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스파이더맨 (The Amazing Spider-Man, 2012)

조금은 성급한 리부트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딘 던스트 그리고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뒤로하고 새롭게 리부트 되어 선보인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그리고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보았다. 일종의 '비긴즈'의 개념으로 제작되고 있는 리부트 (Reboot) 영화들이 요 몇 년간 특히 더 붐을 이루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이 붐이 오래 지속되는 듯 하다. 어쨋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감독도 배우도 마음에 들었지만 과연 이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스파이더맨'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할까? 라는 생각에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참고로 연출을 맡은 마크 웹은 나에게 '500일의 썸머' 하나 만으로도 앞으로 계속 주목하게 될 감독이 된 경우). 결론적으로 마크 웹의 스파이더맨은 샘 레이미의 3부작을 조금씩 함축적으로 버무려 놓은 듯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함축적이라는 것이, 이미 샘 레이미의 3부작을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때에 경험했던 나로서는 매력적이기 보다는 단순한 반복으로 느껴졌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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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기존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의 연속성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작품이다. 간단하게 다시 말하자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는 피터 파커가 어떻게 스파이더맨이 되었는지는 물론, 그의 아버지와도 같은 벤 삼촌이 비극적인 죽음을 겪게 되는 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된다는 얘기다. 일단 이미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을 모두 보았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그저 배우만 바뀌어서 다시 반복되는 것 이상의 재미를 발견하기는 힘들었는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리부트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면 좀 더 샘 레이미의 작품과는 차별되는 개성이나 메시지가 필요했는데, 이 점에서는 이 작품 만의 매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그저 다른 배우들이 기존의 이야기를 반복해서가 아니라 (이건 성향에 따라 오히려 마음에 드는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커스틴 던스트의 엠제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이들의 경우, 엠마 스톤으로 바뀐 것에 호감을 표했던 것 처럼), '스파이더맨'이라는 영웅(이웃의 친절한)의 깊이가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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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시종일관 갖고 있던 고민과 메시지는,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히어로로서의 고뇌와 함께 현실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른바 '찌질이' 피터 파커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기 위해 피터 파커로서의 삶을 잃게 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이를 포기하고 놓아버렸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는 이 모든 과정들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함축적으로 담긴 나머지 그 깊이를 모두 담아내기엔 시간도 노력도 부족해보였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엠제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하기까지 굉장한 고민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알게 된 이후에도 이 문제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첫 데이트에서 단 번에 자신의 정체를 고백해 버린다. 또한 이전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계속 조심조심하고 노출을 감수할 만큼 중요한 순간에만 부득이하게 마스크를 벗었던 것에 반에, 이번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시간 만큼이나 마스크를 벗고 있는 시간이 많을 만큼(복장은 갖추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는 스파이디의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이렇게 캐쥬얼하고 빠른 전개나 영웅으로서 책임이나 정체에 대해 고민을 덜하는 모습의 '다른' 스파이더맨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기에 스파이더맨이라는 작품에서 이러한 주제가 갖는 중요함의 깊이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 이 부분의 함축은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의 부족함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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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 사이의 고뇌의 공감대가 부족하다보니, 오히려 코너스 박사의 이야기가 더 절실하게 와닿았다. 사실 코너스 박사의 이야기 역시 '스파이더맨 2'의 옥타비우스 박사의 경우와 많은 부분이 겹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코너스 박사의 이야기가 더 개인적인 경우라 좀 더 절실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좀 더 인상깊은 작품이 되려면 코너스 박사 개인의 절실한 사연이 피터 파커의 이야기와 접점을 이루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와중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두 이야기 모두 조금씩 아쉬운 노선을 각자 걸어간 듯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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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아쉽다는 얘기들로만 가득하지만 오락영화로서, 특히 만약 기존 샘 레이미의 3부작을 못봤거나 맘에 들지 않았던 관객에게는 나쁘지 않은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리부트를 하기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가 너무 완벽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아, 그리고 피터 파커는 좀 모자라 보이고 어수룩해 보여야 하는데, 토비 맥과이어에 비해 앤드류 가필드는 너무 쿨한 미남이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1. '500일이 썸머'를 연출했던 마크 웹이라 로맨스 부분은 좀 더 기대를 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샘 레이미의 작품보다 공감이 덜했네요. 피터가 느끼는 고뇌의 깊이가 잘 표현되지 못하다보니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로맨스 부분도 덜 살아난 것 같네요;;


2. 개인적으로 성급한 리부트라고 느꼈던 건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샘 레이미의 전작들과 그대로 겹쳐지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뚜렷한 개성도 찾아보기 힘들어서였어요. 3부작의 면면들을 조금씩 다 가져오다 보니 더더욱 그러했는데, 차라리 완벽한 리부트로서 새로운 시리즈의 첫 편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3. 스탠 리 옹은 출연한 작품 중에 이번 작품이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 같네요 ㅋ


4. 개인적으로는 샐리 필드가 연기한 숙모 역이 너무 좋았어요. 뭐랄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나는 다 알고 있어 피터,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과 포옹 ㅠㅠ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군요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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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영화의 고전, 스팅! (The Sting)



여성에게 하는 이른바 '작업' 말고 크게 한 탕 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사기치는 '작업' 영화를 논할 때 결코 빠져서는, 아니 반드시 최상위에 놓여야 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조지 로이 힐의 1973년작 '스팅 (The Sting)'이다. 1969년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라는 걸작을 만들어냈던 조지 로이 힐은 이 두 배우와 함께 다시 한번 '스팅'을 통해 뭉치게 되는데, '내일을 향해 쏴라'와는 또 다른 색깔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근래 보았던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우리 영화 '범죄의 재구성'같은 범죄/사기/반전 영화들의 가장 직접적인 원류는 바로 '스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2012년에 다시 보게 된 '스팅'은 최근의 범죄 작업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인 장치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쫄깃함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역시 장르의 형님다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1978년 국내 개봉 시에도 전체관람가로 상영되었을 정도). 개인적으로도 어설프고 무리하게 관람가를 낮춰 영화 자체를 건조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성인 등급으로 만들어서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스팅'은 분명 전체관람가이지만 그런 류는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할 수 있겠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치 없이도 각본의 짜임새 만으로 범죄 영화를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이기 때문이다.






'스팅'은 장르 영화로서도 주목 받는 작품이지만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콤비를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작품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조지 로이 힐까지 포함하여 트리오라 해야 맞을 것이다). 물론 근 10년 동안 가장 뜨거운 배우인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의 콤비도 너무나 멋지지만, 뉴먼과 레드포드의 우아하고 재치 넘치는 앙상블을 보고 있노라면, 왜 '배우'라는 직업이 아름다운지를 너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창 젊었을 때의 레드포드를 보면 자연스럽게 브래드 피트를 떠올리게 되는데 (물론 반대가 맞는 얘기겠지만) 남성으로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날 것의 느낌이 물씬 흘러 넘치는 모습으로 '후커' 역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로버트 레드포드도 폴 뉴먼의 포스에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미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범접할 수 없는 남자의 눈빛을 보여주었던 폴 뉴먼은, 이 작품에서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재치, 외로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자연스럽게'라는 표현을 썼을 테지만 폴 뉴먼의 경우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가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냥 한 번 씨익 미소 지었을 뿐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설레게 만드는 그의 마스크는 헨리 곤도프라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구구 절절한 설명 없이도 이해시키는 엄청난 매력인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여러 줄의 훌륭한 각본에 상응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너무 두 손 두 발 다든 칭찬 일색 같지만, 영화를 보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그 정도.






'스팅'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메인 테마 곡인 'The Entertainer'일 것이다. 영화도 유명하지만 영화보다도 더 유명한 메인 테마 그 곡일 정도로, 그 청량하고 통통 튀는 피아노 선율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 유쾌한 멜로디처럼 한 시대와 장르를 능수 능란하게 연주해 낸 영화가 '스팅'이 아닐까 싶다.

 

Blu-ray : Open Case







Blu-ray : Quality

MPEG-4 AVC 포맷의 블루레이 화질은 전반적으로 유니버설의 놀라운 기술로 복원된 화질답게 연식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필름의 보관된 상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인지 장면마다 화질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특히 첫 장면만 보고는 타이틀 전체의 화질을 오해할 정도로 – 하필이면 첫 장면이라서 – 첫 장면의 화질은 본편 가운데는 가장 좋지 않은 화질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우수한 수준의 디지털 복원된 화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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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차에 따라 원본 필름 상태가 좋지 못한 장면에서는 그레인 현상이 여럿 발견되거나 외곽선이 조금 날카롭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상태가 좋은 장면에서는 종종 최신작과 비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의 디테일한 화질을 수록하고 있다. 참고로 '스팅' 블루레이는 유니버설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시된 콜렉터스 에디션 - 디지북 타이틀 가운데 하나로서 영상과 사운드의 복원에 상당한 공을 들인 작품 중 하나이며, 편차를 드러내는 화질의 경우도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DTS-HD의 사운드 역시 복원을 통해 더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복원 과정 속에서 이전에는 다른 잡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던 작은 소리들을 살려낸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 아닐까 싶은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영화의 사운드가 너무 주인공과 인물들의 대사에만 집중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생활 소음들과 효과음들이 더해져 전체적으로 풍부한 사운드를 완성해 냈다. 메인 테마 곡 '엔터테이너'의 멜로디 역시 아주 선명하게 전달된다.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The Art of The Sting'이 수록되었는데 'The Perfect Script' 'Making a Masterpiece' 그리고 'The Legacy'로 나뉘어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록하고 있으며, 약 56분 분량으로 100%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만 아쉽게도 4:3화면비의 SD화질로 수록되었다.






이 부가영상에서는 처음 이 작품이 조지 로이 힐에게 넘어오게 된 그 이전에 얘기서부터,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이 영화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소 중 하나인 음악에 관한 자세한 뒷이야기까지 만나볼 수 있다. 후에 두 배우가 스스로 우리는 콤비가 아니라 조지까지 트리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을 정도로 호흡이 좋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이 부가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엔터테이너'를 비롯해 '스팅'의 포인트 중 하나인 영화 음악의 경우 처음에는 영화 속 시대와 맞지 않는 음악이라 어울리지 않는 다는 의견이 많아 모험적인 시도였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모두가 확인했다시피 조지 로이 힐의 선택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앞서 소개한 제작관련 영상과 극장용 예고편 외에는 '스팅'에 관한 내용이 아닌, 유니버설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원 등에 관한 내용이 부가영상으로 수록되었다. 이와 관련된 부가영상은 모두 HD화질로 제공되며 물론 한국어 자막이 지원된다. '100 Years of Universal: Restoring the Classics'에서는 고전의 복원 작업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데, 단순히 잡티를 제거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전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미완으로 완성할 수 밖에는 없었던 미세한 오류들을 보정하는 수준까지 복원작업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어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100 Years of Universal: The 70's'에서는 이 작품 '스팅'을 비롯해 1970년대 헐리우드를 주름 잡았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소개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조지 루카스의 '청춘낙서' 등 당시 유니버설의 명작들을 함께 했던 감독, 배우, 제작자 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100 Years of Universal: The Lot'에서는 당시 영화인들에게는 꿈의 공장으로 불리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대한 소개와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총평] 조지 로이 힐과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트리오가 함께 한 작업 영화의 고전 '스팅'은 1973년 작이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 없는 장르 영화의 매력을 담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근래의 동일한 장르 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한 번 되돌아보게 할 정도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또한 새삼스럽지만 과연 앞으로도 폴 뉴먼 같은 배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의 빈자리를 추억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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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Two Doors, 2011)

두 눈 똑바로 뜨고 직접 확인하라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작품 '두 개의 문'을 드디어 보았다. 이 영화는 잘 알다시피 2009년 1월 20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니..)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벌어진 25시간의 그을린 기록에 관한 영화다. 일단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그을린' 기록에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아니 사실 요새 들어 이런 사안을 접할 때 가장 많이 놀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는 걸 감안할 때 다수가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용산 참사를 언론, 법정, 정부가 다루는 방식은 분명 잘못된 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문'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으며,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기존의 고발성 다큐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을 취한다. 흔히 강력한 주장과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더 날이 선 객관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바로 '두 개의 문'이 그러하다. '두 개의 문'을 보기 전엔 엄청난 사회 고발성 내용들이 날이 선 잣대로 가슴을 때리려나 보다 했었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더 날카로운 객관성으로 인해 결국 남일당 망루 위에서 적대해야 했던 시위대와 경찰특공대 간의 상대적 이야기가 아닌 더 큰 담론을 이끌어 내는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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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을 보고 가장 놀랐던 건 그 흔한 피해자, 유가족 들의 인터뷰 장면 하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장치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안을 영화 만으로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움과 감독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실제로 일을 겪은 이들 (피해자)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서 기본적으로 활용하다시피한 장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두 개의 문'에는 이러한 장면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유사한 장면이라는 것이 법정을 나오며 오열하는 유가족의 모습 한 장면 뿐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문'의 메시지의 전달 효과는 어떠한가?


피해자, 유가족 등의 인터뷰를 담는 것은 '사안을 영화 만으로 직접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움'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었는데, '두 개의 문'은 바로 이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하다시피 한 영화라 해야겠다. 즉, '두 개의 문'의 방식은 용산 참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겪은 이들의 이야기와 이를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한 감독이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날 생지옥과도 같았던 25시간을 최대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그 이후에 벌어진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도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100%의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사실(Fact)'자체를 전달하는데에 더 주목하고 있다. 물론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정도 문제성을 인지하고 접근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영화가 내내 취하고 있는 이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메시지에 점점 동화되어 결국엔 '전해 들은 것'이 아닌 '내가 겪은 일'에 가까워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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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가까이서 보고 들은 이의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른 다큐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영화적'인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올해 본 영화 가운데 '프로메테우스'의 근원적 공포에 비길 정도의 현실적 공포를 보여준 영화가 바로 '두 개의 문'이었다. '두 개의 문'은 상당히 스타일리쉬한 화면 구성과 편집 그리고 화면 속 공포를 더 배가 시켜주는 영화 음악까지, 관객이 최대한 직접 체험에 들 수 있도록 영화적 완성도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벽을 넘어야하는 일반 관객들마저 어렵지 않게 극 영화를 보듯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영화른 보는 내내 극장 안의 몰입도는 대단했다. 그냥 다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과 숨죽이듯 집중할 때의 분위기는 분명히 다른데, '두 개의 문'이 상영되던 극장의 분위기는 분명 후자였다. 가끔씩 이러한 사회의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게 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일단 '두 개의 문'은 더 많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는 완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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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지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마음 한 켠이 불에 그을린 듯 뜨겁다. 아마도 좀 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였다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사실들과의 동일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거나 한 번 더 mb정권을 욕하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비교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악당을 모두 홀로 물리치는 무술 고수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나도 모르게 내가 고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SF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미래와 우주를 손에 잡히듯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두 개의 문'을 보고 난 뒤에는 그 생지옥 같았던 25시간의 고통과 화염이 심장까지 느껴져 미안함과 분노가 절로 생겨났다.


누가 이들을 생지옥으로 내몰았는지. 우리 기억 속에서는 점점 잊혀져 가겠지만 아마도 평생을 잊지 못한 채 트라우마를 겪을 피해자의 가족들과 작전에 투입되었던 경찰특공대들은 누가 위로할 것인지.


이제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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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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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2010)

있는 그대로의 러브 스토리



'블루 발렌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손 꼽는 여배우 미셸 윌리엄스와 최근 가장 핫한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은 절대 이유였던 두 배우와 함께 너무나도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예고편에 홀려 보게 된 '블루 발렌타인'은, 그저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담은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것의 무서우리만큼 현실적인 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래서 한 편으론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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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딘 (라이언 고슬리)과 신디 (미셸 윌리엄스)의 러브 스토리를 그 시작과 현재의 모습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묘사한다.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과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동시에, 현재 아이의 부모로서 현실과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의 힘겨운 관계를 그린다. 기본적으로 이런 교차 구조는 다른 관계나 감정이 아니라 동일한 관계와 감정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현재의 힘겨운 관계나 처음에는 어떠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힘겨운 현재의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블루 발렌타인'의 교차 구조는 단순히 이러한 변화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관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즉,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은 그 순간 자체로 아름답게 담아내고, 지금의 현실은 현실 그대로 식어버린 사랑 그대로를 그리되 반드시 둘 간의 상관관계를 엮으려는데에 큰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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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이라는 제목의 뉘앙스처럼 영화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조금씩 다 담아내는데, 일단 그 각각이 너무도 충실하다. 예고편으로도 만나볼 수 있었던 신디가 딘의 노래와 연주에 맞춰 쇼윈도 앞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올해 스크린에서 만나본 수 많은 장면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딘과 신디가 다툼을 겪는 과정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하나하나 일일이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얼마나 깊은 감정의 골이 생겨버렸는지 아픔이 뼈속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감정의 골이 깊어져버린 딘과 신디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힘겨울 정도로 영화의 무게가 대단했다.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으면서도 식어버린 사랑, 감정의 골이 깊어져 회복이 어려운 관계가 주는 힘겨움은 사랑과 이별을 겪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감정의 무거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딘과 신디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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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발렌타인'을 보며 한 편으론 사랑의 아름다움보다는 아픔을 더 뼈져리게 공감하는 나를 보면서, 어떤 의미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자신을 돌아보게 됬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맞지만, 아프지 않고도 성숙할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현실을 겪어버린 이에게는 순간의 빛나는 아름다움도 물론  느껴지겠지만 그보다는,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을 다시 되새기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되새김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채 말이다.


1. 올해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엔딩 크레딧이었어요.



Blue Valentine Title Sequence from Jim Helton on Vimeo.


2.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는 이 관계를 더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어린 딸을 연기한 아역배우와 함께 셋이서 영화 촬영 전 1달 간을 함께 살았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두 배우는 출연 외에도 모두 프로듀서로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3.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정말 또 보기 힘든 영화였는데, '블루 발렌타인' 역시 그렇지만 묘한 아름다움이 있어 매력적인 영화였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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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

이해에 닿기 위한 온도의 차이



마릴린 먼로라는 배우에게 '세기의 섹스 심볼'이라는 수식어 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이라고, 재평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과 기대는 갖고 있었지만 이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My Week with Marilyn, 2011)'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미셸 윌리엄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목 자체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마릴린 먼로의 숨겨진 실제 로맨스를 다른 시각에서 소소하게 그린 작품이 아닐까 했던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리, 최대한 마릴린 먼로라는 한 여자이자 배우를 부각하면서도 보편화가 가능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만약 마릴린 먼로만을 위한 내용이었다면 그녀의 팬들이라던가 당시 그녀의 작품들에 추억을 갖고 있는 영화팬들만을 위한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은 마릴린 먼로라는 누구나 다 아는 배우의 이야기를 빗대어 역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해'의 대한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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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릴린 먼로가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왕자와 무희'의 출연하기 위해 낯선 영국 땅에 도착하여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화를 완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최근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고전 '클레오파트라'의 뒷 이야기를 블루레이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것처럼, 예전 영화를 촬영하던 과정에는 무언가 시스템이 정착하기 이전이어서인지 스타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영화 전체가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상당했었고, 이런 스타 배우들과 감독들의 기싸움들도 직간접적으로 있어서 이런 촬영장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영화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를 '왕자와 무희'의 촬영장 뒷 이야기 정도로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점들이 많다.


마릴린 먼로 역할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는 누구보다 그녀를 고증하는데에 상당한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억양이며 말투에서 벌써 달랐다), 다른 배우들 역시 당시의 실존 인물들을 연기하는 데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방향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마릴린 먼로의 에피소드를 들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화두인 '이해'의 이야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 영화가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영화가 마릴린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그리는 전개 방식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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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중반에 이르기까지 극중 마릴린 먼로의 행동은 사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오히려 자신도 스타 배우이자 감독이면서도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마릴린 먼로에게 최대한 맞춰주려는 로렌스 올리비에 (캐네스 브레너)의 고민이 더 공감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영화는 작은 배려의 틈을 열어둔다. 일단 중요한 건 처음부터 영화가 마릴린의 편에 서 있는 상태로 시작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는 점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작은 이해의 가능성으로 시작해 조금씩 이 이해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릴린 먼로의 행동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극중 콜린 (에디 레드메인)과 마릴린의 러브 스토리는 물론 '노팅 힐'처럼 스타와 일반인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마릴린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콜린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해의 노력이 반드시 인간 대 인간의 것이라기 보다는 스타를 향한 사랑에 감정이기도 하지만, 콜린 역시 이 짧고 강렬한 사랑을 겪고 서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이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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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이 사랑의 감정이 섞인 이해라고 한다면 극 중 주디 덴치가 연기한 '시빌'의 경우는 거의 무한 이해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렇게 영화는 마릴린 먼로를 둘러싼 이해의 온도가 다른 여러 캐릭터를 통해, 처해진 상황과 사람에 따라 이해가 닿기 위한 필요 거리가 다름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렇게 닿게 된 이해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그녀의 경우를 들어 보여준다. 그리고 그제서야 영화는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의 무비 스타 마릴린 먼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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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윌리엄스만 믿고 보게 된 영화였는데 캐스팅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주디 덴치, 캐네스 브레너, 엠마 왓슨(!!!), 줄리아 오몬드(!!!!), 도미닉 쿠퍼, 데렉 자코비까지. 한 명 한 명 등장할 때마다 '어? 어?하며 보는 재미가 ^^


2. 미셸 윌리엄스의 마릴린 먼로 재현 역시 대단했어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먼로의 모습을 재현하는 동시에 우리가 잘 모르는 그녀의 내면까지 표현해야 했는데, 둘 다 성공한 것 같네요.


3. 이 영화를 다 보고나니 자연스럽게 '왕자와 무희 (the prince and the showgirl, 1957)가 보고 싶더군요. 올레TV에 있던데 이 작품도 바로 연결해서 봐야겠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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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가 결합된 정통 무협 영화 <무협 武俠>(2011)


'첨밀밀' 과 '명장'을 연출했던 진가신 감독이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와 함께 만든 영화 '무협'은, 일단 제목 자체가 무협이었기 때문에 주로 드라마타이즈에서 장점을 보여주었던 진가신 감독이 어떻게 연출할지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물론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등과 함께한 2007년 작 '명장'은 괜찮은 작품이었고 인상적으로 보았지만 리메이크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리고 다시 얘기하지만 '무협'이라는 본격적인 제목 탓에 '과연~' 이라는 궁금증을 더욱 갖게 했던 것이다. 거기에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는 물론이요 무엇보다 왕년에 쇼브라더스 영화를 이끌었던 왕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예전 쇼브라더스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큰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진가신 감독은 '무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 정통 무협 영화의 구조와 설정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동시에 일명 'CSI'식 과학수사가 가미된 수사/추리물을 접목하였다. 이는 노골적인 인트로 영상에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 초중반까지는 극중 수사관인 '바이쥬 (금성무)'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사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같이 수사가 중심이 된 중화권 영화로는 유덕화가 출연했었던 '적인걸 : 측전무후의 비밀'을 들 수 있을 텐데, '무협'의 수사과정은 좀 더 CSI스러운 과학수사의 장점과 과정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린 다는 점이 특이할 만한 점이었다. 초 중반까지 영화는 바이쥬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사물의 흐름을 유지하다가 포커스가 좀 더 견자단이 연기한 '진시 (견자단)'로 옮겨가면서 정통적인 무협물에 가까워진다.




진시가 본격적으로 중심에 서게 되는 이야기는 정통적인 무협 영화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데, 요 몇 년간 중화권 무협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무협 영화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 의미의 한계로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무협 영화가 지녀야 할 정통적인 가치관들을 훼손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진가신의 '무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과학수사라는 최신의 트랜드(영상미를 최대한 활용한)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무협 영화가 가져야 할 정통성은 고수하려는 노력이 엿보인 작품이다. 진시가 중심이 된 시퀀스야 말할 것도 없지만, 바이쥬가 중심이 된 시퀀스의 경우도 따지고 보면 '협'과 '의' 같은 정통적 가치관들 때문에 고뇌하는 메시지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세를 갖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후반 부 정통적인 방식의 이야기가 진행되더라도 지루하기 보다는 전개와 결말에 있어 좀 더 힘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협'이 무엇보다, 특히 무협 영화 팬들에게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전설의 스타, '외팔이 (독비도)' 시리즈의 주인공 '왕우'가 출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오랜 세월 영화계를 떠났던 그이기도 한데, 자신이 예전 출연했던 영화의 깊은 오마주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작품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서는, 감독이 진가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쇼브라더스 영화 속 그 날카롭고 생기 넘치는 왕우는 없지만, 많지 않은 장면의 출연 임에도 그야말로 화면에서조차 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는 현재의 왕우를 확인할 수 있다. 왕우가 연기한 캐릭터의 경우, 정말 그가 아니면 누가 과연 이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역시 명불허전. 강호의 고수가 돌아온 셈이다.


Menu Design




제작사의 마니아적 마인드가 돋보이는 DP컬렉션에 특화된 기획력


DP시리즈 008번으로 선보이는 진가신 감독의 ‘무협’ 블루레이는 KD미디어, 블루키노, 컨텐츠게이트 등 국내 주요 출시사의 블루레이 제작을 담당해왔던 오소링 전문업체 LIFE LABS MEDIA의 자체 레이블 출시 001호 타이틀이기도 한데, 기존 출시되었던 7편의 DP컬렉션 타이틀 가운데 퀄리티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오탈자 등 인쇄 오류 같은 실수가 전혀 없었던 보기 드문(?) DP컬렉션이었던 002호 이창동 감독의 ‘시’ 블루레이 오소링을 맡았던 제작사이기도 하다.




이번 ‘무협’ 블루레이의 전체 제작과정을 지인을 통해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최초 기획부터 티저와 예고편의 활용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마케팅, W님과의 콜라보레이션 기획, 진가신 감독의 친필 메시지, 디스크 디자인, 블루레이 메뉴 구성, 이스터 에그 등 여러 측면에서 DP컬렉션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마니아적인 마인드를 기반으로 일관성 있고 집요할 정도의 사전 기획과 노력이 더해진 과정이었다. 특히 상업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티저에서 예고편, 발표 등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정보 공개 방식을 취한 일련의 마케팅 과정은 그 세련됨과 효과 면에서 디피 컬렉션은 물론이고 기존 블루레이 시장에서도 전례가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싶다.



특히 기존 DP시리즈에도 프리오더에 참여한 DP회원들의 이름과 닉네임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크레딧은 제공이 되었었지만, 이번 DP008 ‘무협’ 블루레이에는 유명한 일렉트로닉 밴드 W&Whale의 멤버이자 DP회원이기도 한 한재원 님 (DP닉네임 W님)의 참여로 특별하고 소장가치 높은 디자인의 DP독점 아웃케이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메이킹 크레딧 수록은 물론이고 여기에 W님이 백그라운드 뮤직을 직접 작곡하여 수록함으로써, 정말로 특별한 콜라보레이션이자 DP컬렉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서비스는 물론 회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블루레이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동안 DP컬렉션의 진행과정에 있어서 제작사의 역할이란 것이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이번에 LIFE LABS MEDIA가 보여준 -심지어는 디피 구성원이 실제 제작진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일련의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은 '디피人들의 축제'와도 같은 DP컬렉션의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한층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향후 디피 컬렉션에 참여하는 업체들로 하여금 두고두고 참고할만한 인상적인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는 LIFE LABS MEDIA가 제작사이면서 출시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라, 앞선 다른 DP컬렉션 참여 회사들과는 경우가 좀 다를 수 있음을 언급해둔다.


찾아라, 이스터 에그!


본편 퀄리티를 살펴보기 이전에 본 타이틀을 보는 재미를 높여주는 두 개의 이스터 에그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자막 설정 메뉴의 한국어 자막이 선택된 상태에서 특정 리모컨 방향키를 누르게 되면 DP008이라는 아이콘과 함께 숨겨져 있는 히든 메뉴가 나타나는데, 이 것의 정체는 본편의 한글자막을 보편적인 굴림체가 아닌 영화의 고전적 컨셉과 잘 어울리는 추가 제공 한글 폰트를 선택할 수 있는 메뉴다.




하나는 마치 극장에서 필름으로 상영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필기체의 자막이고, 다른 하나는 무협 영화에 어울리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폰트이다. 십여년 전만 해도 극장에서의 필름 상영에는 필기체 스타일의 한글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과거 무협 영화를 극장에서 많이 본 사람이라면 보너스 폰트 중 필기체를 선택하고 감상하는 느낌이 남다를 것이다.





제작사인 LIFE LABS MEDIA에 따르면, 새로운 폰트를 수록하기 위해 별도의 폰트 사용 라이센스도 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했다고 한다. 사실 폰트의 경우 타이틀의 소장 가치나 본편 감상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렇듯 꼼꼼하게 작품에 어울리는 폰트를 두 개씩이나 추가로 수록했다는 점과 분명 칭찬하고 넘어갈 만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이스터 에그는 DP컬렉션 타이틀에서 익숙한 것으로 프리오더 참여자들의 이름과 닉네임을 수록한 'BD 메이킹 크레딧'이다. 역시 DP008이라는 아이콘을 찾으면 볼 수 있는데, '부가영상' 메뉴의 '예고편' 항목이 선택된 상태에서 한 번의 리모컨 조작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리뷰용 QC 디스크를 받은 시점에서 W님이 백그라운드 뮤직을 작업하고 계셨기 때문에 메이킹 크레딧 영상에는 '무협'의 오리지널 테마가 BGM으로 입혀져 있었지만, 출시 후에 타이틀을 받아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스타일의 음악이 새로 입혀져 있을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기존 메이킹 크레딧 영상이 왼쪽의 영화 화면을 스틸로 처리한 것과 달리, 이번 '무협'의 경우 동영상으로 삽입하여 보는 재미를 높였다. (위 스크린샷의 닉네임 리스트는 아직 '무협' 프리오더가 종료되지 않은 시점이라, 임시로 DP002 '시' 당시의 프리오더 리스트를 사용했음을 알려둔다.)


Video


DP008 ‘무협’이 기존 DP시리즈에 비해 갖는 차이점이라면, 기존 타이틀들이 비교적 작품성 위주의 선정이라 AV적으로는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무협’ 블루레이는 좀 더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화질과 사운드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질의 경우 촬영 분의 따라 조금씩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블루레이만의 날카로움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장면 장면의 날씨와 톤에 따라 최적의 결과를 구현해 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진가신 감독이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팬텀 카메라로(1초에 500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는) 촬영한 장면들은 블루레이의 화질로 더욱 디테일하게 표현된다.



‘무협’은 전반적으로 브라운 계열의 톤을 갖고 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브라운 특유의 따듯함은 물론, 그 가운데서도 명암의 표현력을 놓치지 않고 있다. 견자단의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그의 변발이 자라면서 솜털처럼 조금씩 올라온 머리 결(?)도 확인할 수 있다.




Audio


화질도 만족스러운 편이었지만 그보다 만족스러운 건 DTS-HD MA 7.1채널의 사운드였는데, 일부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장면이나 자연의 미세한 소리들이 세심하게 믹싱된 장면 역시 전반적으로 우수한 퀄리티의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운드 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장면에서도 ‘엇, 무협 사운드가 이 정도로 좋았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후반부 왕우가 등장하여 호통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사자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비좁은 가옥에서의 공간, 그리고 장대비와 번개가 내리치는 실내외를 오가는 왕우와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DTS-HD MA 7.1채널이라는 사운드 포맷의 온갖 화려한 서라운드 효과를 종합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챕터다.



그 외에도 다이내믹한 대전 액션에서 검과 주먹의 궤적음과 주변의 사물들이 부서지는 등 세밀한 이펙트를 표현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며, 금성무의 내레이션을 표현하는 공간감도 이질적이기 보다는 효과적이었다.


Special Features


최신작인만큼 홍콩 영화로는 드물게 모든 부가영상이 HD 영상으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메이킹 영상의 촬영 퀄리티나 편집 효과 등도 상당히 세련된 모습이다. 물론 모두 한글자막을 지원한다.




‘제작영상’은 각 배우의 이름 별로 나뉘어서 수록되었는데, ‘견자단’에서는 배우로서는 물론 무술 감독으로서의 견자단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스턴트 장면들에 대한 위험성과 더불어 아찔했던 사고 에피소드와 팬텀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을 위해 더 세심하게 신경 써서 촬영해야 했던 액션 장면들의 연출에 대한 진가신 감독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다.





‘금성무’에서는 진가신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금성무라는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는 금성무로 인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또한 사투리 연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는 금성무의 소탈한 촬영장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탕웨이’에서는 두 아이의 부모를 연기하게 된 탕웨이의 소감과 이 작품에서 자신이 연기한 ‘아유’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해주고 있는데, 인터뷰 내내 귀여운 웃는 얼굴로 임하는 그녀의 모습 탓에, 짧은 부가영상임에도 그녀의 묘한 매력에 또 한 번 흠뻑 빠지게 된다. (아래 영상은 제작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맛뵈기로 올라왔던 '탕웨이' 스페셜 메이킹 영상)


마지막으로 ‘왕우’와 ‘혜영홍’에서는 ‘무협’을 통해 근 10년 만에 영화 계에 복귀한 전설의 배우 왕우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워낙 극중 맡은 배역의 인상이 강했던 터인지, 인터뷰도 왕우가 아니라 72파의 두목으로서 임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도 매일 1시간 넘게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왕우 형님, 아니 선생님의 인터뷰를 들으니 ‘무협’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도 또 만나볼 수 있기를 더 간절히 기대해 본다.



'혜영홍' 편에서는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단 한 번의 견자단과의 액션 장면에서만으로 대단한 존재감과 내공의 고난도 무술 연기를 보여준 배우 혜영홍의 촬영 장면과 인터뷰를 볼 수 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이 촬영한 액션 장면 중 '무협'의 액션이 최고였음을 스스로 뿌듯해하며 이에 도움을 준 무술감독 견자단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총평] 작품, AV퀄리티, DP컬렉션으로서의 가치 모두 뛰어난 타이틀


견자단과 금성무 그리고 탕웨이가 호흡을 맞춘 진가신의 ‘무협’은 CSI식 과학수사를 감각적으로 가미하고 있으면서도, 정통 무협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키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은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여기에 쇼브라더스 시대를 이끌었던 왕우의 출연은 그 것만으로도 팬들을 끌어 당기는 엄청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DP008 타이틀로 출시되게 된 블루레이는, 국내의 열악한 BD시장 속에서도 DP컬렉션라는 브랜드의 수준을 만들어가기 위한 제작사 LIFE LABS MEDIA의 많은 노력과 마니아적인 감각이 더해져, 화질, 사운드와 패키지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만족할 만한 타이틀을 선보이게 되었다.



그간의 DP컬렉션이 아무래도 대중성보다는 작은 영화로서의 희소적 가치와 작품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선뜻 선택이 어려웠던 이들에게는 대중성과 타이틀의 완성도를 함께 수록한 ‘무협’ 블루레이를 추천하고 싶다. 물론작품에 한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역대 DP컬렉션 중 가장 'DP컬렉션'다운 타이틀임이 틀림없기에 계속 기존의 컬렉션을 유지해왔다면 이번 DP008의 소장가치는 두번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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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아츠 ZERO 바람의 검심 _ 켄신 피규어!


근 10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 하나가 피규어 수집을 끊은 것인데, 그럼에도 가끔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면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그나마 형편에 맞는 피규어를 나도 모르게 고르게 된다. 그래도 이게 결코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눈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켄신의 그 날카로운 눈매를 보니 바로 무장해제되어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구입하게 된 피규어아츠 ZERO 바람의 검심 히무라 켄신 피규어!










개인적으로 4만원 중반대의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히 만족하는 편. 일단 가장 중요한 얼굴 자체가 '누구세요?' 수준이 아니라 만족스럽고 깨알 같은 디테일 수준은 아니지만 이 가격대에서 최선을 다한 헤어나 의상, 칼자루 등의 디테일도 나쁘지 않다.





이번 켄신 피규어는 2개의 얼굴이 제공되는데, 하나는 선하고 크게 뜬 눈이 인상적인 착한 인상의 얼굴과 다른 하나는 히무라 보다는 발도재의 가까운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얼굴이 포함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날카로운 얼굴이 더 매력적이라 이걸 디폴트로!









그렇게 우리 집에 새로운 식구가 된 히무라 켄신 사진 한 장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포스팅 끝!





사진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근원에 대한 선문답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에이리언 (Alien, 1979)'의 프리퀄로 먼저 알려진 작품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실 개인적인 기대의 포인트도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프리퀄 이란 형태는 기존 작품들의 장점들을 그대로 계승해 최대한 신작이 갖는 벽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스토리 전개 등 여러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점도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의 프리퀄로서도 성립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이것은 부수적인 기능의 수행일 뿐, 독립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고 오히려 1979년 작 '에이리언'의 이야기가 '프로메테우스'의 파편과도 같은 작품으로도 이해가 가능할 정도의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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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인트로. 태초의 지구로 예상되는 무인지경의 자연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엔지니어'로 불리는 이는 어떤 액체를 마시고는 분열되어 폭포 아래로 떨어지고, 분열된 이 자의 DNA는 물 속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결합되어 간다.


'프로메테우스'의 첫 장면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이 글 후반부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어떤 설이 정설인지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는 듯 하다. 만약 이 인트로가 100% 영화를 규정 짓는 장면이라 반드시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지만 이 인트로의 중요성은 영화를 곱씹어보면 볼 수록 느끼게 된다), 100%는 아님을 바로 이어지는 데이빗 (마이클 패스밴더)의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에 홀로 깨어 농구도 하고 다른 사람의 꿈(과거)도 훔쳐보고 영화도 보는 데이빗의 모습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모티브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데이빗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를 보고 극 중 로렌스의 대사와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개인적으로도 고전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여러번 보았던 작품인지라 '프로메테우스'에서 인용되는 순간, 데이빗의 존재와 맞물려 바로 영화의 모티브를 연결해 볼 수 있었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본 이들은 잘 알겠지만 피터 오툴이 연기한 로렌스는 영국인과 아랍인 사이에 모두 속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철저히 홀로 존재했던 외로운 존재였으며, 그렇기에 한 쪽이 아닌 양쪽의 부담을 심리적으로 모두 감당해야만 했던 안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로렌스는 양쪽을 모두 아우를 만큼의 믿음을 갖고 있었던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아라비아의 로렌스' 속 로렌스의 중간자적인 캐릭터는 '프로메테우스'에 와서 조물주(엔지니어)와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로봇 데이빗으로 투영되었으며, 로렌스가 그러하였듯 데이빗의 시작과 결말도 이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꼭 데이빗의 이야기로 치환하지 않더라도 '프로메테우스'는 여러가지 가치들의 관계를 통해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다. 아, 그리고 인용한 장면이 다름 아닌 '믿음'에 관한 장면이었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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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데이빗이 로렌스를 보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장면은 일회성이 아닐까 했는데, 결국 데이빗은 끝까지 로렌스의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 다시말해 데이빗은 물론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단단히 결심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프로메테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은 죽음에 관한 (Mortal) 것과 연결된다. 죽음을 앞두고 영원을 누리기 위해 창조주를 만나고자 하는 웨이랜드 사의 회장 피터 웨이랜드, 죽음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데이빗 그리고 불멸의 존재로 인간들에게 그려지는 엔지니어들까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불멸의 존재로 예상되었던 엔지니어들 역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은 죽음에 관한 (Mortal) 것과 연결된다. 죽음을 앞두고 영원을 누리기 위해 창조주를 만나고자 하는 웨이랜드 사의 회장 피어 웨이랜드, 죽음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데이빗 그리고 불멸의 존재로 인간들에게 그려지는 엔지니어들까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불멸의 존재로 예상되었던 엔지니어들 역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가 처음 가졌던 질문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것이었다면, 엔지니어들 역시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시점에서 이 방향성 역시 변화를 겪게 된다. 창조주로 생각했었던 엔지니어들이 신과 같은 존재라기 보다는 진보한 또 하나의 존재(유한한)라는 점과 그들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 역시 인간들이 기대한 '무엇'이기 보다는 그들의 필요에 의한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내놓기 보다는 이 질문을 던지게 된 배경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모든 캐릭터와 관계들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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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믿음의 메시지를 던졌던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각기 다른 것을 믿었던 이들의 믿음이 생기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오래 전 각 문명들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를 보고 인간을 만든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쇼'와 '찰리' 박사, 그리고 이들이 생명을 주었다면 죽음마저 앗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피터 웨이랜드와 이런 웨이랜드의 생각을 믿지 못하는 비커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 만이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아마 '프로메테우스'가 좀 더 명확한 하나의 답을 주고자 했던 영화였다면 처음 가졌던 믿음을 그대로 끌고 갔거나 아니면 그 믿음이 철저히 붕괴되어 가는 과정으로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겪고 난 다음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는 과정까지 열어두었다. 즉, 이 영화는 워쇼스키의 '매트릭스' 처럼 하나의 가설을 두고 다양한 논리와 철학으로 설득하는 영화가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만이 답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작품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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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직간접적으로 하나의 정답만이 의미 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답을 찾으려는 것 자체, 혹은 인물들 각각이 선택한 그들 만의 답이 모두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닌 모두가 답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이야기한다. 쇼나 찰리가 꿈꾸던 창조주의 모습은 아니지만 엔지니어로 불리는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을 의도적으로 창조했거나 그렇지 않고 우연에 의해 창조했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인트로 장면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도록 연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후에 알려진 오프닝의 확장된 장면을 포함하더라도 그렇다), 엔지니어들의 우주선에서 발견된 수 많은 괴생물체들의 존재가 가둬두기 위함인지 양육하기 위함인지, 양육하기 위함이라면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 영화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만약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면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지구로 귀한하지 않고 그들의 행성으로 답을 얻기 위해 떠나는 쇼의 여정이 더욱 의미있을 것이고, 우연에 의한 창조였다면 이 우연이 가져오게 된 결과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따져보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 영화가 '에이리언'의 프리퀄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명확한 '에이리언'의 프리퀄이었다면 에이리언의 탄생과 존재에 대한 더 확실한 모티브가 있어야 하는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그 좋은 예) 이 작품에서는 바로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프리퀄 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연에 근거한 탄생론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트로 장면으로 미뤄봤을 때 처음에 이 검은 물체는 엔지니어를 숙주로 사용할 수 없는 구조였지만(함께 산화해 버렸으니까), 쇼의 몸에 잉태되어 진화한 이후에는 다시 한 번 엔지니어와 만나게 되었을 땐 엔지니어를 숙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잉태와 숙주라는 개념은 '에이리언'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그 부분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 이 장면이 인상 깊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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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정리를 해보자면 '프로메테우스'에 존재하는 이른바 떡밥이라 불리우는 수많은 단서들은 여타 다른 영화들에서 단서가 활용되는 것들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단서를 활용하는 보통의 방법은 단순히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라 언젠가는 (혹여 이번 영화에서가 아닐지라도) 반드시 풀기 위한 복선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인데, '프로메테우스'의 수많은 단서들은 반드시 풀기 위함이 아니라 푸는 과정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왜 엔지니어는 인간을 창조했는가? 데이빗의 정확한 의도는 무엇일까? 엔지니어는 인간을 의도적으로 창조한 것일까? 왜 엔지니어는 이 곳에 군사기지 같은 곳을 만들어 놓고는 우주선 안에 엄청난 수의 '무언가 (이것이 나중에 모습으로 진화할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를 담고 어디로 향하려고 했던 것인가? 등의 질문은 물론, 처음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같은 우주선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점으로 미뤄 각 우주선 마다 이 정도의 괴생물체가 존재할 것은 물론 또 다른 엔지니어 생존자가 숙면을 취하고 있을 가능성도 남겨두었을 정도로, 해결되지 않은 일들과 질문들이 이 영화엔 가득하다.


'프로메테우스'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 작품이라고 봤을 때, 위의 늘어놓은 질문들은 어쩌면 여러 번의 기회일런지도 모르겠다. 정답이 필요한 질문이었다면 여러 개의 질문과 의문을 던질 필요조차 없었겠지만 이 영화와 같은 경우라면, 더 많은 기회를 통해 과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핵심인 영화이기 때문에 의문점들, 아니 한 가지로만 해결되지 않는 미완의 것들을 일부러 여럿 남겨둔 셈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이 모호함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함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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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맥스 3D 감상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3D는 둘째 치더라도 이 영화에 아이맥스라는 포맷은 정말 필수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인트로의 그 광활한 아이슬랜드의 풍광은 아이맥스의 대화면으로 볼 때 그 위엄이 제대로 느껴지더군요. 이러한 압도적 위엄이 있어야 이 영화의 초반 분위기가 성립될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이런 거대한 자연에 비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덧없음을 인트로는 말없이 얘기하고 있죠), 아이맥스 3D의 관람을 강추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이 스케일은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구요.


2. 속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이해한대로 라면 속편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네요. 속편이 나오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구요. 이미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던지고자 한 질문에 충실한 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3. 아무리 생각해도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인용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자 대단한 시도였다고 생각되네요. 그 인용 하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힘을 얻게 된 것은 물론이요, 데이빗이라는 캐릭터에게 이전 '에이리언' 시리즈의 비숍에게는 없는 '공감대'를 만들어주었으니까요. 페스벤더의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4. 일단 한 번 쏟아내지 않으면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은 인상을 안긴 작품이었습니다. 한 번 쏟아내고나니 그나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한 번 더 보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쏟아내고픈 욕구가 발동하는군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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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2012)

가지 않았던 길 앞에 서다



홍상수의 신작 '다른나라에서'를 보았다. 이자벨 위뻬르의 출연으로 더욱 화제가 되었던 '다른나라에서'는 전작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과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간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재미있다'가 아니라 극장을 나오며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아, 정말 영화 재미있게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 아기자기함과 그 속에 묘한 감정선이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홍상수는 전작들을 통해 같은 인물들을 두고 시공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거나 (북촌방향), 하나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 모호함 속의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옥희의 영화), '다른나라에서'는 모호함은 덜하고 좀 더 명확해졌으며 시공간은 같지만 같거나 다른 인물들의 또 다른 이야기 (가지 않은 길)를 통해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오는 재미를 한가득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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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함께 빚에 쫓겨 모항에 내려온 딸 (정유미)이 심심해서 써 본 세 편의 작은 이야기(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안느 (이자벨 위뻬르)에 관한 이야기다. 모항이라는 동일한 공간, 여름이라는 같은 시간대 그리고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같은 사람들. 하지만 세 명의 다른 안느가 만나는 이 시공간과 사람들은 조금씩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물론 이자벨 위뻬르가 모항을 배경으로 유준상, 정유미 등 우리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신선함과 매력을 준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는 얘기가 다르다. 개인적으로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어느 한 접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좀 더 명확해진 '옥희의 영화'이자 대놓고 챕터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정유미가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을 매번 삽입하면서 챕터화를 한 '북촌방향' 말이다. 이렇게 관계나 구성에서 좀 더 명확해지면서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편안한 작품이 되었고, 그의 다른 여름 영화들처럼 (해변의 여인, 하하하) 좀 더 유쾌함과 살랑거림을 담은 가능성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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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과의 접점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나라에서'의 가장 큰 매력은 세 명의 안느의 이야기가 모두 밀접한 점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였거나 반전을 핵심으로 내세운 영화였다면 영화 속 다양한 복선과 연결고리들을 굉장한 무기로 활용했겠지만, 홍상수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우연의 가능성인냥, 그냥 자연스레 흘러버린 물줄기인냥 손 가는대로 그려냈다.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을 때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 그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또 다른 모습 (그들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아마도 블록버스터 영화였다면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인물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게 될 때와 유사한 흥미로움과 영화 속 인물들은 처음 겪는, 처음 하는 일이지만 이를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반복을 보게 되는 것에서 오는 다른 재미와 다른 포인트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홍상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배열해 놓고 관객에게 반복과 가능성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안느에게도 일부 관객과 같은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즉, 정말 각기 다른 이야기 속 다른 안느라면 (이럴 경우 같은 안느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었는데, 이 장치를 묘사하는 방식이 관객으로 하여금 '엇, 이상한데?'라고 단순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애잔함을 남기고 있어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바로 안느의 뒷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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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가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능성을 마치 인생극장처럼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앞에 선 안느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쪽으로 가면 안전요원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 쪽으로 가면 등대로 가는 길인데, 안전요원과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등대에 가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서의 중요함 보다는, 이 길 앞에 잠시 멈춰선 안느의 뒷 모습이 무언가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안느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로 이루어진 짧고 응축된 대화들을 통해 단순히 프랑스 여인 안느 만이 '다른나라에서'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다른나라'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세트 하나 없이 실존 하는 장소들만 가지고 촬영한 이 영화가 마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모항'이라는 가공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모항의 자연적 아름다움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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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작들의 비하자면 정서적인 메시지는 좀 덜하고 유쾌한 편안함이 더 가미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정말 홍상수 영화의 다른 명장면들이 그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눈물겹게 아름다운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유준상이 연기한 안전요원이 텐트 안에서 안느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그 장면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맥락이 없는 장면이라고 해도 무방한 순간이었는데, 그 장면이 주는 임팩트가 어떠하였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유준상이 너무 아름답게 노래해서도 아니고, 곡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만도 아닌데 그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ING. BUT IT'S RAINING.
ANNE WANT TO GO TO… GO TO LIGHTHOUSE.
BUT IT'S RAINING, ANNE IS COLD.
DO YOU WANT TO GO LIGHTHOUSE?
BUT, WE DON'T KNOW. WE DON'T KNOW.
ANNE, ANNE, ANNE.





1. 전 개인적으로 안전요원의 텐트 안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은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긴 홍상수 영화에서 텐트 안을 잡아냈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네요 ㅎ


2. '하하하'를 보고 가장 크게 발견한 건 역시 유준상이었는데, '다른나라에서' 드디어 터져나왔어요! 주옥 같은 영어 명대사를 여럿 만드셨습니다 ㅋ


3. 홍상수 투어의 장소가 또 추가되었군요. 이제는 모항도 가봐야할 곳!


4.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이자벨 위뻬르의 모습이라면 '귀여움' 이었어요. 빨간 원피스를 차려입고 나선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더군요.


5. 도올 선생님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서 이미 첫 등장의 뒷모습부터 웃음이...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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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토스 _ 곱창과 와인을 함께 즐기는 깔끔한 홍대맛집!


개인적으로 곱창을 즐겨먹는 편까지는 아니지만 가끔씩 몹시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곱창이라는 메뉴 자체가 쉽게 아무곳이나 선택하기에는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있는 요리가, 불현듯 먹고 싶을 때마다 선택도 어렵고 실패를 한 적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같은 TNM파트너이신 계란군 님께서 홍대에 관련 음식점을 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위치를 보니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그 길가에 위치한 곳이라 자연스럽게 소개할 기회를 신청하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지난 금요일 초대되어 곱창과 와인을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아, 제일 중요한 걸 얘기안하고 시작했는데 가게이름은 '라비린토스 (LABYRINTHOS)'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은 사람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불금의 홍대였는데, 라비린토스 역시 이미 손님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미리 예약을 하고 갔던터라 자리 걱정없이 음식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참고로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직원분께서 (스파이크 님) 너무나x100 친절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을 해주셨는데, 본인도 초대받은 블로거분이라 그런게 아니라 원래 이럽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다른 테이블에 손님들에게도 친절이상의 상냥을 구사! 사실 이렇게 다양한 메뉴가 나오거나 평소 잘 먹지 않는 메뉴를 시킬 때는 뭐가 뭔지 몰라서 주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메뉴에 대한 설명은 물론 각 스타일에 맞는 메뉴 추천과 더불어,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마다 어떻게 만들었다거나 하는 짤막한 소개들을 곁들여 주셔서 부족함이 없었다.


위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의 모든 손님들과 오랜 친구들처럼 편하게 대화하시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다들 단골 손님들인 듯 했다. 그말은 즉슨, 대부분의 손님을 단골로 만들어 버리는 친화력이랄까! 여튼 그렇게 친절한 소개를 받으며 곱창구이와 와인을 주문!





에피타이저로 나온 음식이었는데, 두부와 우유를 섞어서 만드셨다는. 뭔가 묘한 맛이었음. 살짝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취향대로 골라 찍어 먹을 수 있는 세가지 소스! 곱창요리 자체도 블랙/기본/레드 소스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우리는 레드 소스를 선택. 우리처럼 곱창을 그리 자주 먹는 편은 아닌 경우나 초보자들에게 좀 더 어울리는 소스라 레드 소스를 선택!





본 와인이 나오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할 수 있는데, 본격적인 곱창을 맛보기 전에 간단하게 입을 적시고, 더운 날씨에 갈증도 살짝 해소하기에 좋았음! (나는 왜 와인으로 갈증을 해소하는가 -_-;)






드디어 나온 곱창! 미리 설명을 해주신대로 가장 괜찮을 것 같은 메뉴 부위를 골라 선택한 요리였는데, 각각 메뉴 마다(곱창/대창/특양)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내가 어떤 메뉴를 더 맛있어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음. 개인적으로 부추도 좋아하는데 적절히 곁들여 먹을 수 있어 곱창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맛도 맛이지만 곱창을 내오는 저 용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보통 불판 위에 그대로 올리거나해서 계속 냄새도 나고 좀 위험하기도 하고 신경이 쓰이곤 하는데, 라비린토스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숯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완전히 가려져있으면서도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구조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양새가 아니었나 싶다. 이거 하나로도 테이블 위가 상당히 깔끔해진듯!






그리고 곱창과 함께 시킨 와인. 사실 와인은 좀 더 저렴한 걸로 먹을 수도 있었는데 이왕 먹는거 돈을 조금 보태서 좋은 걸 마셔보자라는 마음에 (지원해주신 금액이 넉넉하긴 했지만 일부러 조금이라도 돈을 내려고 겸사겸사 오버했죠 ㅎ) 산 로렌조 와인을 시켰는데, 오랜 만에 마신 와인이라 그런지 입에 착착 감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곱창과 와인의 조화가 어떨까가 사실 라비린토스를 찾기 전 가장 기대되는 점이었는데, 역시나 두 가지의 조화는 탁월했다. 나야 별로 상관없지만 특히 곱창을 잘 못드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점을 와인이 상당부분 희석시켜주는 부분이 있어 좋은 것 같고, 맥주나 소주와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의 조합이 신선하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옛날에는 무조건 곱창엔 소주! 였는데, 무언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이제는 곱창을 먹을 때 소주와 와인 중에 선택하게 될듯.






이 닭고기 볶음 요리는 주문한 것이 아니라 저 맛있는 와인을 한 병 다 비우는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비스로 제공해 주신 요리인데, 메뉴에도 없는 비공식(?)요리인지라 더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미 곱창과 와인을 배부르게 먹어 더이상 들어갈 곳이 없을 것 같은 상태였음에도 남기지 않고 다 뚝딱 해치웠을 만큼 맛이있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메뉴를 정식 메뉴로 팔아도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가는 길은, 홍대 주차장 골목으로 쭉 내려오다보면 오른 편에 삼삼이네 생고깃집 2층에 크고 하얀 간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주로 소주 한잔과 함께 하던 곱창 매니아 분들에겐 한 번쯤 새로운 곱창의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고, 곱창을 먹어보고는 싶은데 불편한 자리나 위생적이지 않은 부분들 때문에 조금 꺼려졌던 분들에겐, 깔끔한 테이블 차림과 요리 그리고 카페 같은 실내 분위기에서 편하게 곱창을 즐겨볼 수 있어 추천하고픈 곳!


라비린토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

여정의 끝이 아닌 과정을 담은 영화



그 동안 제목만 무수히 들어왔던 영화.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영화를 수식하는 말은 많이 들어왔던 영화.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1957)'은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본다하더라도 극장에서 보게 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는데, 백두대간이 마련한 좋은 기회를 통해 2012년 개봉하게 되어 스크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에 애정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레 고전이라 불리우는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역시 걸작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구나'라며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기 보다는 당시에만 머물러 있는 영화도 있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접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제7의 봉인'을 보기 전에는 신과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예상 탓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시종일관 유머가 사라지지 않는 작품이었으며 20세기 최고의 씨네아스트 답게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적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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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이 담긴 '제7의 봉인'은 그 주제 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든 심오함의 무게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이 성찰의 여정을 오묘하게 그려냈다. 굳이 신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더라도 감독의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의 경우, 그 무게를 영화가 감당하는 방법에 있어 힘겨움을 반드시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영화의 능력 부족이라기 보다는 힘겨움으로서 표현해야할 주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7의 봉인' 역시 그러한 방식이 아닐까 섣불리 예상했었지만 잉마르 베리만의 방식이 오묘하다는 것은 유머러스함과 아이러니를 전면에 배치하다시피 하면서도 이 여정 속에 주제가 갖는 무게를 관객이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극 중 등장하는 광대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에 아주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광대의 이야기를 들어내고 죽음과 체스를 두는 기사 '블로크 (막스 폰 시도우)'와 그의 종자 '옌스 (군나르 뵈른스트란드)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와 신의 침묵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는 블로크의 여정은 그 나름대로의 구성을, 광대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또 나름대로의 플롯을 가지고 성립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동시에 두 이야기가 하나로 만났을 때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음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 접점을 만들어낸 방식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연결고리가 강하지 않고 느슨한 듯 하지만 처음 부터 끝까지, 다르면서 같고 같지만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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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음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사신과 두는 체스라. 곰곰히 생각해보면 잉마르 베리만이 체스라는 소재를 이 관계 속에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한 것은, 자신의 오랜 성찰의 결과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성찰 과정 자체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이라는 것은 어차피 과정 보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고, 체스 역시 결과로 말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잉마르 베리만은 어쩌면 정해져 있는 두 가지 결과의 대화를 통해 그 과정에 담긴 수많은 질문과 성찰을 담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제7의 봉인'의 결과는 그 과정 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블로크는 단순히 자신의 죽음을 미루고자 꼼수를 부려 사신과 체스를 제안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며, 애초부터 결과(죽음)를 바꿔보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 처럼 보인다. 답을 말하지 않는 영화에는 여러가지 경우가 있는데, '제7의 봉인'은 그 답이 무엇이었던 간에 그 답보다 의미있는 과정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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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신과 바닷가에서 처음 체스를 두는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은 정말 인상 깊더군요. 그 설정이 주는 인상과 흑백의 명암이 주는 아름다움이 모두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2. 막스 폰 시도우의 젊은 모습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되더군요 ㅎ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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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열악한 블루레이 시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출시되기 힘든 작품들을 우수한 퀄리티로 블루레이를 내고 있는, DVDprime (이하 DP)의 DP시리즈 6,7호인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 커피북 한정판이 어제 출시되었습니다. 저도 오랜 DP의 회원이자 DP를 통해 블루레이/DVD를 소개하는 공식 리뷰어로서 당연히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지요. 지금까지의 DP시리즈 가운데 개인적으로 '우앗!! 이 작품이 국내에, 그것도 DP시리즈로 출시되다니!!'라고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cm'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였는데요 (그 때 감독님을 직접 뵙고 감동의 눙물을 흘렸던 기억이 ㅠㅠ),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나온다고 했을 때의 충격은 이 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이후로 '하하하'를 거치면서 저는 어느새 이른바 '홍상수빠'가 될 정도로 흠뻑 빠지게 되었는데, 그런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인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을 블루레이로 소장할 수 있다니, 이 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은 없었더랬죠.





그렇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타이틀을 프리오더한지 어느덧 시간을 훌쩍 흘러, 드디어 어제 이 두 타이틀을 제 손에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커피북 한정판으로 나온 타이틀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패키지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타이틀이었습니다. 국내 블루레이 시장에 대해 이해가 없으신 분들께서는 이 정도(?) 패키지의 퀄리티에 대해 감흥이 없으실 수 밖에는 없을 텐데, 국내 블루레이 시장을 고려했을 때 이런 패키지는 제작사 입장에서 완전히 사치이며 욕심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블루레이 시장 자체를 생각하는 애정없이 오로지 비지니스 적인 측면만 따져보았을 때는 굳이 할 필요없는 방식이죠. 물론 여기에 비지니스 적인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봉사'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분명 앞서 이야기했던 것들이 동반된 결과물이라는 것에는 한 목소리를 더 보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튼, 이러저러한 사연과 스토리가 담긴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 블루레이를 받아보았습니다. 정말로 국내 패키지를 이렇게 오랜 시간 살펴볼 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경우가 언제였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양과 질적으로 만족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커피북이라는 패키지의 특수성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있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의 풍성함에 대해서는 누구나 반길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커피북에 담긴 콘텐츠 들이 개봉당시 보도자료에 근거한 자료들이기는 하나 블루레이를 위해 통일된 디자인으로 재구성하여 일관성이 돋보였고, 영화 속 인상적이었던 스틸컷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볼거리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블루레이가 제 개인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옥희의 영화' 블루레이에 수록된 제 글 - '모호함으로 완성되는 논리')



커피북 콘텐츠에 영화에 대한 글로는 유일하게 제 글이 수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원고를 전달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실제 타이틀이 나오기까지는 조금 조마조마한 느낌이 솔직히 없지 않았었는데, 타이틀이 도착하자마자 뜯어보고는 떡하니 실린 제 글을 보니 정말 살짝 울컥하면서 소름이 돋더군요 ㅠ 기존에도 여러 잡지에 1년 넘게 기고한 적도 있었고, DP에서도 공식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스케일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ㅠ 이번 프로젝트는 제가 예전부터 꿈꿔오던 것이라 더욱 그러했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고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감독과 작품의 블루레이나 DVD 타이틀에 마치 음반 해설 속지처럼 영화에 대한 내 글을 부족하나마 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 부터 해오고 있던터라, 이번 타이틀에 실린 제 글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더군요. 더 황당할 정도로 감동적인 건 이런 첫 작품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거죠 ㅠ (감독님 보고 계시죠 ㅠㅠ) 어제 하루 종일 이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났었는지 몰라요 ㅋ 정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제게는 너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어서요 ㅠ






이번 타이틀 역시 기존 DP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타이틀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미리 프리오더 해준 분들의 이름(혹은 닉네임)이 기재되었습니다. 커피북으로 보니 더 좋네요~ 제 닉네임도 보이구요 ^^









제 글 외에도 영화를 사랑하는 소비자가 직접 만든 타이틀 답게 사전에 공모했던 커버 이미지들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며, 작품과 관련있는 멋진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겔러리도 수록되었습니다 (90년생김정훈 님의 사진 멋지네요!)





('북촌방향' 블루레이에 수록된 제 글 - '시공간 속 가능성을 얘기하는 홍상수')





일단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서 이번 블루레이는 저에게 너무 영광스러운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결코 작지 않은 사건이었죠 ^^;


(사건 1. 뭐라고? 홍상수 감독 작품이 국내에 블루레이로 출시된다고?

 사건 2. 뭐라고?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이 나오는데, DP컬렉션으로 나온다고??

 사건 3. 뭐라고? (리얼리?) 이 한정판 타이틀에 내 글이 실렸다고???)


그리고 부족하지만 오랜 시간 나만의 글을 열심히 써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발걸음을 한 발 더 내딛게 된 의미있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부족함을 매일 느끼고 있기에 더 갈길이 멀어 오히려 '희망적'이기도 하구요 ^^


너무 혼자 여러번 자주 감격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ㅎㅎ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 국내 블루레이 출시를 위해 힘써주신 제작사 디에스 미디어와 저의 오랜 홈그라운드 DP! 그리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매번 올리는 영화 글을 정성껏 읽어주신 수많은 DP회원 여러분들께 무엇보다 가장 큰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



조지 클루니가 출연에 연출까지 맡고, 라이언 고슬링, 폴 지아마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마리사 토메이, 에반 레이첼 우드 등 화려한 캐스팅이 눈길을 끄는 영화 '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를 뒤늦게 보았다. 평소 정치에 관심은 물론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조지 클루니의 작품이라 정치적인 소재를 다뤄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영화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펼치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소재로 활용하는 영리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도 생각도 많은 조지 클루니이기에 가능한 여유가 아닐까도 싶은데, 조지 클루니는 민주당내 선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주인공 스티븐 (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면서 여러번 맞닥들이게 되는 '최선의 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또 한 번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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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은 민주당내 차기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나 다름 없는 선거에서 모리스 (조지 클루니)를 당선시키기 위해 일하는 선거 캠프의 팀장이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재능으로 정치계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스티븐은, 선거 운동 중 상대 후보 캠프의 모략에 걸려들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믿고 지지하던 모리스의 치명적인 스캔들을 알게 되고 만다.


사실 조지 클루니의 그간 정치적 활동이라던가 '킹메이커'라는 국내 개봉 제목으로 미뤄봤을 때, 예전 비슷한 영화들처럼 선거 캠프의 인물들을 통해 선거와 그 뒷 이야기 그리고 미국내 여러가지 정치적 이야기들을 다룬 영화가 아닐까 했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킹메이커'의 포커스는 분명 그 곳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현실적 소재들이 모두 등장하고 실제 사례 (클린턴의 스캔들)들을 인용한 부분들도 등장할 만큼 실제 정치판의 뒷이야기가 살아 있지만, 이것들을 통해 미국내 정치판을 비판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재조명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 사건에 놓인 주인공 스티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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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스티븐의 선택이 그러한 점을 더 돋보이게 하는데, 스티븐은 말그대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정의의 편에 서기 보다는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스티븐이 자신이 믿고 따르던 모리스의 스캔들을 알게 된 후 벌이는 갈등과 그로 인한 몇 번의 선택들을 통해 영화는 끊임없이 '최선의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킹메이커'의 이러한 질문은 개인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깊게 다가왔는데,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과정의 정의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정의 정의가 없는 최고의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를 또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실제로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의는 무시해도 된다가 아니라, 부득이한 경우 결과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며, 과정의 정의 없는 최고의 결과는 무조건 잘못 되었다 가 아니라, 과정의 정의를 위해 최고의 결과를 포기하여 결국 상대의 승리 혹은 최악의 결과를 낳도록 하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에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는 삶의 여러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인데, 그것이 신념과 맞물렸을 때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아, 이 영화에서 역시 답은 없다. 이 문제에 공통된 답이란 것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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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영화가 바로 '킹메이커'이다. 최근 보았던 '디센던트'를 통해 더더욱 사랑하게 된 조지 클루니의 경우 정말 못하는게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며, 등장만으로 무게감을 주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폴 지아마티의 캐스팅은 양 캠프의 무게감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큰 역할이 아닌 듯 하지만 마리사 토메이가 연기한 타임지 기자 역할도 가볍지 않았고, 에반 레이첼 우드 역시 자신의 순수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소비한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주인공을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경우, '드라이브' 이후 최고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남자 배우답게 연기와 이미지가 완전히 결합된 또 한 번의 결과물을 보여주었으며, 점점 동년배의 헐리웃 다른 남자 배우들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이유로 곧 개봉예정인 '블루 발렌타인'이 기대되는 바이다 (미셸 윌리엄스까지 출연하니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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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극장 상영버전이 화면비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보고 패스했다가 이번에 IPTV로 보았는데, 대충 비교해보니 이 버전은 잘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 저는 라이언 고슬링과 동갑입니다 -_-;;;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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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우울함은 영혼을 잠식한다



국내에 과연 정식 개봉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를 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니 제목을 보지 않아도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이라는 것 만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멜랑콜리아'는 우울함과 불안함에 관한 그의 또 다른 이야기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번에도 챕터 형식을 빌어 '저스틴' (키어스틴 던스트)과 '클레어' (샬롯 갱스부르)로 나누어 우울함이라는 것과 이를 받아들이는 각자의 방식 그리고 이를 둘러싼 불안함에 대해 들려준다. 아무도 이 영화를 SF재앙 영화로 기대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에 따른 실망도 없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행성으로 인한 재앙의 불안함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것이 그 동안 내가 알던 라스 폰 트리에의 방식과는 조금 빗겨나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여기에는 최근작 '안티 크라이스트'를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매우 크다), 우울증이라는 주제의 시각화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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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저스틴'에서는 대저택에서의 성대한 결혼식을 맞이한 신부 저스틴의 우울한 심리를 주목한다. 사실 저스틴의 심리 상태가 모든 관객에게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다. 정상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오히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 준비한 결혼식날 아무 이유없이 계속 망쳐버리는 신부 때문에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그녀의 언니 클레어나 클레어의 남편 존 (키퍼 서덜랜드) 그리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날을 망쳐버린 신랑 마이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입장이 오히려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는 철저히 저스틴 개인이 처한 우울함에 집중한다. 이 결혼식 자체를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처럼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는 저스틴의 심리를 너무나 거창한 식순의 결혼식과 교차하여 더 극대화 시킨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쉽게 공감을 받기 어려운 저스틴의 심리를 좀 더 관객에게 표현하고자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결혼 예식 속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와 홀로 남았을 때의 저스틴의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녀 내부의 우울함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우울함이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서로 간의 관계 속 작용이 통하지 않는 순간까지 치닫는 과정을 저스틴의 하룻밤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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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는 1부의 저스틴을 그리면서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 가운데 홀로 문제를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즉, 반드시 주인공 주변의 이상한 상황이 주인공을 조여들고 있다고 하지 않고서도, 주인공이 처한 심정을 - 혼자만 느낄 수도 있는 -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한 발 양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저스틴의 시각에 근거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저스틴과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는 이제 문제가 터져나오는 시점이 아니라, 이미 서로 포기한 단계에 있다. 즉, 그것이 우울함에 빠져버린 저스틴의 개인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는 몰라도, 이미 개선의 여지보다는 무기력해 놓아버리기 만을 서로 바라고 있는 그런 관계 말이다. 영화는 바로 이렇게 매말라버린, 더이상 좋아질 것 같지 않고 그냥 서로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하지만 포기를 권할 의지조차 증발해버린) 무기력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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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클레어'에서는 더 무력해져 버린 저스틴을 감싸 안은 언니 클레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부가 저스틴의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부는 클레어의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우울함 (Melancholia)'을 두고 서서히 커져가는 불안함이 결국 우울함(저스틴)에게 마저 잠식당하게 되는 과정을, 아주 조용히 하지만 극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자주하는 이야기이지만, '불안함'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영화는 행성이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 아무것도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들의 매우 현실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재앙영화를 통해 주인공들이 직접 지구의 위기를 해결한다거나 극적으로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 내 모두 목숨을 구하는 경우에 익숙해져 있지만, 현실은 아마도 이 영화와 거의 같을 것이다. 2부 '클레어'의 이야기는 1부 '저스틴'과는 달리 스스로 무기력함에 빠져버린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자신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버린 인물을 통해, 같지만 다른 두 개의 우울함과 불안함에 대해 들려준다. 그래서 2부에 등장하는 저스틴이 마지막 '멜랑콜리아'를 대면하며 클레어을 감싸는 장면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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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면에도 우울함이라는 것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멜랑콜리아'가 전개될 수록 재앙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는 여러가지 방법과 메시지로 깊은 인상들을 주는데 지난해 '트리 오브 라이프' 이후 이 같이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멜랑콜리아'는 라스 폰 트리에의 다른 작품들처럼 다시 보기는 힘겨운 작품이지만, 그래도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장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극장을 나오면서 바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생길 줄은 몰랐다) 작품이기도 했다. 아...



1.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안티 크라이스트'를 볼 용기가 생겼어요.

2. 본래 '저스틴' 역할에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캐스팅 되었었더군요. 그런데 '캐리비안...' 때문에 하차했다고. 그래서 인지 엔딩 크래딧 스페셜 땡스란에 그녀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저스틴을 연기했다면 커스틴 던스트의 버전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멜랑콜리아'가 되었겠네요.

3. 극중 클레어의 저택으로 등장하는 곳의 경우, 핀처 판 '밀레니엄'의 삭제 장면에 등장한 그 곳과 동일한 곳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4. 전 사실 오페라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영화와 연결되었을 때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언젠가는 제대로 섭렵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영화 사운드트랙에 쓰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처럼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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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블루레이로서 완성되는 작품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한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는 이미 너무도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 동시에,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 감독의 2009년 작 '용문신을 한 소녀'와 비교될 수 밖에는 없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읽지 않았고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보고 나중에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각각 표현하고자 했던 성격이 조금 달랐던 터라, 같으면서도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 글에서는 데이빗 핀처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겠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 감독의 스웨덴 버전과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도 조금씩 덧붙여볼 생각이다.






처음 이 작품에 대한 제작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점은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겨우 1년 만에 다시 핀처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그 놀라운 완성도에 감탄하며 다시 한번 '핀처님'을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 그리움의 기간이 무척 짧아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과연 데이빗 핀처를 바로 작품 활동으로 이끌게 된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핀처는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 소설에서 그리고 닐스 아르덴 오플레프의 영화에서 본인이 가장 관심 있고 잘 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대한 가능성과 아쉬움을 각각 발견했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이러한 점은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고 나면 좀 더 핀처의 작품이 지향한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 지기도 한다.






데이빗 핀처는 이 작품 속에서 자신이 계속 관심을 갖고 있던 인간의 변태적인 면과 사건을 풀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의 전작 '조디악 (Zodiac, 2007)'에 비하면 그 농도가 덜 깊기는 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스릴러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정보원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로 각각 시작된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데이빗 핀처는 스웨덴 버전의 작품에 비해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비중을 거의 50:50에 가깝게 설정하였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40년 전 사라진 방예르 가의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이야기에 중심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에 처음부터 개입한 미카엘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더 부각될 수 밖에는 없었다 (다니엘 크레이그 라는 배우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이 하리에트와 관련된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스베트 라는 이 작품이 만들어 낸 최고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리는 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버전에 비해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리에트의 사건 자체에 얽매여 있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독립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투르며 미카엘과 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자신을 표현해 가는 그녀의 매력은 충분히 발휘되고 있다. 여기에는 루니 마라 라는 배우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스웨덴 버전의 경우도 리스베트 역할을 맡은 누미 라파스의 연기가 압도적이긴 했지만, 루니 마라는 누미 파라스와는 또 다른 자신 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루니 마라는 누미 파라스의 연기를 보고 난 뒤였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하는 데에 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루니 마라가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주커버그의 여자친구 역할로 등장했던 배우 임을 생각한다면, 이번 캐릭터가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얘기로는 자신은 리스베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지만;).






데이빗 핀처의 다른 작품들이 모두 그러하듯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역시 상당히 세련된 영상과 색감 그리고 음악을 담아내고 있다. 핀처는 리스베트 라는 캐릭터, 미카엘과 리스베트 간의 건조한 관계 그리고 몇몇 장소가 만들어 내는 차가운 금속 느낌들을 통해 미스터리를 더욱 배가 시키는 영화 전체의 온도를 만들어 냈다. 실제로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다리 넘어 섬의 풍광은 스웨덴의 작품보다도 훨씬 더 깊은 추위를 담아내고 있으며 고립된 느낌마저 주고 있어, 이 사건을 파헤쳐 가는 미카엘 캐릭터를 좀 더 불안하고 외롭게 만들고 있다. 또한 트렌트 레즈너가 맡은 음악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작품 전체의 불안함을 심는 동시에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Blu-ray : Menu





Blu-ray : Picture Quality


데이빗 핀처의 작품은 항상 극장을 나오게 되면 바로 DVD나 Blu-ray 감상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만들어 낸 감각적인 영상들을 좀 더 디테일 하게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조디악' 이후부터는 그 영상미뿐만 아니라 단순한 화질 측면에서도 더 기대를 하게 되어 블루레이로 감상하기를 더더욱 고대하게 되었는데, '밀레니엄' 블루레이는 이 같은 높은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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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Epic 카메라와 Red One MX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매우 디테일 한 화질을 선보이고 있는데, 특히 밤 장면에서 조명을 활용한 인물 표현 시 탁월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몇몇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에 거친 수염 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며 루니 마라의 그 창백한 얼굴과 염색한 눈썹의 컬러도 분명히 구분되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차가운 색감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어 영화 감상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


Blu-ray : Sound Quality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 역시 최신작 블루레이 타이틀로서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그 특유의 '지글거리듯' 깔리는 사운드의 질감이 살아있으며, 클럽 장면에서는 확실한 사운드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다.






극중 리스베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장면에서는 배기 음을 우퍼의 활용을 통해 체감할 수 있으며, 후반 부에 등장하는 추격 씬이나 그 이전 마르틴의 집에서 펼쳐지는 장면에서도 음장감을 보다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앞서 화질과 사운드를 설명하면서 데이빗 핀처의 작품은 블루레이가 특히 기대되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부가영상에 있다. 이미 데이빗 핀처의 작품들을 블루레이로 감상한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가 연출한 작품들의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마치 그의 작품 속 디테일과도 같은 열정과 디테일이 담긴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극장 개봉만큼이나 블루레이 출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밀레니엄' 블루레이 역시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과 핀처의 음성해설이, 두 번째 디스크에는 본격적인 부가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정말 음성해설에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었다면 10점 만점 짜리 Special Features 였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디테일하면 누구 못지 않은 핀처의 음성해설을 본편과 동일한 158분 동안 즐길 수 있었다면 정말 소중한 자료가 되었을 텐데,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것은 '밀레니엄' 블루레이 타이틀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에 몇 가지 소소한 부가영상 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 부가영상인 'Men Who Hate Women'에서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원작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본연의 메시지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데이빗 핀처는 이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연출했는지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고, 다니엘 크레이그, 루니 마라,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 배우들은 자신들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각본을 쓴 스티브 자일리안 같은 경우는 자신이 각색을 하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 6분 30초여의 짧은 분량이지만 다들 너무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답변에 응하는 자세 덕분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밀레니엄' 블루레이의 부가영상 속 인터뷰 영상들은 모두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어 집중력 있게 인터뷰를 감상할 수 있다.






'Charaters' 에서는 영화 속 주요 캐릭터 3인인 리스베트와 미카엘 그리고 마르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각각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준이 아니라 캐스팅과 의상 컨셉 등은 물론 각 캐릭터마다 특화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매우 유익했다. 첫 번째 리스베트에 대한 내용에서는 이를 연기한 루니 마라가 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 노력한 상세한 과정들부터 리스베트를 연기하기 위해 변신을 하게 된 과정과 이후 이리나로 변신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들도 만나볼 수 있다. '소셜 네트워크'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을 보면서도 느꼈던 바이지만, 단순히 캐릭터를 완성된 대사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독과 각본가, 배우가 대사 하나하나를 골똘히 연구해 가며 완전히 캐릭터에 몰두하는 과정을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보통 다른 작품들의 촬영 현장 모습과는 달리 본편과 촬영 현장 장면이 크게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모두들 작품과 캐릭터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지만 부가영상을 보니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데에는 배우와 감독 못지 않게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트리쉬 썸머빌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의상에 대한 부가영상에서만 디자이너의 인터뷰가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밀레니엄'의 경우는 거의 모든 부가영상에서 트리쉬 썸머빌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그녀는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에게 있어 단순히 의상과 헤어 스타일을 결정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각 캐릭터의 성격과 영화 전반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리스베트의 다양한 부가영상 가운데는 실제로 루니 마라가 촬영과 상관없이 의상이나 헤어가 화면에 어떻게 나오는가 등을 테스트 해보기 위해 지하철 등을 타고 카메라 테스트를 해본 테스트 영상도 만나볼 수 있었다. 






'미카엘'에 관한 캐릭터 부가영상에서는 역시 다니엘 크레이그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만나볼 수 있으며, 의상 컨셉이나 촬영장에서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이 수록되었다. '마르틴' 역시 스텔란 스카스가드의 캐스팅에 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사이코패스에 관한 내용과 영화 후반 마르틴의 집에서 벌어지는 장면의 구성과 내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감독과 스텝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그냥 별 것 아닌 것처럼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실제로는 어떤 아이디어와 촬영 기법 등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마르틴의 장면을 중심으로 수록되었다.






그 다음 수록된 부가영상은 로케이션 촬영지에 관한 내용인데, 스웨덴과 헐리우드로 나뉘어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 버전 임에도 인물들이나 배경이 그대로 스웨덴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데이빗 핀처가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바로 스웨덴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방예르 가문의 사건과 관련된 배경에도 스웨덴의 역사가 묻어나 있고, 이후 벌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장소가 갖는 특성들이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주요 촬영지인 스톡홀롬을 중심으로 지하철 역 촬영 장면들과 영화 본편에는 각본이 수정되어 실리지 않았던 장면의 촬영 장면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의 촬영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헐리웃'에서는 드라간 아르만스키 역할 캐스팅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는데, 이를 연기한 고란 비스닉의 캐스팅 비화와 그의 오디션 장면들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리스베트가 자신을 폭행한 남성에게 더 악날한 방식으로 되돌려 주는 그 장면의 촬영 과정이 담겨있다. 이 보기에도 괴로웠던 장면이 실제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17분에 가까운 짧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카엘과 리스베트, 마르틴 각각의 집에 대한 설정과 디자인에 대한 짧은 영상들도 수록되었다.






'Post Production'에서는 편집과 후시 녹음(ADR), 특수효과 등의 후반 작업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가영상들이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만큼이나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실제로 편집자와 데이빗 핀처가 함께 편집실에 모여 가편집 본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었는데,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독과 편집자가 얼마나 깨알 같은 디테일을 잡아내고 걷어내고 난 결과물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전과는 다르게 촬영한 필름의 양(스케일)이 많아서 편집 과정에서 자유롭게 화면을 자르고, 원하는 각도로 보정하는 것 등이 가능해져 보다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집자에 말에 따르면 이 정도로 완벽한(편집 과정에서 일정한 기준으로 완벽하게 통일된) 작품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니.






추가로 배우들이 후시 녹음을 하는 장면들과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의 그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획을 그었던 핀처 답게,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탄생한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의 제작과정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속에 사용된 다양한 CG활용 등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주로 배경을 더 그럴 듯 하게 묘사하는 데에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Promotion'에서는 영화의 홍보와 관련된 영상들이 수록되었는데 기본적인 예고편들은 물론이고, 영화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일종의 페이크 다큐프로그램이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Hard Copy'라는 제목의 영상인데, 극중 등장하는 하리에트의 실종 or 사망 사건을 다룬 그 당시의 뉴스/고발 프로그램 형태로 제작된 영상으로서, 당시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좋지 않은 비디오의 화질로 제작되었다.




[총평]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사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극장에서 보았을 때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정도의 만족도를 얻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블루레이를 주저 없이 구매한 것은 핀처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도 블루레이가 더 많은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특히 그 깨알 같은 부가영상들이 있어 영화를 보며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들까지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만약 '밀레니엄'을 인상 깊게 보았거나 데이빗 핀처의 팬이라면 이 블루레이는 반드시 소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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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 블루레이 리뷰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를 만나다



알렉산더 페인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는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근래 새삼 느끼고 있다. '사이드웨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평소 심심한 영화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 때 마다 또 달라지는 영화 중 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는 '사이드웨이' 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맷 킹 (조지 클루니)은 하와이에 사는 변호사이자 이 지역에 오랜 유지 가문의 상속자로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문의 상속자로서는 오랜 세월 신탁해온 토지를 신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판매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앞두고 있고,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동시에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두 딸을 보살피는 일도 하게 된다.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


개인적으로 '디센던트'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말 하기 힘든 말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은 이의 모습이었다. 극 중 맷 킹은 한 두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자신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남들이 도와주기도 힘든 일들이다. 사안들이 무겁지 않으면 '나도 좀 쉴래' '이건 그냥 니가 처리해'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하나가 그럴 수가 없는 일들 뿐이다. 즉, 자신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 끝에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구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놓인 맷 킹의 일상에 조용히 집중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릴 때 힘든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포커스가 있었다면, '디센던트'는 이런 상황의 중첩을 통해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을 조용히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맷 킹의 입장에서 힘든 상황을 변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맷 킹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표현에 있어서도 자극적인 것 보다는 유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이 복합적인 비극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시선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에게서 전작 '인 디 에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디센던트'는 하와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와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동반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려는 듯 영화 초반 맷 킹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는 것처럼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 휴양지인 '하와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유머와 리듬을 섞어가며 맷 킹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다. 하와이라는 배경, 시종일관 흐르는 따듯한 하와이안 뮤직 그리고 적절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만약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비극적인 것에 더 집중하여 극적으로 몰아갔다면 그 슬픔은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자 했던 슬픔보다 더 큰 개념인 '가족(더 나아가 뿌리)'과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버려 두듯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 한 장면에 영화 속 맷 킹의 모든 고뇌와 갈등 그리고 인생이 다 담겨있다)


'디센던트'는 앞서 언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맷 킹을 바라보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와 울타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페인에게서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센던트'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그냥 턱하니 던져 놓고선 '가족이면 다된다'라고 무책임하게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가?'를 이야기와 순간의 연출로서 100%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어 들 때, 뻔하다고 느끼거나 갑작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번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이 지점을 보통의 액션 영화마냥 클라이맥스에 한 방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순간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두었다. 참으로 절묘하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 '디센던트'는 글로 풀어내면 낼 수록 의미가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즉 그냥 '받아들이면'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때는 빌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입장이 더 와닿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언제가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Blu-ray : Quality


사실 '디센던트'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가능하면 블루레이로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로 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이 BD만의 화질/음질 때문은 아니었었다. 작품의 특성상 이러한 스펙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화질/음질 측면에서도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는 최신작 다운 스펙으로 출시되었다.








영상은 노이즈가 전혀 없는 칼 같은 화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 질감 측면에서는 작품과 이 편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전반적으로 하와이의 살랑살랑한 바람까지 담아낸 영상이 너무 칼 같은 화질로 구현되었다면 그것도 부조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칼 같지 못하다는 것은 최상급 선예도 등 화질과의 비교이니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전체적으로 풍광을 넓게 그리고 따듯하게 잡아내는 앵글이 많은데 블루레이의 화질은 이를 왜곡없이 전달하고 있으며, 어두운 장면에서도 조지 클루니의 주름과 수염 자국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배경이 하와이인지라 등장인물들의 피부를 좀 더 주목해서 보게 되는데, 모피어스의 그것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볕에 조금씩 그을린 얼굴과 피부 등을 블루레이로서 좀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DTS-HD MA 5.1 채널의 사운드도 편안한 하와이안 뮤직의 따스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들려준다. 영화 자체가 사운드적인 쾌감을 즐기기에 적합한 작품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하와이안송에 몸을 맡기면 아마도 절로 피로가 녹아들지 않을까 싶다. 대사 전달에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등도 기억에 남는 사운드였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디센던트'와 같은 드라마 장르 타이틀의 경우 해외에서도 그렇고 특히 국내에 출시시 부가영상 부분이 매우 부족하게 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센던트' 블루레이의 부가영상은 이것저것 다양한 각도의 영상들이 담겨 있어서 만족스럽다. 첫 번째는 감독인 알렉산더 페인의 해설과 함께하는 삭제 장면이 2장면 수록되었는데, 역시나 감독 입장에서 너무 삽입하고 싶은 장면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편집해야만 했던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극중 부녀 사이로 등장하는 맷 킹과 알렉산드라의 관계를 좀 더 설명해주는 좋은 장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부가영상으로나마 만나볼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 (Everybody Loves George)'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부가영상은 왜 조지 클루니라는 헐리웃 톱 배우가 관객은 재쳐두고라도 동료들에게 사랑 받을 수 밖에는 없는 배우이자 사람인지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이라는 타이틀로 더 유명했던 시절에 조지 클루니를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줄은 예상 못했었는데, 그가 차근차근 쌓아온 필모그래피와 그와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의 하나 같은 칭찬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단순히 작품을 잘 선택해서가 아니라, 그가 그 좋았던 작품에서 모두 다 큰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다. 이 부가영상에서는 모두가 사랑하는 조지 클루니를 말로 칭송하기 보다는, 왜 그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사람인지를 그냥 보여준다. 시종일관 장난치고, 주변 사람들을 웃기고, 편하게 해주고 벽을 허물게 만드는 그의 면모는 처음 헐리웃 대스타라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이들 마저 진한 동료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열심히 포스터 브룩스를 흉내내는 조지 클루니)



(절대 악의적인 짤방 캡쳐가 아닙니다. 그냥 조지 클루니가 지은 표정이에요. 그는 이런 사람.)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의 작업 (Working with Alexander)'에서는 앞선 조지 클루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알렉산더 페인과의 작업이 동료들에게 갖는 의미랄까. 그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굉장히 디테일한 디렉션을 하면서도 배우들에게 분명한 공간과 편안함을 함께 주는 알렉산더 페인만의 장점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마치 국내 '만추'의 김태용 감독의 경우처럼 첫 작업을 알렉산더 페인과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 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너무 편한 촬영 현장이라) 가족같다기 보다는 모두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끼리 함께 하와이로 여행을 온 것 만 같은 분위기였다. 뭐랄까. 이 촬영 현장 자체가 또 하나의 '디센던트'랄까.






'하와이의 후예들 (The Real Descendants)'과 '하와이 스타일 (Hawaiian Style)' 등의 부가영상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하와이의 역사적인 이야기(뿌리)들과 하와이 스타일을 영화에 완전히 녹여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얼마나 하와이라는 소재를 100% 활용하고, 아니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휴양지로서의 상징적인 하와이의 모습을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부가영상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로 미뤄봐서는 '디센던트'는 하와이라는 곳을 조금 전 얘기했던 것처럼 단순히 휴양지 정도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본질을 이해시켜줄 수 있는 진정한 '하와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이 캡쳐는 그냥 귀여워서 한 장)



(절대 악의적인 캡쳐나 작의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조지, 그는 원래 그런 사람. 이렇듯 진지한 사람)


그 밖에 '출연진'에서는 이 작품에 캐스팅 된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한 짧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맷 킹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는 제외하더라도 다른 배우들은 일반인들 부터 유명배우까지 가리기 않고 고려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딸 스코티 역할을 연기한 아마라 밀러의 캐스팅 과정은 그냥 감독이 알고 있던 친구 부부의 소개를 건너 건너 받아서 연기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하나 있다더라 로 이어진 경우이기도 했다. 그 외에 어린이 영화 '스쿠비 두'로 더 유명한 매튜 릴라드의 경우 이런 이미지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캐스팅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작품에서 그가 연기한 브라이언 스피어라는 캐릭터는 전혀 어색함이 없는 옷이었다.





그 밖에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뮤직비디오로 생각했었는데, 영화에 삽입된 살랑살랑한 하와이안 송들을 배경으로 하와이의 자연과 도심 등 휴양지다운 풍광들이 펼쳐진다. (좋은 의미의) 하와이 홍보 영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는 내내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편안한 영상이 수록되었다.





'월드 퍼레이드 - 하와이 (무성 영화) (The World Parade - Hawaii (Silent Film))'도 부가영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것 만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하와이라는 곳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은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와이의 역사에 대해 무성영화라는 또 다른 포맷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음.





'조지 클루니와 알렉산더 페인의 대화 (A Conversation with George Clooney and Alexander Payne)'에서는 둘이 등장해 편안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 수록되었다. 영화가 이어준 둘 사이의 편안한 관계를 엿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작품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총평] 알렉산더 페인의 '디센던트'는 정말 삶의 위로가 피로할 때 몹시 '땡기는' 영화다. 영화는 좀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있지만 그 뒤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와 분위기가 주는 평온함과 지혜의 영향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가끔씩 삶이 지칠 때 마다 생각날 것 만 같은 (이미 생각났지만) 정말 '좋은' 영화라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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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망원경을 통해 다시 보게 되는 우주 그리고 지구


1990년 4월, 인류 최초의 우주망원경 '허블 (Hubble)'은 우주로 떠났다. 이후 우리는 허블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더욱 실감나는 놀라운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해 5월 국내에서도 아이맥스 3D로 개봉했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허블 3D'는 바로 이 허블 망원경의 수리를 위해 우주로 떠난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래도 '허블'이라는 제목만 듣고서는 우주의 신비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이 아닐까 짐작하기 쉬운데, 이 작품의 포커스는 분명 이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것에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와 허블 망원경으로 인해 볼 수 있게 된 우주와 지구의 모습들에 대해 들려준다.






허블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나 이들이 우주로 나가 실제로 허블을 수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롭다거나 긴장감을 주는 편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수리'라고 표현한 과정이 결코 쉽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그 어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정보 성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체감하기 어려울 뿐). 그렇다면 약 44분의 러닝 타임으로 그리 길지 않은 이 다큐멘터리 작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는 역시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우리가 사는 지구의 모습과 허블 망원경의 웅장한 자태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맥스 촬영을 위해 370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게의 아이맥스 3D 카메라를 약 8분 분량의 아이맥스 필름과 함께 우주선에 실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분량이 짧고 대부분이 지구를 뒤로 하고 허블을 수리하는 과정의 영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스케일이 주는 웅장함은 대단하다. 그리고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허블 망원경 보다 도 그 뒤에 펼쳐진 지구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허블이 찍은 우주의 이미지들을 3D로 재구성한 영상들이다. 부가영상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지만 이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많이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우주의 경이로운 모습을 관객들이 실제 우주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3D 영상과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단순히 허블이 찍은 이미지를 입체감만 주어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논리들을 꼼꼼히 분석하여 시각적인 효과는 물론 과학적으로도 수준 높은 영상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 3D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은하계를 스치듯 지나치는 장면들이나 화면 가득 쏟아질 듯이 펼쳐지는 우주의 별들은 입체감을 느끼기에는 더 없이 좋은 소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SF영화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화려한 영상은 아니지만, 실제 우주가 주는 경이로움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이 다큐를 보기 전에는 당연히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을 전달하려는 것이 최우선인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은 허블 망원경의 놀라운 성능이라던가), 영화를 다 보고나니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 우주 가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아니었나 싶다. 허블 망원경이 있어서 가능했던 우주의 모습들도 물론 경이롭지만, 역설적으로 수리를 위해 떠난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의미를 발견했다고 할까. '허블'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했고 보여주고 싶었던 건 결국 지구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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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ay : Video Quality

블루레이의 화질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우주로 떠나기 전 우주 비행사들이 훈련하고 준비하는 과정 등 지구에서 이뤄진 장면들의 화질도 훌륭하고, 우주로 나가 아이맥스로 촬영한 허블의 수리 장면이야 말할 것도 없다. 빛을 그대로 반사시키는 허블 망원경의 외부 재질은 블루레이의 화질을 통해 훨씬 더 선명하게 지구의 모습을 반사시키며, 깊은 블랙으로 인해 우주의 어둠은 더 깊게 지구의 푸른 색은 더 선명하게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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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S-HD의 사운드 역시 부족함이 없다. 아틀란티스 호가 발사할 때는 정말로 볼륨에 따라 방안이 그 특유의 끓어오르는 사운드로 인해 진동할 정도로 실감나는 발사 당시의 사운드를 전달한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사운드적인 체감을 할 만한 장면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레이션의 사운드와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각각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마도 내레이션과 구분을 하기 위함 인 듯 한데, 극 중 인물들이 모습이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삽입되었을 때는 음성이 센터가 아닌 서라운드 채널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 독특한 점이었다.

Blu-ray : Special Features




부가영상으로는 'Inside IMAX Hubble 3D'를 먼저 만나볼 수 있는데,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으며 아이맥스 3D로 구현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과정들과 관객들이 실제 우주를 보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우주의 영상을 구현하는 과정 등이 담겨있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레이션을 맡은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인데, 짧기는 하지만 디카프리오의 녹음 장면도 만나볼 수 있다. 참고로 국내 개봉 시에는 안철수 교수의 내레이션 버전이 수록되었었는데 블루레이에서도 이 두 가지 버전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구수한 안철수 교수의 버전보다는 디카프리오의 설득력 있는 버전을 더 추천하고 싶다.






또 다른 부가영상으로는 'Webisodes' 라는 제목의 영상이 수록되었는데, 영화 속 임무를 수행했던 우주 비행사 마이클 매시미노의 안내를 통해 우주 비행사의 하는 일과 각종 기기들과 장비들의 사용법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총평] '허블 3D'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44분이라는 러닝 타임 탓에 극장용 보다는 오히려 블루레이로서 더 큰 장점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특히 교육적인 내용과 우주의 신비로움 그리고 그 우주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들은 길지 않은 러닝 타임과 맞물려(개봉 당시와 마찬가지로 BD도 가격 부분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이른바 '접대용' 타이틀로서 톡톡한 역할을 할 것이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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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해독 (完本エヴァンゲリオン 解讀)

에바 팬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



몇 달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스치듯 이 뻘건 표지의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뭐 어차피 덕후라 알게 되었을런지는 몰라도 '에반게리온 해독'이라는 대문짝 만한 타이틀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에반게리온이라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실사/애니/음악 포함) 중 하나인 동시에, 극장판인 '에반게리온 : 파'를 보고 나서는 '그래, 이 정도라면 누가 나를 오덕이라 불러도 좋아!'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AT필드를 송두리채 흔들어 버린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에반게리온'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그 관련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해설집 혹은 또 다른 설 등을 담은 책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특히 애니메이션과 관련하여 감독론이나 작품론 등을 다룬 책들이 그렇지만 지독하게 취향을 타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호불호가 갈리곤 했는데, 에바의 경우 그리 만족스러운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바를 다뤘다는 이유 만으로 이 책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간 읽어보았던 에바 관련 책들 가운데서는 가장 내 취향과 맞는 흥미롭고 감정적인 책이었다.




(책 리뷰인가 피규어 사진 소개 글인가;;;;)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 특히 에반게리온처럼 이야기를 끌어낼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한 작품일 경우 아쉬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른바 '떡밥'이라 불리우는 설들을 설명하고 자신 만의 논리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1박2 일은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작품 본연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도는 도대체 왜 오는건지?' '세컨드 임팩트가 갖는 의의는 뭔지' '인류보완계획이 뿌린 떡밥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에바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고 궁금해지는 점들이지만, 에바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이렇다보니 내가 처음 아니 지금도 에바를 볼 때마다 두근거리며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다잡게 되는 부분들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 내용들이 간절하기도 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 '에반게리온 해독'은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에바 팬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고 혹할 만한 저자 만의 설득력있는 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그래 내 생각과 맞아!'라고 120% 동의하게 되는 주장들도 있었고, 반면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것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키타무라 마사히로도 책 속에서 이야기하듯, 이런 주변 것들에만 집중하면 정작 에바가 갖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놓쳐버리게 된다. 에반게리온이 지금과 같은 엄청난 세계관을 이루게 된데에는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분명 그 근본에는 소년들을 흔들어 놓았던 (누구에게도 쉽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고민과 아픔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카오루 등장. '이번엔 꼭 널 행복하게 해주겠어';;;)


즉, 이 책은 떡밥을 다루더라도 바로 이 측면에 근거하여 다가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라던지, 레이의 이 대사는 어떤 심리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것인지, 여기서 신지의 변화 된 행동은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던지는 주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등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에반게리온이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게 된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용기, 두려움 등의 감정을 어쩌면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보면 에바는 상당히 어려운 말들로 도배하듯 둘러싸 회피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잘 살펴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과감하게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심하게 흔들렸던 것이고. 그 흔들림의 이유를 좀 더 풀어 설명해주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터라 멈추지 않고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이번엔 컵까지;;;)


여튼 이 책 '에반게리온 해독'을 평소 영화 리뷰 하듯 리뷰하자면 거의 똑같은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의미가 없어질 것 같으므로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빨리 다시 '에반게리온'을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이었으며, 궁금함의 해결보다는 '그래 맞아!'라는 공감대가 더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었다. 에반게리온 팬들이라면 개인차는 있겠지만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글 / 사진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코리아 (2012)

전형적이어도 괜찮아



'코리아'는 1991년 제 41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최초로 단일 팀으로 출전해 최강의 상대였던 중국 팀을 꺾고 기적 같은 금메달을 거두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1991년 이면 겨우 초등학생 일 때였음에도 이 날의 기억은 제법 생생했다. 태극기나 인공기가 아닌 한반도 기를 들고 우리의 소원을 부르던 그 때의 기억은 어린 나이 임에도 무언가 찡한 것이 있었나 보다. 여튼 그 날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생각보다 큰 기대는 갖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남북이라는 관계와 단일팀이라는 특수상황 그리고 세계선수권 대회 등의 재료로 미뤄보아 너무나 방향이 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화의 감동이 워낙에 대단했기 때문에 아무리 극적 장치를 추가해 영화화를 한들 실화의 감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예상은 대부분 들어 맞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방향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나 통일 이라는 테마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에게는 말이다.



ⓒ CJ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일단 아쉬운 점들 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영화가 흔히 범하는 실수인 완급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감정은 강요하고 (은은함과 우러나옴의 미덕이 아쉬운 부분이다) 극의 전개를 돕기보다는 집중력을 흐리는 조연과 부가 에피소드 들의 비중이 크고, 너무 극적 요소를 과장되게 표현한 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코리아'는 앞서 이야기했던 재료들을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담아내려 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니었나 싶다.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을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나 이를 다루는 방식이 91년 당시의 것 같았고, 스포츠 영화로서 탁구 경기와 그 주변을 묘사하는 것 역시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그 예로 마지막 시합의 경우 그 장면이 마지막 금메달을 결정하는 포인트 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 처럼 - 다시 듀스가 되는 포인트인 줄로만 알았음). 특히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이 촬영 후 인터뷰 등을 통해 역대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고 얘기했던 것에 비하면 그 훈련의 효과가 스크린에서 100% 발휘될 만한 장면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스포츠 영화로서의 매력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하지원과 배두나를 비롯한 배우들이 실제 선수들처럼 훈련한 덕에, 실제 현정화 선수와 거의 일치하는 폼도 나왔고, 금메달을 따로 나서 오열하는 장면에서 연기가 아닌 것만 같은 얼굴 표정이 나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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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전형적이고 완급조절에 사실상 실패했음에도 '코리아'가 괜찮게 느껴졌던 것은 원칙적인 방향성과 이 영화가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영향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던 것처럼 '코리아'는 남북, 북남이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딱딱한 이데올로기로 그리기 보다는, 마치 현정화와 리분희의 로맨스 영화 같은 방식으로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남북이라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냥 서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두 주인공이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는 과정으로서 묘사한 것이, 배두나와 하지원이라는 두 배우의 연기로 잘 표현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커다란 테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 직접적으로 파고 드는 방식보다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은히 배치하고 나중에 극장을 나오면서야 '아, 이 영화가 사실 그것에 관한 영화였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5.18 광주를 다룬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인 것 처럼), '코리아'에도 역시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기에 100% 집중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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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리아'는 '1991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지난 기적같은 일을 통해 2012년의 한반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현정화와 리분희의 관계를 마치 로맨스 영화인 것처럼 묘사한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극장 내 분위기를 보니 어린 나이의 관객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관객들도 1991년의 이 경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위기였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관객들이 배두나와 배우들이 연기한 북한 사람들을 북한 사람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이전에 그냥 각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 중요했다고 본다.


'북한선수'가 아니라 리분희, 유순복 으로 느껴지도록 했기에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관련한 텍스트를 들고 나왔을 때야 비로소 관객들은 '아, 그랬지' 하며 이 안타까운 상황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배우가 이데올로기에 대해 대화하는 그 장면은 직접적이어도 좋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둘이 헤어질 때 나눈 안타까운 인사말에서도 어쩔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뻔히 알고 뻔히 예상된 순간이었고 울겠지 라는 예상 역시도 했던 장면이었지만, 울어버린 것이 나쁘지 않았다. '코리아'가 2012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통일과는 멀어져 버린 세대들에게 단순히 분단의 현실을 잠시나마 환기시켜주는 기능은 해주지 않았나 싶다.



1. 실제와 영화 속 줄거리와는 다른 부분이 많더군요. 혹시나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역시나 기억이 대부분 맞더라구요. 영화는 극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가공하였는데, 워낙에 실제가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그대로 갔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2. 배두나의 존재감은 대단했습니다. 원래도 팬이었지만 (참고로 제가 이 영화를 보기로 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녀!) 더 반했어요!!!




3. 북한팀 감독으로 나오신 김응수 씨는 이 작품에서는 전혀 웃긴 인물이 아니었는데, 최근 본 '라디오스타'에서의 진진바리 춤 때문에 몰입이 잘 안되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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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레이 (The Grey, 2012)

생존을 고민하는 드라마



'A-특공대'에 이어 리암 니슨이 주연을 맡고 조 카나한이 연출을 맡은 영화 '더 그레이 (The Grey, 2012)'를 뒤늦게 보았다. 포스터나 국내 홍보 당시 풍기는 뉘앙스만 보면 마치 리암 니슨 형님이 '테이큰'에서 처럼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늑대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으실 것만 같은 분위기인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액션에 집중된 영화라기 보다는 외롭고 공포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사고로 인해 불시착한 비행기, 인적이라곤 없고 구조대도 올리 없는 오지에 가까운 환경 그리고 생존자들 간의 갈등과 지독한 환경 보다도 더 무서운 공포까지. '더 그레이'는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재난 영화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거기에 조금 다른 점이라면 위에서 언급한 늑대로 인한 추가적인 공포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안에 담고 있는 진정성으로 인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으며, '생존'이라는 테마를 오락적으로는 물론 내용적으로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 1984 Private Defense Contractors .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가 다른 생존을 다른 영화들과 조금 빗겨나 있어 좋았던 지점은, 어쩔 수 없이 닥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생존 만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생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이 닥친 상황은 분명 그냥 살아남기에도 벅찬 상황이 분명한데, 영화는 단순히 상황 상황을 챕터 별로 이겨내 결국 생존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 아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묻는다. 삶의 무게에 자살을 시도했던 주인공 '오트웨이 (리암 니슨)'이나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더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현실만이 남는 이와 반대로 어린 딸과 가족 등이 기다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상황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고립된 상황에 놓인 인간들과 이를 공격하는 늑대들과의 결투(?)를 다룬 일종의 괴수물이 아닐까 했는데, 전혀 다른 전개에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적절히 조절하는 조 카나한의 연출이 나쁘지 않았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둘 모두 끝까지 달려가지는 않는 편이지만, 이 버전이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다.



ⓒ 1984 Private Defense Contractors .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작품 전체에 드리워져 있는 아버지 그리고 남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더 그레이'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를 '남자'의 것으로 한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리워 하는 대상으로 여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존재를 부여하지 않고 그리움을 겪는 대상으로서의 남성에 오히려 더욱 집중하고 있다. 아내를 그리워하고, 어린 딸을 그리워하는 가정적인 남편, 아버지로서의 남자는 물론, 겉으론 터프해 보이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면 외로움 밖에 남지 않은 존재로서의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영화는 늑대들을 멋지게 해치우거나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 속의 작은 이야기와 감정들을 통해 남성성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깔려 있다보니 곧 누가 한 명 더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갑자기 서로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며 웃는 장면에서도 그럴싸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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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더 그레이'는 '테이큰' 같은 리암 니슨의 원맨 액션 쇼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극한의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이 생존하고, 또 생존을 고민하는 과정의 깊이를 발견한다면 '테이큰' 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1. 확실히 이 영화의 8할은 리암 니슨이라는 배우가 가진 포스에 있어요. 다른 배우에게 그냥 쓰는 수식어와는 달리, 리암 니슨에게는 진짜 포스가 있죠 ㅎㅎ


2. 미드 '퍼시픽'에 나왔던 제임스 뱃지 데일은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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