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상암 CGV에서는 '초속 5cm'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소소한 기획전이 열렸다. 이 기획전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다른 이유는, 최근 DP에서 진행한 DP시리즈 블루레이의 4,5호가 바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와 '초속 5cm'이기 때문인데, DP를 통해 이번 행사에 좋은 기회로 참여할 수 있었고, 두 개의 타이틀에 직접 감독님 싸인도 받을 수 있었으면 악수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초속 5cm DVD 리뷰 _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http://www.realfolkblues.co.kr/50




(감독님께 직접 싸인 받은 초속 5cm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블루레이 타이틀)


기존에 나온 DP시리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시, 외출)도 물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본판을 살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신카이 마코토의 대표작 2작품을 다른 것도 아닌 DP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정말로 반가웠다. DP시리즈는 국내의 정상적인 시장 구조에서는 (열악한 블루레이 시장 규모를 감안) 나오기 힘든 작품이지만, 작품성이 있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주문 형식으로 받아 수량을 확보하고 발매하는 프로젝트인데,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영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으나 이번 4,5호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초속 5cm'를 집에 오자마자 블루레이로 다시 보았는데, 아주 간단하게 평을 하자면 20대에 본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작품 속 두 주인공의 애틋한 감정이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는 더 깊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조용히 흐르다 갑자기 커질 때의 그 전율과 떨림도 더 커졌다 ㅠ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 Masayoshi Yamazaki


그리고 이 날 상영회의 작품 가운데는 신카이 마코토의 가장 최신작 '별을 쫓는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개봉 당시 그의 팬들이 기존과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지브리화 되었다며) 실망했던 것에 비해서는 덜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전작들에 비하면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는데, 확실히 다시 보게 되니 세 명의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절실함이 더 느껴졌다. 결국 '별을 쫓는 아이'의 테마는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행 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이 테마를 생각하면서보니 개봉 당시 극장에서 느꼈던 절실함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5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흥얼거리게 되는 'Hello, Goodbye and Hello'로 시작되는 엔딩 곡까지.




별을 쫓는 아이 리뷰 _ 나를 놓아주어야만 하는 힘겨운 여정

http://www.realfolkblues.co.kr/1535



'별을 쫓는 아이' 상영회가 끝나고 짧은 시간이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을 모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경품도 추첨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형 액자상품들이 하나 씩 주인을 찾아갈 때의 부러움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ㅠ

감독님은 '별을 쫓는 아이'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별을 쫓는 이야기'에 나왔던 모리사키 캐릭터가 '초속 5cm' 1화의 '벚꽃 이야기'에 나왔던 타카키가 첫 사랑에 실패하지 않고 어른이 되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하에 만든 캐릭터라는 얘기였는데,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모리사키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더 느껴져 찡해지기도 했다 ㅠㅠ


그렇게 간단한 GV를 마치고 미리 프리오더한 초속과 구름저편 블루레이 속지에 싸인을 받을 시간! 싸인 받은 속지도 넘겨받고 감독님과 악수도 하고 사진도 한 장 같이 찍었는데, 갑자기 어떨떨한 상태라 표정 관리가 안되어 부득이하게 신지군이 등장했음 -_-;;





악수를 나누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할까 '감사합니다'라고 할까 라고 고민하는 순간 감독님이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서 어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합니다'라고 해버렸는데, 뒤에도 줄이 길게 서 있어서 빠르게 찍고 다음 분께 기회를 드렸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사진이 잘 안찍힌 거 같다며 먼저 'one more'를 외치셔서 본의 아니게 세 장이나 찍었으나 내 표정은 다 관리가 안되어 있더라 ㅠ

정말 좋아하던 감독님도 직접 뵙고 악수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을 수 있어서, 전남 무안 영광입니다 였던 하루였음!


1. 참고로 이 날 저녁에 걸린 감기 몸살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날 내가 신체접촉을 한 사람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 밖에 없으므로 그 때문이라고 최종 결론. (그의 대한 애정 때문인가.... 몸살이 떠나질 않는다 ㅠ)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휴고 (Hugo, 2011)

마법같은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사실 나도 오해했었다. 본래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감독, 배우와 포스터 외에는 거의 접하지 않고 감상해서인지는 몰라도,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휴고 (Hugo, 2011)'를 포스터로 처음 접했을 때의 예상은 3D까지 더해졌다길래 마치 '폴라 익스프레스 3D'와도 같은 스콜세지의 3D 활용기 혹은 판타지 영화가 아닐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영화였다. 판타지 영화도 아닐 뿐더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단순한 추억이나 회환이 아니기 때문에 판타지로 보기는 어렵다) 가족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도 아니었고 (이 부분은 마치 이들이 기대하는 가족 영화처럼 홍보한 측의 탓이 크다), 액션, 어드벤처로 롤러 코스터를 타듯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오락 영화도 아니었다. 결국 '휴고'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영화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팬이자 감독인 한 사람이, 영화 발명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요즘 관객들이 잊고 있는 '영화'라는 마법과 행복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영화에 대한, 영화 사랑 가득한 영화였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의 의도를 좀 더 재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에 대한 정보를 미리 더 알고 있었더라면 바로 알아차리고 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멜리에스에 대한 헌정 영화 혹은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영화사에 대한 무지가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멜리에스(=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아차리지 못해서인지, 사실 초중반 극중 벤 킹슬리가 연기한 멜리에스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다기보다는 거의 전개되는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와 불필요하다고까지 느껴진 에피소드들까지 있다보니, 속으로는 '아, 스콜세지 영화에 실망을 하게도 되는구나..' 싶었을 정도였는데, 중반 이후 좀 더 이 작품이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부터 이런 실망감과 지루함은 눈녹듯이 녹아내렸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멜리에스 이야기 자체에 주목했다기 보다는 스콜세지가 '휴고'를 통해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끔 스스로 영화광인 감독 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관객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 보다는, 일종의 '꿈의 실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존경의 뜻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스콜세지의 '휴고'에는 앞서 언급한 '꿈의 실현'의 것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관객에게 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DP의 'nostalghia'님이 감상기에서 '스콜세지 님이라면 타란티노 라든지 안노 히데아키 라든지, 뭐 그런 애송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영화 덕후 중에서도 상덕후이신데' 라는 표현을 보고 절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정말 스콜세지는 영화로 따지자면 덕후 중에 상덕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스콜세지가 자신의 영화 사랑을 직접적으로 투영한 작품이 바로 '휴고'라고 보면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해보라. 영화 속 멜리에스를 롤모델로 모든 것을 연구해왔던 그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콜세지가, 멜리에스의 영화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었을까 말이다. 그래서 스콜세지는 이토록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만 할애하지 않고(물론 자기 만족에 충실하게만 만들었더라도 좋았을테지만)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마법에 대해 뻔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휴고'에서는 영화라는 것의 역사를 멜리에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처음 관객들이 영화 속 기차가 기적을 울리고 달리는 장면을 보고서는 놀라서 모두 몸을 피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보는 순간, 나는 '휴고'를 3D로 보러 온 앞 좌석의 아이가 영화 시작 전 3D 예고편을 보고서는 손을 뻗어 화면 속 물체를 잡으려고 했던 장면이 바로 겹쳐졌다. 사실 스콜세지가 3D로 신작을 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대도 되었지만 살짝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의문이 한 번에 말끔히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 영화의 3D 효과가 아주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3D 영화들에 비해서는 그 효과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은 편이라 3D만의 쾌감은 많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처음 본 예전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나니, 왜 스콜세지가 이 작품에 3D를 선택했는지를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3D 영화를 보러 온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CG나 3D 같은 최첨단 기술력이 더해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영화'라는 마법 자체에 대한 놀라움과 재미, 즐거움, 행복함을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3D 입체영상으로 멜리에스 당시의 영화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쾌감은, 입체감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 장면이 갖고 있는 본연의 마법같은 매력 때문이라는 자신이 있었던 스콜세지는, 그리고 바로 이 원초적 매력을 다시금 지금의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스콜세지는, 일부러 3D를 선택해 이 메시지들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 결과 '아티스트'를 볼 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처음 본 당시의 관객들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영화라는 마법같은 순간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고, 스콜세지에게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극중 조르주 멜리에스가 자신이 외면했던 아픈 과거를 인정하고 어린 두 주인공들에게 자신이 영화를 처음 접하고 만들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장면에서, 멜리에스를 연기한 벤 킹슬리는 정확히 카메라를, 즉 관객을 응시한다. 스콜세지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제 영화 사랑이 이 정도입니다. 어때요, 영화 아주 매력적이죠?'라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가 영화에 빠졌던 것들을 관객들에게 상세하게 풀어놓으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영화의 마법에 너무 익숙해져 행복함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 듯 했다. 농담이 아니라 벤 킹슬리가 스크린 속에서 나를 똑바로 보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저렇게 내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 '휴고'는 좀 더 파고들려고하면 이것저럿 해볼만한 구석이 많은 작품인데, 저런 질문을 영화에서 받고 나니 다른 것들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버렸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예술.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해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었달까.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최근 본 '아티스트'와 더불어 연거푸어 영화 사랑 충만한 작품을 보았더니 제 영화 사랑도 더 충만해졌어요 ㅎ

2. 진짜 마틴 스콜세지 옹은 덕후 중에 상덕후. 닮고 싶은 분이십니다.

3. 극 중에 '인셉션'이 나옵니다 ㅎ 그러고보니 '인셉션'도 영화에 대한 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4. 스콜세지는 자신의 작품에 가끔 까메오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나오고 싶었을 거에요. 아니 처음 영화를 맡기로 했을 때 이것부터 정했을지도 모르겠어요 ㅋ

5. 클로이 모레츠는 아직까지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Paramount Pictures 에 있습니다.




아티스트 (The Artist, 2011)

내가 사랑한 뮤지컬 영화들의 탄생기



미셸 아자나비슈스의 '아티스트 (The Artist, 2011)'는 일찌감치 해외 유수 영화제들에 노미네이트 되고 최근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무성영화의 감성도 물론이지만 그 이야기가 결국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로 연결될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 기대감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는 그간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 더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을 계몽적인 방식 대신 아름다운(제대로 된) 무성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진정성을 갖게 된 동시에, 그로 인해 절로 영화라는 매체와 앞서 영화를 만들었던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클래식이 되었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배경은 무성영화가 흥하던 시절로 시작해 유성영화로 넘어오면서 영화계와 무성영화의 스타, 그리고 유성영화의 새로운 스타가 겪는 일들을 남자 주인공 '조지 발렌타인 (장 뒤자르댕)'과 여자 주인공 '페피 밀러 (베레니스 베조)'을 중심으로 들려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계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대한 작품들은 여럿 있어왔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를 들 수 있겠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이 소재를 배경으로만 활용하거나 아니면 좀 더 무성영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내려고 한 작품의 경우, 더 직접적으로 무성영화의 장점을 '설명'하려고 했었다면, '아티스트'는 아예 21세기 관객들에게 한 편의 무성영화를 그대로 내어놓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어쩌면 모험적일 수도 있었던 이 방식은 보시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모든 경우에서 그렇지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간의 정도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관객들로 하여금 '그래서 무성영화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것과 '아, 아티스트, 이 영화 정말 매력적인데!'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아티스트'가 시작되고 난 극장 안. 물론 대부분이 무성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극장을 찾았을 테지만 실제로는 배우들의 대사와 영화 속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를 체험해본 일이 많지는 않아 조금은 당황함이 느껴지는 초반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내 사그라들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티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3D와 실사와 더 이상 구분이 어려운 CG에 익숙한 21세기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엇, 대사와 소리가 없어도 영화를 이해하는데에 큰 무리가 없네?' '장면으로 담아낸 것 만으로도 맥락이 충분히 읽히는데?'라는 생각을 들도록 만든다. 영화 초반에는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 아무런 소리도 자막도 나오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끼게 되지만, 조금 뒤에는 완전히 이 방식에 적응하여 더이상 소리가 나오고 안나오고를 신경쓰지 않고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전히 집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순간을 21세기 극장에서도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마도 '아티스트'에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영화의 매력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무성영화의 매력이란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가운데 가장 흠뻑 취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영화 배우의 매력이었다. 최근 작품들에서 배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의 영화보다는 배우의 매력의 비중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를 보니,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의 그 미소와 몸짓, 양복을 차려입은 모습의 멋스러움, 과장된 듯 하지만 영화라서 멋진 동작들 하나하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조지 발렌타인은 액션 히어로도 아니고 (물론 영화 속 영화에서는 아니었지만 ㅎ), 최근 영화 속 주인공들에 비하면 굉장한 로맨틱 가이도 아니지만, 놀랍게도 그 멋진 미소 하나 만으로 액션 히어로와 로맨틱 가이를 모두 물리칠 정도의 매력을 발산한다. 가끔 리뷰를 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보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이 영화를 위해 아껴둘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발렌타인이라는 캐릭터, 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 -_-;)는 정말 매력적이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같이 '아티스트'가 개인적으로 더 의미 깊었던 것은,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영화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였다. 물론 이 작품은 다큐가 아니니 이걸 100%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예전 뮤지컬 영화들을 보면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노래도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당시의 뮤지컬 영화는 더 무성영화에 가까운 표현 방식이 아니었나도 싶다. 왜냐하면 장면 뒤에 자막이 나왔던 방식에 비해 오히려 춤과 안무로 대사에 가까운 내용을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티스트'는 당시의 뮤지컬 영화들이 무성영화의 장점과 유성영화 장점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장르라는 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 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한 사람의 영화 팬으로서 영화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 행복한 일이다. 최근 보았던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와 더불어, 이 영화 '아티스트'는 영화라는 매체와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참 행복한 작품이었다.


1. 극중 등장하는 강아지 때문에 절로 '틴틴'이 떠오르기도 ㅎ
2. 조지 발렌타인 역을 맡은 장 뒤자르댕이 너무 매력적이라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조지 발렌타인으로 분했을 때보다는 많이 아쉬운(?) 모습이라 살짝 실망도 ^^;
3. 영화는 1.33:1로 촬영되었습니다. 즉, 와이드 화면비율이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신선했어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he Weinstein Company 에 있습니다.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2011)

아버지라는 존재의 이유



알렉산더 페인의 2004년 작 '사이드웨이'는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을 근래 새삼 느끼고 있다. '사이드웨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평소 심심한 영화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보는 편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다지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이 작품의 진가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해갈 때 마다 또 달라지는 영화 중 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뛰어난 조지 클루니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는 '사이드웨이'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이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맷 킹 (조지 클루니)은 하와이에 사는 변호사이자 이 지역에 오랜 유지 가문의 상속자로서 두 딸과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가문의 상속자로서는 오랜 세월 신탁해온 토지를 신탁 기간이 끝나기 전에 판매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을 앞두고 있고, 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동시에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두 딸을 보살피는 일도 하게 된다.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


개인적으로 '디센던트'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바로 정말 하기 힘든 말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맡은 이의 모습이었다. 극 중 맷 킹은 한 두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자신이 이 무거운 짐을 지어야만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남들이 도와주기도 힘든 일들이다. 사안들이 무겁지 않으면 '나도 좀 쉴래' '이건 그냥 니가 처리해'라고 하고 싶지만 하나 하나가 그럴 수가 없는 일들 뿐이다. 즉, 자신도 벼랑 끝에 서 있으면서 벼랑 끝에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구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 놓인 맷 킹의 일상에 조용히 집중한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그릴 때 힘든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포커스가 있었다면, '디센던트'는 이런 상황의 중첩을 통해 하기 힘든 말을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이의 입장을 조용히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맷 킹의 입장에서 힘든 상황을 변호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맷 킹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표현에 있어서도 자극적인 것 보다는 유한 방법으로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이 복합적인 비극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하거나 극적이지 않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시선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힘든 말을 해야만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지 클루니에게서 전작 '인 디 에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내려는 듯 영화 초반 맷 킹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는 것처럼 외부인들은 그저 행복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 휴양지인 '하와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유머와 리듬을 섞어가며 맷 킹과 그의 가족이 처한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다. 하와이라는 배경, 시종일관 흐르는 따듯한 하와이안 뮤직 그리고 적절히 등장하는 유머 코드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면, 만약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비극적인 것에 더 집중하여 극적으로 몰아갔다면 그 슬픔은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담고자 했던 슬픔보다 더 큰 개념인 '가족'과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버려 두듯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디센던트'는 앞서 언급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맷 킹을 바라보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와 울타리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하고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는 얘기다. 알렉산더 페인에게서 관록이 느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디센던트'가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이유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 그냥 턱하니 던져 놓고선 '가족이면 다된다'라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가?'를 이야기와 순간의 연출로서 100%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꺼내어 들 때, 뻔하다고 느끼거나 갑작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또 한번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은 이 지점을 보통의 액션 영화마냥 클라이맥스에 한 방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 순간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두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뭐랄까, '디센던트'는 글로 풀어내면 낼 수록 의미가 덜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즉 그냥 '받아들이면'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는 알려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마치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볼 때는 빌리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마음이 더 와닿는 것처럼, 이 작품도 언제가 나도 아버지가 되고 난 뒤에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1. 'Descendants'는 해석하자면 자손, 후예 등일 것 같은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직접적인 자손의 의미와 가족이라는 유대관계 속에서의 연결을 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 조지 크루니는 참 대단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Fox Searchlight Pictures 에 있습니다.





밀레니엄 제 1부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Män som hatar kvinnor, 2009)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영화화 한 두 작품 가운데 데이빗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보았고, 뒤늦게 스웨덴판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핀처를 평소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없다 아니 사실상 어렵다 라는 주의이기 때문에 스웨덴판을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된 것이 아무래도 핀처의 작품을 이미 보고 나서 보게 된 순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작품이 감상에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두 작품은 어차피 서로에게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는 운명이고, 나처럼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이들이라면 닐스 아르덴의 작품이 조금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두 작품을 모두 보고 난 결과는 각각의 장단점과 선택 지점이 명확해 각기 다른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하자면, 핀처의 버전은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좀 더 미스테리와 스릴러적인 측면에 포인트를 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브의 버전은 미스테리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를 통해 이 영화의 부제가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Nordisk Film. All rights reserved


일단 배경적으로 보았을 때 데이빗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과 그 마을을 굉장히 춥고 스산한 느낌이 들도록 설정하고 있는데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버전에서는 동일한 겨울이고 춥다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핀처의 그것처럼 몸이 절로 떨릴 정도의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핀처는 뱅거 가문의 저택이 있는 다리 넘어 섬을 묘사할 때 외부와 단절된 느낌을 주어서 앞으로 진행할 미스테리와 스릴러의 쾌감을 더 증폭시키는 반면,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는 이 장소가 갖는 특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공간에 이미지를 부여하여 그 자체로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핀처의 특기가 잘 나타난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이 점은 후반부로 갈 수록 영화의 긴장감을 돋구는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아마도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데이빗 핀처는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였고 스웨덴 버전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핀처의 작품을 먼저 본 입장에서는 이 작품에서는 굉장히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게 연출된 장면들이나 결정적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스웨덴 버전에서는 너무도 쉽게 등장하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즉,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의 작품에서는 누가 하리에트를 죽였는가 가 중요하기 보다는 이 뱅거가의 사건을 풀어가는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이 겪는 갈등의 지점은 무엇인가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듯 했다 (물론 핀처의 작품도 누가 범인인가에만 집중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Nordisk Film. All rights reserved


웨덴 버전과 핀처의 작품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어디에 더 포인트를 두었는가에 따라 영화의 결말 이전까지 진행되었다면, 범인이 누구인가가 정확히 밝혀지는 결말 지점과 그 이후의 짧은 전개 과정에서는 더더욱 두 작품의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핀처의 경우 이 결말지점이 곧 영화가 시종일관 끌고 오던 미스테리의 종착점이기 때문에 동시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정리가 되어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스웨덴 버전의 경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부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었는가 좀 더 명확해지는 작품이었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이 결말을 바라보는 시선 차를 짧지만 명확하게 언급하면서, 결국 리스베트 캐릭터에 맞춰 '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부제인가를 떠올려보게 되고, 핀처의 버전에는 없었던 리스베트의 어머니와의 만남 장면을 통해 리스베트의 심리 상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포일러 없이 쓰느라 좀 더 구체적인 묘사를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누구인가가 밝혀진 다음 부터의 전개가 매우 흥미로웠고 그로 인해 스웨덴 버전의 리스베트에게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후속편들에 있어서도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Nordisk Film. All rights reserved

1. 사실 핀처의 작품이 워낙에 세련되었던 터라 나중에 본 스웨덴 버전이 조금은 세련됨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분명 잘못된 우려였네요. 전체적인 만듦새나 세련됨으로 봐서는 전혀 부족할 점이 없었어요;

2. 핀처의 버전이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비중이 동등하거나 미카엘에게 좀 더 쏠려있던 반면, 스웨덴 버전에서는 확실히 리스베트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 같더군요;

3. 앞으로 각각 펼쳐질 두 작품의 후속편들이 몹시 기대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Nordisk Film 에 있습니다.






IT업계에 있으면서 지난 해 가장 큰 이슈가 된 책 중 하나인 '똑바로 일하라 (Rework)'를 뒤늦게 읽게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처세술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라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는 동시에 모두 틀린 말일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잘못하면 '맹목'으로 빠져버리거나 하나의 기준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세술이나 경영 등에 대한 책을 읽기 보다는 그 시간에 현실에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좀 더 시간을 쏟자 라는 주의인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있어서는 이런 책들에게 도움을 받기 보단 휘둘릴 위험이 있어 (물론 휘둘리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잘 선택하지 않았었지만, 회사의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쨋든 10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일했으니 책에서 도움 될 만한 것들만 선택하여 취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외부 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어쨋든 이 책 '똑바로 일하라'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이 화제를 끈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그 '단호함'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무언가 주장을 전달 할 때 매우 단호하고 확실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래!' 하는 기운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어조가 위험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옳은 방향으로 어정쩡하게 가는 것보다는, 틀린 방향을 선택했을지언정 집중하여 단호하게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또 이렇게 해야만 결국 틀린 방향도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렇게 하면 이런게 좋고 그 대신 이런 점들이 우려된다'라기 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라고 확실히 말하는 이 책의 방식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쓰여진 환경과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의견들의 기회비용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를 아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서는, '똑바로 일하라'라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만하지만 10년 넘게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비슷한 IT업계에 몸담으며 느꼈던 현실과 기회비용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글로 풀어내야할 주제라고 생각했다.


모든 정보라는 것이 그렇고 특히 이런 류의 책들이 그렇지만, 독자는 저자보다 더 영리한 자세로 자신이 원하는 것, 내게 맞는 음식들만 체하지 않게 잘 골라 먹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도 이 책에서 내 입맛에 맞게 골라 먹을 것들이 많았다.

'꼭 성장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우리 현실에 맞게 바꿔보자면 '꼭 1등을 해야하는가' 혹은 '꼭 대박을 내야하는가'로 말할 수 있을텐데, 내 생각도 '그렇지 않다' 다. 직원이 늘고 사무실 평수가 늘어야만 하는 일들도 있겠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는 일들도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꼭 그러지 않아도 효율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즉, 일의 종류에 따라 전 세계 몇 억명이 사용하는 것이 골인 사업도 있지만, 국내에서 매달 몇 만 명의 사용자가 꾸준히 사용하는 사업도 있다는 것이다. 대박을 내는 것은 좋지만 '꼭 대박'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대박이 아니면 실패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결국 둘 중에 하나의 결과를 안게 될 것이다. 즉, 훨씬 적은 확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도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도전이 어떤 바늘구멍인지는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외부 자금은 마지막에 고려하라' 역시 100% 공감하는 부분이다. 꼭 회사 뿐만 아니라 개인도 그렇지만 현재 수중에는 없지만 빌릴 수 있는 한도의 돈에 대해 너무 쉽게 '내 돈'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말 내 주머니에 돈 한 푼 없는 상황만을 고려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적어도 마이너스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내 돈이 아닌 돈을 항상 고려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또 모험이 되고, 나중에 커다란 짐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출 받을 수 있는 한도, 투자가 예상되는 비용은 내 자산이 아니라 보너스의 개념으로 보는게 더 맞을 것이다. 이걸 그대로 내 주머니 속의 돈으로 여기는 순간부터는 아마도 이 끝나지 않는 터널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이 간극 만큼의 짐을 등 뒤에 얹고 가야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결정을 내려야 일이 진행된다' 도 맞다. 이 책에서는 '생각해보자'보다 '결정하는 것'이 옳다라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생각해 볼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생각을 하는 것은 문제다. 최소한의 생각해 볼 시간이 전제된 결정이라면 최대한 빨라야 한다. 결정이 느려지게 되면 결국 모든 결정을 종용하던 팀원들 역시 하나 둘 '그러려니'하게 되고, 결국 전체적인 결정의 속도가 '당연히' 늦어지게 되, 업무나 서비스 자체가 천천히 돌아가게 된다. 결정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정의 책임이 두렵다면 그건 결정권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한 것일터. 결정에 대한 결과에 따라 보상도 책임도 지면 된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용인하는 분위기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씩 다 공감 여부를 따지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슬슬 정리하자면)
 '별로라고 말할 수 있는가'는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인데 가장 안되는, 하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적 친분을 갖고 있는 직장 동료에게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이건 별로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며, 그 상대가 나이나 직책으로 봐서 더 높은 이라면 더 어려울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는 단순히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얘기를 하려고 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이대로 하는 것은 무리다 인 것들도 있지만, 반대로 현실은 그럴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한다 라는 점들도 있는데 이 문제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아마도 별로인데 그냥 말 안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단, 현실적 문제 때문에 그런 말을 하기 어려우니 넘어가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것 뿐이지. 사실 나도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이 점이었다. 내가 봤을 땐 당췌 마음에 들지 않는데 '별로'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모두가 쿨하게 일하자 라고 해서 100% 되면 좋겠지만, 사람일이라는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내가 택한 조금 어려운 길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나중에 '별로'라는 말을 해야할 때 할 수 있기 위해 그 동안 인간적으로 오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관계를 형성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즉, 나중에 어떤 결과물을 보고 '이건 좀 별로다'라고 했을 때 상대가 '지가 뭘 알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별로일 수도 있겠군'하며 '별로'와 '별로'라는 얘기를 한 사람을 구분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워도 해야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런 관계없이 그냥 '별로야'라고 했을 때 쿨하게 '어, 그래?'하고 받아들일 사람들로만 구성된 회사라면 상관없겠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미안한 것으로 끝나면 그건 정말 서로에게 미안한 것 밖에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이 글의 맨 처음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전방위 적으로 통용되기에는 위험성이 조금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벤처, IT, 스타트업 등에서는 배울 점이 많고 그대로 실행해도 좋을 점들이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를 통해 나아지는 것보다는 감수해야할 일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는 '영웅이 되지 마라' '우주에 영향을 미쳐라' '회의는 독이다' '남에 일에 신경쓸 필요 있나' 등과는 달리 영웅이 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우주에까지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일도 많고, 꼭 회의를 해야만 하는 일도 있을 것이며, 남의 일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빠르게 움직여야만 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편으론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에 어렵지만 그래도 옳은 말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선택에 문제다. 하나씩 다 이유를 들기엔 시간이 부족해 그리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주장에는 기회비용이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즉, 우주에 영향을 미치려 노력할 때 그로 인해 관심을 덜 주거나 끊어야 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고, 남에 일에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제품을 만들고자 한 대신 무언가 상대에 따라 변화해야할 때 빠르게 변화할 수 없음이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가 다니는 회사 혹은 앞으로 다니고 싶고 경영하고 싶은 회사에 따라 이 책에서 취해야할 것들이 다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일중독으로 살고 있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고, 회의를 매일 한다고 해서 독을 먹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영웅이 되려 한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다. 냉정하게 자신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고 '이건 맞아' '이건 어렵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어' '이건 내 현실과는 좀 먼 얘기네'라는 걸 어렵지만 구별해 낼 수만 있다면, 양면적인 의미로 도움이 많이 될 책일 듯 하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백이면 아흔 아홉번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나서 극장에 불이 완전히 들어올 때까지 관람을 하는 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리를 지킨다'가 아니라 '관람을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한 번에 해당하는 경우는, 밤늦은 시간 관람이어서 막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하게 나설 때와 영화가 정말 재미없을 때 뿐인데, 이를 제외하면 정말로 거의 모든 영화를 '완전히 끝날 때까지' 관람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정말 대부분의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 극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거론했던 주제이기는 한데, 오늘은 아예 이 '엔딩 크래딧을 볼 권리'에 대해서만 따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꼭 최근 찾았던 극장에서 엔딩 크래딧이 나오는 동안 한 두명의 직원이 끊임없이 나를 노려보고, 다 끝나고 자리를 일어나자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내 곁을 바람처럼 스쳐가서 이 주제를 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서두에 밝혀둔다. (끙;)


여기서 오해를 살만한 부분부터 밝히고 시작하자면, 모든 관객들이 엔딩 크래딧을 꼭 다 관람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앞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개인적 사정이 없을 경우에도 일찍 자리를 일어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며,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보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하지 않는 가에 대한 얘기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다 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첫 째로 쉽사리 가시지 않는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가슴 속에 담아두기 위함이다. 많은 영화의 여운들은 극장을 나서서 현실 세계를 맞닥들이는 순간 상당 부분 손실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작품처럼 그 여운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영화가 막 끝난 뒤 극장 안에 남아 있는 여운과는 비교하기 그 세기를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인상 깊게 본 영화라면 최대한 이 여운을 있는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 싶어 엔딩 크래딧을 끝까지 즐기는 편이다.


둘 째는 첫 째로 든 여운과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최고 시설의 환경에서 즐기기 위함이다. 영화 만큼이나 영화음악을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음악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 중 하나는 바로 엔딩 크래딧이 흐를 때 일 것이다. 각자 집에 어떤 사운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를 모르겠지만, 누구나 집에 THX 인증관 쯤은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극장의 시스템보다야 좋겠는가. 이런 최적의 시스템에서, 아직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영화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영화음악을 감상하는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칠 이유가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엔딩 크래딧에 담긴 깨알 같은 정보들 때문이다.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들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것에서 부터, 수록된 곡들의 정보를 한 곡 한 곡 확인할 수도 있고 주요 스텝에는 어떤 인물들이 참여했는지도 관심을 갖고 보다보면 눈에 익은 인물들을 한 두 명씩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인의 참여 여부로 시작한 이름으로 국가 맞추기는, 어떤 국적의 스텝들이 어떤 비중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로케이션의 경우 현지 스텝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와 CG 같은 기술파트의 경우 어느 회사가 참여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더해, 어떤 국적의 팀들이 참여했는 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셜 땡스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의 평소 인맥도 확인할 수 있고, 이 영화가 실제로 촬영된 장소들의 지명과 상호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보들은 영화를 좀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냥 넘기기엔 너무 소중한 정보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엔딩 크래딧을 온전히 즐기기에 현재 대부분의 극장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그리고 그 잘못의 대부분은 극장에게 있다. 빨리 청소를 끝내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내가 엔딩 크래딧을 보고 있을 때 들어와서 청소를 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관객이 있을 땐 청소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는지 계속 불이 켜져있는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내밀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내가 언제 나가는 가를 감시하신다. 그게 내 앞 줄에서 청소를 하시는 것보다도 훨씬 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물론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는 다수가 옳은 일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많은데, 관객의 다수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정확히 얘기하자면 본편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다고 해서,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다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이 과연 유난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가 라면 그렇지 않다. 극장은 영화 시작 시간이 10분이라고 했을 때 광고를 한 15~20분 쯤 틀어주고 나서 실제 영화는 30분쯤이 되서야 상영을 해서인지 몰라도, 러닝 타임이라는 것의 개념이 부족한 것 같다. 즉, 본편이 끝나는 시간을 러닝타임 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를 포함한 것이 영화의 러닝타임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논리를 따져봐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빵을 사서 90%먹고 나머지 10%는 안먹고 버린다고 해서, 100% 빵을 다 먹는 사람에게 '왜 남들은 안먹는걸 혼자 굳이 다 먹어야 속이 시원하냐!'라고 반문할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엔딩 크래딧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극장에 매번 마지막까지 남아있다보니 겪게 되는 다양한 일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원들의 눈치야 말할 것도 없고(언제부턴가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눈을 일부러 맞춘 적도 있다), 막 나가려던 다른 관객이 나보고 '저 혹시 끝나고 뭐 있어요?'라고 물어보거나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뭐가 있어서 남았겠지....하고 생각했다가 아무 것도 없자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라며 마치 나 들으라는 듯이 얘기하며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극장이 엔딩 크래딧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꺼낼 수 조차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가는 좋은 극장들 가운데는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아 엔딩 크래딧까지 온전히 즐기며 영화의 여운을 최대한 끝까지 머금을 수 있는 곳들도 많다. 실제로 예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극장이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켜고 안켜고는 관객들의 행동에 생각보다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불을 켠다는 것은 곧 나가라는 신호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불을 켜지 않을 경우 실제로 나갈 사람이 훨씬 덜 나가는 것도 목격한 적이 있다. 더 많은 극장들이 이런 시스템을 지향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영화 시작 5분 전까지 앞선 타임의 영화가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스케쥴을 빡빡히 짜고, 그 짧은 여유 시간에는 광고하기 바쁜 극장에게 이런 바램을 갖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냥 엔딩 크래딧을 보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적어도 방해는 받지 않고 끝까지 여운을 즐길 수 있었으면, 그리고 이를 이상한 사람마냥 취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열심히 엔딩 크래딧을 볼 자유는 꼭꼭 챙겨 누릴테지만.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워 호스 (War Horse, 2011)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고전의 감동



존경해마지 않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이지만 의외로 조용하게 적은 상영관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워 호스 (War Horse, 2011)'는 어쩌면 최근 영화계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우직하고 클래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 달 간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평소 남들보다 울컥하기를 잘 하는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일요일 오전 시간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상대적으로도 많은 양의 눈물이었으리라. '워 호스'가 감정을 자아내는 방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직설적이고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에이~ 이거 다 아는, 뻔한 방식이잖아'하며 울컥할 포인트를 스스로 지나쳤겠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달랐다. 자주 얘기하는 점이지만, '전형적'이라는 건 결코 '별로다'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전형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걸 이미 입증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형적이라도 그 핵심을 깨닫고 제대로만 전달한다면 충분히 관객을 울리고 웃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바로 이 방식을 택했다.



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워 호스'의 줄거리는 예상할 수 있는 그 것, 딱 그 정도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말과 어린 주인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예상되는 대부분의 얘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워 호스'는 제목 그대로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말'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처음 '조이'의 주인이 되는 알버트 (제레미 어바인)와 조이의 우정을 비중있게 다룬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따라간다고 해도 좋을 만큼 조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워 호스'의 이야기는 정말로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바이고, 그 예상하는 바도 최근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전적 이야기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는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그리고 영화를 본 날이 동물농장이 하는 일요일 오전시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TV동물농장을 보고 울컥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는 다 알면서도 울 수 밖에는 없는 감동의 포인트가 있었고, 이 포인트를 우직하고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어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후반 부의 감동 포인트야 말할 것도 없고, 초반 알버트가 조이와 함께 처음 밭을 갈 때부터 눈물을 흘렸으니 이거 뭐 말 다했다 ㅠ




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알버트와 조이와의 끊어질래야 끊어질 수 없는 우정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조이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일들의 비중을 과감하게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즉, 보통 같았으면 관객들은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알버트와 조이가 재회했으면 좋겠다 라는 한 가지 생각만을 하게 되지만, 이 경우는 조이가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비중을 적지 않게 그리고 알버트와 마찬가지로 따듯한 사람으로 그리면서 누군가는 '그래 알버트와 만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조이가 다른 사람과 맺은 인연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니 그의 입장도 무시할 순 없겠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이가 겪게 되는 일들이 전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영화라기 보다는 결국 스필버그 영화답게 가족영화의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잘 살펴보면 조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작농으로서 부모와 함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알버트야 말할 것도 없고, 중간에 만나게 되는 독일군 형제며 어린 딸과 할아버지의 관계에서도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이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결핍의 해결이나 치유의 의미로) 전달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워 호스'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영화적으로도 스필버그와 촬영 감독 야누즈 카민스키는 완벽에 가까운 순간들을 선사한다. 스필버그와 카민스키는 이 고전적 스토리를 다루면서 영상 측면으로도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알버트가 살고 있는 집과 집 근처의 풍광을 그리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지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강한 역광의 사용과 더불어 이 시퀀스에서 자주 사용되는 타이트한 클로즈업(배우의 얼굴 외에는 노을 빛이나 하늘 만이 자리잡고 있는)의 활용은, 이 고전적 스토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뭐랄까, 전형성을 넘기 위해 일부러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옷을 입으려 고민하기보단 예전에 가장 잘 어울렸던 옷을 잘 다려서 다시 꺼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워 호스'의 가장 명장면 중 하나는 역시 조이가 전장을 누비는 장면을 들 수 있을 텐데, 사실 이 장면이 담고자 했던 의미까지 100% 와닿지는 않았던 장면이었지만 그 영상미나 장면 자체가 주는 압도하는 느낌 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나 논리로 설명되기 보다는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는 없는, 설명 불가한 순간을 또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참호 속을 질주하는 조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던 군인들 처럼 말이다.



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는 뻔하고 유치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지점,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고 여겨지는 지점이 분명했음에도 이런 의심을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갖을 수 없었을 정도의 우직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극장을 나와 평정심을 찾은 뒤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곱씹어 볼 것도 없이 '그게 말이 돼?' '너무 심한 판타지잖아'라는 생각들이 바로 들었지만, 글의 맨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워 호스'는 그럼에도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영화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1. 말이 주연이라서 돋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배우들이 참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예언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닐스 아르스트럽과 '해피 고 럭키'에서 역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에디 마산, '토르' 동생 톰 히들스톤과 루핀 교수 데이빗 튤리스 그리고 셜록 배네딕트 컴버배치까지.


2. 조이 역의 말 연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로 연기를 하더군요! 총 14마리의 말이 나눠서 연기를 했다고 하는데, 정말 연출로 만들어냈다기 보다 말이 연기를 합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DreamWorks SKG 에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쓸쓸한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해



르카레의 원작 소설 팬들에게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되는 바였겠지만, 역시나(?) 원작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렛 미 인'을 연출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게리 올드만, 톰 하디, 존 허트, 콜린 퍼스, 토비 존스, 마크 스트롱, 시아란 힌즈 그리고 최근 셜록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출연진에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 영화라고 했을 때 혹자는 '누가 스파이인가?'를 찾아내는 반전 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이하 TTSS)'는 결코 '범인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냉전 시기 유령처럼 활동하던 스파이라는 존재를 작전의 역동성이나 활동성으로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스파이가 조직 내의 이중 스파이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 시대의 산물인지를 그 시대와 함께 아주 덤덤하게 그려낸작품이었다. 많은 스파이 영화와는 달리 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애잔한 시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야 말로 TTSS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tudio Canal. All rights reserved


은퇴한 (혹은 쫓겨난) 스파이 조지 스마일리 (게리 올드만)는 조직 내에 스파이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는 조용하고 빠르게 이중 스파이를 찾아나선다. 영화는 스마일리가 이중 첩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조지 스마일리로 대변되는 스파이라는 존재에 대한 묘사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그의 회상을 통해 그 동안 이 인물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묘사하는데, 이것 역시 양면의 활용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시 '스파이'와 '세계' 그 자체다. 사실 나도 영화 감상 초반만 해도 일반적인 스파이 영화를 볼 때처럼 온몸에 감각을 최고로 곤두세운 상황에서 모든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점점 영화가 전개될 수록 단서보다는 '공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클래식한 당시를 디테일하고 고풍스럽게 묘사하면서도 톤을 다운시켜 전반적으로 마치 추운 겨울 입 밖으로 내뱉는 차가운 입김처럼 싸늘한 공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서늘함은 곧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연결됬다.



Studio Canal. All rights reserved


아, 이 영화 정말 쓸쓸하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같은 편에 서있던 그렇지 않던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관객은 받게 된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스파이로서 이러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듯 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든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사력을 다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마치 이 외로움을 누군가 끝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내 뿜는 공기는 주변의 것보다도 차가워 보였고, 홀로 남겨진 그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애처로워보였다. 시종일관 이러한 분위기를 머금기만 해오던 영화는 종종 이를 분출하기도 한다. 주변을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어쩔 수 없이 연인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고 연인이 떠난 뒤 홀로 오열하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죽음으로 종결시켜주길 바라는 이나 그런 연인의 바램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는 이의 '눈빛'은 다른 스파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서였다.



Studio Canal. All rights reserved


이것과 마찬가지로 스마일리가 이중 스파이를 찾는 과정은 마치 자신이 걸어온 스파이로서의 삶을 반추하며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되짚어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스마일리가 카를라(칼라)와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가장 명장면으로 꼽는 이 장면은 회상 장면임에도 플래시백 없이 그저 현시점에서의 대화만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이 장면은 가장 소름돋는 '회상' 장면이자 간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 대화, 아니 회상 시퀀스에도 역시 TTSS만의 쓸쓸한 정서가 담겨있는데, 단순히 경지에 오른 강호의 고수가 또 다른 고수에게 보내는 존경의 마음이 아닌, 냉전이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스파이라는 세계에서 서로를 인정함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로 인해 영화가 시종일관 말하려고 하는 '스파이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Studio Canal. All rights reserved


이 장면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된 것에는 역시 스마일리를 연기한 게리 올드만의 영향이 컸다.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에게 연기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그는 조지 스마일리를 통해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리뷰 중간중간 포함된 스틸컷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게리 올드만이 창조한 '조지 스마일리'는 절제로 가득 덮혀 있음에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 글에서 여러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냉전의 시대보다도 더 차갑고 쓸쓸한 스파이라는 존재를 묘사하는데에 있어 스마일리의 그 표정없는 얼굴은 정말 효과적인 거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미지도 잘 어울렸다. '셜록'과는 묘하게 차별되면서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바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콜린 퍼스는 주연으로 홀로 나설 때보다 이렇게 여러 캐릭터에 섞여 있을 때 더 큰 매력을 발산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고, 마크 스트롱의 그 눈빛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못 잊을 이미지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비중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와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로이' 역의 시아란 힌즈의 이미지도 인상적이었으며, 톰 하디와 존 허트, 스티븐 그레헴 등 좋은 배우들의 멋진 이미지가 영화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작품이었다.



Studio Canal. All rights reserved


결국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일반적인 영화가 스파이를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함으로서, 오히려 가장 스파이 영화다운 작품이 되었다. 이던 헌트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좋지만, 조지 스마일리가 활약하는 스파이 영화도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다.



1. 



엔딩에 흐르던 훌리오 이글레아시스의 'La mer'는 정말 정말 탁월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지금까지 도대체 몇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2.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보고나면 크게 다시 찾아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곤 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기회가 된다면 BBC에서 제작한 알렉 기네스 주연의 TV시리즈도요.


3. 색감과 질감에 반한 탓인지 블루레이 출시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Studio Canal 에 있습니다.






나는 감정 노동자다. 몇 해 전 이슈가 되었던 고객상담(CS) 중심의 감정 노동자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를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음반/DVD 쇼핑몰을 운영하며 셀 수 없는 고객들을 상대했었고 지금은 광고주와 사용자로서의 블로거를 동시에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예전 쇼핑몰을 운영할 때는 앞서 이야기한 CS 중심의 감정 노동자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제품이나 배송 등에 관련하여 불만이 있는 고객들과 전화, 이메일 등으로 대화를 했어야했고, 전문적인 CS 직원을 별도로 둘 정도의 규모도, 그리고 업무의 특성상 CS단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줘야 했었기 때문에 다른 업무들과 병행해야만 했었다.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말도 안될 정도의 요구를 해오는 고객도 있었고, 잘못은 쇼핑몰 측이 있지만 그 과실을 묻는 정도가 과한 경우도 있었으며, 고객이 뭐라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잘못을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고객에게 욕과 비아냥 섞인 불만을 들어가며 전화기를 오랫동안이나 붙들고 결국 내려놓을 때면, 매번 이 일을 왜 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곤 했었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일해온 이 업계를 떠난 이유가 '소비자' 혹은 '고객'이 되고 싶어서였겠나.


오늘 내가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이전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겪고 있는 새로운 감정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재는 서비스로서 블로거들을 사용자로 상대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보니 쇼핑몰처럼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문제나 불만들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할 때가 많다. 사실 이 문제는 꼭 쇼핑몰의 경우를 배제할 수는 없는데 어쨋든 고객과 나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서비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와의 대한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IT나 웹서비스의 경우 이런 서비스의 비중보다는 기술이나 제품 자체의 비중이 더 클 수 밖에는 없기 때문에, 이런 공감대를 '우리'가 공유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사용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내 생각보다는 너무도 쉽게 '그냥 변경되었다고 공지합시다'가 되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너무 쉽게 이야기가 나온다기 보다는 이 이야기를 실제로 전하는 사람들이 겪는 감정 노동에 비중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혹은 완전한 서로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칼 같은 관계로 운영해왔다면 감정 노동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운영해온 서비스들을 결코 그런 식으로 운영해오지 않았었다. 여러번 이야기했던 일이지만 단순 노동에도 혼을 불어넣는다는 얘기는 결코 웃자고 한 얘기는 아니었다. 즉, 무언가 작은 약속이라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평소 기계처럼 쿨하게 운영했다면 쉽게 할 수 있었겠지마나, 평소에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개인간의 일처럼 '진짜로' 미안하고 죄송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안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일까지 생겨버리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왜 일에 그렇게 감정을 실어서 하냐' '일은 일이지 스트레스 받지마'. 하지만 이런 마인드로 하는 일과 정말로 내 것처럼, 단순한 고객 응대 수준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 하는 일과는 절대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광고주가 되었든, 아니 광고주는 모르겠다, 광고주는 일로서 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사용자 혹은 고객을 대할 때 전자와 같은 마인드로 대하는 것은 서비스하는 사람에 기본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매번 같은 스트레스로 하루도 집에서 편히 쉬어본 적이 없고, 집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회사 메일과 사이트, 게시판 등을 오가며 어떤 글들이 올라오고, 어떤 불만들이 올라왔는지를 확인하고, 당장 깔끔하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을 때 갖게 되는 심리적 부담감은 결국 떨쳐내지 못했다. 집에가면 회사 메일도 사이트도 접속 안하기, 를 목표로 해본 적도 있었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만약 일로서만 이 일들을 쿨하게 대했다면 전혀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난 아직도 사용자 혹은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에는 감정을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즉, 앞으로 감정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점만 이야기했지만 감정 노동자만이 느끼는 희열은 그 어떤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화로, 메일로 전했던 말들의 진심이 전해졌다는 것이 느껴질 때, 그리고 고객들도 우리를 그냥 회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느껴지는 희열은 회사의 대박과는 전혀 별개의 일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떤 회사든 서비스를 해야만 하는 업종이라면 이런 마음 가짐으로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고객에게 말도 안되는 불만을 들었을 때보다, '우리'라고 생각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돼?'라고 생각한다고 느껴졌을 때의 허무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걸 이해하거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태생적으로 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다른 업무의 속내를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걸,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 상당한 정성으로 감정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셜록 (Sherlock)

우아한 21세기형 셜록



오늘 소개할 셜록 홈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셜록 홈즈와 왓슨으로 분한 영화가 아닌, BBC에서 방영한 드라마(TV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셜록'이다. 아서 코난 도일의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 홈즈'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셜록 홈즈'는 지금까지 영화와 드라마, 만화 (개가 주인공인) 등 다양한 버전과 매체를 통해 소개되었었는데, 그 중 거의 대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BBC가 제작하고 '닥터 후'의 작가로 유명한 스티븐 모팻과 마크 게티스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셜록'이 기존의 '셜록 홈즈'와 가장 다른 점이라면 역시 '현대의' '모던한' '21세기형' 셜록 홈즈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러 고전들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 중 하나가 '현대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현대화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 단순히 활동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현대에 맞게 최적화했느냐라고 봤을 때 '셜록'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현대화를 이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현대화된 '셜록 홈즈'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간단한 아이디어로 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셜록이 빅토리아 시대가 아닌 현재의 런던을 누비고 다닌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21세기의 왓슨이라면 일기 대신 블로깅을 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과 흥미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러운 추론이 가능한 그림을 그려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고전을 현대화 했지만 마치 고전 속 캐릭터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 '셜록'은  '아주 있을 법한'을 넘어서서 이미 이 캐릭터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아니다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바로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될 정도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이건 말로하기는 간단하지만 고전을 현대화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동시에, '셜록'이 가장 잘 하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가이 리치의 영화 '셜록 홈즈'에서 홈즈 특유의 능력을 영상화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액션(주로 결투)에 있어서 미리 리허설 하듯 정확하게 계산한 뒤 슬로우 슬로우 퀵퀵 스피드를 조절해가며 표현한 경우였다면, '셜록'은 논리의 추론 과정에 있어서 단서가 되는 것들을 화면 상에 텍스트로 표현 하는 등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니어처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거나 차갑지만 상당히 감각적인 색감과 앵글로 이뤄진 영상미를 바탕으로, 그 위에 텍스트가 뿌려지는 방식은 자칫 너무 앞서가려는 이질감을 줄 수 있는데, '셜록'의 그것은 세련됬다 라는 느낌을 누구나 받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현대화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세련됨까지 느껴지도록 각본이며 구성이며 배경, 설정 등을 잘 고안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21세기의 셜록이라면 편지 대신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했겠지'라는 가정하에 방식만을 후자의 것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더 깊게 전개시킨다는 점이 '셜록'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하겠다.





(현재의 런던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런던의 모습 가운데 고풍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부분들도 함께 녹여내고 있어, 현대화의 이질감을 덜함은 물론 굉장한 리얼리티를 선사하고 있다)


여러가지 현재에 걸맞게 특화된 부분들이 물론 '셜록'을 결정 짓는 가장 대표적인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근본에는 역시 '셜록 홈즈' 특유의 추리하는 맛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야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들에서 완성도 높은 각본들을 만나볼 수 있는 터라 시청자의 눈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은 여기에 원작의 팬들까지 더해져 커다란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각본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셜록'처럼 추리 그 자체가 극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미치는 작품의 경우, 각본에서 그 작품 자체의 평가가 갈린다고 까지 말할 수 있을 텐데, '셜록'의 각본은 시청자가 쉽게 미리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극 중 셜록 홈즈처럼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추리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에는, 결국 각본이 시청자를 뛰어넘거나 속이는 것이 가능해야만 된다는 얘기라고 봤을 때 이 작품은 이 미션을 훌륭하게 완료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것이 '셜록' 만의 재미이기도 하고.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주인공 '셜록'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에 대한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톤먼트'를 보았음에도 '엇? 그가 어떤 역할로 출연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셜록과는 잘 매치가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셜록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이전의 필모그라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앞서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작품은 우아함을 가득 담고 있는데, 거기에는 베네딕트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큰 키와 클래식한 마스크,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듯 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의상까지. 여기에 마치 알란 릭만을 연상시키는 특별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셜록'이라는 자신 만의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 목소리는 이 작품의 전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까지 생각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준다. '셜록'으로 탄력 받아 스필버그의 '워 호스 (War Horse, 2011)'에도 출연했고 앞으로 제작될 스타트렉 시퀄과 호빗 후속편에도 캐스팅 된 상태라고 하니 앞으로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보게 될 듯 하다.






Blu-ray : Menu








Blu-ray : Quality & Special Features



아쉽지만 블루레이 화질/음질과 부가영상에 관한 내용은 그냥 스크린 샷으로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글도 거의 한 달 전에 써 둔 글인데 나중에 정리해야지 한 게 타이밍을 놓쳐버렸네요;;; 나중에 시즌 2가 블루레이로 출시된다면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루레이에 대한 구체적인 리뷰를 기다리셨던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꾸벅.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블루레이 캡쳐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아인스 M&M 에 있습니다.




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

세월을 흐르는 쿠바음악의 선율



'치코와 리타 (Chico & Rita, 2010)'는 관능적인 동시에 쿠바 음악의 한 시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다룬 '라비앙 로즈'와 같은 뮤지션의 전기영화였다. '치코와 리타'를 누군 가의 전기영화로 보기는 어렵지만, '라비앙 로즈'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흐르며 계속되는 사랑과 음악의 이야기는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러브 스토리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치코와 리타'는 매우 전형적이고 오랜 세월을 짧은 러닝 타임 내에 담고 있기에 관객이 공감대를 얻기 힘든 속도로 진행되며, 그 러브 스토리의 마지막은 감동보다는 살짝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이기도 하다 (다른 부분으로 보완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마지막이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치코와 리타'에는 이 러브 스토리를 시종일관 감싸고 있는 음악이 있다. 쿠바 음악 특유의 리듬과 애환이 담긴 멜로디는 영화 속 치코와 리타의 곡절 많은 세월을 쉬지 않고 지켜본다.



ⓒ Isle of Man Film. All rights reserved


'치코와 리타'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지만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인데, 애니메이션의 기법 측면에서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쿠바 하바나의 거리 풍경이나 인물들의 움직임들에 있어서 실사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정도로 사실적인 느낌이드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래서 인지 시종일관, 만약 이 영화를 실사영화로 만들었으면 또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 Isle of Man Film. All rights reserved


'치코와 리타'가 이처럼 전형적이다 못해 조금은 너무하다고까지 느낄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음에도 나름의 매력을 갖을 수 있었던 건 역시 음악, 음악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음악은 쿠바 음악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중의 한명인 베보 발데스가 맡았는데, 감독은 이 영화를 베보에게 헌정하고 있는 것처럼 '치코와 리타'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베보 발데스와 연결지을 수 있는 점들이 많은 작품일 듯 하다. 영화 초반 쿠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악들과 이후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지는 재즈 선율들 모두, 이 당시의 재즈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또 다른 흥미거리로 다가온다. 지명이나 공연장, 뮤지션들의 이름들은 대부분 실명으로 등장하기 때문인데, 불쑥불쑥 등장하는 전설들의 모습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Isle of Man Film. All rights reserved

결국 '치코와 리타'는 두 사람의 남녀 주인공을 내세워 러브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1940~50년대 활동하던 쿠바 뮤지션들과 음악에 대해 헌정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이후 재평가되기까지 음악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그리고 그들의 삶에 얼마나 가깝게 음악이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집 안 CD장에서 쿠바 뮤지션의 앨범 한 장을 꺼내듣게 되는 바로 그런 영화였다.


1. 리타가 뉴욕으로 가서 스타가 되었을 때 스캔들이 나는 장면에서 한 남자와 차에 동승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짧게 나왔지만 옆에 탄 남자는 마론 브란도 같더군요 ㅎ

2. 무려 30곡이나 수록된 사운드트랙이 국내에도 지난해 5월 발매가 되었었군요!
http://hyangmusic.com/View.php?cate_code=WOST&code=3768&album_mode=music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Isle of Man Film 에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아버지 세대의 생존에 대한 씁쓸한 연민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자 (2005)'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윤종빈 감독의 신작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보았다. 이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이어서 기대가 되었던 점도 있지만, 최민식, 하정우, 조진중, 마동석, 곽도원 등 한꺼번에 이름을 늘어 놓으니 뭔가 일을 벌려도 확실히 벌일 것 같은 배우들 때문에 더 큰 기대를 갖게 했던 작품이었다. 개봉전 시사를 통해 들려오는 평들도 한국판 '대부'다, '좋은 친구들'이다 라는 얘기 등 더욱 기대를 갖게 하는 것들이었기에, 오랜만에 걸죽한 한국영화 한 편을 볼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더랬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지면 '대부'보다는 '좋은 친구들'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이나 풍기는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말하는 폭력 조직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보게 된 영화는 조직 폭력과 남자들의 세계 그 자체보다는, 영화의 부제처럼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살아 남아야만 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풍자와 연민이 담긴 '생존'에 관한 영화였다. 즉, 겨우 2~30년 전이었던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조명하는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다는 씁쓸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팔레트픽처스. All rights reserved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뇌물도 먹고 뒷돈도 챙기던 부산 세관 직원으로 시작해 우연한 기회에 마약을 손에 쥐게 되면서 만나게 된 조직 폭력배 두목 '최형배 (하정우)'가 먼 친척이라는 것을 이용해, 급속하게 조직 폭력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정치사회의 시류를 이용하고 또 이용 당하며 이 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던 최익현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나 조진웅이 연기한 '김판호'로 대표되는 부산 조직폭력의 세계는 말그대로 '세계'로서 존재한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세계 말이다.


최익현이 생존해야할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세계에는 이들 조직 폭력배들의 세계 말고도 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그리고 최익현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는 세계가 더 있다. 영화 속 최익현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움직인다기보다는 그것이 그릇된 방법이었을지언정 가족,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다음에 자신의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더 좋았는데, 중간중간 이를 암시하는 장면들과 마지막에 등장한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최익현(아버지 세대)의 삶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팔레트픽처스.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처한 시대가 의롭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주인공 역시 의롭지 않다는 것에 있다. 즉, 조직폭력배를 그리지만 미화할 만한 구석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매력적인 건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 것일까;;)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 선 검사 역시 정의로운 듯 하지만 그 방식이나 결과에 있어서 결국 이 시대에 편승한 인물 그 이상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 최익현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쉽게 말해 '어지러운 시대에 휘말려 버린 주인공'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시대를 철저하게 이용해 살아 남은 존재로 그리면서도 묘한 연민이 들도록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나 갱스터 영화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파로 끌고 가서 가족과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인물로 그리지도 않았고, 반대로 난세의 영웅의 성공과 몰락으로 끌고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생존해야 했다는 이유가 보여 좋았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그의 행보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누군가는 취향에 따라 차라리 더 갱스터 영화이길 바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최익현에게 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바랬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미묘한 지점을 줄타는 윤종빈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주)팔레트픽처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최익현을 그리는 방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권총' 아니 '빈총'의 이미지였다. 야쿠자와의 거래를 통해 최익현은 선물로 권총 한 자루를 선물 받게 되는데, 최형배로 대표되는 조직 세계와 태생적으로 완전히 같은 편이 될 수는 없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최익현은 이 권총을 자신 만의 무기(자신감)로 항상 몸에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중요한 순간에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중요한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총이 빈총임을 몇 번씩 중요하게 확인시켜준다. 사실 최익현에게 연민이 들었던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이 빈총의 이미지였다. 대사에서는 장난처럼 '제발 총알 좀 구해달라고'라는 말도 나오지만, 어쩌면 그런 위치에 있었음에도 총알 하나 구할 수 없었던 그의 존재와 허울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빈총을 무기로 삼아 생존해야 했던 그에게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겹쳐보이는 순간 연민이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종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정서는 바로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빈총으로 살아남았던 아버지들의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저 연민의 시선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주)팔레트픽처스. All rights reserved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흐름을 흥미로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아직까지도 관통하고 있는 정서에 대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던져놓은 작품이라 더 마음 들었던 경우였다. 배우들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연기가 특히 하나 하나 '살아있는' 것이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드는 작품이었고.



1. 미리 무대인사 시간을 확인한 뒤 예매해서 감독과 배우분들이 함께한 무대인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잠원동에서 온 하정우씨도 재미있었지만, 최민식씨가 인사를 할 땐 극장에서 모두 '최민식! 최민식'을 열호하기도!!


2. 조범석(검사) 역할을 맡은 곽도원씨의 연기와 캐릭터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주)팔레트픽처스 에 있습니다.



인 어 베러 월드 (In a better world, 2010)
복수와 용서의 사이에서...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수잔 비에르는 이 작품 이전에 헐리웃에서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할,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한 리메이크 작 '브라더스'의 원작자로 더 많은 영화 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애프터 웨딩'이 노미네이트 되면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국 2010년 이 작품 '인 어 베러 월드 (Hævnen)'로 그 해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의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며 덴마크 영화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헐리웃에 비해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덴마크 영화라는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누군 가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인 어 베러 월드'는 덴마크의 역사나 사회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기 보다는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화두를 덤덤하지만 아주 진중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반드시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아프리카의 난민 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 '안톤'의 이야기와 덴마크의 한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과 그 이후의 일들을 그린다. 그리고 영화 초반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남게 된 '크리스티안'을 안톤의 아들이자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인 '엘리아스'와 연결 시킨다. 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이야기 그리고 두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는 조금씩 하나로 연결시킨다. 하지만 이 연결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처럼 결국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식이나 더 직접적인 연결이라기 보단, 같은 고민과 문제에 빠져있다는 것으로 연결점을 삼는다.






'인 어 베러 월드'의 덴마크 원제인 'Hævnen'은 '복수'를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쩌면 폭력에 대한 비폭력의 가치 혹은 수잔 비에르의 폭력의 역사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폭력이라는 작지만 강한 존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작용하고 전달되고 커져가는 과정을 통해, 그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이를 더 큰 가치로 해결해 나가자는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끝나고 엔딩 크래딧이 시작되는 그 순간, 굉장히 무거워져 버린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야, 정말 무서운 영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랄까 이 작품은 '그래 아직도 세상은 희망이 있어!'라기 보단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아주 무거운 화두를 준비되지 않은 채 받게 되어버린,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더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직 순수한 존재인 아이들이 폭력인해 그리고 폭력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이 문제가 정확히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 지를 좀 더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화두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과연 폭력은 비폭력만으로 저항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수잔 비에르는 이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계속 화두로 남겨 관객들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안고 다시 한번 '겪어 보도록' 만든다. 결국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영어 제목처럼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과연 우리는 좁게는 내 아이와 가족을 위해 넓게는 내 신념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이처럼 깊은 화두를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던지다니. 수잔 비에르를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야 할 이유다.


DVD 메뉴





DVD Quality


2.35:1 화면 비의 DVD화질은 우수한 편이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풍경과 극중 안톤이 머무는 별장 근처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부드럽게 표현되며, 수잔 비에르가 곳곳에 배치한 따듯한 햇살이 가득한 장면들 역시 그 온도를 잘 담아내고 있다. 돌비디지털 5.1채널의 사운드 역시 과하지 않은 채널 활용과 더불어 비교적 선명하게 대사를 전달한다. 멀티 채널의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이라 사운드적인 쾌감은 포인트가 아니라고 보면 되겠다.




장에서 조차 만나기 힘들었던 이 같은 작품을 DVD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지만, 예고편 외에는 전무한 부가영상은 아쉬움이 남는다.


[총평]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러 월드’는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화두를 가볍지 않고 무겁게 다루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연출해 낸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혼자서는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운 용서와 비폭력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면, 이 작품을 꼭 한 번 권하고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 주의 : 본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으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재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음을 알립니다.




가슴 배구단 (おっぱいバレ, 2008)

애틋한 사춘기 시절에 대한 송가



제목을 말하기 조금은 민망한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영화 '가슴 배구단 (おっぱいバレ, 2008)'을 보았다. 이 영화는 본래 볼 계획이 특별히 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아야세 하루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가 낮아서인지 훨씬 더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제목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에서 대충 감잡을 수 있었던, 사춘기 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유쾌한 성장기를 담은 영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보다는 더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가슴 배구단'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적 호기심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보면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사춘기의 여러가지 추억들 가운데 하나 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슴 배구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추억을 자극하는 시대극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서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사춘기를 보여주려고 했었다면 현대의 이야기로 각색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을 텐데, 영화는 실화가 아니었더라도 시대극을 그리고 싶었다는 의욕을 곳곳에서 자주 발산한다. 영화 내내 흐르는 당시의 유행 음악들이 일단 분위기를 7,80년대 일본 기타큐슈 지역으로 안내하며, 굳이 포커스를 맞출 필요 없다고까지 생각되는 다양한 배경과 아이템 (당시 거리의 모습이나 극장 간판, 레트로풍 자동차와 의상 등)을 묘사하는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당시 기타큐슈를 살았던 일본인들이라면 아마도 더 큰 향수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감독인 하스미 에이이치로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기타큐슈 출신은 아닌 것 같지만, 그 시대를 추억하며) 하나하나 추억의 공기를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영화는 아이들의 지도를 맡게 된 테라지마 미카코 (아야세 하루카)의 세대와 아직 사춘기를 한창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세대를 겹쳐놓는 시도를 한다. 즉, 아야세 하루카가 연기한 미카코는 단순히 아이들의 선생님으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아직 완전히 어른(혹은 선생님)이 되지 못한 과정의 인물로 그려진다. 얼핏보면 미카코의 이야기는 단순히 트라우마에 관한 것으로, 그래서 아이들의 배구시합과 관련한 복선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아이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미카코의 이야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면서 세대와 방법이 다를 뿐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순간은 배구 시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카코와 그녀의 스승과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래서일까. 그냥 풋풋한 아이들의 성장담을 보며 웃고 즐겨야지 했던 것과는 달리, 감정적으로 짠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시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그 안에서 내 학창시절 사춘기의 모습을 살짝 떠올리게 함은 물론,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카코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누군가는 '과연 가슴을 보여줄까 말까?'를 기대하며 빠르게 돌려볼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영화엔 그것을 뛰어넘는 아련한 감성이 있었다. 유치하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 아련함 만큼은 담고 있는 작품이라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작품.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실제로 상상마당에서는 영화 입장시 직원 분이 영화 제목을 말하며 '뭐뭐 입장하세요'라고 얘기하시는데, 이 날은 그냥 '영화 입장 가능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ㅋ

2. 어쩌다보니 최근 본 일본 영화 두 편이 모두 기타큐슈가 등장하는 영화였네요;

3. 해외는 워너브라더스가 배급했더군요. 시작 전 워너 로고를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Warner bros pictures 에 있습니다.





말그대로 입니다.
사실 올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라디오헤드가 오느냐 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법 있었는데, 이런 걱정은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헤드라이너 발표 소식이로군요!!

록 팬들이 최소 10년 전부터 계속 노래를 노래를 했던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지산에 오다니! 정말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가 아닐 수 없네요!

평소 블로그에 뭔가 긴 글이 아니면 뉴스 같은 건 올리지도 않는데, 이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식이네요. 라됴헤드라니! 거기에다가 스톤 로지스까지! 겨우 헤드라이너 두 팀 발표했을 뿐인데도 올해 지산은 안갈 수 없게 되어버렸네요. 올해도 무조건 갑니다! 암요. 톰 요크의 졸린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어야지!








래빗 홀 (Rabbit Hole, 2010)

주체할 수 없는 상처를 절제로 담아낸 영화



'헤드윅'과 '숏버스'를 연출한 존 카메론 미첼이 니콜 키드먼과 아론 애크하트와 함께 공연한다고 했을 때 과연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막상 작품을 보고나니 이 작품 '래빗 홀'은 '와! 존 카메론 미첼이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의 작품들과는 사뭇 공기의 다른 작품이었다. 결국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앞선 전작들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지만, 굉장히 적극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래빗 홀'에서 존 카메론 미첼이 선택한 방식은 매우 관조적이고 제3자적인 시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 상실의 슬픔을 온몸으로 겪는 듯 했지만, 이를 담는 그릇인 영화는 상당히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아픔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주인공들, 그리고 이와는 정반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절제로 담아낸 영화. '래빗 홀'은 이 상반된 이미지가 주는 조화가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Olympu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어린 아들을 잃은 베카(니콜 키드먼)와 하위(아론 애크하트)가 이 상상할 수 없는 상실감의 상처를 겪고, 또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베카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아들의 부제를 지우기 위해, 아들의 흔적이 하루 빨리 지워내고 잊어가는 것으로 극복하려 하고, 반대로 하위는 아들의 존재로 매일매일 되내이며 항상 곁에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려 한다. 앞서 영화가 취한 방식이 관조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베카와 하위의 방식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다는 평가를 전혀 내리지 않는다. 즉, 관객들로 하여금 베카의 행동을 보고 매몰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거나 또 하위의 행동을 보고 집착한다고 느껴지도록 만들지 않는다. 영화는 그냥 부부가 각자 아들을 잃은 상처를 견뎌내는 과정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말없이 응시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더 이 슬픔의 깊이를 실감하게 만들어 이들의 행동과 감정 하나하나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Olympu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무언가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먹먹함 만이 남는 작품이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Olympus Pictures 에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

이유라는 것의 무의미도 필요해



'제리 맥과이어 (1996)' '올모스트 페이모스 (2000)' '엘리자베스타운' 등을 연출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We Bought a Zoo, 2011)'를 보았다. 제목과 포스터 (주인공들이 모두 등장한 버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보아도, 이 작품은 매우 '착한영화'일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악당도 없고, 주인공들이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선한 분위기가 가득 찬 이들이고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들도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참 착한 영화말이다. 각종 범죄와 폭력, 스릴러가 난무하는 영화들을 연달아 보게 되면 가끔씩은 아무 이유없이 그냥 착한 영화들에 대한 갈증이 절로 생기게 마련인데, 그래서 극장을 찾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이런 착한 영화가 줄 수 있는 흐뭇함과 안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카메론 크로우의 신작은, 단순히 착한 것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 괜찮은 작품이었다.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아내를 잃고 아들과 어린 딸과 함께 남겨진 한 가장이 새로 살 집을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물원을 운영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작지만 큰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서 중 하나는 바로 이 남겨진 자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한 가정이 이 빈자리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 최근 보았던 존 카메론 미첼의 '래빗 홀 (Rabbit Hole, 2010)'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단순히 누군가의 '부재'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남겨진 자들의 치유의 과정과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방법면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래빗 홀'에 방법론은 이 작품의 리뷰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방법론을 이야기하자면, 정반대의 길로 달려본 뒤에야 해결 방법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정반대라고 생각했던 길마저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영화는 이 가족의 치유 과정 속에 어쩌면 착한 영화다운 메시지를 살며시 포개어 놓는다.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모험에도 적극적이고 복잡할 것이 없었던 주인공 벤자민(맷 데이먼)이 실제로 자신이 진짜로 겪게 된 모험에서는 여러가지 이유와 사정들을 들어 쉽게 전진하지 못하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역시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영화는 'Why Not?'이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여기에 작은 도구로 용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 20초만 눈 딱감고 저질러 버리면 되는 그 작은 용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혹자는 이 과정을 100% 수긍하기에는 너무 헛점이 많은 것 같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Why Not?'을 설명하기 위해 논리적 무장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동물을 배경으로 그 안에 인간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눈빛과 표정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은 적어도 나에겐 충분했다. 맷 데이먼이 좋은 배우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역할로서도 이 정도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컨테이전'에서 보여준 가능성이 이 작품에서 좀 더 꽃을 피웠달까).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아마도 보통 같았으면 당연히 끝났어야 할 지점을 지나 영화는 에필로그처럼 작은 이야기 한 토막을 꺼내 스스로 마무리한다.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Why Not?'에 대해 정리할 부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장면은 너무 직접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래도 이 장면은 너무 좋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떤 영화든 정말 멋진 장면을 한 장면씩은 갖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는 아마도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장면이 있어서 이 영화가 앞으로도 더욱 기억에 남을 듯 하다.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카메론 크로우의 팬이라면 그의 영화를 볼 때 좀 더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영화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음악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은 그 답게 이번에는 '시규어 로스 (Sigur Rós)'의 메인 보컬로 더 잘 알려진 '욘시 (Jónsi)'의 음악을 선택했다. 기존 욘시의 솔로 데뷔 앨범 'Go'에서 전혀졌던 신비스러운 행복함이 이 작품에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데, 자연과 동물원이라는 배경 그리고 치유라는 메시지에 있어서 욘시의 음악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지 않나 생각된다. 그 밖에도 카메론 크로우가 평소에 좋아하는 밥 딜런, 윌코 등의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메론 크로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믿고 사도 좋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쉽게,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무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으로 너무 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렇지만 가끔은 하나하나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무모함 섞인 희망과 긍정이 담긴 영화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허무맹랑이라 하기에 이 영화가 담아낸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기도 했고.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1. 이 영화는 'Why Not?'이라는 것과 더불어 극중 벤자민처럼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몇년 간 적지 않게 고민하고 있는 '귀농'이라는 것과 맞물려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계산하고 이유를 찾다보니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정말로 '안될 이유가 있나?'라는 심정으로 실행해야만 가능한 걸까요? ;;

2. 주인공이 키우는 강아지가 나오는데 이렇게 비중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을 듯. 아마도 배경이 동물원이다보니 강아지는 그야말로 찬밥인듯 ㅎ

3. 엘르 패닝은 '수퍼 8'에서는 쌀쌀맞게 나오더니 여기서는 정반대라 좀 적응이 안되기도 ㅎ 아직까지는 괜찮은 성장중인듯.

4. 영화 속 동물원 개장날의 이야기는 실제 현실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판타지에 가까워서인지, 더욱 그 이후 영화가 보여준 결말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되네요.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에 있습니다.





부러진 화살 (Unbowed, 2011)

현재 진행형의 투쟁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석 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른바 '석궁사건'이라고 불린 사건이 그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불합리함을 느낀 피고였던 한 교수가 재판의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을 했다는 사건이었는데,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석궁'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도구 때문에 더 세간에 주목을 끌었던 사건이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은 바로 이 석궁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영화의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도 물론 얘기거리이지만, 어쨋든 실제 일어났던 사건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 작품이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듯 하다.



ⓒ 아우라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부러진 화살'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사법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권력을 갖고 있는 조직 사회의 문제, 그리고 이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정지영 감독은 완전히 이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면서도 중간 중간 대사와 장면들을 통해 이 이야기를 단순히 법정 내의 이야기로만 가두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김경호(안성기)가 불합리한 정치적 이유로 인해 겪게 되는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 사회가 관례라는 이름으로 집행하는, 혹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진행되는 시스템적인 불합리에 대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거대한 부당함과 외로운 합리의 싸움을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보통 같았으면 '정의'라는 표현을 썼겠지만 '부러진 화살'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정의'보다는 '합리'에 가깝다. 즉, 영화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의롭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 가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이 얘기를 바꿔서하면 대한민국 사회가 처한 문제는 정의를 논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합리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할 정도의 쉽게 말해 '황당한' 상황이라는 말이 되겠다.



ⓒ 아우라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영화 속 김경호의 싸움을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옳다 라는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상대에게 '너희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먼저 입증해봐라'의 연속이다. 만약 이 싸움이 조금 더 정의로운 것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으려면, 김경호가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할 수 밖에는 없었던 상황에 대해, 정상참작할 만한 여지가 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할텐데, 영화 속 싸움은 이보다 한참 전 상황에서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이 싸움에서 분노가 드는 것은 바로 이 답답함 때문임이 크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누구의 생각 혹은 주장이 맞는 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는 커녕 너무나 당당하게 '내 주장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상대와 논리적으로 싸워야 하는 피곤함에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김경호는 이런 무지한 상대를 두고도 끝까지 법적으로 밀어 붙인다. 김경호가 법적인 논리를 치밀하게 펴서 상대를 아무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만들 수록 관객의 분노와 피로함은 더해간다. 이것이 '부러진 화살'이 다른 법정영화와 전혀 다른 점이다. 주인공이나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아무말도 못하도록 만들 때 승리감이나 시원함이 들기 보단, 그저 씁쓸함과 허탈함 만이 드는 건, 결정적 단서라고 생각한 동영상이 나와도 주어가 없다 라고 부정해 버리는 현실 사회의 피로함 때문일 것이다.




  ⓒ 아우라 픽쳐스.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정지영 감독은 이 답답하고 분노만 끓어 넘치는 사건에 다른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냥 이 사건을 몰랐던 관객들에게 '이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라고 고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 분노를 분노에 가두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투쟁의 에너지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끝나도 이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씁쓸하게도 하지만, 한 편으론 바로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이야말로 이 작품에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아우라 픽쳐스 에 있습니다.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데이빗 핀처의 용문신을 한 소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 '용 문신을 한 소녀' (북미와 영국에서 발간될 때 사용했던 제목)라는 제목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아주 생소한 작품은 아니었는데, 스웨덴에서 영화화한 버전과 데이빗 핀처가 리메이크 했다는 소식을 거의 동시에 듣게 되었고, 개봉도 그 규모는 다르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만나볼 수 있어 어느 작품을 먼저 볼까 고민하던 중, 결국 핀처님의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밀레니엄'은 전작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2010)' 이후 1년 만에 바로 만나볼 수 있는 데이빗 핀처의 신작이라 일단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셜 네트워크'가 이제 막 1년이 조금 넘은 작품임에도 가끔씩 다시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라고 봤을 때, 과연 핀처의 신작은 또 어떤 감흥을 전달해 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명한 원작 소설도 스웨덴판 영화도 보질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핀처의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원작이 별도로 있거나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영화의 경우, 원작을 읽었을 경우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일단 끝내주는 오프닝 타이틀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미 카일 쿠퍼가 연출했던 '세븐' 오프닝 타이틀을 통해 획을 그었던 핀처는, 이번에는 팀 밀러라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환상적인 오프닝 타이틀을 선사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의 강렬한 비트와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은 흡사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듯한 영상에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더해지면서 흡사 007 시리즈의 오프닝마저 연상시킨다. 음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트렌트 레즈너가 음악을 맡아서인지 영화 곳곳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릴 만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음악은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와 그 이면에 가려진 무게감을 대변하고 있었다면, '밀레니엄'에서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스테리함의 증폭과 추운 날씨와 고립된 듯 외로운 장소와 캐릭터의 면면을 더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부패한 재벌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대형 소송에 휘말린 기자 '미카엘 (다니엘 크레이그)'과 정부의 보호감찰을 받는 아웃사이더 소녀 '리스베트 (루니 마라)'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 나간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영화 초반 공개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지기 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작 소설과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포스터나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뉘앙스를 보았을 때 리스베트라는 캐릭터의 비중이 절반이상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헐리웃 버전의 '밀레니엄'은 적어도 50:50이거나 미카엘의 비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중심이 되는 스토리에 더 빨리 투입되는 것도 미카엘이고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카엘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작품이었다면 리스베트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스웨덴 버전 포스터로 미뤄 짐작했을 때 기존의 작품들이 리스베트의 이야기라고 예상되었다면, 헐리웃 버전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스릴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밀레니엄'은 괜찮은 과정을 담고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는 40년 전 사라진 소녀 '하리에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푸는 것 이전에,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비중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중반까지는 완전히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그렇다보니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진 다음, 본격적으로 하리에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157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에도 100% 만족할 만한 문제 해결의 과정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즉, 실제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 범인을 밝혀내게 되는 과정에 있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인해 약간 급마무리 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밀레니엄'이 보여준 문제 해결 과정이나 속도, 리듬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닌데, 이것이 데이빗 핀처의 작품이어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그는 이미 '조디악 (Zodiac, 2007)'이라는 너무 완벽한 스릴러를 만들지 않았던가!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개인적으로 극장을 나오며 느꼈던 교훈은 좀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는데, '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특히 리스베트가 처한 상황과 그녀가 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가는 방식을 보면서, 이런 저런 고통과 억압들은 절대 참는다고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상처가 깊어진다는 진리와, 그 가운데서도 굴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리스베트의 이야기는 화려한 용문신과 피어싱 보다도 더 빛났다.



1. '소셜 네트워크'의 첫 장면에서 마크 주커버그를 차버렸던 그녀 루니 마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더군요.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확실히 이 리스베트라는 캐릭터는 루니 마라의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2. 아, 스웨덴의 그 공기. 이런 차가운 공기를 느껴보는 건 '렛 미 인' 이후로 오랜만인듯.


3. 이게 한국 영화였다면 전 그 가죽 자켓 버린 곳을 아마도 직접 찾아가 봤을 거에요 ㅋㅋ




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본문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포스터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모든 이미지의 권리는 Columbia Pictures 에 있습니다.

+ Recent posts