 정도는 아닌듯 ㅠ

2. 상상마당에서 보았는데 오랜만에 필름 상영이라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프린트의 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화질이 상당히 안좋았어요. 비쥬얼이 중요한 작품인데 그나마 디지털로 봤다면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3. 아쉽지만 '크로우즈 제로'나 한 번 더 봐야겠네요. 세리자와 ㅠ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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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

닮고 싶은 죽음, 아니  삶



비록 제작자라 할지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신뢰의 이름 그리고 죽음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이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엔딩노트 (エンディングノート, 2011)'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을 지낸 마미 스나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도모아키 스나다의 마지막 여정을 직접 촬영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도모아키 스나다는 자신의 삶을 직접 정리하며 죽음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평소 영화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자주 우는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만 같은 영화지만, 오히려 이 영화엔 눈물보단 미소와 부러움이 더 깊게 흘러나왔다.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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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계획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도모아키 씨의 여정은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진다. 아니 그려진다는 연출의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슬픔보다는 유쾌함이 담겨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도모아키 씨가 적어내려간 엔딩 노트엔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장례식 초대 명단 정리하기' '이왕 이렇게 된 거 신을 믿어보기' 등 적어도 죽음보다는 삶이 느껴지는 to-do list가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영화들이 주인공의 일생을 모두 담으려 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도모아키 씨의 젊은 시절을 사진과 홈비디오 등으로 회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죽음을 더 극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장치라기 보다는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 과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최소한의 배려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유쾌한 분위기가 도모아키 씨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는 철저하게 도모아키 씨의 생각과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려 애쓰고 있다. 왜 애쓰고 있다고 하냐면 이 작품을 촬영하고 만든 이가 바로 그의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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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어떤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아닌 계획을 짜보기도 하는데, 그런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엔딩 노트는 정답지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더 나아가서 과연 이런 계획을 실현 혹은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던 나에게 도모아키 씨의 삶은 '가능하다' 라는 확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이런 엔딩 노트를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모아키 씨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모아키 씨의 죽음이 정말 부러웠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막연하게 꿈꾸었던 죽음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나는 도모아키 씨의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더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런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이런 그의 마지막을 기꺼이 함께 동참해주는 가족을 갖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엔딩 노트'는 처음엔 그냥 단순하게 '도모아키 씨처럼 죽고 싶다' 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면, 마지막에는 결국 '도모아키 씨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소중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울지 않았다. 최근 본 그 어떤 영화들 보다도 해피 엔딩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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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レンタネコ, 2012)

외로움의 구멍을 메우방법



일단 제목에서부터 끌리는 이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카모메 식당' '안경' 등으로 유명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작품은 언제나 현대인의 외로움을 다루지만 그 가운데서도 보고나면 무언가 스멀스멀 따스함이 피어오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전작들에 비하자면 좀 심심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외로움의 구멍을 메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소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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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아니라 고양이 때문이었다. 현재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 못하지만 어쨋든 애묘인으로서, 이 제목에 끌리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다면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고양이가 덜 나오거나 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고양이를 다루고 있는 방식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항상 현대인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해 왔었는데, 이 작품에서 고양이는 바로 그 수단으로, 외로움의 구멍을 메워줄 훌륭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고양이에 대한 영화는 아닌 것. 사실 이런 영화의 구조가 불만이라기보다 아쉬운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인데, 몇 년 전 고양이를 키우다가 혼자 살기도 벅찬 환경에 고양이를 홀로 두어야 하는 안타까움에 입양을 보내고 나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양이를 위한 환경이 보장되기 전에는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즉, 요즘의 내 삶은 너무도 팍팍하고 위로 받고 싶은 것 투성이라 집에 오면 나를 위로 해줄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으면 너무도 행복하겠다 싶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내가 없는 시간 홀로 종일 외로워할 고양이를 생각해보면 냥이가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아 이른바 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고양이가 수단으로 렌트 되는 영화의 내용에 질투가 낫달까. 뭐 그런 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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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개인적인 이유를 재쳐두더라도 '카모메 식당'이나 '안경' 등에 비하자면 상당히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모타이 마사코 여사가 출연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양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음식으로 풀어내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주 소소한 무더운 여름의 일본을 배경으로 고양이와 외로움, 그리고 그 외로움의 구멍을 메우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한 소품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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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るろうに剣心, 2012)

역날검의 의미를 잘 살린 실사판



실사판이 제작된 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포스터와 스틸컷이 하나씩 공개될 때 까지도 계속 '하지마!' '제발 하지마!'를 외쳤던 작품 '바람의 검심 (るろうに剣心)' 실사판 영화를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어찌되었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라는 심정으로 보려고 했던 영화였는데, 11월 말 개봉을 앞두고 돌연 개봉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현재 1월 중으로 예상 중) 나중에 볼까 하다가 유료 시사회 형식으로 상영하는 곳이 있어 (건대 KU씨네마테크)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바람의 검심' 실사판 영화는 정말 기대보다도 걱정이 많은 작품이었다. 만화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는 점도 그렇고, 특히 '바람의 검심'의 팬으로서 히무라 켄신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실사화 할 수 있을 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팬으로서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나왔고, 영화는 봤으며, 결과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 도키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줄거리는 애니메이션의 첫 화부터 시작해 진에와의 결투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등장 캐릭터로는 켄신과 카오루, 메구미와 사노스케 그리고 사이토 하지메와 묘진 야히코가 등장하고 있다. 줄거리는 거의 애니메이션과 동일하다고 보면 될 듯 하다. 몇 몇 디테일한 측면에서 영화 만의 색깔을 주려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원작을 그대로 살려내려는 시도가 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이야기면에서 원작을 그대로 살리려고 한 시도는 영화에 득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설프게 영화 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했다가 원작 팬들에게도 원성을 사고 영화 만의 매력도 못 이끌어낼 바에야 '실사화'에 목적을 이루는 데에 집중한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다만 원작의 팬들이야 그것에 집중할 수 있지만 일반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빠져들기에 영화가 선택한 시점이 (처음부터 진에와의 결투까지) 매력적이었는 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을 듯 하다. 전반적으로 이 과정 속에서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켄신의 과거 그리고 아편과 자본으로 대표되는 칸류와의 큰 대립과 진에와의 직접적 대립까지 그려내야 하는데, 이 이야기의 리듬이 그리 매력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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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릭터를 실사화로 옮겨낸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사실상 이 실사판의 승패를 좌우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켄신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만화스럽지 않으면서도 원작의 분위기를 비교적 잘 표현한 듯 했다. 일단 켄신의 경우 과연 만화 속 켄신의 그 슬픔과 절제, 그리고 무엇보다 '어라 어라 @@' 할 때의 전혀 상반되는 켄신을 동시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는데, '@@' 요 부분은 역시나 100% 실사화 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 주연을 맡은 사토 타케루의 얼굴이 절대 켄신과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어느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정도로 제법 잘 표현한 실사판 켄신이었다. 뭐 '고자루'라는 켄신 특유의 말투를 실사판으로 들은 것만으로도 소름 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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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이 에미가 연기한 카오루는 맘에도 들 정도로 잘 어울렸다. 약하면서도 강인함을 갖고 있는 카오루 캐릭터가 타케이 에미의 불안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눈빛과 표정을 통해 잘 살아있었다. 야히코는 실사판 캐릭터가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애니메이션과의 접점을 처음에는 정말 찾기 힘들었는데, 따지고보면 야히코가 실제 한다면 저럴 수 밖에는 없겠구나 싶은, 수긍이 되는 실사화였다. 더불어 가장 걱정한 캐릭터 중 하나인 사노스케의 경우 역시 좀 아슬아슬한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작품이 영리하게 사노스케를 활용하면서 그 불안함을 잘 감쌌다고 볼 수 있겠다. 아, 아오이 유우가 연기한 메구미의 경우도 처음엔 아오이 유우가 연기하기에 메구미는 너무 성인스러운(?)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 걱정했는데, 전반적으로 어려진 캐스팅 때문인지 나름 메구미스러운 연기에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이토 하지메의 경우, 애니메이션보다는 훨씬 작아보이고 좀 눌린 듯한 (애니메이션 속 사이토는 워낙에 날카롭고 가는 이미지이기에) 모습에 이미지로는 한 번에 와닿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정말 비슷해서 단숨에 빠져든 경우였다. 그가 아돌 자세를 펼칠 땐 나도 모르게 탄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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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가장 기다린 장면이 바로 사이토의 아돌 장면인듯)


결론적으로 '하지마!'를 외쳤던 '바람의 검심' 실사판은 후속편을 기대하게 될 정도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후속편을 예상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카메라 워킹을 보여주는데, 이 정도 캐스팅이라면 기대해 볼만 하다. 정말 다행스럽게 시작은 나쁘지 않았으니 이제 이들을 중심으로 시시오와의 결투가 중심이 된 속편이 나온다면 어떨지, 이제는 정말로 기대된다!!!



1. 짤방은 집에 모셔져 있는 켄신 피규어!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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