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리덕스

그리고 왕가위 감독과의 GV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은 많은 그의 팬들이 그러하듯이, 내게도 그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는 이유로 비디오 테입을 통해 보았던 '동사서독'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정말 좋아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 '동사서독'을 재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를 극장에서, 그것도 왕가위 감독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일단 극장에서는 처음 보게 된 '동사서독 리덕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그대로인대 내가 변해서 그런가, 나이를 먹은 탓인지 오히려 더 좋았다. 사실 처음 보았을 때는 한창 영웅문에 빠져있을 때라, 왕가위의 영화 자체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김용의 사조영웅전 속 인물들과의 접점을 찾느라 집중했었던 기억인데, 이번에야 말로 오롯이 인물들의 감정과 고민, 번뇌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무협의 최고 수준은 몸으로 겨루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마음 속으로) 겨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왕가위는 최근 작 '일대종사'를 통해서도 보여주었던 것처럼 바로 그 단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미 '동사서독'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동사서독 리덕스'는 1:1 대결 장면이 없는 것처럼, 상대와 마음 속으로 겨루거나 혹은 나 자신과 겨루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영화 내내 등장하는 사막과 파도치는 바다의 장면이 바로 그런 의미다. 물론 이렇게 영화가 나오기 까지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부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왕가위 감독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무협 영화를 완성해 냈다.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했던 장국영, 임청하, 장만옥, 양가휘, 장학우, 양조위, 양채니 등 멋진 배우들을 스크린 가득 만나볼 수 있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 장국영, 임청하, 장만옥 이 세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 배우들인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만나보니 그것만으로도 울컥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된 GV.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진행으로 왕가위 감독을 모시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GV가 진행되었다. 정성일 씨의 말처럼 왕가위 감독이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 관객들을 위해 본인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정성일 씨의 무거운 질문을 슬쩍 피하면서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답변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지금 들어도 정말 재밌고, 이 우여곡절 많기로는 손꼽힐 만한 영화인 '동사서독'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그 제작 과정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시사회 시작 시간까지 편집이 완료되지 않아, 일단 상영을 시작하고 마지막 필름 릴이 담긴 차가 배송되는 시간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는 90분짜리 영화를, 어떤 곳에서는 80분, 70분 짜리 영화를 보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참 ㅎ).







그렇게 왕가위 감독과의 GV는 참 귀하고 값진 경험, 아니 시간이었다.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왕가위 감독 작품들에 대한 사랑이 다시 금 피어오르는 것은 물론, '동사서독'이란 영화를 두고두고 다시 봐야 할 의미를 다시 찾게 되기도 했다.


아... 은퇴한 임청하도,

먼저 세상을 떠난 장국영도 보고 싶구나.


1. GV에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9917222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벌써 9년이다. 참 시간은 빠르게도 흐르고, 나는 참 무심하게도 일년에 겨우 하루나마 그를 추억하며 글을 끄적인다. 우연인지 얼마전 TV에서 방영한 '아비정전' 속 장국영의 모습은 당연하지만 그대로였다. 가끔 우리 곁을 일찍 떠난 스타들을 추억할 땐, 내 추억 속에, 내 기억 속에 항상 그대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은데, 정말로 좋아했던 스타의 경우는 그런 욕심을 부릴 수 없는 것 같다. 장국영 역시 이제는 항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그와 함께 더 오랜 시간을 늙어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9년이 지난 지금에도 또 해 본다.



매년 그의 기일마다 그를 추억하며 하는 얘기지만, 장국영이라는 배우 그리고 가수의 얼굴에는 참 묘한 감정들이 녹아있다. 유쾌하고 장난끼 넘치는 얼굴에서부터 연인을 뜨겁게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여유로운 얼굴까지. 그의 표정과 얼굴을 말로 형용하기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내게 있어 특별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다 (과거형이 아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한 없이 슬퍼졌다가도 그냥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고 싶다가도 이내 그저 놓아주어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을 갖고 있다. 장국영 같은 배우가 또 있을까.



9주기를 맞아 그의 활동 당시 영상들을 찾아보던 중, 유튜브에서 예전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었던 방송을 보게 되었다. 장난끼 넘치지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MC이소라를 리드하며 무대를 즐기던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때로 돌아가 그의 쇼를 즐길 수 있었다. 아, 이게 벌써 13년 전의 방송이구나.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한 장국영 (1999년)



매해 만우절이어서 더더욱 잊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 만우절이어서 모두가 웃는 가운데 그의 추억을 더 아련하고 쓸쓸하게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일마다 꼭 듣는 '月亮代表我的心' 청해본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2003년 4월 1일 그가 떠난 이후로 내게 있어 4월 1일은 단 한 번도 만우절인 적이 없었다. 그가 떠나고서야 새삼 느끼게 된 사실이었지만, 장국영은 성룡, 주윤발 등과 함께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스타였고, 영화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 더 정이 들게 된 진정한 배우였다. 좋아했던 스타들 중에 먼저 이별하게 된 이들이 꼭 그 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장국영 과의 이별은 아직까지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몹시 아려온다.

그가 떠난지 벌써 8년이나 지났다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매년 4월 1일엔 그의 작품 DVD 중 하나를 골라 보곤 했는데, 오늘 밤에는 '아비정전'이나 '백발마녀전'을 봐야겠다. 아니면 내내 해맑게 웃고 장난스런 표정짓던 '동성성취'도 보고 싶다. '천녀유혼'의 영채신도 그립고.

어디에 있든 그 곳에서 편히 쉬길.
아....그리워라...장국영..




그가 떠난 이후로 '당년정' 만큼이나 더 자주 듣게 된 '월량대표아적심'.
등려군이 부른 원곡보다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저서 '김태훈의 랜덤 워크'를 읽던 중 한 문장이 하나의 글감을 제공했다. 그는 1960년대를 두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이 신보를 발표하고, 고다르와 트뤼포의 신작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시대'라
고 이야기했는데, 개인적으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적이 많았던 터라 공감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나도 가끔,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 당시 개봉관에서 이 주윤발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비틀즈라는 밴드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를 TV라이브로 즐겼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 - 에피소드 5'의 그 유명한 대사를 개봉 당시 실제로 들었더라면 과연 그 충격이 어땠을까 등 비디오나 후일담으로 전해들은 전설의 이야기들을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해보곤 했었다.

매번 이런 생각은 이렇듯 부러움에서 그치곤 했는데 오늘은 무슨일인지, 그간 내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살아온 길지 않은 이 시대도 충분히 아름다운, 아니 후세에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되돌아본다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3부작을 모두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으며, 앞서 부러워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3부작 역시 전야제라는 행사를 통해 팬들이 모여 그 유명한 오프닝롤이 등장할 때 극장에서 환호를 보내며 즐길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 뿐인가 '메멘토'부터 시작해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그리고 '다크나이트'로 이어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작과 성장을 아직도 지켜보는 중이며, 코엔 형제라는 세기의 천재 감독의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또한 이소룡의 영화를 비록 극장에서 즐기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성룡이라는 형님을 모실 수 있었으며,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같은 우리 감독들의 세계적인 작품도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장국영이라는 별을 갖을 수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픽사라는 영민한 스튜디오, 에반게리온이라는 걸작을 무려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이걸 하나하나 말하자면 절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현재에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예전 영화들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지금은 지긋한 나이의 배우들의 한창 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마련인데, 아마 이 다음 세대는 분명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테마 음악을 극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히스 레저의 연기를 매번 극장에서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라는 부러움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분명 다음 세대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대다.




음악은 또 어떤가. 개인적으로 존 레논과 동시대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우 자주 하곤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 세대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를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면, 그의 신보를 몇년마다 들어볼 수 있었다면, 내한 공연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부러움, 아니 마치 꿈과도 같은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겐 그리고 우리에겐 마이클 잭슨이라는 세기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에 가장 큰 축복일런지 모른다. 또한 U2, 라디오헤드, 뮤즈, 레드 핫 칠리 페퍼스, R.A.T.M 등 수 많은 밴드들은 물론 bjork, beck, sigur ros, 프린스 등 개성있고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뮤지션들의 신보를 흔치 않게 음반샾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자산들이 많은 세대였다. 한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던 상황을 목격한 마지막 세대였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사기 위해 동네 음반샾에 미리 가서 예약표를 발권받거나 발매일 음반샾 앞에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본 마지막 세대였다. 또한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레전드 아티스트의 결성부터 해체까지를 모두 확인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발하지 않는 댄스 음악을 만들었던 듀스를 TV음악 프로에서 만나볼 수 있었음은 물론, 윤종신이라는 사람을 '예능 늦둥이'가 아니라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로서 갖을 수 있었다.  




그냥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누린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시대와 현재 누리고 있는 시대 역시 누군가는 반드시 부러워할 만한 시대라는 것. 내가 과거의 시간들을 부러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시절을 더 치열하게 즐겨야 한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In-Gear Film. All rights reserved


내게 있어 만우절이라는 날이 별다른 이벤트로 느껴졌던 적도 없었지만, 2003년 4월 1일 이후로 나에게 만우절은 오로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 되었다. 바로 그 장국영.

사실 되돌아보면 좋아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 곁을 훌훌 떠나갔던 사람들은 많았었는데, 누군가의 기일을 매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장국영 외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것 같다. 죽음과 거짓말, 만우절과 충격, 이런 것들로 인해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실감나지 않고 매년 맴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4월 1일이 되어 다들 만우절로 떠들석 할 때, 나는 자연스레 장국영만을 떠올렸다.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영화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배우와의 이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와의 추억에 대한 글은 예전에 썼던 적도 있었고, 오늘은 그냥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겨 보는 것으로 짧게 마무리 할까 한다.



ⓒ In-Gear Film. All rights reserved

장국영과 함께 했던 시간들. <아비정전>의 한 장면 처럼, 길고도 짧은 아니 찰나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I Miss You, Leslie.
2010.04.01





p.s - '월량대표아적심 (月亮代表我的心)'은 물론 등려군이 부른 것도 좋지만, 난 특히 장국영이 불렀던 1997년도 이 버전을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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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나는 이 영화로 사나이가 되었다


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이자, 그야말로 비디오가 닳도록 본 영화 중의 한 편인 <영웅본색>.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만이 제대로 본 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인생 최고의 영화 중 한편인
영화를 그간 극장에서 만나보기를 고대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허리우드 클래식과 드림시네마를 통한 재개봉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이전에 넥스트 플러스
영화제를 통해 개막작으로 먼저 만나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미 이 때 보았던 느낌에 대해서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니 간략하게만 설명하자면, 이 영화에 대한 추억이
없는 이들이라면 무려 20년이 지난 이 영화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더 오래전 영화들도 현재의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내는 경우도 많지만, <영웅본색>이란 작품은
확실히 추억과 기억, 아련함이 기본이 되어야만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청년 혹은 소년들에게 깊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영웅본색>은 단순히 영화 한 편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아이콘이자 추억 그 자체이기도 했습니다. 주윤발의 선글라스와 성냥개비를 입에 문
모습은, 그 어떤 슈퍼 히어로의 코스튬 보다도 인상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 (當年情)'은
알지도 못하는 엉터리 중국어로 먼저 외운터라, 그 잘못된 발음으로 더 깊이 자리잡아 버린 곡이기도 합니다.

지난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는 다수의 여성분들의 박장대소 분위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터라,
나중에 정식 개봉 뒤에 한가해지면, 한가한 시간대를 골라 다시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지난 일요일. 바로 옆에는 외국인들과 놀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는 인사동이 있고, 바로 앞에는 역시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종로가 자리한 '허리우드 클래식'에서 한 낮의 시간에 관람하게 되었는데,
기대했던대로 적은 관객(저를 포함 10분이 조금 넘는 듯한)들이 극장을 찾았고, 예상했던대로 영화에만
몰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지난 시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영화의 참 맛을 제대로 즐겨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영웅본색>은 코믹 영화가 아니라 슬픈 영화가 맞았어요. 제가 이상한게 아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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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을 정확히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초등학생이던 80년대 후반 당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우뢰매> <슈퍼 홍길동>이외에는 없었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퇴근길에
빌려오시던 까만 비닐 봉지에 들려있던 비디오를 통해서였죠. 당시는 홍콩 영화들을 정말 많이 빌려보았었는데,
그 중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 <첩혈쌍웅> 같은 작품들은 당시 집에 비디오비전이 하나있고, 별도의
비디오플레이어가 한 대 더 있어 비디오를 빌려오게 되면 공테이프에 복사해두고 두고두고 보는 일이 많았었는데,
아마도 <영웅본색>이 반복 횟수로는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 <영웅본색>을 비롯해 수도 없이 읽었던 <삼국지>나 이후 중, 고등학교 시절에 역시 수도 없이
읽었던 김용의 <영웅문>을 읽게 되면서, 아마도 무의식 적으로 인성이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라고 지금와 생각해 봅니다. 그야말로 무의식이죠.
아주 단순한 것들을 배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잘못하면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한 약속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지켜야 하며,
자신의 친구나 가족과 같이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한 몸 바칠 수 있어야 한다 등, 단순한 진리이지만
선뜻 어린 시절에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기억 하는 것 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되어
훗날 깨우친 다음에도 이를 더 충실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되는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은 주윤발의 쌍권총과 선글라스, 성냥개비이지만, 머리 속 저 한 귀퉁이에는
이러한 진리들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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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극장에서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간 <영웅본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번에 극장에서 관람하고 보니, 이 영화 참 눈물을 참기 힘든 영화더군요. 단순히 누가 죽고,
누가 맞고, 다치고 해서 슬픈것이 아니죠. 극중 마크(주윤발)가 송자호와 아걸(장국영)에게 상대의 뒷 목을
잡는 같은 포즈로 각각에게 해주는 말에는 이 영화의 핵심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자신의 친구를 기다리며
모든 수모를 참아냈던 사나이의 분노와 새 사람이 되길 노력하는 형을 왜 용서하지 못하느냐며 꾸짖는
애정어린 조언은, 당시에는 잘 몰랐었지만 이제와보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대사들이었습니다.
형 때문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범죄자인 형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없는 아걸의 분노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받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노력하는 송자호의 애절함도
공감할 수 있었으며, 이 비정한 세계에서 의리만을 믿고 살아온 마크(소마)의 슬픔도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비애를 완성시켜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인데,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 '당년정'은 그 절정을 보여준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은 지나고 다시 해가 떠오르네
영웅은 이미 새벽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렸네
사나이로 태어나 무엇이 보람이었나.
의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나의 갈 길이었네.
훗날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이가 있다면
영웅이 죽는 것은 오직 의리 때문이고
그것만이 의로운 죽음이라 말하고 싶네.
강호의 세월은 끝이 없는 것임을 나는 탄식하네.
난 차가운 이곳에서 산자를 그리워하네.
세상을 떠돌고 묵묵히 홀로 살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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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볼 땐 몰랐었는데 이번에 극장에서 보게 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은, '당년정'을 비롯해 영화 음악이 매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국영이 부른 엔딩곡 '당년정'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 가사에 영화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구성을 들여다보았을때, 음악이 대사 이상에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웅본색>의 음악은 '당년정'을 기본으로 다양한 변주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새로운 곡은 그리 많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악기와 편곡을 달리해 들려주는 변주들은 각각 장면마다 그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음악과 대사가 겹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
음악의 분위기가 여러 마디의 대사들보다도 훨씬 명확하게 영화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음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호가 감옥에서 마크의 편지를 읽으며 하루하루 출소할 날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희망적인
느낌의 '당년정'의 변주가, 출소 후 마크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씁쓸한 분위기의 변주가 흐르고,
같은 분위기의 변주라 하더라도, 아걸의 심리를 바탕으로한 변주에서는 바이올린 같이 높은 톤의 악기가
사용되는 한편, 아호의 심리를 대변하는 변주에서는 첼로처럼 깊고 중후한 톤의 악기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것 외에도 일일이 다 거론은 못하겠지만, 예전에는 그 강렬한 영상 이미지에만 집중하느라
엔딩곡 외에는 잘 살펴보지 못했던 영화음악이, <영웅본색>에서는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신디사이저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라 <천녀유혼>과 마찬가지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근데 재미있는건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이 기계적인 음악 효과마저도,
굉장히 아날로그 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잘 들어보지 않으면 거의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기계적 사운드가
아날로그한 영화에 자연스레 묻어나던 영화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찾아보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영웅본색> OST를 찾아보았으나,
일단 국내에는 정식으로 라이센스나 수입된 적이 없는 듯 하고, 일본에서만 예전에 출시가 되었던 것 같은데,
이것 또한 지금은 구하기가 어려운 듯 하네요. 만약 <영웅본색>OST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나 구입가능
여부를 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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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비디오로 보았을 때에는 장국영과 주윤발이 연기한 캐릭터에 더 몰입하여 영화를 보았었다면,
이번에는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캐릭터에 역시나 가장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잘 생기고
노래 잘하는 장국영이나 쌍권총 쏘고 당시 최고로 멋졌던 주윤발에게 더 눈이 갈 수 밖에는 없었을 테지만,
이제와 영화를 제대로 보게 되니, 적룡 형님의 연기와 그가 연기한 '송자호'캐릭터에 고민과 갈등,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다크나이트>의 경우 영화적 완성도와 놀라운 연기, 연출력에 몇 번이고 재관람을 하기도
했었지만, <영웅본색>역시 저에게는 기회만 된다면 몇 번이고 극장에서 재관람하고픈 영화였습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장국영의 풋풋한 모습이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 잠시나마 슬퍼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더군다나 초반의 그의 모습은 너무도 해맑은 것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걸작 영화들이 있지만, <영웅본색>같은 영화는 이후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영웅본색>의 리메이크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데, 제발 <영웅본색>만은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현존하는 어떤 배우와 감독이 출연하고 연출한다고 해도,
오우삼이 감독하고 적룡, 주윤발, 장국영이 주연한 <영웅본색>의 감동은 절대 모방할 수 없을테니까요.
늦게나마 극장에서 <영웅본색>을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1. 본문에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영웅본색>과 <영웅본색 2>에서 주연 세 배우 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배우는 바로 택시회사 사장님 역할을 맡은 '증강 (曾江, Kenneth Tsang)' 이었습니다.
   헐리웃으로 넘어가서는 주로 악역을 맡기는 했었지만, 영웅본색에서 보여준 그의 캐릭터는 정말로
   정이 가고 형님 삼고 싶은 의리있는 인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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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실히 영화는 극장 분위기에 크게 좌우됩니다.



명작 다시보기 #1 _ 천녀유혼 (倩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어린 시절 시기를 놓쳐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고
비디오로나마 감상하였거나, 꼭 한 번 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들은 일단 재쳐두더라도, 한참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배우의
이름을 하나 둘 익혀가던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은, 대부분 극장에서가 아니라 VHS 비디오를 통한 관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보았던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는 것이 하나의 소원일 수 밖에는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비디오로 정말 수십번도 더 보았던 작품들 중에 대표적인 영화들을 꼽으라면, 그 첫째로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당시 작품들과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3부작, 그리고 성룡의 영화들이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개관을 기념하여 영화제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바로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천녀유혼>시리즈를 상영한다는 정보를 보고는, 아니 들 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기다렸던 이 날,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극장에서 <천녀유혼>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또 놓쳐버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있던 중에,
'아, 그러면 아쉬운대로 예전에 사놓고 아직 뜯지도 않았던 <천녀유혼 트릴로지>DVD를 꺼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DVD 한창 사던 시절에는 일단 신작들 위주로 열심히 관람을 했던터라,
<천녀유혼 트릴로지>처럼 예전 작품이 새롭게 발매되는 타이틀 같은 경우는, 비닐 포장을 뜯지도 않고
DVD장에 고이 모셔둔 경우가 종종 있었다(<폴리스 스토리>시리즈와 <용형호제>시리즈, <프로젝트 A>등도
아직 밀봉 상태다 --;;).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쉽게 극장 상영을 놓친 마당에, 부족하나마 그 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DVD세트로 다시 예전에 비디오로 느꼈던 감동을 느껴봐야 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천녀유혼>의 이야기는 중국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섭소천 (倩倩)>설화를 영화한 것으로, 이 작품 외에도
더 이전에 쇼브라더스에서 이미 영화화 된 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영화라던가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원작은 물론 그 어느 버전의 <천녀유혼>과
비교해보아도 정소동 감독의 <천녀유혼>은 그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며, 곧 '천녀유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원작을 각색하여 영화화하는 경우, 원작 팬들로서는 영화의 결과물이 만족스럽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뉘거나, 원작의 내용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천녀유혼'은 애초부터가
아주 짧은 단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읽게 되면 재미가 급감 될 정도로,
원작의 기본 뿌리를 바탕으로 세심한 캐릭터 묘사와 풍부한 이야기로 사실상의 '오리지널'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본래 원작에서는 영채신(장국영 분)이 유부남이고 섭소천(왕조현 분)을 사랑하게
되 그녀를 첩으로 맞게 되는데, 좀 더 러브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 같은 원작의 설정을 버리고
영채신의 캐릭터를 좀 더 순수하게 만드는 한 편, 섭소천 역시 원작에서는 상당히 유혹적이었던 것을
축소하여(여기서 '축소'란 말 그대로 '섭소천'캐릭터가 본래 지닌 유혹적인 성향을 축소했다는 것이지, 왕조현이
그린 섭소천이 유혹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애틋하고 순수한 러브 스토리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 봐도 나름 재미있는 오프닝의 돌덩이 빵 개그)

사실 따지고보면 <천녀유혼>의 바탕이 되는 스토리구조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러브 스토리 라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인데, 귀신과 사람이라는 존재의
차이, 그로 인해 오게 되는 부모님의 반대(?),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특히나 요염한 여자 주인공에게 쉽게
유혹 당해 죽거나 이용당하는 남자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게 되고, 이에 반한
여자주인공도 차차 남자주인공에게 본연의 자세(?)를 잊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설정들이다. 사실상 특별할 것이 없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이 영화가 특별한 영화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들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장르적 스타일을 얘기하고 싶다.


(이 장면에선 살짝(아주 살짝) <고스트 바스터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80년대 중국의 영화계는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로 대변되는 헐리웃의 영화들의 분위기가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적극 수용한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서극 감독이었다. 이미 <촉산>을 만들 때부터 ILM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던 서극 감독은,
<천녀유혼>을 통해 호러와 로맨스, 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중국 고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감독은 무술감독으로 더 유명한 정소동 감독이지만,
<천녀유혼>은 정소동의 영화인 동시에 서극의 영화이기도 할 만큼,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상당히 많이
가미된 작품이였다.


(생긴건 거의 미이라에 가깝고, 하는 짓은 좀비에 가깝다)

<천녀유혼>은 기본적으로는 러브 스토리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러브 스토리를 더 강력하게
해주는 데에는 호러라는 장르가 배경으로 작용했고, 호러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 될 만큼 이 영화는 호러 영화로서도 상당히 인정 받는 작품이다. 특히나 단순한 귀신을 넘어서서,
거의 촉수에 가까운 혀를 내두르는 요괴의 모습은 당시로서는 매우 호러스럽고 파격적인 것이었으며(특히 혀!),
중국 호러 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았던 설정이었다. 더군다나 막판에 가서는 거의 악어(?)의 모습과도
비슷한 일종의 괴수로 변신하기에 이르는데, 이런 형태의 괴수의 모습은 중국 호러 영화라기 보다는,
일본의 호러물이나 괴수영화에서 주로 등장했던 것들로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된다(거대한 혀도
그랬지만, 혀를 찔렀을 때 나오는 타액 들이나 역시 끈적끈적한 타액 들이 난무하는 설정 들도 이전 중국영화
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었다).


(장국영은 뭘 보고 저리 놀란 것일까? ^^)

또한 초반 관약사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죽은 자들의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미이라'에 가까운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제거되는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마치 좀비에 가까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상당히 이채롭다. 그리고 이번에 DVD를 보면서
새롭게 보게 된 점은, 바로 저 미이라 같은 존재들의 움직임이었는데, 당시 비디오로 볼 때에는 물론 그런
기술적인 방식들은 알지도 못하던 때였긴 했지만, 움직임에 있어 전혀 특징적인 점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보니 마치 팀 버튼의 애니메이션과 같은 스톱모션 방식으로 주로 촬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톱모션과 직접 사람이 분장하는 방식이 장면에 따라 함께 쓰였다).


(이 장면은 완벽하게 <레이더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오마주일 것이다)

여기에 중국영화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코미디 적인 요소들도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장국영의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초반 부분에 영채신이 빵을 꺼내먹으려고 하는데 돌 같이 굳어있어서,
그 빵으로 돌을 깨는 등의 장면은,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에와서 봐도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짧게 짧게 지나가지만 영채신과 연적하(우마 분)가 나누는 대화에는 하이 개그와 썰렁 개그를 넘나드는
조크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당시 중국영화의 성향이 대부분 그리하였듯이,
크게 극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오바스럽게 웃기는 부분들이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어쩌면 이 같은 부분은
당시 이런 장르를 좋아했던 중국 관객들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나, 어쩃듯 아주 과하게 쓰이지는 않으면서
적절하게 제어되고 있는 듯 하다.


(왕조현 누님, 이런 앙탈스런 표정으로 유혹을!!)

사실 개인적으로 <천녀유혼>을 추억해 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왕조현 누님과 장국영의 욕조 속 수중
키스씬이 아니라(당시 나이가 어려서인지 여자 주인공보다는 남자주인공에게 더 정이 가던 시절이었음;;),
바로 연적하 즉 우마가 펼치는 액션씬이었다. 어린 시절 <드래곤 볼>에 나오는 손오공의 순간 이동 모션과
(두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대고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 순간이동하는), <우뢰매>에 등장하는 형래의 에스퍼맨
변신 동작(옆돌기 후에 짠!)과 더불어 가장 많이 따라했던 영화 속 동작은 바로 연적하가 귀신들을 물리 칠 때
사용했던 권법들이었다. 손가락을 살며시 깨물어 피를 낸 뒤 손 바닥에 진을 그리고 나서 시연하는
‘천지무극 건곤차법'등의 권법들은 비주얼 적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었다. 마치 장풍을 쏘듯
연적하가 액션을 취하고 나면 땅 밑에서부터 폭발음과 함께 튀어 오르던 장면과 지옥에서 검법을 겨루며
두 검이 스칠 때 번개가 이는 장면은 지금에봐도 충분히 인상적인 장면들이었다.
정소동 감독은 와이어를 많이 쓰는 액션씬으로도 유명한데, <천녀유혼>의 액션씬들도 물론 와이어가 많이
쓰이기는 했지만, 숲 속이라는 점과 밤의 이라는 설정 때문에 와이어 액션이라는 점이 크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으며, 왕조현의 펄럭이는 옷 자락과 더불어 휘날리는 천 조각들의 묘사들은 지금봐도 참으로 멋진
장면들이 아닐 수 없었다.


(보요보로미!)

아무리 그래도 <천녀유혼>하면 장국영과 왕조현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과 이후에도 수많은
<천녀유혼>들이 있어왔지만 이 둘이 아닌 영채신과 섭소천은(특히 섭소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두 캐릭터를
완전히 이미지화 시켜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국영은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으로 인해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이기도 한데, 멍청하리만큼 순수하면서도 밉지 않고,
여성적이면서도 자신이 지켜야할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영채신의 캐릭터를,
과연 그가 아니면 누가 더 잘 연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전에 볼 떄는 연기력이나 이런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보았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보니 <천녀유혼>에서도 장국영이 얼마나 '연기'를 잘 하고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천녀유혼>을 보니, 새삼스래 '장국영 참 연기 잘하는 배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앞서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당시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그다지 큰 임팩트로 다가오지는
않았었지만, <천녀유혼>하면 바로 '왕조현'을 떠올릴 정도로, 이 영화에서 '왕조현'이라는 배우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섭소천'의 캐릭터에 있어서 이전과 이후에 나온 모든
섭소천을 무색하게 할만큼, 섭소천=왕조현 이라는 절대 공식을 만들어버렸으며, 당시로서는 상당히 야했던
등판 노출과 수중 키스씬, 그리고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뭇가지 사이를 선녀처럼 날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수 많은 남성들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기에 충분했다. 사실 왕조현도 당시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인
여자 배우로서 여러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대부분의 관객들의 머리 속에 오로지 '천녀유혼'으로 기억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녀는 어린 시절 농구선수 출신이었을 만큼 여배우 치고는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배우이기도 한데, 더군다나 약간 외소한 체격인 장국영이 상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더 외소해보였던 데에는, 그녀의 연기가 크게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아아~아아~~~, 등장하면 꼭 노래와 바람이 불어주던 왕조현 누님)

개인적으로는 장국영, 왕조현 보다도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바로 '연적하'역할의 우마이다.
사실 그는 다작을 하는 홍콩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작품을 했을 정도로, 당시 홍콩 영화에 가장 많이
출연하는 다작 배우중의 한 명인데, 개인적으로 우마가 출연한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 깊고도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천녀유혼>을 꼽을 수 밖에는 없겠다. 사실 그는 이 영화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약방의 감초같은 코믹스런 조연으로 출연한 적이 많았는데, 어쩌면 가장 멋지게 나오는 이 영화가
팬들에게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 된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연적하'라는 캐릭터를 그림에 있어 그 독특한 수염과 헤어스타일, 그리고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면서, 극중이름을 '우마'로 착각할 만큼
대단한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 우마의 출연작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성룡과 매염방이 출연한
<미라클>을 떠올리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도 우마는 자신이 가장 많이 연기한 감초 같은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영화들과 비교해보자면, 과연 같은 배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녀유혼>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의 평소 연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천녀유혼>은 우마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의 작품이되었다!)

<천녀유혼>의 음악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당시 홍콩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였지만, 영화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영화의 음악과 삽입곡들이었다. 홍콩 영화의 팬들이라면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들리는데로 엉터리 중국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불러 봤을 정도로, 포인트가 되는 장면에서는 꼭 노래가
흘러나왔다. 요즘 영화들처럼 그냥 노래가 삽입된 것이 아니라, 그 장면 그대로 독립해서 본다면 뮤직비디오에
가까울 정도로, 가사와 더불어 대사 없이 완전히 노래와 장면에 의존하는 형식으로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으로 꼽은 장면 역시 바로 우마가 부르는 '도도도'장면인데,
실제로는 우마가 아니라 음악을 만든 황점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곡을 만든 황점은 본래는 다른 가수가 부르길
원했었지만, 서극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냥 직접 부르는 것도 좋겠다는 말에 결국 본인 자신이 직접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황점은 이 노래를 만들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호탕하고 자유분방한
곡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 하다.


(당시 꿈에 자주 등장해, 어린 나를 괴롭혔던 아줌마, 아니 아저씨 ^^)

<천녀유혼>의 음악 감독을 맡은 황점은 홍콩 영화음악계의 존 윌리엄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영화음악을
만들어온 거장이다. 이 영화를 비롯해 <소오강호> <동방불패> <지존무상> <황비홍> 등의 영화음악을 만들었으며, <소오강호>의 그 유명한 곡 '滄海一聲笑 '도 황점의 작품이다. 그는 영화 배우로도 상당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황점은 처음 <천녀유혼>의 제작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함께 참여하기를 바랬으나, 제작사와
감독이 먼저 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들이 마음에 들지 않자, 서극은
황점에게 부탁을 하게 되 나중에 합류를 하게 된 케이스였다(만약 황점의 '도도도'나 '여명부요래(黎明不要來)'가 없는 천녀유혼이었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천녀유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왕조현과
장국영의 러브씬에서 흘러나오던 '여명부요래'일텐데, 이 곡은 잘 알다시피 엽천문이 불렀으며, 본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위해 만들었다가 쓰이지 못한 미발표곡이었는데, 촬영 말미에 곡을
추가하길 원했던 감독의 권유에 황점은 이 곡을 떠올렸다고 한다. '새벽이여 오지 말아요'라는 가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영화가 또 어디있을까!

영화음악에 관한 얘기를 조금만 더해보자면, 황점은 당시 막 신디사이저가 출시되던 시점이라 아주 재미있게
여러가지 시도를 쉽고 재미있게 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음악을 잘 들어보면 상당히 SF적인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게 다 신상(?)이었던 신디사이저의 기능을 맘껏 활용해보려는 황점의 의도가
묻어난 것이라 하겠다.


(어리버리 어리숙한 영채신의 모습은 장국영이 완벽히 그려냈다)

사실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영화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천녀유혼>을
비롯해, 명작 다시보기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추억만 가지고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에게
지금와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영화적인 우수성과 재미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영화를 볼 때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재미있었는데,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봐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는 말이다. 확실히 21세기에는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천녀유혼>은 더욱 소중한 영화로 평생 남을 것이다.


글 / ashitaka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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